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밥

최송연의 신앙칼럼 2014. 5. 25. 02:55



하얀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아직은 메마른 들녘, 낮으막한 산등성이를 따라 진달래꽃 철죽꽃이 다투어 피기 시작하고, 노란 개나리꽃이 덮인 울타리 너머로 아지랑이 아른거리는 이른 봄이면, 나는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에 눈물 짓곤 한다.
 
어린 시절 나는 몸이 유난히도 약했다. 태어나서는 그렇지 않았다고 하는데 자라면서 어찌된 셈인지 입이 까탈스러워졌고 입이 까다로우니 제대로 먹지를 않아 약한게라고 어머님께서는 늘 핀잔을 주셨던 것이다.
 
그랬습다. 육미는 육미의 그 특유한 냄새가 싫었고, 생선은 생선대로 비려서 싫고, 계란은 그 속에 병아리가 있다기에 징그러워서 먹기 싫었다. 그러다 보니까, 몸은 바싹 여윈게 눈만 커다랗게 보인다고 언니와 오빠는 놀려대었다. 요즘이야 다이어트 미인들이 인기라, 날씬해지려고 젊은 여성들이 심한 다이어트식을 하다 영양실조 현상으로 노인들에게나 있을 법한 골다공증도 걸리고 다이어트 증후군으로 고생들을 한다지만, 필자가 어릴 적만 해도 통통하게 살이 찐 것이 부티(귀티)가 난다 하여 흠모의 대상이 되었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런 때였으니, 약하디약한 내가 우리 어머니에게 무척 근심거리였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나의 입맛을 돋워 주기 위해, 봄이면 우리 집 식탁에 자주 올라오는 메뉴는 비빔밥과 아기 쑥국이었다. 하얀 무와 빨간 홍당무는 송송 채 썰고, 도라지와 고사리는 미리 삶아 물에 불려두었다 건져 내어 따로따로 참기름에 살짝 볶고, 소금물에 새파랗게 데쳐 낸 시금치와 콩나물은 참기름과 깨소금을 듬뿍 넣고 조물조물 버무린다. 계란은 노랗게 지단을 부쳐 썰어놓고, 잘게 다져 양념하여 달달 볶은 소고기를 예쁘게 순서대로 하얀 밥 위에 올려놓은 다음, 거기다 고추장과 참기름을 한 숟갈 듬뿍 집어넣고 썩썩 비벼주면 아주 개운한 맛이 일품인 비빔밥, 무엇보다도 짙은 밤색 빛 고사리를 선두로, 빨강, 파랑 하양 노랑 이렇게 가지각색의 고운 색상이 한데 어우러져, 보기만 해도 어린 나의 입맛을 돋우고 거기다 고추장과 참기름은 고기의 특유한 냄새를 제거해 주니 좋았다.
 
어린 딸이 잘 먹는다고 그 바쁘신 와중에도 비빔밥을 자주 만들어 주시던 어머니의 따스하신 그 사랑의 손길이 그리워, 이 나이가 되어도 진달래 피기 시작하는 봄이면 눈가에 이슬이 맺히곤 한다.
 
내 기억에 소중한 비빔밥, 이 비빔밥은 우리나라 민속 음식으로서 다섯 가지 이상의 야채가 들어가고, 인체에 필요한 모든 영양소를 골고루 함유하고 있다는 계란이며, 곡물에서 추출하는 생명 원이랄 수 있는 탄수화물, 거기다 단백질 원이 되는 소고기마저 곁들이면, 밥맛이 없는 노약자에게 더없이 훌륭한 영양식이며 건강한 사람에게도 별미로서 아주 좋은 음식이다. 이 비빔밥을 처음으로 언급한 문헌은 1800년대 말엽의 '시의전서'로, 비빔밥을 "부븸밥"으로 표기하고 있다고 하니 과연 그 비빔밥을 일컬어 가히 민족 음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비빔밥의 특징은 각종 음식의 혼합물이란 데 그 의미가 있고, 입맛을 돋우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요즘 교회들이 진리를 떠나 각종 사이비에 노출되어 있다. 그 원인이 어디 있을까? 그것은 입맛이 까탈스럽고 병든 성도들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고, 어떻게 하든, 그 병들고 까탈스런 성도들의 입맛을 맞추어 주려는 시도로 부흥강사들이 이런저런 혼합된 이야기들을 말씀 속에 섞어서 양떼들에게 먹이기 시작 한 데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희극배우인지 목사님인지 알 수 없는 어릿광대 같은 부흥강사들의 섞어 복음을 맛있다고 넙죽넙죽 받아먹는 철없는 성도들을 바라보는 목자들이 너도나도 그들, 부흥강사들의 흉내를 내기 시작한 것 같다. 복음을 변질시켜 먹이는 것임에도 그것이 부흥의 지름길이라면 마다치 않고 받아들인다!

오늘 아침 기도 중에 현대 기독교는 ‘비빔밥’같은 설교를 즐겨 듣고 전하는 것, 그 혼합된 비빔밥 같은 설교와 사상을 버려야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갑자기 떠오르게 하신다.
 
주님께서는,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신 22: 9 절),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신 22: 11절),”, 또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육축을 다른 종류와 교합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레 19:19절 말씀).”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심이 가시적인 우리의 육신을 위해서 말씀하심이 아닐 것이다.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실제로 우리가 두 가지 재료로 섞어 짠 옷을 입지 말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다. 이 말씀은 영적인 해석을 기초로 풀어야만 그 뜻이 정확해진다. 우리 주님께서 염려하시는 그 염려는 불가시적이며 영원한 우리의 영혼이기 때문이다! (고전 9: 9절 참조)
 
씨앗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밭은 인간의 마음이라고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마 13: 13, 막 4:3, 막 4; 26-27, 눅 8: 5-11절 참조) 한 밭에 두 가지 씨앗을 뿌리지 말라고 하신다. 진리는 여러 가지가 아니다. 진리는 단 하나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아닌 다른 사상을 예수님의 말씀과 혼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옷도 두 가지 직조를 섞어 짠 것을 입지 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희어진 세마포 이외는 입지 말라는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간의 육이 먹어야 할 음식은 여러 가지 영양소가 필요하기에, 여러 가지 음식을 많이 혼합하여 섞으면 섞을수록 좋다. 다시 말해, 육신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영양소가 혼합된 비빔밥이 건강에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영혼의 양식만은 비빔밥 같은 사상이나, 교리를 섞어 혼합하지 말아야 한다. 영혼이 살 수 있는 음식은 단일 식품, 오직 성경말씀 신구약 66권 뿐이다!!
 
우리의 영혼이 살 찌고 성장하려고 하면 단일식품이랄 수 있는 성경만을 그대로 풀어 먹여야 하고 먹어야만 산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또, 사도행전 4:12에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만이 길이요, 생명이며 구세주가 되심을 믿어야 하고, 바로 전해야 한다. 우리가 믿어야 할 하나님은 유일하신 신이시다.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일체시며 영원하신 영적존재시다.(마3:13-17;28:19;고후13:14) 그 성품으로서는 사랑이 풍부하시며 각 개인의 사사로운 일까지도 매우 깊은 관심을 두고 계시는 자상하신 분이시다.(마11:28;시50:15)
 
WCC의 종교혼합정책, 현대신학의 종교다원주의, 포스트모던 신학적인 경향, 뉴에이지운동, 에큐메니칼운동 등등…우리의 영혼을 죽이는 비빔밥 같은 종교다원주의가 곳곳에서 기세를 떨치고 있다. 우리는 그들을 경계해야 한다. 사실상 WCC와 종교다원주의, 이 사상가들의 시초는 힌두교 신학자들이었음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결코 그들의 神과 손잡을 수 없는 것이다! 종교는 모두 하나로 통합되어야 한다니? 결코 그럴 수 없다! 비빔밥은 나의 육신은 살릴수 있을지 모르지만, 혼합된 영성은 나의 영혼을 죽이는 독극물이다! 주께서는 밭에 두 가지 씨앗을 뿌리는 것을 금하셨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절 말씀).",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잘 말씀)."
 
출처: USA아멘넷/별똥별 최송의 신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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