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내가 만난 하나님의 공의 (맺으며)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로부터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시니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마태복음 3:13-15]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첫째, 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고
둘째, 왜 세례를 받는 것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 라 말씀하신
예수님의 의도가 무엇이었냐는 거다.

첫째, 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까닭은
세례요한의 사명은 사람들을 회개로 인도하여 그들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일 이었고
그 표로 세례를 베풀었고 이를 예수님은 인정하셨다.
오늘날 우리의 사명도 세례요한과 같이 다시 오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태어나서부터 나실인 이었던 세례요한 같이, 우리를 선택하여 예비하신 길은
서원하여 작정하여 마치 나실인이 된 것처럼
회개를 하고 세례를 받은 은혜의 언약을 받은 사람으로서의 길은
다시 오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 가졌기에, 주의 길을
내 삶의 자리에, 이 땅에, 예비하여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죄인 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똑 같은 인간으로 오셔서 죄인의 삶에 찾아오셨고
그래서 예수님의 위대한 메시지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먼저 죄인 인 우리를 찾아 주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은혜며 긍휼이고 자비이며 인자(Great kindness)이며
이 모든 뜻이 소망이신 하나님의 의(공의)이다.

이를 바울은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고린도전서 9:19-22]

둘째, 왜 요한의 세례를 받는 것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 라 예수님은 말씀하셨을까?
이를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 표현했고
KJV 에서는 ‘Then he suffered him. ’ 이라 표현했을까...
세례요한은 의로우시고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을, 세례 베풀기 힘들었을 것이고
예수님은 죄인인 인간의 자리에 오셔서 죄인처럼 세례를 받으셨기에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음으로서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고
세례요한에 대한 하나님의 뜻도 이루어 졌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셨다.
[And Jesus answering said unto him,
Suffer it to be so now: for thus it becometh us to fulfil all righteousness.
Then he suffered him. :15]
이와 같이 하여 우리로 모든 의(공의)를 완벽하게 이루는,
for thus it becometh us to fulfil all righteousness,
이것이 복음이다.
하나님의 공의(righteousness)로
예수님의 통하여 알려주신 복음(Gospel)인 기쁜 소식
이를 알려주시고 우리의 마음의 중심에 내주(來住)까지 하시는 성령님
이 모든 의(복음)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기에
그래서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세례를 베풀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물에서 올라오실 쌔
나타난 표적의 사건들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는 합당함을 보여주신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렸고
하늘에서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가 있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And Jesus, when he was baptized, went up straightway out of the water:
and, lo, the heavens were opened unto him,
and he saw the Spirit of God descending like a dove, and lighting upon him:
And lo a voice from heaven, saying,
This is my beloved Son, in whom I am well pleased. 마태복음 3:16-17]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세 가지 표적이 일어났다.
1.하늘이 열리고(the heavens were opened)
2.성령이 비둘기 같이 주님 위에 임하였고( the Spirit of God descending like a dove)
3.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
라는 하늘의 메시지가 있었다.
(voice from heaven, saying,
This is my beloved Son, in whom I am well pleased)
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슴에 담고
성령으로 인(印)쳐서 말씀으로 각인(刻印)된 성도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의 길을 따르는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는 우리의 소망인 천국이 열렸고
기쁜 소식을 전하는 비둘기처럼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였고
우리를 향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 라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쁜 소식, 복음이 되었다.
세례요한과 같이 부르심을 받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 메시아 되신 증거인 표적이 되셨다.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 이니이다
But unto the Son he saith,
Thy throne, O God, is for ever and ever:
a sceptre of righteousness is the sceptre of thy kingdom.  히브리서 1:8]

맺으며:
교만이 무엇일까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하는 자랑, 그것도 교만이라 할 수 있지만
성경의 교만은 하나님의 뜻대로 생각지 않고 행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에
성도라면,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자랑으로 눈이 멀어 온전히 알지 못하는 것도,
알면서도 어떠한 이유로 침묵하는 것도 교만이라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교만한 자 이다.
성경을 읽고 성경으로 거울을 삼고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면
내 자신의 교만이 보이며
또 공동체를 바라보면 공동체의 어그러진 신앙의 길이 세속화된 종교의 길이라
교만의 길이라,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가 복되다 하며 악을 행하는 자가 번성하며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한다 하노라 함이라  말라기 3:15]
반복되어온 자신의 교만 된 길에서
반복되어온 공동체의 교만 된 길에서
자신과 공동체를 하나님의 의(공의)로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어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가 뛰듯이(말라기 4:2) 굳어져 화석처럼 변한 종교적인 의식에서 순수한 신앙의 자유를 위해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간직한 자들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지는
하나님의 의(공의)를 일주일에 한 편씩 쓰겠다고 시작했으나
게시판에 글을 올리기에 무리하다는 판단에
자신은 글을 쓰는 속도 보다 글을 올리는 속도가 늦어졌다.
첫 번째로 우리의 눈에 보이는 교회와 교계를 바라보며
자신의 신앙 간증과 곁들어 주장하는 글로 시작하여
몇 가지 소제목으로 전개하고 이를 한 단으로
두 번째 단은 세례요한과 예수님의 세례까지
세 번째 단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중심으로 한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네 번째 사도들의 사역
다섯 번째 계시에 대하여 자신이 바라본 성경을 가감 없이 써서 논의하고
자신은 공감된 동의든 신랄한 비판이든, 서로 성경을 바라보는 시각의 신앙으로
근본 된 믿음을 바탕으로 토론이나 논의를 같이 하고 싶었었다.
그래서 서로 성경을 바라보는 분별력으로 믿음이 더 굳건히 터를 잡고
분별력만큼 낮아져서 믿음의 영역이 넓어지는,
장성한 분량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각인된 가슴으로
안목이 넓어져서 다음 세대에 이어주는
그런 계기가 글이 되었으면 하는 그리스도를 향한 꿈이 있었기에 글을 시작을
2013년 10월16일에 시작하였고 10월16일은 주님을 사랑하시던 육친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이라 더 의미 있는 시작이었는데 이제 1년 반 만에 걸쳐 쓰던 글을 마치려 하니
아쉬움도 많고 자신의 믿음의 한계를 나타낸 부족한 글이 되었지만
내게는 올바른 글이 되도록 기도하고 성경전체를 읽으며 자율 성경공부 한 기간 이라
신학과 교회사를 여러 권 읽으며 나름 열심히 공부한 기간이라 감사했고
그간 시험과 고통의 참을 수 없는 시간도 있어 잠 못 이루는 날도 많았지만
어려움 중에서 성경을 읽는 능력을 주신 주님께 감사함이 넘쳤던 날들도 많았고,
이 짧은 시간이나마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그간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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