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놀이, 이자놀이

대장쟁이



[느헤미야 5장] 때에 백성이 그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 형제 유다 사람을 원망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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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돈벌이 방법이 돈놀이, 이자놀이라고 합니다. 만일 2,000년 전 예수님 탄생 때 야구방망이 만 한 금덩이를 가지고 연리 5% 이자로 꼬박꼬박 불려나갔다면 2,000년이 지난 지금 그 금덩어리는 지구보다 더 커졌을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이 어려서부터 자녀에게 교육하는 것이 돈놀이, 곧 이자의 무서움, 이자의 위력이라고 합니다. 아이 이름으로, 예를 들어, 1,000 달러를 가지고 채권이나 확실한 금융상품을 사게 합니다. 만일 연리 10% 짜리 금융상품을 샀다 치면 10년 뒤에는 2,593불, 20년 뒤에는 6,727불, 30년 뒤에는 17,449불이 됩니다. 30년 만에 17배로 늘어나는 것입니다. 또 매달 아이로 하여금 10달러씩 적금 붓듯이 꼬박꼬박 금융투자를 하도록 하여 20년, 30년 뒤에 얼마나 불어나는지를 체험하도록 합니다. 돈을 빌리고 이자를 무는 경우와 반대로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경우의 극명한 대비를 통하여 재산을 모으는 자세와 재테크 방법을 철저히 교육하는 것입니다.

‘72법칙’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72는 복리이자로 원금이 두 배로 불어나는 기간을 쉽게 계산하는 숫자입니다. 예를 들어 연리 8% 이자율이라면 72 나누기 8 = 9, 즉 9년이 지나면 원금이 두 배로 늘어나는 것입니다. 만일 연리 8% 이자로 모기지를 내어 집을 사고 30년 동안 상환한다면, 9년 동안 모기지 내는 돈으로 만일 거꾸로 저축을 한다면 2배로 늘어나는 돈을 반대로 갚는다는 계산이 되고, 18년 뒤에는 4배, 27년 뒤에는 8배라는 계산이 되므로 30년 동안 갚는 모기지 상환총액은 빌린 돈의 거의 10배에 달하는 결과가 된다는 계산이 됩니다. 연리 8%만 해도 이렇게 큰데 보통 크레딧카드 회사들이 물리는 이자 연리 16% (연체이자는 24%도 됩니다만) 정도를 가지고 계산한다면 72 나누기 16 = 4.5, 곧 4년 반마다 2배, 9년이면 4배. 13.5년이면 8배, 18년이면 16배, 22.5년이면 32배, 27년이면 64배라는 기하급수적인 속도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이 이자놀이인 것입니다. 그래서 기업들은 결사적으로 금융기관을 장악하려 하고 크레딧카드 회사들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제가 자라던 60년대, 70년대에 일수놀이가 성행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돈이 급히 필요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데 선이자 10%, 20%를 떼고 나서 100일 동안 갚도록 합니다. 석 달 열흘 만에 이자 10%, 20%이니까 대단한 고리채였습니다. 그래서 일수놀이 하는 아줌마는 악바리 같은 무서운 사람이었지요. 또 전당포도 많았습니다. 돈이 급하면 시계나 보석, 옷 같은 물건을 맡겨놓고 돈을 빌리는데 이자가 비쌌습니다. 결국 돈을 갚지 못 하고 물건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오늘날도 참 많은 사람들이 이자에 매여서 살고 있습니다. 크레딧카드 대금, 자동차할부금, 집 모기지, 학자금......  주위에 빚 없이 살고 있는 사람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매달 모기지를 내며 크레딧 카드 미니멈 페이먼트를 내며 허덕이는 서민들은 마치 중세시대의 소작농 같은 모습 같다 싶기도 합니다.

빌려주고 담보잡고 이자 받는 돈놀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가 깊습니다. 그 옛날 애굽에도 있었고, 그래서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를 따라했던 것 같습니다. 소위 알토란같은 금융투자와 재테크입니다. 이런 이야기하니까 여러분도 귀가 솔깃합니까? 여러분도 이렇게 현명하고 지혜롭게 투자하여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까?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이것이 옳은 일일까요? 오늘날 자본주의, 자유경제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이것이 옳고 정당하다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돈놀이, 이자놀이는 그 놀이를 하는 편에서 보면 “신나는 돈벌이 게임”이지만 살기 위해 그 돈을 써야 하고 이자를 물어야 하는 편에서 본다면 올가미요 족쇄요 피를 빠는 노예제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자놀이를 금하셨고 토지소유를 금하셨습니다. 토지를 안식년에는 쉬게 하고 희년에는 원상복귀토록 함으로써 땅이 하나님의 것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2장 25-7절 = 네가 만일 너와 함께한 나의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이거든 너는 그에게 채주 같이 하지 말며 변리를 받지 말 것이며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 몸을 가릴 것이 이뿐이라 이는 그 살의 옷인즉 그가 무엇을 입고 자겠느냐 그가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들으리니 나는 자비한 자임이니라.
그러나 근본이 죄인들인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어디에서나 이러한 돈놀이, 이자놀이 하기를 좋아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쌓는 이때에도 그러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백성이 그 아내와 함께 그 형제 유다사람들을 원망하는데 “먹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살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재산을 전당 잡혀야 합니다. 토지를 팔고 빚내어서 세금을 냈습니다. 우리 자녀가 종으로 팔려가도 이제는 토지가 없으니 속량할 힘조차 없습니다.”는 한심하고 가련한 처지들을 하소연합니다. 오늘날 이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같은 동족인 유대인들끼리 이런 돈놀이 이자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참상을 듣고 느헤미야는 크게 노하여 귀인들과 민장들을 꾸짖고 전당잡힌 것들을 돌려주고 이자 받은 것을 돌려주도록 합니다. 귀인들과 민장들 앞에서 옷자락을 떨치면서 “만일 이와 같이 한다면 하나님께서 이같이 떨치시리로다.” 하면서 받은 것을 모두 돌려주고 이자를 받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게 합니다. 그리고 느헤미야 자신이 12년 동안 총독을 하면서도 총독의 녹을 먹지 아니하며 오히려 베풂으로써 솔선수범합니다.

저도 소원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톰 싸인이 자신의 책 “맥월드 vs 머스타드 씨드”에 쓴 것처럼 교회가 젊은 사람들에게 이 시대의 이자와 모기지의 족쇄를 벗고 자본주의와 금융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할 수 있기 원합니다. 느헤미야를 부요케 하시어 12년 동안 자비량 하며 오히려 베풀었던 그 축복이 이 교회에도 임하기 원합니다. 저와 여러분과 우리교회를 풍성케 하사 우리도 느헤미야처럼 할 수 있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목사가 이러한 생각을 한다니까 이상합니까? 그렇다면 느헤미야도 이상하겠군요. 우리는 천국에 가면 한없는 풍성함을 누릴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천국의 모습을 이 땅에서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시고 천국의 풍성을 맛보도록 허락하시고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을 만인에게 보이도록 하는 축복을 기뻐하신다고 믿습니다.  

아무튼 느헤미야의 이러한 결단과 과감한 조치는 돈놀이 이자놀이로 착취하고 착취당하고 원망하고 분열되고 있던 귀환백성들을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힘을 합쳐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데 하나로 뭉치게 합니다. 교회 안에서 돈거래는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형제에게 꾸어주되 이식을 취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도울 힘이 있으면 힘껏 도울 것이며 내미는 손을 거절치 말라 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주의 백성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모든 재산을 내어놓고 필요에 따라 나누어 썼습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 주의 백성이 이루는 하나님 나라의 모습일 것입니다. 교회는 물론, 온 세상이 이같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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