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둥병자의 정결의식(규례)
구자준 목사 2016. 8. 17. 22:26문둥병자의 정결의식(규례)
본문 읽기:마태복음 8:3-4
참조 구절:레위기 14:1-32
3-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4-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이르시되-'말씀하시되' 입니다. '가라사대' 입니다.
말씀의 능력을 아십니까.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말씀으로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나는 나사로를 향해서 "나사로야 나오느라" 하시니 죽은 자가 살아나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성경은 구원과 심판의 말씀입니다. 죽고 사는 길이 성경에 다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맺은 언약(계약적 약속-covenant promise)의 특징 또한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육의 심비에 언약의 내용을 새기십니다.
흔히들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라고 합니다. 아니 종교 이상입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로 믿는 살아 있는 체계와 모임입니다. 일반적인 종교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영감)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게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디모데후서 3:15-17)
'너, 하나님의 사람아~ 온전케 되기를 원하노라. 선을 행할 능력을 갖추기를 원하노라'- 이와 같이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늘 명심하십시오.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말씀충만과 함께 쉬지 않고 기도함으로써 성령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를 병행하는 자의 신앙은 건강합니다. 거머리같이 맨날, '다고 다고' 하는 신앙은 연약하거나 어리거나 병든 신앙 중 하나입니다.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말씀)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잠언 28:9)
손을 대시며-친근함의 표시입니다. 말씀만 툭 던지는 분이 아니십니다. 말씀만 하셔도 나을 터입니다. 그런데도 허리를 구푸려 병자에게 손을 대십니다. 하나님을 친근히 하십시오. 가까이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에게 가까이 다가오시고 친근히 하실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문둥병자는 자신의 더러움에도 불구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자 애쓴 자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순간 다 들으십니다. 다만 응답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즉각 응답하시는 경우도 있고 더디 응답하실 때도 있습니다. 응답하지 않으실 때도 있습니다.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주님의 뜻대로 응답하십니다.
이제 문둥병이 나았으니 제일 먼저 가족에게로 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동안 떨어져 살았으니 더욱 그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율법의 기록입니다. 아무에게도 가서는 안 됩니다. 먼저 제사장에게 가서 깨끗하게 된 몸을 보이고 모세가 율법에 기록한 대로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위 참조구절인 레위기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래야 필자와 독자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형성됩니다.
살아 있는 새 두 마리, 백향목, 홍색실, 우슬초를 가져와야 합니다. 모두 정결의식에 필요한 것들입니다.
새 한 마리는 흐르는 물 위 질그릇에서 잡습니다. 세월은 유수와 같습니다. 한 번 흘러가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습니다. 예전에 유명한 정치인이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못 돌린다"고 했었지요. 인생은 연습이 없습니다. 한 번 살다가 가는 삶이 얼마나 귀중한 지 모릅니다.
질그릇의 특징은 깨어지기 쉽다는 점입니다. 연약한 인생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질그릇 위에서 산 새를 잡습니다. 목을 따고 피를 흘려 질그릇 위에 받습니다. 그 피를 문둥병자에게 일곱 번 뿌립니다. 일곱은 완전 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은 완전합니다. 가감해서는 안 됩니다.
문둥병자는 흐르는 물과 질그릇과 새에다 자신을 투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유(질병과 죄악과 진영 밖 격리로부터의 자유)를 위해 흐르는 물 위 질그릇에서 피흘려 죽어가는 새의 피를 자신에게 뿌려 정결케 됨으로써, 비로소 하나님 나라 백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지요.
산(living) 새 한 마리는 들판에 놓아줍니다. 죽음의 자리까지 갔다가 죽음을 면하고 창공을 날며 자유를 만끽하는 것을 보면서 죄의 무서움과 사죄의 은총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게 되는 것이지요.
백향목은 아주 오래 사는 키가 큰 나무입니다. 성전이나 왕궁의 건축 재목으로 쓰입니다. 신약시대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성전삼아 계십니다.
홍색실의 특징은 붉어서 눈에 잘 띈다는 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물든 자의 삶은 무리 중에서 홍일점처럼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슬초는 물을 잘 머금기에 물이나 피를 적셔 뿌림으로써 죄인을 정결케 하는 데 쓰이는 하찮은 잡초입니다.
백향목과 우슬초! 솔로몬이 논했었지요. 인간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장에서 보면 도토리 키재기 입니다. 백향목도 귀하게 쓰시지만 우슬초도 귀하게 쓰시는 우리 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여러분은 다 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크게 되려고 너무 애쓰지 마십시오. 생긴대로 살고 있는대로 사십시오. 너무 잘난 체 하지도 말고요. 오히려 못난 자를 더 귀하게 보시는 주님이십니다.
속건제물인 숫양의 피를 신체의 대표적인 부위인 오른쪽 귓부리와 엄지손가락 엄지발가락에 바릅니다. 그리고 나서 그 위에 기름을 바릅니다. 이제 여러분의 소유권이 나를 위해 피흘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사 성령을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께 넘어갔음을 나타내는 표호(사인)입니다.
이제부터 무엇을 듣느냐 어떻게 듣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벙어리는 듣지 못하기에 말을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묻은 복음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그 복음을 외치십시오.
또한 손으로, 발로 행하는 모든 삶의 영역이 십자가의 피의 복음으로 물들게 하십시오. 이는 힘으로도 아니 되고 능으로도 안 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주님은 이것을 제사장에게 입증하라고 하십니다.
입증이란 증인의 증거를 말합니다. 구약의 제사는 그림자입니다. 실체이신 메시야(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여전히 율법의 의식에 매여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그들에게 입증하라고 하신 것이지요.
이 시대에도 율법주의가 횡행합니다. 초대교회 때 갈라디아교회처럼요. 삼가 복음으로 무장하시길 바랍나다. 복음의 전신갑주를 입으십시오.
말씀을 맺습니다.
산상수훈을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셔서 제일 먼저 하신 일이 문둥병자를 고치신 일이었습니다. 영혼과 몸을 이분법적 사고로 논할 수는 없습니다. 그 자체로 하나의 인격이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전인으로서의 사람으로 대하십니다. 우리의 육신을 따로 떼어내어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전인구원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기에 마지막 날에 죽은(죽을) 몸의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살아 있을 동안에야 오죽하겠습니까. 육체도 잘 보존하십시오. 건강하기를 구하십시오. 혹 병들었다 할 지라도 고쳐주실 것입니다.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주님을 잘 섬기시기를 축원합니다.
필요한 물질도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가난에 찌들어 사는 것을 원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 주 예수님은 부요하신 자로서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복음을 위해 스스로 가난해진 자외는 가난이 미화될 수 없습니다. 미덕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돈을 사랑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구자준 목사2016/08/1011:3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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