므낫세는 어떻게 그리 악한 왕이 되었을까?


악한 왕 아하스에게서 히스기야 같은 선한 왕이 나고, 히스기야에게서 다시 므낫세 같은 악한 왕이 나는 것도 참 희한한 일입니다. 신앙은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도, 부모에게서 물려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히스기야를 이어 12살에 즉위한 유다 왕 므낫세는 장장 55년을 집권하면서 온갖 악행을 저지릅니다. 여호와 신앙을 버리고 그 부친 히스기야가 헐어버렸던 산당을 다시 세우고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의 소위를 본받아 바알과 아세라상을 세우고 일월성신의 단을 쌓아 유다왕국을 우상숭배소굴로 만듭니다. 여호와께서 “내 이름을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전에다 우상의 단을 쌓고 바알과 아세라상, 일월성신의 단을 세우는 악하고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고, 점치고, 사술과 요술을 행하고,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고 의지함으로써 여호와의 진노를 격발합니다. 유다백성들도 므낫세의 꾀임에 빠져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열방보다 더욱 심하게 우상숭배를 합니다.

진노하신 하나님은 예루살렘과 유다를 심판하고 무서운 재앙을 내리고 대적의 손에 붙여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 같이 예루살렘을 말갛게 씻어버리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치 노아의 홍수를 다시 일으켜 모든 악을 씻어버리겠다 하심 같습니다. 므낫세 시대의 이 극악한 패역과 타락은 결국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가져오게 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므낫세가 왜 그토록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우상숭배와 패역의 악행들을 행한 악한 왕이 되었는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므낫세가 왜 이런 악행을 했을까요? 므낫세가 원래 악한 인간이어서일까요?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여호와의 성전에다 우상의 단을 만들만큼 그는 포악하고 겁도 없는 무모한 인간이었을까요? 어떻게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었던 산당과 부수어버렸던 우상을 다시 세우고 감히 여호와의 성전을 더럽힐 수 있었을까요?

성경은 이에 대하여 자세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추측해본다면 아하스는 용감하거나 포악무도한 인간이 아니라 오히려 겁 많고 우유부단하고 소심하고 두려워 떠는 자였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 히스기야가 54세에 불과 열 두 살 된 자신을 남겨두고 죽은 다음 자신을 지켜주고 이끌어줄 보호자가 없었기 때문에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살지 않았을까, 그래서 점을 보고 접신한 자의 말을 듣게 되고, 우상과 일월성신에 의지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목숨을 구걸하여 15 년을 더 살지 않았더라면 므낫세가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원망의 지적을 하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어머니 헵시바라도 아들을 여호와 신앙으로 굳세고 용감하게 세우고 바른 신앙으로 잘 이끌었다면 므낫세가 이런 악한 왕이 되지는 않았겠지요. 부모의 신앙교육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요!

인간은 연약하고 유한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없는 자는 불안할 수밖에 없고 이 불안을 통하여 사단은 미혹과 위협과 장악의 검은 손을 뻗쳐옵니다. 바른 신앙 없는 인간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의 문제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가는 진시황의 거대한 무덤과 그 속의 병마 등 부장품들, 이집트의 피라밋 같은 유적들에서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자연재해와 빈곤, 질병 같은 것들도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에게 무서운 위협이었습니다. 죽음을 무서워하는 인간의 모습을 우리는 샤머니즘과 온갖 종교, 심지어 인간을 잡아 제물로 바치는 아즈텍 문명의 유적같은 것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인간들에게는 자신을 지켜줄 수많은 우상들과 일월성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두려워하는 인간을 움켜잡고 사단은 얼마든지 조종하고 농락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전에다 우상의 단을 쌓고 바알과 아세라상, 일월성신의 단을 세우는 악하고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게 하며,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심지어 아즈텍 신전에 산 사람의 심장을 도려내어 바치도록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살얼음판 같은 세상, 외줄타기 같은 인생살이, 실업과 불황, 경제위기, 전쟁과 재해, 불안한 미래가 두렵습니까? 당신을 찾아오고 덮쳐들 늙음과 병이 두렵습니까? 죽음이 두렵습니까? 무언가 의지할 것, 돈, 재산이라도 있어야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습니까? 아마도 이러한 불안들이 오늘날 이 시대에도 사람들을 우상숭배로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음으로 인한 두려움이 죄의 출발이요 우상숭배의 원인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21장 8절은 불못에 참예할 자의 명단 첫 번째에 ‘두려워하는 자’를 올리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두려워하는 것은 그에게 하나님이 없다는 증거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 안에 있는 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군병은 어떤 위험이나 환난에도 굴하지 않습니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찌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찌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시 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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