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왓슨

● 서평

오늘날 애석하게도 회개 없는 복음이 만연하고 있다. 아니면 거짓 회개를 참된 회개와 혼동하거나, 또는 거짓 회개와 참된 회개를 바르게 분별할 수 없는 우리의 무기력함이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러나 아더 핑크가 오늘날 복음주의의 현실을 미리 내다보며 “자신들이 하늘(천국)을 향해 가는 중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후에 지옥에서 깨어날 때 참으로 비통한 오열을 토하게 될 것이다!”는 선지자적인 음성이 우리의 귀에 쩌렁쩌렁하게 울린다.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핵심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행 20:21)이다. 이 두 가지는 마치 비행기의 양 날개와 같고, 한쪽이 없거나 부러졌다면 그 비행기는 결코 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전해지는 복음에는 회개가 빠져 있다. 혹은 회개에 대해 말한다 해도, 회개를 너무 강조하다보면 불신자들이 쉽게 믿음을 갖는데 방해가 된다거나, 또는 마음에 상처가 된다고 너무 염려한 나머지 그저 슬쩍 언급하고 지나갈 뿐이다. 우선 믿게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만연하고 있는 쉽게 믿는 믿음(easy-believism)이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회개가 없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십자가 복음에 대한 성경지식을 많이 쌓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비록 십자가 복음에 대한 지식을 많이 쌓고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회개없는 그러한 지식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아무리 많은 성경 지식도 결코 한가지 죄라도 극복하는 힘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회개 없는 지식은 사람들의 지옥길을 밝혀주는 횃불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된 회개는 지금 당장 자기 속에 하늘나라를 소유하게 해준다. 회개하기 전에는 어두운 구름과 폭풍밖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으나, 참된 회개는 밝은 광채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게 한다. 그 마음에는 잔잔한 평안과 행복이 넘친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다.

우리는 깨어나야 한다. 회개 없는 복음은 다른 복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과연 우리 자신의 회개가 참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러나 무엇으로 우리 자신의 회개를 점검해볼 것인가?

여기에 청교도인 토마스 왓슨의 회개에 관한 놀라운 책이 있다. 참된 회개와 거짓된 회개에 대한 명쾌한 제시가 있다. 그리고 참된 회개를 권고하는 간절한 호소가 담겨 있다. 그리고 이 회개의 화살을 무턱대고 쏘았지만 표적을 맞추게 해주사, 그래서 얼마간의 죄가 맞아 죽게 해달라는 기도와 함께 이 책은 시작하고 있다.

그의 간절한 기도가 우리의 심령을 울리고, 참된 회개를 통해 우리 한국 교회의 복음주의의 흐름을 바꿀 수만 있다면! 이것이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의 마음에 감동을 주어 우리 모두의 간절한 기도로 승화되길 빌어마지 않는다. 
(이종수)

● 요약본

1. 예비강화

나는 믿음이 먼저냐 회개가 먼저냐 우선순위를 놓고 논쟁하지는 않을 것이다. 의심할 나위 없이 회개는 먼저 그리스도의 생활 속에 나타난다. 그렇지만 나는 믿음의 씨가 마음속에 먼저 역사하는 것이라고 믿는 편이다. 내가 믿음은 회개 전에 마음속에 씨눈으로 있다고 생각하고 싶은 이유는 회개는 은혜이므로 살아있는 사람에 대해 발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믿음으로 말미암지 않고 어떻게 영혼이 살겠는가? 그러므로 참회자의 마음속에는 먼저 얼마간의 믿음의 씨가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이는 죽은 회개이고 따라서 아무 가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먼저건 회개가 먼저건 회개는 너무나 중차대하기 때문에 회개없이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회개는 복음 아래서 요구되는 은혜이다. 어떤 이들은 회개를 율법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설교하신 첫 설교는, 아니 그의 설교의 첫마디는 ‘회개’(마 4:17)였다. 그리고 그가 승천하실 때에 남겨놓으신 고별사는 “그의 이름으로…회개가…전파될 것이”(눅 24:47)라는 것이었다. 사도들은 모두 한결같이 다음과 같은 말을 되풀이 주장하였다.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막 6:12)

회개는 순수한 복음적 은혜이다. 행위의 언약은 아무런 회개도 용납하지 않았고, 거기서는 죄를 지으면 죽는다는 것이었다. 회개는 복음에 의해 들어왔다.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피로 매입하신 것은 회개하는 죄인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2. 거짓 회개

무엇이 참 회개인지 발견하기 위하여 나는 먼저 무엇이 거짓 회개인지 알아보겠다.
1) 회개의 속임수는 율법적인 공포이다.
한 사람이 오랫동안 죄 가운데 지내왔다. 마침내 하나님은 그를 붙잡아 그가 얼마나 자포자기적인 위험한 짓을 감행해 왔는지를 보여주신다. 그래서 그는 고뇌로 가득차게 된다. 얼마 안가서 양심의 폭풍은 멎고 그는 평온해진다. 그러면 그는 얼마간 죄의 쓰라림을 느꼈기 때문에 자기는 참다운 참회자라고 결론을 내린다. 속지 말라! 이것은 회개가 아니다. 겁에 질린 죄인이 된다는 것과 회개하는 죄인이 된다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2) 회개의 속임수는 죄를 안짓겠다는 결심이다.
사람은 결심을 하고 맹세를 하면서도 참회자가 아닐 수 있다. 사람이 병상에 있을 때 혹시 하나님이 자기를 회복시켜 주실까 하여 얼마나 확언을 잘하는지 우리는 경험으로 알지만, 그는 예전에 똑같이 악하다. 그는 새로운 유혹 가운데서 옛날의 마음을 보여준다.
3) 회개의 속임수는 허다한 죄의 길에서 떠나는 것이다.
죄를 떠난다는 것은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죄가 사람에게 너무나 사랑스럽기 때문에 그는 육욕을 포기하기 보다는 차라리 자식을 포기하려 들 것이다. 죄는 포기할 수 있겠지만 회개함이 없이 그리 할 수도 있는 것이다.

3. 참다운 회개의 성격(Ⅰ)

다음에는 복음적인 회개는 어떤 것인가를 알아보겠다. 회개는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인데 회개로 인하여 죄인이 내면적으로 겸손해지고 가시적으로 개혁되는 것이다. 한층 더 상술한다면 회개란 다음과 같은 6가지 특수성분으로 구성된 영적인 내복약이다.
1) 죄의 발견
2) 죄의 슬픔
3) 죄의 고백
4) 죄의 부끄러움
5) 죄를 미워함
6) 죄에서 돌이킴

이중 하나라도 빠진다면 회개는 효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성분 1: 죄의 발견
사람이 그리스도에게로 오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와야 한다. 그리고 사람은 먼저 자기 죄가 무언지 깨닫고 깊이 생각해야 하며, 그리고 죄로 인해 적절히 겸손해질 수 있기 전에 그의 마음의 역병을 알아야 한다. 나는 추론하기를 죄의 발견이 없는 곳에는 아무 회개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서 허물을 탐지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서는 아무 죄도 발견하지 못한다. 그들은 좋은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고 외친다. 그런 것이 바로 죄인이 경우다.

성분 2: 죄의 슬픔
의심하지 않고 믿을 수 있는 이는 자기의 믿음을 의심하고, 슬퍼하지 않고 회개할 수 있는 이는 자기의 회개를 의심한다(p19). 따라서 참다운 참회자는 자기의 마음을 슬피우는 마음가짐으로 전환시키려고 애쓴다. 이런 죄에 대한 슬픔은 피상적이 아니고, 이것은 거룩한 고뇌이다. 성경에서 이것은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라 불러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시 51:17)고 하였으며, 또 마음을 찢는 것이라 불러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욜 2:13)라고 하였다.
그러나 모든 슬픔이 다 참다운 회개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참 슬픔과 거짓 슬픔 사이의 차이는 샘에서 나는 단물과 바다에 있는 짠물 사이의 차이만큼이나 크다. 사도는 “하나님의 뜻대로”(고후 7:9) 근심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슬픔은 무엇인가? 이것에는 다음과 같은 6가지 조건들이 있다.
1) 참다운 경건한 슬픔은 내면적이다.
이것은 마음의 슬픔이다. 또한 마음의 죄 즉 죄의 처음 발생과 용솟음에 대한 슬픔이다.
2) 경건한 슬픔은 솔직하다.
이것은 형벌에 대한 슬픔이라기보다 범죄에 대한 슬픔이다. 하나님의 법이 침해당했으며, 그의 사랑이 악용당한 것이다. 이것이 영혼을 눈물로 녹인다.
3) 경건한 슬픔은 신뢰심이 두텁다.
죄에 대한 슬픔이 믿음과 섞인 것은, 마치 물을 머금은 구름 속에 찬란한 무지개가 나타나는 것을 본 경험과 같은 것이다. 어떤 이들은 세상적인 슬픔으로 얼굴이 너무나 부어올라 자기 눈으로 밖을 거의 내다보지 못한다. 우리는 찔리운 아픔을 많이 느낄 때 우리의 놋뱀 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4) 경건한 슬픔은 대단한 슬픔이다.
요시아가 죽던 날에 두개의 태양이 졌으며, 그래서 대대적인 장례식과 애통이 있었다. 그런 정도로 죄에 대한 슬픔은 끓어올라야 한다. 가장 깊은 마음 속으로부터의 탄식이다.
5) 경건한 슬픔은 어떤 경우 배상과 결부되어 있다.
어거스틴은 “배상이 없이는 용서가 없다”고 말하였다. 그리고 라티머는 연설에서 말하기를 “너희가 만일 부당하게 얻은 재산을 돌려주지 않는다면 너희는 지옥에서 기침하여 토해낼 것이다”라고 하였다.
6) 경건한 슬픔은 영속적이다.
어떤 이들은 설교 때 쓰러져 울 것이지만, 이것은 4월의 소나기 같이 곧 끝나며, 또는 터졌다가 이내 다시는 멈추는 혈관과 같다. 참다운 슬픔은 계속적이라야 한다.

성분 3: 죄의 고백
슬픔은 너무나 격렬한 감정인고로 돌파구를 갖게 마련이다. 이것은 울음에 의해 눈에서 그리고 고백에 의해 혀에서 표출된다. 고백은 자기 고발인 것이다. 즉 나는 “범죄하였고”(삼하 24:17)라고 하였다. 겸손한 죄인은 자기 자신을 고발하는 것 이상의 일을 한다. 그는 말하자면 재판석에 앉아 자기 자신에게 판결을 내리는 것이다.
1) 고백은 자발적이어야 한다.
그 고백은 샘에서 물이 나오듯 자유롭게 나와야 한다.
2) 고백은 양심의 가책으로 해야 한다.
마음으로부터 깊이 죄를 분개해야 한다. 자연인의 고백은 물이 파이프를 통해 흐르듯 사람을 통해 지나갈 뿐이며 사람을 조금도 감동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참다운 고백은 사람에게 상한 심령의 감동을 남겨 놓는다.
3) 고백은 충심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고백과 동행해야 한다. 위선자는 죄를 고백하면서도 그 죄를 사랑한다. 어거스틴은 회심 전에는 죄를 고백하고 죄를 이길 능력을 간구하면서도 그의 마음은 내면으로부터 “아직 아닙니다. 주여”라고 속삭였다고 말했다.
4) 참다운 고백은 죄를 상세히 열거한다.
악한 사람은 자기가 일반적으로 죄인인 점을 인정한다. 악한 사람은 “주여 내가 죄를 지었나이다”라고 말하지만 그러나 그 죄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며 적어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반면, 참다운 회심자는 자기의 세부적인 죄를 시인한다.
5) 참다운 참회자는 근원적인 죄를 고백한다.
그는 자기 성품의 오염을 시인한다. 우리의 성품의 죄는 선의 박탈일뿐 아니라 악의 주입이기도 하다. 우리는 내면적으로 쓸개와 쑥이 맺히는 뿌리를 가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고 긍휼을 태어날 때부터 입게 만드는 것이다. 아아! 죄를 근원에서부터 고백하라!
6) 죄는 그 모든 전후사정과 가중죄와 함께 고백되어야 한다.
복음의 범위 안에서 범해진 죄들은 틀림없이 속속들이 염색되어 있다. 지식을 거스려, 은혜를 거스려, 맹세를 거스려, 경험들을 거스려, 심판을 거스려 지은 죄들을 고백하라. 이런 것들은 우리의 죄를 심화시키고 강화시키는 치명적인 가중죄들이다.
7) 죄를 고백할 때 우리 자신을 고발함이 하나님께는 변호가 되도록 해야 한다.
주님의 섭리가 혹독하고 피묻은 칼을 뽑으신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에게 혐의가 없다고 해야 되고 그가 우리에게 부당 대우를 하지 않으셨다고 인정해야 한다.
8) 우리는 그런 죄들을 다시는 되풀이 행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죄를 고백해야 한다.
우리는 자백으로 죄를 토해버리고 난 후에는 이 토한 것에 되돌아가지 말아야 한다. 자기의 반역죄를 고백하고 나서 새로운 반역죄를 저지르는 사람을 어떤 왕이 용서하겠는가?

4. 참다운 회개의 성격(Ⅱ)

성분 4: 죄의 부끄러움
회개의 넷째 성분은 부끄러움이며, 그래서 “그들로 자기의 죄악을 부끄러워하고”(겔 43:10)라고 하였다. 마음이 죄로 검게 물들었을 때 은혜가 얼굴을 붉히도록 만들기 때문에,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스 9:6)라고 하였다.
1) 모든 죄는 우리를 죄책 있게 하고, 그리고 죄책은 통상적으로 부끄러움을 낳는다.
2) 모든 죄에는 감사할 줄 모음이 많이 내포되어 있고, 그리고 그것이 부끄러워 할 일이다.
3) 죄는 우리를 벌거벗겼으며, 그것이 부끄러움을 일으킬 것이다. 죄는 우리의 거룩한 흰 세마포 옷을 벗겨버렸다.
4)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를 부끄럽게 만들었는데, 우리는 부끄럽지 않단 말인가? 태양이 마치 그리스도의 수난을 보고 얼굴을 붉히듯 일식 때 얼굴을 가리는 것을 목격하고도 자기 얼굴은 붉힐 줄 모르는 자는 누구인가?
5) 우리가 범하는 많은 죄들은 마귀의 특별한 충동질에 의한 것인데, 이것은 부끄러움을 일으키지 않는단 말인가?
6) 죄인들은 여우들(눅 13:32), 이리들(마 7:15), 들나귀들(욥 11:12), 돼지(벧후 2:22)에 비유된다. 한때 존엄성에서 천사들보다 조금 못했던 인간이 이제는 짐승들처럼 된 것이다. 우리의 죄는 이전에 우리가 가졌던 고결하고 남자다운 정신을 빼앗아가 버렸다. 왕관은 우리 머리에서 떨어져 버렸고, 하나님의 형상은 손상되었고, 이성은 이지러졌으며, 양심은 둔화되었다.
7) 모든 죄에는 어리석음이 있다. 사람은 자기의 어리석음이 부끄러울 것이다.
8) 우리들의 얼굴을 붉어지게 하는 것은 우리가 범하는 죄들을 이교도들의 죄보다도 훨씬 더 악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 많은 빛을 거스려 행동한다.
9) 우리의 죄는 마귀의 죄보다 더 악하다. 타락한 천사들을 결코 그리스도의 피를 거스려 죄짓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들을 위해 죽으시지 않았으며, 그의 공로의 약은 결코 그들을 치료하기로 작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불신앙으로 그의 피를 모욕하였으며 깔보았던 것이다.

성분 5: 죄를 미워함
회개의 다섯 번째 성분은 죄의 미움이다. 죄에 대한 참 미움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1) 사람의 영이 죄에 대항할 때
혀가 죄를 향해 맹렬히 비난할 뿐 아니라 마음이 이것을 질색하는 것, 그래서 아무리 교묘하게 죄가 착색되어 보인다 하여도 그 추악함을 간파하는 것이다.
2) 죄에 대한 참다운 미움은 보편적이다.
- 미움은 기능면에서 보편적이다. 다시 말하면 판단에서 뿐 아니라 의지와 정서에서도 죄를 싫어함이 있다.
- 미움은 대상면에서 보편적이다. 한 가지 죄를 미워하는 사람은 모든 죄를 미워한다. 위선자들은 그들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다소의 죄들을 미워하겠지만, 참 회심자는 모든 죄들, 유리한 죄들, 허울 좋은 죄들, 바로 부패를 부추기는 것들 그 자체를 미워한다.
3) 죄에 대한 참 미움은 모든 형태의 죄에 대한 것이다. 거룩한 마음은 죄를 그것의 본질적인 오염 때문에 혐오한다. 죄는 영혼 위에 오점을 남겨 놓는다. 중생한 사람은 저주 때문 뿐 아니라 감염 때문으로도 죄를 혐오한다.
4) 참 미움은 인정 사정이 없다. 이것은 죄와는 이 이상 도저히 화해되지 않을 것이다. 분노는 화해되겠지만 미움은 그렇지 못하다.
5) 참다운 미움이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 속에 있는 죄를 반대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 속에 있는 죄도 반대한다. 에베소 교회는 악한 자들을 용납지 못하였다(계 2:2). 바울은 베드로가 비록 사도였지만 그의 허위에 대해 날카롭게 책망하였다.

성분 6: 죄에서 돌이킴
회개의 여섯 번째 성분은 죄에서 돌아서는 것이다. 참다운 회개는 질산처럼 죄의 쇠사슬을 산산이 부식시킨다.
1) 마음이 죄로부터 돌이켜야 한다. 하나님은 전인적인 마음으로 죄에서 돌이키기를 바라신다.
2) 모든 죄에서의 돌이킴이 되어야 한다. 진정한 참회자는 죄의 길 밖으로 돌이켜서, 모든 죄를 버린다.
3) 영적인 이유로 인한 죄에서의 돌이킴이 되어야 한다. 사람은 죄의 행동을 억제하면서도 올바르게 죄에서 돌이킬 수는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참다운 참회자는 신앙적인 원칙에 의해, 이를테면 하나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죄로부터 돌이킨다.
4)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죄에서의 돌이킴이 되어야 한다. 참다운 회개에서는 바늘이 북극을 가리키듯 마음이 똑바로 하나님을 향한다.
5) 참으로 죄에서 돌이키는 것은 다시 죄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죄를 버리는 것은 자기의 본국을 버리는 것과 같이 다시는 그리고 되돌아갈 수 없다.

5. 회개를 강력히 주장하는 이유들, 완악한 자에 대한 경고를 곁들여
다음에는 회개를 강력히 주장하는 이유들에 대해 계속 말하기로 한다.
1) 하나님의 주권적인 명령
회개는 재량권이 아니다. 우리가 회개할 것인가 아닌가는 우리의 선택권에 맡겨지지 않았고 이것은 피할 수 없는 명령이다. 하나님은 하늘 나라의 최고 법원에서 회개하는 죄인에게는 아무 죄인도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법률을 제정하셨고, 그는 손수 만드신 자신의 법을 어기지 않으실 것이다.
2) 하나님의 순경한 성품은 회개치 않는 피조물과의 친교를 거부한다.
죄인이 회개할 때까지 하나님과 죄인은 친구가 될 수 없다. 만일 하나님이 회개하기 전의 죄인과 평화롭게 지내신다면 하나님은 죄인이 저지른 모든 짓을 좋아도 하시고 승인도 하시는 것처럼 보일 것이며,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함에 역행하게 될 것이다.
3) 계속 회개치 않는 죄인들은 그리스도의 사명의 범위 밖에 있다.
그리스도는 임금과 구주이시지만 사람들이 회개하건 안하건 무조건적인 방식으로 구원하는 구주는 아니시다. 마치 왕은 반역자들이 회개하고 자기들의 군주의 자비를 바라고 투항하면 용서해주고, 만일 공공연히 도전하기를 끝까지 고집하면 용서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4) 우리는 죄로 하나님께 해를 끼쳐 드렸다.
우리는 죄를 지어 하나님께 해를 끼쳤으며, 우리는 그의 영광을 가렸었다. 우리는 그의 법을 위반하였으며, 따라서 우리는 그에게 마땅히 어떤 보상을 해드려야 한다. 회개함으로써 우리는 죄에 대해 우리 자신을 낮추고 또 우리 자신을 심판한다.
5) 만일 하나님이 사람들을 회개하지 않아도 무차별 구원하신다면, 그러면 이 규칙에 준해서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셔야 한다.
이것은 인간들 뿐 아니라 마귀까지도 구원하셔야 하며, 따라서 결과적으로 택함과 유기의 명령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은 성경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6. 회개를 촉구하는 엄숙한 권고

1) 회개는 필수적이다.
회개는 하나의 자격으로서 요구된다. 회개는 우리가 그리스도께 사랑받게 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사랑받으시게 하기 위한 것이다. 죄의 쓴맛을 알기 전까지는 그리스도의 단맛을 알지 못할 것이다.
2) 회개는 모든 사람들에게 필수적이다.
- 이것은 높은 사람들에게 필수적이다. 높은 사람들의 죄는 다른 사람들의 죄보다 더 많은 해를 끼친다. 지도자들의 죄는 선도적인 죄이며, 따라서 모든 다른 사람들보다 자기들이 먼저 회개할 필요가 있다.
- 회개는 나라 안의 극악무도한 죄인들에게 필수적이다.
- 회개는 속임수 쓰는 패거리에게 필수적이다.
- 회개는 교양인들에게 필수적이다.
- 회개는 위선자들에게 필수적이다.
- 회개는 하나님의 친 백성, 참다운 은혜의 역사를 이루는 참 이스라엘인들에게 필수적이다.
3) 회개는 모든 죄에 대해 필수적이다.
우리는 원죄에 대해 주님 앞에 철저히 낮아지며 애통하자. 우리는 이전에 우리가 가졌던 저 순수한 영혼의 본질적인 상태를 잃어버렸고, 우리의 성품은 부패로 오염되었다. 특별히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우리의 감정의 부패를 통탄하자. 우리는 자범죄를 주님 앞에서 엄숙히 회개하자.

7. 회개의 강력한 동기들

1) 마음의 슬픔과 감동은 우리의 모든 거룩한 의무에 잘 어울린다. 죄 덩어리로 굳어진 마음은 아무 짝에도 못쓰지만 이것이 회개하여 녹아질 때 이것은 쓸모 있게 된다, 녹는 마음은 기도하기에 적합하다. 또한 녹는 마음은 순종하기에 적합하다. 회개하는 영혼은 하나님의 의지에 찬성하고 그의 부르심에 응답한다.
2) 회개는 귀하게 받으심 직하다. 주님은 튼튼한 마음보다 상한 마음을 존중하신다.
3) 회개는 우리의 모든 봉사를 하나님께 상달케 한다. 경건한 슬픔의 쓴 나물로 조미한 것이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이다. 또한 죄의식으로 감동된 마음에서 우러나는 것이 아니고서는 아무 기도도 하나님의 귀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4) 회개 없이는 아무것도 우리에게 이롭지 못하다. 어떤 이들은 지식을 축적해 가지고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회개없이 지식이 무슨 쓸모가 있는가? 한 가지 죄를 극복하는 것이 모든 신비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 낫다.
5) 회개의 눈물은 향기롭다. 회개는 그 자체는 쓰라리지만 그래도 그 효과는 달콤한 것이다. 회개는 내면적인 평화를 가져온다.
6) 큰 죄도 회개하면 긍휼을 얻을 것이다. 큰 죄인이었던 막달라 마리아는 자기 눈물로 그리스도의 발을 씻었을 때 용서를 얻었다.
7) 회개는 영적 축복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회개는 우리를 은혜로 풍요롭게 하는 구실을 한다.
8) 회개는 현세적인 축복도 맞아들인다. 회개는 모든 축복의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며, 이것이 황금의 수확을 가져오는 것이다.
9) 회개는 땅위의 심판을 예방한다. 하나님이 한 나라를 멸망시키고자 하실 때, 참회하는 죄인은 하나님의 심판의 손길을 제지시킨다.
10) 회개는 하늘나라에 기쁨이 된다. 찬양은 하늘나라의 음악인 것처럼 회개는 하늘나라의 기쁨이다.
11) 우리 죄가 그리스도께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르게 했는지 생각하라.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께 얼마나 비싼 대가를 치르게 했는지 깊이 생각하면 우리 눈에서 눈물이 방울져 떨어지게 될 것이다.
12) 회개는 하나님이 보내시는 모든 고난의 목표가 된다. 그것이 몸의 병이 되든지, 또는 재산상의 손실이 되든지 그는 우리 죄로부터 우리를 각성시켜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하기 위함인 것이다.
13) 우리의 애통의 날들을 곧 끝날 것이다.
14) 회개에 뒤따르는 행복하고 영광스러운 보상. 회개는 육신적인 부위에게 쓴 것 같지만 달콤한 열매를 보라. 그것은 영생이다.
15) 회개의 마지막 동기는 심판의 날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8. 신속한 회개를 권고함

하나님은 자기들의 인생의 청춘과 전성기를 성별해 드리는 젊은 시절의 참회자들을 사랑하신다.
1) 지금은 회개의 시기이며, 만사는 제 시기에 이루는 것이 최상책이다.
지금은 하나님이 참회자에게 긍휼을 베푸실 마음을 가지셨으며, 그는 지금 주실 여유가 있으시다. 지금은 우리의 영혼을 치료하는 날이며, 지금은 하나님께서 평화의 백기를 내거시고 죄인들과 기꺼이 담판하신다.
2) 당신은 더 속히 회개할수록 그만큼 더 적은 죄를 책임지게 될 것이다.
3) 속히 회개할수록 그만큼 더 많은 영광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다.
우리가 적시에 죄에서 돌이킬 때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 생애의 첫 열매를 드리게 되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소비하며 또 소비된다.
4) 회개를 더 오래 끌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
지연은 위험을 초래한다. 회개를 지연시키고 연기시키는 것이 위험한 것은 곧 만료될 세 가지 날이 있기 때문이다.
- 복음의 날이 만료될 것이다.
- 사람의 개인적인 은혜의 날이 만료될 것이다.
- 생명의 날이 만료될 것이다.

9. 회개의 시험기준과 참회자가 얻는 위로

누가 회개하였노라가 말할 때, 그것은 참된 회개인지를 알아볼 수 있는 시험기준은 다음과 같다.
1) 회개의 시험 기준
- 조심하기: 모든 죄의 유혹을 조심해서 피하는 것을 의미한다.
- 자신을 청산하기: 죄가 자기의 양심 속에서 곪아 터지도록 놔두지 않고 자신을 판단한다.
- 분개: 죄를 가지고 마음에 노심초사하는 상태를 말한다.
- 두려움: 회개하는 영혼은 생명보다 더 귀한 하나님의 은총을 잃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 열렬한 갈망: 죄를 이기는 권능을 갈망하며 죄에서 해방되기를 갈망한다.
- 열심: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열심이 고무된다.
- 복수심: 참다운 참회자는 거룩한 적의를 가지고 자기의 죄를 추격한다.
2) 필요한 권고
로마 카톨릭은 회개를 성례로 삼고, 회개를 공로로 삼는다.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의 피만이 용서의 공로를 쌓을 수 있다. 비록 회개가 죄의 더러움을 깨끗이 하는데 도우미 되지만, 그래도 죄의 죄책성을 씻어버리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다. 회개를 우상화하지 말라.
3) 회개하는 죄인에게 주는 위로
- 당신의 죄는 용서받았다.
- 하나님은 대사면령을 승인하실 것이다. 죄를 용서해주시되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렘 31:34)고 하였다.
- 양심은 이제 화평을 말할 것이다.
회개하는 죄인은 기도 가운데 담대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고, 그를 심판주로서가 아니라 아버지로서 바라볼 수 있다.

10. 회개의 장애물을 제거하기

참된 회개에 이르지 못하도록 하는 장애물에는 10가지가 있다.
1)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회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2) 교인들은 회개하는 것을 쉬운 일로 상상한다.
3)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주제넘은 생각
4) 무기력하고 나태한 기질
5) 죄의 근질근질한 쾌감을 좋아함
6) 회개는 기쁨을 없애버린다는 생각
7) 또 다른 회개의 방해물은 마음의 낙담이다.
8) 하나님이 그냥 처벌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
9) 사람들의 멸시와 비난에 대한 두려움
10) 과도히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11. 회개를 위한 방법적 처방

1) 죄가 무엇인지 심각히 생각해 보라.
- 모든 죄는 하나님에게서 물러가는 것이다.
- 죄는 하나님에게 대항하는 것이다.
- 죄는 하나님에 대한 권리 침해이다.
- 죄는 심층적인 무지이다.
- 죄는 더러움으로 뒤범벅이 되게 한다.
- 죄 속에는 흉악한 배은망덕이 있다.
- 죄는 손상이다.
- 죄는 짐이다.
- 죄는 영적 질병이다.
- 죄는 노예화이다.
- 죄는 영적인 죽음이다.
- 회개 없는 죄는 최후의 지옥 파멸로 향해 있다.
2) 회개를 이루기 위한 둘째의 심각한 고찰은 하나님의 긍휼을 깊이 생각하는 것이다.
군주의 관대함이 흉악범의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의 심판으로 몰아치는 동안 줄곧 당신에게는 그의 긍휼로 구애해 오셨다.
3) 세 번째로 하나님이 보내시는 고난의 섭리를 깊이 생각하라.
4) 만일 우리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마침내 얼마나 많은 것을 책임지게 될지 깊이 생각하자.
모든 설교가 고발장으로 쓰이게 될 것이다. 우리가 회개한다면 그리스도의 피가 죄를 깨끗이 씻어줄 것이며, 값없는 은혜의 두루마기가 우리를 덮어줄 것이다.
만일 우리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죄는 마지막 날에 모두 보고 되어야 할 것이며, 그리고 우리는 직접 그것들에 대한 벌을 받아야 한다.

12. 회개를 위한 방법적 처방

만일 누가 회개한다면 당장 그는 자기 속에 하늘나라를 소유한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그의 것이고 모든 것이 평화다. 따라서 회개하기 위해서는 죄를 떠나려는 확고한 결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다. 당신이 회개하기 전에는 구름과 폭풍밖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하나님의 얼굴에는 구름이요 양심에는 폭풍이다. 그러나 회개한 후에는 얼마나 날씨가 바뀌는가! 위에는 얼마나 빛나는 햇빛이! 안에는 얼마나 잔잔한 평온이 넘치는가!

 

 

 http://cafe.daum.net/khc2346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