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 없는 양같이 헤매며 기진한 인생들을 보며

마태복음 9장

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세 번째 문단의 시작입니다. 장 절로서는 9장 끝에 나오지만 새로운 문단의 시작임을 알 수가 있는 것은 4장 말미에 동일한 표현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산상수훈인 5-7장의 도입부는 4장 마지막 부분입니다.

독자의 관심을 절정으로 이끌고자 하는 마태의 문학적 기교가 엿보입니다.

이야기를 밋밋하게 전개해나다가다 맹물처럼 끝을 맺는다면 좋은 독서감이 될 수가 없지요.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글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글로 옷입고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이지요.

그러기에 글에 대한 이해, 즉 문맥을 통한 본문의 의미를 구하는 일은 독자가 마땅히 추구해야 하는 중요한 일입니다.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된 문자를 소리나는대로 읽는다고 해서 문맹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문맹입니다.

어느 민족이든 국어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글을 읽을(독해) 즈음에는 역사를 가르치지요. 역사란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근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해의 결여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하나님 나라(천국)에 대해서 바르게 알지 못하면 그 나라 백성으로서 합당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육적인 눈으로는 볼 수가 없지만 영적으로는 보이는 나라가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에 속한 자마다 내 나라가 어떤 나라인 지에 대해서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국어책이자 역사서가 바로 성경입니다.

오늘 본문은 '모든'으로 시작합니다.
'모든 도시와 마을'이란 빠짐없이란 뜻입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자는 죄인이기에 구원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이방이나 다름없는 갈릴리 지역의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시작했지만 마지막 때는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될 것입니다. 모든 자들이 복음을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4장 23절, 온(모든)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9장 35절,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24장 14절,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28장 19절 ,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예수님은 '예수 천당! 불신 지옥!'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으셨습니다. 차분히 가르치는 것으로 시작하셨습니다.

가르치고 선포하고 고치고...

예수님의 사역의 패턴이 그러했습니다.

천국이란 친구따라 강남가듯이 들어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배워서 알아 지적으로 동의한 자들에게 그 나라(천국)를 선포하는 방식이지요.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라 '안 나오면 쳐들어간다!'는 식으로 복음을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먼저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 당시 가르침의 텍스트(말씀)는 구약성경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천국 복음의 선포, 그리고 고치심이 성경(구약)에 근거한 것임을 잘 압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고 바라는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신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들을 이방의 빛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는 만민의 구원을 위해서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

그 나라는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고 바랐던 예수님, 바로 그 분입니다. 달리 말해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아들)으로서 왕(the messianic king)이시란 말이지요.

가르침과 복음 선포와 고치심을 통해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다스리는 나라가 바로 천국(메시야 왕국-하나님 나라)이란 말입니다.

교회는 단순한 모임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유형적(가시적) 모임입니다. 그럼과 함께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 살아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 나라의 백성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단순히 가르치는 선생이 아닌 것입니다. 그 이상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메시야-그리스도)로서 삼중직임(왕 제사장 선지자)을 담당하신 구원자로서 가르치신 것이시지요.

히브리어로는 마시아(흐), 예수님 당시의 아람으로서의 메시야(기름부음 받은 자)를 번역한 헬라어가 바로 그리스도(기름부음 받은 자)입니다. 글자는 다르지만 뜻(의미)은 같습니다.

잘 못된 지도자 아래서 배운 자들은 목자 없는 양과도 같습니다. 길을 못 찾아 헤매는 기진한 양들 말입니다. 그런 양들이 예수님 당시에 많았습니다. 저들을 가르치고 인도할 선생이 필요했습니다. 바로 추수할 일꾼들이지요.

이 시대에도 바른 지도자를 보내주십사고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영적 지도자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들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만민의 구주이신 그 분은 자신의 종들을 부르셔서 이 사명을 감당케 하십니다.

목사만이 종이 아닙니다.

먼저 부름을 받은 자는 이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잘 배워야겠지요.

양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바르게 세워서 주님의 명령을 잘 감당케 하는 직분을 받은 자가 먼저 믿은 저와 여러분입니다.

목사는 주님을 따라가는 양떼의 선도양입니다. 군대로 치자면 선임병이나 지휘관입니다. 그리스도 군사의 대장은 오직 우리 주 예수님뿐이십니다.

잘 가르치고 천국 복음을 선포하며 약하고 병든 양들을 고치는 그런 제자들이 많아지기를 소원합니다.

목자 없는 양같이 헤매며 기진한 인생들을 보면서...

글: 구자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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