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까지

대장쟁이

[느헤미야 6: 15-16]
성 역사가 오십 이일만에 엘룰월 이십 오일에 끝나매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


1960년대, 우리나라가 아직 6.25전쟁의 폐허 위에서 허덕이던, 국민소득이 100불도 안 되던 세계최빈국이었던 때, 복싱 세계챔피언이 나온다는 것도 아득한 꿈만 같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서강일이라는(지금은 70세가 넘으셨겠지요) 뛰어난 선수가 있었는데 세계챔피언 도전에서는 번번이 좌절하였습니다. 미국에서 벌어진 시합에서 미국선수에게 지던 그 중계방송을 들으며 안타까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 김기수 선수가 아시아 챔피언이 되자 국민적 영웅이 되었으며 “내 주먹을 사라.”는 영화도 찍어 인기스타가 되었고, 1967년엔가 그 김기수 선수가 이탈리아 선수 벤베누티를 이기고 대한민국 최초로 세계챔피언이 되자 온 나라가 환호성으로 뒤집어지다시피 했습니다.

1970년대 들면서 아시아 최강 유재두 선수가 등장하였고, 홍수환 선수가 남아공에서 세계챔피언전에서 이기고 국제전화로 어머니에게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하고, 어머니는 “그래, 그래, 장하다 내 아들, 대한국민 만세다(대한민국이 아니고 대한국민).” 하던 대화가 온 국민이 지금도 기억하는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 홍수환 선수는 또 파나마에서 지옥의 사자라고 불리던 카라스키야 선수에게 네 번이나 다운을 당하고도 다섯 번 째 일어나 카라스키야를 침몰시킨 4전5기의 신화를 만들어내어 텔레비전 앞에 모인 국민들을 열광하게 하였습니다. 못 먹고 못 살 던 그 시절 라디오와 흑백TV앞에서의 환호성....... 지금은 지나간 옛이야기이지요.

복싱의 묘미의 하나는 얻어맞아 다 쓰러져가던 선수가 포기하지 않고 회심의 한 방으로 상대를 쓰러뜨려 역전승 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복싱뿐이겠습니까? 모든 경기가 다 그렇지요. 야구도 다 진 것 같던 경기를 9회말 2사후에 뒤집어 역전승을 연출하는 것이 가장 짜릿하고, 미식축구나 농구나 축구나 그 어떤 운동경기도 불굴의 역전승이 가장 멋있고 재미있습니다. 운동경기만 아니라 무술영화나 전쟁영화도 다 죽어가던 주인공이 마지막 힘을 내어 최후의 일격으로 상대를 쓰러뜨려 이기는 것이 재미있고, 우리의 인생살이도 포기하지 않고 역전승하는 최후의 승리가 멋있습니다. 싸움이란 완전히 끝나야 끝나는 것이고 최후의 승리자가 진정한 승리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스포츠이든 세상살이든 주의 일이든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싸우고 최선을 다 해야 하는 것입니다.

스포츠 이야기를 해서 좀 이상하긴 합니다만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겨내는 싸움이란 결국 상대와의 싸움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고통을 이겨내는 싸움, 자신의 내부와의 싸움, 자신을 이겨내는 싸움인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느헤미야의 싸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것은 외부의 대적들을 향한 싸움이었지만 동시에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고 내부의 적을 물리치는 싸움이기도 하였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 무리의 위협과 훼방 속에 한 손으로 무기를 잡고 한 손으로 성벽을 쌓으며, 내부적으로는 동족에게서 고리채 이자를 받고 자녀를 종으로 취하는 악행과 싸우는 악전고투, 그리고 끝없이 밀려드는 두려움과 외로움과 의심의 먹구름, 낙담과 좌절과 고통의 가시밭길을 극복해야 하는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싸움은 대적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 무리는 끝까지, 예루살렘 성벽재건의 역사가 거의 마무리되는 시점까지도 느헤미야에게 편지를 보내 오노평지에서 만나자 하고, 왕이 되려고 한다는 모함을 하고 소문을 내고, 살해위협을 하면서 제사장을 매수하여 느헤미야가 성전에 가서 숨어야 자객으로부터 살해당하는 것을 면할 것이라는 거짓예언을 하게 하는 등 얻어맞아 죽어가면서도 역전승을 노리는 선수같이 끝까지 악착같이 갖은 훼방과 술수를 멈추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둘레 4마일에 이르는 예루살렘 성벽재건의 역사가 52일 만에 완전히 끝나자 그제야 두려워하고 낙담하였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수마귀는 우리가 주님의 품에 안기는 순간까지 우리를 넘어뜨리려는 갖가지 훼방과 유혹과 위협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싸움을 마치고 하나님의 영원한 도성에 이르러 영광의 면류관을 쓸 때, 그 때에야 비로소 두려워하고 낙담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끝까지 믿음의 싸움과 경주를 하였습니다. 우리를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우리도 이같이 끝까지 달려 승리하기 원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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