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나무의 길을 막으신 하나님-

구자준 목사 2017. 2. 9. 23:26

-생명나무의 길을 막으신 하나님-

창세기 3장 22절~ 24절

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22절에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의 의미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과연 아담이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처럼 되었을까요?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이는 실로 비꼬는 말씀이 아닙니까!
선악과를 따먹은 결과는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처럼 되지도 않았음과 될 수도 없었음을 반어법으로 강하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처럼 되고자 선악과를 따먹었지만 그 결과는 죄를 범한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담의 죄를 더욱 드러내고자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이 말씀도 역시 비꼬는 말씀입니다.
죄인이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는다고 영생할 수 없음을 강조키 위함입니다. 그렇지만 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아담과 그 아내가 죄의 결과인 죽음에 대한 인식은 분명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영생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컸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추방하지 않으셨다면 아담은 죽지 않고 영생하려고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자 했을 것입니다.

죄지은 채로 에덴동산에 머물게 하는 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해서 죽게 된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고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께로 눈을 들게 하심이 은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추방하고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으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지키게 하신 것은, 영생을 얻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약속인 구원자-여인의 후손을 바라보고 믿는 길 외는 다른 길이 없음을 알게 하시고자 함에 있습니다.

생명나무에로 가는 길을 철저히 차단하신 하나님의 본심을 헤아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을 붙들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진정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인생들은 지금도 영생을 얻고자 길을 찾아 나섭니다. 구도자들의 행렬이 줄을 잇습니다. 인류 역사상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구하였습니까. 그렇지만 한결같이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미리 아시고 영생에 이르는 다른 길이 없음을 알게 하시고자 철저히 차단하셨건만 죄인들은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께로 눈을 들지 않고 각기 제 길로 갔습니다.

아담과 그 아내에게 약속하신 그 은혜로운 약속의 말씀(창 3:15)은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자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받지 않은 것은 죄들인의 탓입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과 자비하심을 믿지 못하고 그 말씀을 저버린 자들은 모두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그 생명나무로 가는 길은 오직 여인의 후손 안에서만 회복되어 집니다. 아담은 여인의 후손인 메시야(구원자)가 오셔서 대신 피흘려주심으로써 죽음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계시로 알았습니다.

그것을 아담이 믿었기에 그 아들 아벨이 어린 양의 피를 흘리는 제사를 드릴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아담이 제사를 드렸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하지만 아벨의 제사를 통해 이것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외는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직 구원에 이르는 길은 십자가의 복음밖에는 없습니다.

요즘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자들이 괴악한 누룩으로
기독교의 진리를 왜곡하고 부패시키고자 합니다.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자도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구원받은 자가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전파되지 않은 시대나 지역에서 혹 구원받은 자가 있다면 그 또한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받은 자들일 것입니다.

모든 종교행위 선행 의로운 행실....
그 어떤 행위나 공로도 생명나무에의 길로 가게 할 수 없습니다.

교회 내에서도 행위구원을 강조하는 율법주의가 횡행하고 있습니다. 성화를 강조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마치 우리의 성화가 구원을 보장하는 것처럼 가르치는 것은 또 다른 율법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왜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구원을 받지 못 했습니까. 그들의 의가 우리보다 못해가 아닙니다. 힘써 자기 의로 구원을 받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창세기 서두만 바르게 알았더라도 생명주시는 하나님의 의이신 그리스도를 구했을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복음 아닌 다른 복음이 택한 자까지도 미혹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 길 외는 달리 생명얻를 길이 없음을 성경은 밝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계22;1-2

생명수(생명의 물-의역하자면 생명을 위한 물 곧, 생명 그 자체를 말합니다. 그 생명수 강이 길 가운데로 흐르고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습니다)는 하나님과 및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성령께서 수면 위에 운행하셨듯이 성령은 생명수 강물과 함께 하십니다. 성령은 말씀을 떠나서는 일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생명의 물도 단수요, 생명의 나무도 단수로 기록되어 있습니다(원문에는). 이 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상징적 언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으로 오셨기에 피를 흘릴 수 있는, 피를 흘리신 어린 양으로서 제물이 될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구원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는 없습니다.

생명수 강이 하나님(구약)과 '어린 양'(신약)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는 이유는, 어린 양인 그 분자신이, 죄인들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서, 생명수 강과 그리고 길과 생명나무에 어린 양 자신을 투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말씀을 선명한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지요. (평면적인 글이나 그림을 통해서 3차원적인 입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상징이 필요합니다)

성령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말씀을 가지고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기에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값없이 생명수를(생명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계22:17)

오늘 본문에 나오는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철저히 차단하신 이유를, 성경의 맨 마지막 부분인 계시록에서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도록 해 주시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처음과 나중이시요, 시작과 끝이시요,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역사의 주인이심을 나타내고자 함에 있습니다. 세속역사 속에서 구원역사를 이루어가시는 역사의 주인이 바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란 말씀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 하신 그 약속의 완전한 성취를
계시록을 통해서 미리 보여주시는 이유는, 오고 오는 세대가 기록한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을 따라 오직 그리스도만을 믿고 바라보게 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룹과 두루 도는 화염검으로 생명나무 길을 차단하신 것은 죄있는 채로 영생하는 것을 막고자 함이 아닙니다. 죄를 가지고 영생한다는 말은 성경적으로 성립이 안 되는 말입니다. 영생은 오직 여인의 후손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걸 강조코자 함에 있습니다.

아담에게 이미 주어진 그 약속만을 붙들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심정을 아담과 그 후손인 우리들이 헤아리게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여인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값없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의 성호를 송축할지라~ 아멘!

글: 구자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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