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령님의 인 치시는 사역

성령님의 인치심에 대하여 간단하게 정의를 내렸으니 이제 성령님께서 인 치시는 과정에 대하여 알아보자.

1) 갑작스러운 인치심과 점진적인 역사

때때로 성령님께서는 이 사역을 갑작스럽게 진행하시기도 한다. 또 이 인치심의 깊이가 깊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신령한 은혜가 참으로 생성하며 성령님의 임재가 충만하여 이후로 결코 이 모든 것을 잃지 않을 수도 있다.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는 것이다(엡 4:30 참고).

이 인치심 역시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이루어진다. 설교를 듣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동안 신자의 영혼이 그 내용을 이해하고 그 사실을 온전한 확신 가운데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성령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어떤 약속이 주어지고, 그것이 마음에 새겨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많은 불쌍한 죄인들의 부드러운 마음에 결코 지워지지 않도록 성령님께서 인을 치겠다고 선포하시는 소중한 약속의 말씀이 있다.

"내게 오는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리라"(요 6:37).

이 얼마나 놀라운 인치심인가! 불쌍하고 불안해하며 고민하는 영혼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진심으로 그 영혼을 맞이할 것이며 값없이 용서하실 것이라고 선포하시며 확신을 심어 주시는 것이다. 비록 그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악하고 비참하다 할지라도, 그리고 그 영혼의 슬픔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깊다 하더라도, 있는 모습 그대로 예수님께로 나아오면 결코 쫓겨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 위대한 분의 손을 통해 구속의 날을 위해 받게 되는 인치심이 아닌가!

가끔 이 인치심의 역사는 성령님께서 고민하고 있는 영혼에게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의 구주가 되신다'는 위대한 진리를 드러내실 때에 일어나기도 한다. 여러분은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 그분께 드릴 선물이나 지불해야 할 값을 준비해야 한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기쁘게 맞아주실 수 있을 만큼 자신이 조금이라도 덜 악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고 스스로가 느끼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복되신 성령님께서는 여러분의 눈을 열어 위대한 진리를 보게 하신다.

곧 성령님께서는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다"(롬 5:6 참고)는 것을 보게 하신다. 또한 그분이 죄인들의 구원자로서 그들을 구원할 능력을 가지고 계실 뿐만 아니라 그 일을 기쁘게 감당하신다는 것을 보게 하신다. 선물을 가져올 필요도 없고, 어떤 값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에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얻거나 스스로 무언가를 준비할 필요도 없다. 더 악하고 무가치할수록 하나님께 나아가기에 더욱 적합하며,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더 환영하신다.

상처 입은 우리의 마음에 성령님께서 새기신 인의 자국은 얼마나 놀라운가! 불쌍한 죄인에게 아무런 값없이 완전한 용서가 주어졌고, 예수님의 피가 그의 죄를 깨끗하게 한다. 이 영광스러운 진리가 신자의 영혼에 선언될 때, 아무리 시간과 환경이 바뀐다 하더라도 성령님의 인치심을 받은 자국과 그 순간이 우리의 마음에서 결코 지워질 수 없지 않겠는가? 이것을 하나님께서 부드럽게 만드신 우리의 마음에 새겨진 용서의 도장이며, 이 인치심의 역사는 바로 영원한 영광의 전주곡, 아니 그 영광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성령님의 인치심은 대부분 좀 더 점진적인 역사이다. 여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간의 영혼은 깊은 경험의 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그곳에서 한 걸음씩 단계적으로 그런 역사를 경험하게 된다. 이를 통해 자기 자신과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증가한다. 그리고 내재하는 죄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되며, 자신의 마음이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점을 더욱 분명히 느끼게 된다. 뿐만 아니라 사탄의 계략이 무엇인지 더 잘 알게 되고, 하나님께서 은혜와 섭리 가운데 자신의 자녀들을 어떻게 대하시는지에 대한 비밀을 좀더 분명히 알고 이해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은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는 과정, 곧 언약의 깊고도 고통스러운 훈련의 과정을 통과해야 얻을 수 있는 결과이다.
그러므로 언약의 자녀가 성령님께서 주시는 온전한 인치심을 받기까지 수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참으로 복되신 분이심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중생은 그 자체로 완벽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자들의 죄를 없애 주시되 철저하게 제거하셨으며, 우리는 전적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었다. 그래서 비록 중생하자마자 죽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성도는 영원토록 안전하다. 십자가의 강도가 이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주지 않는가?


옥타비우스 윈슬로우의 '성령님의 구원 역사' 중에서..(227-229p) /출처: 생명나무 쉼터, 한아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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