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이 너를 울게하는가?

최송연의 신앙칼럼 2015. 10. 30. 01:22

 

 

사진: 큰뒷부리도요새

얀 반데 캄 (생태사진전문가, 네덜란드)

 
누가 심었을까? 방조제를 가로지르는 길가에 가녀린 소녀의 자태처럼 청초하기 그지없는 코스모스가 해맑은 미소를 머금고 다소곳이 줄지어 선 채 살랑살랑 춤을 추며 피곤함에 지친 여행객을 반갑게 맞아준다. 방축으로 된 도로의 양면이 모두 시퍼렇게 출렁이는 바다이다.
 

새만금, 그 어마어마하고 웅장한 모습에 놀라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벌어졌던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게 쭉 곧은 교각 위 단정한 도로를 따라 얼마쯤 들어가니 전망대가 나오고 전망대 입구에 서있는 거대한 천사의 석고상이 아직은 때 묻지않아 새하얗게 눈부시다. 우리나라 지도를 바꾸고 있다고 하는, 이 새만금 방조제는 네덜란드의 주디찌 방조제(32.5km)보다 더 긴 33km이며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기네스북에 올랐다고 한다. 말로만 듣던 새만금 그 위용은 정말 대단했다.

전망대를 벗어나 한참을 더 달려가니, 눈앞에 보이는 둑길 제방 저 너머로 끝없이 펼쳐지는 평야가 평화로워 보인다. 그곳 들판에는 소란한 세상 소리, 자동차 소리를 아는 듯 모르는 듯, 벼알은 가을 땡볕 아래서 황금빛으로 무르익어 고개를 숙인 채 바람결을 따라 부드럽게 일렁거리고 있었다. 조금 더 가자니, 넓디넓은 갯벌, 이미 메말라버린 거전갯벌에는 바다식물 나무 제가 듬성듬성 흩어진 채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고 있는 광경도 눈에 들어왔다.

바다를 메워 육지를 만들고 거기에 경제와 산업, 관광을 아우르면서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비상할 녹색 성장과 청정생태환경의 “글로벌 명품 새만금’을 꿈꾼다고 하는 곳, 이명박 대통령은 "새만금 방조제는 단순한 방조제가 아니라 동북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 가는 대한민국의 미래 경제고속도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새만금이 세계로 뻗어 나가려면 생각도 지역의 좁은 울타리를 넘어서야 한다. 지역 한계를 벗어나 마음의 문을 활짝 열 때 새만금의 미래도 활짝 열릴 것이라고 믿는다"라며 역설했다고 한다.
 

또 "새만금은 4대강 사업과 더불어 대한민국 저탄소 녹색 성장을 위한 우리의 또 다른 노력, 4대강 사업이 죽어가는 강을 살리는 것이라면 새만금 사업은 대한민국 최초로 종합적이고 계획적인 녹색도시를 건설하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새만금은 나라의 자존심이라고 불리울 수 있도록 웅장한 간척사업장이요, 대통령의 꿈, 한 사업가의 원대한 비전이 현실화되어 우리 눈앞에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반면, 그곳 어민들과 생태보존학자들은 새만금을 괴물이라고 부르며 울상을 짓는다고도 한다. 거전갯벌은 수천 수만 년이란 긴 세월을 지나면서 지금의 모습을 만들었고, 갯벌은 거기에 의존하는 수많은 생명을 감싸 안는 어머니의 품이었다. 갯벌에서 태어나고 갯벌에서 자라고 갯벌과 함께 늙어가다가 갯벌의 품속에 안기는 사람들, 갯벌이 주는 풍요를 누리며 갯벌을 목숨보다 더 사랑하던 어민들, 조상 대대로 이어오던 그들 삶의 터전이 무참히 짓밟히고 한순간에 파괴된 것이다!

새만금, 이 거대한 힘 앞에서 수많은 도요새, 백합과 조개 그리고 게들, 갯벌에서 생명을 이어가던 뭇 생명은 죽어가고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동안 새만금지역의 거전갯벌에는 큰뒷부리도요새 긴다리도요새, 붉은부리도요새 등등, 그 외에도 이름 모를 철새들이 때가 되면 날아와 많이 서식하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유도 모른 채 많은 철새가 죽어가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수천 킬로미터의 비행을 하면서 이곳을 찾아온 도요새 몇 마리가 메마른 갯벌에서 먹이를 찾지 못하고 끝내 주검으로 남은 것을 사진으로 찍어 들고 다니면서 갯벌을 보호애야 한다 호소하는 조류학자들도 있다고 한다.

친구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에서 내어준 봉고차에 우리를 태우고 안내를 하시던 그곳 교회 나이 많은 장로님은 "밀물 때와 썰물 때를 맞추어 바구니와 망태기를 든 아이들과 여인네, 지게를 지고 백합을 주우려고 나가는 할아버지들, 또 갯벌에서 개구리를 잡는 민첩한 도요새의 정겨운 모습을 이제 더는 볼 수 없을 것 같다."라고 말씀하시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리 쉬었다.

한편으로 세간에서는 이 웅장한 새만금을 가리켜 바다의 만리장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만리장성, BC 221년 중국을 통일한 진의 시황제(始皇帝)가 연과 조가 축성한 북변의 장성을 연결하여 서쪽으로 더 연장시켰는데 이는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을 대비하고 백성을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해준다는 명분을 꿈으로 포장하여 앞에 내세운 강자의 욕심일 뿐이었다. 결국 그 강자는 백성을 위한다는 자신의 거짓 꿈을 성취시키기 위해서 수많은 약자의 생명을 희생시켰던 것이다.

진정한 꿈은 너도나도 모두 살리는 프로젝트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거에도 현대에도 강자의 무리한 욕심은 꿈이란 이름으로 포장시켜 약자를 희생시키고서야 얻어내는 것, 정작 약자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없는 헛된 것이요, 재앙일 뿐이다. 자연과 생태계를 파괴하고 갯벌의 무수한 작은 생명을 죽여서 일구어낸 새만금, 수많은 젊은 생명을 희생시켜서 일구어낸 진시황제의 만리장성, 결국 약자인 너를 울게 해야만 이룩해 내는 것이 나의 꿈이라면, 이 모두가 꿈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지나친 욕심의 발로일 뿐이라고 말한다면 이것 또한 너무 지나친 말일까?

나는 생태보존학자도 아니고 갯벌을 사랑하는 어민의 한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거대한 새만금 방조제 위를 달리는 내내 마음이 많이 울적했다. 왜일까? 그것은 새만금이나 만리장성을 보면서 내게는 그들의 업적보다는 그들의 무리한 욕심과 지금 우리가 당면한 기독교계의 현실이 오버랩되기 때문이었다!

하늘을 향해 높이, 더 높이를 외쳐대며 바벨탑을 쌓아올리던 고대 사람들처럼 무엇이든지 크고 높고 강한 것을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목회자들, 그들을 큰 종이라 따르며 숭배하는 어리석은 성도들, 이 세상에서 잘먹고 잘사는 것을 추구하는 기복신앙가들이 주님의 교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모두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일부 대형교회의 목사님들은 그들의 무리한 욕심을 꿈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그 포장된 꿈을 이루기 위해 무수히 작은 교회를 쓸어트리고 성도들의 헌금을 갈취한다.

교회당 건물은 주님께 예배 드리기 위한 목적보다는 부와 권력과 능력의 상징이라도 되듯 하늘 높은지 모르고 더 크게 더 높게 올라만 간다. 어디 건물뿐이랴, 이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교회와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영혼을, 사업, 그 이상도 그 이하로도 보지 않는 것 같다. 성도들을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단다. 사업가적 마인드가 뛰어난 몇몇 삯군 목자들은 목회보다는 성도관리 차원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진행시켜 사고팔기도 한다. 이런저런 정말 기막힌 아이디어 상품들로 성도들의 영혼을 유치(그렇다 유치가 아니고 무엇이랴)하기 급급하다.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신자들을 각종 프로그램과 상품으로 미혹해서 더 많이 수용하고 보자는 심산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작은 교회도 엄연히 주님의 피로 값주고 사신 하나님의 교회이건만, 약한 교회를 집어삼키기라도 하려는 듯, 교회 내에서도 심각한 빈익빈 부익부 기현상을 빚어내고 있다. 문어발처럼 자신의 교세 넓히기 경쟁이라도 하듯,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해 많은 돈과 인재들을 투자해서 지교회를 세운다. 이런 비본질을 본질보다 더 크게 부각시키는 교회나 목회자들이 회개하지 않는 한, 반기련도, 극단적 신비주의 자들도, 우후죽순처럼 일어나는 각종 이단 사설을 양산(produce)해 내는 그 어떤 단체도 막아낼 재간이 없을 것이다.

자기 자신만이 성공하겠다고 생각하며 남을 짓밟는 사람은 이제 세상에서도 받아주지 않는다. 하물며 하나님의 교회이랴? 우리는 이제 서로 연합해야 산다. 연합하여 일한다는 것은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힘을 합쳐서 일을 할 때, 그 결과는 엄청난 영광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서로 도우는 교회가, 서로 도우는 성도가 되어야 그날에 주님께로부터 잘했다 칭찬과 함께 면류관을 받아 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2,000여 년 전,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가슴에 각인시키고 결코 잊지말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너를 살리기 위해 내가 죽는 죽음을 택하셨다. 너를 살리기 위해 내가 죽는 십자가의 죽음이 있었기에, 삼 일 만에 너도 살고 나도 사는 부활의 영광을 쟁취하신 것이다.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시지만, 인간 구속을 위해서 성부 성자 성령으로 나뉘어 사역하시는 아픔을 참으셨으며, 협력하여 일하셨고,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셨다!!

성도라고 한다면 예수님의 이 십자가 원리를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이제부터는 큰 교회는 내 몸집만 키울 것이 아니라 작은 교회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믿음에 강한 성도는 약한 성도를 도와야 한다. 남을 죽이려고 하면 나도 죽는다. 성도는 내가 살기 위해서 너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너를 살리기 위해서 내가 죽는 우리 주님의 십자가, 상생(相生)의 원리를 배우고 실천해야 한다. 말씀이 인정하지 않는 비전은 불법이요, 불법을 행하는 자는 아무리 그 업적이 훌륭하다고 해도 주님께서 결코 인정치 않을 것이다.


세상 모든 것이 같은 이치일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도 그렇고, 가정도 그렇고, 이웃과 이웃, 목회자와 성도, 교회와 교회, 국가와 국가, 나의 꿈이 너를 울게 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이미 꿈이 아니라 터무니 없는 한 개인의 욕심일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소박하나마 서로가 서로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꿈, 너와 나 우리,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복된 꿈을 꾸며, 가꾸며, 서로 도와주고, 살려주는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가정, 아름다운 교회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리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 23),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2-3)"

글: 별똥별/최송연의 칼럼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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