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효과적인 부르심

성령님의 사역은 효과적인 사역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이미 다루었으므로, 여기서 그렇게 깊이 살펴볼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이 주제는 성령님의 사역에 관한 중요하고도 영광스러운 일면을 보여 준다. 그러나 우리가 중생과 관련된 성령님의 역할에 대해 더욱 확실한, 그리고 영적으로 더욱 높고도 신령한 시각을 가지지 않으면 그것을 볼 수 없다.

성령님께서는 신자가 거듭날 때 그의 영혼에서 일어나는 위대한 변화를 종종 '부르심'이라고 일컬으신다. 이 점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애써 연구하지 않더라도 성경의 몇몇 구절만 보면 증명된다. 갈라디아서 1장 15절에서 바울은 "내가 은혜로 부르심을 받았다(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라고 말한다. 로마서 8장 28절에서는 하나님의 성도들을 일컬어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말한다. 그 외에도 다음의 구절들을 보라.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벧전 2:9)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롬 8:30)
"부르심을 받은 자 곧.....예수 그리스를 위하여 지키심을 받은 자들"(유 1:1)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딤후 1:9)
"하늘을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히 3:1)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벧후 1:10)

이와 같이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심을 받고 어두운 데서 건짐을 받은 거듭난 사람이 곧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 사람을 부르신 이가 영원한 성령님이다. 곧 살리시고 부르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인 것이다(요 66:63 참고). 그러므로 여기서는 특별히 성령님의 효과적인 부르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성령님의 부르심에는 외적 부르심과 내적 부르심이 있다. 먼저 외적 부르심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잠 1:2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마 22:14).

성령님의 외적 부르심에는 다양한 방편이 사용된다. 말씀을 사용하시기도 하고 복음에 대한 영광스러운 선포를 사용하시기도 하며, 자비를 베풀거나 심판하시는 등 하나님의 섭리를 이용하시기도 한다. 또 사역자들을 통해 경고하시거나 친구들을 통해 책망하시기도 한다. 또 때로는 자연적인 양심의 각성을 일으키시기도 하는데, 이것 역시 다른 것들 못지않은 능력을 발휘한다. 성령님께서는 이런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하여 죄인을 부르시고 회개시키신다(눅 5:32).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복음을 들을 뿐만 아니라 항상 은혜의 수단을 접하는 사람, 그리고 다른 사람들 모르게 쓴소리를 해줄 수 있는 신실한 사람을 곁에 두고 있는 사람은 모두 성령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부르심이 있다는 사실은 죄인들에게 두려운 책임감을 갖게 한다. 이 부르심을 거절한다는 것은 이보다 더 무시무시한 운명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진노를 부으시기 전에 항상 먼저 그들에게 평화의 손길을 내미신다. 언제나 하나님의 자비가 심판보다 먼저이다.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잠 1:24).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롬 10:21).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계 3:20).

하나님께서는 죄인들과 의논하시고 논쟁하시고 그들을 권면하신다.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사 1:18)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초청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이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들어 보자"라고 말씀하시며, 가르치시고 주의를 주시며 초청하신다. 또 의무감 때문이든지 스스로 관심이 일어나서든지 간에 회심의 필요성에 대한 가장 진지한 이유를 사람의 마음에 심어 주시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영혼이 가진 관심사를 이용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를 역설하신다. 그런데도 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 것 같다.

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바 반역자들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인내가 얼마나 크고도 놀라운가! 하나님은 죄인을 향해 자신의 팔을 뻗으시는 분이다. 진노가 아니라 자비를, 저주가 아니라 복을 베푸시며, 즉각적인 형벌을 내리시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초청하시고 격려하시며, 죄인과 더불어 '쟁론'하시는 인내와 용서가 하나님께 있다. 오, 우리 하나님과 같은 신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잠 1:24).

한편, 하나님의 선택에는 특별하고도 직접적이며 효과적인 성령님의 부르심이 있다.
이 부르심이 없다면 다른 모든 부르심은 헛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겔 37:14)라고 말씀하시며, 그리스도께서도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이와 더불어 성경은 성령님의 효과적인 역사에 대하여 이렇게 증언한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엡 3:7).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성령님께서는 진리를 도구로 삼아 사람의 영혼에 효과적으로 역사하신다. 이전의 성령님의 부르심에는 인간의 양심에 호소하는 그 어떤 내적이고도 초자연적이며 비밀스러운 부르심이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효과적인 부르심에는 양심을 깨우고 우리의 마음을 깨뜨리며, 심판이 있음을 확신하게 영혼의 눈을 뜨게 하는 능력이 있다.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듣지 못했던 귀로 새롭게 울려 퍼지는 경고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는 능력이 있다.

이 복된 효과를 주목하라.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고, 우리 지성에 드리워져 있던 장막이 찢어지며, 마음속에 있는 깊은 악의 근원이 무너진다. 그리고 죄인은 자신이 버림받았고 멸망 가운데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자신이 용서가 없고 의도 없으며 하나님께서 받아 주시지도 않고, 아니 하나님이 아예 계시지도 않고 구세주도 없는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얼마나 끔찍한 상태인가! 죄인은 그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행 16:30)라고 외칠 뿐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멸망 가운데 있는 비참한 사람입니다.내 속을 들여다보면 어둡고 더러울 뿐입니다.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이 마치 내 마음의 고뇌를 보여주는 것만 같습니다. 위를 올려다보면 오직 나를 향해 진노하시는 하나님만 보입니다. 어디를 보든지 지옥만 보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나를 그 지옥에 보내신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정의롭고 의로우신 분입니다."

그러나 복되신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생각에 사로잡혀 그렇게 고백하는 불쌍한 영혼을 절대 절망 가운데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죄인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신실한 성령님께서는 이 일을 효과적으로 진행하시고 완성하신다(빌 1:6 참고).성령님께서는 죄인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끌고, 그의 희미한 믿음의 눈을 열어 구세주를 보게 하신다. 고난 가운데 찢끼고 피를 흘리며 죽어 가시면서도 양팔을 그에게 내미시는 구세주를 보게 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구세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모든 것을 너를 위해 행하노라. 이 십자가도 너를 위한 것이며, 이 모든 고난도, 내가 흘리는 피도 모두 너를 위한 것이다.
또한 내 팔도 너를 향해 내미노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요 6:37).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사 45:22). 오직 믿기만 하라. 멸망 가운데 있느냐? 내가 너를 구원할 수 있노라. 죄를 지었느냐? 내가 깨끗하게 할 수 있노라. 가난하냐? 내가 너를 부요하게 할 수 있노라. 깊은 구덩이에 빠졌느냐? 내가 너를 건져 낼 수 있노라. 벌거벗었느냐? 내가 입힐 수 있노라. 너에게 아무런 재물도, 돈도, 선한 것도, 공로도 없어서 나에게로 가져올 것이 없느냐? 나는 그저 너의 모습 그대로를 받을 수 있으며, 또 받을 것이다. 가난하고 헐벗었으며 무가치한 사람아! 바로 이런 사람을 찾으러 내가 왔으며, 이런 사람을 부르러 왔고, 그들을 위해서 죽으러 왔노라."

이보다 더 아름다운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 불쌍한 영혼은 이에 대한 확신에 가득 차 이렇게 외친다. "제가 믿나이다. 저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주님이야말로 제가 원하는 구세주이십니다.
저는이 비열하고도 누추하며 모든 것이 부족한 저를 능히 구원하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구원하실 분을 원했습니다. 저는 저를 온전히 값없이, 저에게 아무런 공로가 없어도 은혜로 구원을 주실 분을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야 제 영혼이 사랑하는 분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이 땅에서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동안은 물론 영혼토록 주님의 것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복되신 성령님께서는 자신의 특별하고도 직접적이며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말미암아 죄인을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기이한 빛에 들어가도록 인도하시되, 효과적으로 그 일을 감당하신다(벧전 2:9 참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행하리니 누가 막으리요"(사 43:13).

옥타비우스 윈슬로우의 '중생 사역의 특징' 중에서(110-115p) 

출처: 생명나무 쉼터 , 한아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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