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신과의 약속은 물론이고 친구와 한 어제의 약속도 지키기 어려운데 ‘신’과의 약속을 자그마치 380년 동안이나 신실하게 지켜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오버바이에른의 오버아머가우(Oberammergau)에 살고 있는 사람들인데 그들과 신은 과연 어떤 약속을 서로 주고받은 것일까?

30년 전쟁과 흑사병 그리고 예수님이 베풀어주신 기적

신성로마제국이 있던 독일을 중심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 사이에서 벌어진 종교전쟁인 ‘30년 전쟁(1618-1648)’을 겪던 독일에 흑사병이 창궐했을 때의 일이다. 주민 두 명 중 한 명의 목숨을 앗아갔을 정도로 사람들은 흑사병 앞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633년, 오버아머가우의 주민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다음과 같은 기도를 올렸다. “주님께서 불쌍한 저희들을 이 무서운 흑사병에서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신다면 10년 마다 예수님의 고통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하심을 기념하는 뜻으로 연극을 만들어 바치겠습니다.”라고.


너무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기 때문일까? 하나님은 그 날 이후 오버아머가우의 주민 누구도 흑사병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없는 기적을 내리시어 응답해주셨다고 한다.

주님의 은혜와 기적에 감사하는 뜻으로 오버아머가우 주민들은 ‘그리스도의 수난’(독:Passionsspiel, 영:Passion Play)이라는 연극을 만들어 무대에 올렸고 지금까지도 신실한 마음으로 꾸준히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최고의 종교, 문화 행사인 그리스도 수난극

1634년을 시작으로 한 그리스도의 수난극은 벌써 내년 2010년이면 41번째 공연을 갖는다. 지난 4월 17일 굳게 닫힌 문 뒤에서 장작 4시간의 비공개 회의를 갖은 오버아머가우 지방 자문 회의는 2010년 그리스도 수난극에 출연하게 될 연기자들의 배역을 결정했다.


발표는 다음 날 오전 9시에 시작된 신, 구교 공동 주체 미사 이후 수난극이 펼쳐질 무대 앞에서 있었다 하는데 발표를 기다있고 있던 오버아머가우 남자들의 외모에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을 달고 있었다.

사실 이 남자들은 모두 수난극에서 한 가지 배역(특히 예수님!)을 받길 원하는 사람들로 그 곳 전통에 따라 ‘재의 수요일’ 이후 머리와 수염을 한 번도 자르지 않았다. 참고로 그리스도 수난극에는 전체 2500개의 배역이 있으며 연극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오버아머가우에서 태어난 사람이나 그곳에서 20년 이상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연출자 크리스티안 슈틱클

벌써 세 번째 수난극의 연출을 맡은 슈틱클(1961년 생) 씨는 지금까지의 연출자들 중 최연소라는 점 이외에도 1860년 요제프 알로이스 다이젠베르거 목사에 의해 쓰여진 반유대주의 성향의 연극대본을 수정하기도 했다.

 

'그리스도의 수난' 연출자 슈틱클 ©쥐트도이체 차이퉁


뿐만 아니라 슈틱클씨는 강한 반대의견에도 불구, 6시간이나 진행되는 수난극을 일부 저녁시간대로 옮기는데 성공했다니 그리스도 수난극에 신선한 변화의 바람을 과감히 불어넣고 있는 인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오버아머가우의 ‘그리스도 수난극’은 단순히 연극이라고 말하기보단 최고의 종교행사요, 문화행사라는 설명이 더욱 걸맞다.

지난 번 공연이 있던 2000년엔 520 000명이 110번에 걸쳐 공연된 연극을 관람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 수는 1990년보다 10 %나 늘어난 것이라 하니 2010년 그리스도의 수난극을 보기 위해 바이에른의 작은 마을로 몰려들 관람객은 또 얼마나 늘어날지 궁금해진다.

화성시 예수향남교회 정갑신 목사, 목회 인생 담은 '대답하는…' 펴내
개척 때부터 '교회분립운동' 앞장 "작은 교회가 더 많은 일 할 수 있어"

경기 화성시 예수향남교회는 2009년 개척 때부터 '분립(分立)하는 교회'를 목표로 세워졌다. 개척한 지 9년 만에 2개를 분립했고 현재도 3~4개를 분립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앞으로 15년간 15개 정도로 분립하고 정갑신(55) 목사가 65~70세 사이 은퇴할 때에는 현재 어린이를 합해 2000명인 교회 규모를 500명 정도로 줄이겠다는 계획도 있다. 이 교회는 기독교 대안학교도 운영한다. 현재 유치원~고등학교 2학년까지 120명이 재학 중인 이 학교는 교회 건물 1층과 4층을 사용한다. 1년 365일 하루도 아이들 웃음소리가 멈추질 않는다. 신학대학원생들 사이에선 인기 목회지로 꼽히고 있다.

 

예수향남교회 건물은 예배당과 대안 학교가 함께 쓰고 있다. 지난 19일 점심시간에 정갑신 목사가 어린이들을 찾았다. 수업에 열심히 참여한 데 대한 상(賞)으로 정 목사가 ‘쏜’ 닭강정이 특식으로 나왔다. /김한수 기자


 

 

최근 정 목사는 자신의 목회 인생을 돌이켜본 책 '대답하는 공동체'(아르카)를 펴냈다. 그런데 책은 지독한 반성문이다.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나와 서울 충현교회, 안산동산교회에서 부목사를 지냈고, 서울 서초동 창신교회 담임목사를 거쳐 2009년 예수향남교회를 개척했다. 이력만 보면 평탄하게 목사 생활을 해왔을 것 같지만 이 과정에서 그는 무수하게 깨지고 상처 입었다. 성도들과의 갈등도 있었고 자신과의 갈등도 있었다. 그는 책에서 이 모든 과정을 '내 탓이었다'고 고백한다. "나는 '한 영혼에 목숨 거는 목사'가 아니라 '한 영혼에 목숨 거는 목사라는 공명심에 목숨 거는 목사'였다" "개혁적으로 보일 만한 몸짓을 하려 했다" 같은 통렬한 자성(自省)이 즐비하다. 한때 공황장애와 우울증까지 겪은 이야기도 숨기지 않는다. 지난 19일 만난 정 목사는 "주변에서 저를 '고백 중독증'이라고 부른다. 찌질하죠?"라며 웃었다.


최근 정 목사는 자신의 목회 인생을 돌이켜본 책 '대답하는 공동체'(아르카)를 펴냈다. 그런데 책은 지독한 반성문이다.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나와 서울 충현교회, 안산동산교회에서 부목사를 지냈고, 서울 서초동 창신교회 담임목사를 거쳐 2009년 예수향남교회를 개척했다. 이력만 보면 평탄하게 목사 생활을 해왔을 것 같지만 이 과정에서 그는 무수하게 깨지고 상처 입었다. 성도들과의 갈등도 있었고 자신과의 갈등도 있었다. 그는 책에서 이 모든 과정을 '내 탓이었다'고 고백한다. "나는 '한 영혼에 목숨 거는 목사'가 아니라 '한 영혼에 목숨 거는 목사라는 공명심에 목숨 거는 목사'였다" "개혁적으로 보일 만한 몸짓을 하려 했다" 같은 통렬한 자성(自省)이 즐비하다. 한때 공황장애와 우울증까지 겪은 이야기도 숨기지 않는다. 지난 19일 만난 정 목사는 "주변에서 저를 '고백 중독증'이라고 부른다. 찌질하죠?"라며 웃었다.


그런 지독한 과정을 겪고 2009년 교회 개척에 나섰을 때 결심이 '지분(持分) 의식을 갖지 말자'는 것이었다. "교회를 개척하면, 목사든 성도든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에 '지분 의식'을 갖게 됩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하고 싶은 욕망이죠.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의 스토리입니다. 지분 의식을 내려놓기 위해서 개척 때부터 분립하는 교회를 못 박았죠."

창신교회, 안산동산교회, 은혜동산교회 등의 지원을 받고 상가 건물 80평을 임차해 개척한 교회는 시작부터 교인이 밀려들었다. 5개월 만에 공간이 비좁아지기 시작해 8개월째에는 한 개층 전체를 임차해야 할 만큼 '성장'했다. 초심을 돌아볼 겨를 없이 밀려닥치는 일 처리에 바빴다. 마침내 2014년엔 현재의 허허벌판에 새 건물을 지어 입주했다.

그 이듬해 정 목사는 어머니를 모시고 떠난 제주도 여행길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유명 갈치 음식점을 찾았는데 아무리 손님 줄이 길게 늘어서도 40년째 규모를 늘리지 않고 맛을 지킨 집이었다. 그 음식점과 비교했을 때 자신은 손님 늘어나자 건물 확장한 음식점 주인 같았다. 정 목사는 "그때 아무리 부인하려 해도 작은 성장에 기뻐하는 '성장주의자'이며 하나님을 내게 유리하게 이용한 '하나님 유저(user)'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교회로 돌아와 다시 초심을 되돌아봤다. 그 결과, 이 교회에서 5년 이상 목회한 부목사는 분립할 수 있도록 했으며, 1억5000만원의 임차 비용과 2년간 월 200만원의 목회비를 지원하고 시무장로 1명과 신자 100명까지 파송하는 등 원칙을 정했다. 새로 등록하는 신자들에게도 분립교회로 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교육한다.

정 목사는 교회분립운동을 개신교계로 확장해 미국 리디머장로교회 팀 켈러 목사가 벌이고 있는 복음적 교회 개척 및 갱신운동인 시티투시티의 한국 지부 창립에도 참여했다. 정 목사는 "건강한 정신을 가진 교회가 많아진다면 대형 교회 하나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출처: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9/21/20180921000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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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으시는 하나님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하갈의 통곡을 들으셨고, 또한 이스마엘의 신음 소리를 들으셨습니다. 하갈은 하나님을 만난 후 그분을 ‘보시는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하갈은 하나님은 보시는 하나님이요 들으시는 하나님입니다. 때로는 모르시는 것 같고 때로는 무심한 것 같고 또 때로는 편애하시는 것 같지만, 다 보고 계시고 다 듣고 계십니다. 사라의 불의를 묵인하시는 것 같지만, 다 알고 계셨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깊은 생각으로 그때는 잠시 묵인하신 것입니다. -김영봉의 [팔레스타인을 걷다] 중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신음소리를 들으십니다. 우리 인생이 광야에 있을 때, 우리를 보시고 들으시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광야로 쫓겨났을 때, 그들의 눈물을 하나님은 들으셨습니다. 그들을 다시 아브라함의 집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몸 전체는 우리의 신음하는 소리를 들으시는 귀입니다. [새벽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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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의 거룩성 현재 한국 교회는 ‘홍수’를 만난 비상상태다. 어떤 이들은 교회가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목사로서 교회가 많아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할 사람이 있을까. 교회가 많아져야 한다. 하지만 많은 것이 좋은 것이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교회의 거룩성’이다. 교회의 거룩성이 담보되지 않은 교회가 아무리 많아진들 무엇이 좋겠는가. 기업화, 사유화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이 되어가는 교회가 많아진들 그것을 감히 ‘좋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김태현의 [세상에 없던 교회] 중에서- 하나님은 교회의 크고 작음에 관심 있지 않습니다. 다만 거룩함이 중요합니다. 작든지, 크든지 거룩한 교회여야 합니다. 세상속에 드러낼 수 있는 거룩성은 교회가 교회되게 지켜내는 비밀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기도를 얼마나 했는가? 예배를 어떻게 드리는가?에 관심 갖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우리 삶이 세상에서 어떻게 비춰지는지를 비판합니다. 세상속에 거룩함이 드러나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빛 된 자녀입니다. [새벽 종소리]

 
출처:사모님사모님/달빛

    옛 사람과 옛 자아를 못 박지 않으면 우리의 옛 사람과 옛 자아가 얼마나 무서운 줄 아는가? 그것은 드라큘라보다 무섭다. 이것이 우리 안에서 자꾸 불평하게하고 원망하게 한다. 음란하게 하며 시기와 질투를 하게 한다. 쓸데없는 공명심을 갖게 하여 종교적 영웅심을 갖게 만든다. 이것이 폭발하면 교회에 문제가 일어나고 난리를 피우게 된다. -소강석 목사의 ‘하나님의 원하심’에서-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내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연습과 훈련을 하지 않으면 그렇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죄보다 무서운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지은 죄야 주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면 다 용서해 주시지만 옛 사람과 옛 자아가 죄를 짓게 하고 넘어지게 하기에 날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훈련을 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옛 자아가 살아나와 자신과 몸 된 교회를 더럽히는 일에 앞장서게 되는 것입니다. [새벽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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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 오심을 기다린다면 주님은 내게 와서 나를 배우라고 하신다. 주님을 배워 주님의 냄새가 나야 한다. 첫째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그 낮아짐과 제자들의 냄새나는 발을 씻겨 주시는 섬김을 배우라한다. 또 주님은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도 저들의 용서를 간구하셨으니 용서를 배워야 한다. 주님은 네 이웃과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셨다. 바울 사도도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가 항상 있는데 그중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다. 사랑이 없다면 다 허사요 허공을 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결국 주님 오심을 기다린다는 말은 주님을 배우고 천국을 소망한다는 말과 동의어이다 -김진덕 목사의 ‘대림절을 지키는 마음‘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우리는 그 지체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지만 장차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살 영생의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갈 때 땅의 정욕, 탐심, 시기심과 질투,교만을 가지고 갈 수 있을까요? 땅에서의 삶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예수의 모습을 훈련하지 않고서는 영생도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짧은 이 땅에서의 삶은 결국 천국의 삶을 훈련하는 훈련장인 것입니다. [새벽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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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유한 사회 라오디게아의 교만은 전염성이 있어 그리스도인들은 그 몹쓸 병에 걸렸다. 자랑의 영이 교회로 스며들어 독을 뿜어댔고, 교인들은 은근히 뻐기며 자기만족에 빠졌다. 예수 그리스도는 직설적으로 그들의 속을 들추어내셔야만 했고, 그래서 그분은 말을 빙빙 돌리지 않으셨다. 그들은 자기들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눈멀고 벌거벗은 거지로 표현하실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나는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했고 과연 황제의 보조금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였다. -존 스토트의 [내가 사랑하는 교회에게] 중에서- 신앙은 자기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하나님을 겸손하게 찾는 것입니다. 자신을 자랑하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병들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고, 그분의 사랑으로 새로워지는 우리입니다. 지혜로운 인생의 건축자는 나의 자랑을 내려놓고 주님을 바라봅니다. [새벽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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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모험 믿음의 모험을 하는 인생은 두렵지 않아서가 아니라 두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진하는 인생이다. 수치와 두려움이 끊임없이 우리의 발목을 잡지만 하나님을 믿음으로 수치와 두려움을 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믿음의 모험을 하는 인생이다. 우리는 그렇게 전능자 안에서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십자가 앞에 서면 과거의 수치와 아픔과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길갈에 서서 자신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안종혁의[인생, 거룩한 모험에 던져라] 중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 보내실 때, 이미 은혜의 모험을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주의 길을 갈 것을 믿는 은혜의 모험입니다. 우리 역시 지금 믿음의 모험, 은혜의 모험을 합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 믿음으로 가는 인생입니다.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은혜의 옷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우리 인생을 세웁니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돌아가지 않고, 관통하는 인생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믿기 때문입니다. [새벽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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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는 미래로 가는 에너지원 과거에 대한 우리의 감사가 부분적으로 그치면, 새로운 미래에 대한 희망도 결코 온전할 수 없다. 없었으면 좋았을 일들, 다르게 풀리기를 바란 관계들,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일들, 하지 않았으면 좋았겠다 싶은 실수들 때문에 원망이 남아 있는 한, 우리 마음 한 부분은 여전히 고립되어 새로운 삶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과거 전체를 되찾는다는 것은 더 이상 좋은 일만 기억하고 궂은일은 잊는 것이 아니라 내 과거를 마음이 계속 변화될 기회로 대한다는 뜻이다. 마음이 변화되면 과거를 즐거이 기억할 수 있다. 과거 전체가 우리를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에너지원이 된다. -헨리 나우웬의 [두려움에서 사랑으로] 중에서- 사람들은 과거에 매여서 미래로 나가지 못합니다. 과거가 있기에 미래가 있습니다. 내 삶의 존재는 과거부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기에 과거의 아픔과 상처, 실패와 실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딛고 일어서야 합니다. 그것이 회복이며, 자유입니다. 과거는 우리를 과거에 매어놓지 않습니다. 다만 과거에 우리가 매여서 사는 것입니다. 과거 뛰어넘을 수 있는 용기가 있을 때 믿음도 온전해집니다. 과거는 내 인생의 한 부분이었기에, 남겨진 미래를 잘 가꾸면 아름다운 전체가 됩니다. 복음은 과거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부터 내 인생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새벽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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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영원한 것에 초점 맞추라 이태리의 밀라노 성당 출입문에 라틴어로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 십자가 오른쪽 밑에는,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은 모두 순간적인 것이다.” 그 왼쪽 밑에는,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도 모두 순간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 십자가 위에는, “영원한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 조봉희 목사의 ‘단순하게 사는 영성을 개발합시다’에서- 단순한 신앙의 중심점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나가는 일시적인 것들에 마음 빼앗기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일에 장애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피해야 합니다. 오직 우리의 중심을 ‘하나님께 초점 맞추어야’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만으로 충만한 삶을 사셨습니다. [새벽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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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래도 찬양, 저래도 찬양 여호와를 항상 송축하여야 한다. 항상은 그야말로 항상 이다. 힘들어 죽겠어도 찬양, 누구에게 배신당해도 찬양, 돈을 떼여도 찬양, 매를 맞아도 찬양, 가게물건을 다 털려도 찬양, 남편이 나를 버려도 찬양, 억울하게 옥에 갇혀도 찬양, 병에 걸려도 찬양, 직장을 잃어버려도 찬양. 사고를 당해도 찬양. 이래도 찬양 저래도 찬양 아침에도 찬양 한낮에도 찬양 밤중에도 찬양 ,하루 종일 찬양 이러한 상황에서도 찬양하는 자가 성도이다. -정구지 목사의 ‘항상 하여야 할 것 3가지’에서- 어떠한 상황에도 다윗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도 이런 신앙을 가지도록 기도해야합니다. 여호와를 항상 송축하는 것이 성도들이 해야 할 첫 번째로 ‘송축하되 내 입에 계속 하리로다.’ 내 입에서 계속 하나님을 찬양 하는 것입니다. 원망 욕, 저주, 등은 절대로 하지 말고 ‘찬양, 찬양 아침에도 찬양..’ 찬양을 계속 하십시오. 당신은 주님의 성도입니다 [새벽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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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고의 민족은 기도하는 민족이다 미국 워싱턴에 가면 국회의사당이 있는데 아마도 전 세계에서 아름다운 최고의 건물일 것이다. 이 건물의 윗 부분은 돔의 형태로 되어 있는데 그 돔 안에는 전부가 기도실이라 한다. 그런데 1955년부터 이 기도실이 비어 본 일이 없다고 한다. 국정으로 모두가 바쁘지만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묵상하고 명상하며 기도한다고 한다. 우상 숭배하는 사람은 세계에서 제일 미개하고, 창조자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은 세계에서 제일 문화인이고 지성인이 되는 것이다. 최고의 민족은 모두 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민족들이다. 기도하면 지금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듣고 지켜주시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이갑형 목사의 ‘기도가 이 민족을 구한다’에서- 지금 나라가 어둡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기도하는 사람이 이 땅에 있는 한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민족을 지키는 것은 60만 국군도 주한미군도 아닙니다. 기도하는 교회의 부르짖음과 하나님 백성들의 기도가 이 민족과 나라를 지키는 것입니다. 어디서든 언제든 나라를 위해 기도하십시오. 기도만이 이 민족을 정직하게 할 것이며, 선교하는 선진 민족이 되게 할 것이며, 기도만이 남북을 복음으로 통일시킬 것이며, 우리를 세계 속에 도약하는 민족이 되게 할 것입니다. [새벽 종소리]

 
출처:사모님사모님/달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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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씀의 진리 교회가 하나님 말씀을 설교할 때 그 톤을 낮추거나 공적 예배에서 성경을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서는 안 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고통스럽게 찌르는 양날 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성화의 방편으로부터 마음 문을 닫는 셈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부드럽게 만들려 하거나 불신자들의 반응이 두려워서 딱딱한 진실을 그들에게서 감추려 하면, 교회는 연약해지고 세상을 향한 우리의 사역이 방해를 받으며 또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날에 엄중한 지적을 받을 것이다. -존 맥아더의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교회] 중에서- 우리는 약속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지켜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편리함을 위해 조각 퍼즐처럼 말씀을 나누는 것은 온전하지 않은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는 조금 미련할 정도로 주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지키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 밀어 넣은 말씀이 훈련을 통해 언제라도 용수철처럼 내 삶속에 베어나 올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말씀이 말씀되게 사는 삶은 말씀으로 우리 자신을 날마다 수술대에 올려놓고 고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주님을 닮기 위해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새벽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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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를 제대로 찾게 해주라 공부 안하는 아이들에게 공부해.. 라고 말하면 소용없다. 공부를 안했을 때 어떻게 네가 고생할지를 강력한 것을 찾아서 반복해주면 된다. 만일 효과가 없다면 이유를 제대로 못 찾은 것이다. 게임을 끊고 싶다면 게임의 나쁜 점을 많이 찾아 붙여놓으면 된다. 시간이 낭비된다. 가까운 것 만 잘 보이고 먼 것은 안 보인다. 머리가 지쳐서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등등... 그리고 이유를 찾았으면 많이 반복하면 된다. 전도하라고 강요하는 것 보다는 전도했을 때 어떤 상이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말해줄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애드민 목사의 ‘하늘의 로또’에서- 게임 잘하는 아이들은 항상 반복합니다. 잠깐만 쉬는 시간에도 합니다. 자다가 일어나서도 합니다. 길을 걸어가면서도 합니다. 하늘의 로또는 어떻게 캡니까? 말씀을 읽고 듣는데서 나옵니다. 동기부여가 됩니다. 자기 하는 일에 스스로 미쳐서 반복하는 자녀를 원하십니까? 왜 배워야 하는지 왜 전도해야 하는지 이유를 제대로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기부여가 제대로 되면 스스로 반복하고 열심히 매달리게 됩니다. [새벽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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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뜨거운 심장을 가진 자에게서만 남도 쪽에 있는 섬들 중에 거의 다가 기독교인인 섬들이 있다. 이곳은 섬사람 80% 이상이 교회에 다닌다. 모두가 그리스도인들이니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제자훈련이 안되고, 성경공부가 안되고... 그 어떤 새로운 시도가 안 된다는 것이다. 세상 좋은 것 같지만 답답하다.... 변화를 허용하지 않는다... 이대로가 좋다 “전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까지 있는 경우도 있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뜨거운 마음이, 심장이 식어 있다는 것이다. 심장이 식어 있는데 어찌 건강체를 이룰 수 있겠는가? 늘 뜨겁게 요동치는 심장을 가져야 진정한 그리스도인 아닌가? -이주호 목사의 ‘죽음보다 무서운 것’에서- 중세 기독교가 부패해 가기 시작한 원인도 국교가 되었으니 전도할 이유가 없어진 것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한 뜨거운 마음이, 심장이 식어진 것입니다. 그 때부터 중세 기독교는 온 몸이 냉해지고 곳곳에 암이 생기고 결국 온 몸이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개인도 살아 있는 신앙인이라면, 온 몸에 복음의 열정이 흐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전하고, 복음을 전하게 되어 있습니다. 영혼 구원을 위한 뜨거운 마음, 세상을 변화 시키는 은혜의 동력은 뜨거운 심장을 가진 자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 [새벽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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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감하게 렛 고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주어진 화살과 같은 존재들이다. 우리는 과감하게 let go해야 한다. 우리가 let go할 것들을 그리하지 못한다면 stop할 것이다. Let go해야 우리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다. 인생의 길에서 장벽을 만날 때 죽을힘을 다해서 노력만 하지 말라.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이 넘치게 하라. Let go 하면 하나님이 우리로 그 장벽을 넘어가게 하신다. -김승욱 목사의 ‘가정과 하나님의 나라’에서- 자녀들을 놓고도 let go 할 만한 것을 let go 하십시오. 그들을 그저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그들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또한 가정의 문제를 let go 하십시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세워지고 드려지기 위해서 과감하게 let go 해야 합니다. [새벽 종소리]

 


    하나님은 문제보다 크시다. 우리에게도 자기 격려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우리의 굽은 길을 펴주실 수 있고, 거친 길을 부드럽게 만들어주실 수 있습니다. 때로 큰 시련이 있어도 그 시련은 내가 끝장날 때가 아니라 오히려 다시 새롭게 시작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시련이 닥쳐도 스스로 선언하십시오. “나는 기름 부음 받은 존재이다. 나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나는 이 모든 고난을 극복할 수 있다.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 되신다.” -이한규 목사의‘ 하나님은 문제보다 큽니다’에서- 어떤 시련이 있어도 결코 부정적이 되지 마십시오. 최대한 불평을 자제하고 최대한 찬양하고 감사하십시오. 거듭난 성도에게는 어떤 시련도 극복할 수 있는 장비가 구비되어 있습니다. 작은 미물들도 자기 방어 시스템이 있는데 거듭난 성도에게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문제가 크면 하나님은 문제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크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떤 문제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새벽 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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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기암 환자 치료 중단했는데 오히려 살아나고…

임종예배 두 번 본 자궁암환자
아무 치료 안 했는데도
상태 좋아져 넉달 만에 퇴원
투혼 보이던 또다른 폐암환자는
고통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인공호흡기 튜브를 뽑다가… 
환자가 존엄한 죽음 선택하는
‘존엄사’ 존중받고 있지만
때때로 일어나는 기적을 보며
‘무의미한 연명치료’가 뭔지
그 판단을 의사가 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의사는 환자의 생명을 붙잡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다. 환자를 살릴 수 있다면 무덤까지 따라가 관 뚜껑을 열고서라도 데려와야 하는 직업이 의사다. 그런데 의미가 없는 생명연장에 불과한 치료는 중단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불필요한 치료를 거부할 권리를 환자에게 주는 것을 존엄사라고 한다. 존엄사의 인정은 불필요한 의료비의 낭비를 막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실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암 환자가 지출하는 치료비용의 거의 절반이 사망 전 마지막 두 달에 집중되어 있다는 통계를 보고한 바 있다. 이렇듯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 때문에 남은 가족의 생계가 위협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운동’도 벌어진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무엇이 의미있는 치료이고 의미없는 치료인지 누가 어떤 기준에 따라 결정할 것인가? 그 중대한 문제를 결정할 사람은 의사다. 의학적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냐 그렇지 않으냐를 의사가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과연 의사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정확하게 알 수 있을까?
그의 회복은 의학적 설명이 불가능했다
약 20년 전, 서울 불광동 아파트에 살던 내게는 동갑내기인 우리 부부와 비슷한 나이의 이웃이 있었다. 어느 날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부인이 내가 근무하던 지방의 한 대학병원으로 찾아왔다. 자궁근종으로 진단을 받고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후 암 진단이 나왔다는 것이다. 불행히도 떼어낸 자궁에서 평활근육종(uterine leimyosarcoma)이라고 하는 드물고 예후가 불량한 암이 발견된 것이다.
몇 달 지나지 않아 그가 병원으로 다시 왔다. 수십개의 ‘결절’이라 부르는 혹이 피부 여기저기에 생긴 것이다. 조직검사를 했더니 전이된 암세포로 나왔다. 두어 달 뒤 아내가 내게 그의 집을 함께 방문하자고 했다. 병세가 많이 악화되어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이유였다. 그는 매우 쇠약해져 있었다. 대화 도중에도 끊임없이 기침을 했고, 기침을 할 때마다 검붉은 피가 휴지에 묻어나왔다. 암이 이미 폐에도 전이된 것이다.
또 두어 달 뒤, 그의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환자가 쓰러져 곧 죽을 것 같은데, 어디로 가면 되겠냐는 전화였다. 나는 장례식장이 붙어 있는 근처 병원을 안내했다. 몇 시간 뒤 다시 전화가 왔다. 119 구급차를 타고 그 병원에 도착했는데, 원무과에서 말하기를 말기 암 환자는 죽은 뒤 장례식장에서 받아줄 수 있지만 입원을 시킬 수는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내가 근무하는 대학병원으로 오시라고 했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맞았다. 환자는 쇼크상태로 혈압이 많이 떨어져 있었고 의식은 희미한 상태였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폐가 있어야 할 곳이 새하얗게 보였다. 모두 암세포였다. 배에는 지름이 수십㎝에 이르는 커다란 종괴(장기에 발생한 종기)들이 만져졌고 악성 복수가 찬 듯이 출렁거렸다. 기본 혈액검사 결과에서는 혈소판 수치가 크게 떨어져 있는 등 ‘범발성 혈관내응고증’(DIC·혈관에 응고가 일어나 조직 경색과 괴사가 일어나는 증상)도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말기 암 환자는 중환자실의 입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중환자실의 침상은 부족하기 마련이어서 살 수 있는 급성기환자를 우선으로 입원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자가 그날을 넘기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에 중환자실 실장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환자를 입원시켰다. 가족에게는 임종예배를 보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몇 시간 뒤 가족과 친척들 그리고 교인들이 왔다. 목사님도 도착하여 막 임종예배를 시작하려던 순간 어떤 분이 나를 잠깐 보자고 하셨다. 자신을 교회의 수석장로라고 소개한 그는 “저 사람은 죽지 않을 사람인데 임종예배를 보면 어떻게 하느냐”고 질타를 하셨다. 의사가 아닌 분이 의사인 내게 “환자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니 어이가 없었지만 환자에 대한 애착 때문에 그러는 것이려니 하면서 무시했다. 결국 임종예배를 보았다. 환자는 그날 밤을 넘겼다. 다음날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환자의 의식은 거의 소실됐고 폐 기능은 더욱 떨어졌다. 저녁이 되자 몇몇 가족들이 전날 임종예배에 참석하지 못했다며 임종예배를 한 번 더 드리기를 원했다. 가족들은 결국 두 번째 임종예배를 드렸다.
기적은 그 다음 나타났다. 아무런 치료를 하지 않았는데 환자의 상태가 급속도로 좋아진 것이다. 1만개가 채 되지 않던 혈소판 수치(정상 15만 이상)도 불과 사흘 만에 10만개로 상승했다. 두 달 뒤 환자는 병원 마당을 산책할 수 있을 만큼 회복됐고 입원 넉 달 만에 걸어서 퇴원했다. 암 말기가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의학적 치료는 전혀 없었다. 퇴원 뒤 외래에서 만난 그는 호흡곤란도 없었고 별다른 증세도 없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그의 의학적 소견이었다. 흉부엑스레이도 암 전이 상태 그대로였고 피부에 올라온 수십개의 결절도 그대로였다. 크게 줄어들기는 했지만 배에서는 여전히 종괴가 만져졌다. 약 2년 동안 간간이 외래를 방문하며 건강상태를 확인하던 그는 약 3~4년 뒤 연락이 끊겼다. 의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 환자에게 일어난 기적은 ‘무의미한 생명연장’이라는 단어의 정의에 대한 나의 상식과 자신감을 없애버렸다.
심낭창조성술과 1년 뒤 분홍빛 매니큐어
내과에서 진료의뢰가 들어왔다. 환자는 강원도에서 온 40대 초반의 여자 환자였다. 자궁암이 진행돼 암세포가 심장을 싸고 있는 심낭에 전이가 되어 심장 주변에 물이 차서(악성심낭삼출) 심장을 누르고 있는 상태였다. 심장이 눌리면 폐로부터 심장으로 들어가는 피가 원활하게 순환되지 못하므로 폐가 울혈 상태에 놓이게 되어 숨이 가빠진다. 환자를 처음 보았을 때 환자는 숨이 너무 차서 눕지도 못하여 차가운 땀을 뻘뻘 흘리며 침대를 세운 뒤 기대어 앉아 헐떡이고 있는 상태였다. 심장을 누르는 물을 빼기 위해 심낭에 튜브를 삽입하여 물을 빼어주는 심낭창조성술을 해야 했다. 환자는 튜브 삽입 뒤 빠르게 상태가 좋아졌다. 그러나 암 때문에 발생한 악성심낭삼출이었기 때문에 좀처럼 물이 줄어들지 않았다. 이 경우 예후는 대체로 매우 불량하다. 약 일주일이 지나자 환자는 누워서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호전되었지만 악성삼출은 하루에 수백㏄씩 계속되었다. 의사로서 환자에게 해줄 것이 없었다. 그런데 몇 주 뒤, 다행히 심낭에서 나오는 악성삼출이 줄어들었다. 튜브도 뽑을 수 있었다.
그로부터 약 1년쯤 지났을까? 외래 진료 중이었다. 짙은 화장에 얼굴에는 은빛가루를 뿌려 한껏 멋을 낸 긴 머리를 가진 여성이 진료실에 들어왔다. 그는 차트를 들여다보는 내게 “선생님, 저 못 알아보시겠어요?” 하고 물었다. 나는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었다. “선생님, 저예요 저….” 차트를 들여다본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눈 앞에서 멀쩡한 모습으로 웃고 있는 그는 일년 전 진행된 자궁암으로 심낭에 튜브를 넣었던 바로 그 환자였던 것이다.
환자는 퇴원 후 특별한 치료를 받지도 않았고 검사를 받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는 인사를 하러 들른 것이라며 검사를 해보자는 내 권유를 무시하고 병원을 떠났다. 말기 암에 대한 나의 의학상식이 두번째 파괴되는 순간이었다.
“제발, 제발 떠나게 해달라”는 호소 앞에서…
나는 성인 심장수술이 전공분야였지만 폐수술 담당교수가 장기간 자리를 비우는 경우 간혹 폐 수술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조기 폐암 진단을 받은 30대 후반의 여성을 수술하게 된 것은 그런 경우였다. 나이 차가 꽤 나는 남편과 일찍 결혼한 그 환자는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을 두고 있었다. 폐암 진단을 받았지만 검사 결과 다행히 초기 상태여서 수술이 결정되었다. 수술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폐를 떼어낸 뒤 찾을 수 있는 임파절들도 모두 찾아내어 떼어냈다. 그런데 폐를 떼어내고 난 뒤 가슴을 닫으려는 순간 절개 부위의 흉벽에 좁쌀보다도 작은, 아주 작은 크기의 결절이 살짝 도드라진 것이 보였다. 수술을 위해 가슴을 여는 부위에 있어서, 수술 도중에는 내내 가려져 있어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었다. 혹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작고 납작했고 여러 개가 아니라 한 개뿐이어서 전이된 암덩어리로 생각되지는 않았다. 나는 무시할까 했다가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결절을 떼어내고 수술을 마쳤다. 며칠 뒤 나온 병리검사는 큰 충격이었다. 흉벽에서 떼어낸 작은 결절이 전이된 암으로 나온 것이었다. 무척 드문 일이었다. 흉벽의 전이된 암 그것 하나 때문에 환자의 진단이 조기 폐암에서 진행된 폐암 즉 4기 폐암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환자는 수차례의 항암치료를 잘 이겨내고 퇴원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환자가 병원에 와야 할 날짜에 오지 않았다. 그렇게 일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가 남편과 함께 외래 진료실로 들어왔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수술을 한 쪽에 악성흉수(악성종양으로 인해 폐가 들어 있는 공간인 흉강에 물이 차는 현상)가 가득 차 있었다. 환자에게 입원을 권유했지만 그는 입원을 거부했다. 결국 외래 진료실에서 주사기로 악성흉수를 1리터 가까이 빼냈다. 환자의 호흡이 편안해졌다. 그러나 얼마 뒤 환자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늑골(갈비뼈)에 전이된 암으로 인해 몹시 고통스러운 통증 때문이었다. 나는 마취제로 늑간신경차단술을 하여 통증을 덜어주었다. 그 후에도 환자는 악성흉수가 찰 때마다, 통증으로 못 견딜 때마다 나를 찾았다.
어느 날, 그의 남편이 내게 집으로 와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부인이 너무 숨이 차서 병원으로 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퇴근 뒤 주사기를 챙겨서 환자의 집으로 갔다. 환자의 집은 내가 살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악성흉수를 빼고, 늑간신경차단술을 다시 해주었다. 그렇게 수차례 환자의 집으로 다니던 중, 내가 살던 집의 전세의 만기가 되었다. 아내가 내게 말을 꺼냈다. 어차피 이사를 가야 하는데, 환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가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아내는 이미 환자에게 기도를 해주기 위해 몇 차례 환자 집을 방문한 터였다. 나는 환자의 남편에게 물었다. 그러자 남편은 마침 위층에 전셋집이 나왔는데, 내가 그리로 와준다면 좋겠다고 답했다. 얼마 뒤 나는 그 집으로 이사를 했다.
환자의 가족과 위아래집 이웃이 된 이후, 나는 수시로 드나들면서 악성흉수를 빼내고, 늑간신경차단술을 반복했다. 환자는 더 이상 나빠지지 않은 듯했다. 그리고 아직 어린 아들과 딸 때문에 생명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 집을 방문하는 간격은 조금씩 짧아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에게서 다급한 연락이 왔다. 환자가 자력으로 숨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 예전의 환자처럼 중환자실로 입원을 시켰다. 그리고 인공호흡기를 걸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인공호흡기가 걸려 있어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던 환자는 수첩으로 나와 대화를 했다. 그는 “살고 싶어요”라고 썼다가도, “이제 그만 보내주세요”라고 쓰기도 했다. 그의 생명을 붙잡는 것이 무의미한 일인지 아닌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묶인 손을 움직여 스스로 인공호흡기와 연결된 튜브를 뽑았다. 중환자실은 간호사가 환자 옆을 24시간 지키고 있으므로 곧바로 발견되어 다시 튜브를 삽입하고 인공호흡을 시작했다. 그러나 몇 시간 뒤 그는 다시 튜브를 뽑았다. 나는 연락을 받고 그에게로 갔다.
창백한 얼굴의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간절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잘 나오지 않는 여리고 쉰 목소리로 “제발…”이라고 겨우 말하고는 고개를 좌우로 내저었다. 그가 말한 ‘제발’은 제발 더 이상 인공호흡기를 걸어 고통을 연장하지 말고 자신을 이제 그만 떠나게 해달라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뜻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망설였다. 그를 바라보았다. 의학적인 판단에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예전 환자처럼 혹시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나는 그의 바람대로 해주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인공호흡기를 걸기 위한 기관 삽관을 하지 않았고 그의 곁을 지켰다. 약 10여분 뒤 그는 평안히 먼 길을 떠났다.
그에게 다시 튜브를 삽입하고 인공호흡기를 걸었더라면 환자의 생명은 조금 더 유지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처럼 불치의 병으로 죽음이 예고된 상황에서 적극적인 치료를 하지 않은 것은 ‘소극적 안락사’에 해당한다. 만일 의사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약물 등을 사용하여 죽음을 더 빨리 앞당긴다면 그것은 ‘적극적 안락사’에 해당한다. 현재 우리나라 법과 윤리는 ‘소극적 안락사’는 인정을 하고 있으나, ‘적극적 안락사’는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을뿐더러 윤리적으로도 용인되지 않는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소극적 안락사가 의사의 주관에 의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의사가 소극적 안락사를 결정할 때에도 반드시 환자의 사전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소극적 안락사라는 단어보다 환자 스스로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존엄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최근 환자가 의식이 없는 경우 가족 동의 하에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하도록 할 수 있는 안이 마련된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그런데 의사는 신이 아니고 의학적 통계에 의해 판단하는 과학자일 뿐이다. 의사의 상식을 비웃으며 죽음의 문턱을 딛고 걸어 나오는 환자가 존재하는 한, 생명연장이 의미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하는 의사의 역할은 어렵기만 하다. 그것은 의사의 몫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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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을 버리라


황새는 매우 오래삽니다.
그 이유는 황새는 욕심이 없는 새여서
절대로 과식, 과욕이 없는 새이기 때문입니다.
먹이를 아무리 줘도 양만큼 먹고는
그 이상은 안 먹는다고 합니다.
식사절제는 사람에게도 장수의 조건이 됩니다.
경건 생활에서도 이렇게 절제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송태승 목사의 ‘탐욕을 버리라’에서-

과욕을 부리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입니다
우리는 먹는 것에 쓰는 것에 가지는 것에 욕심을 부리다가
다치거나 망한 사람의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을 이러한 절제 속에서 했습니다.
오늘도 절제있는 생활 속에서 아름답게 살아가십시오.
결국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새벽종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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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관심


축복과 광야의 연단은 같이 가는 패키지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만드실 때, 우리의 삶에 반드시 연단의 사람을 붙여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가 바뀌는 데 있다. 힘든 사람을 붙여주시는 이유이다.
-이용규의 [떠남] 중에서-

하나님의 관심은 나 한 사람이 온전히 변화되어,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온 열방을 품고 생명을 낳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 생명은 축복과 광야의 연단을 통과한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연단은 사람입니다. 사람에게 받은 연단도 하나님은 또 다른 사람을 얻기 위해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한 목적을 두고 행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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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여러분들은 어떤 상황에 놓여있습니까?
내 지혜와 능력으로 안되는 문제 앞에 서 있지 않습니까?
이럴 때 필요한 지혜는 어떤 자에게 임할까요?
기도하는 자에게 임하는 줄 믿습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 겹줄로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주시고,
우리 앞의 풀무불을 하나님께서 직접 꺼주실 줄 믿습니다.


옥성석 목사의 ‘기도의 세 겹줄’에서



기도하지 않으면 내가 바빠지지만
기도하면 하나님이 바빠지신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어린 자녀들이 부모에게 뭔가 부탁하고
방으로 들어가서 잡니다만, 그때부터 부모가 바빠집니다.
자녀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
기도하면 그때부터 하나님이 바빠지십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실 줄 믿고 기도하십시오.
주님께서 제일 먼저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 지혜로 문제를 해결하는 큰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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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을 기다리기란 결코 쉽지 않다.

우리는 즉각적으로 욕구를 충족하는 데 익숙해져 있어서,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데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쉽게 조급해진다. 즉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조급한 마음에 곧 다른 책략을 세우거나

다른 수단을 찾기 시작한다.

불행히도 우리는 종종 영적인 삶에서도

그와 같은 태도를 보인다.


토미 테니의 [예배자로 사는 법 49가지] 중에서



기다림은 축복입니다.

기다림 끝에 하나님의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기다림의 시간을 기쁨으로 맞이합니다.

 

조급함과 서두름이

하나님의 것을 얻지 못하게 합니다.

기다림은 큰 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것으로 채워 가시는

하나님의 방법이 기다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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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집착하기를 좋아한다.
공부를 한 사람은 공부에, 돈을 번 사람들은 돈에,
선을 베푼 사람은 베푼 선에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거기에 집착하며
은연중에 그것을 자랑하고 내세운다.
자식을 공들여 키우면 자식에게 집착한다.
내가 너를 이렇게 키웠는데 감사하지 않느냐 한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왜 이런 시련과 재앙을 주시는 가
신앙생활을 오래 했는데, 봉사를 많이 했는데
이만큼 바쳤는데 하는 공로의식으로
하나님이 댓가를 주지 않는다며 시험에 들기도 한다


김명수 목사의 ‘달려가는 삶’에서



인간의 행위 중 아름다운 것은 자리에 머물지 않고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자기가 이루어놓은 것에 대해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선한 일을 했을 때,

선한 일한 것으로 끝내는 것입니다.
베푼 사람은 그것을 잊어버려야

진정한 베품이 됩니다.
좋은 일을 한뒤 자랑하고 생색내면

그것을 다 까먹게 됩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보화를 하늘나라에 쌓고 집착하지 않을 때
내가 쌓은 공로는 온전한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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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세상을 포기해야 합니까?"
하고 어떤 젊은이가 나에게 질문을 했다.

"젊은이, 젊은이가 철저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면
세상이 젊은이를 포기할 걸세" 라고 대답했다.
육체적인 정욕을 철저하게 다스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이 점을 포착하여
"저는 제가 아는 어떤 사람보다 D.L.무디와
제일 트러블이 많습니다."라고 말했다.


정욕을 따르고자 하는 나 자신이 제일 골치거리란 것이다.
나는 육체적인 정욕을 제어하지 않으면
철저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수 없기에 이 점을 강조했다
-D.L 무디의 ‘사치를 경계하라’에서-

방종하면 능력을 상실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려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치스럽게 살고, 자연적인 욕망을 지나치게 추구하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충만하게
받고 살 수 있다고 믿으면 안 됩니다

.
육체의 충족과 성령의 충만은 동행하지 않기에
성령의 능력을 계속 받고 살려면
검소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 자기 경계를 해야 합니다.
방종과 포만을 멀리하고 사치를 두려워하십시오.
사치는 매우 간교하고 능력있는 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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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억울했던 분을 생각하라

살다보면 억울한 일을 겪을 때가 적지 않다.
억울한 일은 직장에서도 일어나고
길거리에서 집안에서, 심지어 교회와 노회와 총회와
기독교 단체 안에서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그 억울함을 이기지 못해
홧병을 얻어 목숨을 잃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그러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모든 것을 아시고 마침내는 잘잘못을 가려 주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할 수 있는 대로 억울함을 밝히고 풀도록 끝까지 힘쓰되
그 억울함이 나의 삶을 삼켜버리지 않도록
내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동을 잘 다스리면 좋지 않겠는가?
-박동현 목사의 글 ‘억울한 일을 겪을 때’에서-

정말 너무 억울한 일을 겪으면
여간한 믿음이 아니고서는 무엇보다도
정서적으로 이를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어떡합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억울하게 목숨을 잃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서
이 일을 풀어나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에 앞서, 나도 혹 남을 억울하게 하지는 않았는지
돌이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억울한 일이 벌어질 때마다
그 중에 그리스도인들이 서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사실 또한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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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하나님의 관계는 일회적인 관계가 아니다.
당신을 붙잡고 있는 그 손은 때로는 당신을 끌어올리고

때로는 지체시키고, 때로는 멈춰 세운다.
하나님은 당신을 ‘걷게 하시고’ 또 당신을 ‘멈춰 세우시지만’
절대로 당신을 포기하지는 않으신다.


토미 테니의 ‘돌이킴’ 중에서

우리는 때론 신앙의 정체를 경험합니다.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막막함과 주님의 얼굴조차

가리워진 듯한 두려움에 방황하며 몸부림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멈춰버린 그 때에도 주님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다만 우리가 원하는 길을 따라 헤매다
주님의 정지신호를 놓쳤을 뿐입니다.
주님과 함께 걷고 함께 쉬고 다시 함께 걸어가십시오.
멈춰 있는 지금 새로운 힘과 능력으로

다시 걷게 하실 주님을 찬양합니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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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작은 일평생



하나님이 주시는 하루는 참으로 귀한 날이다. 하루가 모여서 일 년이 되고 한평생이 되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는 "하루는 작은 일평생이다. 날마다 잠에서 깨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새로운 탄생이다. 새로운 아침과 같은 청년기를 거치면 곧 누워 잠자야 하는 죽음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다."라고 했다. 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말라 하나님은 어떻게 하루를 사용했는지 결산을 하신다. 그러므로 날마다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며, 하루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야한다.
한승진 선교사의 ‘하루의 삶’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이 공짜이지만 그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이 값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하루는 보너스요, 최고의 선물입니다. 세상의 보너스를 받고도 기뻐하는데 하루의 삶이 더 주어진다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할 일입니까? 하루하루의 삶을 값지게, 하나님의 뜻대로 사십시오. 하루가 있다는 것이 희망이요, 기쁨이요, 평안이니까요. 주어진 한 날을 기분대로 무절제하게 사용한다는 것은 하루를 주신 하나님께 대한 무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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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려는 서로가 서로를 책임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상호책임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과격한 사람의 간섭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이것은 높은 기대치를 유지하게 하는

고단수의 격려와 같다. 인생에는

우리를 실망시키고 맥 빠지게 하는 일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한 양의 격려가 필요하다.

우리는 각자 우리가 성공할 때 박수쳐주고

실패할 때 손잡아 일으켜줄 수 있는 믿음의 동지가 필요하다.


제임스 브라이언 스미스의 [선하고 아름다운 공동체] 중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난이나 조소가 아닙니다.

바쁜 일상 속에 살아가는 서로를 향한

따뜻한 시선이 필요합니다.

격려는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축복할 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가슴에 살아갈 용기를 주는 것은 격려입니다.
 

격려는 상대방에게 힘을 불어넣는 일이지만

나도 함께 힘을 얻는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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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높은 지위에 올랐어도 교만과 이기심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바로의 지하 감옥에 갇혔을 때나

바로의 궁정에 있을 때나 요셉은 한결 같은 사람이었다.

자신의 상황에 상관없이 그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종으로 남아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바로 요셉이 모든 상황에서

겸손하게 만족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 진귀한 성품은 역경의 시련 중에 얻은 보배였다.

오스 힐먼의 [하나님의 타이밍] 중에서



누구나 성공의 위험 속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사실 성공을 향해 가는 과정이 어려운 것 같지만, 성

공이후에 더 많은 위험이 있습니다.

신앙인에게는 더 그렇습니다.

더 많은 욕심과 자랑이 우리에게 찾아옵니다.

결국 모든 것이 나의 수고로 되었다는 거짓까지 말합니다.

요셉은 그 마지막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도

겸손으로 성공을 잘 관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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