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인규
               
요즈음 눈을 의심하는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소위 정통교회에 속한 목사들이 이단들의 주장을 대신 옹호하고 지지해 주며, 이단연구가를 거꾸로 이단이라고 공격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명 월경잉태론이라고 불리는 논쟁인데, 친이단신문들이 이와 관련한 기사를 계속 싣고 있으며, 이단들도 함께 동조하고 있는데, 그동안 친이단성향을 가졌던 몇몇 일부 목사들이 그들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몇몇 일부 목사들이 친이단신문과 이단들과 함께 동조를 하는 이런 이상한 일이 나타나고 있을까?  

한국교회 주요 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한 P교회 P목사는 마리아가 월경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즉 여자의 월경을 죄악의 결과로 보는 매우 특이한 견해로서 예수의 무죄성을 이상한 개념으로 판단하는 주장인데, 이러한 주장은 명백한 이단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원죄를 아담의 불순종으로 보는 견해가 아니라, 피로 인하여 전하여진다고 보는 잘못된 죄관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배경의 뒤에는 하와가 뱀과 간음을 하여서, 여자가 월경을 하게 되었다는 통일교의 원죄론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월경을 통해서 낳은 자식들이죠? 여기 월경을 통해서 낳지 않은 자식들이 어디 있어? 우리 어머니가 월경을 통해서 다 낳았어요. 그런데 우리 하나님의 아들의 씨는 월경 필요 없이 낳았다는 것을 이미 구약 때 아브라함 때 비밀을 보여줬죠? ···하나님께서 죽은 송장 같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서 ···말씀으로 말미암아 낳았죠? 그러니까 장차 예수가 그렇게 온다는 것을 미리 마귀 몰래 누군가에게 암시를 해줬죠? 암호를 대 준 거 아닙니까?”(P 목사의 설교 녹취록).

P목사는 하와가 아담 몰래 뱀과 간음을 하여 가인을 낳았다는 통일교식 원죄론을 주장하였으며, 그 결과 여자에게 월경이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가인은 누구의 자식이냐 이 말이야? 하와의 육체 속에 심어 놓은 정말 아담이 모르는 사이에 마귀가 와서 심어 놓은 씨인 줄 아담은 깜깜하게 영계가 어두워서, 알 수 없는 가운데 있다는 것을 아시고 말씀을 들으시면 감사하겠습니다”(P 목사의 설교 녹취록).

최삼경 목사는 P목사의 녹음 녹취록을 공개하면서 P목사의 이단성을 적절하게 비판하였는데, 그러한 과정 중에서 최삼경 목사는 마리아가 월경이 있는 여자라고 주장하면서 P목사의 원죄관을 비판하게 되었던 것이다. 즉 최삼경 목사는 P목사의, 월경없는 여자 마리아를 통해 예수가 태어났다는 주장을 비판하면서, 예수의 살과 피는 월경하는 여자 마리아의 살과 피에서 취한 것이라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소위 이단옹호언론으로 이미 발표된 신문들과 일부 친이단 인사들이 이단규정된 P목사보다 오히려 최삼경 목사를 공격하며, 소위 월경론잉태론이라는 이상한 명칭을 만들어서 이단이라고 모함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들은 친이단신문이니 그런 행동을 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할 것이다. 친이단신문이나 이단들의 입장으로서는 항상 눈의 가시와 같았던 최삼경 목사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야말로 우리의 눈을 의심하는 일이 있었는데, 예장통합의 L목사, Y목사, E 신문의 H목사와 같은 친이단성향으로 평소부터 소문이 자자했던 몇몇 목사들이 그러한 친이단언론 등의 주장에 동조를 하면서, 이단옹호언론과 함께 ‘월경잉태론’이란 단어를 만들어 최삼경 목사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이제 여기에 한기총 질서위까지 이단옹호언론과 친이단인사들과 동조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 왔다. 사실상 질서위의 발표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이미 이단옹호언론들과 친이단인사들이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그 내용이 그대로 반복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기총의 발표가 충격인 것은 그것이 소위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연합기관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도저히 이제까지 보여줬던 한기총의 정상적 이단규정의 모습과 판이한 이 모습은 왜 나오는 것일까? 말없는 다수는 그 이유를 어느 정도 간파하고 있다.

그렇다면 정말 이단옹호언론과 친 이단 인사들이 문제제기한 논조와 동일하게 따라가고 있는 한기총 질서위의 발표처럼 최삼경 목사는 예수님의 성령의 잉태를 부인하고 신성모독을 하는 사람일까? 예수의 인성이 마리아에게로부터 왔다고 하면 이단이란 말인가? 필자가 결론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고의적인 목적이 있는 조작이다. 그것에 대해서 몇 가지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첫째,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일반 여성과 동일하게 정상적으로 월경이 있었다고 하면, 성령잉태를 부정하는 것인가?
둘째, 인간의 원죄가 그 모친의 월경 때문인가?
셋째, 예수의 인성이 마리아로부터 취하였다는 정상적인 기독론이 이단인가?
넷째, 그것도 아니라면, P목사가 주장하듯이 마리아가 무월경이었다는 주장에 한기총 질서위는 동의하는가? 여자의 피를 통하여 원죄가 전해진다고 생각하는가?

- 예수님은 인성을 가지고 나셨지만 그러나 그 인성마저도 성령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로 얻으신 것이지 죄로 오염된 인간 마리아의 피를 통해서 물려받으신 것이 아니다.(기독교연합신문에 기재된 L목사의 글)

(1) L목사는 최삼경목사의 주장을 "모든 주장을 종합하면 마리아의 월경, 곧 마리아의 피를 통해서 태어났다는 뜻이다"라고 자의적인 추측과 해석을 하고 있다. 즉 그가 월경잉태론이라는 용어를 조작한 것이다.
(2) 또 아래 글의 제일 밑 부분에서 그는 "예수님의 인성이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로 얻은 것"이라고 말하였다.
(3) 그는 마리아가 죄로 오염된 피를 갖고 있다고 말하였다.

최삼경 목사를 월경잉태론자라고 비판한 글들을 살펴보며 몇 가지를 비판하고자 한다.

1) 마리아가 월경이 없었나?
우리는 성경적으로 마리아가 월경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성경은 그러한 문제에 대해서 전혀 언급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이 나오게 된 이유는 뭘까? 이는 P목사의 이단적 주장에서부터 비롯된다. 그는 마리아에게 월경이 없었다는 식으로 말하며 그래서 예수그리스도가 죄가 유전되지 않았다는 식의 주장을 했었다. 이에 대해 반박하기 위해 최삼경 목사도 ‘월경’을 말하게 됐던 것이다. 성경은 마리아가 동정녀였다는 사실은 분명히 언급한다. 그러나 마리아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무월경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또 그렇게 생각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피를 통해 죄가 유전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 특히 통일교식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마리아가 무월경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어왔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 1:34).

천사가 마리아를 찾아와서 수태를 예고하였을 때에, 마리아가 만약 아기를 낳을 수 없는 석녀였다면 마리아는 “나는 아기를 낳지 못한다”고 답변하여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한다”고 말하였다는 점을 우리는 주의깊게 살펴야만 한다. 즉 마리아가 수태를 하게 되는 일이 불가능한 일이 된다고 생각한 이유는, 처녀 마리아가 아직 남자를 알지 못하는 것에 기인하는 것이며, 마리아가 아기를 낳을 능력이 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아기를 잉태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마리아가 일상적이며 정상적인 처녀라는 사실을 포함한다.

2) 인간의 원죄가 모친의 월경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바로 이단이다.
인간의 혈액을 통하여 죄가 전해지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병원에서 누구의 피인지도 모르는 혈액수혈을 받을 때에 거부를 하여야만 할 것이다. 인류의 원죄는 첫사람 아담이 인류를 대표하여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고, 그것을 불순종함으로서 초래된 것이다, 그 원죄로 인한 죄책이 사망으로서 온 인류에게 전가된 것이며, 그 원죄로 인한 부패성, 오염이 곧 죄성이 된다. 원죄가 무엇인지 모르며, 오염된 혈액으로 죄가 전달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단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피에 죄가 오염되어있단 말인가? 그것이 기독교의 원죄인가?
만약 모친의 월경이 없어야만 태아가 무죄가 된다거나, 모친의 월경이 있으면 태아가 죄가 있다고 주장을 하면 그는 당연히 이단이 될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자체가 목사의 자격이 없다고 본다.

3) 예수의 인성이 마리아가 아닌 성령 혹은 하늘로부터 왔는가?
이러한 주장은 교회사적으로 정통기독론에서 이미 결정되었던 이단적인 주장이다. 정통신학은 예수의 인성이 마리아로부터 왔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만약 예수의 인성이 우리와 다른 인성이라면 심각한 이단적인 기독론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인간의 죄는 인간이 대신 져야 해결된다. 예수의 피와 살은 하늘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우리와 동일한 피와 살이며 마리아의 살과 피로 취한 것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모르는가?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며,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히2:14).

기독교의 주요한 신앙적인 기준이 되는 칼케톤신조도, 웨스트민스터신조도, 모든 정통교단의 조직신학이 예수의 인성은 마리아의 실체로부터 취하여졌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조직신학은 예수의 신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나, 예수의 인성은 마리아의 살과 피로부터 취하여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벌콥과 마틴로이드존즈와 웨인그루뎀 등 거의 모든 조직신학자들과 하문호, 황승룡 교수 등 국내의 조직신학자들도 모두 예수의 인성이 마리아로부터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완전한 인성을 취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조된 새로운 인성을 취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성자를 위해 새로운 인성을 창조하셨으며, 이 인성은 말하자면 마리아를 통해 단순히 전해졌을 뿐이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이것은 틀렸습니다. 성육신 교리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인성을 자신의 어머니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취하셨다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은 새로운 창조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인성을 가지고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인성을 마리아에게서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자주 강조하듯이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참으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씨이십니다“(마틴로이드 존스, 성부하나님 성자하나님. 기독교문서선교회, 350쪽).

“이것은 크나큰 신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바는 성령의 능력이 마리아에게 임했고, 마리아에게서, 그의 몸의 세포 하나에서, 우리 주님의 인성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같은 책. 355쪽).

마틴 로이드존스는 예수의 인성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주장에 대해서 이단적인 주장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월경있는 여자 마리아로부터 취했다는 최삼경 목사의 주장은 신성모독도 아니고, 성령잉태를 부인하는 주장도 아닌, 정확한 정통신학적 견해다. 계속해서 살펴보겠다.

“‘아 알았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특별한 인성을 창조하셨구나, 그렇지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나는 이러한 주장을 이단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분은 자신의 인성을 마리아에게서 취하였으나, 이 일은 성령에 의해 전혀 죄와 오염에서 자유롭게 되는 방식으로 이루어 졌습니다(같은 책, 357쪽).

에든버러 프리대학의 조직신학 교수인 도널드 맥클라우드의 “그리스도의 위격”(IVP) 50쪽을 보자. 그 교수는 예수의 인성에 마리아의 난자와 유전자, 수정체까지 기여하였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무에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마리아에게서(ex Maria) 즉 마리아의 실체를 가지고 창조되었다. 마리아는 어떠한 인간 어머니가 자기 자식에게 기여하는 바(난자, 유전자, 보통의 수정체의 성장과 정상적인 분만)를 그대로 그리스도에게 기여하였다. 전적으로 적절한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그녀의 태의 열매’(눅1:42)였다. 존피어슨은 자기의 태의 열매와 관련하여 다른 어머니에게 주어지는 어떠한 것이라도 마리아에게 부인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동정녀가 어머니로서의 행위들을 수행하도록 민들어 주는데 필요한 것 이상의 역할이 성령에게는 남아있지 않다”

개혁주의 유명한 신학자 루이스벌콥의 기독교신학개론 200쪽을 보자. 예수의 인성에 대해서 마리아에게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재세례파의 잘못된 주장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육신에서 가끔 말씀이라 불리워지는 하나님의 아들은 육신이 되셨다. 이것은 본래의 실재가 중지되었다거나, 한 인간으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 본성에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은 성육신 전이나 후에나 확실히 동일한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그가 신성에다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된 완전한 인성을 취하셨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는 성육신을 통하여 마리아의 실체에서 인성을 취하심으로 실제로 인류의 일원이 되셨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그의 인성을 하늘로부터 받았으며, 마리아는 단순히 그것이 통과하여 온 운하, 혹은 도관이었다고 주장하는 재세례파에 대항해서 강조되지 않으면 안된다.”

하문호 교의신학 (4) 기독론, 한국로고스연구원, 91쪽을 보자. 역시 예수가 마리아로부터 인성을 취한 것이 아니며, 그 인성이 하늘로부터 온 것이며, 단지 마리아를 통하였다는 주장에 대해서 "예수의 참되고 완전한 인성을 깨뜨리는 잘못된 주장"이라고 말한다.

“초대교회의 어떤 이단자들과 재세례파에서는 그리스도가 그의 인성을 하늘로부터 가져오셨고 마리아는 단지 그의 인성이 통과하는 관(channel)과 같은 것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의 참되고 완전한 인성을 깨뜨리는 잘못된 주장이다.”

기독교의 기독론은 칼케톤회의에서 확정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리라 본다. 우리 개신교는 카톨릭의 수많은 신조를 모두 지지하지 않지만, 초대교회의 3개의 신조, 즉 삼위일체와 기독론에 대한 신조는 우리의 신앙고백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이것을 이단분별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칼케톤신조는 “신성으로는 창세 전에 성부로부터 출생하였고, 인성으로는 이 마지막 때에 우리와 우리 구원을 위하여 신의 수태자인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나셨다”(이정석교수 역)고 되어있다.

또 웨스트민스터신조 8항 2번을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즉 예수의 인성은 마리아의 태중에서 그녀의 형질(본질, substance)로 잉태되었다는 것이다,

“8.2 삼위일체의 제2위이신 하나님의 아들은 성부와 본질이 동일하고 동등한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으로서, 때가 차매 그에게 인간의 본성, 즉 그에 따르는 모든 본질적 속성과 죄를 제외한 공통적 연약성을 취하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태중에 그녀의 형질로 잉태되었다. 그리하여 두 가지의 전체적이고 완전하며 구별되는 본성, 즉 신성과 인성이 한 인격 안에 함께 나누어질 수 없게 결합되어 변환, 혼성, 또는 융합되지 않는다. 그 인격은 참 하나님이며 참 인간이지만, 한 그리스도이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한 중보자이다.”

웨인그루뎀의 조직신학 중권 23쪽을 보면 “이와 같은 다른 가능성들을 생각해 볼 때에 인성과 신성을 가진 그리스도를 탄생하게 하심으로 인간인 어머니로부터 지극히 인간적인 방법을 통하여 탄생하셔서 완전히 인간이 되게 하시고 동시에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에게 잉태되게 하심으로 완전한 하나님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지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황승룡교수의 조직신학(한국장로교출판사) 하 46쪽을 살펴보자

“마리아를 통한 예수의 탄생은 인간이 하나님의 역사의 참여자임을 뜻한다. 마지막으로 이 사건은 예수가 현실적인 한 어머니의 모태로부터 태어났음을 말한다. 그는 그의 어머니의 몸으로부터 그 여자의 살과 피로부터 태어났음을 말한다.”

이상과 같이 거의 모든 정통신학은 예수의 인성이 마리아에게로부터 온 것임을 언급하고 있다. 더욱이 장로교회 목사라면 캘빈의 기독교강요의 2권13장 성육신편에서도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캘빈은 기독교강요 성육신론에서 그리스도의 몸이 가현이라고 주장하는 마르키온파들과 그리스도의 인성은 우리와 다른 천상적 육신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마니교도를 비판한다.

“그리스도 자신에 대해서도 여자가 만들었다고 하지 않고 여자에게서 났다고 하기 때문이다(갈4:4). 그러나 그들 중의 어떤 자들은 염치도 버리고 방자하게 묻는다. 그리스도는 처녀의 경도 씨에서 만들어졌다는 뜻이냐고···. 나는 그가 어머니의 피와 결합하시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것이며, 그들은 이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태의 말에서 곧 추리할 수 있다. 그리스도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고 하므로 그는 마리아의 씨에서 생산되신 것이라고. 보아스가 라합에게서 났다고 할 때에(마 1 : 5) 유사한 생산을 의미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마태는 여기서 처녀 마리아를 그리스도가 통과한 수로(水路)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처녀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다윗의 씨에서 나셨다고 말함으로써 이 놀라운 생산방법과 보통 방법을 구별한다. 이삭이 아브라함에게서 나며, 솔로몬이 다윗에게서 나며,요셉이 야곱에게서 난 것과 똑같이, 그리스도는 그의 어머니에게서 나셨다고 한다. (기독교강요, 2권13 성육신 / 3.동정녀 마리아를 통한 그리스도의 혈통 )

오늘날도 예수의 인성이 마리아가 아니라 하늘에서 받았다고 주장하는 목사들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더욱이 그들은 이단교회를 동조하고 있지 않는가?

4) 최삼경목사가 성령의 잉태를 부정하였는가? 일부 목사들과 친이단성향의 신문기사에서 최삼경목사가 성령의 잉태를 부정하였다고 말하거나, 예수의 인성을 부정하였다는 내용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최삼경목사가 쓴 글을 아무리 읽어도 성령의 잉태를 부정하거나 인성을 부정한 적이 있는지에 대해서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이런 거짓조작을 하는 자체가 그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밝히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님의 성령의 잉태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것이고, 현재 논의가 되는 점은 예수의 인성이 어디로부터 왔는가가 아닌가? 또 과연 마리아의 피를 통하여 죄를 물려 받았는지에 대한 논쟁이 그 초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최삼경목사는 예수의 인성은 마리아에게서 왔다고 주장하며, 최목사를 공격하는 몇몇 목사들은 예수의 인성이 하늘로부터 왔다고 주장하고 있지 않는가? 그들은 또 마리아가 월경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최삼경목사가 마치, 성령으로 잉태된 것을 부인하는 것처럼 공격을 하고 있지 않는가?

5)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는 일부 목사들의 친이단적인 성향이다 한국교회를 위하여 이단을 연구하고 대처하는 사역을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이단을 연구하는 목사를 최소한 방해하거나 비난을 하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 지방교회를 동조하여 최삼경 목사를 삼신론으로 모함하고, 이단 P목사에 동조하여 최삼경 목사를 월경잉태론자로 모함하는 이유가 무엇이며, 그 결과로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이제 여기에 한기총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단사상을 경계하고 오히려 이단자들과 이단옹호언론과 친이단성향을 가진 목사들이 이미 주장했던 논리를 갖고 최삼경 목사를 이단으로 정죄하니 통탄할 노릇이다.



출처: 아멘넷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길자연 목사)가 왜 지금의 지경에 이르게 됐는지 그 내막을 살펴본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현재 이광선 직전 대표회장과 최측근인 박중선 목사,그리고 길자연 현 대표회장과 최측근인 홍재철 목사, 이렇게 4인방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런데 이 4인방 가운데 한 사람인 박중선 목사가,기성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이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교계로부터 이단 의혹을 받아왔던 장재형 목사와 변승우 목사에 대해 한기총이 혐의 없음을 발표하자, 주요 교단들이 이를 반박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연 자리이다.
당시 예장합동총회 이치우 총무가한기총 4인방 가운데 한 사람인 박중선 목사가 2005년 베뢰아 성락교회로부터 1억여 원을 받았다고 처음 폭로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증거가 제시되지 않은데다 장재형 씨와 변승우 씨 이단 해제가 주된 내용이어서 이치우 목사의 발언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한기총이 최근 이단을 옹호하는 듯한 행보를 계속하면서 4인방 가운데 한 명인 박중선 목사의 이단 금품수수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CBS가 최근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성락교회는 지난 2005년 6월 세 차례에 걸쳐 박중선 목사가 설립한 한국기독교총협의회에 1억 7천만 원을 송금했다.
이 돈 가운데 1억 천만 원이 다시 박중선 목사가 속한 예장합동 개혁진리 교단으로 빠져나갔다.

한국기독교총협의회는 한기총과 유사한 이름을 사용하는 별도 법인으로 박중선 목사가 주도해 만든 조직이다.
돈이 입금된 2005년 이후 이 한기협은 기존 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한 베뢰아 성락교회 김기동 목사에 대해 이단혐의가 없다고 발표하는 무리수를 뒀다. 당시 베뢰아 성락교회 측이 1억 7천만원 원을 송금한 것이 대가성 있는 돈이었다는 의혹이 이는 대목이다.

박 목사는 이단 관련성 때문에 당시 한기총에서 쫓겨나기도 했지만 다시 복권 돼 지금은 한기총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이처럼 명백한 금품수수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중선 목사는 이단으로부터 받은 금품수수를 뉘우치기는커녕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부인하고 있다.

CBS가 확보한 증거 제시에도 불구하고 박중선 목사는 이단으로부터 1억 여 원을 받은 사실에 대해 시종일관 부인하고 있는 것.
지난 14일 열린 WEA 한국유치 감사예배 현장에서 CBS는 박중선 목사를 만나 이단 베뢰아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은 사실에 대해 집중 캐물었다.
박 목사는 자신이 설립한 한기협 이름으로 금품을 받았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인으로만 일관했다. 그러면서 갑작스런 취재가 당황스러웠는지 취재진에게 욕설을 하며 취재용 카메라를 내려치기도 했다.

CBS는 이후 박 목사에게 수 차례 정식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끝내 거절했다.


▲ 한기총 관계자들이 뉴욕에서 WEA 터너 클리프 총재와 회동을 했다. 왼편부터 박중선 목사, 이광선 목사, 터너 클리프 총재, 길자연 목사, 장재형 목사, 홍재철 목사.     © 크리스찬투데이

문제는 이런 박중선 목사가 한기총의 WEA, 세계복음주의연맹 총회 유치 과정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일교 출신으로 이단성을 의심받고 있는 장재형 씨를 연결시킨 인물도 바로 박중선 목사로 알려졌다.
특히 박 목사는 지난해와 올해 전, 현직 대표회장과 함께 WEA 뉴욕사무소를 함께 방문해 장재형 씨와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요즘 한기총이 이단 옹호 행보를 보이는 데는 이처럼 이단과 밀접한 인사들이 한기총을 쥐락펴락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출처 = CBS TV보도부





한국의 CBS 방송이 보도한 내용입니다.
핵심인물이 이단에게 거액의 돈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단을 막는 핵심 인물인 최삼경을 그냥 둘 수가 없는 것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i9bROFCEHDA



탈무드의 본 정체는 마귀의 경전입니다


현용수는 쉐마교육연구원장 유대인의지혜가 여러민족 중에 뛰어남을 선전하며 자녀들에게 탈무드와 유대인의 지혜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이것은 현용수가 탈무드의 깊은 본질을 모르는 사람이거나  탈무드의 깊이를 알고 있는 자라면 기독교인을 기만하며 미혹하는 자 인것입니다.

기독교인으로써 유대교바탕 되는 탈무드가 무엇이며 그 본질과 정체를 알아보고자 합니다.탈무드는 전해내려 오는 유대인의 선생 겪인 장로들의 유전을 엮어 만든 유대교의 경전이며 그 내용은 율법 토라 해석, 생활 양식. 도덕 과학 관습 규례등을 포함하여 그내용이 워낙 방대하여 일만이천페이지에서 일만육천에 이른다고하며 유대인 자신들도 무슨 내용이 어디에 있는지 그 깊이를 알 수 없다하여 “바다”라는 별칭으로 부른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탈무드의 지혜등은 껍질에 해당하며 그것도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일부만을 번역하여 만든 탈무드의 지혜나 교훈이 전세계에서 읽히고 있으며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탈무드를 친숙하게 여기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깊은 내용은 투철한 선민의식에서 기인한 유대사상에 기초를 두고있으며 그 유대사상을 완성할 메시아의 출현을 염원하는 유대교의 교리가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탈무드는 두 가지가 전해 오는데 4 세기 경에 완성 된 탈무드는 예루살렘 탈무드라 하고 또  6-7세기경 완성 된 탈무드를 바벨론 탈무드라 부르며 유대인들은 후기 탈무드의 비중과 가치를 더높이평가 한다고 합니다.  필자는 한정된 지식으로 탈무드의 모든 내용과 사상을 모두 알 순 없지만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탈무드를 보는 시각을 바로잡아 주고 싶습니다.

유대인은 성문화 된 모세오경보다 그것을 해석한 장로들의 유전을 우선시한다고 합니다 이것은 마치 다이아몬드 보다 그것을 설명하는 설명서를 더 중요시 하는 것과 같으며 상품보다 설명서를 더귀히여기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막:7장7-8절에 성경보다 구전[유전]을 귀히여기는유대교인들을
꾸짖는 장면이나옵니다 .
유대인들이 사람들의 유전을 더 귀히 여기는 것은 오랫동안 이방인의 포로생활을 겪으며 형성 된 이스라엘 민족 만의 특성인 것 같습니다
선택 된 하나님의 유일한 백성이라고 스스로 여기는 이스라엘 민족 또 아말렉전쟁을 지금도 문자적으로 믿고 가나안 일곱 족속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지금도 유효하다고 믿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들이 개처럼 여기는 이방인에 의해 치욕적인 노예생활을 하며 입에서 입으로 유전 되어 형성 된 이스라엘 민족역사 책인 탈무드가 얼마나 굴곡 되고 왜곡된 사상을 담고 있을지는 우리는 미루어 짐작할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방인에 대한 차별과 증오의 사상이 고스란히 탈무드에 담겼을 것입니다.

탈무드는 이방인에게는 접근이 어려우며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깊은 내용은 유대교 랍비 외에는 열람이 불가할 정도로 비밀에 부친다고 합니다.

   독일의 대학교수에 의해 밝혀진 일부 내용에 의하면

“유대인을 때린 비유대인은 때려죽여도 죄가 되지 않는다.”

"이방인에게 탈무드를 가르치는 것은 금지한다."

탈무드를 연구하는 이방인은 죽어 마땅하다."

“비유대인과의 식사는 동물과 식사하는 것과 같다.”

“메시아가 도래하면 유대인 1인당 2만8천의 비유대인 노예를 갖게 된다.”

등등의 내용의 일부가 밝혀진 것입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을 철저히 짐승으로 노예로 보는 것이며 장차 메시아가 출현하면 자신들의 소망이 실현될 것이라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 있어서 “사람”은 유대인인 자신들만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지으실 때 사람의 모습으로 창조하셨지만 영혼이 없이 지으셨다고 믿고 있습니다.이것이 탈무드의 진정한 모습인 것입니다

유대인은 나라를 잃고 디아스포라가 되어 세계 여러 나라에 퍼져 있을 때에도

이탈무드 사상이 족쇄가 되어 어떤 나라에서도 동화되지 못하고 환영 받지 못하는 민족으로 멸시 받으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탈무드 사상을 배워 상술과 돈놀이에는 뛰어난 재질을 발휘하여 부를 쌓았습니다.

세계 각국에 붙어 살면서도 그 나라 민족들을 한낱 돈벌이 대상으로나 치부하고

돈놀이에는 피도 눈물도 없이 그들이 번돈을 고리의 이자로 쓸어가고

자기들끼리만 뭉치고 마음을 열지않고 늘 한걸음 멀리하는 유대인들이 환영받지 못하고 핍박과 멸시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세익스피어의 명작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 이라는

유대인 고리대금업 자는 유대인들의 이방인과 돈에 대한 시각과 관념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은 철저히짐승으로 여기며 돈버는 비즈니스 도구 이상으로 생각지 않습니다

일예로 일본 사람들이 돈버는 솜씨가 비상함을 보고 일본 사람들을 가리켜 돈 잘버는 짐승이라는 뜻으로 이코노믹 애니멀이라고 처음 부른 사람들이 미국계 유대인들이라고 하니 이들의 시각을 짐작케합니다 .......

이들의 돈놀이 솜씨는 오늘 날도 이어져 전세계의 금융을 주무르고 있습니다

금융의 본산지인 월가도 이들이 장악하고 있으며 요사이 이들의 금융 독재와

횡포에 항거하는 데모가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음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반사회적 반인간적인 악한 사상은 탈무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탈무드는 결코 지혜나 교훈만을 주는 범상한 책이 아닙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싫어하셨던 사람의 계명인 탈무드를 당연히 멀리해야 합니다. 다만 유대인들을 위해서는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이 하루 속히 탈무드를 버리고 성경으로 돌아 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고

전도해야 하는 의무가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유대인에게 남다른감정과 친밀감을 갖습니다.

비록 육적이지만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또한 애끓는 심정으로

자신의 목숨을 저들의 구원과 바꿀 수있다면 자신은 어떻게 되더라도

좋다는 간절한소원을 로마서에 담은 사도 바울의 동족이기도 하며

기독교의 탄생 지이기도 하고 또한 2000 년 만에 기적처럼 독립하여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기독교인들의 관심과 주시의 대상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그들의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 차는 너무 현저합니다.

일예로 1988년은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개최 된 해였고

올림픽을 지휘한 총책임자는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박세직 씨였습니다.

박세직 씨가 이스라엘의 올림픽 위원장을 만나자 매우 반갑게 인사하며

우리 나라와 이스라엘의 닮은점을 비교하며 우리나라도 이스라엘처럼 주변국들에게 침략과 괴롭힘을당한 약소국이었노라고 동질감을나타내며 친밀감을 표시했다고합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위원장의 반응은 싸늘한 냉소섞인 비웃음으로 돌아왔습니다.

감히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과 이방인인 대한민국을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이스라엘을 모욕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호감을 나타내던 박세직 씨는 그만 머쓱하고 물러났다고 합니다.

이것은 올림픽 후 박세직 씨의 후일담을 신문에서 본 것입니다.

기독교인과 유대교인의 서로 상대를 바라보는 현격한 시각차를 그대로 나타내 주는 일화입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배타적인 시각은 모두 탈무드의 영향입니다.

유대랍비들이 자신들의 입으로 구전 된 탈무드를 자손대대로 철저히 전수시킨 것입니다.

탈무드에 세뇌된 유대인들이 보는 이방인과 기독교인은 이단이며 멸망할 짐승일 뿐입니다.

6.7세기에 기독교가 흥왕하자 이에 당황한 유대 랍비들이

후기 탈무드에 기록한 예수는 창녀와 로마 병정 사이에서 난 사생아이며

이집트에서 마술과 우상숭배를 들여와 마술로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미혹하여 우상숭배를 행하게 하는 큰 죄를 지었고 이를 꾸짖자

유대교를 전복하려다 돌로쳐 죽임 당해 십자가에 매달았으며

이 죄로 말미암아 지옥에서 펄펄끓는 똥물에서 지금도 형벌을 받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탈무드를 믿는 유대인이 기독교를 철저히 배척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쉐마교육연구원의 현용수는 반기독교적인 이런 탈무드를

우리자녀에게 가르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의 계명을 믿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꾸짖고

저주하시는 말씀이 사복음서 곳곳에 기록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용수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 교묘하게 속이고 유대교의 탈무드사상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 기독교 계가 마귀의 경전을 성경의 사촌 쯤으로 속아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작성자: 안디바 

 


현재 미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초대형 교회들 가운데 상당수가 프리메이슨에 소속되어 있거나 그 동조 세력으로 밝혀져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교회는 텍사스 휴스턴에 자리를 잡고 있는 조엘 오스틴이 담임으로 있는 레이크우드 교회로, 신자들의 수가 대략 4만 6천명 정도 되는 것으로 집계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네번째로 큰 교회는 캘리포니아(California)주 레이크 포리스트 시에 자리를 잡은 새들백교회로 신자들의 수는 대략 2만 2천명 정도로 집계되어 있는데, 이 교회의 목사가 바로 릭 워렌(Rick Warren)입니다.

 

릭 워렌(Rick Warren)

 

릭 워렌(Rick Warren) 목사는 프리메이슨 조직의 하나인 미국의 미남침례교단 소속의 목사로 사우스웨스턴 침례신학 대학원을 졸업한 후에 새들백교회를 개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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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워렌(Rick Warren) 목사와 오바마 대통령

 

릭워렌 목사는 프리메이슨 33도인 빌리그래함이 세운 풀러신학교대학원 박사를 취득하기도 했는데, 한국교계의 신학자들과 목사들, 또는 수많은 신자들은 릭 워렌(Rick Warren) 목사를 초청하여 집회를 열면서 열광하고 있습니다.

 

릭 워렌도 빌리그래함과 마찬가지로 프리메이슨 조직에 속해 있는 인물이며, 뉴에이지 운동까지 하는 인물로 미국 사회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NWO 관련 비밀 조직 중 하나인 대외관계협의회(CFR, Council on Foreign Relations)의 정회원이라는 사실 역시 미국 사회에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대외관계협의회(CFR)

 

NWO 조직 중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력한 조직으로 미국 중앙정부는 물론 CIA를 조정하면서 세계단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활동하는 조직으로 1921년 조직되었습니다.

 

바로 이 조직의 정회원이 릭 워렌(Rick Warren)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미국의 인터넷 신문으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는 월드 넷 데일리(WORLD NET DAILY)의 시사 평론지의 편집장으로 활동하는 조셉 파라(Joseph Farah)는 다음과 같이 기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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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st Rick Warren column
Posted: January 16, 2007
1:00 a.m. Eastern
Last week, in the latest of a series of columns I have written about mega-church leader Rick Warren, I wondered out loud about mixed signals coming from Saddleback Church.
I was puzzled, because back in November, Warren had told me he was a proud member of the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and had learned much about the Middle East at the organization's briefings.

이 내용의 기사를 보면 릭 워렌(Rick Warren) 자신이 스스로 대외관계협의회(CFR, Council on Foreign Relations)의 일원이었으며, 중동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는 내용의 기사입니다.


Yet, when concerned individuals wrote to the church seeking to verify that Warren was a member of a group that for 86 years has attacked the idea of nation-states in favor of world government, they were routinely told the report was untrue.
In other words, I was a liar.
(Column continues below)


아래의 사이트를 마우스로 클릭하시면 원문 기사를 직접 볼 수 있습니다.


http://www.worldnetdaily.com/news/article.asp?ARTICLE_ID=53773
http://www.worldnetdaily.com/news/article.asp?ARTICLE_ID=53688

 

릭 워렌(Rick Warren) 자신의 입으로 세계정부 수립을 위한 비밀 조직의 '정회원'이라는 사실을 고백했던 것입니다.

 

집안 대대로 프리메이슨 회원으로서 사탄에게 충성한 '노만 빈센트 필(Norman V. Peale)' 이라는든지, 그의 집안은 조부와 부친이 이 조직에 50-60년씩 충성해왔습니다.

 

릭 워렌 목사를 얘기할 떄, 빼놓아서는 안될 인물이 한 사람 있습니다. 바로 '안토니 슐러' 목사의 아들이자 수정교회(Crystal Church)의 목사인 로버트 슐러(Robert Schuller)인데, 그는 현재 프리메이슨 33도입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발언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크리스탈 사원(Crystal Church)을 건축하기 전에 교황에게 축복을 받고 준공했으며, 다음과 같은 망언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금은 프로테스탄트 교도들이 목자장이 되신 교황 앞에 나아가 우리가 집(카톨릭 교회)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 지를 물어야 할 때이다."

 

기절초풍할 얘기지만 이는 사실입니다. 아직도 시중에는 가이드 포스트 (guidepost) 기독교 서점에 정기간행물로 버젓이 나와 있고, 그들이 쓴 적극적인 사고방식이 아직도 잘 팔리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의 뒤를 이은 자가 바로 CFR의 정회원이자, 수정교회의 담임목사인 로버트 슐러 목사의 제자 '릭 워렌' 목사인 것입니다.

 

미국이나 한국의 교계에서 릭 워렌 목사를 모르는 신자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가 쓴 저서 '목적이 이끄는 삶'은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 셀러가 되었으며, 엄청난 수입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작성인 : Archangelus 대천사

 

 

릭웨렌은 그의 본색을 드러냈다!

그는 PEW FORUM ON RELIGION(2005/5/23)에서

다음과 같은 요지의 발언을 하였다!

 

1. 근본주의는 21세기의 적이다.

2. 1920년에 세운 5가지 신앙신조는

    율법주의적이고 편협한 그리스도인의 개념에 불과하다

 

(LEGALISTIC AND NARROW) - <5가지 신앙 신조란>

    - 성경의 무오성

    -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 예수의 신성

    - 예수는 인류의 죄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오셨고 예수를 믿음으로만 구원 얻음

    - 예수님의 부활

    - 예수님의 재림

 

3. 21세기는 종교 다원주의에 의하여 움직일 것이며,

    이것만이 세계 평화와 인류 공존의 유일한 길이다.

4. 카톨릭과 복음주의자들은 연대하여야 한다.

5. 평화를 위해서는 무슬림이고 크리스챤이고 없다.

    함께 일하여 제 2의 개혁을 해야 한다.

6. 나는 세계의 모든 종파의 기독교 지도자들과 협력한다.

 

위 내용을 다음 동영상을 통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릭웨렌은 자신이 신 세계질서(NWO) 비밀조직 

'CFR (COUNSIL FOR FOREIGN RELATION)'의 회원임을 스스로 밝혔으며

CFR의 ANNUAL REPORT에 그의 이름이 리스트 업된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아래글은 제가 자주가는 목사님 카페에서 가져왔습니다
밑에 같은 제목으로 올린글에는 사진이 안나와서 다시올려요(비밀번호를 몰라서 삭제가 안되네요)

여호와 증인의 정체

 

    아래의 글들은 제가 집필하여 놓은 책의 내용의 일부와 평소에 기록하여 놓은 글들을 서로 혼합하여 질문자의 답변 글로 사용한다. 우리 카페의 모 회원님 중에 여호와증인에서 나와 현재는 합동측의 교단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는 분이 요청하여 올린 글이다. 이 운영자에게는 여호와증인의 창시자인  찰스 데이즈 럿셀(Chares Taze Russell 1852~1916)이 프리메이슨이라는 확실한 문헌을 여러권 소장하고 있다. 나중에 카페에 스캔하여 올리면서 여호와증인들이 주장하는 이단적인 주장들을 모두 신구약성경을 통해 비판할 것이다. 여호와증인들을 사탄을 숭배하는 집단의 조직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더 이상 감출 수 없다.

   우리는 여호와증인들에 관하여 더 이상 논할 가치도 없다. 여호와증인의 창시자 찰스 데이즈 럿셀(Chares Taze Russell 1852~1916)이 사탄을 숭배하는 프리메이슨의 최고 계급인 33도(계급)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무덤은 프리메이슨을 뜻하는 피라미드와 프리메이슨의 한 조직인 템플기사단(Orde of the Knights of Templar)을 뜻하는 왕관 속에 십자가로 장식되어 있다.

   그의 묘는 현재 미국 펜실베이니아(Pennsylvania)주 피츠버그(Pittsburgh)시에서 조금 떨어진 여호와의 증인들의 공동묘지인 로즈몬트 연합묘지에 있다. 이곳에는 여호와의 증인들을 위한 대형 건물이 있는데, 그 건물 형태는 전형적인 프리메이슨 라지(Lodge: 집회소 건물)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비문에는 프리메이슨을 상징하는 심벌(마크)과 프리메이슨의 집회소를 뜻하는 메소닉(MASONIC: 비밀공제 조합원 집회소)이라고 적혀 있다. 누가 이것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다. 아래의 사진들을 확인하여 보라!
















 


 


 여호와의 증인의 창시자 러셀의 무덤

    프리메이슨 템플 기사단 문양


비석에 프리메이슨 집회소 센터라고

새겨져 있다.




    여호와의 증인의 창시자

        러셀의 무덤 확대

        왕관 속에 십자가

프리메이슨의 템플기사단(Orde of the Knights of Templar)의 표시이다. 참고로 여호와의 증인들은 십자가(The Cross)를 이교도의 형틀이라고 하여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기둥처럼 생긴 말뚝에서 돌아가셨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참고문헌 118, 119


       프리메이슨(Freemason)

템플기사단(Orde of the Knights of Templar)의 심벌(Symbol)이다. 필자가 프리메이슨 템플기사단의 홈페이지에서 가지고 온 것이다. 한국 교계는 이런 사실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목사들의 목에 두루는 후두에 왕관 속에 십자가를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 사탄을 숭배하고 있는 여호와증인들은 주후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 때 아리우스(Arius)가 주장한 “예수 그리스도는 최초로 창조된 피조물이다.” 란 이단 교리를 그대로 수용하여 따르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주장하기를 “그러나 성서에는 예수를 (god) 혹은 하나님이라고 한 곳이 있지 않는가?"하고 묻는 사람들이 사람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사단’도 신(god)이라고 불리웠습니다. …중략…삼위일체 중 소위 셋째 위라는 “성신” 혹은 “성령”에 관하여 우리가 이미 살려 본 바와 같이 한 위() 혹은 한 인격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활동의 활동입니다. 침례자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가 물로 세례를 베푼 것처럼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물이 한 인격체가 아닌 것처럼 성령도 한 인격체가 아닙니다.1)”고 하였다(우리는 지상 낙원에서 영원히 살수 있다).

더 나아가 이단인 여호와의 증인들은 말하기를 “삼위일체 중 소위 셋째 위라는 “성신” 혹은 “성령”에 관하여는 우리가 이미 살펴 본 바와 같이 한 위() 혹은 한 인격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활동력입니다. 침례자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가 물로 침례를 베푼 것처럼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물이 한 인격체가 아닌 것처럼 성령도 한 인격체가 아닙니다(마태 3:11).2)”고 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번 인식해야 할 것은 여호와의 증인의 창시자인 러셀은 사탄을 숭배했던 프리메이슨의 템플기사단의 33계급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오늘날 여호와증인들은 그를 자신들의 형제라고 부르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님을 피조물로, 성령님은 전기와 같은 힘으로 주장하고 있다.

   성령 하나님도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는다. 참으로 제멋대로 해석하는 집단이다. 사탄의 회이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성경의 기본도 없는 무가치한 엉터리 말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신자 중에는 여호와의 증인들에게 현혹되어 영혼을 사단에게 팔고 지옥 가는 연습을 부지런히 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불쌍하기 짝이 없다. 도대체 교회에서 어떻게 성경 교육을 시키기에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는 말인가? 사탄의 유인책에 부지기수로 속아 넘어 가는 불쌍한 영혼들이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서 이런 연구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여호와증인들이 주장하는 것은 모두 거짓말이며 성경에서 빗나간 주장들이다. 여기에서는 여호와증인들의 주장하는 내용들 중에 가장 핵심적인 내용 중에 두 가지만 다루기로 하겠다. 가장 중요한 부분 두 가지만 틀리면 모두 틀리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증인들 주장처럼, 예수님은 피조물이며,  성령님은 전기와 같은 힘일까? 우선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주장들을 살펴볼까 한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셨다.

 

10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셨다.

이성을 초월한 사건들! 이성으로서는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사건들!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공생에 기간 동안에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들을 많이 하셨으며, 사람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불가능한 놀라운 기적들을 많이 행하셨다. 그 내용들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1. 예수님은 평소에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하나님이다.”고 하였다(요 10:30, 요 10:30, 요 14:9 요 8:58).

“죽음을 당하고 3일 후에 살아나리라”고 하였다(마 16:21, 마 27:63, 요2:19-22).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고 하였다(요 11:25).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고 하였다(요 14:6).

“나는 선한 목자다.”고 하였다(요 10:11, 요 10:14).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다.”고 하였다(요 12:46).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였다(마 11:28).

“목마른 자여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였다(요 7:37).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하였다(요 14:27).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였다(마 9:5, 막 2:5, 눅 5:20, 막 4:12, 눅 7:48).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다”고 하였다(요 7:14).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다.” 고 하였다(요 8:42).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하였다(요 10:15).

“나는 양의 문이다.”고 하였다(요 10:7).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안에 계신다.”고 하였다(요 15:5).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였다(요 7:37).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고 하였다(요14:13).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하였다(행 1:5).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하였다(행 1:11).

 

2. 죽은 사람들을 살리셨다.

 

1) 썩어서 냄새가 나는 시체에게 무덤에서 나오라고 하셨다.

“나사로야 나오라”고 하였다(요 11:43).

죽은 지 나흘(4일)이 되어 이미 썩는 냄새가 나는 나사로의 무덤(바위 무덤)에 찾아가신 예수께서는 “나사로야 나오라”고 외치자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요 11:20-45). 이 놀라운 광경을 현장에서 지켜보던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었다(요 11:45, 요 12:11).

 

2) 죽은 소녀를 살리셨다.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하였다(막 5:41).

유대인들이 안식일을 지키거나 자녀 교육장이나 재판소로 활용했던 장소가 바로 회당(會堂)이다. 이곳의 우두머리가 회당장이다. 어느 회당장에게  딸이 하나 있었는데 병으로 위급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각색 병든 자를 고친다는 소문을 들은 회당장 야이로는 병으로 죽어가는 12살짜리 딸의 모습을 보고(막 5:23) 급히 예수님을 찾아 뵙고 발아래 엎드려서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막 5:22-23).

그 부탁을 받으신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으로 가는 도중 회당장의 종으로부터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막 5:35). 사랑하는 딸의 죽음을 전해들은 회당장은 큰 슬픔에 빠졌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회당장을 위로하시면서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다.

소녀의 죽음으로 통곡하는 유족들과 고용되어 의무적으로 통곡하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소녀의 싸늘한 시신 앞에 선 예수님은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저희가 비웃었다”고 하였다(막 5:

출처: 아멘넷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가 있다고 주장하며, 일단의 사람들이‘사도협의회’라는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에 대해서 1세기의 사도들이 과연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나아가서 그 사도들을 불러서 위임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떤 태도를 취하실까?”

한국성경신학회 소속 장로교 신학자들이 피터 와그너로 대변되는 신사도운동 등 다양한 예언운동은 비성경적인 ‘불건전한 신앙운동’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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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한국HIM선교회와 WLI코리아 공동주최 컨퍼런스에서 피터 와그너가 강의를 하고 있는 모습

‘오늘날도 사도가 있다’ 주장하는 것, 가장 심각

지난 2일 서울 신반포중앙교회에서 열린 ‘한국성경신학회 신앙세미나’에서 발제에 나선 이승구 교수(합신대)와 최병규 박사(고신 유사기독교연구소 소장)는 ‘오늘날에도 직통계시가 주어진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비진리성을 한 목소리로 고발했다.

특히 이승구 교수는 예언운동의 문제점을 장로교 곧 개혁파 신학의 입장에서 ‘일반적 문제점’, ‘근원적 문제점’, ‘좀 더 심각한 문제’로 나눠 조목조목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일반적인 문제점으로 △에베소서 4장 11절에 있지도 않은 ‘중보자’를 목사ㆍ교사ㆍ예언자ㆍ사도와 함께 교회의 5대 직분으로 언급하거나 △에베소서 1장17절의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목회자와 소위 예언자에게 제한시키는 등의 ‘결코 성경적이지 않은 성경해석의 자의성’을 꼽았다.

근원적인 문제점으로는 ‘오늘날에도 예언자들이 있어서 하나님의 계시가 직접적으로 주어진다고 주장하는 것’을, 좀 더 심각한 문제로는 ‘초대교회 사도들과 비교해 어느 정도의 차이는 인정하지만 오늘날도 사도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꼽았다.

장로교 신학의 입장에서 이들의 주장은 ‘비성경적’

이 교수는 이어 이들 문제점에 대해 장로교 신학 곧 개혁파 신학의 관점에서 하나하나 반박했다.

성경의 자의적 해석과 관련 이 교수는 “이들은 ‘성경적’이란 말을 사용하지만 실제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성경적이지 못하다”면서 “교회의 직분을 말할 때 성경 본문에 없는 ’중보자‘를 삽입하거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되는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목회자와 소위 예언자들에게 제한시키는 것 등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직통계시가 예언자에게 임한다’는 주장과 관련 이 교수는 “개혁파 신학에서는 오늘날에는 선지자(예언자)가 없고,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성경에 의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며 “그러므로 장로교 신학의 입장에서는 이들의 주장을 비성경적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특히 이 교수는 “이들은 자신들이 말하는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에 대해 ‘이 시대에는 예언의 양상이 많이 변했다’, ‘이 시대의 예언은 조건적이다’라고 말한다”면서 “‘구약시대 참 선지자의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졌지만 이 시대에는 참 선지자의 예언도 꼭 성취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이들의 논의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당신이 선포하신 말씀을 바꾸신다’는 표현이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는 데 과연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사도시대의 교회와 우리 시대의 교회 구별해야

‘오늘날도 사도가 있다’는 주장과 관련 이 교수는 이들이 사도시대와 우리 시대의 구별을 하지 않는 점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이 교수는 “사도시대의 교회는 사도들이 생존해 있던 교회인데 반해 우리 시대는 아니라는 점, 사도시대의 교회는 하나님의 계시가 여전히 주어지던 시대였던 데 반해 우리 시대는 주의 재림 때까지 더 이상 새로운 게시가 없는 시대라는 점, 사도시대의 이적과 기사들은 사도들을 통해 주시는 계시를 확증해 주는 사도적 이적인 데 반해 우리 시대의 이적은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주어진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교수는 “피터 와그너 등은 이런 차이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면서 “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비판에 대해서 자신이 일으키고 있는 성령운동을 훼방하는 ‘집단 종교의 영’으로 규정한 뒤 배후에 마귀의 세력이 있다고 주장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이 교수는 “우리들 시대에 성경의 명확한 가르침에 충실하지 아니한 가르침들이 난무하며 그것이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영적인 어두움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며 안타까움을 피력했다.

 

제휴사 뉴스미션


조엘 오스틴 목사가 워싱턴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몰몬교 지지발언을 해 말썽이 되고 있다.

▲ 오스틴 목사가 몰몬교를 두둔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크리스찬투데이
미국최대급 교회인 레이크우드교회의 담임목회자인 그는 지난 10월 24일 통일교 계열언론인 워싱턴타임스를 상대로 한 인터뷰에서 다양한 이슈를 말하면서 몰몬교를“기독교의 한 형태”로 인정했다.

오스틴은“미국의 신앙이 언제나 드높은 수위임을 본다”면서 “우리의 핵심 메시지는 계절이 바뀐다는 것, 믿을 때 쓴뿌리를 갖고 않고 낙심하지 않으면 밤새 바뀌진 않아도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주장.

오스틴은“나는 몰몬들이 크리스천이라고 믿는다. 그것이 가장 내가 양육받고 자란 그런 가장 순수한 형태의 기독교인지는 몰라도 나는 몰몬들을 안다. 미트람니를 만난 적은 없지만 그는 ‘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다’, ‘그는 나의 구주임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것이 핵심 이슈의 하나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계 칼럼니스트 앨몰러 박사는“성경적인 판단 표준의 결핍이고 신학적 책임의 전적인 포기”라면서 특히 오스틴이 몰몬교를 침례교/감리교/천주교와 대조, “모든게 일치하진 않는다”고 한 것에 대해 정통 삼위교리 형태와 몰몬교를 비교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라고 말했다.

오스틴이 자신은 신학을 하지 않는 점을 강조한데 대해 몰러는 “사실이지만, 신학을 하지 않은설교자는 무수히 많다”며“그러나 그들은 충분히 성경진리를 파악하고 거기 헌신하여 그런 부주의를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몰러는 오스틴의 부주의는“고의적이고 계산된 것” 이라고 단언했다. 오스틴은 지난 2007년에도 팍스뉴스의 크리스월레스 호스트에게“몰몬들도 사실 크리스천”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몰러는 몰몬교는“아주 약간만 성경적/역사적 기독교와 공통된다”며 몰몬교는 유일신이 아닌 다신론으로 출발하며 예수를 성육신하신 말씀이 아닌 들려진 인간으로 볼 뿐이라고 몰몬 입장을 설명했다.

몰러는 또 몰몬교의 핵심은 바로 역사적 기독교가 근본적으로 오류라고 주장하는 것이라며 참 기독교는 조셉 스미스 때까지 존재하지 않았다는 그네들의 주장을 지적했다.

결론에서 몰러는 오스틴이“충분히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그게 바로 기독교 사역자로서 더 큰 비극”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또 몰몬교인들이 윤리적 장점들이 많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그들의 믿음은 역사적 기독교와 같지 않고 구원관도 신약성경 메시지와“너무나 다르다”고 지적했다.

기사제공ⓒ 크리스찬투데이

54 http://cafe.daum.net/yangmooryvillage/1X3Z/1711 

 

  2. 자신을 사도적이고 선지자적인 인물로 주장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여러분의 견해를 바꾸시기 바랍니다. 사도나 선지자가 지금도 존재한다는 것은 케네스 해긴과 피터 와그너와 신디 제이콥스를 위시한 여러 사람들의 책을 통해 이미 증명된 사실입니다. 여러분이 안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지요.

  현재, 피터 와그너, 베니 힌, 후안 까를로스 오르띠즈, 로렌 커닝햄, 빌리 그래함 마저 사도가 지금도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리고 그들 중 어떤 분들은 자신이 사도임을 받아들입니다.

  그렇다면 그분들도 이단인가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기들의 주장만 되풀이하지 말고 책을 폭넓게 읽고 좀 배우십시오. 그리고 이런 엉뚱한 시비는 그만두십시오.

 

 

 

 

 

 

 

누구나 인정하지 않는 자들의 성경해석을 절대적 해석으로 착각하심.

 

 

캐네스해긴--> 누구?

피터와그너--> 교회의 세속화를 가속화시킨 문제의 주범이고...

신디제이콥스--> 아~ 이미 미국에서 물의를 일으킨 인물~!

베니힌--> 원래 이단이고..

후안까를로스오르띠즈--> 아.. 제자입니까?란 책 펴낸분~

그런데 로버트슐러가 수정교회 목사야~ 후안까를로스가 수정교회 목사야?

로렌커닝햄--> 아.. 가짜 회심자 양성시키는데 한몫한 그 문제 많은 예수전도단 설립자~!

빌리그래함--> 원래 믿음이 없던 사람이고...(인터넷 동영상에 자기 믿음 없슈~라고 선전하며 다니는 분..)

 

참고로... 지금보다 더 영적으로 뛰어나셨던 신앙인물들 중에

예수님의 직계 제자들 외에는 자신들을 자칭 사도라 공개적으로

부르는 자들은 없었음..

 

웨슬레가 자신을 사도라 했는가?

조지휫필드가 자신을 사도라 했는가?

스펄쳔이 자신을 사도라 했는가?

칼빈이 자신을 사도라 했는가?

죠지뮬러가 자신을 사도라 했는가?

어거스틴이 자신을 사도라 했는가?

스테반차녹이 자신을 사도라 했는가?

로이드존스가 자신을 사도라 했는가?

청교도들이 자신을 사도라 했는가?

대부흥회에 있었던 자들이 자신을 사도라 했는가?

 

만약 그런 자료 발견하거든 좀 알려주길 바란다.

나도 좀 읽어보게...

 

출처: 양무리마을 글쓴 이: 바로미님


뉴에이지(NewAge)음악가

 

 

지금은 우리에게 알려진 뉴에지음악가들은 정말 많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져있고 인정받는 음악가들은,

조지 윈스턴, 케빈컨, 류이치 사카모토, 유키구라모토, 앙드레 가뇽, 이사오 사사키를
들 수 있겠네요. 음.. 국내 음악가로는 김광민이 있죠. 그 밖에 그룹 S.E.N.S 나,
야니, 에냐, 이루마등.. 도 많이 알려지고 친숙한 뉴에이지 음악가라 할 수 있겠네요.



음악가들의 자세한 설명을 하면..


▶ 조지 윈스턴

조지 윈스턴은 1949년에 태어나 몬타나, 미시시피, 플로리다 등지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어린시절 팝 연주곡들에 심취하여 Floyd Cramer, The Ventures, Booker T & the MG's, King Curtis등의 연주를 들었다. 또한 Ray Charles, Sam Cooke등의 리듬 앤 블루스 음악과도 친숙했는데 라디오 뉴스 방송 직전 불과 30초 동안 흘러 나오는 짧은 연주곡들을 듣기 위해 하루종일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블루스와 록, R&B, 그리고 재즈에서 감명을 받은 조지 윈스턴은 1967년 일렉트릭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1년, 전설적인 스트라이드(Stride) 피아노의 대가 토마스 "팻츠" 월러(Thomas 'Fats' Waller)와 테디 윌슨(Teddy Wilson)의 음반을 들은 후 매료되어 어쿠스틱 피아노로 전향하였는데, 그 시기에는 작곡과 편곡을 통해 팝 연주곡들을 자신만의 색채를 입혀 솔로 피아노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여 1972년 그의 첫 피아노 솔로 앨범 "발라드와 블루스 - Ballads and Blues - 1972"를 내놓았다.

현재 그가 작업하는 작품들의 2/3 정도가 리듬 앤 블루스 스탠다드 곡들이며 1/3은 멜로디 성향의 음악이 그 주를 이루는데, 전원적 포크 음악(Rural Folk Piano)으로 불리워지는 이 멜로디 음악들은 구체적인 테마를 갖고 있으며 그가 이제까지 선보인 앨범들의 주된 성향을 이루고 있다.

1980년부터 조지 윈스턴은 Autumn(1980), Winter into Spring(1982), December(1982), Summer(1991), Forest(1994), Linus & Lucy - The Music of Vince Guaraldi(1996) 등으로 연결되는 솔로 피아노 음반을 발매했다. Linus & Lucy 앨범에는 Cast Your Fate to the Wind와 Peanuts TV 시리즈의 삽입곡들이 담겨 있어 고인이 된 Vince Guaraldi를 추모하고 있으며, 최근작 Plains (1999)는 그가 자란 몬타나의 대초원을 주제로 하고 있다. 또한 Sadako and the Thousand Paper Cranes에서는 솔로 기타 사운드트랙을, Pumpkin Circle에서는 피아노, 기타, 하모니카 사운드트랙을 맡기도 했다. 최근 조지 윈스턴은 리듬 앤 블루스, 스탠다드, 느린 춤곡들이 포함된 DANCE(Vol. 1) 등의 피아노 솔로 앨범들을 계속 준비하고 있으며, 위대한 뉴올리언즈 피아니스트 Henry Butler, 고인이 된 James Booker와 Professor Longhair의 음악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또한, 솔로 기타 연주에도 심취하여 현재 Dancing Cat Records 레이블로 Hawaiian slack key guitar 대가들의 음반을 지속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슬랙 키는 손가락으로 뜯는 하와이의 독특하며 아름다운 기타 연주 주법으로, 1800년경에 시작된 이 연주전통은 스틸기타보다 60여년 앞섰다.



▶ 캐빈 컨

미국의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케빈은 18개월 때에 이미 Silent night을 연주하였고 불과 두 살 때 20곡의 캐롤송을 양손을 이용해서 칠 수 있는 음악 신동이었다. 케빈은 네 살 때부터 가정 교사와 함께 음악 공부를 시작했고 열네 살에 자신이 창설 멤버였던 청소년 연주 모임인 Well Tempered Clavichord와 함께 정식 데뷔 무대를 가졌다. 그는 십대 때의 장래 희망이 무엇이었는지 질문받게 되면 시인이 되고도 싶었지만 음악을 만드는 즐거움이 그것을 이겨냈다고 말한다.





▶ 류이치 사카모토

사카모토(Ryuichi Sakamoto)일본식으로는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는 1952년 1월 17일 일본의 나가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비틀즈 에서부터 베토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이러한 취향은 현재의 그의 음악을 규정짓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열한 살 되던 해인 1963년 동경 예술대학의 마츠모토 교수에게서 클래식 작곡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 후 1971년 그는 동경예대에 입학해 작곡을 전공해 학사 학위를 받고 이어 전자 음악과 민속 음악 작곡으로 석사 학위까지 따내게 된다.

1977년, 그는 마침내 일본 정상의 뮤지션들-록에서 재즈, 클래식까지 망라한-과 함께 작곡가, 편곡자, 스튜디오세션 등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고 체계적으로 쌓은 음악 지식을 바탕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작자 겸 편곡자, 키보드 주자로 뛰어난 활동을 보여주게 된다. 1978년에는 첫 솔로 앨범인 Thousand knives를 발표하고 이어 하루오미 호소노, 유키히로 다카하시 등과 함께 3인조 테크노 그룹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MO:Yellow Magic Orchestra)를 결성하는데 이들의 2집 앨범은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는 성공을 거두고 이어 월드 투어까지 하는 등 인기를 누렸고 크라프트베르크와 함께 테크노 팝의 선구자로 인정받게 된다.

그 당시 사카모토의 관심사는 재즈, 보사노바, 모던 클래식 등 실로 다양한 분야에 닿아 있었는데 이러한 그의 취향은 그 후의 음악 세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5년여 동안 수많은 앨범을 내놓으며 왕성한 활동을 펼친 YMO는 팝 음악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는데 사카모토는 솔로 활동을 위해 1983년 그룹을 탈퇴하고 - 이 그룹은 1993년에 재결성 앨범 Technodon을 발매한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를 시작으로 영화 음악 작곡가와 월드 뮤직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선보이기 시작한다. 이 당시 그는 월드 뮤직 아티스트인 유수 운두르(Youssou N'dour)를 비롯해 이기 팝, 데이빗 보위, 데이빗 번등과 함께 음악을 하기도 했으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식 음악을 만들고 직접 지휘까지 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가 명성을 날리게 된 계기는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마지막 황제>에 가담한 것이었다. 배우로도 참여한 이 작품에서 영화 음악을 맡은 그는 1988년에 오스카상, 그래미 상, 골든 글로브 상 등을 석권하며 기염을 토한다. 영화 음악가로서의 그의 위치는 매우 확고하다. 이미 위에 언급한 베르톨루치 감독과 <마지막 황제>와 <리틀 부다>에서 호흡을 맞췄는가 하면 올리버스톤(Oliver stone)과는 에서, 페드로 알모도바 (Pedro Almodovar)와는 에서 각각 함께 작업을 하는 등 유명 영화 감독들이 그를 초빙해 음악을 맡길 정도로 지명도를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영화 음악 작곡가로서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사카모토이지만 그의 욕심은 한이 없어 보인다. 흔히 '작곡가'들, 특히 클래식이나 인스트루멘틀 작곡가들이 지닌 이미지와는 전혀 맞지 않는 분야에서도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영화 음악 작곡가 이외에 편곡, 프로듀서 등 음악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영화 에서 역시 뮤지션인 데이빗 보위와 함께 출연했고, <마지막 황제>에도 얼굴을 내미는 등 영화 배우로서의 활동을 펼쳤다. 또한 마돈나의 뮤직 비디오 에도 출연했다. 그리고 1982년엔 철학자인 쇼조 오모리와 함께 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또한 유명 디자이너의 패션 쇼에 모델로 나서는가 하면 유명 잡지의 남성복 모델로 지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어느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 멀티 엔터테이너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1985년엔 스쿠바 과학 박람회에서 멀티 미디어 쇼를 선보이는 실험적 시도도 해 보이고 있다. 작품으로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마지막 황제>,<끝없는 사랑>,<리틀 부다>,<하이힐> <폭풍의 언덕>, <스네이크 아이>,<철도원>등이 있다.






▶ 유키구라모토

1951년 사이타마현 우라와시에서 태어난 유키 구라모토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였다. 학창시절에는 라흐마니노프와 그리그 등의 피아노 협주곡에 심취하여, 아마추어 교향악단에서 독주자로 활동하는 등 피아니스트로서 발군의 솜씨를 보였다.

학업에도 열중하여 일본의 명문 도쿄공업대학교 이공대에 진학, 응용물리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음악가와 학자의 선택의 기로에서 그는 프로뮤지션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피아노 연주는 물론 클래식 작곡과 편곡 그리고 팝음악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연구와 학습을 하였다. 이후 프로 뮤지션으로서 클래식에서 대중음악, 가요분야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명음악가, 탤런트와의 공연, 레코딩 활동을 통해 경력을 쌓아 오늘에 이르렀다.

구라모토는 피아노 솔로는 물론, 오케스트라 또는 스트링 앙상블과 협연할 때도 화법이나 대위법이 완벽에 가깝다. 지난 1991년 8월에 발매된 제 7집 앨범 '리파인먼트(Refinement)'에서는 영국의 세계적인 교향악단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와도 조인트 레코딩을 하였다. 당시 그가 작곡한 곡들이 매우 뛰어나서 명 지휘자들도 그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지고 있다.

구라모토의 이름은 홍콩을 경유하여 동남아시아에도 파급되고 있으며, 타입은 다르지만 많은 이들이 '일본의 리차드 클라이더만'이라 부르고 있다. 최근에는 케이블 텔레비전이나 레이저 디스크 등에서의 영상음악, 나아가서는 일본항공 등 항공회사의 '인 플라이트 뮤직(In-Flight Music)'으로서도 각광받는 등, 그의 명성은 갈수록 빛을 발하고 있다. 특히 내한 공연 및 한국 뮤지션과의 조인트 레코딩 등이 기획단계에 있다는 소식도 들려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 앙드레 가뇽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려도 좋을 만큼 진한 서정성을 표출해내고 있는 앙드레 가뇽은 1942년 캐나다 퀘벡주 선파콤 태생으로 4살 때부터 천재성을 드러냈고 이를 발견한 어머니의 교육열에 따라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여섯 살 때 작곡을 시작하고 열살 때 리사이틀을 열기도 하며 천재성을 발휘하던 그는 몬트리올 음악원(Montreal Conservatoir de Music)에서 공부한 후 퀘벡주 장학금을 받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는데 이 때 유명한 조르주 무스타키와 공연을 하기도 했고 섹스 심벌 BB(브리지트 바르도)가 주연한 로제 바딤 감독 영화에서 처음 영화 음악을 담당하는 등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처음엔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이 당시부터 팝과의 크로스오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향후의 그의 음악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1967년 캐나다로 돌아온 그는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데뷔를 하게 되며 1970년 오사카 박람회 참석차 일본 땅을 밟으며 그의 오랜 일본과의 인연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캐나다의 그래미로 불리는 주노상을 비롯해 펠릭스 어워즈(Felix Awards)에서도 수상을 하는 등 인기 피아니스트로 자리하고 있지만 일본에서의 인기도 대단하다. 이미 1989년에 일본 투어를 가진 바도 있고 일본 감독의 영화에 영화음악을 제공해 주기도 했으며 1996년에는 후지 TV의 AGE란 프로그램에서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또 다시 일본 콘서트를 가졌고 1997년 여름엔 하코네의 미술관에서 야외 콘서트를 이틀간에 걸쳐 성황리에 개최했다. 또한 1998년엔 후지 TV 드라마 <달콤한 결혼>의 음악을 담당했으며 가을에 일본 내 10개 도시 콘서트 투어를 개최했다. 날로 높아가는 인기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MONOLOGUE 앨범의 성공 이후 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데 이에 따라 당연한 수순으로 그의 이전 앨범이 발매된다. 바로 1989년 발매되었던 앨범 PRESQUE BLUE다. 이 앨범은 그의 첫 솔로 피아노 레코딩으로 앨범의 전 수록곡이 다른 악기의 도움 없이 피아노만으로 연주되고 있다.





▶ 이사오 사사키

최근에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뮤지션들이 늘어나면서 특정 장르에 속하지 않은 음악들이 우리 주변에 늘어나고 있다.이번에 새 음반을 발표한 피아니스트 '이사오 사사키'의 음악은 클래식과 재즈에 대한 경력을 가지고 두 장르의 요소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어쿠스틱 피아노 또는 뉴에이지 뮤직이라 불리우는 그의 음악은 한 장르에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또는 얼후(二胡, 중국악기)에 베이스, 드럼, 퍼커션을 적절히 섞어서 이 앨범을 완성하였다.

'이사오 사사키'의 피아노는 우선 음색 그 자체가 아름답다.

클래식 음악을 본업으로 하고 있는 필자의 견해일지 모르나 그의 피아노는 강약에 대한 뉘앙스의 섬세한 표현에 신경 쓴 점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는 무모하게 건반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섬세한 터치로 각 곡을 연주하였다. 여기에서는 서정미의 강조와 더불어 인간적인 깊은 따스함이 느껴진다. 피아노라는 악기는 현악기, 관악기처럼 자신이 음을 만들 필요가 없이 건반을 두드리면 누구나 음을 낼 수 있으므로 피아노 터치의 아름다움 그 자체가 연주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사오 사사키'처럼 피아노의 터치가 섬세하게 표현되면 음악의 매력이 증가함과 동시에 피아노를 노래하게 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한편, 이번 앨범은 거의 전부가 '이사오 사사키'의 오리지널 곡으로서 그의 작곡에 대한 재능이 발휘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멜로디컬한 매력이 느껴짐과 동시에 각 곡의 특징이 잘 정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스마트한 무드를 표현하고 있지만 곡에 따라서는 도회적인 세련된 분위기가 강조되기도 하면서 적절한 변화를 이루고 있다. 편곡 역시 '이사오 사사키'가 담당하고 있는 데, 그의 센스 있는 편곡에는 세련된 감성과 피아노의 음 그 자체에 대한 미적 감각이 충분히 표현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앨범에서는 '이사오 사사키'의 음악을 돋보이게 하는 바이올린의 연주가 일품이다.

바이올린, 일렉트릭 바이올린, 얼후을 담당하고 있는 '시노자키'는 클래식의 명문으로 알려져 있는 동명학원을 거쳐서 스튜디오 뮤지션으로 전향한 연주자로서 사사키와는 이 앨범 이전부터 함께 많은 활동을 해 왔다. '이사오 사사키' 자신도 세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한 경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작곡에 있어 바이올린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잘 살리고 있으며, 연주 또한 '시노자키'의 바이올린에 호흡과 발란스를 맞출 수 있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클래식의 실내악적인 감각이 플러스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 '이사오 사사키'의 앨범을 듣고 받은 신선한 인상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았지만,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들어도 그의 음악에는 좋은 의미로서의 BGM으로 자연에 몰입하는 분위기가 있다.

예를 들면 이 앨범 중 "Princess of flowers"는 楠田枝里子가 출연한 花王의 TV-CM에 사용되어 BGM으로서의 효과를 발휘하였다. 몰입하지 않고 들어도 잊지 못할 인상을 남기는 매력은 그가 지닌 독특한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이사오 사사키'의 음악은 자연적인 분위기에 더하여 듣는 사람에 따라 - 예를 들면 도시의 조용한 카페든지, 넓은 바다의 어떤 장면 - 곡에 따라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기쁨을 준다. 장르에 상관없이 광범위한 포용력과 듣는 사람의 감성에 부드럽게 깊게 호소하는 매력을 겸비하고 있는 '이사오 사사키'의 음악은 피아노를 좋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폭 넓게 팬 층을 개척하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이사오 사사키'의 약력을 소개해 보겠다.

1953년 북해도에서 태어나서 세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으로 기타, 플룻, 오르간 등의 악기를 연주하였으며, 19세가 되어 재즈 피아니스트로 전향하였다.

그 후 안스쿨을 거쳐 프리랜서 피아니스트로서 활동을 하던 중 1978년 뉴욕으로 가서 '스즈키', '밥 모제스' 의 레코딩에 참여했다. 귀국 후 오리지날 작품을 중심으로 피아노 솔로 앨범 『Muy Bien』을 발표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두 번째 앨범 『Wind Drive』를 비롯하여 『Serenade』, 『Stone』, 『Moon & Wave』, 『Star & Wave』, 『MALLORCA』 등을 꾸준히 발표함과 동시에 여러 도시에서 Concert를 가져 호평을 받았다. 재즈 피아니스트이면서 한 때는 Classic을 지향한 그의 피아노는 아주 섬세한 터치로 부드러움과 따스함이 느껴져 일본의 죠지 윈스턴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SUZUKI BAND", "YAS-KAZ", "야마모토", "시노자키" 등의 라이브 콘서트와 레코딩에 피아니스트로서 참가하였고 TV 드라마, 영화, 광고 음악 제작 등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 김 광 민

960년 서울에서 출생한 김광민은 한때 스튜디오 뮤지션 키보디스트로 활동하였으며, 김민기, 양희은, 조동진등 의식있는 가수들의 연주 활동에도 많은 참여를 하였다. 그러던 중 음악적인 번뇌와 고통 속에서 삶의 한계를 느끼던 그는 1986년 1월 도미를 결심하고, 고교시절 이미 피아노 협주곡집을 작곡한 실력과 끈질긴 음악에의 집념으로 명문 버클리 음대를 졸업했다.

보스톤의 뉴 잉글랜드 음악원 (New England Conservatory)에서 재즈와 클래식을 배우며 음악의 철학에 깊이 빠진다. N.E.C 재학시절 데뷔앨범 를 발표한 그는 세계 시장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고급 수준의 연주곡이라는 찬사 속 , , 등으로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특히 는 평소 가깝게 지내던 가수 유재하의 죽음을 애도하며 만든 곡으로 그의 순수한 음악적 감성을 느낄 수 있으며, 피아노가 가지고 있는 효과를 최대한 살린 연주 앨범으로 평가받았다.

또한 94년 2월 김광민은 , , 등이 수록된 두 번째 앨범 을 발표, 더욱 성숙해진 그의 변화무쌍한 스케일과 화려한 리듬을 들을 수 있었다. MBC 일요예술무대 재즈 교실 코너를 통해 일반 대중들에게 처음으로 소개된 그는 고급 대중문화에 목말라있던 시청자들에게 시원한 청량제가 되었으며, 전도 유망한 젊은 재즈 피아니스트라는 좋은 반응을 계기로 MBC일요예술무대 프로그램 진행을 맡게 되었다.(현재 수요예술무대를 이현우와 함께 공동 진행 중이며,간간히 그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지난 99년 9월에는 '보내지 못한 편지'라는 이름으로 6년만의 새 앨범이 발표되었다. 타이틀 '보내지 못한 편지'와 '지금은 우리가 멀리 있을지라도', '날 수만 있다면' 등, 피아노 소품들과, 3인조 밴드곡들이 수록된 이번 앨범을 통해 김광민에게서만 느낄수 있는 따뜻한 서정과 기분좋은 만남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쟝르에 구애받지 않고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고 있는 김광민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의 음악애호가에게는 특별한 선물과도 같은 존재이다.


▶ 이루마
우선 우리나라의 이루마 님

지금 공연중이십니다.

이루마 님은 뉴에이지 대신 세미클래식이라고 하셨는데

우리나라에선 뉴에이지라고 하죠-_-

CF에도 이루마의 음악이 많이 나오고 있고

지큐브 광고에도 출연하셨죠.

영화 오아시스 에도 참여하셨고

애니메이션 강아지똥의 음악을 맡아서

노래도 부르시고 하셨죠.

그리고 겨울연가에도

편곡하신 'When the love fall' 이라는 음악이 나옵니다.

들으면 아실거에요.

그리고 조지윈스턴,앙드레가뇽,S.E.N.S,시크릿가든,

유키구라모토,김광민,류이치사카모토 등이 있습니다

위의 글은 뉴에이지 팬이 적은 것이므로 좋은 평가를 했네요,

제 의도는 뉴에이지 음악가들을 알려서 그들의 음악을 경계하고 자녀들에게

그들의 음악을 듣지도 부르지도 연주하지도 않게 하기 위한 것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요즘에는 CCM가운데 뉴에이지 음악이 있으므로 잘 분별해서 사용해야합니다!

주님이라는 가사만 들어 갔다고 찬양으로 잘못 알고 부르는 청소년들이 많거든요!

가장 좋은 방법은 세상 노래를 부르지 않는거죠!

성도들 중에도 노래방이나 모임 때 가요에 심취하는 경우가 있는데

교육에 힘써야할 것 같습니다!

찬송가와 성가곡이 그렇게 많은데 말이죠!

교회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도움 되고자 올렸습니다!

주님만을 높이는 찬양에 힘씁시다!! 

 


뉴 에이지 운동은 사탄의 새로운 옷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이다. 사람들은 서로의 행복을 위하� 함께 모여 살게 되었는데 이러한 결합체를 '사회(社會)'라고 부르며, 사회가 더 발전한 것이 곧 '국가(國家)'이다. 사회는 크게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것은 '문화(文化)'와 '문명(文明)'이다. '문화'는 사회의 정신적인 영역을 말하며, '문명'은 사회의 물질적인 영역을 가리킨다. 문명은 돌이나 불을 사용했던 원시 사회로부터 컴퓨터와 인공위성을 사용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기술적이며, 물질적인 발전을 말한다.

그러나 '문화'는 그 사회의 정신적인 상태의 표현으로서 전통적인 풍속과 예술, 음악, 시, 춤, 문학, 건축, 철학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즉, 그 사회의 구성원들의 정신세계에 담겨진 중심 내용의 표현이라 하겠다. 어느 한 사회의 문화를 보면 그 사람들의 정신영역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는 인간들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진다. 가치관은 인생관, 세계관, 국가관, 가족관에 따라 형성되는데, 이렇게 형성된 가치관은 종교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종교(宗敎)'는 신(神)과 인간과의 관계를 말하는데 그 사회가 갖고 있는 종교에 따라 가치관이 형성되며, 그 가치관은 문화를 낳고, 문화는 문명을 지배하게 된다. 따라서 어떤 신(神)과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인 행복이나 불행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인간은 모두 종교인이다. 세계의 대표적인 종교로는 힌두교의 다신론으로부터 불교의 부처신과 유교의 조상신 그리고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의 유일신이 있다. 여기에 수없이 많은 미신과 같은 무속신앙까지 합치면 종교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혹, "신(神)이 없다"고 생각하는 무신론자(無神論者)가 있다면, 그는 자기 스스로 자신이 신(神)의 자리에 앉아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며, 그가 갖고 있는 가치관이나 문화의 배경은 이미 그의 조상이나 여러 사람의 종교에 영향을 받은 또 하나의 잡(雜) 종교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모든 종교는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그것은 조물주(造物主) 즉,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종교와 피조물(被造物)을 신격화(神格化)한 종교(사실상 이것은 피조물에 대한 숭배로서 종교라고 할 수 없음)이다. '뉴에이지(New Age)'란 영어로 '새 시대'란 뜻이다. 이것은 새로운 신흥 종교 운동으로서 겉으로는 세계의 평화를 외치며 모든 종교의 통합(이는 피조물 숭배종교의 결합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종교적 쿠데타임)을 주장하고 있는데, 뉴에이지는 현대판 무신론 사상으로써, "나도 하나님, 너도 하나님, 우리는 모두 하나님이다"라고 인간 스스로를 신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그들의 신(神)은 창조주 하나님을 대적하는 타락한 천사인 사탄으로서 사탄의 지배를 받아 사탄의 가치관을 형성하여 사탄의 타락한 문화를 확산시킴으로써 문명을 지배하고 결국에는 그의 목적인 인간과 가정의 행복, 사회, 국가, 세계 모든 것을 파괴시키는 것이다.

사탄은 지금 '뉴에이지'라는 새로운 옷을 입고 어느새 우리 곁에 다정히 다가와 미소짓고 앉아있다. 심지어 교회당 안에 까지도……! 이제 그의 가증된 옷을 벗겨보자!
 
뉴 에이지 운동의 역사 /배경과 목적
본래 뉴에이지는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존재 해 왔다 그러나 여기에 새(new)라는 의미를 붙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이운동의 철학적 종교적인 면에 대한 별다른 성찰이 없이 몇 가지 흥미있는 또 기괴한 모양(형태)에 촛점을 맞추기 시작한 뉴스 미디아의 영향이 크다 할 수 있다.
 
1875년 "블라바스키(helen petrovna Blavatsky)"가 주도 했던 "신자학 협회(Theosophical Society)의 설립과 더불어 시작되었다.`헬레나 페트로브나`는 1830년 초엽에 소련에서 출생했다.그녀는 10대의 나이애 군 장성인 블라바스키와 결혼한다 그러나 2개월후 남편을 버리고 미국,인도등세계 곳곳을 25년간 순례길로 시작 이를 계기로 여러 종교철학을 경험하고 배우며 자신을 `존 왕`이라고 자칭하며 신령의 안내자가 되었다
 1875년 미국 뉴욕에 신지학 협회를 창설 1891년 죽을 때 까지 이 협회의 지도자로 일하며 후에 이 협회가 본격적인 뉴 에이지운동의 선구자적인 역활을 하였다. 이 조그만한 그룹이 뉴에이지의 기본적 신조를 갖고 100년정도 이상의 활동을 한 후 지금은 10,000이상의 조직들로 구성된 네트웍망으로 번창하였다.
 
   대표적 조직:그린피스(Gree Peace)
                     Zero Population Growth
                     Amnesty Lnternational
 
뉴에이지운동의 배경과 목적
신지학협회 시작 시발점이고 그 어떤 중심적인 기구나 본부가 존재하지 않는게 특징이다.그 자체가 사고와 생활의 새로운 양식 기괴한 모양에 흥미를 둔 뉴스미디어의 영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에이지 운동은 음악,영화,출판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잠식하고 있다 코메디언들에게는 익살스런 표적으로 추종자들에겐 인간문제 대한 진정한 해답으로 그리고 기업인들에게는 경제적 성공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뉴에이지운동은 1875년 '헬레나 페트로바 블래바츠키(Helena Petrova Blavatsky)'라는 러시아 출신의 여성이 미국에서 여러 영매주의자들과 함께 신지학(神知學- 또는 접신학)협회를 창설함으로 시작되었다. 신지(神知)란 신(神)을 아는 지식이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존재를 아는 지식이 아닌 '영계(靈界) 즉 귀신(鬼神)의 세계를 아는 지식'을 말한다. 그녀는 귀신을 받아 영매(靈媒)와 접신(接神)을 즐겼으며, 또한 프리섹스주의자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하나님은 모든 종교 안에서 똑같이 발견될 수 있으며 모든 종교는 서로간의 다른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진리를 갖고있다"고 발표하고 모든 종교의 통합을 외쳤다.

이 협회의 3대 회장인 영국 출신의 여성 '엘리스 베리(Alice Bailey)'는 사탄의 지시로 이 종교통합의 실질적인 기초와 운동의 이론을 체계화하여 은밀히 준비해 오다가 드디어 1975년 마릴린 퍼거슨(Marylin Ferguson)이 그녀의 책 '물병자리 음모'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전 세계에 공개하게 되었다.

뉴에이지운동은 인류의 인간성 회복과 참된 평화, 참된 행복이 실현되는 새로운 시대를 이룩하려는 범 세계적인 종교운동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신세계질서(New World Order), 신세계주의(New Globalism), 신세대(New Age), 물병좌시대, 어퀘리언(의식)혁명, 새정신(New Mind), 새의식, 신사고(新思考), 신 초월주의, 마인드 콘트롤 등과 같이 비슷한 용어를 사용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에 깊이 파고들고 있다.

여기에 이 운동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6단계 활동내용을 소개한다.
1단계: 평화, 핵군축, 환경보존운동, 여권신장운동, 노동운동, 낙태 및 동성애 옹호운동
2단계: 낙관적인 휴머니즘(인본주의), 지상낙원, 무신론적 과학주의
3단계: 건강 및 정신운동, 심령술(이완요법, 식이요법, 마인드 콘트롤, 적극적 사고방식, 최면술, 초능력, 명상, 요가, 기(氣), 접신 등)
4단계: 서적출판 및 보급(심령과학, 공상과학 및 UFO서적)
5단계: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종교 등 전 분야에서의 영향력 행사
6단계: '단일세계경제' 체제 확립으로 '단일세계정부'를 탄생 시킨후, '단일세계종교'라는 종교통합의 목적달성 (CANA Report p.131참조)

이상에서 밝힌 바와 같이 뉴에이지 운동의 목적은 '종교 통합'에 있다. 그렇다면 사탄은 왜 '종교 통합'을 그의 마지막 전략으로 사용하는 것일까? 사탄의 진짜 속셈은 무엇일까?
사탄의 목적은 하나님과 그 분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과의 사랑의 관계를 단절시킴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을 통한 하나님의 인류사업경륜을 무력화시키는 한편, 하나님을 섬기는 인간의 경배와 찬양을 가로채 자신이 신(神)으로 군림하고자함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세계종교의 통합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래서 세계의 단일정부와 단일 경제체제가 필요해 진 것이다.

뉴 에이지 운동은 혼합종교, 잡탕종교인 다원주의
인간은 종교적인 동물이다. 인간은 '종교'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이전부터 인간 본능에 입각하여 나름대로의 신앙의 대상을 갖고 있었고, 많은 풍속에는 그 신앙 행위를 담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미개사회의 원시신앙 또는 민간신앙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철학과 과학이 발달하여 합리적이고 체계적이며 논리적인 현대인이라 할지라도 그 마음속에 있는 종교적인 본능을 감출 수는 없다.

현대의 종교들은 그래도 나름대로의 이론을 갖고 도(道)를 전하고 있으나, 원시종교나 무속(巫俗)신앙은 그 이론도 정립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첨단과학을 자랑하는 현대인들 마음속에 뿌리 박혀 있음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한 예로 지난 3월 13일 무궁화 2호 위성발사라는 최첨단 과학정보 시대의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인 날, 한국의 대표적인 과학자들이 무당종교의 대표적인 행사인 고사(告祀)를 지냈다는 국가적 수치를 들어내고 말았다고 한다. 그것도 미국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외국의 여러 과학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 뿐아니다. 국내 영상산업의 몇 대표들은 '아마겟돈'이라는 만화영화를 제작하면서 컴퓨터 모니터 스크린에 3차원 입체영상의 가상현실(Virtual Reality) 돼지머리를 그려놓고 제사를 지냈다고 하니 샤머니즘이 과학을 지배하고 있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샤만(Shaman)'이란 퉁구스 말로 '무당'이므로 샤머니즘은 무당종교이다. 컴퓨터의 '토정비결'이나 '그 날의 운수' 등 점(占)치는 것을 즐기는 오늘날 현대인들의 종교행위들을 볼 때 인간은 종교적인 동물임을 더욱 실감케 한다. 종교의 대상은 신(神)이다. 하나님은 인류의 창조주이며 유일한 신(神)으로 자신만을 섬기도록 인간을 만드셨으나 인간은 어이없게도 피조물들을 신격화(神格化)하여 종교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타락한 천사인 사탄숭배를 비롯하여 부처를 신격화한 불교, 죽은 조상들을 신격화한 유교, 산신령, 고목나무귀신, 물귀신, 삼신, 똥통귀신 그리고 자신(自神)까지, 그야말로 참 신(神)을 찾지 못한 인간들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종교적인 동물이다.

사탄은 이 종교를 도구로 삼아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 '뉴에이지'는 사탄이 제작한 새로운 종교운동으로서 모든 종교를 하나로 통합하는 '혼합종교' 또는 '잡탕종교'이다. 사탄은 6천년을 거쳐 원시종교로부터 현대종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종교로 인간을 미혹하여 오다가 그 동안 분산된 그의 세력을 하나로 뭉쳐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이 종교를 만들게 된 것이다. 우리는 '뉴에이지'가 사탄 최후의 마지막 술책임을 알아야겠다.


도서출판 "말씀과 만남" 사가 편집한 본인의(조창헌 목사) 글중 1997년 "종교전쟁"으로 출판된 책의 일부분을 그대로 실었습니다. 

도움이 되고자 전에 제가 겨자씨란 아이디로 올린 칼융 관련 댓글을 다시 올립니다

기독교에 심리학적 신비주의 출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침
칼융은 우리의 집단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ness)안에는 종교적인 그리고 신비한 요소를 품고있다고했습니다 그래서 뉴에이지 나 사도교의 신비주의적인 가르침에 어느정도 과학적으로 설명할수있게한 요소를 가미시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데 칼융의 집단무의식 이론이 일조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외에 원형 (Archetype), 그림자 (Shadow), 아니마 (Anima), 아니무스 (Animus) 등 반기독교적인 개념들을 세상에 소개하고 또 카톨릭의 신비주의에도 흥미를 느껴서 이그나셔스 로욜라에 대한 세미나도 주관하는등 우리의 포커스를 주님에게서 우리자신에게 돌리게했습니다.
융의 제자들을 제일 큰 융의 업적중에 하나가 비쥬얼라이제이션 (visualization, active imagination) 이라고 합니다. 이후부터는 짦게 비쥬얼이라고 하겠습니다. 비쥬얼을 하면 집단무의식안에 있는 내용을 알수있다고 하네요 --;;  융자신이 프로이드와 결별후 7년동안 비쥬얼로 자기자신의 무의식을 여행했다고 하며 그래서 Red Book 이란 책도 출판했다고하는데 혹자는 그가 7년동안 정신병을 앓았을수도 있다고했습니다. 그는 무의식안에 있는 이미지는 생명을 갔고 있고 그 이미지를 “가이드” 라고 명명하고 그자신도 “빌레몬 (Philemon)” 이란 영적가이드가 자기자신에게 더한 지혜를 주었다고합니다.

내적치유를 주장하는 사역자들은 예수님을 과거의 죄, 고통, 실망등에 비주얼로 오시게해서 실제로 치유가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 --;; 유명한 내적치유자 Rita Bennett 은 실제로 한 여자가 비주얼로 통해서 죄로부터 사함 (구원) 받았다고 합니다 . 그럼 복음말씀은 어떻게 되는지….

융의 비쥬얼라이제이션은 교회에 심리학적 신비주의가 “내적치유”라는 이름으로 교회에 침투할수있는 도구가 되었습니다. 현재 많은 목사, 평신도 사역자등이 비쥬얼을 끌어드리고있는것은 누구나 아는 사항일것입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역자들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는 분들이 많고 또 안다해도 그 시초를 감추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지금 한인교회에서 이름을 날리는 리처드 포스터, 달라스 윌라드, 헨리 나웬 우리가 즐겨부르는 복음성가를 많이 만든 빈야드 (Vineyard church)의 잔 윔버 등이 다 이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포스터는 비주얼을 통해서 실체 주님을 직접 만날수있다고 가르칩니다.

오순절 성경 대학의 마크 벌클러 교수는 몰튼 켈시이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향심기도를 통한 비쥬얼에서 주님과 대화하고 말씀을 듣고 주님에게서 지혜를 얻을수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또 내적치유의 관한 많은 저서를 낸 몰튼 켈시, 쟌 샌포드 등이 융사상에 숭배자였던 사실도 기억하셔야합니다.
로마서 6장에 6절에서 8절 말씀에 보면 주님은 비주얼이 아닌 향심/관상 기도가 아닌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마틴루터는 말씀을 통해서 오지않는 영은 사탄이라고 했습니다. 하물며 말씀을 통하지 않고 직접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는 형제자매들의 “예수” 를 어떻게 생각해야할까요?

비쥬얼 수호자들은 뉴에이지의 비쥬얼을 사탄의 것이라고하지만 사탄은 교활하여 우리가 말씀으로 무장하고있지않으면 믿는자라도 진부를 가리기 어렵게 할수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내적치유” 또는 심리학적 신비주의는 현재 모든 교단에 침투했고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있습니다. 그리고 근래 기름에 불붓듯이 퍼지는 목적의 삶, 긍정의 힘 같은 운동의 기본이 되고있습니다.

칼융은 연금술, 점성술, 심령술에 심취했던 사람이고 그의 하나님은 말씀의 하나님이 아닌 세상적인 조물주였던겄입니다. 그리고 불교처럼 하나님과 천국은 우리의 마음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신영지주의자였으면 뉴에이지의 아버지라고도 불렸습니다.

위에 글들은 옛날에 제가 대학에서 택했던 심리학, 인터넷 상에 글들을 짜깁기 ^^;; 해서 썼습니다.

저는 지금 기도하는 마음으로 여기 아멘넷에서 열심히 “영성”을 가르치시는 목사님들 그리고 뭐 좀 더 획기적인 것을 도입해서 성도들을 모으실려고하는 사역자 여러분들께서 하루속히 진실을 파악하시고 주님께 돌아와 오직 주님말씀만을 가르치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글을 씁니다.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며 고난이던 복이던 매사에 주님에 은혜에 감사하며 살려고하는 성향이 "영성" 이 아닐까요?

- 공부합시다님

칼융은 기독교에 심리학적 신비주의 출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칼융은 인간의 집단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ness)안에는 종교적인 그리고 신비한 요소를 품고 있다고주장했다. 그래서 뉴에이지 등의 신비주의적인 가르침에 어느 정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한 요소를 가미시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데 칼융의 집단무의식 이론이 일조를 했다.

그 외에 원형(Archetype), 그림자(Shadow), 아니마(Anima), 아니무스(Animus) 등 반기독교적인 개념들을 세상에 소개하고 또 카톨릭의 신비주의에도 흥미를 느껴서 이그나셔스 로욜라에 대한 세미나도 주관하는 등 포커스를 주님에게서 인간에게 돌리게 했다.

융의 제자들은 융의 가장 큰 업적 중에 하나가 비쥬얼라이제이션(visualization, active imagination) 이라고 한다. 비쥬얼을 하면 집단무의식 안에 있는 내용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융 자신이 프로이드와 결별 후 7년 동안 비쥬얼로 자기 자신의 무의식을 여행했다고 하며, 그래서 Red Book 이란 책도 출판했다고 하는데, 혹자는 그가 7년 동안 정신병을 앓았을 수도 있다고 한다.

그는 무의식 안에 있는 이미지는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그 이미지를 “가이드” 라고 명명하고 그자신도 “빌레몬 (Philemon)” 이란 영적가이드가 자기 자신에게 더한 지혜를 주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내적치유를 주장하는 사역자들은, 예수님을 과거의 죄, 고통, 실망 등에 비쥬얼로 오시게 해서 실제로 치유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유명한 내적 치유자 Rita Bennett은 실제로 한 여자가 비쥬얼을 통해서 죄로부터의 사함을(= 구원 )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융의 비쥬얼라이제이션은, “심리학적 신비주의”가 “내적치유”라는 이름으로 포장 되어서 현대 교회에 침투할 수 있게 하는 도구가 되었다. 현재 많은 목사, 평신도 사역자등이 비쥬얼을 교회 안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역자들은 비쥬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고 있으며, 또 알고 있다 해도 그 기원을 감추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현재 개신교회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리처드 포스터, 달라스 윌라드, 헨리 나웬, 빈야드 (Vineyard church)의 잔 윔버 등이 모두 이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리처드 포스터는 비주얼을 통해서 실제 주님을 직접 만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또한 몰튼 켈시의 영향을 받은 오순절 성경 대학의 마크 벌클러 교수도 향심기도를 통한 비쥬얼에서 주님과 대화하고 말씀을 듣고 주님에게서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내적치유에 관한 많은 저서를 낸 몰튼 켈시(= 하나님, 꿈, 그리고 계시, 섀도우 ), 쟌 샌포드(= 꿈:하나님의 잊혀진 언어 ) 등이 융 사상의 숭배자였던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주님은 비주얼이 아닌 향심/관상 기도가 아닌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마틴 루터는 말씀을 통해서 오지 않는 영은 사탄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말씀을 통하지 않고 직접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는 사람들의 “예수”는 과연 어떤 예수인가? 물론 비쥬얼 수호자들도 뉴에이지의 비쥬얼을 사탄의 것이라고 하지만, 사탄은 교활하여 우리가 말씀으로 무장하고 있지 않으면 믿는 자라도 진부를 판단하기 어렵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 “내적치유” 또는 “심리학적 신비주의”는 현재 모든 교단에 침투했고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타는 불에 기름 붓듯이 퍼지는 “목적이 이끄는 삶”, “긍정의 힘” 같은 운동의 기본이 되고 있다. 칼융은 연금술, 점성술, 심령술에 심취했던 사람이고 그의 하나님은 말씀의 하나님이 아닌 세상과 철학이 말하는 조물주였다. 그리고 불교에서처럼 하나님과 천국은 우리의 마음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신영지주의자였으며 뉴에이지의 아버지라고도 불렸다.
http://kr.blog.yahoo.com/visions72000/1666

--칼 융은 "빌레몬"이라는 스피릿 가이드를 통해 채널링을 한 오컬티스트입니다. 그의 "집단무의식"은 영지주의의 신, Supreme Consciousness와 다르지 않습니다.

당연히.. 그의 책은 "영지주의 안에 담겨 있는 종교적·심리적 근원과 접촉할 수 있도록 해 주고, 동학·불교·유교·그리스도교 등 수행 전통의 종교들과 (영지주의 사이비) 그리스도교 사이에 근본적으로 놓여 있는 공통된 상호관계를 새로이 이해와 안목도 길러 줄 수 있을 것"입니다!

http://www.thebereancall.org/node/2431


"구상화"(visualization)에 관해서는 이 글 읽어 보시고요.
http://blog.daum.net/discern/48

 

작성자: 글쎄요님

 

"융을 비롯한 심리학/정신분석학자들의 연구가 어떻게 현대 종교에 영향을 주어왔는지는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새삼스런 일이 아닙니다.

저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관상기도, 구도자의 예배..등으로 대표되는 "영성" 따위의 언어와, 오순절 교회를 대표로 하는 소위 "성령 체험"이 어쩌구 하는 따위가 어떻게 이들 융과 같은 자들을 대표로하는 현대 <영지주의>자들의 영향 아래 있는지 알아보는 것은 유익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치유"니 뭐니 하는 잡스런 유사종교 행위도 알고보면 "성령"을 빙자한 정신질환 분석/치료 행위를 흉내낸 것뿐입니다.

대표적인 영지주의 사이트에 소개된 융의 글들이 여기 있습니다. 융의 개인적이고 비밀스러웠던 책이 얼마전 출판되었는데 Red Book이라고 합니다. 그걸 중심으로 융과 영지주의와 관련된 중요자료를 검색하여 볼 수 있습니다.

http://www.gnosis.org/redbook/index.html "

 

작성자: Thomas님

 

출처: 아멘넷 독자 게시판

 

 

 

 

연주(피아노&바이올린)/목마른 사슴

 


 

 

 


나는 개신교인인 여러분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직접적으로 복음을 증거하려는 그 자세와 열정을 높이 치하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여러분들은 때로는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일 자체 보다 예수님을 어떻게 증거하느냐에 더 치중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설교하며,
어떻게 전도하며,
어떻게 심방하고 상담하며,
어떻게 예배를 효과적으로 인도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얼마나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고 있느냐이지요.


우리가 정말 주님을 닮아 간다면
그 삶을 보고 사람들이 모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 헨리 나우웬 )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예수를 알건 모르건 간에 그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믿는다." 헨리 나우웬이 주장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거든요. 그 뜻은, 불교인도 마호메드 교도 무당 종교도...모든 세상의 사람들, "예수를 알건 모르건" 다 문으로 들어간다. 즉 "구태여 예수를 구세주로 믿을 필요가 없다."라고 하는 사상이죠. 아주 괴악한 소립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 원하시지만,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만 문(예수님)으로 들어간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행 4: 12)

예수를 알건 모르건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것은 결코 아닙니다. 인본주의적 사고를 넘어서 예수님의 피공로를 전적 부인하는 행위입니다. 진리님 뿐 아니라 모든 독자님들은 오래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wcc나 뉴에이지 사상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말세의 성도들을 교란시키는 사상임을 깨닫고 돌이켜야 삽니다.

아래는 '글쎄요'님이 올려주신 헨리 나우웬의 주장의 일부입니다. 얼마나 비성서적인지 읽는 분들은 깨닫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날 나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집의 문을 열기 위해 왔을지라도,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예수를 알건 모르건 간에 그 문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개인적으로 믿는다. 모든 사람들이 신을 향한 그들 스스로의 길을 주장하도록 돕는 것이 오늘 나의 부르심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헨리 나우웬
Today I personally believe that while Jesus came to open the door to God’s house, all human beings can walk through that door, whether they know about Jesus or not. Today I see it as my call to help every person claim his or her own way to God. (Sabbatical Journey, 1998, p. 51)" -복된소리

토머스 머튼에 버금갈 정도로 기독교 진영에서 인기와 존경을 얻은 인물이 있다면 가톨릭 신학자인 고 헨리 나우웬이다. 많은 목회자와 교수가 나우웬의 깊은 사색에 크게 매료됐다. 시적이고, 위안이 듬뿍 담긴, 그러면서도 지성적인 문체로 기독교 지식인들에게 강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전기 작가 한 사람은 미국 장로교회 지도자 3,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1994년의 여론조사를 인용해, 영향력 면에서 빌리 그레이엄에 이어 나우웬이 2위를 차지했음을 말하고 있다.

나우웬은 그를 영감을 주는 인물로 꼽는 많은 평신도들에게도 인기가 있다. 따뜻한 위로로 감싸 안아 편안하게 느끼게 하는 모성애를 떠올리게 한다. 많은 사람이 사랑하고 자주 인용하는 나우웬이 노년에 하나님을 보편 구원론자의 입장에서 주저함 없이 진술했다는 사실은 유감천만이다.
[나는 이제 예수가 하나님의 집 문을 열기 위해 세상에 오셨지만, 모든 인간 존재는 자신이 예수를 알든 모르든 그 문을 통과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제 내 사명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길을 주장하도록 하는 것이다.]

나우웬은 만트라 묵상을 지도하는 힌두교 영적 선생인 에크나스 에아스와란의 책을 추천하면서 “이 책은 내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썼다. 나우웬은 기독교를 힌두교 영성과 관련짓는 한 책에 서문을 달면서 이렇게 썼다.
[저자는 불교, 힌두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선물에 활짝 열려 있다. 그는 기독교적인 영적 생활에도 유익한 종교들의 위대한 지혜를 깨내고 있다--- 저자는 자신 스스로 영적인 전통을 배우기 위해 인도를 여행했다. 그는 많은 보화를 가져왔고 그것들을 이 책에서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마음의 길’이라는 저서에서 나우웬은 권한다.
[단어 하나를 조용히 반복하라. 생각이 마음의 바닥으로 내려갈 수 있다--이 단순한 기도의 방법이 -- 우리를 하나님의 역동적인 임재로 열어 간다.]

이 하나님의 “역동적 임재”는 정통적인 복음주의 기독교가 아니라 고전적인 힌두교에 좀 더 가깝게 서도록 가르쳤다.
[기도는 “영혼의 노동”이다. 우리의 영혼은 모든 것이 하나인 곳의 중심이다.-- 실재하는 모든 것의 통합을 완전하게 실현할 수 있는 곳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 안이다.]

나우웬은 “만유가 하나다”라고 했다. 이것은 내재신론의 기본적인 신 인식이다. 온 세상 안에 있는 신이 만물을 통합한다는 인식이다. 나우웬은 머튼과 마찬가지로 신비 기도가 모든 기독교 전통 안에 자리 잡는 패러다임이 되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나우웬은 복음주의 교회가 칭찬할 만한 많은 점이 있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 약점을 위한 방법이 바로 신비주의다. 나우웬은 다음과 같이 힘주어 주장함으로써 이 약점을 치료하려고 애썼다. “우리 모두는 바로 이 침묵(관상 기도)으로 부름을 받은 것이다.”

나우웬은 자신의 자서전적인 ‘안식의 여정’에서 1996년 저술가며 강연가인 앤드루 하비와 만난 일을 기쁨에 겨워 말하고 있다. “나는 영혼의 친구(멘토)를 만났다는 느낌을 가슴 깊이 느꼈다.” 이 짧은 구절을 통해 나우웬의 신앙 체계를 깊이 엿볼 수 있는 것은 하비가 세계적으로 알려진 신비주의 기반의 혼합 영성 옹호자라는 사실에 있다. 하비는 말한다.
[우리는 모두 본질적으로 신성의 자녀들이기에 여기 이 땅 위에서 그리고 하나의 몸 안에서 우리의 원천과 더불어 정체를 구현할 수 있다.]

나우웬의 말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이클, 토머스 그리고 나는 근처 카페에서 차 한 잔을 나눴다. 우리는 엔드루의 신비주의가 어떤 감동을 우리에게 줬는지 제법 길게 토론했다.]

http://blog.daum.net/kds2012/253

-글쎄요 님,

"얼핏 들어보면 더없이 아름다운 말이지요. 그러나 그 흐르는 핵심 사상을 눈여겨 보실 줄 알아야 합니다. 헨리 나우웬이 지금 무엇을 말하고자 합니까?

그는:
"나는 개신교인인 여러분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직접적으로 복음을 증거하려는 그 자세와 열정을 높이 치하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여러분들은 때로는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일 자체 보다 예수님을 어떻게 증거하느냐에 더 치중하는 것 같습니다. "

헨리 나우웬의 이 말의 숨은 뜻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전도한다고 열심내지 말고 주님만큼 온전한 삶을 살아내는 것을 먼저 하라." 하는 뜻이지요? 주께서 명하신 "지상 명령"인 "전도를 무모하다."가르치는 결과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온전히 주님을 닮은 사람이 되거든 그때 가서 전도하라"하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전도는 우리의 형편이 어떠하든지, 삶이 조금 부족할지라도 그 입술로 전해야 합니다. 나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증거하는 삶이기에 그렇다는 것이지요. 전하는 발걸음이 복되고 그 입술이 복됩니다!

솔직히, 우리가 예수님을 온전히 닮은 후에 전도하려고 하면, 이 세상에서 전도할 자격이 있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전도 한 번 해보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을 닮아가도록 우리의 최선으로 경주한다고 하여도, 우리는 결코, 온전하신 그분의 모습을 닮을 수 없기에, 수도사가 되거나 세상을 버리라고 말하는 것이 됩니다.

전도란:"내 모습 이대로 받아주시고 용서해 주신 사랑의 주님을 와서 만나보라. 그리고 너도 그 주님의 사랑 속에서 죄에서 자유함을 받으라" 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목숨이 끝나는 그날까지 그 사랑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성도의 본분입니다!

이렇게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여 주님의 근본 뜻을 변형시키려고 하는 의도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 또한 문제이지요. 우리 아멘넷 독자님들은 모두 바른 안목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 -복된 소리

이재록 씨(68세, 만민중앙교회 담임)는 1943년 전남 무안 출생으로서 7년간 질병으로 고통당하다가 1974년 기도 중에 치료를 받고 교인이 됐다고 한다. 이 씨는 1982년 13명의 신도와 함께 만민중앙교회를 개척, 2010년 현재 10만 신도와 30여개의 지교회를 갖고 있다고 한다.

만민중앙교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그의 직함은 연합성결신학교 이사장, 민족복음화신문 사장, 기독교세계부흥선교협의회 상임총재, 세계기독방송 네트워크(GCN) 이사장, 세계기독의사 네트워크(WCDN) 이사장이다. 2000년부터 현재까지 이스라엘을 비롯, 미국, 일본, 파키스탄, 케냐, 필리핀, 온두라스, 인도, 러시아, 독일, 페루, 우간다 등 세계 각지에서 수십만, 수백만 명이 운집했다는 대형집회를 개최하면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해마다 5월이면 치유집회를 진행함으로 지병이 있거나 건강에 문제가 있는 신도들은 더욱 주의해야 한다.

   
▲ 그림: 만민중앙교회 홈페이지 갈무리

이 씨는 <나의 삶 나의 신앙>, <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 <십자가의 도>, <믿음의 분량>, <천국과 지옥> 등 50여 권을 저술했고 이 책들은 영풍문고 등 유명한 서점들의 기독교코너에서 판매가 되고 때론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한다. 이 씨는 한국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많은 언론에 신앙칼럼도 기고하고 있다. 이 씨가 담임으로 있는 만민중앙교회에 출석하는 유명인사로는 모 여대 총장 출신인 J씨, 유명 S 댄스그룹의 Y씨 등이 있다.

활발한 대외활동으로 인지도가 높아지는 이 씨지만 한국교계에서는 명확히 그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예장 통합측과 합신측에서 1999년과 2000년에 각각 이단으로 규정했고 1999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극단적인 신비주의 이단으로 규정했다.

MBC시사고발프로그램인 에서 이재록 씨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도하자 만민중앙교회의 일부 교인들이 국가기간 시설인 방송국의 주조종실을 점거하는 방송사상 초유의 사태를 일으켜 사회의 주목을 끈 바 있다. 이재록 씨의 이단성은 다음과 같다.

1. 이재록 씨는 자신의 몸에 있는 피를 흘려 원죄·자범죄가 사라졌고 죄성이 없는 피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 씨의 가장 큰 이단성의 핵심은 ‘인죄론’에서 나타난다. 이재록 씨는 1998년 7월 5일 주일 저녁 집회 시간에 자신의 몸에 있는 피를 죄다 흘려 원죄·자범죄가 사라졌고 죄성이 없는 피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이 씨 주장을 그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금부터 2천년 전에 골고다 언덕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서 흘리신 보혈의 피, 보혈의 피라고 하는 것은 원죄, 자범죄가 전혀 없는 피를 보혈의 피, 이 피만이 죄를 대속할 수 있는 것이고 이 피만이 죽이고 살리는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가만히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세요. 제가 어떻게 감히 아버지 보좌 좌편에 있을 수 있나요? 그러나 이제 여러분이 수없이 보셨으니까 제가 말할 수 있죠. 또 해, 달 속에, 빛 속에 저와 주님이 함께 있으니까 말할 수 있는 것이죠. 이젠 말할 수 있죠. 저만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녜요. 이제 여러분들이 증인입니다. 이제 말할 수 있죠.

그러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바로 그 작업이 지금부터 수 년 전에 바로 92년인가요? 피 흘렸을 때 그때 시작된 것입니다. 제가 피 흘렸을 때 팔 일 동안 피를 흘리면서 제 부모로부터 받은 피, 제 몸 속에 있는 모든 피는 다 쏟았고 팔 일 동안에 물로 피가 되어서, 물을 마셔 피가 되고 해서 팔일 동안에 그 피를 걸러서 깨끗한 피로 만드셨습니다. 물로 피가 됐으니까 곧 물은 영적인 말씀, 영생이죠. 이 말씀은 하나님, 곧 하나님 말씀으로 내 피를 만드셨기 때문에 이 피안에는 죄성이 없다는 것이죠.

원죄가 없다는 얘기죠. 그래서 원죄와 자범죄가 없는,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 아들로 인 쳐지고, 이제 해 달 속에 오셔서 우리 주님이 세상에 공포하는 것이고, 바로 좌편에 앉을 수 있는 권세를 쥐어 준 것이고 그래서 전에도 배운 말씀을 들어보시면 바로 '죽고 사는 권세를 네게 주었다'는 것이 바로 그런 연유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씨는 죄 없으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자신은 1992년도에 부모로부터 받은 피를 몽땅 쏟아버리고 새 피를 받아 원죄와 자범죄가 없어져버렸다고 설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원죄와 자범죄가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몸에 있는 피를 흘려서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부인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경은 분명히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8, 10)고 말씀하고 있다. 인간의 죄는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해결되는 것(벧전 1:18~19)이다.

2. 이재록 씨는 자신을 신격화한다.
원죄와 자범죄가 없다는 이 씨의 주장은 ‘자기신격화’로 연결된다. 다음 주장을 살펴보자.

“그렇게 흘린 피를 장장 8일 동안 흘리고 있었는데 그 피가 어디서 나옵니까? 물을 마시면 피가 되고, 물을 마시면 피가 돼서 8일 동안 그 상태로 만드시고 다시 생명을 얻게 해 주셨는데 그리고 나서 저번에 말씀하시는 것 봤는데 ‘너는 그때 피를 흘림으로 네게 원죄가 없어졌고, 그래서 너는 죽음이 너를 피해 가는 것이고, 악한 자가 너를 만지지를 못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너에게 그래서 무한한 권능이’, 우리 주님이 가지신 무한한 권능이 ‘네게도 주어져서 너도 이제 그렇게, 그 이상으로 그게 역사가 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이재록, 1998년 7월 5일 주일저녁예배).

① 자신은 부모로부터 받은 피를 92년도에 몽땅 쏟아버리고 죄성이 없는 새 피를 받아 원죄와 자범죄가 없어져 버렸다고 하며, 그때의 피 흘리고 죽었다가 살아난 사건은 많은 신도들이 직접 목격한 바라고 한다(1998년 7월 5일 저녁예배, 10월 23일 금요철야집회).
② 그래서 죽음이 자신을 피해 가고, 죽고 사는 권세가 있다고 한다(1998년 7월 5일 저녁예배).
③ 주님이 자신을 해와 달 속에 넣어 세상에 공포해주셨는데, 이는 "너와 나는 하나"라고 주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빛 되신 하나님과 자신이 연합하여 하나를 이루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며, 이같이 약속 받은 증거를 각종 빛을 통해 증거해 준 일은 자신 외에 창세 이래 없다고 하며, 자신과 주님이 달 속에서 세계를 이루고 대성전을 이루는 대화를 했다고 한다(1998년 6월 21일 주일예배, 6월 28일 금요철야집회, 7월 5일 저녁예배, 7월 17일 금요철야집회, 10월 16일 금요철야집회).

④ 자신의 영이 하나님 보좌 좌편에 앉아 있다고 한다(1998년 7월 5일 저녁예배).
⑤ 자신에게는 심판 날에 주님 옆에서 성도들을 위해 직접 변호해 줄 권세가 있다고 한다(1998년 7월 5일 저녁예배).
⑥ 2천년 전의 예수님은 구약 율법을 완성하셨고, 자신은 물위를 걷는 것 외에 66권의 말씀을 다 이뤘다고 한다(1998년 6월 21일주일예배, 6월 28일 금요철야집회).
⑦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모든 선지자들과 주님의 제자들이 이재록 씨 자신이 부르면 나타나서 경배한다고 하며, 심지어 아버지 하나님까지 자신이 기도하면 임재하신다고 한다(1998년 7월 5일 저녁예배, 1998년 7월 17일 금요철야집회).
⑧ 꿈속에서도 자신의 영이 심방해서 치료역사를 베풀고 축복도 주고, '내 이름으로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나도 함께 있노라'고 하신 주님께서 어느 곳에나 가실 수 있는 것처럼 자신도 영으로 다른 곳에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 함께해주고 안수기도도 해준다고 한다(1998년 5월 5일 특별부흥성회, 8월 9일 주일예배).
⑨ 자신을 믿고 신뢰하는 것은 천국 가는 여정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관건이라고 한다(1998년 6월 28일 주일예배).

만일 이재록 씨가 진정으로 위와 같은 권세를 가졌다면 그는 바로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로서, 실질적으로 그를 믿고 따르는 것이 바로 구원의 조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의 신격화 사상은 심각한 이단성을 내포하고 있다.

   
▲ 이스라엘에서 집회를 인도하는 이재록 씨(이재록 씨측 홈페이지 갈무리)

3. 이재록 씨는 자신이 담임하는 교회를 특수화하고 있다

이 씨는 ‘우리 교회에만 구원이 있다’는 식의 직설적인 말만 하지 않을 뿐 여러 유형의 주장으로 만민중앙교회를 특수화하고 있다. 이 씨의 관련 주장을 요약해서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① 만민중앙교회에 성경의 모든 선지자, 천군 천사, 예수님이 내려왔다고 하며, 심지어 만민중앙교회에 하늘문이 열려 보좌도 내려오고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임재하셨다고 한다(1998년 6월 28일, 7월 5일 주일저녁예배, 7월 10일, 7월 17일, 10월 23일 금요철야집회).
② 만민중앙교회에 하나님께서 새예루살렘(이재록 씨가 말하는 5단계 천국 중 의의 면류관, 금면류관을 받을 자가 가는 천국) 열쇠를 놓고 가셨다고 한다(1998년 7월 5일 주일저녁예배).
③ 만민중앙교회 위에 하나님께서 언제나 무지개를 띄워주시는 등 각종 표적과 기사를 넘치게 보여주신다고 한다(1998년 7월 5일, 7월 10일, 9월 25일, 10월 16일, 10월 23일 금요철야집회).
④ 만민중앙교회에 하나님이 친히 임재하시고 하늘문이 열렸으며 그 하늘문이 닫히지 않고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열려 있을 줄로 확신한다고 말한다(1998년 7월 17일).

이재록 씨의 주장은 모두 극단적 신비주의적 체험에서 비롯된 주장으로서 하나님의 신성과 거룩함을 상징하는 보좌(마 5:34, 19:28, 행 7:49, 히 1:8)가 특정한 공간안으로 내려왔다는 주장이나 새예루살렘 천국 열쇠를 두고 가셨다거나 하늘문이 열렸다는 주장은 모두 성경적 지지를 받을 수가 없다.

4. 이재록 씨는 천국이 5단계로 이뤄져 있다고 주장한다.
이재록 씨의 내세관은 5단계의 천국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즉 1단계는 상급이 없고 행함이 없는 자가 들어가는 낙원이요, 2단계는 썩지 않는 면류관 받는 천국(고전 9:25~27)으로 1층천이요, 3단계는 영광의 면류관 받을 자가 가는 천국(벧전 5:4)으로 2층천이요, 4단계는 생명의 면류관 받을 자가 가는 천국(약 1:12, 계 2:10)으로 3층천이요, 5단계는 의의 면류관, 금면류관 받을 자가 가는 천국(딤후 4:8, 계 4:4)으로 바로 새예루살렘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믿음도 5단계가 있다.

즉 1계단 믿음은 회개하고 그리스도 영접하였으나 행함이 없고 상급 없는 믿음으로 낙원에 가는 믿음이요, 2계단 믿음은 구원받고 말씀대로 살려고 하나 그대로 행하지 못하는 믿음으로 썩지 않는 면류관 받는 곳으로 1층천에 가는 믿음이요, 3계단 믿음은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죄와 싸워 버리며 나가는 믿음으로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2층천에 가는 믿음이요, 4계단 믿음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며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3층천에 가는 믿음이요, 그리고 소위 마지막 단계 5계단 믿음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나머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지닌 자들이 가는 '새예루살렘'을 의미한다고 한다(이재록, <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 P.226). 그런데 이재록 씨는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은 바로 새예루살렘에 들어가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1998년 7월 17일 금요철야집회 2부: 하나님 임재 실황중계).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낙원’은 이재록 씨의 말처럼 상급이 없고 행함이 없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천국의 1단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곧 천국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강도에게 함께 낙원에 이를 것을 말하셨고(눅 24:43), 바울이 낙원과 천국을 동일시했고(고후 12장), 그리고 낙원에도 생명나무가 있다고 한 점을 볼 때(계 2:7), 낙원이 천국의 1단계라는 이 씨의 주장은 전혀 성경적인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그리고 성경에서 ‘영광의 면류관’과 ‘생명의 면류관’을 말할 때 이는 같은 천국의 상급들을 말하고 있을 뿐(약 1:12, 벧전 5:4, 계 2:10), 결코 이재록 씨의 말처럼 천국의 계층을 말하지 않는다.

5. 이재록 씨는 아담은 공룡을 애완동물 삼았으며 지구에 피라미드를 만들었고 건축재료는 UFO로 날랐다고 주장한다.
이재록 씨의 황당한 주장을 그대로 들어보자.
“아주 먼 옛날에는 둘째 하늘에 있는 에덴동산과 첫째 하늘에 있는 이 땅이 서로 단절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아담의 권세 아래 다스려지던 곳으로서 아담은 둘째 하늘과 첫째 하늘 사이를 자유롭게 오고갔지요. 그러면서 아담은 이 땅에 자신의 권세를 나타내는 상징 것을 짓고자 합니다. 그것이 바로 피라미드라 말씀드렸죠. 물론 피라미드를 모두 아담이 지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지었던 것도 있고. 맨 처음에 지었던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아담은 피라미드를 짓기 위해 구체적인 준비를 하고자 특별히 시간을 내어 이 땅위에 내려옵니다. 어떤 장소에 얼만한 크기로 지어야 하고 또 무슨 재료들이 필요한지 살피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이날만큼은 예전과는 다르게 그 휘화에 있던 그룹들을 대대적으로 동원했습니다”(이재록, 창세기강해, 2002년 2월 22일 금요철야 설교).

“그리고 이러한 그룹과는 좀 역할이 다르지만 하나님께서 그룹 중에 하나의 모양을 따서 아담에게 특별히 만들어 주신 존재도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공룡이었습니다. 전에 말씀드린대로 공룡은 아담에게 있어서 마치 애완 동물과 같은 존재였으며 아담은 이러한 공룡에게 큰 사랑을 주었고 공룡도 아담을 따르며 기쁨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룹과 공룡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지요. 그룹은 영물이었고 공룡은 어차피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였기에 이로 인해 생기는 역할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공룡이 아무리 아담의 사랑을 받았다 해도 아담을 위해 그룹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공룡이 대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이재록, 창세기강해, 2002년 1월 15일 금요철야).

“아담은 모든 재료와 피라미드를 세우게 한 기구를 에덴동산으로부터 날라 왔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은 여러분들이 UFO를 떠올려 보면 풀립니다. UFO도 그 종류가 많아서 그 중에는 엄청나게 큰 규모의 것도 있지요. 마치 비행기 중에 화물기가 있는 것처럼 UFO 중에도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있어서 얼마든지 피라미드를 세우기 위한 재료와 기구들을 나를 수 있는 것입니다”(이재록, 창세기강해, 2002년 1월 18일 금요철야).

이재록 씨의 창세기강해 중 피라미드, 공룡, UFO와 관련한 주장은 성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서 일고의 비판적 가치가 없다.

6. 맺는 말
이재록 씨는 신도들에게 표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자신을 특수화해왔다. 이렇게 소위 기적이라는 현상 때문에 그의 신도들은 이재록 씨를 특별한 존재로 믿고 따르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성경은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4)고 말씀하신다. 이재록 씨는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곳이다. 그런데도 현재까지 진리의식이 무감각해진 일부 교계 인사들과 일부 교계 언론의 비호를 받으며 이렇다 할 제재를 받지 않고 다시 교세를 키우고 있는 현실이다. 여기에 더하여 이재록 씨를 ‘이단이 아니다’, ‘이단으로 규정했었으나 오해가 풀려 해제됐다’는 유언비어도 난무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 씨에 대한 이단규정은 그것이 발표된 이후 단 한번도 규정한 주체에 의해 철회된 바가 없는 바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철저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중국선교 3단체 “윈형제 간증 진실성 결여”

‘하늘에 속한 사람’의 저자인 ‘윈형제’(본명 류전잉)는 중국 가정교회내 이단과 깊은 관련이 있으며 그의 간증에는 진실성이 결여돼 있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중국선교공동체 중화선교회 중국동포선교중심 등은 지난 8일 서울 서초동 다해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중국 현지 조사내용,관련 문건 및 사이트(www.jesusreturn.net) 등을 분석한 결과 윈형제는 가정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으며 가정교회조차 이단으로 분류한 단체들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밝혔다(관련기사 11월23일 29면). 이들 단체는 “이번 기자회견의 목적은 한국 교회와 다른 선교단체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면서 “하지만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들 단체는 “가정교회 지도자들이 문제가 있다고 한 인물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국내에 초청한 것은 크나큰 실수”라면서 “‘하늘에 속한 사람’의 또다른 저자인 폴 해터웨이가 아시아추수선교회 사이트(www.asisharvest.org)를 통해 린센카오 목사 등 가정교회 원로들이 이 책을 읽어보지 않고 비판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단체는 1998년 11월26일에 발표된 ‘중국 가정교회 신앙고백’의 주해를 제시하고 윈형제와 그의 영적 멘토인 쉬용저가 관계된 중생파와 왕신차이(일명 에녹왕)가 이끄는 호함파는 이단으로 분류됐다고 공개했다.

장성산 중국선교공동체 대표는 “가정교회내 오순절파인 장룽량과 선이핑 등이 아직도 중생파 호함파를 이단시하고 있는데 윈형제가 책의 273쪽에서 이들을 동역자라고 주장한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면서 윈형제의 진실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장 대표는 쉬용저와 윈형제가 2004년 2월6일 과거를 참회하며 작성했다는 중국어 원문 신앙고백서를 공개하면서 “이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들이 이제 중생파 호함파 등과 관계 없다는 논리인데 이번 내한을 통해 윈형제가 수차례 왕신차이와 관계가 돈독하다고 밝힌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언행”이라고 말했다.

하박국 중화선교회 총무는 “윈형제와 쉬용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여러 경로를 통해 밝혀왔다”고 전제하고 “한국 교회가 윈형제와 쉬용저 및 그들이 주장하는 ‘백투예루살렘운동’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지원한다면 가정교회를 오히려 해롭게 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일각에서 이번 논란의 근인을 가정교회 내부의 세력다툼으로 돌리고 윈형제를 옹호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동북아 중국동포선교중심 대표는 “앞으로 중국 기독인들을 초청하거나 중국 기독교 관련도서를 출판할 때 중국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야 한다”면서 “한국 교회가 이번 일을 계기로 전문적인 중국 연구와 검증 시스템을 갖춰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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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교(背敎)에 관한 단상(1)

김병혁 목사(캘거리 개혁신앙연구회),  개혁신보,  출처: 양무리 마을

배교는 진리에 반하는 가장 전형적인 종교 운동이다

17세기 영국의 청교도 역사를 통틀어 가장 명석한 목회자요, 뛰어난 칼빈주의 신학자로 평가되는 존 오웬(John Owen)는 “복음으로부터의 배교”(원제, Apostasy from the Gospel, 한국어 번역 「왜 그들은 복음을 배반하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통해 로마 가톨릭이라는 당대의 보편 교회가 추구했던 은밀하면서도 전격적인 배교 현상을 매우 통찰력 있는 성경 언어와 신학 논리로 정확하게 규명한 바 있다.

오웬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자신들의 배도를 정당화 하는 과정을 분석하면서, 성령께서 사도들의 입술을 통해 예언한 배도의 네 가지 기본적인 경고들 - (1) 어그러진 교훈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목사와 교사들 중에서 일어날 것 (2) 양떼를 아끼지 않는 흉악한 이리들이 교회에 들어올 것 (3) 사람들이 건전한 교훈 듣는 일을 싫어하여 진리로부터 돌아설 것 (4) 배도 현상은 가견(可見) 교회 전체에서 전반적으로 일어나되,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점진적으로 일어날 것 - 이 자신의 시대 속에서 불의한 교회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음을 통탄하였다.

하지만 교회 역사를 정직하게 대하는 성도는 그의 지적이 그 시대만을 향한 거룩한 슬픔이 아니었음을 안다. 배교는 교회 역사가 기록되기 훨씬 이전부터 교회 안에 상시적으로 발생하였던 일이다. 사탄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진리를 거짓 것으로 속이던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중단된 적이 없는 가장 유구하고 전형적인 진리에 반(反)하는 종교 운동이다.


기독교 역사 속에 드러난 배교의 실체와 음모

배교의 역사성과 지속성, 그리고 현실성에 대해 성경만큼 적확하게 언급하는 기록은 없다. 구약의 이스라엘을 기억해 보라.

어느 민족보다도 확실한 구원의 은혜를 몸소 경험한 백성이었음에도 그들의 전체 역사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에 대한 반역과 배역으로 점철되어 있다. 심지어 가장 강력한 제국을 형성하였던 다윗과 솔로몬의 왕정 시대에도 이스라엘의 배교는 그치지 않았다. 유대 왕국의 몇몇 선한 왕들과 느헤미야 때에 나타난 일시적인 신앙 부흥 운동을 제외한다면, 구약 시대는 곧 끊임없이 연속된 배교의 역사로 기억될만하다.

그렇다면 신약 시대에는 어떠했는가? 예수님의 초기 공생애 사역은 겉으로는 성공적으로 보이는 듯 했다. 가는 곳마다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진리를 증거하시자 모두 떠나갔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던 순간에는 그의 열 두 명의 제자들마저 자신들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예수님을 포기한 뭇 사람들과 함께 배교의 행렬에 동참하였다.

그러나 믿음에 관한 이런 형태의 배교는 마지막 때에 나타날 가장 일반적인 종교 현상이 되리라고 하신 주님의 예언은 그 분의 부활이후 수 세기에 걸쳐 전개된 초대교회의 현장 속에서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런 점에서 초대교회는 진리에 관한 한 순전한 교회 모델이라기보다는, 음험한 목적을 갖고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거짓 선생(목사)과 그들이 전파하는 다른 복음(교리)의 위력 앞에서 명목뿐인 교회가 얼마나 쉽게 허물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례들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도들은 초대 교회의 배교라는 참담한 신앙적 현실에 대해 침묵하지 않았다. 저주와 경계와 비판의 날을 세워 진리로부터 등을 돌리는 신앙의 무모함과 위험성을 신랄하게 지적하였다.    

곧이어 진리의 편에 선 정통 교부들과 초대 변증가들의 생명을 건 순교 정신과 활기찬 논증 덕택에 배교의 큰 흐름이 잠시 주춤하는 듯 보였지만, 보다 교묘한 방식으로 변형을 거듭한 배교의 물줄기는 세상으로부터의 이해와 동정, 비신앙적인 세력으로부터의 원조와 협력, 그리고 세속적인 사상으로부터의 지지와 호소와 한데 어울려 중세와 근세를 거치면서 범접하기 무서운 거대한 탁류를 형성하였다.

그리고 오늘날 정통 신학과 교리를 포기한 수많은 교회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그 거친 배교의 물살에 몸을 내던지고 있다. 이처럼 배교는 기독교 역사 전체에 걸쳐 항상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숨길 수 없는 교회의 영적 현실이 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착각하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배교는 절대로 교회 울타리 밖에서는 일어나지 않으며, 부분 복음과 부분 진리로 위장한 거짓 목회자나 거짓 성도에 의해 주도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꺼번에 절대 진리를 무너뜨리려 하는 대신, 주로 우회적이고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 진리를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허무는 전략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교는 구약 시대에는 이교도 사상과 영합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예수님 활동 당시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과 사두개인에 의해, 사도 시대에는 거짓 선생과 거짓 형제라 이름 하는 이들과 초대 교회 때는 영지주의와 같은 기독교 이단 그룹에 의해, 중세에는 교황을 위시한 로마 카톨릭 교역자들에 의해, 그리고 근세와 현대에는 자유주의와 은사주의 신학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입으로 복음을 말하지만 순수 복음과는 상관없는 가르침을 펼치는 복음주의 신학자와 목회자들과 그들의종교적 허세에 현혹된 성도들에 의해 주도면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여간해서는 분별하기 쉽지 않다. 이들은 보편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대중들로부터 폭넓은 지지와 존경을 받으며, 외적으로는 경건과 학문적 배경이 견고하며, 신앙 공동체를 위한 헌신과 노력이 남다른 면모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때로는 보통의 그리스도인들보다 훨씬 인격적이며, 그들의 말은 호소력과 설득력을 겸비하고 있으며, 사고와 논리역시 이성과 상식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이 “양의 옷을 입고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 하는 이리들”(마 7:15)이다. 이들은 성경을 방편삼아 성경을 속이는 자들이요, 진리의 명료함을 왜곡하는 자들이요, 참된 교회의 신학과 교리를 허무는 자들이다. 마지막 때를 사는 진실한 성도에게 분명 배교는 기독교 신앙에 가장 강력한 적(敵)인 동시에 진리 사수를 위해 반드시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임을 잊지 말자(*).

배교(背敎)에 관한 단상(2)

지난 학기(3월-7월) 동안, 필자가 섬기고 있는 연구회에서는 첫 번째 공개강좌 주제로 기독교 역사를 탐구할 기회를 가졌었다. 초대교회에서부터 종교개혁 시기까지의 장구한 교회 역사를 꼼꼼하게 살펴보면서,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 역사적 교훈이 있다.배교는 어느 한 시대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며, 예나 지금이나 참된 교회와 참된 신앙을 훼손하는 가장 커다란 위험 요소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다른 어떤 세대를 비교해 보더라도 이 문제에 관한 한, 현대 교회보다 덜 심각해 하는 역사를 찾아볼 수 없다.

믿기 어렵다면,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행해지는 전형적인 설교나 서점가에서 유행하고 있는 기독교 관련 서적들을 살펴보라. 과연 우리 시대의 교회가 이전과 비교하여 신앙고백과 교리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영적 분별과 안목을 중요시하며, 진리에 의한 바른 확신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할 자가 있겠는가. 애석하게도 탁월한 성경 지식과 경건한 양심을 소유한 진리에 붙잡힌 대부분의 교회 지도자들의 평가는 이와 반대이다. 그토록 많은 교회 안에 거짓 선생들이 활개치고 거짓 가르침이 유포되고 있지만, 진정 이들을 기독교를 위협하는 존재로 간주하는 일성(一聲)조차 듣기 힘들다.

성경과 신학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이 날로 깊어지고, 세상과의 타협과 관용과 축복으로 포장된 안이한 평온주의가 복음의 핵심인양 증거되고 있어도 이것을 기독교 신앙의 위기로 여기는 성도들이 많지 않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배교의 현실과 배후 세력

그럼에도 오늘날 배교라는 단어는 교회안에서조차 터부시되고 있다. 배교라는 말을 꺼내는 즉시, 몰인정하고 편협한 신앙인 정도로 취급받는다. 그러나 배교라는 단어는 신구약을 통틀어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는 용어일 뿐만 아니라, 기독교 복음의 핵심을 가장 정확하게 나타내는 단어이다. 한국어 성경에는 ‘배도’(살후 2:3)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기도 한 이 말은 헬라어 ‘아포스타시아’(apostasia)에서 유래된 것으로 ‘분리, 변절’(departure) 또는 ‘진리로부터 멀어짐’(falling away)을 의미한다. 배교자란 진리를 포기하거나 배반한 자를 가리킨다. 즉 배교란 본질적으로 진리 운동에 반하는 것으로 교회 내부에서 발생하는 비성경적인 종교 현상이다.

마태복음 24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은 이 같은 사실을 보다 구체적으로 확증해 준다.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 (중략) … 그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14:10-24 중 일부 구절).

이 말씀은 세상 끝에 나타날 일을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적 답변이다. 예수님은 종말이 다가올수록 교회 안에서 배교가 광범위하게 일어날 것을 기정사실화 하셨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예수님께서 배교 운동의 배후세력으로 지목하신 대상이다. 다름 아닌 거짓 선지자들이다. 이들은 신약 성경을 통해 사도들이 성도들에게 수차례 주의할 것을 당부한 거짓 선생들이다. 이들의 관심사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기독교 신앙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다수의 사람들을 공략 목표로 삼는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끊임없이 교회와 성도를 미혹한다.

그러나 겉모습만으로는 이들의 정체를 쉽게 구별할 수 없다. 이들은 교묘한 위장술의 달인이며, 속임의 명수들이다. 교회의 부주의함과 성도의 연약함을 틈타서 교회 안에 몰래 들어온다(유 4). 그리고 경건한 사도와 목사로, 교회의 헌신적인 일꾼으로 행세하며, 때로는 지극히 경건한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가장한다(고후 11:13-15). 능숙하게 성경을 다루며 사람들에게 호감과 신뢰를 받는다(갈 1:6). 그들의 입에서는 늘 평강의 메시지가 흘러나오고 사람들의 심령에 만족을 주는 설교를 쏟아낸다(렘 6:14). 때로는 놀라운 표적과 신비한 기사를 행하여 수많은 동조자들을 모은다(마 24:24). 그로 인해 교회 안에서 존경할만한 지도자로 인정받기도 하고 그리스도처럼 높임을 받기도 한다(벧후 2:1).

배후 세력의 음모와 영적 전쟁의 승리 위한 기도

하지만 드러나는 모습이 달라도 이들이 추구하는 목적은 한 가지이다. 교회와 성도로 하여금 영적 자만과 방탕에 빠지게 하는 일이다. 그로써 교회와 성도가 진리와 무관하거나 혹은 진리에 반대편에 서도록 하는 것이다. 이들이 더욱 위협적이며 위험스러운 것은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기 때문이다(마 23:27).

이들은 진리를 가지고서 진리의 도를 훼방하며(벧후 2:2), 말씀을 거짓되게 해석하며(딤후 2:17), 허탄한 자랑으로서 육체의 정욕을 추구하며(벧후 2:18),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게 하며(약 1:14),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꾼다(유 4). 또한 으뜸되기를 좋아하도록 하며(요삼 1:9), 육체의 현저한 일을 행하게 하며(갈 5:19-20), 입으로는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며(딛 1:16), 하나님의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킨다(롬 16:17).

우리는 어느 시대의 성도들보다도 이러한 배교의 현실을 더욱 분명하게 목도하고 있다. 쓰나미처럼 다가오는 진리의 대적자들과 변절자들의 유혹과 도전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들과의 피할 수 없는 영적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간절한 권면에 귀를 기울이자.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기를”(빌 1:9-10) 소원하는 사도의 기도가 우리의 영적 현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자.(*).


http://cafe.daum.net/Restorationjesus/JIWC/107
미기총이 배도를 했습니다.
미기총은 미국 전역을 커버하는 곳입니다.
미기총이 배도를 했다는 것은 미국 교회는 이제 종말을 고했다고 보시면 될 듯 싶습니다.
제가 설교에서도 누차 말씀드렸듯이 배도 후 휴거 그리고 적그리스도의 출현이지요.
휴거가 너무나 가깝습니다. 너무나 심각할 정도로 가깝습니다.
그런데... 왜 이리 마음이 설레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출처: 아멘넷, 게시판

노르웨이에서 92명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테러가 발생한 가운데 붙잡힌 테러범이 자신을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밝히면서 '근본주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일반적으로 근본주의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인정하지 않은 채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폭력도 불사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번 노르웨이 테러 사건의 용의자가 자신을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밝히면서 관심이 증폭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슬람 원리주의자'라고 불리는 근본주의나 힌두교 민족주의 같은 세력이 폭력 과격집단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에따라 자신의 신앙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평화를 헤치는 근본주의는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지목돼왔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영주 총무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지닌 이들을 정죄할 권리가 인간에게 부여되지 않았다"면서 "다문화, 다종교, 다인종 사회 속에서 자신과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근본주의는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독교 근본주의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자유주의에 대한 반대운동으로 부상했다.

이들은 성서무오설과 예수의 동정녀 탄생, 육체적 부활, 예수의 속죄, 이적 등 5가지 강령을 신조로 내세우며 신앙을 순수하게 지키자는 운동으로 출발했다. 이같은 신앙운동은 폭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문자적 적용에만 메달리고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과 대화하지 않고 남들을 정죄하면서 극단적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미국 덴버신학교 정성욱 교수는 "근본주의와 복음주의는 신앙의 순수함을 지키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측면이 있지만, 분명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정 교수는 "복음적 신앙은 사회 문제에 적극 참여하며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만, 근본주의는 사회 현실 문제와 담을 쌓고 도피적 태도를 보인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한국교회 신앙과 근본주의는 전혀 무관하다고 본다"면서 "노르웨이 테러범은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기 보다는 폭력주의자, 정치 사회적 측면에서의 극우파로 보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한국교회에서는 6.25 전쟁 이후 반공이데올리기와 근본주의가 결합해 강한 결집력을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극단적인 신앙자세에서 많이 탈피해 건강한 보수 신앙을 지키는 흐름으로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노르웨이 테러 용의자가 밝힌 '기독교 근본주의'와 한국교회의 '복음적 신앙'을 동일시하며 경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불상의 머리를 자르거나 극단적인 선교행태를 보이는 일부 모습은 근본주의에서 비롯됐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소중히 지키며 전파해야겠지만, 자신과 다른 신앙을 가졌다고 배타적인 태도를 갖는 것은 자칫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본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겠다.

CBS TV보도부 최경배 기자
ⓒ CBS 크리스천노컷뉴스(출처:아멘넷 기사 중)




  신-복음주의에서 파생된,  신-사도개혁운동           신광철 목사


"신-복음주의(Neo-evangelism)"란 용어를 처음에 만들어낸 사람은 해롤드 오켕가(Harold J. Ockenga, 1905-1985)였으며 < Ockenga, Evangelical Root, p.38, 1978 >, 그는 1947년 찰즈 훌러(Charles Fuller)와 함께 훌러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를 설립하고 초대 학장이 되었으며 나중에 연임하였다.<1947-1954 and 1960-1963> 뿐만아니라 신-복음주의 기관지인 크리스챠니티 투데이(Christianity Today)를 창간(1953)하고 운영이사장을 25년간, 편집장을 12년 역임 함으로써<한종희, 신복음주의 신학은 다원주의 신학, p.112> 오켕가(Ockenga)는 훌러신학교크리스챠니티 투데이"신-복음주의 신학"의 산실이 되게 하였고 두 기관을 통하여 신-복음주의 사상을 널리 보급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복음주의"와는 전혀 다른 "신-복음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정체를 숨기기 위하여 자신들의 명칭인 "신-복음주의"란 말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고 보수적 용어인 "복음주의" 명칭만 사용하고 보수적 신앙인들처럼 활동하면서 로마 카톨릭세계교회협의회(WCC)와 협력하고 기독교의 흐름을 종교다원주의로 이끌고 있으며, 수십년간 많은 신학생과 지도자들을 양성하고 훈련시키면서 기독교에 막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그래서 지금은 "신-복음주의"가 "복음주의"로 되어버렸고, 사람들은 "신-복음주의"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 복음적 기독교가 변질되도록 유도해온 신학사상이 "신-복음주의"이므로 그 변화의 뿌리를 언급하기 위해서는 "신-복음주의"란 용어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 "복음주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신-복음주의").


1. 신-복음주의 신학의 바탕

1) 오켕가(Ockenga)의 신학사상

오켕가(Ockenga)는 1948년 자신이 제창한 "신-복음주의(Neo-evangelism)"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것은 현대주의(modernism)와 근본주의(fundamentalism) 사이에(in between) 존재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Jeffrey Khoo, Biblical Separation, 1999, p.91 >


신-복음주의는 복음을 적용하는데 있어서, 삶의 사회학적(sociological), 정치적(Political), 경제적(economic) 영역에 강조점을 둔다 . . . . . . . . . . 신-복음주의시대의 요청, 신학적 논쟁의 재정립, 교단적 리더쉽의 회복, 그리고 신학적 문제들을 다시 점검할 필요성, 즉 인류의 역사문제(the antiquity of man), 노아홍수의 타당성 문제, 하나님의 창조방법 등을<현대주의자들이 성경을 부인하기 위하여 문제삼는 것들-역자주> 다시 점검할 필요성에 따라서 기독교 신학을 다시 진술하는데 역점을 두었다(emphasised the restatement of Christian theology).』< Harold Lindsell, The Battle for the Bible, 1976,   밑줄과 강조표시는 역자가 한 것>


성경은 신앙면에서 오켕가가 주장하는 것처럼 중립(in between)을 허용하지 않는다. 하나님 편에 서든지 아니면 세속에 속하든지 태도를 분명히 하라고 요구한다(수24:15).  그러나 신-복음주의중립적 입장에서 현대주의자들과 타협할 수 있도록 기독교 신학을 다시 진술하기로 다짐하면서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신-복음주의 신학"현대주의자들, 로마 카톨릭, 신비주의자들타협점을 얻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신학을 변경할 수 있으며, 복음운동(evangelical campaigns)이라는 명목으로 주저함 없이 사회학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들에게 접근하여 그들과 손을 잡고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에큐메니칼 운동에 가담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전통적 성경관을 무시하고 신학을 다시 진술하는 사람들과 손잡고 새로운 이론을 적용한다.   그 새로운 이론들로서 기독교를 변질시켜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변질시켜 나갈 것으로 본다.  

예를 들면, 훌러신학교의 싱크 탱크(think tanks)에 속하는 랠프 윈터(Ralph Winter)같은 분은 새 언약(new covenant)를 무시하고 아브라함 언약(Abrahamic covenant)를 주장하면서 지금 신약교회는 아브라함 언약을 성취해 가는 것으로 설명하는 사람이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복음전파가 세상의 모든 민족에게 전해지도록 아브라함에게 사명이 주어졌는데 아브라함은 그 사명에 실패하였다는 것이다.   랠프 윈터는 그리스도의 피로 성취된 새 언약을 아브라함 언약으로 바꾸고는 "성경에는 오직 한가지 언약만 있는데 그것은 모든 민족이 복을 받는 아브라함 언약이다"라고 하였다.< Dager, Media Spotlight, WCM, Part II > 이 아브라함 언약을 성취하기 위하여 이 땅에서 어두움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통치가 복음을 통하여 땅 끝까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처럼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현대 선교와 결합시킨 것을 가리켜서 "비밀선교(Secret Mission)"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는 그 비밀선교 사역을 위하여 세계선교미주본부(U.S. Center for World Mission)를 창설하였다.  윈터(Winter)의 주장에 의하면 그의 선교사역은 예수님이 내리신 지상명령에 의하여 사도들이 시작한 선교사역에 뒤따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선교사명(성경에 없는 논리)을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도 아브라함 언약을 반복하기 위하여(to re-iterate) 오셨다고 하므로써 성경에 약속되어 있는 새언약을 무시해버린다.   이것이 오켕가가 주장한 대로 "기독교 신학을 다시 진술 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45년 이상 기독교 안에 널리 확산되어온 "신-복음주의 신학"의 한 단면이다.  이것은 성경의 핵심적인 구속의 원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대속의 피로 성취된 새 언약을 무시하면서 아브라함의 언약 아래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되어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한 확고한 믿음 없이도 하나님의 복을 받고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놓는 것이며, "십자가의 도"(고전1:18)를 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복음"(갈1:8)를 전하는 것이며, 종교다원주의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작업이라고 본다.

아브라함 언약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분명히 밝히기를,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3:16)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고 복을 약속하신 것은 아브라함이 그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을 믿게 하시려고 약속하신 것이 아니다.   그 언약은 약속의 자손, 즉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로 인류의 구속을 완성하실 때 비로서 전파되기 시작하는 새 언약의 복음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하늘로 오르시기 전 복음전파의 지상명령을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시리라고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가르치되<한글개역에는 "제자를 삼아"로 되어있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9-20 kjv).   예수님께서 직접 복음전파의 사명을 주셨고 지금까지 친히 관계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명령을 받은 제자들은 나가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내용은 구약의 선지자가 예언한 "새 언약"(렘31:31)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성취되었다고 증거한 것이다.   아브라함 언약그리스도의 대속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이 땅에 성취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증거하기를,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라고 하면서 확인해 주었다(갈3:8-9).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은 아브라함이 복음사역을 맡아서 실행하게하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씨(자손)를 통하여 성취하실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창12:1-3, 창22:18).   마지막 때에 성경을 잘못 전하는 자가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전해준 말을 기억하면서 그 잘못을 지적해 낼 수 있다고 하였으므로 성도들은 기록된 성경말씀을 근거로 분별력을 가지고 거짓 교훈들을 가려내야 한다(유1:17-18, 계2:2).   예수님도 지금 그것을 바라고 계신다(마24:24-25).  

신-사도개혁운동을 전 세계적으로 이끌고 있는 피너 와그너기독교 신학을 다시 진술하는 신-복음주의 신학의 싱크 탱크(think tanks) 멤버이므로 윈터(Winter)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보혈로 성취된 새 언약(new covenant)을 무시한다.   그가 주장하는 슬러건(slogan)에서 그것이 역력히 나타난다.   와그너는 예수님의 "새 포도주새 가죽부대" 비유(마9:17)를 인용하면서 오늘날의 기독교가 "새 가죽부대(new wineskins) 안에 들어와야한다"라고 한다.   그것은 오늘날 모든 교회가 신-사도개혁운동에 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오늘날의 교회가 성경에 기초한 교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진정한 교회의 통치는 제2의 사도시대에서 다시 시작되는데 지금이 바로 그 때이고 "신-사도개혁운동"이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CBN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교회의 통치가 마침내 제자리에 오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에베소서 2장에 언급한 것이며, 교회의 터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CBN interview, Jan 3, 2000, cited in letusreason.org >   또 그는 언급하기를 "성경적 교회의 통치는 1980년대 선지자의 은사 사역과 1990년대에 사도의 은사 사역이 인식되면서 제자리에 찾아오게 되었다"라고 하였다.< Peter Wagner, article - "The Great Transfer of Wealth, Are you ready?" >   와그너에 의하면 현재의 기존 기독교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엡2:20) 위에 세워진 교회가 아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현재의 기독교는 사탄의 지배를 받는 "종교의 영(the spirit of religion)"의<성경에 없는 신조어> 영향권 안에 있는 것으로 암시하고 있으며, 그 종교의 영은 지금 "신-사도개혁운동"을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이 종교의 영을 몰아내기 위하여 "기도투사(Prayer Warrior)" 팀을 구성하여 영적 투쟁에 나섰으며, 와그너 지도자 양성소(Wagner Leadership Institure)를 통하여 그 임무를 담당할 많은 신-사도들을 배출하고 있다.   와그너에 의하면 근 2000년 동안 참된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위에 세워진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신-사도개혁운동을 통해서 교회의 통치가 제자리에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globalharvest.org >  

와그너신-사도개혁운동의 사명에 관하여 이야기 할 때,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새 포도주""새 가죽부대"가 현실적으로 실현되는 것이 바로 지금이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기독교는 낡은 가죽부대이기 때문에 신-사도들을 통해서 세워지는 새로운 교회를 담을 수 없으므로, 지금 이 시대는 새 가죽부대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와그너는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새 가죽부대"는 새 언약의 피를 상징하는 "새 포도주"를 전제로 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이미 새 언약의 피(새 포도주)를 흘리셨고 그것을 담는 그릇으로써 이미 신약교회가 사도들에 의하여 세워져서 지금까지 기독교가 전해져 왔다.   마지막 때에 다시 "새 포도주"와 "새 가죽부대"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요한의 제자들이 구약의 개념으로 금식에 대하여 질문하였을 때 예수님"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마9:17)라고 비유로 대답하셨다.   이 비유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 성취될 "새언약(new covenant)"(렘31:31)에 대한 말씀이었다.   왜냐하면 나중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제자들과 함께한 마지막 만찬에서, 그는 제자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시면서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것인데 그 "포도주"는 "나의 피, 곧 새 언약의 피(My blood of the New Covenant)니라"(마26:28-kjv)<한글개역에는 "새(new)"라는 말이 빠져있음>라고 하셨고, 또는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눅22:20)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요한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새 포도주새 가죽부대"는 "새 언약"의 성취로 말미암아 전개될 새로운 상황을 말씀하신 것이며, 그것은 곧 예레미야 31:31-34에서 예언된 새 언약이 성취되는 것이다(히8:8-12).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오순절 날에 제자들에게 임하자 제자들은 성령이 충만하여 새 언약이 성취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였고, 그것이 바로 "새 포도주"가 임했다고 전한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직분을 가리켜서 "새 언약의 일군"이라고 하였다(고후3:6).   그 새 포도주를 담는 그릇이 바로 신약교회인데 그 교회는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베드로와 같은 신앙고백을 하는 믿음 위에 세워지는 교회"였고(마16:18), 이것이 바로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였다(엡2:20).   그와 같은 믿음의 고백을 바탕으로 하여 기독교 교회가 지금까지 존재해 오고 있며, 2000여년의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그 동일한 믿음 때문에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순교자들이 피를 흘렸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새 포도주와 새 가죽부대"의 사건은 예수님께 임명받은 그리스도의 사도들에 의해서 이미 2000여년 전에 이미 성취된 비유이다.

우리는 지금 예수님이 제정하신 성찬식(눅22:19)에서 "새 포도주 (새 언약의 피)"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기념한다(고전11:23-26).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구원받은 성도들은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서 "새 포도주"를 다시 마시게 된다(마26:29).   그러므로 와그너가 "새 가죽부대"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신-사도개혁운동"이 바로 그 새 가죽부대라고 주장하는 것은 "새 포도주"로 이미 성취된 "새 언약(new covenant)"(렘31:31) 을 무시하는 것이다.   만일 와그너의 주장대로 한다면,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새 포도주"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새 언약의 피가 아니라, 새롭게 받았다고 하는 신-사도들의 표적과 기사의 은사가 바로 "새 포도주"가 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와그너가 주장하는 대로라면, 그가 말하는 "새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새 언약의 피이상한 표적과 기적으로 바꿔치기한 것이다.   "새 언약(new covenant)"을 무시하는 것은 곧 "새 언약의 중보자(the Mediator of the New Covenant)"(히9:15) 이신 그리스도(딤전2:5)를 무시하는 것이다.   또 "새 언약"을 무시하면, "새 언약의 피"와 직접 관계된 "십자가"가 부담스러워진다.   오늘날 교회안 강단에서 십자가가 점점 사라져가고 극장의 무대처럼 되어가는 것이 그러한 신-복음주의 바람 때문인지 궁금하다.   랠프 윈터(Ralph Winter)가 새 언약을 무시하고 아브라함 언약만이 오늘날까지 진행되고 있다는 주장이 와그너에게도 그대로 이어지는 것 같으며, 이것은 전적으로 비성경적이다.   새 언약을 무시하는 복음은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 아니라 "다른 복음"(고후11:4, 갈1:8) 이며, 그것은 곧 종교다원주의를 향한 만인구원설의 문을 열어놓는 것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신-사도들은 사도 바울과 같은 "새 언약의 일군"(고후3:6)들이 아니며, 또 교회의 통치를 다시 시작해야 할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엡2:20)도 아니라고 본다.   와그너는 신-사도개혁운동을 통하여 기독교 역사를 다시 쓰자고 하는데,< Peter Wagner, The Second Apostolic Age > 그것은 신-사도들을 통하여 신-사도행전을 다시 쓰자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그것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본다.   성경말씀에 오류가 있다고 여기며 직통계시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오늘날의 신-사도들은 그처럼 성경의 교훈을 무시하는 방향으로 나간다고 본다.  

오늘날 신-사도개혁운동신-사도선지자로 각광을 받고 있는 빌 해몬(Bill Hamon)은 "세상이 아직까지 목격하지 못하였던 새로운 교회(a new church that the world never seen)가 일어나고 있다" 라고 하였다.< letusreason.org/Latrain27.htm >   해몬(Hamon)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도 "새 언약(the New Covenant)"를 무시하고, 자신들이 "새 언약의 일군들"(고후3:6)이 아니라는 배경에서 나오는 발언이라고 본다.   그는 제2 사도시대신-사도들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임명받은 사도들과는 관계가 없는 사도임을 밝히고 있는데, 자신들은 가나안 땅을 정복한 여호수아 세대의 새 혈통(new breed of Joshua generation)을 이어받은 마지막 때 "새 종족(new breed)"의 사도들이라고 주장한다.< Bill Hamon, Apostles, Prophets and the Coming Moves of God, 1997, pp.34,39,131 >   이러한 신-사도들이 모세엘리야에게 주어졌던 능력을 가지고 세상 끝날, 요한계시록 18장에 나오는 "큰 성 바벨론의 대 멸망(the mighty fall of Babylon the Great)"에 함께 역사할 것이라고 한다.< Bill Hamon, ibd. pp.110, 139 >   그러나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친히 "큰 성 바벨론을 심판"하시고 멸망시키시는 것이며, 교회가 거기에 참여하여 하나님과 함께 "큰 성 바벨론"을 멸망시킨다는 내용은 없다.   기록된 성경말씀을 무시하고,  기독교 신학을 새롭게 다시 진술하는 신-복음주의 신학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빌 해몬(Bill Hamon)의 이러한 주장은 랠프 윈터(Ralph Winter)가 "새 언약"을 무시하고, 구약의 "아브라함 언약"을 강조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해몬(Hamon)은 "큰 성 바벨론"을 멸망시키는데 가담하는 것이 신-사도들이 세우는 21세기의 특별한 교회의 사명이라고 한다.   그것은 "만물을 회복(Restore All Things)"하는 것이며, 신-사도들이 그러한 사명을 완수하기 전에는 예수님이 재림하시지 않는다고 한다.< Bill Hamon, ibd. pp.109,110 >   그와 같은 사명을 가진 교회는 해몬(Hamon)이 말하는 대로 예수님의 사도들이 세우지 아니한 어떤 새로운 교회(a new church)를 의미한다.   그 새로운 교회를 오늘날 신-사도개혁운동을 통하여 세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신-사도개혁운동은 예수님의 사도들이 아닌 현대판 신-사도들"큰 표적과 기사"를 행하면서 옛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세운 터(엡2:20)가 아닌 새로운 교회의 터를 닦고 그 위에 어떤 새로운 세계적 교회를 세우려는 것으로 보인다.   와그너신-사도개혁운동을 주도하면서 가공할 일을 벌리고 있으며,  훌러신학교는 그러한 싱크 탱크들(think tanks)의 잘못된 교리들을 수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오랜 기간 동안 심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2) 맥가브란(McGavran)의 실용주의


위에서 살펴본 바대로, "신-복음주의(Neo-evangelism)"는 신학적으로 중립을 지킨다고 하면서 동시에 복음전파의 목적을 위해서는 주저없이 세상의 다양한 사회환경적 여건에 맞추고 비성경적인 것과 타협하는 방법론에 강조점을 두었는데, 그 배경에는 실용주의(Pragmatism) 철학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그것을 선포한 것이 오늘날 교회성장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도날드 맥가브란(C. Donald McGavran)이다. 그는 수십년간 인도 선교사로 파송받아 선교하였지만 고작 20-30개 정도의 작은 교회밖에 세우지 못한 것을 한탄하면서 교회성장에 대하여 고심하던 중에 교회성장을 위해서는 실용주의를 선택해야 함을 결정하였다 < John MacArthur, "But Does It Work?"> . 그러므로 맥가브란 자신이 쓴 저서나, 그 책을 인용한 피터 와그너의 저서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맥가브란의 글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가 근 33년 동안 인도 선교사역에서 받은 고충이 얼마나 컸는가를 알 수 있으며 그의 선교정책과 교회성장론이 어떤 방식으로 전환되었는지를 보게 된다.


『 우리는 하나님이 명백하게 베푸신 것인지 아닌지에 비추어서 선교방법들이나 정책들을 고안해낸다(devise).   산업에서는 이것을 가리켜서 "되돌아오는 반응에 비추어 수정하는 운영(modifying operation in light of feedback)"이라고 한다.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로 불러 들여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교회를 확장시켜야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방법과 선교기구와 정책들을 계속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해외선교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방법에 관해서는 무자비할 정도(ruthless)가 되라고 사람들에게 교육한다.  만일 사용하는 방법이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 확장에 잘 활용되지 않는다면, 그것을 집어치우고(throw it away), 무엇인가 잘 활용되는 것을 취하라.  방법들(methods)에 관한한, 우리는 지독히도(fiercely) 실용주의적(pragmatic)이며,  교리(doctrine)는 별개의 것(something else)이다"』 < Donald McGavran, "For Such a Time as This", 그리고 Peter Wagner 의 "Pragmatic Strategy for Tomorrow's Mission, 1973, p.47 에서도 인용됨,  밑줄과 강조표시는 역자가 한 것>


실용주의(Pragmatism)란 무엇인가?  그것은 철학사상인데, 실생활에 도움이 되고 실용성이 있는 것만이 참되고 그렇지 못한 것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실용주의 이다.  사람의 이성으로 옳고 그른것, 좋고 나쁜 것을 판단하여 실생활에 적용하는 사상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이러한 철학사상을 신뢰하고, 의지하며, 지지한다는 것은 참담한 일이다.   맥가브란은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실용주의자(an unabashed pragmatist)로 변하였다.< John MacArthur > 그리고 그는 실용주의 방법으로 교회성장을 추구하는 교육기관을 오레곤주에서 세웠는데, 그것은 바로 1957년에 설립한 교회성장학교(The Institute of Church Growth) 이다.  1965년 그 학교는 훌러신학교와 합병하여 훌러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 안의 대학원 과정으로 세계선교부(The School of World Mission)가 되었으며,  철학개념인 실용주의 방법을 동원하여 교회성장학을 본격적으로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학교를 합병하는 같은 해에 대학원 과정에 심리학 학부(School of Psychology)도 함께 개설(1965)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때 맥가브란교회성장학(Church Growth)은 "신-복음주의"와 접목하게 되었다.  

훌러신학교를 설립한 찰즈 훌러(Charles Fuller)는 라디오 복음전도자로서 인기있는 프로그램을<"Old Fashioned Revival Hour">진행하고 있었고, 그 당시 세계적 복음전도자였던 빌리 그래함(Billy Graham)은 적극적으로 훌러신학교를 지원하였다.< Jeffrey Khoo, Biblical Separation, 1999 >   맥가브란의 "교회성장학"은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신-복음주의 신학"과 "철학적 개념의 실용주의"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서 활용가치가 뛰어난 교회성장 학과로 널리 인기를 얻기 시작 하였다.   성경교리를 중요시하지 않기 때문에 성경의 무오설을 믿지 않는 교수들도 강의하였다.  나중에 그것이 발각되었을 때 그 교수가 "제한적 무오설(Limited Inerrancy)" 즉, "성경은 믿음과 생활에 관해서만 무오하며, 그 밖에 부차적인 것, 과학, 지리, 역사에 관한 기록에는 오류가 있다" 라고 주장만 하면 계속 훌러신학교에서 교수하게 하였다.< Jeffrey Khoo, p.92>  린드셀(Harold Lindsell)은 이점에 대하여 "훌러신학교가 오늘날 현대주의(modernistic), 에큐메니칼(ecumenical), 은사주의(charismatic)가 되었다는 것은 놀라울 일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H. Lindsell, The Battle for the Bible, 1976, p.214>

성경의 교리를 무시하고 철학사상을 교회에 끌어들이는 것에 대하여 사도 바울는 무엇이라고 경고하였는가?

"누가 철학(philosophy)과 헛된 속임수(vain deceit)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 (골2:8)

위의 본문에서 보면, 철학은  1) "헛된 속임수"와 같은 계열에 속하며,  2) (믿음과 소망 등을) 노략(강탈)하고,  3) 수준이 낮은 초등학문에 속하며,  4)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게 한다.   그 당시 초대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이단자들이나 거짓 교사들이 성도들을 미혹하기 위하여 사용한 방법 중에 하나인 철학이 그런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경고하였다.  철학은 "그럴듯하게 보이는 학문체계(plausible system)"< Albert Barnes, NT Commentary>이기 때문에 그당시 거짓교사들은 철학을 가지고 초대교회 성도들을 속이려고 한 것같다.  그들이 골로새교회에 철학사상을 끌어들이는 것은 "헛된 거짓을 기독교 안에 혼합하는 것(the empty deceit of philosophy blended with Christianity)"< John Wesley, NT Commentary> 이며, "철학을 신학에 적용하는 것(as applied to theology)"< Bretheren, NT Commentary>이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오늘날의 기독교는 심리학(Psychology)을 공부하지 않고, 교류분석(Transactional Analysis)을 할 줄 모르면 목회가 안 되게끔 변해버렸다.  그것들을 공부하고 연구하여 목회에 적용해야만 교회는 성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1965년부터 시작된 교회성장학(Church Growth)은 오켕가가 주장한 말 대로 "기독교 신학을 다시 진술(the restatement of Christian theology)하는" 신-복음주의 신학에 역점을 두고, 맥가브란의 말대로 "방법들(methods)에 관한한, 우리는 지독히도(fiercely) 실용주의적(pragmatic)이며, 교리(doctrine)는 별개의 것(something else)이다" 라는 바탕위에 신학교육을 실시하여 수없이 많은 졸업생들을 배출하고 학위를 주었으며,  세계적으로 거의 모든 나라에서 많은 신학도들과 목회자들이 훌러신학교에 유학하여 학위를 받아갔다.  그들은 "교회성장학"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권위를 가진 신학교에서 학위 받은 것을 자부하면서 배운대로 성경의 교리를 중요시하지 않고, 신학을 다시 진술할 수 있는 타협적 신학철학사상과 심리학에 바탕을 둔 실용주의 개념을 가지고 복음사역에 몰두하고 있을 것이다.  훌러신학교에서 교회성장학이 시작된지 근 50년이 가까워오는 오늘날, 그 영향력은 홍수와 같아서 지금 전 세계의 기독교의 흐름과 기독교의 문화를 장악하고도 넘친다.  그것이 오늘날 복음주의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복음주의의 거대한 물결이며, 기독교가 심각한 영적위기에 처하게 된 근본 이유라고 생각된다.  홍수가 나면 마실 수 있는 맑은 물이 매우 귀하게 된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그런 상황으로 급히 변해가고 있다고 본다.   온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은 풍성하여 넘치는 것 같은데 성도가 되게하는 참 진리는 찾아보기 힘들어진다(암8:11).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철학에 근거한 실용주의 사상은 복음이 전해져서 믿는 사람만 많아지고, 교회가 성장할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상관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다시말해서 결과만 좋다면 그 방법도 좋은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Peter Wagner, Your Church Can Grow, p.161,  강조표시는 역자가 한 것>   그래서 신학의 정립 보다는 방법론에 중점을 둔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반대로 말씀하셨다.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면서 아무리 능력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낸 사람들일지라도 주님은 그들을 외면하실 것이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그들의 사역 결과는 좋은듯 했으나 그들의 사역 방법이 나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옳지 않게 여기시는 방법, 즉  불법으로 목적을 이룬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단호히 선포하시기를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실 것을 미리 말씀하셨다(마7:21-23).  신-복음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일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거룩하게 구별하고 불의와 타협하지 말아야 할 것을 경고하고 있다.  예수 믿는 자들이 "성도(거룩하게 구별된 무리)"라고 불려지려면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 . . .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 . ." (고후6:14-7: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 . .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12:1-2)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교훈을 거스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저희에게서 떠나라" (롬16:17)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엡5:11)

"범사(all things)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5:21-22)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딛3:10)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 . .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 (요이1:7-11)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계18:4)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벧전1:16)

우리가 진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좁은 길"(마7:13-14, 눅13:24)을 발견하고 그 길로 가야한다. 사람들이 가기 싫어하고 불편하며 인기가 없는 그 길만이 "생명의 길"이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과거에 참 믿음의 선배들이 걸어간 "옛적 선한길"(렘6:16) 이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그 길은 변하지 않는다.  진리가 변하지 않는 것과 같이 생명의 길은 옛적 그대로 우리에게 남아있다.   새로운(new- or neo-) 길 "닦지아니한 길"(렘18:15)이며, 우리가 가야할 "그 옛길"이 아닌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영원히 변치 않으심과 같이 신앙의 길도 변하지 않고 성경의 교리로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다.   "건전한 교리(sound doctrine)"만이(딤후4:3-kjv) 우리를 그 생명의 길로 인도한다.


2. 신-복음주의(Neo-Evangelism)와 신-은사주의(Neo-Charismatic)의 혼합


맥가브란의 수제자였던 피터 와그너(C. Peter Wagner)는 1981년 맥가브란의 뒤를 이어 훌러신학교 교회성장학의 주임교수가 되었고, 1982년에는 "토론토 블레싱(Toronto Blessing)"으로 이름난 빈야드 운동가(Vineyard Movement)이며 신-은사주의자(Neo-charismatic)인 죤 윔버(John Wimber)와 함께 훌러신학교 내에 "표적과 기사와 교회성장(Signs, Wonders and Church Growth)" 이라는 학과를 신설하고 윔버는 객원교수가 되었다.< globalharvest.org/peter.htm >   죤 윔버는 1974년부터 4년간 훌러신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와그너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고 치유은사를 강조하는 오순절운동(Pentecostal)과 은사주의(Charismatic)에 특히 큰 관심을 가졌다.  그 후 윔버는 표적과 기사를 강조하는 빈야드 운동(Vineyard Movement)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고, 1982년 훌러신학교와 손잡고 "표적과 기사"의 치유전문 학과를 개설한 것이다.  죤 윔버가 "표적과 기사의 능력사역"을 통하여 개발한 신-은사주의(Neo-charismatic)운동을 가리켜서 와그너는 "제3의 물결운동(Third Wave Movement)"이라고 불렀고, 그가 저술한 "성령의 제3 물결(The Third Wave of the Holy Spirit)"이란 책에 처음 소개하였다.   성령의 제3 물결(The Third Wave of the Holy Spirit)은 피터 와그너가 최초로 소개한 기독교신학이론(christian theological theory)인데 아래와 같이 구분하였다.< wikipedia >

제1 물결: 20세기 캘리포니아, 아주사(Azusa)에서 시작된 오순절운동(Pentecostal Movement)
제2 물결: 1960년대 개신교(Protestant)와 카톨릭(Roman Catholic)으로 확산된 은사주의운동(Charismatic Movement)
제3 물결: 1980년대 죤 윔버에 의한 신-은사주의운동(Neo-charismatic Movement) 또는 표적과 기사운동(signs and wonders)

윔버의 "빈야드운동"은 한국의 여러 교단(고신, 합동, 통합, 기성)에서 이단 또는 사이비로 규정한 바 있다.<1995-1998>   성경에도 잘못이 있다 하고, 성경이 가르치는 교리를 무시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표적과 기사"는 성령의 역사라고 할 수 없다.  마지막 때에는 성령의 역사가 아닌 거짓된 "큰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날 것을 예수님이 예고하셨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 . . .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24:11,24).   윔버는 신-복음주의 신학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그의 사역도 역시 방법론에 의존하고 있다.   윔버의 능력사역은 두 가지 방법론을 가지고 있는데, 경험(experience)과 실험(experimentation)이다.< Media Spotlight, the Vineyard >  그가 간증하는 경험은 성경에 근거하지 않는 일화들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이며, 그의 능력전도는 실험, 즉 "시도와 시행착오(trial-and-error)"의 실지시험(field test)을 통해서 자리잡은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밝힌 적이 있다.


『 . . . 나의 근성(at the core of my being)은 행동주의자이다. 능력전도에 대해서 말하자면, 내가 새로 발견한 신학(my newfound theology)은 실지시험(field-test)이 필요하므로 세계로 나가서 내가 생각한 성경의 교훈이 서구사회에 실제로 적용되는지 알아보는 것이다(see if what I thought . . . in fact worked . . .). 그래서 1978년 나는 훌러신학교를 떠나서 현재 캘리포니아, 아나하임에 소재한 "빈야드 크리스챤 휄로쉽(Vineyard Christian Fellowship)"의 목회자가 되었다. 50명의 소그룹 분위기에서 나는 처음으로 능력전도나의 이론들을 시험하였다(tested). 』< John Wimber & Kevin Springer, Power Evangelism, Revised, 1992, p.13,  밑줄과 강조표시는 역자가 한 것>


제3의 물결운동(Third Wave Movement)을 이끈 윔버능력사역은 검증되지 아니한 자신의 신학현지실험을 통해서 그것이 효과적인지를 스스로 확인한 것인데, 그 윔버의 신학은 바로 "기독교 신학을 재점검하여 다시 진술하는 오켕가신-복음주의 신학"에 바탕을 둔 것이며, 윔버의 방법론맥가브란이 주장한 대로 성경의 교리를 뒤로 하고 철저히 실용주의에 의존하는 심리학적 방법으로 접근하여 효과를 거두는 것이다. 윔버는 케빈 스프링거(Kevin Springer)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능력사역이 어떤식으로 시작되었는지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An interview with John Wimber, Part II: Discovering the Healing Ministry,"  First Fruits, May/June, 1985, p.18)< Media Spotlight, the Vineyard >


『 우리가 그 사역을 어떻게 하는가를 말씀드리자면, 소그룹을 가지는 것이 첫번째 시작 요소였습니다. 우리의 크리스챤 생활은 주로 소그룹 모임으로 해왔지요. 그래서 제가 멤버들에게 "정말, 시도와 실패(trial and error)를 (실습하기) 위한 가장 적합한 곳은 바로 소그룹입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모임에서 바로 첫번째 치유가 시작되었습니다. 』("An interview with John Wimber, Part II: Discovering the Healing Ministry,"  First Fruits, May/June, 1985, p.18)< Media Spotlight, the Vineyard,  밑줄과 강조표시는 역자가 한 것>


하나님의 성령의 "표적(signs)과 기사(Wonders)"를 나타내기 위해서 시도와 실패(trial and error)를 거듭하는 실험을 거쳐서 얻으려고 한 것이 윔버의 능력사역의 출발이었다.   하나님이 주시는 "표적과 기사"는 사람이 고안해내는 것도 아니며, 인간이 시도하고 실험한다고 해서 그때, 그때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주시는 "표적과 기사"는 전혀 기대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나타남으로 사람들을 심히 놀라게 한 것이었다(눅10:17).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으셨다.   도리어 제자들에게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실 때, "(아브라함이) 가로되 모세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확신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다"(눅16:31-kjv)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믿음에 있어서 "표적과 기사"가 그리 중요하지 않음을 지적하셨다.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표적과 기사보다도 더 권위가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또 예수님은 의심 많은 도마에게는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20:29)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베드로"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1:8)라고 하였다.

보지않고 믿는 믿음은 장래의 영광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말할 수 없는 즐거음과 기쁨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을 확실히 증언한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믿음은 우리가 보지않고도 믿는 복된 믿음이다.   마지막 때의 믿음은 "표적과 기사"를 보지못하여도 "예수를 사랑하고, 장래의 영광을 기뻐하는 것" 이다.  마지막 때의 성도는 육신의 눈으로 보고 확인하려고 하지 말고 마음의 눈으로 신령한 세계를 보아야 한다.   이 원리를 알지 못하면 마지막 때에 거짓 선지자들에게 미혹을 받아 그들의 올무에 발목이 잡힌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큰 표적과 기사를 가지고 많은 사람을 미혹할 것인데 조심하라고 경고하셨다(마24:11,24).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악하고 음란한 세대표적(signs)을 구한다"(마16:4, 눅11:29)라고 하셨고(눅11:20), 그 이유는 "시대의 표적(signs)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하셨다(마16:3, 눅12:56).   사탄은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변장하며 그의 일군들도 의의 일군으로 나타나는데 그들이 얼마든지 그렇게 표적과 기사들을 행할 수 있으므로 그것이 놀랍고 큰 일이 아니라고 성경은 증거한다(고후11:14-15).   다시말해서 마지막 때는 악한 시대이고, "영적으로도 음란한 세대"이므로 사탄이상한 체험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미혹하려고 영적으로 무방비 상태에 있는 교회 안에 들어가서 가짜 큰 표적과 가짜 큰 기사를 얼마든지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신비주의의 거센 물결이 세상을 휩쓸게 되리라는 예고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이상한 체험을 통해서 자신의 믿음을 확인하려고 한다면, 그는 미혹의 영에게 사로잡히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성경은 경고한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의 그리스도인들은 기록된 성경말씀 속에서 거룩하시고, 영원 불변하시며,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힘써야 한다.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면, 자신의 머리 속에 상상하는 하나님을 믿게 된다.   따라서 영적으로 분간하지 못하고 잘못된 기독교 분위기에 휩쓸리게 될 것이다.   지금은 기독교가 하나님을 배반하는 배도의 때이므로 교회 안에는 "배도하는 일"(살후2:3)이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오늘날 기독교의 대세는 "넓은 길"(마7:13)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제3의 물결운동(Third Wave Movement)을 이끈 윔버의 치유 개념로마 카톨릭의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그는 기적에 대한 타당성을 말할 때 로마 카톨릭에 더 신빙성을 두었고, 윔버가 소유한 "신적 치유(divine healing)"의 풍성한 유산은 로마 바티칸이 지정한 성인들(saints)의 기적에도 나타난 것임을 말한다. 그리고 그는 기적에 관한한 개신교식 접근보다도 로마 카톨릭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 신빙성이 있다는 것들을 그의 저서인 "능력 치유(Power Healing)"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그래서 그의 능력치유의 개념로마 카톨릭의 신비주의에 가깝다.


『 나는 특별히 기독교적 관점에서,  신적 치유(divine healing)라는 것은 개신교(Protestant)와 카톨릭 전통(Catholic traditionss)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 . . . 로마 카톨릭 교회는 기적에 대한 설득력 있는 표준(stringent criteria)을 가지고 있으며, 기적의 신빙성을, 특별히 치유의 신빙성을 확실히 하였다.   치유(healing)는 성인(saints)의 반열에 올려지는데 있어서 필요조건 중의 하나이고 초자연적 보증의 표시(a supernatural seal of approval)이다. . . . . . 많은 개신교의 신학들(Protestant theologies)에 비하여 로마 카톨릭의 신학(Roman Catholic theology)은 현대식 기적들(modern miracles)의 가능성을 강하게 주장한다.   프랜시스 맥낫(Francis MacNutt)은<1960년대에 은사주의 회복을 강하게 주장하였던 로마 카톨릭의 사제로서 치유에 관한 책을 썼다-역자주> 기록하기를, "사실상, 대부분의 개신교인들 보다도 로마 카톨릭 신자들이 더 치유(Healing)를 이해하기가 쉽다.   그 이유는 성인들의 반열에 올릴 때 지금도 요구되는 치유의 은사를 포함하여 기타 특별한 은총을 받은 성인들의 전통(tradition of saints) 속에서 우리가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통적 카톨릭 신자들은 신적 치유(divine healing)를 믿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없다"라고 하였다. 』(John Wimber & Kevin springer, Power Healing, 1987, pp.7,10,11) < Media Spotlight, the Vineyard,  밑줄과 강조표시는 역자가 한 것>


제3의 물결운동(Third Wave Movement)을 이끈 윔버의 치유 개념심령치료(Psychic Healing)의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성경에는 "표적과 기사"가 일어날 때 치유하는 사람이 "직관적 통찰(intuition)"로서 치유받는 사람의 속을 파악하고 치료한다는 것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런 것은 흔히 심령술사(psychic healer)들에게서 타나나는 현상이다.   심령술사들은 치유 방법에 있어서 묵상하거나, 마음 속에 형상화하는 것이나, 기타 심리작용심리학으로 교묘하게 내적 치유를 다루는데,  아네스 샌포드(Agnes Sanford)와 그의 제자들이 행하는 수법이다.< Agnes Sanford는 1960s-1980 사이에 미국의 은사주의 운동(Charismatic Movement)의 중요 인물이며, "내적치유 운동(Inner Healing Movement)"의 창시자이다-역자주>  윔버가 진술하는 능력치유의 내용을 들어보면 그가 그러한 심령치료의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Media Spotlight, the Vineyard>   그는 서구식 복음주의를 비난하면서 말하기를 "대부분 서양의 복음주의자들 가운데서는 직관적 통찰(intuition)이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John Wimber, Power Evangelism, Revised, p.10>   윔버가 그렇게 비난하는 이유는 그가 치유받는 사람의 속사정을 직감적 통찰로 감지하는 동양의 신비적 풍습(Eastern mystical practices)을 실습하기 때문이다.   윔버가 그러한 것을 실행할 때에 보통 사교(occult)의 최면술사들이 손을 뻗어 손에서 기가 흘러나오게 하여, 그 영기(aura)로 심령치유(psychic healing)하는 방식도 모방한다.< Media Spotlight >   예수님이 마태복음 24장 24절에서 예고하신 말씀대로라면,  마지막 때에는 성경적이 아니더라도 큰 표적과 기사얼마든지, 실제로, 많이 사람들에게 보여질 수 있으며, 또 예수님은 그 놀라운 표적과 기사들이 성령의 역사가 아니다 라고 우리에게 분명히 알려주셨다.

맥가브란(McGavran)이 실용주의 철학개념으로 심리학을 신학교에 도입한 이후 심리학과가 개발되어 오고 있는데 그 심리학의 성격은 기술적 용어로 "신경언어심리학(psycho-neural linguistics)"이라고 하며, 뉴에이지 운동(New Age Movement)에서 아주 널리 발견되는 개념이라고 한다.< Dager, Media Spotlight, vil.22, Apr. 1999 >   그것은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신분석의 인공두뇌학(Psycho-Cybernetics)"과 부분적으로 결합(overlap)하여 마음을 새롭게 프로그램(reprogram)하므로써 생각과 습관을 바꾸게 하는 심리요법이다.   기독교가 심리학정신의학에 많이 의존하는 것은 A. W. 토저(Tozer)의 말대로 "심리학의 이런 저런 학설을 교묘히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얄팍한 종교"를 보이는 것이다.<토저, "내 자아를 버려라", 규장, pp.22, 26>   훌러신학교미국 심리학 협회(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역사상 최초로 신학교에 심리학 학과를 도입하였다.< wikipedia >   훌러신학교가 죤 윔버와 함께 "표적과 기사와 교회성장"이라는 학과를 시작하였는데, 바로 그러한 심리학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보며, 그것은 신본주의(하나님 중심)가 아니라 인본주의(사람 중심) 사상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문화에 큰 매력을 느끼고 <신접자, 술사, 복술자, 박수, 진언자 등, Ref.신18:9-11> 그 문화에서 빠져나오지 못하였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기 보다는 사람들이 꾸며내는 것들을 더 신뢰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미워하고 학대하였으며 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하다가 마침내 구약교회는 하나님의 진노로 멸망하였다.   하나님이 그 내용을 성경에 기록하신 이유는 마지막 때의 신자들이 그것을 거울삼아서 똑 같은 죄(신18:9-11)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고전10:1-11)


3. 신-사도개혁운동(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Movement)


피터 와그너의 "신-복음주의"와 죤 윔버의 "신-은사주의(제3의 물결)"가 서로 만나서 혼합하여 대대적인 또 다른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바로 "신-사도개혁운동" 이다.   이 운동은 지금까지 존재해 오던 개신교의 교단들을 종식(the end of denominations) 하고 새로운 개신교의 통합된 미래상을 구현하자는 운동(postdenominational movement) 이다.   이것은 과거의 전통을 배격하고 절대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포스트 모더니즘(post modernism) 시대에 나타나는 일종의 새로운 교회일치, 또는 교회통합 운동이라고 본다.   피터 와그너의 영향을 받은 오순절교파(Pentecostals)와 은사주의자들(Charismatics)이 신-사도개혁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있는데, 그 수는 전 세계적으로 거의 4억명(400 million)에 달하며, 모든 개신교 교단들(Protestant Denominations)에 속한 사람을 다 합친 것 보다도 더 많은 숫자인 것이 통계로 나타났다.< talk2action.org, Resource Directory for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   거기에다 개신교 교단들 안에서도 피터 와그너의 영향을 받아 활동하고 있는 지도자들까지 합치면 굉장한 숫자이며, 과연 와그너는 기독교의 거대한 집단(mega-block)을 "신-사도개혁운동"으로 몰아가고 있는데,  전통적 기독교를 종식하고 새 시대에 새로운 사도들(the new apostles)을 통하여 새로운 기독교의 역사,  즉 새로운 사도행전을 써나가자("we can be history makers")는 것이다.< Peter Wagner, The Second Apostolic Age >   그 역사적 과업을 이루기 위하여 피터 와그너는 스스로 "사도(apostle)"가 되어 앞장서서 이 "신-사도개혁운동"을 이끌고 있다고 본다.   그 엄청난 지지자들은 서로 관계하는 조직망(relational network)을 형성하고 있는데,< talk2action.org > 거기에는 국제사도연합(Internatonal Coalition of Apostles: ICA), 기도투사 네트워크("prayer warrior" network), 세계추수사역(Global Harvest Ministries) 같은 여러 기구들이 있다.

특히 와그너 지도자 양성학교(Wagner Leadership Institute: WLI)같은 전문기관에서는 독특한 실천목회 훈련을 실시하는데, 학생들은 신-사도개혁운동의 현장에서 능력사역을 하는 자들을 통하여 손을 얹고 안수하는 임파테션과 그 활성화(impartation and activation)를 훈련받는다. 그래서 와그너는 WLI website에서 자신의 리더쉽학교에 관하여 설명하며 약속하기를, "학생들은 그들의 신령한 성직으로 진입하기 위하여 성령으로부터 임하는 생동적이고 기능적인 임파테이션과 그 활성화를 획득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임파테이션(Impartation)이란 무엇인가?   바울이 롬1:11-12에서 “내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라고 했는데 여기서 “너희에게 나눠주어(Imparting)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신-사도개혁운동에서는 임파테이션(Impartation)을 강조하면서 성령의 은사를 나누어 준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도적 권위가 다시 회복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사도가 손으로 안수하여 그 성령의 능력을 전달하면(임파테이션 하면), 안수 받은 사람은 초대교회에 사도들에게 임하였던 동일한 능력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 소위 신-사도개혁운동에서 말하는 임파테이션이다.   그래서 나타나는 현상이 쓰러짐, 바닥에 딩굴기, 몸 떨림, 거품물고 까무러치기, 괴성을 지르는 것, 짐승소리, 동물처럼 기는 것, 낄낄거리며 웃기 등인데 이것이 성령의 역사이며 표적과 기사 라고 한다.   이러한 신-은사주의(Neo-charismatic)는 로마 카톨릭을 포함한 다양한 교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온 세계에 신비운동으로 퍼지고 있는데 소위 성령의 제3의 물결(the Third Wave)이며, 알파코스, G-12, 빈야드 운동 등이 여기에 속한다.   와그너 지도자 양성학교(Wagner Leadership Institute)에서 이러한 신비적인 것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데 현재 세계적으로 약 50개국에 지교를 세운것으로 알려져있고, 한국에도 이미 2005년에 세워져 활약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본격적으로 일어날 신비주의에 조심하라고 하셨다(마24:11,24-25, 고후11:14-15).

피터 와그너는 어디에 근거하여 자신을 신-사도라고 하며 또 신-사도개혁운동을 범 세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는가?   앞에서 살펴본 대로 신-복음주의 신학은 성경적 교리를 외면하고 철학적 실용주의 개념으로 신학을 다시 진술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신학 개념으로는 성경에 없는 말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와그너는 그러한 신학적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성경을 무시한다고 본다.   그래서 와그너사도의 정의(definition of apostle)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자기는 성경이 말하는 사도의 증거들, 즉 고후12:12(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 고전9:1(예수를 직접 본것), 고전3:10(예수님의 사도들이 닦은 터위에 다른 터를 닦지 말라) 와 같은 성경의 증거들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 이유는 타협이 안되는 그 성경구절들의 자질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My reason for this is that I do not understand these three qualities to be non-negotiables....)" 라고 하였다. < globalharvest.org/spheres.htm, "Understanding How Apostles Minister in Different Spheres", May 20, 2010 >   와그너가 자기는 고전3:10(예수님의 사도들이 닦은 터위에 다른 터를 닦지 말라) 는 내용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 말씀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바로 그가 예수님의 사도들이 닦아놓은 터가 아닌, 신-사도들이 닦는 새로운 터 위에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와그너 나름대로 새롭게 진술하는 신학적 배경인 것같다.   이러한 주장들이 바로 신-사도개혁운동의 특징이다.

성경에도 오류가 있다고 인정하는 신-복음주의 신학은 성경 밖에서 활동하는 무한한 자유를 누린다.   그러므로 성경적 객관성이 없이, 주관적으로 무엇이든지 주장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적 교리를 떠난 신-사도개혁운동이라고 본다.   피터 와그너는 이러한 신학적 배경을 가지고 각 개인의 주관적 체험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그는 말하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로고스(logos)''레마(rehma)'를 구분하는데 도움이 되는 제안을 오순절(Pentecostal) 신학자들이 만들어 놓았다. . . . '레마'는 성경의 66권(신.구약 전체)에서 발견되지 않는 것을 하나님이 직접주시는 말씀으로 간주하였다"라고 하였다.< Peter wagner, Engaging the Enemy, 1991, pp.15-16 >   이것은 와그너 자신이 직통계시를 주장하는 근거로 제시한 것이다.   와그너는 그러한 직통계시에 의해서 자신이 사도가 되었다.< globalharvestministries.org/index.asp?action=about >   신-사도개혁운동 안에는 무수히 많은 사도들이 있는데 그들이 사도인 것을 어떻게 아는가?   와그너는 그 수많은 신-사도들의 사역을 알아보고 구분하려 할 때 현상학적 접근(phenomenological approach)의 필요성을 이야기 한다.< globalharvest.org/spheres.htm >   현상학적 접근이라는 것은 철학적 개념인데,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은 현상뿐이므로 본체는 인식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타나는 현상만이 실재적이다 라고 주장하며 접근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신-사도개혁운동에 속한 사도들의 사도적 자질을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그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을 보아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신-사도들이 안수하였을 때, 쓰러짐, 바닥에 딩굴기, 몸 떨림, 거품물고 까무러치기, 괴성을 지르는 것, 짐승소리, 동물처럼 기는 것, 낄낄거리며 웃기 등, 여러가지 다양하게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그들이 어떤 부류의 사도적 은사를 받은 것인지를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나타나는 사도적 은사의 현상을 따라서 교회조직사도, 기능사도, 협력사도, 회중사도, 소집사도, 특사사도, 동원사도, 지역사도, 마켓팅사도 등으로 분류하는 희한한 일들을 행한다.   그처럼 사도의 권위를 정하고 분류하는 것현상학적 철학이론에 불과한 것이며, 성경적 증거는 아니다.   그러한 현상들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들이다(출7:10-12, 마24:24)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러한 철학적 개념을 가지고 예수님의 사도들에게 임하였던 동일한 성경적 계시가 오늘날에도 직통계시를 통하여 그들에게 임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은 성경과 맞지 않는다고 본다.   성경은 벌써 그런 이상한 현상들이 마지막 때에 나타날 것을 예고 하고 성도들을 권고하였다.  유다서1:17-18에 보면, 마지막 때에는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 나타나서 자신들의 욕망대로 행하는 일이 있을 것인데 그들은 "흉내내는 자들(mockers)"이라고 하였고,<한글개역성경에는 "기롱하는 자들"로 번역됨> 그런 상황이 일어나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에베소교회 성도들은 바로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자칭 사도"라고 하며 흉내내는 자들을 분별해 내었는데 그들의 특징은 "거짓말하는 자들(Liars)"이었다(계2:2-kjv).   그러한 경험을 성경에 기록한 것은 마지막 때의 성도들도 그렇게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글을 기억하면서 많이 나타나게 될 "자칭 사도"들을 구별해 내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지금 말세의 끝 부분에 사는 우리 예수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사도를 흉내내면서 "자칭 사도" 라고 하는 자들을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기록한 말씀으로 분별해 내야 한다.   사도 바울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거짓 사도"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였다(고후11:13).   또 예수님마지막 때에 나타나는 많은 거짓 선지자들유혹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셨으므로 마지막 때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거짓 사도들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고 당연한 것이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는데 기록된 말씀으로 그렇게 지켜주신다.   거짓 선지자마음에서 지어낸 말을 하기 때문에(렘23:16)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결국 탄로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러한 거짓 선지자와 꿈꾸는 자들이 일어나서 꿈(dream)이적(sign)기사(wonder)를 행하며 미혹할 때에 하나님의 "그 명령을 지키며"(신13:4), 하나님의 "명하신 도"(신13:5)를 기준으로 하여 그들을 분별해내고, 그들을 처벌하라고 명령하셨다(신13:1-5).   우리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러한 속임수들을 발견하고 분별(히5:14) 할 수 있으며,(건전한 교리의 단단한 식물을 먹을 줄 아는 성숙한 신자로서- P.E. Hughes)   하나님이 그 목적을 위해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사도들을 통하여 마감한 신.구약 성경, 66권을 주셨다(히1:1-2).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도들에 의하여 공인된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에 더 추가하거나 빼내지 못하도록 확정하셨다.

잠30:6 = "너는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고전4:6 = "기록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계22:18-19 =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할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도에게 명하셔서 기록하게 하신 "이 책의 말씀"에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라고 엄하게 경고하신 것은
            사도 요한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다른 사도들에게도 적용되는 경고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도들이
            기록한 계시의 말씀에서도 누구든지 더하거나 빼거나 하지 못한다.   우리를 구원하는 구속의 진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들에게
            주신 계시로써 마감되었고 그 기록된 말씀이 곧 성경이다.   그래서 "기록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라고 하였다.  



4. 결    론


결론적으로 신-사도개혁운동(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Movement)은 성경적 운동이 아니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유1:18)의 인본주의 운동이며, 와그너는 그의 신-사도개혁운동을 통해서 하나님께 매우 위험한 도전을 하고 있다고 본다.   피터 와그너훌러신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오켕가(Okenga)의 "신-복음주의 신학"과  교회성장학의 아버지"인 맥가브란(McGavran)의 "실용주의"가 몸에 배인 분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그의 성경관은 점차로 변하면서,   "교리는 별개의 것"   >>>   "성경에도 오류가 있음"   >>>   "기록된 성경말씀 보다는 직통계시가 더 유효한 것"   이라는 순서로 발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그가 신-사도개혁운동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을 보면 성경말씀을 무시하고 아무 부담감 없이 새롭게 진술하는 신학을 적용하는 것 같으며, 그러한 성경관은 오늘날 전통을 무시하고 절대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 사상과 너무 잘 어울린다고 본다.   와그너는 할 수만 있으면 성경을 떠나서 새로운 것을 도입하여 인기를 얻으므로 리더쉽을 유지하려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예일대학의 역사학 교수인 맥뮬렌(MacMullen)이 가경(the Apocrapha)에 있는 요한행전(Acts of John)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그 요한행전을 통해서 임하였다고 보았는데, 와그너맥뮬렌의 그 말을 인용함으로써 정경이 아닌(신.구약 66권의 성경이 아닌) 가경(로마 카톨릭에서는 가경을 믿음) 하나님의 구원의 교리를 뒷받침하는 것처럼 설명하였다.< Peter Wagner, The third wave of the Holy Spirit, pp.81-82 >   그는 성경에도 오류가 있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성경이 아닌 것에서도 성경(정경)과 같은 권위를 도출해 내는데 그것이 바로 신-복음주의 신학이며 신-사도개혁운동의 사상이라고 본다.   오늘날 널리 확산되고 있는 신-복음주의 신학신-사도개혁 운동은 한마디로 성경적이 아니며, 거대한 물결을 일으키며 홍수처럼 잘못된 신앙으로 전 세계를 덮어버리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세상 끝을 장식하기 위하여 전개되는 마지막 때의 현상(살후2:3)이라고 본다.  

그래서 예수님은 세상 끝날에 일어날 여러 가지 사건들을 그의 사랑하는 제자 사도 요한에게 환상으로 미리 보여주시면서 계속 반복하신 말씀이 "귀 있는 자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다(계2:7,11,17,29, 계3:6,13,22).   그리고 경고하셨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come out of her 음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18:4).   우리들은 마지막 때에 나타난 신-사도들의 말을 듣지 말고, 예수님의 사도들이 전한 기록된 말씀을 듣고 깨달아 분별해야 한다고 믿는다(히5: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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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뉴스엔죠이

wanglee@newsmission.com

개혁주의 신학자들이 한국교회에 확산 중인 관상기도와 왕의기도에 대해 ‘비성적’이라는 견해를 내세우며 ‘주의’를 당부했다. 11일 대전 새로남교회에서 열린 ‘2011 한국 개혁주의 신학대회’에서다. 본지는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 신학대회 기사를 3회에 걸쳐 게재한다.

1) ‘2011 한국 개혁주의 신학대회’ 정리
2) 개혁주의 신학적 입장에서 본 ‘관상기도’
3) 개혁주의 신학적 입장에서 본 ‘왕의기도’

 

신비주의에 뿌리 둔 관상기도, 종교다원주의에 쉽게 노출

이날 신학대회에서 ‘관상기도는 신비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어서 교회사적으로 입증된 바와 같이 종교다원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 관상기도를 받아들일 수 없는 가장 큰 뭄제점으로 지적됐다.

김남준 교수(총신대, 열린문교회 담임)는 “관상기도에 대해 복음주의 안에서도 학자 혹은 목회자들마다 각기 다른 판단들을 내리고 있다”면서 “그러나 객관적이고 건전한 신학적 판단을 따를 때 분명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그것은,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관상기도의 뿌리는 가깝게는 기독교 신비주의며 멀게는 종교일반의 신비주의라는 사실”이라며 “역사적으로 볼 때 심화된 기독교 신비주의일수록 이교적 신비주의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 종교다원주의에 쉽게 노출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누가 이론을 제기할지라도 오늘날의 관상기도운동은 종교다원주의로 흘렀거나, 그렇게 흐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며 “이러한 운동의 확산은 장기적 관점에서 한국교회의 영적 건강에 유익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관상기도의 신비주의 뿌리와 관련해서 그 사상적 배경으로 △신비주의를 지지하는 뉴에이지 사상 △중세의 신비주의 △스페인과 프랑스 프로방스에서 시작된 중세 유대교의 신비주의를 의미하는 까발리즘(Kabbalism) △종교개혁 시대와 근대 이전의 신비주의를 꼽았다.

신론 및 기독론 손상 통해 종교다원주의 향한 문 열어

또한 이날은 ‘신학대회’답게 관상기도에 대한 개혁주의 조직신학적 관점에서의 문제점들이 각론별로 지적됐다. 신론, 기독론, 구원론, 인간론, 교회론 모두에서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발표됐다. 그 중에서도 신론과 기독론에 가장 큰 문제가 있었다.

관상기도운동을 주도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신관은 자연과 우주 만물을 모두 신으로 여기는 ‘범신론’이거나, 범신론에서 의미하는 신에 인격적 요소를 가미한 ‘내재신론’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라영환 교수(명지대)는 “현대 관상기도운동가들이 ‘타 종교에서도 신과의 합일이 가능한다’고 하는 종교다원주의적 발언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잘못된 신관에 서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기독론과 관련해서는, 관상기도운동의 경우 구원에 있어서 예수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부인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라 교수는 “그들은 ‘인간의 영혼이 관상을 통해서 하나님을 마주보고 그분과 연합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서 “이러한 주장대로라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남에 있어서 예수그리스도라는 중보자가 필요 없게 된다”고 말했다.

김남준 교수도 “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 게시되는 속성보다는 자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의식을 통한 하나님과의 합일이 더 중요한 관심사”라며 “관상기도는 이렇게 기독론을 심각하게 손상시킴으로써 종교다원주의를 향해 문을 열고 있다”고 밝혔다.

‘성경적 기도관에 대한 왜곡’ 초래하고 있어

이밖에도 관상기도가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문제점 중 커다란 문제점으로 김남준 교수는 ‘기도관에 대한 왜곡’을 꼽았다. ‘기도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경적이고 개혁신학적인 정의로부터 크게 일탈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들은 ‘기도 속에서 스스로 정적과 침묵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전달 받는다’고 생각하며, ‘침묵을 동반하지 않은 기도는 진정한 의미의 기도가 아니거나 매우 낮은 수준의 기도’라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성경적 근거가 매우 희박하다”고 말했다.

라영환 교수는 관상기도 수련에 있어서 짧은 단어나 문장을 반복해 기도하게 하는 만트라(mantra)의 실천에 대한 지나친 강조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진언이란 불리는 만트라의 실천에 대한 강조는 성령님의 도우심과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신자의 마음의 집중에서 나오는 기도의 능력이 아닌, ‘기계적인 실천’ 자체에 무슨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라 교수는 “오늘날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출처가 불분명한 관상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들에게 은혜의 방편으로 주신 말씀과 성례와 기도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병왕 기자 ⓒ뉴스미션

출처: 아멘넷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박옥수 구원파 탈퇴자들이 박옥수 씨가 홍보한 불법 의약품으로 인해 피해를 당했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박옥수 씨가 특정 제품을 암과 에이즈 치료에 효과 있는 것처럼 홍보했다면서 박옥수 씨의 설교 내용이 담긴 동영상을 제시했다.

박옥수 (기쁜소식선교회(구원파)) 씨는 이들이 제공한 동영상 설교에서 "○○ 딱 들어가면 이놈들이 들어가서 암세포를 딱 둘러서 포위를 한다. 뺑 둘러 쌓니까 암세포가 포위를 당해가지고 공급을 못 받아서 먹지를 못해서 말라 죽어버린다. 전혀 독이 없으니까 무지무지 먹어도 괜찮다"고 말해 홍보에 직접 나섰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암을 치료할 수 있다는 박 씨의 홍보는 암 환자와 가족들에게 기대를 갖게 했다. 전해동 씨는 방광암에 걸린 어머니를 위해 박옥수 씨가 홍보한 제품을 구입했다. 그러나 식약청에 확인한 결과 구입한 제품은 의약품으로는 물론 건강기능식품으로도 등록되지 않은 '무등록 제품'이었다.

전해동(전 구원파 신도) 씨는 기자회견에서 "생각을 해보라"며 "이것을 녹차라고 하면, 조직배양삼도 들어갔겠지요. 이 녹차인데, 이것을 녹차라고 안다면 암환자들이 이걸 복용하겠느냐. 절대 안 한다. 녹차인 줄 알면 한 병에 20만 원이나 주고 사겠냐"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나선 전 구원파 신도들은 박옥수 씨가 제품을 홍보하면서 동시에 믿음을 통한 치료를 강조했다고 주장했다. 암환자들이 병원 치료를 중단하고 제품을 복용하도록 박옥수 씨가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전 씨는 "암, 에이즈 고치는 약이라고 하면 보통사람들은 믿기 힘들다"며 "그렇지만 그 안에 있는 분들은 박옥수 목사는 거짓말을 안할 것이다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이덕술 목사(사이비종교 피해대책 연맹)는 "이것은 생명에 대한 문제"라며 "암, 에이즈 등에 걸린 환자들은 지푸라기도 붙들고 싶은 마음인데, 그 마음을 이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이비종교 피해대책 연맹과 구원파 탈퇴자들은 박옥수 씨가 홍보한 제품을 복용중인 암환자가 5백명에 이르며, 제품 복용 이후 치료 시기를 놓쳐 숨진 사람이 8명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한편, 박옥수 구원파, 즉 기쁜소식선교회측은 해당 제품 생산업체와 자신들과는 경영상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CBS TV보도부 최경배 기자
ⓒ CBS 크리스천노컷뉴스



장바울 목사의 황당한 레이더 영분별 특강
마네킹 세워놓고 "찌잉 신호가 목 아래로 내려오면 사람이 죽어"
2011년 07월 04일 (월) 07:22:27 정윤석 unique44@paran.com

   
▲ 인체를 영적인 레이다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장바울 목사
집회 장소에는 마네킹이 서 있다. 마네킹 머리부터 턱까지 중앙에 선이 그어져 있다. 마네킹의 뒤통수도
 마찬가지다. 뒷 머리 상단부터 경추까지 중앙에 선이 그어져 있다. 좌우측을 구분해 놓았다. 목사란 사람이 그 앞에 서서 뭔가를 설명한다. 들어보니 영분별에 대한 것이다. 내용이 신기했다. 성경을 통해 성령의 역사인지 아닌지, 거짓선지자인지 아닌지를 진단하고 분별하자는 게 아니었다. 그 목사란 사람은 인체 자체가 레이더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레이더에 신호가 잡히듯 인체의 특정 부위에 잡히는 신호를 따라 특정 사건이 발생하는 것을 감지하고 해석한다는 것이다.

목 이하에서 ‘찌잉, 찌잉~’ 찌르는 듯한 신호가 잡히면 누군가 사망한다, 누가 죽을까? 오른쪽에서 신호가 잡히면 나와 가까운 사람이, 왼쪽에서 잡히면 촌수에서 먼 사람이다. 척추 뒷 부분에서 대각선으로 신호가 오는 느낌이 들면 3개월 안에 사람이 사망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무속인들이 길흉화복을 알아 맞추는 ‘점’치는 행위보다 더 이상하다.  세계복음화운동본부(세복운) 총재라는 장바울 목사(전 수지 성령의교회 담임)의 소위 ‘영분별’ 특강이다. 기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가 장 목사의 영분별 특강이 담긴 2009년 7월 23일 영적대각성 집회의 동영상을 확보해 살펴본 내용이다.

   
▲ "엄마, 아빠가 사망하기 직전에 여기 신호가 잡혀요"
“(마네킹의 머리를 만지며)영적인 레이더··· 지구 반대편 일까지 잡아낼 수 있어”
장 목사의 말을 들어보자.

“영분별이라고 해서 단순히 영들만 분별하는 게 아니고 우리의 일상, 쉽게 얘기해서(마네킹의 머리를 만지며)영적인 레이더라고 생각해야 돼. 영적인 레이더야. ··· 영적인 세계에서 영적인 레이더야. 그래서 여러분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잡아낼 수 있는 거야. 이건 아주(마네킹의 머리를 두드리며) 고성능 레이더란 말이야”(2009년 7월 23일 영적대각성 집회, 하단 녹취록 참고).

장 목사의 영분별이란 것은 사람의 머리가 영적인 레이더 역할을 하면서 시작된다. 머리에 오는 신호로 지구 반대편의 일까지 신호를 잡아내서 나쁜 일, 좋은 일, 하나님이 역사하는 일인지 아닌지를 파악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머리를 중심으로 왼쪽, 오른쪽, 위쪽, 아래쪽 신호에 따라 의미도 달라진다.

머리 위쪽에서 신호가 잡히면 마귀 역사가 강한 것은 아니지만 기분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뒷목 아래쪽에서 ‘찡찡찡’ 신호가 오면 사람이 다치거나 심하게 아프거나 하는 문제가 생기고 목에서 목 이하로 신호가 내려오면 사람이 사망한다는 것이다. 결과도 빨리 나타난다. 신호가 오면 즉각서부터 24시간 안에 사람이 죽고 신호가 아주 자주 임하면 늦어도 3개월 안에는 사망한다고 한다.

“목에서 목 이하로 (‘찡! 찡! 찡! 신호가)내려올 때는 사람이 사망해요. 엉? 목 이하로 내려오면 사망이란 말예요. 사람이. 무슨 얘기인지 아시겠어요?”

“그러면 목에 가까울수록 내게 권속이 가까운 사람이 사망하는거야. 그러니까 제일 가까운 쪽은 엄마·아빠, 엄마, 아빠가 사망하기 직전에 사망하기 전에 여기 신호가 잡혀요. 이 영적 레이다는 보통 즉각서부터 바로 신호가 오면 즉각서부터 5분, 10분 뒤부터 24시간 안에 작동을 하고 아주 자주 임하는 것은 보통 2~3달 걸려요. 사람이 사망하는 것은. 3개월까지는 못가요. 3개월 못 가서 사망이야.”

   
▲ "머리가 작은 사람은 (영분별이) 불리해 거기가 거기 같으니까"
그의 동영상을 듣고 정리하면 작은 리스트가 하나 나올 정도다.
머리 중심 우측신호 - 말씀의 세계, 예배시 목사님의 설교가 무조건 나에게 주는 말씀이다.
머리 중심 좌측신호 - 여기 있는 모든 사람에게 영적 깊은 능력을, 은혜를 베풀어 주리라.
머리 뒤쪽과 앞쪽 동시신호 - 악한 영이 역사한다, 내게 불이익이 온다는 신호다(누군가와 대화를 하는데 이 신호가 오면 악한 영이 역사한다는 의미, 상대가 사기꾼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 고속도로에서 이 신호가 잡히면 경찰이 스피드건으로 단속하는 경우도 있다.
운전시 뒷 머리 아래쪽 신호 - 고속 도로 전방에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머리에 신호가 오는 것을 감지하고 그것을 해석하는 것이 장 목사의 ‘영분별’이다. 이를 적절히 잘하기 위해선 필요조건이 하나 있다. 머리가 크면 유리하다는 것이다. 머리가 레이더 역할을 하고 신호가 섬세하게 온다. 그래서 머리가 작은 사람은 신호가 오면 거기가 거기 같아서 헷갈릴 수도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좌우지간 머리가 조그만 사람은 불리해. 왜냐하면 거기가 거기 같단 말예요. 머리가 작으니까(자신의 주먹을 가리키며). 머리가 작으면 거기가 거기 같으니까 헷갈리지만 머리가 큰 사람은 구분이 분명하고 명확해”(하단 녹취록 참고).

소위 ‘얼큰이’(얼굴이 큰 사람)들은 영분별을 잘할 수 있다는 웃지 못할 주장이다. 장 목사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진짜 전 세계에서 저만 하는 거”라며 “영분별의 세계에 대해서 국내에서 본 사람이 있어? 한번도 본 사람이 없어”라고 강조한다. 전세계에서 자신만 한다는 이 영분별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장 목사의 특별 안수도 필요하다. 안수를 통해 자신의 영분별이 임한다는 것이다.

   
▲ 2009년 유럽집회를 알리는 포스터
장 목사의 ‘영분별’ 방식은 성경적 지지를 전혀 받을 수 없다. 정통교회의 영분별이 어디 이런 것인가? 사람의 생로병사를 파악하고 고속도로에서 앞에 경찰이 있는가 없는가를 알려주고 상대가 사기꾼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는 것일까? 이건 사람의 길흉화복을 판단하는 무속인들의 행위이지 정통교회가 추구하는 영분별과는 무관하다는 지적이다.

영분별의 은사에 대해 말씀한 고전 12:10은 초대 교회 당시에 성행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가르침과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는 은사를 의미한다. 길흉화복 알아내는 것과는 무관하다.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고 말씀한 요한1서 4:1은 거짓된 가르침이나 교리로 미혹하는 거짓선지자들을 분별하라는 말씀이다. 장 목사의 안수를 받아서, 머리를 레이더처럼 이용해 사람이 죽는 것을 감지하고 경찰의 단속을 피하게 하는 것은 도무지 성경적 분별력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그런데도 일부 교회들과 선교지에서 장바울 목사는 적잖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유럽, 미주, 아시아 지역 등 해외 집회를 쉴새없이 다닌다. 올해 6월 중순에는 몽골의 한 유명 교회에서 집회를 했다. 올해 1, 2월에는 미국을 비롯 콜롬비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에서 집회를 했다. 작년 2010년 3월부터 4월까지는 벨기에와 프랑크프루트에서 ‘말씀과 성령의 능력집회’란 것을 진행했다. 국내에서도 적잖은 집회를 했다. 교계 일부 언론에도 광고가 꾸준히 나왔다.

   
▲ 장바울 목사 집회모습(성령의 교회 사이트 캡쳐)
유명 인사들이 장 목사에 대해 진정한 성령 사역자인 것처럼 소개하는 경우도 있었다. 몽골의 유명 선교사가 자신의 관련 사이트에 장바울 목사의 실명을 거론하며 “깊은 기도 생활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며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시는 삶을 사(신다)”며 “특별하게 부어주시는 은사 가운데 특히 은사를 나누어주고 또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역을 하시는 분”이라고 평가했다. 이 선교사의 부인은 장바울 목사의 단체에서 기도훈련까지 받은 것으로 나온다.

기독교 영상물 제작으로 유명한 한 감독도 자신의 관련 사이트에서 장바울 목사를 언급해 놓았다. 장바울 목사의 집회에 가서 그의 설교를 듣고 안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감독은 장 목사에 대해 “목사님은 철저하게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사신 분이셨다”, “영적인 내공이 보통이 아닌 것을 이미 기도 가운데 알았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겸비한 성품이며 주님의 마음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온유함 뒤에 포진한 강력한 영적 내공이 이미 느껴진 분이다”고 평가했다.

장바울 목사는 과연 교계 일각의 사람들이 평가하는 것처럼 ‘성령의 사역자’일까? 그의 소위 영분별 특강 동영상을 보니 이런 궁금증을 갖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이다.

(곧이어 인터뷰 기사 이어집니다)

2009년 10월 6일 화 제 36차 영적대각성능력성회(세계복음화운동본부 총재, 장바울 목사)
장소: 경기도 수지 성령의교회 바울관

“이건 진짜 전 세계에서 저만 하는 거예요. 딴 사람은 할 수가 없어”
이건 진짜 전 세계에서 저만 하는 거예요. 딴 사람은 할 수가 없어. 영분별의 세계에 대해서 국내에서 본 사람이 있어? 한번도 본 사람이 없어. (나도)몇 십년 동안 하면서 이걸 본 사람이 없어. 영분별의 세계가, 사람들이 ‘영분별’, ‘영분별’하지만 영분별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없다는 거야. 영분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없는 이유가 뭘까? 세상이 그만큼 혼란하고 타락했기 때문이에요”

“이건 아주(마네킹의 머리를 두드리며) 고성능 레이더란 말이야”

“자 오늘 우리가 영적 세계에서 영분별을 하는데, 말 그대로 영들을 분별하는 거예요. 영분별이라고 해서 단순히 영들만 분별하는 게 아니고 우리의 일상, 쉽게 얘기해서(마네킹의 머리를 만지며)영적인 레이더라고 생각해야 돼. 영적인 레이더야. ···

영적인 세계에서 영적인 레이더야. 그래서 여러분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까지 잡아낼 수 있는 거야. 이건 아주(마네킹의 머리를 두드리며) 고성능 레이더란 말이야. 그래서 여러분들이 영분별에 탁월하면 여러분들 주변에서 일어나는 나쁜 일, 좋은 일, 하나님이 역사하는 일, 하나님의 말씀서부터 모든 것을 잡아내는 거야.
영적 레이더가 잡아내는 거야. 하나님께서 다 보시고 알려주니까 이건 지금으로 얘기하면 엄청난 여러분의, 최정예 영적 레이더를 갖는거야”

“머리가 작으면 거기가 거기 같으니까 헷갈리지만 머리가 큰 사람은 구분이 분명하고 명확해”
“머리를 반으로 잘랐다고 생각했을 때 여기 그림이 다 있죠? 여기 반으로 잘랐을 때 여기(머리 윗 부분을 동그랗게 손가락으로 그리며) 동그란 게, 자 동그랗게 돼 있죠? ··· 머리에 그려진 라인들은 사람마다 조금 다를 거 아니예요. 그쵸? 머리가 뾰족한 사람도 있고, 마름모꼴로 생긴 사람, 네모나게 생긴 사람, 원통형, 짱구형, 찌그러진 사람, 뒤통수가 빗나간 사람 등 별 사람 다 있잖아요?

좌우지간 머리가 조그만 사람은 불리해. 왜냐하면 거기가 거기 같단 말예요. 머리가 작으니까(자신의 주먹을 가리키며). 머리가 작으면 거기가 거기 같으니까 헷갈리지만 머리가 큰 사람은 구분이 분명하고 명확해. 하나님께서 다 아시고 머리를 크게 만드신 거야. 왜? 구분을 명확하게 하려고. 이거를. 그렇잖아요?”

“찡찡찡 신호가 오면 그것이 방향이야, 그쪽을 보라 이런 얘기야”

(마네킹의 이마 중심에서 좌측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찡찡찡 신호가 오면 그것이 방향이야, 그쪽을 보라 이런 얘기야. 그 쪽을 주의해서 봐라 이 뜻이야. 자, 길을 가는데 옆으로 방향 신호가 찡 오는 거야. ‘아, 저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다!’ 찡 오면서 갑자기 뒤통수가 아퍼, 그래서 그 방향을 봤더니 갑자기 야구공이 날아온 거야.”

“영분별의 은사가 임하기 시작하면 머리 이 중심에 왼쪽 이런 데가 아프기 시작해”
“머리 뒤를 보세요. 이 방향을 가리키는 곳에서 선을 목까지 주욱 내려오는 거야. 척추까지 내려 그었어. 정확하게. 가운데를! 자 그랬을 때 이 머리 위에서 (뒤통수의 정중앙을 손가락으로 그으며)이 라인을 그은 것은 마귀가 역사하는 라인이야. 마귀! 악한 영이 역사한단 말야. 그래서 이 머리가, 머리가 좌우지간 뒤통수가 갑작스레 아픈 사람들은 안 좋은 일이 있는 거야. 뒤통수 아픈 사람 손 들어 보세요. 혹시. ···

뒤통수 어디가 아파요, 정확하게? 제 손가락이 어디로 갔는지 잘 보세요. (마네킹 뒤통수 중앙의 선을 기준으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여기서 좌측, 우측, 중앙, 양쪽에 자, 이걸 잘 보세요. ··· 자 이 중심에서 잘 해야 돼. 이 중심에서 왼쪽이 아픈 것은 지금 영적인 세계에 대한 이해를 지금 받고 있는 거야. 영적인 세계에 대한 이해를 받으면서 제가 설명할 때 영분별이 임하는 거야. 영분별의 은사가 임하기 시작하면 여러분들이 머리 이 중심에 왼쪽 이런 데가 아프기 시작해. 여러분 설명 들으면서 아픈 현상이 들어온단 말야.

머리가 뒤쪽에서 아프면서 머리가 정확히 가운데가 ‘찡! 찡! 찡!’ 아픈 사람들은 또 다른 거야. 자 이게 마귀가 역사하는 데 위에서 역사하는 부분일수록 약해 마귀가 역사하는 게.
그래서 요만치만 아프다, 그러면 이건 나를 기분 나쁘게 하는 일들이 생기는 거야.”

“중간쯤 오면 싸움이나 다툼을 할 수가 있어”
밑으로 갈수록 생명의 위협을 주는 거야. 그래서 이 중간쯤 오면 싸움이나 다툼을 할 수가 있어. 여러분들이 집회가 끝났는데 집에 은혜 받고 좋아서 ‘할렐루야, 주님 감사합니다’ 하고 들어갔는데 뒷머리가 ‘띵~ 띵~’했다? 그랬는데 남편이 인상을 파악 쓰면서 ‘어디 갔다 와?’ ··· 이런 문제가 생기기 전에는 그런 현상이 오는 거예요. 여기 뒤통수에.”

“(‘찡! 찡! 찡! 신호가)내려올 때는 사람이 사망해요. 목 이하로 내려오면 사망이란 말예요”
“(마네킹 목 뒷 부분 아래를 가리키며)이게 조금더 내려갔다. 이게 조금더 내려가서 아프기 시작하면 이건 사람이 가다가 넘어졌는데 코가 깨지거나 코피가 터지거나 아니면 데리고 다니던 딸이 넘어졌는데 (입이)찢어져서 피가 난다든지 또는 이빨이 깨지거나 아니면 애가 아파서 병원에 가서 며칠 동안 입원하거나 하는 현상이 있을 때는 요 밑에가 (신호가)오고.

차를 몰고 갈 때 신호(뒤통수에 찡! 찡! 찡하는 신호를 의미한다)가 잡히면 교통사고가 나는데 내가 남의 차를 들이 받아요. 들이 받아요. 내가 들이 받으니까 누가 손해나는 거예요? 내가 손해나는 거죠? 그럴 때는 신호가 이 아래로 오는 거예요.

그러면 그 밑으로 더 내려오면 인사사고가 나는 거예요. 사람이 다치거나 심하게 아프거나. 이런 문제가 생기고. 목에서 목 이하로 (‘찡! 찡! 찡! 신호가)내려올 때는 사람이 사망해요. 엉? 목 이하로 내려오면 사망이란 말예요. 사람이. 무슨 얘기인지 아시겠어요?

“누가 죽는지가 중요하잖아. 목 이하에서 ···오른쪽에 신호가 잡힐 때···나를 중심으로 해서 가까운 쪽이야”
사망인데 문제는 누가 죽는 게 중요하잖아. 김OO이 죽는지, 누가 죽는지가 중요하잖아. 목 이하에서 신호가 잡힐 때, 그런데 자, 오른쪽에서 신호가 잡힐 때는 나를 중심으로 해서 가까운 쪽이야. 그러니까 여자 분은 친가, 그 다음에 왼쪽은 외가, 자, 또 하나는 뭐냐, 아픈데 내 오른쪽에 나하고 가까운 사람, 촌수로 했을 때 가까운 사람, 왼쪽은 촌수에서 먼 사람이라 생각하면 되는 거야. 이게 굉장히 생각보다 정확해요.

“이 영적 레이다는 보통 ···5분, 10분 뒤부터 24시간 안에 작동을 하고···”
“그러면 목에 가까울수록 내게 권속이 가까운 사람이 사망하는거야. 그러니까 제일 가까운 쪽은 엄마·아빠, 엄마, 아빠가 사망하기 직전에 사망하기 전에 여기 신호가 잡혀요. 이 영적 레이다는 보통 즉각서부터 바로 신호가 오면 즉각서부터 5분, 10분 뒤부터 24시간 안에 작동을 하고 아주 자주 임하는 것은 보통 2~3달 걸려요. 사람이 사망하는 것은. 3개월까지는 못가요. 3개월 못 가서 사망이야.”

“대각선으로 신호가 오는 느낌이 온단 말이야? ··· 한 3개월 안에 사망이야”

척추 있는 곳에 신호가 잡히면서 뭐를 금으로 그은 것 같이 사인이 대각선으로 신호가 오는 느낌이 온단 말이야? 갑작스레 신호가 오면서 이 목이 아프기 시작하는 사람은 그 앞에 있는 사람이 한 3개월 안에 사망이야. 그러니까 제가 이거 내가 ‘3개월밖에 못 삽니다’ ‘에이, 내가 3개월밖에?’ 그 다음날 급성 간암 판정받고 3개월 안에 사망했어. 그런 사람 많아. 줄 섰어. 가보면 다 알어. ···그래도 물론 이걸(척추에서 대각선으로 신호가 잡히는 것)로만 판단하지 않아요. 제게는 또다른 은사가 있으니까. 다른 은사가 있지만 1차적으로 진단을 전부 이걸로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 이런 건 처음 들어보는 거지? 이건 영적 세계!”

“영분별이 열리기 시작하면, ···(머리)오른쪽 중심의 위에서 갑작스레 신호가 와. ‘찡! 찡! 찡!’”
“정수리 중심으로 우측 편에 사인이 온다. 정수리 중심에서 우측편에! 야, 이거 오늘, 이거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이거는 안수를 해줘야 하거든요. 시간이 엄청 걸리는데! 자, 오른쪽은 말씀의 세계. 말씀의 세계가 어떤 것인지 여러분들이 잘 이해를 해야 해요. 여러분들이 교회를 가는데, 이 영분별이 열리기 시작하면, 교회를 가는데 갑자기 (머리)오른쪽 중심의 위에서 갑작스레 신호가 와. ‘찡! 찡! 찡!’ 신호가 온다는 말이에요. 신호가 어떻게 오냐 하면 아픈 듯이 ‘찌잉~ 찌잉~’ 이렇게 반복해서 오는 거예요. 아니면 아픈 게 주욱 있다가 한참 있다가 사라져.

언제 사라지느냐? 깨달으면 사라져.
그런데 여러분 여기 집회가 끝나고 나서 머리가 아프다고 두통약 먹고 병원에서 검사하는 것, 그건 안 되는 거야. 이건 영분별이 작동하는 거야. 영분별이 작동하는 것과 편두통은 다른 거야. 그러면 여러분, 이걸 모르면, 옛날에 내가 이걸 제가 안 가르쳐줬더니 머리가 아프다고 약 사먹고 병원 가는 사람 있는데 아무 이상 없다고 해서. 그래서 내가 영분별 가르치니까 사라져요. 여러분들 영분별은 신호가 왔다가 사라지는 거야. 어떤 사람들은 아프다고 하는데 이건 아픈 게 아니야. 신호를 주는 거란 말야. 신호. 하나님께서 ‘띠잉~’하고 신호를 줬는데 지레 겁먹고 이걸 편두통이라 생각하지 말고···

‘지잉~ 지잉~’ 신호를 주는 거야. 신호는 우리가 단순히 알게 하기 위한 거란 말야. 우리가 살짝, 살짝 신호를 주면 알아요, 몰라요? 신호를 주시는 것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시는 거란 말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신다는 거야.”

“오늘 설교는 무조건 너에게 주는 거야··· 그런 건 우측에서 신호가 가는 거야”

“우리가 머리 위가 있는데 머리가, 자 오늘 예배 드리러 가는데 오른쪽 중심에서 신호가 와. 위에서부터 신호가 수직으로 내려와 ‘찌잉’하고 중심에서 우측에서 신호가 와. 이 무슨 뜻인가 하면 말씀의 세계라 했어요. 오늘 예배 드리러 가는데 신호가 오는 사람은 오늘 목사님께서 단에서 설교하는 말씀은 무슨 말씀이다? 너에게 주는 말이다. 오늘 설교는 무조건 너에게 주는 거야··· 그런 건 우측에서 신호가 가는 거야

“오늘 내가 여기 있는 모든 사람에게 영적 깊은 능력을 베풀어 주리라, 그 때는 왼쪽에 신호가 와”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은, 자, 오른쪽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때는 여기에 신호가 와요(손가락으로 뒤통수 중앙을 가리킴). 그 다음에 마귀가 역사하는 그 밑에가 아니라 여기에 신호가 와요. 그 다음에 영적인 세계를 깨닫는 것은 여기가 와. 자 우리가 보세요. 영적인 은혜가 임하고 은사가 임할 때는 왼쪽에 신호가 와. 목 중앙에 상단에 왼쪽에 신호가 와. 말씀에서 은혜를 받을 때는 오른쪽에 신호가 와. 자 이 얘기는 뭔가 하면 단에 올라갔는데···. ‘주님···’ 왼쪽에 신호가 와. ‘치이이잉!’ 이 얘기는 뭔가 하면 오늘 내가 여기 있는 모든 사람에게 영적 깊은 능력을, 은혜를 베풀어 주리라, 그 때는 왼쪽에 신호가 와

“이 신호가 잡히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어느 쪽 방향에서 역사하는 지를 안단 말야”
(강단에서 왔다 갔다하며)제가 여기서 왔다 갔다 하지. 왔다리~ 갔다리 한단 말야. 자, 왔다리 했다가 갔다리 한단 말야. 왜 이걸 하냐? 가면 신호가 잡힌단 말야. 이쪽으로 가면 또 신호가 잡혀. 이 신호가 잡히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하나님께서 어느 쪽 방향에서 역사하는 지를 안단 말야. 하나님께서 저 뒤면, 저쪽, 저쪽이면 저쪽, 하나님께서 예를 들어, ‘야, 췌장에 암이 있는 사람이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쪽, 여러분, 하나님이 말씀하는 쪽으로 역사하는 거예요. ··· 하나님께서 사인을 주는 거야. 기본적으로 사인을 주고, 환상이 뜨고, 말씀을 하면 치료가 되고 회복이 되는 거야. ··· 능력이 임하기 시작하면 여러분 알게 돼”

“(마네킹의 뒤통수에서 뒷목뼈까지 손가락으로 그으며)이것이 깨달음의 라인이야”
(마네킹의 뒤통수에서 뒷목뼈까지 손가락으로 그으며)이것이 깨달음의 라인이야. 자, 왼쪽과 오른쪽이야, ‘아, 오늘은 신호가 별로 안 잡히네’ 이 중앙에, 머리 중심의 중앙에 신호가 잡히는 사람 손 들어봐요. 혹시 여러분들 중에. 아! 안 잡혀! 내가 오늘··· 머리가, 자, 여러분들 영분별의 은사가 지금 안 임해서 그래. 이 머리 중앙에, 내일이라도 괜찮아요. 손 드시면! 머리 이 중앙에 오른쪽에 신호가 오는 사람은 회개해야 할 거리입니다. 회개, 회개를 해야해. 지금 영분별의 은사를 한사람도 안 받았잖아요.

그래서 지금 몇 번 안수를 받은 사람은 영분별이 임했고 그 다음에 여러분에게 영분별이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설명을 듣고 있으니까 임하고 나면 여기 아픈 사람 많을 거예요. 요거는 말씀의 세계에서 회개할 거예요. 말씀의 세계에서 회개한다는 것은 예를 들어서 여러분들 만일에 갑자기 혈기가 나서 말을 함부로 할 수도 있잖아. 화가 나서 흥분하고 화를 내면 신호가 어디로 오냐 하면 신호가 여기로(후두부 중앙 우측을 가리킨다) 와요. 하나님께서 ‘회개해라’ 무슨 얘기인지 알죠?”

“(머리 뒤쪽과 앞 머리를 동시에 가리키며)여기에 신호가 동시에 온단 말야. 악한 영이 역사하는 거야. 내게 불이익이 온다고”
“이제 영분별의 은사가 임하면 여러분들에게 신호가 작동되는데, 자 보세요. 신호가 작동되면 그것을 노트에 기록하라고. 언제 이런 신호가 왔는데 어떤 일이 일어났다. 자, 차를 타고 가는데, 이건 예제 1이야. 여러분들이 그걸 잘 알아야 해. 고속도로로 차를 몰고 가는데 갑자기 신호가 와. 이 방향, 중심에서 비슷한 우측방향에 신호가 왔어. 치이이잉~ 신호가 왔어. 머리 뒤쪽에 신호가 같이 왔어. (머리 뒤쪽과 앞 머리를 동시에 가리키며)여기에 신호가 동시에 온단 말야. 악한 영이 역사하는 거야. 내게 불이익이 온다고.

신호가 오고, 머리 오른쪽 사이드에 신호가 왔어. 그건 정확히 우측 저쪽 방향에서 신호가 와. 신호가 오고, 머리 뒤쪽이 약간 아파, 자, 무슨 뜻이게? 속도를 보니까 130km야, 영동고속도로야. 제한 속도가 몇 km게? 100km잖아. 몇 km까지 봐 주게? 110km까지 봐줘요. 100km 넘으면 벌금 무는 게 있어요. 신호가 130km면 걸려요 안 걸려요? 걸리는데? 위에 있는 것은 눈으로 보이는데 저쪽에서 숨어서 카메라로 찍는 것은 보여요, 안 보여요? 모르지. 그러면 딱지 끊게 돼 있는 거야.

그런데 하나님께서 ‘딱지 끊는다!’ 그러면 속도를 줄여야 해. 속도를 딱 줄여봐. 딱 줄여, 그리고 싹 지나가봐. 틀림없이 저 쪽에서 경찰이 대기하고 있거든. 어? 스피드건을 딱 쏘고 있는데 무사통과야. 무사통과. ···아, 이게 하나님 믿는 맛이지”

“뒤통수 ···조금 아래쪽에 신호가 파악 오는 건 뭐야? 앞에 전방에 사고가 났다 이런 뜻이야”
“(고속도로에서 운전을 하며 갈 때 앞차와)간격없이 갈 때 있어요, 그렇죠? 막 앞 차를 쫓아간단 말예요. 뒤에도 차들이 막 간단 말야. 그런데 갑자기 앞에 전방에서 신호가 차악 오면서 뒤통수 쪽에 신호가 조금 아래쪽에 신호가 파악 오는 건 뭐야? 무슨 뜻일까? 앞에 전방에 사고가 났다 이런 뜻이야. 앞에 전방에 사고가 난 거 뻔하단 말야. 연쇄 추돌이 일어난 거란 말야. 그때 뭐야. 속도를 줄여야 해. 속도를 서서히 줄여서 앞 차와 거리를 띄워야 해. 앞차와 거리를 띄우면서 가보세요. 틀림없이 앞의 차들이 연쇄 추돌이 파파파파팍 차 들이받는다고. 그런 일을 나는 여러번 경험했어.

차를 가는데 겨울에,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신호가 탁 오면서 굉장히 아래쪽에 신호가 오는 거야. 이건 위험하다는 뜻이거든. 그런데 속도는 보니까 별거 아니야. 내가 볼 때는 100km 조금 넘었어. 가는데 신호가 와. 이상해서 속도를 많이 줄였어. 뒤에 차들이 오는데 앞에, 얼음이, 빙판이 생겨서 차가 들이받고 곤두박질치는데 ··· 계속 차들이 나가 떨어지네. 차들이. ··· 마음의 비상 깜박이를 키고서 서서히 갔기 때문에 무사히 갔지 다른 차는 냅다 박은 거야. 이게 영적인 사건을 경험해 보면 상상할 수 없는거야”

“머리 뒤에 신호가, 마귀가 역사하고 악한 영이 역사한다고, ···신호가 금방 잡혀”
“자, 예를 들어 드릴게. 어떤 사람이 와서 ‘와, 이거 끝내주는 사업’이라고 ‘100만원 투자하면 200만원 금방 만든다’고. 막 이렇게 얘기한다고. 그러면 신호가 어떻게 잡힐까? 머리 뒤에 신호가, 마귀가 역사하고 악한 영이 역사한다고, 내 뜻이 아니라고 신호가 금방 잡혀. 자, 여러분들이 어떤 집회에 갔어. ‘와보라, 가보라’ 해서 이게 세계적인 뭐 해서 갔어. 사람들이 많이 와서 갔는데 머리가 ‘띠용, 띠용 지끈 지끈’ 아프면서, 이게 무슨 뜻일까? 이건 ‘내 뜻이 아니니, 여기는 미혹의 영, 악한 영의 역사가 많으니 여기 있지 말아라’ 이런 뜻이에요.

엉? 아무리 세계적인, 세계적인 해도 다 필요없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는 뜻이야. 그런데도 아픈 줄 모르고 계속 있으면 미혹의 영이 들어요. 악한 영이 들어요. 혼란이 오기 시작해요. 여러분들이 이걸 잘 알야 해요. 그러니까 영분별을 받으면 아무리 겉으로 그럴듯한 포장이 있어도 금방 알아요.

사람들이 뭐, 만나면 ‘아이고 저도 장로입니다’ ‘아이고 이런 좋은 장소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이렇게 얘기했지만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면 ‘아 이 사람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기꾼이구나’ 금방 알아요. 사람의 거짓과 진실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야. 이게. 사람들이 사기꾼인줄 알려면 한참 걸리지? 영적인 세계는 정확해. 여러분들 이 훈련해야 해. 그러면 목회를 하든 뭐하든 사람의 속을 띠워 볼 수 있는, 다른 능력도 있지만 영에는 영적 레이더(머리 중앙을 중심으로 좌우측에서 ‘찡! 찡! 찡’ 신호를 수신하고 해석해내는 능력을 의미한다: 편집자주)가 작동을 한다. 여러분, 영적 레이더가 작동하면 이 영적 레이더가 잘 작동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거란 말야···

영적인 세계에서 이 사건들을 우리가 경험하게 되면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불꽃같이 감찰하고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런 사건에 관한 모든 역사를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예민하게 감지하게 되면서 영적인 능력들이 더 증가하게 된단 말야. 정말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영적 세계를 이해하게 되고 주님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배를 타고 여행하든,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든 뭐를 하든 영적인 사람은 깨어 있는 거야.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밖에 분별할 수밖에 없어.”

출처: 교회와 신앙



관상기도 (거룩한 독서) 수도 실황이랍니다. 상당히 웃기는군요..

 

 



시한부종말론자 해럴드 캠핑(전직 장로, 패밀리라디오 대표. 사진)의 5월21일‘휴거’예언이 예상대로 재차 불발됐다.

▲     ©크리스찬투데이
캠핑은 불발이 명백해진 22일 자택이 있는 캘리포니아 알라메다에서 한 언론기자에게“정말 힘든 주말이었다”면서“이젠 할 말이 아무 것도 없다, (왜 휴거가 일어나지 않았는지) 나도 답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모두 패밀리라디오 애청취자들인 캠핑 추종자들은 5월 21일 당일까지‘지상의 대종말’을 굳게 믿고 외치며 곳곳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전국 곳곳에 2천개의 경고 간판을 붙이기도 했다. 불발이 확실해진 주말에 일부 교도들은 캠핑의 본부 앞에서 항의하기도 했다.

패밀리라디오 홈페이지엔 종말 카운트다운 시계를 띄워 종말 분위기를 돋우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자 이들은 대부분 허탈한 분위기였다. 일부는 평생저축금을‘휴거’ 광고용 헌금으로 바치기도 했다.

캠핑의 홍보담당관 탐 이밴스 씨는 또 다른 기자에게“2억명의 참 신자들이 휴거되지 못한데 대해 실망했다”면서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고통 당한 뒤 결국 지진과 기근으로 지구가 망하면서 전멸할 것이라고 한 당초의 예언의 신빙성에 대해서도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이밴스는“꽤 실망했다고 상상하실 테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여전히 참되다”면서“우리가 너무 지나쳤던 것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겠다”고 덧붙였다.

전국에 66개 방송망을 갖고 있는 패밀리라디오는 일단 웹사이트의 모든 종말예언에 관한 언급 경고문을 모두 지우는 등 재빠른 ‘변신’을 꾀하고 있다.

실망한 캠핑 교도이자 트랙터 트레일러 운전자, 키잇 바워 씨(38)는 자신과 가족이 지상종말전 마지막으로 그랜드 캐년으로 기념여행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산더미 같은 크레딧카드 빌과 각종 청구서를 남기고 휴거를 한다는 게 큰 안도였다”고 말했다.

바워는 그러나 거짓예언을 한 캠핑에 대해“분노하지 않는다”며 최악의 시나리오라면 자신이 아무에게나 분노하며 다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자신의 평생 저축금인 14만달러를 들여‘휴거’경고를 해온 라벗 피츠패트릭씨는 21일 내내 평소와 같은 것을 보자 아연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뉴욕 타임스쾌어에서 휴거를 기다렸던 피츠패트릭은“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황당해 했다. 한 교도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고 했고 어느 여신도는“하나님은 더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심판을 연기하셨
다”면서“종말은 여전히 임박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캠핑측은 그동안 자신의 돈을 바쳐 휴거 알림에 힘쓴 추동자들에게 보상할 뜻이 있음을 밝혔다. 그러나 이밴스 홍보관은 “보장은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 추종자들은 장난감 암소를 풍선으로 띄워 일부 엘리트들 만의 휴거 실패 개념을 풍자하기도 했다. 일부 타 종교단체들은 환멸을 느낀 캠핑 교도들을 영입하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한편 캠핑은 휴거가 불발로 끝난 다음인 23일 지구종말은 5개월 후인 10월 21일이라고 수정된 날짜를 다시 거론하기 시작했다.



추종자들 '허탈' '망연자실'... 세상은 너무나 평온

▲     © 크리스찬투데이
2011년 5월 21일 시한부 종말론은 희대의 사기극으로 남게 되었다. 오클랜드 소재 패밀리 라디오 월드와이드의 헤롤드 캠핑이 성경을 자의적이고 억지로 풀어서 짜맞춘 최후 심판의 날짜가 빗나가고 말았다. 당일 해당 웹사이트가 다운되었고, 방송국 앞에는 밀피타스 소재 바이블 처치 교인들이 ‘실망하지 마세요’ ‘22일 주일날 교회에서 만나요’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며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오클랜드 경찰국은 혹시 있을지도 모를 극단적인 사태에 대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한편 헤롤드 캠핑의 추종자들은 5월 21일이 도래하기 전에 생업을 그만두거나, 자녀들을 학교에서 자퇴시키고, 자신들의 소유를 상당 부분 헌금한 것으로 알려져 향후 엄청난 파장이 예상되고 있다. 현재 파악된 금액만해도 대략 1억 2천만 달러를 넘는다.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돈을 돌려받을 길이 없다고 망연자실하고 있다.    
  
5월 21일 당일의 표정은 실로 경건하고 엄숙하기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미국 전역에 산재한 캠핑의 추종자들은 가족 단위로 둘러 앉아 성경을 펴서 읽거나 기도를 드렸다. 캠핑의 예언을 상기하면서, 그들은 지상파 방송에 귀를 기울이고 페이스북 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개되는 상황을 주시하였다. 그들의 기대대로라면, 뉴질랜드에서 대지진이 발생하기 시작하여 전세계적인 공포와 혼란의 상황이 전개되었어야 했다. 5월 21일 오후 6시의 기준은 각 국의 시차 별로 적용되었기 때문에 이미 천지가 진동했어야 하였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 고요하였고 평안하였다.

시한부 종말론 추종자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 한 날을 위해 그들은 모든 것을 희생하였기 때문에 공허함과 상실감은 극에 달해 있다. 샌프란시스코를 기반으로 결성된 인민의 사원 추종자들이 집단 자살을 택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패밀리 라디오 월드와이드는 300명이 넘는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직원들 중에는 헤롤드 캠핑이 1994년에 이미 한 차례 벌였던 사기극을 경험했던 사람도 있다. 일단 직원들은 월요일에 정상적으로 출근하였으나, 그들이 계속 설립자의 추종자로 남을지는 미지수다. 

기사제공ⓒ 크리스찬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us) 발행인 서종천 목사 편집국장 서인실

휴거? 미국 때아닌 시한부 종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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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라이프] 휴거(rapture)가 일어난다고? 미국이 때 아닌 시한부 종말론으로 시끌벅적하다. 발단은 미국의 ‘패밀리 라디오’ 설립자 해롤드 캠핑(88·사진)이 이달 초 홈페이지에 “심판의 날 선택받은 사람들은 휴거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나머지는 불의 심판을 받을 것”이란 8쪽 짜리 예언을 게시하면서다. 그는 “21일 휴거가 일어나며 10월 21일에는 불의 심판으로 지구는 멸망할 것”이라고 밝혔다.

캠핑 목사의 예언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4년 9월에도 휴거 예언을 했다. 하지만 최근 ‘뉴욕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당시엔 성경 연구를 충분히 끝내지 못하고 94년이란 가능성만 봤다”고 해명했다.

깊고 낭랑한 목소리와 차분한 억양으로 폭넓은 청취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탓에 그의 이번 예언을 그대로 믿는 사람도 많다. 미국공영방송(NPR)은 뉴욕 스테이튼아일랜드 출신의 피츠패트릭(60)씨의 경우 사비 14만달러(한화 1억5100만원)를 들여 뉴욕시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역 곳곳에 휴거일 광고를 냈다고 보도했다. 아드린 마틴즈(27·여)씨의 경우 남편과 함께 뉴욕을 떠나 플로리다주 올랜도로 이사해 칩거생활을 하고 있다. NPR에 따르면 그는 “종말의 시기를 아는 것은 미래를 바꿨다”고 말했다.

캠핑의 날짜 계산법은 창세기 7장 4절의 “지금부터 7일이면…지면에서 쓸어버리라”와 베드로후서 3장 8절의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 창세기 7장 10∼11절 “이월 곧 그달 십칠일이라” 등 세 구절을 인용했다. 7일을 7000년으로 계산했고 노아시대 홍수해로 알려진 BC 4990년에 이를 더해 2011년, 성경 달력으로 2월 17일은 5월 21일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대부분 크리스천의 반응은 싸늘했다. 앨버트 모흘러 남침례교신학교 총장은 “교회는 그동안 이 같은 잘못된 가르침을 수없이 봐왔다”면서 “윌리엄 밀러와 그의 재림론자들이 1844년 3월 21일 재림을 예언했고 70년대에도 대중적 설교자들이 다양한 날짜를 거론하며 재림을 말했다. 부끄러운 일은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하며 비판했다.

블루밍턴 힐사이드 교회 봅 베이크 목사는 “이는 진실로 끔찍한 일”이라며 “그리스도인은 그의 어리석음을 보게 될 것”이라고 힐난했다. 케이스 프록토씨는 “날짜를 명시한 것은 잘못됐지만 지금이 마지막 시대라는 점은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모흘러 총장은 “그리스도인은 가만히 앉아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그가 분부한 명령을 수행하며 사는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신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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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 본부를 둔 '패밀리 라디오(Family Radio)'는 2011년 5월 21일이 지구 최후의 심판일이라고 주장하며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전역에 이를 전파해 왔다. 그들이 주장하는 시간이 다가오자 뉴욕의 한인 일간신문에 전면광고를 냈다.

패밀리 라디오는 성경에 기록된 일련의 숫자들을 수학적으로 해석하여 5월 21일이 지구 최후의 날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의 설립자인 해롤드 캠핑(88세)는 지난 1994년 9월 6일을 심판일로 예언했으나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으며 "날짜 계산에 착오를 일으켰다"고 쑥스러운 해명을 하기도 했다.

그의 예언은 지구의 자연재해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종말에 대한 주장에 경계를 해야 하는 것은 선량한 사람에게 피해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하는 다미선교회(이장림)가 1992년 10월 28일 밤 12시에 종말을 예언했으나 불발로 끝났다. 하지만 종말을 믿은 교인들중에는 직장과 학교도 그만두고 재산을 파는 피해를 입어 사회적인 파문을 일으킨바 있다.

뉴욕교협 회장 김원기 목사는 "상식이하의 주장을 하는 해롤드 캠핑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안다. 회원교회들의 경계가 필요하다. 공문을 보내 이를 알리겠다"고 말했다. 미동부이대위 회장 이종명 목사도 "성경에는 그때를 모른다고 했는데 이를 주장하여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것은 크게 잘못됐다"라며 그들의 주장에 귀 기울이지 말것을 부탁했다.

ⓒ 아멘넷 뉴스(USAamen.net) 8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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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2분설과 3분설에 대한 이해를 돕는 글이 있어 약간 편집하여 인용한다. 특히 지방교회의 3분설의 위험성이 잘 제시되어 있다.

 

삼분설의 위험성


이영호 목사

(前 월간현대종교 편집인 겸 편집국장)


들어가는 말


최근에 성행하는 영성훈련의 모티브가 삼분설이고, 삼분설의 궁극적 목표가 신인합일인데, 신인합일과 삼분설을 주장하는 지방교회가 교리와 선교정책에서 변화를 꾀하고, 2000년대에 맹활약을 하고 있는 이때에 최근 3분설 등으로 이단 시비가 있는 者를 한 장로교회 이.대.위가 “문제없다.” 결정하고, 3분설을 용인함으로써 엄청난 교리적 혼란이 우려되기 때문에 이를 경계로 삼아 이글을 게재 한다.


1. 영성훈련의 현주소


오늘날의 ‘영성운동’ 이라는 것은, 인도의 마하리쉬가 영적 부흥운동(S. R. M) 이라는 이름으로 TM을 보급하였고 이것이 1960년에는 국제명상협회(I. M. S)로, 1965년에는 학생국제명상협회(SIMS)로 설립되어 우리나라에도 ‘영적 대각성’ 이라는 집회 이름으로 상륙한 것이다.

특히 오쇼명상센터 의 ‘역동적 명상법’ 이라는 것은 사이비종교의 전형적인 광란이다. 이와같은 ‘역동적 명상법’ 과 유사한 것으로는 웃고 소리내고 뒹구는 빈야드운동을 손꼽을 수 있다.

이것은 영성운동이란 미명 하에 ‘잘못된 영성운동’ 이 행해지고 있음을 입증한다. ’영성‘ 이라는 말 자체가 천주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뜨레스 디아스 운동 같은 것은, 원래 수도원의 수도법칙을 따르는 영성운동이었다.



2. 인간론과 각 교단적 입장


목회에서 인간론은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인간의 삼위일체』라는 책의「감사의 말」에 보면 “삼위일체적 인간이라는 분야에서 선구적 역할을 한 책들을 저작한 故 워치만 니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고, 역자도 책 머리말에서 “나의 목회와 교회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인간 구조’ 이해” 라고 하면서, 인간 구조론에 입각한 목회형태도 세 가지로 구분해 ① 육적인 목회. ② 흔적인 목회, ③ 영적인 목회로 주장하고 있다.3) 이렇듯 목회에서 인간론이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도 넓고 큰 것이다.


그래서 2분설에 대한 각 교단적 입장을 보면 ◐ 예장 (합동)은 신복윤 목사의 『기초교리학』에서4) ◐ 한국기독교침례회 는『침례교회』에서5) ◐ 예장(통합측)은『 평신도용-교리교육 지침서』에서6) ◐『세계교회사에 나타난 - 이단논쟁사』(정행업 저) 등이 3분설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정행업 교수는 “3분설을 주장하는 자들 중에는 신비주의자들에게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고 하면서 “영적 요소 와 혼적 요소가 어디 까지나 영혼의 두 기능적 요소로 이해되어야 하며, 영과 혼이 별개의 실체요 그래서 인간은 영, 혼, 육이라는 3구성 요소로 이루어진 존재라고 봐서는 안 될 것임을 분명히 해야한다.” 고 지적하고 있다.


3. 삼분설과 신인합일의 신비주의


1) 신플라톤 신비주의

삼분설은 신인합일을 위한 인간론으로 시작된 것이다. 3분설적 신인합일을 최초로 주장한 신플라톤 사상을 살펴보기로 하자. 윗트니스 리는 ‘지방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최고의 철학자들, 심지어 오늘날의「플라톤학파 사람들」이라고 공언할 것이라’ 고 말한바 있는데. 플라톤 사상을 바탕으로 한 스콜라신학을 형성시키는데 공헌한 베네틱(Benedict) 수도승 버나드(Bernard) 와 엑크하르트(Eckart), 십자가의 요한에 대한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하고. 더불어 중세기의 신비신학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지방교회의 ‘신인합일’ 이라는 근본적 교리체계를 이해할 수 있다.


플로티누스의 신플라톤 신비주의 사상은 수도원 운동의 창시자 버나드에게 계승되었는데. 이 신비사상에서는 ‘인간의 최고 목적과 행복은 영혼이 그 발생 근거인 신의 경지와 합일되는데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① 버나드는 1151년 6월 12명의 수도자와 함께 황무지에 자신의 수도원을 세우고 원장이 되어 수도생활에 열중하면서 수도원 부흥운동을 주도한 인물 이였다.

버나드에게서 우리가 주의할 것은, 창세기 1장 26절에서 말하는 형상과 모양을 분리해 ‘하나님의 형상’ 은 영혼을 말하고, ‘하나님의 모양’ 은 육체를 말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점이다.

그의 삼위일체론에서 특이한 것은 아가서의 1장 2절을 근거로 영적 진보의 3단계를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일명 ‘키스의 신학’ 이라고 비난 받아 왔다. 버나드의 인간론과 신론을 바탕으로 하나님과 연합되는 실제적인 방법으로는 ‘영적 결혼’ 이라고 한다. 이와같이 버나드에 있어서 영적 합일은 융합의 결과로 신격화를 이루는데 있다.


② 마이스터 엑크하르트(Meister Eckhart)로 더 잘 알려진 요한네스 엑크하르트(Jonhannes Eckhart)는 그가 죽은 이후 1327년 프란시스칸 교단의 공격을 받아, 이단 혐의로 조사를 받고 결국 1329년 교황 요한22세에 의해 그의 저작 중 28개의 명제가 정죄되고, 그중 이단적인 것으로 17개를 선포하였으며, 11개는 경솔하고 편협한 것으로 판결되었다.


엑크하르트(Eckhart) 는 인간 존재를 두 가지 구조로 나누어 육의 속성을 ‘겉사람’(the outward man)이라 하였고, 영의 속성을 ‘속사람’(the inner man) 이라 하였다. 여기 엑크하르트의 특이한 점은 속사람을 하나님의 씨앗으로 보는 점인데 이 씨앗은 ‘하나님의 아들’ 이며 ‘하나님의 말씀’ 이라고 본다. 그는 인간의 심층인 속사람을 하나님과 동일화 시켰다. 엑크하르트는 “만일 하나님이 인간이 되는 것이 진실이라면, 또한 인간도 하나님이 된다는 것도 진실.”이라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주장은 범신론적인 경향이라고 비난 받았다.


엑크하르트의 문제점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역할과 사랑에서 성육하신 그리스도의 역할을 흐리게 하는 점이 아닌가 하는 점이고, 또 어떻게 피조물이 신성의 심층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점 이었다. 이런 점에서 범신론이 아닌가 지적되기도 하였는데. 특히 내재 사상은 신적인 것과의 차별을 애매하게 하여 결국 인간을 신성시하는 것으로 끝날 위험이 있다고 평가됐다.


③ 십자가의 요한 은 ‘인간의 하나님께로의 변화’ 라는 테마를 가지고 1927년 교회의 聖학자로 올림을 받았다. 먼저 우리가 요한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大데례사의 영성을 보아야 한다. 大 데례사는 십자가의 요한의 스승으로서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大데례사의 영성은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중 셋째 단계는 하나님과의 합일이다. 그가 말하는 영성의 걸음이 종착하는 마지막 목표가 하나님과의 합일에 있음을 테레사는 가르쳤다.


大데례사의 영성 기본이 하나님의 내주에 있고, 그 목표가 하나님과의 합일에 있듯이 요한의 영성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는 성부, 성자, 성령께서 내 마음 안에 계시기에 안으로 깊이 들어감으로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데, 흔히 이 만남을 일치, 합일, 완덕의 지위라고 부르며, 심지어 ‘영적 결혼’ 이라고 까지 말한다. 


2) 신인합일 사상의 결정론 ‘계시의 최고봉’

이와같은 신인합읠 사상은 지방교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지방교회의 교리는 “그리스도가 신성, 인성과 함께 합일(合一)됨으로 해서 한 신인(神人)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우리의 영들이 하나님 그 영과 함께 합일(合一)됨으로 해서 신인(神人)들이 될 것입니다. 이 가르침이 지방교회 교리의 핵심” 이라고 정동섭 교수는 요약해 주고 있다(p52). 그리고 ‘중생은 신인합일(神人合一)’ 이라고 보는 사상은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 사상이다.


윗트니스 리는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삼일 하나님’ 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그는 저서에서 ‘삼일 하나님과 형상’ 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內형으로 ‘모양’ 을 外형으로 해석하고, "사람은 …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어졌다(창1:26-27)”고 해석하면서,  “하나님의 ‘형상’ 은 또한 그분의 속성의 특성을 가리킨다. … ‘모양’ 은 유형의 사람을 이루고 있는 바깥의 몸을 가리킨다. 사람의 바깥 몸은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서 창조되었다(창18:2, 16-17,삿13:9-10, 17-19)”고 주장한다.


윗트니스 리의 종합적인 설명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처럼 생겼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형상은 그분의 內的 존재이며, 하나님의 모양은 그분의 外的 형태이다. 內的으로 하나님은 모든 속성과 미덕을 지닌 그분의 존재를 갖고 계시며, 外的으로 하나님은 모양을 갖고 계신다. … 사람의 外的인 몸은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 창조되었다.”라고 말하고. 또 ‘하나님과 사람은 같은 種’ 이라고 말하며(창1:26-27) 우리는 사람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처럼 생겼다.….”라고 주장한다. 神․人 합일사상 이론의 제1은, 인간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같이 영. 육. 혼의 3가지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계시의 최고봉’ 이라는 교리는 윗트니스 리가 생애의 말년 3년 6개월(1994-1997/6월 사망.) 동안 최후에 설파한 최고봉의 교리였다. 1987년(85세) 극동의 반대자들은 “이 형제님의 사역이 1984년까지는 문제가 없었지만 1984년부터는 이 형제님이 그의 사역을 바꾸었고 이것이 회복의 본성을 바꾸어 놓았다.”는 이유로 분열하였다. 이들이 말하는 1984년은 그의 나이 79세가 되는 해이다.


이런 윗트니스 리를 겨냥해 극동의 반대자들은 “회복 안에 있는 인도자들은 모두 나이가 들어서 장사 지내기에 만 알맞다.”는 극언까지 했다고 한다.24) 그렇다면 79세 고령의 나이에서 윗트니스 리가 “바꾸어 놓았다는 회복의 본성” 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  그는 말하기를 “금년(필자 주: 1994년) 봄 (사실은 작년부터임 - 필자 주; 작년은 1993년임- 88세) 에 나는 계속하여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갔다. 내가 본 것은, 하나님이 사람되심으로 사람이 하나님 될 때만이 그리스도의 몸이 산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상의 최고봉이다.” 라고 밝혀주고 있다.


그가 이렇게 주장하게된 것은, “1984년 지방교회의 회복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는 것을 완전히 깨달았고, 우리가 취해온 방법을 단지 계속해서 실행해 갈길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1994년(89세)부터 ‘계시의 최고봉’ 이라는 교리를 설파했다. 그는 1994년(89세) 5월 17일부터 20일까지 미국 아나하임에서 대북의 장로들에게, “오늘 저녁 우리는 하나님의 경륜 안에서 「하나님이 사람되심은 사람으로 하나님 되게 하려 하심」에 관하여 볼 것” 이라는 메시지를 시작으로 그의 저서 여러 곳에서 ‘계시의 최고봉’을 설명하고 있는데 그의 주장은 위에서 살펴본 수도원 운동가들의 주장과 같았다.


그는 단서를 붙였는데 “내가 특별히 지적하고 싶은 것은, 사람이 하나님이 되는 것은 다만 하나님의 생명과 하나님의 성품이 있을 뿐 하나님의 신격은 없다는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방교회 창시자 위치만 니는 “먼저 여러분 자신을 보자. 여러분은 분명 하나님이 아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이라 말한 적이 없다. 나역시 내 자신을 하나님이라고 감히 말한바 없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나는 다 하나님이 아니다.” 라고 했다.28) 이런 점에서 워치만 니를 추종하는 극동의 반대자들은 ‘회복의 본성을 바꾸어 놓았다’ 고 윗트니스 리를 비난했던 것으로 보인다.


Lee 는 “나는 계속하여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갔다. 내가 본 것은, 하나님이 사람되심으로 사람이 하나님 될 때만이 그리스도의 몸이 산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결국은 워치만 니가 경고한바 올라가서는 안 될 높은 곳 즉 살후2:6절에서 지적하고 있는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고 하는 그 경지에 까지 올라간 셈이다.(이와같은 사실은 지방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찬양’ 부분을 클릭해 ‘어떤 기적 어떤 비밀인가’ 라는 제목의 노래를 찾아 들어보면 확인해 볼 수 있다)


3) ‘형상’ 과 ‘모양’ 에 대한 정통측 해석

그러면 과연 이점에 대한 정통 신학자들의 견해는 무엇인가?


① 이장식 박사는 저서 『기독교 사상사』2권에서 “창세기의 인간 창조 기사에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의 형상에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 하셨을 때 ‘우리의 모양대로’ 라는 말씀은 첫째로 히브리 어법을 따른 같은 말의 반복이어서 같은 말을 두 번 거듭한 데 지나지 않는다” 는 칼빈의 입장을 들어 “ ‘모양’이란 ‘형상’ 의 보충이라는 것이다.” 라고 해석하고 있다.


② 합동측 박형룡 박사의『교의신학』에서도, “문자적으로는 「형상」과 「모양」사이에 구별이 있어 후자는 보다더 넓고 포함적 이지만, 이 문맥에서 두말 사이에 정확한 구별을 지으려고 시도하는 것은 공연한 일이다. 병행하는 말들이 근본적으로 같은 사상을 가지는 것은 히브리어에 흔히 있는 표현 방식이다.


「형상」과「모양」은 동의어로 또는 교대 적으로 사용되었으니 相異한 두 가지에 대하여 관설하는 것이 아니다. 창세기 1:26 에는 두말이 아울러 사용되었으나, 그 다음절에는 전자만이 있고, 창 5:1에는「모양」이라는 말만이 나타나지만 제3절에는 두말이 다 발견되며 창 9:6은「형상」이란 말만을 사용한다. 신약에 전향 할 때에 우리는 (형상)과「영광」이 고전 11:7에,「형상」만이 골 3:10에,「모양」만이 약 3:9에 사용된 것을 본다.”고 확인해 준다.


4) 교육 및 선교 정책의 변화

저들의 교육정책과 선교정책은 기성교회가 눈여겨보아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저들이 안에서 가르치고,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전도 한답시고 기성교인들에게 떠벌리기 때문이다.


① 교육정책의 변화 - 1986년 2월 장로훈련에서도 “신학교를 세우는 것은 너무 지나친 것이다. … 지나치지 말라 우리는 졸업생들을 배출하는 실제의 교회학교를 세우기를 원치 않는다.” 라고 했던 그가 후에 “나는 대학이나 대학원에 있는 형제자매들이 졸업 후 직장을 갖기 전에 적어도 1년이나 이년동안 주님을 추구하기 위해 시간을 갖기 바랐다.” 고 말함으로써 교육정택의 변화를 말하고 있는데. 그의 바램은 한국에서 그대로 실천되어 미국의 아나 하임에 이어 다섯 번째로 전시간 사역자 훈련을 서울교회 제8집회소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신갈에 ‘성경진리사역원’을 설립하고, 이곳에서 교인 및 전시간 봉사자(전담 목회자)지망생 들을 훈련하고 있다. 전시간 훈련의 5가지 목표중 “1) 훈련생으로 하여금 최고봉의 계시에 이르게 함.”에 있고, 훈련내용 중, “ 4) 하나님이 정하신 길(註: 여호와증인처럼 호별방문을 말함) 안에서 효과적인 봉사를 배우게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② 선교 정책의 변화 - 그는 “나는 동양과 서양에서의 우리 가운데 있는 가련한 상황을 깨달은 이래로 1984년 10월에 우리에게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 하여. ‘1984년 지방교회의 회복이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다는 것을 완전히 깨달았고.’ 1984년부터 5년의 연구를 통하여 창안한「하나님의 정하신 길」즉 낳고, 기르고, 온전케 하고, 건축하는 4단계(註: 生, 養, 敎, 建)를 시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이 ‘새길’을 위해 거의 모든 것을 집중시키고 훈련에 투자했다.


그는 1989년 가을 몰몬교와 여호와증인의 ‘문 두드림’ 에 대해서 연구해 했으며.37) 1990년 아나하임에서의 전시간 훈련에서는, “몰몬의 가르침은 가장 큰 이단들 중 하나 이지만 지난 세기에 가장 큰 인수 증가를 가져왔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질책했다. 그는 가정방문 전도의 실 예를 몰몬교와 비교하면서 “우리 가운데의 문제는 우리가 낡아졌고 진부하면서도 필사적으로 새 길을 취하지 않는데 있다.”고 지적하고, 독려했다.38) 그는 ‘새길’ 즉 ‘하나님이 정하신 길’ 은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에 이 방법은 ‘주의 회복’ 의 전체 구조를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누가복음 12장 32절에서 주님이 제자들의 무리를 「적은 무리」(32) 라고 불렀다고 주장하면서 동의하지 않는 무리도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앞으로 이들이 여호와의 중인들처럼 기성교인들을 찾아다니며 “나는 몰몬교도나 여호와의 증인이 아닙니다.” 라며 얼마나 극성을 부릴 것인가를 상상해 봐야 할 것이고 이에 대비해야 한다.


이와 같은 변화는 1977년에 발간된 『마인드 벤더』와 『하나님 사람』이라는 비판서적 때문에 완전히 침체된 1980년도의 미국 내 선교상황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기 위해 나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대북에서 이 새 길을 언급하자 1984년 반대가 일어나기 시작해 1987년에 들고 일어나서 “이 형제님의 사역은 1984년 이후로 빗나갔다.”고 말하면서 '더 이상 따르지 않겠다'는 무리가 생겨났음을 전해주고 있다.


4. 유사이단들


국내외 유사 이단들로는 몰몬교와 동방정교회를 들 수 있다. 뉴 에이지 사상에서 지방교회와 유사한 교리적 주장을 펴고 있다. 특히 러시아 정교회 사상을 살펴보자.


1) 정교회의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교리적 설명 중 창 1장 26절의 ‘인간의 창조’ 에 관한 ‘모습과 비슷함’ 에 대한 설명에서 “비슷함을 얻는 것은 신화(神化)되는 것이다. 그것은 ‘두번째신’ , ‘은총에 의한 신’ 이 되는 것이다. … ”라고 했고, 정교회 가르침에 따르면 모든 그리스도인이 목표 삼아야 하는 것은 하느님처럼 되는 것, 테오시스를 획득하는 것, ‘신화 또는 신성화’ 하는 것이 최종 목적인 것이다. 정교인의 구원과 구속의 의미는 그의 신화를 의미한다. 그러나 정교회는 신화에 대하여 그리고 일치에 대하여 이야기는 하지만 범신론의 모든 형태에 대해서는 거부하고 인간은 신화되었어도 하느님과는 구별된다.(분리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인간이 신화될 때 인간이기를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육화로 인간이 되더라도 하느님이신 것처럼” 인간은 자연히 신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단순히 ‘피조신’ 이며, 은총에 의한 신인 것이다.46) 그러나 육신의 완전한 신화는 최후의 심판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2) 미국의 이단연구 전문가인 월터 마틴은 “성경적인 지식이 없는 신자들의 생각에 있어 창조주와 피조물 - 특별히 피조물로서의 인간들 - 간의 구별을 모호하게 하는 뉴에이지 사상은 위험하다.” 고 경고한다. 경계해야할 왜곡된 교리들로는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에서 “인간이 신의 부분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신이 된다.” 는 주장을 예로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윗트니스 리는 비록 신격에서는 아니라 말하므로서 비판 의 예봉을 피해 가려고 하지만 , 신인의 한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고, 신도들에게서도 신인 구분없이 “우리는 하나님이다, 혹은 하나님이 되어 가고 있다” 로 통하고 있다.


3) 윗트니스 리의 신인합일 사상과 계시의 최고봉에 담긴 사상은 상해에서 상주하며 활동해온 일부 독립운동가 출신 목사 장로를 통해서 우리나라에 전파되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열흘 집회로 교계를 어지럽게 하던  P 씨는 하나님을 ‘친 아빠’ 라고 주장하고, 찬송을 고쳐 부르고, 친 아빠 이름으로 기도하며 부르짖었다. 이뿐 아니라 “너도 하나님이 되라”며 부추기고 있었다.


이렇게 삼분설은 인간 삼위일체설로 삼위일체교리와 연결하여 신인합일로, 신인합일은 신인동형 동성, 동종론으로, 마침내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고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들” 이라는 이른바 ‘계시(啓示)의 최고봉(最高峰)’ 으로 가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는 위험성이 있어 이에 대한 한국교계의 ‘특별 경계’ 가 요구된다.



나가는 말


소속 교단의 교리적 입장에 반하여 3 분설을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는 Y 목사 에 대한 독립침례교단의 입장이나 일부 장로교단이 취하고 있는 입장을 볼 때 3분설과 2분설에 대한 무감각한 태도는 대단히 염려스러운 것이다. 물론 이외 3분설을 제창하는 목사에 대한 태도 역시 염려스러운 것이지만 특별히 신인합일 신비주의로서의 ‘계시의 최고봉’ 을 주창하면서 두 가지 정책변화를 꾀하고 2000년대를 새 출발하고 있는 지방교회 앞에 더욱 염려스럽다.


3분설에 대한 무감각한 태도는 ‘걸어다니는 하나님들’  ‘작은 하나님들’  ‘쌍둥이 하나님들’  ‘복사된 하나님들’ 에 의해 여지없이 공략 당할 위험성 앞에 놓여있다. 그래서 이분설과 삼분설에 대한 입장을 보다 분명히 하고, 신인합일의 경지를 추구하는 영성훈련에 보다 각별한 주의가 요망되고 있는 실정이라 하겠다.

 

 

 양무리 마을

 

 

출처 : http://blog.daum.net/godlysalvation/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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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마리아 향한 엄마 3창 천주교 행각

천주교는 기독교형의 탈을 쓴 이교도 음녀 바벨론


 


본 기사는 이유 2007-10-06 09:24:13“천주교 성모 마리아에게 엄마, 마마, 엄마,!!!.”제목으로 <교회와 신앙>게시판 407에 게재한 일부 인용으로, 이는 마리아의 신격화에 따른 천주교 관련이다.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 제25장 6절
다만 교황은 적그리스도요,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며,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 및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에 비하여
자신을 높인다”
는 것일 뿐 아니라,
성모마리아를 향한 엄마 3창을 하는 이단 가톨릭의 행각을 아래와 같이 비판한다.


1.기사 인용.

종교 비교를 하기위하여 가끔 평8방송을 봅니다.
그런데 깜짝 놀랐습니다.

최00신부님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성모님이라고 부르며 어머니라 부르지 말고
엄마, 엄마, 엄마, 라고 크게 부르짖으라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앉아있는 할머니들이 일어서서 엄마 엄마 엄마 부르짖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는 하느님,
하느님의 어머니가 마리아라고 하고
하나님위에 여성을 올려놓는 모후절이라고 하여
교황이 성모마라아를 신으로 올려 놓았습니다.
그리스 제우사나 큐피트의 우상과 미신을 본 집단이 되었습니다.
그 모습도 비슷하지요

교황이 법문으로 마리아를 하느님 어머님이라고 하며
성모님을 삼위일체 위에 올려 놓았으며
성모님 아래에 교황 교황아래에 삼위일체인가요?

장로교의 웨스트 민스터 신앙고백 제25장 6절에서는
“다만 교황은 적그리스도요,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며,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 및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에 비하여 자신을 높인다” 고 했으니, 적그리스도의 사상을 엄히 경계해야 할뿐 아니라,
천주교에 대해 무분별한 사람도 철저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

.


2. 비 판.

가톨릭에서 성모 마리아를 엄마로 인식하여 엄마 3창을 부르짖는다.
그야말로 놀랄 정도로 매우 괴이하고 야릇하다.
성경에는 마리아가 성모이거나, 성도의 엄마라는 가르침이 없다.

이교도 가톨릭 천주교는 마리아에 대하여,

1568년 성모송을 완성,
1854년 마리아 무죄 잉태설,
1917년 마리아가 은총의 중재라고 정하고,
1931년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확정,
1950년 마리아 부활 승천설,
1962년 마리아 종신 처녀설을 확정했다
.

이는 성경에 반하는 거짓을 마리아를 빌미로 임의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제는 마리아를 엄마로 지칭, 엄마 엄마 엄마 하면서 3창을 하니
이는 기독교의 주여 3창에 영향을 입은 것인가?

성도가 알 것은
이교도 천주교의 엄마 3창 행각이 성경에 없음은 물론,
기독교에서도 주여 3창 행각의 역시 성경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여하지간에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 자신이 성모송, 무죄 잉태, 은총의 중재자, 하나님의 어미니, 부활승천, 종신 처녀설에 동의 할 것인가?

이에 마리아가 동의한 사실이 없음은 물론
예수님 자신이나,
사도들과 제자가 천주교의 엄마 3창 마리라 신격화에 동의한 사실이 없다.
이럼에도 천주교가 이를 합리화하는 행각은
우상집단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는 성모송을 받아야 할 찬양의 대상이 아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마리아 무죄가 성립할 수가 없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중재자는 예수님뿐이다.
따라서 마리아가 은총의 중재자가 될 수가 없다.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라면 삼위일체 하나님 위에 마리아의 존재를 신격화하는 것으로 십계명 1.2.3을 범하는 것이다.
마리아의 부활승천 역시 역사적인 현장을 목도한 자가 없을 뿐 아니라,
성경에 가르침인 첫째부활의 사건이 없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님 이외에
부활승천을 했다는 것은 부인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리아 종신 처녀설 역시

성경을 제대로 읽었다면
이런 헛소리는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마리아의 신격화는 비성경적인 것이다.
이는 성경에 반하는 조작한 거짓 신화(神話)에 불과한 것이다.

거짓 신화란 무엇인가?
일반적인 신화(神話)의 뜻은 어떤 신격(神格/ myth)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전승적(傳承的) 설화로서“신화를 뜻하는 myth는 그리스어의 mythos에서 유래하는데, 논리적인 사고 내지 그 결과의 언어적 표현인 로고스(logos)의 상대어로서, 사실 그 자체에 관계하면서 그 뒤에 숨은 깊은 뜻을 포함하는‘신성한 서술(敍述)’이라 할 수 있다...신화는 인간의 일상행동을 규제하는데, 그것은 신화가 말하는 초자연적 존재의 행위와 그 성스러운 힘의 표현이 인간의 모든 중요 행동의 본보기가 되기 때문이다.”

고로 천주교에서 마리아를 신격 신화(神話)하는 자기 합리화의 임의해석은 거짓 신화적인 설화(說話)로서, 이는‘있지 아니한 일에 대하여 사실처럼 재미있게 꾸민 이야기’로서 경계는 물론, 천주교를 기독교의 시각에서 그리스도인이라 칭하는 것이나,
이를 기독교 교회사에 포함을 시켜서 인정하는 것은 옳은 인식이 아니다.

천주교는 기독교형의 탈을 쓴 이교도 음녀 바벨론이다.
성모 마리아 엄마 3창은 본지 홈에 동영상자료 43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독교이단사이비연구대책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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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교리 비판


[주님의 사랑 인터넷 세계 선교회] 안형식 목사


1. 상식이란,

상식이란, 기본적인 지식의 체계와 사고의 틀을 말합니다. 상식이 없다면 몰지각한 사람이 되어 버리고, 상식이 있는 사람만 지각이 있다고 하는 것은 상식이란 인간 사고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지식인들 가운데에서 몰지각한 사람을 만납니다. 상식을 벗어난 자기 사고의 틀에 박혀 있는 사람을 말하는데, 이는 사고의 틀이 어찌 짜여져 있는가에 따라서 자신의 사상으로 고착되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보면 그리스도인은 상식을 초월한 사람들이지요. 그리스도로 인하여 순교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죽으면 끝이 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세상 사람들이 볼 때에, 육신의 한계를 가지고 있으면서 육신의 한계를 신앙으로 초월한다는 것에 대하여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상대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을 볼 때에는 육신에 매어 달려 있는 육적인 존재로서의 생을 마감하는 것에 대하여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같은 원리로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 가운데에서 이단이 생긴다는 것에 대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같은 토양에서 같은 말씀을 먹고 자라났는데 어찌 이단이 생겨나겠느냐는 것이지요. 그러나 분명하게도 이단은 생깁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12제자 중의 하나는 이단아 가룟유다 입니다.

이로 보건데 그 사람의 가치관과 사고의 틀이 어떤가 하는 것에서 이단성향이 있다 와 없다로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상식이 어디에 머물러 있으며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서 이단성향은 발전하게 되어 있는 것이며, 이는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사람은 마음이 가는 대로 발이 가고 손이 움직이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 말라는 것을 하고 싶어하는 호기심이 있고 새로운 것에 대한 탐구욕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일에 대하여 도전해 보고 싶은 도전에 대한 욕구가 있습니다. 진리를 받는 사람의 상식이 건전한가의 정도에 따라서 보존 혹은 변질될 수도 있으며 수호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2. 상식에서 본 윗트니스 리의 기독관

윗트니스 리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은 누구라도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중국인의 특징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는 유전적으로 불교와 가깝다는 것이지요. 불교의 토양에서 역사가 반복되어진 특성이 있으며 불교는 중국의 생활의 전반적인 부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불교적 사고의 틀을 유전적으로 제공해 줍니다. 중국인의 역사적이며 문화적인 배경에는 불교가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이 지적을 하는 것은, 불교에서 최고로 말하는 지고한 선의 완성은 부처가 되는 것이며, 고도의 마음 정화와 수양을 통하여 결국에는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은 문화라는 겁니다. 이 문화 속에서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는 성경을 보았고 성경을 해석하였습니다. 그리고 책을 쓰기 위하여 신학자들의 책을 섭렵하였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책에서 만나지는 글들에 대하여는 자신의 사고와 같은 사고나 논조에 대하여는 깊이 빠져 들게 되고 자신의 사고와 논조에 반하는 책들에 대하여는 한 페이지도 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책으로 만나는 스승은 한계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에 반하여 스승이 있는 제자들은 스승의 책에 대하여 별로 호감이 가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배우게 되고 익혀야 합니다. 왜냐면 점수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지요. 여기에서 자신의 논조와 사상이 다른 스승의 책을 통하여 또 다른 사상과 접하여지게 되고 사상의 폭과 깊이가 넓혀지게 됩니다. 이는 나중에 자신의 영역 안에서의 사고와 사상을 정립하는데 있어서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겁니다. 실상 학문은 자신의 고유한 세계 안에 들어 있는 사고와 사상의 틀을 부수고 정돈하여 바르게 세워 주는 것이 학문의 역할입니다. 따라서 스승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결과는 엄청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없는 12사도는 상상조차 안 되는 것처럼 스승이 없는 제자는 없는 겁니다.

3. 윗트니스 리의 신학 사상에서 보이는 부처와 아리우스

스승이 없는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의 자유로운 연구와 해석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사고의 영역 안에서 책을 접하게 되었고 책 속에서 여러 가지 문화와 입장들에 대하여 만나 보았으나, 결국은 자신들과 가장 가까운 입장에 있는 아리안 주의자들의 책을 선택하였고 섭렵하게 되었습니다. 아리우스는 양태론을 주창한 자로서 아리안 주의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이었으나,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아 능력을 행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아리우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선지자로 보고 있음), 최종적인 십자가에 대한 죽음으로 하나님을 감동시켰으며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들로 인정하여 살리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히셨다고 주장하였으며 325년 니케야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 당하였습니다. [세계철학대사전, [아리우스], (서울 :대한교육출판공사), 1980, p.688.] [교회사 핸드북, [공의회와 신조],David F. Wright, (서울 :생명의 말씀사),1989. p.156.]

아리안 주의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이었으나 하나님께 절대 순종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 되었으며, 하나님 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절대 순종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 는 논리로, 인간을 내세우는데 있습니다. 이제 윗트니스 리의 주장과 어떤 점이 일치하는지 보십시요. 똑같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신과 합일되는 과정을 통하여 인간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신합일사상을 말하는 것으로, 윗트니스 리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 하나님을 자신을 사람 속에 넣어서 사람과 연합하여 하나님과 같게 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윗트니스 리, [내주하는 그리스도], pp.10~11), 여기에서 "하나님 자신을 대량으로 생산할 것을 계획" 이 말해지고 있으며, 동시에 "자신을 제품으로 생산" 으로 말하며 하나님과 인간의 연합으로 인간이 체현을 통하여 하나님과 똑같이 되는 것을 구원으로 말하고 있습니다.(위트니스 리, [내주하는 그리스도], p.10), (위트니스 리,「하나님의 경륜」, p.244).

이들은 (고전 15:45) "...마지막 아담은 살리는 영이 되었나니"를 신합일주의의 근거로 삼고 있으며, 이 근거를 토대로 논리를 전개하여 체현의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이들이 신비로운 연합, 신비로운 체험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체현을 통하여 하나님이 되셨다면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를 믿으라" 이들이 체현을 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지방교도로서 잘 믿으면 예수님처럼 될 수가 있다." 이 말에 지방교도들은 깊이 빠져 들었고 위트니스 리의 교리에 미치고 있는 중인 겁니다. 아래의 증거는 이들의 주장이 무엇을 말하려는지를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증거) ① "만일 당신이 요한복음을 주의 깊게 읽는다면 당신은 태초에 그리스도가 말씀으로 표현 되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 뒤 마지막에 그 분이 영이 되신다(20:22). 말씀이신 그 분은 땅에 있는 전기 줄이시다. 즉 그 분은 안테나이다. 이 두 가지 말씀이 영이 요한복음6장63절에서 함께 왔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 안테나와 접지 선이 하나 될 때 전기가 온다. 말씀과 영이 섞여질 때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전달된다"(28. p. 39, 9-16줄 , 윗트니스 리 주장).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말씀과 영이 합해져 자기들의 속으로 들어 오신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말씀과 영이 전기처럼 전달되어진다는 주장입니다. 여기에서는 그리스도의 인격이 말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지방교도들을 위하여 존재하고 전기줄로 표현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니라, 다만 형제일 뿐입니다. 피조물인 인간과 창조주인 하나님의 구별이 사라졌습니다. 창조주와 합일되어 버린 인간도 아니오. 하나님도 아닌 귀신과 같은 존재들이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이들에게서 나온 베뢰아에서 귀신론을 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 안형식, [인터넷 시대의 영성과 레마선교회의 영성에 대한 비판], 근간. ***

왜 이런 주장이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에게서 나왔을까요? 불교의 영향권 안에 들어 있는 사고의 틀에서 나온 사상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윗트니스 리가 보는 예수 그리스도는 부처와 같은 존재이며 다만 이름만이 바뀌어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에게서는 성령이 주장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기 위한 것으로서 이들에게 있어서 성부 하나님의 존재는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옥황상제에 불과 합니다. 결국 윗트니스 리의 사상이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으나, 이름이 바뀐 부처를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말하고 있으나 옥황상제를 말하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윗트니스 리의 사상이 지극히 인본주의이며 자유주의 사상을 가진 적그리스도적인 사상으로 간주합니다.


3.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한국교회에 끼친 악영향에 대한 분석

1. 신학 사상의 비판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중국적 기독교 사관은, 현대 한국교회에 여러 가지 좋지 못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신학은 정통교회관과 성령관에 대하여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데 베뢰아를 비롯한 인본주의적이거나 자유주의신학을 퍼뜨린 점을 먼저 들 수 있습니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의 신학의 핵심은 성령의 사역에 해당되는 부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직접적인 사역으로 대치시킨 점에서 크게 두드러집니다. 이들은 삼분설을 주장하여 인간의 영은 하나님의 처소로, 혼은 정신이며 더러운 생각과 각종 악이 혼재할 수 있는 좌소로 구분을 하고 있으며, 육은 결국 흙으로 돌아가야 할 죄가 기생하는 저급한 처소로 말합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실체로 받았을 때 거듭나며 (중생), 그 거듭남이란 영을 말함으로 자신들의 영은 결코 죄와 상관이 없는 거룩한 존재가 되었다는 인간론을 말함으로, 인간의 영은 그리스도와 버금갈 수 있는 존재로 상승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추종자들에게서는 성령의 존재가 나타나지 않는 특징이 생깁니다. 성령의 존재에 버금가는 자신들의 영의 존재가 있는데, 왜 성령을 말해야 하겠습니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가 내 영에 거하므로 내가 곧 그리스도의 형제라고 말하며 이른바 [형제교회]를 탄생시켰습니다. 이에 대한 근거로 삼은 성경구절은 고린도 전서 15장이며, 고린도 전서 15장 45절을 근거로 하여 " ...마지막 아담은 살리는 영이 되었나니" 를 증거로 자신들의 교리를 발전시켜 인간론과 구원론을 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1+1+1=1 이라는 등식의 삼일론을 말하며 성부는 성자이며 동시에 "성령이시다" 로 주장합니다. 신론이 망가져 있다는 말인데 이는 성령의 좌소와 사역 그리고 성령의 위상에 대하여 이해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성령의 체험을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에 대한 경험으로 말하고 있음으로 성령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하여는 무시해도 좋을 만큼 무지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성령의 좌소를 성자인 예수 그리스도에 끼워서 생각하고 있는 소치를 드러내면서 한 면으로는 아주 중대한 오해를 야기시키는데 철저한 인본주의적인 사상으로 발전시킨다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틀 안에 성부 하나님을 끼워 넣는 엄청난 실수와 오만과 무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그리스도 안에서 체험되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는 샤벨리안 주의의 [성부고난설]과 일치하는 주장이 되겠습니다.

증거) ③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성경에서 계시되는 바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성경의 중심이 하나님이심을 깨달아야한다. 물론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체험되신다. 하나님은 근본이시오 그리스도는 근본의 체현이시며 이 그리스도는 그 영으로서 실체화되신다. 그 영은 그리스도의 실체화이고,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근본이신 바로 그 하나님의 체현이시다"(11. P. 8, 5-12 ; 윗트니스 리 주장).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특징은, 인간의 이해의 영역 밖에 있는 성령의 사역에 대하여는 용감하게 제외시키고 자신들이 이해하고 있는 인간사고의 영역에서 기독론을 다루고 있는데,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사상에는 유물사관이 배어져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하여는 심각할 정도로 약화시키고 있는 점입니다. 이 점은 지방교회나 회복교회가 [중국적 기독교]라는 특징으로 구별할 수 있는 증거이지요.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를 주장하면서도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고 내 말을 지키면" 이라는 중대한 조건을 의도적으로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적인 양태가 [말씀] 임을 부인하고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라고 주장하는 중대한 오류를 드러내고 있는 중입니다. 이에 더하여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실체로서 성도 안에 들어오신다."는 공교한 주장을 함으로 [말씀을 통한 그리스도의 사역]을 진리로 알고 있는 정통교회의 성도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성경의 위치는 자신들의 주장에 꿰어 맞추기 위한 근거로 사용할 뿐,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아주 중대한 근거와 전제를 빼고 해석함으로 성경전체를 자유주의로 해석하며 인본주의적인 토대로 접근하고 있는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성령의 존재는 예수 그리스도가 부릴 수 있는 정도의 위상을 가진 천사 정도의 위상으로 존치 시키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은 불러도 성령의 이름을 부르지는 않습니다.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예수 이름으로 해결됩니다.

위트니스 리의 영향을 받은 표본이 베뢰아이며, 베뢰아에서 귀신론을 등장시킨 것은 위트니스 리의 성령론과 교회론의 모호함 때문입니다. 베뢰아에서는 예수의 이름이 만병통치약이며 만들어져 있는 귀신을 내어 쫓는 처방전입니다.
따라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업적은 [자유주의 신학과 인본주의 신학 사상의 배급]에 있다는 결론입니다.


2. 신학적 근거에 의한 비판

이제 이들의 주장을 근거로 분석하여 비판하여 보겠습니다.

(1) 신론

① "성경 말씀의 권위를 믿는다면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불리어진 아기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아버지라고 불리어진 그 아들이 바로 아버지라는 사실을 받아 들여져야한다....예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며 아들은 영존 하시는 아버지이기 때문이다"(7. P. 64, 1-10줄 ; 윗트니스 리 주장).


② "더욱이 고린도후서 3장17절에서는「이제 주는 그 영이시니」라고 되어 있다. 우리가 이해하는 바로는 주님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데 일치한다. 그러나 그 말씀은 또 주님이 그 영이라고 말한다. 그 영은 누구인가? 우리는 그 영이 성령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아들은 아버지라고 불리어지고 주님이신 그 아들은 또한 그 영이시다. 이것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하나임을 의미한다"(7. P. 64, 11-17 ; 윗트니스 리 주장).

③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성경에서 계시되는 바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성경의 중심이 하나님이심을 깨달아야한다. 물론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체험되신다. 하나님은 근본이시오 그리스도는 근본의 체현이시며 이 그리스도는 그 영으로서 실체화되신다. 그 영은 그리스도의 실체화이고,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근본이신 바로 그 하나님의 체현이시다"(11. P. 8, 5-12 ; 윗트니스 리 주장).


위의 ①, ②, ③ 주장은 전통적인 아리안 주의의 양태론입니다. 아리안 주의를 그대로 옮겨서 사용하고 있는 증거가 되겠습니다. 이들은 체현이라는 말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되는 과정을 통과하여 하나님이 되셨음을 공교하게 말합니다. 이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샤벨리안의 [성부고난설]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의 근본이신 그 하나님의 체현이다" 곧 근본 하나님이신 성부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체현하시고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체험되신다" ③에서 이들의 주장은 샤벨리안 주의의 성부고난설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윗트니스 리의 교도들은 4세기 이단의 전형적인 주장을 현대에 배포하고 있으며 이는 인본주의적인 성경접근과 자유주의 성경해석을 적용하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신학을 하지 않으면 자유주의와 인본주의의 위험성을 모르기 때문에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한 주장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이 평신도 교회라는 특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에 도달하였으며, 교파와 교단으로 특정 지어진 교회에 대하여 환멸을 느끼고 있던 한국의 무지렁이들이 위트니스의 추종자들이 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그 물에 그 고기지요.


⑥ "여호와이신 삼일 하나님-아버지, 아들, 그 영, 출애굽기 3장 15절과16절은 여호와이신 그리스도가 삼일 하나님이라는 것을 계시한다.「삼일 하나님」이라는 용어는 하나님이 세분이심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유일한 하나님이 삼일(三一)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셋-하나 하나님이시다. 그 분은 한 분이나 셋이며 셋이나 한 분이다. 그분은 아버지, 아들, 그 영이신 한 하나님이시다(마28:19). 이것은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비밀이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가 셋이며 셋이 하나인지를 설명할 수 없다. 그리스도는 유일한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 분은 아버지, 아들, 그 영이시다"(16. p.9, 하1-9 ;윗트니스 리 주장).

위트니스 리는 "우리는 어떻게 하나가 셋이며 셋이 하나인지를 설명할 수 없다."라는 말로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그리스도는 유일한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그 분은 아버지, 아들, 그 영이시다."라는 말로 비참한 설명을 마치고 있습니다. 이는 위트니스 리가 삼위일체론에 대하여 지극히 무지함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으며, 지극히 혼돈되어 있는 상태를 열거함으로 스스로 하나님에 대하여 무지함을 자신이 폭로하고 있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셋인 하나님이 어떻게 하나인 하나님이 되시는지와 하나인 하나님이 어떻게 해서 셋이 되는지 알 수가 없으며 이것을 신비하다"고 말함으로 더 이상의 삼일론을 전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위의 주장에서 감히 [우리는] 이라는 말로 모든 기독인들을 기만하고 있는 오만함까지 드러내고 있습니다. 정통교회의 장로 및 교역자들이라면, 적어도 삼위일체의 하나님에 대하여 정립해 두고 있다는 사실을 위트니스 리는 모르고 있던지 아니면, 자신이 모르고 있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정통교인들이 알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납득을 못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위트니스 리는 거짓말과 오만을 처처에서 드러내고 있습니다. 아래의 교회론을 보십시오.



(2) 교회론

1) 변질된 기독교의 또 다른 영성 형제교회와 워치만 니, 지방교회와 위트니스 리는 합작하여 [대륙적 기독교]를 만들어 냈습니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로 이어지는 [형제, 지방 교회]는 변질된 기독교의 또 다른 영성의 하나입니다. 워치만 니의 [기독관]은 위트니스 리로 이어지면서 [대륙적 기독관]으로 변질되었다. 즉 중국화 되었다는 말이지요. 중국에 토착화된 기독교의 문화는 지하교회의 양식을 띠고 목사를 선생의 자리로 만들어 놓았으며 기존 교회와 직원의 틀을 지하 교회화 시켜 놓았습니다. 여기에서부터 [성령론]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성령론이 달라지면 [교회론]이 달라지는 것이 당연한 귀결인 겁니다.

정통교회를 부인하는 기독교, 목사를 타락한 천사쯤으로 몰락시킨 저들의 교리, 지하로 숨어 버리는 성령론, 여기에서 나온 영성이 어떤 영성이겠는가? [워치만 니]의 판박이인 [위트니스 리]는 [대륙적 기독교]창시자로서 워치만 니와 동격입니다.

위트니스 리는 그의[성령론]에서 사도행전 15장의 예를 들면서 사도행전에 나타나고 있는 회의는 단 한 번 "공의회" 밖에 없다면서 현 기독교의 운동이라는 이름의 사역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나섰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독자적인 모델의 교회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름하여 지방교회로 불리우는 형제교회가 그것입니다.
위트니스 리는 "오직 성령에 의하여 움직여지고 결정해야지 사람이 결정해서는 안될 것"으로 말하고 있는 바, 교회에서의 중대한 회의에까지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경고하기를 "우리는 기독교 역사의 비극을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 이라며 [교회의 회의]를 비난합니다. ( 위트니스 리, [성령], (서울:한국복음서원), 1989, p.627-631)

[리]는 에베소서에 나타나고 있는 교회의 머리와 몸을 소개하면서 이를 하나로 말하고 " 그 몸인 교회는 종교나, 교리나, 신학이나, 행위나, 하나님을 섬기고 그리스도를 위하는 일에 속한 것이 아니라"는 모호한 말을 통하여 결국 교회의 회의를 정면으로 부인하기 위한 포석으로 삼고 있습니다. ( ibid, p.626)
리는 여기에서 기성교회를 향하여 한 편으로는 치면서 한 편으로는 자신들의 교회론을 만들어 내면서 자신들의 교회를 세우는 작업에 착수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결국 리가 기성교회와 각 교단의 교리에 중대한 도전을 한 목적은, 자신의 교회를 만들기 위한 작업이었음이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2) 리에 의하면, 교회의 회의 (당회, 노회, 총회)를 통하여 치리되고 있는 칼빈주의의 정치형태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인데 , 조금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a. 왜 교회의 회의를 중요한 전통이라 하는가? 에 대하여

종교 개혁이 일어난 16세기를 효시로 하여, 17세기는 혼란기이며, 개혁주의가 세워지는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 혼란기를 틈타 진화론에 편승한 이성주의와 휴머니즘이 일어났으며, 개혁주의는 영국의 성공회, 도이치의 루터란 처치, 러시아의 정교, 로마의 케톨릭으로 분류되어 독자적인 틀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칼빈의 장로교 정치는, 17세기 말과 18세기 초에 제네바를 중심으로 [의회정치]의 모습을 가지고 출현하였고 르네상스로 인한 이성의 팽배와 이성의 절대가치에 휘둘려 있던 혼란한 사회를 평화롭게 만들어냈습니다. 제네바에서 의회 정치를 하다가 한 번 축출되는 고배를 마신 칼빈의 장로교 정치는 다시 칼빈을 불러 옴으로 해서 [장로의회]정치를 구현하게 되었으며 이는 구라파의 교회에 장로교 정치를 뿌리내리게 하기에 충분한 사건이었습니다.

18세기에 이르러 개신교는 칼빈의 장로교를 완전히 답습했으며 실상 개신교는 [칼빈주의에 입각한 의회 정치]로 요약됩니다. 18세기 중반에 이르러 성결교와 감리교의 출발점인 웨슬레 목사의 사역으로 인하여 장로교에서도 구별된 (메도디스트)들이 출현하기에 이르러 개신교는 18세기 말엽부터 분열하여, 특징이 있는 교단으로 성격이 규정 되었습니다.

17세기에 영국에서 피난하여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청교도들의 초기 신앙이 점점 쇠퇴하여 갈 즈음에, 웨슬레와 동시대 사람인 죠나단 에즈워드를 통하여 미국 전역에[영적대각성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18세기와 19세기 어간에 죤 웨슬레를 중심한 [감리교]와 찰스 웨슬레를 중심한 [성결교]가 탄생하게 되었으며, 안식교와 여호와증인, 순복음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각 교단은 [중요한 회의]를 통하여 분립하였고, 교회를 세웠으며, 선교사를 파송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냥 솟아 난 것이 아닌 것이지요.

b. 교회의 회의를 무시하고 있는 모순에 대하여

예루살렘 공의회는 전적으로 장로들의 회의였으며 이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율법에 따랐습니다. 모세 시절에 이미 장로회에 해당되는 족장들이 있었고 이는 각 지파의 대표들이었습니다. 모세는 이들 각 지파들의 대표들을 통하여 장로회를 구성하고 있다. 이는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충언에 대한 결과이기도 하며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승인을 받고 장로회를 구성하였습니다. 장로회의 역사는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 참고 * (출 16:22) "회중의 두목" 에서 (출 18:17절 이하)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민 11:16-25) "이스라엘 백성의 장로와 유사"로)

c. 중대한 교회의 결의에 대하여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교회는 장로들로 인하여 치리 되었으며, 신약시대에는 (예루살렘 공의회)로 당당한 치리권을 가지고 이방교인들에 대한 일체의 [신앙의 모범]까지 결정하였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중대한 일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바나바와 바울이 [공의회]에 의하여 안디옥 교회로부터 안수 받고 [선교사]로 파송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공의회는 사도를 세우지는 않았으나 공식적인 선교사를 파송할 위력과 짱짱한 권위가 있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따로 세움을 입었고 이들을 안수한 것은 공의회였다는 사식을 주목해야 합니다. ( 행 13:1-3)

d. [리]가 말하는 목사직과 교사직에 대한 오해와 모순

[리]는 사도행전 13장을 통하여 교사인 니게르를 목사로 오인하고 있으나, 사도행전의 어떤 귀절에서도 니게르와 루기오, 마나엔이 [목사]에 해당하는 직을 수행한 것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e. 교회의 역사는 [회의]의 역사이다.

343년에 콘스탄틴 대제의 시절에 이미 [니케야 회의]를 통하여, 이단에 대한 규정과 예배 모범, 정경에 대한 연구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후로 중대한 교회의 [입장]과 교회의 [진리수호]에 대하여 많은 중대한 회의를 통하여 교회의 입장을 확인 혹은 정리했으며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3) [리]에 의하면 사도적인 본래의 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인데, 사도 바울을 통하여 천명되어지고 세워진 [목사직] [감독직]을 버리고 [교사직]으로 바꾸어 돌아 가자는 주장이기에 우리는 그를 [이단]이라고 부릅니다.

리는 자신의 권위를 사도 바울 이상으로 잡고 있으며 리를 따르는 추종자들에 의하여 리의 권위는 사도의 권위를 상회하고 있습니다. 겸손을 가장하여 교사직을 말하나, 이는 교회의 중대한 회의의 전통과 목사직에 대한 오해를 유도해 내기 위한 기만전술입니다. 도리어 칼빈주의와 대치시킴으로, 자신이 보다 더 우월하다는 교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리]가 말하는 리의 기독교를 변질된 [대륙적기독교]로 부릅니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에 의하면, 결국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그의 추종하는 세력인 청년들을 중심으로 정통 교회에 반대하는 저항세력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며, 이것으로 오늘날의 [형제교회] 및 [지방교회]를 탄생하게 했다는 도출되어 있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이들은 기독교인 듯 하면서도 전혀 양태가 다른 이단입니다. 이들의 영성에서는 우리 정서와는 전혀 다른 [지하 저항운동]을 보는 듯 하며 또 다른 몬타니우스를 보는 듯 하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3) 구원론

위트니스 리는 신과 합일되는 과정을 통하여 인간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신합일사상을 말하는 것으로, 윗트니스 리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 하나님을 자신을 사람 속에 넣어서 사람과 연합하여 하나님과 같게 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윗트니스 리, [내주하는 그리스도], pp.10~11), 여기에서 "하나님 자신을 대량으로 생산할 것을 계획" 이 말해지고 있으며, 동시에 "자신을 제품으로 생산" 으로 말하며 하나님과 인간의 연합으로 인간이 하나님과 똑같이 되는 것을 구원으로 말해지고 있습니다. (위트니스 리, [내주하는 그리스도], p.10), (위트니스 리,「하나님의 경륜」, p.244).

이들은 (고전 15:45) "...마지막 아담은 살리는 영이 되었나니"를 신합일주의의 근거로 삼고 있으며, 이 근거를 토대로 논리를 전개하여 체현의 근거로 삼고 있습니다. 이들이 신비로운 연합, 신비로운 체험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왜 이들이 체현을 말하는 것일까요.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체현을 통하여 하나님이 되셨다면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될 것이다. 그러니 이를 믿으라" 이들이 체현을 말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지방교도로서 잘 믿으면 예수님처럼 될 수가 있다." 이 말에 지방교도들은 깊이 빠져 들었고 위트니스 리의 교리에 미치고 있는 중입니다. 아래의 증거는 이들의 주장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증거) ① "만일 당신이 요한복음을 주의 깊게 읽는다면 당신은 태초에 그리스도가 말씀으로 표현 되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 뒤 마지막에 그 분이 영이 되신다(20:22). 말씀이신 그 분은 땅에 있는 전기 줄이시다. 즉 그 분은 안테나이다. 이 두 가지 말씀이 영이 요한복음6장63절에서 함께 왔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 안테나와 접지 선이 하나 될 때 전기가 온다. 말씀과 영이 섞여질 때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전달된다"(28. p. 39, 9-16줄 , 윗트니스 리 주장).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말씀과 영이 합해져 자기들의 속으로 들어 오신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습니다. 말씀과 영이 전기처럼 전달되어진다는 주장이지요. 여기에서는 그리스도의 인격이 말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지방교도들을 위하여 존재하고 전깃줄로 표현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에게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는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니라, 다만 형제일 뿐인 겁니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피조물인 인간과 창조주인 하나님의 구별이 사라졌습니다. 창조주와 합일되어 버린 인간도 아니요 하나님도 아닌 귀신과 같은 존재들이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이지요. 결국 이들에게서 나온 베뢰아에서 귀신론을 말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지방교도들을 살리는 영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체로 들어 오셔서 자신들을 영은 하나님과 같이 되었고 다만 아직 인간인 몸으로는 죄를 지을 수도 있으며, 인간의 한계인 죄의 문제는 자신들의 영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있어서 혼은 생각이며 그 생각 중에는 악한 생각도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아직 극복해내지 못한 어린 신자들에게나 적용되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이들은 자신의 영 속에 들어 있는 그리스도의 실체까지를 포함하여 넷으로 구분합니다. 즉, 영과 혼과 육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가 합하여 넷이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증거) ② "그 분은 주, 말 씀, 영이라고 불리우는 한 분 인격이시다. 주님은 또한 생명이시며(요14:6), 말씀과 영이시다(6:63; 롬8:10), 주, 말씀, 영, 생명은 하나 안에 있는 넷이다"(28. p. 48, 하 2-4).

이들은 위의 논리로 그리스도를 자신과 동기화를 시키고 있으며 동기화 시키는 과정의 필수요건으로 믿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하나님으로 말했다가, 한 분의 인격으로 말했다가 동시에 넷으로 말하면서 혼란을 증폭시키고 이것을 믿으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고 혼란이 가중되는 것은 자신의 믿음이 약한 탓으로 돌리도록 유도하고 있는 겁니다. 다음은 이들이 어떤 구차한 논리로 지방교도들을 현혹시키고 있는지에 대하여 밝혀 줍니다.

증거) ⑤ "신약은 우리에게 완결된 영 생명을 주는 영이신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내주하심을 분명히 계시한다(롬8:2;9-11). 디모데 후서 4:22절은 주께서 우리 영에 계신다고 말한다. 복합된 생명주는 영이신 완결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 안에 내주 하신다. 의심할 바 없이 우리는 사람이지만 신성한 영이 우리에게 더해졌다"(27. P. 145, 5-10줄 ; 윗트니스 리 주장).

"생명을 주는 영이신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신성한 영, 신성한 영이 더해진 우리의 영" 넷이 말해지고 있습니다. 혼돈 속에서 혼돈으로 연결되어지며 오리무중인 이들의 말장난은 어디까지 계속할 것인가! 다음은 이들이 부르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제목의 찬송가입니다. 이 찬송을 보면 산 너머 산입니다. 아주 험한 험산 준령입니다. 이들이 찬송을 통하여 어떻게 하나님과 자신을 동질화시키고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령의 충만]- 예수 그리스도의 영

1절, 이제 우리 하나님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 되었네. 부활하신 하나님 사람 승천하여 그 영되셨네.

2절, 승천하신 예수로부터 내 영 안에 그 영이 임했네. 그의 모든 실제 이-제 우리 체험 되게 하셨네.

3절, 예수 그리스도의-영 모든 성분을 포함하였네. 신-성과 인성도 있고 하나님의 영광 감춰져

4절, 이 영 안에 포함돼 있네 죽음의 효능 부활의 능력. 승천 보좌 권위와 왕국 하나님의 모든 성분이

5절, 이 영이 그 모든 성분을 내 영 안에서 역사하시네. 그의 기름부음 통하여 나도 주의 풍성 누리네

6절, 나의 모든 비결 되-신 만유 포함한 그 영 인하여. 하나님 내 모든 것 되어 내 안에서 역사하시네.
(위트니스 리, [성령], (서울:한국복음서원) 1989, p.48)

(4) 삼위일체론의 요소.

삼위일체론을 말할 때에는 중대한 요소가 있습니다. 먼저 삼위 하나님의 각각의 존재방식에 대한 설명과 함께, 한 분 하나님의 본질에 대하여 설명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인간과의 관계를 설명해 주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여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지와 어떤 방법으로 영생에 이르도록 견인해 가실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기본적으로 풀어져야 하는 요소입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상호내재 하신다고 설명으로 생략하는 것으로는 삼위일체론이 되지 못합니다. 이 요소가 설명이 되지 않을 때에 우리는 이단적이라고 말하며, 이와 유사한 다른 근거를 제시할 때 이단으로 분류하는 것입니다.

교회란, 하나님의 전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구원에 이르도록 양육되어지고 성장하며 최종적인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의 처소로 말해집니다. 모든 종교에는 종교의 배경이 되는 경이 있기 마련입니다. 경에는 어떤 기준으로 구원이 말해져야 하고 어떤 기준에 근거하여 양육되어져야 하는가 하는 기본 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경을 경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구원의 조건이 말씀되어지고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으로 말씀되어지고 있는 구원의 조건은 창조주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래서 이를 율법이라고 말하며 복음이라고 말을 합니다. 인간의 삶은 수천 년을 통해도 변함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수천 년을 통과하여도 변치 말아야 합니다.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근거되지 않는 말은 철학이라고 말하며 인간수양이라는 뜻으로 "도"라고 말을 합니다.

성경은 귀와 절과 각이 서로 맞게 되어져 있습니다. 구약에서 말씀되어진 내용이 신약에서 나오고 있으며 신약에서 인용되는 글이 구약에서 출처되어집니다. 성경의 저자는 각 각이지만, 성경을 기록하게 하신 분이 성령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경은 통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에 감동되어진 분들이 성경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각각의 시차와 역사와 문화를 달리하여 기록된 예언이 수백 년이 지나서도 이루어지는 것은, 저자들을 성령께서 감동하셨기 때문이라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풀기 위하여는 성령의 감동함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입니다.

성령의 감동을 입어서 말씀이 뿜어져 나오거나, 성령에 감동되어 글이나 책을 써서 펼쳤을 때에, 그 말씀을 듣거나 글을 읽은 분들의 생각의 틀이 바뀌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생각의 틀이 퍼지면서 사상으로 발전됩니다. 따라서 사상을 추적하면 어떤 생각인지가 나오며 과연 성령의 감동을 입은 생각에서 나온 글인지, 아닌지가 분별되고 판단되어지는 것이지요. 근거를 가지고 비판하는 것이며, 판단하는 것입니다.

(5) 지방교회의 "삼신론" 이라는 신조어에 대하여

기독교내에는 삼신론이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을 구분 못하는 자들에게서 양태론이 나옵니다. 이것이 3세기에 일어난 샤벨리안 주의이며 그 유명한 "성부고난설"입니다. 양태론이란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의 존재양태에 대하여 구별을 하지 못할 때에 빠져드는 이단사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샤벨리우스(Sabellianismus)를 따르던 분별력이 없는 자들을 통하여 사상으로 발전되었기 때문에 샤벨리안 주의 혹은 양태론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세계철학대사전, [사벨리우스 항목], (서울 : 교육출판공사, p.478.)

삼신론이란, 고조선 시대의 삼신 사상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천제 (환인), 천주 (환웅), 단군을 일컬어 삼신으로 불렀습니다. 따라서 지방교회의 김연진씨를 비롯한 지방교인들의 삼신론 사상은 고조선의 사상을 말하는 것이며, 단군교와 밀접하지 않고는 삼신론을 말하는 기독교인은 없다는 점을 알아 두어야할 것입니다.

지방교인들의 주장에 대하여 기독교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 "삼신론" 이라는 말로, 원세호 목사와 최삼경 목사를 조사한 통합측 교단의 이단심사위원들은 근거도 없는 지방교인들의 신조어를 양성화 시켜 준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베뢰와와 이명범씨의 레마선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였던 통합측에서 베뢰와와 레마선교회의 원조격인 지방교회의 주장을 수용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6) 워치만 니와 지방교회의 영향

워치만 니의 영향을 받고 김기동 목사는 베뢰아 아카데미를 세워서 귀신론을 널리 펼쳤으며, 평신도였던 베뢰아 1기생인 이명범씨는 레마 선교회를 창설하여 평신도로서 성경 사역을 빌미로 하여 워치만 니의 사상을 고급 베뢰아로 발전시켜 각 교단에 지대한 악영향을 끼쳤습니다. 현재 베뢰와의 귀신론을 주창하는 인사들은 각 교단에 널리 분포하고 있는 실정에 있으며 워치만 니의 사상과 환영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복음을 변질시키고 있는 주역들이 되어 있습니다. 이들을 통하여 기복사상이 퍼졌고, 물질만능주의와 혼합되어 있는 인위적인 영성운동이 펼쳐지고 있고 지방교회 및 평신도 교회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방교회와 워치만 니가 고후 3:17을 등장시켜서 인위적인 성경해석으로 접근하도록 운동한 덕분이지요. 그래서 베뢰아 및 이단들은 [자유적인 성경해석]을 외치고 있으며 이에 영향을 받은 용감한 평신도 및 교역자들에게서 자유주의신학이 판을 치게 된 것입니다. 이들에게서 [예수복음]이 주창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도깨비 방망이가 되어 흥부네 집의 박씨가 자라나게 하며 [대박]이 터지는 [세상복음]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워치만 니의 사상을 퍼뜨리고 있는 지방교회에서 줄기차게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성도 안에 내재하신다는 주장을 못 버리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는 이미 김연진씨와 지방교인들의 주장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을 빌면 재림주이며 심판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신 실체 그대로 자신들에게 오셔서 내주하시기 때문에 자신들은 구별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의 주님으로 내 안에 깃들어 계시는데 어찌 나를 심판하시겠느냐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지요.

4. 지방교회가 이신론이라는 근거

워치만 니의 경륜을 인용한 지방교회의 김연진씨는 다음과 같이 출처를 밝히고 있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와 떨어진 분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나타난 하나님이요, 그 영은 실제가 되신 그리스도이다" (87-경륜, 15쪽).이제 주(主)는 그 영이시니 (고후 3:17). 이 말씀은 성령이 그리스도와 떨어진 분이 아님을 증명한다. 주(主)는 그리스도 자신이요 또한 그 영이시다.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전 15:45). 여기에서도 성경은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가 그 영임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이 생명 주는 영이 성령임을 깨달아야 한다." (87-경륜, 15쪽)."


그리고 다음과 같이 해설하고 있습니다.

" 누차 말씀드리지만 삼위일체의 경륜적인 방면에 대해 무지할 때 양태론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양태론이 아닙니다. 위 인용문의 출처를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87-경륜, 15쪽)이라고 되어 있지요? 그 책의 내용이 [경륜적인 방면의 하나님의 역사]를 다뤘다는 말입니다. 본질적인 삼위일체는 아버지, 아들, 성령님이 영원토록 구별되고 독립되십니다.

그러나 성경본문에는 마치 아버지가 아들이시고 아들이 성령인 것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이것을 어떻게 풀 것인가를 고려하다가 나온 해석 관점이 바로 구속 방면의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는 경륜적인 삼위 일체인 것이지요. ["양태론이 아닙니다. 21631번 글을 형제 님이 남겨 주셨습니다.2003-04-20 오전 11:12:48에 작성된 이 글은 9번 조회되었습니다.] (출처 뉴조게시판)

위의 해설에서 주장하기를 몇 번을 말해도 이해가 안되지요? 하면서 자신들의 해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이 말은 자신들도 이해가 되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믿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이야기가 됩니다. 위의 내용은 전형적인 양태론이며 이신론에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이들은 이신론이다, 양태론이다 라는 지적을 피하기 위하여 [인위적인 해석으로] 경륜론을 등장시킵니다.

경륜론이란 인간 예수께서 하나님의 기준에 합한 순종의 결과로 하나님께서 지극히 높이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는 주장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경륜론의 해석 근거를 고후 3:17에 근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정작 주장하는 것은 고후 3:18절입니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지방교회는 삼위간에 대한 구별을 못하고 있음을 자신들 스스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심히 고민하여 경륜론을 내어 놓았다고 말합니다. 성령에 의한 해석이 아니라, 워치만 니의 고민에 의하여 해석되어졌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들에게서는 성령께 감동되어진 흔적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는 오직 인간이었다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 보입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성령의 사역을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인위적으로 대치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하 감옥에서 고민하다가 나온 사상. 그래서 이들을 [중국적 기독교] 혹은 더욱 세분하여 [중국적 예수교]라고 분류합니다. 이들에게는 실상 삼위일체론이 없습니다. 각각 떨어져 있고 두툼하며 비싼 책만이 존재하는 겁니다. 이단들에게는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겉은 같은 데, 속은 전혀 다른 사상이 숨어 있는 것이지요. 이단성에 대한 비판은 이단사상에 대한 비판입니다.

4. [지방교회의 중점 교리 분석과 비판연구]

현금에 한국인을 극도로 긴장하게 한, 대순진리회의 성전건축이라는 미명 하에 벌어진, 생명수 부활사건으로 한국 사회가 요동하고 있다. 이는 대순진리회가 기독교와 불교 그리고 천도교와 단군교를 혼합한 유사종교이기 때문에 대순진리회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기독교가 의혹의 눈총을 받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늘 한국 교회의 주변에 맴도는 하이에나와 같은 이단종파들로 인하여 한국 교회의 신학사상은 누룩이 든 빵과 같이 심히 부풀려져 있는 상태에 있다. 과연 순수한 기독교 사상이 이단들의 오도된 성경접근 방식과 인위적인 해석방식을 얼마나 많이 도입해서 사용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자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순수한 개혁주의 사상은 지상교회 부흥이라는 명분 하에 꿩잡는게 매라는 식의 인본주의와 적당한 자유주의를 도입하여 하나님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교회로 흘러가고 있다. 예배가 그렇고 강단에서 전해지는 말씀도 그러하다. 교회의 행사는 말할 것도 없다.

특히 교단을 초월한 독 교회에서는 예배 시간에 헤비메탈까지 동원하고 있으며 설교시간을 토론식 설교라는 이름으로 토론회로 둔갑시킴으로 예배의 경건함과 최소한의 엄숙함마저 던져 버리고 있는 교회들이 늘고 있으며 이들은 그러한 형태의 예배를 열린 예배라고 애써 광고하고 있는 실정에 있다. 그 예가 예수촌 교회이다.

김기동, 이초석, 이태화, 이명범, 윤석전 목사로 이어지는 베뢰아의 행진은 한국 교회의 영성을 본질적으로 훼손하고 있는 지경에 있으며 예태해의 빈야드 운동, 류광수의 다락방, 박철수의 새생활 영성훈련까지 이어지면서 한국 기독교의 영성은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지 향방을 가늠하기조차 힘든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하여 있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러 베뢰아를 출산한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의 지방, 회복 교회의 교리를 분석하고 비판하여 경종을 울리는 것은 한국교회를 위하여 지극히 당연하며 평범한 작업이라고 판단된다.

비판방법은 지방교회 측의 중요한 핵심 교리인 체현, 분배, 회복, 지방, 상호내재, 신화, 삼일, 경륜론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비판한다. 아래에서 사용하는 비판의 출처는 원세호 박사로부터 허락을 득한 것이며, 원세호 박사의 [지방교회 비판 변증서 1, 2, 3 권]에서 인용하였음을 밝힌다.

4-1. [회복론]

모든 이단들이 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 정통교회를 율법적이라 혹은 전통의 사슬에 매여 있다. 혹은 성경의 진리를 왜곡한다 등등의 주장으로 정통교회를 치면서 자신들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 관행이다.

그러나 윗트니스 리는 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통교회를 음녀, 바벨론으로 도전하며 세웠다. 과연 그러한가? 아래에서 이어지는 이들의 교리는 오직 지방교회를 만들기 위한 일련의 작업으로 윗트니스 리의 론을 구체화 하고 있는 작업이다.

증거) 11. 지방파 교회의 영광스런 상태

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의 사역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하나님이 교회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해 드려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즉 몸으로서의 교회 사역이 완성되는 그 날에 신부로서의 교회가 나타날 것이다"(15. p. 64, 하 4-8줄, 워치만 니 주장).
② "하나님 자신도 하실 말씀이 없을 것인 즉 이는 그 날에 가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15. p. 87, 5-7줄, 워치만 니 주장).
③ "교회를 미래의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교회는 오늘 있는 것이다"(22. p. 71, 18-20줄 워치만 니 주장).


증거) 지방교회와 회복론

① "지방교회는 그의 본성을 가진 참된 합일의 입장 위에 서서 이 세상의 어두움에 빛을 비추는 예수의 간증을 지녀야 한다...이것이 교회생활 안에서의 주의 회복이다"(32. p. 66, 하 1-8).

② "그의 창조의 목적은 교회를 낳는 것이었다. 구속에 있어서도 그의 목적은 교회에 있었다. 사실상 하나님의 하시는 모든 일은 교회를 위한 것이다. 복음은 전파하는 일, 성도들을 양육하는 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 등의 모든 사역이 교회를 위한 것이다. 복음을 전파하는 것도 복음전파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것이다. 성경을 가르치는 것도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것이다. 성도들을 양육시키는 것도 양육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서 보면 모든 역사와 사역이 교회를 섬기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구속을 위하여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다. 교회 건축을 위하여 구원받은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갈망이다"(22. p. 69, 10-21줄, 워치만 니).
③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은 인간이 하나님의 권위를 사용해서 인간이 사탄의 모든 일을 파괴해야 하는 것이었다...하나님이 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그러한 교회이다"( 15. p. 57, 하1-6줄, 워치만 니).

[비판]

워치만 니는 정통 교회를 사탄의 일이라고 비난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교회라는 이름으로 지방교회의 초석을 놓았다. 이어서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신 목적은 교회를 세우시기 위한 것이라는 명제를 내어 걸고 미혹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기 위하여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도록 방조하셨다는 말인가?

오직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시고 율법을 내려 주셨다.

우리는 가인과 아벨의 제사 사건 이후로 노아의 홍수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전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한 번도 교회에 대하여 언급하시고 있지 않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제사를 드리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기초가 될 수 있는 말씀(율법)을 내리신 적이 없다.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시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교회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성막을 세우게 하셨다. 따라서 교회의 시작은 광야교회인 성막으로부터 시작한다.(행 7:38)

그렇다면 그 이전의 인류는 구원을 받을 수 없었는가? 제사를 통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었고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으로서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직행하였다.

따라서 교회 이전의 시대과 교회 이후의 시대를 총망라해서 오직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으로 혹은 말씀을 통해서 믿음에서 구원을 얻을 만한 믿음으로 구원에서 영생으로 이르게 하심이 증명된다. 그 믿음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 그 보내신 아들을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롬 10:9,10, 요 3:15,16,36)

이어서 워치만 니의 인본주의사상은 계속하여 자유주의 해석으로 입맛대로 해석하면서 지방교회를 세워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비로소 회복이라는 명제를 설정하고는 밀어붙이기 한 판으로, 한 편으로는 정통교회를 사탄의 일이라고 비난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지방교회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는 현세적인 교회라고 주장하고 있다. ③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은 인간이 하나님의 권위를 사용해서 인간이 사탄의 모든 일을 파괴해야 하는 것이었다...하나님이 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그러한 교회이다"

워치만 니는 말하기를 그의 특이한 교회론을 말하면서 교회란, ③ "교회를 미래의 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며,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교회는 오늘 있는 것이다" 고 주장하였다. 워치만 니가 말하고 있는 교회란, 오늘에 있는 것이라고 말함으로 현실의 지방교회를 내세에 나타날 새 예루살렘 교회를 동일시 하고 있는 시대착오 적이며 광오한 교회론을 펼치고 있다. 이는 윗트니스 리의 시각에 현세에 집중되어져 있으며 오직 지방교회를 만들기 위하여 광분되어 있음을 증명해준다.

특히 워치만 니의 후계자인 윗트니스 리는 이 논리를 이해시키기 위하여 간증과 체현, 그리고 삼위일체론을 삼일론으로 둔갑을 시킨 삼일론이 양태론임을 염두에 두고는 삼신론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정통교회의 삼위일체론을 공격하면서 삼일론이라는 맹랑한 양태론의 아리안 주의를 도입하여 지방교회를 세우는 목적의 당위성에 대하여 황당한 말로 설명하고 있다.


4-2. [체현론]의 교리와 비판

윗트니스 리는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실체라고 보고 있으며, 이 실체가 자신들에게 들어 오는 과정을 체현으로 설명하고 있다. 체현의 교리와 과정은 먼저 몇 개의 전제를 필요로 하는데 ,

하나님의 법궤 안에 들어 있는 금 항아리를 예수 그리스도로 설명하고, 금 항아리에 들어 있는 만나를 예수그리스도의 실체로 설명한다. 이 전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신 날에 "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 26:26)와 요한복음 6장 48-51절 말씀을 근거로 하여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를 근거로 하여 아래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심으로 자신들의 몸 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분배하여 나누어서 체현하는 것의 근거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내다 버린 요한복음 6장 47절 말씀은 확고한 전제 하에서 요한복음 6장 48-51절 말씀을 서술하고 있다.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바가 오직 믿음이다. 믿음으로 영생에 이르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며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임을 강조하셨다. 히브리서 11장 1절은 믿음의 정의에 대하여 확실하고도 분명한 정체를 명시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하기 전에는 오직 말씀으로 계시되셨다.


1) 먹는다

증거) 4. 예수 그리스도를 먹는 방법과 그 목적

① "어떻게 그 분을 먹을 수 있는가? 그 분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로 그 분의 말씀을 읽음으로이다. 다만 이렇게 말하라 '오, 주 예수여 당신은 하나님의 생명의 체현이십니다. 오, 주 예수여 당신은 나의 생명이십니다. '오 주 예수여,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고 말씀으로 기도하라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굶주리면서 먹기를 거절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오, 주 예수여! 라고 부르라 조금이라도 다만 시도해 보라 이와 같이 주님을 먹으면 먹을수록 당신은 더욱 그 분을 먹기 원할 것이다"(30. p. 27, 하 2-11줄 ; 윗트니스 리 주장).
② "주님은 만족시켜주는 음식이시다. 그 분은 생명이시오 생명의 떡이시다. 우리는 날마다 먹는 것으로 인해 산다. 사탄은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먹는 것에 관해서 그들을 속였다. 이것이 그렇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으로 굶주려 있는 이유이다..."(32. p. 27, 9-12줄 ; 윗트니스 리 주장).
③ "예수님을 먹는 방법은 그 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 하시도다(롬10:12). 우리 모두는 달콤함과 즐거움으로 그 분을 불러야 한다. '주 예수여, 당신은 너무 달콤합니다. 주 예수여 나는 당신을 나의 생명으로 취하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오 주님 당신은 내게 생명의 떡이십니다. 이와 같이 그 분을 먹기를 시도하라...(요6:57), 우리가 예수님을 먹을 때 우리는 그 분으로 인해 살게 된다"(32. p. 28, 3-11줄 ; 윗트니스 리 주장).
④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 받은 구원받은 사람들로서 우리는 우리가 음식으로 취한 하나님을 표현한다. 우리의 음식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 안에서 표현된다. 하나님이 표현되지만 그러나 그 분의 표현은 특징 있는 우리 존재 안에서 이루어진다"(10. p. 12, 6-8줄 ; 윗트니스 리 주장).


2) 마신다.

증거) 3. '공기'같은 존재인 그리스도를 마시려고 그 이름을 부름

① "그리스도는 생명 주는 영-그 영이시다(고전15:45 하 ; 고후3:17). 그리스도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체현된 아들이실 뿐만 아니라 부활 안에서 그 영이 되셨다. 그러므로 그 분은 그 영, 즉 공기 같은 그리스도이다"(10. p. 87, 2-4 ; 윗트니스 리 주장).

(비판) 예수 그리스도를 먹으려고 윗트니스 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시인하는데 주문처럼 외우라고 권하고 있다. 목탁을 치면서 경을 외우듯 하라는 소리인데, 이는 윗트니스 리가 중국의 불교권의 문화를 유전으로 받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목탁을 치면서 금강경을 외듯,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면서 수양할 것을 권하고 있다.


3) 지방교회가 예수님을 먹어 치우는 순서

증거) ① "예를 들어 그것을 설명해 보겠다. 만일 여러분이 수박을 산다면 여러분의 의도는 이 수박을 먹어 소화시키는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여러분의 의도는 이 수박을 여러분 안으로 역사 하게 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 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첫째로 여러분은 수박을 산다. 둘째로 그것을 여러 쪽으로 자른다. 셋째로 이 수박이 여러분의 위로 들어가기 전에 즙이 될 때까지 씹는다. 수박이 조각들이 되고 조각들이 즙이 된다. 그러면 이것들은 각각 다른 세 가지인가, 한가지인가? 나는 이것이야말로 삼일성에 대한 가장 좋은 설명임을 확신한다" (7. P. 65, 9-17줄 ; 윗트니스 리 주장).
② "아버지는 온전한 수박으로 설명된다. 아들은 조각난 수박으로 성령은 수박의 즙으로 설명되어진다. 이제 여러분은 요점을 알 수 있다. 아버지는 아버지일 뿐 아니라 아들도 된다. 그리고 아들은 아들일 뿐만 아니라 성령이 되기도 한다. 바꿔 말하면 이 수박은 먹기 위한 조각도 되며 우리 안에 있는 즙도 된다. 그 수박도 먹혀진 후 없어진다. 본래 수박은 식탁 위에 있었지만 그것을 먹은 후에 그 수박은 온 가족 속에 있는 것이다" (7. P. 65, 하1-2; P. 66 1-5줄; 윗트니스 리 주장).

③ "우리의 하나님은 삼일의 하나님이시며 그 분은 과정을 거쳐서 우리 안으로 분배되실 수 있다. 수박이 우리 안으로 분배되려면 먼저 쪼개어져야 한다. 이 조각들은 씹어 먹을 때 즙이 된다. 온전한 수박, 조각들, 및 즙은「수박의 삼일성」으로 간주 될 수 있다. 수박이 그 과정을 거쳐 즙이 될 때 그것은 우리 안으로 쉽게 흡수되어 바로 우리의 요소가 될 수 있다.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 하나님을 통해 과정을 거치셔서 이제 그 분은 그 영 하나님이시다. 오늘 날 그 영은 우리가 마실 수 있는 수박의 즙과 같다. 우리 모두는 성령을 마셔왔다 (고전12:13), 성경은 우리가 한 아버지나 한 아들을 마셨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온전한 수박이나 수박 조각들은 마실 수 없으나 그 즙은 마실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는 과정을 거친 삼일 하나님의 궁극적인 완결인 그 영을 마실 수 있다. 우리의 하나님은 오늘 날 즙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과정을 거치셨다"(40. P. 11. 7-9 ; 윗트니스 리 주장)

[비판]

이들은 실체이신 예수님을 위와 같이 조각조각내어 먹어 치웠다. 목탁을 치면서 주문을 외우는 승려들과 같이 예수님의 이름을 골백번씩 부르면서 주문을 외라고 가르친다.

과연 예수님의 이름을 외는 것이 기도이겠는가? 골백번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르면서 이들은 실체이신 예수님을 조각내서 씹어 먹고 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은 이들 믿음대로라면 이들 속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어서 지방교도들은 예수님의 몸이 되었고 실체가 되어 있다.

왜 이들의 주장이 허무맹랑한가? 윗트니스 리는 중국적인 사고의 방법으로 성경을 풀었고 이해했고, 불교의 문화권이라는 틀 안에서 크게 깨달음을 얻었다. 마치 보리수 아래에서 도를 깨달은 싯타르타처럼 말이다.

윗트니스 리는 해탈하여 부처가 되었다. 그리고는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았고 깨달음을 널리 반포하기 위하여 정통 교회를 음녀, 바벨론으로 비유하면서 지방교회를 세웠다.

보라! 오늘날의 종말론자와 얼마나 다른지를 말이다. 결국 종말론자들도 윗트니스와 워치만 니의 책을 보고는 해탈의 경지에서 종말론파를 만들어 냈다.

윗트니스 리가 수박을 쪼개서 분배한 결과이다. 이제 또 어떤 이단이 나올 것인가!!!

윗트니스 리는 현재 한국의 지방교도들에 의하여 반 그리스도가 되어 있다.

4-3. 합병 및 상호내재 (여기에서는 인간과의 상호내재를 다루며 다음 장에서 다룰 삼일론에서 신론에 해당되는 상호내재를 다루려고 한다)

증거) ⑤ "신약은 우리에게 완결된 영 생명을 주는 영이신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내주 하심을 분명히 계시한다(롬8:2;9-11). 디모데 후서 4:22절은 주께서 우리 영에 계신다고 말한다. 복합된 생명 주는 영이신 완결되신 하나님이 오늘 우리 안에 내주 하신다. 의심할 바 없이 우리는 사람이지만 신성한 영이 우리에게 더해졌다"(27. P. 145, 5-10줄 ; 윗트니스 리 주장).



[비판]

1. 생명을 주는 영이신 하나님의 영
2. 그리스도의 영
3. 복합된 생명주는 신성한 영
4. 신성한 영이 더해진 우리(지방교도)의 영

위에 열거되어 있는 영들이 지방교회에서 주창하고 있는 영들이며 이 영들을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실체로 말하고 있다. 따라서 정확하게 판단한다면 이들에게는 성령이 없다!!!

본인은 확고하게 수십 차례에 걸쳐서 아버지와 아들의 영은 성령이시다 라고 못을 박았다. 위에서 윗트니스 리가 인용한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아버지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을 성령이라고 확언하였다.

윗트니스 리와 지방교도들은 예수님의 실체가 자신들에게 들어 오셨다고 했다. 성경은 단 한 번도 예수님의 실체가 성도 안에 들어가셨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다. 윗트니스 리는 성경을 자신의 머리로 멋대로 유추해 내고 있다. 과연 추측하여 [신합일] [합병]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합해졌다고 미친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는가? 사도 바울은 이 점에 대하여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다. 고린도 전서 1장 30절의 말씀이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라고 했다. 어디 성도에게 실체로 들어가셨다고 했는가?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것은 잘 못 풀었다 실수 했다의 차원이 아니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성경을 변개하고 있는 것이다.

윗트니스 리는 성령의 존재를 예수님의 실체라고 말하고 사이비 지방교회를 세웠다. 성령의 존재를 성령으로 말하는 정통교회를 음녀, 영적인 바벨론으로 정죄하고는 공산주의의 유물사관의 시각으로 예수님의 실체라고 풀어내고 불교의 시각으로 자신들도 수양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실체가 될 수 있다고 풀어냈다. 그 증거가 지방교회이다. 과연 지방교회가 기독교인가?

과연 지방교도들이 그리스도인들인가? 성경을 변개하는 적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짐승들의 무리들이 아닌가!!!

아래의 내용을 보라!


4-4. 신화론

1) 인간이 하나님이 되는 순서 (신화론)

거듭 당부하건대 누구든지 (지방)교회의 <신화>관련 주장을 판단하려면 그 이전에 위 <확증과 비평> 2002년 특집호 내용 전체를 두 세 번 읽어보기 바란다. 아래에서는 일반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위 책의 첫 번째 글인 'Becoming God' 중에서 본문이 강조하고 있는 내용들 중 일부를 인용 소개해 보겠다.

# 우리는 하나님이 된다. 이 말의 의미는 우리가 거듭남을 통해 하나님에게서 난 이후 우리가 전적으로 거룩케 되며, 변화되고, 하나님의 맏아들이신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을 때까지 하나님으로 적셔지고(saturated), 침투됨(permeated)을 가리킨다. 이러한 하나님이 되는 신화의 과정에서 우리의 인성(humanity)이 제해지거나 피조물로서의 우리의 신분이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영원토록 피조물과 인간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신화>는 우리가 신격(Godhead)의 일부가 될 만큼 높여지거나 하나님의 비고유적인 속성을 나누어 가지는 것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가 충분하게 신화된 이후에도 우리는 무로부터 무엇을 창조할 수 없을 것이며 무소 부재하거나 전능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에게만 계시는 조건인 스스로 존재함의 경지에까지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위 책, 17쪽).

[비판]

1. 사도바울은 이미 오래 전에 지방교도들과 같은 자들이 나타날 것을 우려하여 다음과 같이 두려워 떨면서 경계하며 오직 복음만을 전했다고 못을 박는다. (고전 2:3)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고전 2:4,5)

바울 사도는 오직 복음과 성령으로 복음을 전하였다고 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이어서 아주 중요한 말씀이 나온다.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 2:10, 11),

뿐만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고전 2:12)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고전 2:13),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고전 2:14)

어느 한 군데에서도 성도가 예수님의 실체로 인하여 중생 혹은 깨달음 혹은 성화가 된다는 말씀이 없다. 오직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중생이 되고 예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고 예수님의 마음까지 품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고전 2:16)

2. 결국 이들은 하나님이 되었다. 윗트니스 리가 교주가 되어 세운 지방교회를 통하여 이들은 하나님이 되었다. 만세이~~~

그런데 위의 내용을 보면 말로만 하나님이 되는 것이란다. 능력도 나타나지 못하고 성격이나 등등 체질이 전혀 변하지 않아도 예수님의 실체가 침투되고 적셔져서 [기분학상] 하나님이 된단다. 하나님이 되는 방법이 말에 있는가? 기분에 있는가? 최면에 빠지게 하면 하나님이 되는가? 분명히 말씀하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나타나는 능력에 있다고 했다. (고전 4:20)


이들이 주장하고 있는 지방교회의 교리와 윗트니스 리가 말하려고 했던 바가 바로 이것이다. 싯따르타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우침을 얻고 해탈하여 부처가 된 것처럼, 윗트니스 리는 유전된 불교의 문화권이라는 보리수 아래에서 성경을 보고 파고파고 또 파서 마침내 성경을 뚫어 내어 깨달음을 얻어 마침내 하나님이 되었다. 윗트니스 리가 찢어발기고 파고 또 파서 뚫어 낸 성경은 성경전체가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성경 구절만 뜯어내서 자신의 교리를 만들 때에 근거자료로 사용하였다. 윗트니스 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이 되는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이 된 것처럼 인간도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리는 단계별로 하나님이 되는 과정을 그려 내고 있다.

그리고 지방교회를 세워서 자신이 수양을 하여 깨달아 하나님이 된 것처럼 너희도 수양을 통하여 하나님이 되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하나님이 되고 싶은 마음이 높은 사탄의 씨를 영혼에 가지고 있는 교만한 자들이 지방교회에 기어 들어가서는 마침내 하나님이 되고 말았다면서, 정통교회 목사를 피조물 중의 하나로 보고, 목사제도와 교회제도를 비웃고 있는 중이다.

저들은 정통교회들이 교파를 만들어내고 분리하고 한 것이 참된 거듭남이 없는 사악한 행위라고 비난하면서, 자신들은 슬며시 성경을 변개시켜서 지방파를 쏘옥하고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들의 뿌리에서 베뢰아파와 구원파와 종말론파가 나왔다. 가히 이단들의 묘판이며, 이단 양성소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이 되어서 한국교회의 기독사상을 외곡하고 있으며 참된 기독교인으로 가는 길을 막아 서고 있는 사탄의 자식들이다.


2) 완성된 온전한 사람

*** 결론적으로, 원세호 님을 포함한 이단 감별사들과 (지방)교회측의 <신화>(Deification) 진리에 대한 근본적인 상이점은 이것이다. 즉 (지방)교회 측은 우리 안에 오신 주님 자신인 <생명>(요14:6)과 주님 자신의 우리의 영 혼 몸 안에서의 증가인 <생명의 성장>(요10:10하 골2:19)을 관심하는 반면, 원세호 님 등은 자신들의 교단 교리에 묶여 생명과 생명의 성장에는 인식과 체험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왜 예수를 믿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혹자는 천국 가는 것이 믿음생활의 목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한다'(마7:21). 그렇다면 오늘 날 이 많은 소위 크리스챤들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고 있는가? 매우 의심스럽다. 또 원세호 님을 포함한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예수 믿는다고 한다. 이 말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의 참된 의미인가? 신약 성경의 계시에 의하면 이것은 어떤 일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가 어떤 단계에까지 도달하는 문제이다. 즉 사람이 주님 자신을 생명으로 영접하여 그의 영이 <거듭나고> 이 생명이 우리의 존재 안에서 자라심으로 그의 혼이 <성화 되고> 마침내 우리의 몸도 주님 다시 오실 때 주님과 같은 영광의 몸으로 변형되는 <영화>가 성취되는 것이다. 지금 주님은 이처럼 우리의 영과 혼과 몸 안에서 하나님이 증가되시는 완전한 구원을 위해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계신다(히2:10).

다시 말해, 하나님의 뜻은 피조물인 그분의 택한 백성들이 그분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는 것이다(엡1:4-5). 그러나 이것은 오직 생명 되신 주님 자신이 사람의 영 안에 들어오시고(요3:6) 날마다 증가되시어 우리의 혼을 거룩케 하시고(엡5:26), 새롭게 하시고(롬12:2), 변화시키시고(고후3:18), 그분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고(롬8:29), 마침내 우리의 몸까지도 영화롭게 하심으로만 성취된다(골2:19, 롬8:23, 빌3:21). 이러한 온전한 구원의 성취는 또 다른 면에서 보면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인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될 수 있어 온전한 사람(a perfect man)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이다'(엡4:13). 이것이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인 '사람이 하나님(하나님-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으로 충만한 <한 온전한 사람>(a perfect man)이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리스도의 신부요, 하나님의 왕국의 실제이며,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영원토록 만물을 다스리고 이들을 통해 표현되신다(창1:26). *** *** ***

[비판]

여기까지에서 이들은 신화 (하나님 화)되는 것을 말하고 있다. 저의가 무엇인가? 중국인 그리스도를 등장시키기 위한 포석이 아닌가? 아니면 자신들이 이미 그리스도화가 되어 있다는 말인가?

인간은 그 누구도 온전할 수가 없는 존재이여 [한 온전한 사람]으로 부를 수도 없다. 이들이 한 온전한 사람의 상태를 성화(sanctification)로 말하는 것이라면, 인간의 한계를 전혀 망각한 그릇된 주장이다. 혈육이 있는 인간은 범죄 할 수밖에 없으며, 범죄를 하였을 때마다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입어야 한다. (히브리서 7장 이하를 보라)

이들은 어디에서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는다가 빠져 있다. 믿음이 빠져 있는 기독교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너무도 분명하게 믿음의 분량이 장성한 그리스도만큼 이라는 말씀과 제자가 스승보다 높을 수 없다는 한계설정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으라 하는 말씀에 대한 강령을 받는다.

여기 한 온전한 사람으로 말하고 있는 이들 지방교도들의 주장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윗트니스 리에게서 나왔다.

과연 인간이 온전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있어서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화가 되었기 때문으로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곧 예수님들이 아니겠나.

이들의 위대한 스승인 윗트니스 리는 중국인 그리스도로서 그 이름은 윗트니스 예수이다.

이들에게서 베뢰아와 구원파가 나왔다. 정통교회를 음녀, 혹은 바벨론으로 부르며 증오하는 종말론자들이 어디에서 나왔나? 이들에게서 나왔다. 이들은 곧 이단의 양성소이다.

이제 이들을 왜 적그리스도라고 하는지에 대하여 강호 제현들께서는 충분히 이해가 되셨으리라고 믿는다. 이들은 한국 교회의 적그리스도일 뿐만 아니라, 미미하기는 하나 세계를 이단화 시키기 위한 몸부림으로 가득 차 있는 예수님들이다.

3) 지방교회의 한계와 본인의 입장

지방교회의 한계는 어디인가? 평신도인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성경접근 방식은 자유주의이며, 성경해석방법은 인본주의이다. 이들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진리에 대하여 양면성이 있다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성경의 진리를 훼손하고 있다.

본인에 대한 지방교회 측의 공격은 과거 최삼경 목사와 원세호 박사를 공격한 공격의 내용으로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는데, 삼실론 이단, 혹은 복수성령을 주장하는 이단이라는 공격으로 본인을 압박하였다. 본인은 이들의 공격에 맞서 [나의 삼위일체론]을 내어 놓으면서 성경적인 근거에서 출발되었고 성경적으로 검증되었으며 변증가들의 변증되어진 내용을 나의 삼위일체론으로 정립하여 우리 교단 총회게시판과 기독신문게시판에 보란 듯이 올려놓았다.

이들이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로 풀고 있는 이단성을 지적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양태를 존재양태로 풀었으며 삼위 하나님의 본체의 존재방식을 존재양식으로 구별하여, 존재양식과 존재양태에 대하여 알기 쉽게 정돈하여 주었다.

다시 삼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계시 될 때에는,

1. 성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계시될 때에는 구원, 선택, 예정, 섭리, 심판 이라는 고유한 양태로 계시되시고 있음을 밝혔으며

2.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양태는 말씀으로 계시된다고 확실히 밝혔다.

3. 성령 하나님의 존재양태는, 진리의 영으로, 아들의 영으로 (행 16:7, 롬 8:9, 갈 4:6, 빌 1:19, 히 9:14), 아버지와 아들의 영으로 구분 없이 ( 요 14:16, 26, 요 15:26, 요 14:17, 롬 1:4, 롬 8:2, 고후 3:3, 엡 1:13, 히9:14, 히 10:29)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통칭되고 있으며 성도에게 충만하심을 통하여 내주하심으로 영원토록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견인해 가시는 것으로 계시되시고 있음을 밝혔다. 성령께서 성도를 덮어씌우심으로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시고, 내주하심으로 인격과 판단 가치관 등에 대하여까지 전인적으로 섭리하시고 있음이다.

성경에서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심으로 [성령]으로 계시될 때에는 그리스도의 영이라 혹은 아버지의 영이라 구분하지 않고 사용되고 있음은 조금도 부자연스럽지 않다.

지방교인들은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를 육신에 머물게 하고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보내시는 성령을 예수 그리스도의 실체로 해석함으로 인하여 성령의 존재양태를 훼손하고 있다.

이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보지 못했고 성령의 충만함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오순절 이전의 제자들과 똑같은 양태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오셔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조차도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

[성육신하신 그리스도는 재림주이시며 심판주로 오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음으로 영접하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았으며 (요 1:1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자에게 당신의 성령을 보내심으로 영생에 이르게 하신다. (요 3:16 과 행 11:17, 행 19:2, 6을 각각 비교하여 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엇이 답답하여 실체로 임하시겠는가? 말씀대로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안 믿으면 심판이며 영원한 형벌이다. 인간 하나의 존재가 무엇이란 말인가! 성부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택하신 유대인들마저 내어 치시고 언약을 세우지 않았던 이방인에게 구원을 내어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영생의 길이 제시되어 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온전히 믿어야 한다. 경에 기록된 대로 문자적인 내용대로 믿어야 할 것이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을 때에 비로소 성경에 대한 이해가 가슴으로 정리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성령 충만에 까지 가야만 한다.

죄로 죽을 인생을 불쌍히 여겨 주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듣게 하셨고, 믿게 하셨다. 그렇다면 제대로 알고 믿어야 하는 것은 스스로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지방교도들은 지금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면 망한다. 평신도적인 성경접근 방식과 해석 방식은 상당히 위험하다. 근거가 없고 아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제 각각의 성경해석으로 말미암을 때 결국 최종적인 구원에 영향이 미쳐진다는 사실을 숙지하고 있어야 하며, 그 책임은 스스로가 질 수 밖에 없다. 비린내 나는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 인생은 죄의 공장 밖에 될 수가 없으며 죄를 범하게 되는 것은 단지 시간과 환경의 차이일 뿐, 누구나 다 똑같다. 그래서 복음은 죄 사함에 대하여 첫 번째로 말씀하시고 있다. 죄 사함의 방법이 십자가의 대속이며,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과연 누구신가? 그 보내신 하나님이 누구신가? 나는 누구며 하나님은 누구신가? 여기에 대한 답이 오직 성경에서 나온다.

헛소리꾼에 불과한 지방교도들이며 착각하지 말라!!! 그대들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 자로서 한 구덩이에 빠져 멸망당할 자들에 불과하다.


*** 위에서 인용한 인용문은 원세호 박사님의 허락을 받고 [지방(교회) 주장과 성경적 변증서]에서 발췌 인용하였음을 밝힙니다.

5. 지방교회와 적그리스도

언제는 복수성령을 주장하는 이단이라고 본인을 몰아 부치기에, 윗트니스 리의 글로 반박하여 손보아 주었더니 쑥 들어가서는 고만 이름을 살짝 바꾸어 나왔다.

삼신론자라고 몰아 부치면서 본인을 이단이라고 하더니, 양태론 속에서 사신론을 주창하고 있는 윗트니스 리의 글을 올려서 다시 반박했더니 이제 삼신론이라는 말은 빼고 다신론 어쩌고 하고 있다.

정통교회와 정통신학자들은 하나의 줄기로 간다. 신학사상이 그러하고 신학사상의 사조가 그러하고 논조가 그러하다.

그러나 지방교도들의 스승인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는 안 해도 될 터치를 상당부분 해 왔기 때문에 그 사상이 여러 줄기가 얽혀 있음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정통신학자들의 경우에는 성경이 멈추면 그 자리에서 멈추나,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는 멈추지 아니하고 오히려 더욱 깊이 들어가서 성경을 해부하고 억지로 꿰어 맞추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교묘한 논리를 만들어 냈다.

그것이 회복, 지방, 합병, 분배, 실체, 신화, 경륜, 체현, 삼일론으로 집대성되었다. 가히 성경을 해부하여 조각조각 꿰어 맞춘 결과로 나온 인본주의 해석이며, 자유주의해석이며, 이성주의적인 해석이다.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의 이성의 끝자락에는 이들이 자라 나온 대륙의 환경특성과 유물론적 사상이 고스란히 배어져 있고, 불교적 사상의 시각이 기독교와 접목되어져 있음이 발견된다. 그리하여 이들은 성령을 이해하지 못하며 성령의 존재를 무시하고 있음이다.

성령은 아버지의 영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존재양식과 인간에게 내주하실 수 있는 영으로서의 존재양태를 가지고 있다. 오직 성령만이 인간의 내면에 내주하실 수 있으며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으로 계시된다.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의 경우에는 유물론적 사고방식의 고착으로 인하여 성령의 존재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으며 따라서 이들에게는 성령에 감동된 흔적이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오직, 만질 수 있고 볼 수 있는 계시된 부활 전의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에 머물러 있다. 유물사관의 영향이다.

유물사관의 사고는 인간이성으로 치달리게 하며 결국은 성령께서 말씀을 멈추신 부분에까지 들어가서 예수님의 실체라는 고착되어 있는 사고의 틀로 해석하여 성경을 발기발기 찢으며 해석하였다. 결과 이들의 사고의 틀로 해석된 이성적이며 인간적인 교리가 나오게 되었으며 지방교회에서는 인간적인 교리를 성경에 해당하는 권위를 부여하며 열심히 믿고 있는 중에 있다.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어서 해탈하여 부처가 되었다는 싯타르타나, 공산주의 국가에서 불교의 시각으로 살펴 본 성경에서 깨달음을 얻어 예수님의 실체가 되었다는 윗트니스 리나 [본질]이 같고 [과]가 똑 같다.

사탄이다! 지방교회를 세워서 포교를 하며 정통교회를 음녀로, 영적 바벨론으로 몰며 교회를 훼방하고 있는 윗트니스 리와 그의 추종자들은 정확히 말해서 [적그리스도]가 아닌가!

6. 위트니스 리의 성령관 비판

책을 저술하는 저자의 입장 표명이 가장 확실한 부분은 책표지에 등장하는 몇 소절의 글에 있다. 윗트니스 리의 [성령]의 표지에는 두 개의 주제가 표제어로 기록되어져 있다. 여기에서 윗트니스 리는 성령에 관한 자신의 무지를 확실하게 드러내고 있다. 윗트니스 리는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를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한 자이다.

6-1. "성경이 그 책이듯 오늘날 하나님의 영은 그 영이다. 그 영은 만유를 포함한, 복합적인, 과정을 거친 영이다. (<= 성령이 무슨 과정을 거치셨는가?) 이 영은 하나님의 영이며, 여호와의 영이며, 성령이며, 아버지의 영이며, 실제의 영이며, 보혜사이며, 능력의 영이며, 예수의 영이며, 생명의 영이며, 그리스도의 영이며, 그분의 영이며, 주의 영이며, 주 영이며, 하나님의 아들의 영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며, 영원한 영이며, 은혜의 영이며, 영광의 영과 하나님의 영이며, 일곱 영이다" <성경에 나타난 성령의 칭호 중에서>

[비판] 성령이 무슨 과정을 거치셨는가? 윗트니스 리는 성령에 대하여 구분조차 못하고 있는 무식자이다. 성령이 어떤 과정을 거치셨는가?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에 대하여 아버지의 영으로 확실히 구분하여 말씀하시고 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 14:16,17)

마치 소금을 정제하듯 설탕을 정제하듯, 과정을 말하는 윗트니스 리의 의도는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제되는 과정을 통하여 성령이 되셨다는 주장을 펴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가? 불행히도 윗트니스 리의 글을 보면 이와 같은 우려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윗트니스 리는 성령의 존재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다. 윗트니스 리는 성령과 예수 그리스도를 동일시 하는 이원론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윗트니스 리에게는 하나님과 예수님 두 분 밖에 보이지 아니하며 성령은 조사에 불과할 뿐이다.

윗트니스 리는 그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 그가 성령에 대하여 전혀 체험이 없고 성령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온전히 무식자임을 보여준다. "아버지가 아들의 이름 안에서 성령을 보내신다는 것은 성령과 아들이 하나라는 것을 가리킨다. 성령과 아들이 하나이기 때문에 성령은 아들이신 아버지에 의해 보내심을 받을 수 있다." (윗트니스 리, [성령], (서울:복음서원, 1989) p. 191)

윗트니스 리는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성령을 구분하지 못한다. 오직 삼일론에 매달려 삼위의 하나님을 삼일로 묶기 위한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뿐이다. 윗트니스 리는 다음의 말로 그의 모호한 삼일론에 대하여 기가 질리게 만들고 있다. "이 구절은 (요 14장 26절을 연구할 때) 아버지가 그 영을 보내셨을 때 아들인 그 영을 보내셨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 안에서 그 영을 보내셨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들과 아버지가 하나라는 것을 가리킨다." (ibid, p.191)

처처에 윗트니스 리는 그의 저서에서 그의 무식한 변론으로 일삼고 있다. 그는 자신의 시각으로( 유물사관과 불교권의 문화에 기인한) 성경을 이잡듯 뒤져서 해석이라는 이름으로 양태론을 펼치고 있으며 아리안주의이며, 플라톤의 이원론적인 사고로 성령을 풀어대고 있다. 윗트니스 리의 사상에는 성령이 들어가 있지 않다. 다음의 증거는 윗트니스 리의 성령에 대한 체험 혹은 성령관의 현주소를 확고하게 밝히는 증거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

6-2. "성령 안의 침례는 비밀이다. 워치만 니가 성령을 받지 못했다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전도의 왕 스펄젼도 방언을 말했는지 의심스럽다. 우리는 그의 저서를 많이 연구했다. 그러나 그가 방언 말했다는 것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이것이 그가 성령의 침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무디는 위대한 전파자였다. 그의 저서에서도 방언을 말했다는 것을 찾아 볼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제시 펜 루이스를 안다. 그녀는 십자가에 대한 많은 글을 썼다. 그녀는 영국에 있었던, 방언을 말하는 것을 강조하는 소위 오순절 운동을 극구 반대했다. 엔드류 머레의 역시 영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저서에서도 그가 방언을 말했다는 것을 찾아볼 수 없다. 나는 당신에게 방언을 말하지 않은 많은 영적인 거인들의 이름을 열거할 수 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방언을 말하지 않는다면 성령 안의 침례를 받지 못했다고 너무 강조하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타난 성령 안의 침례 중에서>

[비판] 윗트니스 리는 "성령 안의 침례는 비밀"이라는 말로 자신과 자신의 스승인 워치만 니를 변호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윗트니스 리는 자신이 성령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고하게 증명해 주고 있을 뿐이다. 그는 성령의 체험(세례)를 받으면 다 방언을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무식한 자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윗트니스 리는 쟁쟁한 설교가와 석학을 예로 들면서 의도적으로 성령의 체험에 대하여 무시하고 있다. 마치 성령의 세례를 받은 분들 가운데에서 방언을 하는 분이 있다면 무식한 자로 오인되도록 의도적으로 짓누르고 있다. 윗트니스 리의 말을 빌면 성령을 체험한 분들은 무식자가 되어 버리고 만다. 윗트니스 리는 이렇듯 그의 말재간으로 성령의 사람들이 자신의 체험에 대하여 근심하거나 혹은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자아내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과연 위트니스 리가 앞에서 열거한 신앙의 선진들이 성령의 체험이 없어서 성령의 체험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 그 분들은 오히려 자신의 체험한 것이 독자들에게 알려지면 교만해질까 두려워 했던 분들이다. 스펄젼은 그의 설교노트 "영혼의 상처"에서 J.C.Hare 의 글을 인용하고 있다. 소개하면,

" 보혜사는 세상으로 확신케 하려 오셨다. 보혜사!
나의 형제여, 이런 사렴을 띠고 오신 분을 보혜사라 부르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지는가? 당신을 위로하느 대신 당신의 죄악을 확신케 함으로써 당신에게 수치와 혼란을 주고 말할 수 없는 고뇌와 낭패에 떨어지게 만든다고 생각하는가? 아이다. 친애하는 형제들이여, 결코 그렇지 않다. 여러분 가운데 있는 죄를 깨닫게 해주신 성령이 단호히 증거할 것이다. 그들은 그가 죄를 깨닫게 하심으로 그가 보혜사 되심을 증거해 준다고 강력히 주장할 것이다. 만일 죄의 깨달음과 확신이 다른 방도로 이루어진다면 분명히 우리를 수치심에 짓눌리게 만들고 말할 수 없는 공포심에 삼키우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이 하나님의 영으로 이루어지므로 그 날개 위에 회유와 위로를 싣고 다가온다. 그가 우리에게 확신시키는 죄가 무엇인가를 기억하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이다ㅏ. 다른 모든 죄에 대한 확신은 소망이 없다. 여기에는 소망이 확신에 수반되고 또한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지 안히나 죄를 깊이 느끼고 실제적으로 깨닫는다면 그리스도께서 다른 죄로 더불어 이 죄악을 옮겨버리심을 동시에 느끼게 될 것이다." 스펄전, [스펄젼의 설교노트] 데이빗 풀러편, 김형대역, (서울:생명의말씀사,1979,) p.359.

이는 확고히 말하건데 헤어와 스펄젼 두 분은 성령의 체험이 확실하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

성령을 체험하지도 못한 위인이 어찌 성령에 대하여 말할 수 있는가? 윗트니스 리의 저서인 [성령]에는 성령이라는 이름만 나올 뿐 전부 예수 그리스도로 도배가 되어 있다. 윗트니스 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삼일론을 통하여 교묘하게 성령론을 배설하여 놓았으나, 어디에서도 성령론은 없다.

그리하여 윗트니스 리는 성령에 대하여 치졸한 방법과 조악한 말로 성령을 아버지와 아들에게 종속된 영으로 표현하고 있는 샤벨리안 주의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리 가도 아리우스적인 양태론이요, 저리가도 샤벨리안적인 양태론이다. 쓰레기같은 윗트니스 리의 저서인 [성령]은 1989년도에 15000 이나 했다. 당시 부목의 월급이 40만원 일 때이다. 이런 정도의 말장난꾼이나, 말재간꾼은 교회 역사에 보면 널려있다.

7. 지방교회에 대한 각 교단의 이단 확인.


7-1. 지방교회(위치만니, 위트니스 리, 한국복음서원)
연구기관: 예장(통합),예장(고신)

통칭 지방교회 또는 회복교회라 불리는 이 단체는 위치만니와 위트니스리의 사상을 전파, 보급하는 곳으로 구원론, 교회론 등의 문제로 인해 이단 규정된 곳이다.

흔히, 이단 또는 사이비 하면 헌금강요, 가정파괴, 성폭행, 사회혼란 등을 일으키는 단체(또는 사람)라고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이단 문제는 신학적(교리적)인 문제가 핵심이다. 다시 말해 성경의 절대 기준에서 어떻게 벗어 났느냐의 문제가 이단, 사이비를 규정하는데 잣데가 된다는 것이지, 윤리적, 도덕적으로 빗나간 현상 때문에 이단이 된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헌금강요 등 불건전한 현상들이 정통교회보다는 이단자들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개연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안식교나 지방교회 등과 같이 윤리적, 도덕적으로 별다른 흠을 찾ㅇ르 수 없는 곳도 이단이 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동이 아무리 선해도 올바르지 못한 성경의 내용을 전하기 때문이다.

지방교회(회복교회)는 중국에서 워치만 니의 가르침을 이어받았다고 자부하는 중국인 위트니스 리(이상수:1905~)가 1950년대에 독자적인 교회를 개척함으로 시작되었다. 1962년 위트니스리가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지방교회를 세우므로 꾸준히 성장하여 현재 교인 수는 전세계적으로 20,000명으로 추산된다. 대만과 필리핀에 7,000명, 미국에 5,000명, 그리고 세계 다른 지역에 8,000명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위트니스 리는 110,000명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의 지방교회는 중국의 공산화 이후 워치만 니의 직계제자라고 자칭한 왕중생(한국 본명:권익원)씨의 지도 하에 1966년에 시작되었다.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인 성향을 띠었던 한국의 지방교회는 위트니스 리와는 교류가 거의 없다가 권씨의 사망을 계기로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 서초구 서초2동 491에 본부교회에 해당하는 서울교회 집회소가 있으며, 전국적으로 60개 정도의 집회소에 1,500명 정도의 교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한국복음서원'(대표 이희득)이 출판물을 보급하고 있다.
위트니스 리 사상은 워치만 니 사상과 함께 한국교회의 많은 이단들을 낳게 하는 (김기동, 권신찬, 이명범 등)모태가 되는 명백한 이단이다.(예장(통합))

워치만 니에게는 가장 가까운 동역자가 있었는데, 하나는 위트니스 리이고, 하나는 스티븐 강이다. 그런데 둘다 미국에 건너가 위트니스 리는 LA 근교의 아나하임(Anaheim)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스티븐 강은 미국 동붕 자리잡고 활동하고 있다. 한국의 자방교회는 위트니스 리 계열에 속한다. 현재 지방교회는 미국을 비롯하여 카나다, 일본, 브라질, 영국 호주, 뉴질랜드,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폴, 서독, 홍콩, 스위스 등의 나라에 퍼져 있다.

그런데 한국 지방교회는 서울대 사대 출신인 이희득이 전시간 봉사를 담당하고 있다. 지방교회는 초대교회가 그 지역을 따라 이름을 붙인 것 처럼(예: 예루살렘교회, 안디옥교회 등)오늘날도 그렇게 해야 된다고 주장하며 (예;서울교회, 대전교회 등), 자기들의 교회가 모이는 곳이 지방교회의 '집회소'이다.
워치만 니는 결국 기성교회 조직을 부정하고 죄악시하므로, 형제 운동을 전개하여 계급없는 교회를 이룩하는데 그 목적을 두었다. 신자들에게 '형제'호칭을 묵시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기성교회에 대한 강한 거부의 표어내지는 이른바 계급교회들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아진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형제'라는 호칭을 예사로 사용해서는 안될 것 같다.(예장(고신))



7-2. 윗트니스 리(지방교회, 회복교회)

개요


지방교회 신도를 구분하는 특징중 한 가지는 "오! 주 예수여"를 반복적으로 읊조리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기성교회를 '바벨론, 음녀'라 하며 스스로 분리되려 하는 이곳은 구원론, 교회론 등에서 이단으로 규정된 단체다.


지방교회는 현재 한국에 90여 지부가 있으며, 신도 수는 3만여 명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새신자는 '12단계 기초과정'과 그후 '40단계 진리공과' 등의 과정을 통해 지방교회 사람드로 변하게 된다. 1년에 한 번 전국 규모의 집회가 있지만, 은밀히 개최하기 때문에 지방교회 신도가 아니면 언제 그 집회가 열리는지 자세히 알 수 없다. 최근에는 집사, 장로 임직식 교육을 전담하는 '성경진리사역원'이라는 자체 교육원을 개설하기도 했다. 출판사 '한국복음서원'을 통해 그들의 사상이 전파되고 있다.


"지방교회는 중국인 워치만 니(Wachman Nee, 1903. 11. 4∼1972. 6. 1)로부터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그의 동역자였으며 후계자인 윗트니스 리(Witness Lee, 1905∼)가 이끌고 있다.


교세는 중국대륙을 제외한 전세계에 1,100여 교회가 있고 한 교회에 평균 100명 정도로 전부 11만명 정도의 신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에는 한국인으로 중국에 있던 권익원이란 사람에 의해 1966년에 들어왔고 1989년 통계에 따르면 서울의 15개 집회소를 위시하여 전국에 60∼70개의 집회소가 있으며, 2,000여 교인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한국복음서원을 두고 지방교회의 모든 출판물을 발행하고 있다. 그들은 '교회는 우주적인 면에서는 그리스도의 한 몸이요, 인간 사회에서 나타날 때에는 한 지방, 한 교회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각 교회는 지방이름을 붙여 단순히 00교회이어야지 어떤 교파별 명칭을 갖는 것은 죄'라고 여긴다. 그들 교회를 지방교회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지방교회는 또 회복교회라고도 부르는데 그것은 그들이 초대교회의 본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예배 내지 집회의 형식은 일반교회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며, 지방교회에는 근본적으로 모든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 성직자이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 기존 교회처럼 목사, 전도사를 따로 두고 있지 않다.


워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의 저서, 예를 들면 「라이프 스터디」와 같은 것 등 한국복음서원에서 출간한 도서들에는 사이비성이 농후하므로 그 모든 서적, 출판물의 구입, 광고 게재 등을 금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예장 통합 76회 보고 내용)


이단성 연구 보고서(77회)


지방교회(회복교회)는 중국에서 워치만 니의 가르침을 이어받았다고 자부하는 중국인 윗트니스 리(이상수: 1905∼)가 1950년대에 독자적인 교회를 개척함으로 시작되었다.


1962년 윗트니스 리가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지방교회를 세우므로 꾸준히 성장하여 현재 교인수는 전세계적으로 20,000명으로 추산된다. 대만과 필리핀에 7,000명, 미국에 5,000명 그리고 세계 다른 지역에 8,000명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윗트니스 리는 110,000명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의 지방교회는 중국의 공산화 이후 워치만 니의 직계제자라고 자칭한 왕중생(한국 본명: 권익원)씨의 지도하에 1966년에 시작되었다. 권위주의적이로 폐쇄적인 성향을 띠었던 한국의 지방교회는 윗트니스 리와는 교류가 거의 없다가 권씨의 사망을 계기로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 서초구 서초 2동 491에 본부교회에 해당하는 서울교회 집회소가 있으며 전국적으로 60개 정도의 집회소에 1,500명 정도의 교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한국복음서원'(대표 이희득)이 출판물을 보급하고 있다.


문제점


▶ 신론의 문제점



가. 윗트니스 리가 신인합일 주의를 가르치고 있다.

윗트니스 리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 하나님을 자신을 사람 속에 넣어서 사람과 연합하여 하나님과 같게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윗트니스 리 「내주하는 그리스도」, pp.10∼11), "하나님 자신을 대량으로 생산할 것을 계획"(윗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p. 10), "자신을 제품으로 생산"(같은 책, p.10)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가 아닌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으로 사람이 하나님과 똑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내주하는 그리스도」p.10., 「하나님의 경륜」, p.244).


윗트니스 리의 사상은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 사이에 뛰어 넘을 수 없고 엄격한 차이를 인정해야 하는 우리의 신앙과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나.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론은 양태론이다.

윗트니스 리는 구약에서의 하나님에게는 신성만 있었으나(윗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p.15) 성육신의 과정을 통고하여 '사람과 함께한 하나님' 즉 '하나님-사람'이 되었다가 부활을 통하여 인성을 포함한 영으로 변형되므로써(윗트니스 리, 「그 영과 몸」, pp.105∼107) "하나님의 세 인격은 세 영들이 아닌 하나의 영"(「하나님의 경륜」, p.16)으로 세 인격이 한 영안에 있는 '삼일(三一)하나님'이 되었다고 한다. '삼일 하나님'이란 하나님은 성육신의 과정을 거치는 단계를 통해 세 인격이 하나로 발전된 것이라는 말이다(같은 책, p.110).


윗트니스 리가 비록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을 변형된 형태로 표현하고는 있지만 명백한 양태론으로서, 그의 사상은 하나님의 전능성에도 위배될 뿐만 아니라 또한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의 불변성과 영원성을 무너뜨리는 잘못된 것이다.



▶ 기독론의 문제점


예수님의 인성에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의(예수) 인성이 아들의 명분으로 태어나기 위하여 부활이 필요했다. 부활 이전에 그리스도는 그의 신성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나 그의 인성에 따르며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윗트니스 리, 「그 영과 몸」, p.73)고 하여, 인성을 입은 그리스도는 거룩하게 될 필요가 있었는데 부활을 통해 완성되었다(같은 책, p.76)고 한다.


윗트니스 리의 기독론은 결국 사람이 하나님과 똑같이 될 수 있다는 신인합일 사상에서 나온 것으로서 예수님이 나실 때부터 승천하시기까지 참하나님이시오 참 인간이신 그리스도의 양성 교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 인간론의 문제점


영, 혼, 육 삼분설을 취하면서 인간의 타락은 육적인 것으로만 이해하고 영은 타락하지 않은 것이 되어 전인적인 타락이 부정된다.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아니라 아담이 '하나님 자신인 생명 나무'를 취하지 않고 '사탄인 선과 악과 지식의 나무 열매'를 먹음으로 사탄을 몸 속에 받아 들였기 때문이라고 한다(윗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p.130., 윗트니스 리, 「사람의 영」, p.45).


사람은 몸과 혼과 영이라는 세 부분으로 창죄되었다는(「하나님의 경륜」, p.136) 삼분설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순수한 사람은 중립이었으며(같은 책, p.127) 몸도 아주 선한 것이었으나 사탄을 몸에 받아들이므로 몸이 사탄의 거처가 되었고 따라서 부패되어 흉하고 악마같은 육이 되었다고 한다(같은 책, p.127) 몸도 아주 선한 것이었으나 사탄을 몸에 받아들이므로 몸이 사탄의 거처가 되었고 따라서 부패되어 흉하고 악마같은 육이 되었다고 한다(같은 책, pp.129∼130). 이 사탄은 육신에 거처를 정하고 혼에 영햐을 준 다음 혼을 통해 영을 죽이려 하기 때문에(같은 책, p.138), 성령이 사람의 영안에 들어와서 하나님과 사탄이 매일매일 우리 안에서 싸우고 있다고 한다(같은 책, p.139).


인간의 타락은 전인적인 것인데 비해 그것을 육체적인 것으로만 봄으로 몸만 타락하고 영은 타락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범죄하는 영은 죽을지라"(겔 18:20)는 성경말씀과 다르다. 또한 생명나무가 하나님이요 선악과는 사탄이라는 등 잘못된 주장을 함으로 결국 윗트니스 리의 주장은 성경적으로 지지될 수 없는 허황된 사변과 논리일 뿐이다.


▶ 교회론의 문제점


기성교회를 바벨론 음녀라고 하며 기성교회 목사와 예배 등 대부분의 제도를 부정한다. 기독교를 바벨론이요 음녀라고 보아 기성교회는 타락해 죽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지도 않고 불태워질 것이라고 한다(윗트니스 리, 「주의 회복에 관하여」, pp.12∼13., 윗트니스 리, 「성경의 핵심」, pp.94∼97, p.103., 윗트니스 리, 「그리스도냐 종교냐」, pp.210∼211., 윗트니스 리, 「일곱 영」, pp.10∼11, p.49).


기성교회의 목사와 예배를 부정하고(워치만 니, 「사역의 재고」, pp.240∼244, p.251, pp257∼269), 침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으며(워치만 니, 「그리스도인 50 필수과정 1」, pp.7∼18., 윗트니스 리, 「진리공과 - 제 1단계-제 3권」, pp.86∼89.,「진리 시리즈 2- 구원이란 무엇인가?」), 성령 충만을 위해 '오 주 예수여!'를 반복적으로 주문처럼 외우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윗트니스 리, 「성경의 핵심」, p.138., 윗트니스 리, 「그 영과 몸」, pp.27∼28, pp55∼61, p.83, p.93, p.110, p.115., 윗트니스 리, 「일곱 영」, p.117).


연구결과

윗트니스 리의 사상은 워치만 니 사상과 함께 한국교회의 많은 이단들을 낳게 하는(김기동, 권신찬, 이명범 등) 모태가 되는 명백한 이단이다. [예장 통합]

[주님의 사랑 인터넷 세계 선교회] 안형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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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

 

-라은성 교수(국제신학대학교)-

 

 

1.1. 정의


        영지주의(Gnosticism)는 신비하고 비밀적인 지식을 또는 ‘영지’(gnosis)를 통해 구원이 이뤄진다는 종교적 철학적 이원론을 철저하게 표방하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영지주의자 발렌티우스(Valentinus, c. 105-c. 165)에 의해 설립된 로마학파와 알렉산드리아학파들이 2-3세기의 그레코-로만 (Greco-Roman) 세계에 그 절정과 그 번영을 나타내면서부터 알려지게 되었고 그 이후 이 운동은 기독교에 큰 충격을 준 신비적 종교운동이 되었다. 이 운동이 번영했던 시기는 교회교부들―이레니우스(ca. 120-203), 히폴리투스(d. 235), 터툴리안(ca. 150-160~ca. 220-240) 등―이 활동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그들은 영지주의의 위협을 느끼고 간과하지 않았던 것이다. 교부들이 초긴장을 하며 대응했던 이유는 대부분의 영지주의자들이 기독교인임을 고백한다고 가정하면서 초대교회에 정통 기독교와는 너무나도 다른 신앙을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지주의자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이원론에 입각하여 모든 물질적 실체는 사악하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갇혀있는 영혼을 자유롭게 하므로 구원은 이뤄져야만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어떻게 영혼들이 갇히게 되었는지, 영혼들이 어떻게 인도를 받는지에 대한 신화적 설명들이 덧붙여진다. 먼저 초월하신 하나님은 ‘이온들’(aeons)이라 불리는 영원한 존재들과 관련을 맺고 있을 뿐 모든 물질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발산된 이온들은 남녀성의 짝을 이룬다. 대체적으로 그 짝은 30종이나 되고 그들은 ‘플레로마’(pleroma)를, 즉 신격의 ‘충만’(Fullness)을 구성한다. 물질적 우주와 인류가 구원받아야하는 곳은 ‘플레로마’에 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 안에 신적 씨앗을 간직하고 있다. 구원의 목적은 이런 신적 씨앗을 상실된 물질로부터 인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신화적 상술을 가지고 2-3세기에 신비적 종교운동으로 발돋움한 영지주의자들은 대체적으로 기독교를 표방했다.


        위에서 언급한 ‘영지’의 의미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지식보다는 산만하고, 분석적이고, 추상적인 지식이라기보다는 지성적인 이해를 넘어선 실재에 대한 통찰력을 의미한다. 신비한 영역이나 알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지식이다. 신비한 영역에서 오는 신적 존재의 ‘섬광’(spark) 또는 ‘씨앗’(seed)은 전적으로 악한 물질세계에 주어졌다. 그 섬광들 또는 씨앗들은 인간의 몸에 갇혀 있다. 하지만 ‘신비한 지식,’ 즉 ‘영지’로 다시 일깨워진 신적 요소는 사람들을 초월적 영적 영역에서 적절한 보금자리를 갖도록 한다.


        영지주의자 또는 ‘알고 있는 자’는 지속적으로 신비한 영지의 새로운 통찰력을 받는다. 그들은 영구적으로 정착되지 않고 늘 지속적으로 더 높은 차원을 이해하기 위해 현재의 영지를 새롭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 즉 구원은 하나님, 최상의 존재와 연합하는 것이고, 그로부터 발산되는 모든 것의 실재를 보는 것이다. 더 이상 추구하지 않을 수 있는 완전한 상태에 이르는 것이 영지주의의 궁극적 목적이다. 이것을 또한 구원받는다고 하는데 이 구원은 믿음으로가 아니라 지식으로 말미암는다. 오직 ‘신비한 지식’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신비한 지식’을 가지는 자는 영적으로 성숙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완전한 성숙에 이르는데 요구되는 특별한 지식을 수용할 수 있는 자들은 ‘엘리트들’(elites)이다. 이렇게 더 높은 영지를 가진 자들만 사악한 세상으로부터 자유하게 된다.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영지주의자들은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 ‘영적인 자들’(pneumatic)인 영지주의자들 또는 구원을 확신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영의 영향 아래 있기 때문에 구세주를 인식하고 그에게 일치한다. 둘째, 완전한 영지주의자들은 아니지만 지식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심령자들’(psychic)이 있다. 이들은 첫째와 둘째 부류의 사람들 사이에서 주저하지만 구세주에게 가까이 가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셋째, 구원을 받지 못하는 자들인 ‘물질인들’(hylic)은 물질에 지배를 받고 있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은 금욕을 지나치게 행하여 영의 지배를 받으려고 노력한다. 이들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열매를 통해 알 수 있다.

 


1.2. 특징


        초대교회에 있었던 영지주의자들에 대한 최고의 기독교 변증자는 이레니우스였다. 그의 책 Adversus Haereses에서 영지주의자들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 

 

1. 30개의 ‘이온들’이 시공간의 초월한 ‘플레로마’ 안에 존재한다.
2. 여신 지혜는 ‘조물주’(demiurge)를 만들었다. 그는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신이며 이온들의 독재자이다. 그는 사람을 창조했고 지혜는 사람에게 영혼을 주었다.
3. 어떤 이들은 선행을 충분히 행하면 구원받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지옥에 가기로 예정되었다.
4. 영지주의자들은 지혜로부터 발산된 영들을 갖고 있다. 구원받기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상실할 수가 없다. 그들이 선을 행하든 악을 행하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완전자들은 악한 일들을 행할 수도 있고 자신들이 개종시킨 여인들의 순결을 빼앗아도 된다고 한다.
5. 결국 모든 물질은 악과 함께 멸망당하고 구원을 얻을 수 없다.
6. 영지주의자들은 영혼들이 되어 천사들과 결혼할 것이다.
7. 그리스도는 세례 시 예수님에게 강림했고, 예수님이 음모를 받기 전에 떠났다. 지혜는 그리스도에게 고통을 허락하지 않는다.
8. 그들은 자연에 영향을 끼치는 mantras를 언급한다.
9. 영들은 성육신한다.
10. 완전한 지식은 세례, 영적 결혼과 마지막 의식들을 통해 얻는다.
11. 지혜는 미카엘이란 천사 또는 Samael이라는 천사, 즉 뱀을 에덴동산으로 보내어 아담과 이브를 자유토록 했다. 그들이 금지된 실과를 먹으므로 참된 영지를 얻었고 자유하게 되었다.
12. 지혜는 악한 조물주가 일으킨 대홍수로부터 노아를 구원했다.
13. 조물주는 여러 회 강제적으로 이브와 성적 교제를 가졌다. 그리하여 이브는 악한천사들을 낳게 되었다.
14. 죽을 때 어떤 영들은 중간 상태에 들어가서 ‘플레로마’에 들어갈 때까지 동물의 본성을 정결케 한다.

 

위의 특징들에 비해 현대 학자들은 조금 다르게 상술하기도 한다. 영지와 영지주의가 다르다는 견해도 있지만 영지주의가 철저한 이원론 위에 서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논란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원론을 강조하면서 요나스는 하는 말이 “타락한 신 없이, 어리석은 창조자와 불행한 피조물 없이, 낯선 영 없이, 우주적 포로와 비우주적 구원 없이, 신성의 스스로의 구원 계획함 없이, 즉 신적 슬픔이 없는 영지는 설명될 수 없다”고 한다.

 

 

 

1.2.1. 우주론


        불교처럼 영지주의는 지상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 차있다. 아르콘들(Archons)이 지배하고 감독하는 사악으로 가득 찬 이생에서 자신을 육성하기 위한 삶의 모든 형태는 서로를 소멸시키고 만다. 그 결과 고통, 두려움, 그리고 죽음이 있게 된다. 소위 자연재해들인 지진, 기근, 화재, 화산폭발과 같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우리들의 삶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이런 것에 대한 이유와 해결하는 길에 대한 갈급함이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과 정반대의 설명이다. 창세기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을 때 선하였던 것이 인간의 타락의 결과로 빚어진 결과라고 우리는 본다. 이와는 달리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의 타락이 아니라 물질세계의 사악성과 모든 불행들의 근원을 조물주에게 돌린다는 것이다. 선한 하나님이 아닌 악한 조물주에 의해 창조된 세상이기에 불행한 일들이 발생한다. 그는 7번째 영역에 있는 자이다.


        언 듯 보면, 이런 아이디어가 창세기의 상술과 유사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두드러진 차이점은 발렌티누스의 ‘플레로마’ 아이디어부터 위와 같은 창조론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더 높은 세계로부터 소피아가 떨어져 나와서 세상을 존재케 했다는 것이다. 유대학자인 필로(Philo, 20 B.C.-A.D.50)에 의하면, 플레로마 사상은 플라톤 철학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한다. 악으로 가득 찬 세상의 기원을 선하신 하나님께 돌릴 수 없기 때문에 소피아의 타락이 요청되고 인간의 타락이 요청된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우주의 창조는 무에서 창조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 우주를 창조한 조물주가 아닌 최상의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알아보자.


 

1.2.2. 신론


        영지주의 사상의 또 다른 핵심인 완전히 초월적인 최상의 존재가 있다는 것이고, 이 하나님과 세상을 중재하는 연속적인 존재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에 덧붙여 구원론을 설명하기 위해 그들은 물질세계가 악하다는 전제를 갖고 그 기원을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그 설명을 위해 영지주의자들은 근거도 없는 복잡한 신화를 발전시킨다. 기원적으로 알 수 없는 초월적 하나님이 있었는데 그는 모든 창조된 우주 너머 계신 분이고, 어떤 것도 창조하지 않았다. 이런 참된 하나님은 어떤 것도 형성시키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발산하여 가시적이고 불가시적인 세상의 모든 것들의 본질들을 존재토록 했다. 초월적이고 알 수 없는 하나님은 발산하여 저급한 신성들의 연속들을 만들므로 ‘계급제도’(hierarchy)가 도입된다. 이러한 연속들을 가리켜 ‘이온들’이라 부른다. 이들은 참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신성들이다. 이들은 참된 하나님과 함께 신성들이 완전하게 활동하는 ‘충만’(pleroma)의 영역을 약속했다. 그 ‘충만’은 공허한 우리의 상태와 잘 비교된다. 참된 하나님이 발산한 저급한 본질들, 즉 신성들 중 제일 마지막에 위치한 신성은 소피아, 즉 ‘지혜’이다. 그 지혜는 알 수 없는 최상의 하나님을 알려는 또는 하나님이 되려는 욕망으로 가득 찼다. 이것은 합법적이지 않는 욕망으로서 결국 사악한 신인 동시에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 즉 ‘조물주’(demiurge)를 잉태하고 산출하여 우주를 창조토록 한다. 인류 가운데 있는 신적 섬광들은 이런 우주 안에 있거나 아니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최상의 하나님으로 인해 우주, 즉 세상으로 보내질 수도 있었다. 영지주의자들은 구약성경의 하나님을 사악한 신으로 단정하고 난 후, 이 신은 인류를 하나님에 대해 무지가운데 있도록 하여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받지 못하고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그들은 아담과 이브를 낙원에서 추방시킨 것이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으로 이런 관점으로 이해했다.

 


1.2.3. 인간론


        영지주의에서 주장하는 인간은 이 물질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고 더 높은 하늘 세계에 속했다는 전제를 세운다. 자연스럽게 이원적 인간론을 갖는다. 이런 인간론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발렌티누스에 의해서이다. 이원론적 인간론을 기초하여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누는 그는 인간이 부분적으로는 거짓 신인 조물주에 의해 만들어지고, 부분적으로는 참된 하나님의 빛을 갖고 있다고 한다. 본래 사람은 신적 본질의 파편인 영적 요소만 아니라 육적이고 심적인 요소를 함께 갖고 있다. 영적 요소를 가리켜서 ‘신적 섬광’(divine spark)인 상징적으로 부른다. 그래서 하늘의 이원성과 세상의 이원성을 함께 취하고 있는 셈이 된다. 인류는 본래 자신들 안에 있는 신적 섬광을 일반적으로 모른다. 이런 무지는 거짓 신인 조물주와 저급한 지배자들인 ‘아르콘들’로 인해 싹텄다고 한다. 그들은 남녀들을 참된 본성과 운명들에 대해 무관심하도록 했다. 지상적인 것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모든 것은 저급한 아르콘들에 종노릇하도록 할 뿐이다. 죽음은 신적 섬광을 인간의 몸에 갇혀있는 데서 벗어나게 한다. 하지만 죽음보다도 영혼에 의해 시작된 영지의 본질적 사역이 없다면 그러한 벗어남은 신적 섬광을 추방시키는 것에 불과하고 육적 세상에 노예로 다시 보내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1.2.3.1. 신과 동등


        영지를 가진 사람은 자신 안에 갇혀 있는 ‘신적 섬광’ (또는 ‘영혼’)을 발견하고 해방시킨 후, 신적 본질로 신비적으로 상승하고 빛의 영역을 향하여 계속적으로 나아간다. 자신이 경험한 신적 계시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그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신의 기원을, 즉 하나님과 같은 자신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과 인간은 하나가 되어야함을 주장한다. 이것 역시 영지주의의 핵심적 사상인데 Apocryphon of James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아버지의 뜻을 행한다면, 그리고 사탄에게 유혹을 받는 동안, 그로부터 선물로 주어지지 않은 너희들의 공로가 무엇이냐? 아버지의 뜻을 너희들이 행하고, 사탄으로부터 너희들이 핍박을 받고 억압을 받는다면,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사랑하실 것이고, 너희를 나와 동일하게 만드실 것이고, 너희를 자신의 섭리를 통해 사랑받는 자로 여기실 것이다.


또 The Tripartite Tractate에서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모든 자들은 영원토록 태어날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돕도록 태어난다. 발산들이 무제한적이고 수없이 일어나기 때문이고, 자신과 동일하거나 자신과 유사한 것을 태어나기 위해 그로부터 오는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아버지 편에서는 아무런 시기가 없기 때문이고, 그가 자신을 태어나게 하고 계시하는 ‘전체들’(Totalities)에 존재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아버지이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이신 그 분이 바라시는 사람들과 그 분이 ‘전체들’로 만드시고자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온들 또는 자녀들이며, 아버지께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자신을 보이신 자들이다. 그래서 그로부터 나오는 자들은 그가 되는 것이다.

 

 

1.2.3.2. 엘리트의식


        신비적 영지, 즉 지식은 엘리트들만 가지는 것이다. 그들은 앞에서 말한 ‘영적인 자들’로서 이성의 능력과 육체를 넘어선 특별한 재능을 소유한 자들이다. 이런 특별한 재능은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에 빛의 영역으로부터 빛의 섬광을 소유한 메신저로 인해 부여받은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의 목적은 그 영지로 인해 내적 인간이 해방되어 빛의 영역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각자는 종교생활에 있어 실제 세상을 떠나 자기중심주의(narcissism)를 형성한다. 영지주의의 본질이 자기에로의 여행하면서 완전, 불멸, 신성, 그리고 육체와 세상에서 떠난 경건한 엘리트 형태를 취한다. 자신들과 같은 사람들만 사랑한다. 영지주의 문서들 중 하나인 The Gospel of Thomas를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영혼과 같은 형제들을 사랑하고, 너희 눈에 맞는 자들과 같은 형제를 보호하라’”고 되어있다. 이런 형태는 마치 ‘유아론’(solipsism)과 같이 스스로 자만하여 구원받은 자들만 세상에 살면서도 별거하여 사는 것처럼 자신들만 교제하는 독특하다. 그래서 사회적 관계나 연맹에 얽매이지 않으려하고, 교파의 벽을 무너뜨리고, 건전한 교리와 종교성에서 벗어나야만 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엘리트 의식을 갖게 되면, 기독교들은 하나님과의 내적 궁정에 들어가서 안식하려고 하지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힘든 길을 걷지 않으려 한다. 믿음보다는 ‘해탈의 경지’(nirvana)를 주관적으로 경험하기를 원한다. 인격적 발전보다는 영적인 것에만 관심을 갖는다.

 


1.2.4. 구원론
        인간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이기 때문에 고향 또는 집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는 전제를 영지주의자들은 갖고 있다. 궁지에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참된 기원, 본질, 그리고 궁극적 운명에 대해 전혀 모르는 육적 존재를 갖고 있다. 이런 궁지에서 해방되기 위해 인류는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자신의 노력이 요청된다. 인류를 돕기 위해 처음에 참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빛의 메신저들이 있었다. 그들은 영지주의 설명에 의하면, 셋(Seth), 예수님, 그리고 선지자 마니(Mani)가 있다고 한다. 이런 자들 가운데 대부분의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을 대표적 구세주로 본다.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구원은 죄로부터 구원이 아니다. 죄가 결과인 무지로부터 구원을 말한다. 무지, 즉 영적 실체들에 대한 무지는 영지에 의해 일소되어지고 영지의 계시는 빛의 메신저들로 인해 전달된다. 특별히 참된 하나님의 로고스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전달된다. 그의 죽으심이나 고난을 통해서가 아니다. 그리스도가 구원의 사역을 위해 수행했던 신비들을 이룩하고 그것에 대한 가르침으로 구원은 이뤄진다. 구원에 대한 개념은 매우 희미하다. 단순히 운명에서 벗어남이고, 이생의 압력으로부터 해방만을 의미한다. 한 편으로 볼 때, 영지주의 구원은 자신이 계획한 영적 기획과 같은 것이거나 아니면 아무도 개입하지 않는 개인적 경험에 근거하는 듯싶다. 영지에 대한 잠재력과 구원에 대한 잠재력은 모든 남녀들에게 있으며 구원이 대리적이 아니라 개인적임을 고수한다. 동시에 그들은 영지와 구원이 인식 안에서 일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시적이 되어야만 하고, 또는 동시적일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런 동시성은 빛의 메신저들에 의해 주어진다.


        대부분의 영지주의자들이 자신을 기독교인으로 여기고 있지만 몇몇 기독교적 요소들을 비기독교적 영지주의 문서들 속에 넣었다. 기독교적인 체 하고 있다.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은 신약의 하나님을, 즉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구약의 하나님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아무렇게나 해석한다.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묵시적 복음서들, 예를 들면, Gospel of Thomas와 Gospel of Mary에서 부활한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에 대한 참되고 영지적인 해석을 알렸다고 주장했다. 신적 영이신 그리스도는 인간 예수님의 몸을 취했지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아니고 지상 사역을 마친 후 신적 영역으로 승천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난과 죽으심을 그리고 육체의 부활을 거부한다:


구세주는 죽음을 삼키셨다. . . 그는 멸망하는 세상에 관심이 없었다. 자신이 불가시적인 것으로 인해 가시적인 것을 삼키신 후 자신을 타락하지 않는 이온으로 변화시키고 일으켰다. 그래서 우리에게 불멸성에 이르는 길을 주었다. . . . 하지만 우리가 그를 입을 수 있는 이 세상에 나타난다면 우리는 그의 광채며 이 세상에서 우리가 죽게 될 때까지 그로 인해 보호를 받는다. 그로 인해 태양의 광채처럼 들림을 받는다. 이것은 육체적인 것과 함께 하는 심성적인 것을 삼키는 영적 부활을 말한다.


게다가 복음서에 대한 정통적 해석들을 거부했다. 특별히 Gospel of Thomas를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를, “자신의 손으로 소유하는 사람은 더 많이 받을 것이다. 소유하지 못한 자는 소유한 것까지 빼앗길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를, “너희가 만일 너희들 안에 남아있는 것을 가지게 되면 너희에게 주어지는 것은 구원이다. 만일 너희들 가운데 이것을 갖고 있지 못하면 너희는 죽을 것이다.”

 

        신약학자 브루스 (F. F. Bruce)는 이 구절에 대하여 평하면서 “41장은 하늘의 빛을 언급하는 듯하다. 그것을 소유하는 자는 구원을 받는 것이지만 잃어버리는 자는 멸망을 받을 것이다”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펑크와 후버에 의하면, 사람의 구원은 신적 모습, 즉 거룩한 섬과, 빛의 파편, 높으신 하나님께 기원을 두는 것, 조물주를 포함한 다른 신성들의 궁극적 근원을 소유하는 것에 달려있다는 영지주의적 아이디어를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영지주의자들은 구원은 전적으로 자신 안에 존재하는 빛이다. 빛을 의미하는 지식이 없으면 멸망한다고 한다.

 

1.2.5. 의식들


        어떤 영지주의자들은 모든 성례들을 거부하지만 일부 다른 영지주의자들은 세례와 성체를 유지한다. 왜냐하면 성례는 영지를 깨닫게 하는 상징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성례를 갖고 있는데 ‘진리의 세례’(baptism of truth)라는 것이다.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세상을 포기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생수’(living water), 즉 영지의 선물로 여겨지는 것으로 붓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영지주의 의식들은 인간의 영에 있는 신적 요소를 영적 영역으로 상승시키는데 유용하도록 고안되었다. “기도하는 자세로서 양손을 뻗치고” 찬양들과 마술적 의식들은 하나님의 환상을 성취하는데 도움이 되기에 음창한다. 또 장례식에서 상승된 영혼을 포획할 수 있고 다시금 몸에 가두어놓게 하는 귀신들을 격퇴하기 위해 여러 의식들을 행한다. 발렌티니안 종파는 ‘신혼방’(bridal chamber)이라는 특별한 의식을 행하는데 하늘의 짝과 상실한 영혼이 재결합하는데 요청되는 의식이다. The Gospel of Philip 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이브가 아담으로부터 분리되었을 때 기원적 남녀양성의 연합은 파괴되고 말았다. 그리스도가 오신 목적은 아담과 이브를 다시금 연합시키는데 있다. 남편과 아내가 신혼방에서 연합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에 의해 이뤄지는 재연합은 신혼방에서 성례가 일어난다. 그곳에서 사람은 천사적이고 하늘의 짝과 함께 궁극적으로 연합하는 것을 확신하고 그것을 미리 맛본다.

 

        계속하여 그 곳 성전의 신혼방은 셋으로 나누고 있다 :

 

“결혼의 신비는 얼마나 위대한지! 그 결혼 없이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 .”
“예루살렘에는 희생을 위해 특별히 세 개의 건물이 있었다. 하나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성소’(holy)라고 부르는 곳이다. 다른 하나는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성소 중 성소’라 부른다. 나머지 하나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지성소’라 부른다. 이  곳은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세례는 ‘성소’라는 건물에서 거행된다. 구속은 ‘성소 중 성소’에서 거행된다. 그리고 ‘지성소는 신혼방이다. . .
“그리스도는 시작부터 있었던 분리를 치유하러 왔다. 다시금 분리된 것을 연합시킨다. 분리의 결과로 죽어서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고 그들을 연합시켰다. 여인은 신혼방에서 남편에게 연합된다. 신혼방에서 연합했던 사람들은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 . .” “만일 어떤 사람들이 사제직의 명령을 받고 있다면, 그들은 대제사장과 함께 그 베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 . . 그곳은 영광위에 영광이 있는 곳이다. 그곳은 능력위에 능력이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일들은 감춰진 진리와 함께 우리들에게 개방되었다. 지성소는 계시되었고 신혼방은 우리를 초청했다.”

 

1.2.6. 윤리


        영지를 소유한 ‘영적인 자들,’ 즉 엘리트들은 아르콘들이 지배하는 세상과 분리하여 살아야만 한다. 영적인 자들은 우주적 ‘운명’(heimarmene)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도덕율과 같은 율법에 얽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허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경멸하고 세상을 향한 적대심을 가져야만 한다. 더욱이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영들이 이 세상과 완전히 결별한 상태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그 안에서 행했던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고수한다. 니콜라이탄들, 오파이트들(Ophites), 카르포크라티안들(Carpocratians) 등 과 같은 영지주의자들은 구약성경의 도덕율들을 대체적으로 거부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인류를 가두어두기 위해 사악한 신이 사용하는 틀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지주의의 윤리적 가르침들은 금욕주의에서 자유사상(libertinism) 또는 허무주의적 요소를 갖게 된다. 몸과 물질적 세상이 사악하다는 교리는 여인들을 ‘사탄의 일’로 여기기 때문에 세베루스를 주장하는 3세기의 마르시온파들은 결혼을 사탄의 일을 성취하는 것이라 보았다. 이런 자세는 수도원제도의 금욕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조물주와 사탄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물질을 형성하는 육체를 증오하여 음식이나 성적 교제를 저버리는 자세는 유대인들의 에센파와 같은 현상이라 하겠다.


        윤리 또는 도덕성이란 말이 규칙의 체제와 같은 의미로 여겨진다면 영지주의는 그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한 체제들은 대체적으로 조물주와 함께 시작하고 그의 목적들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한 편으로 볼 때, 도덕성은 사람 안에 내재해 있는 섬광이 조명되면서 일어나는 내적 고결성을 의미하며, 영지주의자들은 존재론적인 윤리를 이상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은 계명들과 규칙들을 지키므로 구원을 이룰 수 없을 뿐 아니라 그것들이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본다. 행위 규칙들은 질서 있고 평화로운 사회를 구성하고, 사회단체들 가운데 있는 조화를 이루는 유지와 같은 수많은 목적들을 성취해낸다. 하지만 규칙들은 구원과 무관하다. 구원은 오직 영지로 인해서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덕성은 일시적이고 세속적인 의미로 여겨진다. 그것은 개인들의 영적 발전에 따라 수정되고 보완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세 부류의 사람에서 ‘물질인들’은 도덕성에 그렇게 관심을 많이 가지지 않는다. 심령자들은 가끔 그것에 중요성을 둔다. 하지만 영적인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더 높은 다른 문제들에 관심을 쏟는다.         

 

 

1. 영지주의자들

 

1.1. 니콜라스
        영지주의 기원에 전통을 보면, 요한계시록(2:6, 15-17)에서 사도요한은 에베소교회와 버가모 교회에 경고를 주면서 니골라당을 언급한다. ‘니골라당’(Nicolaitans)이란 이름은 니콜라스(Nicolas)라는 이름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는 안디옥 출신으로 사도들에 의해 수임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아름다운 아내를 두었기 때문에 육체를 경멸하라는 교훈들에 관해 반항적인 해석을 피력했다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이후 니골라당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 사람은 저스틴(Justin Martyr, d.c. 165)이었다. Trailians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그는 “니골라당을 멀리 하십시오.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쾌락을 사랑하지만 중상적인 혀를 놀립니다”고 했다. 이레니스(Irenaeus, c.125–c.202)는 자신의 책 Adversus Haereses 에서 그들에 대해 이렇게 언급한다: “니골라당은 사도들에 의해 집사를 처음으로 받은 자인 니콜라스를 추종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무절제적인 방종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의 특징에 대해서 요한 계시록에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계속하여 이런 자들은 영지주의자들이라고 칭하고, 익나티우스와 동일하게 시몬과 메난더를 근거하고 있다고 한다. 역사가 소크라테스 (Socrates the historian, 5C.)는 요한일서 4:1-3이 니골라당을 두고 하는 말이면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성과 분리하려고 하는 자들이라고 했다. 이와 같이 니골라당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격을 반대하고 반율법적인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리멘트는 Carpocratians이 니골라당의 견해를 갖는다고 했다. 모세임 (Mosheim)도 니골라당을 영지주의자들과 연관시키고 있다. 

 

1.2. 시몬 마구스
        영지주의의 창시자는 대체적으로 시몬 마구스(Simon Margus)라고 한다. 사도행전 8:9-13에 나오는 시몬 마구스가 영지주의 창설자라는 설명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리멘트의 Recognitions와 Homilies에 나타난 묵시적 작품들에서 비롯된다. 사두개인들의 유대 종파의 설립자로 가끔 여겨지는 도시데우스(Dositheus)가 시몬의 스승이었다고 하는데 도시데우스와 시몬의 근거를 두는 단체는 사마리아에서 설립되어 ‘사마리아인들’(Samaritans)이라 불렀다.


        시몬 마구스는 로마제국의 황제 클라디우스 시대에 사마리아 지타(Gitta) 출신으로 마술을 행하는 자였다. 스스로 인간 형태를 가진 신이라고 주장했다. 신으로서 자신은 경배를 받아야 하고 유대인들 가운데 메시아로 나타났다고 했다. 시몬은 자신이 죽은 후 무덤을 파헤치라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3일 안에 부활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자신을 사마리아인들에게 그리스도로 나타내었던 것이다. 두로에 가서 시몬은 헬렌이라는 매춘녀를 만나 구입하여 그녀와 함께 즐겼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그녀를 구원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헬렌을 가리켜 자신의 영의 첫 사상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길 잃은 양과 비유된다. 이 어두운 세상의 타락한 신적 영의 최초의 모습이다. 자신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형태로 성육신되었다. 영지주의 체제에서는 반드시 요구되는 요인이다. “시몬 자신이 실제로 하나님이고 외형으로만 사람인 것처럼, 자신의 십자가에 못 박힘과 죽음도 단순히 외형으로 나타났을 뿐이라고 시몬은 가르쳤다. 그래서 그노시스주의가 그리스도가 단순히 인간인 것처럼 보인다고 말하는 교리인 “가현설(docetism, 헬라어 doketio, ‘나타나다,’ ‘. . . 처럼 보인다’)”의 서론이 시작된 셈이다.”


        시몬은 니콜라스보다 한층 더 영지주의의 선구자로서 구체화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그의 견해는 그의 제자들 중 한 사람 메난더(Menander)에 의해 나타났다. 메난더는 사마리아인으로 Capparetia 출신이었다. 주로 안디옥에서 활동했으며 스스로 불가시적 능력을 받은 구세주라고 천명했다. 시몬의 사상은 앞으로 등장하게 되는 이단운동에 끼친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

(1) 이교도와 근동으로부터 나온 주제들과 성경적 사상들을 섞은 혼합주의적 현상;
(2) 본질상, 순수한 영적 성부와 구별되어 소망 없는 물질세계로 보는 이원론적 해석;
(3) 인격적 구세주가 세상에 임하셨다는 가르침;
(4) 유대인의 성경을 거짓되고 사악한 것으로 보고 거절함;
(5) 비밀적 지식만 아니라 마술에 대한 관심.

 


1.3. 케린투스
        케린투스(Cerinthus)에 관해서는 이름 외에는 개인의 사생활에 대해서 우리는 아는 바가 없다. 1세기 말 요한의 작품들을 반대하는 자들은 그 기원을 케린투스에게 두었다. 그는 유대인이었고 종말론에서 천년왕국설 신봉자였다고 한다. 이레니우스에 의하면, 만일 최상의 존재가 세상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가르쳤으며, 최상의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려는 능력이 세상을 창조했으며, 그리고 다른 천사가 율법을 만들어 유대인의 하나님이 되었다고 가르쳤다고 한다. 최상의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능력, 즉 덕은 세례 시에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인 예수님에게 부어졌다. 이런 주장은 후에 선재하는 이온들에 대한 영지주의 이론을 낳도록 한다. 인간 예수님만이 죽음을 경험했고 부활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부르짖었던 “나의 하나님”을 표현을 ‘나의 능력’으로 본다. 그는 마르시온을 따르는 자로서 역시 이원론을 고수한다. 로고스를 역시 ‘8인조’(ogdoad)에서 태어났다고 보고, 아버지로부터 세상에 오기 전에 지혜를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그의 견해는 요한서신을 통해 공격을 받았다(요한 1서 4:3; 요한 2서 7). 7명의 천사들에 의해 세상이 창조되었고 마지막으로 창조된 인간은 신의 형상을 가졌다고 한다. 이런 인간은 더 높은 능력이 부어지기 전까지 바로 설 수 없다. 그래서 빛의 섬광이 그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이 빛은 바로 구세주로서 그리스도이다. 이 세상에는 천사들에 의해 창조된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그는 사악한 자들, 사람들, 그리고 귀신들을 멸망시키고, 선한 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결혼과 자녀들을 낳는 것은 사탄의 일이고 사악한 일이다. 어떤 면으로 볼 때, 케린투스는 기독교 영지주의자라고 할 수 있고 후에 등장할 사투르니누스의 초기 형태를 보는 듯싶다.

 


1.4. 사투르니누스
        바실리데스와 동시대 인물인 사투르니누스(Saturninus 또는 Saturnilus, 117–138)에 대해서는 히폴리투스가 쓴 Refutation of all Heresies 16장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는 시리아의 안디옥 출신으로 메난더가 주장했던 것과 거의 유사한 견해를 가졌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한 아버지는 천사들, 본질들, 또는 능력들을 창조했다. 7명의 천사들에 의해 세상과 사람이 창조되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우리들의 형상과 모양은 천사들의 것이라고 한다. 사람들의 모습이 지렁이에 지나지 않지만 위로부터의 ‘생명의 광채’(scintillation)로 인해 인간은 활력을 갖게 되었다. 천사들에 의해 두 종류의 인간이 창조되었다. 하나는 선한 영적 인류와 다른 하나는 악한 지상적인 인간이다. 이렇게 인간에 대해서 두 종류의 인간임을 말한 자는 사투르니누스가 처음이다. 하나님은 태어나지 않고, 형상을 가지지 않은 구세주를 사람인 것처럼 하여 보내셨다고 한다. 이렇게 가현설을 주장하면서 그에 의하면, 구세주는 유대인의 하나님의 던져버리기 위해 와서 자신을 믿는 자에게 구원을, 즉 생명의 광채를 되찾아 주는 것이다. 이상에 볼 때 그의 사상을 세 가지로 다시 요약할 수 있다:

 

(1) 성부와 세상 간에 다소간 타락하기 쉬운 중개자의 하강하는 사슬의 개념; 이러한 것을 “시대”라 번역되는 헬라어의 어원을 가진 “이언들(aeons)”은 신과 같은 영적 실재라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유대인들의 하나님과 천사들은 타락하고 기본적 이언들이고 그 가운데서 선한 이언이 그리스도이다.


(2) 영적 세계와 물질적 세계간의 이원론이 이런 사슬에 포개진다. 영적인 실재인 이언들은 선하거나 악할 수 있지만 물질세계는 악한 이언들의 산출이고 그 자체는 악하다.


(3) 특별히 구원에 대한 이러한 영지주의적 개념은 육체적 감옥으로부터 구현된 인간 영혼들의 자유와 성부에로의 귀환을 의미한다. 하지만 신약성경과 너무나 다른 이 개념은 육체의 부활만 아니라 영혼의 생존을 필요하게 된다.

 


1.5. 바실리데스
영지주의의 창시자이며 최초의 영지주의 조직신학자인 바실리데스(Basilides, d. 140)는 알렉산드리아인이었다. 개인의 생애에 대해서 전혀 알 수 없으나 그의 아들 Isidore가 있었다는 것을 사료들을 통해 알 수 있을 뿐이다. 그의 아들 Isidore는 바실리데스의 교리를 발전시켜 제자들을 이끌었다고 한다. 바실리데스는 베드로의 해설자로 알려진 Glaucias의 제자라고 자청하면서 자신의 가르침들은 그에게서 배웠다고 했다. 또 다른 곳에서는 바실리데스가 Barcabbas와 Barcoph라는 선지자들을 만들고 사도 Matthias의 구두적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Epipahnius에 의하면, 사투르니누스와 함께 안디옥의 메난더의 제자로서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마제국의 황제 하드리안(Hadrian, 117-138)과 황제 피우스(Antonius Pius, 138-161)시대에 가르쳤다.


Agrippa Castor에 따르면, 그의 저서들이 현존하지 않지만 복음서에 관해 24권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남아있는 사료를 통해 그의 사상에 대해서는 우리는 알 수 있다. 모든 것이 순수한 무의 상태 또는 무존재(nonentiry)이다. 이레니우스에 의하면, 바실리데스는 태어나지 않은 아버지로부터 이성(nous)이 처음 나오고, 이성으로부터 로고스, 로고스로부터 신중(phronesis), 신중으로부터 지혜(sophia)와 힘(dynamis), 지혜와 힘으로부터 능력들, 본질들, 그리고 천사들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런 천사적 존재들로 인해 가장 높은 하늘, 즉 첫 번째 하늘이 만들어졌다. 이들의 발산으로 인해 형성된 다른 능력들은 첫 번째 하늘과 유사한 또 다른 하늘을 창조했다. 첫 번째와 거의 유사한 모양이다. 또 다시 세 번째 하늘, 네 번째 하늘, 등등으로 만들어져서 마침내 365개의 하늘까지 만들어졌다고 한다. 제일 마지막 하늘을 붙잡고 있는 천사들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었다. 모든 것의 주인은 유대인의 하나님이다. 이제 천사들 중 가장 높은 아버지는 유대인들이 자신의 뜻에 순종하기를 원했으나 모든 군주들이 그에게 항거하고 반대했다. 그래서 태어나지 않는 아버지는 이러한 불운을 보시고 처음 태어난 이성, 즉 그리스도를 세상으로 보내어 세상을 지었던 천사적 존재들의 능력을 받아 자신을 믿게 하셨다.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는 사람으로 보이고, 이적을 행했지만 고통을 당한 것이 아니고 구레네 시몬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혔다. 예수님은 하늘로 되돌아왔다. 시몬은 예수님의 형상을 가진 자이다. 그리스도의 영지(gnosis)를 통해 사람들의 영들은 구원을 받지만 육체는 멸망을 당한다.


Epiphanius와 Pseudo-Tertullian에서도 이와 비슷한 묘사를 읽을 수 있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 즉 태어나지 않은 아버지는 신비한 존재인 Abrasax를 가졌다고 한다. 이레니우스에 의하면, Abrasax는 365개의 하늘을 낳았다. 일 년 365일의 수와 같다. 또 십자가에 못 박힌 자를 고백하고 순교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구레네 시몬이 대신하여 죽은 것이기 때문에 그를 위한 것이지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실리데스는 이렇게 가현설을 주장한다.


히폴리투스가 바실리데스의 원리에 관하여 말했던 곳은 「모든 이단들에 대한 반박들」(Refutation of all heresies)이다. 히폴리투스에 따르면, 그의 체제는 범신론적 일원론이었다. 모든 것은 태어나지 않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그 하나님은 시공을 초월하는 모든 것의 순수한 형태이다. 그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범주를 뛰어 넘어 있다. 하나님은 비존재이시라고 하며 모든 것의 태아로부터 낳으신다. 그 태아에는 3중아들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 안에 있는 우주적 영(pneuma)으로서 비존재의 근원이다. 둘째는 하나님 아래에 있는 우주적 아들로서 비존재의 기반이 된다. 영과는 구분되지만 능력 자체를 소유하고 있지 않다. 셋째는 세상의 혼란에 떨어져 있다. 왜냐하면 물질과 영혼의 혼합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퍼져있는 영혼의 분자들은 부분적으로만 되돌아올 수 있다. 이런 귀환은 영이 물질의 짐을 잊어버리는 개인적 정결의 과정이다. 신적인 우주적 씨앗-영혼-빛의 혼란-물질-어두움으로 결합하게 되면 빗과 어두움의 전쟁이 일어난다. 이 전쟁으로 영혼의 분자들을 물질의 혼란으로부터 석방시키고 영혼을 기원적 근원으로 귀환하게 된다.

 

1.6. 카르포크라테스
        바실리데스와 동시대 인물은 카르포크라테스(Carpocrates)는 영지주의에 분명히 속하는 자이다. 그는 시몬 마구스의 후계자들인 바실리데스와 사투리누스와 같은 자이며 영지주의자들의 아버지라 불린다. 이레니우스에 의하면, Carpocrates는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태어나지 않은 아버지보다 못한 천사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예수님은 요셉의 아들로서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다. 비록 강하고 순수한 영을 가지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우수하게 보인다. 또 알렉산드리아의 클리멘트는 그가 모든 사람들을 동등하다는 것을 주장했다고 한다. 빈부나 귀천, 어리석은 자나 총명한 자, 남자나 여자, 주인이나 종, 그리고 백성들이나 통치자 간에 아무런 구별이 없다고 했다. 그가 자유방임하는 운명주의를 지향한다고 했다. 유대 학자 필로 (Philo, c. 20 B.C.-A.D. 50)에 의하면, 율법의 신비들을 이해한다고 하면서 율법을 업신여기고 있는 어떤 자들은 “A.D. 40년에 이르러 자유사상(libertinism)이 알렉산드리아 유대주의 내에서 지성적으로 존경받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일세기 후 그 사상은 카르포크라테스 운동을 통해 알렉산드리아에서 영지주의의 원리들 중 하나가 되었다”고 했다. 카르포크라테스에게는 Epiphanius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17세에 죽었다. 그러자 Samos라는 섬에 그의 제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전을 지었다고 한다. 그를 추종하는 자들은 “Pythagoras, Plato, Aristotle, 그리고 Christ를 숭배하고, 그들을 위해 전을 건축했다.” 그런데 최근에 발견된 “Secret Gospel of Mark”에 대한 클리멘트의 서신에서는 카르포크라테스가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어느 장로로부터 비밀 복음서(secret Gospel)의 복사본을 받았는데 그것을 그는 참람하고 육욕적인 교리에 따라 해석할 뿐만 아니라 흠도 없고 거룩한 말씀들을 오염시키고 혼합시켰다“고 되어있다.

 

1.7. 마르시온
        2세기의 다른 어떤 이단보다 기독교에 위협을 주었던 것은 마르시온(Marcion, d. 160)과 그의 추종자들이었다. 그가 쓴 작품들도 현존하지 않지만 그를 비판한 자료들을 통해 그에 대한 것을 사상들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특별히 터툴리안의 작품에서 잘 엿볼 수 있다. 마르시온은 약 85년에 Pontus의 Sinope (흑해 근교)에서 부유한 선박주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역시 그는 감독의 아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감독이었다고 한다. 성스러운 처녀를 미혹했다는 혐의를 물어 부친은 그를 교회로부터 추방시켰다. 그는 135-140년에 로마를 방문했다. 그 곳에 있는 교회에 200,000 sesterces를 헌납했다. 자신의 신학을 발전시키면서 영지주의 교사 Cerdo의 사상을 구체화시켰다. 그에게서 그는 이사야 39-66장의 말씀 해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추종하는 자들-Marcionites-을 거닐었다. 그 결과 그는 장로들에게 의심을 받아 144년 출교를 받았다. 하지만 계속하여 자신의 가르침을 널리 확산시켜 나갔다. 저스틴 마터는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이 아니라고 가르쳤고,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된 그리스도가 그의 아들이 아니라고 가르쳤다. 폴리캅은 그를 가리켜 “사탄의 맏아들”이라고 했다. 마르시온은 약 160년경에 죽었지만 그를 추종하는 자들은 3세기까지 지속했고, 4세기에 이르러서는 마니교에 연합되었다.        


        마르시온의 사상은 영지주의임이 틀림없다. 그의 사상을 몇 가지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그는 구약성경을 자체를 포기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은 유대인들의 역사이고 조물주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바울만이 진실한 사도이기에 그가 쓴 디모데 전후서와 디도서를 제외한 서신들만 성경으로 봐야한다고 했다. 또 그는 누가복음만이 유일한 복음서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의 인용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이다. 2) 이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는 하나님이지만 높으신 하나님과는 구별되며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것 외에는 그 높으신 하나님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다. 조물주는 공의의 하나님이지만 매우 엄격하고 힘들게 하는 신이다. 이에 반해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은 새로운 왕국을 선포하셨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며 조물주가 행했던 것과는 정 반대의 일들을 수행했다. 조물주를 믿는 자들은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의도된 것이었다. 그렇게 해야만 조물주로부터 사람들을 속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을 구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성육신하셨다는 사실을 부인했다. 그 결과 그는 가현설주의자가 되고 만다.” 우리는 여기서 사랑의 하나님과 조물주, 복음과 율법을 대치시키는 그의 이원성을 엿볼 수 있다. 둘째, 육체의 부활은 없고 최후의 심판도 없다. 하나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사람들은 반드시 엄격한 금욕적 삶을 살아야만 한다. 결혼을 해서는 안된다. 결혼했던 자들은 헤어져야만 한다. 먹고 마시는 것에도 절제해야만 한다. 순교를 즐겼다.

 

 

1.8. 발렌티누스
        시몬, 바실리데스, 그리고 마르시온 이후 영지주의 신학자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자는 이집트 델타(Delta)에서 태어난 발렌티누스(Valentinus, ca. 100-ca. 175)였다. 그는 이집트 종교 철학가이며, 영지주의 로마 학파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창시자이고, gnōsis 또는 ‘신비한 지식’으로 구원받는다는 교리를 가진 종교적 이원론의 체제를 만든 자이다. 그의 제자들에 의해 설립된 발렌티니안 공동체는 2-3세기 기독교 신학에 큰 도전을 안겨다 주었다. 발렌티누스는 헬라 문화의 중심지인 알렉산드리아 근교에서 철학을 배우면서 바실리데스를 만난 것으로 여겨진다. 당시 바실리데스는 그 곳에서 가르치고 있었다. 아마 그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플라톤주의에 매력을 느꼈고, 성경에 대한 헬라적 유대 해석을 가미하였다. 그 후 교사로서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하면서 아마도 책을 출판했을 것이다. 그의 제자들은 그가 사도바울의 제자인 Theudas에게서 교육을 받았고, 기독교인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2-3세기 파편으로 된 신학자들의 문서들에 의하면, 발렌티누스는 약 136년 로마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로마감독 히기우스(Hygius, c.136-140) 아래 가르쳤고, 로마감독 피우스(Pius, ca 150-155) 아래서 눈부시게 활약했고, 그리고 로마감독 아니케투스(Anicetus, ca. 155-160) 때까지 활동했다. 기독교 영지주의 가르침과 동방 영지주의 가르침의 종합을 상술하면서 25년 동안 그곳에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로마감독이 되려는 열망을 품은 그는 약 140년 감독직을 넘겨받았으나 그의 가르침으로 인해 정죄를 받고 기독교 공동체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약 160년 Cyprus를 위해 로마를 포기한 발렌티누스는 지속적으로 신비적으로 유래된 종교 철학에 대한 자신의 체제를 발전시켜 나갔다. 그의 모든 사상들은 플라톤과 Pythagoras에게서 가져온 것이다.


        그는 Gospel of Truth의 저자였다. 그 책은 영지주의 원리들이 담긴 기독교 바울신학과 혼동될 수도 있다. 또 그는 설교집, 서신들, 찬송, Treatise of the Three Natures와 Revelations 또는 Visions를 썼을 것이다. 더욱이 4세기 이집트 파피루스인 Jung Codex(1946년 발견)는 발렌티누스의 본문의 Coptic 역본으로서 자신의 교리에 대한 것이다.


        발렌티누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자제력도 없고, 이해될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고, 그리고 들을 수도 없는” 최상의 아버지인 하나님을 믿었다. 그는 무한하고, 시작도 끝도 없고, 그리고 모든 것들의 궁극적인 기원이다. 그에게 속하지 않는 것이 이 세상에 없다. 세상의 있는 것은 그의 한 부분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단일성을 유지하시면서 존재의 다수성으로 자신을 계시하신다. 하나님은 혼합된 남성과 여성을 모두 지니고 있는 남녀성의 이원 일위(dyad)이시다. 아버지가 본질을 우주에 제공하시는 측면은 여성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그는 침묵, 은혜, 그리고 사상으로 불린다. 침묵은 평정과 자기 인식에 대한 하나님의 원시적 상태이다. 침묵은 창조적이다. 사상은 본질적인 이온의 모든 연속적인 상태를 말한다. 우주에 형태를 주는 하나님의 남성적 측면은 형용할 수 없는 ‘심연’(abyss)과 최초의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불려진다. 심연은 너무 깊어 불가해적 존재며, 신성의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다. 심연은 본질적으로 수동적이다. 그의 여성인 사상에 의해 행동되어질 때에만 그는 우주에 형태를 준다. 히폴리투스에 의하면, 아버지의 단일성을 강조한다. 신성의 이와 같은 두 가지 측면은 결코 분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신격 안에 있는 존재로서 동시에 존재한다. 물과 축축함과 같거나 동전의 두 면과 같은 것이다. 그것들은 분리될 수도 없으며 둘 중에 하나가 없을 수도 없다.


·        우주의 기원은 신격에서 나온 존재의 연속적인 상태의 발산과정으로 묘사된다. 태초에 아무 것도 없었다. 아버지는 비활성적 존재로 계셨다. 우주는 잠재적으로만 존재한다. 창조의 과정은 신격 편에서의 자기 제한이 필요하였다. 이온들의 연속적인 상태가 그로부터 분리되기 위해 아버지는 제한이나 한정을 창조하셨다. 모든 것을 견고케 하고 형용할 수 없는 위대함 밖에 모든 것을 지키는 것은 제한의 능력이다. 제한은 두 가지 기능을 행한다. 아버지로부터 ‘영적 세계’ (충만, Fullness)를 분리시켜 힘을 제공한다. 그 이후 아버지는 발산의 과정을 통해 가해적인 형태로 자신을 명시하신다. 아버지는 자신을 알 수 있는 자신의 사상을 통해 지식의 영을 낳았다. 그 영은 지식 안에 있는 ‘독생자’(Only-Begotten)이다. 그 독생자도 하나님처럼 남녀성의 이원일위로서 일반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독생자의 이온 또는 독생자의 남성적 측면은 마음이다. 그의 여성적 측면은 진리와 모든 것의 모친이다. 그것들은 어떻게 진리가 진실한 의식으로 이해될 수 있는지를 의미한다. 독생자는 모든 것의 시작이다. 아버지와 독생자는 이따금 기원적인 넷, 즉 심연, 침묵, 마음, 또는 진리로 언급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독생자는 이원일위이기 때문이다. 독생자 (예를 들면, 마음과 진리)는 하나님의 불가해적 측면들의 가해적인 형상이다. 우리가 최상의 신을 알 수 있는 것도 독생자의 중재로 말미암는다. 독생자와 아버지의 관계는 인간의 마음과 무의식의 관계와 비교될 수 있다. 독생자는 아버지께 안겨 있으며 그분 안에 있다.


        아버지에 의해 영감 받은 남녀성을 가진 독생자는 자신의 인격 내에 내재하는 에너지를 명시하는 과정을 시작한다. 그는 4개의 이온들을 발산한다. 첫 번째 짝은 말씀(남성)과 생명(여성)이다. 그것들은 심연과 침묵의 모양으로 창조되었다. 두 번째 짝은 인류(남성)와 교회 (여성)이다. 그것들은 마음과 진리의 모양으로 창조되었다. 또 교회에 결합된 인류의 자연적 상태를 나타낸다. 본래의 기원적 4개의 이온들과 그것들에서 나온 4개의 이온들은 모든 것들의 근원이며 본질이다. 이 ‘8인조’(ogdoad)의 이온들에 미치지 못하는 이온들이 탄생하게 된다. 말씀과 생명에서 10개의 이온들, 인류와 교회에서 12개의 이온들이다. 이리하여 모두 30개의 이온들 또는 신적 속성이 완성된다. 이것을 가리켜 ‘플레로마’(pleroma)라 부른다. 이것들은 모두 독생자의 본성의 다른 측면들을 명시한다. 신적 충만의 자기 계시과정은 씨앗에서 나무로 자라나는 것으로 비교될 수 있다. 또 태양에서 나오는 빛의 관성과 같은 것이다. 독생자가 아버지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처럼 이온들의 충만도 독생자 안에 포함되어 있다. 이온들의 다수성 안에 신격의 단일성은 유지된다. 발렌티누스가 쓴 Gospel of Truth 안에서 독생자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묘사된다. 개인적으로는 완전한 것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는 완전한 이름을 구성하고 있다. 그래서 이온들은 함께 신격의 완전한 충만을 구성한다. 마르쿠스 (Marcus)에 따르면, 30개의 이온들은 나름대로 수많은 이온들을 가질 수 있다. 마치 글자와 같아서 글자들이 합쳐 또 다른 단어들을 만드는 것과 같다.


        독생자만이 최성의 아버지의 완전한 지식을 갖고 있다. 그는 다른 모든 이온들에게 여전히 불가시적이고 불가해적이다. 이온들은 독생자를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모든 이온들은 자신들이 나온 분을 알기를 갈망했다. 이것을 발렌티누스는 자신의 Gospel of Truth에 묘사하고 있다 : “모든 것은 자신들을 낳으신 분을 찾고 있다. 모든 것은 그 안에 있다. 불가해적이신 그 분은 모든 사상보다 훨씬 뛰어나신다.” 그에 따르면 아버지를 찾고자 하는 이온들의 갈망은 결국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절망적이다.


        그래서 발렌티누스는 지혜의 신화를 만들어 낸다. 아버지를 알고자 하는 바람이 지혜에 넘쳐났다. 지혜는 12개의 이온들 중 제일 어리다. 완전한 충만을 위해 지혜는 최성의 부모를 알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녀는 독생자의 중재가 없이 하나님을 알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그 결과 그녀는 자신의 관계에서 벗어나게 되어 오류와 고통의 상태로 처하게 되었다. 이는 마치 창세기의 이브의 타락과 흡사하다. 그 결과 지혜는 아버지와 같이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 빚어진 낙태를 가리켜 지혜의 결핍된 생각이라고 한다. 이러한 부족 속에 지혜는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혼란 속에 빠지게 되었다. 이런 슬픔 속에 그녀는 회개하고 도움을 청한다. 다른 이온들도 역시 슬퍼하며 그녀의 청원에 관심을 갖는다. 제한 또는 두 번째 한계의 도움을 받아 지혜는 더 높고 더 낮은 수준으로 나눠진다. 더 낮은 수준 또는 낙태는 고통을 가지면서 충만에서 배제되었다. 더 높은 지혜는 강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알 수 없는 분이심을 확신하고 되돌아온다. 지혜의 이런 행위는 충만에 있는 결핍을 분리시켰고, 밖으로 향하게 했다.

 

        이런 위기가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 독생자는 자신을 그리스도(남성)와 성령(여성)이라는 형태로 다른 이온들에게 자신을 명시했다. 그리스도가 된 독생자는 다른 이온들에게 아버지가 불가해적이고 자신을 통해서만 진리를 이해할 수 있음을 계시했다. 성령은 그들에게 감사를 가르쳤고, 모두가 동등하게 창조되게 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세례이다. 이것은 인간 교회만 아니라 이온들에게도 해당되었다 : “아버지는 자신의 사랑을 보이셨다. 이제 그의 사랑은 성령으로 나타난다. 그는 자신에게 감추어져 있는 것을 계시하신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독생자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자비로 인해 이온들은 그를 알게 되고 아버지를 찾는 수고를 그만두게 되었고, 그 안에서 쉼을 얻게 되었고, 그리고 안식을 취하게 된다.” 모든 이온들은 함께 뭉쳐 구세주라 불리는 독생자와 연합하게 되었다. 모든 이온들에게서 나온 완전한 이름을 구세주만이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할 때에 아멘이라고 부른다. 구세주는 역시 제한 밖에 있는 타락한 지혜의 동반자가 되기로 되어있다.


        타락한 더 낮은 지혜는 또는 낙태당한 생각은 고통이 있는 더 낮은 영역에 갇히게 되었다. 부족 또는 더 낮은 영역은 물질적 우주이다. 충만이 독생자의 산물이고 그 안에 있는 것처럼 부족의 영역은 충만의 산물이고 그 안에 있다. 부족은 지식에 관해서 충만 밖에 있다. 부족은 무지의 결과이다. 그리스도를 알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부단히 헛수고를 계속하는 지혜는 제한으로 인해 충만에 상승하지 못한다. 무지의 결과로 인해 그녀는 슬픔, 두려움, 그리고 혼돈을 경험한다. 세상이 환각임을 경험하면서 무엇이 실재인지 무엇이 환각인지 구별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상태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것이다. 이제 지혜는 회개하게 되고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분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기쁨을 다시 회복한다.


        지혜의 회개로 인해 구세주는 자신을 비워서 충만 밖으로 나와 천사들의 수행원과 함께 부족으로 하강했다. 그와 지혜는 함께 이온들의 짝처럼 결합했다. 영원한 영역을 알게 되므로 지혜는 환각과 고통에서 자유하게 되었다. 지혜는 구세주와 천사들의 수행원을 보고 기뻐하고 자신의 형상으로 영적 씨앗들을 낳는다. 이런 씨앗들은 모든 기독교인들 안에 있는 영적 요소가 된다. 이런 이유로 씨앗들은 교회에 맡겨진다. 씨앗들은 충만한 가운데 있는 선재한 교회의 형상으로 여겨진다. 이리하여 지혜에서 나온 세 가지 존재 상태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하나는 무지와 고통에서 나온 세속적인 존재를 특징짓는 환각, 다른 하나는 무지와 지식 간에 있는 중간 상태를 말하는 회개와 기쁨, 마지막은 영적인 씨앗이 지혜의 지식에서 나오는 것 등이다.


        영적 씨앗이 아직도 성숙하고 훈련을 받기 위해 물질세계가 필요하게 된다. 지혜가 이 세상을 직접 창조할 수 없기 때문에 물질세계를 형성할 수 있는 장인에게 영향을 끼친다. 장인을 통해 지혜는 하늘과 땅을 창조했다. 장인은 자신의 모친을 모르고 자신 혼자 행했다고 생각한다. 장인은 7개의 천사적 존재 또는 하늘들을 창조하여 그것들 위에 군림한다. 이런 이유로 그는 일곱 번째라 불린다. 장인의 7개의 천사들은 창세기에 나오는 7일을 의미한다. 장인의 모친인 지혜와 구세주는 8번째 하늘에 있어 그보다 위에 군림한다. 이런 8가지 하늘들은 충만 가운데 있는 8개 이온들의 형상이다. 지혜와 구세주는 비밀적으로 장인에게 영향을 끼쳐 물질우주를 완전의 형상으로 만들도록 했다. 그래서 진리는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현현한다. 사람들은 장인에 의해 선재하는 인류(Humanity)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사람들은 귀신적 요소, 물질적 몸, 이성적 영과 영적 씨앗으로 구성한다. 영적 씨앗은 예수님의 중보를 통해 하나님의 지식 (영지)을 얻을 수 있다. 지식을 받은 각 사람은 부족의 부분을 제하여 버리고 신격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 세상의 종말은 영적인 모든 것이 지식으로 채워질 때 오게 된다. 영혼들은 동물의 영들을 버리고 자신들의 모친인 지혜와 더불어 충만으로 들어간다. 지혜는 새 예루살렘이 되고 신랑, 즉 구세주를 맞이할 준비가 된다. 영혼은 천사들에 가입하게 된다. 세상에 감추어진 불은 모든 물질을 활활 태워버리고 무로 나타난다. 육체적 세상은 사라진다. 부족도 사라져서 회복의 과정은 완성될 것이다.

 

 

[출처] 영지주의 - 라은성 교수
[작성자] 제자여일

'저것은 은사가 아닌 분명 집단 최면이다'라고 단안을 내려 입증시키기 위해 경북지방 목회자들이 우리 나라 최면의 제일인자인 심리학박사 유O평씨를 초청하여 '이론과 실제'를 경험한 목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다각적인 취재를 시도해 보았다.

먼저 유O평 박사는 귀신론자들의 집회에 참석을 해봤다고 한다.더욱 놀라운 것은 유박사에게 기성교회 목사들이 최면을 배우고 갔다는 사실에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비단,1~2년 사이가 아닌 20여년 전부터라고 하니 '귀신론'의 발단은 이때부터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기자는 촉각을 곤두세우기에 충분했다.인터뷰에 응하자 "시간이 없다"며 회피하려 했으나 무례를 무릎쓰고 다가갔다. -"박사님 집회에 참석해 보시니 어떻던가요?" 최면이라 할 수 있어요.최면원리에 부합해서 하고 있더군요" -과거 성도들이 속고 있다고 해서 100여명의 목회자들이 모인 장소에서 특강을 하셨다구요. 신도들이 그곳으로 많이 이동하니까 '최면이다'라는 허구를 밝혀 달라고 해서 특강을 했죠.

-최면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최면은 자기 경험으로 개발할 수 있어요.가령 '십자가'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도록 집중기도를 하는 거죠.이때 최면상태가 유발되죠. 이 때 부터는 망라강대해지요.무엇이든지 최면을 사용하는 자의 명령에 따르지요. 청각적인 작용으로는 단조로운 박수를 칠 때 최면현상이 일어납니다.특히 대중집회에서는 모델들이 필요합니다.몇 몇을 선발해야 하는데 감수성이 높은 사람이 잘 걸리지요.이럴 때 하나님의 능력이라고들 합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은 어떻게 구별하나요. 특히 여자들이 주대상이지요.바른 자세에서 눈동자를 위로 치켜올렸을 때도 하얀부위가 많은 사람이 주로 잘 걸립니다. 그쪽에서 사용하는 방법으로 모델들이 최면에 걸려 뒤로 넘어지면 군중심리에 의해 라인도 쉽게(집단특유의 성격에 따라)무비판으로 대세에 쏠려 감성에 의해 이성은 없고 넘어집니다.
몇년 전 최면으로 유괴차량번호를 떠올려 유괴범을 검거하는데 개가를 올렸던 유박사의 말에 왠지 심증이 굳혀가고 있었다.
여기서 잠시 최면술(암시효과)로 고칠 수 있는 병명들을 알아보자. 최면으로 어떤 신비적 잠재의식의 힘을 작용시켜 치유된 몇 예는 현대 의학기술을 초월한 것임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사례1) 영국병사(1951년)가 전쟁중에 다친 곳은 없는데 다만 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시력을 잃게 되었다.24시간 동안 인사불성이 되어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눈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다만 왼쪽 눈으로 겨우 어두운데나 밝은데의 분간이나 할 정도였다.날이가도 눈의 상태는 전혀 회복의 기미가 없고 영원히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물론 안과 검사를 받아보았지만 시력상실의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그래서 그는 최면에 도입된 그에게 "이번에 최면에서 깨어나면 눈이 보이게 됩니다"라는 암시가 여러 번 강력히 되풀이 된 후에 최면에서 깨어나게 되었다.그는 눈이 잠시 떠진채로 있다고 눈이 보인다고 큰 소리로 외쳤다.그는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감사하였다(카알.A.메닝거박사 저서'인간간의 마음'에서).

사례2) 16세된 소년이 목아래 피부(팔,다리등)가 태어나면서부터 생선 비늘같이 딱딱하고 꺼칠꺼칠한 각질이 형성되어 있었다.의학적인 모든 방법을 찾아 치료해 보았으나 결과는 조금도 좋아지지 않았다.최후수단으로 최면을 받게 되었다. 그는 최면에 걸린 상태에서 "왼팔피부의 각질상태는 눈에 보이게 사라져버린"라는 암시를 받았다.그런지 5일이 지나자 그의 왼팔의 각질부분은 놀랍게도 벗겨지고 피부는 부드럽게 붉은 빛을 띄게 되었다고 한다(메디칼 저널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최면술로도 얼마든지 행할 수 있음을 살펴보았다.

현대종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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