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을 수 없는 줄

대장쟁이 ㆍ 2013-10-12 (토) 07:03 IP: 173.xxx.141 ㆍ조회: 24      

신학적으로 인간은 “완전히 타락한 존재,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도 구원을 지켜낼 능력도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불러내시고 이끄시지 아니하였다면 아브라함도 이스라엘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시고 불러내시고 이끌어주시지 않고서 제 힘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오고 예수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구원을 손에 쥐어주셨다 해도 인간들은 그것을 지켜낼 능력이 없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싫어하고 하나님이 쥐어주신 구원마저도 내버리고 돌아서서 제 갈 길로 가는 타락의 존재이기 때문이며 또한 원수가 구원을 끊임없이 빼앗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북이스라엘만이 우상숭배의 길로 간 것이 아니라 남유다왕국도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이세벨 같은 여자가 남유다왕국에도 나타났습니다. 그것은 남유다왕국의 이세벨(계시록 2:20)이라고 할 수 있는 아달랴, 여호사밧왕의 아들 악한 왕 여호람의 아내 아달랴였습니다.
아달랴는 아하시야 왕의 어머니로서 막강한 태후의 지위를 이용하여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를 폐하고 바알 신당을 섬겼습니다. 아들 아하시야 왕이 사마리아에 갔다가 요람을 죽인 예후에게 쫓기다가 죽자 일어나 왕의 씨를 진멸하였습니다. 아들이 죽은 기회를 이용하여 아예 다윗의 혈통을 진멸하고 자신이 최고의 권력을 틀어쥐고 자신의 왕국을 만들려 한 것입니다. 참으로 악한 여자였습니다. 아달랴가 왕자들과 왕의 씨를 모조리 죽여 버림으로 인하여 유다왕국의 혈통은 사라지고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 곧 구세주의 혈통이 거의 진멸되었습니다. 아달랴는 이로써 유다왕국이 완전히 자신의 손에 들어온 것으로 믿었고 사단은 승리의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북이스라엘은 스스로 성전(여호와 신앙)을 떠나 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타락의 길을 갔고 이세벨에 의하여 악한 우상의 국가가 된 반면, 남유다왕국은 어리석고 악하고 유약한 왕들과 내부에 스며들어온 사악한 아달랴에 의해 우상의 국가가 되고 메시아의 계보가 끊어지는 참담한 위기를 맞게 된 셈입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에 엘리야와 엘리사를 세우시고 예후를 일으킨 것처럼 하나님은 남유다왕국에도 여호세바와 여호야다 부부를 숨겨놓으셨습니다.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는 아달랴가 왕자들을 진멸하는 가운데 오빠 아하시야의 아들이자 조카인 갓난아기 요아스를 훔쳐내어 유모와 함께 자신의 침실에 숨겨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합니다. 그리고 남편 여호야다 제사장이 왕자를 6년 동안 여호와의 전에 숨겨놓고 키웁니다. 그리고 제사장 여호야다는 어느 날 거사를 일으킵니다.

여호야다는 가리사람 백부장들과 호위병들의 백부장들을 여호와의 전으로 불러 맹세시킨 다음 일곱 살짜리 요아스 왕자를 보이고 나서 치밀하게 준비하고 요아스 왕자에게 면류관을 씌우고 율법책을 주고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웁니다. 그리고 뒤늦게 성전에 달려와 반역이라고 외치는 아달랴를 몰아내어 죽이게 하고 왕과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언약을 세우게 하고 온 국민이 바알의 당으로 가서 당을 부수고 단들과 우상들을 깨뜨리고 바알 제사장을 죽이게 하는 일대 혁명을 일으키게 됩니다.

사단의 무리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도 타락시키고 메시야의 계보를 끊어버릴 수 있습니다. 아니, 인간은 메시야의 계보조차 지켜낼 능력이 없습니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타락으로, 그리고 사단의 모략과 공격으로 금방이라도 끊어져버릴 것만 같은 메시야의 계보..... 그러나 하나님은 그 메시아의 계보를 지키셨습니다. 메시아는 그렇게 바람 앞의 촛불 같고 아슬아슬 실오라기 같은 계보를 통하여 오셨습니다.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공로는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셨다면 메시야의 계보는 금방 끊어지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약해보여도, 사단이 아무리 애써도,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결코 끊어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매어놓으신 그 사랑의 줄은 아무 피조물이라도 끊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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