[응답받는 기도의 비결]

우리는 사도행전 12:5을 통해 기도하는 방법과 응답 받는 비결을 배울 수 있다. 다시 한번 5절을 읽어 보자.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기도의 응답의 비결을 다음의 4가지 중요한 단어를 통해서 깨달을 수 있다. 그 4가지 단어는 첫째로 "하나님께," 둘째는 "간절히" 혹은 "쉬지 않고," 세째는 "교회는," 그리고 네째는 "그를 위하여"이다.

이 4가지 중요한 단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1. "하나님께"

이 네 가지 단어 중에 가장 중요한 단어는 "하나님께"라는 단어다. 응답받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바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묻는다. "모든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는가?" 아니다. 많은 기도 가운데서 오직 극소수의 기도만이 하나님께 상달된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어떤 때는 100가지 중에 하나도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는 때도 있다. 이렇게 말할 때 당신은 "아, 당신의 말을 이해할 수 있소. 즉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이방인들이 우상이나 거짓 신들에게 기도하는 것을 말하고 있군요"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내가 말하는 기도는 소위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기도를 말하는 것이다.

나는 100가지 기도 중에서 한 가지도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대해서 당신은 "로마 가톨릭 신자들이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에게 기도한다는 의미군요"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기도하는 사람들이란 소위 개신교 신자들을 의미한다. 나는 개신교 신자들의 모든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러면 도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하고 반문할 것이다. 이제 나의 확신과 견해를 설명하겠다.

잠시동안 멈추고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생각해 보자. 사람들이 일어나서 공중기도를 할 때, 혹은 무릎을 꿇고 개인기도를 할 때, 그들이 정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모든 권세를 갖고 계시며, 그들의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으로 믿고 그렇게 기도하는가?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진심으로 위대하신 하나님을 고백하기보다는 그들의 기도에 어쩔 수 없이 응답하시는 분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들은 과연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의 능력과 그의 무한한 지식과 사랑을 체험으로 알고 신뢰하고 있는가? 그들은 과연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하시며, 그들의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우리는 입술로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뿐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모든 것을 인정치 않고 있다. 입술로만 하나님의 능력을 믿을 뿐이다. 우리는 기도할 때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저 하나님의 이름만 부를 때가 얼마나 많은가? 당신은 당신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부르고 있는가?

우리 기도가 능력 있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또한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는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와 대화해야 한다. 우리가 공중기도를 하거나 개인기도를 할 때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가 정말로 깊은 교제가 되기까지는 결코 한 마디도 기도할 수 없다. 아니 기도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라는 단어를 당신의 마음속 깊이 명심하기 바란다. 당신이 하나님의 능력 있는 임재 속에 들어가 그분께 말씀드리기 전까지는 결코 한 마디도 기도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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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먼저 히브리서 10:19에서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우리는 이 "예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온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의 자리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오직이 방법밖에는 없다. 다른 방법은 용납될 수 없다. 그러면 이것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인들이다. 하나님은 너무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천사들도 그 앞에서 그들의 얼굴과 발을 가리고 있어야만 했다(사 6:2).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우리를 위해 완전한 속죄물이 되셨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과 나의 흉악한 죄를 다 짊어지시고 죄의 값을 치르셨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우리 대신 하나님 앞에 희생물이 되셨다.

우리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내 마음속에 영접하고, 그의 피로 말미암아 죄 용서를 받은 순간, 우리의 모든 죄는 용서되며, 의인이라는 칭호를 받고, 사람들 위에 계시는 하나님과 그의 유일한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갈 수 있다.

우리가 그의 존전에 나아갈 때 우리의 얼굴과 발을 가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완전히 "그의 사랑하시는 자"(엡 1:6)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즉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들어간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갈 때 우리 모든 의로움을 포기하고 내가 가장 비참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겸손히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완전히 속죄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의 가장 거룩한 곳으로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다.

이 땅에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로운 행위로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다. 인간은 자기의 선행으로는 하나님께 기도의 응답이나 축복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가 자신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죄를 위해 피 흘려 돌아가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언제라도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으며 하나님께 구한 모든 것을 응답 받을 수 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그렇다. 이것은 진리이며 하나님의 불변의 약속이다. 하나님께 한없는 감사와 영광을 돌린다.


2.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은 에베소서 2:18에 잘 제시되어 있다.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두 분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한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또 한 분은 바로 성령님이다. 우리는 첫번째 진술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나 이제는 성령님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우리가 하나님의 깊은 임재 가운데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속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비결은 오직 성령의 역사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당신과 내가 기도할 때,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며 그분께 우리를 소개하고 대면시키는 분은 바로 성령님이다. 성령님은 또한 우리를 대신하여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계신다. 본문에서 "나아감"이라는 말의 희랍어 원어는 라틴어에서 영어로 번역된 "인도하다" 혹은 "대면시키다" 라는 말과 같은 어원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시며 영광스러운 임재 가운데로 이끌어가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역사를 의지해야 한다. 성령님의 역사가 없는 기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당신은 기도할 때 다음과 같은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가? 무릎을 꿇고 기도할 때 마치 아무도 없는 허공에 기도하는 것처럼 느껴진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가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기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가? 기도하기 싫다고 해서, 혹은 기도가 잘 안된다고 해서 기도를 중단해야 하는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기도가 안 되고 기도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기도해야 하는 순간이다. 이렇게 하나님께 말하라. "하나님, 저는 지금 기도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도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주님께 솔직히 말할 때 벌써 그 자체가 기도한 것이다. 그리고 난 후에 어떻게 해야 되는가?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그분의 약속을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 성령님을 보내사 나를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인도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라. 그리고 난 뒤 성령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기다려라. 그때 성령님은 우리를 말할 수 없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인도하실 것이며 올바른 기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며 역사하실 것이다.

나도 이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처음에 내가 기도하려고 무릎을 꿇었을 때 하나님의 임재를 도무지 느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가 아무도 없는 허공에 대고 기도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 나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그분을 전적으로 의지했고, 성령님을 보내 주시사 내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성령님의 역사로 내가 하나님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드디어 성령님은 내 안에서 역사하셨다. 그분은 내 기도를 힘있게 도와주시며 내 영혼의 눈을 열어 하나님을 보게 하셨다. 나는 성령님의 놀라운 역사로 영적인 눈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며, 그 임재 속에 들어갔다는 확신을 얻기 위한 두 가지 중요한 방법은 첫째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이고, 둘째로는 성령의 역사다. 이 두 가지 방법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우리는 이 문제와 병행해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교리인 삼위일체에 대해서 생각하고자 한다.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특히 우리의 기도생활에 대단히 실제적인 중요성을 갖게 한다. 많은 사람들은 삼위일체 교리가 상당히 추상적이며, 비실제적인 교리이고 또 그것을 해석하고 적용시키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삼위일체 교리는 우리의 모든 영적인 생활을 포함하고 있으며, 특히 우리의 기도생활 가운데 가장 실제적인 문제이며,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교리이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가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성령님이 필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참된 기도를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며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님의 능력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올바르게 기도할 때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틀림없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R.A. 토레이의 '기도와 영력' 중에서(78-89p) 

출처: 생명나무 쉼터 /  한아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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