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 동안, 밤이면 밤마다 쏟아져 내리던 폭우가 공기 속의 더러운 먼지를 모두 씻어낸 때문일까? 유리알같이 맑고 투명한 하늘이 눈부신 아침이다. 복잡하고 심란한 마음도 털어낼 겸, 신선한 산소도 들이킬 겸, 가까운 산, 작은 바위를 찾아 잠시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새각시의 치맛자락처름 보드라운 솜털 구름이 두둥실 고운 그림을 그리며 흘러가는 파아란 저 하늘은 평화로워서 좋고, 자연의 소리는 언제나 맑고 깨끗하고 그 무엇보다 거짓이 없어 좋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 렘 17: 9) 탄식하신 주님의 말씀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렇다. 인간의 마음이란 참 신묘막측한 것이다. 누가 그 마음을 헤아려 알 수 있으리. 그리스 철학자요, 플라톤의 위대한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사고(思考)의 활동 속에는 항상 심상(心象)이 따른다.” 라고 말했던 것 같다.
 
심상(心象)이란 감각에 의하여 획득한 현상이 마음속에서 재생된 것, 이전에 경험한 것이 마음속에서 시각적으로 나타나는 상(象)을 의미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백두산을 머리에 그리는 경우, 지각만큼 생생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형태라든가 산꼭대기에 쌓인 눈 따위가 떠오른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백두산의 심상(心象)이라고 국어사전에서 정의하고 있다.

느닷없이 별님이 어인 심리학 강의냐고 놀리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으나, 필자는 오늘 전공 분야도 아닌 심리학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과 내 마음의 소리(내면의 소리), 그리고 사단의 소리, 그 경계선이 어디인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려 하는데, 그전에,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잠시 설명해 본 것뿐이다.

사실, 성경은, 인간이 물리적(물질적(物質的)) 세계를 벗어나, 영적인 세계를 너무 탐하거나 영계의 영물들과 교류하는 것을 엄히 금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논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기에 금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을 빌미로,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 순진하고 어리석은 영혼들을 미혹하는 것이다. 과거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다. 이런 때인 만큼, 성도가 영적 세계를 너무 깊이 알려고 시도하는 것은 위험한 것이 되겠으나, 우리 신앙생활의 잣대(Cannon)가 되는 성경 말씀을 벗어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우리가 배워두어야 할 필요성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소리 없는 소리, 영음(靈音)으로 들을 수 있는 소리는 어떤 것이 있을까? 그것은

1. 마음의 소리
2. 사단의 음성
3. 천사의 말
4. 하나님의 음성, 이렇게 분류해 볼 수 있겠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게 없는 특별한 인지(knowledge)능력과 양심(conscience) 이란 것이 있다. 타락하기 전, 인간의 마음은 본래 선한 양심( good conscience)이 있어서 주께서 심어두신 그 양심을 따라, 재판석을 차리기도 하고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답할 수 있어, 선(善)과 악(惡)을 분별할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받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책망과 질책, 변명 그리고 위로의 음성이 들려오기도 하고, 또 때로는 자신을 신원하여 주고 달래어 주며 어루만져 주기도 하는 것이다. (판사도 검사도 변호사도 모두 내 마음속에 있다고 해야 하나? ㅋㅋㅋ) 이런 현상을 “서로 송사하며 변명하기도 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롬 2: 15절 참조)

본래 인간은 이 선한 양심( good conscience)이 하나님을 찾아가게 되는 것인데, 마음속 양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주파수를 받아들이기도 하고, 깨끗한 양심으로 창조주 하나님과 대화하며 교제를 나눌 수 있도록,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창조된 만물의 영장이기 때문이다.(창 1: 27절 참조) 문제는 그 양심이 병들고 화인 맞아 더는 그 양심이란 것마저 믿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딤전 4 : 2)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물(말씀)과 피로 거듭난 성도는, 그동안 병들어 제 기능을 상실했던 양심이 먼저 살아나게 된다. 이렇게 선한 양심으로 살아난 성도(벧전 3 : 21절 참조)를 가리켜 거듭난 성도(Born Again Christian)라고 말씀하는 것이다. 다시 태어난 성도가 하나님의 양이라면,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은 하등 이상한 일도, 기이한 일도 아니다. 성경은 우리(성도)는 오늘날도 분명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요 10장 27절)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요 10장26절)에서는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한다.” 라고 경고해 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거듭난 성도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이 비정상이 아니라, 들을 수 없는 것이 비정상이다. 문제는 바른 분별력이다. 주님의 영(Holy Spirit, Hoy Ghost)으로 주시는 신령한 은사들을 사모하는 성도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음성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단의 음성일 것이다. 인간의 마음 밭을 잘 알고 있는 사단은 하나님의 음성을 흉내 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마 4: 3-10 참조)도 하고 예언적 형태를 갖추기도 하여 인간의 마음속에 거짓 심상(心象)도 불러일으키고, 거짓 음성을 말씀의 씨앗인양 뿌려대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원수가 ‘가라지’ 를 뿌리고 갔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 마 13: 25-26 참조)

항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영(Hoy Spirit, Holy Ghost)을 소유한 거듭난 상태가 아니란 것이다. 병든 양심, 하나님의 원수 된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 아직도 옛사람 그대로인 상태에서, 마음속에 어떤 음성이 들려온다고 하여 그 음성이 모두 다 하나님의 음성은 아니란 것이다.(하나님의 자녀는 그 열매로 그들을 알 수 있다.) 사람이 물(말씀)과 피와 성령으로 완전히 거듭난 새사람,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 마음속에서나 귀에 어떤 소리가 들린다면, 그것은 십중팔구 사단의 음성임을 주지(周知)해야 한다.
 
영험하다는 무속인들이 자신의 마음에서 들리는 마음의 소리, 혹은 사단의 졸개들의 음성을 실제로 듣는다는 것은 괄목할 만한 것이다. 또 거듭난 성도들에게도 흉내쟁이 사단이 하나님의 음성인 양 가장하여 들려지게도 한다. (마 4: 3-11, 고후 2: 11 참조) 이런 영적 원리를 항상 기억하고 내 마음속에서 들리는 모든 음성을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받지 말고, 반드시 우리 신앙생활의 잣대(Cannon)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검증도 하고 분별도 해야 한다! ( 마 4: 3-11, 고후 2: 11 절 참조)

아이홉 지도자인 ‘마이크 비클’ 씨의 고백에 의하면, 그들이 쏟아내는 예언이 80%가 틀리고 20%도 정확성이 있더라고 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그런 자들의 예언은 무엇이라고 지적하는가? 성경은 그런 자들의 예언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니 두려워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다. 즉 사단이 시험하는 미혹의 음성이란 것이다. 정말 하나님께서 주신 예언, 하나님의 음성이라면 100% 모두 정확해야 한다!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말지니라” (신명기18:21)

그렇다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들은 음성의 예언에 100% 정확성이 나타나지 않는데, 왜, 무엇 때문에 자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자신이 실수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고 더욱이 사단의 음성을 들었다고 인정하기 싫어하는 자존심 때문이다! 사단에게 속고 있는 것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자만이고 그러면 그럴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어 가는 것이다!
 
얼마전, 이단에 미혹된 한 청년이, 부모님의 권유로 상담 교육을 받고 치유, 이단에서 빠져나온 뒤 “사실은 상담 하루 만에 깨져버렸는데 내 자존심 때문에 시인하질 못했다.”라며, 진솔하게 고백한 것을 우리 아멘넷 기사에서 읽어 본적 있다.

지난 날, 우리 아멘넷의 한 논객 님께서 ‘요나’ 선지자와 ‘니느웨’ 성을 그 예로 들면서, 하나님께로부터온 예언일지라도 틀린 적도 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천만의 말씀이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요나’ 선지자의 예언은 틀린(wrong)것이 아니라, 변경(change)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예언이 변경(change)된 사실을 당사자인 ‘요나’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찾아오셔서 그 변경(change)된 사실을 전하여 주셨다. 무슨 뜻인가?  하나님께서 그 주신 예언의 말씀을 변경(change)하고 그 계획하신 바, 뜻을 바꾸실 때는 반드시 그 종에게 말씀해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언이 빗나가고 틀린 것은 당사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실이란 것이고,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성령 하나님은 같은 분이시기에, 같은 방법을 일관성 있게 사용하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는 성도가, 이 외에도 한 가지 더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직통 계시적 형태를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성도)가 모두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어야 하며 그 음성을 들려주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의 역할이시요, 사용되어지는 말씀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 안에 그 내용이 있어야만 한다. (행27:22-25)

계시 속에는 크게 나누어 두가지 형태의 계시가 있다
1. 특별계시, 2. 일반계시로 나누어진다. 간단히 요약해, 특별계시는 a)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시며 b) 기록(문서)계시(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일반 계시도 다음 두 가지 계시로 세분해 볼 수 있는데, a)자연계시, b) 양심계시이다. 성경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시고, 기록(문서)계시의 목적은 인간 구원이다. 자연계시 역시, 그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뜻(계시)을 나타내 보여주시는 것이다.

따라서 현 세대에서 우리(성도)는 성경을 다시 쓸 수 있는 문서(기록) 계시는 받을 수도 없고, 또 받을 필요가 없다. 일반계시도 자연 속에서 찾으면 되기에 우리가 다시 재창조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우리(성도)가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란, 곧 성령님의 조명하에 문서(기록)계시, 양심계시, 혹은 자연계시 속에서 찾아지고 들려질 수가 있으며,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양으로서 목자의 음성을 분별할 수가 있다.

다시 말해서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산 성도(양)는 반드시 목자의 음성, 곧 성령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음성이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서 우리 속에 계시면서 역사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몫이며, 반드시 성경 말씀을 레마(로고스)로 들려져야 하고 그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며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다.

하나님의 음성을 양들에게 들려주시는 것은 목자로서 양들을 바른길, 구원의 길, 예수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 주시기 위함이다. 언제 어느 때 장사가 잘되고 또 아들이나 딸이 원하는 학교에 입학할 수가 있고 없고, 등등…이런 유의 점치는 형식이나 족집게 점장이 식의 음성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4 : 26)

다음은 오래전 필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검증법을 성경을 토대로 경험한 것을 나눈 적이 있는데, 그 부분을 옮겨 적는다. 너무나 중요하기에 복사하여, 성경과 대조하여 잘 배우면 신앙생활에 유익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누가 방언으로 기도할 때나 무시로 기도할 때나 주님께서 말씀을 주실 때가 있다.
그 음성을 판별하지 못해서 많은 주의 종들이 사탄의 덫에 걸려 넘어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젊었을 적부터 하나님께서 온갖 고생 중에서 당신의 음성을 가려내는 훈련을 시키셨고,성령님께서 말씀을 주시면, 아래와 같이 말씀의 잣대로 검증된 대언은, 그 정확성에 있어서 단 한 번도 그 말씀이 빗나가거나 틀려본 적이 없다. 고로, 하나님의 음성은 반드시 다음과 같은 잣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검증 돼야만 한다.

1. 자기가 기도하거나 생각하고 있던 것과는 정 반대의 생각이 머리에 주입된다. 도덕적으로 흠이 없어야 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 : 23절 하반절)".

2. 그 생각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어야 하며 레마(로고스, 기록된 계시 말씀)로 머리에 정확히 떠오르거나 입술에서 터져 나온다. 성령님께서 예수님, 곧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기 때문이다. (요 14 : 26절)

3. 그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뜨겁다(때론 너무나 뜨거워서 부모가 돌아 가셨을 때보다 더 통곡하지만 마음은 오히려 큰 감동으로 행복감을 느낀다.)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눅24:32절 말씀 )”.

4. 다른 이가 예언 은사적 말씀을 받았을 때에도 예언 은사를 받은 사람이면 그 말씀을 들을 때에 같이 마음이 뜨거워진다. (눅 1 : 41-45절)

5.항상 선한 말씀이 아니고 때론 책망함과 바르게 함으로 탄식하신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 3 : 16-17절)”.

양에게 있어서 목자의 음성을 듣는 것이 중요하듯, 성도가 성령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건만 ‘현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대는 끝났다’ 라고 가르치므로서 성령님의 역할마저 제한시키려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신학을 한다고 하는 사람들과 목회자들에게 만연하게 된 것은 ‘신비주의자들’의 1류급 신자의식이나, 직통계시 파들의 이단적 행위가 성도들의 삶을 좀먹는 것을 많이 보아온 까닭이기도 하고 또 자신이 성경을 많이 읽지 않고 들은풍월, 혹은 배운 신학 사조만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돈독히 함으로써 항상 살아 있는 말씀이 내 속에서 역사 하시도록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또 읽어야 하며, 성령 하나님께서 나의 영과 혼과 육체를 온전히 주장하시도록 겸손하게 내 마음의 보좌를 내어 드려야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면, 주시는 말씀이 힘들더라도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결단을 보여야만 한다. 이렇게 될 때 현대에도 양은 목자 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으며 그분의 사랑과 보호하심 속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날까지 안전하게 인도하심을 받게 된다.


"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마 24: 11),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 마  24: 24),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의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만일 선지자가 있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의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방자히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 말지니라." (신명기18:21)

USA 아멘넷: 별똥별/최송연의 칼럼 글

'최송연의 신앙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경이 답이다  (1) 2017.11.26
학습으로 되어지는 방언?  (6) 2017.10.31
믿음(Faith)인가, 자기 신념인가?  (0) 2017.09.14
최상의 선택  (0) 2017.06.17
대안은 없다  (4) 2017.05.3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