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다가

대장쟁이 ㆍ 2013-11-02 (토) 23:52 IP: 173.xxx.141 ㆍ조회: 17      

[열왕기하 18:21] 이제 네가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 손에 찔려 들어갈찌라 애굽 왕 바로는 무릇 의뢰하는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고 다메섹에서 본 우상의 제단을 본떠 예루살렘 성전을 뜯어고친 어리석고 악한 왕 아하스에게 히스기야라는 걸출한 아들이 태어났다는 것은 참 희한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혹시 아하스가 우상 앞에서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한 아들이 바로 히스기야는 아니었을까요?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것은 아들을 우상에게 바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에게 바쳐진 아들을 기뻐하셨을까요? 그렇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히스기야가 이미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택하신 자라면 아버지가 아들을 우상에게 바치는 해괴한 짓거리를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우상에게 빼앗기거나 버리실 리는 없겠지요. 우상은 헛것이거든요. 돌과 나무로 깎아 만든 것일 뿐입니다. 아들을 불 가운데 지나게 하는 짓거리도 헛것이고요.

저도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불교를 믿던 저희 어머니는 아들들 잘 되라고 대한민국 전국의 큰 절마다 찾아다니며 불사(佛事) 돈을 바치고 절간 기왓장에다 아들들의 이름을 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아들을 부르셨습니다. 이미 만세 전에 택정하셨기 때문이겠지요.
히스기야를 위대한 신앙인으로 키운 것은 못된 아버지 아하스가 아니라 어머니 아비야와 외할아버지 스가랴 제사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디모데가 외조모 로이와 어머니 유니게의 신앙을 물려받은 것처럼 말입니다. 어머니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요.

오늘 말씀 열왕기하 18장을 보면 히스기야는 그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여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부수어 없애버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그 계명을 지켰으며 하나님께서는 저와 함께 하시고 형통케 하셔서 가는 곳마다 승리하게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하게 기록된 역대하 29장을 읽어보면 히스기야 왕은 버려지고 퇴락하였던 여호와의 전 문을 열고 모든 더러운 것들을 제하고 수리하고 성결케 하고, 제사장들을 다시 세워 폐지되고 중단되었던 제사를 회복하고, 레위사람들을 세워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타게 하고 나팔을 불며 노래하게 하고 백성들과 함께 수많은 번제물을 드림으로써 남유다왕국이 여호와 신앙회복을 이루는 감격적인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열왕기하 18장은 1절부터 8절까지는 히스기야의 신앙과 형통함을 기록한 다음 9절부터 12절까지는 하나님을 떠난 북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비참한 마지막과 멸망을 기록함으로써 대조를 하고 있습니다.

주상을 깨뜨리고 목상을 찍으며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고 제사를 회복한 히스기야를 보시며 하나님은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얼마나 속시원해 하셨을까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왕국이 우상숭배와 멸망의 길을 가는 동안 하나님은 히스기야와 요시아 같은 왕을 얼마나 기다리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이미 히스기야와 요시아를 아시고 정하셨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히스기야와 요시아를 만나시려고 멸망해가는 이스라엘을 지키고 계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우리를 아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섬기며 기뻐하는 우리를 만나시려고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는 이 악한 세상의 심판을 미루시고 우리를 기다리셨을까요? 우리도 그런 히스기야들일까요?

그런데 히스기야도 별 수 없는 인간이었던 모양입니다. 13절부터 16절까지를 보면 히스기야의 한심하고 비참한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애굽을 의지하고 앗수르를 배반하고 애굽왕과 내통을 하였습니다. 앗수르왕이 쳐들어왔습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왕 앞에 여호와의 전과 왕궁의 은을 다 바치고 여호와의 전과 왕궁의 기둥에 입힌 금까지 다 벗겨다 갖다 바치는 수모를 당하였습니다.

그러고서 앗수르 군대장관 랍사게로부터 꾸중을 들었습니다. "너의 의뢰하는 이 의뢰가 무엇이냐. 네가 싸울만한 계교와 용력이 있다고 한다마는 이는 입에 붙은 말 뿐이라. 네가 이제 누구를 의뢰하고 나를 반역하였느냐. 이제 네가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 손에 찔려 들어갈찌라. 애굽 왕 바로는 무릇 의뢰하는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랍사게의 꾸지람이 하나님의 꾸지람같이 들리는 기가 막히는 꼴을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의지하던 히스기야가 잠시 실족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자기 아버지 아하스가 앗수르왕에게 뇌물을 주고 아람을 치도록 했던 것처럼 애굽군대를 의지하려고 약은 세상 술수를 부렸을 때 이방인으로부터 이렇게 비참한 굴욕을 당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잠시라도 믿음을 떠나거나 실족하지 맙시다. 상한 갈대 같은 세상의 재물이나 사람의 힘을 의지하려는 약은 꾀 부리지 마십시다. 하나님만 의지합시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의지할 도움이시며 방패시며 요새이십니다.

'이응한 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탕고 열어 부여준 게 뭐 그리 큰 죄라고?  (0) 2013.11.21
편지를 펴놓고 올린 기도  (0) 2013.11.13
겨우 세 번 치고 스톱?  (0) 2013.10.24
요아스 왕이 왜 이렇게?  (0) 2013.10.19
끊을 수 없는 줄  (0) 2013.10.1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