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대장쟁이

[느헤미야 4: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퇴락한 곳이 수보되어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하여


온 세상이 전도와 선교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대적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때로 놀랍니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입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을 싫어하고 기독교를 대적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느헤미야 때도 그랬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 아라비아 사람들, 암몬 사람들,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고 보수되어간다는 말을 듣고 심히 분노합니다. 왜 그들이 분노한단 말입니까? 자기들에게 무슨 피해가 있는 것도,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화를 내고 대적한단 말입니까? 이유가 안 됩니다. 이것은 우상숭배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악한 영의 역사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안 됩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기독교, 아니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독교에 대한 대적과 탄압을 보십시오. 불교와 천주교는 서로를 대적하지 않습니다. 천주교의 수녀, 불교의 비구니, 천도교의 정녀들이 사이좋게 모여서 만들어진 삼소회도 있습니다. 이슬람 사원이 들어서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해괴한 무속신앙과 점집과 우상들이 나라를 뒤덮어도 그들 사이에는 별 싸움도 없고 별 말도 없습니다. 오직 기독교에만 손가락질과 지탄과 훼방과 대적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들에게 아무런 손해도 없는데 사랑과 도움으로 그들에게 다가가는 기독교를 향하여 이유 없는 분노와 폭력과 조롱과 비웃음을 퍼붓는 현상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타락한 인간에게 공통적으로 있는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본성’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주를 믿는 자는 대적들의 한 가운데 던져진 외톨이 군병이거나 적으로 둘러싸인 외딴 성과도 같습니다. 하나님께로 오는 자 보다 하나님을 싫어하는 자의 수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그 혹독한 재앙과 진노 가운데서도 끝내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대적하는 자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용, 곧 옛뱀이요 마귀요 사단을 잡아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인봉하고 천년왕국을 다스리시는데, 천년이 차면 사단이 그 옥에서 잠깐 놓여나와서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는데 그 수가 바다 모래 같고 그들이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마귀는 불과 유황불에 던져진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년왕국의 끝에도 그토록 많은 수가 하나님의 도성을 에워싸고 대적한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택한 자의 수는 적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더욱 귀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 주의 성도들의 외로운 싸움, 고군분투는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느헤미야는 대적들 가운데 던져진 것 같은 상황에서 성벽을 수축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당하는 피할 수 없는 싸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대적들 앞에서 유대사람들은 낙담하고 힘이 빠집니다. 도저히 성벽을 세울 수 없다고 체념하려고 합니다. 대적들의 위협에 겁을 먹고 열 번이나 와서 구해달라고 합니다. 이러한 유다 사람들에게 느헤미야는 “대적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고 독려합니다. 그렇습니다. 싸우지 않으면 죽습니다. 물러설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싸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파숫군을 세우며 백성들을 무장시켜 대기시키고 든든히 방어하도록 합니다. 한 손에 무기를 잡고 한 손으로 일하는 치열한 싸움을 이끌어갑니다. 그 때 하나님은 함께 하셔서 대적의 꾀를 폐하시고 성벽을 수축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기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도성은 싸움으로 세워집니다. 우리의 신앙, 우리의 구원도 싸움으로 시작됩니다. 주님께서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싸움, 곧 불을 던지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12:49) 주님을 영접하는 순간 부모자식간, 형제지간이라 할지라도 그 싸움은 시작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만 영접하면 구원이 이루어지고 평화가 얻어질 것 같이 생각하기 쉬운 우리에게 그것은 충격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싸움 없이 얻어지는 승리 없고 피 흘림 없이 이루어지는 생명은 없습니다. 이 땅에서의 주님의 생애 또한 처절한 싸움이었습니다. 대적들과의 싸움, 십자가의 승리를 막으려는 마귀의 유혹의 치열한 싸움을 주님은 끝내 싸워 이기시고 “다 이루었다.”고 승리의 선언을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대적의 수가 바다모래같이 많다 해도 승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승리는 우리것입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기꺼이 복음을 들고 용감하게 달려나가 분전하여 이기는 승리의 기쁨을 택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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