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막힐 일입니다. 하나님이 백세에 낳은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는 겁니다. ‘모리아 땅으로 가서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내게 번제로 바치라.’ 아브라함은 속으로 울부짖었을 것입니다. “아니, 하나님, 이 아들을 번제로 드리면 제게 하신 약속은 뭐가 됩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무 말 없이 다음 날 아침 일찍 나무를 쪼개어 나귀에 지워가지고 아들 이삭을 데리고 두 사환과 함께 떠납니다. “하나님, 말도 안 되는 말씀하지 마시고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하고 엎드려 심중에 웃던 아브라함이 말입니다. 무엇이 아브라함을 이러한 순종의 사람으로 만들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인내와 열심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나무를 쪼개는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도끼로 나무를 내리칠 때마다 “탁- 탁- 쫙- 쫙-” 아브라함의 가슴도 피를 튀기며 쪼개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독생자를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그랬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실행에 옮깁니다. 사라에게 말하면 분명히 울고 불고 붙잡고 난리할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면 “하나님, 저는 그러려고 했는데 아내 때문에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할 핑계가 생길 것인데 말입니다. 모리아 땅까지 삼일길입니다. 먼 길입니다. 그 먼 길을 가면서 아브라함은 얼마나 고민하며 마음의 싸움을 하였을까요? 한국 속담에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에게 그 삼일동안은 견딜 수 없는 고문을 받는 거나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두 사환에게 산 아래에서 기다리도록 합니다. 이삭에게 나뭇짐을 지우고 자신은 불과 칼을 들고 올라갑니다. 흡사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님과 못과 창을 들고 뒤따르는 로마군병의 모습입니다. 산 아래 기다리도록 할 것 같으면 두 사환은 뭣 하러 거기까지 데리고 왔단 말입니까? 나뭇짐을 두 사환에게 운반하게 하면 이삭이 덜 고생스러울 테고 두 사환으로 나무를 쌓게 하면 아브라함이 편할 텐데 말입니다. 아니, 그 보다도 아브라함이 이삭을 잡아 번제로 드리려고 하면 그 두 사환들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느냐고 덤벼들어 뜯어말려 줄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자신을 순종하지 못 하게 할 모든 방해물을 제거해 버립니다. 오직 이삭만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 오릅니다.

 이삭이 묻습니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에 있나이까?” 가슴이 찢어지는 질문입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아브라함이 어떤 심정으로 말했는지 모르지만 아브라함의 이 말은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진리를 말하고 있으니 기이한 일입니다. 히브리서는 이 사건을 놓고 하나님이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내어주실 것을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90세 할망구로 하여금 아들을 낳게 하시는,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었을 것입니다.
그는 나무를 쌓고 이삭을 눕힙니다. 이삭도 그렇지요. 나무 위에 누우라고 한다고 순순히 누웠을까요? 도망치려고 하고 버둥거리며 반항하지는 혹시 않았을까요? 삼일길을 걷고 또 나무를 지고 산을 오를 정도면 이삭은 이미 자랄 만큼 자라 늙은 아브라함이 힘으로 제압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이삭이 그랬다는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저 순순히 아버지의 명대로 따랐던 것 같습니다. 어린양의 예표이니 양처럼 순하게 말입니다. 성경은 이삭을 순종의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기까지의 아브라함의 순종은 아브라함이 진짜로 아들 이삭을 잡아서 번제로 드리지 않는다면 여태까지의 순종도 다 쇼일 뿐입니다. 참 된 순종은 하나님의 “번제로 드리라”는 명을 끝까지 따르는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물러선다면 그것은 진실한 순종이 아닙니다. 설마 참말로 그러시지는 않겠지,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이 쇼겠지, 날 시험해 보고 괜히 그러시는 거겠지..., 하고 하나님의 명령 자체를 거짓된 명령, 쇼로 여기고 거기에 맞장구쳐 드리는 쇼를 하는 거짓순종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아브라함은 진짜로 이삭을 잡으려고 칼을 들고 이삭의 심장을 내리 찌르려 했습니다. 그 순간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나님은 다급하게 두 번이나 아브라함의 이름을 부르시며 아브라함을 제지하셨습니다.

 참된 순종이 무엇인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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