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의 머리말

어두운 영혼을 밝히 비추는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위대한 빛

그동안 저는 십자가에 대한 설교가 그리울 때마다 버릇처럼 로이드 존스가 쓴 십자가 설교를 꺼내어 읽곤 하였다. 십자가에 관한 설교에 있어서 로이드 존스만큼 탁월한 설교자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옥타비우스 윈슬로우가 전한 십자가 설교를 읽으면서 ‘어쩌면 이 책이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십자가 설교 중에서 가장 탁월한 설교가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단순히 우리의 구원이나 하나님의 사랑의 차원에서만 십자가를 말하지 않고, 우리가 처음 죄를 회개하는 순간에서부터 시작하여 믿음의 싸움을 다 마치는 순간까지 십자가가 우리의 모든 것이며 모든 중심임을 철저하게 파헤쳐 보여 준다는 것이다. 어쩌면 굉장히 방대할 수 있는 내용을 얼마나 간결하게, 그러면서도 얼마나 호소력 있게 전해 주는지, 한 편 한 편이 완전한 복음으로 다가와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니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저는 이 책의 한 편의 설교를 읽을 때마다 애통하는 마음으로 “그렇지, 정말 십자가가 내 모든 것이지. 그런데 왜 나는 십자가 주변을 멀리 맴돌았던 것일까?”라는 탄식을 토해 내었고, 동시에 “오, 주님, 이 십자가 아래 평생 머물 수 있도록 저를 붙들어 주옵소서”라고 간구하게 되었다. 십자가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인의 모든 여정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처럼 선명하게 보였고, 내가 어디에 서 있고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 길을 확실히 정하게 되었다.

이 책의 첫 장을 읽어 내려가면서 저는 “바로 이 책이다!”라고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책의 한 줄 한 줄이 정말 생생하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말하고 있었으며, 단순히 우리의 머리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 전체를 일깨우는 능력으로 십자가를 전하고 있었고, 영혼을 사랑하는 목회자의 깊은 심정으로 우리 영혼의 어두운 골목 구석구석까지 헤치고 들어와 죄의 잔재를 청소해 주고 복음의 은혜로 아름답게 해 주는 역사를 마음에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상징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십자가의 교리를 나타내며 하나님의 아들이 이루신 속죄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루신 그 속죄로 말미암아, 전에 하나님과 원수 되었고 하나님의 존재와 통치와 진리에 굴복하지 않았던 반역자인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여호와 하나님과 하나 된 상태에 있게 되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2:13)

그러나 영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표현은 성도가 십자가에서 뿜어져 나오는 도덕적인 능력을 친밀하게 체험하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고난 속에서 그리스도와 깊이 교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것은 이 땅에서 우리가 누리는 모든 은혜의 복들이 총집결해 있고, 또 장차 영원한 세상에서 우리가 누리게 될 영광의 첫 열매가 피어난 바로 그 장소에 성도가 믿는 마음과 겸손한 심정으로 서 있는 것을 의미한다.

십자가를 가까이하는 것!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의 규범이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수의 그리스도인만이 유지하고 있는 예외적인 상태가 되어 버렸다. 십자가 곁에 서 있는 것!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외 없이 누리는 특권이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소수의 그리스도인만이 그러한 특권을 누린다. 일종의 예외적인 특권이 되어 버린 셈이다.

세상은 다양한 면에서 다양한 형태와 능력으로 그리스도인의 영혼을 십자가로부터 멀리 떼어 놓는다. 그러하기에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마음이 영적으로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어지간해서는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삶을 바라보다가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동떨어진 궤도를 따라 돌고 있음을 뒤늦게 발견한다. 처음에 그리스도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자신이 한없이 즐거워하던 의의 태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따뜻하고도 온화한 영향력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서 냉랭하고 황량한 삶을 살고 있음을 뒤늦게 발견한다.

성도의 영혼이 십자가에서 멀어지면 거기에는 기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안전보장도 없다. 우리의 심령과 삶을 거룩하게 만드는 성령의 능력이 존재하지도 않고 감지되지 않는 곳을 걷는다는 것은, 마치 지옥을 걷는 것과 같다. 이 세상의 즐거움을 좇고 육신의 쾌락을 만족시키며 살아가면, 예수님을 알 수도 없고 그의 십자가를 깨달을 수도 없으며 그의 사랑을 느낄 수도 없다.

세상에 푹 빠져 살면서도 동시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영적으로 가까이 간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여러분은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다. 십자가는 우리가 세상에 대하여 못 박히고 세상이 우리에 대하여 못 박히는 곳이며, 죄가 사망한 곳이기 때문이다.

경외심을 불러 일으키는 십자가의 그늘 아래 서게 되면, 거룩한 십자가 아래 서게 되면, 세상의 영광은 백지장처럼 창백해지고 죄의 능력은 마비된다. 또한 교활하기 짝이 없던 사탄도 십자가의 밝은 영광 때문에 움찔하게 되고, 십자가의 죽음과 상처 아래서 괴로워하며 자신의 먹이를 포기하고, 패배감과 절망감 속에서 자신의 은밀한 처소로 조용히 물러가게 된다.

- pp 7-21  출처: 생명나무 쉼터, 한아름 발췌
 
ReplyForward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