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나라를 위한 충정이 담긴 값진 우리 민족의 영원한 유산입니다.
난중일기에 기록된 글들을 통해 우리는 이순신 장군의 조국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난중일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비단 그의 애국심만이 아닙니다.
난중일기를 통해 우리는 그의 신실한 삶을 감동 깊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의 묵직한 삶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은 그의 희생이 우리 민족을 도탄에서 구해냈을 뿐 아니라,
어떤 위기에서도 굴하지 않는 그의 성숙한 삶의 태도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현존하는 유일한 거북선 사진)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의 일관된 충성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는 많은 모함과 음해를 당했습니다.
아마도 국가가 풍전등화의 절대 위기에 처하지 않았다면 그에게는 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여러번의 억울한 모함에도 불구하고 그 억울함에 대한 변명이나 호소가 없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의도적으로 입을 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유리한 선택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기에서조차 그것을 밝히지 않는 것은 참으로 초인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을 통해 침묵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총탄과 화살이 날아다니는 전장의 지휘대에서 곧장 감옥으로 끌려간 그의 심정을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얼마나 화가 났을까요?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얼마나 할 말이 많았을까요?
그러나 일기에서조차 자신을 모함하는 간신모리배들에 대한 비난이나 원통함의 표현들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는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을 그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침묵하였습니다.
도대체 그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충무공이 그렇게 위대한 애국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오늘 나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일이 무엇인가'를 철저히 인식한 데에 있었다는 확신이 듭니다.
그는 무엇이 우선이고 무엇이 나중인가를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둘러싼 더러운 인간행태들을 비난하는 데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은 일을 접어두고 자신에게 맡겨진 큰 일에 집중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안위와 영달에는 낭비할 시간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침묵은 단순한 인내와 무력함이 아니라 넘치는 열정이며 빼어난 집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함과 음해로 억울함을 당했을 때 그것과 맞붙어 맹렬한 이전투구의 싸움을 벌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오늘 진정으로 나에게 필요한 일을 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것입니다.
모함과 음해는 그것 자체와 싸울만한 가치가 전혀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흔들림 없이 당당하게 해나갈 때 저절로 소멸되고 마는 그런 덧없는 일입니다.
더욱이 모함과 음해가 성공하는가 실패하는가는 모함하는 자들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내 인격, 내 성품에 달려 있습니다.
나의 삶, 나의 인격이 진리로 드러날 때 그 모든 모함과 음해는 햇빛을 받은 안개와 같이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비록 오래 참음이 요구되지만 거기서 침묵은 엄청난 에너지를 간직한 무공해 연료인 셈입니다.
자기 안에 깊숙이 자리한 침묵은 그 어떤 함성보다 힘찹니다. 고독은 침묵을 낳고, 침묵은 집중을 낳고, 집중은 사랑할 수 있는 힘을 낳으며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힘이 생겨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거기에서야 비로소 자신이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한 힘이 생겨납니다.
그 힘은 천 배 만 배의 증폭된 힘이며 동시에 인간을 참 인간 되게 하는 변화의 동력이기도 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6:33)
충무공의 침묵을 통해 이 말씀의 의미를 새롭게 그리고 마음 깊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 말씀을 따라 살 때 우리는 깊은 침묵의 세계로 초대 받는 것입니다.
그것은 충무공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자신의 안위와 영달에 낭비할 시간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진정으로 중요한 한 가지에 우리의 열정과 관심을 집중하여 쏟아붓는 것입니다.
그동안 너무 말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열정을 가지고 열심을 내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말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 느끼는 내 마음속 깊은 조급함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침묵의 의미를 간과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침묵의 의미와 거기에 담긴 엄청난 에너지를 다 보지 못했습니다.
우연히 펼쳐든 책에서 충무공의 이야기를 접하다가 전혀 예기치 않았던 침묵에 다다랐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과연 침묵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입니다.
너무도 가볍고 촐랑거리는 예전의 제 마음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힘을 모아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데 나름 최선을 다한다면,
가끔은 침묵할 수도 있을 거라는 작은 기대를 가져봅니다.
어쨌든 착각에서 깨어나 입을 다물고 혼신을 다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하나님 백성의 삶을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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