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라(Petra)
최송연의 신앙칼럼 2010. 3. 3. 10:14
많은 사람이 예수님은 좋은데, 교회와 목사님, 혹은 아무개가 보기 싫어 교회를 떠난다고 한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상처를 입고 교회를 떠났고, 또 떠나고 있다. 누가 그들을 정죄하며 돌을 던질 수 있는가? 현실이 그러한 것을…조선 시대의 작가, 허균의 조카인 허친이 당대의 정치와 사회의 문란함에 가슴을 치며, 그 집 앞에 ‘통곡헌’(慟哭軒)이란 현판을 새겨 붙였다는 데, 현대 기독교계의 흐름과 거센 비판의 소리는 일부 지각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에 통곡헌(慟哭軒)이 새겨져 가고 있다. 정말 목놓아 통곡(慟哭)이라도 하고 싶을 만큼 작금의 기독교계는 암울한 그림자가 드리운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어느 한 사람의 인격이 부족한 것, 어느 한 개인, 혹은 어느 한 단체에게서 내가 상처를 받았다 하여, 영원한 생명을 소유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구원의 방주인 교회를 떠나거나, 내 작은 입술로,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거룩한 교회를 비방하고 정죄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같은 부모 아래서 태어난 형제 자매도 가정에서 성장하면서 다투기도 하고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그렇다 하여, 부모나 가정 그 자체를 부정하고 욕하고 가정을 떠나면 안 되는 것 아닐까?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영적으로 한 피 받아 한 몸 된 형제요 자매이며, 사랑으로 묶어진 사랑의 공동체요, 우주적인 가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모여든 모든 형제 자매들이 아직은 완전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은 아니며, 모두가 다 성숙한 인격을 소유한 인격자들로만 구성된 모임도 아니다. 또 교회란, 구원의 방주로서는 완벽하다. 그럼에도 그 방주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아직 온전히 거룩(Sanctification)하게 된 것이 아니다.
구원받아야 할 죄인들, 부족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다. 부족한 인격체들이기에,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순간순간 옛 성품이 되살아나는 것을 자기 자신이 안다면, 다른 이도 그러할 것이란 것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 자기 자신은 완전하지 못하면서 다른 이에게는 완전을 바라거나 기대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어불성설이 아니고 무엇이랴?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교회를 떠나는 것은 사람에게 받은 상처라고 하지만, 사실상 근본문제는 우리가 우리 믿음의 기초를 바로 세우지 못한 까닭일 수도 있다. 믿음의 기초가 든든하게 세워진 사람은 어떤 환난이나 시험 풍파가 몰려와도 결코 흔들리거나 넘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 7:24-27절 참조)
1. 불가분(不可分)의 관계, ‘페트라’와 ‘페트로스’
지구의 대기권이 주위의 허공 속에 있고, 지구는 땅덩어리라는 실체를 가지고 있듯, ‘페트라’와 ‘페트로스’는 불가분의 관계요, 생명의 관계이다. 무교회주의자들은 개인 교회는 인정하나 보이는 성전과 단체가 모여 이루어지는 교회는 필요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개인 교회는 ‘페트로스’일뿐, ‘페트라’가 될 수 없다. ‘페트라’는 그리스 어로 반석이란 뜻이며, ‘페트로스’는 작은 조약돌을 의미 한다. 물론, 작은 조약돌이라 하여도 그 성분은 반석과 동일하다고 하겠다.
그렇다할지라도 작은 조약돌 혼자서 건물을 지을 수는 없다. 건물의 기초를 놓을 수 있는 반석이 필요하다. ‘페트라(반석)’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택하여 불러내셨고(요 15:16), 구원하신 것은 개인적으로는 성령의 거하시는 전, ‘페트로스’가 되게 하심이고, ‘페트라(반석)’이신 그리스도 위에, 작은 ‘페트로스(조약돌)’인, 개인 교회가, 한 장 한 장 벽돌을 쌓아 올리듯 쌓아 올려져야 하고 그 개인 교회가 모일 때, 비로소 ‘불가시적인 교회’요, ‘우주적인 교회’로 완성되는 것이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게바(kephas)’가 될 것을 예언 하셨는데, ‘게바’는 아람 어로 ‘페트라’와 ‘페트로스’의 두 가지 뜻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조약돌과 반석의 성분을 의미 하는 것이겠지만, 베드로 그 자신이 ‘페트라(반석)’이 될 수 없다는 데는 신학자들도 의견의 일치를 보이는 것은, “게바는 번역하면(페트로스)”라고 사도 요한이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요 1:42절 참조)
마태복음에서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에서 ‘페트라’란 낱말이 언급되고 있는데, 주님의 교회를 이 ‘페트라’위에다 세운다고 말씀하신 것은 베드로(페트로스)의 인격을 말씀하심이 아니고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시면, 베드로의 마음속에 성령님을 모실 것이고 그 성령님이 곧 ‘페트라(반석)’이심을 예언해 주셨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페트로스’ 속에 계신 ‘페트라(성령 하나님, 곧 그리스도의 영)’ 위에 세워진 주님의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마 16: 13-19절 참조) 신학자들은, ‘페트로스’는 작은 조약돌이니, 그 위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울 수가 없기에, ‘베드로(페트로스)의 신앙고백 위에다 교회를 세우겠다는 뜻이다’ 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필자도 오랫동안 이 부분에서 혼동이 왔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 아침 성령님께서 내게 깨우쳐 주시는 것은 ‘페트로스’는 작은 조약 돌이나, 그 작은 조약 돌의 마음속에 성령 하나님을 모셨으니, 그 ‘페트로스’ 속에 계신 ‘페트라(반석)’이신 성령 하나님이 계시고 그 반석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우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따라서 ‘페트로스’와 ‘페트라’는 생명적으로 하나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된 성도, 그 마음 속에 계신 반석 위에 세운 교회는 개인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고전 3:16절 참조) 그렇다, ‘페트로스’는 성령이 내주해 계시는 개인 교회, 영적으로 성도를 일컫는 말씀이다!!
성도는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하지 않았는가? (롬 10:9-10절 참조) 구원받은 성도만이 그 입으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이니이다 (마 16:16절 하).” 고백할 수 있는 것이며,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그 사람의 마음 속에 성령님이 내주해 계시니, 그 개인, ’페트로스’ 역시, 하나님의 교회로서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것이기에 ‘페트라’ 없는 ‘페트로스’ 없고,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자는 성도가 아닌 것이다. 고로, 그리스도와 성도는 뗄래야 뗄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요, 생명의 관계인 것이다!
2. 믿음의 기초를 '페트라' 위에 세우는 신앙
필자는 지난 성지순례 기간에,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페트라’를 볼 기회가 주어졌었다. 이 ‘페트라(πέτρα)’는 요르단의 수도 암만(Amman)으로부터 서남쪽으로 262km 떨어진 곳으로, 거대한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해발 950m의 산악지대에, 최고 높이 300m의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입구는 붉은색 사암 바위들이 좁은 폭으로 형성되어 있다. 여러 바위 유적지 중의 하나인 ‘앗데이르’는 그것은, ‘시크(siq)’라 불리는 협곡, 약 2km의 좁은 통로를 길게 통과해서 들어간 자들만 볼 수 있도록 비밀스럽게 간직해 온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 웅장한 아름다움이란 글자 그대로 숨 막히는(breathtaking) 광경이었다. 그 옛날에 바위를 깎아 이토록 정교한 신전과 건물들을 지을 수 있었다니 얼마나 대단한가?
이 거대한 ‘페트라’를 깎아 건축한 그때 그 사람들은 이미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그러나 그 건축물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이다. 아마도 이 세상이 끝나는 그날까지 그렇게 그 자리에 서 있을 것 같다. 무엇 때문인가? ‘페트라’는 반석이기 때문이다. 반석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고 썩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반석이라고 부르지 않았는가? 사실,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내 신앙을 세운 사람은 비가 오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흔들림 없이 굳건히 그 자리에 서 있다(마 7: 24-25 참조).
3. ‘페트라’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를 마셔야 산다
‘페트라’에서 나오는 물은 사람을 살리는 물이었다. ‘페트라’는 광할한 사막지대에 동서방향으로 모세 계곡(Wadi Mūsa)를 관통하고 있고, 이 모세 계곡은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Moses)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애굽(Egypt)을 탈출하던 시기인 기원전 1400여년 경, 모세가 광야에서 바위를 칠 때 물이 솟아났다는 곳, 모세 우물이 아직도 그곳에 남아있어,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그곳 바위 샘에서는 깨끗한 물이 흘러나오고 있다. 주위는 온통 사막이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 ‘페트라’에서 솟아난 물을 마시지 못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성경은 이 생수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에게서 흘러나오는 말씀이라고 하신다. 옛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그 ‘페트라’에서 솟아나는 물을 마시지 못했다면 살아날 수 없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우리의 영혼을 살릴 수 있는 생명의 물은 오직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생수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전 10:4절 말씀).”
교회란, 개인 교회이건, 단체가 모이는 교회이건, 작은 교회이든지, 큰 교회이든지, 우주적인 교회, 불가시적인 교회든지, 모든 교회가 다 ‘페트라’,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져야 하고, ‘페트라’이신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고백 위에 세워진 교회라면, 음부의 권세가 감히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확실히 알지 못할 때, 작은 비바람에도 흔들리고 넘어지게 되고, 이단들의 감언이설에도 쉽게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교회가 선교도 중요하고, 전도도 중요하다, 그러나 앞으로는, 어떻게 하면 성도들이 영원한 구원을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전도 받아 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이 구원의 완성을 이룰 때까지 교회를 떠나거나 이단 사설에 미혹되지 않고 그 믿음을 잘 지켜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며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페트로스’, 조약돌 교회는 ‘페트라’, 반석이신 예수님 위에서 함께 지어져 나갈 때, 온전한 하나님의 교회, 우주적인 교회로 완성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고, 가르쳐야만 한다. 이것이 우리 모두 함께 연구하며 함께 풀어나가야 할 말세적 과제라고 나는 믿는다.
“너 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20-22).”
아멘넷 별똥별/최송연 칼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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