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취임식서 6명의 종교지도자가 기도

역대 최대 인원...각기 60-90초씩 기도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6명의 종교지도자가 초청받아, 각기 60-90초씩 기도를 하게된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으로는 이례적으로 6명이라는 최다 인원을 초청, 순서를 맡긴것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다양성 표출, 각 종교분야를 모두 아우르러는 의도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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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임 하루를 앞두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     © 크리스찬투데이

 

기도순서를 맡은 6명은 다음과 같다. 가톨릭계에서는 뉴욕 대주교인 티모시 돌란 추기경, 기독교계에서는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와 라울라 화이트 목사, 사무엘 로드리게스 목사, 웨인 잭슨 주교. 유대교에서는 마빈 하이어 시몬 비젠탈센터 소장. 반면 이슬람과 불교계에서는 참석자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레이엄 목사는 그 부친도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 자주 참석하였던 인연을 갖고 있으며 웨인 잭슨 주교는 흑인계에서 영향력이 지대하다. 로드리게스 목사는 보수성향이며 북남미에 1억명 이상의 신자를 통해 영향력을 끼지고 있는 전미 히스태닉기독교지도자 컨퍼런스(NHCLS) 대표 자격으로, ‘번영신학’을 주창하는 여성목사회자 파울라 화이트 목사는 텔레반겔리스트로 명성을 올렸기에 초청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레이엄 목사와 화이트 목사에 대해 케빈 크루즈 교수(프린스턴대학교 역사학)는 "그레이엄 목사는 기독교 민족주의를, 화이트 목사는 기독교 자본주의 사상을 포용하는 트럼프의 이데올로기를 상징적으로 대변해주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 크리스찬투데이

가져온 곳: USA 아멘넷

난민정책 '잘못' 7차례 사용, 존경 표하면서도 혹평
냉랭한 美-獨관계, 순탄하지 않은 美-EU관계 전망도

(베를린=연합뉴스) 고형규 특파원 = 냉전 시기 미국 데탕트 외교와 국제질서 대변화를 주도한 '외교의 달인'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어느 순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미국 대통령이) 유럽과 대화하고 싶을 때 누구에게 전화해야 하는가?"

유럽 최대 발행 부수를 자랑하는 독일 대중지 빌트가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그의 뉴욕사무실에서 합동 인터뷰할 때 카이 디크만 빌트 발행인이 키신저 전 장관의 이 말을 옮기며 트럼프 당선인에게 물었다.

16일(현지시간) 자 빌트에 실린 문답을 보면, 디크만 발행인이 "누구 전화번호로 전화하겠는가"라고 묻자 트럼프 당선인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라는 대답을 기대한 질문임을 눈치채고는 메르켈 총리와 유럽연합(EU)에 대한 자기 생각을 가감 없이 밝힌다.

트럼프 당선인은 "나는 메르켈이 (세계의) 가장 중요한 정부수반들 중에서도 현저하게 중요한 한 사람이라고 말하겠다"고 답하고서 묻지도 않은 EU로 화제를 돌려 "영국을 보라, 그리고 EU를 보라"면서 "EU는 독일이다. EU는 독일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그러고는 영국의 EU 탈퇴를 뜻하는 브렉시트를 "현명한 결정"이라고 보는 자신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재차 브렉시트 결정 이후의 상황을 두고 "잘 돼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디크만 발행인에게 "메르켈 총리는 잘 지내고 있느냐"라고 안부를 묻는 걸 잊지 않은 트럼프 당선인이지만, 이미 메르켈 총리의 '레거시'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개방적 난민정책에 대해서는 혹평을 쏟아냈다.

임기말 고별 방문지로 베를린을 찾아 총리직 4연임 도전에 나선 메르켈 총리를 만나서 "나라면 메르켈 총리에게 한 표를 던지겠다"고 했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미국의 차기 대통령 트럼프 당선인이었다.

트럼프 당선인은 "당신도 오바마처럼 메르켈에게 표를 주겠느냐"라는 질문에 "글쎄, 일단 나는 (오는 9월 독일 총선에서) 메르켈의 경쟁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또한 메르켈 역시 모를 뿐 아니라 그를 만난 적도 없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가 훌륭한 지도자라는 느낌이 있지만, 그러나 그는 최악의 재앙적 실수를 했다"고 말하고 "모든 불법자를 독일로 유입되도록 허용한 것"이라며 메르켈표 난민정책에 대한 평소 생각을 밝혔다.

조부가 독일 출신인 트럼프 당선인은 그러면서도 앞서 문답에서 독일을 자랑스럽게 여긴다거나, 독일은 자신에게 전적으로 특별한 그 무엇이라고 말한 것처럼 메르켈 총리에 대해서도 "존경하고, 좋아한다"라고 호감을 거듭 표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그러나 어디 출신인지 아무도 모르는 난민을 받아들인 것은 "큰 실수였다"고 또 지적하는 등 모두 7차례 '실수(잘못·mistake)'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는 특히, "사람들이란 실수를 하는 것이지만, 그건 아주 큰 실수였다고 나는 생각한다"고도 말하고 독일로 가장 많은 난민 유입 부담을 안긴 시리아에 '안보(안전) 구역'을 둬 난민 문제에 대응했어야 대가를 덜 치렀을 것이라는 견해도 내놓았다.

트럼프 당선인은 "당신에게 전형적인 독일다움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고는 "나는 '질서정연함'(orderliness)을 선호하고, 힘(strength)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앞서 일요신문 빌트암존탁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니트를 통해 조사한 결과로는 응답자의 68%가 트럼프 취임이 미-독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리라 전망했다. 반대로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는 쪽은 16%에 불과했다.

un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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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ilbe.com/ (동영상원본 추가편집)



[트럼프 발언에 비친 對北전략, 중국을 때려 북한 묶는다]
- 트럼프의 승부사 기질
美 자극, 대화하자는 신호 보낸 김정은에게 '어림없다'는 답신
- 백악관 고문 내정자
"北이 탄도미사일 만드는 동안 우리가 그냥 앉아있진 않을 것"
WSJ "北 시험발사땐 격추하라"
- 對중국 강경책 예고
北核 풀려면 중국부터 바꿔놔야..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 폐기

오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 준비에 바쁜 워싱턴이 갑자기 날아온 북한 신년사로 급랭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1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가 마감 단계"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곧 미국 본토까지 타격하는 ICBM을 갖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2일(현지시각) 트럼프 당선인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즉각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받아쳤다. 이슬람 테러조직이든, 북한이든 미국 안보를 직접 위협하는 세력은 좌시하지 않는다는 게 트럼프의 기본 입장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아직 구체적인 북핵 해법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발언을 종합하면 트럼프의 해법은 '중국을 때려 북한을 압박한다'로 요약된다. 트럼프는 지난달 11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왜 하나의 중국 원칙에 얽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있고 중국이 그 문제를 풀 수 있는데 전혀 돕지 않는다"고 했다. 대선 유세 중에도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최근 워싱턴의 외교가에선 중국을 겨냥한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이나 개인 제재)'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트럼프 백악관 고문 내정자인 켈리엔 콘웨이는 이날 CNN 인터뷰에서 "북한이 시애틀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을 보유하는 데 1년을 남겨두는 동안 가만히 앉아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모종의 조처를 할 것이란 의미다. 그는 또 중국 등을 동원한 대북 제재 방안에 대해 "제재와 압박, 맞는다. 중국과 여러 친구가 더 많은 일을 하면 좋겠다"고 밝혔다.

북한과 대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지난해 유세 중 "김정은 위원장과 햄버거를 먹으며 대화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평양 신년사는 워싱턴 분위기를 강경으로 돌려놓았다는 분석이다. 3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북한이 ICBM을 시험 발사하면 미국은 이를 격추해야 한다"고까지 말했다. 미군이 한반도 주변에 해군 함정 등을 이용한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보유한 만큼 북한 ICBM 격추는 북핵 개발을 둔화시키는 동시에 군사적 억지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도 2일 CNN에 출연해 "북한은 무력시위용이 아니라 실전용으로 핵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트럼프 정부는 이 계획을 중단시키는 것을 (외교·안보 정책의) 가장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 일각에선 북한이 미국을 직접 핵 공격할 능력을 갖추기 전에 선제공격 등 군사적 방안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런 강경 분위기 뒤에는 트럼프 당선인이 있다. 그는 2000년 개혁당 후보로 대선에 도전했을 때 펴낸 책 '우리에게 걸맞은 미국(The America We Deserve)'에서 북한 핵 시설에 대한 '정밀 타격(surgical strike)'의 필요성을 제기했었다.

우리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트럼프의 트위터 글은 "신년사를 통해 핵 능력을 과시하려 한 김정은에게 '도발하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경고를 보낸 셈"이라며 "앞으로 트럼프 당선인 측과 긴밀히 접촉하며 한·미 북핵 공조 체제를 가동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김정은의 신년사에 즉각 반응한 것은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을 반영한 측면이 있다고 분석한다.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보통의 수단으로는 김정은 같은 성격을 제압할 수 없다"며 "트럼프 당선인의 메시지는 과감한 정책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북한에 실질적 고통을 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은 "트럼프의 즉각적 반응은 '기싸움에 밀리지 않는다'는 성격을 보여준 것"이라며 "정책적으로는 '중국을 통해 평양으로 가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ICBM 개발이 마무리 단계라는 말로 미국을 자극한 것은 '미·북 직접 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였다. 그러나 트럼프 당선인은 "그런 일은 없다"며 김정은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대신 중국을 통해 북핵 문제에 접근함으로써 김정은의 구상을 허물겠다는 전략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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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 福建省 土樓

世界文化遺産 2008年 指定

복건 서부와 남부의 숭산준령에 분포되어 있는 福建土樓

독특한 건축풍격과 유구한 역사문화로 유명하다.

건축 모양은 원형, 정방형, 타원형등 여러가지로 되어 있다.

복건토루는 宋,元 시기에 형성된 것으로서 세계적으로 유일한

산간지대의 대형 토루건축이다.

토루(土樓 / TuLou) 는 중국 객가인(客家人)들의 주거양식이다.

객가인은 외지에서 온 사람들, 타향에 사는 사람들이란 말로

삼묘족의 후예라고 한다.

중국의 유태인이라 불리우며, 전 세계에 수천만명(5~8천만)이

흩어져 살고 있으며 대만인구의 15%가량,

동남아시아 화교의 상당수가 객가인이라 한다.

이들은 머리가 좋고 부지런해서 유태인들과 세계 상권을 쥐고

다툴만큼 경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중국 사회(중원) 속에서 끊임없이 박해를 받아온 소수민족 객가인들은

해외로, 산골로 숨어들었고, 타민족으로부터 집단 방어하기 위해

토성과 각진형태의 집단 주거형태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토루인 것이다.



“박 대통령 내려오라”고 하면 공연할 수 있게 해주겠다?



가수 윤복희씨가 어제(16일) 새벽, 자신의 트위터에 충격적인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


윤복희씨는 예정되어 있던 콘서트를 취소하기로 했다면서 거기에 대한 배상을 극장 측에 해주게 되어서 어이없게 관객들은 표 값을 다 물려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자신을 괴롭히던 어떤 정치가가 공연을 못하게 해서 거기에 대한 배상을 극장 측에 해주게 되어서 어이없게 관객들은 표 값을 다 물려줬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나선 정치하는 사람들이 절 보고 박 대통령 내려오라고 말하면 공연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고 하면서 전 어이가 없어서 난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했다.”고 밝혔습니다.


 

 

아래는 윤복희씨의 글 전문입니다.

 

전 깊은 잠을 자다가

일어났어요.

내일 공연인데 더 자야하는데.

 

갑자기, 제가 81년에 국립극장에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공연할 때

검은 정장을 한 남자들이

제 분장실에 들어와서 절 보고

가자는 거예요.

 

어딜요?”

우리 장군님이 모시고 오라고 했대요.

해서 전 못갑니다. 지금 공연해야 해요.”

들어올 관객들까지 못 들어오게 하면서 가자는 거예요.

제 목에 칼을 꼽아도 전 못갑니다. 전 공연해야 해요.”

 

그러는 저를 한 이틀간 괴롭히다가

그들은 돌아가고 우린 계속 공연을 했던 기억.

 

그리고 제 아버지 되시는

윤부길 선생님께서 제가 아주 어릴 때

정부에 협조해서 위문 공연을 하라니까

아버지가 전 그런 건 못 합니다

단호히 거절.

 

그들은 아버지에게

당신이 설 무대는 우리가 못 서게 한다며

아버지가 공연할 무대를 다 공연 못하게 해서

아버지는 충격으로 돌아가셨어요.

그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어요.

 

제가 이달 24일 공연할 곳을, 최근 저를 괴롭히던 정치가가

공연을 못하게 해서 거기에 대한 배상을 극장 측에 해주게 되어서

어이없게 관객들은 표 값을 다 물려주고.

 

단순히 정치하는 사람들이 절 보고

박 대통령 내려오라고 말하면

공연할 수 있게 한다면서.

 

전 어이가 없어서 난 그렇게는 할 수 없다고 했어요.

 

전 정치를 모르지만 이건 아닌 것 같아서요.

 

66년간 무대에서 공연한 사람을

자기들의 야망에 우리를 이용하려는 걸 보고

제 양심으로는, 전 무대에 서는 배우이지

정치적으로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아니다 하고

공연을 안 하기로 했어요.

 

전 국민을 위로하며, 웃겨주는 광대이지

정치적 노리게는 아니라고.

 

우리 아버지는 쇼크로 돌아가셨어요.

허나 전 우리 주님이 계셔요.

 

전 주님께서 들어 쓰시는 도구이지

그들이 아무리 언론에서까지 거짓으로 저를 매도해도

제 진실은 주님이 아셔요.

 

전 이들을 보고 빨갱이라 사탄이라 했어요.

후회 없어요.

 

저의 이런 판단이 그동안 저를 보아온 분들이

그들의 편에 서셔서 저에게 욕을 하신다면

너무나 슬프지만

 

언젠가 제 진실을 아실 거라 전 믿어요.

 

모처럼 할 콘서트를 그들이 못하게 했지만

전 계속 쉬지 않고 무대에서 여러분을 사랑하고 위로하고

나라를 위해 기도할 거예요. 사랑해요 여러분.



글 출처: 윤복희님 트위터






"박 대통령 내려오라" 하면 공연을 다시 하게 해주겠다?

그 정치인이 누군지를 모르겠지만,

아마도 야당 정치인으로 보여집니다.


입만 열면, 서민 팔고, 인권 팔아먹지만,

뒤로는 온갖 갑질을 일삼는

진보(?) 정치인의 추악한 민낯입니다.


권력의 자리에 앉게 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권력맛에 취해서

지켜야 할 선을 넘어버리게 됩니다.


이건 어느 정치인이고 정당이고를 떠나서,

지금껏 있어왔던 일입니다.


문제는 국민을 속이고

대중을 기만하는데 있습니다.


사실 이번 윤복희씨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진보좌파 쪽 정치인들 가운데,

서민을 위하고 인권을 위하는

그런 특권 없는 소박한 이미지와는 반대로

과한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되려 서민들을 울리는

갑질을 일삼았던 적이 여러번 있었습니다.


진보좌파 쪽 정당이나 정치인들의 경우,

자신들의 이미지를 선한 쪽으로 주입시키고 고착화시켜서

자신들은 마치 서민의 편, 대중의 편에 서 있고,

일반서민들과 같은 눈높이를 맞추고,

함께 소통하며, 낮은 자세로 정치를 하는 것처럼

대중을 선동해 왔지만...


실상을 보면...

독재나 기득권 이미지에 낙인찍힌

보수여당 못지않게, 아니 더 심할 정도로,

온갖 갑질을 일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래는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온갖 기회주의적인 행태를 보이고,

권력의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새누리당도,

최소한 앞에서는 깨끗한 척, 서민적인하며

위선을 떨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야당같은 경우는,

앞에선, 인권을 부르짖고,

정의사회, 공정사회,
화합과 소통을 부르짖으며,
자기들은 정의로운 척,
깨끗한 척, 서민적인 척,

온갖 '선한' 이미지 메이킹은 다 하면서

정작 뒤에누구 못지않게,

특권 누리면서 갑질 행태를 보입니다!
 
결국 눈에 보여지는 것만 쫓고,
선해보이고 소탈해보이고, 정의로워 보이는
꾸며진 이미지에 취해
그 안에 숨겨진 실체를 보지 못한다면,
어떤식으로 부메랑이 되어
결국 그 피해는 나에게로 되돌아 것입니다!



아래 글을 보면 황당함을 넘어 분노가 일어납니다.


이게 바로,

입만 열면 인권을 말하고, 국민을 말하고

서민을 말하고, 정의를 부르짖던 자들의

특권의식 없는 낮은 자세의 서민적인 행태일까요?



왜 이 '국정농단'에는 침묵하나요?


"군수가 노래를 하면 부안에 예산 100억 원을 내려주겠다."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과 관련해 청문회 등에서 온갖 막말과 갑질로 화제가 되고 있는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과거 발언이다.




작년 8월 22일 안 의원은 전북 부안으로 야유회를 갔는데, 술자리에서 김종규 부안 군수에게 노래 한 곡 불러보라며 저런 발언을 했다.


김종규 군수는 결국 마이크를 잡고 '안동역에서'를 열창했다고 한다.


직장 상사가 자기 돈으로 용돈을 주겠다며 부하 직원에게 저런 식으로 노래를 시켜도 갑질이니 뭐니 하며 난리가 날텐데, 자기 돈도 아닌 국민 혈세로 만든 예산을 가지고 군수가 노래를 부르면 100억을 주겠다는 망언을 한 거다.


어디 그 뿐만인가.

같은 술자리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며, "야당 예결위 간사가 되고나니 현직 장관도 굽신거리고 국회의원도 눈을 맞추려 한다", "권력이 무엇인지 알겠다" 등의 발언도 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동네 삼류 양아치가 옹졸한 권력을 과시하며 주위 사람들에게 갑질을 해대는 꼬라지와 영락없지 않나. 통신사에 의해 정확히 확인된 워딩이 이 정도 수준이니 그가 사석에서 어떤 언행을 하고 다닐지는 뻔하다.


참 고약한 게 뭐냐면, 이런 인간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비판 여론의 선봉장이 되어 온갖 막말을 해대며 영웅인 양 설쳐대고 있다는 사실이다.


참 추악한 게 뭐냐면, 좌우 정치 문제가 아니라 국정농단이라는 범죄의 문제라며 그렇게 열을 올리는 그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국정농단에는 입을 다물거나,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참 슬픈 게 뭐냐면, 이런 말을 하면 또 자기들의 진영논리에 갇혀 정부의 부역자냐며 시비를 거는 인간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 국정농단이라는 사태의 본질에 문제의식을 느껴서 이를 비판하고, 정확한 수사와 문제규명을 위해 대통령의 책임있는 협조를 요구하는 나같은 사람도 광장의 급진적인 논리를 비판하는 순간 박근혜 팬클럽으로 레이블링 되어버린다.


별개의 문제인 야당 의원의 국정농단을 지적하면 정부 편들기로 받아들인다. 이러니 그저 정부 까거나 여당 공격할 건수만 찾던 지극히 정치적인 사람들이 국정농단에는 쥐뿔도 관심없으면서 정의의 사도인 양 설치고 있다.




글쓴이: 우원재 / 리버티타임즈 대표

          [아름다운 유산] 

         황교안 국무총리 부인 

                복음성가 펴내


황교안 총리의 사모되는 분은 '아름다운 유산'이란 복음성가 앨범을 발표한  최지영 씨.

 

1999년 3월7일자 어느 신문..

어머니와 사별하고 유품을 정리하던 중 침대밑에서 나온 어머니 일기장 속에서  [너는 살아생전 하나님을 만나라]는 유언의 글을 발견하고 교회에 출석하게 된 한 자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위대한 유산"이 음반으로 나왔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남겨줄 가장 값있는 유산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하나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통한 믿음의 유산임을 강조하고 있는 이 앨범은, 슬픔과 고통 속에 잠겨있는 성도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주제들이 눈에 띈다.

 

노래를 부른 최지영씨는 원래 영문학을 전공하고 영어강사로 활동하다가 주부복음성가 경연 대회에서 작곡상을 수상하면서 복음성가 가수로 데뷔했다. 


부드러우면서 내면의 강함이 조화를 이루는 음성은 그만의 강점으로 여겨진다.

 

타이틀 곡 "위대한 유산"을 비롯 "사랑", "아무 것도 염려치 말고", "너 근심 걱정 말아라","사랑합니다" 등 11곡이 수록되어 있다.

  

황교안 총리의 부인 최지영 여사는 각 교회의 부흥회를 비롯한 각종 행사에 초청되어 찬양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 교계에선 아름다운 목소리를 소유한 복음성가 가수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러한 최지영 여사의 봉사 활동에 대해서 그녀가 가족사를 밝히지 않아 그를 아는 사람들도 남편이 황교안 총리 후보 시절에도, 몰랐을 정도로 조용한 성격에 오직 믿음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용모와 함께 마음도 아름다운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한편 성일침례교회에 다니고 있는 최지영 여사는 자녀들에게 남겨주어야 할 가장 위대한 유산으로 발표한 앨범을 내놓아 자식에 대한 사랑을 으뜸으로 여기는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지녔다. 

 

황교안 총리는, 5시간 자고 새벽 2시에 일어나 기도하고 성경공부...

 

사법 시험에 합격하고 검사 임용 후에도 줄곧 전도사로서 삶을 살았던 황 후보자의 모습을 부인인 최지영씨의 관점에서 쓰여진 글이다. 


위 글에 보면,

"황교안 총리는 새벽 2시에 일어나 기도 하고 성경공부를 한다"

 

약혼하기 전부터의 사역을 아내는 몰랐었는데, "남편이 나가는 교회에 가보니 전도사로 섬기고 있었고 교인들은 남편에게 전도사 님이라고 했다"고 한다.

 

여기에 "아내는 토를 달아 묻지 않았다. 뭔가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을 거라는 생각만 했을 뿐, 낮에는 사법연수원 연수생으로, 밤에는 신학생으로 낮과 밤을 충실히 살았을 남편을 생각한다면 아내는 존경하고만 싶은 마음, 단 하나 그것뿐이었다"고 씌어 있었다.

 

또한 황 총리의 아내인 최지영 사모에 대해서도  "아내는 사모다. 물론 그럴 준비를 나름대로 하고 있다. 남편은 50세 전후로 목양지를 닦을 것이다"라며  "목회일에 전념할 것을 위해 예비목자로 훈련 받고 있는 것이다.

 

아내는 남편을 진심으로 따를 것이고 남편은 아내와 함께 좋은 목회를 꿈꾸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시간이 지나 2016년...

그 황교안이란 사람은 대한민국의 총리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황교안 총리의 사역의 방향을 바꾸시고, 어쩌면 통일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리더로 세우실지도 모를 일이다. 

 

깨어 분별하는 많은 분들의 기도가 필요하다.

대통령이 된후 백악관은 여태 살았던
제일 작은 곳이라구 쫭비한 트럼프!!




做总统真难..

헐~ 오라 우리 쌈하자!
그래 넌 집이 얼매 잘 사나 보자 심리로
한번 트럼프 집을 구경해밨더니 입이 쩍~
이게 집이야 황궁이야..

미국 <트럼프 타워> 딱 바두 누기겐지 알리지에 
C罗、Bruce Willis 이런 사람들두 
그냥 여기선 세를 들어사는 사람일뿐




 

전부 대리석으로 된 쫭슈



 

이런 장식품들은 전부 24K ..



집에서 골프쳐두 됨


전부 금으로 도배된 식기들..
저기에 음식 담아 먹음 무슨맛일가



 

수두룩한 사치품들




 

책상 테두리두 전부 금이람다




 

루이 16세의 凡尔赛宫을 참고해서 쫭슈했담다



 

 


 

 

트럼프의 일상


 

오바마와 아내의 일상



 

트럼프 가족의 일상



 

오바마 반공실



 

트럼프 반공실



 

오바마 밥상



 

트럼프 밥상



 

오바마가 주말엔 부인들과 같이
귀농생활을 즐긴다면



 

트럼프는 주말 별장가서 쑈싸함




 

58개 의 방,33개 화장실이 있는곳에서
주말에 쑈싸함...쫌 사네..






 

여기두 전부 24K로 도배





 

전용 비행기가 있으니 맘댈 갔다왔다



 

7억 짜리 트럼프 비행기






 

문잡이에 수도꼭지까지 금으로 도배
금 사랑이 대단하신분


 





 

집에 직승 뱅기는 몇대나 있구
전부 트럼프라구 이름 쌔긴
자기애가 강한 사람!


但是从此以后
川普既不能在飞机上漆自己的名字

24K트럼프 오두바




 

스포츠카 따위 안 키우는 트럼프
유람선으로 炫富


저런 집 .. 나두 갖고 싶다 ㅠ ㅠ


 



힐러리 클린턴이 2011년 제네바에서 국제인권의 날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습니다. 일부 인용합니다. 

(출처 http://tvnext.org/2016/10/fb-hillary-gay-rights/)


Hillary-Clinton-2.jpg


“UN이 동성애 이슈를 강조하고 있는 이때 종교적 이유로 이를 반대해서는 안 된다”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및 성전환자들(LGBT)을 국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인종이나 성차별 또는 종교적 차별을 끝내고자 하는 노력과도 같다”

“이러한 종교적인 반대들은, 명예살인, 과부 살인 또는 여성 생식기 절단 등의 과격한 관습들을 정당화하려는 것과도 흡사하다고 하겠다.”

“동성애에 대한 세상의 의견은, 과거 노예제도에 대해 사람들이 그랬던 것과 같이 여전히 변화하고 있으며, 한때 하나님에 의해 신성한 것으로 여겨지던 것들은, 이제는 인권침해라는 비양심적인 것으로 비난 받게 되었다”

“어떤 경우에서도, 이러한 종교적인 이유나 관습들이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인권들을 우선할 수 없다” <인용 끝>


동성애자들을 차별하는 것과 인종차별, 성차별과 같다는 발언인데, 동성애와 인종, 성에는 명백하게 다른 점이 존재합니다. 동성애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지만, 인종과 성은 타고나는 것이죠. 동성애 차별과 인종차별, 성차별은 결코 같을 수 없습니다. 흑인들도 이런 주장을 합니다. 동성애 차별과 인종차별은 결코 같지 않다! 동성애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아래 책을 보시면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http://blog.naver.com/pshskr/220716806784


힐러리 클린턴의 경우 종교적인 이유로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 - 기독교인, 천주교인, 무슬림 등을 살인자와 동급으로 보고 있네요!  반대 = 살인입니까? 지금 현재 미국의 경우 동성애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동성애를 반대하는 분들이 피해를 보고 있습니까? 당연히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이 엄청난 벌금(베이커리의 경우 1억 5천만원 벌금)을 물어가며 역차별을 당하고 있습니다. 동성애자들이 갑인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동성애 반대 = 살인입니까? 


한 때 하나님에 의해 신성한 것으로 여겨지던 것들은 이제는 인권침해라는 비양심적인 것으로 비난 받게 되었다고요? 그러면 하나님도 성경도 비양심적이고 비난의 대상이라는 이야기인가요?


우리는 이런 발언들을 통해서 힐러리 클린턴이 어떤 사람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미국 기독교인들이 제발 현명한 선택을 하기를 바라네요. 

 

라흐마니노프 치유 사건과 

최면술


작곡가/피아니스트인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 1873-1943)는 20세기초 러시아 후기 낭만주의의 거장이었다. 악풍으로 본다면, 러시아의 5 인조인 '국민악파'보다는 차이코프스키의 선에 보다 더 잇댄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작곡가들처럼 라흐마니노프 역시 생시엔 그다지 전반적인 주목을 끌지 못했으나, 그 대신 명 피아니스트로서 대중의 인기를 모아 미국에서까지 연주 여행을 했다. 그는 키 2m의 거인인 데다 손뼘도 13 건반을 잡을 만큼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컸고, 따라서 프란츠 리스트의 작품처럼 어려운 피아노 곡들을 자유자재로 소화하고, 또 그런 작품을 쓰기도 했다. 

Source: houstonsymphony.org


라흐마니노프의 삶에서 가장 흥미롭게 중시되는 대목이 있다. 그가 작품을 전혀 쓰지 못하게 된 일종의 '위기'인 정신적 침체기에 빠져있다가 심리요법사인 니콜라이 달(Nikolai Dahl)의 "정신의학적" 도움으로 '재기'하여 이전보다 훨씬 더 좋은 작품을 쓰게 됐다는 일화이다. 더욱이 그 작품을 그 요법사에게 헌정했단다. 정신의학의 '승리'로까지 일컬어지는 사건이다. 이 기적적인 '재기' 사건 때문에 라흐마니노프는 전기(傳記) 필자들이 즐겨 다루는 영웅이 되었고, 그의 치유사였던 달(Dahl) 역시 덩달아 영웅으로 뜨게 된다. 

그런데 당대의 정신과학이나 정신의학이라는 것은 오늘날처럼 정립된 학문이기보다 거의 대부분 이론과 시술상의 실험단계였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현대 정신의학의 위대한 승리라고 하기엔 의문점이 더 많다. 

필자도 그런 맥락의 의문을 품어왔었는데, 그 시작은 대학 시절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애청하던 시절과 거의 때를 같이 한다. 과연 당대 정신의술에, 또 전반적인 정신의학에 그런 위력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이에 따라, 비슷한 의문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과 글을 알아보고 또 참조하게 된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정신의학의 '전능성' 비슷한 것을 주장하곤 한다. 그런데도 정신병동은 죽음 전 마지막으로 가는 장소가 돼 버리는 사례들이 드물지 않다. 정신의학은 사실 역사 속에서 매우 근자에 발달된 것이다. 그 배후엔 지그문트 프로이드나 카를 융 등의 학자들이 있다. 이것은 또 훗날 킨제이의 성의학과도 연계된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다 오컬트에 깊이 관여됐던 사람들이다. 

믿거나 말거나 이 점은 크리스천 심리학도들이 매우 우려해야 할 사안이다. 자체가 진리인 참 기독교는 오컬트와 무관하며, 또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심리학에서 이들의 학설은 반드시 참조해야 하고 통과해야 하는 기초적 절차와도 같다. 그들의 배후야 어떻든 그들의 이론과 연구 결과가 도움된다는 식이다.  

심리학계에서 감초처럼 쓰이는 에네아그람(에니어그램)도 그렇다. 에네아그람은 교계에서까지 폭넓게 쓰여왔다. 고대 수피 사상(Sufism)의 '지혜'의 일부인 이 인성분류 방식을 맨처음 현대에 도입했다는 게오르기 구르지예프 역시 일종의 오컬티스트에다 술사와 다름 없는 존재였다. 왜 그런 지는 앞으로 다양한 글을 통해 입증해 보이겠다. 라흐마니노프를 치유했다는 달 역시 오컬티스트였다. 



라흐마니노프는 1897년 3월 28일 자신의 역사적 역작인 첫 교향곡을 알렉산드르 글라주노프를 시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했다. 2년 전인 1895년, 1월부터 10 개월에 걸쳐 쓴 야심작이었다. 라흐마니노프는 하루 평균 7 시간을 이 작품에 매달렸고, 그것도 부족해 9월부터는 10 시간으로 늘렸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하게도 대 실패였다. 우선 관현악단의 리허설이 절대 부족했고, 잘 나간다던 지휘자 글라주노프의 악단 관리와 연주 솜씨 또한 형편 없었다. 일설에 따르면, 당시 글라주노프는 술에 취한 상태였는지도 모른단다. 그는 평소 레슨 때도 술병을 숨겨 빨대로 홀짝 홀짝 빨아먹는 버릇이 있는 중독자였기 때문이다. 

연주한 다음 날 음악비평가 세자르 쿠이는 '에짚트의 10 대 재앙'을 그린 음악으로 빗대면서, "지옥 음악원생들이나 갈채할 음악"이라고 혹평했다.  


황당한 현실 앞에 멍멍해진 라흐마니노프는 의욕상실과 우울에 빠져 이때부터 3년간 굵직한 작품이라곤 손에 잡히지 않는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러던 차, 측근의 소개로 최면요법사 달을 만나게 되어 1900년 1월부터 시술에 들어갔다. 

치유 시술 기간은 불과 3 개월이었고, 라흐마니노프는 "완쾌"됐다고 한다. 실제로 치유 후 라흐마니노프가 쓴 피아노 협주곡 제 2번은 전반적으로 아름답기 그지없는 작품으로서 그의 대표작으로, 또한 차이콮스키의 작품과 함께 후기낭만기의 기념비적인 피아노 협주곡의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그런데 라흐마니노프의 이 대작이 대의학자도 아닌, 한낱 실험적인 심리의학 수련생 수준의 풋내기 의사에게 헌정됐다는 사실은 우리의 의아심을 더욱 북돋운다. 이 의사가 불과 석 달만에 그의 침체기를 끝내주고 훌륭한 작품을 쓰도록 도와주었다는 설은 더더구나 그렇다.  


묘한 것은 전기작가들이 이 사건과 과정을 겉 모습 그대로 두려고 할 뿐, 그다지 깊이 다루려고 들지 않는다는 점. 심지어는, 당사자인 라흐마니노프보다 달의 역할을 더 중시하면서 정신의학의 과학적 비밀을 시사하는 하나의 신비적 사례로 몰고 가는 학자나 작가들도 있다. 관심 있는 극소수를 제외한 아무도 이 치유과정의 내막을 검증하려 하지 않았다. 후기낭만주의 대표작 하나를 배태한 정신의학 내지 심리요법의 '대승리'로 그냥 남겨두려는지. 


                                                         니콜라이 달 ▶

바로 이런 점들이 필자의 끈질긴 의문의 하나였으나 그다지 치심치는 않다가, 최근 인터넽에서 이런 저런 비평 자료들을 찾아 보고 약간의 실마리를 얻게 된다. 


라흐마니노프는 거의 날마다 달의 최면요법 시술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네덜란드의 라흐마니노프 음악 전문학자인 엘허 닐스에 따르면, 사실 최면술은 프로이드 정신의학이 대두된 이래 이렇다 할 요법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프로이드가 역시 또 다른 후기낭만파 작곡가인 구스타프 말러의 정신적 문제를 고치지 못한 채 오히려 요법을 오용하여 강한 의혹만 불러왔단다. 

최면술이 의술의 일부로 사용된 것은 프리드리히 메스머(1734-1815, Friedrich A. Mesmer 때부터였다. 프리메이슨이었던 그는 오스트리아 뷘에서 일하다 훗날 프랑스 궁정으로 옮겨갔다. 메스머는 자신이 일종의 자기장(magnetism)을 활용하고 있는 줄로 믿었다. '매혹하다', '최면술을 걸다' 등의 뜻으로 쓰이는 영어 낱말 mesmerize가 바로 그에게서 유래됐다. 그는 이 '발견'을 과학협회에 보고했지만, 오늘날의 우리가 볼 때는 환자에게서 '위기'로 알려진 최면상태를 인출한 것이었다. 


이 "조용한 트랜스"(황홀경)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마르퀴 아르망 드 퓌세귀르(Marquis Armand de Puseguir 1751~1825)였고, 이것을 '신경수면(neurohypnology)'으로 명명한 사람이 제임스 브레이드였다. 동시대 사람인 존 엘리엍슨은 자신의 런던 병원에서 통증 없는 수술을 위한 마취용으로 최면술을 쓰기 시작했다. 

한편 프랑스에는 두 최면술 연구학파가 생겨났다. 신경의학자 장-마르텡 샤르코(Jean-Martin Charcot)는 파리의 살페트리에르에 있는 자신의 진료소에서, 이폴맅 베른하임(Hippolyte Bernheim)은 낭시에서 각각 최면술 학파를 형성하게 된 것. 프로이드의 스승이기도 했던 전자는 당초 최면술을 히스테리 환자들에게만 연계된 하나의 현상으로 보고 그런 환자들에게만 시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가 후자의 연구 결과를 알고 생각을 바꾸었다. 베른하임은 무려 10,000여 케이스를 분석하여 최면이 암시를 통해 발생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여기서 우리가 크리스천으로서 새겨두어야 할 점들이 있다. 잠재의식 상태에서 '과거'와 '미래'를 '무상출입'하는 최면술은 반드시 악령과 연계되는 오컬트 행위라는 사실과, 따라서 최면술을 시술하는 모든 사람들은 예외 없이 오컬티스트라는 점이다. 이것은 남의 뇌리 속 꿈세계를 침투하는 악령들의 행동과 별 다름없다. 

혹 크리스천이 최면술을 시술한다면 그는 이미 오컬트 영역과 범주에 들어가 있는 상태이며,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하고 보혈로써 정결케 되지 못하면, 심각한 악령개입 상태가 지속되거나 악화된다는 진실이다. 이것을 부정하거나 못 믿겠다면 그는 정신심리학계를 알지언정 영계를 모르는 사람이다.   


아무튼 라흐마니노프가 달에게서 받은 치유 과정은 훗날 그의 처제이자 사촌누이인 소피아 알렉산드로브나 사티나를 통해 자세히 알려졌다. 소피아 사티나는 의술과 생물학, 유전학 등에 깊이 관여했고, 미국의 스밑 대학에서도 일했다. 

라흐마니노프의 친척과 그들의 친구인 그라워만 의사는 긍정적인 단계를 밟기로 결정하고 니콜라이 달을 만나기로 했다. 달은 그라워만의 모스크바 대학교 의과 시절 친구였는데, 졸업 후 당시 프랑스를 풍미하던 최면술의 치유법적 가치에 관해 흥미를 갖게 됐고 바로 이 첫 성공 사례 후 여생을 최면요법에 바쳤다. 라흐마니노프는 사촌들이 이 요법 실험에 기꺼이 응하는 것에 놀랐다. 그는 자신의 '숨은 현재와 미래'를 알아내는 데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입원비가 없는 것도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달의 수많은 환자들이 비용없이 진료를 받았기 때문이다. 진료소인 달의 아파트먼트는 사티나의 집에서 얼마 떨어져있지 않았기에 라흐마니노프는 매일 달을 방문했다.  

라흐마니노프는 달의 진료를 돕느라 매일 밤 안락의자에 깊숙이 앉아 최면 시술에 따라 깊이 잠들어 있었고, 낮에는 밝은 분위기 속에 기분을 돋우었고, 식욕도 증진됐으며무엇보다 창작의욕을 일깨우는 데 힘썼다. 달 자신 음악적 교양이 높은 사람이었기에 모든 대화와 최면술이 창작열 증진에 집중됐다. 


여기서 중시되는 점 하나가 라흐마니노프의 평소 창작 과정이 예외적으로 탁월했다는 것. 작품 전체가 그의 마음눈 앞에 펼쳐지기도 했고, 더 큰 규모 형식의 음악도 불과 2~3주 안에 스케치를 완성하곤 했다. 그처럼 즉각적으로 작품을 배태하거나 몇 쪽을 기억한다는 것은 흔치 않은 재능이다. 

대다수의 작곡가들은 하나의 모티브, 하나의 성부를 갖고도 장시간 집중작업을 해야 하므로 장기간이 소요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제1 교향곡의 실패 후,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의 직관력을 의심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판단력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새 작품을 위해 주변들의 도움과 조언을 자주 찾았고 악식도 독창적인 것보다 일반적인 형식을 더 의존하여 수많은 부분들을 수정해나갔다. 


관련 정보에 따르면, 달이 라흐마니노프에게 시술한 요법은 '최면 후 암시'(Post-hypnotic suggestion: PHS)라는 새로운 방법이었다. 

여기, 세 가지 기본전제가 따른다. 1. phs 방법으로는 경증만 치료할 수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창작불능 상태가 중증이었다면, 이 방법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2. 최면술은 시술할 수 없는 작업을 대상에 적용하지 않는다. 3. 달의 진료는 집중적이었지만 비교적 단기간에 치러졌다. 


따라서 라흐마니노프가 달에게 받은 진료는 비교적 가볍고 쉬운 것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대단히 위대한 극찬 받을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인 라흐마니노프에게선 두 가지 관찰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바로 이 글의 주된 논점이기도 했다. 


1. 비록 라흐마니노프의 3년간의 침체기동안 주요 대작들을 완성하지 못하긴 했지만, 제 1 교향곡 실패 이후로도 매우 능동적이었다는 게 진상이다. 그는 이전에 이미 성공적인 지휘자, 피아니스트였다. 따라서 주로 다른 분야에서 능동적이지 못한 여름 기간동안 창작 문제가 그를 더 괴롭힌 것으로 보인다. 

2. 작곡자는 달의 진료 후 거의 즉각적으로 과거보다 더 많은, 대규모 작품들을 연이어 내놓게 된다. 


따라서 라흐마니노프는 작곡을 아예 못할 만큼 대단히 악화된 상태였기보다 자신의 악상을 오선지 위에 옮겨 놓는 데 대한 부담감이 있었기가 더 쉽다. 이에 따라 달은 라흐마니노프가 작곡할 시간이 있을 때마다 그를 괴롭혔던 부정적인 생각들을 퇴치하는 데 집중했다. 그런 경우에 PHS가 완벽하게 먹혀드는 방법이라는 그들 나름의 인식이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다음 진술은 당시 상황을 미루어 짐작케 한다:

"결국 나는 날마다 달의 서재 속 팔걸이 의자에 앉아 반 수면 상태에 빠져있는 동안 '이제 당신은 협주곡을 쓰기 시작할 것입니다...굉장한 재능으로 말입니다. 협주곡은 탁월한 작품이 될 것입니다.'라는 그의 말을 듣곤 했다." 

닐스는 라흐마니노프의 이 진술을 정확치 않다고 지적한다. 이런 말은 암시보다는 명령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이 진술을 베낀 리제만의 문장이 정확치 못했거나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요약문이 그랬을 가능성을 말하면서.

닐스는 달이 라흐마니노프가 '작곡가의 장애'를 극복하도록 도와 성공적으로 증상을 해소시켰지만 환자의 치명적 문제점에 대한 구조적 변화를 겨냥하지 않았기에 문제를 일으킨 다양한 갈등들을 충분히 다루지는 못했다고 분석한다. 


증상은 라흐마니노프가 언제라도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때 되돌아왔다. 1916년에는 심각한 재발이었다. 라흐마니노프는 독주가로서의 화려한 연주생활을 이어가느라 작곡할 시간이 없었던 생애 말엽 10년간, 마침내 이 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창작 아이디어에 좀 더 장시간 집착하면서 더 깊은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는 제3 교향곡에 대한 외부의 모든 비평에 잘 응수했다.

"개인적으로 이것이 괜찮은 작품이라고 굳게 확신합니다. 하지만 작곡가도 잘못될 수가 있죠." 

자못 긍정적인 대답이다. 그만큼 바뀐 것이다. 


이것이 달의 치유 결과인가?

과연 달은 작곡이 불가능했던 라흐마니노프를 최면술로 고쳐 파멸로부터 구해낸 위대한 의학자였을까? 필자는 그보다는 작곡가 자신의 젊음과, 암시를 통해 갖게 된 긍정적인 생각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우선 라흐마니노프의 이 위기는 그의 초기인 20대 중반에 찾아왔다. 혈기가 팔팔한 젊은이가 망가진 기분 때문에 의욕상실증에 걸리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라흐마니노프가 창작열을 되찾게 된 것은 무슨 치매나 정신질환 같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 낸 수위의 것이 아니었다. 달의 암시로 기분전환이 이루어진 정도일 것이다. 

 

우리 한 번 생각해 보자. 그와 동시대인으로 러시아의 국민악파의 한 명인 무소르그스키는 알코올 중독자로 역사상 가장 불행한 작곡가의 한 명으로 손꼽힌다. 부유했던 집안이 망해 가고 어머니가 죽자 고주망태가 돼갔지만, 당대로서는 파격적이고 창의적인 작품들을 틈틈히 써내어 러시아 국민주의를 대표하는 음악가의 한 명으로 떴다. 그의 작품에 영향을 받지 않은 현대 작곡가는 거의 없을 것이다. 

비참한 정신으로 살아가던 술 중독자가 이 정도의 작곡가였다면, 다른 작곡가는 뭔가? 무소르그스키에 비해 볼 때, 작품을 "못" 쓴다는 건 엄살에 가까운 이야기일 것이다. 물론 음주를 조장하려거나 음주벽으로 좋은 음악을 쓸 수 있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더욱이 일각의 오해와는 달리, 라흐마니노프는 침체기 3년 어간 아무 작품도 쓰지 못한 게 아니며, 아무 음악 활동을 못했던 것은 더구나 아니었다. 단지 굵직한 작품을 악보에 옮길 의욕이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달 의사의 라흐마니노프 치유가 흔히 과장되듯 그렇게 대단한 사건은 아니었다. 


그 다음으로 하고픈 이야기는 이처럼 걸핏하면 최면술로 '기분정리'를 해나간 명사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매일 오후 최면에 빠졌고, 상대성 이론을 비롯한 다수의 과학이론이 최면으로 유도된 트랜스 상태에서 나왔단다. 

미국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도 정기적으로 자기최면을 했다. 하기야 프리메이슨이기도 했던 그였으니 과히 놀랄 일도 아닌 셈이다. 

죽은 다이애나 웨일즈 왕자비도 대중연설 발전을 위해 최면술을 썼고, 윈스턴 처칠 경도 세계 2차 대전 와중에 피로와 잠을 견디기 위해 PHS를 애용했다. 처칠은 너무나 잘 알려진 프리메이슨 명사이다. 


최면술을 써 먹는 사람들 상당수는 음악인들이다. 작곡에 최면술을 이용한 사람은 라흐마니노프뿐 아니다. 모차르트도 최면술을 '창조적인 도움'으로 활용했고, 그의 오페라 '코지 판 투테'는 전곡이 '최면 경지' 상태에서 쓰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모차르트 역시 프리메이슨이었다. 

참고로, 달도 애머추어 음악인이었고, 메스머 역시 (벤저민 프랭클린이 발명한) 글라스 아르모니카(글래스 하모니카)를 즐겨 연주하는 음악인이었다. 최면술이 정서 및 무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암시일까. 

우리 찬송가에도 버젓이 시 작품(554장)이 실려있는 영국 시인, 앨프릳 테니슨은 자주 최면 상태로 시작(詩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테니슨도 프리메이슨이었다. 


라흐마니노프 치유에 관해 또 한 가지 부언할 이야기는 그의 연애생활에 관한 것이다. 젊은 라흐마니노프는 달의 진료소를 찾을 때마다 달의 예쁘장한 딸을 대하곤 했다. 라흐마니노프의 손자 알렉산드르는, 아버지인 의사 달의 진료보다는 이 딸의 존재가 주는 감흥이 환자에겐 더 큰 효능을 나타냈다고 주장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라흐마니노프가 퍽 오래 전부터 고종 사촌누이인 나탈리아 사티나와 연애, 약혼을 거쳐 결혼에 골인할 무렵이었다는 사실이다. 나탈리아는 라흐마니노프의 고모의 맏딸로 그보다는 4살 손아래였다. 나탈리아 역시 피아니스트였고, 그래서 라흐마니노프를 깊이 이해했다. 

사실 모두가 러시아 정교회 교인인 이들에게 이런 근친혼은 당연히 금기시 됐기에 이들은 앞날을 향한 전도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되지만 결국 결혼하는 데 성공한다. 피아노협주곡 2번은 바로 이 무렵 작곡된 것이다. 


물론 캘빈 닽시의 말처럼 라흐마니노프 자신의 삶이 골고루 음악에 배어있다고 누구든 장담을 할 순 없겠으나, 2번을 들어 보면 그의 열정과 우울, 그리움과 호소, 승리의 외침 등이 고루 포함된 것 같은 느낌이 일게 된다. 특히 제2 악장은 마치 사랑의 고백과 어름처럼 로맨팈하고 정겹기가 이를 데 없어 감성이 예민한 사람들의 눈물을 이내 자아내곤 한다. 

따라서 이런 상황들이 라흐마니노프의 치유에 크게 한 몫 했을 것이라고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수많은 유명 작곡가들이 자신이 연모하거나 관심 있는 이성에게 작품을 헌정하곤 했다. 돈 퀴호테에게 둘시네아, 햄맅에겐 오필리아, 베토벤에겐 '불멸의 사랑(Unsterbliche Geliebte)'의 존재가 정신적 지주였던 것처럼, 라흐마니노프의 경우도 주변에 있던 여성들의 위로와 격려를 통해, 아니면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작품을 쓸 용기를 얻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이상을 볼 때, 라흐마니노프의 '창작 불가능증'을 고친 장본인이 달이라거나 달의 최면 시술만이 주효했다고 보기가 어렵다. 


다음으로 다시 하고 싶은 얘기는 최면술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혐오물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물론 비신자 독자라든지 심리학 면에서 최면술에 호감을 갖는 크리스천(?)들은 그렇게 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이유는 첫째로, 최면술은 일종의 오컬트 행위이기 때문이다. 오컬트란, 모든 종류의 비술(秘術)이나 신비학, 심령술 등을 가리키는 말로, 성령님의 권능이 아닌, 물리적 세계 저편의 영역에 속한 잠재의식을 포함한 영계의 악령들과 연계를 갖고 초자연적 힘을 발휘하는 행위의 하나이다. 믿든 말든 최면술은 심령술의 하나이다. 최면술을 '과학'의 하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과학은 결코 영계에 개입하거나 조종할 수가 없다. 오늘날 뉴에이지 운동이 최고도로 발달한 이 시대에 모든 오컬트는 뉴에이지를 돕는 총아가 되어 있다.  

사실 이런저런 현대 학자들이 실험으로 최면술을 창출해냈거나 발견했다고 주장하지만, 이같은 술법이 수 천 년 전에도 이미 있었다는 역사적 흔적이 발견된다. 고대로부터 주술사와 마법사들, 영매들, 무당들, 힌두들, 불자들, 요기들이 사실상 이런 술법을 사용해왔다. 

그런데 요즘은 비신자 의사들이나 정신요법사들은 물론이고 소위 크리스천이라는 전문인들까지도 이것을 애용하는 시대가 됐으니, 참으로 세상은 올드에이지를 카피한 뉴에이지 시대를 사는 니오(neo-)바벨론임을 실감하게 된다. 이와 비슷한 정신요법이 '내적치유'에도 활용되고 있음이 사실이다. 내적치유는 심리적이거나 잠재의식적이지, 결코 영적이거나 성경적이지 않다. 시술사(사역자?)들이야 뭐라고 이유를 붙이든. 크리스천 술사들이 뭐라든 간에 이것은 성령의 것이 아니다. 성경은 성령과 악령 사이에 중간지대는 없다고 가르쳐준다.  


둘째로, 최면술은 사실상 술사인 타인이 대상의 의지를 묶고 조종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선 가타부타 논란이 많아도, 대상자의 피암시성(suggestibility)이 높아질수록 대상자는 최면술사가 말하는 거의 무엇이든 믿고 맡기고 따르는 단계까지 다다르게 되어, 결국 환각상태 같은 것도 초래하기에 이른다. 

최면 도중 대상자의 독창성은 줄어들고, 심지어 정상적인 환경과 상식이 통하는 평소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트랜스 로직' 상태로 들어가 비상식적/비합리적/비논리적/비양립적인 것들을 받아들이고 믿게 돼버린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이 주신 고유한 자기의지를 지닌 자유인 겸 모럴 에이전트(free moral agent)이기에, 그 개인의 범죄 상황에 대한 법적 구속력이 아닌 이상, 그 누구도 그 자유와 의지를 구속할 수가 없다. 

최면술로 조종할 경우, 트랜스에 빠진 대상자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시술자의 의지에 따라 조종될 수 있고 또 그러기 십상이다. 따라서 최면술은 본질적으로, 개인에게 자유와 의지를 주신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만약 크리스천이 최면술을 시술한다면, 그 역시 저주와 그에 해당하는 심판을 면하기가 어렵다. 

최면술의 가장 대중적인 용도 하나가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기억 되살리기"이다. 이것은 상상의 '타임머쉰'처럼 잠재의식 속에서 먼 과거로 넘어가는, 일종의 시간초월적 행위이다. 어떤 대상자들은 심지어 태냇적 또는 출산 때를 기억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오늘날 교계에 유행하는 소위 '내적 치유'는 영적 치유가 아닌 심리요법으로서, 세속계인 뉴에이지에서도 애용되며, 그 자체에 최면술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실제로 크리스천 내적 치유사들이 최면술을 이용하거나, "과거 기억에 의한 치유"를 한다고 주장한다. 최면술사들이나 내적 치유사들이 가장 흔히 '증명'해내는 것 하나가 대상자의 어릴 적 성추행 피해이며, 이 경우 놀랍게도 가해자는 으레 아버지들이다. 그러나 이런 '기억'들이 실제 있지도 않은 상상/공상의 소산일 수 있음을 수많은 학자들이 지적해 왔다. 

[ 최면술 자체와 내적 치유에 대해선 다른 기회에 자세히 다뤄보려고 한다.]

내적 치유 사역자들은 또 옛 '상처'의 치유를 통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회복에 들어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과거 기억을 통한 치유와 회복이라고? 성경은 그런 것을 뒷받침해 주지 않는다. 변증가 마틴 밥갠이 바로 지적했듯, 오히려 사도 파울은 과거는 잊어버리고 앞에 놓인 하늘 상급을 위해 달음질하련다고 선언한다(티모테B서=딤후 7'7~8). 옛것은 지나고 모든 것이 새로워진(코린토B서=고후 5'17) 새 피조물이 됐다면, 과거의 것은 은총에 대한 감사와 간증 외엔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밥갠의 말처럼, 개인의 현재 행동에 대한 설명을 과거로부터 찾아내려는 것은 성경의 전반적인 가르침에 위배된다. 설령 그것이 심리학적으로 타당하다 해도, 크리스토님을 통한 참 해결의 진리를 '도둑질'로 대체하는 셈이 된다. 크리스천의 문제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 하나님과의 관계 여하에 달려있다! 기독교는 과거 지향적 종교가 아니다. 

성경의 주된 맥인 메시아에 관한 예언도 이미 대부분 과거에 성취되었다!  


셋째로, 최면술은 단순한 심리요법 차원에서 더 나아가 영적 위험지대로 이끌릴 수 있다. 탈체현상, (성령에 의한 것이 아닌) 투시력/천리안, 환각/환시, 동양 신비가들이 주장하는 신비경, 심지어 최면술 연구가인 어네스트 힐거드까지도 그렇게 표현한 '신들림' 등에 걸려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밥갠 등의 지적과도 같이, 최면술은 어떤 레벨에서든 오컬팈하지만, 그 수위가 깊어질수록 명백한 오컬트 행위이다. 


최면술과 오컬트의 연계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더 밝혀보기로 한다. 

 

출처: 진리와사랑/김삼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미국 포크가수 밥 딜런이었다. 대중가수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115년 역사상 처음이라고 한다. 대중가수가 문학상을 받은 것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니 작가들의 자존심이 많이 상한 모양이다. 그러나 누가 있어서 작가의 작품과 일반인의 작품을 구별하여 딱지를 붙일 수 있을 것인가.



밥 딜런은 노래도 하면서 직접 작사 작곡까지 하는 싱어송라이터다. 그의 노래 가사는 철학적 깊이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밥 딜런을 음유시인이라고도 하고, 10살부터 시도 썼기에 시인이라는 호칭도 따라 다닌다. 그래서 스웨덴 한림원도 밥 딜런을 노벨 문학 수상자로 선정한 이유에 대해 밥 딜런의 가사를 "귀를 위한 시"라고 평했다.



일반인보다 못한 작가도 있고 작가보다 뛰어난 글을 쓰는 일반인들도 있으니 밥 딜런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 왈가불가할 일은 아니다. 작가들에게만 노벨상을 주라고 작가들이 떼를 쓰는 것은 한국의 민주화운동처럼 황당할 따름이다. 정작 작가라고 온갖 폼은 다 잡으면서도 작가다운 작품을 생산해 내지 못하는 작가들이 더 문제인 것이다.



밥 딜런의 유명한 가사 중의 일부를 음미해보자.



-바람에 날려서(Blowin' In The Wind)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 봐야

진정한 인생을 깨닫게 될까요



흰 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 봐야

백사장에 편안히 잠들 수 있을까요



전쟁의 포화가 얼마나 많이 휩쓸고 나서야

세상에 영원한 평화가 찾아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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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ptember 11, 2001


        

         Twin tower  9.11 terror 후 14년이 흐르고 ... 그 옆자리에 1 World Trade Center가 세워졌다. 1시간 만에 쌍둥이빌딩이 사라져 이곳을 원폭 투하지점을 일컫는 군사용어인 Ground Zero로 부르기도 했다. 그후 빌딩이 세워지면서  Freedom Tower로 명명하였으나  이 이름은 또 다른 테러를 자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었고......'세계무역center'에 입주해 있다는 자긍심으로 자신들의 위상을 높이려는 입주 예상기업들의 요구도 있어 이름을 다시 World Trade Center (WTC)로 바꿨다고 한다. 2015년 5월29일, 100층에 있는 observatory(전망대)가 일반에게 공개되어 이곳은 New York을 찾는 세계 관광객들의 필수코스가 되고 있다. 역사의 현장이다 보니 관광지라 해도 다른 곳과 달리 경건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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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orld Trade 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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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cket은 인터넷으로 예매가 가능하고  표가 남으면 현장에서도 구매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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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표소      성인 : $32.00  어린이(6-12) : $26.00  5살 이하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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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장한 후에 검색대를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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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29일 개장 후, 일주일이 지난 현재시간의 방문객 수를 나타내는 전광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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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levator가 있는 곳까지 가는 통로를 컴컴한 분위기 속에 재미있게 꾸며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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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치 굴 속을 지나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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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번에 15명 정도가  탈 수 있는 elevator 5대 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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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levator 내부의 모습.

     창으로 바깥을 보면서 100층까지 올라가는 기분을 느끼도록 만든 벽면의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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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levator 내부의 모습.

             창으로 바깥을 보면서 100층까지 올라가는 기분을 느끼도록 만든 벽면의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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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levator에서 나와 전망대로 나가기 전에 긴 스크린을 가진 영화관으로 안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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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악이 흐르는 뉴욕 소개영상과 함께 흑인연사의 재치있고 코믹한 설명이 큰 소리로 3분 정도 진행된다. 이 performance 가 끝나면서 surprise한 감동의 장면이 연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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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서히 스크린이 올라가면서 전방에 실제로 맨하탄 전경이 펼쳐지는 것이다. 아무도 스크린이 올라간다는 것을 생각 못했고 그 뒤로 Manhattan 전경이 펼쳐지리라고는 더더욱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순간 모두가 이 깜짝쑈에 큰소리로  탄성을 지르며 박수를 친다. 서울의 남산 tower도 이런 idea를  copy해 보면 어떨까?  인적으로 이런 performance는 뉴욕보다 서울이 더 감동을 줄 것 같다. 경쾌하고 힘찬 '서울의 찬가' 노래도 곁들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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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scalator를 타고 식당과 커피숍이 있는 아래 층으로 내려온다. 돈받고 사진을 찍어주는 이곳을 반드시 통과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찍고 말고는 물론 본인들 자유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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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과 커피숍이 나온다. 제일 오른쪽 escalator를 이용해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전망대가 나온다. 오른 쪽에서 두번 째 escalator를 이용해서 다시 커피숍으로 올라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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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staur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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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ffee st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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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nhattan을 내려다 보며 coffee 한 잔을 마시는 기분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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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당과 커피숍에서 한 층 아래로 내려온 전망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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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쪽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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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망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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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쪽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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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쪽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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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쪽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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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

                     손을 올려 증명사진을 찍는 커풀은(중앙) 이런 기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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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쪽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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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서쪽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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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망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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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쪽 전경

          옛날에 레이건 과 고르바쵸프가 회담했던 섬이 중앙에 보인다. (Governors Island)


Governors Island 에서 Manhattan 쪽을 바라본 전경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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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숍에서 전망대가 있는 층을 내려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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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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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에 자유의 여신상이 있고 그곳에서 4시 방향으로  이민사(移民史)박물관이 있는 
 Ellis Island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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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숍에서 전망대가 있는 층을 내려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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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쪽 전경, 강 건너  New Jersey州의 Jersey 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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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숍에서 전망대가 있는 층을 내려다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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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 전경 
멀리 좌측 상단 Williamsburg Bridge, 중앙 Manhattan Bridge,  오른 쪽 Brooklyn Bridge

 

 

◈평양기생과 대동강 물장수등 생활◈

평양 구시가,

멀리 대동강이 보이고 오른쪽에 대동문과 왼쪽의 련광정이 보인다.

련광정과 종각,

련광정은 평안감사가 기생들과 연회를 벌이던 곳이다.

모란대와 대동강, 평양에서 경치가 가장 좋다는 곳이다.

모란봉정상에 최승대가 보이고 아래 강변 쪽의 건물이 부벽루다.

부벽루와 평양의 명물 기생

강을 건너 시집가는 행렬, 멀리 모란대가 보인다.

모란대의 입구, 전금문

나룻배가 대동강을 건너고 있다.

대동강 물을 길어 나르던 물장수

아낙들이 대동강에서 빨래를 하고 있다.

보통문 아래의 빨래 풍경

아버님 어머님 보세요.


어느 며느리가 시부모에게 보낸 편지 내용과 그에 답하는
시어머니 편지 내용...


아버님 어머님 보세요.


우리는 당신들의 기쁨조가 아닙니다. 나이들면 외로워야 맞죠. 그리고 그 외로움을 견딜줄 아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고요.

자식 손자 며느리에게서 인생의 위안이나 기쁨이나 안전을 구하지 마시고 외로움은 친구들이랑 달래시거나 취미생활로 달래세요.

죽을 땐 누구나 혼자입니다.

그 나이엔 외로움을 품을 줄 아는 사람이 사람다운 사람이고

나이들어서 젊은이 같이 살려하는게 어리석은 겁니다.

마음만은 청춘이고 어쩌고 이런 어리석은 말씀 좀 하지마세요. 나이들어서 마음이 청춘이면 주책바가지인 겁니다.

늙으면 말도 조심하고 정신이 쇠퇴해 판단력도 줄어드니 남의 일에 훈수드는 것도 삼가야하고
세상이 바뀌니 내 가진 지식으로 남보다 특히 젊은 사람보다 많이 알고 대접받아야 한다는 편견도 버려야합니다.

나이든다는 건 나이라는 권력이 생긴다는게 아니라 자기 삶이 소멸해 간다는 걸 깨닫고,혼자 조용히 물러나는 법을 배우는 과정임을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전화를 몇개월에 한 번을 하든, 1년에 한 번을 하든 아니면 영영 하지 않아도 그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세요~ 그것 가지고 애들 아빠 그만 괴롭히세요!


마지막으로 이번 설날에 승훈이랑 병훈이 데리고 몰디브로 여행가니까 내려가지 못해요.
그렇게 아시고 10만원 어머니 통장으로 입금해 놓았으니 찾아 쓰세요.



시어머니의 답장 편지 내용..


고맙다. 며느라...
형편도 어려울텐데 이렇게 큰돈 10만원씩이나 보내주고..
이번 설에 내려오면 선산판거 90억하고 요앞에 도로 난다고 토지 보상 받은 60억 합해서 3남매에게 나누어 줄랬더니..

바쁘면 할수없지뭐 어쩌겠냐? 둘째하고 막내딸에게 반반씩 갈라주고 말란다.

내가 살면 얼마나 더살겠니? 여행이나 잘다녀와라. 제사는 이에미가 모시마.


큰 며느리 답장
시어미에게 카카오톡으로 답장을 보냈다.
어머님!
아까 보낸 메일은 친정어머니에게 보내는 건데
잘못 발송되었네요.
그리고 송금하려던 돈이 500만 원이었는데
잘못 클릭되어 10만 원만 나갔네요.
어머니 죄송해요!
다시 송금 합니다.
500만 원이라구요.
그리고 여행 포기하고 추석 전에 바로 내려가겠습니다.
꼭 기다려 주세요!
아이 러브 유, 우리 어머님!!!

얼마 후, 시에미의 답장.
큰며늘아 500만원 다시 받았다.
그래서 합이 510만 원이구나.
너무 고맙구나,
그리고 아까 나도 서툰 카톡질이라
선산 판돈하고 도로로 편입된 토지보상비 포함
합계한 금액의 단위가
천'자를 억'자로 잘못 올렸구나.
이 시에미의 서툰 카톡이니 이해하거레이~~
그리고 둘째와 막내는 니가 온다하니까
급한 여행을 간다고 지금 막 공항으로 출발했구나.
니가 와서 수고 좀 해라.
우리 착한 며늘아!


북한 해외 노동자, 러시아에서 분신 자살!

- 참혹한 북한 해외 노동자 현황과 인권실태 -

 

 

 

 

'종교 공식'에 갇혀 '강도 만난 이웃'을 외면할 것인가?

- 대한민국이 맺을 회개의 열매 -




말도 안나오는 일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와 가장 가까운 우리 땅 북쪽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북한정권과 북한주민을 구별하지 못하고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이 제대로 바뀌지 않으면,

북한은 영원히 저런 저주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이 정말 정신차리지 않고, 분별하지 못한다면,

교회(그리스도인)가 분별하지 못하고, 관심갖지 않고,

회개치 않고, 이런 상태로 계속 나아간다면,

하나님이 북한땅을 여실리 만무합니다.

되려 우리에게 심판이 임할까 두렵습니다.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이땅의 교회와 성도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통회와 자복하며 행동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심판을 부르는 한국교회 지도자들!

 

 



 

끊이지 않는 살육!

 

끊이지 않는 살육 속에서 북한 주민들이 절규합니다. 말을 할 수 없는 탄식 속에서 북한 주민들은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북한 정권의 철권통치 아래서 극도로 신음을 하며 소망이라곤 전혀 없는 처절한 지옥같은 상황 속에서 북한 주민들은 발버둥칩니다.

 

끔찍하게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하나님의 무너진 마음 그리고 북한 주민들의 신음과 핍박 그리고 아픔들이 바로 남한 교회를 향한 심판의 다림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유린에 대하여 경종을 울리지 않고 침묵하는 수많은 남한 교회들에게 진노하고 계십니다.

 

북한 정권의 칼부림 아래서 극도로 탄식하는 북한 주민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북한 정권과 거짓 평화를 외치며 북한 정권을 어르고 달래는 것은 개인적 차원의 악독함을 넘어서는 국가적 차원의 악독함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다가 걸리면 총살당하는 처절한 상황 속에서 풀을 뜯어먹으며 연명하는 북한 주민들을 애써 외면하고 김일성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봉수교회에 남한 교회 성도들의 헌금을 바치는 사역자들은 무슨 연유인지 이에 대하여 무감각합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으로 창궐한 영적 불모지 북녁 땅을 위한 기도보다 이땅에서의 안위를 위해 기도하는 우리의 악독함을 하나님은 조명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의 잔인한 이기심입니다. 수천만명을 학살한 짐승같은 정권과 무슨 경제협력이며 수백만명을 굶겨 죽인 사탄 정권과 무슨 연방제입니까?

 

한낱 인간에 불과한 김일성을 신으로 숭배하는 북한 정권은 무너져야 합니다. 북한 정권을 협력의 대상으로 보는 인본주의 시각은 부서져야 합니다. 종북좌파 세력은 무너져야 합니다.

 

철권통치 아래서 극도로 신음하는 북한주민들의 탄식에 대한 남한 교회의 태도가 바로 남한을 향한 심판의 다림줄입니다. 현재 남한 교회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습니다. 남한 교회는 이것을 뼈저리게 자각해야 합니다.

 

 

글 출처: '예슈아 제4권' 수록글 (예슈아 출판사)

http://cafe.daum.net/biblemunjanara

 

 

아래 사이트에 들어가시면 

북한 인권에 관한 많은 자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물질의 도움으로 생명을 구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탈북자 구출과 북한 선교, 인권을 위한 간절한 기도와 함께

많은 후원의 손길이 이어지길 소망합니다.

 

통일소망선교회: http://www.tongilsomang.org

 

 2016년 미국 대선 감상법: 트럼프 현상과 한국



2016년 미국 대선 감상법: 트럼프 현상과 한국

어제 오후 한미클럽에서 이화여대 이춘근 교수가 미국대선에 대해 예측한 강의를 들었다. 이춘근 박사는 미국과 중국의 충돌과 한국의 지정학적 위험 그리고 통일에 대한 가장 최근의 저서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의 전략” 이라는 책을 펴낸 분으로 쉐일 가스혁명으로 미국이 초강대국으로 재부상할 것이며 작금의 석유 값의 동향, 중동과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생산하게 될 것이라고 정확히 전망했던 분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스탠스를 택해야 하는 가? 하는 물음에 대하여 그는 21세기는 여전히 미국의 세기이며 러시아는 경제력이 이태리 수준으로 미국의  1/7밖에 되지 않으며 중국도 앞으 로 지난 30년과 같은 고도 경제성장을 지속하지 않는 이상 미국을 결코 따라 잡을 수 없다고 진단했다. 미대선에서 힐러리가 이길 것인가 트럼프가 이길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애매하게 전개되는 이때 그는 단호하게 트럼프가 차기 미국 대통 령이 되는데 조금의 의문을 갖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그는 지나가는 말로 국내상황을 제대로 알려면 국내 신문 을 보면 안되고 국제 신문에 비추어지는 모습과 정세를 알아야 제대로 진단할 수 있다고 하면서 언론에 의해 현상이 많이 왜곡된다고 질타하였다.  막말과 미친개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험한 말을 연일 쏟아내는 미 공화당 대통령후보 트럼프의 언행을 보고 우리는 그가 대통령감이 아니라고 쉽게 단정하고 힐러리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마음 속에 선을 이미 그었고 미국에서 비등하는 트럼프 현상을 어떻게 보고 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현실적 으로 주요 사안을 간과한다고 보고 있었다.

하기야 트럼프가 험하고 막말을 쏟아내자 공화당 내에서도 후보자격이 없다고 끌어내리거나 다른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고까지 했는데 이러한 사실은 트럼프의 고도의 선거 전략이라고 본다.  트럼프가 하는 막말은 앞뒤 따져보지 않고 하는 말이라 할지 라도 틀린 말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미 언론이 트럼프를 싫어하는데도 트럼프가 언론에 가장 노출 이 많이 되는데 이는 언론이 트럼프를 갖고 논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쟁쟁한 공화당 후보 16명을 격파하고 공식 후보가 된 트럼프가 멍청하지 않으면 그를 선발한 미 국민들이 멍청하다는 결론이 나온 다. 공화당 경선후보 중에 부시 가문의 젭 부시는 천재에 가까울 정도로 명석 하고 가장 유력한 후보였으며 미 최고의 명문인 와튼스쿨 을 졸업한 재원이었는데도 꺽어버렸고 한국사람만 트럼프 를 이상한 사람취급 해온 데에는 우리 언론의 책임이 크다 는 것이다. 정작 미국사람들은 트럼프가 대다수 미 국민의 정서를 대신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를 진실 (Authentic)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라이를 영어로 freak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언론은 트럼프를 또라이 취급하는 사이 그는 힐러리 와 경쟁하는 공화당의 대표가 되었다. 로자 브룩스 (Rosa Brooks)  조지타운대학 교수는 그를 가리켜 외교정책의 일관성 있는 현실주의자 (Coherent Realist of Foreign Policy)라고 평가했고 일찌기 시카고와 뉴욕과 LA에 트럼프 호텔을 지어 카지노 없는 호텔을 설립한 트럼프는 지금 미 국민의 기대와 요구에 적절하게 부합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9권에 이르는 저술을 한 사람으로서 우리가 생각하듯이 그렇게 또라이라거나 멍청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레이건과 카터가 견줄때 에도 처음에는 게임이 안되는 스코어였는데 선거는 바람이  중요 하단다. 그가 쓴 책중에 “불구가된 미국”(Crippled America)은  부제가  How to make America great again 인데 이 책은 자그마치1115명이 5점 만점에 평균4.4를 주았을 정도로 좋은 평을 받았다. 강해져야 할 때(Time to get tough)는 부제가  Making America #1 again이 붙어있고 그가 쓴 The art of deal은 "거래의 기술"이라는 제목으로 우리말 번역이 되어있다.

트럼프가 후보로서 결정적인 승기를 잡았던 것은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미국의 유명한 여 앵커 메긴 켈리가 “당신 같은 사람이 어떻게 후보가 될 수 있었냐”고 비난하자 트럼프 는“당신 눈에는 지금 피눈물이 나고 있다. 켈리 당신의 몸 다른 데에서도 피가 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라는 성희롱과 모욕이 섞인 말로 상대방을 묵사발을 만들면서 였다 한다. 윌리엄 버넷이라는 사람은 “미국 최고의 희망” (America The Last Best Hope)이라는 책에서 공화당 주류인 기성세력이 트럼프에게 비정상적 으로 분노를 표하는 이유는 그들이 떨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Dick Morris라는 전략가는Amageddon – How Trump can beat Hillary에서 트럼프가 이기는 것을 최후의 전쟁 아마겟돈에 비유하고 있다. Gary J. Byrne 이라는 사람은 뉴욕대 정치학과 교수인데 성격의 위기(Crisis of Character)라는 책에서 힐러리와 클린턴의 부부싸움과 그간의 행적을 보면서 힐러리가 보통의 권력 화신이 아니라고 진단을 내리고 있으며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확률 을 97-99%로 보고 있다. 또한 스토니 브룩 미시간대 교수는 트럼프가 이기는 5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첫째, 그의 수사가 타당하다. (His rethoric resonates )
둘째, 폭로 저널리즘은 트럼프의 진면목을 다루지 않는다.(Gotcha journalism doesn’t face Trump)
셋째, 트럼프는 가장 감정적인 힘을 지난 주제를 잘 고를 정도로 스마트하다. (He was smart enough to pick the topics with the most emotional power)
넷째, 대부분의 공화당주의 자들은 그에게 줄을 서게 된다. (Most Republican are falling in line)
다섯째, 논쟁에서 트럼프가 클린턴을 이긴다. 트럼프는 두 명의 부끄럼이 없는 정치가 사이의 경쟁에서 감정적 호소의 달인이다. 결국 부끄럼이 적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

트럼프는 미국의 군대를 재건하되 너무나 강력해서 대적할 자가 없는 군대를 만들겠다고 호언하고 있다. 그는 또한 오바마가 아프칸 철군을 연기하자  “아프가니스탄, 또 다른 한국”이라면서 한국의 방위비증가와 핵무장을 용인하는 발언을 하였고 김정은을 미친지도자라고 하면서도 대통령 이 되면 그를 만날 용의가 있다고 하였다.

미 국민은 왜 이렇게 냉소적인 고립주의로 빠져 들어가 면서 트럼프를 지지하는가? 이것은 전 세계 경찰 노릇을 하느라 미국민의 세금을 많이 걷어 폼잡는 일을 미 국민 들이 더이상 지지하지 않는다는 뜻도 되고 초강대국으로서 다른 나라 일에 관여하지 않는 미국(Independent America), 돈은 벌수 있는 미국 (Moneyball America),  필요불가결한 미국 (indispensable America)을 지향하고 있다. (2015.6.1. 뉴욕타임즈 여론조사)  심지어  Weseley K. Clark라는 4성장군은 Don‘t wait for next war.에서 미국은 초강대국으로 상대가 없고 그러니 무장을 더 할 필요가 없다는 자신감을 피력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미국의 자신감에는 에너지 쉐일가스 혁명의 경제력 이 바탕이 되었다.  브레진스키는 Strategic Vision에서 한국의 미래에 대하여 중국의 영향권 내에 들어가거나,  독자적 핵무장을 하든지, 아니면 일본과의 안보협력을 강화해야 하는 세 가지 선택지 중에서 골라야 한다고 했다. 이중에서 마지막 옵션이 가장 낫다고 하였다. 이는 우리가 싫어도 일본과 안보협력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말하 지만 국민정서가 용납할 지는 미지수이다. 특히 우리 나라 사람은 중국에 대하여 과장하여 서방이나 미국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G2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미국은 중국을 그렇게 보지 않는데 우리만 중국을 높여 서 G2라고 뻥튀기 해주는 것을 삼가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면에서 우리는 국가대전략과 외교안보 정책을 준비해야하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는 점을 염두에두고 대비해야 한다.

우리나라 정치가 중에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옳다고 할때 아니라고 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장훈씨는 앞으로 100년안에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와 같은 야구 선수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 장담하였다. 최근 이치로 야구 선수는 미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저는 남과 다르게 살아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걷는 평범한 길을 걷지 않았습니다"라고 하였다. 그의 등번호는 51번이다. 즉, 51세 까지 현역으로 뛰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과거 조선시대에 율곡 이이가 10만 양병설을 주장하였지만 반영되지 않아 우리는 일본의 외침을 받아 혹독한 댓가를 치루었다. 지금 세상 모든 사람들은 트럼프를 비하하면서 힐러리가 당선된다고 한다. 대한민국 모든 매체 또한 힐러리의 당선을 기정사실화 하면서 트럼프를 비하하고 있다.
 
그러나 엉터리 전도사는 미국 소수의 석학들의 예견에 비중을 두고 싶다. 모든 것은 금년 11월이면 판명난다. 그때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믿었던 힐러리가 처참하게 무너지고, 트럼프가 당선되었을때를 상정하여 지금부터 우리나라 정치가의 선각자적인 대비를 기원한다

"트럼프가 이기는 것은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과 같다." ㅡ 미국 정치학자
 
 

 

 

 



[ 프란체스카 여사의 '6.25와 이승만: 프란체스카의 난중일기'. 이 책은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 박사의 아내 프란체스카 여사의 6.25 전쟁 비망록이다.


전쟁이 발발한 날인 1950년 6월 25일부터 중공군 개입이후 유엔군이 37도선으로 철수하여 재반격을 시작하는 1951년 2월 15일 상황까지를 다룬 이 일기는, 국가위난의 전시(戰時)에 대통령과 경무대를 중심으로 일어난 국내외의 중요한 사건과 전쟁상황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기록하고 있다. (뉴데일리 김은주 기자) ]


이승만 초대 대통령 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가운데)



[ 6월 25일 ] 북한 공산군은 6월 25일 새벽 5시에 쳐들어왔다.

나는 이날 오전 9시에 어금니 치료를 받으러 치과로 갔고, 대통령은 아침식사를 끝내자 9시 30분쯤 경회루로 낚시하러 나갔다. 10시쯤 신성모(申性模) 국방부장관(국무총리 서리겸임)이 허겁지겁 경무대로 들어와 “각하께 보고드릴 긴급사항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두 분이 집무실에 마주앉은 게 오전 10시 30분. 이 자리에서 신 장관은 개성이 오전 9시에, 그러니까 내가 치과로 떠나던 그 시간에 이미 함락되었고 탱크를 앞세운 공산당은 춘천 근교에 도착했다고 보고했다.

대통령은 “탱크를 막을 길이 없을 텐데…” 라며 입속말을 했고, 순간 얼굴엔 어떤 위험을 느끼는 듯한 불안의 빛이 스치고 있었다. 시내에는 ‘우리 아이들’―대통령과 나는 군인들을 꼭 우리 아이들(Our boys)이라고 불렀다―을 태운 트럭이 북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고, 시민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이제 38선이 깨진 모양이니 이북 땅도 되찾겠지.”라며 이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경무대 안 분위기도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 자식들 장난치다 그만두겠지”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신 국방까지도 대통령에게 “크게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경찰정보는 ‘상황이 심각하고 위급’하다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고재봉 비서관을 불러 정보보고를 확인했다. 고 비서관의 보고 역시 “예상 밖으로 적군의 힘이 강해 위험하다.”라는 것이었다. 대통령은 잠을 잊은 채 자정을 넘겼다. 침통한 모습에 나는 그때까지 한마디도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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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6일 새벽 3시 ]
대통령이 도쿄의 맥아더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속부관이 전화를 받았다. 그는 장군을 깨울 수 없으니 나중에 걸겠다고 대답했다. 대통령은 벌컥 화를 내며 “한국에 있는 미국시민이 한 사람씩 죽어갈 터이니 장군을 잘 재우시오.”라고 고함쳤다.


나는 너무나 놀라 수화기를 가로막았다. 대통령은 “마미, 우리 국민이 맨손으로 죽어 가는데 사령관을 안 깨우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요!”라며 몸을 떨었다. 상대편도 미국 국민이 한 사람씩 죽을 것이라는 말에 정신이 들었는지 “각하, 잠깐 기다려 주십시오.” 하더니 맥아더 사령관을 깨우겠다고 했다.…






[ 6월 26일 새벽 3시 30분 ]
“각하, 서울을 떠나셔야겠습니다.” 신 장관이 간곡히 남하를 권유했다. “안 돼! 서울을 사수해! 나는 떠날 수 없어!” 대통령은 그 이상 아무 말도 않고 문을 쾅 닫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신 장관은 침통한 표정으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는 대통령을 뒤따라 들어가 침착하게, 그리고 간절하게 부탁했다. “지금 같은 형편에서는 국가원수의 불행한 일이 생기면 더 큰 혼란이 일어날 거라고 염려들 합니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의 존속이 어렵게 된답니다. 일단 수원까지만 내려갔다가 곧 올라오는 게 좋겠습니다.” 내 말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대통령은 “뭐야! 누가 마미한테 그런 소릴 하던가? 캡팅 신이냐, 아니면 치프 조야, 장이야. 아니면 만송이야. 나는 안 떠나.”하고 고함을 질렸다.…


그들은 “각하, 여기서 내리십시오. 서울은 이미 빨갱이들 수중에 들어갔습니다.”라며 더 이상의 북상을 만류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계속 서울행을 고집했다. 옆에 있던 이영진 충남지사가 대통령을 부추기는 말을 했다. “한 발짝이라도 서울 가까이 계셔야 민심동요가 적어집니다. 제가 모시고 올라가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대통령도 따라서 “자네 말이 옳아. 나 서울 가겠네.”라며 응수했다. 나는 기차에서 내리려 했다. 대통령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영어로 “목숨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거야”라고 엄숙하게 말했다.






[ 7월 2일 ]
오전 11시 30분] 공산군의 탱크는 미군의 공격을 받고도 끄떡 않고 밀려오는 것이었다. 때문에 미군들의 공산군 탱크에 대한 공포심만 자꾸 눈처럼 불어났다.
 
“정신 상태야, 정신 상태! 멍청한 것들! 우리 아이들이나 경찰에게 그들이 가진 무기와 장비를 주어봐. 이처럼 후퇴하기에 바쁘진 않을 거야.” 대통령은 ‘멍청한 양코장이들’이란 말을 몇 번이고 되뇌며 책상을 주먹으로 쳤다.







[ 7월 14일 ]
14일에는 ‘현 전선 고수’라든가 ‘아군 선전’ 등의 판에 박은 듯한 전황보고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미 대사관에서 어서 빨리 부산으로 내려가는 것이 좋겠다는 연락만 왔다. 그때마다 대통령은 “내가 이 이상 더 내려가지 않아야 국민의 동요가 적다”며 대구에 머물 것을 고집했다.


대사관에 대한 공식답변은 이러했지만, 실은 미군의 전의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었다. “마미, 내가 부산으로 가지 않는 것은 뒤로 물러서기만 하는 미군들을 믿을 수가 없어서 그래. 지금 내가 여기 이렇게 버티고 있으니까 그나마 싸우지 부산으로 갔다하면 언제 대구를 내놓을지 모를 사람들이거든.” 대통령은 낙동강이 우리 최후의 방어선이자 생명선이라고 했다. 대통령은 지사관저 식당에 앉아 모기에 시살리며 이날 밤을 꼬박 새웠다.…







[ 7월 17일 ]
전투는 계속되어도 어두운 소식뿐인 것 같다. 고열에 들떠 멍멍한 속에서도 대통령의 기도는 매일 밤 내 귓전에 울렸다. “오 하나님, 우리 아이들을 적의 무자비한 포탄 속에서 보호해 주시고 죽음의 고통을 덜어 주시옵소서. 총이 없는 아이들은 오직 나라를 지키겠다는 신념만으로 싸우고 있나이다. 당신의 아들들은 장하지만 희생이 너무 크옵니다. 하나님! 나는 지금 당신의 기적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기도는 절규였다.








조재천 지사부인이 콩나물에다 파를 넣고 끓여 소금으로 간을 맞춘 맑은 국물을 가져왔다. 몇 모금 마시니 속이 부드러워지는 것 같았다. 나는 이 국물을 아꼈다가 대통령에게 권했다. 대통령은 “마미, 당신이나 두고 마실 일이지...”하시더니 단숨에 한 대접을 몽땅 비우는 것이었다. 눈물이 솟구치는 것을 꾹 참았다. 내가 앓는 동안 못 적은 일들을 보충해야겠다.



대통령은 적이 포진하고 있는 지역에 “동족의 가슴에 총을 겨누지 말고 국군에 투항하라”는 내용의 전단을 비행기로 살포할 것을 명령했다. 우리 측의 심리전에 당황한 적은 어린아이들이 전단을 줍는 것까지도 총으로 쏘아 감히 어느 누구도 선뜻 전단을 주우려 들지 않았다…






[ 7월 18일 ]
대통령은 아이들을 너무나 사랑했다. 이곳저곳 지사관저로 옮겨 다닐 때마다 예닐곱씩이나 되는 그 댁 아이들을 일일이 껴안고 귀여워했다. 그러면서 “지사는 복도 많은 사람이야”를 연발했다. 그때마다 나는 죄스런 느낌을 가졌다. 대통령은 이내 내 안색을 살피고는 “대한민국의 청년이 모두 우리 아들이야. 마미는 수없이 많은 아들을 두었으니 할 일이 많아.”하며 위로했다.…






[ 7눨 29일 ]
이날 밤 대통령이 나를 불러 도쿄의 맥아더사령부로 떠나라고 했다. 거의 명령조였다. “마미, 적이 대구방어선을 뚫고 가까이 오게 되면 제일 먼저 당신을 쏘고 내가 싸움터로 나가야 돼요. 그쪽에 부탁해놓았으니 당신만은 여기를 떠나주시오.” 나는 절대로 대통령의 짐이 되지 않을 것이며, 최후까지 대통령과 함께 있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내손을 꼭 잡은 대통령이 “다시는 망명저우를 만들지 않을 거야. 우리 아이들과 같이 여기서 최후를 마칩시다.”하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창밖 멀리 떼 지어 몰려드는 피난민들의 울부짖음이 가슴 저리게 들려왔다. 가족들의 이름을 부르며 애타가 찾는 소리, 끌고 온 송아지의 배고픈 울음소리며 달구지의 삐격대는 소리가 화살처럼 귀에 박힌다. 창틀을 움켜쥔 대통령의 기도도 울음 섞인 목소리였다. “하나님, 어찌하여 착하고 순한 우리 백성이 이런 고토을 받아야합니까? 이제 결전의 순간은 다가옵니다. 우리 한 명이 적 10명을 대적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소서...







[ 8월 3일 ]
"이 전쟁이 승리로 끝나면 꼭 찾아뵈올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주세요."라며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결국 한국동란 중에 돌아가셨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라지 않았다.(훗날 프란체스카 여사의 회고-대통령은 장례에 다녀오라고 했다. 하지만 나라 사정이 빈까지의 여비도 문제였지만, 한시라도 대통령 곁을 떠날 수 없는 상황이라 엄두를 못 냈다)…









[ 8월20일.] 이런 해프닝이 있었다. 대구 임시관저에 있을 때 두어 번 미8군에서 냉동고기류와 빵을 보내온 일이 있었다. 또 시민들은 대통령이 들도록 감자, 옥수수, 계란, 닭 등을 지게에 지고와 두고 가기도 했다. 대통령은 이런 음식이 생기면 몽땅 전방이나 후방 훈련소의 우리 아이들에게 갖다 주도록 했다. 날씨가 더워 고기나 빵 같은 것은 하루만 지나면 상하는 시절이었다. 대통령이 양 씨를 불렀다.


“자네 나하고 같이 부산 훈련소에 다녀오지. 저 음식들을 갖고 가서 자네 솜씨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우리 아이들에게 나누어주게. 음식이 빨리 상하니 비행기로 가지.”


부산 신병훈련소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와서 특식을 제공한다는 연락을 받고 군악대까지 대기시켰다. 비행기 문이 열리고 양 씨가 음식을 먼저 챙기기 위해 트랩을 내려섰다. 군악대가 대통령 환영 연주를 시작했다. 언뜻 보아 양 씨는 틀림없는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당황한 것은 양 씨였다. 그는 ‘나는 대통령이 아니다’라는 뜻으로 두 손을 내저었다. 군악대는 대통령이 환영에 답하는 줄 알고 더 신이 나서 나팔을 불어댔다. 이 해프닝이 있고난 뒤 대통령은 양 씨를 보면 “자네는 음식 대통령 하게. 앞으로 내 시찰 때는 함께 가서 우리 아이들 음식을 만들어주지.”하며 꼭 수행토록 했다.







[ 9월 12일 ] 아침에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이 대통령에게 작별인사를 하러왔다. 3천 해병을 이끌고 정오에 배로 떠난다고 했다. 울산 쪽 동해안에 12척의 큰 함정들이 대기 중이라는 것이다. 한 달 쯤 전 대구에서 일본으로 훈련 차 떠났던 8천 명의 한국군 장병들도 이번에 돌아와 미군과 함께 상륙작전을 벌이러 간다고 한다. 상륙지점은 목포라는 말도 있다.


저녁 무렵 대구에서 국방장관이 와 대통령에게 청도에 있는 피난민촌을 방문하도록 권했다. 대구와 부산 사이 중간쯤에 있는데 기차를 타고 3시간, 다시 지프로 45분 걸리는 곳이다. 신장관은 또 총공격이 계획됐으나 일본을 덮친 태풍 때문에 연기해야 될듯하다고 보고했다.
밤새 바람이 미친 듯 불어댔다. 도대체 어찌될 것인가. 바람 불거나 비 오는 날이면 공군기들이 적을 공격할 수가 없다.








[ 9월 16일.] 오전 9시를 기해 모든 전선에서 총공격이 시작됐다. 날씨가 또 궂다. 가신 줄 알았던 태풍이 다시 횡포를 부린다.


어제 하오 맥아더 장군이 인천 상륙에 성공했다고 한다. 공식발표나 보고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SCAP(연합군최고사령부) 방송을 들어서 알뿐이다. 인천작전은 해군과 해병대가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워커 장군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한다. 비행기로 지원 폭격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생각하기엔 좀 이상하지만, 그게 미 육군과 해군이 이곳에서 작전하는 방식이다.







[ 9월 23일.] 어제 대통령은 중앙청 출입기자단과 사변 이후 처음 회견을 가졌다. 서울탈환을 앞둔 소감을 대통령에게 질문했다. 대통령이 다음과 같은 요지로 답변했다.


“처음에는 무기가 없어 곤란을 당했으나 이제 서울탈환을 목전에 두게 되니 감개무량하다. 언제나 민주진영은 끝에 가서 승리한다. 그동안 동포들이 화를 당하고, 더욱이 날씨가 추워짐에 따라 전재민의 어려운 상황을 생각하니 가슴 아프다. 하루바삐 서울을 탈환하고 정부가 들어가면 앞으로 더욱 우리가 할 일이 많다.








[ 9월 29일 오전 8시 ] 우리는 부산수영비행장에 도착하여 환송 나온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대통령은 비행기에 탑승했다. 조봉암 국회부의장과 김병로(金炳魯) 대법원장도 함께 탔다. 한 시간 반 이상의 비행 후에 우리는 인천 앞바다에 줄지어있는 전함들을 볼 수 있었다.


대통령은 시종 말없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도시의 여러 군데가 파괴된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건물들은 앙상하게 파괴되었고 여기저기 포탄에 맞은 자취가 드러나 보였다. 대통령은 침통한 표정이었다. 나는 뒤에 타고 있는 황 비서에게 맥아더 장군에게 수여할 훈장과 훈기를 확인시켰다.


김포비행장에 도착하니 많은 차들이 늘어서 있었다. 우리가 탈 차는 맥아더 장군이 마련해준 카키색 세단이라고 노블 박사가 가르쳐 주었다. 눈에 익은 몇몇 특파원과 기자들이 대통령의 서울 복귀를 취재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맥아더 장군 곁에는 워커 장군, 아몬드 장군, 조이 장군 등이 서있었다.
대통령은 비행기트랩을 내린 다음 맥아더 장군과 악수를 나누며 감격적으로 껴안았다. 그 순간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목이 메어 대통령 뒤에 가만히 서있었다. 이어 맥아더 장군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서 나에게 자기 부인의 안부 인사를 전했다.


맥아더 장군의 부인은 아주 매력 있는 주부이고, 남편의 지위 때문에 티를 내는 일이 없는 겸손한 아내였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금방 친숙해졌고 서로 마음이 잘 통했다. 전승국 최고사령관의 부인으로서 늘 검소했으며 사치나 낭비를 죄악으로 생각하는 절제 있고 조용한 내조자였다.








[ 10월 15일 ] 밀린 일기를 한꺼번에 쓰는 일은 정말 어렵다. 대통령은 나에게 한 줄이라도 좋으니 날마다 간단하게 기록하라고 당부했다. 어제는 김광섭 비서가 연락도 없이 늦게 왔다.


대통령은 그에게 시킬 일이 많이 있어서 아침부터 김 비서를 기다렸다. 대통령은 시간을 잘 지켜야만 문화인이라고 누구에게나 가르쳐 왔으며, 시간을 안 지키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김 비서는 시인이기 때문에 문인기질이 있어서 자유분방한 면이 있지만, 나와는 달리 대통령은 항상 그를 감싸준다.


김 비서가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남의 잘못을 예민하게 알아차리는 너그럽지 못한 성미 탓에 나는 부석해진 김 비서의 얼굴과 술 냄새로 “또 술 마시고 늦었구나”하고 바로 직감했다. 대통령도 기분이 좋지 않은 음성으로 늦게 온 이유를 김 비서에게 물어보았다. 김 비서는 납북됐거나 죽은 줄로만 알았던 친구들을 만나 밤새껏 막걸리를 마셨다고 실토했다.


이 말에 화가 풀린 대통령은 “절친한 친구들이 안 끌려가고 용케도 살아남아 있었으니 반가웠겠구먼. 그래 별다른 소식들은 없었나?”하고 물었다. 김 비서는 많은 문인들이 적 치하에서 온갖 고생을 다 견뎌냈으며, 현재 확인한 바로는 박종화(朴鍾和), 김동리(金東里), 유치진(柳致眞), 방기환(方基煥), 오종식(吳宗植), 양주동(梁柱東) 씨 등이 무사하다고 보고해서 대통령이 무척 기뻐했다.









[ 10월 30일 ] 대통령이 평양을 무사히 다녀와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대통령은 이날 오전 7시 반 경무대를 출발하여 8시35분 여의도 비행장을 이륙, 평양으로 향했다. 신성모 국방장관, 김광섭 비서, 김장흥 총경, 이선근 대령 등이 수행했으며, 공군의 김정렬(金貞烈) 장군이 경호비행을 했다. 동행하지 못한 나는 대통령이 돌아올 때까지 마음을 죄며 기다렸다.


바로 열흘 전까지 평양은 우리의 적인 공산당들의 아성이었기 때문에 나는 대통령의 안위가 몹시 염려되었다. 태극기를 든 평양시민들이 만세를 부르며 대통령을 열렬히 환영했다고 한다. 연설을 마친 대통령이 군중 속으로 들어가서 수많은 시민들과 악수하며 껴안고 등을 두드리는 바람에 수행했던 사람들과 정일권 장군이 무척 애쓰고 혼이 난 모양이었다.








[ 11월 28일 ] 맥아더 장군이 워싱턴에 전문을 보냈다.


「본 사령부는 능력범위 내에서 인간적으로 가능한 모든 것을 다하였으나 지금은 그 통제와 힘이 미치지 못하는 사태에 직면해 있음.」


트루먼 대통령은 국가안보회의 특별회합을 소집했다. 이 회합에서 애치슨 장관은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어떤 다른 방법을 찾아야할 것” 이라고 자기의 견해를 밝혔다. 트루먼 대통령은 11월 30일 기자단과의 주례회견 석상에서 “필요한 단계에는 중공군에 원자폭탄을 사용하기 위한 모든 적극적인 고려를 하도록 명하였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서 3차 세계대전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루먼 대통령은 또 “원자탄 투하 여부의 결정을 현지 사령관의 재량에 맡겼다”고 한 뒤 “유엔군이 한국 국경을 넘어갈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그 문제는 유엔이 결정할 것이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워싱턴으로 달려온 영국수상 애틀리와의 회담 뒤에 트루먼은 원자탄은 사용되지 않을 것이며, 동맹국과의 사전협의 없이는 미국이 결코 원자탄을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밝히는 성명을 발표했다.







[ 12월 24일 ] 내일이 크리스마스여서 우리는 예배를 보러 오전 11시 정동교회로 갔다. 성탄절을 맞는 예배당 안에는 아무런 장식도 없이 너무나 쓸쓸하고 황량하며 난롯불 하나 없이 썰렁했다. 손발이 꽁꽁 얼어 감각이 없어질 만큼 추운 이 넓은 예배당 안에는 손으로 꼽아 약 20명의 교인이 모여 있었다. 목회를 인도할 목사가 없어서 평신도 한사람이 예배순서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 신도의 설교는 매우 감동적이었다. 교인들이나 대통령은 함께 예배를 보게 되어 모두 기뻐하였다. 그 신도는 성경의 마태복음 10장 29절을 봉독했는데, 사람들이 모두 울었다. 대통령은 그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니 아무리 강한 적이 쳐들어와도 기어이 물리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도록 격려했다. 이 예배는 지금껏 우리가 참석해온 예배 중 가장 감명 깊게 기억에 새겨질 만큼 감동적이었다.










너는 코리아다



northkorea


In the golden age of Asia
Korea was one of its lamp - bearers

And that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For the illumination in the East.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그 등불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라빈드라낫드 타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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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활동에 참석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파키스탄 사람들.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이슬람교 집회 ‘비쉬와 이즈테마
(Bishwa Ijtema)’에 참석했던 수 천명의 무슬림들이
열차들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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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 바구니를 운반하는 과적차량이
나이지리아 주요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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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오스트리아의 한 고속도로에서 한 농장 주인이
차에 소 두 마리를 싣고 농장으로 소를 옮기는 장면이 포착됐다.
오스트리아 동물보호 단체는 현지 법원에 농장 주인을 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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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쿤밍(昆明)시,
전동차 한 대에 7명이 함께 타고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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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빈곤 국가에서 석유 부국으로 일을 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온 노동자들이 모처럼만에 귀향 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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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야자를 운반하는 장면.
인도에서는 이와 같은 풍경이 매우 익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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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표 값을 줄이고자 ‘공짜’로 기차를 얻어 탄
인도네시아의 학생과 노동자들.

인도네시아 철도 당국의 관리에 따르면,
수도 자카르타 주변에 국한된 풍경으로
매월 적어도 6명이 기차에서 떨어져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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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저가 열차는 항상 인원 초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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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 같은 일본의 지하철. 직원이 승객들을 안으로 밀어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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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노동자들이
기차의 마지막 칸에 비좁게 타고 있다.
2005년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교의 중요한 명절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 노동자들이 1700만 명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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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쓰촨(四川)의 ‘트럭 택시’, 차의 앞 부분에만 10명이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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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1971년형 4인승 자동차에
17명이 탑승해 기네스 기록을 경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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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모든 사진들은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됐던 사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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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BBC 방송의 최근 보도에 의하면 한국 남성의 평균키가 북한 남성 평균키보다 3~8cm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평균키 차이는 어릴수록 두드러지며, 취학 전 어린이의 경우 남한 남자 어린이의 평균신장이 북한 남자 어린이보다 4cm 크고, 남한 여자 어린이는 북한 여자 어린이보다 3cm 큰 것으로 조사됐다.

단일 민족 국가인 한국에서 남북한의 평균키 차이는 유전적인 것이 아니며, 남한의 경제 발전으로 남한의 여성의 키가 북한 남성의 키를 추월, “여성의 키가 남성보다 더 큰 유일한 사례” 라는 내용의 발표이다.

남북한 경제의 차이가 만들어낸 특이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한편, 남한과 북한의 경제의 차이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발표에 의하면, 한국의 경제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북한의 38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8년 북한 인구는 2330만 명으로 남한의 절반(47.9%) 정도인데 북한 국내 총생산(GDP)는 247억 달러로 한국 (9287억 달러)의 2.7%에 그쳤다.

이를 인구 수준으로 나눈 북한의 1인당 GDP(1060달러)도 한국의 5.6%에 불과하다.

위에 인용된 수치를 종합하면 북한의 경제 규모는 남한의 38분의 1로 남북한 경제력의 격차가 상상을 초월하게 크게 벌어진다는 결론이 된다.

북한은 왜 가난한가?

북한은 왜 전세계의 최빈곤국중의 하나로 전락하고 있는가?
북한은 왜 헤어 나올 수 없는 가난과 폐쇄와 고립 속으로 침몰하고 있는 것일까?

대답은 아주 간단하고 또 확연하다.
북한에는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이 자신의 자유의사와 선택에 따라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고 실현 시킬 수 있을 때, 바로 그런 인간다운 노력이 생산과 창조로 이어지고, 또 바로 그때에 우리들이 추구하는 물질적인 부도, 생산도, 개혁과 개선도, 예술의 탄생도 가능해진다.

한 개인이 각자 타고나는 창의성의 실현이 한 생명이 추구하는 자아실현이라는 절대적 가치를 성취시키고, 인간의 자기존중이 시작된다.

북한과 같이 살인적인 억압과 통제 속에서는 개인의 자기존중은 쉽게 말살되며 자기존중을 잃어버린 국민은 저절로 노력을 포기하고 만다.

개인의 선택의 자유가 국민 각자의 권리로 인정 받는 곳, 그것이 곧 민주주의의 핵심이고, 이 기본권리의 자유는 자연스럽게 어느 인간사회에나 주어져야 한다.

그러한 자연스러운 국민각자의 생존방식이 바로 건전한 사회, 쉬지 않고 성장하고 성숙하는 사회를 만들고 이끌어가게 되는 것이다.

남한이나 미국처럼 사회 구성원인 각 개인에게 언론, 종교, 경제, 사회, 과학,예술, 교육, 문화, 군사, 스포츠, 정치 등의 각 분야의 선택이 뷔페 식당처럼 열려있고 각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곳, 그런 곳이 바로, 자유, 민주주의와 인권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건강한 사회이다.

자연스러움이 곧 자유이다.

3대 세습으로 김씨 왕조를 반인륜적으로 억지로 끌고가고있는 북한은 현재 ‘완전한 정도의 폐쇄와 절대적 폭압 살상 통치의 외딴섬’과도 같다. 국민은 노예가 되어 혹사 당하고 착취당하며 학대 받고 있다.

자연을 거슬러 살도록 강요당하는 집단 속에서는 인간은 의욕과 동기를 상실하게 되있고, 곧 한 생명의 최악상태인 자포자기로 빠져든다.

북한사회 전반에 만연하고 있는 부정부패와 권력층의 착복, 뇌물에 의하여 움직여지고 있는 정부기관들이 그 생생한 예이고 증거와 증명이 된다.

북한은 변해야 한다.

반드시 변해야 하고, 또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개혁과 개방과 함께 빵과 자유가 국민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각자 참여하여 자신들의 자유의사에 따라 나라살림을 이끌어가야 한다.

국민 각자를 자신만의 독특한 육체적, 심리적 필요나 욕구를 가진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고 보호할 정치이념과 능력을 갖춘 문명한 사회로의 전환이 그 어느 때보다도 현재의 북한에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그 어느 개인이나 집단도 자연을 거슬러서는 절대로 살아 남을 수 없다는 역사의 교훈에서 다시 마음을 열고 배워야 한다.

윤병열 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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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에서 빚을 가장 많이 진 나라는 미국이다. 
純(순)채무가 약 2조6000만 달러이다. 미국이 빚더미 위에 앉아서도 큰 소리를 치는

이유는 세계가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고 있어 부도가 나지 않는 나라가 된 덕분이다. 
그러면 지구촌에서 가장 많은 빚을 내어준 나라(돈은 꾸어 준 나라)는? 
일본이다.세계 1위의 債權國(채권국)이다.일본은 프랑스를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에

빚을 내어주었는데, 2011년 현재 약 7조5000억 달러이다.

여기에서 일본이 진 빚을 뺀 純(순) 채권액은 약 3조2000억 달러이다. 

한국은 순 채권액이 약 1000억 달러이다. 
일본에 이어 두 번째 純채권국은 중국으로서 약 1조8000억 달러, 
3위가 독일 약 1조2000억 달러, 4위가 스위스 약 1조 달러, 
5위가 홍콩 약 7000만 달러, 러시아 약 4000만 달러이다. 

이런 일본을 우습게 보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라고 한다. 
純(순)채권 1000억 달러짜리 나라가 그 30배의 나라를 우습게 본다면

視力(시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빚을 많이 내어준 나라는 외교적 발언권이 클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외교정책의 재고가 필요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일본이 2007년 말 현재 해외에서 보유하고 있는 資産(자산)은 610조엔
이다. 약 6조 달러라는 이야기이다. 일본이 해외에 대하여 지고 있는 
대외(對外)채무는 약 330조엔, 약 3조3000억 달러이다. 

대외 채권액에서 대외 채무를뺀 순대외채권은 2조 달러를 넘어 3조 달러에 육박한다.

2등인 중국의 약 배이다. 이는 한국 한 해 총생산의 두 배 이상 되는 액수이다. 

일본은 16년째 세계 최대의 대외 채권국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지구촌에서 일본은 가장 큰 채권국이고 미국은 가장 큰 채무국이다. 
미일(美日)동맹은 최대 채권국과 최대 채무국 사이의 짝짓기이다. 

일본의 대외자산은 해외직접 투자(6400억 달러), 채권 및 주식 투자
(2조7000억 달러), 대출금 등 기타투자(1조5000억 달러), 외화준비금
(1조 달러)으로 되어 있다. 

방대한 대외채권으로부터 발생하는 이자소득도 엄청나다. 
2006년의 경우 일본은 대외 투자에 의한 이자소득으로 약 1300억 달러를 벌었다.

이는 상품과 용역수출로 얻은 무역흑자 730억 달러보다 훨씬 많았다. 

대외투자에 따른 이자소득 부문에서도 일본은 영국과 독일을 누르고 1등을 달리고있다.

국민총생산 대비 이자소득의 비율 부분에서도 일본은 1등이다. 

일본은 제조업 국가로 알려져 있으나 상품을 팔아서 번 이득보다 훨씬 많은 이득을

대외투자에서 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怪力(괴력)이다. 

일본 호감도 세계 2위
이명박 대통령은 얼마 전 '일본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모든 통계는 그렇지 않다.
2010년 초 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세계 28개국의 '국가 영향력'에 대한 여론 조사를 하였다.

28개국의 29,977명을 인터뷰하여 국가별 부정적여론과 호의적여론을 채점하여 순위를매겼다.

영향력을 好感度(호감도)로 평가한 조사였다. 

세계 여론으로부터 가장 好評(호평)을받은 나라는 독일로서 59점,2등이 일본으로 53점이었다.

한국은 32점으로 下位圈(하위권)이었다. 
28개국중 중국만 제외하고는 모든 나라에서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혐오도보다 높았다. 

일본에 대하여 가장 좋은 평가를 하는 나라는 필리핀으로 77점, 다음이 인도네시아 71점,

브라질 70점, 미국 65점이었다. 

여러 기관의 국가별 호감도 조사에서 늘 1등을하는 나라는독일,늘 상위권에 드는 
나라가

일본이다.두 나라가 전쟁을 일으켜 세계인들을 괴롭힌 과거를 생각하면 이해할수 없지만

두 나라가 戰後(전후)에 많이 달라졌다는 점을 인정받고 있다는 뜻이다.

두 나라는 경제개발에 성공하였고 대외원조를 많이하며 민주주의도 착실하게 발전시켰다. 

국가브랜드 인덱스(Nation Brands Index)라는 게 있다.안홀트와 GfK 로퍼 홍보회사가

세계 여라 나라 국민들을 인터뷰하여 국가에 대한 호감도를 조사하고 순위를 매긴다. 

조사항목은 국민에 대한 好感度(호감도),정부의 관리 능력,제품,관광,문화와 역사,투자및

이민이다.2년 전 발표된 자료를 보니 정부에 대한 호감도 부문에선 스위스가 1등이다.

2위는 캐나다, 이어서 스웨덴,독일,호주,노르웨이,네덜란드,덴마크,영국,프랑스, 핀란드

뉴질랜드, 오스트리아, 스코틀랜드, 벨기에(15위) 차례였다. 

제품에 대한 호감도에선 일본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세계1위였다. 
이어서 미국,독일,영국,프랑스,캐나다,스위스,스웨덴,이탈리아,호주,네덜란드,스페인,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15위)였다.문화 부문에 대한 호감도 순위는 1위가 프랑스,이어서 이탈리아,영국

독일,미국,스페인,러시아,일본,중국,브라질,호주,캐나다,스웨덴,네덜란드,오스트리아(15위)였다. 

국민에 대한 호감도에선 캐나다 사람들이 1등이었다.이어서 호주,이탈리아,스웨덴,스위스,영국

독일, 일본, 스페인, 뉴질랜드,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노르웨이-스코틀랜드(공동 14위)였다. 
관광하고픈 국가 순위론 이탈리아가 1등이고 이어서 프랑스,스페인,영국,호주,미국,캐나다,

일본, 스위스, 독일, 이집트, 스코틀랜드, 브라질, 스웨덴, 오스트리아였다. 

투자 및 이민을 가고 싶은 나라 1위는 캐나다,이어서 영국,미국,스위스,독일,프랑스,호주,스웨덴

이탈리아, 일본, 네덜란드, 스페인, 덴마크, 노르웨이, 뉴질랜드(15위) 순위였다. 

종합 국가브랜드 순위를 보면 
1등이 독일로서 67.4점이다. 
2등이 프랑스인데 67.3점이다. 
3위는 영국 66.8점. 
이어서 캐나다, 일본, 이탈리아, 미국, 스위스, 호주, 스웨덴(10위),스페인,네덜란드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덴마크, 스코틀랜드,뉴질랜드,핀란드, 아일랜드 벨기에(20위)

브라질,러시아,아이슬란드,싱가포르,아르헨티나,멕시코,인도,헝가리,중국(공동 28위)

폴란드,체코-이집트,한국(33등),태국,대만,터키,남아프리카, 칠레, 말레이시아,페루

루마니아, 리투아니아,인도네시아, 에스토니아, 아랍에미리트-쿠바,에콰도르,사우디 
아라비아, 나이제리아, 이란(50위) 순이었다. 

국가브랜드 1위인 독일은1,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수천만명을 죽음으로 몰고갔던 나라이다.

유태인들을 수백만 명이나 학살한 나라이다. 그럼에도 이미지가 가장 좋은 나라가 되었다. 

그 이유는 뭘까?

1. 1945년 이후 독일(서독)이 민주주의를 착실히 발전시켰다. 
2. 나치 시절의 과오를 솔직하게 시인했다. 
3. 외국 원조를 많이 한다. 
4. 사람들이 근검 절약하고 성실하며 정직하다. 
5. 동서독(東西獨) 통일이 평화적으로 이뤄졌다. 
6. 경제력이 세계 3위인데도 국제사회에서 겸손하게 행동한다. 
7. 세계에서 가장여행을 많이하는 독일국민인데도,태도가 모범적이라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最惡(최악)의 국가 이미지를 최선(最善)의 이미지로 바꾼 독일사람들 한테서 배울 게 많다.

하나를 꼽으라면 법(法)을 잘 지킨다는 점일 것이다.
한국의 브랜드가 세계 33위. 1인당 국민소득이나 삶의 질 통계에서도 30등 전후이다.

아시아에서 일본, 싱가포르, 인도, 중국이 우리보다 앞이다. 

그런데 한국사람이 가장나쁜 나라로 지목하는 일본은 세계사람이 호감을갖는 나라중 세계 5위이다.

한국인의 視覺(시각)교정이 필요한 게 아닐까? 
이 대통령이 근거도 없이 일본의 국제적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깔보는 식으로 발언하는 것은

낭패를 불러 일으킬수 있다. 敵(적)을 얕잡아 보는 건 패배로 가는 지름길이다.


와. 대단하다.... !


China


Germany


Germany


Somewhere In Sahara





Sahara


Goose Trip To Vung Tau, Vietnam







Motorcycle With Plastic Bottles






China



China









동성애, 차별금지법, 소아성애, 수간!

- 김지연 약사 (순복음교회 철야예배) -


바쁘신 분들은 31분 20초부터 보십시오.

동성애 문제를 알려주시면서

소아성애, 수간에 대한 이야기도 하십니다.


소아성애, 수간..

지금은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합니다.


동성애도 옛날에는 사람들이 다 반대하며 욕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언론에서 쉽고 긍정적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걱정이 됩니다.

얼마 전에 한 가수가 소아성애라는 논란도 있었습니다.
어릴 때는 연예인 중에서 특히 가수들을 좋아하는데,

이 시대의 아이들을 생각하니 더 심각성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당연히 이 모든 것들을 반대하지만,

우리가 누구보다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분별력을 갖길 바라는 의미에서 동영상을 올립니다. 

 

 

동성애 차별금지법-김지연 약사

 

옮긴 글/이웃 블로그

Renaissance Pleasure Farie는

지난 4월 6일에 개막하여 5월 19일까지

주말에만 개최되는 LA 최고의 축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르네상스 축제는

Renaissance Faire,

혹은 Renaissance Fair, 또는

Renaissance Festival이라고 불리워지기도 합니다.

 

르네상스 축제(이하 RPF)는

미국의 몇 개 지역에서 순차적으로 개최되는데

캘리포니아에서는 위에서 말한대로 4월부터 5월에 걸쳐서,

 

일리노이와

위스칸신에서는

7월 6일부터 9월 2일까지,

 

그리고 뉴욕에서는

8월 3일부터 9월 22일까지 개최됩니다.

 

RPF는

한마디로 중세시대,

특히 엘리자베스 여왕과

셰익스피어 시대를 중심으로한

의상과 볼거리들로 이루어진 축제입니다.

 

더불어,

헨리 8세, 바이킹 시대,

17-18세기의 해적시대의 모습도 볼 수 있으며

 

당시의 각종 의상 뿐만 아니라

다양한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

음악과 각종 쇼들로 흥겨운 축제의 장을 이룹니다.

 

입장료가

다소 비싸기는 하지만

주말 나들이로 최고일 뿐만 아니라

 

평상시에 보기 힘든 의상과 장면과

음악과, 각종 쇼, 그리고 다양한 볼거리는

RPF만의 자랑거리입니다.

 

특히,

카메라를 들이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아서

스스로 포즈를 취해주기 때문에

 

초보든, 프로든 간에

사진사들에게는 인물 촬영에 더없이 좋은 기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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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지역의 RPF는

Santa Fe Dam Recreation Area에서 열리고 있는데

행사지역이 워낙 넓어서 찬찬히 훑어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특히,

사진을 찍느라고 한 곳에서 오래 지체하면

하루 종일 있어도 전체 행사장을 다 돌아보기 힘들 정도입니다.

 

뭐, 물론

대충 돌아보면

몇 시간 만에 돌아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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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 입구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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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장 초입부터 쇼가 펼쳐지는데

비록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볼만한 쇼들이 제법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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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를 구경하는 관람객들의 모습입니다.

한 여자의 시선은 사진사를 향해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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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F는 볼거리와 먹거리,

살거리가 즐비한 곳이기도 합니다.

왼쪽 꼬마 여자의 뒷모습이 사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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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인 음악을 연주하는 무대와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곳에 앉아서 20-30분 음악을 듣다 보면 시간이 저절로 흐르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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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과 무대를 자세히 보면,

같은 사람이 각각 다른 장소에서 노래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여러 무대를 돌아다니면서 각기 다른 장르의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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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서정적인 Wild Mountain Thyme을 부르는 동안 한컷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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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 무대도 있군요.

이들이 비록 전문가들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많은 연습을 한 흔적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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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의

여염(閭閻, 서민의 살림집) 집앞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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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우물가, 혹은 빨래터의 모습입니다.

중세의 유럽도 우리네처럼 우물가가 동네의 소식을 주고받는 중심가 였을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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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기사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구애, 혹은 청혼을 하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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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볕을 한 참 걸어다니다 보면 상당히 더운데

이런 알록달록한 양산을 쓰고 다니면 시원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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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저 여인들이 들고 먹는 고기의 크기로 보아서

닭다리는 아닌 것 같고, 칠면조다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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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벌어지는 와중에도

곳곳에 쉬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처럼 많은 것을 보면

인파가 얼마나 많고 붐비는지 대충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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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중세시대의 미용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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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미뉴엣과 17세기 궁중 음악같은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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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귀족들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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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추는 귀족들의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는 또다른 귀족?

옷차림을 보니 왕족같기도 하고.... 복식문화에 조예가 없어서 잘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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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이런데서 너를 만나게 되다니 무지 무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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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우로 분장한 사람의 모습... 진짜 잭 스패로우 처럼 생겼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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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든 여자가 나에게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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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글 : 주안(power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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