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의 추억 만들기

 

 

장대비가 주르륵거리며
쏟아지는 날이면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도
고향 집 처마 밑 넓은 대청마루가,
그리고 울 엄마가 생각나서
그리움에 눈물짓곤 한다.

 

어머니는 이런 날이면
종종 부엌에서
감자 밀가루 수제빗국을
끓여주곤 하셨지

멸치와 다시마를 듬뿍 집어넣고
잘 다려낸 국물에
껍질을 벗겨 굵직굵직하게 썬 감자와
모시조개를 함께 넣고 끓이다가

감자가 다 익을 때쯤이면
곱게 반죽한 밀가루를
손으로 숭숭 뜯어 넣고
다시 한 번 더 보글보글 끓여준다.

 

다 익은 수제비가 동동 ...
물 위로 올라와 뜨게 되면,
곱게 채를 썰어 두었던 애둥이 호박이며
송송 잘게 썬 파와
곱게 다진 마늘을 넣고 소금 간을 해서
한 번 휘~ 저은 다음,
넓은 그릇에 담아 상 위로 올려놓는다.
 
수제빗국이 다 된듯하면
방에서 숙제를 하다말고
언니와 나는 대청 마루로 우르르...

반찬이라곤 깍두기 한 접시뿐이건만
임금님 상의 진수성찬보다 더 맛나다.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한 숟가락 푹 떠서
후후 불어대면 하이얀 김이 모락모락....


음~

비가 내리고 출출한 날이면
따끈한 감자 수제비 국을 끓여주시던
사랑의 어머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릴 위해
수고하시던 아버지, 두 분 모두
천국으로 가시고 계시지 않는다....

그분들은 더 이상 이곳에 계시지 않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장대비는 여전히 처마 끝을 타고 흘러내리네...

 

빗소리를 들으며,
컴퓨터 앞에 앉아 원고 정리를 하던 나는
갑자기 어머니 아버지 얼굴이 스쳐 지나가며
수제빗국의 그 구수한 향내가 스멀스멀

코끝을 간질이며 등줄기를 타고흐른다.

두리번거리며 살펴보지만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어머니 아버지...
나는 컴퓨터 파워를 끄고
슬그머니 일어나
앞치마를 주섬주섬 걸치고 부엌으로 향했다.

 

비가 주르룩 거리는 이런 날,
컴퓨터 앞에 붙어 앉아만 있기엔 너무
삭막하지 아니한가?

따끈하고 시원한 국물이 일품인
감자 밀가루 수제빗국을
나도 한 번 준비해 보아야겠다


내 아이들에게
빗속의 추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

언젠가는 나 또한 사라지고
오늘처럼 비 내리는 날이면
내 아이들 역시 감자 밀가루
 수제빗국이라도 숭숭 뜯으며
 이런 나의 사랑을

오래도록 기억해 주길 바라며 ...


: 별똥별/최송연의 목양연가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중에서

 

 

*이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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