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와 작정의 관계 / 아더 핑크
아더 핑크 2013. 5. 24. 13:00예지와 작정의 관계 / 아더 핑크 우리가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또 한 가지 사실은, 앞서 인용한 처음 두 말씀이 하나님의 예지는 원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 사도행전 2장23절을 다시 보자.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첫째,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둘째, ‘미리 아신대로’ 내어주신 바 되었다. 예지의 토대는 하나님의 작정이다.
로마서 8장29절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구절은 바로 앞 구절과 긴밀히 연결된다. 그러면 바로 앞 구절의 내용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예지는 그분의 작정, 또는 목적에 근거한다(시2:7).
하나님이 미래의 일을 아시는 이유는 스스로 그 일을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사람들을 미리 아신 것 때문에 그들을 선택하셨다는 주장은 본말을 전도하는 것이자 성경의 순서를 거꾸로 뒤집는 것이다. 하나님이 선택하셨기 때문에 미리 아신다고 말해야 정확하다. 선택의 근거나 이유는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서 비롯한다. 하나님이 특정한 사람들을 선택하기로 결정하신 이유는 그들 안에 선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분의 기쁘신 뜻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왜 선택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우리는 단지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눅10:21)라고 고백할 따름이다.
로마서 8장29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일부 죄인을 골라내어 구원을 주시기로 작정하셨다고 가르친다(살후2:13 참조).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라는 문구를 보면 그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미리 아신 자들을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신 것이 아니라,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 미리 정하신 이들을 “미리 아셨다(즉, 사랑하고 선택하셨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은 것은 예지, 예정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하나님은 죄인이 믿을 것을 아시고 그를 선택하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기 전에는 그 어떤 죄인도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이 눈을 열어주시기 전에는 아무도 볼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시력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보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을 사용한 결과이다. 마찬가지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엡2:8,9). 믿는 것은 그 선물을 사용한 결과이다. 하나님이 특정한 사람들이 믿을 것을 아시고 구원을 베풀기로 작정하셨다면 믿는 것이 선물이 아니라 공로가 되며, 그런 경우에 구원받은 죄인은 ‘자랑할’ 빌미를 갖게 된다. 하지만 성경은 구원을 자신의 공로로 자랑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한다(엡2:9).
성경에 따르면 믿음은 공로가 아니다. 성경은 신자들을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행18:27)이라고 정의한다. 은혜로 믿음을 갖게 되었다면 믿음은 공로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또 믿음이 공로가 아니라면 선택의 이유나 근거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선택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이나 우리 자신으로부터 비롯하지 않는다. 선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달려 있다. 로마서 11장 5절은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라고 말한다. 이처럼 선택은 은혜이고, 은혜는 공로와 무관한 선물, 곧 우리가 하나님께 달라고 주장할 수 없는 순수한 선물이다.
지금까지 말한 대로 하나님의 예지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예지를 잘못 이해하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생각을 고집할 수밖에 없다. 흔히 통용되고 있는 예지의 개념은 전적으로 부당하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결말을 꿰뚫고 계실 뿐 아니라 영원 전부터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결정하시고, 예정하셨다. 원인이 결과에 선행하듯이 하나님의 작정이 예지에 선행한다.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된 이유는 하나님이 창세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셨기 때문이다(엡1:4).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는 우리가 믿을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선택하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신앙의 본성을 타고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셨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찬양과 영광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의 공로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은혜로 말미암아”(행18:27) 믿음을 갖게 되었고, “은혜로”(롬11:5) 선택을 받았다.
아더 핑크의 [네 하나님을 알라] 책의 4장. ’모든 것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에서 일부 발췌
출처: 생명나무 쉼터 http://blog.daum.net/7gnak/15720750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첫째,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둘째, ‘미리 아신대로’ 내어주신 바 되었다. 예지의 토대는 하나님의 작정이다.
로마서 8장29절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구절은 바로 앞 구절과 긴밀히 연결된다. 그러면 바로 앞 구절의 내용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예지는 그분의 작정, 또는 목적에 근거한다(시2:7).
하나님이 미래의 일을 아시는 이유는 스스로 그 일을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사람들을 미리 아신 것 때문에 그들을 선택하셨다는 주장은 본말을 전도하는 것이자 성경의 순서를 거꾸로 뒤집는 것이다. 하나님이 선택하셨기 때문에 미리 아신다고 말해야 정확하다. 선택의 근거나 이유는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서 비롯한다. 하나님이 특정한 사람들을 선택하기로 결정하신 이유는 그들 안에 선한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분의 기쁘신 뜻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왜 선택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우리는 단지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눅10:21)라고 고백할 따름이다.
로마서 8장29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일부 죄인을 골라내어 구원을 주시기로 작정하셨다고 가르친다(살후2:13 참조).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라는 문구를 보면 그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미리 아신 자들을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신 것이 아니라,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 미리 정하신 이들을 “미리 아셨다(즉, 사랑하고 선택하셨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은 것은 예지, 예정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다.
하나님은 죄인이 믿을 것을 아시고 그를 선택하지 않으셨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기 전에는 그 어떤 죄인도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이 눈을 열어주시기 전에는 아무도 볼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시력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보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을 사용한 결과이다. 마찬가지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엡2:8,9). 믿는 것은 그 선물을 사용한 결과이다. 하나님이 특정한 사람들이 믿을 것을 아시고 구원을 베풀기로 작정하셨다면 믿는 것이 선물이 아니라 공로가 되며, 그런 경우에 구원받은 죄인은 ‘자랑할’ 빌미를 갖게 된다. 하지만 성경은 구원을 자신의 공로로 자랑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한다(엡2:9).
성경에 따르면 믿음은 공로가 아니다. 성경은 신자들을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행18:27)이라고 정의한다. 은혜로 믿음을 갖게 되었다면 믿음은 공로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또 믿음이 공로가 아니라면 선택의 이유나 근거가 될 수 없다. 하나님의 선택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이나 우리 자신으로부터 비롯하지 않는다. 선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달려 있다. 로마서 11장 5절은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라고 말한다. 이처럼 선택은 은혜이고, 은혜는 공로와 무관한 선물, 곧 우리가 하나님께 달라고 주장할 수 없는 순수한 선물이다.
지금까지 말한 대로 하나님의 예지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예지를 잘못 이해하면 하나님을 모독하는 생각을 고집할 수밖에 없다. 흔히 통용되고 있는 예지의 개념은 전적으로 부당하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결말을 꿰뚫고 계실 뿐 아니라 영원 전부터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결정하시고, 예정하셨다. 원인이 결과에 선행하듯이 하나님의 작정이 예지에 선행한다. 우리가 믿음을 갖게 된 이유는 하나님이 창세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셨기 때문이다(엡1:4).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신 이유는 우리가 믿을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선택하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불신앙의 본성을 타고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셨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찬양과 영광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의 공로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은혜로 말미암아”(행18:27) 믿음을 갖게 되었고, “은혜로”(롬11:5) 선택을 받았다.
아더 핑크의 [네 하나님을 알라] 책의 4장. ’모든 것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에서 일부 발췌
출처: 생명나무 쉼터 http://blog.daum.net/7gnak/1572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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