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아닉쥬(messianic jew)-이스라엘의 기독교인들


이스라엘 안에는 예수를 믿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이름하여 메시아닉쥬(messianic jew)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인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소수라고?”

그렇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지만 불행하게도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극히 적다. 왜 그럴까? 구약성서를 뒤져보면 ‘이스라엘’이 야곱의 또 다른 이름으로 나온다.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어떤 기이한 사건을 통해서였다. 어느 날 밤 야곱은 낯선 사람과 씨름을 하게 된다. 구약성서에서 이 부분을 인용하자면 이렇다.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창세기32:25~28)

야곱의 아버지는 이삭이고 이삭의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은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 씨름을 하고 이긴 뒤 축복을 받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인데, 이것이 이스라엘의 기원이 되는 것은 장차 야곱에게서 나올 열 두 명의 아들 곧,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단, 납달리, 갓, 아셀, 요셉, 베냐민 이렇게 열두 명의 아들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만들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야곱의 네 번째 아들 유다지파의 후손을 통해 구원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신다.


이렇듯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특별히 선택하고 훗날 메시아를 보낼 것을 예비해 하나님의 특별한 관심과 사랑 속에서 보호받고 구원의 언약을 준 민족이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이르자 유대 베들레헴에서 예수가 탄생하게 된다. 신약성서에는 예수가 유대인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유대인들에게 배척을 당하고 고난을 받게 되었는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로 이스라엘 땅에 온 것은 이미 2012년이나 지난 일이다. 그리고 구약 성경에서는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통해 다음과 같은 예언이 되어 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야8:14)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 대부분은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대략 육백만의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만 사천 명 정도의 메시아닉쥬만이 예수가 그리스도, 즉 메시아인 것을 믿고 있다. 나머지 수많은 사람들은 예수라는 이름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고 몇 십만에 달하는 과격파 정통유대교인들은 신약성경 자체를 믿지 않으며 구약에서 선지자 모세가 기록한 5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인 토라를 읽으면서 아직까지도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또한 그들은 메시아닉쥬들을 공공연히 비방하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방해할 뿐만 아니라 2007년 3월에는 메시아닉쥬의 가정집에 폭탄테러까지 감행했다. 그들의 위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들은 교회 앞에 진을 치고 앉아서 예배하러 오는 메시아닉쥬들을 비난하거나 자신들이 믿는 신념에 대해서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그들의 외침은 예수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일 수 있냐는 것과 예수쟁이들은 유대인의 사회를 문란하게 하지 말고 이방인의 나라로 떠나버리라는 식이다.


예수가 이스라엘 땅에 오셨을 때에도 그들의 선조들은 똑같은 말을 했다. 과격파정통유대교인들의 선조는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다. 신약성서에는 이들이 예수를 어떻게 비방하고 학대하며 끝내 십자가에 매달아 죽게 했는지 그 과정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 조상들의 무지와 몽매함을 그대로 답습하고 이천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영적으로 깨어나지 못한 그들이 예수를 믿는 같은 유대인인 메시아닉쥬를 바퀴벌레 보듯 하면서 박해하고 있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저들은 메시아닉쥬를 십자가에 매달수도 없고, 당국에 고발해서 구속시킬 수도 없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이천 년 전 그들의 선조가 예수에게 저질렀던 잔악성의 불꽃이 활활 피어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시아닉쥬의 숫자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이들 가운데 80%는 성령을 체험하거나 예수를 환상이나 꿈으로 보고 은혜를 받아 교인이 된 사람들이라는 보고가 있다. 나 역시 그런 성령의 불같은 체험을 했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듯이 저들도 성령으로 인도되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 제자들이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느냐고 묻는다. 그때,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신다.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태복음24:10~14)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무고한 예수를 고발하여 법정에 세운 뒤에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게 했다. 이 일 일어난 시기를 전후로 이스라엘은 나라를 이미 잃고 로마의 속국으로 전락한 뒤에 1948년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다시 찾기까지 오랫동안 유대인은 세계 각국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유대인은 하나님에 대해서 정통하다. 그들은 여호아 하나님에 대해서 완전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을 향한 정시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이 구약에서 명시한 율법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며 절기를 지키고 음식마저도 하나님께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음식을 피한다. 그들은 구약성서에 명시된 하나님의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종교인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구약성서는 유대인의 구원자로 오실 분에 대해서 이미 예언하고 있고, 신약성서에서 하나님의 언약대로 그분을 보내셨다. 신약성서는 그분의 말씀으로 가득한 데 그들은 그 말씀을 전혀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신약성서 전부를 부인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다는 것 자체를 불경한 것으로 보고 배척하는 것이다. 창세기 원죄(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하나님을 떠나게 된 죄), 조상죄(우리선조들이 지은 죄), 자범죄(살면서 개개인이 지은 죄)등 인류의 죄 문제를 대속하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의 존재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부정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고 전 세계에 흩어짐으로 인해서 오히려 이방 나라들에게 복음을 퍼트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정작 예루살렘은 이방나라의 종교인 이슬람 사원이 세워져 아직까지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유대왕국을 지탱했던 상징적인 건축물인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졌다. 예수께서 이미 성전을 가리키며 말씀하신 그대로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마태복음 24:2)

예루살렘 성전을 되찾기 위해서 숱한 전쟁이 있었으나 하나님의 손에 의해 무너뜨려진 성전이 하나님의 허락 없이 다시 지어질 수는 없는 일이다. 세계사에 유래를 찾기 힘든 이백 년 동안 계속된 십자군 전쟁은 바로 예루살렘 성지를 그리스도교가 되찾기 위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이방신이 점령한 예루살렘은 건재하다.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사십 일 동안 나타나신 뒤에 다시 하늘로 올려 질 때에 제자들은 예수께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어느 때인지 묻는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1:7~8)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짐으로 인해서 그리스도교는 세계만방으로 널리 퍼졌다. 세계사의 크고 작은 사건들은 거의 대부분이 그리스도교가 다른 종교를 믿는 국가와의 대결과정을 통한 전도와 선교를 다루고 있다. 이것은 이방 나라에 그리스도를 알리기 위한 하나님의 장대한 계획이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 때가 온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예루살렘 성전은 회복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 국가는 재 창건 되었고 그 안에 올바른 복음을 듣고 예수가 그리스도 되신 사실을 믿는 유대인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는 오늘을 보면 그렇다. 이스라엘에 그리스도교가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시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사도행전1:5) 예수그리스도가 다녀간 이후로 그를 믿는 자들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되리라는 말씀이시다. 사실상 초대교회인 마가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은 모두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 오늘날의 우리도 모두 마찬가지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에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된다. 즉, 내 몸속에 보혜사 성령이 내주하시는 것이다. 보혜사에 대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요한복음14:26)

그리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이 내주한 사람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성령 충만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메시아닉쥬의 대부분이 이런 성령체험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 안에서 그리스도 교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아직까지는 위험한 일이며 목숨을 건 신앙이다. 그러나 만 사천 명의 교인들이 이스라엘의 정통유대교 교권을 무너뜨리고 진정한 복음 위에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할 날이 머지않았다. 그리고 이렇게 이스라엘에 복음이 전파되고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세워지는 날이 바로 예수가 재림하는 심판의 날이 되리라고 본다. 그날은 분명 오늘날이다. 그러나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내 자신의 교만과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 내가 마치 신과 동등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상과 이익추구에만 혈안이 된 탐욕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모두 구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다.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다.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내가 내 자의로 말하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요한복음12:4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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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서 '여성할례' 비밀리 확산…FBI 단속 나서

 

 

미국 내에서도 '여성 할례'가 은밀히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연방수사국(FBI)이 단속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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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에서 성형수술로 위장한 '여성 할례'가 성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연합뉴스  

 

성형수술로 위장, 점조직 형태로 확산

 

미국 폭스뉴스에 따르면 FBI는 여성 할례를 국제적 인권침해 범죄로 규정하고, 소녀들에게 할례를 시술하거나 이를 강요하는 행위에 대한 수사를 광범위하게 진행 중이다.

 

케리 스파크스 FBI 특별요원은 "미국 내에서 어린 소녀들에 대한 할례 시술이 은밀히 자행되고 있다"며 "일부 소녀는 방학을 맞아 할례 시술을 하는 외국으로 나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질병통제예방센터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여성 50만 명 이상이 할례 시술을 이미 받았거나 받을 위험에 처해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1990년 조사 때보다 3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미국 내에서 여성 할례는 아프리카와 중동 등 이슬람 국가에서 이민 온 가정에서 주로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 할례 반대 단체인 '소녀를 위한 안전'의 자하 두쿠레는 "미국에서 할례로 고통을 받은 소녀를 만나지 않는 날이 없다"면서 "여성 할례는 성형수술이나 질성형으로 위장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집트 출신의 전 방송인 와히드 복토는 "미국에서는 자신의 딸과 손녀에게 할례 시술하려는 여성들이 대부분"이라면서 "할례 시술은 비밀스럽게 이뤄지며 점조직 형태를 띠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50개 주 중 24개 주, 할례 '금지'

 

실제로 미국에서는 현재 여성 할례를 위해 소녀들을 해외로 보내거나 시술하는 행위가 연방범죄로 규정돼 있다. 연방 의회가 지난 2013년 '여성 할례 이동 금지법'을 제정했기 때문이다.

 

50개 주 가운데 24개 주는 할례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지만, 나머지 26개 주에서는 불법이 아니다. 이에 따라 여성·인권단체들은 26개 주에서도 할례가 불법으로 규정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할례 금지' 주에서도 처벌 수위는 제각각이다. 버지니아 주는 지난달 여성 할례를 1급 경범죄로 규정하고 위반 시 최대 징역 1년에 처하도록 하는 법안을 의결했다. 반면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징역형뿐만 아니라 벌금형까지 부과하고 있다

 

이에 인권단체들은 "여성 할례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단속과 함께 처벌이 필요하다"면서 "할례가 성행하는 지역에서 온 이민자를 상대로 한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 할례를 강요했다가 추방당한 사례도 늘고 있다. 연방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최근 에티오피아 남성 1명을 본국으로 추방했다.

 

이 남성은 지난 2006년 자신의 2살 난 딸에게 할례를 시술하다가 적발돼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풀려났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반(反)이민 정책에 휩쓸려 추방까지 당했다.

 

여성 할례는 성기 일부를 절제하거나 절개하는 의례다. 주로 아프리카와 중동, 폴리네시아 등 일부 지역에서 성행하고 있으며 소녀의 순결성과 결혼 자격 등 다양한 이유로 이뤄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아프리카, 중동 29개국의 여성 1억 3천300만 명 이상이 할례를 경험했으며 매일 9천800명, 매년 3천600만 명이 할례를 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주련 ⓒ 데일리굿뉴스

가져온 곳: USA 아멘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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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1년 압델 말릭이 세웠다는 바위사원,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 했던 곳으로 지금은 회교사원으로 쓰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황금돔은 회교 사원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사진은  보기힘든 사진 입니다.. 통곡의 벽.. 유대인의 눈물의 장소 입니다.

 통곡의 벽 뒤편은 팔레스타인 아랍 지역입니다..   유대민족의 소망 시온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장소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힌옷 입고 있는 사람.. 모자 쓴 사람.. 군인들 보입니다. 대리석 바닥 깨끗합니다..

신기하게 여자는 안보입니다.. 저만 그렇게 보는가? 봅니다.. 확인 안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통곡의 벽...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군인들이 머리를 기대어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 랍비로 보이는 분이 성경(토라)을

읽고 있습니다... 오래전엔 .. 통곡의 벽에는 쪽지가 꽃혀 있었습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습니다....?? 순례객들의 기도 장소 이며 유대인의 소망인 예루살렘 성전 건축

..... 이스라엘의 진정한 회복은  저 .. 회교 사원을 불도저로 밀어내고

다시금  성전을 건축하며 성소를 짓는것일것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01년 신문 자료 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믿게 만드시고  믿어지게 하신 주님께 거듭 감사드립니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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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만 해도 마음이 착잡해지는 여행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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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폴란드의 오슈비엥침(Oświęcim) 이라는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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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로는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Konzentrationslager Auschwitz)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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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입구 철문에는 '일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다' 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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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입장객 중에 가장 많이 눈에 띄는 민족은 작은 원형모자(키파)를 쓴 유대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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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참담했던 역사를 잊지 않으려 아우슈비츠를 찿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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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는 선생님을 따라 단체로 견학 온 어린 고등학생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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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문 앞에서 사진촬영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에서 온 이스라엘 경찰들.



 
나치 친위대 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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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믈러1940 4, 'Rudolf Höss'를 아우슈비츠 총책임자로 임명하고 수용소를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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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폴란드 포병막사였던 아우슈비츠 주변에는 광대한 땅들이 널려있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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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적으로도 유럽의 중심이었기에 유럽에 거주하는 유대인을 손쉽게 이동시킬 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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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히믈러가 총책임자 회스에게 수용소 캠프의 건설을 명령한 것은 1940년 4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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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끌려온 포로들은 유대인 아닌 폴란드 정치범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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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쯤 세월이 지나자 수용소 인구는 3만명을 훌쩍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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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 3, 히믈러는 아우슈비츠를 다시 방문하고 수용소의 대대적인 확대를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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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세워진 수용소가 아우슈비츠 제2호로 불리는 비르케나우(Birkenau) 집단수용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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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비르케나우 정문 건물은 원래 1903년에 세워진 학교 건물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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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는 그 곳에 큰 문을 만들고 철로를 건설하여 유대인들을 실어 날랐던 것이다.

 

 

치클론 B
유대인 가스실 대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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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이 처음으로 대거 아우슈비츠로 수용된 날은 1942년 2월 15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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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아주 사소한 것까지 모두 치밀하게 계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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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수감자에게는 이틀치의 식량과 반합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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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펫을 짜기 위해 모아둔 머리카락(7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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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6,525점의 여성 의류와 구두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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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820
점의 남성 의류와 면도용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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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제조된 칫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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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만 개의 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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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개의 인공 수족,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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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통으로 400명 정도를 질식사 시킬 수 있었던클론 B(Zyklon B) 전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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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샤워실로 위장된 가스실은 가짜 샤워기가 달려있어 희생자들을 속이기에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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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실에서 희생자들이 숨을 거두기까지의 시간은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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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실에서 나온 시체는 금니와 반지 등을 뺀 후 소각로로 보내졌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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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는 갈아서 비료로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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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11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가장 중요한 빌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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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게슈타포에게 체포된 포로들이 잔인한 심문을 받은 후 총살형 또는 교수형에 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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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살에 의한 처형장은 옆 건물 빌딩인 10과 빌딩 11 사이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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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10은 유전학을 연구한다는 핑계로 잔혹한 인체실험을 감행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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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대학살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가 유대인을 전멸시킬 목적으로 자행했던 것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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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들 중에는 유대인 외에도 동성애자, 집시, 보이스카우트, 정신박약아, 쌍둥이도 포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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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치료병동(19, 20, 21, 28)이 있었지만 이것은 포로들을 치료하려고 만든 병동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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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보기에 병약해 보이는 포로는 독극물 주사를 놓든가 가스실로 보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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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실로 보내지지 않은 포로들은 좁고 더러운 막사에서 새우잠을 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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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들이 화장실에 가는 시간은 하루에 딱 한 번, 시간은 10초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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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다수의 포로들은 아우슈비츠에는 하나님이 안 계시다고 몸부림치며 죽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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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에서 가장 많은 유대인을 살해한 것은 1943년 1월부터 3월까지 3개월동안의 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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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간동안에 살해된 유대인은 105,000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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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에서 살해된 총희생자는 유대인 사이트에는 2백만에서 4백만이라고 적혀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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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에는 1940 ~ 1945년동안 1,100,000명(유대인 90%)이 희생됐다고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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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놀랍게도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탈출한 용감한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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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2명이 탈출을 시도 144명이 성공했으며, 아직까지도 행방을 알 수 없는 사람은 331명에 이른다.
 
 

3명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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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아우슈비츠 수감번호(918번), 카지미에쉬 피초프스키

 

그 중, 가장 드라마틱하게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탈출한 포로는..

폴란드 정치범이었던 카지미에쉬 피초프스키(Kazimierz Piechowski)와 3명의 친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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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카우트 출신이었던 피초프스키는 당시 23살의 나이로 힘이 좋고 체격도 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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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의 친구들 또한 독일말을 구사할 수 있어 수용소에서는 모두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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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한 명의 친구가 우크라이나 출신의 에우게니우스 벤데라(Eugeniusz Bendera)라는 친구.

벤데라는 자동차 기술자로 독일군 차량을 정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독일군 파일을 통해 자신이 곧 사형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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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함께 맹세한 4명의 친구들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탈출을 계획하게 된다.

독일군의 복장과 승용차로 정문을 통한 탈출을 계획한 그들은 거사의 날을 정하고 행동에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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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탈출에 사용하려 점찍어 놓은 차는 수용소 총책임자 루돌프 회스의 승용차 ‘Steyr 220’였다.

Steyr 220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있는 차 중에는 가장 빨리 달리는 승용차였다.

혹시라도 있을 독일군의 추격을 따 돌리려면 그들에게는 빠른 속도의 승용차가 필요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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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6월 20일 토요일,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거사의 날이 밝았다.

2층에 있는 창고에 몰래 들어간 그들은 독일 친위대 장교복 등 군복으로 갈아 입고 무장한다.

한편, 벤데라는 복사된 키를 가지고 차고에서 승용차를 가져왔다.

정문을 통과할 때는 조마조마 했으나 승용차를 본 보초병이 손을 쳐들며 먼저 하일 히틀러’를 외친다.

4명의 친구들은 내색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쾌재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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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용차는 수용소 정문을 지나 달리고는 있지만 아직 마지막 바리게이트가 남아있다.

이곳은 친위대 보초병이 패스를 보여 달라고 할 수 있기에 4명의 친구들은 긴장한다.

80미터 앞까지 왔지만 바리게이트 차단봉은 그대로 내려져 있다.

60미터에도 바리게이트 차단봉은 올라 갈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40미터에도 그대로..

25미터에도 그대로..

이때, 뒤에 있던 친구(Jozef Lempart)가 친위대 장교복 차림의 피초프스키의 등을 치며 말했다.

뭐라고 말좀 해 봐!’

정신이 번쩍난 피초프스키는 그때서야 차 문을 열고 보초병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

야 이놈아 빨리 차단봉 올리지 못해! 너 죽고 싶어 환장했어!”

차단봉은 즉시 열렸으며, 4명의 친구는 수용소를 완전히 탈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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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에 수감된 포로들은 모두 죄수 번호 문신을 팔뚝에 새겨야 했다.

 

60년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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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탈출기는 다큐멘타리 영화로도 제작됐고..

 

 

70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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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세의 피초프스키는 아직도 정정하게 살아서 수용소의 참상을 증거하고 있다.

 

 

 

 

 

나치의 몰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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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 히믈러는 패전후 영국군에 체포되자 독극물을 먹고 자살했으며..

(1945년 4월 29일)

 

루돌프 회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내에 새로 만든 교수대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1947년 4월 16일)

   

글 사진: 서정

Gabriel.S Oboe




출처: http://mission.bz/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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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구분

 우리는 보통 유대인이면 다 아브라함의 자손 이삭의 후손 야곱의 자손들이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상을 알고 보면 본래부터 유대인 혈통인 세파르딤(Sephardim)에 속하는 유대인들은 그리 많지 않고 거의 90 % 이상이 유대교로 개종한 아슈케나짐이라 불려지는 유대인들이다.
세파르딤(Sephardim)에 속하는 유대인들은 한 동안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에 거주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자손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일찍이 이베리아 반도에 이주한 세파르딤은 중세에는 세계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 모든 유대인들의 약 반수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라디노어(語)를 사용하고 이슬람문화와 동?漫� 가장 활동적이었다. 1492년 에스파냐에서 그리스도교로의 개종을 거부한 유대인에 대해 추방령이 내려졌으며(공식으로는 1968년까지 존속) 약 25만 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이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 그리고 오스만투르크로 이주했다. 오스만투르크에서는 유대인들을 환영했기 때문에 테살로니키(지금의 테살로니케)는 세파르딤의 중심지가 되었다. 개종한 유대인(콘베르소 또는 마라노)도 유대교를 버릴 수 없어서 <숨어서 사는 유대인> 생활을 했으며 16세기에 포르투갈을 거쳐서 네덜란드로 이주했다. 세파르딤의 이주는 그 뒤 영국·미국·보르도·함부르크로 퍼져나갔다. 중세 이후 유대인은 둘로 나뉘어 각각 아슈케나짐과 세파르딤으로 불렸다. 수적으로는 소수여서 제 2 차세계대전 전에는 유대인 총인구 1650만 명 가운데에서 세파르딤은 불과 150만 명 정도였다. 나치스는 네덜란드에서 아슈케나짐과 세파르딤에게 차별을 두어 처우했다.

지식인, 숙련노동자들이 대부분인 서유럽계(동구 및 독일계가 주류) 유대인들(Ashkenazim, 아슈케나짐)은 건국 초기부터 정치, 경제, 군사 부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데 반해 미숙련 노동자로 이루어진 아프리카, 중동계 유대인들(Sephardim, 세파르딤)은 사회구조의 하층을 형성하여 유대인 사회 내에서 갈등의 씨앗이 되었지만 건국 이스라엘에서 새로이 태어난 세대들(Sabra, 사브라)들이 사회의 주류로 등장함에 따라 많이 해소되고 있다.

세계 각 지역에 흩어진 독일계 유대인과 그들의 자손 및 전통·문화의 총체를 의미하는 말. 본래 라인지방의 유대인을 가리키는 말에서 전이되었다. 단혼가족(單婚家族)을 구성하며 이디시어를 사용한다. 중세 이후의 유대인 세계는 아슈케나짐과 세파라딤(sefaradim)으로 분리되었다. 이 분리는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수석랍비(유대교의 성직자)를 2명 두고 있는 것으로 상징된다.

아슈케나짐의 종교적 태도는 근본주의적·엄격주의적 경향을 나타내며 순교의 성스러운 전통을 지키고 있다. 15∼16세기에 서유럽에서 동유럽으로 이주함과 동시에 그들의 중심지도 보헤미아· 모라비아· 폴란드· 리투아니아로 옮겨졌다. 17세기 이후 동유럽에서의 학살·박해의 결과로 이주자들이 서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유럽·오스트레일리아·남아프리카·미국에서 세파라딤보다 우세해졌다. 제 2 차 세계대전 전에는 전 세계 유대인 1650만 가운데 90%는 아슈케나짐이었다.

유대인이란 말은 대체로 종교적인 의미에서는 유대교를 신봉하는 사람, 민족적인 의미에서는 혈연 또는 개종을 통해 고대 히브리인의 후예가 된 유대 민족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민족적인 의미를 다룬다.

어원은 유대인을 가리키는 명칭인 그리스어의 Iudaios , 라틴어의 Judaeus, 프랑스어의 Juif, 독일어의 Jude, 영어의 Jew, 스페인어의 Judio, 러시아어의 Zhid 등은 모두 고대 히브리인의 12지파 중 하나인 '유다(예후다)' 지파에서 왔다. 고대 히브리 왕국이 남북으로 분열되었을 때 유다 지파가 다수였던 남쪽 왕국이 유다 왕국이 되었는데 북쪽 이스라엘 왕국이 멸망 후 뿔뿔이 흩어져 명맥이 끊긴데 반해 유다 왕국의 후예들은 유대교를 계속 지켜와 유대인들의 조상이 되었다. 오늘날에는 이들 명칭 중 일부는 경멸의 뜻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져 다른 명칭이 쓰이기도 한다. '히브리'가 어원인 러시아어의 Yevrey(Еврей)가 일례이다.

유대인의 역사


구약성경에 의하면 고대 이스라엘인 또는 고대 히브리인은 아브라함의 후예로 카나안 땅에서 사울을 초대 왕으로 고대 히브리 왕국을 세웠다. 2대 다윗 왕은 예루살렘을 정복, 왕국의 수도로 삼고 그의 아들 3대 솔로몬왕이 여기에 유대교 성전을 건축하였다. 하지만 솔로몬 사후 북의 이스라엘 왕국과 남의 유다 왕국으로 분열되어 이스라엘은 BC. 721년 아시리아의 살만에셀 5세에게 멸망하고 유다는 BC 586년 신(新)바빌로니아에 멸망하였다. 유다의 엘리트는 바빌론으로 끌려가나(바빌론 유수) 이후 바빌로니아가 페르시아에 망한 뒤 그중 일부가 유다 땅에 돌아와 성전을 재건하고 유대인의 명목을 이었다. 보통 구약성경에 포함되는 기록은 이때까지의 역사가 배경이다.

그후 유대인들의 땅은 페르시아가 알렉산더에게 정복당한 후 시리아 지역에서 알렉산더의 제국을 승계 셀류크스(Seleucid) 왕조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셀류크스 왕조의 안티오크스 4세 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의 유대교 성전을 제우스 신전으로 바꾸려 하자 유대교 정통파들은 마카비 가문(Maccabees)의 지도로 반란을 일으켜 독립된 유대인 왕국을 세웠다. 이를 하스몬 왕조(Hasmonaean Dynasty)라 하는데 BC 165년부터 BC 63년까지 계속되었다. 그후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 유대(Judaea) 주로 편입되었다. AD 66년 유대인들은 유대 땅을 다스리던 로마 지배자들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으나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 플라비우스 황제는 이를 철저히 진압하고 성전을 파괴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그들 땅에서 유대교를 믿도록 허용했다.

AD 2세기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에는 율리우스 세베루스가 바르 코흐바(bar Kokhba)의 반란을 진압하면서 유대 땅을(이후 이 지방은 팔레스티나 지방으로 불리운다) 파괴했으며 135년 이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되었다.

유대 땅의 유대인들은 대다수 노예로 팔리거나 로마의 시민으로 동화되었다. 이렇게 뿔뿔이 흩어진 것을 두고 디아스포라라고 한다. 로마 시대의 유대인들 상당수는 헬레니즘 및 로마 시대에 알렉산드리아와 소아시아 등지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이들로 생각된다.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 전역에 살았으며 이슬람교가 성장하면서는 일부가 인도와 중국까지 진출하기도 하였다. 오늘날의 유대인 중 일부는 지중해 연안 외의 지역에서 유대교로 개종한 이들의 후손인데 카자르인(Khazars), 에돔인(Edomites), 에티오피아인, 아랍인 등이 유대교로 개종하는 일이 많았다.


유대인의 분파


흔히 사용하는 아슈케나짐(Ashkenazim)와 세파르딤(Sephardim)의 구분은 종교적 차이와 민족적 차이를 다 포함한다. 어떤 학자들은 아슈케나짐 유대인들은 팔레스티나 유대교 전통을 따른 이들의 후손이며 세파르딤 유대인들은 바빌로니아식 유대교 전통을 따른 이들의 후손이라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유대 민족의 4대 분파는 다음과 같다.

아슈케나짐 - 독일과 프랑스에서 살다가 동유럽으로 이주하였다.
세파르딤 -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살았다.
동방 유대인 (Oriental Jews) -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살다가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등지에도 퍼졌다. 이들은 세파르딤 유대인들과 종교 의례가 거의 같아 보통 세파르딤이라 부르기도 한다.
예멘 유대인 (Yemenite Jews) - '테이마님(Teimanim)'이라고도 한다. 동방 유대인이었는데 지리적·사회적으로 다른 유대인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특이한 예배식과 의례가 발전하였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소수 분파가 있다.

에티오피아 유대인 - '팔라샤(Falasha)' 또는 '베타 이스라엘(Beta Israel)'이라고도 불린다.
베네 이스라엘 - 인도의 뭄바이(봄베이)에 살았다.
코친 유대인 - 이들도 인도에 살았다.
로마니오트 (Romaniotes) - 헬레니즘 시대부터 현재까지 발칸 반도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이다. 전세계에 6천명 정도 있다.
아슈케나짐는 전통적으로 이디슈어를, 세파르딤은 라디노어(유대 포르투갈어)를 사용했다. 동방 유대인은 대부분 아랍어를 사용했으나 아람어, 페르시아어(파르시어)를 사용하는 이들도 있었다.

스페인의 종교재판(Spanish Inquisition) 이후 세파르딤 유대인들은 흩어져 유럽에 이주, 아슈케나짐와 동화되거나 중동으로 이주, 동방 유대인들과 동화되었다.

오늘날 유대인의 80% 정도가 아슈케나짐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동방 유대인이다.

유대인 하위 집단에는 '그루짐(Gruzim)' 즉 카프카스 그루지야 지방의 유대인, '유후림(Juhurim)' 즉 코카서스 동부 다게스탄의 산악 유대인, '마크레빔(Maghrebim)' 즉 북아프리카 유대인, '아바유다야(Abayudaya)' 즉 우간다 유대인 등이 있다.

오늘날의 유대인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전세계의 유대인 인구가 1천8백만 정도였으나 나치 독일의 유대인 대학살(Holocaust)로 1천2백만 정도로 줄어들었다. 오늘날 전세계 134개국에 1천4백만 정도가 살고 있다. 미국에 5백80만, 이스라엘에 5백만 정도가 살고 있다. 그밖에 캐나다, 헝가리, 우크라이나, 프랑스, 아르헨티나, 러시아, 독일 등에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살고 있다. 유럽의 유대인 인구는 2백40만, 라틴 아메리카는 5십만 이상으로 추정된다.

1948년 5월 14일 설립된 이스라엘 공화국은 유대인이면 누구나 시민권을 발급할 수 있게 허용한다. 이는 귀환법 또는 귀향법(the Law of Return)이라고 한다. 이 법률상 조부모 중 유대인이 있거나 유대교로 개종한 이들 모두 유대인으로 간주된다. 또 유대인 이민자들과 가족관계인 비(非)유대인들에게도 이스라엘 이민을 허용한다. 이스라엘의 귀환법이 유대교에서 전통적으로 따르는 유대인의 정의보다 일부러 더 광범위하게 정의한 이유는 유대인의 친척들도 외부에서는 유대인으로 여겨 반유대주의의 피해를 입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유대인이 다수민족인 국가는 이스라엘 뿐이다. 유럽에서 유대인이 가장 많은 곳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로 1백만에서 1백50만 정도가 있다고 추산된다. 유럽에서 유대인 인구가 가장 빨리 증가하고 있는 국가는 독일로 특히 동유럽에서 많이 이주해 온다고 한다.

 

출처 : 에스라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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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무 종교도 없는 곳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이미 기존의 여러 종교들을 활발하게 믿고 있는 곳에 들어갔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수많은 신들의 이름과 종교 예식에 관한 기록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 중에서 이러한 신이 어떤 신인지 아는 성도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수많은 종교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 부분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가나안 종교에 대해서 크게 경계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종교를 극복하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성경의 이야기에서 이러한 종교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퓐� 우리는 먼저 근동, 특히 가나안 사람들이 믿었던 신들과 그들의 종교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을 이해하게 되면 성경에 나오는 많은 부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신들에 대한 이야기는 1929년에 발굴된 라스솨마라의 서판에 기록된 것을 기초로 한 것입니다. 

 

1. 엘(El)

가나안 종교는 다신론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라스솨마라 서판에 기록된 내용에 의하면 가나안 신중에 최고의 신은 "엘"(EL)이었습니다. 엘은 모든 신들의 아버지였으며, 북방에서 신들이 모여 총회를 열 때에 그 회의를 주관하는 의장 역할을 했습니다. 가나안 신화에 있어서 "북방"은 헬라 신화에 있어서 "올림푸스(Olympus) 산"과 같은 신들의 집합소였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북방"을 신비에 쌓인 신들의 나라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엘"이란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 데(이스라엘, 미가엘 등), 이 말은 하나님을 의미하는 일반적인 용어였습니다. 

  

2. 아세라 여신  

우가리트 문헌에 의하면 이러한 "엘" 신의 아내는 "아세라"라고 부르는 여신이었습니다. 우가리트 문헌에는 아세라 여신을 "아쉐라트"(Asherat), 또는 엘신의 여성 명사인 "엘랏"(Elat)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이 이름을 "아세라 목상", 또는 "아세라 상"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헬라어, 라틴어, 영문 성경에서는 아세라를 그냥 "나무기둥"이라고도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번역한 이유는 당시 신당에 세웠던 나무 기둥이 아세라 여신을 상징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라스솨마라 서판의 기록을 보면 아세라 여신은 나무 가지가 무성한 것같이 "풍요와 번영을 상징하는 여신"이었습니다.

 

3. 바알(Baal)   

다음에 중요한 신은 바알이었습니다. 바알은 구약 성경에 가장 많이 나오는 신의 이름입니다. 바알이란 말은 우리말로 하면 "주인"(Lord)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알은 신의 우두머리인 엘 신의 아들이었으며, 또한 후계자였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바알이 북방 하늘에 있는 높은 산에 보좌를 베풀고 가나안 신들을 다스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사람들은 바알을 가리켜 "하늘의 주"(The Lord of heavens)라고 불렀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바알이 하늘의 비와, 땅의 폭풍을 주관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천둥소리를 바알의 음성이라고 믿었습니다. 라스솨마라 석비에는 바알의 그림이 하나 있는데, 그 그림에서 바알은 오른 손에 창을 들고, 왼손으로 벼락을 잡고 내려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비와 구름을 주관하는 바알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우가릿 문헌) 바알이 세상에 "풍요와 번영"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주인 바알에게도 대적이 있었습니다. 바알에게 있어서 가장 큰 대적은 "못"(Mot)이라는 신이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에게 있어서 못은 불행의 신, 또는 죽음의 신으로 알려졌습니다. 후에 못은 바알과 싸워 승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전쟁에서 바알을 죽이고 7년 동안 신의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땅에는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7년 후에 바알의 누이이며 애인이었던 아낫(Anath)이 못과 싸워 승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전쟁의 신인 아낫은 승리한 후에 바알의 시체를 찾아 다시 살려냈으며, 못은 죽여버렸습니다. 이로 인해 바알은 다시 살아나게 되어 다시 세상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에 세상에는 7년 동안 큰 풍년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을 참고해 보면 가나안 사람에게 있어서 바알은 신들의 왕으로서 악과 싸우는 정의의 신이었습니다. 또한 구약 성경을 보면 바알은 "다곤 신의 아들"이라고 불려지기도 했습니다. (삼상 5:1-, 삿 16:23)을 보면 다곤 신은 곡물을 주관하는 신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블레셋 땅인 아스돗과 가사에는 그를 숭배하던 산당이 있었습니다.

 

4. 아낫(Anath)과 아스다롯(Ashtaroth, 또는 Astarte)  

가나안 사람들이 숭배하는 신들은 사람들과 같이 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섬기던 신중에는 3대 여신이 있습니다. 이 3대 여신의 이름은 아세라와 아낫과 아스다롯이었습니다. 이미 앞에서 생각한 것처럼 아세라는 엘신의 아내로서 모든 신들의 어머니 였습니다. 그리고 아낫 여신은 바알 신의 누이인 동시에 애인이었습니다. 아낫은 전쟁의 신인 동시에 성(sex)를 주관하는 여신이었습니다. 또한 아스다롯은 저녁별의 여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렘 44:19)을 보면 이스라엘 여인들이 "하늘의 여신"에게 분향하고 제사드렸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 곳에서 언급하고 있는 하늘의 여신이 바로 아스다롯이었습니다. 아스다롯도 아낫과 같이 전쟁과 성을 주관했습니다. 따라서 이 두 여신은 서로 혼동되어 숭배되기도 했습니다.

 

이 3대 여신은 가나안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이상적인 여인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세라 여신은 한 남편의 아내인 동시에 어머니로서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낫은 젊은 여성의 정열과 흥분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아스다롯은 별과 같은 여성의 아름다움과 성적 매력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름에는 아낫 여신의 이름이 포함된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삿 3:31)을 보면 이스라엘의 사시였던 삼갈의 아버지의 이름이 "아낫"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아낫 여신은 가나안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널리 알려지고 숭배된 신이었습니다. 아낫은 일명 "쿠두슈"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거룩한 자"라는 말이었습니다. 성경에는 아낫 여신에게 바쳐진 남성을 "카데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이 말을 "미동", 또는"남색하는 자"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왕상 14;24, 15:12, 22:46, 왕하 23:76 참조).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낫 여신을 위해 여호와의 전 가운데 "미동의 집"을 두었습니다. (왕하 23:7)을 보면 이스라엘 여인들이 이 곳에서 아세라를 위해 휘장을 짰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5. 못(Mot)과 얌(Yam) (일명 리워야단)  

성경에 등장하는 악한 영은 사단, 또는 마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종교에서 악한 신은 앞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못이라는 신이었습니다. 못은 바알 신의 주된 원수였으며 불행과 죽음을 주관하는 신이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못 신이 지하세계나 광야의 황무한 땅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신의 다른 이름이 있는데, 그것은 "호론"이었습니다. (수 10:10-11)을 보면 기브온 전쟁 때에 전쟁터였던 곳 중에 "벧호론"이란 곳이 있었습니다. 이 벧호론이란 말은 "호론의 집"이란 말이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벧엘이란 말이 나오는 데, 이 말은 엘, 즉 하나님의 집이란 말입니다. 벧엘이 하나님의 성소와 깊은 관게가 있듯이, 사람들은 벧호론 역시 호론 신과 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벧호론에 호론 신을 섬기는 제단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종교에서 못 외에 또 다른 악한 신이 있었습니다. 그 신은 "얌"(Yam), 또는 "리워야단"(Leviathan, Lotan)이라고 부르는 신이었습니다. "얌", 또는 "리워야단"은 그리이스 신화의 포세이돈과 같은 바다의 신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얌, 또는 리워야단이 머리가 일곱 개 달린 괴물로서 깊은 바다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리워야단의 이름이 종종 나타나고 있습니다(시 74:14, 104:26, 욥 41:1, 사 27:1 참조). 우리 말 성경에는 이 신의 이름을 "악어"로 번역하고, 각주에 원문대로 "리워야단"이라는 설명을 붙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 27:1)에는 이 괴물을 원문대로 "리워야단"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 동안 얌을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고고학의 발달로 인해 우가리트 서판에서 얌의 이름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기록을 통해 얌이 그들이 섬기던 해양 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의 시인들은 종종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찬양할 때에 특별히 "리워야단을 멸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노래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리워야단이 매우 큰 힘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신을 멸하셨다는 말은 그만큼 하나님의 능력이 크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얌과  리워야단 역시 바알의 강력한 원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6. 몰렉(Molech) 또는 밀곰(Milcom)  

성경에 기록된 또 다른 심은 "몰렉"이라는 신입니다. (왕상 11:5,33)을 보면 몰렉은 밀곰이라고도 불리는 암몬 사람들이 섬기던 민족 신이었습니다. 유프라테스 강의 중류 지역인 Mari에서 발굴된 서판의 기록을 보면, 주전 1800년경에 몰렉이 이 지역에서도 숭배되고 있었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앗수르 왕은 주전 722년에 이스라엘을 점령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유프라테스 강이 있는 지역으로 이주시켰습니다. 그리고 앗수르 왕은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지역에서 사람들을 데려다가 이스라엘에 정착하여 살게 했습니다. 이때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가져온 신은 "아드람 멜렉"과 아남멜렉이었습니다. 아드람 멜렉은 영광스러운 왕이란 뜻으로 태양을 상징했으며, 아남멜렉은 별, 특히 토성을 상징하는 신이었습니다. 학자들은 이 신의 이름이 태양과 별을 상징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신이 태양의 파괴력과 별의 보호하는 힘을 가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사람들은 이 신에게 자기 자녀를 불에 태워 제물로 드렸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몰렉 신과 비슷합니다. 그러므로 학자들은 아드람멜렉이나 아남멜렉이 변형된 몰렉신이었거나, 아니면 몰렉의 또 다른 이름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왕하 21:6, 겔 16:20, 렘 7:31 참조) 이 신에게 제물로 드리기 위해서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했다는 기록이 종종 언급되어 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4세에서 12세까지의 어린아이들을 불에 태워 제물로 드린 수백 개의 납골단지를 발견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무지한 일로 인해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 신을 숭배하는 일을 엄히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이 신을 섬기곤 했습니다(레 18:21, 20:1-5). 성경을 보면 솔로몬이 몰렉을 위해 신당을 지었으며, 아하스와 므낫세는 자기 자녀들을 몰렉에게 제물로 드렸습니다(왕하 16:3, 21:6). 한 때 요시아 왕은 이러한 몰렉 숭배를 엄히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유다 말기에 갈수록 몰렉 숭배는 점점 더 성행했습니다(렘 7:31, 겔 16:20-21, 23:3,39). (삿 11:24)에 보면 사사 입다가 암몬 왕에게 "너희 신 그모스"라고 말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입다가 말한 "그모스"가 바로 몰렉을 가리킨 것이었습니다. 암몬 사람들은 몰렉을 "그모스"라고 부르면서 자기의 민족 신을 삼았습니다. 그들이 어린아이를 몰렉에게 제물로 드린 것은 서원에 대한 증표로 드린 것이었습니다.   

 

7. 가나안 사람들이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한 이유  

가나안 사람들은 이와 같이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고 숭배했습니다. 그들이 이 신들을 숭배한 이유는 "땅의 풍성한 수확"을 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땅 속에 양분이 있으며, 그것이 식물을 자라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가나안 사람들은 식물이 자라고 열매를 맺는 일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적인 힘이 땅 속에 내재하고 있으며, 그 힘이 땅을 비옥하게 하고 곡식을 자라게 하며 열매를 맺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의 가나안 농부들은 이러한 힘이 바알 신과 아세라 신의 성적 결합을 통해서 생겨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신전에서 바알과 아세라를 성적으로 자극하기 위해서 성적 흥분을 자극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바알과 아세라를 흥분시키기 위해서 신전에서 음란한 제사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돕기 위해서 신전 안에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과 성 관계를 맺는 소위 거룩한 창녀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사람과 성 관계를 맺음으로 바알과 아세라가 성적으로 흥분하도록 자극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해서 바알과 아세라가 성적으로 결합을 하게 되면 비가 내려 땅을 적시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곡식이 자라 고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하늘의 신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우리의 전통 무속 종교 역시 비슷합니다. 무속 종교의 경우에는 무당을 통해서 굿을 하면 귀신을 달래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가나안 사람들은 가뭄이 계속되고 비가 오지 않으면 물통을 지고 나무에 올라가서  땅에 붓는 일을 했습니다. 그들은 신들이 이러한 일을 보고 하늘에서 비를 내려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예식은 풍년을 비는 제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일은 모두 자신들의 노력으로 신을 설득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행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풍습들을 보면서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나안 원주민들은 바알을 비를 내려주고 풍년이 들게 해주는 땅의 주인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땅에 들어가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신에게 제사를 드려 많은 수확을 거두고 싶은 유혹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와 바알을 함께 섬기려고 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원주민들이 그 땅에 흉년이 들게 되면 그 이유를 바알을 섬기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의 탓으로 돌릴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바알을 섬기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주민들로부터 집단 폭행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가나안 종교의 유혹과 위협에서 벗어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무속 종교와 불교와 유교에 뿌리 박힌 우리 나라에서 기독교를 믿는 것과 같았습니다. 옛날에도 우리 나라에서 기독교를 믿게 되면, 가문에서 쫓겨나고, 호적에서 그 이름이 말살되기도 했습니다.  

 

8. 가나안 종교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  

그러면 하나님은 이러한 가나안 종교에 대해 어떤 명령을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이러한 종교와 타협하는 일을 단호하게 금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분명하게 바알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정복한 후에 죽기 전에 모든 백성을 모으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냐? 바알이냐? 오늘날 너희가 섬길 자를 택하라!"(수 24:16-28) 여호수아는 죽기 전에 모든 백성들 앞에서 모든 백성이 다른 신을 섬긴다 해도 자신과 자기 가족만은 여호와를 섬기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를 믿는 신앙과 바알 신앙은 결코 함께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가나안 종교를 금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로 이러한 가나안 종교는 신관이 잘못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전능하신 창조주로 알지 않고, 사람들과 비슷하거나 조금 우월한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사람들과 비슷하게 시기하고 다투며, 음란하고 이기적인 존재로 보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제단에서 온갖 음란한 행위를 자행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러한 가나안 종교를 강하게 배격하셨습니다. 둘째로 가나안 종교는 비윤리적인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생각한 것처럼 가나안 사람들은 몰렉 신에게 자기 자녀를 불에 태워 제물로 드렸습니다. 이러한 인신 제사는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가혹하고 잔인한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종교의 이름을 걸고 이러한 잔인한 행위를 행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또한 가나안 종교는 앞에서 생각한 것처럼 성적으로 매우 문란하고 음란한 종교였습니다. 그들은 공개적으로 신전에서 성 관계를 가졌으며, 또 이를 격려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본 아낫은 바알의 누이인 동시에 그의 애인이었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가나안 종교가 성적으로 문란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을 보면 곳곳에서 선지자들이 이러한 문란한 행동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이러한 가나안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보여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우상을 버리고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서 창조주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는 것을 세상에 나타내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은 가나안 사람들이 믿는 난잡하고 문란한 신과는 전혀 다른 분이었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섬기고 믿던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당시 사람들에게 혁명적인 종교였습니다. 가나안 인들은 많은 신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세상에 참 신은 한 분밖에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신들을 사람과 비슷한 존재로서 사람들처럼 싸우고 질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은 사람들과는 다른 초월적인 분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를 원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신들이 남성과 여성으로 되어 있으며, 문란한 성 관계를 갖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시며 부정을 용납하지 않는 분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세상에 증거 할 책임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책임을 완수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이방 종교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인들이 믿는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러한 원리는 오늘날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크리스챤을 통해서 살아 계신 나타내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챤들은 삶 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해야 할 책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성도들이 성령의 능력을 힘입고, 말씀을 따라 살면 이러한 일을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성도들이 성령 충만을 구하지 않고 말씀을 무시하면 세상에 짓밟힐 수도 있습니다. 주님은 맛을 잃은 소금은 쓸데가 없으며, 밖에 버리워 사람들에게 짓밟힐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챤들은 복음을 효과적으로 증거하기 위해서 성령 충만을 구하고,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여호수아가 했던 다음과 같은 고백은 오늘날의 성도들이 깊이 명심해야 할 고백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심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이 섬기는 신이든지 너희가 섬길 신을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출처 : http://biblenara.org/onbible/onbible4.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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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대교

 

1) 유일신 신앙
헬라 정신은 인간의 이성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으려 하였고, 세계와 그 삶을 통하여 하나님을 설명하려 하였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반대로 하나님을 통하여 인간과 세계와 삶을 판단하려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계시인 성경을 통하여 자신의 모든 뜻을 알리셨다고 믿었다. 그들에게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며 자기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모든 일을 생각했다.

 

유대인들은 포로 시대 이후 하나님의 초월성을 보존하려고 했다. 그들은 주전 3세기부터 성경을 낭독할 때에 "야훼"라는 이름을 읽지 못하게 하고 "아도나이(주님)"란 말로 대신하게 하였다. 그리하여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할 때에는 "야훼"를 "큐리오스"(주님)로 번역하였으며, 아람어로 번역할 때에는(탈굼) "야훼"를 "메므라"(말씀)로 번역하였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른 신들 중에 하나로 전락시키는 것으로 이해되었으며, 따라서 대제사장은 제사를 드릴 때에도 하나님의 이름을 얼버무려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게 하였다. 일부는 이러한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을 이 세상으로부터 분리시켰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하나님의 "세키나"(구름)나, 그의 "독사"(영광)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신이나 음성을 통해서 자신의 택한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고 한다. 그들은 유일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지식의 근본으로 삼았으며(잠 1:7),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항상 가르쳤다(신 6:4-9).

 

2) 민족주의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장자"라고 부르셨다(출 4:22-23). 그들은 하나님의 소유였으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인도해 주셨다. 랍비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가르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율법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일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통하여 모든 민족을 향한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그들이 우월했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인들이 율법에 순종함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전하게 하려 하셨던 것이다. 그들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이스라엘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민족이라고 생각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특히 예루살렘에만 머무르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스라엘을 떠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스라엘 땅에 큰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리스도 당시에는 두 개의 유명한 학파가 있었다. 하나는 샴마이 학파로서 율법의 모든 주제를 엄격하며 좁은 의미로 해석하며 가르쳤다. 샴마이는 헤롯 대왕 시절에 살았던 인물로 이교도들과 이방인들을 원수로 여겼다. 그의 학파는 이스라엘 민족만을 선민으로 생각하고 다른 모든 이방인들은 구원받을 수 없는 저주받은 민족으로 생각하는 극도의 민족주의 정신을 함양시켰다. 또 다른 학파는 힐렐 학파인데 힐렐은 바벨론 태생으로 이교도의 나라에서 살았다. 그는 뒤늦게 예루살렘에 왔는데 그의 정신에는 다소 이교도적인 요소들이 담겨져 있기도 했으며, 일반 율법사들에 비해 다소 온건한 입장을 지녔다. 그는 이방인들이 죄를 짓는 것은 그들이 죄를 짓기 원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풍습을 따른 것뿐이라고 하였다. 어떤 이들은 메시야 시대에는 많은 이방인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교도들과 이방인들도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한 선교 활동을 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 속하려면 유대교로 귀화해야 하며,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해야 했다. 힐렐에 따르면 악인들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단지 12달 동안만 고통을 받다가 그 후에는 완전히 파괴되어 없어진다고 한다. 그는 그 당시 허락된 여러 이유들로 아내와 이혼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생각을 하였다(당시에는 아내가 음식을 태웠다는 이유만으로도 이혼할 수 있었다). 힐렐은 사도행전 시대의 유명한 율법 선생이었던 가말리엘의 할아버지였다.

 

3) 율 법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자신들을 연결해 주는 것은 율법, 즉 "토라"라고 생각했다. 토라는 "율법"보다 더 광범위한 용어로서 종교적 가르침, 계시 그리고 교훈까지를 포함한다. 이 용어는 시내 산에서 주어진 모든 계시를 말한다. 이 토라는 하나님께로부터 이스라엘에게 주어졌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1) 전체 율법의 핵심적 부분인 십계명
 (2) 일반적으로 토라라고 부르는 모세 오경
 (3) 구약 전체
그들은 구약 전체를 거룩한 율법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구약 중에서도  모세 오경을 가장 중요시하였으며, 이 책은 장차 있을 세계에서도 유효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4) 구전 율법
이스라엘은 율법을 변화하는 환경에 적용시켜야 할 필요를 느꼈으며, 이러한 노력이 신약에서 "조상(장로)들의 유전"(막 7:3-그들은 '미쉬나'를 이렇게 불렀다)이라고 부르는 구전 율법을 발전시키게 하였다. 이 구전 율법은 율법을 보호하는 "울타리"역할을 하였다. 예를 들면 그들은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하여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노동"을 구전 율법에서 39가지로 규정해 주고 있다. 이 구전 율법의 목적은 주어진 율법에 순종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전 율법이 모세 때에 율법과 함께 하나님께 로 부터 주어진 것이며, 이 율법의 권위를 기록된 율법보다도 더 높이려는 사람도 있다.       

 

4) 구전의 발생과 발전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스 7:6)요,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기로 결심한 자"(스 7:10)였다. 그는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할 뿐만 아니라,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였다(느 8:8). 그리하여 에스라의 뒤를 이은 서기관들은 율법의 해석을 통해 특별한 관습,의식,교훈을 연관시켰으며, 이것은 뒤에 랍비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1) 미드라쉬 
랍비들은 문서화된 율법을 해석하고 응용했으며, 이를 통해 복잡한 생활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법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규례들을 만들어냈다. 이 과정을 "다라쉬"(해석)라고 불렀으며, "미드라쉬"(주석)는 성문화된 본문에서 그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과정을 의미하였다. 이 미드라쉬에는 두 부분이 있었다.
 * "할라카"(걷는다)는 시민법과 종교법에 관한 규례로 되어있다. 여기서는 사람이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율법을 따라 걸어갈 것인가(할라크)를 가르쳐 준다. 다시 말해서 할라카는 구약 성경의 율법을 해석한 일종의 주석으로서 유대교의 구전, 즉 성문화되지 아니한 율법이었다.
 * "학가다"(말하다)는 율법과 관계없는 랍비 문학이다. 이는 구약의 설화를 발전시킨 것으로서 많은 전설과 민속문화들로 되어있다. 미드라쉬는 스룹바벨의 성전이 파괴되기 전에는 랍비들의 관심사였으며, 그 이후로는 그들의 점유물이 되었다.      

      

 (2) 미쉬나
랍비들은 구전과 함께 성문화된 율법을 연구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했다. 이 연구 과정, 즉 구전과 성문화된 율법을 반복하는 것을 "솨나"(암송)라고 불렀으며, 이것을 "미쉬나"라고 불렀다. 미쉬나란 "그 이전 세기들 동안에 랍비들이 토론하고 결정한 것들을 조직적, 즉 주제별로 분류하여 정리한 일종의 법전"이다. 미쉬나는 주후 70년 성전이 파괴된 후에 요하난 벤 자카이와 얌미나에 있는 그의 제자들에 의해 성립되었다. 그후 2세기 초에 랍비 아키바는 할라카를 보다 치밀한 형태로 만들도록 지시했고, 그의 제자인 랍비 메이어가 다시 세밀하게 정리하고 불분명한 부분들을 정리했다. 그리고 200 직후에 사망한 랍비 유다(족장)가 미쉬나의 마지막 교정본을 만들었다. 미쉬나는 주로 그의 업적의 결과였다. 현재 미쉬나는 주제에 따라 여섯 분야로 나뉘어 있으며, 각 분야는 많은 소책자(전체적으로 63개)로 구성되었다. 그 연대는 대략 200-230년으로 추정한다. 미쉬나는 구약 성경 다음으로 가는 유대 문학의 기본 작품이며 탈무드의 기초가 되었다.

 

 (3) 탈무드
"탈무드"(배움)는 미쉬나로 구성된 편집물, 혹은 전통적인 율법을 인수한 것이다. 여기에 유대교의 학파들에게 제기된 토론과 전통들("게마라"="완성")이 추가되어 있다. 탈무드에는 "팔레스틴 탈무드"와 "바벨론 탈무드"의 두 종류가 있다. 일반적으로 탈무드라고 할 때에는 바벨론 탈무드를 말하며 이는 그 내용에 있어서 팔레스틴 탈무드보다 더 충실하다. 이것이 오늘날의 형태로 되기 위해서는 500년까지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들은 이러한 율법을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것이며,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비록 메시야 시대에 새 율법이 주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제시되기는 하였지만, 그들에겐 이 율법은 죽기까지 순종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2. 유대교의 분파

 

1) 바리새파(초자연주의자)
바리새파는 하시딤(경건한 사람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그 뜻이 "분리자"란 말답게 대다수의 정치 종교적인 태도에서 분리되었다. 이들은 의식상 부정을 가져올 만한 것은 무엇이든지 엄격하게 피했다. 제사의 정결 문제나 음식 먹는 법, 안식일 계명 등에 대해 특별한 주의를 하였다. 다니엘은 하시딤의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그들은 항상 소집단이었으며, 헤롯왕 시대에는 6,000명 정도에 불과하였다. 바리새파는 율법의 용감한 수호자로서 헬레니즘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담당했다. 그들의 율법은 613개 조항으로 되어 있는데, 248개는 긍정적이며 365개는 부정적인 것이다. 이것에 다른 많는 보조적인 명령들이 추가되었는데, 이 원칙은 아무도 깨뜨릴 수 없었다(안식일 조항만도 39개나 되었다.).

 

또한 이들은 기록된 토라, 즉 모세 오경과 마찬가지로 구전 토라, 즉 미쉬나(2세기경 랍비 유다 하나시가 편집함)도 똑같은 권위를 부여했다. 바리새파 안에는 율법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샴마이 학파와 좀 더 부드럽게 해석하는 힐렐 학파가 있었다. 따라서 복음서 가운데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한 손가락도 짐에 대지 않는(눅 11:46) 율법사들은 샴마이 추종자로 보인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뒤에 국민생활의 재건을 위해 주도적역할을 한 것은 힐렐 학파의 요하난 벤 자카이였다.

 

2) 사두개파(자연주의자)
'사두개'란 말은 "의로운"이란 뜻의 "싸디킴"이란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그 기원은 솔로몬의 제사장인 '사독'(삼하 8:17) 이라고 한다. 바리새인들이 중류 계층인 반면 사두개인들은 부유한 귀족층과 예루살렘에서 막강한 세력을 가진 제사장 계급을 대표하는 단체였다. 이들은 동료들에게도 이방인을 대하듯 무례히 행하며 자신들의 교사들과 논쟁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지만 일반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이들은 기록된 토라의 권위를 인정했으나 구전 율법의 권위는 인정치 않았다. 바리새파에게 율법이 신앙의 중심이라면 사두개파에게는 율법이 신앙의 왜곡이었다. 그들 가운데는 헬라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많아서 유대인들의 미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들은 부활, 천사, 마귀에 대한 교리를 부인했으며, 성공과 역경은 인간 행동의 결과라고 믿었다.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교리 비교>

    구                분

    바    리    새     파

    사    두    개    파

    역       사       관

    하  나 님 의   예  정

    인 간 의  자 유 의 지

    종       말       론

    영혼 불멸과 육체 부활

    부     활    부    인

    영    적     존   재

    천사와   악마의  존재

    천사와 악마의 존재 부인

    종  교  의    권  위

    구약과   미쉬나(구전)

    모  세  의    오   경

 

3) 엣센파(금욕주의자)
이 말은 "호시오스"(거룩한)라는 말에서 유래했으며, 그들은 흰옷을 즐겨 입었고, 독신을 강조했다. 어떤 그룹에서는 자녀를 갖기 위해 결혼을 허락했으나 대부분 양자를 데려다가 키웠다. 생활은 손씻는 결례, 세례, 기도 등 수도원적 생활을 했다. 율법의 해석에 있어서는 바리새파보다 더 엄격했다. 세례 요한의 생활과 그의 세례 의식 등이 엣센파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1947년 쿰란의 사해 사본이 발견된 이후 기독교의 고향이 베들레헴이 아니라 쿰란이라는 극단적인 주장이 나올 정도였다. 엣센파의 회원이 되려면 3년 동안의 견습기를 거쳐야 하며, 서약을 한 다음 세례를 받아야 했다. 계급은 크게 다음과 같이 나누어졌다.

 (1) 제사장
 (2) 레위인들
 (3) 이스라엘의 자녀들
 (4) 문의 개종자들(온전 개종자인 의의 개종자와 구별된)

히폴리투스에 따르면 역사의 과정에서 엣센파는 네 개의 파로 분열되었으며, 그 중 잘 알려진 것이 "셀롯당"(열심당)이다. 엣센파의 신학은 약간씩 다르나 다음의 네 가지를 믿었다.

 (1) 유일신(여호와께서 세계의 통치자이시며 모든 선의 근원이라고 믿음)신앙
 (2) 열렬한 율법 연구와 은유적 해석 방법
 (3) 엄격한 안식일 준수
 (4) 육체 부활  

 

4) 열심당
"열심당"을 "시카리이"(자객들)이라고도 부르는데, 그 이유는 옷 속에 단검을 숨겨 가지고 다니다가 불만의 대상들을 불시에 찌르고 군중 속으로 숨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세푸스는 (마 27:38)에서 나오는 예수님의 옆에 달린 강도가 "열심당원"이었다고 말한다. 또 (막 15:7)에 나오는 바라바도 열심당원이었다. 그들은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철저히 거부했으며, 순교를 당하면서도 가이사를 "주"라고 부르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에서 악인을 제거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살해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신앙대로 하나님께 무조건 순종하며 로마에 대항하는 외로운 투쟁을 벌였다. 

5) 헤롯당
헤롯당에 대해서는 신약에 기록된 것 이상으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은 종교 분파라기 보다는 헤롯 가문 특히 헤롯 안디바의 친구들이요 지지자들이었다. 4세기의 교부인 에피파니우스는 그들이 헤롯을 메시야로 간주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6) 서기관들
서기관들은 율법 연구의 전문가들로서 세 가지 기능을 담당하였다. 그들은 율법을 보호하고 정당화하기 위하여 율법을 연구하였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율법을 교육하였고, 율법을 배운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에게도 전수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최고 의결 기관인 산헤드린에서 율법의 치리를 맡은 재판관으로 활약하였다.     

7) 산헤드린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은 종교 및 정치 단체였던 산헤드린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다. 산헤드린은 "대학"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처음에는 헤롯의 통치하에서, 그리고 후에는 로마의 감독을 받으면서 그들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통치 기능을 담당했다. 구성원은 71인의 명망 있는 인사들로 이루어졌으며, 이들 대부분은 사두개파나 바리새인에 속해 있었다. 산헤드린의 의장은 항상 대제사장이었으며(마 26:57, 행 5:17, 24:1), 대제사장 다음으로 높은 지위는 성전의 군관이었다(눅 22:4,52, 행 4:1). 이론적으로 예루살렘 산헤드린(공회)은 모든 유대인들의 영적, 정치적, 법적인 문제를 관장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예루살렘 산헤드린은 하급 법정에서 해결되지 않은 사건들을 듣고 법률적인 결정을 했으며, 모세의 율법을 범한 죄나 신성모독 죄 등에 대해 판단을 하였고, 거짓 선지자를 판별하는 역할도 감당했다. 고소 당한 사람들을 취급하는 진행의 법칙은 공정성을 유지했으며, 가능한 한 고소 당한 사람의 죄를 면해 줄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런데 예수님을 재판할 때는 그들의 이러한 법칙이 적용되지 않았다.       

 

2. 유대교의 예배 활동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의 백성이 되도록 부르셨고, 율법을 인도하는 길과 안내자로 주셨다는 것을 믿었다. 그들은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해 주신 일에 대해 감사하였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율법에 순종하는 종교였다. 그러면 이 율법은 예배생활에 대하여 어떻게 지시하고 있는가 ?

 

1) 성전 예배
성전은 솔로몬 시대 이래로 이스라엘의 삶과 사상에 있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예수님 시대에 이 성전은 헤롯에 의해 복구되었으며, 성전 안에서 무수한 희생이 드려졌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거하시기를 원하시는 장소였다. 하나님께서 임재 하시는 것으로 알려진 지성소에는 율법의 규례를 따라 정결케 한 대제사장만이 정해진 예복을 입고 들어갈 수 있었다. 이방인들은 단지 "이방인의 뜰"로 불리는 곳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 성전에서는 제사장들이 백성들의 죄를 속하고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규례를 따라 제사를 드렸다. 이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드리는 사람이나 드리는 제사장이 모두 순수한 동기를 가져야 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드려야 했다. 그리고 이 희생 제사에는 기도와 고백이 동반되었으며, 잘못하거나 남에게 해를 입힌 사람은 그것에 합당한 보상을 해야 했다. 일년에 한번 있는 대속죄일은 하나님께서 백성의 일년간의 죄를 속하고 화해하기 위해 주신 규례이며, 이 예식은 대제사장이 집례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통하여 1년에 3번 예루살렘에 올라와서 절기룰 지키도록 명령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고 회상시키기 위해 유월절을 지키게 하셨고, 시내산에서 율법이 주어진 날을 기념하기 위해 오순절을 지키게 하셨으며, 광야 생활과 민족의 형성을 회상시켜 주시기 위해 장막절을 지키게 하셨다(물론 이 절기들은 농경적인 의미들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이뿐 아니라 에피파네스 4세로부터 주전 165년에 성전을 회복하고 청결케 한 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수전절을 지켰으며(하누카-빚의 절기), 하만에 대한 에스더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부림절을 지켰다. 신년 축제일은 하나님의 창조를 회상시켜 주었다. 이 날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심판하시는 날이었다. 이스라엘을 이 날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비로 대해주시도록 기도하였다. 속죄일은 금식과 죄의 고백과 희생 제사가 드려졌다. 이러한 신년 축제일과 속죄일은 모두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용서의 필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시작되었다.        

 

2) 회당 활동
포로 이후 율법의 중요성 및 연구에 대한 필요성으로 인해 회당이 생겼으며, 예수님 당시에는 이미 모든 마을에 회당이 서 있었다. 그들은 이 회당에서 기도와 예배와 율법을 연구하는 일을 하였다. 예배는 기도와 율법 낭독과 설교로 이루어졌으며, 집회는 안식일과 주중 다른 두 날에 모였다. 회당 예배는 성전 예배와는 달리 제사장이 참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평신도적인 성격을 띠었다. 이러한 회당은 유대인들을 종교적이고 율법을 연구하는 사람들로 만들어 주었다.

 

경건한 유대인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기도로 하루를 끝냈다. 그들은 일어나고, 잠자리에 들며, 출타하였다가 귀가하거나 손을 닦고 음식을 먹을 때, 또는 출생과 할례, 약혼, 결혼, 질병, 죽음, 장례와 같은 때에도 이에 수반되는 기도를 하였다. 그들은 세상을 죄악된 것으로 생각하여 자신을 세상과 단절시키고, 세상과 사회에 대하여 등을 돌리는 금욕주의적인 일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모든 세상은 하나님의 작품이며 따라서 이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은 언약 백성의 표시로서 할례를 받았으며 이를 위해서는 생명까지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혼합된 옷감으로 된 옷을 입지 않았으며, 겉 옷 단에는 옷술을 달았고, 집 문기둥에는 메주자(성구가 기록된 양피지를 담은 용기)를 달았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보호와 율법을 준수할 필요를 깨닫게 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준수했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창조에 대하여 증거하였고, 창조주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하였다. 이 날에는 노동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일들이 금지되었으며, 특별한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었으며,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축제의 분위기로 지냈다. 그들은 인간의 시체를 만지는 일이나, 문둥병자들이나 부정한 짐승들과의 접촉과 같이 율법에서 부정한 것으로 규정된 일들은 자신들을 부정하게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이 이러한 일들을 했을 때에는 율법에 따라 정결 예식을 행했다. 그들은 정결을 유지하기 위해 식사법이 준수되었고, 짐승들을 도살하는 데에도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으며, 피는 식용이 금지되었다. 또한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접촉하는 것을 부정한 일로 생각하였으며, 따라서 이방에 사는 것보다 이스라엘에 사는 것을 더 좋게 여겼다. 그들은 훌륭한 유대인이 되기 위해서 율법을 알아야 했고 이를 위해 율법을 연구해야 했기 때문에 그들은 율법을 연구하는 것을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율법에 무지한 자는 깊은 신앙심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땅에 속한 백성"이나, "율법이 없는 열등한 종족들"이라는 경멸적인 용어들까지 나오게 되었다.

출처 : http://www.biblenar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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