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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네바다 51 구역1)의 한 도로에서 접시 모양의 비행체(비행접시, UFO)를 수송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기사원문>> UFO transport near Area 51, Nevada on 21st March 2015
▼ UFO Being Towed in Nevada near Area 51 - 3/21/15
https://youtu.be/bjjU-Y1sag8
많은 사람들이 외계인이 타고 온 UFO로 알고 있는 접시 모양의 비행체(비행접시)는 독일이 2차 대전을 치룰 당시 마지막까지 개발에 박차를 가했던 제 3 제국의 비밀 무기로 알려져 있다. 2차 대전의 승전국이었던 미국은 나치가 개발하고 있던 바로 이 비행체(비행접시)의 설계도를 입수하고 개발에 참여했던 연구자들을 몰래 미국으로 데려와 계속적인 실험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 091122 V7 프로젝트 : 하우니브
대중들에게 UFO로 알려진 이 비행접시를 연구하고 실험한 곳이 바로 네바다 주에 위치한 51구역으로 불리는 공군 기지이다. 이곳에선 종종 접시모양의 비행체가 목격되거나 촬영되어 외계인 연구가들 사이에서 유명한 장소가 되었는데, 이제 한 시민이 바로 이곳에서 삼엄한 호의를 받으며 트럭으로 운반되고 있는 ‘비행접시’를 촬영하였다.
오랫동안 외계인 어젠더를 통해 외계인과 UFO의 존재를 믿도록 설득했던 세계정부주의자들이 특별한 목적을 위해 제작한 이 비행접시를 비밀스러운 장소로 옮기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UFO에 대한 믿음에 확신을 심어주기 위해 UFO 추적자들이 촬영을 할 수 있도록 일부러 그 모습을 공개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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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계인 침공”으로 NWO가 실현되다.
2. UFO에 대한 믿음을 전파하고 있는 세계정부주의자들의 숨은 의도
3. New World Order를 위한 일루미나티의 외계인 어젠더
1) 51구역(51區域) 또는 에어리어 51(영어: Area 51)은 미국 네바다 주에 위치한 군사 작전 지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정식명칭은 그룸 레이크(Groom Lake) 공군기지로, 위도 51도에 위치하고 있어 통상 '51구역'이라 불리고 있다.
1955년 정찰기인 U-2기를 최초로 네바다 주에 보내면서 설립된 곳으로, 이후 신무기의 개발 및 시험을 위한 철저한 비밀 기지로 건설되었다. 그동안 미 정부는 해당 기지에 대해 노코멘트 하였으나, 2013년 6월 미국중앙정보국(CIA)의 355페이지 짜리 기밀문서가 공개되면서 해당 지역의 실체를 인정하였다.
이 비밀기지가 특히 화제를 모은 이유는 이 곳에서 UFO를 많이 봤다는 제보가 많다 보니, 외계인 연구, 비밀 신무기 연구 등을 위해 설치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왔기 때문이다. 추락한 UFO의 잔해가 이 곳으로 옮겨져 연구되고 있다는 설과, 로즈웰 사건과 관계되고 있다는 설과, '그레이 외계인' 이라고 불리는 외계인들이 있다는 설 등 갖가지 추측이 난무하고, UFO 마니아들로부터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미 정부가 이를 인정하기 전까지는 해당 구역에 대한 용도에 대한 추측이 난무했는데, 가장 유력했던 건 미군의 비밀 항공기, 특히 스텔스 항공기의 시험 비행 임무를 실시한다는 추정이었다.
실체가 공개된 지금 현재도 51구역의 부지 내에는 완전히 출입 금지된 것은 물론이고, 접근조차 금지되고 있고, 이 경고를 무시하고 진입했을 경우에는 경고 없이 발포하는 경우도 있다.(“51구역”,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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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비밀경호국에서 디자인한 ‘비스트/The Beast’ 라고도 불리는
미국 대통령의 전용차
‘캐딜락 원 (Cadillac One)’은 150 만달러이며
총알이나 폭발물로부터 보호가 되는
움직이는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합니다.
미 대통령은 12대의 전용차를 교대로 타며
차가 쉴 때는
비밀경호국 지하 차고에 주차되며 24시간 보안이됩니다.
대통령이 어디를 가던지
두대의 차가 움직이며 1갤런당 3.7마일을 갑니다.
자동차 행렬을 할 때는 45대의 무장한 차들이 호위를 하며
대통령이 타고 있는 전용차와 똑같이 생긴 차가 합류를 하며
지역 경찰과 이동통신센터와 무장한 더 많은 차량들과
앰뷸런스가 동시에 움직입니다.
이 차는 디트로이트의 제너럴 모터스사에서 만들며
가솔린 V8엔진을 장착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전용차의 최고 스피드와 무게는 기밀사항이며
창문의 방탄유리 기술도 기밀사항이라고 합니다.
움직이는 요새
강철과 알루미늄과 티타늄
그리고 세라믹으로 만들어진 움직이는 요새.
차 밑에는 강판이 깔려있어 폭탄과 수류탄을 막아줍니다.
펑크나지 않는 차
차는 완전 밀폐되어 있어서 생화학 공격도 막아주며
타이어는 케블러(Kevlar, 고무의 강도를 높이는데 쓰이는 인조물질)
강화 타이어라
펑크가 나지 않게 해 줍니다.
창문을 열 수 없는 차
오직 운전석의 창문만 열 수 있는데 단 3인치만 열립니다.
만약 타이어 펑크가 나면
강철 림이 차를 계속해서 달릴 수 있게 해 줍니다.
폭발되지 않는 연료탱크
거품이 새지 않도록 봉인된 연료탱크는 폭발될 수 없으며
비록 직접 타격이 가해진다해도 폭발되지 않습니다.
트렁크 안에는 대통령 혈액과 같은 타입의 혈액과
산소 공급기와 소방장비가 구비되어 있습니다.
방벽 역활을 하는 캐딜락 원
대통령의 차는 대통령이 가는 곳에 함께 가며 항상 전략적으로
군중들과 대통령 사이에 장벽을 이루어 줍니다.
두꺼운 5 인치 (12.7 cm) 방탄 유리 기술은 기밀사항입니다.
차의 무게도 기밀사항입니다.
최류가스 캐넌이 장작
대통령 전용차가 해외로 나갈 때는 한쪽에는 성조기,
다른 한쪽에는 방문국의 국기가 장식됩니다.
최류가스캐넌과 나이트비젼은 차 앞쪽에 숨겨져 있습니다.
캐딜락 원의 사이즈
대통령 전용차의 길이는 18 피트 (5.4864 m)
높이는 5.10 피트 (1.5545 m)입니다.
위성폰 설치
빌트인 위성폰은 부통령과 펜타곤으로 직접 연결이 됩니다.
약 20cm의 문두께
무장된 문은 8인치 (약 20.32 cm)나 되며
무게는 757기의 문 만큼 무겁습니다.
자료출처: businessins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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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연합의 경제적인 이익과 빈곤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무슬림들의 이해가 맞물려 유럽 남쪽이 몸살을 앓고 있다. 美 후버연구소 역사학자인 빅터 데이비스 핸슨(사진)은 최근 "지중해 문화가 퇴보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워싱턴 타임즈 기고글을 통해 "아랍의 봄이 북아프리카 거의 전 지역을 혼란에 빠뜨렸다"고 지적하고, "지중해 주변의 이슬람 경제권은 산산조각이 난 상태"라며 "지중해는 종교와 정치 및 경제의 각종 긴장에 시달리는 침체된 전근대적 사회로 변하고 있다"고 했다. 다음은 그의 글 전문.
지중해 문화가 퇴보하는 이유
지브롤터의 고지대에서 바라보면 남쪽으로 14㎞가 약간 넘는 거리에 있는 아프리카 대륙이 보인다. 동쪽에는 지중해의 망망대해가 아시아까지 2400㎞나 펼쳐져 있다. 로마인들이 ‘우리의 바다’라고 불렀던 지중해 덕분에 로마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및 유럽을 통일하여 500년 동안 세계적 문명이 번성한 단일 제국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다.
지중해는 그리스, 로마, 비잔틴, 오토만, 피렌체, 베니스 같은 역사상 위대한 문명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지브롤터의 좁은 해협에 있는 고대의 ‘헤라클레스의 기둥들’이 역사적으로 항상 발전과 번영의 표지판 노릇을 한 것은 아니다. 오토만 제국의 등장으로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고전적인 도시국가들이 역사에서 사라짐에 따라 지중해는 세계적 변화의 촉매가 아니라 박물관과 더 비슷해졌다. 그에 비해 개혁과 계몽으로 활력을 충전한 북부유럽 문화는, 이슬람과의 소모적인 지구전이 벌어진 지중해의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 안전했다.
17세기 초가 되자 북유럽인들은 아프리카를 도는 뱃길을 이용하여 더욱 쉽고 안전하게 중국 및 인도의 부유한 시장에 도달했다. 신세계의 발견으로 지중해는 부와 문화의 동력을 또다시 외부세계에 빼앗겼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시적으로 지중해에 활력이 되살아난 듯이 보였다. 북아프리카에서 거대한 분량의 원유와 천연가스가 발견되었다. 수에즈운하는 유럽에서, 자원이 풍부하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페르시아만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유럽 통합과 아프리카 및 중동의 계속된 식민지 독립으로, 자원이 풍부하고 민주적이며 상업적으로 상호 연결된 신생 국제사회가 지중해에서 꽃을 피울 것으로 기대되었다
현재 상황은 그렇지 않다. 아랍의 봄은 북아프리카 거의 전 지역을 혼란에 빠뜨렸다. 시리아의 유혈내전이 악화되어 레바논의 민병대와 이란의 용병부대 및 터키와 이슬람 수니파 소속 토후국들 및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물론이고 중국, 유럽, 러시아, 미국 같은 무기 공급국들까지 휘말려들어 스페인 내전 같은 양상으로 변화할 조짐을 보인다.
지중해 주변의 이슬람 경제권은 산산조각이 난 상태다. 유럽연합의 남쪽 부분의 경제도 마찬가지 파탄이 나서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이 보조금과 대출을 놓고 다투는 가운데 물주인 북유럽은 갈수록 인내심이 줄어든다. 북아메리카와 중국 및 아프리카에서 새로운 천연가스와 원유 매장지가 발견됨에 따라 지중해의 에너지 공급자들과 페르시아만을 연결하는 수에즈운하의 중요성이 오래지 않아 크게 위축될 전망이다.
노령화와 인구 감소에 직면한 유럽은 중동과 북아프리카로부터 젊은 무슬림 이민자들을 계속 받아들인다. 빈곤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젊은 무슬림 이민들은 불을 찾는 불나방처럼 유럽의 부유한 사회에 끌려들어 가지만 유럽을 부유하게 만들기보다는 소모품처럼 이용당할 뿐이다.
최근 스웨덴의 폭동과 영국 병사의 잔인한 참수행위 및 프랑스 도시 교외의 주기적인 폭동은 모두 지중해가 이제는 휴가의 관문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지중해는 종교와 정치 및 경제의 각종 긴장에 시달리는 침체된 전근대적 사회로 변하고 있다.
국제적인 폭력사태의 진원지라는 점 외에 지중해는 새로운 부와 기술 및 소비상품을 만들어내는 바깥세상에 중요하지 않다. 외부세계는 지중해의 과학이나 기술혁신의 덕을 별로 보지 않고 발전 중이다.
지중해가 부흥하기에 앞서서 입헌정부들이 무슬림세계 전역에 수립될 필요가 있다. 화석처럼 경직된 유럽연합의 관료체제는 근본적 개혁을 하든가 없어져야 한다. 경제적 신념과 번영 및 안보가 보장된 풍토가 만들어져야 새로운 세대의 미켈란젤로와 다빈치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히도 지중해 문화는 지금 21세기로 발전하기보다는 침체된 18세기의 과거로 퇴행하고 있다.
빅터 데이비스 핸슨 (美 후버연구소 역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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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나 본인 하기 나름입니다.
카투사 신분이긴 하지만, 훈련 성적 좋고 모범복무를 했다면,
사령관 추천으로 미공군 조종사 입대 기회를 주지 않습니까?
미국은 기회의 나라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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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금) KBS 음악홀에서는
제3회 국방부장관상 군가합창대회가 열렸습니다.
이날 오후 7시30부터 실시된 합창대회는 민간부분과 장병부분에서
각각 6개팀씩 예선을 통과한 총 12팀이 출전해 치열한 경합을 펼쳤습니다.
특히, 지난해 대상과 최우수상 수상팀이 예선에서 탈락하는 등
대회수준이 한층 높아짐으로서 더욱 치열했던 이번 대회에는
우리 해병대 제2사단팀이 장병부분 예선을 통과하여
당당하게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군가합창대회] '나가자 해병대' - 해병대 제2사단 ★ 최우수상 수상
[군가합창대회] '귀신잡는 해병대' - 해병대 제2사단 ★ 최우수상 수상
이날 장병부분 2번째로 공연을 한
해병대 제2사단팀은 지정곡 '나가자해병대'와
자유곡 '귀신잡는 해병'을 절도있는 동작과 함께
강하면서도 아름다운 하모니로 표현함으로서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았습니다.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절도있는 동작과 행동 그리고 해병대 다운 율동을 하면서
해병대 군가를 신명나게 합창하고 있습니다.
필 승...!!!
민간부분과 장병부분 12팀의 경합이 모두 끝나고
연합합창이 이어진후 드디어 결과발표와 시상식~~~!
취재를 하며 전 참가티팀들의 공연을 지켜본 제 생각에는
대상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최우수상을 수상했습니다.
최우수상은 국방부장관상과 상금 500만원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해병대 제2사단의
이번 군가합창대회 취우수상 수상은 그 의미가 더 합니다.
그것은 합창을 전문으로 하지 않는 대대장병들이 모여
전문적인 합창단들 속에서 경합을 펼치며 최우수상을 수상했다는 건
정말이지 아주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해병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 아닐까요?
군가는 총성, 함성과 더불어
군의 기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소리로
군대의 사기를 북돋워 주는 군인들의 노래이며
특히 일치된 제식동작과 조화를 이루면서
구성원의 단결력을 높여 전승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무형전력의 한 요소입니다.
이번 군가합창대회는
장병들에게는 군가가창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군인다운 패기로 충만하는 계기가 되고
국민 여러분들은 나라사랑의 정신과
군가의 추억을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해병대 제2사단 정비대대장병들의 최우수상수상을 축하합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한 해병대 제2사단 정비대대 장병여러분~~~! 수고했습니다.
글/사진 임영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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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의 한국의 이모저모, 지금은 사진의 어린이들은 아마도 우리들의 부모님이 되셨을 것입니다. 미국에 사는 청소년 들이나 한국의 젊은 세대는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를 것입니다. 바로 6.25 한국 전쟁이후 잿더미가 된 나라에 하나씩 다 시 만들어가기 시작한 때의 모습으로 보입니다.
촬영은 미국인 젊은 부부가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때 한
국에서는 영락교회의 고 한경지 목사님과 미국의 밥 피어슨 목사님이 한국에서 부흥운동을 일으키며 엄청난 지원을 쏟
아 부었는데 그것이 바로 월드비전의 시작입니다.
좋은 교육자료가 될 듯하여 사진들을 올립니다. 보시고 함께
조국을 위한 기도를 항상 잊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 대구역을 알리는 푯말로
보입니다.
▲ 대구 달성군에 있는 예배당에서 미국인들이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한 아름씩 안겨주고 기뻐하는 모습으로 보입
니다. (대구 달성이 맞나요?)
▲ 아마도 조선 후기의 장독대의 모습을 그대로 이어온듯 합니다. 저 안에 된장 고추장 등이 있을 것입니다.
▲ 농사를 돕는 미국인 청년, 그 옆에 쉼을 갖는 농부의 모습이 보입니다.
▲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하는 사진입니다. 전쟁에 남편을 잃고 어린 아이를 업고 보따리 하나만 들고 고개를 숙
인 모습으로 어딘가 가는 모습처럼 생각이 되기도 하고, 그 뒤에는 아쉬운 모습으로 바라보는 눈길이 처량해 보입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아이들을 이렇게 키우셨습니다.
▲ 할아버지들이 곰방대를 물고 사진을 찍은 사람을 신기한듯 보는 모습
▲ 아마도 장이 서는 날의 장터 모습 같습니다. 소들을 팔려고 몰고 나왔습니다.
▲ 미국인은 반소매의 짧은 모습인데 아이들은 예쁜 한복을 입었군요,, 설날이면 추울 텐데,,, 가을 추석도 아닌
것 같고,, 초콜렛을 선물 받았는지 어린이가 즐거워 하는 모습입니다.
▲ 우리의 어머니들의 옛 모습 같습니다. 깔끔한 새 옷을 입었는데 명절날 같기도 합니다.
▲ 시골 장터의 모습같습니다. 거의 소를 파는 분들만 보입니다. 소 장 인가?
▲ 마늘 같기도 하고 파 같기도 한데, 수확을 거두며 즐거워하는 아낙네의 모습입니다.
▲ 포목 장사라 하나요? 이 분은 돈을 많이 벌었는지 돈 세는 모습이 즐거운 표정입니다. 여러분도 돈 많이 버세
요,,, 그리고 선교 하시고,, ^^
▲ 큰 가마솥에 뭔가 음식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먹을 것을 아이들에게 많이 만들어 나누어 줄 것 같습니다.
▲ 국회의원 연설을 하는지 사람들이 한곳에 시선을 모으고 있네요,,,부흥회 하나?
▲ 무슨 잔치날 인가 봅니다.
▲ 이게 웬 거지떼?.. 아닙니다. 저때는 먹을 것이 정말 부족했던 시절이라 합니다. 우리의 어른들이 저렇게 살기
도 하셨답니다.
▲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것 같습니다. 노랗게 기다란 것은 자장면 먹을때 나오는 단무지 같습니다. 흔히 말하는
닥꽝... ^^ 저 무우를 자르면 되는 것입니다.
▲ 아이들에게 죽을 나누어 준 것 같습니다. 아마 그것을 꿀꿀이 죽이라 불렀나요?
▲ 소를 사려는 사람이 입을 벌려 건강상태를 보고 있습니다. 소의 눈을 보고 입을 보면 건강한 소 인지 아는 가
봅니다.
▲ 에궁,,, 아기가 벌거벗고,, 요즘 저렇게 했다가는 당장에 경찰관 아저씨가 부르겠지요? 신호등이 없던 시절 저
렇게 수신호를 하면서 교통정리를 했었답니다. 당시 차라고 몇대 있었겠나? 미군들 자동차가 대부분 이었을 것
같은데,,,
▲ 자전거에 팔려가는 돼지,,,, 어느 잔치집으로 가는지,,
▲ 아마도 학교의 모습 같습니다.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 시장의 모습인데 큰 갖을 덮어 쓰고 걸어가는 아저씨씨를 비롯 옷차림이 참 다양합니다. 미국의 문화와 조선문
화가 섞인 근대사회의 모습입니다.
▲ 미국인 선교사로 보이는데,, 코 큰 미국인을 보는 눈길이 신기한듯 모두 처다 봅니다. 그 뒤에 보
이는 것은 탱크가 아니라 승용차 입니다. 요즘 처럼 날렵한 것이 아니지요,,,
▲ 1954라는 숫자가 써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의 사진은 1954년도,, 그러니까,, 전쟁이 막 끝난 후의 모습이네요,,
아이들이 죽 같은 것을 먹나 봅니다. 수저도 필요없고,,
▲ 지금 우리 꼬마들에게 저런거 머리에 얹고 가라면 큰일 나겠지요?
▲ 이것이 아이들의 놀이터 같습니다. 그네와 미끄럼틀이 있습니다. 지금은 찾아 볼수 없는 판자로 만들은 담장이
뒤에 있는데 별로 보기는 좋지 않아 보입니다.
▲ 귀하의 원조를 충심으로 감사합니다.... 베너를 들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참으로 가난한 시절의 모습입니다.
▲ 가운데에는 아이들이 있고 주위에는 어른들이 있는데 무슨 학교 입학식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뒤에
는 컨테이너로 만든 막사도 보이고,,, 저런 둥근 컨테이너 막사는 필자가 한국에서 군대생활 할때 지냈던 막사 이기도
한데 여름에는 덥습니다.
▲ 수확을 하는 농부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30장의 사진들을 보면서 나름대로 청소년들
이 알아 보기 쉽게 하려 노렸했는데 의미가 잘 전달이 되었으면 합니다. 잘 이해가 안가는 사진들은 50대 후반 이상의
어른들께 여쭈어 보시기 바랍니다. 할아버지 할머님께 여쭈어 보시면 더욱 생생한 말씀을 들으실 수 있을 것으로 생각
됩니다.
이 사진들은 옛날 우리 조국의 전쟁 직후의 모습들로서 지난 과거의 어려웠던 시절을 기억을 신선
한 충격으로 받아 들여 집니다.
감사합니다.
성적좋은 카투사, 美공군 조종사 입대기회 부여! (1) | 2015.0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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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마피아에게 압수한 총기들의 파괴 행사 ...
멕시코 불법 마약단체 마피아에게서 압수한 총기들을 파괴시키는 행사 - 2012년 2월 16일
황금으로 장식하고 값비싼 목재로 화려하게 조각한 칼리시니코프 자동소총들이 포함된 이 샘플들은 현지 멕시코의 불법 마약 단체인 마피아에게서 압수한 총기들이며 멕시코 보안군의 Ciudad Juarez에 의해 군대에 전시되었다. 이 불법 무기들의 전시하여 파괴시키는 행사에 멕시코의 대통령 펠리페 칼데론과 멕시코 대통령의 영부인이 직접 참관했다. 이 압수된 마피아의 불법무기들을 파괴시키는 작업에는 멕시코 육군의 프랑스제 AMX-VCI DNC 장갑차가 이용되었다. 이날 행사에 동원된 장갑차를 이용하여 파괴시킨 무기는 3091정의 기관총과 자동 소총및 3,697정의 라이플 소총과 21정의 유탄 발사기와 다양한 구경의 탄약 456308발을 파괴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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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불편하십니까? 우리는 필요한것 보다 더 많이 갖고 있기때문에 현재의 행복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그러 삶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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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인디언의 특별한 성인식! 북미에 사는 어느 인디언들은 자녀들의 성인식을 옥수수 밭에서 거행한다고 한다. 어떤 성대한 의식으로 치루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넓은 옥수수 밭으로 데리고 가서 바구니를 하나씩 주면서 옥수수 밭에서 가장 좋은 옥수수 한 개만을 따서 바구니에 담아 오게 한다. 그것이 성년식의 전부이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고 힘든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신나고 즐거운 일도 아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가장 좋은 옥수수라고 생각하는 것을 한 개만 골라 따면 되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조건이 붙는다. 옥수수를 따기 위해밭고랑을 한번 지나가면 다시 되돌아갈 수 없고, 또한 한번 고른 옥수수보다 더 좋은 옥수수가 나타나도 그것으로 바꿀 수가 없다. 아이들은 좋은 옥수수를 고르기 위해 밭고랑의 시작부터 매우 신중하게 옥수수를 살피며 걸어가게 된다. 그리고 밭고랑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면 아이들은 옥수수 한 개씩을 바구니에 담아 오는 데 그들이 선택한 옥수수는 모두 별로 좋은 옥수수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아이들은 좋은 옥수수를 발견하고서도 앞으로 가면 더 좋은 옥수수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그냥 스쳐 가버렸기 때문이다? 북미인디언들은 옥수수 따기 체험을 통해 더 좋은 것을 찾으려고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우쳐 주려고 이런 체험을 성년식에 통과의례로 만들었을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인디언들의 옥수수 따기 체험은 지나간 세월 아쉬워 해도 아무 소용이 없으니 매일을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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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8 미터, 26만5000톤의 FLNG선 진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보다 길어...섬 같은 해상 정유공장
인류가 신석기 때 배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 새로운 배는 탐험과 개척의 상징물이었다. 노아가 대홍수에서 살아남거나 컬럼버스가 신대륙을 개척할 때에도 배가 함께 했다. 중국 명나라 시대 정화 장군이 남쪽 바다 대원정을 떠날 때에도,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혁혁한 전과를 올릴 때에도 전례없던 규모와 형태의 배가 등장했다. 새로운 배는 기술의 진보를, 그리고 인류의 새로운 삶을 의미했다.
바다를 통해 세력을 확장하려면 배가 필수품이다. 동·서·남 3면이 바다인 한국인에게 크고 좋은 배를 만드는 것은 오랜 꿈이었다. 세계 1위의 한국 조선업계는 이러한 꿈을 현실로 만들어왔다. 그것이 최근의 한국 조선사(史)이다. 이 조선사에 새로운 한 페이지가 더 추가됐다. 경남 거제의 삼성중공업 조선소가 지난해 12월 3일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배를 만들어 거제 앞바다에 진수(바다 위에 띄운 것)한 것이다. 네덜란드·영국 합작의 세계적 정유회사인 로열더치셸이 주문한 ‘프리루드(Prelude) FLNG’이다. FLNG(Floating LNG)는 해상에서 천연가스를 채굴한 뒤 정제하고 LNG로 액화해 저장·하역할 수 있는 해양플랜트 설비이다.삼성중공업이 만든 프리루드는 세계 최초의 부유식 LNG 생산설비이다.
로열더치셸에서 수주한 FLNG 이미지/삼성중공업 제공 |
현재 바닷속 LNG 생산과정을 보면 해저 가스전에서 뽑아 올린 천연가스를 파이프 라인을 통해 육상으로 보낸 뒤 액화해 저장한다. 그리고 LNG 수송선으로 수요처까지 운송했다. 하지만 FLNG는 이러한 모든 과정을 해상에서 수행할 수 있다. 배는 배지만 사실상 바다 위에 떠 있는 가스공장인 셈이다. FLNG를 이용해 해저 가스전을 개발할 경우 평균 2조원에 달하는 육상의 액화·저장설비를 건설할 필요가 없다. 해저 파이프를 설치하지 않기 때문에 가스 누출로 인한 해저 생태계 파괴도 막을 수 있다. 프리루드는 선체 골격만 건조된 상태로 세부 시설물까지 갖추려면 아직 2~3년간 추가공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벌써 각종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도크에 물이 가득차자 프리루드 FLNG가 해상으로 떠올랐다. 길이 640 미터, 폭 97.5 미터의 도크를 가득 채운 모습이 이채롭다 |
여의도 63빌딩의 약 2배,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보다도 길어
Q :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배라는데 얼마나 큰 가.
A : 길이 488m, 폭 74m, 높이 110m, 중량 20만톤(2013년 12월 3일 기준)이다. 길이 488m는 남산 서울N타워(236.7m)나 여의도 63빌딩(249m)을 눕혀 놓은 것보다 2배나 길다. 국내에서 현존하는 제일 높은 건물인 부산 해운대 두산위브더제니스(301m)는 물론, 뉴욕 맨해튼의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381m)보다 길다. 세계에서 3번째로 높은 건물인 대만 타이베이 금융센터(508m)에는 다소 못 미친다.
중량 20만톤은 세계 최대 항공모함의 2배이다. 세계 최대 항공모함인 니미츠함의 만재(전투기 등 화물을 모두 채웠을 때) 중량이 10만6000톤에 불과하다. 최근 명명식을 가진 미국의 신형 항공모함인 제럴드 포드함은 중량이 다소 늘어난 11만2000톤이지만, 프리루드와는 비교가 안된다. 몸무게가 평균 5~6톤인 아프리카 코끼리 3만5000마리를 합한 무게에 해당한다. 프리루드는 향후 2~3년 동안 상부 플랜트 설비 탑재 등 추가공정을 마치면 선체 무게가 26만5000톤으로 늘어난다. LNG 액화설비 등 각종 플랜트 모듈이 설치되는 상부 면적은 축구장 5개를 합한 것보다 넓다. 이 모든 과정을 마친 뒤 LNG를 가득 채우게 되면 총 중량은 60만톤이 된다. 최대 배수량도 세계 최대규모 항공모함의 6배에 이른다.
한국인이 만든 인류역사상 가장 큰 배 |
Q : 역사상 다른 유명한 배들과 비교해 본다면.
A : 2012년 8월 네델란드의 사업가 요한 휘버스가 구약 성경에 나온 크기 대로 노아의 방주를 실물로 재현했다. 크기는 길이 300큐빗(약 137m), 높이 30큐빗(약 14m), 폭 50큐빗(약 21m)이다. 창세기 신화에 나오는 방주의 규모가 과장됐다고 하더라도 방주의 크기는 프리루드의 3분의 1도 안된다.
중국 명나라 시대의 정화 장군은 영락황제의 명령에 따라 1406년 6월부터 모두 7차례에 걸쳐 남쪽 바다 대원정을 떠났다. 명사(明史)에 따르면 1차 원정을 떠날 당시 함선 62척, 승무원 2만7800명으로 이뤄진 선단을 이끌었는데, 가장 큰 배는 길이 44장(丈·약 137m미터), 폭 18장(약 56m)이었다.
유럽에서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에 이르는 항로를 개척한 바스코 다 가마의 함대는 120톤급 3척(승무원 170명)이었고,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함대는 250톤급 3척(승무원 88명)이었다. 대서양에서 침몰한 타 이타닉호(4만6000톤)보다는 프리루드가 5배 이상 크다. 현재 기네스 기록에 따르면 가장 큰 배는 1975년 일본 오파마 조선소가 건조한 유조선 ‘자르 바이킹’(458.5m)인데, 프리루드가 30m 더 길다.
Q : 배를 건조하는데 얼마나 많은 철강재가 사용됐나.
A : 선체 중량 26만5000톤 중 철강재의 무게는 약 26만톤이다. 호주 시드니 하버 브릿지(Sydney Harbour Bridge) 건설에 사용 된 철재량의 약 5배이다. 26만톤의 철강재 중 후판이 약 15만톤을 차지하는데, 포스코가 전량(공급 금액 1200억원)을 공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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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배인가, 해상구조물인가.
A : 배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자체 동력을 갖고 있지 않다. 왜냐하면 물건을 싣고 운항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호주의 북서쪽 프리루드 유전지대에서 20~25년간 정박하면서 LNG 가스를 채굴하고 액화시키고 저장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력이 필요없다. 이런 점에서 배 형태를 띤 해상구조물, 혹은 바다 위 공장이라고 볼 수도 있다. 미국 공영라디오방송인 NPR은 “배라기 보다는 떠 다니는 섬”이라고 표현했다. 만약 동력이 필요하다면 엔진을 달면 된다.
Q : 동력이 없다면 거제 앞바다에서 호주까지 어떻게 이동하나.
A : 마치 소인국 소인들이 걸리버를 묶어 운반하듯, 4척의 예인선이 앞에 3대, 뒤에 1대가 붙어서 방향을 조절하며 끌고간다. 그리고 적도를 지나 태평양 남쪽으로 호주까지 간다. 30일이 걸린다. 태풍 시기를 피해 2016년 초에 예인이 이뤄질 예정이다.
Q : 프리루드는 호주에서 어떤 일을 하나.
A : 호주 서부의 육지에서 약 200㎞ 떨어진 바다에 정박하면서 20~25년간 심해 가스 채굴 및 처리 작업을 한다. 채굴된 천연가스를 영하 162℃에서 600분의 1 부피로 액화시킨다. 이 때 천연가스를 냉각시키기 위해 퍼올리는 바닷물의 양이 시간당 5000만리터에 이른다. 저장된 액화가스는 LNG 운반선들이 와서 옮겨 싣고 소비자들에게 나르게 된다. 2주간 교대근무하는 형태로 항상 100명의 직원이 상주한다. 프리루드는 폭풍우나 최고등급의 사이클론(태풍)에도 끄덕없이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국내 LNG 소비량의 11%를 생산
Q : 프리루드의 연간 LNG 생산량은 얼마나 되나.
A : 연간 360만톤이다. 국내 1년 소비량의 11%에 해당한다. 홍콩의 연간 LNG 소비규모의 117%에 이른다. 선체 내부 45만5000㎥ 부피의 저장 탱크에는 국내 3일 소비량에 해당되는 LNG를 저장할 수 있다. 45만5000㎥는 올림픽 공식 수영장 175개를 가득 채울 수 있는 규모이다. 완공 후 프리루드의 자체 중량은 26만5000톤이지만, 저장탱크를 모두 채우면 총 중량이 60만톤에 달한다.
Q : 총 건조비용은 얼마나 되나
A : 삼성중공업은 프랑스 설계회사인 테크닙(Technip)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2011년 5월에 프리루드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설계는 삼성중공업과 테크닙이 공동으로 실시하고, 제작은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 중 삼성중공업의 수주 금액은 약 30억달러(3조1500억원)이다. 30억 달러는 국내에서 생산하는 중형 승용차 약 12만대의 수출 금액과 맞먹는다. FLNG 1척 수주가 중형차 12만대 수출 효과와 맞먹는 셈이다.
Q : 해상에 석유시추시설을 만들듯이 바다에 해상구조물을 만드는 것이 비용이 더 저렴하지 않은가.
A : 수심이 깊지 않은 대륙붕일 경우에는 해상에 고정구조물을 설치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대륙붕 자원이 점점 고갈되면서 채굴업자들이 계속 바다쪽으로 멀리 나가고 있다. 수심이 너무 깊으면 고정물을 만드는 것보다 배 형태로 만들어 섬처럼 띄워 놓는 것이 경제적이다. 그래서 FLNG(부유형 LNG) 선박이 각광을 받고 있다. 현재 석유와 천연가스를 생산할 수 있는 심해유전이 정유업계의 새로운 큰 시장으로 형성되고 있는데, 호주, 동남아시아, 쿠바 지역이 주목을 받고 있다. 호주의 경우 2010년 490억㎥인 천연가스 생산이 프리루드 덕택에 2020년까지 곱절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거제 앞바다에 떠오른 세계 최초 FLNG의 웅장한 모습. 축구장 크기 5개 면적의 선체 상부에는 8만톤 규모의 플랜트 설비가 설치될 예정이다. |
Q : 총 인력은 얼마나 투입됐나.
A : 선박을 건조할 때 한 사람이 한시간 동안 일한 노동단위를 1시수(時數)라고 한다. 보통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만드는데 60만 시수 정도 든다. 프리루드는 지난 2년 동안 선체를 만들어 진수하는데 670만 시수가 필요했다. 앞으로 2~3년간 추가공정을 하려면 더 많은 시수가 들 것이다. 설계에 투입된 인원만 600명이다.
Q : 앞으로 2~3년간 진행될 추가공정은 어떤 작업인가.
A : 선체 내부의 LNG 저장탱크 제작, 선체 상부의 플랜트 설비 설치, 내·외부 의장 작업 등이다. 특히 선체 위에 8만톤 규모의 플랜트 설비를 설치하는 작업이 핵심 공정이다. 6000톤 규모의 모듈 14개로 나눠 제작한 뒤 8000톤급 해상크레인을 이용해 순차적으로 탑재하게 된다.
Q : FLNG 선박 시장은 전망이 어떤가.
A : 로열더치셀 등 글로벌 석유 회사들은 호주와 동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FLNG를 이용한 가스전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만 20여개에 달한다. 특히 중형 FLNG를 통해 채산성을 확보할 수 있는 매장량 1억톤 미만의 중소형 가스전이 전세계적으로 350여개에 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향후 FLNG 시장은 더욱 확대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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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s Thought]
한국인은 엔고 덕택에 세계 조선업의 주도권을 일본에서 넘겨 받았다. 그리고 ‘프리루드 신화’를 썼다. 이 신화는 얼마나 갈까?
최근의 해외언론 보도를 보면 미국 플로리다에 위치한 '프리덤 쉽 인터내셔널사'는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배 ‘프리덤 쉽’(Freedom Ship)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고 한다. 길이 1.4㎞, 폭 228m, 제작 비용이 무려 100억달러(약 10조60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길이가 프리루드의 3배이다. 배 안에 학교, 병원, 쇼핑센터, 위락시설, 스포츠시설을 갖추고, 옥상에는 항공모함처럼 비행기와 헬기가 이착륙 할 수 있는 공항시설을 설치했다. 5만명의 사람들이 1년에 지구를 2바퀴 돌며 세계여행을 즐길 수 있는 호화 유람선이다. 언론은 이 프로젝트를 ‘현대판 노아의 방주’라고 이름 붙였다. 만약 한국이 국제입찰 경쟁에서 이겨 이 배의 제작을 수주하면 ‘프리루드 신화’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2016년 초, 프리루드는 거제항을 떠나 호주로 향한다. 배 주인인 로열더치쉘과 배를 만든 삼성중공업 사람들은 태평양을 가로지르며 적도를 넘어 지구 남쪽으로 내려갈 프리루드를 위해 축배를 들고 축가를 부를 것이다. 새로운 여정을 출발한 선원들은 낮에는 꿈에 부풀고, 밤에는 태평양을 요로 삼고 달빛 은은한 밤하늘을 이불로 삼아 프리루드를 베고 단잠을 잘 것이다. 멋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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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지역에는
해마다 많은 축제가 펼쳐집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축제는
LA County Fair 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LACF 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큰 규모의 축제가 있으니
바로 LA의 동쪽
어윈데일(Irwindale)에서 벌어지는
르네상스 페어(Renaissance Pleasure Fair)가 그것입니다.
지난 4월 5일에 개막하여
이번 주말을 끝으로 폐막되는 이 축제는
일반인들 뿐만 아니라
사진사들에게 특히 인기있는 축제죠.
물론,
사진을 찍지 않는 일반인들에게도
특이한 체험과 경험을 할 수 있는 멋진 축제입니다.
볼거리와 먹거리와
많은 쇼들로 이루어지는
진짜 축제의 장이라고 할 수 있죠.
이번 주말에
축제가 폐막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하는데
시간을 내어
자녀들과 함께 한다면
많은 추억거리를 안겨주는
멋진 나들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르네상스 페어는
그동안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열렸습니다.
이번 일요일에 폐막되니
실제로는 이틀 밖에 남지 않은 셈입니다.
음악과 연극,
묘기와 각종 쇼 등이
르네상스 시대의 무대 위에서
시간마다 화려하게,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펼쳐집니다.
그 중에 압권은
영화 “기사 윌리엄”에 나오는
마창 시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곳에 가면
피아노가 발명 되기 전,
중세 시대에
피아노의 전신으로 쓰여진
쳄발로의 아름다운 연주도 들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Hammered Dulcimer 이라는
좀처럼 들어보기 힘든 악기의 연주도 들어볼 수 있죠.
하프보다 낭랑하고
플룻보다 더 투명한
맑고 깨끗한 음색을 지닌
이 악기로 연주한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중세 시대 음유 시인의
음악을 듣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해머드 덜시머의
탁월한 연주자인 Glen Morgan의 모습입니다.
이런 곳에서
안면이 있는 사람이나
친구를 만난다면 무척 반가울테죠.
빅토리아 여왕이 출연하는
공연을 보고 있는 어린 꼬마 소녀의 모습...
아래 사진은
이 소녀가 보고 있는 장면입니다.
Lord, Save the Queen,
Lord, Save the Korea
각운을 맞추려면
Lord, Save the Queen,
Lord, Save the Korean
다른 복장을 한
위의 사진과 같은 여왕의 모습입니다.
보석을 발견한
잭 스패로우가 기뻐 어쩔줄 모르고 있네요.
혼인을 서약한
공주님과 이웃 나라의 왕자님...
그러나 둘 다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듯...
이번에는
르네상스 페어에서 만난
미녀들의 모습을 보도록 할까요?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정면, 측면, 후면 사진들은
당사자들의 동의나 허락을 받은 사진들입니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99% 포즈를 취해주기 때문에
르네상스 페어는
사진사들에게 최고로 신나는 축제입니다.
우리 커플인 것처럼 찍어주세요.
헉! 그렇담 커플이 아니란 말이지.....요?
나도 한 인물 한답니다
찍는 자가 있으면
찍히는 자도 있게 마련이고....
이분의 사진은
허락을 받을 시간이 없어서 ...
이 아이를 보는 순간,
아버지의 복수를 감행하는
서부 영화 True Grit의 소녀 주인공이 생각났습니다.
얼굴 사진만 보면 재미없으니
이번엔 곡예 사진을 한 장 볼까요?
여왕의 가족이
시원한 나무 그늘 쪽으로 나들이를 왔군요.
공주는 잠 못 이루고...
아니 공주는 신나게 놀고...
공주가 노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이 아이....
나도 커서
어른이 되면 저런 공주와 결혼할꺼야...
이번엔
재미있게 분장한 얼굴을 볼까요?
숲속의 창백한 요정의 모습이군요.
표범의 모습 같은데
뿔을 보니 아닌 것 같고...
얼굴의 반점을 보니 사슴 같기도 하고...
빗자루를 들고 다니던데...
얼룩말 의상을 입은 여인...
잭 스패로우의 형님같군요.
나도 한 눈빛 한다오.
이번엔 쌩얼...
뒷모습이 너무 예뻐서 한 컷...
저 아이가 자라서
성인이 되면 이런 모습이 될까나?
사진과 글 : 주안(POWER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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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한국----격동기 민초들의 일상과 죽음
칼을 쓴 죄수 칼은 중죄를 지은 죄수의 목에 씌우는 형구로 마른 나무널조각으로 만들었다. 칼을 쓰면 죄수는 보행이 불가능한데 원칙적으로 양반에게는 칼을 씌우지 않았다. 사진의 죄수들은 동학농민군이라는 설명도 있는데, 의병들이었을지 모르겠다. 태형(笞刑) 길이 1m 정도의 곤장으로 볼기를 치는 형벌. 가벼운 죄를 처벌하는 것으로, 삼국시대부터 일제 초기까지 존속되다가 3·1운동 직후인 1920년 완전히 폐지되었다. 태 10부터 여러 등급이 있었고, 속형(贖刑)이 허락되어 주로 가난한 민초들에게 집행되었다. 교수형 교수형은 중죄인의 목을 형구로 옭아매어 죽이는 형벌이다. 사진에서 교수형을 당한 사람들은 의병이 아닐까 추측된다. 1910년 전후 10여명이 공개적으로 교수형을 당할 만한 사안은 일제에 적극적으로 저항한 의병 외에는 달리 없었다. 죄수와 하인 간략한 사진 설명에는 ‘죄수’라고만 되어 있는데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다. 혹 귀양살이하는 양반 죄인이 하인을 데리고 가는 광경일 수도 있겠지만, 옆의 담장으로 미루어 시골풍경은 아니다. 식사 개다리소반에 차려진 음식을 먹고 있다. 벽에 두루마기가 걸려 있고 신선도 병풍이 쳐진 것으로 보아 여염집은 아닌 듯하다. 여인네는 음식을 덜고 있는 것 같다. 주막 두 남자가 장터 주막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있다. 돗자리 위에 놓인 개다리소반이며 엉거주춤한 자세가 인상적이다. 소 발굽 갈기 소를 이용한 농경은 삼국시대부터 시작됐다. 온순하고 인내심이 강한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짓게 된 것은 농업기술 발달에 획기적인 일이었다. 소를 쓸모 있게 활용하려면 굽갈이는 필수였다. 등청하는 관리 조복을 갖춰 입은 관리가 의자처럼 생긴 남여(籃輿)를 타고 관청에 출근하고 있다. 뒤에는 서류를 넣은 궤를 짊어진 하인이 따른다. 사진을 찍는 모습이 오히려 구경거리였던 듯 집안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 담장 공사 세 명의 인부가 담장을 쌓고 있다. 나무틀에 돌과 진흙을 개어 넣어 토담을 쌓는 광경이다. 나무틀 안에서 흙을 밟아 다지는 인부가 흙을 쏟아 붓는 모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활터 활터에 나가 활 쏘는 일은 한량들의 스포츠였다. 멀리 있는 과녁을 겨누어 막 활을 당기고 난 모습이다. 몇 사람은 아직 시위에서 화살이 떠나지 않았다. 시합을 마친 뒤엔 술 한잔씩 마시고 헤어졌을 것이다. 마구간 말들이 먹이를 먹고 있다. 말은 주로 군용(軍用)이나 역마(驛馬)로 사용되었지만 일반에서는 타고 다니거나 수레를 끌게 하고 농사에도 동원했다. 값이 비싸 농가에서 기르기는 쉽지 않았다. 사진은 말을 길러 삯짐을 실어 나르던 곳의 마구간일 것이다. 장례식 장례 행렬을 구경하는 사람들. 권세 있는 개성 상인이 세상을 떠난 듯 상점가 깃발이 펄럭인다. 지붕에 올라앉은 아이들에게는 좋은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춤추는 기생 기생이 부채춤을 추고 뒤에서 악사들이 장구와 징을 쳐 장단을 맞추고 있다. 연회가 한창 무르익은 상황으로 보인다. 놀이패 인간 피라미드를 이룬 놀이패. 아마도 동네에 큰 잔치가 있었던 모양으로, 사당패가 동네에 들어와 갖은 재주를 부리는 중이다. 절구질 두 아낙이 나무로 만든 절구통에 곡식을 넣어 공이로 빻고 있다. 나무절구는 통나무의 속을 파내 만들고, 공이는 손으로 쥐는 부분을 파내 둥글게 만든다. 혹 명절날 쓸 떡을 만들려고 절구질을 하는 건지도 모른다. 장에 다녀오는 여인네 동네 아낙들이 장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다. 젊은 아낙들은 장옷을 입고 머리에 물건을 이었고, 나이 든 아낙들은 장옷도 물건과 같이 이었다. 방갓을 쓴 여인 먼 길을 떠나는 젊은 여인이 방갓을 썼다. 오른쪽 사진은 같은 여인을 옆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물동이를 인 여인 두 손으로 물동이를 이고 있다. 배경이나 분위기로 보아 현장에서 찍은 것이 아니라 실내에서 연출해 촬영한 사진임을 알 수 있다. 이 시기 자식을 낳은 여인의 가슴 노출은 큰 흉이 아니었다. 요강 닦기 요강은 집 안에 화장실이 있는 주택이 보급되기 전 오랫동안 사용되어온 생활용품이다. 신분이나 경제력에 따라 놋이나 도기, 자기, 목칠기 등으로 요강을 만들어 썼는데 사진에 보이는 것은 자기로 만든 것 같다. 연출된 사진이다. 물동이를 인 여인 동네 어귀에 우물이 있었을 것이다. 아낙이 물을 길러 왔다가 사진을 찍게 되었다. 한 손으로 물동이 손잡이를 잡고 있다. 장에 다녀오는 여인 장에 나가 채소라도 팔고 오는 길일까. 동생을 들쳐 업고 엄마를 따라 나섰던 아이의 손에는 채소가 들려 있다. 다듬이질 여자아이 둘이 다듬잇돌에 세탁된 옷감을 놓고 방망이로 두들겨 다듬고 있다. 옆에서 동생들이 구경을 한다. 옷 손질과 바느질은 여성들의 일상이었다. 두 사람이 네 개의 방망이로 다듬이질을 하는 리듬감 있는 소리는 이제 영영 사라지고 말았다. 연날리기 네 아이가 연 날릴 준비를 하고 있지만 시선이나 표정이 부자연스럽다. 이미 1890년대 초부터 널리 퍼진 연출기법에 따른 사진이다. 한 아이는 얼레에 연줄을 감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종이에 대오리를 붙이고 실을 매어서 공중에 날리는 연 놀이는 당시 어린이에겐 최고의 겨울 스포츠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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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자체가 변형된 북한!
박선영 의원님이 북한을 위해 오랜 금식 이후, [아래와 같이] 한경 논설위원과 대담을 했습니다
(바쁘신 분들께서는 8분 40초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놀라운 말씀을 하시더군요. 북한 사람들이 남한 사람들에 비해 신장이 엄청나게 줄어 든 이유가... 1990년대 고난의 대행군을 통해 300만명이 아사해 죽었기 때문이 아니랍니다. 그게 이유가 아니랍니다. 70년도부터 시작했던, 노예화 작업....
사람이 하루 필요한 열량이 100이면 그걸 80, 70으로 의도적으로 줄였답니다. 사람이 필요 칼로리가 100이라면 배급을 70~80으로 줄여 벌이면 본능적으로 집단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 진답니다. 결국 사람이 굶으면 다른 거 생각 못하고 그저 밥주는 당을 위해 충성하듯이... 충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배급을 줄였답니다.
북한 사람들이 김일성 김정일에게 발광을 하듯 울부짖고 하는 이유가 오랜 연구 끝에 배급량을 조절해서 최대 충성도가 나오는 배급량.... 그 칼로리만 배급을 통해 줘서 충성도를 높였답니다. 그게 바로 바이오팔라틱스...한국명으로는 생명정치...사람 생명을 가지고 정치에 이용한다...
세계 최고의 석학 푸코의 이론을 북한이 실제 사용한거 같습니다. 푸코라면 “광기의 정치”라는 저서로 일반인들도 익히 알고 있는 석학인데...그 마지막 중요 주장이, 바이오팔라틱스...생명을 조절해서 충성도를 높이는 로보트를 만드는 이론...그걸 북한이 시행 했답니다.
기근과 집단 아사가 평균 신장률을 대폭 낮춘다면, 러시아 스탈린 때 대 기근...중국의 모택동때 한국 인구만큼 아사한 사태....러시아와 중국도 평균 신장이 대폭 줄어야 하는데, 중국과 러시아는 작아지지 않았어요. 굶어 죽을 지언정, 유전자 자체에 내제되 있는 신장은 작아 지지 않아요. 그런데 북한은 DNA 자체가 변형 되버렸습니다.
70년도 부터 30년 넘게 장기간 바이오팔라틱스를 시행한 결과, 인종 자체가 달라져 버렸어요. 탈북 고아들을 국내로 들여 와서, 연구한 결과도 똑같았답니다. 한족이 아버지인 아이들은 충분한 영양을 공급한 결과, 키가 원 상태로 회복됬데요. 그런데 북한의 아버지를 둔 아이들은 아무리 영양을 공급해줘도 키가 자라지가 않았데요. DNA가 변형 된겁니다.
그 이론의 주요 논거는....생명은 어떤 특정 환경에 처하면 거기에 적응해 버린다. 예를 들어.....갈라파고스...똑같은 종이지만, 갈라파고스섬이라는 특수한 환경에 처한 동물들은 2세대를 거치면서 거기에 맞게 적응이 되버려 원래 종과는 다른 외모를 갖게 된다. 이게 갈라파고스 이론 맞지요? 북한 사람들이 오랜 기간 정치적 목적에 의해 생명의 근원이 되는 배급을 강제적으로 조절이 되버리니까, 그 영양소만 가지고도 생명 유지가 되도록 DNA 자체가 적응되 버린 겁니다. 원래 북한 사람들이 남한 사람들 보다 키가 더 컷어요.
일제 시대 학자들이 통계를 낸 한국의 평균 신장입니다.
압도적으로 북한이 더 컷어요. 이게 반세기 만에 역전이 되버렸습니다. 큰키가 유지 되기엔 배급량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 몸이 스스로 키를 낮춰 버린 겁니다. 그게 DNA에 학습되서 2세대들 까지 저 신장의 인종으로 인종 자체가 변형되 버렸어요. 이게 푸코의 바이오팔라틱스입니다. 오직 김일성에 대한 충성도 높은 로봇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국민들을 가지고 인종 실험을 한거에요. 북한 이 나라는 나라 자체가 인종 실험실이 되버린 겁니다.
성균관대 다니엘 쉬베켄디엑 교수의 연구 결과는 더 충격적입니다. “여성의 키가 남성보다 더 큰 유일한 사례가 될 것”이라 말하였으며, 탈북자들이 북한의 취약계층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닌 북한의 전 계층과 모든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성의 키가 남성보다 더 큰 유일한 나라랍니다.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북한이 거슬려 버렸어요. 그런데 2006년도 충격적인 증언이 나옵니다.
“2005년에 질병관리본부에서 3070명의 탈북자를 대상으로 정밀하게 건강상태를 조사했다. 탈북자들의 건강검진 결과 우리보다 평균신장은 8cm, 평균체중은 8kg 정도 적게 나타났다. 게다가 14세 이하의 경우 그 수치가 2배에 달해 평균신장은 16cm, 평균체중은 16kg이 우리보다 적다.”
1~2세대보다 14세 이하, 3~4세대 아이들의 평균 신장이 급격하게 줄어 들고 있습니다. 이들은 고난의 대행군을 경험하지 않은 그 이후에 태어난 아이들입니다. 세대를 이어 갈수록 이전 세대의 영양불균형이 유전되어 빠르게 고착화 되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부분이 중요합니다.
“질병관리본부에서는 2003년부터 2005년까지 계속 조사를 했다. 하지만 조사된 자료의 정확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면서 공개를 안했다. 결과가 너무 심각하고, 이게 공개되면 북한 정부가 불편한 심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은 것 같다.”
이때가 참여 정부 때 입니다.
美國 워싱턴 탈북여성 기자회견 눈물바다 (0) | 2014.05.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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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1:15)
주변 국가와의 수많은 전쟁을 통하여 스페인, 영국과 함께 스웨덴을 세계 3대
강국 반열에 올려, 대왕의 칭호를 받는 구스타프 2세(1594 – 1632)는 발틱해의
패권을 장악하고자 세계에서 제일 크고 강력한 전함을 건조하게 된다.
길이 69미터, 폭 12 미터, 높이 53 미터, 배수량이 1200톤에 이르는 전함은,
아무도 지은 적이 없었기에, 그 당시 선박 제조 기술이 제일 발달한 덴마크의
장인들을 불러, 천그루의 참나무를 베어 내어, 3년 동안 공들여, 발틱해에서
가장 거대하고 화려한 전함, 바사호를 만들었다.
구스타프 2세는 스웨덴의 국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기술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층 좌우에 16문씩 설치할 대포의 수를 늘려, 2층 구조로 올려
총 64문의 11kg짜리 포탄을 장진할 수 있는 대포를 설치,
가까스로 균형을 유지한 위험천만한 바사호는,
1628년, 주변국들의 귀빈들을 초대하여 성대한 진수식을 마치고,
출항한지 20분도 안되어, 1,200미터 정도 전진하다가 갑자기 불어닥친
돌풍에 중심을 잃고 맥없이 바다 속으로 침몰한다.
구스타프 2세의 욕심으로 잉태한 과욕의 죄가 30여명의 젊은이들을 사망으로
이르게 하고, 스웨덴 바사 왕조의 위상에 큰 손상을 주었다.
구스타프 2세 자신도 4년 뒤 독일과의 전투에서 38세 나이로 전사한다.
17년간의 복원 작업과 그 위에 6층 높이의 건물을 지어,
건물 중심에 배가 세워져 있고, 층별로 돌아가면서 전시장이 있어,
17세기의 스웨덴 사람들의 생활상과 수장품들을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박물관
1990년 박물관으로 개관된 이래 매년 백만명 이상, 지금까지 3천만명 이상의
방문객들을 맞이하여 발틱해안에 있는 수많은 박물관 중 가장 많은 방문객을
맞이하는 명소가 되었다.
스톡홀름 항구를 지나 구시가지 감라스탄에 있는 왕궁으로 갔다.
젊고 잘 생긴 근위대의 절도 있는 모습과 우렁찬 밴드 소리는,
자연스레 관광객들을 불러 모아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
많은 군중들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제대로 구도도 잡지 못한 채,
그저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그 옛날 마차가 다니던 좁은 골목길, 우여곡절이 많았던 스웨덴의
역사를 보여 주는 스토르토리에트 광장으로...
덴마크왕은 스톡홀름으로 출병, 감라스탄 지역의 스토르토리에트 광장에 있는,
한 호텔에 머무는 동안, 스웨덴 독립군들에 의해 피습을 받는다.
포탄의 불발로 암살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한 덴마크왕은, 그 음모에 가담한
스웨덴 귀족 82명을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참수하여, 그 머리들을 광장
중앙에 있는 우물에 던져 넣었다.
때는 1520년, 스웨덴 사람들은 그 위에 탑을 세워 피의 우물이라고 부른다.
저 붉은 벽돌 건물의 하얀 점들은 이곳에서 학살 당한 82명의 숫자만큼
건물에 박아 넣은 하얀 벽돌들로,그 날을 잊지 말자는 의미...
덴마크에 유학 중이었던 구스타프 1세 (1496- 1560)는, 스웨덴 원로원 의원이며,
스웨덴 독립을 주장했던 아버지와 두 삼촌들이 처형 당한 후,
스웨덴으로 비밀리에 귀국, 독립군의 유능한 장군으로서 덴마크와의
전쟁에서 승리, 1523년 17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라 바사 왕조를 창건한다.
구시가지의 아름다운 건축물들과 거리의 악사들이 어울려,
다른 세계에 와 있는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스토르토리에트 광장에는 세계 각국에서 모여 든 관광객들이 인산 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각기 다른 나라말로 설명을 하고 있는 가이드들과,
열심히 듣고 받아 적는 여행 메니아들...
광장 정면에는 노벨 박물관이 있었지만,
여행 일정 때문에 내부에 들어갈 수 없어 아쉬웠다.
이 곳에도 어김없이 자전거 대여소가 있어 시민들이나 방문객들이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었다. 건강에도 좋고, 대기 오염도 안 시키고 돈도 절약하고...
발틱해와 마라렌(Malaren) 호수가 만나는 곳, 1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
북구의 베니스라고 불리우는 인구 천만의 스웨덴, 물 위의 도시라고 불리우는
스톡홀름에 도착, 매년 12월 10일, 노벨상의 잔치가 벌어지는 시청으로 갔다.
권위적인 시청이 아니라 시민들과 함께 하는 공간, 시청사 앞 광장은
주변의 자연 환경과 조화를 이루어 매우 아름다웠다.
담장이 덩굴 마저 한 몫하는, 붉은 벽돌의 멋진 건물...
한국에 교환 학생으로 다녀온 잘 생긴 청년이 현지 가이드로 배정되어,
시청사의 역사와 소개를 영어로성의껏 설명을 잘해 주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블루홀이라 불리우는 넓은 홀이 나왔다.
이 곳에서는 노벨시상식의 만찬이 열리는 곳으로,
평소에는 음악 콘서트같은 많은 행사가 열린다고한다.
연주는 아래 홀에서 하고, 소리는 천정에 있는 이 곳으로 부터
청명한 소리가 온 실내에 울려 퍼진다.
이층 발코니에서 내려다 본 아름답고 평온한 정경...
첨단 시설의 시의회실, 이 곳에서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문학, 경제학 등
5개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를 선정한다.
특유의 디자인과 단단함으로 센스있는 자동차의 대명사로 한때 호황을 누렸던
Volvo와 Saab를 만들고 있는 나라의 시청 답게 실내 장식이 우아하고 화려하다.
골든 홀, 노벨상 시상식과 만찬 후 무도회가 열리는 곳.
시민들이 기증한 금으로 만든 1800만개의 금박으로 실내를 도금했다고 한다.
1520년, 덴마크왕을 겨냥한 포탄이 불발로 끝나, 스웨덴의 독립도 불발로
끝날 듯 보였으나, 82명의 애국지사가 참수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하여 3년 뒤인 1523년 마침내 독립을 이루게 된다.
스톡홀름 관광을 끝내고, 우리는 비행기 삯과 호텔비를 절약할 수 있는
헬싱키행 실자라인 페리에 올랐다.
자고 나면 15시간만에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도착한다.
100년전 한국-격동기 민초들의 일상과 죽음 (0) | 2014.05.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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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차 세계대전사 (0) | 2014.04.27 |
The Star Of The Sea Phil Coulter & Roma Downey
"이 곡은 1984년 스윌리호수에서 익사한 나의 형을 위하여 작곡하였다.
Fahan 부두에 서 있으면, 호수 너머에 있는...
형의 마지막 모습이 목격되었던, 버크라나와 던리가 보인다.
주여, 그의 영혼이 평온히 잠들게 하소서... " - Phil Coulter -
Roma Dow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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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통령의 특권 19가지! (0) | 2014.04.20 |
가난했지만, 낭만과 정이 흘렀던 그때 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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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차 세계대전사 (0) | 2014.04.27 |
대한민국 대통령의 특권 19가지! (0) | 2014.04.20 |
2013년 가장 강력했던 사진 30장 (1) | 2014.01.11 |
2 차 세계대전사 제01부 U보트 파란의 6년 (45:31)
2차 세계대전사 제02부 육.해.공 협동작전 (47:37)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JJNsG3tHxX4
2차 세계대전사 제03부 독일 폭격기 수투카 (47:16)
http://www.youtube.com/watch?v=X9ZW_4Jo_L0&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04부 공수부대의 대활약 (47:19)
http://www.youtube.com/watch?v=a6TtcgouPFA&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05부 독일 육군의 선봉 기갑부대 (47:06)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bOHvOcuZpd0
2차 세계대전사 제06부 항공모함전 (46:29)
http://www.youtube.com/watch?v=YZrGWMqZT94&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07부 독일 제트 전투기 (47:54)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WsLPM8WJ7jw
2차 세계대전사 제08부 독일의 신무기 (47:48)
http://www.youtube.com/watch?v=_UmKPH_pWx8&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09부 잠수함전 (47:18)
http://www.youtube.com/watch?v=ZcYEp7QAud8&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10부 독일 공군의 활약 (47:51)
http://www.youtube.com/watch?v=tPndZmp1tCI&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11부 사막의 여우 에르빈 롬멜 (47:20)
http://www.youtube.com/watch?v=QspKjyPodr4&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12부 독일 전차의 완성 - 타이거 (47:13)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p53ThgJX2o4
2차 세계대전사 제13부 얼어붙은 동부전선 (47:42)
http://www.youtube.com/watch?v=j4I03GxcO_Q&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14부 독일 폭격기 부대 (47:49)
http://www.youtube.com/watch?v=VpSubcaYlmc&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15부 독일 해군의 활약 (47:38)
http://www.youtube.com/watch?v=Mj43ZfQ4sOo&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16부 영국 전투기 부대 (47:57)
http://www.youtube.com/watch?v=w-xL14OvjGw&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18부 영국 폭격기 부대 (48:19)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88ecfTEc24Y
2차 세계대전사 제19부 교착상태의 이탈리아 (48:58)
http://www.youtube.com/watch?v=BJmjd5lDQeA&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20부 선전의 극대화 (46:55)
http://www.youtube.com/watch?v=Elhy2h4nq3A&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21부 전쟁과 군자금 (47:34)
http://www.youtube.com/watch?v=VXAzbiaKZXs&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22부 파르티잔 빨치산 (47:41
http://www.youtube.com/watch? v=AEGMpzG2Myw&feature=player_detailpage&list
=PLapY1RqEBuWQJBiqaA8PjC0mqYtP_KH3-
2차 세계대전사 제23부 U보트에 맞선 호송함대 (48:37)
http://www.youtube.com/watch?v=tSxD28negEA&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24부 독일 보병의 화력 (47:55)
http://www.youtube.com/watch?v=4KwDounU5m0&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25부 독일 북부군 (47:51)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Ne43ipdWfGs
2차 세계대전사 제26부 독일 중부군 (47:52)
http://www.youtube.com/watch?v=Zvl3u0NW_eo&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27부 독일 남부군 (48:35)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sa7cISqJxOU
2차 세계대전사 제28부 히틀러의 무적대포들 (47:33)
http://www.youtube.com/watch?v=gpAicjObFX8&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30부 사막의 여우와 아프리카 군단 (49:30)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tjFZo6DUgtU
2차 세계대전사 제31부 유럽상공의 야간전투 (46:07)
http://www.youtube.com/watch?v=zl8BDONktrQ&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32부 - 비밀병기 슈퍼건 (42:26)
http://www.youtube.com/watch?v=IXdIG3A28nU&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33부 선전장관 괴벨스 (45:44)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LoC_bYFPyRY
2차 세계대전사 제34부 총통보좌관 루돌프 헤스 (47:00)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JuTDDo0bt-w
2차 세계대전사 제35부 총사령관 괴링 (47:48)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n4xlcPZ6gPM
2차 세계대전사 제36부 건축가 슈페어 (46:57)
http://www.youtube.com/watch?v=820k-fS7vQQ&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38부 사형 집행관 히믈러 (47:44)
http://www.youtube.com/watch?v=s8kXOXM6IMo&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39부 아이히만 #01 (9:40)
http://www.youtube.com/watch?v=GuVENXmPKM8&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39부 아이히만 #02 (9:40)
http://www.youtube.com/watch?v=hV6ON0_WE8Y&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39부 아이히만 #03 (9:40)
http://www.youtube.com/watch?v=lstBwr_i8gI&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39부 아이히만 #04 (9:40)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yCqO2d8EVcU
2차 세계대전사 제39부 아이히만 #05 (9:43)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CZrVI5qHfOk
2차세계대전사 제40부 - 마틴 보르만 (46:23)
http://www.youtube.com/watch?v=q453Zb6VTsU&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42부 리벤트롭 외교장관 (45:31)
http://www.youtube.com/watch?v=akZ6g3OffJ8&feature=player_embedded
2차 세계대전사 제44부 재판관 프라이슬러 (46:04)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Xe4LCQTgc4o
2차 세계대전사 제45부 -카이텔 (34:41)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i7w0h7LHZKo
2차 세계대전사 제47부 히틀러 프로필 : 사령관 (46:15)
http://www.youtube.com/watch?v=1eD8OJHnsLc&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48부 만슈타인 (42:04)
http://www.youtube.com/watch?v=Qc7HKavDpU8&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49부 - 파울루스 (41:31)
http://www.youtube.com/watch?v=8gzxuEFQYGw&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50부 - 우데트 (43:48)
http://www.youtube.com/watch?v=09KeqdNhxUI&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52부 카나리스 (41:48)
http://www.youtube.com/watch?v=k0ZJS2-BMoA&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54부 - 프로필 사령관 (46:15)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AfSaQQoh7FU
2차 세계대전사 제60부 대서양 해전 : 역습 (48:17)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zgiyeGZzGhk
2차 세계대전사 제61부 - 샤른호르스트의 비밀 (45:07)
http://www.youtube.com/watch?v=BElNuFEs1Xs&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64부 그들만의 전쟁. 적과의 동행 (47:34)
http://www.youtube.com/watch?v=N9vuz5IOLks&feature=player_detailpage
2차 세계대전사 제65부 그들만의 전쟁. 루즈벨트의 분노
(48:06)
ttp://www.youtube.com/watch?v=Are6Lmi1zbI&feature=player_detail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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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통령의 특권 19가지!
19,대통령의 월급
대통령도 엄밀히 공무원이다.
그렇기에 대통령도 월급을 받는다.
현 박근혜 대통령의 연봉은 1억 8천 9백 41만 9천원이다.
월급은 1553만원이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월급은 저 기준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8,스타일팀
대통령 전속 스타일팀
이발사,메이크업 아티스트,스타일리스트(코디) 3명으로 이루어진다.
이발사는 직업상 도구가 무기이기때문에 대통령이 바뀔때마다
이발사도 교체된다.
17,주치의 전용병원
대한민국 국민 5000만 중에 1명만을 위한 의사 주치의
현대판 어의라고 보면 된다.
청와대에 상주하지 않지만 대통령 일가에 문제가 생겼을 때
30분내로 도착해야 한다. 지방, 해외출장 때도 동행한다.
대우는 장관급 대우.
대통령의 건강은 청와대 의무실에서 24시간 체크한다.
또한 삼청동에 위치한 국군서울지구병원은 사실상 대통령 일가
전용병원이다.
16,젼속 요리사
대통령의 밥상을 책임지는 사람은
청와대 총무비사관실 소속 운영관이다.
운영관은 그날 음식메뉴 결정, 식재료를 구입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청와대에 근무하는 요리사는 12명이며 한, 중, 일, 양식 음식전문가이다.
대통령이라고 특별한 걸 먹는 건 아니다.
밥과 6가지 반찬 정도의 평범한 밥상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먹는 것이니 만큼 식재료는 모두 최고급이며
웨이트리스와 웨이터가 존재한다. (지방순시 때도 동행)
또한 경호실에서 먼저 음식을 하나 하나 검식한 후 대통령 밥상에 올린다.
15.대통령 연금
전직 대통령이 받는 연금 금액은 평균 1088만원이다.
14,전직대통령의 경호
전직 대통령 경호는 기간 제한이 없다.
현재 전두환 전 대통령 수행 경호에는 경찰관 10명
사저 경비에는 전의경 69명이 배치되어 있다.
소요되는 예산은 27억원이다.
13,대통령의 사저
사저는 대통령이 임기가 끝난 후 사는 집이다.
이멍박 대통령은 내곡동 사저 부지가 무산되면서
논현동 자택으로 돌아간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봉화마을 사저에 12억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12,기타예우
11,병원비 무료
전직 대통령도 비서관과 운전기사가 있다.
서거한 전직 대통령의 배우자도 비서관과 운전기사를 둘수 있다.
또한 전직 대통령과 배우자는 국공립병원에서 받는 진료는 전액 무료이다.
민간의료기관에서 진료할 경우 그 비용 또한 국가가 부담한다.
쉽게 말해, 전직 대통령의 병원비는 모두 국민들 세금으로 부담한다.
10,당선자 경호
대통령 당선자는 취임까지 2달의 기간이 있다.
당선자 경호는 본인 포함 부인, 자녀, 손자, 손녀, 부모까지 경호대상이다.
별도의 방탄차량, 전용기, 전용헬기까지 지급 된다.
당선자가 원하면 서울 삼청동의 안전가옥으로 숙소를 옮길 수도 있다.
9,사면권
이른바 광복절 특사라고 불리는 사면권.
죄지은 자를 사해주는 사면권.
하지만 무면허, 뺑소니, 인명사고, 2회이상 음주운전은
사면권에서 제외된다.
8,대통령의 경호
대통령 경호는 경호처가 담당한다.
경호대상은 대통령과 그 가족. 실례로 이명박 대통령 독도 방문시
군, 경호실, 경찰, 육해공이 모두 총동원 됐으며 공중조기경보기, 전투기,
해군호위함, 잠수함까지 경계작전을 수행했다. 또 전파도 차단된다.
만약 자신의 휴대폰이 갑자기 터지지 않는다면 지금 당신이 그곳에
대통령이 있을 수도 있다.
7,의전 차량
다음은 대통령의 전용 탈것이다.
먼저 차량. 메르세데스 벤츠 S600 풀맨 가드 & 에쿠스 리무진
설명: 4개의 타이어가 모두 펑크 나도 시속 80km 이상 주행가능
RPG도 견디는 장갑차량 내부엔 호흡장치 등
유사시에 대비한 응급시설 완비
6,전용비행기
다음은 전용기와 전용 열차
전용기
보잉747-400
설명: 일명 코드원 엄밀히 말하면 5년간 임대한 것이다
기내엔 회의실,휴게실,대통령 전용공간 심지어 기자회견장까지
완비하였다. 또한 미사일 기만장치등 여러 첨단장비들도 탑재되었다
항상 전투기 2대가 에스코트 한다
전용 헬기
S92
설명: 탑승감이 아주 좋다고 한다
역시 간단한 회의를 위한 회의실,휴게실등이 갖춰져있고
미사일 기만장치들이 탑재되어있다.
적의 공격에 대비해 항상 같은 기종 3대가 같이 다닌다
KTX 기관차에 36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으면
그 KTX는 대통령 전용 KTX다.
새마을호 (개조 차량)
설명: KTX 외에 전용 기차도 있다.경복호라 한다.
새마을호를 개조했으며 미사일도 견디는 장갑,최고시속180km
이 열차는 운행열차 시간표나 배정표에 표시되지 않으며
이 열차가 운행하면 전국의 다른 모든 열차는
이 열차 운행 다음 시간 으로 배정된다
서울역 어딘가에 전용 격납고가 있다
또한 이 열차는 재밍 전파를 발사해반경 1km 까지
전자통신을 방해할수 있다
유사시 이동 사령부 역할도 한다.
5,불소추 특권
대통령 재직중에는 형사기소를 받지 않는다.
4,법율안 거부권
대통령이 법률안을 거부할수 있는 권리다.
"법률안을 국회로 다시 돌여보내!" 라고 할 수 있는 권리다.
법률안 거부권 행사는 엄청난 권한이다.
국민이 뽑은 국회의 결정에 대응하는 강력한 힘이다.
3,영전 수여권
훈장을 달아줄수 있는 특권이다.
상을 받는게 아니라 상을 주는 특권이다.
하지만 그만큼 정치적 부담감도 큰 권한이다.
훈장은 건국훈장,문화훈장,산업훈장,체육훈장,무공훈장등 총12종이 있다.
특히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은 백범김구선생,안중근,윤봉길의사 등에게
수여된 최고의 훈장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본인이 본인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를 수여했다.
지난 2006년 정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훈장포함 서훈 9개를 취소
했는데 취소와 함께 훈장을 돌려줘야 하는 것이 원칙인데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아직까지 돌려주지 않고 있다.
2,국군 통수권
대한민국 대통령은 대한민국 국군의 최고 통수권자다.
63만 대군은 물론 장성까지 벌벌떠는 최고의 자리이다.
대통령 당선자의 첫임무는 국군통수권을 이양 받는 일이다.
미국은 핵무기 발사 버튼이 들어 있는 가방을 주고 받는 것이
상징적인 군 통수권 이양 방식이다.
1,임명권
대통령은 공무원의 임명,파면권한을 갖고 있다.
쉽게 말해 대통령은 공무원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것이다.
직접적인 임명권은 1500개 정도이며 간접적으로는 2만여개이다.
국무총리, 국무위원, 각부장관, 감사원장, 중앙선관위원3인,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소장과 재판관 검찰총장, 국세청장,
국가정보원장까지 대통령 뜻에 따라 결정한다.
모든 권력이 대통령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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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열거한 대통령 특권보다 더 큰 특권이 있다.
그건 바로
대한민국 국민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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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축인터넷 주소 누르면 25만원 결제 연합뉴스|입력2013.12.14 22:14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북한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처형 동영상을 미끼로 한 신종 문자결제사기(스미싱)가 나돌고 있어 주의해야 한다.
14일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 따르면 최근 장성택의 처형 동영상을 볼 수 있다는 내용의 문자가 단축인터넷주소와 함께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해당 문자에 첨부된 인터넷주소를 누르면 바로 25만원이 결제된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은 "스미싱 문자에 포함된 인터넷주소를 클릭하는 순간 휴대전화 소액결제로 유도하거나 개인·금융정보 탈취 등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앞으로도 문자메시지 내용을 다양하게 바꿔 인터넷주소 클릭을 유도하는 수법이 반복될 수 있으니 예방수칙을 준수해달라"고 당부했다.
경찰은 예방수칙으로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문자의 인터넷주소 클릭 금지, 스마트폰의 보안설정 강화, 스마트폰용 백신 설치·주기적 업데이트, 공인된 오픈마켓을 통한 앱 설치 등을 소개했다. nomad@yna.co.kr (끝)
안보가 염려되어 올립니다. 정쟁중단 나라안정을 위한 서명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기독인서명참여주소> : 지도자는 물론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가능합니다. https://docs.google.com/forms/d/1JgvBW_FCfJR80Gh5wJKMg7i4bSOPaDb89jqMFF39Ysw/viewform
<일반인서명참여주소> https://docs.google.com/forms/d/1IDn7tYNHA06w8_CCmd-rL_hWw98sDTwRKFuaPZwFWRE/viewfor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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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리버티헤럴드)
http://libertyheral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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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아니면 하지를 말자 (0) | 2013.07.02 |
좌익 배격하고 대한민국 수립 이끌어
“민족끼리 단결하자” 65개 정당운동협의체인 독립촉성중앙협의회를 발족시켜
美 군정과 협력ㆍ견제 속에 전국 순회 강연… 압도적인 지지로 초대 대통령에
고려는 왕건(王建)의 나라’ ‘조선은 이성계(李成桂)의 나라’라는 표현이 가능하다면 대한민국은 분명 ‘이승만(李承晩)의 나라’다. 물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김일성(金日成)의 나라’다. 한동안 기승을 부린 ‘이승만 때리기’가 대한민국에 대한 원초적 부정이었고 최근 ‘대한민국의 재발견’이 이승만에 대한 활발한 재조명으로 이어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 1948년 7월 24일 취임 선서를 하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왼쪽) 1948년 8월15일 중앙청에서 열린 정부 수립식.(오른쪽) |
이승만의 건국운동은 아놀드 토인비의 말 그대로 ‘도전과 응전’의 변증법 그 자체다. 1945년 8월 15일 70세의 노(老) 독립운동가 이승만은 미국 워싱턴의 마운트 플리전트 2층 벽돌집에서 일제강점의 종언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이승만은 즉각 귀국을 위한 수속에 들어갔다.
그러나 좌우합작에 우호적이던 미 국무부의 반대에 부딪혀 한동안 난항을 겪어야 했다. “이승만은 우리의 구상을 쉽게 따라줄 인물이 아니다”는 판단에서 국무부는 한동안 이승만의 조속한 귀국에 제동을 걸었다. 우여곡절 끝에 이승만은 해방 2개월이 지난 10월16일에야 김포에 내릴 수 있었다. 순전한 ‘개인’ 자격의 환국이었다.
이승만이 부재(不在)하던 해방 직후 2개월은 말 그대로 ‘좌익(左翼)의 득세기’였다. 8월 16일부터 여운형(呂運亨)이 주도하는 건국준비위원회가 전국적으로 조직을 확대하면서 주도권을 장악했고 9월 6일 박헌영(朴憲永)은 조선공산당을 재건한 다음 조선인민공화국, 즉 ‘인공(人共)’을 선포했다. 9월 14일에는 임의대로 내각 명단을 발표했는데 여기에 이승만이 ‘주석’으로 추대돼 있었다. 대통령에 해당하는 자리다. 물론 이승만의 동의는 전혀 없었다.
‘주석 이승만’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논란이 있었다. 심지어 북한이나 친북 성향의 학자들은 박헌영이 이승만을 주석으로 추대한 사실을 들어 “박헌영은 미제의 간첩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허무맹랑한 주장이다. 그저 당시의 지명도를 바탕으로 백지 상태에서 내각을 구성할 때 이승만은 좌익에서조차 첫손 꼽지 않을 수 없는 비중을 갖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자연히 이승만이 귀국했을 때 첫 번째 도전은 좌익 쪽에서 왔다. 귀국 다음날 여운형ㆍ허헌(許憲)ㆍ이강국(李康國) 등 좌익 인사들이 이승만의 숙소인 조선호텔로 찾아와 정식으로 주석에 취임해줄 것을 요청했다. 당시 언론에서 ‘민족의 영웅’ ‘최고의 지도자’로 칭송받고 있던 이승만은 정중하게 주석 취임을 거절했다. 이승만은 태생적으로 좌익과는 함께 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워낙 좌익 세력의 힘이 컸기 때문에 날을 세우는 것은 위험천만이었다.
그렇다고 우익이 일치단결해서 이승만을 민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승만에게는 자기 세력이 없었다. 한민당이 자신들의 지도자가 되어줄 것을 부탁했지만 이승만은 굳이 분류하자면 토착세력인 한민당보다는 김구(金九)가 이끄는 임시정부 쪽이었다. 김구를 비롯한 임정 인사들은 아직 귀국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주일 가량 정국을 관망하던 이승만은 10월 23일 조선호텔로 전국 65개 정당·단체 대표 200여명을 모이도록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이승만 이름 석 자만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이 자리에서 이승만은 “덮어놓고 뭉치자”고 호소했다. 이렇게 해서 건국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정당통일운동협의체인 ‘독립촉성중앙협의회(이하 독촉)’를 발족했다.
일단 이승만은 ‘대통합’의 명분을 장악했다. 공산당 계열이나 임시정부 쪽에서는 불만이 없을 수 없었지만 거부할 명분도 마땅치 않았다. 좌익과 임정의 도전에 대한 노회한 정치가 이승만의 첫 번째 응전이 바로 ‘독촉’이었고 그것은 대성공이었다. 명분 장악으로 그의 입지가 훨씬 넓어졌기 때문이다.
응전에 대한 재도전은 박헌영 쪽에서 먼저 제기되었다. 10월 30일 박헌영은 ‘친일파 청산’을 통합의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무조건 통합론과 조건부 통합론이 대립하고 있었다. 결국 조선공산당은 2주가 지난 11월 16일 독촉 탈퇴를 선언했다. 이승만의 구상에 약간 금이 가 버렸다.
이런 가운데 11월 23일 김구의 임정파가 역시 ‘개인’ 자격으로 김포에 내렸다. 이 날 저녁 이승만이 김구의 거처로 찾아갔고 다음날 이승만은 김구를 미 군정청장 하지 장군에게 소개했다. 그러나 이미 이승만과 김구의 묘한 신경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12월 3일 오전 김구는 자신의 정통성을 과시하듯 숙소인 경교장에서 임정 전 국무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역사적인 첫 국무회의를 열었다. 이승만도 참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거나 이승만의 공식직함은 임정주미외교위원장, 즉 주미대사 격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미 군정청은 임정은 말할 것도 없고 인공을 비롯한 어떤 단체도 정부로 인정치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 놓고 있었다. 경교장 국무회의는 이런 미 군정청의 방침에 정면으로 맞서는 행위였다. 이날 오후 임정 관계자들은 하지와 아놀드 군정장관을 방문해 임정의 지위 보장을 요구했다. 그러나 “국제적 승인 없이는 합법적 정부로 인정할 수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상황은 이승만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임정이 인정을 못 받는다면 족쇄가 될 수도 있는 ‘주미외교위원장’이라는 자리도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박헌영의 인공이나 김구의 임정이나 이승만의 독촉이나 ‘임의단체’이기는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다소 소강 상태를 보이던 정국은 12월 28일 미·영·소 3국 외상의 모스크바 3상회의 결과가 전해지면서 요동치기 시작했다. ‘한국을 5년간 신탁통치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에 가장 강하게 반발한 쪽은 김구의 임정 세력이었다. 이 날 이승만은 신탁반대를 골자로 하는 성명서 한 장을 발표한 것이 전부였지만 김구는 즉각 긴급국무위원회를 열어 ‘신탁통치 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를 설치했다. 해방정국에서 김구의 임정이 처음으로 주도권을 장악하는 순간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다음날 우익진영의 신탁 배격 대표자대회가 열리는데 첫 번째 요구항목이 ‘신탁통치 배격’이 아니라 ‘연합국에 임시정부 즉시 승인 요구’였다는 사실이다. 즉 임정세력은 다른 우파 진영을 끌어들여 반탁운동을 중경 임시정부 추대운동으로 끌어가려 하고 있었다.
12월 31일 임정 내무부장(내무장관) 신익희(申翼熙)는 “현재 전국 행정청 소속의 경찰기구 및 한인 직원은 전부 임시정부 지휘하에 예속케 함”이라는 포고문까지 발표했다. 당시로서는 유일한 무장력이던 경찰기구의 접수를 선언한 것이다. 미 군정에 대한 정면도전이었다. 결국 다음해 1월 1일 하지는 김구에게 강력경고를 했고 김구도 한걸음 물러섰다. 1차 신탁반대운동은 이렇게 끝났다. 이 과정에서 12월 30일 한민당의 지도자 송진우(宋鎭禹)가 반탁노선을 함께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암살당했다.
1차 신탁반대운동에 대해 이승만은 소극적이었다. ‘반탁을 하되 반미나 미 군정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1946년 1월 2일 소련의 사주를 받은 조선공산당을 비롯한 좌익 세력이 느닷없이 신탁지지를 선언하고 나섰다.
2차 신탁반대운동이었다. 이번에는 미 군정과 대립하는 게 아니라 좌우대립의 양상이었다. 한 달여 동안 계속된 반탁·친탁 투쟁은 국민의 여망을 등에 업은 반탁세력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다.
이후 미 군정은 2월 14일 정부수립의 전 단계로 ‘남조선민주의원’이라는 기구를 창설한다. 우파인사들이 중심이 된 민주의원에서 이승만은 의장, 김규식(金奎植)은 부의장, 김구는 총리에 선임된다. 두 차례의 신탁반대운동을 통해 주도권을 장악한 김구는 다시 실권을 이승만에게 넘기게 된다.
그러나 이승만에 대한 새로운 도전은 미 군정의 하지로부터 왔다. 3월 20일 열리는 한국의 신탁문제를 다룰 미ㆍ소공동위원회를 앞두고 하지는 이승만을 의장직에서 하차시켰다. 불과 한 달 만이었다. 이유는 소련과의 협상에 확고한 반공주의자 이승만이 걸림돌이 될 것을 우려한 때문이었다.
미ㆍ소공위가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동안 이승만은 지방유세에 나선다. 정치가 이승만의 탁월함은 여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이미 ‘위대한 독립운동가’라는 명망에 ‘독촉’이라는 조직을 갖춘 이승만은 미 군정과의 관계가 좋지 않자 대중의 지지 획득을 위한 전국 순회강연에 나선 것이다. 유명한 ‘단독정부 수립’이라는 정읍 발언이 나온 것도 바로 이 때였다.
‘공산당 배격’을 골자로 하는 정읍 발언이 나오자 좌익 세력의 연합체인 남조선 민주민족전선은 말할 것도 없고 김구의 한독당까지 반발하고 나섰다. 한민당만이 이승만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좌우가 극한으로 대립하는 상황에서 김구의 설 자리는 오히려 좁아지고 있었다. 결국 이 무렵 이승만의 독촉과 김구의 신탁통치반대국민총동원위원회가 하나로 통합해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발족하는데 이승만이 의장, 김구가 부의장으로 선출된다. 적어도 이승만과 김구의 정치 투쟁에서 이승만은 유리한 고지를 확고히 했다.
이에 하지는 여운형과 김규식을 하나로 묶는 좌우합작을 추진하면서 이승만을 압박하려 했다. 당시 하지는 “이승만은 한국에서 탄생할 어떤 형태의 정부에도 참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장담하기까지 했다. 당시 하지의 말은 곧 법이었다.
이승만은 고립무원에 빠졌다. 사실 하지가 좌우합작 정부를 세우겠다고 했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이승만은 권력과 원칙의 갈림길에 섰고 권력을 버리고 원칙을 택했다. 공산당과의 협력은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1920년 3월 콜로라도주 덴버시의 한 농장에서 농기구를 들고 있는 이승만(가운데). 미국의 동포들은 독립운동 자금을 만들기 위해 농장을 조성했다.1946년 11월 23일 이승만은 새로운 지지세력을 얻기 위해 도미(渡美) 의사를 밝힌다.
그러나 실제로 이승만이 미국행에 나서는 것은 열흘이 지난 12월 4일이었다. 하지와 미 국무부의 방해공작이 심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도쿄에 있던 맥아더의 도움으로 이승만은 우여곡절 끝에 12월 7일 미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승만은 1947년 4월 21일까지 무려 4개월14일 동안이나 미국에 머물며 자신에 대한 지지세력 확보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사실 이승만이 미국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미국 행정부나 의회가 그에게 호의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3월 12일 트루먼 대통령이 의회에서 ‘트루먼 독트린’을 발표했다. 소련과의 협력에서 반공노선으로 돌아서겠다는 선언이었다. 트루먼이 이승만을 지지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양상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승만의 천운(天運)이었다. 4월 21일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이승만은 더 이상 ‘떠날 때의 이승만’이 아니었다.
귀국 후 이승만은 남한만의 정부 수립을 위한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그가 밝힌 구상은 ‘미 군정과 합작으로 보통선거법을 만들고 총선거를 통해 과도정부를 수립한 다음 이 정부를 유엔에 참가시켜 남북통일을 추진해간다’는 것이었다.
한편 여전히 좌우합작, 미ㆍ소공위에 집착하고 있던 하지는 심지어 5월에 재개되는 미ㆍ소공위에 방해가 될 것을 우려해 이승만을 2개월여 동안 가택연금해 버렸다. 그러나 하지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미ㆍ소공위가 궁극적으로 결렬될 경우 그 책임을 자신이 고스란히 덮어써야 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소(對蘇) 시각이 바뀐 것도 그로서는 큰 부담이었다.
오죽했으면 하지는 설사 좌우합작 노력이 실패하더라도 정권이 이승만에게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7월 1일 84세의 서재필(徐載弼)을 한국으로 데려왔겠는가. 당시 이승만은 자신의 스승이기도 한 서재필이 하지의 초청으로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서재필이 아니라 서재필 할애비를 불러 봐라 되나” 하고 흥분했다고 한다. 물론 서재필은 대안이 될 수 없었고 쓸쓸히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국내의 이런 정세와 달리 국제사회에서는 트루먼 독트린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미국의 마셜 국무장관은 9월 17일 한국문제를 UN에 상정했다. 미ㆍ소 점령지구에서 조속히 총선거를 실시하되 이를 감시할 UN위원회를 두는 방안이었다. 이승만의 구상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 1948년 1월 8일 UN위원단이 한국에 도착했다. 군정을 해체하고 한국인에 의한 독립정부를 세우기 위함이었다. 이승만은 절대 환영했고 김구는 “남한만의 단독선거는 절대 반대한다”고 선언했다. 이미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련이 위원단의 입북을 반대하면서 남북한 동시 총선거는 불가능해졌다. 논란 끝에 위원단의 크리슈나 메논은 북한 측에 대해서는 인구비례에 따라 의석을 공석으로 남겨두고 국회의원 수는 남북 통틀어 200명으로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UN에 제출했다.
‘이승만 구상’은 순조로운 듯했다. 그런데 이 때 김구와 김규식이 단정(單政) 노선 반대를 명분으로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3월 12일 남한만의 총선거에 불참한다는 입장을 표시했다. 그러나 그것은 이승만에게는 도전거리도 되지 않았다. 대세가 이미 이승만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흘이 지나서야 두 사람을 비판하는 짤막한 성명을 발표한 데서도 당시 이승만의 자신감을 알 수 있다. “좌익 파괴분자 외에는 기권할 사람이 몇 안 될 줄 믿는다.”
실제로 4월 3일 제주도에서는 남노당 계열이 총선반대를 명분으로 폭동을 일으켰다. 4월 19일 김구가 북한으로 갔고 얼마 후 김규식도 38선을 넘었다. 그러나 5월 5일 북한에서 돌아온 두 사람은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5월 10일 95.5%의 투표율을 보이며 제헌국회 선거는 성공적으로 치러졌고 이승만은 초대 국회의장으로 선출됐다.
▲ 1950년 9월 29일 서울 수복 후 중앙청 기념식에서. 이승만 대통령 내외와 맥아더 사령관(오른쪽)의 모습이 보인다.
7월 17일 자신의 구상대로 대통령제를 관철시킨 헌법 제정이 이뤄졌고 3일 후 국회에서 실시된 정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은 180표라는 압도적 다수의 지지로 초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구 13표, 안재홍 2표, 무효 1표였다. 그 한 표는 미국 시민권자 서재필을 찍은 것이었다고 한다.
이 후 초대내각 조각(組閣)을 마친 이승만 대통령은 8월 15일 일제에 의한 조선지배의 상징이던 중앙청 건물 앞 광장에서 자신의 지원자 맥아더와 견제자 하지가 귀빈으로 참석한 가운데 ‘대한민국 정부수립 선포식’을 가졌다. 국권을 상실한 지 38년 만에, 해방 3년 만에 지구상에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나라가 탄생했다.
이한우 조선일보 경영기획실 기자
이승만 그는 누구인가
독립운동가이자 ‘건국의 아버지’
임정·하와이에서 독립운동… 재미동포 청년들을 미군 특수부대에 파견하기도
▲ 1910년 6월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박사학위를 받은 이승만.
이승만은 ‘준비된 국부(國父)’, 대한민국을 세우기 위해 태어난 ‘건국의 아버지’다. 의외로 간단하다. 북한이 주도적으로 통일하면 통일조국의 아버지는 김일성이 되는 것이고 남한이 주도적으로 통일하면 이승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좌우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의 문제요, 현실의 문제다.
지금이야 마구 이승만이라고 부르지만 50대 이상에게는 ‘이승만 박사’라고 해야 자연스러운 그는 1875년 3월 26일 황해도 평산군 능내에서 몰락한 선비 이경선과 김해 김씨 사이에서 6대 독자로 태어났다. 고종 12년 때였다. 3살 때 한양(서울)으로 이사와 지금의 서울역 근처 우수현(雩守峴)에서 스무 살까지 살았다. 그의 아호 우남(雩南)도 이 시절을 그리워하며 지은 것이다.
여러 차례 과거시험에 낙방한 청년 이승만은 1894년 신학문을 배우기로 결심하고 배재학당에 입학한다. 당시 배재학당에는 “주시경은 한글 연구하러, 이승만은 정치하러 배재를 다닌다”는 말이 떠돌 정도로 일찍부터 현실 정치에 관심을 보였다.
2년 후 배재를 졸업한 이승만은 오늘날의 시민운동이라 할 수 있는 독립협회에 들어가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1898년 3월 10일 제1차 만민공동회에서 뛰어난 웅변술로 열변을 토해 장안의 유명인사로 떠오른다.
▲ 1903년 복역중인 이승만.그러나 수구세력의 견제로 24살 때인 1899년 1월 9일 이승만은 ‘역적모의를 했다’는 죄목으로 투옥된다. 장장 5년7개월간의 옥살이가 시작된 것이다. 종신 징역형을 선고 받은 이승만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도서관을 만들고 영어사전을 집필했다.
외국인 선교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기독교로 개종했다. 심지어 함께 수감 중인 죄수 40여명을 기독교에 입문시키기도 했다. 또 1910년에야 출판되지만 옥중에 있으면서 자신의 근대화 구상을 담은 ‘독립정신’이라는 첫 번째 저서도 집필했다.
1904년 8월 출옥한 이승만은 민영환(閔泳煥)의 밀서를 휴대한 채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11월 도미길에 오른다. 어렵사리 시어도오 루스벨트 대통령을 만나기는 했지만 힘없는 나라의 무명청년의 호소에 귀를 기울일 루스벨트가 아니었다. 밀사역 실패에 실망한 이승만은 미국에 남아 공부를 하기로 결심한다.
1905년 2월 윌버 학장과의 개인면담을 거쳐 조지 워싱턴대 2학년 2학기에 입학한 이승만은 2년 후인 1907년 6월 졸업한다. 귀국이냐, 공부냐를 고민하던 이승만은 9월 하버드대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1년 만에 석사과정을 끝낸 이승만은 귀국을 원했으나 부친의 만류로 미국에 더 남게 되는 바람에 프린스턴대 박사과정에 들어간다. 1910년 봄, 조국의 운명이 일본의 손아귀로 들어가고 있을 때 ‘미국의 영향을 받은 중립’이라는 제목의 국제법 박사학위 논문을 완성한다.
이승만 박사는 이후 여러 가지 고민 끝에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결심한다. 거점은 하와이. 그곳에서 이승만 박사는 크게 세 가지 사업을 벌였다. 하나는 교육사업, 둘째는 교회활동, 셋째는 교민단체를 통한 독립운동이었다.
1918년 이승만 박사는 한인기독학원, 한인기독교회를 창설했고 하와이 동지회를 설립했다. 당시는 1차대전이 막바지를 달리고 있었고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에 대한 기대가 높을 때여서 이승만 박사는 상당히 고무돼 있었다. 독립의 기회가 올 수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때마침 1919년 조국에서는 3·1운동이 일어났다. 이후 국내외 각지에서 ‘임시정부’가 선포됐다. 가상의 정부였지만 각료명단까지 발표됐다. 그것을 보면 당시 독립운동의 지형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이승만은 5개 임시정부에서 각각 국무총리, 부도령(副都領·부통령), 국무총리, 집정관총재(대통령) 등으로 추대됐다.
이 중 법통은 이승만 박사를 집정관총재로 추대한 ‘한성정부’가 잇기로 하고 상하이에 임시정부를 설치하는 것으로 합의가 이뤄졌다. 이렇게 해서 이승만 박사는 상하이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에 올랐다.
그러나 좌파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우파에서도 이승만 박사의 노선을 지지하지 않는 세력이 많았다. 사실 이승만 박사도 대통령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 명칭을 활용해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을 추진하는 데 더 큰 노력을 쏟았다. 이런 와중에 이승만 대통령은 1925년 3월 임시정부 의정원에 의해 탄핵을 당했다. 5년6개월의 임정 초대 대통령직을 불명예스럽게 마감한 것이다.
한동안 이승만 박사의 외교활동에도 암흑기가 찾아왔다. 1940년 일체의 대외활동을 자제한 그는 미국인을 대상으로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을 폭로하는 저서를 집필했다. 그로서는 마지막 독립운동인 셈이었다. 그것이 바로 영어로 된 ‘일본 내막기(Japan Inside Out)’이다. 이 책은 1941년 초 출간됐으나 처음에는 미국인들로부터 야유에 가까운 비평을 받았다. 그러나 “일본은 알래스카나 하와이를 공격할 수 있다”는 대목이 들어있는 이 책은 그 해 12월 8일 일본의 진주만 폭격으로 하루 아침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승만 박사는 다시 독립운동을 재개했다. ‘미국의 소리’ 방송을 통해 소수나마 고국에 있는 동포에게 독립의 희망을 설파했고 미군과의 협동작전을 구상하기도 했다. OSS계획에 참여해 재미동포 청년들을 미군 특수부대에 파견하기도 했다. 중국에 있는 김구의 임시정부와 함께 국내 진공작전을 수립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다. 당시 이승만 박사는 미국에 군사적 기여를 해야 전후에 독립을 보장 받을 수 있다고 보았다.
1945년 8월 15일 조국은 해방됐고 치열한 정치투쟁 끝에 3년 후인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위업을 달성한다. 기쁨도 잠시, 김일성의 남침으로 6·25 전쟁이 터졌고 3년 동안 전 국토는 초토화됐다. 이런 가운데도 이승만 박사는 특유의 외교력을 발휘해 미국으로부터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얻어냈다. 독도를 넘보는 일본을 겨냥해 ‘이승만 라인(평화선)’도 선포했다.
사실 이승만 박사의 공(功)이 태산이라면 과(過)는 언덕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로서는 과도 커보였다. 결국 이승만 박사는 1960년 4·19 혁명으로 인해 권좌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리고 다시 망명지 하와이로 떠나 말년을 보냈다. 1965년 90세의 이승만은 마침내 주검이 되어 조국으로 돌아왔다. 그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졌다. 언덕으로 태산을 덮어버린 것이다.
이한우 조선일보 경영기획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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