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중생 사역의 특징

2) 신령한 생명의 점진적인 성장

우리는 신령한 생명이 영혼에 처음으로 심어지는 현상이 순간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제 그렇게 심어진 신령한 생명이 대개 점진적으로 성장해 간다는 사실에 대해 살펴보자. 이로써 자신의 영적 생명이 잘 성장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질책하는 모든 사람이 큰 격려를 얻기 바란다.

영혼에 있는 신령한 지식은 종종 느리게 성장한다. 다시 말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예수님의 열 한 제자들을 보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친히 말씀해 주셨는데도 그들은 그 뜻을 잘 이해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또 얼마나 느리게 성장하는 학생들이었는가! 과연 누가 그들과 같이 교훈을 배울 수 있겠는가? 제자들은 지식의 원천에서 나오는 지식을 마셨다. 그들은 태양에서 직접 발산되는 빛을 받았다. 그들은 우리의 사랑하는 주님께서 직접 행하신 사역과 교훈과 이적과 모범을 보고 배우는 탁월한 유익을 누렸다. 그런데도 그들은 주님께서 그토록 열심히 꾸준히 가르친 그 명백한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마음으로 믿는데 얼마나 더뎠는가!

그렇다. 신령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영혼이 성장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죄와 숨겨진 악에 대한 지식,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반항심과 우리 마음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부정함과 사탄의 치밀함에 대한 지식,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고귀함에 대한 지식과 위대한 구원에 대한 관심은 하루나 일 년에 다 자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날과 수년에 걸친 노력, 오랜 시간의 고통스러운 연단, '폭풍과 광풍'(시 55:8)의 세월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영혼에 심어진 생명이 더디게 성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덜 실제적이거나 덜 신령한 것은 아니다. 이 생명은 그 정도에 있어서는 미약하고 연약할지 모르나 본질적으로는 결코 소멸되지 않는 생명이다.
성령님께서 인간의 영혼 가운데 이루시는 사역을 표현하는 비유들을 보면, 자주 연약한 상태로 묘사되고 있다. 이사야 40장 11절을 보라.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들이 연약하고 힘겨워하는 모습을 그 어떤 말로 이보다 더 놀랍고도 감동적으로 묘사할 수 있겠는가?

또 이사야 42장 3절을 보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여기서 성도들을 단지 '갈대'라고만 표현했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도 성도들이 얼마나 연약한지를 잘 표현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상한 갈대'라고 표현함으로써 그들을 연약한 상태 중에서도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단지 '등불'로만 표현되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작은 등불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꺼져가는 등불'이라고 함으로써 그들이 '죽게 된 것'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 두 비유에는 영원하신 성령님께서 행하신 사역의 결과가 나타난다. 이 '상한 갈대'가 결코 완전히 부러지지 않으며, '꺼져가는 등불'도 결코 완전히 꺼지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상한 갈대를 부드러운 손길로 묶어 강하게 하실 것이며, 꺼져가는 등불을 조심스럽게 돌보아 되살아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들, 곧 경건한 부모에게서 양육된 자녀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지금까지 걸어온 영적인 순례 지도를 보면서 자신의 영적 삶이 시작된 지점을 더듬어 보려고 하다가 당황해하는지 모른다. 그들은 자신이 멸망의 도시를 이미 떠났으며 강하고도 능한 손에 의해 애굽에서 구출되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이 경험한 인도하심이 얼마나 천천히, 그리고 얼마나 살며시 부드럽고도 서서히 이루어졌는지, 그들은 자신의 영적 삶의 동이 튼 시간을 발견하는 것이 막 태어나서 혼돈 가운데 있는 자신에게 처음으로 자연의 빛이 들어왔던 순간을 말하는 것 이상으로 어렵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났음에 틀림없다. 사람이 그 마음에 악한 원리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것은 상상이 아니다. 그리고 은혜가 이 악한 원리를 정복한 것도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가 한때 어둠의 자식이었다는 것도, 그리고 이제 빛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도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비록 자신의 영혼이 거의 발전하지 않고 성장이 지지부진하며, 여전히 믿음이 연약하고 경험한 은혜가 적으며, 자신의 부패함이 너무 크고 허물이 많을 뿐만 아니라 그의 시작이 '속이는 활'(시 78:57)처럼 빗나갔을지라도, 그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비록 나는 주인의 괴수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 불과하지만, 또 내적으로 겸손할 수밖에 없고 외적으로 애통해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들을 보지만, 내가 아는 한 가지는 바로 '전에는 내가 볼 수 없었으나 이제는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제 전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있다. 나는 죄가 얼마나 가증한 것인지를 알게 되었고, 거룩함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를 보게 되었다. 나는 이제 나 자신의 악함과 허무함을 보게 되었고 예수님의 고귀하심과 충만하심을 보게 되었다."

비록 미약한 은혜라 할지라도 그것 역시 참된 은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약 영혼이 은혜에 굶주려 있고 목말라 한다면, 그리고 그 은혜가 영혼의 가장자리에라도 닿기만 한다면, 그 영혼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옥타비우스 윈슬로우의 '중생 사역의 특징' 중에서(101-104p) 
 
출처: 생명나무 쉼터, 한아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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