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소리와 통곡소리 뒤범벅
이응한 목사 2014. 1. 4. 10:33즐거운 소리와 통곡소리 뒤범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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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쟁이
[에스라 2장]
에스라 2장에 들어가면 예루살렘과 유다로 귀환한 사람들의 계보와 숫자가 나옵니다. 3절 ‘바로스 자손이 이천일백칠십이 명이요’부터 시작하여 많은 이름의 계보들이 나오고 64절에 ‘온 회중의 합계가 사만이천삼백육십 명이요, 그 외에 노비가 칠천삼백삼십칠 명이요 노래하는 남녀가 이백 명이요’로 되어 있어 전체 귀환인원이 약 5만 명이라는 숫자가 계산됩니다. 사람 수가 적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짐승들의 수도 넣었습니다, ‘말 736, 노새 245, 약대 435, 나귀 6,720 마리’, 자세히도 세었습니다. 그리고 ‘금 61,000 다릭, 은 5,000 마네, 제사장 옷 100 벌’이라는 재산내역도 나옵니다. 짐승의 수를 일일히 세어서 기록한 것도 이상하지만 그 짐승들이 정결한 짐승, 곧 제물로 쓸 수 있는 소와 양이 아니라는 것도 이상한 일입니다.
어쨌든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 귀환하는 모습이 그 옛날 애굽 종살이로부터 이끌어내어져 나오는 것과 비슷하기는 한데 인원수가 10분의 1도 안 됩니다. 금과 은의 규모, 재산의 규모도 초라하기 짝이 없습니다. 솔로몬왕의 세입금 규모가 금 666달란트였다고 하는데 금 61,000 다릭은 그 40분의 1 정도밖에 안 됩니다. 어떤 족장들이 예물을 즐거이 드리고 역량대로 역사하는 곳간에 드렸다고 기록되어 있기는 합니다만 그 규모는 그 옛날의 영화에 비하면 얼마나 초라하고 궁색하였을까요? 그 인원, 그 재산, 그 힘으로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고향인 유대 땅 각각의 본성으로 돌아가 거합니다. 그렇지만 폐허가 되고 이방족속들이 들어와 살고 있을 본성들이 그 옛날 고향과 같겠습니까?
어쨌든 그들은 7월에 일제히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라(신 16:16, 출 23:15), 하신 말씀대로 모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는 성전은 무너지고 폐허만 남아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단을 그 터 위에 쌓고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무리가 열국 백성들을 두려워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있는 동안 그 땅 예루살렘과 유다에는 많은 이방잡족들이 들어와 살고 있었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적은 숫자의 유대인들은 그런 상황에서 무너진 성전터에 단을 쌓고 주변의 눈치를 보아가며 두려워하면서 초라하게 제사를 드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환경 가운데서 그들은 여호와의 전을 재건하는 작업에 착수합니다. 석수와 목수에게 돈을 주고 또 시돈사람과 두로 사람들에게도 값을 주고 백향목을 레바논에서 욥바로 수운(水運; 물로 운반)하게 합니다. 유다자손과 레위자손을 세워 공사감독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건축자가 여호와의 전 지대를 놓을 때에 제사장들은 예복을 입고 나팔을 들고 아삽자손들은 제금을 들고 여호와를 찬송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는 지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함이로다.” 무리가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를 때 그 옛날 여호와의 성전을 보았던 노인들은 목을 놓아 대성통곡을 합니다.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로 뒤범벅이 된 감격과 눈물의 기공식입니다. 너무나 슬프고 처연한 성전기공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성전 건축은 곧 주변의 이방인들의 훼방과 모함을 받아 오랫동안 중단되게 됩니다. 한 번 잃어버린 에덴동산이 다시 돌아오지 못 하는 것처럼 한 번 무너져버린 아름다운 솔로몬성전 또한 다시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후 400 여년 동안 그렇게 유대인들은 다시는 잃어버린 옛솔로몬의 영광을 회복하지 못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침내 그 아들을 보내시어 우리를 성전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짜 성전은 우리 몸입니다. 그러므로 즐거이 부르는 소리와 통곡하는 소리로 뒤범벅이 되어야 할 성전기공식은 십자가 아래 엎드려 주님을 영접하는 우리의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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