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운 세상 중에

666 이야기 2013. 8. 29. 01:48

길진리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 <2>  
글쓴이 : 관리자    


“어지러운 세상 중에…”



0005. 뉴에이지를 주도하는 유엔 (제네바 신문, 1994년 7월 29일자)
뉴에이지와 새세계질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님. 로마제국의 동방지역평정을 위해 『씨져』(가이사)들은 새질서(New Order)를 선포하였고, 로마교황청 세력을 업고 나섰던 천주교회의 아들 히틀러도 “새질서”를 부르짖었음. 사탄의 하수인 학자들은 전성경을 통하여 단 한 번 언급된 개혁(Reformation)이란 단어를 제거하고 이 “새질서”라는 단어를 교묘히 성경에 첨가시켜 놓고 “새 세계질서”(New World Order)를 부르짖고 있음
(NIV, 히9:10 참조) - (1994년 7월).


0006. BILLY GRAHAM, BILL BRIGHT & BLIND GUIDES
하나님의 사람도 잘못(실수)을 범할 수가 있는가?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보장받은 자가 이 세상에 있단 말인가? 유명인은 더욱 더 표적의 대상이 아닌가? 다윗, 솔로몬이 아니더라도 하갈에 속임을 당한 아브라함(창16), 야곱에 속임을 당하는 이삭(창27), 레아와 그녀의 아버지에게 속임을 당하는 야곱(창29)......여호수아(수9:5), 예수없이 사흘 길을 걸어갔던 마리아와 요셉, 주님으로부터 사단아! 소리를 들었던 베드로(마16:13-24), 성령충만했던 바나바(행11:24)가 베드로와 함께 복음의 진리를 벗어나 바울의 꾸중을 듣는 장면(갈2:14)......실수나 속임을 당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있는 일이지만 로마교황청과 손을 잡고 세계복음화, 『지구촌』복음화를 외치는 이 유명한 “신학적인 테러분자들”(theological terrorists)이 파괴하는 힘은 너무나 크다는 사실이다.


0007. “템플톤”상
종교통합을 위한 ‘뉴에이지’상, 일명 ‘템테이션’(유혹)상으로 알려진 이 상의 수여를 결정하는 위원회는 힌두교, 불교, 이슬람, 천주교, 유대교, 기독교 등의 종교지도자들로 구성되어있다. 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우리의 교계신문잡지들이 철없이 떠들고 있는 이 상은 ‘에큐메니칼’ 지도자들에게만 하사되며, 빌리 그래함에 이어, 이번에는 빌 브라잇이 받게 된다. 이들이 관련하고 있는 “21세기운동”, PROMISE KEEPERS 등은 볼 것도 없는 배도를 치닫는 운동들이다. ‘씨씨씨’ 조직에는 천주교도들을 정식스탭으로 기용하고 있다(『아일랜드』등의 천주교국). ‘자마’의 팜플렛에 나와있는 빌 브라잇, 부쉬, 척 콜슨, 스윈돌, 제임스 답슨 등은 모두 향(向) ‘로마’의 세력들임은 이미 잘 알려져 있으며, ‘프라머스 키퍼’의 창설자 맥카트니까지 스피커로 동원하고 있는 이 운동의 끝은 배도로 치닫고 있는 운동이다. 천주교도들을 스탭으로 기용하고 있는 CCC 정책에 대한 레이놀즈 박사의 질문에 빌 브라잇 박사는 ‘나는 예수를 주로 부르는 자와는 누구든지 함께 일 할 수 있다’라고 대답. 다시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거라 하리라”(마7:21-23)로 나선 레이놀즈 박사의 응수에 할 말을 잊은 빌 브라잇 박사의 퇴장.


0008.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
홍수가 나면 온 천지가 물난리지만 정작 마실 물(생수)은 없어진다. 맘모스 집회홍수시대라 생수의 근원은 가려진다. 선지자들을, 사도들을, 『무디』 등을 세우신 하나님이 하시는 부흥의 방법과, 인간중심의 집회란 얼마나 다른가!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한 바리새인들”(요12:42-43)처럼, 서로가 영광 취하느라 유명인들이 필요하고, 신문방송후원이 필수적이며, 모금운동이 또 있어야 하고, ‘비전’이란 이름 하에 『메스미디어』를 통해 장기적으로 과장선전된 『프로그램』과 치밀한 조직에 의해 동원된 군중을 가지고 성령의 역사운운 조작한다. 군중에 기만 당하지말라. 군중은 군중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순도 100%의 순수성을 외치나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취한 방법이 아님은 자명하다. 서울 Y교회의 Y목사님의 말씀은 세상에 들떠있는 자들을 자숙자제케 한다.

“...... 한국교회의 무대에 나서서 활동하고 있는 지도층의 인사들......그들이 중심이 되어 또 국가조찬기도회니 한국교회개혁이니 하는 것은 이제는 그만 두면 좋겠습니다. 이제는 마음 좀 편하게 목사의 일을 볼 수 있도록 놓아두면 좋겠습니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조찬모임, 구국기도회, 연합사업, 각종 대형집회, 전시효과적인 모임들이 얼마나 목사의 삶을 허무하게 만들고 피곤하게 해왔는지 모릅니다. 마치 그러한 것들이 한국교회를 묶어오고 유지시켜온 것처럼 착각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교회를 더 공허하게 하고 내용이 없는 교회로 만들었으며, 더 피곤하고 혼잡하게 해왔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 입니다...... 모두 영웅이 되겠다는 망상을 버리고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돌아갑시다.”

이들에 대한 바울의 권고는 여전하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에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3:18-19)-(1996년 5월).


0009. “미국을 카톨릭화 하자!”(Make America Catholic!)
『예수회』의 200년 묵은 이 구호는 이제 그 쓴 열매들을 거두고 있다. 미국의 장래를 걱정하며 “미국을 구하자!”는 거창한 구호들을 외치며 자기도취에 빠진 소경지도자들(그들 자신들이나 악의 세력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민망함이 있다), 소경어른들로 인해 파생된 청소년문제들은 심각하다. ECT(Evangelicals Catholics Together)를 통해 ‘로마교황청’세력들과 하나되어 미국의 도덕적 타락을 회복하겠다는 자들. 이 타락은 오히려 지도자들이 『바빌론』의 음녀의 세력들과 함께 혼합된 술을 퍼마시며 영적 간음죄를 범하면서, “땅의 음녀들과 온갖 가증한 것들의 어미”(계17:5), 모든 악의 근원이 되는 무리들과 오래 전부터 손을 잡았기 때문에 생긴 문제들이다. ECT에 관한 뉴욕타임즈(1994.3.30)의 보도를 보자.
“그들은 낙태와 ‘포르노그라피’(음란성 제작물)에 대항하는 운동에 함께 노력했으며, 이제 저명한 카톨릭과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놀라운 믿음의 도약을 위해, 드디어 그들의 양떼들에게 서로가 크리스챤으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였다”.

고도화된 문명을 자랑하나, 영적으로는 중세암흑시대를 능가하는 흑암으로 내리 치닫고 있는 세상을 거슬러 살아야하는 때에 살고 있다 (1996년 9월).

0010. ‘Christianity Today’(CT)는 『에큐메니즘』의 도구로 1956년 빌리 그래함에 의해 창간된 잡지다. 『빌리 그래함 전도재단』에는 천주교 고문들까지 고용하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공개하면서, 아들 프랜클린도 천주교와의 협력을 선언하였다 (CT, 11 Dec.1995).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인 것에 강한 염증(厭症)을 느끼나, 대부분의 악의 세력은 ‘긍정적’인 얼굴을 가지고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나타난다. 저들은 요17:11 한구절을 떼내어 『에큐네니즘』의 슬로건으로 악용하나,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은 이미 실존하고 있다는 사실과, 이 구절은 우리가 목표로 두고 도달해야하는 어떤 것을 다루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교리보다 교제를 앞세우나, 참된 복음전도는 지극히 교리적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말씀하신 것으로서, 기독교는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도달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다. 현대인이 믿기 쉬운 방식으로 접근, ‘다른 복음’을 전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인하고 있다. 이러한 자들에게 두 번이나 저주를 선언한 바울이 부정적인가?(갈1:6-10).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7:14)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부정적’사고방식의 원조란 말인가?


세상 헛된 신과 영화 모두 내어버렸네
예수 친히 하신 말씀 날 더 귀히 여겨라
찬366 어지러운 세상 중에 ②)



                                                  구영재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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