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바로 서기(Standing Erect) 

 

 

예수님은 종말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해와 달과 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날 것이며 땅에서는 성난 바다와

파도 소리에 놀라 민족들이 불안에 떨 것이다

 

사람들이 세상에 닥쳐올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 기절할 것이니
이것은 천체가 뒤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 사람들이 내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볼 것이다"

(누가복음 21:25~28)

 

이미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말씀을 통하여 내면 깊숙이에서
들은 사람들은 세상의 절망과 위대한
구원의 일들을 날마다 봅니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이런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너희는 일어나 머리를 들어라 너희 구원이
가까웠다"(누가복음 21:28)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커다란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어지러워 넘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그보다 우리는 똑바로 서서 팔을 쭉 펴서
주를 환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준비된 상태에서 살아가기(Living in a State of Preparedness)

 

무엇이던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에 대하여
우리는 열린 마음과 믿음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준비된 상태에서 살아야 종말의 시대를
소망과 기쁨 가운데 살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말한 것과 같이 우리는 조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여러분의 원수인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찾아 돌아다니고 있기"(베드로전서 5:8)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하고 술 취하고
인생살이 걱정하다가 마음이 둔해져서
뜻밖에 그날이 너희에게 덫과 같이 덮칠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들을 겪지 않고
내 앞에 설 수 있도록 언제나 정신차리고 기도하여라"
(누가복음 21:34~36)

우리가 성령 안에서 살 때에 따라야 할 말씀입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하나로 붙들어 놓기(Keeping it Together)

 

세상 사람들과 일들이
우리를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영혼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끊임없이 동요하고 있는데
어떻게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하나로 붙들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너희 머리카락 하나도 상하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인내하면 너희 자신을 구할 것이다"
(누가복음 21:18~19)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는 것보다
하나님이 우리를 더 친밀하게 아신다는 것을
우리가 믿을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 남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함께 붙들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믿을 때, 우리는 우리 영혼을 하나로
붙들어 놓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 몸의 각 부분 부분이,
심지어는 머리카락 하나하나도
하나님의 신성한 포옹 속에서 안전하다는 것을
우리가 믿을 때에만,
우리는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즉 우리가 영적인 삶을 살 때,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사랑에 닻을 내리기(Remaining Anchored in Love)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할 때,
우리는 지나치게 대비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공격을 받을 때 무슨 말을 할까,
조사를 받을 때 어떻게 대응할까,
그리고 비난을 받을 때 어떤 변호를 할까 하고
곰곰이 생각합니다

 

바로 이러한 혼란이 우리로 하여금
자신감을 잃게 하고,
우리의 자아 의식을 약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조금도 걱정하지 말 것이며,
우리가 필요한 말과 지혜를 우리들에게
주시라는 것을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준비한 말이
많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닻을 내리고
우리는 누구이며 그리고 왜 우리가
여기에 있는가에 대하여
자신감을 가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장이 예수님의 심장과 연결되어 있으면,
말을 해야 할 때에 우리는 항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땅을 딛고 서기(Holding Our Ground)

     

    사회적, 정치적 혼란과 엄청난 인간의 고난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믿음의 사람들은, 이른바 그들의 비효율성 때문에 비웃음 거리가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하나님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하나님께 세상의 이 혼란스러운 일들에 대하여 어떻게 좀 해보라고 말해 봐!" 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종교는 현실과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새롭고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종교가 방해물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당한 것처럼 그의 제자들 또한 박해받고,  체포되며, 고문받으며,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우리들에게 염려하지 말고, 언제나 그를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미리부터 변명할 말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라 내가 너희 대적들이 대항하거나 반박할 수 없는 말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겠다"(누가복음 21:15~15)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오는 회의와 냉소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땅을 딛고 설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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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의 기회(Opportunities th Witness)
 

 

 

예수님은 우리가 현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현 시대를 종말의 시대ㅡ
예수님을 위하여, 그리고 예수님의 왕국을 위하여
증거할 수 있는 무한한 기회가 제공되는 시대ㅡ와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재해
그리고 매일 매일 많은 사람들에게 들이닥치는
온갖 비극들이 우리를 절망으로 인도하며,
우리는 자신들이 환경의 어쩔 수 없는
희생물이라고 생각하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사건들을
근본적으로 다른 각도에서 보십니다

그는 이러한 사건들을 증거를 위한 기회라고 부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이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들에게 일깨워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조건없는 사랑에 대한
살아 있는 증인이 되기 위하여 이 세상에 보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은 우리들이 우리의 실시적인
세상적 존재를 넘어서 우리들에게 약속된
영원한 생명을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옮긴 글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사랑에 닻을 내리기(Reming Anchred in Love)  (1) 2012.12.06
땅을 딛고 서기(Holding Our Ground)  (0) 2012.12.04
종말의 시대 살아가기(Living in the End-Time)  (0) 2012.12.02
축복을 선택하기(Choosing the Blessing)  (0) 2012.11.30
서로서로를 축복하기(Blessing One Another)  (1) 2012.11.28

  
 
종말의 시대 살아가기(Living in the End-Time)
우리는 종말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창조물이 곧 끝장이 날 것이라는 말이 아니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종말의 징조가
이미 우리들에게 나타나고 있음을 뜻합니다

전쟁, 혁명, 민족과 민족간의 싸움, 지진, 전염병,
기근 그리고 박해, 이러한 것들이
모두 종말의 징조입니다(누가복음 21:9~12 참조)

예수님은 세상의 이러한 일들을 보시고,
이 세상은 우리가 거주할 마지막 장소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기 위하여 오실 것이라는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너희는 일어나 머리를 들어라
너희 구원이 가까웠다"(누가복음 21:28)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무서운 일들이
우리의 최후의 구원을 준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옮긴 글
출처: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축복을 선택하기(Choosing the Blessing)

 

우리들에게는 우리 자신이
저주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려는 유혹이 끊임없이 있습니다

 

친구의 죽음, 병, 사고, 자연재해, 전쟁,
또는 실패와 같은 일을 당하면,
금방 우리는 운이 나쁜 사람이며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언론 매체들이 매일 매일 보도하는
인간의 불행을 보고, 우리의 생애가
저주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하려는
유혹은 더욱 커집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저주하러 오신 것이 아니고
우리들을 축복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축복을 받는 것을 선택해야 하며,
이 축복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축복과 저주는 항상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자유입니다
하나님은 축복을 선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서로서로를 축복하기(Blessing One Another)

 

축복한다는 것은 좋은 것을 말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서로를 축복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를 축복해야 할 필요가 있고,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그리고 친구는 친구를 축복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주로 가득 찬 우리 사회에서 우리는 가는 곳마다
축복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라는 것을 쉽게 잊어버리고
이 세상의 온갖 저주가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을
내버려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또 다른 사람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일깨워 주어야 합니다

축복을 말로 하든 몸으로 표현하든, 엄숙하게 하든
또는 격식을 갖추지 않고 하든, 우리의 인생은
축복된 인생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사랑의 말을 하기(Speaking Words of Love)

     

    우리는 흔히 말을 해야 할 때 침묵을 지킵니다 말을 하지 않고는 사랑을 잘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부모, 자녀, 애인, 또는 친구들에게 "정말 사랑해요" 라거나 "늘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자주 생각해요" 또는 "당신은 나의 가장 큰 선물이에요" 라고 말할 때우리는 그들에게 생명을 주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사랑을 말로써 직접 표현하는 것은 항상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을 말로 직접 표현할 때 우리는 오랫동안 기억될 축복을 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빠, 전 아빠를 사랑해요" 라고, 어머니가 딸에게 "얘야, 난 너를 사랑해"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새로이 축복받은 커다랗고 살기 좋은 장소가 마련됩니다 사랑의 말은 참으로 생명을 창조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Proverbs 4:1-27



말을 현명하게 선택하기 (Choosing Words wisely)
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어떤 사람에게 "당신은 추잡하고, 쓸모없으며, 비열한 사람" 이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아마도 한평생 그 사람과 인간 관계를 맺을 수 없을 것입니다 말은 몇 년이고 계속해서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말을 현명하게 선택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화가 나서 속을 부글거리면서 우리의 반대자들에게 나쁜 말을 퍼붓고 싶어질 때, 침묵을 지키는 게 낫습니다 화가 나서 내뱉은 말은 화해를 힘들게 만들 것입니다 죽음이 아니고 생명을, 저주가 아니고 축복을 선택하는 것은 흔히 침묵을 지키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또는 치유의 길로 향하는 문을 여는 말을 선택함으로써 시작됩니다 점점 깊어져 가는 가을 날입니다. 주님께서 두 번 오실 때가 가까운 것 같습니다. 날마다 전도인의 직무를 다하는 말, 믿음의 말을 선택한다면 좋겠습니다 상대를 살리고 나도 사는 말만 한다면 좋겠습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대응하기 전에 기다리기

(Waiting with Our Response)

 

죽음 대신 생명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충동과는 상치되는
의지의 행동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의지는 용서하기를 원하는데
우리의 충동은 복수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충동은 우리를 즉각적인 보복으로
몰고 갑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의 얼굴을 때리면,
우리는 충동적으로 되받아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의지가
충동을 지배할 수 있을까요?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주는 말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리들을 향한 적대 행위와
우리의 대응 사이에 간격을 두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보고,
시간 여유를 두고 생각하며, 친구들과 상의하며,
그리고 생명을 선사하는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는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충동적인 대응을 하는 것은 악이 우리를 지배하게
내버려두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항상 우리를 후회하게 만듭니다 .

 그러나 잘 생각해 본 후 대응하면
우리는 "선으로 악을 지배" (로마서 12:21)할 수 있습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악을 선으로 이기기(Master Evil with Good)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축복하고 저주하지 마십시오 ...
누구에게나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
여러분이 직접 복수하지 말고 ...

네 원수가 굶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거든 마실 것을 주어라 ...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로마서 12:14~21)

바울을 통해서 주신 주의 이 말씀은
영적 생활의 심장부를 찌르는 말입니다

이 말들은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선택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뜻하며,
저주가 아닌 축복을 택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지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들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들은
인간 본성과는 반대되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행동하도록
요구되고 있는 이러한 일들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혼신으로 이해할 수 있을 때에만,
우리는 바울의 말씀을 좇아 행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하나님이 주신 진정한 자아를 주장하기
(Claiming Our God-Given)

우리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마음의 큰 상처를 받았을 때,
적대적인 생각이나 분노, 또는 미움, 심지어는
복수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러한 생각과 감정은 흔히 내면적으로 통제되지 못하고
거의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에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항하기 위하여
무슨 말을 해야 할 것인지 또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경우 저주 대신 축복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믿음의 도약이 요구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복수심에 불타는 우리의 모든 욕망을
뛰어넘겠다는 의지와 생명을 주는 대응을
선택하겠다는 의지 모두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때로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상처받은 우리 자신을 초월하여
하나님이 주신 진정한 자아를 주장할 때 마다,
우리는 자신들뿐 아니라 우리의 감정을 해쳤던
그 사람들에게도 생명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훈련을 필요로 하는 선택(A Choice of Calling for Discipline)

 

우리의 마음과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많은 생각과 느낌을 비판적으로 보면,
우리는 흔히 생명보다는 죽음을,
그리고 축복보다는 저주를
선택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게 됩니다

질투, 부러움, 성냄, 후회, 탐욕, 열망, 변명, 증오ㅡ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내면에 있는 커다란
생명의 저수지에서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내버려두며,

또한 파괴적인 활동을 하는 것을 용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생명을 선택할 것과
축복을 선택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이러한 선택은 엄청난 내면의 훈련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내부에 있는
죽음의 세력에 대하여 크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생명의 세력이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지배할 수 있도록 단단히 마음먹어야 합니다

 

우리가 언제나 이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관심이 있는 안내자나 또는 사랑의

공동체의 지지를 필요로 하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가 내면의 노력을 하고, 또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지지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하여
우리가 생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움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옮긴 글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생명을 택하기(Choosing Life)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제시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이 살려고 하면 사는 길을 택하십시오"(신명기 30:19) "생명을 택하십시오" 이것이 우리들을 향한 부르심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는 이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될 순간이라고는 한 순간도 없습니다 생명과 죽음은 항상 우리 앞에 있습니다 우리의 상상 속에, 우리의 생각 속에, 우리의 말 속에, 우리의 몸짓 속에, 우리의 행동 속에, 심지어는 우리의 무행동에도... 이 생명의 선택은 우리의 내부 깊숙한 곳에서 시작합니다 바로 그 생명을 확인하는 행동의 심연에서 나는 아직도 죽음의 느낌을 품을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내가 죽을 것인가? 가 아니고, "내가 내 마음에 축복을 품고 있느냐 아니면 저주를 품고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총탄은 증오가 사용하는 최후의 도구에 불과합니다 증오는 총을 뽑기 훨씬 전에 이미 우리의 마음속에서 싹트고 있었던 것입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감사하는 죽음(A Grateful Death)

 

죽음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가 죽은 후에 우리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까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뒤에 남겨두고 떠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죽느냐 하는 문제는 살아 남는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만일 우리가 비통하고 환멸적인 마음을 가지고 죽기보다 감사하는는 작별 인사를 하고 죽는다면, 우리의 가족이나 친구들은 기쁜 마음과 평화 속에서 쉽게 우리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감사의 선물입니다 감사는 그들을 자유케 하여, 비통한 느낌과 자기 비판없이 삶을 계속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

죽음을 준비하기(Ready Being to Die)

 

죽음은 갑자기 찾아옵니다
자동차 사고, 비행기 추락, 치명적인 싸움, 전쟁, 홍수, 등등...
우리가 건강하며 힘이 충만할 때는 죽음에 대하여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참으로 뜻밖에 올 수 있습니다
어떻게 죽음을 준비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우리의 인간 관계를 미완성으로 남겨두지 않음으로서
죽음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을 상하게 한 사람을 내가 용서해 주었는가,
또한 내가 마음을 상하게 한 사람으로부터 용서를 구했는가 하는
문제는 죽음에 앞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내 인생의 한 부분인 사람들과 내가 화평하다고 느낄 때,
비록 나의 죽음이 큰 슬픔을 불러올 수는 있으나
죄나 분노는 불러 일으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어느 순간이고 죽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우리는 또한 어느 순간이고 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몇 년 전에 출간된 《인생 수업》이란 제목의 책이 있다. 이 책은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로 알려진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자신의 제자인 데이빗 캐슬러와 함께 죽음 직전에 있던 수백 명의 사람을 인터뷰하고 그 인터뷰를 토대로 저술한 교훈집이다.

제목 그대로 우리가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 꼭 알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가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그 책에 여러 가지 사례들이 나오는데, 그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여성이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앞의 차들이 다 서는 것이다. 그래서 그 여성도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고 차를 세웠는데, 백미러를 보니 뒤에서 차 한 대가 굉장한 속력을 내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고 한다.

그 순간 ‘지금쯤 브레이크를 밟지 않으면 사고가 날 텐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본능적으로 핸들을 꽉 움켜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순간 나는 운전대를 움켜쥐고 있던 내 손을 내려다보게 되었습니다. 의식적으로 꽉 잡았던 것은 아닙니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한 것이고 그것이 내가 그때까지 살아온 방식이었습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살고 싶지도 않았고 이런 식으로 죽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눈을 감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양손을 옆으로 내려놓았습니다. 운전대를 놓아버린 것입니다. 삶에, 그리고 죽음에 순순히 나 자신을 맡겼습니다. 뒤이어 엄청난 충격이 느껴졌습니다.”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지 충분히 짐작 가지 않는가? 바로 몇 초 사이에 뒤차가 전속력으로 달려와 그녀의 차를 들이받았고, 차에 있던 여성은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그녀가 한참 만에 깨어나 보니 자기 차는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었고 자기 앞의 차와 뒤의 차까지 모두 크게 망가져 있었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그런 상황에서 그 여성은 하나도 안 다치고 멀쩡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는데, 사고를 조사하던 경찰관이 몸에 긴장을 푼 것이 다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라고 말해주었다. 핸들을 꽉 움켜쥔 채 근육이 긴장한 상태로 있으면 오히려 심한 부상을 입을 확률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 여성은 그 사건을 통해 자기 인생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동안 그녀는 늘 그렇게 주먹을 꽉 움켜쥔 채로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그 사건을 통해 긴장을 내려놓고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 후로 자신의 삶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다가 위기와 어려움을 만날 때 꽉 움켜쥔 손을 풀 수 있는 것, 바로 여기서부터 ‘샬롬’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신뢰가 있을 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 뒤에 계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함으로 움켜쥔 인생의 손을 내려놓을 수 있을 때, 우리의 내면은 ‘온전한 샬롬’으로 회복된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찬수 "삶으로 증명하라"중에서

† 말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 빌립보서 4장 6,7절

친구가 보내어 온 글입니다!
따뜻한 시간 되세요. /김만니
출처: 목양연가 중에서
 


  
사랑 그리고 떠남의 아픔 
(Love and Pain of Leave)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큰 고통으로 밀어 넣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우리들을 기쁘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또한 슬프게 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고통은 떠남에서 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집을 떠날 때, 남편과 아내가 
오랜 기간 떨어져 있어야 할 때, 
또는 아주 헤어질 때, 사랑하는 친구가 
다른 나라로 가거나 죽을 때, 
떠남의 고통은 우리의 마음을 찢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떠남의 고통을 피하려고 하면, 
우리는 또한 결코 사랑의 기쁨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두려움보다 강하고, 
생명은 죽음보다 강하며, 
희망은 실망보다 강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데 따르는 위험은 
언제나 선택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인생의 질(The Quality of Life)

 

젊어서 죽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힘듭니다
일흔 살, 여든 살, 또는 아흔 살 먹은 친구가 죽었을 때,
우리는 대단히 슬퍼하며 아쉬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오래 산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십대의 아이, 젊은 청년,
또는 인생의 절정에 있는 사람이 죽었을 때,
"왜? 왜 그렇게 빨리? 공평하지 않아" 하면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항의를 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살아온 기간보다는
그 질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젊어서 돌아가셨습니다 
영웅호걸, 성인군자들도 모두 다 죽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오래 살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얼마나 오래 살지를 모른다는 사실
그 자체 때문에, 우리들은 우리 인생의 매일 매일을,
매주일 매주일을, 그리고 한 해 한 해를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충실하게 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우리의 갈 길을 아름답게(Living Our Passages Well)

 죽음은 새 생명에 이르는 통로입니다
매우 아름다운 말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 길을 가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이 마지막 통로에 앞서 많은 통로들이

우리들에게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태어날 때, 우리는 어머니 뱃속의 생명에서
가족 안에서의 인생이 되는 통로를 지납니다

학교에 입학할 때, 우리는 가족 안에서의 인생에서
보다 큰 공동체 안의 인생으로 가는 통로를 지납니다

결혼할 때, 우리는 많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인생에서
한 사람에게 자신을 맡기는 인생의 통로를 지나갑니다

은퇴할 때, 우리는 명확하게 규정된 할동의 인생에서
새로운 창의성과 지혜가 요구되는 인생의 통로를 지나갑니다

이 각각의 통로는 새 생명에 이르는 죽음입니다
우리가 이 통로들을 아름답게 살면,
우리는 죽음의 통로를 더 잘 대비할 수 있습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가난한 사람의 보물(The Treasure of the Poor)

                        가난한 사람은 우리가 제공하는 호의에 대하여 보답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사실 때문에 그들에게는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 보물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우리가 그들에게 행한 것에 대하여
돈으로 지불하지는 않으나, 그들은 우리를 내적인 평화,
비이기심, 관대함 그리고 진정한 돌봄으로 초대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잔치를 베풀 때 가난한 사람과 불구자와 절뚝발이와
소경들을 초대하여라 그러면 그들이 너에게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너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의로운 사람들이 부활할 때 하나님이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누가복음 14:13~13)

예수님이 갚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영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기쁨, 평화, 그리고 우리가 너무도
열렬히 소망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것이 가난한 자들이 내세에서 뿐만 아니라
여기 바로 이 순간에 이미 우리들에게 주는 보물입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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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의 아픔을 가지고 가기(Taking the sting Out of Death)

죽는 것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러 사람들로부터 이 말을 많이 들었지만,

우리는 좀처럼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있는 곳에 머물러 있기를 더 좋아합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지만,
장차 무엇을 가질 것인가는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 내세의 가장 매력적인 이미지마저도
죽음의 공포를 없애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인간 관계가 어려울 때, 경제 사정이 어려울 때,
그리고 건강이 좋지 않을 때도 생명에 매달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에서 아픔을 가져 가기 위하여,
그리고 죽음은 우리가 마음 깊이 소망하는 것이
충족되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차차 깨닫도록 돕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이것을 믿고자 하는 작은 노력들이
우리들로 하여금 이 진리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우리의 가난, 하나님의 거하시는 곳 (Our Poverty, God's Dwelling Place) 우리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데 어떻게 우리가 가난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라며 그것을 끌어안을 수 있을까요? 가난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우리는 "나의 가난은 무엇일까?" 라고 우리 자신에게 묻지 않으면 않됩니다 돈이 없는 것, 감정적인 안정이 없는 것, 사랑할 상대가 없는 것, 사회 보장이 없는 것, 생활에 안전성이 없는 것, 또는 자신감의 상실, 어떤 것들이 나의 가난일까요? 인간은 누구에게나 가난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이 가난한 곳이 하나님이 거하시기를 원하는 장소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마태복음 5: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가난 속에 우리의 축복이 숨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가난을 감추고 무시하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흔히 가난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가난을 우리의 보물이 숨겨져 있는 축복의 땅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고독 속에서 하나님께 매달리기(Cling to God in Solution)

우리가 오직 하나님과만 있기 위하여 고독에 잠길 때,
우리는 곧 우리가 얼마나 의존적인 사람인가를 발견합니다
일살 생활에서 오는 온갖 분주함에서 해방된 우리는
안절부절하며 긴장감을 느낍니다

아무도 우리들에게 말하지 않고, 우리를 찾아오는 사람도 없고,
또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으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보잘것없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유용한 사람인지, 가치 있는 사람인지,
우리는 중요한 사람인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두려운 고독에서 빨리 탈출하여 다시 바쁜 생활로 돌아가서
우리도 '중요한 사람' 이라는 것을 확인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의 유혹입니다
우리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우리를 '중요한 사람' 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이 우리를 '중요한 사람' 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의 진실을 주장하기 위해서, 우리는 고독 속에서
우리를 현재의 우리 되게 하신 분, 즉 하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은밀함, 친밀함의 자리. 
(Hiddenness, a Place of Intimacy)

은밀함이란 영적 생활의 본질입니다
고독을 느끼고, 침묵하고, 일상적인 일을 하며, 
특별한 일 없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며, 잠을 자고, 
음식을 먹으며, 일을 하고, 놀이를 하며...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이러한 생활이 예수님이 살아오신 생활입니다
dms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도 이러한 생활을 하기를 
요구하십니다
은밀함 속에서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누가복음 2:52)

은밀함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진정한 친교와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찾을 수 있습니다

활발한 공생애 중에도 항상 예수님은 
하나님과만 있기 위해 
은밀한 장소를 찾으셨습니다 
우리들에게 하나님과의 은밀한 생활이 없으면, 
외부에 드러난 우리들의 하나님과의 생활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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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숨겨진 생애(The Hidden Life of Jesus)



예수님 생애의 많은 부분은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며" 사셨고(누가복음 2:51)

"지혜와 키가 점점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습니다"(누가복음 2:52)

예수님을 생각할 때 우리는 주로 그의 말씀, 기적, 열정, 죽음

그리고 부활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것들에 앞서

예수님은 많은 위대한 사람들과 큰 도시 그리고 큰 사건들을 멀리 떠나서,

한 작은 마을에서 단순하고 숨은 삶을 사셨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으면 않됩니다

예수님의 숨은 생애는 우리의 영적 여행을 위하여 매우 중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섬기기 위하여 말과 행동으로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의 단순하며 돋보이지 않는, 그리고 매우 평범한 숨겨진 생활을 하신

예수님을 따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열매를 신뢰하기(Trusting in Fruits)

       

       

      우리는 반드시 일의 결과를 보기 원합니다

      우리는 생산적이기를 원하며, 우리가 해낸 것을

      직접 눈으로 보기 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방법이 아닙니다
      많은 경우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증거는 만질 수 있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보기에는 자랑할 만한 성공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세상적인 시각대로라면 실패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생애의 풍성한 수확은

      인간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큽니다

       

      예수님의 충실한 증인으로서, 우리가 비록

      그 열매를 볼 수는 없을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생애도 풍성한 열매를 맺으리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생애의 열매는 아마도 우리 후손들만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사랑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열매를 볼 수 있든 볼 수 없든 하나님은

      우리의 사랑이 열매 맺게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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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으로 불타기(Burning with Love)

      흔히 우리는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증인이 될 수 있을까?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도록 하려면

      우리들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해야 할까?" 라는

      질문에 골몰하게 됩니다

      이러한 질문은 사랑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두려움의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증인이 되는 길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 계셨고

      하나님의 의지와 결합되어 있으셨으며,

      천국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고 계셨기 때문에,

      증인이 되는 것 외에는 아무 다른 일도 하실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어디를 가시든지 누구를 만나시든지

      그를 만지는 사람마다 낫게 하는 권능이 그로부터 나왔습니다

      (누가복음 6:19 참조)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증인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도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 사는 것을 열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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