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계신 하나님
최송연의 신앙칼럼 2016. 4. 9. 08:33
‘따르릉! 따르릉!’
요란한 전화벨 소리에 화들짝 눈이 떠졌습니다. 얼떨결에 불을 켜고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아직도 바깥은 칠흑 같은 어둠이 깔렸고, 모든 만물이 고요 속으로 헤엄치듯 하느적 거리는데…간밤에 늦게 잠자리에 든 탓인지…온몸이 천근같이 무겁고 머리가 지근덕거렸습니다.
“누가 이런 새벽에 전화를 걸었을까?”
웬만히 급한 일이 아니면 이 시간에 전화를 걸 사람이 없을 텐데… 혹시, 한국에 계신 어머님께 무슨 문제라도…? 갑자기 불안한 생각에 쿵덕거리는 가슴,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집어 들었습니다. “여보세요!” 들려오는 낯선 음성은 구슬같이 밝고 명랑한 것을 보니 별로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담 도대체 누가 이 밤중에 사람을 깨운담…, “여보세요? 누구시지요…?” “사모님! 저예요, 저… 김 선화(가명)말이에요. 절 모르시겠어요?” “김…누구 시라구요…?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보려고 해도 잠결이라 그런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 왜 있잖아요? 한국에 계실 때, 교회마당 아래 살던 사람…김 선화 말이에요.” “아, 그때 그 지독한 사람…” 그제야 철거민 촌에서 개척할 때, 어려웠던 젊은 시절의 기억과 함께 우리를 많이도 괴롭혔던 그녀의 누렇고 둥그런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신학대학을 갓 졸업하고 나서, 우리가 개척을 시작한 곳은 부산 지역의 어느 철거민 촌이었습니다. 단칸방에서 개척을 시작해서 고생하기를 몇 년…, 이제 겨우 언덕 위의 조그마한 밭떼기를 교회터로 장만하고 꿈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말은 성전부지였지만…실은 손바닥만 한 언덕 위의 밭떼기였지요. 그 땅을 파고 반듯이 고르게 다듬어야만 교회로서의 허가가 나온다는데 …맨손으로 땅을 고르자니 막막했습니다. 근로자를 사서 하려니 돈도 없고 도와줄 만한 성도도 없어서 남편 전도사님이 혼자 삽과 괭이를 가지고 올라가서 열심히 그 땅을 고르느라 손바닥엔 피가 다 맺혔습니다.
그렇게 혹독한 고생 끝에, 겨우 손바닥만 하게 반반한 터를 만들고 그곳에다 가마때기를 깔아 놓고 나니 우리의 눈엔 더없이 훌륭한 성전 터가 된 것입니다. 그 가마때기가 우리들이 하나님께 눈물로 봉헌한 최초의 성전이었지요. 그곳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우리 전도사님은 매일 낮에는 그곳에 올라가서 일했고… 새벽 미명이면 일어나 그곳에 올라가 깔아놓은 가마때기 위에 엎드려서 혼자 눈물의 새벽 재단을 쌓고는 했습니다.
그때 저는 해산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새벽기도는 따라가지 못하고 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벽기도를 갔다가 들어 오는 남편에게서 심한 악취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 이게 무슨 냄새예요…?” 놀라서 묻는 내게 “글쎄, 지난밤에 누군가가 우리 성전터에 오물을 쏟아붓는 모양이요. 나도 역겨워서 기도가 다 헷갈리더니만…이런, 이런…바짓가랑이가 홀랑 다 젖어버렸군그래….” “어떻게 하죠? 우리 집에는 물도 귀한데….” 사실, 그 당시만 하여도 철거민 촌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수돗물이란 사치의 대명사였었지요. 집집이 수도를 놓아준 것이 아니라 한 동리에 하나씩 공동 수도가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생각다 못한 저는 오물이 잔뜩 묻은 그 바지를 싸서 멀리 동구 밖 개천까지 나가서 빨아 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침 식사를 밀가루 수제빗국으로 대충 때운 전도사님은 삽을 들고 교회 부지로 올라가서 그 오물들을 깨끗이 치우고 돌아왔습니다. 이제는 깨끗이 치웠으니 괜찮겠지…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다음 날도…또 그 다음 날도…누군지는 모르지만, 오물을 쏟아붓는 일을 그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았습니다.…남편 전도사님의 단벌 바지는 물이 마를 사이가 없이 빨아서 말리느라 또 진땀을 빼고는 했지요.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누가 그런 몰상식한 짓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를 않았습니다.
사실, 교회부지 아랫동네 삼십 대 초반의 한 아주머니가 좀 수상쩍긴 했지만…, 그렇다고해도 그들은 모두 우리의 전도 대상자들이니…따져서 물어볼 수도 없고… , 그렇게 오물과의 쓰라린 전쟁을 묵묵히 참아내기를 몇 년…, 이제 자그마하게나마 아름다운 성전도 지었고 성전 뒤에 칸을 막아서 그곳을 사택으로 사용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도 나날이 부흥되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새벽기도 시간에 처음 보는 듯한 아주머니 한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자세히 보니, 다름 아닌 교회 언덕 아래에 사는 그 아주머니였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교인들이 다 돌아가고 나서도 혼자 남아서 한참을 오열하고 있던 그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다면서 사택 문을 두드렸습니다.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그녀는 다짜고짜 “전도사님, 저같이 나쁜 년도 교회에 나올 수가 있습니까?” 하면서 대성통곡을 하며 목놓아 우는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남편이,
“그럼요. 아주머니 정말 잘 오셨습니다. 교회는 모든 분에게 열려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에 교회에 나오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답니다.” 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아주머니는 꺼이꺼이 목을 놓고 한참을 통곡하고 나서,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이 년이 천벌을 받아도 싸지요, 싸…흑, 흑, 제가 천벌을 받은 거예요…천벌을…” 밑도 끝도 없는 말을 하면서 우느라 말을 채 잇지 못합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내가 “아주머니, 천벌은 무슨…울지만 마시고요,무슨 일인지 차근차근 이야기를 좀 해 보세요. 그래야, 우리가 기도라도 해 드리지요.” 하면서 달랬습니다.
그제야 하시는 말인즉, 그 아주머니는 불교를 믿는 사람인데, 이곳에 교회가 세워진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화가 나서 매일같이 밤만 되면 온갖 더러운 배설물이 든 요강이며…멸치젓 찌꺼기며…할 수 있는 대로 더러운 것이란 더러운 것은 다 동원을 해서 성전 터에 들고 와 쏟아 부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젊은 전도사님 내외분이 한 말씀도 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그것이 오히려 더 얄미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에 있는 쓰레기가 모자라면 동네에 있는 것까지 모두 거두어 밤이면 교회 터에 가져와 쏟아붓는 것을 즐겼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생리기간도 아닌데 갑자기 하혈이 비치면서 심한 악취마저 났다고 합니다. 그래도 뭐 괜찮겠지…하면서 병원에 갈 엄두를 내지도 못하는 것은 남편이 양복점 기술자였지만, 계속되는 불경기에 아이들은 올망졸망 5명씩이나 되니 그 어린 것들의 입에 풀칠하기조차 어려워서였답니다. 하기야, 그때 우리 동네 사람들은 모두 철거민들이었고 보니… 대부분 모든 사람이 다 어려웠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곳에서 개척하는 우리도 예외는 아니어서 끼니를 거르는 날이 밥을 먹는 날보다 더 많았으니까요…
그래도 건강만 있으면 그런대로 버텨나갈 수가 있었는데 건강을 잃고 병원까지 들락거리기 시작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견디기 어려울 것이 뻔했습니다. 여유가 없는 그녀는 병원에도 한번 가 보지 못하고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지겠지…하고 차일피일 미루어 왔다는 것이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몸이 점점 더 이상해 오고 기운이 빠지면서 밥맛도 없고 하여, 하는 수 없이 산부인과를 찾아가 진찰을 받은 결과 자궁암이라고 했습니다. 그것도 전혀 손을 쓸 수가 없는 암 말기에 3개월의 사형선고가 내려진 것입니다.
그때부터 그들 부부는 좋다는 약은 다 써보고 용하다는 무당은 다 불러서 굿도 해 보고 효험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는 절간에 올라가서 삼천 배도 드려보고…세상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병은 전혀 차도가 없었고…남편마저 일감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데 아내가 아프니 정신이 다 나가서 그런지 일은 점점 더 어렵게만 꼬여갔습니다. 이곳저곳 다니면서 빚을 얻어서 메꾸어 보려고 애를 썼지만, 이제는 그 누구도 그들에게 더 이상은 돈을 꾸어주지를 않더라고 합니다. 3개월 시한부 생에 돈을 더 꾸어주었다가 언제 받겠느냐는 것이겠지요. 하는 수없이 낙심한 상태에서 포기한 그 아주머니는 집에 누워서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울고 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갑자기 자기가 지난날, 교회터에 온갖 더러운 오물을 다 쏟아붓던 악행이 영화 필름이 돌아가듯이 떠오르면서 속에서부터 벌벌 떨려오기 시작을 하는데 나중에는 이빨이 딱딱 부딪힐 정도로 심한 두려움이 몰려왔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밤새도록 두려워 떨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제 내가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죽기 전에 지난 날 내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나 빌고 죽어도 죽어야겠다."라고 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새벽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이렇게 교회로 올라온 것이라고 합니다.“ 아, 그랬었구나…그때 그 지독한 사람이 바로 이 아주머니가 틀림없었구나….” 생각해 보면 그때 일이 괘씸하기는 하지만…지금 와서 뭘 어떻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보아하니 이제 30대 초반, 나보다 겨우 네댓 살이 더 많을 것 같은데, 아이들은 올망졸망 다섯 명이나 되니 이렇게 일찍 세상을 떠나서야 하겠는가… 하는 불쌍한 마음이 더 앞섰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아주머니를 부둥켜안고 우리 하나님께서는 다 용서를 하셨으니 마음 편하게 가지시고 이제 예수님이나 잘 믿어 보자고…교회에 찾아오셔서 너무나 고맙다고 위로하고 기도해 주면서 같이 울었습니다.
그날 이후, 그 아주머니는 저녁만 되면 이불을 싸들고 교회로 올라와서는 밤새도록 혼자 울면서 기도하다가 새벽기도를 마치면 집으로 내려가곤 했습니다. 그때가 10월 중순쯤 된 것 같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혹독한 한파가 몰아닥쳤습니다. 그런 모진 추위에도 그 아주머니의 애절한 철야기도는 끊어지지를 않았습니다. 때로는 저도 방에만 누워서 잠을 청하기가 너무 미안해서 아기 둘을 재워 놓고 나면 살며시 빠져나와 교회에 나가서 울면서 같이 기도하다가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방으로 뛰어들어 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1개월이 지나고 2개월이 지나고 의사가 선고한 3개월이 지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몸서리치게 추운 가난한 철거민 촌의 기나긴 겨울도 다 지나가고 이제는 3월… 아름다운 개나리꽃이 여기저기 다투듯이, 노랗게 떼를 지어 피어나는 따뜻한 봄이 찾아왔습니다. 3개월이면 죽어야 할 아주머니가 6개월이 넘어도 죽지를 않고 오히려 몸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고…누렇고 핏기없던 얼굴에 점점 화색이 돌아오기 시작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이제 하나님께서 나의 병을 깨끗이 낫게 해 주었다.”하고 여기저기 간증을 하고 다녔고… 남편을 비롯한 온 가족을 전도하여 교회에 데리고 나왔습니다.
이것을 본 빚쟁이들이 괜한 헛소리 하지 말라면서 정말 그런지 어디 같이 한 번 처음 암이라고 진단을 내렸던 그 병원에 가서 확실한 진찰을 받아 보자고 하며 그 아주머니를 억지로 끌다시피 하여, 그때 그 산부인과를 데리고 갔었습니다. 다시 자세히 검진해 본 담당의사가 나오더니, “당신이 정말 그때 그 김 선화 씨가 확실하냐? 암이 있었던 흔적마저 사라졌으니 이게 어찌 된 일이냐?"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고 합니다!
할렐루야!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좋으신 우리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주님은 죄를 죄대로 갚지 않으시고 회개한 자를 용서해 주시고 치료까지 해 주심을 보면서 얼마나 감사하든지요...
그 후로 우리는 곧 외국에 선교사로 파송되어 나왔고…우리가 떠난 다음에도 그 교회에 남아서 신앙생활을 잘하다가 집사가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물질로도 크게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남미에 있는 어느 큰 회사에서 양복 기술자 중 최고 책임자로 뽑혔고… 지금은 온 가족이 남미에 이민을 하여 그곳에서 신앙 생활을 아주 잘하고 있다고요 …헤어진지 20년이 더 넘은 지금도 그녀는 건강하게 잘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살아갈수록, 목사님 내외분이 너무 보고 싶어서 전화를 한다는 것이…그만 이곳 남미와 그곳 미국의 시차를 잘 몰라서 실수했노라고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용서라니요…집사님은 우리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실체를 몸으로 보여주신 산 증인이신데요…”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말라기 4:2절 말씀).”
출처: 최송연의 목양연가/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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