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성자라 불리우며 사상가이자 민족 운동 지도자였고, 위대한 정치인이었던 ‘마하트마 간디(Mohandas Karamchand Gandhi’ (1869년 10월 2일 ~ 1948년 1월 30일), 그는 인종 차별 압박에 대한 투쟁, 자기실현을 위한 인격 수양, 무저항, 이 세 가지를 가르치며 진리 구현을 평생 실천했던 사람입니다. 인도의 문호 ‘타고르’는 그런 그를 가리켜서 ‘마하트마’라 불렀습니다. ‘마하트마’란 이름이 아니라,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으로서 간디의 호칭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보통 우리가 아는 간디입니다.

이런 그가 매일의 일상에서 예수님의 산상 보훈을 읽고 묵상했었다는 놀라운 사실이 회자 되고 있습니다. 간디가 그렇게 위대한 영혼의 소유자란 칭호를 들을 만큼 성숙한 인격을 소유하게 된 동기가 바로 예수님의 말씀인 산상 보훈을 매일 같이 읽고 그의 삶에 적용시켰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한 기자가 찾아가 “그러면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대답은 “No!”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로는 “자신이 만난 크리스쳔들의 행위가 그 말씀과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위선적인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먼저 믿는 우리들이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만약 진정한 크리스쳔으로 개종 되었더라면, 지금의 인도는 그 판도가 달라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왜 일어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영어에서 말하는 “knowing”그리고 (“knowledge”( intellectual knowledge)) 의 차이를 잠시 생각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부분은 학적으로 증명된 것이기보다, 필자의 개인적 소견임을 밝혀 둡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knowing”은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말하며 knowledge는 지식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요17: 3절 말씀)”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knowing Jesus Christ’입니다. 그러니까,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뜻은 하나로 합해진다 그런 뜻도 됩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가 영생을 얻는 것,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여기에서 믿는다는 것이 막연한 어떤 추상적 개념이나, 지식적(the knowledge of God)으로,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아는 것,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것, 이런 생명적 유기 관계를 의미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 속에서 만나고 체험으로 아는 상태, 이 상태가 바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상태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다 똑같이 사도 바울처럼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닙니다. 또 모세처럼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서 그분의 현현을 체험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이십니다(요1: 1). 이 말씀인 성경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개인의 구세주가 되심을 확실히 알고(knowing God), 가슴으로부터 확실히 믿어(faith)져야 합니다.

지식(knowledge)은 벽(wall)과 같습니다. 벽이란 적당히 높으면 자기 방어에도 도움되고, 바깥세상도 내다볼 수 있어 좋지만, 그 벽이 너무 높으면 역으로 자신이 그 벽 속에 갇혀 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바깥세상을 내다 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특히 종교적 지식의 벽이 높으면 높을수록 그 벽 속에 갇혀 버리게 되고, 그런 사람은 더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려고 하지 않게 되는 우를 범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그랬습니다. 이들은 성경도 하나님도 몰라서 실패를 한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성경 지식(knowledge)은 가졌으나 그 말씀(율법)도, 그 하나님도 가슴으로 알지(knowing)도, 믿지도 않았기에 문제가 되었습니다(막7:6절 참조). 사도 바울 역시 그랬습니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체험적으로 알기 전에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미 지식적으로는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성경 말씀에 대해서 너무도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직접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종교 지도자였지만,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 죽이는 자리에 기꺼이 합류했던 것입니다. 체험 없이 지식으로만 아는 종교인은 최악의 경우 살인까지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무서운 대목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식의 벽 속에 갇힌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의 실상입니다. 지식 속에 갇힌 믿음이란 죽은 믿음입니다. 이런 사람이 열심을 내면 낼수록 주위는 더 황량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에 성도라고 불리우는 사람들도 많고 영적 지도자라 자처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상당수의 많은 사람들이 참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상태, 가슴 속에 참 빛을 품지 않은 상태에서 빛의 아들의 삶을 살아내려 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 상태에서 행하는 종교적 열심은 자칫 위선으로 포장하기 때문에 그만큼 문제가 더 커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외적 그리스도인, 외적인 열심 주님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우리는 성도라 자처하기 전에, 영적 지도자라 자처하기 이전에,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아는(knowing God) 일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Arthur Burns라는 경제학자는 19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워싱턴 DC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었고,1970년대에는Fed Chairman으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유태인이었던 그에게 어느 정치인들의 모임에서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의 기도는 그 자리에 앉은 참석자들을 엄청 놀라게 했습니다.

그의 기도를 여기에 옮겨 봅니다.

Lord, I pray that Jews would come to know Jesus Christ.
주님, 유태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And I pray that Buddhists would come to know Jesus Christ.
주님, 불교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And I pray that Muslims would come to know Jesus Christ.
주님, 무슬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And Lord, I pray that Christians would come to know Jesus Christ.
그리고 주님, 기독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번역: David Choi’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절 말씀).”



다음은 오래전 본글에서 아곡(교제)님이 남긴 댓글입니다. 본글을 보충하는 자료로서 훌륭하기에 여기에 부록으로 첨부합니다. 참된 지식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 아멘입니다!

“사모님^^지식(knowledge)과 앎(knowing)에 대해서 진지하게 사색할 시간을 갖게 하는 좋은 글입니다. 덕분에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었고 칼럼의 내용과 조금은 다른  방향이기는 하지만 서로 관련이 있고 함께 살펴보면 유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부족한 제 생각들을 언급하고자 합니다.

<내 백성이 지식(knowledge)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 4:6 >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knowledge)에서 자라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찌어다. 벧후 3:18> 참으로 안다는 것(knowing)은  성령을 통해 깨닫는 말씀에 대한 지식(knowledge)을 진리로 알고 마음으로 믿고 순종하며  신앙생활 체험을 통해 축적된 말씀에 대한 영적 지혜가 함께 조화를 이룬 상태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지식, knowledge) 정(믿음, faith) 의(행함, deed)로 알아야 참으로 아는 것이 되는 것이겠지요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미처 경험하지 못한 과거와 미래의 일들도 성경말씀을 통해 깨달아 알게 하시고 은혜로 믿게 하시고 믿음에서 난  그 지식과 함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살게 인도하십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문제는 무엇에 대한 지식과 앎이냐는 것일겝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학문으로 공부하기도 하고 읽기도 하며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서 기본 지식이 있다고도 합니다. 우리가 부처나 알라를 믿지 않아도 대충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지식정도는 갖고 있듯 오늘날의 불신자이나 안티기독교인들도 그러하지요.

그러나  예수님을 성육신하신 삼위일체 성자하나님으로서 또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부활하신 구주로 영접하여 믿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지식도 없고 안다고 할 수도 없는 자들입니다. 율법을 듣고서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망한 이스라엘 백성처럼 복음을 전해 듣고서도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망하는 자들의 헛된 지식이지요.

거듭난 신자들은 비록 사람에 따라 신학자들처럼 삼위일체에 대해서 장황하게 신학적 전개를 펼치지는 못한다 해도 성령이 주시는 지식의 말씀으로 인해  성부,성자,성령이 한 하나님으로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예수님이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며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시고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배움이 짧은 시골 교회 어른들도 또 어린 아이들도  이해가 되느니 안되느니 따지지 않고 순전하게 그렇게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그리 증거하고 있으니까요.  어떤 체험을 통해 삼위일체를 알게 된다기 보다 성령이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에 대해서 그리 가르쳐 주시고 그것을 진리로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 지식의 말씀과 지혜와 믿음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성령을 통해 주어지는 은사이지요. (고전 12장)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셨고 요한복음은 시작부터 예수님의 하나님되심을 증거하는 복음서이고 예수님께서도 친히 자신이 누구이신가를 점진적으로 증거하셨습니다. 간디가 성령을 통해 참으로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가졌다면 예수님을 동양의 공자 맹자같은  성인수준에 놓고서 그 교훈에만 집착하는 대신 또, 무늬만 신자인 자들의 비그리스도인다운 행위에 걸려하는 대신,자기 영혼을 위해서 예수님을 창조주로,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여 믿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열망했을 것입니다.

간디는 예수님께서 한 인간으로서 행하신 의로운 일과 가르침에 대한 지식만 있었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인격적,민족적 고민만 했지 자신의 인간적 본질이 무엇이고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영적 관심과  고민과 지식은 없었다 보여집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지식이전에 경험으로 먼저 알았습니다. 그 능한 손으로 자신들을 애굽의 압박과 종의 신분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목도하고 인도하심을 체험하고도 곧 패역의 길을 걸었지요

자기들을 인도한 신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은 알면서도 그 하나님께서 우상을 만들지 말고 섬기지 말라고 엄히 금하신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에 대한 지식은 버린채 하나님의 법도대신 자기들이 편할대로 생각하고 자기 좋을 방식대로 섬기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고 하나님을 참으로 알지 못하기에 시내산 언약을 맺은 후 얼마되지 않아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려 한 것을 보면 지식없이 망한다는 말이 이해가 됩니다.  

율법주의자들 ,유대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그 아들 ,예수님을 직접 만나보고 그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 능력을 직간접으로 체험하고도 메시야로 영접하지 못하고 망한 이유는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이 없어서,바른 메시야 관을 가지지 못해서, 하나님의 참 뜻에 순종하지 못하게 된 것에 그 원인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였다면 미처 깨닫지 못했던 성경도 깨달아 알수 있었을 것이고 바른 지식을 통해 하나님을 참으로 알고  하나님 뜻에 순종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었을 것입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요 6:40>

그들에게  하나님과 율법과 메시야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보이나 성경은 말하길 <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롬 10:2-3>    

카톨릭도 기독교 이단도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한 지식이 있다고 자부하고 나름대로 예수님의 가르침 따라 신앙생활 (예배 ,전도,봉사,선행,..)을 한다고 하는데 ...그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아는 참 지식,바른 지식이 없어서,그 성경적 지식을 거부하는 완악한 마음으로 인해 옳다 인정함을 받지 못하고 망하게 될 것이라 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부활에 대한 지식은 없었던 사두개인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이시대에도예수님을 알고 믿는다 하면서도 예수님에 대한 성경적 지식이 없는 모든 자들에게 그대로 적용이 된다고 봅니다.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마 22:29>

거듭난 성도안에 역사하는 성령은 말씀을 통해 그런 진리를 지적으로  깨닫게 해 주시고 마음으로 믿게 하시고 그 믿음에 근거하여 신앙생활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생각합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4:26>

바르지 못한 지식에  믿음이 갇히는 것 같고  성령이 주시는 참 지식은 믿음을 가두는 지식이 아니라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고 영생하게 하는 지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또 우리가 가져야 할 지식(knowledge)과 앎(knowing)이 무엇에 대한 것이어야 하는지를 강조하고자 해서 견해를 적어 보았습니다.” -아곡(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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