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서 웃는게 아니다 행복하기 위해 웃는다

▼웃음의 비밀 (Secret of Smile)

https://youtu.be/03UvGUjnDGo

 

▼초음파 치료보다 좋은 웃음 치료

http://youtu.be/UgR2Nlxy7m8

 

▼암을 치유하는 웃음치료

http://youtu.be/6vOxTC5Fw-8

 

▼얼굴이 펴야 인생이 핀다 (이요셉 소장)

http://youtu.be/3pvubegaB0U

 

▼웃음건강법,웃음치료 (김영식 박사)

http://youtu.be/q8432bwRQYE


▼뽀빠이 이상용의 '웃으며 삽시다'

http://youtu.be/XCyIbpEcf5Y

 

▼개그맨 서인석의 폭소강의

http://youtu.be/i609FIVZd0c

 

▼김형곤 풍자개그 (웃음이 없는 사회..)

http://youtu.be/cxv2wjYBmGk

 

▼김형곤 풍자개그 (삶이란..)

http://youtu.be/Gxrk0UGwSgU

 

▼웃음 치료·웃음 경영...웃으면 암세포도 죽인다(뉴스)

http://youtu.be/FkNo5HqlfA4

단군의 연대와 욕단의 연대

 

단군의 조선 건국 연대에 대하여 지금까지는 일반적으로 기원전 2333년이라는 설이 통용되어 왔다. 이 기원전 2333년 설은 고려의 13세기 말 이승휴의「제왕운기」에서부터 시작된 것인데, 그때 이승휴는 자기 저서에서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의 조선 건국 연대를 중국의 요(堯)임금 건국 연대와 똑같이 무진년(戊辰年)으로 본 것인데, 그것은 실제 우리나라의 그 어떤 구체적인 자료에 기초한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는 당시 요임금을 중국 한족의 시조로 보면서 -요임금은 동이족이었다- 그의 건국 연대가 우리 단군의 건국 연대보다 앞설 수 없다는 것에서부터 그런 논법을 세웠던 것이다.

 

건국시조 단군 때로부터 상당히 긴 세월이 흐른 후세에 살던 우리 선조들은 단군이 나라를 세운 연대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였고, 다만 단군이 매우 오랜 옛적에 나라를 세웠다는 막연한 인식만을 가졌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단군의 건국 연대를 자기들이 알고 있던 가장 오랜 옛 임금에 비교하여 ‘지금으로부터 2천년 전’이요, ‘요와 같은 시대’라고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주전 2333년인 단군기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다시 말하면 단군의 즉위 원년의 절대 연대는 사실로서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삼국유사」등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단군이 요와 동시에 즉위해 나라를 건국했다는데 의의가 있을 뿐이다. 요와 순은 이상적인 통치시대를 펼친 인물의 대명사격이다. 특히 요는 공자가 성군으로 추앙하던 인물이다. 바로 그러한 요임금과 단군이 동시대에 즉위해 조선을 건국하였다는, 즉 우리나라가 중국과 대등한 시기에 건국된 유구한 역사를 지닌 나라라는 것을 알리려는데 그 의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단군의 즉위 연대는 그 절대 연대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내세우고자 했던 의식세계를 이해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따라서 단군을 성경상의 셈의 현손(玄孫) 욕단이라고 단정할 때에 단군 시대와 욕단 시대의 일치 여부는 논란의 소지가 될 것이 전혀 없다. 주전 2333년이라는 단군기원은 사실로서의 연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는 그보다 훨씬 더 옛날로 소급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현재 통용되고 있는 주전 2333년인 단군기원이 성경상의 욕단의 연대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인류의 조상 아담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대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을 역추적하여 계산해 보면 아담이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에덴에서 추방당한 타락 원년(元年)은 B.C. 4114년이 된다. 그리고 그 자손들이 타락을 계속해서 온 땅이 강포와 죄악으로 가득 차 하느님께서 큰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는데, 그 홍수가 발생한 연대가 B.C.2458년이다. 셈의 증손자 에벨은 B.C.2391년에 태어나 B.C.2357년 욕단의 형인 벨렉을 낳았고, B.C.1927년까지 살았다.

 

이 성경 연대는 성경 연구가에 따라 연대 계산에 조금씩 차이가 있어 좀 더 위로 소급되기도 하는데, 중요한 것은 정확무오한 연대 산출(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이 아니라 욕단의 연대가 바로 단군 시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관점을 취하든 우리는 아득한 옛날 백두산정에서 창조주 하느님께 제천의식을 거행하고 조선을 건국한 밝달임금, 곧 단군이 성경에 산맥을 넘어 동방으로 갔다고 기록된 욕단이라고 얼마든지 단정할 수 있다. 

 

예수원 설립자 토레이(R. A. Torrey? 대천덕, 사진)는 셈의 세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이 단군이 아닌가 추정해 볼 수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그 근거를 제시한다:

 

“…창세기 10:25에 ‘에벨’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그에게는 ‘벨렉’과 ‘욕단’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벨렉’이란 ‘나뉘어진다’는 뜻으로 그는 아브라함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 ‘욕단’은…알모닷, 셀렙 등 여러 사람들의 조상이 되고,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으로 갔다는 말이 나오는데, 이것은 동방의 산지대로 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모두 셈의 족속들이기 때문에 동방 사람들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욕단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여 욕단이 혹 단군이 아닌가 추측해 볼 수도 있습니다. 정확한 계산은 할 수 없지만 단군의 시대와 욕단의 시대가 비슷한 연대입니다.”(대천덕,「우리와 하나님」, 도서출판 예수원, 1988, 163쪽)

 

그의 추측은 옳았다! 우리 알이랑민족사를 시작한 단군은 역사적 인물로서 성경상의 셈의 현손 욕단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누가 단군을 믿을 수 없다고 했는가


애석하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단군을 역사적 인물이 아닌 신화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때로는 ‘우리는 곰의 자식이 아니다’라며 비장한 자세로 목소리를 높이면서 단군을 부정한다. 그들은 단군을 그렇게 신화 속의 인물로 오해하게 만든 것이 일제의 식민사관이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일제 식민지 지배시기에 일본인 학자들은 단군 신화가 우리 겨레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건국 사화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온갖 학설을 늘어놓았다. 그들은 단군은 원래 묘향산의 산신 또는 평양 지방의 토지신이었는데 이것이 책에 기록되었다가 뒷날 몽고의 침입 때 고려인의 일치단결을 위해 건국 신화로 고쳐졌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단군 신화는 일연 등이 날조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이들의 주장은 그 동안의 연구를 통해 전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런데 왜 일본 학자들은 그토록 단군을 부정하려고 했을까? 여기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간교한 침략 논리가 숨어 있다.

 

20세기 초 조선을 강탈, 영구 지배를 꿈꾸던 일제의 가장 큰 고민은 조선이 그들보다 긴 역사를 가진 문화 민족이라는데 있었다. 구한말 조선 강점 당시 자기들의 역사는 기원 후 1700년인데 비해 조선의 역사는 기원전 단군 조선(고조선) 이래로 4200년이었기 때문이다. 조선 역사의 반에도 못 미치는 어린 역사를 가진 섬나라 일본이 조선을 강탈한 것이다. 이것은 마치 어린 아이가 할아버지와 같은 분의 멱살을 쥐고 흔드는 격으로서 그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논리적이지 않았다. 따라서 일제는 우선 그들의 역사보다 2천년 이상 앞서 있는 조선 상고사를 말살하는 것이 시급했다. 그 방법은 단군을 부정하고 단군 조선을 말살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교활한 일제는 단군을 말살하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민족의 시조가 없어지는 것이니 한국인은 단군을 하나의 조상으로 하는 단일민족으로서의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잃게 되어 그 기(氣)가 꺾일 수밖에 없으며, 또 민족이 분열되어 서로 싸우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일제 침략자들은 단군과 조선 고대사 말살 작업을 저들의 대조선 식민지 정책의 중요한 하나의 고리로 삼았던 것이다.

 

이를 위해 일제는 1920년대부터 우리의 역사를 날조?축소?왜곡?부정하는 작업을 조선 총독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우리나라 전국 각지에서 단군 관계 역사책들에 대한 전면적인 약탈과 소각활동을 단행하였다. 일제의 초대 조선 총독 데라우찌는 헌병들을 내세워 우리나라 전국 각지의 책방들과 향교, 서원, 개인 집들을 샅샅이 뒤져 조선을 영구히 지배하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보이는 단군 관계 역사책들을 비롯한 우리 민족의 귀중한 역사, 문화, 지리책들을 수십만 권이나 압수하여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때 총 51종 20만권이나 되는 책들이 사라졌다. 그 후 일제는 유구한 우리 민족의 역사를 저들의 역사보다 뒤늦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조직적인 조선사 위조 작업을 감행하였다.

 

교활한 일제는 「조선사」를 편찬함에 있어 자료가 부족하다는 구실을 걸어 단군조선의 역사를 빼버렸으며 이마니시 류(今西龍) 같은 역사 위조의 ‘명수’들을 내세워 단군은 후세에 꾸며낸 신적 존재이며 실재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애써 ‘논증’하게하고 단군이 신화적 인물이기 때문에 「조선사」에 서술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렇게 일제는 한국 고대사를 말살하여 4천여 년 조선의 장구한 역사를 2000년으로 깎아내렸고, 자기 나라의 역사는 5백년을 소급하여 2200년 이라고 했다.

 

일제는 조선을 영구지배 하고자 그들이 만든 새로운 역사, 조작된 역사 설계도에 두 나라의 국민을 맞춰 일본을 형으로 조선을 아우로 하는 이른바 동조동근(同祖同根)의 한나라를 만드는 망상을 실현하고자 허구의 역사를 만들었던 것이다. 가소롭기 짝이 없는 소행이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현(現) 숙명여대 한국사 교수인 이만열 박사는 당시 일제 식민 사가들의 그 간교한 단군 말살 책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단군 연구가들은 단군에 관한 기록들이 신화적인 요소와 함께 사실적인 부분도 있음을 중요시 한다. 즉, ‘옛날에 단군이라는 분이 있어서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이라는 나라를 세우니, 중국의 요(堯) 임금과 같은 시기였다’고 한 기록은 신화적인 내용이라기보다는 사실적인 기록이라는 것이다. 이 기록에 근거해서 예부터 단군을 우리의 조상으로 인식해 왔던 것이다. 물론 신화적인 부분으로 전해지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도 그것이 역사적 사실의 어떤 부분을 일정하게 반영하는 것으로 보고, 그 기록에서 신화적인 내용을 벗기고 실체의 알맹이를 찾아내려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식민주의 사관론자들은 신화에 나타난 역사적 실체를 탐구하려는 데에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신화가 곧 역사 일수 없다는 전제하에 단군에 관한 기록을 왜곡하기에 급급했다. 그들은 단군 관계 기록에서 신화적인 요인을 부정하기 위해 앞서 말한 사실적 부분도 신화와 함께 거부해 버렸다. 이렇게 거부한 것은 신화가 역사일 수 없다는 표면상의 이유와는 달리 식민지 한국의 역사가 그들의 소위 2200 여년의 역사보다 훨씬 상한선이 높다는 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는, 말하자면 일종의 왜곡된 민족 감정 때문이었다.”(이만열, 「우리 역사 5천년을 어떻게 볼 것인가」, 바다출판사, 2000, p.57)

 

단군의 고조선 개국사화에 신화적인 요소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사료적 가치가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그 신화적 내용은 단순히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인의 역사적 체험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군 신화는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당시대의 역사성이란 근거위에 그 시대상이 반영된 이야기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 겨레 영아기 때의 이야기로서 한국인의 역사적 체험을 담고 있는 귀중한 사료이다. 따라서 그 속에 감추어져 있는 현실의 대지를 밟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간교한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단군 관련 기록을 몽땅 ‘신화’로만 해석했다. 그래야만 단군조선, 곧 고조선을 말살시키고 우리 민족사의 상한선을 내려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축소 왜곡하려는 일제 어용 식민주의 역사가들에게 ‘단군’의 문제는 늘 하나의 걸림돌이었다. ‘단군’을 역사적인 사실로 인정해 버리면 우리 겨레의 건국 역사가 무려 반만년에 이르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단군’이나 ‘단군 조선’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왜곡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한국 교회의 일부 무지하기 짝이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과거 일제 식민 사학자들이 한국 상고사를 말살하기 위해 주장했던 논리를 마치 앵무새처럼 되풀이하고 있다. “단군은 신화다”라고. 이는 서글픈 일이다. 학문적 검토 없는 한국 교회의 이와 같은 태도는 기독교회가 비이성적?비애국적 집단이라는 오해를 초래하고 있다. 이것이 선교 측면에서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교회에 끼치고 있는지 모른다. 

 

맺는 말

 

‘아리랑’은 우리 겨레의 영아기 때의 체험을 간직하고 있는 민족의 역사노래인 동시에 현존하는 인류 최고(最古)의 찬송가로서, 한국인이 처음부터 창조주 하느님을 섬긴 욕단의 후손, 즉 이 땅위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선민이라는 사실을 규명해 준다. 그러므로 ‘알이랑’은 선민(천손) 한민족의 키워드(keyword)이다. 바로 이것이 아리랑의 비밀이다.

 

한국인의 선조인 욕단 족속은 하느님을 섬기는 일신신앙을 갖고서(알이랑) 동방 산악 지대를 넘어서(고개를) 극동의 이 땅까지 찾아왔다. 그리고 백두산과 그 변두리를 근거지로 배달나라를 세웠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이 단군신화에 나오는 태백산 천손강림(天孫降臨)의 모티브가 된 것이다. 그 나라 백성은 하느님의 백성답게 모두가 흰 옷을 입고 살았고, 오직 제천의식을 성대히 거행하여 유일신 하느님만을 섬겼다. 그래서 배달나라를 고대에 신시(神市), 곧 ‘하느님의 도성(City of God)’이라고 했다! 이것이 우리 한민족의 참모습이다!

 

알이랑! 그것은 우리 배달겨레의 근본사상이요 뿌리 정신이다. 그것은 ‘하느님 중심 사상’이요 ‘신본주의 정신’이니, ‘알이랑’은 ‘하느님과 함께(With God)’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여호와 하느님을 섬기는 유일신 신앙으로 민족사를 시작한 천손민족이라는 사실이 민요 ‘알이랑’으로 말미암아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실로 ‘알이랑’은 욕단 계열의 선민이 단군의 후손인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아주 분명한 ‘물증’이다. 그리하여 우리 겨레는 나라꽃까지 무궁화, 곧 ‘샤론의 장미(The Rose of Sharon)’인 것이다(무궁화의 국제적 이름은 한영사전에도 나와 있듯이 'The Rose of Sharon'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도 긴 세월을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고난 받으며 자기비하(自己卑下) 속에 살아왔다. 토레이(Reuben Archer Torrey ? 예수원 설립자)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보기엔 한국은 자신의 참모습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흡사 기억상실증 환자와 같은 인상을 준다. 만일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한국 백성에게 공동의 선(善)에 기여할 수 있도록 어떤 특별한 역할을 부여하셨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러니만큼 한국으로서의 가장 긴급한 과제는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일이다….”(대천덕, ‘기독교는 오늘을 위한 것’, 「생명의 샘터」, 1987, 70쪽)

 

그렇다! 우리 겨레는 자신의 참모습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리고 집단적 기억상실증에 걸려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를 재발견하고 본연의 모습을 속히 회복해야 하겠다. 실로 그것은 새 천년을 맞이한 우리 겨레의 가장 긴급한 과제이다.

  

알이랑! 그것은 우리 한민족의 원형과 정체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려 준다. 알이랑! 그것은 곧 우리 자신이다. ‘알이랑’으로 민족사를 시작한 우리는 ‘알이랑’으로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알이랑’으로 살아갈 것이다.

  

알이랑! 그것은 전 세계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진 ‘찬송가’이다. 그러므로 ‘알이랑’은 세계문화 유산이다. 우리는 이 귀한 노래 ‘알이랑’을 시편 삼아 함께 자주 불러야 한다. 우리 겨레에게 이 노래가 있는 한 여호와 하느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이다.

  

동방의 성민 배달겨레여! 이제 스스로를 자각하고 다시 일어나라! 알이랑 민족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라! 민족의 주로 예수를 믿고 민족의 하느님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복음의 제사장 나라를 건설하라! 그래서 이 땅으로 다시 신시(神市), ‘하느님의 도성’(City of God)이 되게 하라! 우리는 여호와 하느님께서 나중에 쓰시려고 동방의 땅 끝에 감추어 두신 또하나의 성민 알이랑 민족이다!

 

☞ 이 글은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에 수록된 내용을 일부만 요약한 것입니다.

    보다 충분한 자료를 얻으시려면 이 책을 일독해 주십시오

 

백의종군

조국이 피에 얼룩진 백의를 입었나니

이 시련과 굴욕의 백의를 감추지 아니하고

그것을 자랑스레 걷어붙이고

어서 가리라, 나의 영원한 조국 바다로

조국 구원의 그날까지

겨레 부활의 그날까지

역사 회복의 그날까지

- 김성영(전 성결대 총장)의 서사시 ‘백의종군’ 중에서 -

 

★미국 CNN에서 발표한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것 10가지.

미국 뉴스 전문 채널 CNN은
"국토 면적은 세계에서 109번째일 정도로 작지만, 레이디가가를 능가하는 K-POP 스타와 갤럭시 스마트폰을 배출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라며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것 10가지’ 를 소개했다.

1. 예뻐지기 위해 뭐든 하는 나라

CNN은 미(美)에 있어 지구상에서 가장 진화된 나라는 한국이라고 단언한다.
“달팽이 크림(달팽이 점액을 넣어 만든 크림)이나 제주도의 화산토(火山土)를 사용해 만든 마스크 팩 등 한국 사람들은 예뻐지기 위해서라면 어떤 재료도
마다하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2. 아시아 성형수술의 중심지

CNN은 한국에서는 성형수술로 해결하지 못하는 게 없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중국, 일본 심지어는 몽골 사람들조차 성형 수술을 하러 한국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소개했다.
CNN은 “미국에서 1만 달러(한화 약 1,040만원)가 드는 성형수술이 한국에서는 2000~3,000달러(한화 200~300만원)면 충분하다”고 전했다.

3. 미래를 체험하고 싶다면 한국으로 가라

CNN은 한국의 IT기술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전했다.
CNN은 한국인들은 스마트폰을 사용해 쇼핑하고, TV를 보며, 지하철까지 이용한다며 한국은 최첨단 기술의 선진 기지라고 소개했다

4. 세계에서 신용카드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나라

미국인이 1년에 77.9회 카드를 사용할 때, 한국인은 129.7회 사용하고
“한국에는 상점에서 카드 사용을 거부하면 불법으로 간주하는 법까지 있다”고 소개했다.

5.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나라

CNN은 각종 통계를 들어 한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한다고 전했다.
“한국인은 1주일에 44.6시간 일하는데, 이는 세계인의 평균보다 12시간 긴 수준”이라며 “1일 평균 수면시간도 6시간이 채 안 된다”고 보도했다.

6. 소개팅의 천국

한국 직장인은 1주일에 평균 2회 소개팅을 한다.
CNN은 한국에서 애인 없는 사람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다음 소개팅은 언제야?’ 라는 질문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7. 세계 최고의 항공 서비스

한국의 항공사의 서비스는 단연 세계 최고다.
CNN은 “세계적인 항공사들도 기내 서비스를 배우려
한국 항공사를 방문한다”며 “이런 승무원들의 친절함은 평소 승객들의 자잘한 부탁에도 친절하게 대해주는 모습 뿐 아니라, 식사 시간에 기내식으로 준비한 비빔밥이 다 동이 났을 때 마치 자살 충동이라도 느낀 듯 당황스러워하는 그들의 표정을 보면 오히려 승객이 더 당황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8. 세계 최고의 여자골퍼들을 보유

한국이 세계 정상급 여자 골프 선수를 다수 배출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세계 여자 골프선수 랭킹 100위 가운데 한국 여자 골프선수가 38명이 포진해 있는데 CNN은 그 비결로 ‘타이거 맘·대디(자녀를 엄격히 훈육하는 부모)’를 들었다

9.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 게임 시장

CNN은 한국인의 스타크래프트 사랑을 전하며 “이 게임 판매량의 절반이 한국에서 이뤄졌다”며 “한국에서는 게임 중독을 막기 위해 ‘신데렐라법 (16세 미만 청소년이 밤12시부터 오전 6시까지 게임 접속을 하지
 못하도록 한 법 )’까지 생겼다”고 소개했다.

10. 독특한 회식 문화

한국인들은 이 같은 장시간 노동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폭탄주’로 풀기 때문에 대표적 소주 제조회사인 ‘진로 소주’는 11년째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다고 전했다

 



켄터키주가 “동성애”에 관한 새로운 정책을 따르길 거부하는 기독교 사역자들을 추방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고 있다.

 

David Wells 목사는 수감자들에게 “동성애는 죄다”라는 언급을 하지 않겠다는 주정부의 서류에 사인을 하던지, 아니면 켄터기 주 청소년 담당국이 그의 자격증을 박탈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우리는 그 서류에 서명할 수 없습니다. 이 일로 인해 내 마음이 아프네요.”라고 Wells 목사가 켄터키에 있는 그의 집으로부터 전화를 걸어왔다. 켄터키주 청소년 담당국은 13년 동안 the Warren County Regional Juvenile Detention Center(청소년 보호시설)에서 목사로 일해 온 그에 대한 신임장을 철회하였다.

 

“우리는 이 시설에 수감된 청소년들을 위해 그 동안 당신이 해온 봉사와 헌신에 대해서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당신의 종교적 신념에 의한 선택으로 인해, 당신이 LGBT 청소년을 담당하는데 부적격하다는 판단아래 당신의 자격을 박탈합니다.”


기사원문>> The Christian purge has begun: Chaplains banned from preaching that homosexuality is a sin



* 동성결혼 합헌 판결 이후 오바마 행정부가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추방하기 위한 구체적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동성애에 대한 반대 입장을 버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13년 동안이나 청소년 보호 감호소에서 목사(chaplain)로 일한 사역자를 해임시킨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차별을 당하고 직장에서 쫓겨나는 본격적인 핍박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감람산 강화에서 예수님은 이것이 ‘재난(birth pains)의 시작’을 알리는 징조라 하셨다.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24장 9절)


영문판>> http://blog.naver.com/dandelion4je/220453570686



- 예레미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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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 자식에게 빌려준돈 돌려받은 사람있소~!~?

      자식이 빌려간돈 7500만원--
      몇번 생활비 부족하니 좀 갚아달라는 부모 부탁에
      조금만요~! 조금만요~!벌써 몇년째라는 김씨 할머니
      경로당 할머니들에게 묻는 말이--

      자식에게 빌려준 돈 돌려 받은사람 누구 있소? 입니다

      경로당 할머니들에게
      자식들이 빌려간 돈 갚는거 봤냐고 물었더니
      모두들 머리를 흔듭니다
      자식들이 부모돈 빌려간것 말뿐이지
      돈을 갚는 답니까?
      자식이 빌려간 부모 돈은 안갚아도 된다는 생각들입니다

      김씨 할머니
      노후준비 해둔 몫에서 아들 사업자금 빌려줄때 한달에
      이자 몫으로 오십만원씩 줄테니 생활비에 보태쓰면
      아들 좋고 부모 좋고--꿩먹고 알먹고 식이라더니--

      그런데

      몇달 오십만원씩 통장에 들어 오더니 --
      수금이 안됐으니 다음에요 --다음에요
      그리고 지금은 그 다음에요 란 말도 끊겼답니다
      자식이 힘들거라는 생각에 더 이야기 할수도 없고--

      경로당 할머니들 결론은 억울해도 할수 없는거 아뇨
      자식이 빌려간돈 어디 차압을 붙이겠소--
      그냥 넘어가야
      자식들의 소식이라도 들을수 있제
      만일 독촉을 해봐요 전화도
      안받을거라는 이야기가 이구동성입니다

      부모는 말이지요
      옛날 우리 국민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안 배웠나요~!
      아들 둘이가 있었는데
      큰 아들은 우산 장사를 하고 작은 아들은 나막신 장사를 하는데
      부모 마음은
      비오는 날이면 작은아들 나막신 장사가 안될까 걱정
      날씨가 맑은 날이면 큰아들 우산이 안팔릴가 걱정
      부모는 걱정 -- 자식 걱정속에 사는 거라오

      김씨 할머니--
      이생각 저생각 해봐도 뾰쪽한수가 없습니다
      사업이 풀리면 갚을거여--
      그래도 자식이 빌려간것 남에게 준것보다 훨씬 낫지-
      양촌리 박씨 아저씨
      남 보증 서주고 돈1억 물어준거보다 백배 낫지
      부모 생각은 항상 이렇습니다

      김씨 할머니 자식이라 원망도 없습니다
      돈 못갚은 자식 마음도 무겁지--
      내가 한푼이라도 덜쓰고 아껴야제

      자식에게 빌려준돈 받은 사람 아무도 없다고들 하는데
      자식에게 주는돈 그거 주는거지 빌려주는게 아녀요
      이말이 맞는 말 입니다
      경로당 양씨할머니 충고 말이 귀에 뱅뱅 돕니다
      " 자식에게 받을 생각 말아요~!" 마음만 상하제"

      그래요 그래요 자식에게 돈 빌려준게 어디 있답니까?
      그냥 도와 준거지--
      부모의 마음은 그래야 편 하답니다

      ☆ 詩庭박 태훈의 해학이있는 아침중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동성애자 잡지의 표지모델이 됐다. 성적소수자(LGBT) 매거진 아웃(www.out.com)은 10일(현지시간) ‘우리 대통령-협력자(ally), 영웅(hero), 우상(icon)’이라는 제목과 함께 오바마 대통령의 흑백 사진을 최신호의 커버사진으로 실었다.

잡지는 “44번째 미국 대통령은 올해 우리의 협력자였다”라며 “성적소수자(LGBT) 잡지 모델로 대통령이 나선건 이번이 처음으로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성적소수자 매거진 아웃의 최신호 표지모델로 등장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 [아웃 홈페이지 캡처]

 

성적소수자 매거진 아웃의 최신호 표지모델로 등장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 [아웃 홈페이지 캡처]
성적소수자 매거진 아웃의 최신호 표지모델로 등장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 [아웃 홈페이지 캡처]

 

 

성적소수자 매거진 아웃의 최신호 표지모델로 등장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 [아웃 홈페이지 캡처]

잡지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인터뷰와 함께 다른 사진도 실렸다. 한 사진은 서재에서 환하게 웃고있는 오바마 대통령의 사진이었고, 다른 한장은 옆을 바라보는 오바마의 모습이었다. 아웃은 “2012년 5월 9일 동성애를 지지하는 대통령의 대중 연설에 미국이 움직였고 결국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허용까지 이끌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내가 만난 첫번째 게이가 누군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나온 대학의 로렌스 골딘 교수가 기억난다”며 “대학 신입생 때(1978년)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고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릴 적 나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가진 흑인이었지만 어머니가 늘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는 신념을 심어줬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말했다.

 

차별에 대한 반대가 정치를 시작한 이유라는 이야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우리는 모두 동등하게 태어났고 누구도 아메리칸 드림에서 배제되어서는 안된다”며 “내가 정치를 시작하고 동성결혼을 지지한 것도 같은 이유”라고 강조했다. 또 “딸 말리아와 사샤 그리고 애들의 친구들은 차별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며 “다음 세대 뿐 아니라 우리 세대 부터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LGBT에 부정적인 국가에 대해 미국이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시키는 것은 우리 정부 외교정책의 근본적인 부분”이라며 “보편적 가치인 인권에 대한 강조는 미국과 가까운 나라를 포함해 전세계를 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지만, 미국은 계속해서 보편적 인권을 위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밝혔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 DMZ 60주년 기념 기록전 ☆★





★2013년은 남북한 정전협정이
체결 된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환경부에서 실시한 DMZ의
아름다운 자연환경 사진공모전 작품들



☆ 대상 작품 : 구상범
「저어새」



★ 우수상 작품 : 이건태
「관심」



☆ 우수상 작품 :이혜영
「족제비」



★ 입선 작품 : 김희중
「말똥게의 행진」



☆ 입선 작품 : 신동현
「DMZ의 봄」



★ 특선 작품 : 김광득
「흔적」



☆ 특선 작품 : 문공선
「긴장의 땅」



★ 특선 작품 : 김광득
「겨울 진객」



☆ 특선 작품 : 김병몽
「통일전망대에서 바라 본 북녘」



★ 특선 작품 : 선종용
「통일전망대에서 바라 본 해금강」



☆ 특선 작품 : 김철
「황쏘가리」



★ 특선 작품 : 이종일
「고석정의 하루」



☆ 특선 작품 : 하금희
「독수리 식사」



★ 특선 작품 : 서재식
「긴장과 대립」



☆ 철원 DMZ일대 남과 북을
두루미들이 자유로이 날아다니고 있다.(사진 심상국)



★ 두루미들이 우리나라 최대 월동지인 철원평야에서
한겨울을 보내면서 하이킥으로 몸 싸움을 벌이고 있다.



☆ 철원에서 두루미가 일출을 맞으며 비상하고 있다.



★ 철원 중부전선 비무장지대
철책선 아래에서 고라니가 다니고
위에서는 백로가 한가롭게 앉아 있다.



☆ 고성 동부전선에서
천연기념물 산양 일가족이 1m70㎝가 넘는 폭설에도
DMZ 철책 까지 나와 먹이를 찾고 있다.



★ 양구 방산면 깊은 계곡에서
멧돼지 부부가 새끼와 함께 물을 건너며
가족 나들이를 하고 있다. (사진 유향옥)



☆ 양구 방산면 철책선 인근 하천가에서
멧돼지가 초병들이 갖다 논 잔반통에 들어가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다. (사진 김광수)



★ 야생 멧돼지 가족들이 인제 동부전선 을지부대
GOP초소 주변 눈밭에서 잔반을 먹고 있다.



☆ 철원 대마리 DMZ 내의 아군측 GP 위를 날아
남북을 넘나드는 두루미 무리가
평화의 멧세지를 전달하는 듯하다. (사진 정승익)



★ 철원 전방 철책선 초소에서 초병이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것을 초소 안에서 촬영.(사진 정승익)



☆ 화천 칠성부대 초병들이
야간 철책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 철원 전방 아군 초소에서
북측을 경계하는 병사들 (사진 정승익)



☆ 철원 전방 GOP관측소에서 바라 본 DMZ 북한의 대성산과
아군 GP(감시초소)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 정승익)



★ 35년전 1978년 2월경의 철책 경계근무 병사의 모습






☆ 화천 동부전선
칠성 전망대에서 바라 본 DMZ안의 북한 금성천



★ 화천 중부전선에서
철책선을 초병들이 경계근무를 하고 있다.



☆ 철원. 625 전쟁시의 탱크가 60년의 상흔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사진 박호식)



☆ 철원 제 2 땅굴 내부



★ DMZ 생태체험을 위해 양구 두타연 일대를 찾은
관광객들이 지뢰 매설지역을 지나고 있다.



☆ 철원 북한 노동당사

고 최갑석 당신은 한번 해병이기에  영원한 해병입니다.









▼ 지난 19일 한국을 방문한 '에이미 멀린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

출처 : http://www.bobaedream.co.kr/view?code=strange&No=820441








































▼에이미 멀린스: 역경의 기회









 

南  



1. 아이스크림 ---------- 얼음보숭이 
2. 도시락 ---------------- 곽밥
3. 쥬스 --------------------과일단물
4. 운동화 -----------------천신
5. 화장실------------------위생실
6. 노크 --------------------손기척
7. 보조개 -----------------오목샘
8. 김매기 -----------------풀잡이
9 오두막 -----------------마가리
10.뮤지컬 ----------------가무이야기
 
11. 뒷걸음질 ------------물레걸음
12. 간섭 ------------------간참
13. 거짓말 -------------- 꽝포
14. 꽃다발 -------------- 꽃묶음
15. 장모 -----------------가시어머니
16. 날씨 ------------------날거리
17. 계란말이 ------------색쌈
18. 소시지 ---------------칼파스

19. 볼펜 ------------------원주필
20. 방청소 ---------------방거두매



    21. 미소 ------------------볼웃음
    22. 드레스 ---------------나리옷
    23. 단발머리 ------------중발머리
    24. 들창코 ---------------발딱코
    25. 우울증 ---------------슬픔증
    26. 오전 ------------------낮전
    27. 위기 -----------------고스락
    28. 운행표 --------------다님표
    29. 눈썰미 --------------눈정신
    30. 합병증 --------------따라난병

     

     

    31.도넛 ------------------가락지빵 
    32.주차장 ---------------차마당
    33.라면 ------------------꼬부랑국수
    34.개고기 ---------------단고기
    35.만화영화 ------------그림영화
    36.야간경기 ------------등불게임
    37.꿈나라 ---------------잠나라
    38.기성복 ---------------지은옷
    39.꼭지점 ---------------꼭두점
    40.꾀병 ------------------건성

      

     

    41.록영화 ---------------시보영화
    42.김매기 ---------------풀잡이
    43.꽃다발 - -------------꽃묶음   
    44.교대 ------------------대거리
    45.과거 ------------------어제날
    46.관광버스 ------------유람뻐스
    47.공염불말 ------------공부
    48.공휴일 - -------------휴식일
    49.골키퍼 ------------- -문지기
    50.공무원 - -------------정무원

    51.고함지르다 - -------고아대다.
    52.곧바로(즉시) - -----대미쳐
    53.계모 - ----------------후어머니
    54.교대 - ----------------대거리
    55.과거 - ----------------어제날
    56.가르치다 ------------배워주다
    57.고함치다 - ----------고아대다
    58.궁금하다 - ----------궁겁다
    59.기가 막히다 --------억이 막히다
    60.괜찮다 - -------------일 없다

    61.근지럽다 - ----------그니럽다
    62.가깝다 - -------------가찹다
    63.곧,금방 - ------------인차
    64.기필코 - -------------불필코
    65.눈총을 주다 - ------눈딱총을 주다
    66.나이가 어리다 -----나어리다
    67.높임말을 쓰다 -----옙하다
    68.냉대하다 - ----------미우다
    69.노려보다 - ----------지르보다
    70.덜렁거리다 - -------건숭맞다

    71.도와주다 - ----------방조하다
    72.드문드문 - ----------도간도간
    73.도착하다 - ----------가닿다
    74.떠맡기다 - ----------밀맡기다
    75.마련하다 - ----------내오다
    76.모질고 사납다 -----그악하다
    77.자리없음 - ----------만원
    78.되는대로 - ----------마구 망탕
    79.모락모락 - ----------몰몰
    80.매우 가깝다 --------살밭다

    81.미끄러지다 ---------미츠러지다
    82.큰 걱정 - ------------된 걱정
    83.북적북적 - ----------욱닥욱닥
    84.배웅하다 - ----------냄내다
    85.부서지다 - ----------마사지다
    86.바쁘다 - ------------어렵다
    87.빈정거리는 - ------투비양청
    88.보태주다 - ---------덧주다
    89.살금살금 - ---------발면발면
    90.시원시원하다 -----우선우선하다

    91.싸돌아다니다 -----바라다니다
    92.알쏭달쏭하다 -----새리새리하다
    93.서명하다 -----------수표하다
    94오손도손 - ----------도순도순
    95.유일무이하다 -----단벌하다
    96.지난 번 -------------간번
    97.주저않다 -----------퍼더앉다
    98.창피하다 -----------열스럽다
    99.우람하게 -----------거연히
    100.틀림없이 ---------거의 없이

    101.터무니없다 -------탁없다
    102.기름지다 - -------노랑지다 
    103.푹 수그리다 - ---직수리다
    104.혈안이 되다 -----피눈이 되다
    105.전근하다 - ------조동하다
    106.횡재하다 - ------호박을 잡다
    107.효과를 얻다 - --은을 내다
    108.피나는 노력 --- 피타는 노력
    109.색다르다 맛 - --다르다
    110.자기 스스로 - --자기절로

    111.저마다 - ---------------저마끔 
    112.정신을 잃다 - ---------얼이 치다
    113.토라지다 - -------------시뚝하다
    114.얼떨결에 - -------------어망결에
    115.의젓하다 - -------------의사스럽다 
    116.가게 - -------------------가가
    117.가끔 - -------------------가담 가담




동성애, 국가해체 노린 좌파의 최종병기

교회파괴·국가전복·사회분열·가정 해체 겨냥한 좌파의 전략적 노림수

조우석  |  media@mediapen.com
 

[**남.녀 공히 군 미필,운동꿘 출신과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 및 국보법의 엑기스 조항인 참칭조항도 삭제하려 했던 자들의 공직진출을 결사 반대한다.운동꿘의 사기협잡과 '국보법 폐지주장자'들 및 '6.15 반역선언 지지자'들의 교언영색에 속지말고 안보중시의 정통보수를 뽑아 나라를 살리자~!**]

 
지난 주 “종북좌파 침투에 한국교회가 뿌리째 흔들”이란 첫 글을 내보냈지만, 근현대사와 함께 해온 핵심 버팀목인 교회의 위기는 예삿일이 아니다. 필자가 교인이 아니라서 이걸 더 객관적으로 지적할 수 있다. 사실 대한민국은 2만3000명 해외선교사를 보내는 나라로, 미국에 이어 기독교 전파의 전진기지다. 신자 1000만에 목회자 10만 명을 자랑하기도 한다.

그런 이곳이 왜 개혁으로 위장한 종북좌파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가? 그건 혹시 대한민국의 때 이른 조락(凋落)을 말하는 게 아닐까? 미디어펜은 긴급진단 ‘휘청대는 한국교회, 그 내우외환의 구조’를 세 차례 싣는다. ⑴반정부-반대한민국의 물결 교회를 덮쳤다 ⑵만악의 근본 ‘동성애’문제, ⑶ 한국교회, 기사회생의 길은 없는가의 순서다. <편집자 주>


[긴급진단]- ‘휘청대는 한국교회, 그 내우외환의 구조’(2)
-노무현이 박은 ‘대못’ 동성애…지금은 박원순이 싸고돌아


   
▲ 조우석 문화평론가

‘휘청대는 한국교회, 그 내우외환의 구조’시리즈를 내보낸 뒤 독자들의 다양한 반응을 접했다. 언론에서 금기로 아는 종교 현안을 다룬 미디어펜의 용기에 놀랐다는 얘기에서 한국사회 버팀목인 교회의 내부에 그렇게 문제가 많다는 걸 처음 알았다는 말까지 다양했다.


신자-비신자 사이의 구분이 없는 그런 반응과 달리‘만악(萬惡)의 근본 동성애 문제’예고에 대해서는 기대와 걱정이 엇갈렸다. 그쪽 동향을 좀 아는 분들은 이참에 제대로 짚어달라고 환호했지만, 훨씬 많은 분들의 경우 동성애가 교회와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물어왔다.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가 우리 형제자매라고?


그게 문제다. 동성애야말로 고도로 정치적인 사안이자, 극히 첨예한 종교적 현안으로 부상한 지 이미 오래다. 교회파괴-국가전복-사회분열 그리고 가정의 해체를 겨냥한 좌파의 거대한 전략적 노림수가 동성애 전쟁이라는 걸 충분히 유념하고 이 사안에 접근해야 한다.

역사적 배경에 대한 파악도 중요하다. 서구 좌파는 68혁명을 계기로 ‘문화의 옷을 걸친 좌치투쟁’을 시작했는데, 1990년대 초 공산권 붕괴 뒤 신(新)마르크시즘-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을 타고 지구촌에 유행처럼 번졌다. 기존질서를 해체시키는 신(新)좌파의 태동이었는데, 이 물결이 지난 10년 국회-국가인권위-서울시 등에 깊숙이 침투했다.

그 결과 어느 순간부터 국회-국가인권위-서울시 등이 동성애 예방을 말하는 대신 ‘동성애 인권’을 말하고, 성(性)소수자를 옹호하는 타령을 하기 시작했다. 헌법기관이나 국가기관이 이 정도이니 교회는 말할 것도 없다. 종복좌파 침투 탓에 약자-소수자를 감싸 안아야 한다는 정서가 교회 내부에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 뻔뻔하게 동성애 지지를 표명하는 이들은 요즘 ‘게이 크리스천’이라는 말을 꺼낸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면서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 형제자매들을 모두 인정하라”고 떠들어댄다. 이통에 게이신학이란 말까지 등장했다.

동성애를 대놓고 지지하는 교회도 꽤 된다. 로뎀나무그늘교회, 성문밖교회를 비롯해 향린교회(서울 명동), 들꽃향린교회(천호동), 강남향린교회(거여동), 섬돌향린교회(성산동) 등 기장 소속 네 곳이 그들이다. 이중 섬돌향린교회는‘퀴어(qeer, 동성애를 뜻함)와 함께 하는 그리스도인들’이란 표어 아래 서울 신촌에서 열린 게이행사에 참여하는 대담무쌍함을 보였다.

개별 교회 차원만이 아니다. 이른바 진보진영이라는 기장도 동성애지지 쪽으로 기울었다. 선진국 중 동성애를 허용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는 정신 나간 소리를 하며 대중을 향해 선동몰이를 하는 무리도 있다. 수구꼴통 교회 일부만이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흑색선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동성애 문제는 한국교회의 큰 두통거리로 떠오른 지 오래다. 종북좌파와 함께 한국교회가 맞닥뜨린 또 하나의 악마세력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문제를 점검하기 위한 세미나 '통일한국과 동성애'가 국회헌정기념관에서 7일 열린다.


 

동성애 거부 땐 징역 2년 겁주는 동성애차별금지법


그래도 다행인 건 종북좌파에 그토록 휘둘리는 한국교회가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는 연합전선을 구축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호락호락하게 당하진 않겠지만, 이 문제에 밝은 사람들은 “피터지게 싸우는 일은 이제부터”라고 단언한다. 그만큼 동성애 전쟁이 정치-교육-문화-의료 분야를 망라하고 있고, 이미 전지구적 현안이기 때문이다.

그럼 동성애 전쟁이 한국 땅에서 개시된 건 언제부터일까? 시작은 2007년 가을이었다. 노무현 정부가‘대못 박기’차원에서 일을 벌였던 것인데, 당시 국가인권위가 동성애차별금지법안 입법예고를 감행했다. 성 소수자라는 말도 낯설었던 그때 저들이 기습공격을 감행한 것인데, 독소조항이 무서웠다.

동성애자 목사를 모시는 걸 거부하는 교회에는 2년 이하 징역이나 1천 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때린다는 형사처벌 조항(3조)이 그것이다. 신학교에서 “동성애는 죄”라고 가르칠 경우도 마찬가지 처벌을 받는다는 내용을 그 법안은 담았다.

물론“그럼 우리집안에 항문성교를 하는 남자 며느리를 맞게 할 셈이냐?”는 사회적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 우여곡절을 거쳐 잠복한 듯 보였던 동성애 논란은 3년 뒤 SBS-TV 주말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방영을 계기로 되살아났다.

드라마 작가 김수현이 쓴 이 드라마에서는 구역질나는 동성애가 멀쩡한 청년이 벌이는 멋진 그 무엇으로 표현됐다. 얼빠진 작가 한 명과, 시청률에 목맨 지상파 방송의 한탕주의 모험이었다. 그걸 계기로 구 통진당 등 좌파와, 상당수 야당 국회의원이 끼어들어 동성애 전쟁이 불을 뿜었다. 그때 저들이 저질렀던 뻔뻔한 일의 하나가 군(軍)형법에서 금하는 군내 내 동성애를 허용하라며 헌법소원을 낸 것이다.

북핵(北核) 문제보다 더 무서운 군대 내 동성애


지난해 3월만 해도 새민련 소속 여성의원 진선미-장하나를 포함한 통진당 소속의 의원 김재연-이상규 등 의원 10명이 문제의 군 형법의 폐지안을 발의했다. 이게 좀 뭔가 수상쩍지 않은가? 해산당할 운명에 놓인 저들이 헌재를 대상으로 역습을 감행하다니!

이쯤에서 “동성애 옹호를 통해 저들이 겨냥하는 별도의 목표가 있는 건 아닐까?”라고 가늠해야 옳다. 저들의 음험한 저의를 확인할 수 있는 게 논의가 분분한 이른바 차별금지법안이다. 교회를 무너뜨리고, 온갖 쓰레기 좌파 사상을 허용하며, 이른바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 해방의 구상을 여기에 몽땅 담았다.

일테면 차별금지법 제3조 1항 제1호의 경우 “종교,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전과(前科), 성적지향(동성애), 성정체성(트랜스젠더) 등을 이유로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 일체를 부당한 차별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비정상적 행위를 소수자-약자에 대한 인권보호 차원에서 국가사회가 무제한 허용해야 한다는 헛소리다.

당시 한국교회언론회에서 “군대 동성애 허용은 북핵(北核) 문제보다 더 경계해야 할 사안”이라고 논평한 것은 당연했다. 군대 보낸 아들이 동성애에 빠져 에이즈 환자로 죽어갈 판이다. 상명하복의 지휘계통이 설 리 없으니 북한 전체주의 집단과 싸워야 할 한국군대의 자멸도 예견할 수 있다.

위헌정당으로 해산된 구 통진당의 김재연-이상규 무리가 정말로 노린 것은 동성애를 퍼트려 RO를 이끌던 리석기 식의 폭력투쟁과 별도로 교회 파괴-국가 전복-사회 해체를 이끌어낸다는 것이었다.

 

동성애 인권 타령을 반복하는 서울시장 박원순의 꼴값


무섭다. 그래서‘동성애=만악의 근원’이란 표현은 결코 과한 게 아니며, 종북좌파와 함께 한국교회가 맞닥뜨린 또 하나의 악마세력이다. 또 다른 강적의 한 명이 친(親)동성애 정책을 펼쳐온 서울시장 박원순이다. 믿기시는가? “한국이 동성결혼을 하는 아시아 첫 국가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던 위인이 바로 그다.

그 발언은 지난해 말 미 언론과의 인터뷰인데, 물론 박원순은 앞 다르고 뒤 다르다. 한기총 등 교계 관계자들을 만나서는 자신이 동성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며 빤한 거짓말을 반복한다.

그러면서도 동성애축제를 서울광장에서 벌이는 걸 ‘건전문화활동’으로 인정해 허용한다. 국민일보는 “성소수자 인권에 시민건전문화는 뒷전…박원순 시장 친동성애 정책에 혈서 2억 원”이란 기사(6월4일 자 보도)를 보도했지만, 이 사안의 중대성을 잘 모르는 주류 언론은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것인가?

실제로 서울시장 후보 시절의 박원순은 문화적 소수자는 특별히 배려한다는 내용의 ‘서울시민권리선언’을 선보였으니 그는 본래가 그런 위인이라고 봐야 한다. 인류 최악의 전체주의체제 북한의 인권문제엔 애써 눈을 감은 저들이 동성애 인권 타령을 늘어놓는 위선이다. 역겹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대한민국 땅에 살아선 안 될 사람이 정치인 노릇을 한다는 게 더 어이없을 뿐이다. 우리의 고민은 그 때문이다. 종북세력과 동성애 문제라는 내우외환의 한국교회가 어떻게 이 위기를 탈출할까? 그 지혜를 다음 회에 함께 찾아보자.


조우석 문화평론가






 

 

그때 그시절,

대한민국 건국일 미공개 사진  

 

한민국 재건 사업 발대식

  

월드피스자유연합이 대한민국 건국일을 맞아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미공개 사진을 18일 공개했다.

사진은 1952년 8월 19일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 재건 사업 발대식에 참석한

이승만 전 대통령과 제임스 밴 플리트 주한 미8군 사령관 등

시민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한편, 월드피스자유연합은 정의실현국민연대와 공동으로

역사 바로 알리기 사업을 진행한다. 2014.08.18. (사진=월드피스자유연합 제공) 

 

건국기념일 축하 행사

  

사진은 1952년 8월 15일 서울 중앙청 앞에서 진행된

건국기념일 축하 행사 및 제2대 이승만 대통령 취임식 행사에서

합창단이 축하 노래를 부르고 있다.(사진=월드피스자유연합 제공) 

 

만세 삼창하는 시민들

 

사진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기념행사장인

당시 정부청사인 중앙청 앞에서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대통령과

맥아더 연합군 극동군 총사령관,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 모두가

만세 삼창을 하는 모습

 

인사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맥아더 장군

 

사진은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의 초청으로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행사인 정부 수립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대한민국을 처음 방문한 연합군 극동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과

이승만 전 대통령이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는 모습

 

축사하는 양성봉 시장

 

사진은 1948년 8월15일 서울에서 진행된 대한민국 건국과

일본으로부터의 해방 3주년 축하 기념행사와 함께

전국 각지에서 축하 행사가 열린 가운데

양성봉 부산시장이 부산 운동장에서 진행된 건국 축하 체육대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는 모습. 

 

대한민국 건국 축하 체육대회

 

사진은 1948년 8월15일 서울에서 진행된 대한민국 건국과

일본으로부터의 해방 3주년 축하 기념행사와 함께 전국 각지에서

축하 행사가 열린 가운데 행사에 참석한 여성 연맹 회원들이

태극기를 들고 있는 모습. 

 

국방경비대장 격려하는 맥아더 사령관

 

사진은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건국과 일본으로부터의

해방 3주년 축하 기념행사에 참석한 맥아더 연합군 극동군 총사령관이

국방경비대장 송호성 중령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모습. 

 

국방 경비대 검열하는 맥아더 사령관

 

사진은 1948년 8월15일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의 초청으로

대한민국 건국과 해방 3주년 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김포공항에 도착한

맥아더 연합군 극동군 총사령관이 대한민국 국방경비대를 검열하고 있는 모습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과 존 호지 주한 미군사령관

 

사진은 1948년 8월15일 19발의 환영 예포가 울리는 가운데

김포공항에 도착한 맥아더 연합군 극동군 총사령관이

주한미군사령관 존 호지 중장과 함께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는 모습. 

 

국방경비대 분열 행진 보는 이승만 전 대통령 내외

 

사진은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건국 기념행사에서

국방경비대의 분열 행진을 지켜보는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과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모습.


대한민국 건국 축하 체육대회

 

사진은 1948년 8월15일 서울에서 진행된 대한민국 건국과

일본으로부터의 해방 3주년 축하 기념행사와 함께 전국 각지에서

축하 행사가 열린 가운데 김철수 경남지사가 부산 운동장에서 진행된

건국 축하 체육대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는 모습. 

 

축사 하는 마크 클라크 대장

 

사진은 6.25전쟁 중인 1952년 8월 15일, 제3대 유엔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마크 클라크 대장이 대한민국 건국 기념일 축하 행사와

이승만 대통령의 2대 대통령 취임식 행사에 참석하여 축사를 발표하고 있는 모습

 

답례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

 

월드피스자유연합이 대한민국 건국일을 맞아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미공개 사진을 18일 공개했다.

사진은 6.25전쟁 중인 1952년 8월 15일, 서울 중앙청 앞에 각국 외국 사절,

정부 관리, 시민들이 운집하여 대한민국 건국 기념일을 축하하고,

이승만 대통령의 2대 대통령 취임 행사가 진행된 가운데 참석한 시민들이

 만세 삼창을 하고, 이승만 전 대통령이 답례를 하고 있는 모습.

한편, 월드피스자유연합은 정의실현국민연대와 공동으로

역사 바로 알리기 사업을 진행한다. 2014.08.18. (사진=월드피스자유연합 제공) 

 

축사하는 올란드 와드 소장

 

사진은 서울에서 진행된 대한민국 건국과 일본으로부터의

해방 3주년 축하 기념행사와 함께 전국 각지에서 축하 행사가 열린 가운데

미 육군 6사단장 올란드 와드 소장이 부산 운동장에서 진행된

건국 축하 체육대회에 참석해 축사를 하고 있는 모습. 

 

만세삼창 하는 시민들

 

사진은 6.25전쟁 중인 1952년 8월 15일,

서울 중앙청 앞에 각국 외국 사절, 정부 관리, 시민들이 운집하여

대한민국 건국 기념일 축하 행사와 이승만 대통령의 2대 대통령 취임 행사가

진행된 가운데 참석한 시민들이 만세 삼창으로 환호를 하고 있는 모습. 

 

취임 선서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

 

사진은 6.25전쟁 중인 1952년 8월 15일,

서울 중앙청 앞에 각국 외국 사절, 정부 관리, 시민들이 운집한 가운데,

대한민국 건국 기념일을 축하하고, 이승만 대통령의 2대 대통령 취임 행사가

진행된 가운데 이승만 전 대통령이 2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고 있는 모습. 

 

취임선서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

 

사진은 6.25전쟁 중인 1952년 8월 15일,

서울 중앙청 앞에 각국 외국 사절, 정부 관리, 시민들이 운집한 가운데,

대한민국 건국 기념일을 축하하고, 이승만 대통령의 2대 대통령 취임 행사가

진행된 가운데 이승만 대통령이 2대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고 있는 모습. 

 

연설하는 이시형 전 부통령

 

사진은 1949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정부관리,

각국 외국 사절, 시민들에게 이시형 초대 부통령이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대한민국 건국 1주년 기념식

 

사진은 1949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정부관리,

각국 외국 사절, 시민들에게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대한민국 재건 사업

  

사진은 1952년 8월 19일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 재건 공식사업을 하는 모습. 

 

대한민국 재건 사업

 

사진은 1952년 8월 19일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 재건 사업 발대식에 참석한 이승만 전 대통령과

제임스 밴 플리트 주한 미8군 사령관 모습. 

 

대한민국 재건 사업 발대식

 

사진은 1952년 8월 19일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대한민국 재건 사업 발대식에 참석한 이승만 전 대통령과

제임스 밴 플리트 주한 미8군 사령관 등 시민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맥아더 사령관

 

사진은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건국과 일본으로부터의

해방 3주년 축하 기념행사에 참석한 이승만 전 대통령과

맥아더 연합군 극동군 총사령관, 주한미군사령관 존 호지 중장 모습. 

 

 이승만 전 대통령과 맥아더 사령관

 

사진은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건국과 일본으로부터의

해방 3주년 축하 기념행사에 참석한 이승만 전 대통령과

맥아더 연합군 극동군 총사령관 모습.

 

축사하는 맥아더 총사령관

 

사진은 1948년 8월15일 한반도에 새롭게 건국된

대한민국을 축하하기 위해 참석한 맥아더 연합군 극동군 총사령관이

남북한 국민들에게 축사하는 모습. 

 

 기념 연설하는 이승만 전 대통령

 

사진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당시 정부청사인 중앙청 앞에서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대통령이 대한민국 건국과 정부 수립 기념

연설을 하고 있는 모습.

 

대한민국 건국을 축하하는 서울 시민들

 

월드피스자유연합이 대한민국 건국일을 맞아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미공개 사진을 18일 공개했다.

 사진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과 일본으로부터의

해방 3주년 축하 기념행사에 참석한 군중들로 가득 메워진 서울 중앙청 앞 모습.

한편, 월드피스자유연합은 정의실현국민연대와 공동으로

역사 바로 알리기 사업을 진행한다.

2014.08.18. (사진=월드피스자유연합 제공)


 


 


朴 대통령, 도우미 아줌마가 전하는 퇴근 후 일상생활 

 


새벽 기상해 자료읽고 웹서핑

 삼성동서 가사 돕던 도우미가 관저 출퇴근하며 식사 준비,

 점심은 수석들과 본관서… 오후 6시 정시 퇴근후에도 업무

 

 

 

<동생 지만씨의 아들인 조카
세현(8)>

 

 

'오전 9~10시 출근, 오후 6시 퇴근.

박근혜 대통령은
자동차로 3~4분 걸리는 관저(숙소)와 본관(집무실)
사이의 도로를 하루 한 번 오가는 것 외에
다른 동선(動線)이 없을 때가 다반사다.


그는 '아침형' 인간이다.
지난 15년간 매일 새벽 4시30분쯤이면
눈을 뜨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에 와서도 달라진 게 없다고 한다.
참모들이 올린 각종 보고서와 자료를 읽고
인터넷 서핑을 하는 걸로 하루를 시작한다.

반대 진영의
독설(毒說)이 담긴 인터넷 댓글도 챙겨 읽는다.
그는 1974년부터 5년 넘게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는 동안
아침식사를 주로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단둘이 먹으며
'지도자 수업'을 받곤 했다.

그러나 지금

 

 

독신인 박 대통령에겐 식탁에 마주 앉을 가족이 없다.
관저로 출퇴근하는 '삼성동 아줌마'가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삼성동 아줌마'는
박 대통령의 서울 삼성동 사저에서
수년간 일했던 가사 도우미다.

 

 

맵고 짠 음식을 싫어하고 채식을 즐기는

 

박 대통령의 식성과 생활 습관을 잘 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본관 도착 시간은 오전 9~10시인데,
관저에서 하던 일이 마무리되는 시간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보통 오전 7시 30분에 출근했던 것과 비교하면
청와대 시계가 2시간쯤 늦춰진 셈이다.
박 대통령 주재 수석회의도 대개 오전 10시에 잡힌다.

 

 

 

낮 일정은 빡빡하게 돌아간다.
접견실에서 외부 인사를 만나거나
수시로 수석들을 호출해 보고를 받는다.

 

이번 주부터는 매일 업무보고를 챙기기 시작했다.
외부 일정이 없으면 점심은 본관에서 해결한다.
 
본관에도 주방시설이 갖춰져 있고 요리사도 배치돼 있다.

 

점심을 함께하는 사람은 그때그때  다르다.  

수석들과 먹을 때도 있고 외부 사람을 부를 때도 있다.
물론 비공개다.

지난 정부 때까진 VIP(대통령)가 식사를 하면
언제나 곁을 지키는 총무기획관실 소속 행정관이 있었다.
 
청와대에 오래 근무한 이들은
이 남자 행정관을 우스갯소리로
'감식관(鑑食官)'
또는 (왕이 먹는 음식에 독이 있는지를 살피는)
'기미상궁'이라 부르기도 했다.
 

 

19년간 청와대에 근무했다는 이 행정관은
최근 그만뒀고 따로 충원하진 않았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오후 6시쯤 관저로 '칼 퇴근'한다.
관저의 총넓이는 6093㎡(1843평)이다.

 

도배와 인테리어를 바꾸고
삼성동 자택에서 쓰던 가구와 물건들도 옮겨 놓았다.

저녁식사는 혼자서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삼성동 아줌마'가 퇴근하면
경호원과 여직원이 대기하고 있지만
편하게 말 붙일 사람은 없다.

 

밤에도 올라오는 상황 보고를 챙기고
수석들에게 지침을 내리는 대통령의 업무는 계속된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 다시 들어온 직후
"내부가 너무 달라졌다"고 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스케이트를 타던 연못이 없어졌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가장 아끼는 피붙이는
동생 지만씨의 아들인 조카 세현(8)이다.

 

박 대통령이 유일하게 공식 회의를 중단하고 나갔던 게
2005년 세현이가 태어났을 때다.

 

아직 지만씨 부부와 조카를
청와대에 불렀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는다.
청와대 인사들은
"그렇게 하고 싶겠지만
박 대통령이 세간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 같다"고 했다.

"대통령이 너무 바빠서
외로울 시간도 없을 것"이라는 참모도 있다.
박 대통령은 평소 개인적인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지만
조카인 박세현 군에게는 따뜻한 고모다.
사진은 박 후보가 박세현군을 안고 있는 모습

◆또 다른 발전의 기회

우리는
익숙해진 생활에서 쫓겨나면 절망하지만,
실제는
거기서 새롭고 좋은 일이 시작되는 것이다.
생명이 있는 동안은 행복이 있다.

- 톨스토이 -

지금의 안위가 최고라 여겨지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불안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 상태로 유지되거나
아니면,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것이
대부분의 마음일겁니다.
하지만
일상은 반복 속에서도 변화하고
때로는 전복되는 것이어서
불안은 가중됩니다.

그렇지만
그런 변화가 새로운 삶의 계기가 되고
또 다른 발전을 가져오는 기회라고
달리 생각하면
피할 일만은 아닙니다.
기회는
문을 여는 사람에게만 얼굴을 보여주니까요.

 



 

 





▼40위 사릉 (Sareung)

위치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리
조선 제6대왕 단종비 정순왕후 송씨의 능이다.


39위 삼부연폭포 (Sambuyeon Falls)

위치 :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신철원리
높이 20m의 폭포로 폭포수가 높은 절벽에서 세 번 꺾여 떨어지고
세 군데의 가마솥 같이 생긴 못이 있다고 하여 삼부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38위 남한산성 (Namhansanseong Fortress)

위치 :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북한산성과 더불어 서울을 남북으로 지키는 산성 중의 하나로,
신라 문무왕 때 쌓은 주장성의 옛터를 활용하여
1624년(인조 2년)에 축성하였다.




37위 선정릉 (Seonjeongneung)

위치 :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서울에 있는 조선 왕릉으로 삼릉공원이라고도 불린다.
선정릉에는 성종 왕릉과 성종의 계비인 정현왕후의 능,
그리고 중종 왕릉인 정릉이 모여 있다.


36위 창녕교동고분군 (Gobungun, Changyeong)

위치 :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리
가야시대 고분군으로 교동고분군은 목마산 북서쪽 기슭에 있으며
인접한 송현동고분군과 함께 창녕읍 교리 일대에 넓게 분포하고 있다




35위 안압지 (Anapji Pond)

위치 :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신라시대 때의 연못으로 연못 기슭과 섬에 실시된 호안공사는
정교하고 도수로와 배수로의 시설도 또한 교묘하다




34위 경복궁 근정전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1
경복궁의 중심이되는 정전이며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33위 창경궁 (Changgyeonggung)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조선시대 궁궐로 태종이 거처하던 수강궁터에 지어진 건물이다.
성종 14년(1483)에 정희왕후, 소혜왕후, 안순왕후를 위해 창경궁을




32위 인왕산 (Inwangsan)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무악동 산 3-1
서울 종로구와 서대문구 홍제동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 338.2m이다.
산 전체가 화강암으로 구성된 서울의 진산 중 하나


31위 종묘 (Jongmyo Shrine)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57
조선시대 역대의 왕과 왕비 및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왕가의 사당이다



30위 고창고인돌 (Gochang Dolmen site)

위치 :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인돌 무리 전북 고창은
인근 화순, 인천 강화와 더불어 이름난 고인돌 분포지역이다


29위 왕궁리 (Wanggungri)

위치 :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에는 사적 제408호로 지정된 익산 왕궁리 유적이 남아 있다.
왕궁리성지 라고도 부르며 마한의 도읍지설, 백제 무왕의 천도설이나
별도설, 안승의 보덕국설, 후백제 견훤의 도읍설이 전해지는 유적이다.




28위 서울성곽 (Seoul Seonggwak Fortress Wall)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이화동
서울성곽은 조선을 세운 태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긴 후
전쟁을 대비하고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하거나
도적을 방지하기 위해 쌓은 시설




27위 강릉안반데기 (Gangneung Anbandeok)

위치 :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강원도 고랭지의 감자밭과 배추밭을 감상할 수 있는 안반데기 마을은
평창군 대관령면과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 사이에 놓인
피동령이라는 산비탈에 자리 잡고 있다.
봄이면 감자밭, 가을이면 배추밭으로 뒤덮인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다.



 
26위 광안리 (Gwanggalli)
위치 : 부산광역시 수영구 광안2동
부산을 상징하는 장소로 모든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최고의 바닷가이다


25위 소양호 (Soyang Lake)

위치 :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1973년 소양강을 막아 만든 소양댐으로 생겨난
국내 최대의 호수로
내륙의 바다’라 일컬어진다.




24위 우포늪 (Upo Wetlands)

위치 : 경상남도 창녕군 유어면 우포늪길 220
‘생태계의 고문서’, ‘살아 있는 자연사 박물관’이라 불리는 우포늪은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 늪지다.



23위 합천다랑논 (Hapcheon daraknon)

위치 :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합천은 아름다운 산과 사찰로 유명한 곳이지만
층층으로 되어 있는 다랑논도 멋진 풍경이다.




22위 부석사 (Buseoksa)

위치 :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한국 화엄종의 근본도량이다.




21위 금산보리암 (Geumsan Boriam)

위치 :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남해 금산 정상에 위치한 보리암은 신라시대 638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국내 3대 관음성지이다.



 

20위 돌산대교 (Dolsan Bridge)
위치 :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전라남도 여수시 남산동과 여천군 돌산읍 우두리를 연결하는 다리로
1980년 12월에 착공하여 1984년 12월에 완공되었다.



19위 안동하회마을 (Andong Hahoe Village)

위치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종가길 40
한국의 대표적인 민속마을로
2010년 8월 유네스코 세계문화 산으로 등재되었다.



 

18위 오작교 (Ojakgyo)
위치 : 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
전라북도 남원 광한루에 있는 석재로 된 다리이다.



 

17위 비양도 (Biyangdo)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제주도 서쪽, 협재해수욕장에서 바로 앞으로 보이는 작고 아름다운 섬이다.



 

16위 삼화사 (Samhwasa)
위치 : 강원도 동해시 무릉로 584
강원도 동해시 두타산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이다.



 

15위 함덕 (Hamdeok)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리로 중산간지역에 자리한 마을이다.
물이 부족하여 논농사보다는 밭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14위 협재해변 (Hyeupjae Beach)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한림읍 서해안 지대에 위치하며 조개껍질이 많이 섞인
은모래가 펼쳐진다.

수심이 얕고 경사가 완만하다.


 

13위 마라도 (Marado)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마라리
우리나라 최남단의 섬으로 대정읍 모슬포항에서
남쪽으로 11㎞, 가파도에서 5.5㎞ 해상에 있다.
 
 

12위 용화해변 (Yonghwa Beach)
위치 :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용화해변길
자그마한 해변이 반달처럼 휘어져 아담하며,
해변 뒤에는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고,
양쪽 끝은 기암절벽으로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다.



 

11위 세화해변 (Sehwa Beach)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코발트 빛깔의 맑은 바다가 아름다운 곳으로
인파로 붐비지 않아 아직 자연 그대로의
깨끗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10위 송악산 (Songaksan)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81미터 높이의 산으로 저벼리 또는 저별악이라고 한다.
해안에 접한 사면이 벼랑이고, 위는 평평하다.



 

9위 우도 (Udo)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우도면
제주가 품고 있는 섬 속의 섬이다.
종달리 해안가에서 바라보면
마치 소 한 마리가 누워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8위 용두암 (Yongduam)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용담1동
용연 부근의 바닷가에 용머리의 형상을 하고 있는
이 바위의높이는 약 10m에 이르며,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승지이다.



7위 천지연폭포 (Cheonjiyeon Falls)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천지동
제주도에는 폭포가 많은데 그 중 규모나 경관면에서
단연 으뜸으로 관광객의 발길이 가장 많이 머무는 곳이다.



 

6위 토끼섬 (Tokkiseom)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하도리 해안에서 50m쯤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간조시에는 걸어갈 수 있는 섬이다.
현재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지만
토끼섬의 비경을 감상하기 위해 제한적으로 탐방객들이 찾기도 한다.



 

5위 영암 (Yeongam)
위치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쪽은 장흥군, 남쪽은 해남군강진군, 북쪽은 나주시와 접한다.
남동쪽 군계를 중심으로 월출산이 천황봉을 최고봉으로
구정봉, 사자봉 등 많은 봉우리를 일으키면서 기암절벽을 이룬다.



 

4위 만어사 주변 (Miryang Maneosa)
위치 : 경상남도 밀양시 만어산
전설에 의하면, 만어사는 46년(수로왕 5)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대웅전, 미륵전, 삼성각, 요사채, 객사가 있으며
보물 제466호로 지정된 3층석탑이 있다.
미륵전 밑에는 고기들이 변하여 돌이 되었다는 만어석이
첩첩이 깔려 있는데 두드릴 때마다
맑은 소리가 나기 때문에 종석이라고도 한다.



 

3위 성산일출봉 (Seongsan Sunrise Peak)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
거대한 성과 같은 봉우리로 제주도 동쪽 바닷가에 솟아 있는
해발 182m의 수중 화산체이다.
10만년 전 제주에서 생겨난 수많은 분화구 중
유일하게 바다 속에서 폭발해 만들어졌다.



 

2위 창덕궁 (Changdeokgung)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1405년(태종 5)에 지어진 조선시대의 궁궐로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덕궁은 금원을 비롯하여 다른 부속건물이 비교적 원형으로
남아 있어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고궁들 중 하나이다.



 

1위 한라산 (Halla Mountain)
위치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동
제주특별자치도 중앙부에 솟아 있는 산이다.
높이 1,950m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http://cafe.daum.net/dusktrain/9h3k/2011 (재편집)



 

 

 

 

 

 

 

 

가져온 곳 : 
블로그 ><과학 카페>
|
글쓴이 : 과학카페 매니저.| 원글보기

 

굴뚝처럼 솟아 오른바위 위에 대형 성조기를 꽂아 놓은 산이 있다.

바로 노스캐롤라이나의 ‘침니 락 파크’다.

빌트모어성에서는 40분거리, 노스캐롤라이나 ‘애쉬빌’에서는 동남쪽 25마일 지점에 위치해 있다.

 

침니 락은 바위속에 있는 엘레베이터를 타고26층 높이의 꼭대기 까지 올라가야 한다.

바위를 뚫고 바위속에 엘리베이터를 건설했기 때문이다.

엘레베이터의 문이 열리면 기념품가게와 함께 ‘스카이 라운지 카페’가 나온다.

밖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어 식사를 하며 자연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다.

카페를 지나 나무다리를 건너면 침니 락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이 오른쪽에 나온다.

침니 락 정상에서 바라보는 산아래의 풍경은 그야말로 한폭의 그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사진촬영도 하고 자연을 즐기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침니 락 전체를 카메라에 담으려면 침니 락 뒤에 있는 전망대까지 올라 가야 한다.

나무와 철재로 만들어진 전망대는 침리 락을 내려와, 뒤에 있는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된다.

 

전망대에서는 침니 락은 물론 산아래의 모든 풍경을 한눈에 조명한다.

침니 락을 선전하는(펄럭이는 성조기의 침니 락)사진이 모두 이곳에서 촬영한 것이다.

니들스 아이(Needle Eye), 오페라 박스( Opera Box), 데블스 헤드(Devil’s Head)도 모두 이곳을 통해 있다.

 

오페라 박스는 오페라를 감상하는 박스와 비슷하게 생겼다 해서 생긴 이름이다.

실제로 의자에 앉아 보면 오페라 박스에 앉은 듯한 기분을 느낀다.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못생긴 바위가 하나 보인다. 악마의 얼굴처럼 생긴 ‘데블스 헤드’다.

 

침니 락 파크에는 6개의 아름다운 트레일이 있다.

특히Cliff Trail이나Hickory Nut Falls Trail은 자연경관이 뛰어나 시간이 허락한다면 방문하는 것이 좋다.

 

*Hickory Nut Falls Trail: 3/4마일을 가면 시원한 ‘힉코리 넛 폭포’(Hickory Nut Falls)가 등장한다.

 

*Skyline Cliff Trail Loop: 침니 락 뒤에서 부터 시작하는데 산위에서 부터 점점 내려가 결국 Cliff Trail 과 만나게 된다.

 

*Cliff Trail: 무성한 숲과 절벽을 타고 올라 가는데 자연경관이 뛰어나다.

  1992년 영화 ‘모히칸족의 최후’(The Last of the Mohicans)의 유명한 마지막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했다.

  Outcroppings Trail 로 들어가면 Cliff Trail 로 연결된다.

 

*Four seasons Trail: 야생 들꽃이 많고 사슴과 야생 칠면조도 볼 수 있다. 입구 오른쪽으로 들어간다. 0.6마일.

 

*Outcroppings Trail: 애완동물을 데리고 갈 수 있는 트레일로 경관이 아름답다.

 

*Great Woodland Adventure: 나무로 깍은 동물들이 많아 어린아이들에게 좋은 트레일이다.

  입구에 있는 Picnic Area에서 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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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니 ‘Chimney 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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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니 락이 앞에 보이고 뒤에 철재로 만들어진 전망대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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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차장에서 바라본 침니 . 바위속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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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조기가 펄럭이는 침니 정상 위로 두마리가 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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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니 락으로 오르는 계단. ‘Stairway to Chimney R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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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상에서는 기념사진도 찍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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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니 락에 펄럭이는 성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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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니 정상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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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니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아래의 풍경은 한폭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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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위 중간에 오페라박스(사람들이 서있는 )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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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라박스에서 바라본 침니 락과 산아래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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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라박스에서 바라본 침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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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블스 헤드(Devil’s Head).






강의가 끝났을 때 난 처음으로 전 학생이 일어나며 기립박수를 받았다. 어떤 학생은 눈물을 흘리기 까지... 내가 처음 이순신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을 때 그 감정을 나의 제자들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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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중국학자에 장웨이린 교수가 있습니다.

조선의 역사에 관심이 없었다.
일본 교수들의 말만 듣고 학술연구회에서 거북선을 처음 보았다.

저런 배가 400여년 전에 있었단 말인가?
나의 놀라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학술연구회의 이름은 '이순신'이었다.
일본교수진의 도움으로 책 7권을 하루만에 다 읽고 책을 놓은 뒤. 가느다란 한숨과 함께 어디선가 느껴지는 심장소리...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서양과 일본에게 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를 구할 수 있는 위인이 있다면 누구일까 물었다.

항우, 제갈공명, 손자, 관우...

나는 한참 동안이나 창문 너머를 바라보다 말했다.

여러분들이 말한 영웅이 나타난다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 일거라고...

그리고 학생들에게 거북선 사진을 보여주었다. 모두들 의아해 했다.

400여년 전 조선과 일본의 전쟁 시 조선을 구한 이순신 장군이야 말로 중국을 구할 유일한 영웅이라고 나는 여러분께 말한다.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소리가 들렸다.








조선 수군장수 이순신은 5천 명도 안되는 군사와 50척도 안되는 함대를 이끌고 40만 대군의 왜군과 1300대의 일본함대와 맞서 싸워 단 한번의 패배도 없이 모두 승리하여 조선을 구할수 있었다.

일본군은 100년의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싸움의 고수들이었고 동아시아 최강의 전력이었다.

당시 조선 수군은 물고기나 잡고 농사나 짓던 나약한 병사들이었으나 단 1년 만에 훈련시켜 40만 대군과 1300척을 거느린 일본군과 맞서 이길 수 있는 군대를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위대하다.

만일 이순신 장군이 일본 장수였다면 당시 명나라는 물론이고 태국과 베트남. 인도네시아까지 일본군에 점령되었을 것이다.

세계 어느 국가도 한 인물의 존재에 따라서 이렇게 역사가 뒤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 거북선을 보라. 누가 이 배가 400 여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믿겠는가?







여러분들은 눈을 떠야한다. 나는 1시간 정도 더 이순신 장군에 대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강의를 끝마칠 수 있었다.

강의가 끝났을 때 난 처음으로 전 학생이 일어나며 기립박수를 받았다. 어떤 학생은 눈물을 흘리기 까지... 내가 처음 이순신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을 때 그 감정을 나의 제자들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 장웨이린 교수는

동북공정의 일환인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일을 맡았다가 이순신 학술회를 시작으로 고구려 역사 편입 작업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그는 말한다.

역사학자가 후세 사람들에게 해서는 안되는 두가지 부끄러움이 있다.

한가지는 히틀러가 몇백만 유태인을 죽인 것보다 그 역사를 감추며 숨기는 것,

또 한가지는 진정한 위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찾지 못하는 것이다.


성공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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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신종은 진린 장수로부터 긴급 서신을 받는다.



황제폐하 이곳 조선에서 전란이 끝나면 조선의 왕에게 명을 내리시어 조선국 통제사 이순신을 요동으로 오라 하게 하소서.


신이 본 이순신은 그 지략이 매우 뛰어날뿐만 아니라 그 성품과 또한 장수로 지녀야할 품덕을 고루 지닌 바 만일 조선수군통제사 이순신을 황제 폐하께서 귀히 여기신다면은 우리 명나라국의 화근인 저 오랑케를 견제할수 있을뿐 아니라 저 오랑케의 땅 모두를 우리의 명나라국으로 귀속 시킬 수 있을 것이옵니다.


혹여 황제페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의 장수됨을 걱정하신다면은 신이 간청하옵건데 통제사 이순신은 전란이 일어나고 수 년간 수십차례의 전투에서 단 한번도 폐하지 않았음에도 조선의 국왕은 통제사의 업신여기며 또한 조정 대신들 또한 이순신의 공적에 질투를 하여 수 없이 이간질과 모함을 하였으며. 급기야는 통제사의 충의를 의심하여 결국에는 그를 조선 수군통제사 지위를 빼앗아 백의종군에 임하게 하였나이다.


허나 통제사 이순신은 그러한 모험과 멸시에도 굴하지 않고 국왕에게 충의를 보였으니 이 어찌 장수가 지녀야할 가장 큰 덕목이라 하지 않을수 있겠나이까 .


조선국왕은 원균에게 조선통제사 지위권을 주었으나 그 원균이 자만심으로 인하여 수 백척에 달한 함대를 전멸케 하였고 단 10 여 척만이 남았으매 당황한 조선 국왕은 이순신을 다시 불러 조선 수군통제사에게 봉했으나. 이순신은 단 한번의 불평없이 충의를 보여 10 여 척의 함대로 수 백척의 왜선을 통쾌하게도 격파하였나이다. 하지만 조선의 국왕과 조정 대신들은 아직도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또 다시 통제사 이순신을 업신여기고 있나이다.


만일 전란이 끝이 난다면은 통제사 이순신의 그 목숨은 풍전등화가 될것이 뻔하며. 조정 대신들과 국왕은 반드시 통제사 이순신을 해하려고 할 것입니다.


황제폐하께 바라옵건데 통제사 이순신의 목숨을 구명해 주소서. 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페하의 신하로 두소서. 황제페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에게 덕을 베푸신다면은 통제사 이순신은 분명히 목숨을 다하는 날까지 황제폐하께 충을 다할것이옵니다.

부디 통제사 이순신을 거두시어 저 북쪽 오랑케를 켠제케 하소서. [ 명나라 장수 진린 ]



이순신 장군님의 마지막 전투였던 1597년 9월 16일 명량해전에서 모두가 깜짝 놀라고 당황하게 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순신장군님의 지휘함대가 제일 앞서 나가 왜적과 싸우면서 스스로 죽음을 택하신 것이다.






명나라 진린장수는 중국 광동출신으로 1597년 (선조30년) 정유재란에 어위도총관 전군 도둑으로 수군 5천 명을 거느리고 조선에 들어와 강진군 고금도에서 이순신과 더블어 일본 왜적과 싸워서 전공을 세워서 광동백을 하사 받는다.


명나라 장수 진린은 그 후 고향으로 돌아 가지만 명나라가 망하자 진린의 후손은 한국 남해 장승포에 옮겨 살면서 광동 진씨의 뿌리가 된다.



명나라 장수 진린을 통해서 본 옛날 조선(대한민국)의 역사는 정말 슬프고 만감이 교차한다. 나라가 절대적인 위기인데도 장수를 모함해서 나라를 더 망치는 못난 일이 오늘날에는 없는지 살펴 보고 깨달아야 할것이다.



진린이 본 조선시대의 부끄러운 역사가 오늘날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도 분명 의미 있는 교훈이 되어 슬푼 역사를 더이상 만들지 말아야 할것이며 특히 지난 역사를 통해서 본 훌륭한 인물들은 왜 대한민국에서는 살기가 힘든 것일까 ?



http://www.youtube.com/watch?v=6qq1XYz5JAk < ----- 클릭 하시겠습니까 ?



2014년 6월 18일 애국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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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렘워십 소속 외국인 유학생 10여 명이 지난달 26일 저녁 서울 지하철 1호선 객차 안에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사’를 부르며 춤추는 모습을 한 페이스북 유저가 인터넷에 올린 동영상이 지난주 페이스북에서 큰 화제가 됐다.


동영상에서 객차 양편에 마주 앉은 남녀 흑인들이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한다. 흥에 겨워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기도 했다. 노랫말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이다. 4분 58초 분량이다. 한 페이스북 유저는 “뉴욕 지하철인 줄 알았다. 흑인들이 한국어 찬송을 하다니 놀랍다”고 말했다. 

영상의 주인공은 외국인 유학생들로 구성된 ‘살렘워십(Salem Worship)’이었다. 워십팀 소속 콩고 출신 프랭크 이마니(24·성균관대)씨는 5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경기도 동두천 소요산역 앞 집회에 참여한 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즉흥적으로 불렀다. 한국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한국어로 찬양을 했다. 우리를 우연히 본 승객 한 명이 자신의 페북에 올린 것 같다”고 말했다. 

살렘워십에서 활동한 학생들은 동영상 반응에 놀라워했다. 이마니씨는 “지난해 여름에도 지하철에서 찬송을 부른 적이 있다. 그땐 이렇게 관심이 크지 않았다. 하나님이 우리의 일을 도와주신 것 같아 멤버 모두 감사하며 기뻐하고 있다”고 전했다. 스캇 브레너 목사도 인터넷에서 이 영상을 보고 “매우 기쁘다. 언젠가 이 청년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평화가 늘 함께 하길 바란다는 의미로 2012년 결성된 살렘워십은 매주 토요일 연습하고, 종종 교회 집회 등에 참여한다. 




지금 1호선 상황!

Posted by 김보미 on Sunday, April 26, 2015



오늘(5월 5일 화요일)은 멕시코에서는 멕시코 독립기념일인 씽꼬 데 마요(Cinco de Mayo)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어린이의 날입니다.(한국은 하루 지났겠지만)

오늘은 멕시코 최대축제인 씽꼬 데 마요 페스티발이 여기저기서 많이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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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치와와 태평양 철도




한때 한국에서도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앵벌이에 대한 기사가 생각난다.

어린 아이들을 데려다가 혹은 유괴하여 지하철 및 도시 한복판에 동냥을 하게 만드는 조직을 일컫는 앵벌이.그러한 어둠의 조직으로 불렸던 앵벌이의 모습을 북경의 한복판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빈부의 격차가 큰 중국에서 부랑자나 거지를 보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하지만 오늘 본 소녀의 모습은 우리가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기에 그 안타까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13~4살 정도로 추정되는 이 소녀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도로변에 앉아 하루 종일 분필로 글을 쓴다.일주일에2번 정도 이곳에 오며 예전에 북경 중심에서 보았던 소녀이기에 쉽게 알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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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쓰고 있는 글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와 가족사,그리고 현재 처한 상황이다. 작은 소녀가 쓰는 글씨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곧고 힘있는 서체이기에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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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가 쓴 글을 살짝 번역하자면 아래와 같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장수를 빌며 아주머니 아저씨가 하시는 일이 모두 순조롭기를 바라겠습니다. 오빠 언니 아우 분들이 빨리 조국의 대들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발이 불구 이며 등에도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괴롭다 괴롭다 괴롭다.힘들다 힘들다 힘들다. 저의 고통스러운 일을 한자한자 적어보겠습니다.

출생 후 일년 반이 지나지 않아 천재와 인재로 병을 얻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도처에서 저를 검사시킨 신 결과 마비증이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반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저희 집은 원래 농촌입니다.저금한 돈을 모두 사용하고 친구와 친척들의 돈 또한 모두 사용하였습니다.

그때는 병원 시설이 좋지 않았으며 저의 병에도 호전이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일터에 나가셔서 일년이 넘게 일을 하셨지만 사장의 횡포에 의해 월급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아버지는 화병에 정신병을 얻으셨습니다.
.........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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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 소녀가 쓰고 있는 글은 아마도 거짓말 일 것이다.많은 중국의 부랑자 및 거지들은 사람들에게 최대한 동정심을 일으키기 위하여 많은 픽션을 첨가한다.

혹은 거지나 부랑자를 직업으로 자처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중국의 대부분의 사람들도 이를 알기에 동정의 눈빛 보다는 의심과 차가운 눈빛으로 대하기 일쑤 이다.

하지만 소녀의 밝은 얼굴과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써 내려간 정갈한 글씨는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으며 이러한 의심을 모두 잊고 감탄과 동정의 손길을 뻗게 하였다.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이어지고 있다.

적에는5마오(한화75원)부터 많게는10위안(한화1200원)까지 평소 남의 일이라면 불구경 하는 듯한 중국인이라 생각했던 내 생각이 잘못된것임을 알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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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작성을 맞춘 후에는 자신이 적어 내려간 글을 모두 다 지우고 다시 다른 부분에 처음부터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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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사람들이 소녀에게 보인 정성과 물질적인 도움은 다른 이들의 배를 채울 것이며 또 다시 소녀를 차가운 도로로 내 보낼 것이다.
하지만 소녀가 세상이 자신을 버리지 않았음을 알고 꿋꿋이 살아갔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DallasSohn.jpg 근간의 뉴스 중심은 뭐니 해도 성왼종의 자살 사건이다. 성씨는 대체로 자수성가형 기업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자서전 '새벽빛'을 보면, 초등학교 중퇴 학력에 갖은 고생 끝에 단돈 천원으로 시작해 2조원 그룹의 기업을 일궜다는 눈물겨운 스토리를 구구절절이 담고 있다. 그러나 성씨는 자살하기 불과 6일 뒤, 그가 경영했던 경남기업은 주식시장에서 명이 끊겨 퇴출당했다. 반세기 역사가 넘는 '국내 최초 해외 진출 건설사'(1965년) '국내 1호 상장 건설사'(1973년)로 꽤 명성 있던 기업이었는데, 그가 인수한 지 12년 만에 회사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결국 망했다. 경제 논리로 본다면 그는 '실패한 기업인'이다.

허나 그는 죽을 때 곱게 죽지 않았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경향신문과 50분간 통화한 내용, 그리고 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던 현직 총리와 현 정권 실세를 겨냥한 56자 ‘뇌물’ 메모가 정국을 뒤집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9일 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을 때, 처음에 언론들은 그를 ‘자수성가 기업인’으로 예우했지만, 그러나 다음날 소위 친박 핵심들에게 돈을 줬다는 생전 인터뷰가 공개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그는 죽으면서도 정치를 ‘재개(再開)’한 것이다

고인의 측근은 그는 여.야당을 막론하고 “정치인 150여명에게 150억원을 뿌렸다”고 했다. 정가에서는 정권의 시대를 막론하고 “성완종의 ‘로비’정당은 여당”이라고들 했다. 그의 주변들은 첫째, 돈을 받고 도움을 준 사람 둘째, 돈을 받고도 도움을 주지 않은 사람 등 두 종류의 ‘실세’가 있었음을 시사했다. 이번에 회자된 인사는 그 두 번째에 해당하는데, 그보다 더욱 나라에 해악을 끼친 첫 번째 인사들은 앞으로 어떻게 처리될까....현 새민련은 과거 성씨의 유례없는 당시 두 번씩의 ‘특사‘에 대해 또 ’오리발‘을 내밀며 자기들은 청렴(?)했다고 할 것인가?

그의 자서전 '새벽빛'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동안 사업을 하면서 원칙을 지키고 정도를 걸으려고 무던히도 애썼지만 솔직히 말해 내 손이 완전무결한 것은 아니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소소한 관행을 무시하기 힘들었고, 그러지 않고서는 도저히 사업을 해나갈 수 없는 분위기 때문에...“운운.

정말 그의 말대로 '소소한 관행'을 무시하고는 도저히 사업이 안 되는 사회 탓인지, 본업보다는 정치권을 맴돌며 보험 드는 것이 여전히 비용도 적게 들고 이득이 많아서 정경 유착이 습관화된 것인지, 차제에 뿌리부터 파헤쳐 청산하고 고쳐야 나라가 바로 선다.

우리 사회는 죽은 자에게 너그럽다. 하지만 이제는 ‘실체적 진실’을 추궁할 때다. ‘죽는 자가 반드시 진실만 말하는 건 아니다’라는 걸 우리는 안다. 하지만 대개는 망자의 메모를 진실로 믿고 싶어 하지만, 그러나 우리 정치가 ‘인간관계’라 부르는 ‘비리사슬’로 움직인다는 걸 간과해서는 안 된다. 덧 칠이 입혀진 인정적인 미화는 우리를 눈 멀게 하고 또한 폄훼 역시 진실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성완종 리스트' 파문과 관련, "최근에 제기된 의혹에 대해서는 정치개혁 차원에서 반드시 바로잡고 넘어가야 할 일이며, 부정부패에 책임이 있는 사람은 누구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ㅡ“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이런 부패 문제를 뿌리 뽑지 않고서는 나라 경제 살리기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일을 계기로 정말 깨끗한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이 문제에 있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어떤 경우에도 흔들림이나 중단 없이 반드시 해내겠다는 각오를 다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진실로 지금은 '향후 대한민국이 깨끗한 정치의 길로 나아가느냐' '족쇄를 끊지 못하고 또 다시 무릎 꿇고 마느냐' 하는 중대한 갈림길이다. 혹자는 '너무 맑은 물에서는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고 투덜대며 대충 넘어가야 나라가 편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조 5백년이 그랬다며 '적당히' 합리화 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러다가 지독한 내우와 외환을 겪었고 근세에는 6.25 전쟁을 당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죽을 똥 싼 사람들은 애매한 백성들 뿐이었던 치욕의 역사를 덮어두고 하는 소리다.

따라서 이번의 경우는 다르다. ‘특+특검도입‘을 해서라도 전·현 정권 모두의 적폐를 낱낱이 파헤쳐 대한민국을 올바르게 세워야 할 사명이 박대통령에게 있고, 그리고 그 밖에는 맘 먹고 해치울 사람이 없다.

왜냐면 박대통령은 최소한 '도적질'이나 '비리'에는 단호한 사람이었기에 이번 사태도 일어났다고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3년 후면 그는 모든 권력에서 벗어나 ’자연인‘이 될 것이기에 이제 결코 망설이거나 야당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Texas Dallas에 살고 계시는 손남우님 불로거에서




우리가 '절대로' 절망할 수 없는 이유
김일성 가문의 재산으로 태어나 버림받던 백성들은 공포와 궁핍과 저주에서 해방케 될 것이다.

1. ‘대한민국은 여기까지인가?’ 세월호 참사 이후 자조적 탄식이 번진다. 절망과 우울을 넘어 희망(希望)과 소망(所望)을 그려본다. 
  
  희망과 소망의 원천은 죽은 자를 살리신 주님에 대한 절대적 신앙에 있다. ‘오직 예수’의 믿음을 통해 민족의 사명(使命)과 백성의 비전(vision)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부패(腐敗)와 음란(淫亂)을 넘어 주님이 주신 꿈을 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놀랍도록 달콤한 문명의 빛이 가장 참혹한 시절에 잉태되었다. 주님은 그러한 분이다. 칠흑 같은 밤에 부흥의 씨앗이 심겨졌다. 
   
  1910년~1945년 사이 일제(日帝) 통치는 한민족 최악의 시련기였다.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오죽하면 나라가 망하게 됐을까? 
  
2. 구한말. 관직을 사고파는 매관매직(賣官賣職), 부정부패(不正腐敗)는 극에 달했다. ‘썩음’은 향락(享樂)과 음란(淫亂)을 부른다. 지배층인 양반들은 빼앗았고, 피지배층 백성들은 빼앗겼다. 없는 자는 살기 위해 딸들을 팔았고, 가진 자는 축첩(蓄妾)으로 여러 여인을 거느렸다. 개화기 신문·잡지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적었다. “나라가 망하게 된 원인이 문란한 성도덕에 있었다” “음풍(淫風)이 크게 떨쳐 집마다 마을마다 음부(淫婦)가 아닌 여자가 드믈다” 금수강산은 죽음의 비만 내리는 악취 나는 쓰레기장이 되고 만다. 
  
  희망이 사라진 시대에 미신(迷信)이 판친다. 감기만 걸려도 굿을 했고 무당이 감기에 걸리면 친구 무당이 또 다시 굿을 했다. 이런 식으로 역병(疫病)이 동네를 휩쓸면 마을은 황량한 폐허로 변했다. 5000년 우상숭배는 구한 말 한민족을 용광로 속으로 밀어 넣었다. 
   
3. 형통(亨通)이 반드시 축복은 아니요, 고난(苦難)이 꼭 저주는 아니다. 주님은 우리의 겉사람을 죽이고 속사람을 살리기 위해 고난을 주신다. 사도 바울이 어느 날 살 소망까지 끊어져 버렸다. 왜 일까? 왜 이런 고통과 환란을 겪어야 했을까? 그는 말한다. “우리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후 1:9)”
  
  한민족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치욕의 채찍을 맞으며 부르짖을 때, 주님은 자신의 종들을 통해 ‘오직 예수’ 믿음의 씨앗을 심었다. 일제시대 ‘평양대부흥운동’ 조력자 중 하나인 선교사 메티 노블은 자신의 책 ‘조선회상’에서 나라가 망하던 ‘절망적’ 모습을 놀라운 ‘희망적’ 언어로 적었다. 
  
   “1907년 1월2일 성령의 나타나심 : 성령이 강한 권능으로 평양 교회들과 여러 다른 지역에 임하였다. 그 결과 웨일즈 지방의 大부흥에 관해 읽은 내용과 흡사한 위대하고 영광스런 흥분상태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죄에 대해 통회하고....우리 선교사들은 이 민족과 우리 자신이 성령 충만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했다”
  
  메티 노블은 무당, 기생, 과부 등 당시 버려진 자들에게 생명을 전했다. 에스겔의 마른 뼈 같은 조선백성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복음을 듣고 생기를 받는다. 피눈물은 신바람이 돼 민족의 영혼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한일합방이 있던 1910년, 조선교회는 ‘백만인 구령운동’을 시작했다. 그 해 2월23일 메티노블은 “숱한 경이로운 일들이 그칠 새 없이 일어나고 있다. 올해 최고의 사건은 백만인 구령운동이다”이라며 무당 출신 한 여성의 간증을 이렇게 적었다. “한 부인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오고 있어요. 백만 인이 오고 있어요. 너무 행복해요. 이 생에서 제 가장 큰 소망과 염원은 백만 성도를 목도하는 거예요”
   
  저주받던 삶을 살던 무당, 기생 출신 여성들은 돈과 물질을 달라는 세속적 바람을 읊은 게 아니다. 대신 “이 민족과 우리 자신이 성령 충만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했다” 땅을 진동케 할 부흥, 지옥을 텅 비게 할 부흥을 바랬다. 부흥 아니면 주님의 진노가 또 다시 임하게 될 것임을 알기에 베옷을 입고 재를 뿌리며 “원컨대 주님은 하늘을 가르고 강림해 달라(사 64:1)”고 외쳤다.
  
4. 화려한 연꽃은 더러운 진창에서 피어난다. 조선이 그랬다. 복음을 듣고 새롭게 태어난 이들은 자신의 영혼을 살리신 주님이 이 나라도 살려줄 것임을 믿었다. 그렇게 믿었던 예표(豫表)적 인물이 있었다. 30여 년 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이다. 
  
  그는 19세기 말 당시 조정(朝政)에 반대한 대가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한성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순간. 그는 선교사가 건네준 성경을 읽었다. 성령이 강하게 임했다. 감옥 안이 빛으로 가득 차는 체험을 하였고 말할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을 느꼈다. 이때 입술에서 터져 나온 첫 기도가 있었다. ‘save my soul, save my country’ 나의 영혼을 구하신 주님이 민족과 나라를 구해달라는 간구였다.
  
  상황과 환경과 처지가 어떠하건, 주님을 만나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임을 깨닫는다. 시편 23편 다윗의 고백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것. 그것이 곧 행복의 길이니 그 행복을 전하러 나섰다. 이승만은 감옥 안의 양반 출신 청년들을 전도했고 1902년 12월28일 역사 상 감옥 안의 첫 예배를 주님께 올린다. 감옥의 이름도 스스로 복당(福堂. The House of Blessing)으로 바꿔 부른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벋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찬송은 현실이 되었다.
  
  사형수 이승만은 6년 여 감옥 생활 끝에 극적으로 출소한다. 이후 명 연설가, 문장가로 서울과 지방을 누빈다. 
  
  이승만의 열정도 조선의 멸망은 막지 못했다. 1910년, 결국 나라가 망했다. 그러나 그는 더욱 놀라운 미래를 말한다. 요셉처럼 꿈꾸는 자가 된 이승만은 출소 직후 쓴 ‘독립정신’에서 한민족이 언젠가는 “일류국가(一流國家)”가 될 것이라 적었다. 이승만이 지금으로부터 101년 전인 1913년에 쓴 ‘한국교회핍박’은 더욱 구체적 형태로 다가올 ‘승리(勝利)’를 말한다. 인용해보자. 
   
  “청년 애국운동가들이 삼삼오오 경향(京鄕)에 나타나고 소리 높여 전도하는 말이 ‘우리는 나라도 없고 아무 것도 없지만 천국(天國)을 먼저 구하면 모든 것이 다 따라 생기리라’였다. 태극기 사용이 금지된 후로 매 경축일에는 적십자기를 교회당에 높이 달았으며 애국가 부르는 것이 금지된 후로는 찬송가를 대신 사용해 ‘믿는 사람들아 군병 같으니 앞에 가신 주를 따라가 가자!’는 곡조를 높은 소리로 기운차게 불렀다. 이에 순검, 병정과 비밀요원들이 틈틈이 찾아들어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감시하게 되었다” 
   
  교회는 불 속에서 크는 법이다. 일제 핍박 속에서 한국 교회는 애국가 대신 찬송가를 불렀고 ‘땅의 나라’가 없어진 상태니 ‘하늘의 나라’를 구했다. ‘오직 주님만 믿으면, 아니 주님만 믿어야 살 길이 생긴다’ 그렇게 믿었다. 절대적 신앙, 절대적 믿음, 절대적 예수의 세대가 지옥의 불에서 생겨난 셈이다. 
   
5. 20세기 초 이승만은 21세기 한국의 미래를 놀라울 정도로 정확히 예측했다. 이승만은 ‘한국교회핍박’에서 “하나님이 한국 백성을 이스라엘 백성 같이 특별히 택하여 동양에 처음 기독교 국가를 만들어 아시아에 기독교 문명을 발전시킬 책임을 맡긴 것”이라고 적었다. 
  
  이어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벌써 제주도와 북간도, 만주, 블라디보스토크 등지와 북경에 이르기까지 선교사를 파송하여 활발히 선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며 “하나님께서 특별히 한국인들을 택하사 아시아에 기독교 문명의 기초를 잡게 하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국이 “교회의 일에만 전력하면 한국인들이 일본과 중국을 모두 기독교로 인도할 것”이라고도 썼다. 일본이 칼로 일어나 동양을 집어삼킬 때 이승만은 기독교로 동양을 발전시킬 구상을 한 것이다. 또 “이대로 얼마동안만 계속하면 한국 백성의 장래 문명, 자유, 복락을 손꼽고 기다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승만과 같은 선각자들은 어둠 속에서 빛을 보며, 무덤 속에서 부활을 꿈꿨다. 지옥의 비가 그친 뒤 새롭게 태어날 민족의 미래는, 중국은 물론 자신을 침략한 일본마저 기독교로 인도할 것이라 말했다. 아시아 전역에 기독교 문명을 전하는 ‘제사장 나라’의 사명을 적은 셈이다.
  
6. 이승만 혼자만이 아니었다. 광복 직후 정동제일교회에 모인 김구와 김규식 선생도 각각 “경찰서 10개를 만드는 것 보다 교회 하나를 세워야 한다” “성경 위에 나라를 만들어야 침략 받지 않는 강대국이 된다”고 말했던 것이 이를 반증한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민족이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밖에 없음을 체험한 탓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건너며 야훼만 믿게 되었던 것처럼, 동방의 이스라엘로 불리던 한민족 지도층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어야 한다는 이들이 나왔다. 피와 땀과 눈물은 가슴 저민 고통이었지만 그 가운데 숨겨진 주님의 사랑은 신비로웠다. 
  
7. 이승만처럼 ‘제사장 나라’의 꿈을 꾸던 이들의 믿음은 1948년 건국으로 열매를 맺었다. 35년 쌓인 기도는 같은 해 5월31일 기도를 하면서 나라를 여는 힘이 되었다. 이 기도는 ‘하나님께 바치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문’으로 국회속기록 맨 앞에 실리게 된다. 당시 국회의원 중 기독교인이 10%도 안 되는 척박한 상황이었지만, 198명의 초대의원 모두 순전한 핍박의 신앙에 경의를 표하며 “아멘”으로 화답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35년 고난 속에서 잉태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민족이 탄생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세운 ‘잘 못 태어난 나라’가 아니다. 땅의 나라 없던 시절 하늘의 나라를 구했던 수많은 이들의 눈물 어린 기도의 결과다.
   
  새것이 된 백성과 주님의 언약(言約)관계도 시작됐다. 하나님께 바치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문’에 실린 “민생복락(民生福樂)” “남북통일(南北統一)” “세계평화(世界平和)”를 달라는 간구는 35년 죽음을 오가며 외쳤던 기도의 제목이었다. 주님이 민생의 복락을 주시면, 통일된 한국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평화를 이루어 내겠다는 담대한 ‘제사장 나라’의 선언이었다. 
  
8. 주님은 이 언약을 현실로 만들어 주셨다. 우선 민생복락을 주시어 세계에서 성장스피드 최고인 나라를 만들게 하셨다. 우리 힘이 아닌 주님의 힘이다. 일제(日帝) 핍박 속에서 “살려 달라” 부르짖던 선조들의 기도와 6·25, 4·19, 5·16, 유신과 5·18, 6·29 등으로 이어진 격랑 속에서도 “민족복음화”를 외치며 산기도와 철야기도, 여의도 광장을 메웠던 기도의 힘이다. 
  
  풍요(豊饒)는 그 어머니 경건(敬虔)을 잡아먹는다 했던가? 정작 ‘민생의 복락’을 선물 받은 뒤 우리는 영안(靈眼)이 닫혀져 버렸다. 
  
  남북통일의 사명도, 세계평화의 비전도 희미해졌다. 80년대 이후 현세적 욕망과 이기(利己)의 기도가 판치며 제단의 불도 쇠잔해졌다. ‘민생의 복락’은 선교한국의 조건부 축복일 뿐인데, 꿈을 잊어버리니 백성은 부패와 음란에 빠져 갔다. 썩어간 사회에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끔찍한 재앙이 터졌다. 모두 우리 탓이다. 꿈을 잊은 우리 교회 탓이다. 
  
9. 세상이 어둡다. 조국에 혼란이 덮친다. 교회는 피 묻지 않은 검을 든 채 잠에 빠져 버렸다. 
  
  영적 지각변동을 준비할 때이다. 우선 지난 60년 성장의 그림자, 부패와 음란에 대해 철저히 회개하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9)” 우리가 이 땅의 부패와 음란을 회개할 때 미쁘신 주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실 것이다. 
  
10. 회개만큼 중요한 것은 정체성(正體性)의 회복이다. 우리가 누구인가? 주님이 왜 이 나라를 만들고, 자라게 해 주셨는지 깨닫는 것이다. 
  
  주님이 세상의 끝에서 민족을 살리신 이유는 사명 탓이다. 공포의 심연에 빠져 헤매던 백성을 구하신 이유는 비전 탓이다. 그것은 이승만의 100년 전 기도처럼 일본, 중국을 너머 온 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통일한국(統一韓國), 선교한국(宣敎韓國)의 꿈이다. 
  
  내가 이 글에서 전하고 싶은 것은 위기가 아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사명과 비전의 성취다. 한국의 현재는 어두워 보여도 그리고 시련이 있어 보여도 사명과 비전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낙심치 말고 낙망도 말자.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 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로운 것(고후4:16)”이다. 죄에서 돌이킨 우리는 낙심과 낙망이 아니요 사명과 비전을 깨닫는 길로 가자. ‘남북통일’과 ‘세계평화’, 통일한국(統一韓國), 선교한국(宣敎韓國)의 꿈을 향해 전진하자. 
  
11. 사명과 비전을 향해 기도하자. 지난 100년 ‘오직 예수’의 신앙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망국(亡國)과 가난(家難)의 시련을 이겨낼 수 있었듯, 지금도 기도하는 사람들이 나온다면 분단과 불안과 갈등의 시련을 이겨낼 것이다. 자기를 의뢰치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게 될 때, 기도의 영성을 회복할 때, 바로 그때 지난 60년 이 나라에 임했던 기적은 통일한국에 몇 곱절 강력히 임하게 될 것이다. 
  
  평양, 남포, 원산, 의주, 갑산, 영변, 장진 모든 산골짜기 자유(自由). 自由. 自由가 퍼지게 날 까지 부르짖고 기도하자. 自由가 모든 계곡을 메우는 날, 절망의 산(山)은 깎여 희망의 돌이 만들어 질 것이다. 김일성 가문의 재산으로 태어나 버림받던 백성들은 공포와 궁핍과 저주에서 해방케 될 것이다. 기회, 희망, 꿈이 없다 투덜대던 청년들도 소망을 꿈꾸며 초원과 대륙을 달려갈 것이다. 남북의 백성, 영남과 호남, 서로 다른 생각으로 산산이 갈라진 7천만은 함께 일하고, 함께 놀고, 함께 싸우며 영혼의 자유를 땅 끝까지 전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세대가 나오는 그 날을 꿈꾼다. 사명을 위해 생명을 건 세대, 거룩·성결·사랑·용기의 성령으로 가득 찬 그 세대가 나올 때 북한도 살고 남한도 살아날 것이다. 세상은 어두워 보여도 주님이 이 땅에 남기신 남은 자들을 곳곳에서 만난다. 때가 차면 이들이 일어나 나팔을 불 것이고 교회는 깨어나 미스바로 모여들 것이다. 그 때가 바로 이때라! 잠에서 깨어나 나팔을 불 때다.






너 늙어봤냐? 난 젊어봤단다 
​ 
삼십년을 일하다가 직장에서 
튕겨 나와 길거리로 내몰렸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백수라고 부르지 

월요일엔 등산 가고 화요일에 기원 가고 
수요일엔 당구장에서 
주말엔 결혼식장 밤에는 초상집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세상나이 구십살에 돋보기도 안쓰고 
보청기도 안 낀다. 
틀니도 하나 없이 생고기를 씹는다. 
누가 내게 지팡이를 손에 쥐게 해서 
늙은이 노릇하게 하는가 
세상은 삼십년간 나를 속였다.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마누라가 말리고 자식들이 말려도 
나는 할 거야 
컴퓨터를 배우고 인터넷을 할 거야 
서양말도 배우고 중국말도 배우고 
아랍말도 배워서 
이 넓은 세상 구경 떠나 볼 거야 

너 늙어 봤냐 난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비 되고 
할배 되는 아름다운 시절도 
너무나 너무나 소중했던 시간들 
먼저 가신 아버님과 스승님의 말씀이 
새롭게 들린다. 
인생이 끝나는 것은 포기할 때 끝장이다.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전 세계 각 분야의 명사들의 명단을 선정해 소개하는

영국의 온라인 인명사전 사이트 Biography online에 게재된

역대 가장 위대한 여자선수 리스트 45인에 김연아 선수도 포함되었네요.

저처럼 피겨 스케이팅을 제외하고는 절대적인 스포츠 문외한도

상식을 쌓기 위해 이름을 익혀둘 정도였던 레전드 선수들도 많이 눈에 띄는데요.

              

( biographyonline.net은 영국 옥스포드 대학교 출신의 정치철학·교육 전문가인

Tejvan Pettinger 씨가 2004년에 설립한 온라인 인명사전 사이트입니다.)

      

   

현존하는 여자선수들뿐만 아니라 이미 고인이 된 선수들까지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세계 여자 스포츠의 최고의 별들이 망라된 리스트입니다.

이 리스트에 포함된 45명의 세계 여자 스포츠 스타들 중 김연아 선수는

두 번째로 최연소이고요, 유일한 아시아 국가 출신 선수이네요.

(정정: 아시아 국가 선수로는 인도의 사니아 미르자와 함께 2명이 포함되었습니다.

정정해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또한, 피겨 스케이터들 중에서는 소냐 헤니와 페기 플레밍, 김연아 3명

리스트에 포함되었습니다.

        

이 리스트에서 김연아 선수는 마리아 샤라포바(28번째)에 이어

29번째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Famous female athletes

           

A list of the greatest female athletes.

가장 위대한 여자선수 리스트 (45인)

           

출처: biographyonline.net Click

              

로티 도드 Lottie Dod (1871 – 1960) (영국, 테니스, 양궁, 골프)

5회 윔블던 단식 챔피언, 1908년 올림픽 양궁 은메달, 브리티시 여자 아마추어 골프 타이틀 획득,

영국 필드하키 국가대표.

           

베이브 디드릭슨-자하리아스 Babe Didrikson Zaharias (1911-1956) (미국, 야구, 육상, 골프)

           

파니 블랭커스-코엔 Fanny Blankers-Koen (1918-2004) (네덜란드, 육상)

1948년 올림픽 육상 100m, 200m, 80m 허들, 400m 계주 4관왕

            

라리사 라티니나 Larisa Latynina (1934 – ) (구소련, 체조)

1956년부터 1964년까지 올림픽 체조 개인 종목 금메달 14개 & 단체전 메달 4개로 최다기록.

       

빌리 진 킹 Billie Jean King (1943 – ) (미국, 테니스)

총 38개의 그랜드슬램 타이틀 보유 - 이중 12회는 단식 우승 타이틀.

1973년에 Bobby Riggs와의 성대결에서 승리.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Martina Navratilova (1956 – ) (체코/미국, 테니스)

18개의 그랜드슬램 타이틀과 31개의 메이저대회 복식 타이틀 보유. 총 177회 우승.

         

소냐 헤니 Sonja Henie (1912 – 1969) (노르웨이, 피겨 스케이팅)

3회 올림픽 챔피언 ('28, '32, '36년), 10회 월드 챔피언,

당대 최고 개런티의 헐리웃 여배우.

          

베릴 버튼 Beryl Burton (1937 – 1996) (영국, 사이클)

5회 트랙 레이스 월드 챔피언 & 2회 도로 레이스 월드 챔피언,

무려 25년 연속으로 국내 무대를 평정한 영국 여자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윌마 루돌프 Wilma Rudolph (1940 – 1994) (미국, 육상)

1960년 올림픽 100m, 200m, 400m 계주 3관왕.

미국에서 여자 육상을 메이저 위상으로 격상시키는 데 기여.

      

마가렛 스미스 코트 Margaret Smith Court (1942 – ) (호주, 테니스)

24개의 그랜드슬램 타이틀 보유, 1970년에 4개의 그랜드슬램 대회 타이틀을 모두 석권.

        

그레테 바이츠 Grete Waitz (1953 – 2011) (노르웨이, 마라톤)

마라톤 코스를 2시간 30분 이내에 주파한 최초의 여성.

뉴욕 마라톤 9회 우승, 크로스컨츄리 세계선수권대회 5회 우승.

           

크리스 에버트 Chris Evert (1954 – ) (미국, 테니스)

18개의 그랜드슬램 단식 타이틀, 3회 복식 타이틀.

단식 경기 승률 89.9%로 당시 최고 기록.

            

나디아 코마네치 Nadia Comaneci (1961 – ) (루마니아, 체조)

1976년 올림픽 3관왕. 체조에서 6.0점 만점을 최초로 받은 선수.

           

재키 조이너-커시 Jackie Joyner-Kersee (1962 – ) (미국, 육상)

가장 성공적인 여자 육상선수 중 1명. 올림픽 7종경기 & 멀리뛰기 금메달

         

슈테피 그라프 Steffi Graf (1969 – ) (독일, 테니스)

22개의 그랜드슬램 단식 타이틀 - Open era 시대 최고 기록.

377주 연속 월드랭킹 1위 기록.

        

아니카 소렌스탐 Annika Sorenstam (1970 – ) (스웨덴, 골프)

가장 성공한 여자골퍼. 72차례 공식 LPGA 타이틀 획득.

          

미아 햄 Mia Hamm (1972 – ) (미국, 축구)

미국 여자축구 대표팀 275 경기 출장, 월드컵 2회 & 올림픽 2회 우승.

국제 경기 153골 기록.

         

클라라 휴즈 Clara Hughes (1972 – ) (캐나다, 사이클, 스피드스케이팅)

1996년 하계올림픽에서 사이클로 2개의 올림픽 메달 획득 후

2006년 동계올림픽에서 스피드스케이팅 5,000m 올림픽 금메달 획득.

          

테글라 롤로프 Tegla Laroupe (1973 – ) (케냐, 마라톤)

케냐 여자 마라톤의 영웅. 마라톤 세계기록 기록(지금은 깨짐),

하프-마라톤 5회 월드 우승. 현재 UN 스포츠 대사로 활동.

       

폴라 래드클리프 Paula Radcliffe (1973 – ) (영국, 마라톤)

현재 여자 마라톤 세계기록 보유자. 2005년 마라톤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모니카 셀레스 Monica Seles (1973 – ) (유고슬라비아/미국, 테니스)

1990년에 프랑스오픈 최연소 우승자에 등극 (당시 16세).

9개의 그랜드슬램 단식 타이틀 보유.

           

캐시 프리먼 Cathy Freeman (1973 – ) (호주, 육상 400m)

Commonwealth Games(영연방 올림픽)에서 우승한 최초의 어보리진 선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

           

타티아나 레베데바 Tatyana Lebedeva (1976 – ) (러시아, 멀리뛰기 세단뛰기)

멀리뛰기와 세단뛰기 양쪽 모두에서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도약의 여왕'이란 별명으로 불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과 3개의 올림픽 메달 보유.

             

비너스 윌리엄스 Venus Williams (1980 – ) (미국, 테니스)

전 월드랭킹 1위 테니스 플레이어.

현재까지 7차례 그랜드슬램 단식 타이틀 획득 & 13개의 복식 타이틀.

동생 세레나 윌리엄스와 함께 여자 테니스에서 애슬레티시즘의 신기원을 이룸.

          

호프 솔로 Hope Solo (1981 – ) (미국, 축구)

2000년부터 미국 여자축구 대표팀 골키퍼 1순위.

2008년과 2012년 올림픽 금메달, 2011년 월드컵 준우승.

            

세레나 윌리엄스 Serena Williams (1981 – ) (미국, 테니스)

현재까지 19개의 그랜드슬램 싱글 타이틀 획득 & 15개의 복식 타이틀.

4개의 올림픽 금메달 보유.

        

케이티 테일러 Katie Taylor (1986 – ) (아일랜드, 복싱)

2012년 런던 올림픽 금메달. 아일랜드에서 스포츠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여자복싱의 명성을 크게 견인.

           

마리아 샤라포바 Maria Sharapova (1987 – ) (러시아, 테니스)

4개의 메이저 그랜드슬램 대회 모두 석권, 2012년 올림픽 은메달.

스포츠 이외의 분야에서 자신만의 비지니스와 모델 활동으로도 인기를 끔.

       

           

김연아 Kim Yuna (1990 - ) (대한민국, 피겨 스케이팅)

2010년 올림픽 금메달. 종합점수 세계 최고기록 보유 

           

          

- 이 리스트에 선정된 여자선수들 중 두 번째로 나이가 가장 어린 선수

- 유일한 2명의 아시아 국가 선수들 중 1명

            

셸리 앤 프레이저 프라이스 Shelley Ann Fraser Pryce (1986 – ) (자메이카, 육상)

2008년과 2012년 올림픽 100m 2연패. 5회 월드 챔피언.

           

캐스터 세메냐 Casta Semenya (최연소 1991 – ) (남아프리카 공화국, 육상 800m)

2009년 세계선수권 우승 & 2012년 올림픽 은메달.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 후에 성별 검사를 받음.

        

참고:

캐스터 세메냐는 외관상(인상, 체형, 낮은 목소리 등) 18세의 여자로 보기 힘든 측면이 있어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에서 결승이 벌어지기 전 성별검사를 의뢰하였다. 이런 처사에 남아공 의회 스포츠, 레크레이션 위원회에서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에 IAAF를 제소하겠다고 밝혔다. 또 남아공 육상연맹은 사전에 IAAF로부터 성 판별 검사 요구를 받은 적이 없다고 강하게 반박하였으며, 남아공의 칼레마 모틀란테 부통령이 직접 나서서 "성 판별 검사는 비인간적인 처사"라며 유감을 표했다.

세메냐 자신은 이런 논란이 부담되어 20일 열린 시상식에 불참하려 했으나, 주변의 설득에 마음을 다시 잡고 시상식에 올랐다.

세메냐는 성 판별 검사 결과 남성과 여성의 특성을 모두 지닌 간성으로 밝혀졌으며, 안드로젠 불감 증후군으로 추정된다.

(출처: 위키백과 Click)

            

성별 논란에 시달리며 어려움을 겪었으나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남아공 기수로 선정되는 등

여자선수로서 올림픽에 출전했으며, 지난해 동료 육상선수인 바이올렛 라세보야와 결혼 발표.

             

캐서린 은데레바 Catherine Ndereba (1972 – ) (케냐, 마라톤)

2회 월드 챔피언 & 보스턴 마라톤 4회 우승,

2001년에 2시간 18분 47초로 여자 마라톤 최단기록 작성.

           

메리 랜드 Mary Rand (1940 – ) (영국, 육상)

1964년 올림픽 멀리뛰기 금메달 & 5종 경기 은메달.

        

페기 플레밍 Peggy Fleming (1948 – ) (미국, 피겨 스케이팅)

1968년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챔피언 & 3회 월드 챔피언.

은퇴 후 해설자와 유방암 예방과 연구를 위한 계몽 활동에 앞섬.

            

조안 베누아 Joan Benoit (1957 – ) (미국, 마라톤)

1984년 올림픽 여자 마라톤 우승.

1983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2시간 22분 43분을 기록, 1985년까지 세계기록 보유.

             

넬리 킴  Nelli Kim (1957 – ) (구소련, 체조)

최고의 all around의 체조선수 중 1명으로, 1976년과 1980년 올림픽에서 5개의 올림픽 금메달 획득.

5회 월드 챔피언이기도 하다.

          

참고:

넬리 블라디미로브나 킴(한국식 이름 김경숙)은 구소련의 한인 강제이주 피해를 당한 고려인의 후손.

굳이 따지면, 김연아 선수가 이 리스트에 오른 유일한 아시아 선수가 아니라

넬리 킴도 아시아계 선수이기는 하지만 구소련 소속 선수였으며 현재는 유럽 벨라루스 국적이므로,

국가로서는 김연아 선수가 유일한 아시아 국가 출신 선수입니다.

      

넬리 킴 최근 사진

(현재는 국제체조연맹 기계체조 기술위원장?)

            

쟈니 롱고 Jeannie Longo (1958 – ) (프랑스, 사이클)

9회 도로 레이스 월드 챔피언 (1985~2001년), 1996년 올림픽 금메달.

역대 최고의 여자 사이클 선수 중 1명이며, 오랜 커리어 지속으로 유명.

        

플로렌스 그리피스 조이너 Florence Griffith Joyner 별명 'Flo Jo (플로조)' (1959-1998) (미국, 육상)

1988년 올림픽 3관왕 (100m, 200m & 400m 계주).

1988년 기록한 100m(10.49초) 세계기록이 오늘날까지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음.

       

트레이시 컬킨스 Tracy Caulkins (1963 – ) (미국, 수영)

1984년 올림픽에서 5개의 세계신기록과 3개의 올림픽 금메달 획득.

1978년 세계선수권대회 5관왕.

           

보니 블레어 Bonny Blair (1964 – ) (미국, 스피드스케이팅)

3번의 서로 다른 올림픽에서 모두 5개의 올림픽 금메달 획득.

1994년에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선수"에 뽑힘.

                

빅토리아 펜들턴 Victoria Pendleton (1980 – ) (영국, 사이클)

사이클 트랙 레이스 올림픽 2연패 (2008 & 2012년), 9회 월드 챔피언.

스프린트 discipline 전문.

           

앨리슨 펠릭스 Alison Felix (1985 – ) (미국, 육상)

현대 여자 육상에서 가장 유력한 지배적인 스프린터들 중 1명.

2012년 올림픽 200m 금메달. 400m 계주와 1,600m 계주에서도 금메달.

          

제시카 에니스 Jessica Ennis (1986 – ) (영국, 7종경기)

홈에서 열린 2012 런던 올림픽에서 7종경기 금메달 획득.

런던 올림픽 홍보 모델로 큰 인기를 구가.

         

사니아 미르자 Sania Mirza (1986 – ) (인도, 테니스)

인도 출신 여자 테니스 선수들 중 최고 랭킹 (단식 랭킹 27위, 복식 랭킹 5위까지 오름).

아시안 게임 혼합복식에서 2회 금메달 획득 / 2014년 US 오픈 혼합복식 우승.

인도에서 높은 인기를 누림.

        

마리아네 보스 Marianne Vos (1987 – ) (네덜란드, 사이클)

가장 성공한 여자 사이클 선수들 중 1명.

시클로크로스 레이스, 도로 레이스에서 다수의 월드 타이틀 획득, 트랙 레이스에서 올림픽 금메달.

투르 드 프랑스에서 대회 첫 여성경기로 치러진 2014년 'La course by Le Tour de France'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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