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배로우신 그리스도

옥타비우스 윈슬로 2024. 6. 5. 19:52

♤ 보배로우신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시다. 신앙의 성장이란 우리의 마음과 삶 속에 그분이 더욱 충만하게 거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소통하지 않으면 거룩한 열망을 가지거나 신령한 생각을 하거나 선한 행위를 하거나 유혹에 맞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단 한 가지의 약점도 극복할 수 없다. 그것은 공기가 없으면 폐가 부풀어 오를 수 없고, 태양이 없으면 빛이 비췰 수 없는 이치와 같다. 그렇다! 신자에게 그리스도는 날이 갈수록 보배로우시다. 참신자라면, 설령 그분의 아름다운 임재를 경험하지 못하거나 그분의 복된 장소에서 떨어져 있거나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거나 시대가 혼란스럽거나 질병이 악화되거나 불안과 근심이 커지거나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등 그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그리스도를 보배롭게 여기는 마음이 줄어들지 않는다.

다른 대상들은 시간이 지나면 종종 매력을 잃거나 우리의 관심을 끌려 하지 않거나 우리를 매혹시킬 능력을 잃어버리지만, 예수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보배로워지는 영광스러운 대상이시다. 그분에게는 우리를 무한히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분은 우리가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요 우리가 부르는 노래의 주제이며,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근원이다. 그분은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스러우심과 영광과 은혜를 더욱더 밝히 드러내신다.

사랑하는 자들이여, 예수님이 당신의 영혼에 날이 갈수록 보배로우신가? 우리는 매일의 생활, 매일의 시련, 매일의 죄, 매일의 필요 등 모든 상황 속에서 항상 그리스도와 친밀하고도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며 그분을 마음속에 소중히 모셔야 한다.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면 그분의 아름다움에 깊이 매료되고, 그분의 은혜로움에 깊이 매혹되고, 그분의 사랑에 온전히 빠져들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에 대한 매력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라. 당신의 마음과 그리스도 사이에 그 무엇도 끼어들지 못하게 하라. 영적으로 크게 고양되었을 때 주제넘게 굴지 말고, 영적으로 심히 낮아졌을 때 실망하지 말라. 자신에게 있는 결점이나 실패나 결함을 보게 되더라도 예수님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 말라. 또한 예수님이 특별한 은총이나 사랑을 베푸실 때 교만하거나 부주의하게 행동하지 말라.

거친 길보다는 평탄한 길에서 발이 더 잘 미끄러지는 법이다. 또한 빈 잔보다는 끝까지 가득 찬 잔을 옮기기가 더 어려운 법이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행하라. 특히 그분이 가장 친밀하게 느껴질 때 더욱 겸손해야 한다. 우리의 영적 복장이나 장신구가 어떠한지는 모두 잊고, 우리를 그렇게 아름답게 옷 입히고 찬란하게 장식해 주신 그리스도만을 생각하고 사랑해야 한다. 은혜와 복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베풀어 주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의 모든 죄와 결함과 슬픔을 짊어지고, 우리에게 자신의 의와 아름다움과 복을 허락한 귀하신 구주만을 생각하고 사랑하며 사모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이 허락하시는 모든 것을 귀하게 여기라. 보배로우신 그리스도는 오직 보배로운 것만을 허락하신다. 꾸지람도 기꺼이 받아들이라. 그분의 꾸지람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비록 고통스럽더라도 시련을 기꺼이 받아들이라. 아무리 어렵더라도 가르침을 기꺼이 받아들이라. 고난의 잔이 비록 쓰더라도 거부하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에 허락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환영하라. 예수님이 허락하시는 것은 무엇이든 값지고 유익하고 보배롭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무례하게 굴었지만 사실은 마음속에 그들에 대한 사랑을 감추고 있었다. 그의 거친 말 속에는 가장 부드럽고 온유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창 42-45장 참고).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섭리로 혹독한 징계를 주시더라도 그것이 그분의 영원한 사랑의 표현이요 십자가를 통해 주어진 가장 부드럽고도 감격적인 사랑의 표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것은 모두 보배롭고 지혜롭고 유익하다. 그분의 교훈, 그분의 채찍, 그분의 징계, 그분의 거절, 그분의 꾸지람, 그분의 굳은 표정, 그분의 엄한 음성 등 모든 것이 보배롭다. 그분이 손을 높이 쳐들어 우리를 강하게 내리치고 일곱 번 내리치시더라도, 그분은 신자에게 여전히 보배로우신 분이다. 우리의 경험으로 알 수 있듯이, 그리스도는 자신의 찢어진 심장에서 향유를 흘려보내사 친히 내리쳐 입힌 상처를 다시 싸매 주신다. 그리스도의 섭리로 사나운 풍랑이 일어나 거센 비바람이 불어 닥치더라도 그분이 피난처와 은신처가 되어 주신다. 그분이 우리에게 창을 던져 몸을 관통하게 하시더라도 적절한 구원을 베풀어 그 슬픔과 아픔을 넉넉히 달래 주신다.

오, 참으로 귀하신 그리스도시여! 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지극히 거룩하며 부족한 것이 없으며,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보배로우신 분이다. 주님이 허락하시는 모든 것은 주님의 지혜와 사랑과 깊은 배려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므로 쓴 것과 단 것이 함께 나타나고, 빛과 어둠이 섞여 나타나는 그 모든 섭리를 지혜롭고도 의로우며 유익한 그분의 은혜로 알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 복종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모두 마지막 시간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생을 마치는 순간은 가장 엄숙하고 혹독하겠지만, 동시에 성도에게는 힘과 위로를 가져다주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능력이 더욱 은혜롭고 충만하게 나타나는 순간이다. 병에 걸려 일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순간이 왔다고 상상해 보자. 세상의 온갖 매력이 다 사라지고, 세상의 어떤 수단도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모든 것이 다 힘을 잃는다. 심장과 몸의 기력이 쇠하고, 정신이 흐릿해지고, 어떤 치료도 통하지 않고, 인간의 동정과 애정도 아무 소용이 없어진다. 눈에 죽음의 막이 드리우고,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현실이 눈앞에 생생하게 드러난다. 곧 건너게 될 차가운 강물 앞에서 함께한 사랑하는 사람이 몸을 굽혀 어떻냐고 묻는다. 기력이 너무 쇠해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고, 기운이 다 빠져 말 한마디조차 하기 어려우며, 정신이 혼미해 눈 한번 깜빡일 수조차 없다. 정교한 신조로 믿음을 고백할 수도 없고, 깊은 경험이나 황홀한 감정이나 하늘나라의 광경을 자세히 묘사할 수도 없다. 그럴 때는 우리가 알고 믿고 느끼는 모든 것을 충분하게 표현할 수 있는 단 한마디가 필요하다. 그동안의 경험을 압축하여 담고 있으며 소망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신앙고백, 즉 "그리스도께서 나의 영혼에 지극히 보배로우시다"라는 한마디 고백이면 충분하다. 임종을 앞둔 신자가 이렇게 고백한다면, 살아 있는 친구들은 더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지극히 사랑스러우신 구원자시여! 그 엄숙한 순간에 저와 함께하옵소서. 골짜기를 지날 때 동행하시고, 저의 힘없는 머리를 주님의 가슴에 기대게 하시며, 고통 속에서 숨을 헐떡이며 세상을 떠나는 저의 영혼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사 41:10)라는 말씀으로 격려하소서. 그러면 저는 행복하게 죽을 것입니다. 사망이 더 이상 저를 헤치지 못하고, 무덤도 더 이상 우울하지 않으며, 영원한 세상으로 건너가는 것도 더 이상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의 보배로우심을 경험했사오니, 어두운 문을 당당하게 지나 찬란한 광채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동안 믿음이 믿고 사랑이 바라고 소망이 기대해 온 모든 것을 영원히 온전하게 누릴 것입니다.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 장차 하늘나라에서 주님의 충만한 영광과 보배로우심을 만끽하게 하소서."

"보배로우신 예수님이여,
저의 간절한 심령에 주님은 얼마나 사랑스러우신지요!
주님을 절대 탄식하게 만들지 말고, 주님을 절대 떠나지 않게 하옵소서.
보배로우신 예수님이여, 저의 모든 것이 되시옵소서!"


옥타비우스 윈슬로우의 '그리스도인이 누리는 보배로운 선물' 중에서(30~34p)
옮긴 이 : 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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