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자가 다 웃으리로다.

이응한 목사 2016. 5. 28. 08:10

21장 1절은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를 권고하셨고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께서’와 ‘그 말씀대로’를 두 번 반복하여 사라를 권고하시고 사라에게 행하셨다고 기록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걸고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그대로 행하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미쁘신 하나님의 성품과, 그 변개하실 수 없으신 하나님의 말씀과, 그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려 함일 것입니다.

‘권고(眷顧)하셨다.’라는 말은 은혜를 베푸셨다는 뜻입니다. 은혜를 베푸사 그 말씀대로 사라에게 행하시어 사라가 아들을 낳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은혜를 베푸시고 어떻게 행하셨을까요? 앞서 20장에서 그랄왕 아비멜렉이 반하여 데려가려 했던 것으로 미루어본다면 하나님께서는 90세 된 할머니 사라에게 아이를 낳고 젖먹일 수 있는 청년의 젊음을 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으면 사라가 어떻게 아들을 낳을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가 될 아브라함도 그렇고요. 여러분도 그럴지 모르지요. 하나님께서 쓰시면 나이 들어도 젊고 건강하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100세가 넘으셨는데도 정정하게 복음을 전하고 계신 방지각 목사님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 이삭을 낳게 하셨습니다. “말씀하신 기한에 미쳐”란 “정확하게 말씀하신 때가 되어”라는 뜻입니다. 더 이르게도 아니고 더 늦게도 아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로 그 때에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이라 하라.” 하신대로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였고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하였습니다. “이름을 예수라 하라” 하신대로 이름을 예수라 하고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한 것과 똑같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삭을 자신의 소유, 자신의 아들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훗날 하나님께서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바치라 하셨을 때 하나님께서 돌려 달라 하시면 돌려드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이때가 아브라함의 일백세 때요 사라의 구십세 때입니다. 사라가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라가 내년 이맘때에 아들을 낳으리라.’ 하셨을 때 장막문 뒤에서 듣고 웃었는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으니 웃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사라만 웃은 게 아니라 아브라함도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게 하옵소서.” 하면서 엎드려 심중에 웃었습니다. 사라와 아브라함 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말도 안 된다고 웃고 그 말도 안 되는 일이 이루어지니 또 온 세상이 기가 막혀 웃을 일입니다.

복음이 그렇습니다. 웃기는 일입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니 말입니다. 그들은 아무 반항도 아니하고 십자가에 맥없이 달려 죽는 자를 비웃었습니다. 그 예수가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때 온 세상이 어처구니없어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날에는 웃음이 아니라 모든 족속이 애곡하게 될 것입니다. 너 같은 죄인, 너 같은 인간이 무슨 구원이냐고 세상이 비웃었을지 모르지만 90세 사라가 이삭을 품에 안고 웃은 것처럼 우리는 지금 예수 믿음을 품에 안고 웃으며, 또 그 날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안고 감사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웃을 것입니다.

지금도 세상이 손가락질 하면서 웃습니다. 개독교라고 하면서 웃습니다. 크리스천들이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살지 못 하기 때문에, 교회들이 타락하였기 때문에 비웃기도 하겠지만 복음이라는 말도 안 되는 걸 품에 안고 웃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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