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사람이란...
최송연의 신앙칼럼 2016. 4. 8. 04:48
성령의 사람이란...
우리의 삶 속에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셨다 고백하는 사람이 많고, 성령의 사람이라고 큰소리 치는
사람은 많으나 실제 삶의 영역 속에서 그리스도와 거리가 너무도 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이 글을 정리하는 나 자신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신앙 따로 생활 따로인가? 그러하기에, 얼마 전까지만 하여도, 자기 자신을 가리켜 가장 강력한 성령의 사람인 듯, 다른
목회자들을 형편없는 사기꾼 정도로 몰아가면서 뛰어난 화술로 말씀을 강론하던 한 유능한 목사가 자살이라고 하는 어이없는 선택을 하였던 것이
아니겠는가?
이런 우리들 때문에 흑암의 세계 속에 강력한 빛으로 나타나야 할 교회는 오히려 점점 더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는 느낌이고, 서로 잘믿는다고 내세우는 말의 홍수 속에서 정신세계는 대 혼란 속에 빠져들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우리는
한 번쯤, 올바른 신앙생활이 무엇인지 성경을 되새김질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 다닌다고 모두 성도가 아닌 것이다. 요란하게 떠들고
소리 지른다고 성령의 사람이 아니다. 삶 속에 열매가 나타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1. 누가 과연
성도(saints)인가?:
성도(saints)란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을 총칭하는 것이 아니다. 성도(saints)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믿고 마음에 받아들이는 사람을 지칭하며, 물(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그리스도의 영)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곧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말과 같고 다시 태어난 사람만 하나님의 자녀요, 천국 백성이 된다는
원리다. 사람의 영(spirit)이 다시 태어나는 현상을 가리켜 신학상 술어로는 ‘거듭남( born again)’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모두가 다 한 번 육신 적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한 번만 태어나면 되는 것으로 알기에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자식 낳아 열심히
기르다 늙고, 늙으면 병들고, 병들면 죽고, 죽으면 끝이라고 하는 허무한 생을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은 분명히 다르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요 3: 6-7절 말씀)”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무슨 뜻인가? 육으로 난 것은 죽고 망하나 영으로 난 사람만이 영원한 삶을 살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영(spirit)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우리 믿는 성도들에게 있어 그만큼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a. 우리가 거듭나는 것은 무엇으로 가능한가?
사람이 거듭나는 것은 내 의지나 내 노력,
내 열심, 다시 말해서 많은 성도들의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기도를 많이 하고, 부흥회를 열심히 쫓아다닌다고 해서 거듭나는 것이 결코 아니란
것이다. 거듭나는 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물과 성령으로만 가능하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며,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다.
따라서 우리가 거듭난다고 하는 것은 다른 말로 말하면, 성령을 받는다는 뜻이고, 성령을 받은 사람은 곧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말과
동일한 뜻이다. 성령은 어떤 특별한 은사 자들이나 신령한 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란 것이다.
b. 내가 거듭난 사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먼저, 성령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무엇인가? 하는 것부터 생각해 보아야 한다. 조건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믿는 것뿐이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
12절 말씀)” 여기서 “영접”이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심을 내 마음에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계 3: 20절 참조)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 9-10절 말씀).”
c. 예수 그리스도를 내 개인의 구세주로
믿는데, 나는 왜 성령의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내게는 왜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가? 하는 것이 의문으로 남게
된다.
그 대답은 의외로 아주 간단하다. 그것은 내가 무언가 의롭고 착한 일을 많이 해야만 된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성령 받은 상태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해 지음을 받은 사람들이다.(엡 2: 10절 참조)
그럼에도, 우리가 행하는 선을 기준으로 성령 받은 사람의 기준척도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성령님(Holy Spirit)은 누구신가?
하는 것부터 정립되어야 한다. 성령님은 곧 성부, 성자의 영이시다. 때문에 내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면 나는 이미 성령 받은 사람이다
(고전 3:16절 참조). 그러면, 나는 왜 느끼지 못하고 성령의 역사 하심이 내 속에서 나타나지지 않는 것인가? 그것은 나의 자아, 고집,
아집, 이런 육신의 생각이 너무 강해서 내 속에 계신 성령을 거스리기 때문이다. 그런 우리를 바라보시는 성령님께서는 내가 죄를 지을 때마다 나를
버리고 멀리 달아나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항상 함께 계시면서 내가 죄 앞에 무릎을 꿇고 쓰러질 때마다 내 마음속에서 한없는
사랑으로 탄식하시며 간구 해 주고 계신 것이다. (롬8: 26-27절 참조)
2. 거듭난 사람에게 나타나는
실재성(증거):
내가 내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라고 부르게 되는 것, 그 사실이 곧 성령 받은 증거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 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 12: 3절).”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곧 성령 받은 사람이며, 구원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란 것이고, 따라서 성령님은 내가 주님을 사랑하며 따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다는
것이다. 이 상태를 신학상 술어로 "견인"이라고 한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 6: 44절 말씀).”
3. 성령의 충만을 내 삶 속에서 체험할
수 있는 방법:
a. 그리스도의 말씀을 많이 읽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
자신이다.(요1: 1절 참조)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는 사람은 그 사람 속에 그만큼 많은 하나님의 말씀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하나님은
능력이시다. 하나님의 말씀 또한 능력이다. 이 능력의 말씀을 더 많이 소유한 사람이 더 많은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한 사람이다. 더 많은 능력이
자신 속에 내재하고 있는 사람은 더 큰 일을 해 낼 수 있다….이것이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비결이라고 하면 믿어지겠는가? 그러나 사실이
그러하다. 말씀이 없는 곳에는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질 않는다. 성령으로 가장한 사단, 광명의 천사들의 활동 영역을 넓혀줄 것뿐이다!
b. 그리스도의 말씀에 전적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순종하지 않으면 그런 사람이
바로 바리세파적인 사람이다. 바리세파처럼 머리만 굵어진다. 사람들은 성경을 많이 알면 무조건 바리새파적이라고 몰아세운다. 그러나 바리세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싫어 버린 바 된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많이 알기 때문에? 천만에,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싫어 버린
바 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는 많이 알았지만, 그 알고 있는 만큼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면
무조건 바리세파로 몰아가는 것은 틀린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은 사람이 그 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삶을 살기만 하면, 이런
사람이야말로 큰 믿음을 소유한 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고로 말씀을 많이 읽고 그 말씀의
잣대(Canon)로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고집과 아집, 이런 죄성을 측정하고 자를 것은 자르고 버릴 것은 버리고, 내 속에 좌정하고 계신
성령님께 굴종하며 복종하는 순종이 우선되어야 한다. 성령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비례해 성령의 열매가 내 삶 속에 나타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내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인 우리는 모두 동일한
성령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보다 큰 능력의 삶을 사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하고 늘 죄의 마력 앞에 무릎을 꿇어버리고 마는 연약한
사람이 있는 것이다. 이런 상태는 성령을 받고 받지 못하고의 차이가 아니라, 자기의 아집과 고집이 얼마나 더 강하게 나타나느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것에 달렸다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자신을 쳐서 더 많이 복종하는 사람에게는 더 큰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고,
자신이 그리스도의 말씀에 복종치 않으면 그런 사람은 그만큼 자신의 아집, 고집 이런 죄의 속성들이 더 크게 드러나게 되는 것뿐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은 인격적이시기 때문에, 내가 그리스도의 말씀에 굴종할 때까지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구원 있고,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내가 변화 되는 능력 있고,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내가 새로워지는 길이 있다. 내 힘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 아무것도 없다. 울어도 안 되고 힘써도 안 된다. 부흥회 백날 쫓아다녀봐야
성령받는 것 더더욱 아니다. 오직 말씀을 통해 주시는 그분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그런고로 성령 충만한 성도는 바울처럼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다.” 라는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고로, 성령의 사람은 곧 말씀의 사람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 8- 9절
말씀).”
출처: 목양연가: 최송연의 신앙칼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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