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에 주리고 목마르신 예수님

(Jesus Hungers and Thirsts for Uprightness)


하나님의 축복받은 아들인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하십니다

 

그분은 불의를 증오합니다
그는 억압과 착취를 통하여 부를 쌓고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사람들에게 저항하십니다

 

그분은 전생애를 통하여 사람들이 서로서로를

형제 자매와 같이, 그리고 같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대우하기를 염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천국으로 가는 길은 기도를 많이 하고

많은 번제를 올림으로써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굶주리는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벗은 자에게 옷을 입혀 주며,

그리고 병 든 이와 옥에 갇힌 사람을 돌아보는 일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거듭 주장하십니다(마태복음 25:31~46)

 

그분은 정의로운 세상을 갈구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들도 그가 겪었던 것과 같은

굶주림과 목마름으로 세상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애통해 하시는 예수님 (Jesus Mourns) 축복받으신 예수님은 애통해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의 친구 나사로가 죽었을 때 눈물을 흘리셨습니다(요한복음 11:33~66 참조) 예수님은 곧 파괴될 운명에 놓인 예루살렘을 내려다보시고 우셨습니다(누가복음 19:41~44 참조) 예수님은 인간의 가슴에 가득 찬 온갖 손실과 정신적 파멸을 보시고 고통 속에서 슬퍼하십니다 그분은 슬퍼하는 자와 함께 슬퍼하시며 우는 자와 함께 눈물을 흘리십니다 폭력과 탐욕, 욕망, 그리고 세상과 세상 사람들의 얼굴을 뒤틀리게 하는 온갖 죄악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을 애통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경험하기 원한다면, 우리도 또한 애통해 하지 않으면 됩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자유게시판:김만니(섬김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축복받으신 예수님은 온유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비록 열정적으로 말씀하시고,
    여러 형태의 위선을 비판하시고,
    속이는 것과 허영과 술수와 억압을 공격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지만,
    그러나 그분의 마음은 온유하십니다 그분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십니다(마태복음 12:20)
    그분은 사람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상처를 치유하며,
    그리고 마음이 약한 자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십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는 복음을, 눈먼 자에게는 다시 보게 함을,
    포로 된 자에게는 자유를 주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누가복음 4:8~19참조)
    그리하여 예수님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무한한 긍휼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우리들은 예수님과 같은 온유함을 가져야 합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의에 주리고 목마르신 예수님(Jesus Hungers and Thirsts for Uprightness)  (0) 2012.08.19
애통해 하시는 예수님  (0) 2012.08.18
예수님의 자화상(Jesus' Self-Portrait)  (0) 2012.08.15
축복받은 예수님(the Blessed One)  (0) 2012.08.14
예수님의 긍휼(Jesus' Compassion)  (0) 2012.08.13

이미지 전체보기




    예수님의 자화상(Jesus' Self- Portrait) "마음이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유순한 사람,의를 위해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 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화평을 이루는 사람,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5:3~10)
    이 말씀은 예수님의 자화상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축복받으신 분입니다 축복받으신 분의 얼굴에는 가난함, 온유함, 애통함, 굶주림, 의를 위한 목마름, 불쌈히 여김, 마음의 청결함, 화평에 대한 소망, 그리고 핍박받은 흔적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되라는 것이 복음서가 우리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전부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자화상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자화상을 우리 눈앞에 간직한다면,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처럼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곧 알게 됩니다 -옮긴 글 -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Vincent /Dana Winner♬



 



    ▒축복받은 예수님

    (the Blessed One)

    예수님은 축복을 받으신 분입니다
    라틴어원의 단어로서 축복을 의미하는
    베네딕션(benediction)이란 말은
    '좋은 것(bene)'을 '말하는 것(dicere)'을 의미하며,
    축복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블레싱(blessing)과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에 관하여 좋은 것을 말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축복을 받으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 "하늘에서
    '이 사람은 내가 사랑하고 기뻐하는 내 아들이라' 라는
    음성이" 들려왔을 때(마태복음 3:16~17),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축복을 듣습니다

    이 축복과 함께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공생애를 통하여 우리는
    이 축복이 예수님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 -옮긴 글
    ▒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
 
  
    
 

 
 






































 예수님의 긍훌(Jesus' Compassion)

 

예수님은 임마누엘이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1:22~23참조)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은 결코 사람들의 비판이나 칭찬에 의하여 영향을 받지 아니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의사에 따른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더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은 예수님 생애의 크나큰 모순입니다 예수님의 긍휼, 즉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의 깊은 감정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생애가 인간들의 존경에 의하여 인도를 받은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사랑에 의하여 인도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사랑에 의존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우리들을 자유롭게 사랑하실 수 있었습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예수님의 자유(Jesus' Freedom)  

예수님은 진실로 자유로우셨습니다
예수님이 자유로우셨던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사실을
영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기 이전부터 하나님께 속해 있었고,
하나님의 사랑을 선포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보내어졌으며,
그리고 이 사명이 끝나면
하나님에게로 돌아갈 것이라는 사실을
가슴 깊이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세상을 즐겁게 하는 일과는 관계없이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와 또한 하나님의 치유하시는 사랑으로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 주는 능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복음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큰 능력으로 모든 사람을 고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저마다 그분을 만지려고 하였다"(누가복음6:19)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끝나지 않은 일: 용서
(The Unfinished Business of Forgiveness)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인데도 무엇이 우리를 삶에 매달리게 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끝내지 않은 일이 있어서일까요? "나는 당신을 용서합니다 그리고 당신도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삶에 매달려 있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한 사람을 용서하고, 또 우리가 마음의 상처를 준 사람에게 용서를 구할 때, 
새로운 자유가 생깁니다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자유입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3:34) 예수님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이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은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누가복음 23:46)라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

                                             사랑은 남아 있을 것이다(Love will Remain)

우리가 죽으면 희망과 믿음도 끝이 납니다
그러나 사랑은 남아 있을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에게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죽을 때, 우리는 사랑 이외에 생명이
우리에게 준 모든 것을 잃어버립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온 사랑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사랑은 신성한 그리고 파괴할 수 없는
우리 존재의 핵심입니다

 이 사랑은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대에서 대를 이어가며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죽음이 임박했을 때,
두고 떠나는 사람들에게 
"너무 괴로워 하지 마세요
나의 가슴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에게로 가서 당신을 위로하고 힘을 줄 것입니다" 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이미지 전체보기

 

 우리의 죽음을 선물로 만들기
(Making Our Deaths Gifts)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죽음을 다른 사람을 위해
주는 선물로 만들 수 있을까요?

흔히 친척이나 친구의 죽음으로 인하여
우리의 생명이 파괴되기도 하고, 손상을 입기도 하며,
영구적으로 상처를 입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죽음이 임박했을 때, 직접 말로써,
혹은 글을 써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우리의 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감사함을 표시하고,
우리의 부족했던 것에 대하여 용서를 구하며,
동시에 그들의 부족함에 대하여 그들을 용서하고,

그리고 그들이 후회함 없이 삶을 살아가되,
우리 생명의 우아함을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우리의 진실된 소망을 표현할 때,
우리의 죽음은 진정한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흔히 우리는 죽음이 어떻게 우리에게
      찾아올 것인가를 알고 싶어합니다
      우리는 병 들어서 죽게 될 것인지,
      사고로 죽을 것인지, 전쟁에서 죽을 것인지,
      또는 자연의 재앙 때문에 죽을 것인지
      궁금해 합니다
      우리는 또한 갑자기 죽게 될 것인지,
      아니면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될 것인지를
      궁금해 합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걱정하면서
      시간을 보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어떻게 끝날 것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모르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죽을 때 살아 남은 사람들이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하고 죽을 것인지,
      아니면 그들을 수치감이나 죄책감에 빠지게 하고
      죽을 것인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어떠한 상태에 두고
      죽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우리가
      우리의 죽음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도 감사하고
      가족들에게도 감사하며, 그리고 친구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으로 죽을 수 있으면,
      우리의 죽음은 다른 사람을 위한
      생명의 원천이 될 수 있습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잘 죽기 위하여 기도하기(Praing to Die Well)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아.
그렇지만 죽어 가는 과정은 두려워" 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흔히 병들며, 고통을 당하며,
남에게 의지하며, 그리고 외로움을
의미하게 때문입니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부끄러울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모든 두려움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두려움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두려움에 빠져 들었습니다
고뇌 속에서 예수님이 "땀이 핏방울같이 되어
땅에 떨어졌습니다" (누가복음 22:44)

죽는 것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예수님이 하신 것과 같이 우리는 새 생명에 이르는
통로를 만들어 내는 특별한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예수님께 천사를 보내신 것과 같이
우리를 위로하기 위하여 천사를 보내실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게 될 것입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비어 있는 것과 꽉 차 있는 것
    (Emptiness and Fullness)

     

    비어 있는 것과 꽉 차 있는 것은

    처음 보기에는 정반대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생활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영적인 생활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마음을 비움으로써 우리의 커다란 욕망을 채우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의 충만함을 받기 위하여

    우리의 생명의 잔을 완전히 비우지 않으면 안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생명의 잔을

    완전히 비우셨습니다
    완전히 비어 있는 순간과

    완전히 꽉 차 있는 순간은 같은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 아버지에게 맡기셨을 때,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

    (요한복음 19:30)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올려진 예수님은

    또한 부활하셔서 승천하셨습니다
    자신을 비우고 낮춘 예수님은 들어올려져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을 받으셨습니다

    (빌립보서 2:7~9 참조)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겠느냐?" 고 하신

    예수님의 물음을 끊임없이 듣도록 하십시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





 

생명의 잔 마시기 

 

우리는 생명의 잔을 꽉 쥐고

다른 사람을 위한 희망의 표시로서

그 잔을 높이 들어올려서 이 잔을 마셔야 합니다

 

생명의 잔을 마신다는 것은

인생의 온갖 슬픔과 기쁨을 포함하여,
우리 각자가 우리의 인생이라고 인정하는

모든 것을 완전히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흡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우리는 우리의 잔을 마시는 것일까요?
침묵 가운데서 생명의 진리를 듣는 것처럼,

우리가 원하는 성장의 방법에 관하여 믿음 안에

친구와 얘기하는 것처럼, 그리고 섬기는 일을 하는 것처럼,

우리는 생명의 잔을 마십니다


 

생명의 잔을 마시는 것은 하나님의 소명을

우리의 자유 의사로서 용감하게 따르는 것이며,

우리가 있어야 할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의 잔은 구원의 잔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잔을 다 비우면, 하나님은 영원한 생명의 '물' 로

다시 잔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잔을 들어올리기(Lifting the Cup)

인생의 슬픔과 기쁨을 온전히 인정하면서
우리가 생명의 잔을 꽉 잡을 수 있다면,
우리는 또한 이 잔을 인간의 유대를 위하여
들어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잔을 들어올리는 것은 우리가 현재 우리의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잔을 들어올리는 것은 또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참모습과
친구가 되도록 격려해 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잔을 들어올리면서 "삶을 위하여" 또는
"건강을 위하여" 라고 말할 때, 우리는 우리의 생애를
함께 돌아볼 의사가 있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인간 공동체가 되어
우리들에게 주어진 잔이 우리들을
진정한 만족으로 인도하리라는 것을 믿고
그 잔을 마시기를 서로서로에게 권하게 될 것입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
 
 
    ">

    


 

우리는 모두 우리의 생명의 잔을 붙잡지 않으면 안됩니다
우리가 나이들고, 인생의 수많은 슬픔들,
예를 들어 개인적인 실패, 가족간의 다툼,


직장과 사회 생활에서의 실망, 그리고 국내적으로나

국제적으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아픔을
더 잘 이해하게 되면, 우리 자신과 주위 환경이
모두 우리들로 하여금 이러한 슬픔을 무시하거나,
피해 가거나, 억누르거나 또는 부정하도록 부추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의 밝은 면만 보십시오,
그리고 최선을 다하십시오" 라고
우리 자신에게 말하기도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생명의 잔을 마시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먼저 그 잔을 붙잡아야만 합니다

 

>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슬픔을 피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와 친구가 됨으로써, 우리가 찾고 있는 기쁨이
바로 그 슬픔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삶을 온전히 인정해야 합니다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생명의 잔(The Cup of Life)

야곱과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와서, 
하나님 나라에서 자기의 두 아들에게 
특별한 자리를 주시도록 요청했을 때,
 
예수님은 "내가 곧 마시게 될 고난의 쓴 잔을 
너희도 마실 수 있겠느냐" 고 반문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0:22)
 "너희도 이 잔을 마실 수 있느냐" 라는 
이 질문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물을 수 있는 
가장 도전적이면서도 본질적인 질문입니다

이 잔은 슬픔과 기쁨이 가득 찬 생명의 잔입니다
우리는 이 잔을 높이 쳐들어, 
다른 사람을 축복할 수 있을 까요?

우리는 이 잔이 우리를 구원한 잔이라고 생각하여, 
이 잔을 다 비울 수 있을까요?
우리가 연습할 수 있는 가장 힘든 영적 운동은 
이 질문이 우리 자신 안에 계속 살아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
 

이미지 전체보기


 

흔히 우리는 다른 사람을 가르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조차 주저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더 말해 달라고 요청할 때,
더 이상 말할 게 없을까 봐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마음가짐 때문에, 우리는 걱정하고 숨으려 하고
소유하려 들며, 그리고 다른 사람 앞에 나가기를
꺼리게 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요청할 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자연스럽게
그들과 나누어 가질 용기가 있으면,
우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의 우물을 관대하게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때에 비로서
우리는 얼마나 그 지식의 우물이 깊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미지 전체보기


    하나님의 관대하심(God's Generosity) 하나님은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결코 부족함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우리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너무도 많은 빵을 주시기 때문에 남은 빵 조각만도 큰 바구니로 열두 바구니나 되고 (요한복음 6:5~15),
    또한 예수님이 그의 제자들로 하여금 너무도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하시기 때문에 배가 거의 가라앉을 뻔한 일(누가복음 5:1~7 참조)은 모두 하나님의 풍성하심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만큼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이상의 것, 즉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빵과 생선, 그리고 우리가 감히 바랄 수 있는 그 이상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하나님은 관대하게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슴과 마음을 다하여 그리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때만, 우리는 하나님의 관대하심을 볼 수 있고 향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먼저 당신의 관대하심을 나에게 보여 주십시오" 라고 말하는 동안은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며, 하나님이 진정으로 우리들에게 주고자 하시는 것 즉 생명, 그 풍성한 생명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책에서 옮긴 글 출처: 별똥별 최송연의 목양연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Sop 김치경,Ten 김정현♬



     

     

      


    우리는 모두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심성을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모든 사람들이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식량이 충분치 않아 그러니 나는 비상시에 대비하여
    내 자신을 위한 양식을 저장해 두어야겠어"

    또는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가질 수 있는 지식이란
    이 세상에 없어 그러나 나의 지식은 내가 간직해서
    다른 사람이 이용하지 못하도록 해야겠어"

    또는 "모든 사람에게 다 줄 수 있는 충분한 사랑이란
    이 세상에 없어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나의 친구를 빼앗아 갈 수 없도록 그 친구를
    내 곁에 붙어 있게 해야겠어"
    이러한 말들은 결핍 의식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충분히 가질 수 없으리라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무엇이든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비축해 두려는 생각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비극은 당신이 손에 움켜쥐고 있는 그것들은
    당신의 손 안에서 녹슬어 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하나님께로 가는 길목의 표지판
      (Signposts On the Way to God)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관대함을, 하나님의 친절함을, 그리고 하나님의 용서하심을 알 수 있을까요? 우리의 부모님, 우리의 선생님, 우리의 목사님, 우리의 배우자,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을 잘 알게 되면, 우리는 이들이 오직 하나님의 작은 부분만을 우리들에게 보여 줄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들의 사랑보다는 큰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이들의 선함보다 큰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이들의 아름다움보다 큰 것입니다 처음에는 우리는 이 사람들에게서 실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랑과 선함, 그리고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로 가는 길에서 만나는 도로 표지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옮긴 글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나타내는 모자이크  
         The Mosaic That Shows us the Face of God)
        
        모자이크는 수천 개의 작은 돌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어떤 돌은 파란색이고, 어떤 돌은 초록색이며, 
        또 어떤 돌은 노란색, 또 다른 돌은 금색입니다
        
        우리가 얼굴을 모자이크에 가까이 대고 보면, 
        우리는 돌 하나 하나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자이크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면, 
        이 작은 돌들이 하나의 아름다운 그림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그림은 돌 하나 하나로서는 
        말할 수 없는 얘기를 우리들에게 들려줍니다
        
        우리의 공동체 생활이란 
        바로 이 모자이크와도 같습니다
        우리 각자 각자는 
        하나의 작은 돌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모여서 하나님의 얼굴을 
        이 세상에 보여 줄 수 있습니다
        "나에게서 하나님을 보여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하나 하나로 보지 않고
         함께 뭉쳐서 보는 사람은 
        "그들에게서 하나님을 볼 수 있다" 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는 겸손과 영광이 서로 만나는 곳입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

         

           

           

           

           

          친구와 그들의 독특한 재능
          (Friends and Their Unique Gifts) 두사람의 친구가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친구 한 사람 한 사람은 우리들을 위한 각각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한 친구가 소유하고 있기를 우리가 기대하면, 우리는 언제나 그 친구를 심하게 비판할 것이고, 또 결코 그 친구가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완전히 만족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한 친구는 우리에게 애정을 줄 수 있을 것이며, 다른 친구는 우리의 마음을 고무시킬 수 있을 것이고, 또 다른 친구는 우리의 영혼을 강하게 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친구들이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다른 재능들을 우리가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으면, 우리도 자신의 독특한 그러나 제한적인 재능을 친구들에게 더 잘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정은 아름다운 사랑의 태피스티리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출처: 최송연믜 목양연가

            <;  

            

        

         

         

        친구와 그들의 한계

        (Friends and Their Limitations) 우리는 친구를 필요로 합니다
        친구는 우리를 인도하고, 우리를 돌보며,
        우리를 사랑으로 대하며, 그리고 괴로울 때
        우리를 위로합니다

        우리는 "친구를 만든다(make)"고 말하지만,
        친구는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친구는 하나님이 주시는 공짜 선물(free gift)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면, 
        우리에게 친구가 필요할 때 하나님이 그 필요한 친구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친구들은 하나님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한계와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사랑에는 결코 흠이 없을 수 없으며,
        결코 완전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친구는 바로 그들의 한계 속에서
        하나님의 무한하시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향한
        우리의 여행 길에서 만나는 도로 표지판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여행 길에
        보내신 친구들과 함께 즐기십시오

          보경님의 방
           생명을 잃는 것과 얻는 것

          (Losing and Gaining Our Lives) 


          생명에 관한 큰 역설은 생명을 잃은 자는 생명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설은 바로 우리의 일상 생활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친구에게 매달리면, 그 친구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소유하려 들지 않으면, 많은 친구를 얻을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명성을 구하고 원한다면, 흔히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손에 넣는 순간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가 남에게 알려지려고 하지 않는데도 오히려 우리가 죽은 후에까지 오래 기억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중심에 있기를 원할 때, 우리는 쉽게 가장자리로 밀려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면 어디에 있든 마음이 자유로울 때, 우리는 흔히 자신이 중앙에 있음을 발견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생명을 내던지는 것은 인간의 행위 중에서 가장 고귀한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옮긴 글/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우리의 삶을 내어 주기
          (Making Our Lives Available to Others)

           
          우리는 흔히 우리가 글을 쓰지 않는 이유를 말할 때,
           "나에게는 그다지 새로운 얘기 거리가 없어
          내가 무슨 말을 하든지 그것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얘기 한 것들이야
          그것도 내가 얘기할 수 있는 것보다는
          훨씬 훌륭하게..."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글을 쓰지 않는
          적당한 핑계가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각자가 독특한 그리고 고유한 존재로서,
          그 어느 누구도 우리와 똑같은 인생을 산 사람은 없습니다

          더욱이 우리가 살아온 삶은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온 것이 아니라, 또한 남을 위해서도 살아온 것입니다

          글을 쓰는 것은 우리의 생애를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남을 위해서도 이롭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창조적이며
          용기를 주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얘기가 다른 사람들이 들을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사실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잘하면 잘할수록 우리는
          보다 잘 살아 보려고 노력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글쓰기, 깊은 우물을 파기

          (Writing, Opening a Deep Well)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생각나는 것을
          몇 자 적어 내려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흔히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
          글로 쓸 만한 것이 생각나지 않아"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좋은 글은 글을 쓰는 과정
          그 자체에서 나옵니다


          우리가 단순히 종이를 앞에 놓고 앉아서
          우리의 생각 또는 마음속에 있는 것을
          글로 표현하기 시작할 때,
          우리를 놀라게 하며
          우리가 미처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내면의 장소로 우리를 인도할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글을 쓰는 것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보물과도 같은 우물을 열 수 있습니다

          이것이 글쓰기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만족입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아름다운 일입니다

           

          -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글을 쓰는 것은 영적인 훈련입니다
          글을 씀으로서 우리는 주의력을 집중할 수 있으며,
          용솟음치는 우리의 마음과 접할 수 있으며,
          우리의 생각을 정화할 수 있으며,
          혼란스런 감정을 정리할 수 있으며,
          과거의 경험을 되새길 수 있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을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으며,
          그리고 주요한 일들을 우리의 기억 속에
          간직할 수 있습니다

          글쓰는 것은 또한 우리가 쓴 글을 읽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입니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또한 절망적인 하루도
          그것을 글로 씀으로써
          우리는 그날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글을 씀으로서 우리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상기할 수 있으며, 그리고 그것을
          앞으로의 우리의 인생 여정에
          보다 완전히 통합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글을 쓰는 것은 우리들에게 있어서는
          생명을 구하는 것이 될 수 있으며,
          때로는 다른 사람의 생명도 구할 수 있습니다

          -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영적인 질문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위로부터의 질문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여쭌 질문은
          대부분 밑으로부터의 질문이었습니다

          일곱 남편을 가진 여인이 부활 때에
          어느 남편과 결혼할 것인가라고
          물은 질문이 한 예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질문은 아래로부터의 질문, 세상적인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질문을 바꿈으로써 대답을 대신하셨습니다
          일곱 남편을 둔 여인 문제에 대하여
          예수님은 "부활하면 장가도 시집도 안 가고....
          너희는 하나님이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라고 하신 말씀을
          읽어 보지 못했느냐? 하나님은 죽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2:23~30)

          우리가 영적인 대답을 원한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영적인 질문을 추구해야만 합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


          이미지 전체보기
           

            사명을 완수하기
            (Fufiling a Mission) 우리의 인생을 사명으로 생각하고 살면
            우리는 우리에게 떠나 온 집이 있으며,
            그리고 그 떠나 온 집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않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또는 어떤 사업을 완성하기 위하여
            한동안 먼 나라에 가 있는 우리 자신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 메시지가 전달되고 사업이 완수되면,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서 우리가 수행한 사명을
            설명하고 고된 일에서 벗어나 쉬기를 원합니다
            가장 중요한 영적 훈련의 하나는
            우리 삶의 시간들이
             '사명을 수행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점점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
                -옮긴 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중에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