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신교인인 여러분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직접적으로 복음을 증거하려는 그 자세와 열정을 높이 치하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여러분들은 때로는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일 자체 보다 예수님을 어떻게 증거하느냐에 더 치중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설교하며,
어떻게 전도하며,
어떻게 심방하고 상담하며,
어떻게 예배를 효과적으로 인도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고 있느냐이지요.


우리가 정말 주님을 닮아 간다면
그 삶을 보고 사람들이 모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 헨리 나우웬 )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예수를 알건 모르건 간에 그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믿는다." 헨리 나우웬이 주장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거든요. 그 뜻은, 불교인도 마호메드 교도 무당 종교도...모든 세상의 사람들, "예수를 알건 모르건" 다 문으로 들어간다. 즉 "구태여 예수를 구세주로 믿을 필요가 없다."라고 하는 사상이죠. 아주 괴악한 소립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 원하시지만,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만 문(예수님)으로 들어간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행 4: 12)

예수를 알건 모르건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것은 결코 아닙니다. 인본주의적 사고를 넘어서 예수님의 피공로를 전적 부인하는 행위입니다. 진리님 뿐 아니라 모든 독자님들은 오래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wcc나 뉴에이지 사상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말세의 성도들을 교란시키는 사상임을 깨닫고 돌이켜야 삽니다.

아래는 '글쎄요'님이 올려주신 헨리 나우웬의 주장의 일부입니다. 얼마나 비성서적인지 읽는 분들은 깨닫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날 나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집의 문을 열기 위해 왔을지라도,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예수를 알건 모르건 간에 그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믿는다. 모든 사람들이 신을 향한 그들 스스로의 길을 주장하도록 돕는 것이 오늘 나의 부르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헨리 나우웬
Today I personally believe that while Jesus came to open the door to God’s house, all human beings can walk through that door, whether they know about Jesus or not. Today I see it as my call to help every person claim his or her own way to God. (Sabbatical Journey, 1998, p. 51)" -복된소리

토머스 머튼에 버금갈 정도로 기독교 진영에서 인기와 존경을 얻은 인물이 있다면 가톨릭 신학자인 고 헨리 나우웬이다. 많은 목회자와 교수가 나우웬의 깊은 사색에 크게 매료됐다. 시적이고, 위안이 듬뿍 담긴, 그러면서도 지성적인 문체로 기독교 지식인들에게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전기 작가 한 사람은 미국 장로교회 지도자 3,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1994년의 여론조사를 인용해, 영향력 면에서 빌리 그레이엄에 이어 나우웬이 2위를 차지했음을 말하고 있다.

나우웬은 그를 영감을 주는 인물로 꼽는 많은 평신도들에게도 인기가 있다. 따뜻한 위로로 감싸 안아 편안하게 느끼게 하는 모성애를 떠올리게 한다. 많은 사람이 사랑하고 자주 인용하는 나우웬이 노년에 하나님을 보편 구원론자의 입장에서 주저함 없이 진술했다는 사실은 유감천만이다.
[나는 이제 예수가 하나님의 집 문을 열기 위해 세상에 오셨지만, 모든 인간 존재는 자신이 예수를 알든 모르든 그 문을 통과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제 내 사명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길을 주장하도록 하는 것이다.]

나우웬은 만트라 묵상을 지도하는 힌두교 영적 선생인 에크나스 에아스와란의 책을 추천하면서 “이 책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썼다. 나우웬은 기독교를 힌두교 영성과 관련짓는 한 책에 서문을 달면서 이렇게 썼다.
[저자는 불교, 힌두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선물에 활짝 열려 있다. 그는 기독교적인 영적 생활에도 유익한 종교들의 위대한 지혜를 깨내고 있다--- 저자는 자신 스스로 영적인 전통을 배우기 위해 인도를 여행했다. 그는 많은 보화를 가져왔고 그것들을 이 책에서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마음의 길’이라는 저서에서 나우웬은 권한다.
[단어 하나를 조용히 반복하라. 생각이 마음의 바닥으로 내려갈 수 있다--이 단순한 기도의 방법이 -- 우리를 하나님의 역동적인 임재로 열어 간다.]

이 하나님의 “역동적 임재”는 정통적인 복음주의 기독교가 아니라 고전적인 힌두교에 좀 더 가깝게 서도록 가르쳤다.
[기도는 “영혼의 노동”이다. 우리의 영혼은 모든 것이 하나인 곳의 중심이다.-- 실재하는 모든 것의 통합을 완전하게 실현할 수 있는 곳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 안이다.]

나우웬은 “만유가 하나다”라고 했다. 이것은 내재신론의 기본적인 신 인식이다. 온 세상 안에 있는 신이 만물을 통합한다는 인식이다. 나우웬은 머튼과 마찬가지로 신비 기도가 모든 기독교 전통 안에 자리 잡는 패러다임이 되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나우웬은 복음주의 교회가 칭찬할 만한 많은 점이 있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 약점을 위한 방법이 바로 신비주의다. 나우웬은 다음과 같이 힘주어 주장함으로써 이 약점을 치료하려고 애썼다. “우리 모두는 바로 이 침묵(관상 기도)으로 부름을 받은 것이다.”

나우웬은 자신의 자서전적인 ‘안식의 여정’에서 1996년 저술가며 강연가인 앤드루 하비와 만난 일을 기쁨에 겨워 말하고 있다. “나는 영혼의 친구(멘토)를 만났다는 느낌을 가슴 깊이 느꼈다.” 이 짧은 구절을 통해 나우웬의 신앙 체계를 깊이 엿볼 수 있는 것은 하비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신비주의 기반의 혼합 영성 옹호자라는 사실에 있다. 하비는 말한다.
[우리는 모두 본질적으로 신성의 자녀들이기에 여기 이 땅 위에서 그리고 하나의 몸 안에서 우리의 원천과 더불어 정체를 구현할 수 있다.]

나우웬의 말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이클, 토머스 그리고 나는 근처 카페에서 차 한 잔을 나눴다. 우리는 엔드루의 신비주의가 어떤 감동을 우리에게 줬는지 제법 길게 토론했다.]

http://blog.daum.net/kds2012/253

-글쎄요 님,

"얼핏 들어보면 더없이 아름다운 말이지요. 그러나 그 흐르는 핵심 사상을 눈여겨 보실 줄 알아야 합니다. 헨리 나우웬이 지금 무엇을 말하고자 합니까?

그는:
"나는 개신교인인 여러분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직접적으로 복음을 증거하려는 그 자세와 열정을 높이 치하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여러분들은 때로는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일 자체 보다 예수님을 어떻게 증거하느냐에 더 치중하는 것 같습니다. "

헨리 나우웬의 이 말의 숨은 뜻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전도한다고 열심내지 말고 주님만큼 온전한 삶을 살아내는 것을 먼저 하라." 하는 뜻이지요? 주께서 명하신 "지상 명령"인 "전도를 무모하다."가르치는 결과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온전히 주님을 닮은 사람이 되거든 그때 가서 전도하라"하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전도는 우리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삶이 조금 부족할지라도 그 입술로 전해야 합니다. 나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증거하는 삶이기에 그렇다는 것이지요. 전하는 발걸음이 복되고 그 입술이 복됩니다!

솔직히, 우리가 예수님을 온전히 닮은 후에 전도하려고 하면, 이 세상에서 전도할 자격이 있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전도 한 번 해보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을 닮아가도록 우리의 최선으로 경주한다고 하여도, 우리는 결코, 온전하신 그분의 모습을 닮을 수 없기에, 수도사가 되거나 세상을 버리라고 말하는 것이 됩니다.

전도란:"내 모습 이대로 받아주시고 용서해 주신 사랑의 주님을 와서 만나보라. 그리고 너도 그 주님의 사랑 속에서 죄에서 자유함을 받으라" 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목숨이 끝나는 그날까지 그 사랑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의 본분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여 주님의 근본 뜻을 변형시키려고 하는 의도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 또한 문제이지요. 우리 아멘넷 독자님들은 모두 바른 안목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 -복된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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