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예정 교리 ('교회와 신앙고백'에서 발췌) / 김영재 교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뜨이는 것은 제2장 하나님과 삼위일체에 관한 신앙고백에 이어 제3장에서 하나님의 예정에 관하여 신앙을 서술하고 있는 사실이다. 창조와 섭리, 인간의 타락과 죄와 형벌, 그리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람과 맺으신 계약 등에 관하여 진술하는 장들보다도 먼저 논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종교개혁 이후 16세기에 나온 개혁주의 신앙고백에서는 하나님의 예정에 관하여 간략하게 말하고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doxology)으로 고백하고 있는 데 비하여, 본 신앙고백서에서는 이중 예정, 즉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은 구원으로, 어떤 이들은 멸망으로 예정하셨음을 8개항에 걸쳐 자상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16세기말부터 만연되기 시작한 아르미니우스주의를 의식한 데서 온 것이다.

 

네덜란드에서는 이 즈음부터 신학과 신앙에 있어서 이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일기 시작했는데, 야곱 아르미니우스(Jacob Arminius, 1560~1609)는 예정 교리에 이의를 제기하였다. 그는 누구나 다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만인 구원설과 인간이 구원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사역에 협력해야 한다는 신인협동론을 가르쳤다.

 

  

1610년에 5개장으로 된 아르미니우스파 신조가 나왔다. 이에 개혁교회와 신학자들은 아르미니우스를 반대하고 예정교리를 옹호하기 위하여 네덜란드의 도르트에 종교회의(노회, synod)를 열어 도르트 신조를 내어놓았다. 이 회의에는 유럽 각처에서 이름있는 개혁주의 신학자들도 참석하였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영국적인 것이라고는 하나 이런 정통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 전통을 그대로 보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르트 종교회의(1618)는 예정, 그리스도의 죽음과 인간의 구원, 인간의 타락과 회심 및 그 방법과, 성도의 견인, 즉 하나님께서 택한 자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끝까지 견디시며 인도하시는 일에 관하여 5개조 93항에 달하는 신조를 작성함으로써 소위 칼빈주의 5대 교리를 내어놓았다. 그런데 도르트 신조는 예정이라는 특정한 교리를 변증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던 만큼, 제 1장에서 예정론을 18개항에 걸쳐 서술하고 있다. 

 

그러므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제 3장에서 예정론부터 다루고 있는 것 역시 그 시대의 신학적인 관심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신앙고백서의 균형을 위하여 잘 배열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 이전에 먼저 예정을 하셨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적인 귀결이지만, 우리가 인식하는 면에서는 그리스도의 그속의 은혜와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선행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설교하기에 앞서 하나님의 예정에 관한 설교부터 한다면 잘못인 것과 같다.  

 

예정에 관한 논의는 멀리는 어거스틴에게서, 그리고 가깝게는 칼빈에게서 온 것이지만,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는 예정론을 제 3권 제 21장에, 즉 구원론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언급하고 있음을 본다. 그것은 성경 가운데서 기독교의 교리를 가장 체계 있게 가르치는 로마서의 구성과도 같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은 성도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서 은혜로 말미암아 된 것으로 알 수밖에 없으며, 하나님께만 영광과 감사를 돌리지 않을 수 없다. 

 

로마서에는 하나님의 이중 예정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말씀이 있으므로 그 교리가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성경에 없다거나 잘못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 9장~11장에서 하나님께서는 구원하시는 모든 일을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선포하는 식으로 말씀하고 있지 않음을 본다.

 

이런 점에서 종교개혁 당시의 신앙고백서들이 예정 문제를 미숙한 듯이 다루고 있는데, 오히려 그것이, 성경이 그 진리에 관하여 말씀하는 것 이상으로 추론하여 체계화하며 강조하는 사변적인 정통주의 시대의 신학자들의 이해보다 더 온건하고 더 성숙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 신앙고백 제 1장 제 6항에서 진술하고 있듯이, 성경이 우리 생활의 세세한 일이나 예배의 형식이나 교회의 제도 등 분명하게 말하지 않는 부분에 관하여 우리는 성경 말씀을 따라 사색하고 추론할 수 있으며, 또한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창세 이전에 품고 게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관하여 추론하는 것은 피조물인 우리 인간에게 허락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말씀해 주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알 수 없다. 말씀에 의존하여 사색한다고 할 때, 우리는 사색의 대상을 분별해야 하고 그 한계점을 알아야 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11:33) 하는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에 대하여 경외하는 마음과 그 앞에서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정 교리가 구원 얻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께 오는 데 거침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이 예정의 교리는 언제나 신중히 다루어야 한다. 본 신앙고백서는 제 3장의 마지막 제 8항에서 예정 교리의 난해함과 그 의의 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8. 극히 신비한 이 예정의 교리는 특별한 분별력과 신중성을 가지고 다루어야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그 분의 뜻을 따르고 순종하여 실제로 부름을 받은 사실을 확신하며, 영원히 택함을 받은 사실을 확고히 믿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이 교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높일 수 있도록 해 주고 진실하게 복음에 순종하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근면하게 해 주며, 그들에게 풍성한 위로를 줄 것이다.  

 

 

김영재 교수의 "교회와 신앙고백" V. 개혁주의 교회의 신앙고백 7)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74~177p에서 발췌)



출처: 생명나무 쉼터/한아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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