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소라 본문, 그리고 70인역의 원문에 대한 간단한 이해자료 (2) | 주니(joonie76)

 

조금 더 자료를 인용해 볼까요..?... 쿰란 사본의 발견은 주전 3세기부터 주후 1세기 사이에 구약 성경이 여러 가지 다른 형태로 존속하였음을 잘 증명해주고 있다. 칠십인역이나 사마리아 오경이 맛소라 성경과 다른 점이 있다는 사실도 반드시 번역 및 전수상의 오류나 고의적 변경 등을 가지고만 설명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들의 차이점은 얼마든지 성경 전수상 다른 전승을 대변해줄 수 있으며 또 실제로 대부분 차이점에 있어서 그러하기 때문이다. (중략)... 맛소라 성경은 유대인 학자들이 모여 새롭게 편집해낸 인위적 작품이 아니요 기존의 여러 성경 사본 중 가장 잘 전수된 사본 하나를 골라 그것을 표준 전통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표준 성경이 정해진 후 이와 전통을 달리하는 사본들은 하나씩 하나씩 '게니사'에 묻히게 된다. ('게니사'란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 있는 성경 기록을 함부로 파기할 수 없어서 이들을 별도로 보관해 두는 장소를 가리킨다.) 그러나 칠십인역과 사마리아 오경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되어 있어서 서기관들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이러한 응급 사태 때문에 일부 유대인들은 칠십인역이 열 두 지파를 대표하는 72인의 장로에 의하여 번역된 것이 아니라 다섯 사람에 의하여 번역된 것이라 하며, 토라는 번역문에 있어서 적합하게 재현될 수 없으므로 칠십인역이 완성된 날은 마치 이스라엘 자손이 참 하나님을 금송아지의 형상으로 바꾼 날과도 같이 불행한 날이라고 선언하였다. (Massecheth Sepher Torah I; Sopherim I 7) 이러한 혐오감은 후에 칠십인역이 완성된 날을 테벧월 8일로 정하여 민족적 재난을 표현하기에 이른다. (중략)

 

칠십인역을 하나의 통일적인 사본 내지 본문으로 이해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맛소라 성경과의 관계라는 점에서 볼 때, 칠십인역의 출애굽기는 칠십인역의 창세기와는 다르다. 후자가 맛소라 성경과 같거나 비슷한 본문을 대변해주는 반면, 전자는 맛소라 성경과는 전혀 다른 히브리어 대본(Hebrew Vorlage)을 반영하고 있다. 칠십인역 예레미야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보다 넓은 개념의 사해 사본 내지 보다 좁은 개념의 쿰란 사본도 마찬가지이다.

 

사해 사본 내지 쿰란 사본은 하나의 성경 사본도 아니요, 같은 종류 사본들의 집합체도 아니다. 물론 쿰란 외에 맛사다, 나할 헤베르, 와디 무라바아트 등지에서 발견된 사본들은 동일 집단, 곧 맛소라 성경 계열에 속한 사본들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쿰란 사본에 대하여는 이러한 주장이 전혀 적절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출처: 개혁주의마을/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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