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의 개혁 교육 | 가정 & 교육

전체공개 2012.01.05 09:33

 

 

                                                              한국에서의 개혁 교육 

                                                                                                                                                          김헌수 목사

 

한국에서의 개혁 교육이라는 주제를 여러 나라에서 모인 형제자매들과 함께 다루기 위해서는 먼저 ‘한국에서의 교육’에 대한 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개혁 신앙을 고백하는 부모들이 한국에서 씨름하는 특별한 과업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한국에서의 교육

 1) 전통적인 유교 교육

 한국의 전통적인 교육은 대체로 유교에 의해서 형성되었습니다. 유교는 일반적으로 공자(주전 551-479)에서부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본래는 중국 샤머니즘의 원시적인 형태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랜 역사 가운데서 발전한 신념 체계입니다. 공자와 더불어 맹자(주전 372-289)와 주자(1130-1200)가 유교의 새로운 틀을 제시한 대표적인 학자로 꼽힙니다.


 기원전 3천 년경부터 고대 중국인들은 영과 귀신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왕가나 귀족은 상제나 하늘을 섬겼고, 평민들은 대체로 풍요의 신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명절에 죽은 조상의 영들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자식의 출생이나 혼인이나 승진과 같은 중요한 일을 조상신에게 알렸습니다. 이처럼 죽은 자의 영혼이 동양 사람들의 생활에서 필수적인 부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공자는 새로운 것을 짓지 않고 고대 성현들의 사상을 전달하는 자로 자처했지만, 그는 무속적인 조상 숭배를 문민화 시킨 독창적이고 창조적인 전달자였습니다. 그는 효의 개념을 시민 생활과 정치 생활에까지 확대시켰습니다. 효는 부모에 대한 존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연장자나 윗사람에 대한 존경으로 확대되었으며, 국가도 가정의 확대로서 이해되었습니다. 따라서 유교 체제에서의 가족은 ‘사회학적’ 단위일 뿐 아니라 ‘형이상학적’ 중심이었습니다.


 유교의 발전된 형태는 샤머니즘과 매우 다르지만 한 뿌리에서 나왔기 때문에 똑같이 현세 지향적입니다. 샤머니즘의 기본적인 특징은 죽은 자의 영혼이 이 세상에 함께 있고, 무당을 매개로 하여 산 자의 생활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인데, 유교는 죽은 조상의 영혼의 도움으로 현세적인 수복강녕을 보장받으려는 것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유교의 조상 제사는 언제나 샤머니즘적인 신념 체계 안에서 수행되었습니다.


 유교 사회에서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것은 현세 지향적인 효와 밀접히 연결됩니다. 유교의 경전 가운데 하나인 {효경}에서는 조상이 물려준 신체를 잘 보존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고 출세하여 ‘부모의 이름을 내는 것’이 효의 마침이라고 가르칩니다. 유교 사회에서 도를 행하려 부모의 이름을 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과거 공부를 하여 고위 관직에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유교 문화권에 속하는 한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 등의 높은 교육열은 효에 대한 교훈을 떠나서는 제대로 이해될 수 없습니다. 교육이 효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유교적 교육은 종교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조: 샤머니즘은 “신비적 요소”“현세적인 태도”의 혼합으로 특징되어지는데, 두 요소의 혼합은 한국 교회에 매우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효와 교육에 대한 강조가 유교 문화권에 속하는 나라의 경제적 발전에 기여했고, 어떤 학자들은 ‘유교적 자본주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 용어는 이론적으로나 통계적으로 검증되어야 할 필요가 있지만, 높은 수준의 교육이 자본주의적 발전에 강한 추진력을 제공함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요약하면 유교적인 사회 가치관은 정치적 사회적 출세를 위한 정당한 방편으로 고등 교육을 장려했습니다. 동아시아 사람들의 심성과 유교의 체계에 박혀 있는 샤머니즘적인 신념이 성공과 물질적인 복지를 추구하는 데에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2) 근대 교육의 세 단계

 근대 교육의 세 단계에서 첫 단계는 ‘한국에 근대 교육 제도를 도입한 사람은 서양 선교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인도에서 활동한 스코틀랜드 파송 선교사 알렉산더 더프(1806-1878)의 방법론을 선교 전략으로 택하여 ‘미션 스쿨’이라고 불리는 교육 기관을 많이 세웠습니다. 이것은 교육이 존중되는 한국에서는 특히 효과적인 전략이었습니다. 1910년에는 2,250개의 학교 가운에서 882개가 기독교 계통의 학교였습니다. 미션 스쿨은 하층민이나 여자에게도 입학을 허락하여 양반과 상민의 신분 철폐나 여성의 권직 신장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미션 스쿨은 한국 근대화의 중요한 추진력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긍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이 당시에 많은 신자들이 ‘기독교화’‘서구화’ 혹은 ‘근대화’를 동일시했음도 지적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교회의 문을 세속화를 향해 열어 둔 셈이었습니다.


 미션 스쿨은 학교를 전도(미션)의 수단으로만 생각하였기 때문에 교과목을 성경의 교훈이나 신앙고백과 통합하는 일은 소홀히 하였습니다. 달리 말하면 언약의 자녀에 대한 교육은 차츰 뒷전으로 밀려났고, 가르치는 내용에서 기독교적 독특성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미션 스쿨이 좋은 학교로 소문이 나면 불교도도 아무 거리낌 없이 입학할 수 있었고, 기독교인도 다른 세속 학교에 진학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기독교인이나 불교도나 모두 교육과 그들의 종교적 신념을 별개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교육을 통해 사회의 상층에 진출한다는 데서는 같은 생각을 가졌습니다.


 근대 교육의 세 단계에서 두 번째 단계는 ‘일본은 식민지 시대에 공립학교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일본의 ‘식민지 교육’은 일본 백성의 우월성을 인정하게 하고 일본의 신념 체계를 한국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 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무속의 일본판의 신도가 교육의 중심에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일본 당국은 한국 학생도 신도 사당에 절을 하게 했고, 일본 왕이 있는 동쪽을 향해 절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이 정책에 순응하지 않는 것은 폐교를 의미했습니다. 비록 몇몇 기독교 학교들이 폐교되고 몇몇 선교사들이 추방되거나 투옥되었지만 대부분의 미션 스쿨들은 그 압력에 순응했고 심지어 교회들도 그리 했습니다.


 근대 교육의 세 단계에서 세 번째 단계는 ‘1945년 해방 후에는 미국의 교육 체계’가 도입되었습니다. 그러나 교육부는 일제의 공립학교 제도의 유산, 즉 정부가 교육을 통제하는 것을 그대로 이어받아 시행했습니다. 교과 과정을 학교 이사회가 아니라 교육부자 결정했습니다.


 해방 이후에 서양적인 교육이 도입되었지만 기저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여전히 유교적인 교육관이었습니다. 교육을 통한 효의 실현과 현세적인 성공의 확보가 교육열의 근본 동인이었습니다. 한국의 중고생들은 유명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 아침 7시부터 저녁 11시까지 학교나 학원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입시 과열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교육부는 몇 차례 교과 과정을 개편하여 지금은 7차 교육 과정을 시행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거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3) 개혁의 관점에서의 평가

유교적인 교육이 없었다면 한국의 경제적 발전이 없었을 것이라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무속적인 요소와 가족주의와 연결된 유교적 가치관은 한국이 좀 더 근본적인 개혁을 하는 데에 지속적인 장애물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적절한 공적 직분의 개념이 없이 유교적인 인간관계 중심의 가치 체계를 정치 제도에 적용할 경우 쉽게 친인척 비리와 부패로 이어집니다. 정치 비리의 문제를 많은 경우 개인적인 도덕성의 문제로 파악하지만, 사실은 인간관계 중심의 사고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유교적인 가치관이 문화에 깊숙이 침투해 있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이러한 문제를 잘 의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 기독교인은 이러한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보아야 하고, 그와 같은 강력한 문화적 장애물을 타파하기 위해서 힘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지적은 기독교인들이 유교에서 배울 것들을 있음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권위와 연장자에 대한 정당한 존경은 힘써 보존해야 할 전통입니다. 십계명 제5계명에 대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해설에서 ‘나의 부모님, 그리고 내 위에 있는 모든 권위에 모든 공경과 사랑과 신실함을 나타내고, 그들의 모든 좋은 가르침과 징계에 대한 합당한 순종을 하며, 또한 그들의 약점과 부족에 대해서는 인내해야 합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가족 관계에서 유추할 수 있는 사회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또한 교육과 근면함에 대한 정당한 강조는 일상생활에서 유지하고 실천해야 할 덕목입니다.


 그러나 효와 교육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피조계의 다른 영역을 희생하면서 한 영역을 절대화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우상 숭배입니다. 또한 국가는 가족 관계를 확대한 것으로 다 설명될 수 없습니다. 거기에는 가족 관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공적 영역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맥락에서 사회적인 덕목은 인화를 넘어서는 요소가 있습니다. 공적인 관계와 규범을 따라서 일하는 것은 사적인 관계의 확대로만 설명될 수 없습니다.


2. 한국에서의 개혁 교육

 1) 한국에서의 개혁 교회

 1884년에 개신교 선교사들이 한국에 첫발을 디뎠는데, 그때는 한국이 세계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었던 시기였습니다. 밀려오는 열강의 힘에 저항할 힘이 없던 상황에서 기독교는 일종의 탈출구를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기독교의 급속한 성장은 부분적으로 이러한 요소에 의해서 설명될 수 있습니다.


 1907년에 한국 장로교회가 독노회를 조직했습니다. 그때 교세를 보면 선교사를 포함하여 목사 49명, 조사 160명, 장로 47명, 교인 72,968명(성찬 교인 18,061명)이었습니다. 교세로 볼 때 결코 미미하지 않았지만 총회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요약이 12개조를 교회의 신앙고백으로 택했습니다. 그러나 한두 쪽에 지나지 않는 이 고백서는 교회를 그릇된 교훈과 이단으로부터 보호할 정도로 튼튼하지는 못했습니다. 또한 목사 장로 집사에게만 12신조를 승인할 것을 요구했지 교인들에게는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교인들은 신앙고백과 무관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약 60여 년이 지나서 몇몇 교회들에서 웨스트민스터 표준 문서를 채택했지만 이 고백서에 대한 서명도 직분 자에게만 요구하고 교인은 제외되었습니다. 또한 직분자의 서명도 엄격히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안에는 좋은 신자들이 많이 있지만, 신앙고백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한국 장로교회가 참으로 신앙고백적인 교회인가’를 묻게 됩니다. 현재 한국 인구는 20퍼센트가 기독교인으로서 자처하고 기독교가 중요한 사회 세력이 되었지만, 발표자는 이 질문이 여전히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2) 한국에서의 개혁 교육을 위한 부모의 과제들

 개혁 교육에서도 우리의 역사는 너무나 짧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과 과제는 좀 저 기본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개혁 부모들이 한국적인 상황에서 힘쓰고 있는 것들을 몇 가지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교회의 생활 영역에서

 첫째, 부모는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이해에서 지속적으로 개혁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이해하는 것은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는 중요한 함축을 지닙니다. 유교 사회에서는 사회적 출세와 성공이 효를 이루는 수단이었지만, 그리스도의 몸에서는 지체들 사이에 분열과 경쟁이 없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게 하시기 때문입니다(고전12:22-23). 유교적인 가치관은 오직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만 극복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무엇인가를 알 때에야 우리는 개혁학교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둘째, 부모들은 언약의 말씀에 의해서 가르침을 받고 개혁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로 만드는 것은 언약의 말씀에 대한 신실하고 정순한 강설입니다. 비성경적인 사변이 신학 논쟁에서나 삶에 강한 영향을 끼친 한국에서 언약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가 더 절실합니다. 믿음에 대한 수동적인 태도는 부분적으로는 예정에 대한 결정론적인 이해에서 비롯한 것인데,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에 의해서만 적극적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언약의 말씀에 신실하게 전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믿음을 일으키고 살아 있는 믿음으로 반응하게 이끄실 것입니다.


 셋째, 부모는 자신들의 자녀에 대한 이해에서도 변화되어야 합니다. 유교적인 세계관에서는 영원성을 후손을 통해 표현했습니다. 자녀는 개인으로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부모나 조상과 관련해서 의미를 지녔습니다. 줄여 말하면 그들은 부모의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자녀들이 삼위 하나님에게 속했다고 가르치고(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1문, 74문)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 안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창17:7).


 넷째, 부모는 학교나 교회에서의 ‘생활’‘관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교에서는 나이와 개인적인 친분 관계나 사회생활이나 서로의 관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에서도 그러한 현상이 매우 빈번히 나타납니다. 이것은 교회의 직분 개념을 왜곡시키는 것이고 직분을 통한 그리스도의 통치를 가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직분’에 대한 성경적인 교훈을 배우고 학교와 교회의 모임에서 실천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2) 교육의 영역에서

 다섯째, 부모는 교육에 대한 관점에서도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교육은 아이들을 훈련시켜 자녀들이 사회 상층부에 효과적으로 올라가도록 만드는 수단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발견하고 계발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더 효과적으로 섬기도록 갖추어 주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아이들에게 다양한 은사들을 주셨기 때문에 교육자는 이러한 차이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개혁 교육에는 두 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첫째는 성경과 교회의 역사적인 고백을 잘 알아서 ‘교회의 살아 있는 지체로서의 자기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들의 직업과 일상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개혁 교육의 정체성과 질’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어린이날 성도들에게 창세기 6:4를 읽고(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 다음과 같이 부모들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이여, 여러분들은 무엇을 위해서 자녀들을 교육시킵니까? 그들이 유명하고 힘이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그처럼 수고하십니까? 그들이 유명하고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어서 아름다운 사람의 딸들을 자기들의 마음대로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교육에 투자하십니까? 사랑하는 부모들이여, 창세기에 기록된 유명한 자들과 사람의 딸들의 혼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가져왔습니다. 정체성의 위기는 매우 심각한 것입니다. 생명과 사망, 하나님의 복과 저주의 문제입니다.”


 (3) 문화의 영역에서

 여섯째, 부모는 문화의 문제와 도전에 대한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한국의 전통적인 가치관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것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서양의 가치관을 대안으로 여기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닙니다. 비록 서양 문화의 상당 부분이 성경에서 연원한 것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 근원에 닿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더구나 필자와 같은 동양의 기독교인에게는 서양의 기독교적 문화도 서양의 토양에서 토착화된 요소가 다소 있다고 생각됩니다. 지금 이것을 언급하는 이유는 서양 문화 자체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전통적인 유교의 토양에 서양 문화가 수입되는 나라에 살고 있는 신자로서 성경의 교훈을 토대로 동서 문화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검토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토착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비판적 반성은 자신의 믿음을 순결하게 보존하고 자신이 속한 사회를 성경의 교훈을 따라서 변혁하는 데에 필痔岵都求? ‘개혁 관점에서의 토착화’는 성경과 문화에 대한 깊은 연구를 요구하는 거대한 작업입니다. 그러한 작업을 거쳐서 비로소 개혁 교육의 교과 과정에도 그 결과를 담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도 문화에 대한 성경적인 비판은 필수적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적인 비판이 없이는 개혁 교육을 시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한국의 개혁 부모들이 위에서 열거한 내용으로 신령한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여기에 있는 다른 문화에서 온 개혁의 형제들에게도 격려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다른 지역에서 다른 단계에서 다양한 양태로 씨름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신령한 전투에 함께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여러분의 좋은 전통은 제한된 자료를 가진 우리에게도 큰 격려가 됩니다. 독자적인 건물과 개혁 교과 과정이 갖추어진 학교를 갖는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두신 그 단계와 위치에서 주님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소망을 갖고 이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생명나무 쉼터/한아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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