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유쾌하지 않은, 좀 심각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한 사람의 크리스천으로서 이런 뉴스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너무 안타깝고 너무 불쌍하다.
"잘 나가는 연예인에서 돌연, 무속인의 삶을 선택한 스타들. 이들은 한 목소리로 "신병을 거부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자신과 주변에 일어나는 기괴한 현상들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내림굿을 받고 무당이 됐다."(여성조선 기사 인용)

이 기사 뿐 아니다. 올림픽 레슬링 메달리스트인 유명선수도 신병에 시달리다 무속인이 된 일이 있고 그 날 궁정동에서 노래 불렀던 유명 가수분도 오랜 시간 신병에 시달리다 지금은 그리스도인으로 평안을 누리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유명인들이 무속인이 되었단다.
왜 그들은 마귀와 귀신들의 손에 잡혀 무당이 되어야 했는가?
그들은 과연 무속인이 되기 원했고 무속인이 되어서 행복한가?
왜 그 분들은 천지를 지으시고 우리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아니하고 우리를 구원하려 십자가 지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손을 내밀지 아니하였는가?
왜 그들의 주변에는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그리스도인이 없었을까?
그대들이여, 지금이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부르라.
우리의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라.
그리하면 악한 자의 손아귀에서 놓여나고 그 족쇄에서 풀려나리라.
......
시퍼런 작두 사다리에 올라서 춤추던 단군교 무당, 신통력으로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던 한 분이 귀신의 손아귀를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와 "주여, 사탄의 왕관을 벗었나이다."라는 책을 쓴 적 있다.
무당이 작두에 올라서 신내림 굿을 하던 중 멀찍이 서서 구경하던 크리스천 한 사람이 나즈막한 소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하고 중얼거렸더니 예수 이름에 놀라 역사하던 귀신이 혼비백산 도망하고 작두에 올라섰던 무당의 발이 쫙 갈라지며 쓰러지더라는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나 자신 어린 시절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을 당한 적이 있고 귀신놀음에 직접 참여해 본 경험도 있다.

이러한 일들이 21세기 문명세계에서도 계속되는 것은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이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수많은 악한 영들이 출몰하는 살벌한 영적전쟁터라는 것을 의미한다.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만이 진짜 세계가 아니다.

당신은 무엇을 믿는가?
마귀와 귀신은 있다.
그리고 그 보다 훨씬 강하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계신다.

(아, 그리고, 점 보러 가지 마라. 운수 보러 무당에게 찾아가지 마라.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시는 일이다.)

링크기사(조선일보에 게재된 여성조선 기사): http://woman.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1&mcate=M1001&nNewsNumb=20200163466&fbclid=IwAR3vn-f5g7z66vNmJinJ3TNLbmMQbwt9jmiXtiNwcGWdJ3DvVfjaruzej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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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던 것처럼 성자 하나님,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빛으로 이 땅에 오셨다. 모든 사람, 모든 죄인들을 살릴 생명을 가지고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사람들 가운데 계셨다. 마치 광야에서 하나님의 성막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하셨던 것 같이.......

그러나 사람들은 그 빛을 깨닫지 못 하였고 어두움을 더 사랑하였고 그를 배척하였다.
그러나 그 빛을 영접하는 자,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졌다.
요한복음은 이렇게 기록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왜 성경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낳은 자들’이라고 말씀하시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비참한 십자가에 내어주사 찢어 죽이시는 처절한 고통을 통하여 당신에게 새 생명을 주시며 새로운 생명을 낳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결코 기억이 희미해지거나 잊어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신다. 하나님은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 영어로는 “I am", 즉 현재형(現在型)으로 언제나 어디에나 영원히 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께는 모든 시간, 과거나 현재, 미래가 항상 현재이다. 하나님은 2천년 전 십자가 처형 단 한 번으로 모든 인류를 도매금으로 구원하지 않으셨다. 당신이 예수님을 믿어 영접할 때 하나님은 다시금 2천년 전 그 십자가 고통을 그대로 기억하시며 그 끔찍한 고통을 다시 겪으시며 당신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당신에게 새 생명을 주셔서 당신을 다시 낳으실 것이다. 인류를 한꺼번에 구원해치우시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렇게 낳으시는 것이다.

그것은 여자가 아이를 낳는 산고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것은 수천년 성경에 기록된 예언과 약속 끝에 마침내 고통의 십자가에 아들을 보내어 그 몸을 찢어 나누어 주시는,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고통 중에 낳으시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나는 당신이 이 새 생명 얻기를, 하나님의 자녀 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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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예수님의 제사를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다면 어찌 되었을까? 예수님은 절대로 다시 살아나시지 못 하였을 것이며 하나님은 여전히 진노상태이시고 우리 모든 인간들의 죄는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기뻐하시는 아들의 제사를 받지 않으실 수가 없었고, 그 아들을 다시 살리지 않으실 수가 없었고, 또 그 아들의 제사에 담긴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으셨다.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온전히 받으셨음과 모든 죄인들, 인류의 죄가 사해졌음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계신 동안 3년이나 따라다니던 제자들도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 하고 믿지 못 하였으며 예수님이 잡히시고 십자가에 처형될 때 모조리 도망쳤고(어렸던 요한 하나 빼고)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도 다락방에 숨어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사순절 성령임재 사건이 있은 다음 제자들은 죽음을 두려워 않는 증인들이 되었고 모두 순교하였다. 목이 잘린다 해도 예수님을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기름 가마솥에 튀겨져 죽는다 해도 그 소식을 전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제사와 부할, 하나님이 그 제사를 받으셨다는 것, 그리하여 모든 인류의 죄가 사함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좋은 소식(Good News)이요 복음(福音, Gospel)이다.
"누구든지 이를 믿고 그 앞에 엎드리면, 그 제사대열에 엎드리면 죄사함을 받는다!"
제자들은 이 소식을 전하였고 이 소식을 전하다 모두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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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동산에서 인간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죄인이 되자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다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돌아갈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한 가지 길을 열어두셨다. 그것이 제사다.
제사는 애꿎은 짐승을 잡아, 그 죄 없는 짐승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 죄 없는 생명의 희생의 효력으로 잠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짐승의 희생은 가죽이 벗겨지고 사지가 절단되고 내장이 모조리 꺼내지고 태워지는 참혹한 것이었다. 그 애꿎은 생명의 참혹한 희생을 치르면서 인간은,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 벌벌 떨면서 나아갔다.

그 제사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죄가 대가의 지불 없이는 절대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진정한 대속자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豫表)였다.
죄인 된 인간들이 수천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면서 치르는 임시방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셨다.
하나님의 아들,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인류역사상 인간이 고안해낸 최악의 고통의 형틀이라는 십자가에 매달려 갈기갈기 찢기는 고통을 당하시며 죄인들이 치러야 할 혹독한 죽음의 대가를 치르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게 자신의 죄 없는 몸을 제물로 드린 것이었다.
성경은 이를 단 한 번의 완전하고 영원한 제사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 이를 믿는 모든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거리낌 없이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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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 아닌 사람이 있을까?
성경은 말씀한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인간의 양심이 말한다, ‘양심 깊은 곳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자 단 하나도 없다.’고.
모든 인간이 죄인이다. 죄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그 값은 죽음뿐이다.
죄인은 심판을 피하고 죽음을 면할 길이 없다.
단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누군가가 자신의 죄 값을 치르고 대신 죽어주는 것....
우리는 그를 대속자(代贖者)라고 부른다.
성경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속자의 이야기이다.

어떤 사람이 우리 인간들을 구해낼 대속자가 될 수 있을까?
세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는 사람이어야 한다.
짐승을 아무리 많이 잡아도 사람 하나 대신할 수 없다.
사람은 오직 사람만이 대신할 수 있다.

둘째는 사람이로되 죄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죄가 있으면 자신의 죄 때문에 죽어야 하기 때문에 남의 죄를 대신 갚아줄 수가 없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셋째는 죄 없는 사람이면서 모든 인간들을 합친 것 보다 고귀한 분이어야 한다.
설혹 죄 없는 인간이 있다 해도 그 사람이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 뿐이다.
그래서 대속자는 이 세상 모든 인간들 보다 고귀한 존재이어야 한다.

그런 존재가 어디 있는가?
있다, 단 한 가지.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모든 인간을 대신하여 죽으시는 길.....
그래서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어(성육신) 이 땅에 오셨다.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죄인을 살게 하시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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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한 자, 하나님 앞에 죄인인 우리 인간은 어찌해야 하는가?
착하게 살고, 하나님께 빌고, 하나님을 잘 섬기면 하나님이 용서해 주실까? 천국에 들여 주실까?

안 됐지만 하나님은 절대로 죄를 용서하실 수가 없다.
하나님도 어쩔 수가 없다.
죄는 반드시 그 값을 치러야 한다. 그리고 그 값은 사망이다.
아무리 착하게 살고 선한 일을 해도 죄를 없앨 수는 없다.
만일 하나님이 죄인이 착하게 살고 선행을 많이 하고 하나님께 빌고 하나님을 열심히 섬겼다고 용서해 주신다면,
하나님은 죄를 덮어주고 죄인을 봐주는 악신이 되고 말 것이다.

죄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 죄인을 용서하실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그 방법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아들을 죄 없으신 인간으로 보내사
죄인 대신 십자가에 찢어 죽이는 방법, 단 한 가지 밖에 없었다.

만일 다른 방법이 있었다면
하나님은 절대로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대는 알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그대는 깨달으라, 그가 왜 십자가에 죽으셨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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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거룩하시고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세계도 거룩하다.
그런데 더러운 악이 하나님의 거룩한 세계를 더럽히고 있다면 어떻게 하셔야 할까?

진수성찬 식탁에 오물이 올라갈 수 있을까??
큰 오물은 못 올라가지만 작은 오물, 살짝 묻은 오물은 올라갈 수도 있을까?
오물 냄새조차 못 올라간다. 화장실용 휴지도 못 올라간다.
천국엔 큰 죄인, 작은 죄인 다 못 들어간다.
죄인 뿐 아니라 죄인처럼 생기기만 해도 못 들어간다.
화장실 휴지, 죄인의 모양, 그게 원죄(原罪)라는 거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없다면서 하나님을 뭉갠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거룩한 하나님의 세계에 단 한 점 오물도 악도 허용할 수 없으신 하나님,
그럼 하나님이 죄인들과 악과 사단 마귀들을 어떻게 하셔야 할까?
드넓은 하나님 나라 어디 귀퉁이 한 군데에 몰아넣어 두실까?
그렇게 되면 그곳은 더러운 곳이 되고 결국 하나님이 악을 위하여 그곳을 만들어 제공하신 꼴이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악이 들어갈 곳은 한 곳밖에 없다. 정결케 하는 불, 영원히 타는 불....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신다. 그리고 악을 제거하셔야 한다.
그래서 영원한 불, 지옥은 있을 수밖에 없다.
마귀 따라 그곳에 함께 들어가지 마라.
하나님 앞에 의인은 하나도 없다. 모든 인간이 죄인이다. 자신은 남보다 착하게 살아왔으니 죄가 없고, 죄가 있어도 적고, 그래서 죽어서 좋은 곳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그 때에 가슴을 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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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다시면 왜 단번에 온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못 만드십니까? 공중에 한 번 나타나시기만 해도, 굉장한 기적을 일으키시거나, 천사들을 보내 나팔을 불게 하시기만 해도 온 세상 사람들이 벌벌 떨며 다 하나님을 믿을 게 아닙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믿음이란, 안 보고 믿는 것입니다. 듣고 믿는 것입니다.
듣고는 못 믿겠다. 내 눈으로 봐야만 믿겠다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기적을 행하시고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는 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뱀을 믿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적을 행하셔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만드신다면 뱀이 그러겠지요.
“후후후, 이 뱀의 말은 안 보고도 믿던데, 하나님 말씀은 보기 전엔 못 믿겠다는군요.”

우리가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는 길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하나님은 안 나타나실 것입니다.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기까지는.....
하늘에 주님이 나타나시고 천사가 나팔을 불 때는 모든 것이 끝난 다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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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광야소리 3)
존귀한 자, 너여. 아무에게나 머리 숙이지 마라.
세상종교, 수많은 신들이 사람들을 속여 그 앞에 엎드려 머리 조아리게 하지만
존귀한 자, 너여, 너는 거짓 신에게 절하거나 네 영혼을 맡기지 마라.
그것들은 너를 지은 자 아니며, 따라서 그것들은 너에게 아무런 권한 없느니라.
천국에 보내든, 지옥에 던지든,
심판은 오직 천지를 지으시고 너를 지으신 단 한 분에게 속한 것이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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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 ‘책임감 있는 사람’이란 우리에게 더 없는 찬사(讚辭)다.
어디에서나 언제나 자신의 맡은 바 최선을 다하는 사람,
가족에게 믿음직한 가장, 회사에서는 능력 있는 직원, 아내에게, 남편에게 변함없는 사랑.....
자신의 맡은 바 책임으로 과로사 하기까지 하는 사람....
그렇게 온 마음과 힘을 다 하여 인생의 끝날까지 달려가는 사람...

그러나 그 책임감 있는 사람이 정작 자신의 영혼에게는 무책임하다면?
인생의 마지막 날 정작 자기의 영혼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 한 채 떠나야 한다면?
아, 내 영혼아, 내가 일평생 정작 너를 돌아보지 못 하였구나,
내 영혼아, 이제 너는 너는, 나를 데리고 어디로 가는 거니?
그 날에 ‘내가 정작 내게 무책임하였구나’, 통곡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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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종교는 필요 없습니다.
안 그래도 짧은 인생, 종교라는 굴레를 쓰고 살 일 있습니까?
종교에 매여 즐기지도 못 하고 사는 것보다 불쌍한 인생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종교가 아니라 진리요 사실입니다.
만일 그것이 진리요 사실이라면 우리에겐 선택권이 없습니다.
믿으면 살 것이요 믿지 않으면 죽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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