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인을 치나이다.

대장쟁이 ㆍ 2014-02-19 (수) 16:57

[느헤미야 10장] "그 인친 자는 하가랴의 아들 방백 느헤미야와 시드기야, .........."


오늘 생각해볼 것은 우리에게 신앙생활이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입니다. 인간은 그 본질이 죄인입니다. 죄인의 본질의 하나는 연약함과 낡아짐과 부패함입니다.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육신은 무너지고 정신은 희미해지고 기억과 약속조차 변하고 사라지고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나이 들고 몸이 늙고 치매로 기억을 상실하고 마음과 정신마져 무너져내리는 것이 죄인의 본질 중 하나인 것입니다. 이러한 늙음과 후패함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처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죄(원죄)를 범한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서 얻은 저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노쇠와 연약함을 가지고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러한 죄인이 된 것을 하나님 앞에 송구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과 도우심을 간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로원에서 노인들을 돌보는 일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 많습니다. 모세처럼 늙어서도 온전한 육신과 마음을 지키다가 가는 것은 축복 중에 축복일 것입니다. 그러나 노인들은 몸과 마음이 함께 허물어져 내립니다. 앙상하게 노쇠한 육신은 수발을 받아야 하고 기억과 마음은 치매증세를 보이며 함께 피폐해 집니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죄인의 몸을 입고 사는 것을 우리가 어찌 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소망하노니 그 날이 오면 새 몸을 입으리다. 그 날이 오기까지 이 연약한 몸이 하나님을 잊지 않게 하시고 나의 심령을 날로 날로 새롭게 하소서.” 이것이 죽는 날까지 우리의 기도제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늙기도 전에 은혜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떠나고 악을 행하는 인간들이 많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하는 악(惡)이로구나 싶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 자기들의 에녹성을 짓고 하나님을 잊고 대적하며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홍수가 임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습니다. 하나님 앞에 살면서조차 불순종하며 악을 행하였습니다.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고, 홍해바다를 건너게 하시고, 광야에서 마라의 쓴물과 엘림을 보이시고, 만나와 메추라기, 불기둥, 구름기둥, 그리고 시내산의 화염과 말씀 돌판, 반석의 물, 성막, 그리고 많은 사건들을 통하여 백성들이 잊을래야 잊을 수 없도록, 그렇게 그들의 가슴에 새기듯 하나님을 각인했건만 그들은 가나안 땅을 얻는 순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잊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대적들에게 파셨고 백성들은 고통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 때마다 사사를 일으키셔서 구원하셨는데......., 문제는 그것이 계속 반복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왜 인간의 패역이 반복되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언약의 도장을 팍, 찍으셨지만 인간들은 그것이 가슴에 팍, 찍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무리 찍어도 잊어버리고 다시 후패하는 것이 죄인의 본질이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 8장에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나서 모든 백성들이 모여 에스라에게 율법책 낭독을 청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울며 통회하며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초막절을 지키는 감격적인 회복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모여서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하며 서원합니다. 느헤미야 9장에서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열조들이 반복해온 범죄를 자복하며 그 조상들과 그들을 하나님께서 자비와 긍휼로 지켜 오신 것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9장 마지막 절 38절을 보면 “우리가 이 모든 일을 인하여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을 치나이다.” 하며 하나님 앞에서 서약을 합니다. 인을 친다는 것은 문서를 작성하고 거기에다 도장을 찍는다는 말입니다. 도장을 찍어서 다시 잊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10장 1-27절은 그 인 친 자, 도장을 찍은 자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28절부터 그 나머지 백성들, 제사장, 레위인, 문지기, 찬양대, 느디님 사람들,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심한 사람들, 그 가족들은 저주로 맹세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저주를 당하겠습니다,” 하는 무서운 결단입니다. 그 맹세의 내용을 보면, 자녀들을 이방사람들과 혼인시키지 않겠다, 안식일과 안식년을 지키고 빚을 탕감해 주겠다, 연수입 3분의 1을 하나님 전을 위하여 사용하여 제사가 끊이지 않도록 하겠다, 첫 열매. 첫 소산, 첫 생축, 처음 익은 곡식, 과일, 새 포도주, 기름, 그리고 십일조를 드리겠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는 세부실천사항들입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백성들이 감격과 기쁨 가운데 하나님 앞에서 초막절을 지키며 그들이 다시금 맹세한 것은 “잊지 않겠습니다, 잊지 않기 위하여 이렇게 하겠습니다.” 하는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초막절의 감격, 구원의 감격, 하나님 앞에 나아온 기쁨이 단회성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잊어버리는 인간의 속성과 약점으로 인하여 반복되는 죄로 연결될 것입니다. 물론 십일조나 절기나 규례와 율례를 지키는 것으로 구원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규례와 율례가 잊지 않게 그들을 붙잡아 줄 것입니다. 그렇게 그들은 결사적으로 스스로에게 인을 쳤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그들이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기 힘쓰고 아침저녁 소제를 드리며 안식일과 절기를 지키려고 애쓴 것은 매 순간마다 날마다 그렇게 함으로써 연약한 죄인의 심성이 하나님을 떠나서 부패하지 않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이같이 겸손하게 우리의 죄인이라는 본질을 깨닫고 날마다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 앞에 시간과 물질과 삶을 드리며 날마다 심령을 새롭게 하는 삶을 살기 힘쓰며 주님께로 가까이 나아가기를 힘쓰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이것이 인을 치는 일일 것입니다. 이것이 죽는 날까지 우리에게 규칙적인 신앙생활이 필요한 이유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들처럼 율법을 지키고 제사를 드리고 절기를 지켜서 인을 치지 않습니다. 스스로 결단하고 스스로 그런 인 쳐봐야 소용 없습니다. 쳐지지도 않습니다. 구약시대의 그들은 그렇게 스스로에게 인을 쳤지만 우리에겐 성령님께서 인을 쳐 주셨습니다. 우리의 육신이 늙어 후패해지고, 결단도 희미해지고, 기억도 사라지고, 마음도 무너져내린다 해도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치신 인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놀라운 일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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