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비키 '예비 은총'에 대해
개혁주의 신학 2013. 9. 1. 03:49조엘 비키 ‘예비 은총’에 대해
“대부분의 20세기 학자들은 중생을 위한 예비 은총(preparatory grace)이 청교도가 종교개혁 은총론을 인간 중심적인 율법주의 사상과 거래한 결정적인 증거라고 여겨 폐기처분했다.”고 비키는 진단한다. 물론 “긍정적인 평가를 아끼지 않은 학자들도 몇몇 있다.”고 한다.
1. ‘예비 은총’은 죄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죄책과 위험과 속수무책 상태를 확신하게 하도록 하나님이 율법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청교도는 확신에 대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설명하고 죄인들이 반응할 수 있도록 훈계하는 것에 대한 방대한 논의를 생산했다. 즉 스스로를 성찰하고 자신들의 죄를 슬퍼하고 은혜의 수단들을 활발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성경읽기, 설교듣기, 묵상, 기도, 영적인 교제 등등을 강조했다.
2. ‘구원의 믿음의 예비’라는 개념에 오해가 없지는 않았다. ‘죄인은 자신의 죄로 죽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어떠한 것도 수행할 수 없는데 어떻게 죄인이 회심을 향하여 준비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대표적인 것이다. 교회사 속에서 특별히 오캄의 영향을 받았던 일부 중세 학자들은 인간이 자신의 의지를 따라 수행할 수 있는 것을 행한다면 하나님은 그것에 합당한 보상으로 회심하게 하는 은총을 베푸실 것이라는 일종의 남루한 거래 개념을 주장했다. 즉 이런 인간의 노력은 주님에게 부합한 ‘일치 공로(congruent merit)’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3. 비키는 예비 은총에 대한 청교도적 개념은 로마 카톨릭이 주장하는 공로 은총(meritorious grace)과 다른 것이며 구원에 인간의 공로가 끼어들 여지를 넉넉히 마련한 펠라기안 사상과도 다르며 오히려 그러한 것들이 성경적인 가르침과 무관한 것이라고 정죄한다. 청교도도 그랬다며.
4. 종교개혁 인물들과 청교도가 고수했던 성경적 가르침은 인간의 영적인 무능력과 오직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이다. 그럼에도 일례로 웨스트민스터 문헌들은 하나님이 구원하는 믿음과 영생에 이르는 회개의 중요한 전조요 인간으로 하여금 율법을 통한 죄 인식에 이르도록 하시는 수단인 성령의 일반 사역을 언급하고 있다. 웨민 고백서는 ‘돌이키지 않은 죄인들이 믿음 없이 은혜의 수단들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없음에도 그 수단들에 대한 그들의 태만함은 더욱 죄악된 것이며 하나님을 불쾌하게 만든다.’고 진술한다.
5. 실제로 많은 청교도가 ‘회심을 위한 준비’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잃어버린 죄인들이 돌이킬 것을 기대하며 은혜의 수단들 사용을 그들에게 권하였기 때문에 ‘준비주의(preparationism)’ 같은 거북한 호칭도 뒤따랐다. 물론 준비 개념을 과도하게 발전시켜 세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뉴잉글랜드 청교도가 없지는 않았단다. 비키는 이를 청교도 사상의 계승이 아니라 퇴락의 단면이라고 꼬집는다.
6. 비키는 구원의 믿음을 위한 예비 은총 개념에 대해 칼빈을 비롯한 종교개혁 인물들과 청교도 사이에 일종의 통일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청교도 내에서도 교리의 디테일에 있어서는 상이성이 발견된다. 그러나 인간은 죄로 죽었으며 하나님이 오직 은혜로만 죄인들을 중생케 하는 주체라는 것, 그리고 회심이 죄에 대한 확신과 말씀에 대한 경청의 과정과 관계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는 하나의 목소리를 낸다고 한다. 그리고 실질적인 예비주의 주창자는 청교도가 아니라 로마 카톨릭과 알미니안 옹호자라 역설한다.
7. 비키가 생각하는 ‘예비 은총’ 개념의 긍정적인 측면들은 이렇다. 1) 청교도 예비론은 복음의 자유로운 선포를 지원하고, 2) 철저한 개혁주의 개념이며, 3) 성령의 일반 사역을 강조하고, 4) 죄인들과 율법을 연결하려 하지 율법주의 사상을 두둔하진 않으며, 5) 중생의 신비에 대해서는 여전히 신비로운 그대로 열어두며, 6) 하나님을 창조자와 구세주로 경외하며, 7) 그리스도 예수의 충분성을 보이고, 8) 성경적인 토대 위에 세워진 개념이다.
8. 질의응답 시간에 ‘예비 은총’이란 용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배경이 있는지에 대해 여쭈었다. 사용하지 않아도 별 탈 없었을 텐데라는 추정에 근거해서 말이다. 이때 비키는 화란 개혁주의 진영과 청교도 진영 사이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즉 죄책감 직전--깊은 죄책감--회심--신자의 길 등으로 구분할 때에 화란은 죄책감 직전을 중생의 시점으로 보았지만 청교도는 깊은 죄책감 직후의 회심을 중생 확인할 수 있는 시점으로 강조했다 한다. 당연히 “회심 이전에는 하나님의 역사와 은총이 없었냐?”는 물음이 제기될 수 있었고 이에 대한 답변으로 ‘예비 은총’이 인간 편에서 획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주어진 것이어서 회심 이전에도 하나님의 주도적인 은혜와 역사 강조를 철회하지 않을 수 있었단다.
9. “청교도 내에서 혹시 ‘예비 은총’ 사용을 거절하고 심지어는 공격까지 한 청교도가 있었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간단했다. 없단다...!!! 멀러의 많은 멘트에는 논쟁적인 내용이 없었고 책의 건설적인 조언들로 충만했다. 비키는 꼼꼼하게 받아 적으시는 겸손과 존중의 자세를 취하셨다. 보기에 심히 좋았다. 멀러가 비키를 소개하는 서두에 동료(colleague)라는 호칭을 썼는데 비키는 멀러가 자신의 멘토(mentor)인데 동료는 과분한 것이라며 유쾌한 거절로 응수했다. 그것도 멋졌었다! 오늘 발표된 논문은 분량 면에서 여름에 나올 책의 ‘폭력적인 요약’이라 했다. 내년 여름에 청교도 신학의 주목받지 못한, 때때로 가려진 부위를 조명하는 서적을 기다리는 설레임이 하나 생겼다.
Friday, December 7, 2012
출처: http://paul-prodeo.blogspot.kr/2012/12/blog-post_7541.html
위 글 마지막 문장에 언급된 책이 출판됐나 봅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책에 연중론 수장께서 “순중론/연중론 논쟁을 끝내게 할 책”이라며 연중론의 희망을 거는 김치국물을 먼저 마시고 계시는 겁니다. “조엘 비키는 연중론자다.” 하고 싶으신 거지요.
그런데 연중론자들이 연중론자라고 주장한 신학자들 가운데 연중론자로 제대로 밝혀냈던 신학자가 단 한 분이라도 있었던가요? 오히려 이른바 “순중론자”들이, 연중론자들이 연중론자로 주장한 신학자들 여러 사람을 이른바 “순중론자”로 밝혀냈지요.
“위 조엘 비키 예비 은혜에 대한 글을 독해할 때, 조엘 비키는 연중론자가 아닙니다.” 저 역시 조엘 비키 새로운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연중론자들 독해력 문제, 즉 난독증을 생각하면서 김치국물 먼저 마시는 마음으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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