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랑, 사랑 그리고 사랑
love, the love of God & charity

사랑이란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 인가?
아니면 나를 태워서 너를 살리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인가?
사랑이란,
생각하는 것이 어릴 때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일방적인 명령이었고
말 하는 것이 어릴 때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절대적이고 복종인 줄 알았다가
희미하게 보일 만큼 성경을 읽었을 때
그 사랑은 그리스어의 ‘아가페(agape)’를 의미하는 줄 알았지만
이 아가페라는 사랑은 구약의 대부분의 사랑이 이에 해당되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완성된 줄 오랜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되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요한복음 19:30]

돌아보면 믿는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라났지만 철이 들면서 하나님을 여러 번
부인하였고
첫 번째 부인은 인생의 허무로의 부인이었고
이는 내 인생을 바닥 맨 밑바닥까지 스며들어 근본을 온통 흔들어 삶을 포기까지 하려 했었고
두 번째 부인은 세상에 정의가 있는가?
세 번째 종교는 끝없는 반복의 세뇌(brainwash)라 종당에는 마약과 같은 중독에 빠져
종교 중독증 환자가 되어가는 허상이라 보았다.
여러 번의 부인은 참을 수 없는 만큼 고통스러워 그 때마다 생을 포기하려 했었고
부인을 겪은 후 성경을 죽자 사자 읽었을 때 하나님의 뜻, 공의가 보이기 시작했고
하나님의 뜻을 배우려고 수많은 날 성경과 신학 책 등을 읽고 유명하다는
목사의 설교를 들어보았지만 만족할 만 한 대답은 없었다.

첫 번째 부인인 허무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철학책 등 고전을 읽으면서 더 확신하였고
이제 부인을 넘어 논리적인 가치관으로 정립(正立)되어 갈 때, 이 또한 허무 맹랑 임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의 사랑, 그 사랑 (charity)을 알게 되었을 때
지겹게 쫒아 다니던 허무는 종말을 고했다.
이제 몇 편의 글이나마
아직 부분적으로 아는 하나님의 향한 부족한 고백이
하나님의 의를 더 알아가고 왜 무기력한 신앙의 신자가 되었는지
이 무기력하고 방탄된 우리의 모습에, 나름 길을 제시하고 읽는 분들에게 믿음을
다시 확인하여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부분적으로 알고 있는
부족한 글을 쓴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의 무의미한 고통으로 점점 파멸(破滅)되어 종당에 죽음에 이르는 과정의 삶을,
인간 삶에,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는 낮고 낮아 지셔서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시어
부활로 우리의 영생을 알게 하셨고 또 이 땅에서 풍성한 삶의 길을 보여주셨다.
세상에, 어떠한 신이 자신의 피조물과 같이 되고 피조물을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는 신은 그리스 로마의 신화에도 없었고 그런 신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사랑을, 또 사랑에 목말라 나누고 분리하기 좋아 하는 사람들은
필레오(phileo)의 사랑이라고
예수님의 나사로를 향한 사랑을 그렇게도 부른다.
향유를 예수님께 붓고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던 마리아의 오라버니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 하시며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셨다.
왜, 영광을 받게 하려 하려 함이시라니
무엇을 의도하시고 계획하시고 말씀하셨을까?
예수님은 나사로로 인해 눈물을 흘리셨다.
[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요한11:36-37]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아셨기에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셨다.
그러나 나사로를 사랑함이 친구의 사랑인 ‘필레오’ 인가?
아니다.
사람들은
‘필레오’ 는 친구의 사랑이라
‘에로스’ 는 남녀의 사랑이라
‘스테르고’ 는 부모와 자녀의 사랑 이라 정의 하지만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되면 이런 사랑의 분리를 인정할 수 없고
사랑은, 진리가 진리로 한 길 같이, 사랑도 한 길이라
사랑은, 진리와 함께 하며, 진리를 떠난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니다.
그럼 사랑이란 무엇인가?

Love,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귀가 닳도록 들었고 입이 닳도록 말했던 사랑이지만
성경의 ‘사랑’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Beloved, let us love one another: for love is of God; and every one that loveth is
born of God, and knoweth God.
He that loveth not knoweth not God; for God is love. 요한일서 4:7-8]

Loved
사랑의 하나님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 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ly begotten Son, that whosoever
believeth in him should not perish, but have everlasting life.  요한복음 3:16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얼마나 사랑하셨냐 하면
For God so loved the world
독생자 까지 주셨으며, 누구든지 믿는 자 마다
이 세상에서 곤궁한 자 같으나 믿음으로 넉넉한 자로
이 세상에서 멸망한 자 같으나 하늘나라의 소망을 둔 흥 한 자
죽은 자 같으나 산 자로 예수님의 부활로 부활하는 자로
언제까지 영생(everlasting life)을 얻게 하려, 영원히 함께 하시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치우침 없이 공평이 사랑하시고
바르시게 공정히 사랑하시고
그 사랑의 약속, 언약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그리스도
또 이를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 증거하고 확정하시는 성령님.

the love of God
하나님의 사랑,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The grace of the Lord Jesus Christ, and the love of God, and the communion
of the Holy Ghost, be with you all. Amen. 고린도후서 13:13]
그 사랑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에게 약속이라는 언약을 오래전에 주셨다.
이 언약은 이미
창세기 9:
[16.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17.    하나님이 노아에게 또 이르시되 내가 나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언약의 증거가 이것이라 하셨더라
16.    And the bow shall be in the cloud; and I will look upon it, that I may remember
the everlasting covenant between God and every living creature of all flesh that is upon the earth.
17.    And God said unto Noah, This is the token of the covenant, which I have established between me and all flesh that is upon the earth.]
covenant
창세기 6:
[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But with thee will I establish my covenant; and thou shalt come into the ark, thou, and thy sons, and thy wife, and thy sons' wives with thee.]
홍수에서 보호하는 방주처럼
멸망의 홍수에서 죽음에서의 두려움과 절망에서
그 언약을 완벽하게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
그 사랑을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사랑을
그 사랑을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으로 돌아가시기 까지 하며 이른
그 사랑을, 그 거룩한 사랑을
‘ charity ' 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the love of God’ 로 영어성경은 표현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말 성경에는 ‘사랑’으로 표현 하지만
그 사랑을 영어성경(KJV)에는 ‘ charity ’ 로 표현 한다.
‘charity' 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다.
그래서 구약에서 이런 사랑(charity)이란 표현이 없고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하기에 ‘자비’ ‘관용’ ‘자애’ ‘박애’ 등으로
표현 할 수 있으나
십자가의 사랑을 의미 한다.

그 사랑 ‘charity’ 라는 표현은 고린도전서 8:1 절에서 시작 된다.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Now as touching things offered unto idols, we know that we all have knowledge.
Knowledge puffeth up, but charity . ]
사랑은 덕을 만든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은사를 받은 사람은 그 은사가 참 은사인지 알아보는 방법은
덕을 만들고 세우느냐 로 요약된다.
자신과 믿는 이들에게 덕이 되지 못한다면 은사가 아니며
은사라 할지라도 자신의 이익을 쫒아 함부로 사용하면 남용하면
이미 그리스도의 사랑의 사랑이 퇴색하였거나 변질되었기에
은사의 가치는 사라진다.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주시느니 :2]
우상의 제물과 지식을 다 아는 줄 생각하지 말라 !
이 시대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분별없어 고린도 교회와 같은 이 혼란하고 타락한 시대,
고린도 교회와 같이, 이 사이비 같이 타락한 이시대의 교회,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거룩한 사랑의 궁핍(窮乏)이며 결여(缺如)이며 빈곤(貧困)이고
그래서 순수한 믿음의 결핍(缺乏)이다.
그 거룩한 사랑 ‘charity’를 잃은 세대여!
그 거룩한 사랑을 망각하여 곤고한 자신이여!
누구라도, 그 누구라도 우리의 허물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고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까지 한 그 사랑 ‘charity’를
가슴의 중심에 간직한 사랑이 없다면,
목사 장로 그 누구라 할지라도 위안의 종교를 가진 교인일 뿐
예수 우리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제자가 아니라 허망한 종교인일 뿐 이다.

도대체 사랑이 무엇인가?
누구든지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면
그리스도의 거룩한 사랑 ‘charity’를 알게 된다.
[But if any man love God, the same is known of him. 8:3]
사랑 (love)은  ‘the love of God’  ‘charity’ 가 된다.
이제는 그 charity를, 그 사랑을 겨워하는 시대라 ...
그 숭고한 사랑‘charity’ 은 KJV 성경 신약에 총 24회 중  
고린도 전서 고린도전서 13장에 8번 쓰여 있고
주제도 사랑이라 그래서 13장을, 우리는 사랑의 장이라 부르고 이렇게 시작이 된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Though I speak with the tongues of men and of angels, and have not charity,
I am become as sounding brass, or a tinkling cymbal.
고린도전서 13:1]
그 당시도 요즘과 같이 고린도 교회에서도 방언의 은사에 대하여 다툼이 있었음이 전해진다.
방언이 은사라는 주장과 그에 반하여 알아들을 수 없는 방언을 사탄의 소리로
치부하기도 하였고, 헬라어 같은 모국어가 아니라 외국어라 하기도 했고
은사로 중단되었다는 반대도 있었다.
방언이 은사라면 자신과 신자의 모임인 교회에서 덕을 세워야 하며
방언이 통역되어 소통이 되어야 하지만 그런가?
아무튼 사랑 없는 방언이나
천사의 말 같이 신비하거나 오묘한 인간의 언어라 할지라도,
천사의 말같이 아름다운 언어의 화려한 말솜씨나 설교라 할지라도,
주여! 주여! 목메어 부를 지라도
어둠 속에 빛같이, 맹인에게 빛 같이, 희망으로 인생의 길을 제시 할지라도
유명한 설교자로, 신학자로,
광명의 천사로 올지라도,
나의 허물을 위하여 채찍을 맞으시고 고난을 당하시고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언약의 피로 이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
’ charity '가 마음의 중심 가슴에 박혀 흔들려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면
(나는, I am become as, 바울이라 할지라도)
구리로 만든 악기라 할지라도 소리 나는 구리일 뿐
울리는 꽹과리처럼, 소리만 시끄러울 뿐, 아무런 소통이 없는 소리의 울림일 뿐이라
허공을 치는 말 일 뿐이다.

그리스도의 사랑, charity 는
그 사랑은 진리와 함께 하고
진리는 그 사랑과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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