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 사랑 그리고 사랑

짐보 ㆍ 2015-12-28 (월) 10:43 IP: 96.xxx.163    

4. 사랑, 사랑 그리고 사랑
love, the love of God & charity

[5.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Doth not behave itself unseemly, seeketh not her own, is not easily provoked,
thinketh no evil;]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을 간직한 사람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Doth not behave itself unseemly,
사랑은 꼴사납게 행하지 아니하며,
부적당 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는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seeketh not her own,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The wife hath not power of her own body, but the husband: and likewise also
the husband hath not power of his own body, but the wife.
고린도전서 7:4]
은 결혼에 대하여 바울이 권하는
아내와 남편인 부부 조차 자기 몸의 주장(유익)을 하지 말라는 권면이다.
사랑은 자기 자신의 유익을 구치 않는다.
‘Love seeketh not its own.’
사랑은 자기의 것을 찾지 아니한다.’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is not easily provoked,
그리스도의 사랑을 간직한 자는 쉽게 화내지 아니하며.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의 사람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thinketh no evil,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디도서 2:8]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having no evil thing to say of you)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은 사람의 사랑은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는 사랑은
쉽게 성내지 아니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무례히 행치 아니한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는, 교회는,
너희 자신이 믿음 안에 있는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확실히 그 증거로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가 너희 안에 있는지 확증하고 확인하고
그래서 그 사랑이 없다면 버린 자라 한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고린도후서 13:5]

다시 언급하면 너는, 너희는, 너희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을 간직하였는지
세상 사람처럼, 세상 사람보다, 더 부적당 하고 무례 한지,
자기의 유익과 주장을 구하여 니편 내편 편(便)을 가르고
성을 쉽게 내고 싸움박질 하는지,
그래서 악한지, 시험하여 스스로 증명하여 확증하고,
우리의 허물로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의 죄로 돌아가시기 까지 하시며
사랑한 사랑 ‘charity’ 가 너희 안에 있는지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다면 너는, 너희는, 너희 교회는 버림받은 자라.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

한국이나 이곳 교회의 크나큰 실책은
세대와 세대의 신앙의 단절 이다.
기성세대에 집중하여야 교회의 재정을 충당할 수 있었고
부모들의 교회출석은 자녀들과 같이 참석하기에,
2세들의 예배와 교육은 전도사나 부 교역자의 몫이었다.
이후 급격한 경제 문화 사회의 충격적인 변화를 교회가 감당할 신앙의 능력이 양성되어 있지 못했고, 잘못된 부흥관과 치우친 은사주의의 맘몬니즘의 폐해, 등은 각종 미디어의 출현으로 이미 폐쇄적인 교회와 교단의 모습이 속속히 알려지게 되었고, 부모세대보다 부차적이고 소홀했던 2세 교육은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을, 신앙의 불신을 가져 왔고, 여러 원인이 있으나 신앙을 다음세대에 무려주어야 할 유산인데 결론은 실패하였고
이제라도 교회다운 교회를 위하여 회개하고 개벽 같은 개혁운동이 일어나야 하는데 우리의 모습은 겉모습만 교회라 종교인의 모습이지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다.
이제 출산율이 늘더라도 빈 교회가 생길 텐데, 줄어드는 출산율로
노인들만 남은 교회가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모두들 무사태평이다.
이런 모습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랑을 간직한 모습일까?
젊은이 들은 우리 부모세대에 불신으로 떠나는데,
그들의 눈에 교회는 다투고 싸우는 장소로, 돈 욕심에 눈이 멀었다 하는데.
좀 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해 준 사랑 charity를 간직했더라면
좀 더, 정직하여 정의롭고, 공정하여 공평하였더라면
좀 더,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지 않았을 것을
이로서 세상 사람들도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줄 알아 전도가 되었을 것을.
이로서 세상이 좀 더 환 했을 것을.
순수한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을 잃어버린 우리시대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도 여전히 변함없이 유효하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한복음:34-35]
예수님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인간의 모습으로 낮게 오신 예수님은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까지 한 예수님의 사랑
그 사랑 ‘charity, 로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그 ‘charity, 로 서로 사랑하라 하신다.
그래서 믿음은,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가 얼마나 마음의 중심에 간직하였고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가 얼마나 가슴에 박혔는가, 라
그 분량만큼, 그리스도의 사랑의 분량만큼이, 믿음의 분량이고
그 분량만큼, 상대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서로 사랑하는 만큼
그 만큼, 사람들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인 줄 안다.
이 의미는,
이 현실은, 세상에서 질타(叱咤)의 대상이 된 교회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는 만큼, 그 만큼의 질타가 된다.
이 원인을 모르면 그는 교회 선생의 자격이 없고 더구나 지도자가 되면 안 된다.
구실은
세상의 공중 권세를 잡은 사탄으로
세상이 악하다는 건, 초 신자, 요즘 같이 교회출석만 얼 만큼 해도 직분이라고 받는
서리집사의 구실 거리를, 교회의 선생이나 지도자의 변명이라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를 소유한 사람이 아니거나
아직 그리스도의 사랑을 모르기 때문이다.
비약 이다 고?
성경을 보자.
에베소서 2장 1-2절
[1.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누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허물과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까지 한 사랑
‘charity’ 로.
[2.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Wherein in time past ye walked according to the course of this world,
according to the prince of the power of the air, the spirit that now worketh
in the children of disobedience:]
그때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몰랐을 때에는,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권세를 잡은 자를 따랐으니
불순종한 자녀 가운데 역사하는 공중권세를 잡은 영을 따랐으나
그러나 이제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는 살리셨는데
아직 세상 풍조를 따르고,
세상 사람들의 시류를 따르고 문화를 따라서
불순종한 자녀로 공중권세 잡은 자를 따름은 그리스도의 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길도 아니다.
이제 눈을 떠서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사도행전 26:18]
그래서 구원받은 자의 도리를 지켜 세상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개혁해야 하는데,
그런데 요즘 대부분의 설교는 구원론에 벗어나지 못한다.
10년 전에 설교하였던 내용을 오늘 설교하고 반복 또 반복이다.
왜,
구원받은 자의 언행이나 가치관에 대하여 성경을 풀어서
구체적으로 설교하지 못하는가.
왜,
그리스도의 거룩한 사랑 ‘charity’ 을 퇴색시키어
거룩한 능력을 무시하는가!
그리스도의 사랑은 세상을 변화시켰고 변화시키는 역사(work)라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역사라 우리 모두는 역사의 일꾼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외에 자랑할 것이 없다 고백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라디아서 6:14]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애 못 박히고
바울 또한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애 못 박혔다는 고백은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로 말미암아
세상의 풍조로 시류를 따르던 사조를 버렸기에 단절을 선포하며
세상과의 격리가 아니라, 세상에 대하여 그리스도 십자가의 도,
그 거룩한 사랑 ‘charity’을 간직한 사람으로,
세상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개혁하겠다는 단호한 태도이다.
그런 그리스도의 사랑의 사람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쉽게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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