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유튜브에 올려진 데이비드 오워 동영상들을 대충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데이비드 오워를 선지자로 광고하는 한국산 동영상은 서두에 신명기
18:18-22절을 인용하면서 그 말씀에 언급된 "선지자 하나"가
바로 데이비드 오워라는 암시로 시작됩니다. 그가 참 선지자인
이유는 그동안 그가 여호와의 이름(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한
것에 증험과 성취함이 있어서라는 내용으로 그럴듯하게 편집되어
있구요.

http://www.youtube.com/watch?v=x31bILB3W-Q

그런데 첫째로 신명기 18:15-22절에 이스라엘 형제중 나올 것이라
예언된 모세같은 선지자 하나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구약의
그 예언의 말씀이 신약시대에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요 17:8>

둘째로 오워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선자자인것처럼 그럴듯하게
증거하고자 편집된 동영상의 내용이 사실이라 인정받으려면 적어도
그들이 오워의 예언 성취라고 주장하는 각 나라 재앙의 예언들이
실제로 각 나라에서 그 사건들이 발생하기 전에 선지자 오워가 어느
나라의 재앙에 대해 이리 이리 예언하였다 하는 동영상이 그 사건
발생 이전에 올려져 있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재앙 발생후에 편집하여 올렸다는 가능성이 배제되면서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 어떤 예언을 오워가 했고 그 예언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실현되었는지 비교함으로 객관적으로 예언 진위,
성취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상식이지요.

2009년도에 집회 동영상은 수십개도 넘게 올리는 열정을 보이면서
2009년도에 주께 받았다는 2010년도에 있을 각 나라에 임할
재앙에 대한 예언 동영상은 하나도 분명하게 올리지 못했다가
사건 발생뒤에서야 짜집기하듯 편집하여 예언성취되었다며
광고하는 식은 신빙성이 전혀 없습니다. 뒷북 치는 것에 불과하죠
 
2005-7-20일 케나 나이로비에서 예언되었다고 주장되어지는
미국에 불어닥친 재앙 허리케인 카타리나 예언 성취 동영상은
2010-1-17일자로 올려져 있습니다. 댓글 차단되어진 채로

왜 미국이 아닌 케냐라는 나라에서 미국에 있을 재앙을 예언하였는지,
왜 그 동영상이 카타리나 이전에도 올려진 적이 없고 카타리나 발생
2005-8-29 후에도 올려진 바 없다가 2010년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올려졌는지가 의문이고 예언성취라는 그 동영상이 오워 선지자 만들기
작전하에 2010년도에 편집된 동영상인지 아닌지 누가 확인할 수
있을까요.  

http://www.youtube.com/watch?v=mgl7cOVjxxY&feature=related

중국 쓰촨 대 지진은 2008-5-12일에 있었고 그 후에도 여진이
계속 있어서 중국은 지진에 대한 공포가 만연된 상태인데

오워측은 2009-10-10 아프리카 내미비아에서 중국 (칭하이)지진을
예언했다고 주장하고 그 예언이 2010-4-14일 성취되었다 광고하는
동영상을 2010-4-15일 올려놓은 뒤 댓글 막아놓았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cNaRwzKS5TY&NR=1

거듭 의문인 것이  왜 아프리카에서 중국지진을 예언하였다 하는
것인지 또 그 내미비아라는 아프리카 나라에 있을 것이라 하는
지진 예언은 왜 그곳에 있을 때에는 받지 못해서 말 못했다가
올해 4월 5일에야 받아서 4월 7일자로 유튜브에 올려 놓은
것인지 또 더 이상한 것은 올해 4월 7일에 있었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쓰나미 예언에 대해서는 예언했다는 또 성취되었다는
동영상이 없는 것인지... 그것은 오워가 미처 오워의 주께 받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요?

http://www.youtube.com/watch?v=T6-MT9QiVQY&feature=related

2009-11-24일도미니카 공화국 산티아고에서 예언되었다고
주장되어지는 하이티 지진 예언 성취동영상은 2010-1-15일에
올려졌습니다. 그렇게 하이티 지진 예언하는 동영상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면 어찌하여 지진 발생전에는 전혀 올려진
바 없다가 1월 12일 지진 발생후 예언 성취라며 딱  올려
놓았던 것일까요. 그것도 보기만 할 뿐 아무도 그 동영상에
대해 왈가왈부 못하도록 댓글 차단해 놓은 상태에서,

http://www.youtube.com/watch?v=xwmi7Tj2Z0M&feature=related

나이로비 케냐에서 2010-4-4일 예언했다고 주장되어지는
멕시코 캘리포니아 지진 성취 광고 동영상은 2010-4-7일에
올려졌지요. 실제 지진은 4월 4일에 발생했구요.

http://www.youtube.com/watch?v=eWucmFDAe7c&feature=related

2009-1-20일 칠레 산티아고에서 예언했다고 주장되어지는
칠레 지진 성취광고 동영상은 2010-2-28일 올려졌습니다.
실제 지진은 2010-2-27일 발생했구요. 그런데 그 동영상 아래
댓글은 아예 달지 못하도록 해 놓았습니다.  

"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지진 쓰나미 같은 하나님의 재앙이
칠레에 내려질 것이다" 이런 식 예언 성취 동영상은 사건 발생후
얼마든지 집회 장소 날짜 편집해 올릴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 예언 집회 동영상이 어찌하여 사건 발생 이전에는 올려진
적이 없느냐 하는 것이 거의 모든 재앙들을 미리 예언했다는
자칭 선지자 오워가 답변해야할 부분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EOVAz_WbLhE&feature=related

*칠레 지진 발생 13일 전에 예언했다는 또 다른 예언자 동영상도
발생 다음날인 2월 28일에 올려졌습니다.
21세기 두 선지자는 공교롭게도 같은 인종이네요.
http://www.youtube.com/watch?v=_kw83O_WTNQ&feature=related

올해 받았다는 예언중에 죄로 인해 오스트레일리아에 쓰나미 재앙이
있을 것이라는 예언도 있는데 그것 역시도 구체적 날짜는 정해지지
않았다는 사실, 언제고 오스트레일리아에 쓰나미 지진 발생하면
오워 예언 성취되었다는 동영상 올라 오겠지요. 아직 일본 지진에 대한
예언은 받지 못한 것 같은데 조만간 오워가 받았다고 주장할 지 누가
예측하겠습니까

마지막 세째로  다른 나라 재앙 +회개 예언이야 그렇다치고
오워가 자신의 웹사이트에 한국에 대해 받은 예언이 이미 성취되었다고
주장했는데 그런 것을 예언성취라고 한다면 그간의 오워의 예언이라는
것과 그 예언의 성취라는 것이 얼마나 자의적이고 엉터리 식인지를
자인하고 공증시켜 주는 셈입니다. 우리나라 와서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예언을 했고 어떻게 자기가 한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주장했는가
하는 자료는 이곳에서
교제 http://www.usaamen.net/news/board.php?board=free&page=4&command=body&no=3424 12/23 05:43
24.xxx.199
교제 <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
말세에 한 선지자가 나타나서 각 나라에 회개하지
아니하면 지진 전쟁같은 재앙이 있으리라 예언하고
다닐 것이라 하는 말씀은 예수님도 사도들도 언급한
바가 없이 사람의 미혹을 받지 말라,영을 분별하라
예언의 말씀에 더하지 말라 경고만 있음



출처: 아멘넷, 정리 교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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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포스터, 레노바레 세미나 인도
일부 신비주의적인 내용은 논란 불가피할 듯
 
김성원
리차드 포스터가 한국에 왔다. <기도>라는 책으로 한국 교회엔 너무나 친숙한 이름. 지난 1992년 리차드의 제자들 초청으로 한국에 온 다음, 두 번째란다. 하지만, 언론사에서 리차드 포스터를 만나기란 하늘에 별따기. 리차드 포스터를 초청한 레노바레 코리아(디렉터 강찬기 목사) 측에 인터뷰를 몇 차례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리차드의 일정이 빡빡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 강의를 맡은 리차드 포스터와 통역을 하고 있는 강찬기 목사 ⓒ뉴스파워

뉴스파워 외에도 CBS, 극동방송, 목회와신학 등 여러 언론사들이 리차드 포스터와의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최측은 리차드 포스터의 컨디션이 충분히 회복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강찬기 목사는 성남 선한목자교회 세미나를 전후해서 기자회견을 고려해 보겠다고 밝혔지만, 성사는 불투명하다. 리차드 포스터가 언론 접촉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리차드 포스터는 10월 24일, 25일 서울신대에서 영성훈련세미나를 인도한 뒤, 곧바로 부산으로 내려가 수영로교회(담임목사 정필도)에서 인도한다. 그리고 29일 주일은 지구촌교회(담임목사 이동원) 주일예배에서 설교를 한다. 30일과 31일엔 대전 새로남교회(담임목사 오정호)에서, 11월 2일과 3일엔 성남 선한목자교회(담임목사 유기성)에서 세미나를 인도한다.

레노바레 코리아 측에 따르면 현재 매 세미나마다 천명 이상의 사람들이 등록한 상태다. 레노바레 사역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국내 상황을 감안할 때 리차드 포스터의 유명세가 이 같은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온 것이라 짐작된다.

하는 수 없이 세미나가 열리고 있는 부천 서울신대로 가봤다. 듣던 대로 ‘성결의 집’ 대강당엔 학생들과 일반인들로 가득했다(약 1천 명 추산). 마침 쉬는 시간이었다. 리차드 포스터의 마지막 시간인 ‘예수님의 초청’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 리차드 포스터가 한사람을 불러세워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뉴스파워
마지막 강의가 시작됐다. 강찬기 목사가 먼저 율동을 인도했다. 그런데 좀 특이했다. 강 목사는 먼저 “머리에 손을 얹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흐르도록 기도하십시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눈, 코, 입, 가슴으로 해서 발까지 몸의 각 부위를 만지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흘러가기를 위해 기도했고 참석자들도 그대로 따라했다. 그러니까 온몸을 만지면서 하는 기도였다. 일종의 치유 기도 같은 것이었다.

이어 리차드 포스터가 앞으로 나왔다. 리차드는 내년 10월에 있을 레노바레 국제대회 때 외엔 이번 한국에서의 집회가 마지막이라며 그때까지 저술활동을 벌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얼마 안 있어 리차드는 “어제 오늘 두세 명에 대해 관찰한 걸 나누고 싶다”며 단상에서 내려와 참석자들 앞으로 다가갔다. 한 중년 남성을 일으켜 세우더니 “이 분은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소개했고, 또 다른 중년 남성에겐 “이 분에게는 지혜의 영이 함께함을 느낀다. 어제 하루종일 보면서 지혜가 함께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 다른 40대 남성에겐 “이 분을 잘 모르지만 이 분에게서 삼손 같은 힘을 느낀다”고 하기도 했다.

이어서 리차드 포스터는 마태복음 11장 28절 말씀(“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거 너희를 쉬게 하리라”)을 가리키며 “이 말씀이 은혜의 초정의 중심에 있다”며 “이것이 제자의 삶으로의 부르심”이라고 말했다.

리차드는 <기도>라는 책을 쓰고 있던 1990년 여름 얘기를 꺼냈다. “그때 책을 쓰느라 씨름을 하고 있었다. 사실 그것은 책이라기보다는 내가 여기저기 기도에 대해서 수없이 메모했던 것을 모은 것”이라고 밝혔다. 리차드는 또 자신이 가르치던 대학에서 도서관 열쇠를 자신에게 줘서 아무 때나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그 당시 300권 가까운 기도에 대한 고전, 현대서적 등을 읽으며 내 머릿속은 온통 기도에 관한 논쟁들로 가득했다”고 회고했다.
   
▲ 참가자들이 기도를 받기 위해 앞에 나와 있다. ⓒ뉴스파워

그러면서 리차드는 마더 테레사의 <기도의 궁전>이라는 책을 읽다가 경험한 신비한 체험을 소개했다. 1990년 7월이다. 당시 리차드는 ‘어떻게 기도라는 방대한 내용을 책 한 권에 담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하나님께 못하겠다며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고백을 하고 있었다.

그때 자신이 본 한 장면을 소개했다. 리차드는 그것이 “하나님의 심장이었다”고 말했다. 그 심장은 상처가 많이 났으며 또 열려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나는 네가 이 사역을 멈추길 원치 않는다. 대신 내 말씀을 전해라. 내 자녀들에게 내 심장이 부서져 있다는 걸 말해 주지 않겠니. 그들은 너무 번잡한 일에 붙잡혀 있다.”

그러면서 리차드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집으로 우리를 초청하신다. 창조된 원래의 모습대로 돌아가도록 초청하신다. 하나님은 마음을 활짝 열고 여러분을 초청하신다. 그 분의 집에 슬리퍼를 신고 들어간다. 식탁으로 초청하신다. 그 분이 베푼 잔치상(한국 음식도 차려져 있는)으로 부르셔서 힘을 얻고, 새로운 일을 만들어가길 원하신다. 그리고 나서 지혜가 가득한 도서실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궁금한 모든 것을 물을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우리를 침실로 초대하신다. 긴밀하고 친밀한 하나님만이 알 수 있는 은밀한 곳으로 초청하신다. 이 세상에서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우리가 원할 때 우리를 만나주신다. 철학자의 신이 아니라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마리아, 나오미, 룻의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살아계시고, 지금 여기 함께하시는 걸 믿으라. 이것이 위대한 초청인 이유는 하나님과의 은밀하고 친밀한 관계로 들어가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리차드는 “진정하고 참된 기도는 사랑이다”면서 4세기 사막의 교부였던 아브라함과 그의 조카 성 창녀 메리 예화와 위대한 수술의사 리차드 사스 예화도 했다. 역시 버림받거나 상처받은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 즉 하나님의 사랑이 주제다.

   
▲ 리차드 포스터의 기도를 받기 위해 올라온 학생들을 강찬기 목사가 돌려보내고 있다. ⓒ뉴스파워

이어 강찬기 목사가 나와서 기도를 인도했다. “여러분들 중에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기 바란다”며 “너무 힘들지 않았나? 외롭지 않았나?”며 단상 앞으로 나와서 기도를 받을 것을 요청했다. 이어 학생들이 줄을 늘어섰고 몇몇 목사들이 기도를 해줬다.


이번 리차드 포스터 초청 레노바레 영성훈련세미나는 일종의 치유사역으로 느껴졌다. 이에 대해 강찬기 목사도 부인하지 않았다. “영성훈련을 하지만 사람은 변화되지 않고 그대로 아닌가. 깊이 들어가면 (치유를) 안 다룰 수가 없다.”

세미나에 참석한 이 학교 신대원생인 안수웅 씨에게 물었다. “리차드 포스터의 영성은 역시 깊은 것 같다. 신학적으로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리차드 포스터의 영성에 대해서는 또 다른 신대원생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울러 리차드 포스터의 세미나 내용에 대해서는 “주로 자신이 쓴 책이나 달라스 윌라드의 책에 소개된 내용을 체계화해서 강의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쉬움도 토로했다. 더 깊이 배워보고 싶은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학교에서 할 게 아니라 2박 3일 정도 별도의 장소에 가서 소그룹으로 진행하는 게 훨씬 효과적일 것 같다”는 주문도 했다. 안 씨에 따르면 기자들 외에 세미나 참석자들이 리차드 포스터를 만나기는 쉽다고 했다. 기도 요청이라든지 상담을 위해 언제든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 참석자들이 율동을 따라하고 있다. ⓒ뉴스파워

레노바레 영성세미나는 한국에서는 생소하다. 더군다나 리차드 포스터라는 유명인이 강사로 참여하기에 독자들의 궁금증은 더하다. 더군다나 세미나 내용 속에 포함된 다분히 신비주의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레노바레(Renovare) 측에서 말하고 있는 레노바레는 교회를 새롭게 하기 위한 성령운동이며, 기도, 거룩함, 성령, 사회 정의, 성경 읽기, 생활 실천이라고 강조한다. 리차드 포스터 외에 달라스 윌라드가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고, 한국 목회자로는 LA 동양선교교회 강준민 목사가 참여하고 있다.

내년 10월 한국에서 열리는 레노바레 국제대회를 위해선 분당 샘물교회 박은조 목사가 주도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는 레노바레 코리아를 위해 사무실까지 내줄 정도로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출처: 뉴스파워
무월경 잉태설 추종 긴급 진단

마리아의 무월경잉태설은 죄론과 기독론 이단




집필자 한창덕 목사

/ 어떤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집회는 여전도 연합회에서 주최하는 것이었는데 상당히 뜨거웠다. 얼마나 열정적으로 아멘을 해 대던지... 그런데 옆에 있던 J 목사님이 필자의 무릎을 치면서 “한 목사님, 저런 때 왜 아멘을 하는 거지?”라고 했다. 필자는 옆에 있는 성도들이 들을까봐 그분의 손을 꼭 잡았다. 집회가 끝나고 나올 때 그분은 필자에게 이와 같은 말을 했다.

‘나야 불러주는 사람이 없어서 집회에 잘 나가지도 못하지만 나간다 하더라도 겁나는 게 있다. 그것은 내가 설교했을 때 그 교회의 목회자가 어려움을 당하고 무너질까봐 겁난다.’

한국교회는 이단과 비호자 횡행 그 대책 시급.
 
오늘의 한국 교회를 보면 어떤 때는 정통이 이단에 포위되어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우리나라에 기독교인이라 하는 사람들이 약 750~800만 명 정도 되는데 그 중에 이단자들이 100~250만 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적어도 기독교인이라 칭하는 사람들 가운데 10명 중 3~4명은 이단인 셈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개적인 이단만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기성교회에 앉아 있는 이단이나 불건전한 사람들까지 포함 한다면 그 숫자가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단자의 숫자가 이와 같이 많은 것에 대해 그 원인을 따지거나 대책을 논하지는 않겠다. 이 글의 목적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현실이 가져온 필연적인 현상에 대해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단자 해제 원천무효 혈안 전략 경계.

과거에는 정통적인 기독교에서 이단자들의 주장에 대해 검토하고 이단여부를 판단했다. 그러면 그들은 독자 노선을 걸었다. 그러나 독자 노선으론 한계가 있었다. 이단으로 낙인찍히면 살아남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자 이제는 그들도 방법을 바꾸었다. 막대한 자금력과 조직력으로 언론 플레이를 하며, 친 이단적인 성향의 인물들을 동원해 이단의 해제와 이단연구가를 이단만드는 전략을 시도했다.

자신들이 이단으로 정죄된 것은 정치적인 문제라 하며 문제의 본질을 희석시키려 하는가 하면 이단 사역자들을 공격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들의 이와 같은 공격에 대해 기성교회는 속수무책이다. 교파별로 흩어져 있는데다 개교회주의가 강해지면서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으면 무관심 하였고, 많은 경우는 자신조차 자유롭지 못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단이란 말조차 듣기를 싫어한다.

목회자에게는 두 가지 사명이 있다. 하나는 양떼를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맹수로부터 양떼를 지키는 것이다.
이 둘은 어느 하나도 소홀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후자가 약화되자 한국 교회는 온갖 독초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게 되었고,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몇 년 전부터 교계 안에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역사적으로 이미 명백하게 이단으로 정죄된 주장을 가지고 이단적 성향을 가진 학자나 목사들이 거꾸로 정통을 공격하는 웃지 못 할 사건이 기독교계 내에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중심에는 우리 총회의 문제에 깊숙이 관련되어 있는 박윤식 목사가 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그분의 도덕성으로부터 시작해서 그분의 교리, 그 교리로 인해 벌어지고 있는 한국교회의 황당한 사건들에 대해 차례로 논하고자 한다.
 
평강제일교회 역대담임 연혁과 박윤식 목사?.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다 죄인이다. 그러므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문제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지금 박윤식 목사의 도덕적인 문제를 언급하려고 하는 이유는 그분이 신학검증 위원들에게 한 얘기를 과연 믿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와 결부되기 때문이다.

총신대 교수회의 <박윤식에 대한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박윤식은 1967년 2월 자유감리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으며, 1964년 10월 전도사로서 가정집회로 시작하여 1968년 10월 원효로에 일석교회를 개척하고, 1969년 대방동에 일석교회 건축, 1977년 7월에 대성교회로 명칭 변경, 1992년 오류동으로 이전, 1994년 탁명환 살인사건이 발생한 후 대성교회를 평강제일교회로 명칭변경 하였다 하고 있다.

그런데 평강제일교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역대 담임목사 란에 제1대 김의방 목사(1962.11-1967.12), 제2대 김헌경 목사(1977.3-1978.1), 제3대 박윤식 목사(1978.2-1990.5), 제4대 김태준 목사(1990.6-1994.4), 제5대 안성억 목사(1994.5-1995.11), 제6대 구재철 목사(1995.12-2001.3), 제7대 이재현 목사(2001.4-2005.6), 제8대 유종훈 목사(2005.6-2008. 현재까지)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박윤식 목사가 제 3대 담임목사라면 일석교회는 누가 개척한 것인가?

둘째, 박윤식 목사가 1978년 2월부터 1990년 5월까지 12년 3개월 동안 담임목사였다면 그가 어떻게 원로목사가 될 수 있는가? 12년 3개월 동안만 담임목사를 하고도 법적으로 원로목사가 될 수 있는가?

셋째, 제7대 이재현 목사(2001.4-2005.6)는 여자 분이다. 그렇다면 평강제일교회는 여자목사 제도를 인정하고 담임목사까지 세우는 교회라 볼 수 있다. 그럼 여자목사 제도를 인정하고 있는 교회를 총회에서 영입할 수가 있는가?

넷째, 필자가 알기로 윤성택 목사가 상당히 오래 동안 담임목사를 했다.

그분의 동생으로써 대성교회에서 사역했던 윤성원 목사의 증언에 의하면 “형님이 1969(?)년 무렵 연희동에 있던 새마을 교회(천막교회)를 끌고 들어가 1995(?)무렵까지 중간 중간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기는 했지만 담임목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한다. 실제적으로 80년대 초에 대성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분명히 담임목사는 윤성택 목사였다. 그런데 거의 10년 동안이나 담임목사로 섬긴 그분을 어떻게 빼버리고 교회의 역사까지도 그렇게 마음대로 조작하는가?
 
원로 박윤식 목사 사과 믿을 수 있나? .

우리 개신 대학원 대학교의 신학검증 보고서를 보면, “우리 교수들의 의견은 박윤식 목사의 20-30년 전의 목회 활동에 대하여 이단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소지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현재는 신학적으로 건전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미 신문 지상을 통하여 한국 교회에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하여 무릎 꿇고 반성하며 한국 교회의 가르침을 겸손하게 받겠다고 발표한 바 있고, 우리 검증 위원들에게도 그같이 분명하게 말했으며, 더구나 현재 평강제일교회는 정통적인 기독교 교리와 예배 모범을 따라 목회를 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이단이라고 씌어진 멍에를 벗겨주고, 앞으로 민족복음화와 복음의 세계화라는 한국 교회의 사명을 함께 지고 가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요, 동역자로 받아주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되었습니다.”(신학검증보고서의 인사 말씀 중) 라고 되어 있다.
 
이 보고서 대로라면 그분은 과거에 이단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고, 그것을 언론을 통하여 이미 반성하며 한국 교회의 가르침을 겸손하게 받겠다고 발표 했으며, 검증 위원들에게도 그같이 분명하게 말했기 때문에 지금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그분의 진정한 마음이었다면 적어도 총신대 교수회의 연구보고서에 대해 악의적인 음해라 하거나 고소 고발사건 같은 것은 하지 않았어야 한다.

어떻게 과거를 반성한다고 하면서 고소할 수가 있는가? 그것은 전혀 반성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그분이 신학검증위원회에 ‘과거에 이단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소지가 있었고, 그래서 이미 신문 지상을 통하여 한국 교회에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하여 무릎 꿇고 반성하며 한국 교회의 가르침을 겸손하게 받겠다’고 한 것은 그분이 고소를 한 사건이나 연혁 등을 마음대로 조작한 것 등으로 봤을 때, 그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박윤식 목사의 이단성.
 
박윤식 목사의 이단성은 2006년 9월 21일에 작성된 총신대 교수회의 <박윤식에 대한 연구보고서>에 잘 나타나 있는데, 보고서 중에는 “대성교회는 박 윤식 목사나 대성교회가 통일교에서 가르치는 천사와 하와의 육체적 타락을 가르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박 윤식은 “씨앗 속임”이라는 설교에서 하와가 뱀과 성관계를 갖고 태어난 자가 가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계시록 12장의 본문을 가지고 설교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라고 하면서 그 증거로 상당한 분량의 녹취록을 기록해 놓고 있다.

“박 윤식: 자 이거 보세요. 이 가인이 분명히 아담의 아들이었다며는 아담이 살인자가 됐어? 아담이 살인자여? ...벌써 이 아담한테 이브한테 씨앗을 씨를 속이는 작전을 하고 있다 그 뜻입니다.

박 윤식: ...그러면 가인은 누구의 자식이냐 그 말이야. 으 가인은 해와의 육체 속에 심어 놓은 정말 아담이 모르는 사이에 마귀가 와서 심어 놓은 이 씬 줄을 아담은 깜깜하게 영계가 너무 어두워서 영계가 정말 마비가 돼서 알 수 없는 가운데 이렇다는 것을 여러분들 아시고 말씀을 잘 들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라는 녹취록의 내용이나,

“박 윤식: 틀림없어 난. 밀양 박씨를 믿지 않는 사람이야. 솔직히 말해서 은혜 받아도 믿지 않아. 나는 순수하게 우리의 조상이 말이죠.

우리의 조상이 정말 그 박혁거세 계통으로 나왔느냐 할머니가 아차 하는 순간 간음을 당했다가 내가 우리 조상 가운데 우리 할머니가 평양기생이든가 내려오는 가운데 애 술을 따라주다 마셔라 부라 하다가 다른 씨를 받아서 어리케 나를 또 낳았는지 내가 어르케 알아. ...그래서 예수님 벌써 씨앗 속임을 다 알기 때문에 다른 이름으로 주갔다. 새 이름을 주갔다 하는 이유가 거기 있는 거야?”라는 내용 등은 그의 사상을 숨김없이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그래서 보고서에서는 “이처럼 박 윤식은 하와가 아담 몰래 뱀과 성관계하여 태어난 자가 가인이라고 주장한다”고 하면서 “박 윤식의 씨앗 속임 설교는 전통신학에서는 수용할 수 없는 비성경적인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라고 하였고,

박윤식 목사가 3년 6개월 7일 동안 기도하며 깨달았다고 하는 것과 그 내용에 대해서도 “진위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이 때 받았다는 그의 가르침은 김 백문 문 선명 변 찬린의 가르침과 너무도 유사하다.

특히 문선명과 변 찬린의 가르침에서 빌려온 인상을 피하기 힘들다”라고 하였으며, “박 윤식씨의 가르침은 개혁주의 관점에서 볼 때 인죄론, 기독론, 구원론, 계시관에 있어서 비성경적이며, 그 가르침에 있어서 이단성이 있음이 사료된다”라고 결론지었다. 박윤식 목사에게 명백하게 이단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통합측의 이정환과 최삼경 목사 이단성 논쟁?.
 
며칠 전에 통합 측 총회가 있었다. 왜 남의 총회 문제를 끄집어내느냐 할지 모르겠지만 그 교단이나 우리 교단 모두가 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일 뿐만 아니라 그 교단의 문제 속에는 박윤식 목사의 문제가 깊이 개입되어 있고, 그 문제는 회개 했다고 하는 박윤식 목사의 현재의 교리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최삼경 목사는 2005년 6월 30일자 교회와 신앙과 같은 해 현대종교 8월 호에 “박윤식씨 이단 사이비 핵심 이단 옹호자에게 공청회를 제안한다”라는 제목으로 박윤식 목사의 이단성에 대해 기고하였다. 그는 박윤식 목사가 1991년에 있었던 제 76회 통합측 총회에서 이단으로 정죄 되었지만 2005년 6월 22일에 합동 측 서북노회에서 박윤식 목사를 영입하자 그와 같은 제목으로 글을 쓰게 된 것이다.

박윤식 목사는<씨앗 속임>에서 주장한 ‘하와와 뱀의 성관계’는 부정하지만, <월경하는 입장에서 떠나라>는 설교에서는 ‘인간이 타락한 후에 월경이 생겼다’고 한 것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그럼 좋다. 당신이 여러 곳에서 그와 같이 주장하니 그것을 한 번 따져보자’라고 하면서 박윤식 목사의 무월경 잉태설에 대해 이단성을 제기하게 된 것이다.
 
박윤식 목사는 월경을 부정하다고 하며(레18:19, 25, 겔18:6), 타락한 후에 월경이 생겼고, 그 월경하는 여인의 입장에서 탈출하는 것이 구원이라 하고, 그와 같은 입장에서 그는 예수님이 월경 없이 태어났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대해 최삼경 목사는 그건 성적 모티브가 없이는 나올 수 없는 것으로 “통일교 출신의 변찬린씨의 영향 때문”이라고 하면서 조목조목 반박한다.
 
최삼경 목사가 반박한 것 중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예수님이 마리아의 월경 없이 태어났다고 한 박윤식 목사의 주장이다. 왜냐하면 마리아의 월경이 없이 예수님이 태어났다고 한다면 그것은 마리아의 피, 즉 그의 유전인자를 받지 않고 태어났다는 말과 같으므로 예수님의 인성이 부인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임신할 수 있는 정상적인 여자인 월경하던 마리아에 의해서 예수님이 탄생하셨다고 한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반론이다.

그 후 아주 재미있는 현상이 한국 교회에 벌어지게 된다. 그것은 박윤식 목사가 교회의 홈페이지를 통해서 지지를 보내고 있기는 하지만 정작 그는 쏙 빠지고 이정환 목사를 중심으로 한 예영수, 구생수, 이광호 목사 등이 최삼경 목사가 ‘월경 잉태설’을 주장했다고 하면서 그에게 이단 시비를 걸고 있으며, 특히 며칠 전에는 같은 통합측 소속이었던 최삼경 목사와 이정환 목사가 총회에서 정면충돌 하게 되었고, 총회는 1년간 연구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통합측 총회 이후의 언론 매체들을 보면 현재 통합 측은 두 패로 쫙 갈라져서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는 최삼경 목사를 지지하는 쪽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박윤식 목사의 주장을 대변하고 있는 이정환 목사를 지지하는 쪽이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 교단도 예외가 아니다.

우리 교단은 보다 더 심각해서 박윤식 목사가 문제없기 때문에 그를 받아야 한다는 쪽과 그렇지 않다는 쪽으로 나뉘어 분열의 위기까지 맞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중 어느 편에 서야 하느냐, 혹은 교단을 나누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진리에 관한 문제이고, 어느 한쪽을 지지하는 것은 곧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으로써 이단의 동조세력이 되거나 이단이 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문제로 인하여 다투며 학자들까지 우왕좌왕 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 비극이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문제는 이미 381년에 콘스탄티노플회의에서 결론이 났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학자들과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 반하는 마리아의 무월경잉태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8장 2항에서는.
“성삼위 중에 제2위이신 하나님의 아들은, 참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시오, 성부와 한 본체이시며 또한 동등하신 분으로서, 때가 차매 인간의 본성을 입으셨다.
또한 인간의 본성에 속한 모든 본질적인 성질들과 일반적인 약점들을 아울러 취하셨으나, 죄는 없으시다.그는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잉태되시고, 그녀의 피와 살을 받아 태어나셨다.
그러므로 두 개의 온전하고, 완전하고, 구별된 본성인 신성과 인성이, 전환이나 혼합이나 혼동됨이 없이 한 위격 안에서 분리할 수 없게 서로 결합되었다.
그 위격은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이시되, 한 분 그리스도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다.”라고 하였다.

칼빈 또한 그의 기독교강요 최종판 2권 제 13장에 있는.
“그리스도께서 인간 본성의 참 본질을 취하셨음”에서 월경 없이 잉태했다는 것과 같은 잘못된 주장에 대해 그것을 반박하면서 그것은 마니교와 말시온주의자의 주장이라 하였고,

박형룡 박사저작전집 제 4권에서는.
그리스도의 인성의 완전성을 부인한 아폴리내리안파(Apollnaris, 381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정죄 받다)라고 하면서 “인류의 일원화”라는 제목으로 “성육신은 그리스도를 인류의 일원으로 만들었다. 초대 이단자들 중에서 혹은 그리스도가 진정한 인생 신체를 가지지 아니하셨다 하고 혹은 그의 신체는 물질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천적실질로 형성되었다고 말하였다. 그런고로 교부들은 그들에게 반대하여그는 「동정녀 마리아의 실질로 출생되셨다」는 문구를 그들의 신조에 삽입하였다.
 
재세례파의 교훈에 반대하여 웨스트민스터 신도게요서 8장 2조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모친의 실질로부터 인성을 취해 입으셨다는 것을 긍정한다. 재세례파 중에 성행하는 의견은 주께서 그의 인성을 하늘로부터 가져오셨고 마리아는 그것이 통과하여 온 운하 혹 도관뿐이었다는 것이었다.

그 견해에 의하면 그의 인성은 실로 새 피조물이어서 우리의 것과 유사하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된 것이 아니었다. 죄는 물질적인 무엇인 듯이, 그들은 그리스도가 만일 마리아로부터 살과 피를 취하셨다면 그는 거룩하지 못하실 것이라 하였다. 그 견해에 반대할 필요는 쉽게 알려질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인성이 우리의 것과 같은 근원에서 오지 않고 유사하기만 하다면 우리의 복리를 위한 그의 중재에 필요한 밀접 관계가 우리와 그의 사이에 있을 수 없다.

주께서 그의 모친의 실질로부터 인성을 취해 입으셨다는 것은 그가 여인에게서 나셨다고 한 성경적 진술에 함의되었으니 그 진술은 주께서 다른 아이들이 여인에게서 출생됨과 같은 의미로 출생되셨다는 것 밖에 다른 것을 의미할 수 없다. 이것은 그의 성육신에 근본적으로 중요하니 성육신은 그가 혈육에 동참하심으로 사람들과 같이 되시어 그들로 하여금 그의 동생이 되게 함이었다(히2:14).”(박형룡박사 저작전집 제 4권 pp. 144~145)고 하였고,
 
루이스 벌콥또한 박형룡 박사와 거의 같은 견해를 나타냈으며,로이드 존스는박윤식 목사의 견해를 대변하고 있는 이정환 목사 등 최삼경 목사를 공격하고 있는 목사들과 같은 견해에 대해 아주 강하게 비판하다가 “우리가 아는 바는성령의 능력이 마리아에게 임했고, 마리아에게서, 그의 몸의 세포 하나에서, 우리 주님의 인성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마틴로이드존스, 성부하나님 성자 하나님, 기독교문서선교회, p.355)라고까지 하였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실은 최삼경 목사를 공격하고 있는 이정환 목사의 주장이 이미 역사적으로, 교리적으로, 성경적으로, 명백하게 이단이라고 하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와 같이 정리된 교리 논쟁을 지금 다시 하고 있으니 참 이상한 이단 논쟁이다. 그러면 이와 같은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원로 박윤식 목사는 여전히 이단.
 
현재 박윤식 목사는 최삼경 목사가 이단이라 공격한 것에 대해 침묵하고 있고, 그의 대리자 격인 사람들이 그의 이단적 사상을 가지고 최삼경 목사를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완전히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분이 섬기는 교회의 홈페이지를 보면 최삼경 목사가 동정녀 탄생을 부인했다고 하며 그를 공격하면서 자신의 대리자와 같은 사람들을 간접적으로 옹호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반대하며 젊은 여자로써 월경이 있어서 정상적으로 임신할 수 있는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이 탄생하셨다는 최삼경 목사의 주장에 대해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는 것이라 하며 여전히 마리아의 무월경잉태설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적반하장격인 주장이며, 죄가 마치 피 안에 있다는 것과 같이 죄를 물질화 시키고 있는 것으로 통일교와 동일한 사상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사상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그는 지금도 여전히 이단이라 할 수가 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지 물질이 아니다. 피 자체에 능력이 있거나 죄가 있다면 그럼 예수님의 거룩하신 피가 한 방울이라도 묻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들, 즉 십자가에서 그분을 못 박거나 채찍으로 친 사람들이나 가시면류관을 씌웠던 사람들도 다 구원을 받았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혈기왕성한 젊은이는 노인에 비해 죄가 많은 사람이 될 것이며, 다쳐서 피를 많이 흘린 사람은 죄가 적은 사람이 되고, 코피만 흘려도 죄를 쏟는 것이 되며, 수혈만 받아도 죄를 받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박윤식 목사나 그의 대변인 격인 이정환 목사 등은 예수님이 마리아가 월경이 없는 가운데 성령의 능력에 의해 탄생한 것을 동정녀 탄생이라 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예수님은 인간의 유전자를 아무것도 받지 않은 것이 됨으로 그분의 인성을 부인하는 것이 되고, 오히려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동정녀 탄생이란 그분이 우리와 같은 인성을 취하셔서 인간이 되셨음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

물론, 동정녀 탄생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그것은 예수님이 아담의 후손으로써 보통생육법으로 출생하여 동일하게 아담의 후손들과 같이 죄에 묶이지 않고, 최초의 아담과 같이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에 의해 특별하게 동정녀로 말미암아 탄생하심으로 인류의 일원이 되심과 동시에 그분에게는 죄가 없으신 것이다.

그래서 바로 그와 같은 입장에서 성경은 아담을 첫 번째 사람이라 하고 예수님을 두 번째 사람이라 한다(고전15:45~47). 그러므로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 것은 마리아의 월경의 유·무와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그와 같은 이단적 주장은 오직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의 수작에 불과할 뿐이다.


(전) 전주시 기독교연합회 이단대책위원장
호 로고스 성경연구원

한 창 덕 목사

Charismatics and the Sovereignty of Satan
By John MacArthur

I received an interesting letter the other day. It came from some people who came to Grace [Community] Church from a Charismatic church – a very large, prominent Charismatic  church.

That’s quite a jump — to leave there and come to Grace Church. The only thing they knew in their church about me was that I didn’t have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That’s all they knew — that I didn’t believe [in the continuation of the gifts], so I didn’t have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They didn’t know much else [about our church], but as circumstances indicated they came to Grace, on a visit, and they never left. . . . There are a number of people who were in this group that came, and one of the ladies wrote a really interesting letter to me. It is an amazingly well-written letter. . .  [And] in the letter, this is what was laid out. When you think of the [broader] Charismatic movement, you think of speaking in tongues, or healings, or Benny Hinn knocking people down, and things like that. But there are some underlying things in the Charismatic worldview that are really very, very terrifying.  And she pointed out this in the letter. She said:

   You know we lived all our life in this movement and one thing dominates that movement, and it is that Satan is sovereign. If you get sick, it was the devil. If your child gets sick, it was the devil. The devil made your child sick. And even if your child dies Satan somehow got the victory. If your spouse, your husband or your wife gets cancer, that’s the devil that did that. If you had an accident, the devil did that. If you lost your job, the devil did that. If things didn’t go the way you wanted them to go in your company or your family and you wound up with a loss of job or a divorce — the devil did all of that. The devil has to be bound and so you have got to learn these formulas, because you have got to bind the devil or he is really going to control everything in your life.

(은사주의 운동에 있어서 현저한 것은 사탄이 지배한다는 것이다.당신이 아프게 되면 그것은 마귀의 짓이다. 당신의 아이들이 아파도 그것은 마귀이다. 바로 마귀가 당신의 아이를 아프게 만들었다. 그리고 당신의 아이가 죽게 되어도 어떤면에서 마귀의 승리가 된다. 당신의 배우자, 아내나 남편이 암에 걸리면 바로 마귀가 그렇게 하였다. 당신에게 사고가 일어나면 그것은 마귀의 짓이다. 당신이 직장을 잃게 되면 마귀가 한 것이다. 만약 어떤 일들이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당신의 회사가 망하거나 당신의 가정이 깨어지는 이혼을 하게 된다면 그 모든 것은 마귀가 한 것이다. 마귀에게 얽메인다면 당신은 이런 방식을 배울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마귀에게 속박이 되었거나 또는 마귀가 당신의 전적인 생활을 조정할 것이다.)  

   The devil dominates everything, and he is assisted by this massive force of demons who also have to be dealt with, and you have got to do everything you can to try to overcome these spiritual powers, and they are invisible and they are fast and they are powerful, and they are really impossible for you to deal with on any permanent basis, so it is an ongoing, incessant struggle with the devil.

(마귀는 모든 일에 위압적이다. 그리고 마귀는 또한 이런 일을 하는 악마의 엄청난 힘의 도움을 받는다. 그래서 당신은 이런 영적인 힘을 극복하기 위하여 무슨 일이든지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보이지 않고, 신속하고, 강하고, 그리고 그들은 당신이 완전히 처리하기에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마귀와의 몸부림은 쉴 새가 없고, 그치지 않는다.)

And the lady in the letter just basically said, “We lived our whole lives thinking that everything that went wrong in the entire universe was basically because of the devil. The devil is really sovereign in everything and even God, along with us, is really struggling like crazy to overcome the devil.”

(그들은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의 그 밑바닥에는 마귀라는 생각을 하였다. 마귀가 모든 일을 실제적으로 지배한다. 그리고 하나님 조차도, 우리와 같이, 마귀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미친듯이 몸부림을 치고 있다.)

She said:

   I lived with heart palpitations, panic attacks, anxiety, frightening dreams — waking up in the middle of the night terrified that the devil might be doing something to my child while he’s lying in his bed. Just living in this constant terror of what Satan was doing; that when the wrong guy gets elected — Satan put him there. That when the society goes a certain direction it is all under the control of Satan. Satan is really the sovereign of everything and it is really difficult to get control of him — even God is up there wringing His hands trying to get control of this deal.

(나는 신장의 두근거림, 공포증,불안, 무서운 꿈- 침대에 누워 있는 나의 아들에게 마귀가 무슨 일을 하면 어쩌나 하고 놀래서 한 밤중에 잠을 자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항상 사탄이 무슨 일을 할 것이라는 끊임없는 공포속에 살았다. 지도자가 안 될 사람이 선출 된 것도, 사탄이 그를 세운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도 모두가 사탄이 조정하는 것이다. 사탄이 모든 일을 실제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며 사탄을 억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나님 조차도 이런 일을 억압하기 위하여 그의 손을 꽉 쥐고 계신다.

   I lived with that fear and that terror because I took my church seriously.” And she said, “I came to Grace [Community Church] and one thing just totally shocked me. You said that:

(나는 이전에 다니든 그 교회를 너무나 진지하게 여겼기 때문에 두려움과 공포속에서 살았다. 그래서 당신의 설교는 나에게 충격이었다.)

       The fact is, God is in control of everything! . . . When you get sick, or when somebody gets cancer, or when something goes wrong in the world, or when you lose your job, that is not outside the tolerances of God, that is not outside the purposes of God, in fact, God works all things together for good.

(하나님이 모든 것을 섭리하신다. 그러므로 당신이 아플 때나, 누가 암에 걸렸거나, 또는 세상에서 무엇이 잘못되었을 때, 또는 당신이 직장을 잃었을 때, 사실은 그런 일들이 하나님의 허용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루신다.)

   This was absolutely earth shaking. This was a total change for us, and the difference we found was so powerful that it totally changed the way we think about life.(이것은 우리들에게 천지가 개벽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우리들의 전적 변화였다. 그리고 우리들이그 차이점을 발견하였을때 강력하게 삶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하였던 방식을 전적으로 변화시켰다.)

That is the issue. We do not believe Satan is in charge of history; we believe God is in charge. That changes everything.  That takes all the panic out. I can honestly say that I have never had a panic attack. I have never awakened in the night worrying what the devil might be doing, because God has not only conquered Satan, but God has put Satan under our feet it says, and, “Greater is He that is in you than he that is in the world” [1 John 4:4]. So we know God controls history. And this might surprise you, the devil is God’s servant.

(이것은 이슈이다. 우리는 사탄이 역사를 지배한다고 믿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이 섭리하신다고 믿는다. 그것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공포심을 제거하고, 나는 공포에 사로 잡힌 적이 없다. 나는 마귀가 무슨 짓을 할 것이라는 걱정으로 한 밤중에 깬 적이 없다. 왜나하면 하나님이 사탄을 물리치신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사탄을 우리의 발 아래 놓으셧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ㅣ보다 크심이라"(요일 4:4).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역사를 섭리하심을 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마귀를 다스리신다는 말을 이상히 여기지 마십시오).


출처: 아멘넷, 정리: g2u
이 글을 쓰신 Ken Silva 목사님은 오늘날 개신교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본주의, 에큐메니칼, 신비영성주의, 뉴에이지 이머전트 교회 운동들의 위험성을 고발하기 위해 그들의 가르침과 사상으로부터 초래되는 악영향들의 폐해를 밝히고 그 확산을 저지하시고자 힘을 쏟고 있는 개혁주의 진영에서 보기 드문 사역자 입니다.

www.apprising.org 에서 발췌 번역하였습니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보인다 할지라도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잠언29:18) 이건 좋은 것이니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오” 입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 당하신 것을 기억하신다면 공중 권세 잡은 자가 우리 주님께 무엇을 말했는지 주의 깊게 보십시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마4:8-10) 참고로 위의 구절은 교회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아이디어를 얻은 하나의 예로서 예수님과 직접 관련된 좋은 자료가 되는 구절이지요. 이 구절을 우리가 지금하고자 하는 논의에 관련시켜 본다면, 여기에서 마귀는 예수님을 미혹하기 위해 예수님 앞에 ‘숫자’를 내어 놓았습니다. 오늘날 새롭게 교회들을 세우고 개척하는 사역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걸려 넘어진 그것 말입니다.

저는 아무리 영적으로 둔감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제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21세기 포스트모던시대를 비추어 보고자 한다는 것에 동의할 줄로 압니다. 빈번히 우리 앞에 뻔뻔스럽게 드러나는 죄악, 번쩍거리는 보석 장식들로 치장하고 자신들의 무대 위를 종횡무진하며 시끄러운 노래 속에서 자신들에게 열광하는 청중들을 향해 사악한 신성모독적 말들을 쏟아 내는 교만한 자들. 저는 여기서 단순히 “삼위일체 신성모독 방송국’(TBN: Trinity broadcasting Network 방송국을 가리킴. 역자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다른 곳에서도 이와 유사한 엔터테인먼트의 유형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몇몇 소수의 초대형 목적이 이끄는 교회와 구도자중심의 열린 예배들을 하는 교회들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사실이 우리를 잠시 생각하도록 만들지 않나요? 저는 이 글을 통해 인본주의 교회성장운동에 빠져들고 있는 교회들에게 이머징(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교회들 안에서 일어 나는 복잡한 대화들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을 권면합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속박에 붙들리기 전에 뉴에이지 교회들로부터 돌아서십시오. 교만으로 가득한 번영신학 선지자들로부터 도망치십시오. 여러분은 진정으로 개신교의 개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모두들 로마 카톨릭의 비성경적 수도원 전통 안에서 유행했던 부패한 신비적 영성/ 관상기도운동의 일시적 유행에 빠져들고 있는데 여러분들이 그들과 같은 대열에 선다는 것의 의미는 여러분들이 개신교 개혁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됩니다. 현재 카톨릭과의 에큐메니칼을 추구하는 이들 교회 안의 새로운 퇴보와 그들 지도자들의 불신앙은 진정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더 많은 영향력 있는 복음주의자들이 종교개혁의 ‘오직 성경’의 교리를 공격하는 뻔뻔스럽고 사악한 에큐메니칼 이멀전트 교회의 신자유주의적 종교의식과 번영신학의 영적 교만을 옹호함에 따라 사람들은 아무 거리낌없이 이러한 것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세요? 주님께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셨다는 것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우리 아버지께서 오래 전에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엡4:30)-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경고하지 않으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릭 워렌(인본주의 구도자중심) 랍 벨(뉴에이지 이머전트 교회운동), 조엘 오스틴(번영신학) 같은 사람들의 사역들을 비판한다는 이유로 매일 욕을 얻어 먹고 있습니다. 저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제가 언급한 사람들이 굉장히 좋은 사역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저를 비난합니다. 그리고 그에 덧붙여 “당신은 그들이 인도한 많은 수의 사람들에 대해 질투하고 있군요. 당신의 메시지로는 사람들을 냉담하게 만들 뿐 아니라 한 사람도 전도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닌가요?”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 문제가 있음을 보십니까? 그들이 짐작하건대, 저는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하는 반면 그들은 수 천명의 사람들을 전도한답니다. 그렇지만 진실은 우리 중에 아무도 그 누군가를 회심하도록 만들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그 어떤 방법으로도, 무슨 약속을 그들에게 해주던지 간에 우리는 사람을 회심시킬 수 없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계시를 풍성하게 체험하지 못하는 것은 구도자중심의 실용주의자들은 도무지 말씀을 통해 부어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회심에 있어서도 전혀 능력이 없습니다.

이는 마치 마태복음 7:21-23에 나타나있는 성경의 예언적 성취를 우리가 보는 듯 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오늘 저는 허울만 기독교이지 거짓으로 위장한 이 자아도취의 악몽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그것에서 깨어날 것을 위해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이 인본주의자들의 거짓말에 속아왔다면 지금 당장 이 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십시오(딤후 3:5) 그리고 부디 성경을 펴서 여러분 스스로 이러한 것들에 대해 확인해 보십시오. 제가 주 안에서 이것을 말하는 지금 이 순간도 시간은 지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영원의 운명을 결정하는 여러분의 인생을 가지고 이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고요. 그러나 주께 찬양할 것은 예수의 이름으로 회개케 하시고 죄를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 늦기 전에 예수께로 오지 않으시렵니까?

BUT IT APPEARS LIKE THE REAL THING By Ken Silva pastor-teacher on Sep 19, 2010 in AM Missives, Current Issues, Where there is no prophetic vision the people cast off restraint, but blessed is he who keeps the law. (Proverbs 29:18) It’s Good, So It Must Be God, Right? The answer to that question is, no. Remember when Satan was tempting Jesus; note carefully what the prince of the power of the air tells our Lord: Again, the devil took him to a very high mountain and showed him all the kingdoms of the world and their glory. And he said to him, “All these I will give you, if you will fall down and worship me.” Then Jesus said to him, “Be gone, Satan! For it is written, “‘You shall worship the Lord your God and him only shall you serve.’” (Matthew 4:8-10)

Quick side note, above is an example of where the Church got the idea of sola Scriptura; from Jesus Himself, a pretty good Source. Pertaining to our discussion here, Satan basically offers Jesus what traps so many in the cult of missional church planters today, numbers. I don’t think anyone with even a modicum of spiritual acumen would deny that the first part of my opening text is a virtual mirror of our twenty-first century postmodern world. Sin blatantly thrown into our faces at every turn. Proud boasters prowling their stages decked out with shiny ornate jewelry and spouting vile blasphemies over loud music to adoring crowds who cheer it wildly. And I’m not only talking about the Trinity Blasphemy Network either, as you can find this very same kind of “entertainment” in rap venues as well; not to mention in more than a few Purpose Driven/Seeker Driven megachurches.

This does give us pause for thought, does it not? In this devotional I admonish those caught up in these excess of the man-centered Church Growth Movement to forget that convoluted conversation within the Emerging Church; turn away from those sinner sensitive PD/SD musings, and run from the prideful prophets of Word Faith before you end up right back in the bondage of the apostate Church of Rome along with all the rest of them. Do you really think the Protestant Reformation was wrong; because this is what you are being asked to believe in order to follow these fools as they all indulge in the current fad of corrupt Contemplative Spirituality/Mysticism, which originally flowered in the antibiblical monastic traditions of apostate Roman Catholicism.

The current New Downgrade And Its Apostles Of Unbelief with their Ecumenical Church Of Deceit (ECoD) is very sad indeed. As more influential evangelicals embrace the neo-liberal cult of the sinfully ecumenical Emergent Church—blatant in its attack on sola Scriptura—and the self-aggrandizing spiritual pride of the Word Faith Movement, people are indeed casting off restraint. And you know what, it’s the Lord Himself Who is allowing this to happen. Remember though, it’s not like our Father didn’t give us warning because long ago He told us — do not grieve the Holy Spirit of God (Ephesians 4:30). I‘m regularly ripped for criticizing the work of people like Rick Warren and Rob Bell and Joel Osteen because, say my critics, they are doing so much good. And then they’ll usually go on to say to me, “You’re just jealous of all the people they are reaching because what you are preaching only turns people off and you’re not reaching anyone.” Can you see the flaw here? Supposedly, I don’t reach anybody…they are reaching thousands. Well, the truth is none of us can convert anybody to Christ no matter what we do or how much we promise them. We have little revelation of God today because the seeker sensitive pragmatism of casual Christianity-lite will never be blessed by the LORD God Almighty of the Bible; and hence it’s powerless to save. Likely what we are witnessing right now is just another prophetic fulfillment of: “Not everyone who says to me, ‘Lord, Lord,’ will enter the kingdom of heaven, but the one who does the will of my Father who is in heaven. On that day many will say to me, ‘Lord, Lord, did we not prophesy in your name, and cast out demons in your name, and do many mighty works in your name?’ And then will I declare to them, ‘I never knew you; depart from me, you workers of lawlessness.’” (Matthew 7:21-23) Today I appeal to you in Christ’s Name to awaken from this narcissistic nightmare falsely being portrayed as Christianity. If you have been taken in by these deceiving man-pleasers having the appearance of godliness, but denying its power; now you need to, Avoid such people (2 Timothy 3:5). Please, pick up the Bible and check these things out for yourself; for I tell in the Lord that time is running out, and you are playing a game with your life that has eternal stakes. But, the Lord be praised, there’s still God’s Gospel of grace in repentance and the forgiveness of sins in Jesus’ Name; won’t you come to Him…now…before it’s too late. =============================================================================== 요즘 Ken Silva목사님이 특별히 많이 언급하고 있는 것은 관상기도 운동입니다. 관상기도는 카톨릭에서 강조하는 비성경적 기도의 유형인데 개신교 진영 안에서 리차드 포스터, 달라스 윌라드 같은 유명한 학자들과 저술가들이 지지하고 최근에는 복음주의 진영의 Tim Keller 목사 조차도 자신이 담임하는 교회에서 관상기도를 가르치는 클래스를 오픈하는 등 평신도들로서는 신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관상기도를 아무런 비판없이 무분별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지경에 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름이 너무나 잘 알려진 이동원목사가 레노바레라는 신비주의 영성과 관상기도를 주창하는 단체의 대표로 나서고 있고 강준민목사(기독교영성시리즈의 저자), 박은조 목사(샘물교회), 정종원목사(꿈이 있는 자유) 등이 이 사역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출처: 아멘넷, 정리: 오직은혜님
마이클 호튼의 “미국제 영성에 속지 마라” p.257 ~ p261.

“성령과의 직통교제가 아니라 말씀과 성례와 더불어 역사하시는 성령을 신뢰하라” 중에서


능력대결?

그 오순절파 부흥사는 ‘능력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모든 보도에 따르면, 비 그리스도인들이라 할지라도 그가 인도하는 집회장소를 지나가게 되면 성령의 권능 때문에 쓰러지고 있다는 것이다. “엄청난 양의 높은 에너지, 계속적인 도전으로, 귀신들이이런저런 식으로 그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그 부흥사들은 귀신들을 조롱한다”라고 피터 와그너는 보고하였다. “경험이 없는 자에게는 완전한 혼란의 도가니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부흥사와 그의 베테랑 팀은 그것은 또 하나의 능력대결의 밤이다”라고 와그너는 계속해서 보고하였다.

자신의 복음을 “엄청난 양의, 높은 에너지 … 능력대결”로 일컫는 사도 바울을 상상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나는 베드로가, “동시에 나는 우주적 실재 속으로 내 촉각을 들여보내 나의 오감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존 윔버의 말)라고 말하는 베드로를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오감을 통해 더 높은 영적지식(gnosis)에 ‘접속함으로써’ 얻어지는, 자연적인 지식을 초월한 특별함에 대한 추구는 영성에 대한 현대 복음주의의 일부이다. 이미 살펴본대로, 그것은 조금도 손색이 없는  영지주의이기도 하다.

어떤 때는 성경적이거나 신학적인 성찰이라기 보다 훨씬 더 공상과학에 가까운 이야기를 하면서, 소위 제 3의 부흥 물결의 지도자들은 주술과 테크닉을 뒤섞은 영지주의적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이 접근태도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명백한 영지주의자들이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말할 필요도 없이 그들은 전통적 기독교의 핵심 내용들을 확언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광범위한 문화, 특히 복음주의자들의 태도들과 실천들에 대한 영지주의의 영향은 틀림없이 존재하고 있다.

새로운 오순절에 대한 열망은 분명 이해할 만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유행이 일어나고 또 다른 유행이 뒤따라 일어나면서 우리에게 소망을 불러 일으켰다가 그 다음날 다시 우리를 지치게 만들고 실망만을 안겨주는 것을 보아왔다. 하나님과의 좀더 친밀한 사귐을 열망해서, 우리는 성부 하나님이 위로자로 보내주신 성령님께로 향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우리는 능력과 영적인 성취의
내주하시는 영구한 원천(성령)으로부터 이 감미로운 사귐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성령과 말씀

여기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문제는 왕과 그 군대를 떼어놓은 것, 병사를 그의 무기로부터 떼어놓은 것과 마찬가지로 성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터 떼어 놓았다는 사실에 있다. 만약 성령이 은혜의 수단과는 별개로 역사하신다면, 우리는 성령님이 ‘능력대결’과 기도회의 고백 모임과 부흥회와 같은 대중 집회에 의해 우리를 유지시켜주기를 기대 할 수 있을 것이다. 너털움음을  터뜨리거나 개처럼 짖는 등의 이상한 현상에 몸을 맡김으로써 성령님께 도달 할 수 있을 것이다.

자, 이제 실제로 인간 역사 가운데 일어났던 그 오순절(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오순절)에 대해 생각해 보자. 영국 성공회 교구 목사 딕 루카스가 이점에 대해 내게 일깨워주었다. 성령의 권능이 전 세계로 부터 그곳에 모여 들었던 사람들에게 내렸으며, 베드로는 매우 긴 설교를 선포하고 있었다. 실제로 사도행전 전체에서, 우리는 선교와 전도와 확장의 면에서 교회의 위대한
전진들은 기적들을 포함하고 있지 않았고, 선포된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일어났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성경에서, 성령님이 자신에게 주목하도록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는 곳을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거하느리라”(요 15:26,27)
예수님은 성령님이 성령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해 말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거의 모든종교에는 위대한 어떤 영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종교도 그 위대한 영의 전체적인 존재가 성육신하신  하나님아들의 역사 가운데서 삶과 죽음과 부활을 향해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이라고 고백하는 어떤 집단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에 대한 초점을 어느정도 ‘능력대결’로 바꿔치기 하는 것은바로 그 집단이 오순절의 애초의 권능으로부터 그 정도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베드로는 자기의 설교를 ‘진짜 흥분되는 일’에 대한 필수적인 서두로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능력 부흥사들은 표적들과 기사들의 ‘사역시간’ 이전에 간단한 메시지를 그렇게 보는 것 같다. 베드로가 선포했던 복음은 바울이 선언했듯이 “ 모든 믿는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1:16)이었으며, 그 복음이 선포될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선포된 말씀에 응답하였다.
물론 이것은 성령님이 보내심을 받은 목적과 일치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 모여 약속된 성령이 오실 것을 기다리라고 분부 하셨다. 이때 그들은 이것이 세상의 종말이나 하나님나라의 완성이 아닌지 궁금해 하였다. 그에대해 예수님은 이 보혜사가 오시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
자, 여기에 흥분되게도 권능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말씀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오순절의 중심 부분이 한 편의 ‘설교’ 였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만약 교회가 아직도 복음을 통해 ‘땅 끝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고 있다면, 또다른 오순절은 전혀 필요 없다.
우리 주님에 의해 약속되었던 이 권능은 진리의 말씀을 신실하게 듣고 선포하는 모든 사람들이 여전히 누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이 단순 검소함을 입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정한 임재를 놓치고, 설교의 미련함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것 같다. 우리 기독교 문화 가운데 십자가에 대한 설교는 오순절적인 능력대결들 만큼 우리를 흥분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 설교에 성령님을 위한 여지가 거의 없다고 결론 내릴 수 있을것이다. 이는 우리가 성령님의 사역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며 성경말씀을 조명해 주시는 분으로서의 고유한 역할보다 우리 자신의 개인적 체험과 연결 시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만약 우리가 말씀과 성례전과는 별개의 강력한 임재를 찾고 있다면, 정말로 실망을 금치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해주신 이러한 활동들(말씀과 성례전)이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을 제공해준다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진정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충만한 삶이 이루어질 것이다. 성령가운데 살아가는 삶은 모든 신자의 특권적 재산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도 구원의혜택들로부터 배제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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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공동체를 위하여”  황OO 목사님 의 2005.7.17 설교 중에서  

두 번째 극단은 사탄에게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살이 곳곳에 사탄의 역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선함과 참됨과 아름다움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모든 거짓과 악함과 추함과 고난은 사탄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어느 정도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모든 나쁜 상황이 모두 사탄과 귀신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너무 사탄을 의식하라고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요즘 한국에 들어오고 있는 재미없는 사상이 있습니다. 사탄의 세계에 대해서 성경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서 지나친 상상을 하고 있습니다. 그 한 예로 피터 와그너 교수의 최신 이론이 있습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요즘 세상이 이렇게 시끄러운 이유는 하나님의 왕좌 위에 천상의
여왕이 앉아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 여왕이 하나님과 싸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천상의 여왕이 누구냐면 바울이 선교할 때 만난 고대 에베소의 다이아나 여신입니다.
바울이 그 때 완전히 박멸했어야 하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이아나 여신이 계속
살아 있다가 카톨릭의 마리아 숭배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죽은 영국의
찰스 황태자의 부인 다이아나와 연결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이아나가 천상의
여왕으로 앉아 있으면서 하나님과 싸워 세상이 이렇게 시끄럽다는 것입니다.

또 이 사탄은 도시마다 구역을 정해놓고 통치를 한다고 합니다. 그 구역에는 통치하는
귀신들의 이름이 있는데 와그너 교수는 이 이름까지 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구역을
점령하고 있는 귀신의 세력을 쫓아내야 하는데 그것이 영적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귀신들은 자기 구역에 아주 견고한 진을 치고 있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이길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귀신들이 틀고 있는 견고한 진을 찾아내고, 진을 파괴하려면 큰 권능을 가진
사도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이 사도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바울 같은
막강한 능력을 가진 영적 지도자라야 합니다. 교회에는 사도의 제도가 끊어지고 목사가
이를 대신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목사보다는 사도가 필요한 시대라고 합니다.
결국 피터 와그너 교수는 자기가 직접 사도를 세우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영적
권능을 가진 지도자들을 찾아서 다시 사도 안수를 베풀고 다닙니다. 이것이 신사도주의입니다. 이 신사도가 베푸는 능력을 신은사주의라고 합니다. 장풍으로 쓰러뜨림, 아말강 이빨을 금으로 바꾸기, 예배 시간에 웃음보 터지기, 개구리 울음소리, 사자 울음소리, 닭 울음소리를 듣게 하는 등의 새로운 은사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들은 과거 1920년 대와 30 년대에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에서 많이 해왔던
것들입니다. 최근에는 카나다에서 시작해 이단 판정을 받은 빈야드운동과 다락방, 김기동의 성락교회가 여기에 속합니다. 한국의 많은 교회들이 이런 오염된 사상에 동조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미국에 있는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이 신학적으로 성숙하면서 이런 태도들을 다
버렸습니다. 그런데 아직 오순절 교회의 언저리에 있는 일부 사람들이 신학 훈련을 전혀
받지 않은 채 다시 들고 일어서고 있습니다. 특히 메릴린 히키라는 여자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영적 전쟁이니, 가계에 흐르는 저주니 등의 책을 통해서 자꾸 퍼뜨리고 있습니다.

성경에 영적전쟁이라는 무시무시한 군사적 용어가 나오는 곳은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을 잘 보면 이것은 묵시문학의 그림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온갖 곳에 사탄 마귀들이 들끓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군대 십사만 사천을 동원해서 용과 바다의 괴물과 땅의 괴물과 사탄에 맞서서 영적 전쟁을 해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은 사탄과 싸워 쫓아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는 당시 로마 제국이 막강한 힘으로 지배하여 황제를 숭배하고 기독교를 핍박하고 있으니, 순교를 무릅쓰고 배교의 유혹을 이겨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이 영적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어디 이 동네 귀신이 있고, 저 동네에 귀신이 있어 그것들을 쫓아내는 것이 영적 전쟁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영적 전쟁의 언어가 가장 절실하게 나오는 곳이 에베소서 6 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입니다.

이 본문은 군사의 개인 무장을 비유로 자세히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진리, 의, 평화, 복음, 믿음, 구원, 성령, 말씀 등으로 무장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진리를 실천하고 의를 행하고 전도를 열심히 하는 것이 영적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군사 용어가 나오고 있지만 진리와 사랑의 실천으로 사탄의 통치를 막으라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신 은사를 나타내는 영적 지도자를 앞세워 지역을 점령하고 있는 귀신을
내쫓으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이들은 또 내적치유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은 본래 심리학에서 상담을 통해서 심리 치료를 하는데 쓰는 말입니다. 그런데 상담학에서 쓰는 이 말을 지나치게 쓰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가까운 이웃들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가 오래되면서 내영을 황폐화
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을 치료하려면 귀신을 쫓는 능력으로 영적 오염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영까지 치료하는 단계를 내적치유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성경의 원리를 넘어선 지나친 이론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사탄에 대해서 지나친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지 않은 이야기들을 소설로 쓰고 있습니다.

사탄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역설적이게도 사탄의 권세 아래 더 놓이게 됩니다. 실제 우리가 해야 할 영적 전쟁은 복음 진리를 외치고 사랑과 의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탄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이런 것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게 합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벌어지면 모두 사탄이 한 일이라고 책임을 전가하게 됩니다.

시험을 못 봐도 사탄의 방해라고 합니다. 심지어는 감기에 걸려도 귀신 들린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말하는 내적 치유를 통해 귀신을 내쫓아도 영적 지도자의 그늘을 벗어나면 이내 또 귀신이 들립니다. 그래서 철저히 영적 지도자의 품을 의존하게 만들어 무기력한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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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선지자를 배격하라
http://shinil.net/991003-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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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SPEL AND SPIRITUAL WARFARE:
A REVIEW OF PETER WAGNER’S CONFRONTING THE POWERS1

http://www.faithalone.org/journal/1997i/Hart.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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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OWING PAINS IN THE PROPHETIC
MIKE BICKLE AS THE "DON KING" OF MODERN DAY PROPHETS
http://www.pfo.org/growingpains.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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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k Joyner: Christian Gnostic
http://www.apologeticsindex.org/j0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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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y of Cain
New teachings in the Christian Church- Where are They Leading Us?

http://www.apologeticsindex.org/r0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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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arp and Bowl" 24-Hour Prayer Initiative
and the 'Restoration of the Tabernacle of David'

http://www.intotruth.org/apostasy/harp-bowl.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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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ansas City Prophets Exposed

http://www.intotruth.org/kcp/kcp-cri.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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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Article: JAA166

GROWING APOSTOLIC‐PROPHETIC MOVEMENT MAKES
INROADS INTO EVANGELICALISM


This article first appeared in the News Watch column of the Christian Research Journal, volume 28, number 4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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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an  “prophets”  from  around  the  world  met  in  Colorado  Springs,  Colorado,  on  January  12–14,  to
declare  God’s  “Word  for  2005”—at  the  annual  meeting  of  the  Apostolic  Council  of  Prophetic  Elders
(ACPE).  Their  official  report,  titled  “God  Will  Level  Mountains,”  predicted  more  church  influence  in
society.  Other  forecasts  included  natural  disasters  in  California  (as  punishment  for  allowing  stem‐cell
research);  homosexuality  and  scams  exposed  in  the  church;  a  pandemic  in  Asia  that  could  kill  300,000;
and a U.S. president, in 2008, “who will reconcile the nations to the United States.” (Read the full report at
www.elijahlist.com.)

The  council,  under  the  leadership  of  “apostle”  C.  Peter  Wagner,  is  part  of  a  growing  “Apostolic‐
Prophetic”  movement  within  charismatic  evangelicalism,  also  known  as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Advocates  believe  that  God  is  restoring  the  offices  of  apostle  and  prophet—offices  with
great authority, supernatural power, and divine revelation. They say that God is restoring the church to
its “correct” government so that through the church He can restore the earth and establish His kingdom.
The  movement  is  gaining  followers  despite  aligning  itself  with  the  Latter  Rain  teachings  of  the  1940s,
which most evangelicals deemed heretical.

Many  evangelicals  learned  about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from  Wagner’s  book  Churchquake!,
published by Regal Books in 1999. Since then, the movement has added more members, ministries, and
mainstream evangelical support.

Most  of  the  movement’s  growth  has  been  in  independent  charismatic  churches,  which  are  the  fastest‐
growing  segment  of  Christianity  in  nearly  every  region  of  the  world,  including  the  United  States,
according to church growth experts. Wagner said in his new book Changing Church (Regal Books, 2004)
that the movement is now the largest bloc of Christianity next to Catholicism.

Currently,  thousands  of  “apostles”  and  “prophets”  lead  growing  networks  of  churches  and  ministries.
“Apostle”  Ché  Ahn  and  “prophet”  Lou  Engle,  for  example,  lead  Harvest  International  Ministry,  a
network  of  1,200  churches,  based  in  Pasadena,  California.  Other  ministries  have  expanded,  such  as  the
Miracle Channel, which launched nationwide on Canadian television in 2000, and the Elijah List, which
now e‐mails prophecies to more than 116,000 subscribers daily, up from 14,000 in 2000.

Growing Resistance. Criticism of the movement is also growing, however. One of the strongest critics is
the  Assemblies  of  God  USA,  which  denounced  the  Latter  Rain  Movement  in  1949.  Its  General  Council
released another statement in 2001, titled “Apostles and Prophets,” arguing that the restoration of these
offices is unbiblical and opens the door to abusive leadership. It said that these offices “belong[ed] to the
foundational era of the Church,” and that the biblical model for church leadership is elders and deacons.

Other  critics  accuse  leading  “prophets”  in  the  movement  of  making  false  prophecies.  Kim  Clement,  for
example, prophesied that hundreds of thousands of salvations would occur in 2001 and would be reported
on the Jay Leno, David Letterman, and Politically Incorrect television shows. Clement also prophesied that a
cure  for  AIDS  would  be  found  by  2002  and  that  Osama  Bin  Laden  would  be  captured  by  Easter  2004.
When  Easter  2004  passed,  Clement  still  backed  his  Bin  Laden  prophecy,  saying  that  people,  including
himself, mistakenly interpreted God’s statement “bring out your greatest enemy” to mean “capture.”

Movement  leader  Rick  Joyner  also  keeps  prophesying,  despite  what  critics  call  a  history  of  false
prophecies.  Joyner  stated  in  1997  that  Los  Angeles  would  be  destroyed  in  nine  months  by  earthquakes
and nuclear bombs and urged people to “get out.” Joyner also prophesied that Y2K would cause “severe”
problems. One of his latest prophecies, in his book The Apostolic Ministry (Morning Star Books, 2004), is
that elderly saints who take part in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will grow younger physically.

The  movement  still  promotes  prophecies  from  Clement  and  Joyner.  In  an  April  16,  2004,  Elijah  List  e‐
mail,  Steve  Shultz,  publisher  of  the  Elijah  List  and  member  of  the  ACPE,  said  he  accepted  Clement’s
explanation  of  the  Bin  Laden  prophecy,  and  that  Clement  “has  had  some  of  the  very  highest  level  of
prophetic revelation of any prophet” he knows. In an April 6, 2005, e‐mail, Shultz said that Joyner is still
one of the “more discerning voices in the church today,” despite his errors. That is because, according to
the movement, prophets can make “mistakes” and still be true prophets.

Many  critics  disagree,  saying  that  a  failed  prophecy  disqualifies  a  person  from  being  a  true  prophet  of
God according to Deuteronomy 18:20–22. They also say that modern “prophets” often include so many
vague  qualifiers  along  with  their  prophecies  that  the  prophecies  can’t  be  tested.  Shultz,  for  example,
prefaced  the  ACPE  report  for  2005  by  saying  that  the  prophecies  are  revelations  of  what  we  “should
begin to see” in 2005, not what “must happen by December 31, 2005.”

Powerful  Allies.  Despite  these  criticisms,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is  being  promoted  by  a
growing number of evangelical leaders and organizations. In 2001, evangelical publisher Thomas Nelson
released a book titled The Restoration of the Apostles and Prophets, by Héctor Torres, which promoted the
movement.

The  movement  received  a  significant  boost  in  2003  when  Ted  Haggard  was  elected  president  of  the
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 Haggard is a member of the ACPE and the International Coalition
of  Apostles  (a  network  of  more  than  250  “apostles”  led  by  Wagner).  He  also  serves  on  the  board  of
regents  for  the  Wagner  Leadership  Institute,  a  “new  apostolic”  seminary,  as  does  evangelical  pollster
George Barna.

In January 2004, fifty well‐known charismatics held a symposium on the movement in Orlando, Florida.
Hosted by Ministries Today magazine, the symposium was moderated by the magazine’s senior editorial
adviser, Jack Hayford,  founding  pastor of  the  Foursquare  Church on  the  Way  in  Van  Nuys, California.
Other  participants  included  Wagner,  Haggard,  Joyner,  Reinhard  Bonnke,  Myles  Munroe,  Rod  Parsley,
and Joyce Meyer.

The participants signed a document, titled “The Orlando Statement,” that affirmed the ongoing offices of
apostle  and  prophet  and  approved  the  use  of  these  titles.  The  statement  also  called  for  more
accountability,  citing  an  “ethical  crisis”  among  charismatic  leaders,  including  “sexual  infidelity”  and
financial “extravagance.”

Final Generation. Another development is the movement’s emphasis on children. The ACPE “Word for
2004”  predicted  more  prophesying  by  children,  and  the  “Word  for  2005”  predicted  more  angelic
visitations to them.

Participating churches are hosting conferences to “activate” children into the “realm of the supernatural,”
including prophecy, miracles, and healing. David Walters, for example, conducts conferences for youth
and  parents,  titled  “Mighty  Young  Warriors”  and  “Raising  a  Generation  of  Anointed  Children  and
Youth.” Walters has held conferences throughout the United States and in other countries.

The  movement  is  focusing  on  children  because,  according  to  “prophets”  like  Joyner,  the  current
generation of children will be the last generation of the church and needs to be trained for their role in
establishing God’s kingdom.

— Holly Pivec


출처: 아멘넷 게시판, 정리: Jung 님

34. 종말의 적그리스도의 종교 미스테리 바벨론


[이 글로서 블로그 분별 시리즈를 마무리 짓습니다. 혹시 이 블로그에 덧붙인다면, 참고자료를 보강하는 수준이 될 것입니다. 이 글에 추가된 번역된 문서는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집중력을 방해하지 않도록 본론은 짤막하게 처리했습니다만, 링크된 문서들과 추가된 문서, 그리고 이 블로그의 다른 글들을 읽어 보시면 결론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지금까지 읽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며, 분별함으로써 절대로 미혹에 빠지지 않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 글은 출처만 명시하면 언제든지 스크랩해도 좋습니다.]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2:3에서 배교가 일어나고 그 후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말한다. 기독교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형태의 배교적 움직임을 잘 살펴보면, 종말의 큰 배교의 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알기 별로 어렵지 않은 시대에 와있다.


이 종말의 배교에는 커다란 특징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배교를 포함한 모든 이방종교가 적그리스도의 단일 종교로 "수렴"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미스테리 바벨론"이라고 부른다.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미스테리)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요한계시록 17:5)

MYSTERY, BABYLON THE GREAT, THE MOTHER OF HARLOTS AND ABOMINATIONS OF THE EARTH


계시록(13:8)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을 제외한, 지구 상의 모든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 적그리스도(짐승)에게 경배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배교한 크리스천, 불교도, 이교도 심지어 무신론자들까지도.. 가히 종말의 세계단일종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탄의 세계단일종교를 수립하기 위한 움직임은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으며, 19세기 말 프리메이슨들에 의해 구성된 뉴에이지 신지학회의 설립으로 인해 구체화된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성경에서 미스테리 바벨론이라고 일컬은 적그리스도의 세계종교


1. 영지주의종교
2. 오컬트 신비주의종교
3. 프리메이슨 에소테릭종교
4. 뉴에이지 세계단일종교이다.

[미스테리 바벨론의 유래]


물론, 배교의 뿌리는 사탄의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미혹에 넘어간 이브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 이후로 사탄은 지속적으로 우리에게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미혹을 되풀이하고 있다.


홍수 후, 니므롯(Nimrod)은 하나님께 대항해서 바벨탑을 쌓음으로써 바벨론을 우상숭배의 대명사로 만들었으며, 바벨론의 신비종교, 즉 미스테리 바벨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교의 총체적 대명사가 되어, 세계 곳곳으로 퍼졌다. 그 중에서 주로 유대인들을 통해 전파된 서양의 카발라와 아리안족을 통해 전파된 동양의 힌두교와 불교를 들 수 있겠다.


미스테리 바벨론은 기독교 속에서도 살아 남아 기독교 신비주의를 이루며 박해 속에서도 서서히 세력을 키워 왔는데, 종교개혁을 전후로 해서 카톨릭 속에서 위치를 확보하고, 프리메이슨 비밀형제단을 통해 세계 곳곳으로 전파되어 갔다.


1900년 경 전후로 프리메이슨 신비주의자들에 의해 설립된 신지학회는 악령들의 채널링을 통해서 사탄의 미스테리 바벨론의 교리를 확립하고 적그리스도의 도래를 알리며, 이를 불러들이는 뉴에이지 운동을 시작하였다. 신지학회 설립의 모토는 "과학, 철학, 종교의 통합"이었다. 이는 통합종교가 오컬트 종교임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미스테리 바벨론의 특징]


1. 미스테리 바벨론은 영지주의 종교이다.


영지주의의 신관은 모든 만물 속에 신성이 존재한다는 "만유내재신"[참고<<]이다. 저급한 신에 의해 창조된 육체는 껍데기에 불과하고, 이 사실을 깨달음(영지/그노시스)에 따라 모든 사람은 자신 속의 신성과 만남으로써 신의 경지로 상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단, 이는 한 번의 생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의 윤회 속에서 단계적으로 깨달음이 완성된다고 한다.) [참고: 영지주의, 카발라, 뉴에이지의 공통점<<]


영지주의에서는, 깨달음의 스승(마스터)들은 우리를 위해 영적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이들을 '빛의 사자(메신저)들' 또는 '승천한 지혜의 마스터(대사)들'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미스테리 바벨론에서는 영적 존재인 빛의 사자들을 그들의 스승으로 두고 있다. 물론, 이들은 악령들에 불과하며, 그 중에서 가장 높은 자는 루시퍼이다. 결국 미스테리 바벨론은 채널링 등을 통해서 악령들과 마귀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는 종교라고 볼 수 있다.


2. 미스테리 바벨론은 오컬트 신비주의 종교이다.


이는 미스테리라는 이름에서부터도 당장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오컬트는 밝혀지지 않은 어둠의 과학기술을 가르키며, 헤르메스, 마법, 연금술 등으로도 불린다. 물론, 오컬트는 마귀의 과학(?)과 기술로서, 흑암의 힘을 빌리려는 오컬티스트들을 통해 (신비적으로) 나타난다.


종교적으로 사용되는 대표적인 마법의 형태로는 관상/명상을 통해, 원격투시와 텔레파시를 포함한 환상과 계시를 보는 법, 구상화<<를 통해 원하는 것을 이루는 법 등을 들 수 있겠으며, 종교 활동 중에 나타나는 - 특히 신사도운동에서 자주 나타나는 금가루 등의 - 신비적 초자연적 현상들도 오컬트적 마법의 결과이다. 늦은비/신사도운동의 오컬트적 기원에 대해서는 늦은 비의 유산<<에 잘 나와 있다. 다음은 성경에서 예를 든 오컬티스트들이다: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신명기 18:10-11)


3. 미스테리 바벨론은 에소테릭(비전) 종교이다.


오랜 세월 어둠에 숨어서 전승되어 온 오컬트 종교는 소수의 입문제자들을 통해 전승되는 [에소테릭한(비전적)] 특성을 가지며, 이를 위한 입문의식, 예배의식이 발달되었고, 다른 사람들이 알아볼 수 없도록 상징과 비유를 통해 전승되어 왔다. 신지학회의 말을 빌리면:

하나의 우주적 교회와, 모든 참 프리메이슨들의 거룩한 이너 롯지(Lodge)와, 모든 비전(에소테릭)단체의 이너써클과의 사이에는 어떤 구분도 없다.


세상에는 신의 계획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고도로 진화한 사람들이 늘 있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제자가 있었다. 세상에는 광범위한 원리가 언제나 알려져 있었고 제자들은 그 광범위한 원리를 이끌어낸 특별한 근본 법칙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었다. 이처럼 고도로 진화한 사람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신지학의 가르침은 그러한 인물들의 영감을 소수의 제자들을 통해서 서양세계에 공표한 것이다.

4. 미스테리 바벨론은 뉴에이지 통합종교이다.


어둠의 과학기술이었던 오컬트는 적그리스도의 도래를 준비하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에 관한 지식을 집대성하고 확산시키기 위하여" 설립된 신지학회는 악령들로부터 주어진 그들의 교리를 바탕으로 오컬트를 양성화하고 과학화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그 결과, 뉴에이지에서는 초자연적 현상들은 모두 과학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사건들이라고 세상을 설득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점성술은 물론, 심리학, 천체물리학과 양자역학, DNA과학의 모든 과학의 첨단 '가설'들이 동원되고 있다. 이제는 뉴에이저들에게는 모든 심령술은 과학이 되었으며, 학자들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점점 그렇게 믿어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적그리스도는 위대한 과학자의 모습으로도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 [참고: 과학과 기독교 신비주의<<]


앞서 말했지만, 종말의 적그리스도의 종교는 (택함받은 자들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함께 적그리스도를 숭배하는 세계단일종교이다. 이를 위해서, 현대의 통합종교는 고대종교/동양종교의 전통을 그 속에서 회복함으로써 미스테리 바벨론을 확립하려고 한다. 고대종교의 전통이란 원시부족종교의 샤머니즘, 힌두교와 불교의 요가/명상/선, 카톨릭과 정교의 관상기도와 아이콘숭배를 포함한다. 이런 노력은 기독교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는데, 더 알기 원하는 독자는 로저 오클랜드의 무너진 믿음<<을 읽어보기 바란다.


[기독교 속의 미스테리 바벨론 - 배교]


신비주의 기독교는 기독교 속으로 미혹으로 들어와 배교를 부추기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늦은 비와 신사도 운동으로 전개되고 있는 신비주의 성령운동, 그리고 관상기도와 요가, 미로, 그리고 아이콘 숭배 등의 고대 신비주의로 돌아가자는 이머징운동으로 대표되고 있다. (물론, 카톨릭과 널리 알려진 이단들의 운동은 제외하고서 말이다.) 이 내용은 방대하므로 관련 글들이 있는 링크만 제공하고 넘어가겠다.


영지주의 기독교

영지주의, 카발라, 뉴에이지의 공통점<<

초대 기독교 영지주의<<


카톨릭 신비주의

새 포도주와 바벨론 포도나무<<

가톨릭의 신비적 영성에 중독 된 한국교회<<

(카톨릭 신비주의자의 예: 사랑/신부 신비주의: 아빌라의 테레사<<   끌레르보의 베르나르<<)


크리스천 프리메이슨

현재 많은 배교적 기독교 리더들이 고위 프리메이슨에 속해 있는 것으로 안다. 신비주의 영성을 부르짖는 기독교 리더들 중 많은 경우 프리메이슨이라고 보아도 좋다고 할 지경이다. 아래 "프리메이슨과 뉴에이지 세계종교" 글을 읽어 보고, 궁금한 독자는 직접 인터넷에서 찾아 보기 바란다.


신비주의 은사갱신/신사도운동

패트리샤 킹<<
릭 조이너<<

하늘의 소리와 DNA 변형 - 로버트 하이들러 / 척 피어스(1)<<

하늘의 소리와 DNA 변형 - 로버트 하이들러 / 척 피어스(2)<<


뉴에이지

뉴에이지가 사탄적인 줄 몰랐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오리라<<

이머징운동 무너진 믿음<< 


이상으로 뉴에이지가 추구하는 적그리스도의 세계단일종교 미스테리 바벨론에 대해 간단히 살펴 보았다. 이 글을 처음 접하는 독자는 내용을 받아 들이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지난 블로그 글들에 덧붙여서 프리메이슨과 뉴에이지에 대해 심도있게 연구한 글을 하나를 여기에 번역 소개한다. 이 글은 오컬트 종교에 속했던 저자가 프리메이슨과 신지학회의 많은 책들을 분석해서 연구한 결과이다. 미스테리 바벨론과 프리메이슨과 뉴에이지의 연관을 이해하는데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출처: evergreen

더 보기 =   http://blog.daum.net/discern/63

cy님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심을 믿는다면 성경이 66권으로 정해져 온 것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는 책이므로(딤후 3:15) 이 중요한 책에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지 아니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을 정경에 포함시키실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스스로 훼손하시지도 않을 것이구요. 또 별의별 문서가 난립하여 진리를 흐리려는 악한 상황에서 정경을 확정해야할 필요도 있었습니다.

믿는 자는 정경 채택 과정에서도 하나님의 감동이 있어 오늘날까지 변개되지 않은 참 하나님의 말씀을 선물로 주심을 믿습니다. 따라서 정경에 포함되지 않았다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여기고 넘어가면 되지요. 정경만 다 읽어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그것도 다 모를거면서. 개신교에서 외경으로 취급하는 문서들을 천주교에서는 정경에 포함시켰습니다. 그 천주교에서도 도마복음은 외경으로 분류합니다. 개신교에서는 외경도 아닌 위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위경은 저자가 실제 저자와 다르다거나 해서 진위성이 의심되는 신학 문서를 말합니다. 한마디로 이 집을 가나 저 집을 가나 찬밥 신세죠. 확실히 짝퉁입니다.

성경은 통일성이 있는데 도마복음은 그것에 현저히 어긋납니다. 성경 구절과 비슷한 것이 많다는 것으로 권위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부적절합니다. 짝퉁은 명품 흉내를 내야 팔리죠. 그런데 정경 채택 이전에는 정경도 외경도 없었다고 어떻게든 도마복음을 비호하려 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올림픽 공식 종목이 정해지기 전에는 공식/비공식 종목이 없었으니 화투도 껴달라고 할까요?  정경 채택은 화투 채택문제보다 훨씬 엄중한 일인데 말이죠.

도마복음은 ‘다른 복음’입니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갈 1:8).

1. 도마와 도마복음

도마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된 것은 매우 적습니다. 단지 그가 12 사도 중에 한 명이라는 것과 그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기 전에는 의심하였다가 후에 직접 부활한 주님을 만나 후 확인하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12 사도 중에는 그 직업이 세리, 열혈당원, 어부 등이 있었는데, 도마는 전직이 무엇이었는지 밝혀지지 않고 그저 도마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마의 헬라식 이름은 아람어 테오마(쌍둥이 중에서 한 사람)에서 음역한 것으로, 헬라어로서는 디뒤모스 (쌍둥이 중에서 한 사람)로 그가 쌍둥이 형제 중에 한 명이었다는 것을 짐작케 합니다. 도마가 회의가(의심을 품은 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어떤 역본에서 볼 수 있듯이 ‘디두모’라는 이름 대신에 ‘바뿌스코스: 두 마음 있는’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확신과 의심의 두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쌍둥이 중에 하나인 것입니다. 도마는 전승에 의하면, 페루시아 또는 인도 등 동양권에서 전도하다가 그 곳에서 죽었다고 전해집니다.  

도마복음은 지난 1945년 12월 이집트에서 농부가 땅을 파던 중 항아리에 담겨진 채 발견되었는데 서두에 도마가 기록한 예수님의 어록이라고 주장하지만, 그것을 실제로 도마가 기록하였다고 믿는 학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또한 이 복음서는 발견 후 많은 학자들에 의해 원초적 복음서로 믿어졌으나 지금은 2차 문헌으로 취급 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도마복음을 들먹이면서 공관복음의 예수상을 뒤집어 엎으려는 시도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이 도마복음은 위경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이 문서는 영지주의 기독교 문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어 원문을 콥트어로 번역한 것으로 보이는 완전한 콥트어판본이 1945년 나지함마디에서 발견되었으며 이후, 1898년 이집트에서 발견된 그리스어 문서 중 일부가 도마 복음서인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도마 복음서는 4대 복음서와는 달리 예수의 삶에 대한 내용을 담지 않고 있으며, 예수의 가르침만을 다루고 있는데, 소위 겨자씨의 비유 등의 일부 내용이 복음서에도 나옵니다. 도마 복음서는 비슷한 이름의 문서인 도마행전(The Acts of Thomas), 도마의 유아기 복음(The Infancy gospel of Thomas)과는 다른 것입니다. 도마복음은 1945년 나지 함마디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 문서는 이집트의 고문서성의 소유였습니다.

1956년에 사진 촬영판이 출판되었고, 1959년부터 학자들이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1975년에 알려졌고 이후 많은 번역이 존재합니다. 도마 복음서의 콥트어 판이 발견된 이후에, 학자들은 이집트의 옥시링크스에서 1898년 발견된 그리스어 문서들 중에 도마 복음서의 그리스어 판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흔히 후자를 구별하여 그리스어 도마 복음서라고 부르는데 200년 경에 필사되었다고 추정되며, 콥트어 판은 340년 경의 문서로 추정됩니다.

많은 학자들은 콥트어 판이 그리스어 판의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구절은 디디모스 유다 토마/도마가 저자라고 되어 있지만 여러가지 이유에 의해 도마가 직접 쓰기보다는 후대 사람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로마에서 그랬듯 도마는 시리아 지역의 믿음의 대표격이었습니다. 따라서 도마 복음은 시리아에서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도마 복음서의 저작 시기는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어록 복음서의 특성상 4복음서보다 먼저 쓰여졌다고 보는  이들도 있고, 영지주의적인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영지주의가 유행했던 1세기 후반 이후의 저작, 또는 후대에 편집된 것이라고도 볼 수도 있습니다. 도마복음서의 기록 연대는 대체적으로 서기 150-200년 경으로 추정합니다. 도마복음서는 그 내용이 다른 복음서와는 판이하게 달라서 외경 또는 위경으로 불리며 배척받아왔습니다.

따라서 정경에 포함되지 못하고 이단 문서로 정죄되고 가짜 문서로 여겨졌습니다. 이 문서는 초대 기독교에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레니우스가 《이단에 반대하여》(=《이단반박》)에서 언급한 비슷한 책이 있으나 도마 복음서인지 다른 도마의 이름이 들어간 문서인지는 불분명합니다.

2. 도마복음과 영지주의

영지(靈知)란 신비스러운 지식, 영적인 깨달음, 영적인 지식, 신비한 지식, 신비한 영역에 대한 지식 따위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는 신비한 지식을 소유한 자들을 뜻합니다.

이러한 영지를 소유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그 영지를 통해 극상의 존재인 가장 거룩하고 존귀한 하나님과 연합하여 완전한 상태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지주의에서는 그것을 구원으로 봅니다. 즉, 사람은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얻은 지식을 통하여 물질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의 지식이란 그노시스 혹은 ‘보다 높은 지식’으로서 초자연적 지식을 의미했으며 이것은 소수 영적인 지식인에게만 국한된다고 보았으므로 구원이 극소수의 특정인에게만 국한된 것으로 보아 기독교를 편협한 종교로 만들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개신교란에도 자기들만 영적 깨달음을 얻었다고 착각하는 사람( 신사도 예언가)들이 있습니다. 실은 추상적이고 객관적인 지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단 사설을 고집하고 있는데 말이죠.)

그들에게 구원이란 바로 예수와 같은 빛의 사자에 의해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라는 신념 체계로 알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교육이나 경험적 관찰이 아닌 신적 계시에 의해 얻어지는 비밀스런 지식, 즉 영지를 중시해 내면의 준비 과정과 자아 성찰, 변화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들은 또 육체는 악하다는 신념에 따라 예수의 인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는 예수가 인간의 탈을 썼을 뿐,인간이 아니라는 가현설을 주장하였습니다. 불완전한 육체의 세계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깨달은 자만이 이를 수 있는 그노시스적 앎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예수가 완전한 존재의 화신으로 영지를 이 세상에 전하기 위해 왔다고 주장합니다.

영지주의는 여러 가지 우주론적 신화, 희랍과 동양의 이교적 철학 사상, 기독교의 진리 등이 혼합된 종교를 시도하게 되었는데. 기독교와 공통된 여러 가지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으나, 실지로는 심히 왜곡되어 있었으며, 대체로 기독교적인 것보다는 이교적 사상이 더 우세했습니다. 영지주의는 유대적 요소, 헬라적 요소, 이런 여러 근원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모조리 이용해서 기독교적 요소를 가미하여 하나의 우주적인 종교가 되게 하려는 일련의 시도를 하였으며, 기독교를 당시의 종교 풍토에 적응시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고로 영지주의는 짬뽕주의이자 이단/사이비 사상입니다.

도마복음을 근거로 예수님이 인도에서 배운 불교를 전했다는 헛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문서에서 짬뽕주의가 강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살아 계신 예수가 말씀하신 비밀의 구절들’, ‘나의 비밀을 합당한 자들에게만 보였다’ 등의 구절들과 불교 냄새가 나는 구절들이 많은데 지면이 허락하는 한에서 추후 살펴보겠습니다.

정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일관성이 있어서 당연히 짬뽕주의가 낄 수 없습니다.  

3. 도마복음과 성경/기독교 비교

이번에는 도마복음으로 기독교의 새 지평을 열고자 하는 이들의 시도가 매우 부적절한 것임을 어느 비교종교학자이자 기독교인이라는 교수의 글을 인용하여 살펴보겠습니다.

그 분도 도마복음에 영지주의적인 내용이 많다는 것을 말씀하셨는데...도마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은 공관복음에서처럼 ‘나를 따르라, 믿으라’고 하는 분이 아닙니다. ‘깨쳐라, 깨달아라, 하나님(천국)은 너의 가슴에 있다는 것을 알라’는 분이지요.

도마복음 전체 114절가운데 90회 이상 깨침(깨달음)에 대한 언급이 나올 정도입니다. 사실 이런 가르침은 불교의 가르침과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돕니다.]

-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2:8)

불교는 초등학문 수준은 면할 것이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가르침은 아닙니다. 대오각성하여 부처가 된다거나 우화등선의 신선놀음을 하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때로부터 말씀하셨고 아들을 보내사 아버지께 들은 말씀을 전하게 하셨고(요 8:28), 아들의 가르침을 제자와 사도들이 전한 것으로 신약 성경을 이루었으므로 성경은 구약부터 신약까지 일관된 주제와 사상을 전해야 마땅합니다. 실제로 그러합니다.

기독교는 깨달음의 종교가 아니라 믿음의 종교이며 자기의 내적 요소를 탐구하거나 계발하는 종교가 아니라 자기 안의 그리스도의 형상을 주목하고 회복해가는 종교입니다. 그 과정에서 성령님이 깨달음을 주시는 것이며 깨달음의 목적도 역시 그리스도화 되는 것에 있습니다.  

교수는 도마복음이 하나님과 사람의 차별성을 강조한 공관복음과는 달리, 하나님과 사람의 동일성을 강조한 밀의적(密意的) 복음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현교적(엑소테릭·exoteric)인 부분과 밀교적(에소테릭·esoteric)인 부분으로 나뉠 수 있는데, 도마복음은 그 가운데 밀의적, 심원한 예수님의 가르침의 부분이라고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마복음의 출현은 표피적이고 대중적인 현교적 가르침에만 치우쳐 있었던 기독교에 밀의적 부분도 있었음을 보여준 획기적인 사건이며, 발견이라는 것이다. 결국 오 교수는 “도마복음의 발견으로 기독교는 표피적이고 물질적이고 기복적이며 신은 나와

다른 존재라는 낮은 단계의 신앙에서 보다 높은 단계의 신앙으로 발전할 수 있는 일대 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고 도마복음의 출현에 의미를 부여했다.

교수는 불교에도 현교와 밀교가 있고, 힌두에도 우파니사드와 같은 에소테릭(밀의적)한 가르침이 있다는 점을 예로 들면서, “기독교에도 밀의적 레벨이 본래 있었지만, 불행하게도 1600년간 땅속에 묻혀 있었던 것이며, 기독교가 그동안 현교적 종교로 만 내려오며 기독교내에서 신비주의적 전통이 인정받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 예수의 가르침에 밀교적/밀의적 가르침이 있다?

기독교의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목표는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이며 이는 복음을 전하는 것으로 성취됩니다.

흔히 ‘미개인’이라 부르는,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자연인'에게도 그들의 언어로 “예수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이 말 한마디를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복음은 기쁜 소식인 동시에 대중적이고 쉬운 소식이어야 합니다.

복음이 들어가야 생명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어려워서는 안되는 거죠. 복음이 부처님 선문답처럼 알쏭달쏭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신비적이고 밀의적인 깨달음을 얻어야만 구원을 받는다하면 값없이 믿음으로 얻는 십자가의 은혜를 대적하는 생각입니다.

영지주의 문서답게 도마복음은 4복음서 중에서 비유 말씀을 많이 기록했습니다. 형태가 좀 다른 것도 있구요.

거기에 밀의적인 가르침이 있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만 당시의 비유말씀은 제자들마저도 영적으로 무지했고 성령님이 내주하시기 전이므로 그들이 깨닫기 힘들었던 것일 뿐입니다. 박식한 성경학자마저도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에 어머니 뱃속으로 어떻게 다시 들어갔다 나올수 있느냐고 물었을 정도입니다. 지금은 비유말씀을 자세히 해설할 수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에 신비한 것이 있다하여 밀교적 가르침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냥 해석하기가 어렵거나 아직 비밀로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현교적 가르침은 표피적이고 대중적이며 따라서 수준이 낮다?

- 수준 높으신 분들은 밀교적 가르침을 따라 사세요. 신비주의적인 가르침대로 수행하고 득도하고 공중 부양도 했다가 유체이탈도 했다가...근데 그것이 구원을 해주려나?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고전 3:19-20)

도마복음은 하나님과 사람의 동일성을 강조한 밀의적 복음이다? 도마복음의 발견으로 기독교는 표피적이고 물질적이고 기복적이며 신은 나와 다른 존재라는 낮은 단계의 신앙에서 보다 높은 단계의 신앙으로 발전할 수 있는 일대 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 확실히 도마복음은 그런 구절들이 있습니다. 불교 냄새가 강합니다.

[예수가 말씀 하셨다. " 누구든 내 입으로 부터 마시는 자는 나와 같이 되리니 내가 그가 되겠고 그에게 비밀을 보일 것이다-108절]

마치 깨달음을 얻으면 내가 곧 부처가 된다라는 불교적 가르침과 비슷하죠?
기독교를 ‘표피적이고 물질적이고 기복적이며 신은 나와 다른 존재라는 낮은 단계의 신앙’으로 표현한 것에서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표피적이고 물질적이지 않고 기복적이며 신과 사람의 차별이 수준 낮다라고 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 기독교가 표피적이고 물질적이다?

- 이것은 현재 기독교인이 땅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모습을 두고 한 말 같군요. 그건 기독교인이 잘못 하고 있는 것이지 기독교가 원래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본래 성경의 가르침은 이 땅에서 나그네 삶을 살다가 하늘의 도성을 바라보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세상 것을 좋아하지 말고 미련도 갖지 말고 흰 옷을 입으라고 가르칩니다.  

기독교는 기복적이다?

-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방 종교의 수준 낮은 기복신앙처럼 육체의 소욕과 땅의 보물을 구하는데 급급하기에 똑같아 보일 뿐입니다. 본래 성경대로 가는 기독교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고 그리하면 모든 필요을 채워주신다고 합니다(마 6:33). 또 평안하게 살고자 하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 같은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딤전 2:1-2).

기복에 있어서도 하늘의 신령한 복을 구하고(엡 1:3)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며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고 합니다(마 6:33). 한마디로 하늘의 복을 구하면 땅의 복은 하나님이 알아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창조자 아버지로서(창 1:28), 자녀에게 복을 주시고 지키시기를 원하시며(민 6:24) 모든 생명이 내일 해도 볼 수 있도록 만물을 붙드시는 복을 주십니다(히 1:3).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아버지께 매일 복을 구하여야 합니다. 천박한 기복신앙처럼 땅의 복만을 구하면 문제가 있지만요. 어린이는 사탕을 구하지만 장성하면 유업을 구합니다.

신은 나와 다른 존재라는 낮은 단계의 신앙? 하나님과 사람의 동일성을 강조한 밀의적(密意的) 복음? - 불교에서는 내가 부처가 된다고 하는데 그걸 수준 높은 것이라고 칩시다. 기독교에서는 내가 하나님이 된다고 하면 영생할 정도로 욕을 많이 먹겠죠.

성경에서 하나님과 동일한 존재로 소개되는 분은 성자와 성령님입니다. 성자는 인간이기도 하시지만 동시에 하나님이신 독특한 분이시니까 넘어 가구요. 인간이 하나님과 동일하게 된다는 성경 구절은 없습니다. 요10:34절은 신의 권한을 대행하는 것으로 여겨진

재판관들과(시편)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계시의 말씀을 전달받아 그의 뜻을 대표하여 전하던 선지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을 ‘신’이라 불러주신다 하여 피조물이 창조주와 동등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과 사람의 ‘구분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시오 교회는 그의 몸이다라는 구절(골 1:18)을 예로 살펴봅시다.

머리에는 두뇌와 눈, 코, 귀, 입이 있습니다. 두뇌는 모든 정보를 수집 정리하고 판단하여 모든 기관에 명령을 내립니다. 명령 하달시 즉각적인 (반응)순종을 보여야 건강한 몸입니다. 병들었거나 묶여있거나 하는 것은 비정상적(불순종)인 경우입니다. 눈은 볼 것을 보고 보지 못할 것을 보지 않고, 코는 맡아야 할 것을 맡고 맡지 말아야 할 것을 맡지 않고, 귀는 들어야 할 것을 듣고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듣지 않으며, 입은 말해야 할 것을 말하고 말하지 말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생각하고 명령하고 듣고 보고 말하고 냄새 맡는 모든 기관은 머리에 있습니다. 그 머리와 몸을 구분하여 말씀하시는 것은 사람이 스스로 머리의 역할을 탐하지 말고 온전히 복종하라는 뜻이자 하나님과 사람의 구분됨을 나타냅니다.

사람과 신의 관계를 구분 혹은 동일로 여기는 것은 수준의 고하가 아닌 관점의 차이로 이해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구분을 말하며 동일은 이단 사상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구분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고 동일과는 다른 ‘연합’이라는 사상이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서로 사랑으로 맺어진 연합관계에 있는 것처럼 선택받은 사람들끼리 연합하고 그들이 또한 하나님과의 연합을 이루게 됩니다. 연합은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길게 얘기하면 피곤하니 넘어갑시다.  

[도마복음은 기독교가 불교 등 깨달음의 종교와 소통할 수 있는 통로이자 맹목적인 신앙만을 강조하는 현대 기독교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교수의 판단이다.] No!

[교수는 “원래부터 기독교에는 신비주의적 전통이 있었고, 이는 현대 기독교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즉 신과 나를 차별적인 대상으로 보는 낮은 단계의 신앙을 극복하고 신과 나의 동질적 전통을 되찾을 수 있는 키워드가 바로 도마복음 속에 내재해 있다는 것이다.] No!

[20세기 가톨릭 최고의 신학자 칼 라너도 ‘21세기 그리스도교는 신비주의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것’이라고 했다”면서 “신비주의의 민주화, 신비주의의 대중화·일상화·생활화가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No!

[어느 종교에서든 깊이 들어가면 종교의 이름이 점차 의미가 없어지는 단계로 들어가게 된다] No!

[교수는 한국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화합하지 못하고 갈등을 빚는 것은 ‘나를 믿고 따르라’는 가르침을 배타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여기서의 ‘나’는 초월된 나, 불교의 불성에 비교되는 나 또는 천상천하유아독존에서의 나, 동학의 시천주나 인내천 사상에서의 나를 의미한다는 것을 한국 기독교가 받아들일 때”라고 강조했다.] No!

[분명한 것은 믿음도 자라나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맞긴 한데

- 이 주장들에서 묻어나는 것은 짬뽕주의입니다. 본래의 기독교에서 타종교, 이방 사상,

이방 문화와 짬뽕시켜 이방인들이 좋아할만한 종교로 가자하는 말들입니다. 말을 빙빙 돌려봐야 결국 짬뽕이죠. 세상 모두가 짬뽕을 외치고 강압해도 홀로 간짜장 곱빼기를 목숨 걸고 외쳐야 하는 것이 참된 기독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언제 짬뽕을 주문하셨으며 성경 어디에 짬뽕도 좋다 했습니까?기본적인 독서능력만 있어도 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순결과 구별됨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성구가 요 14: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만이 모든 것의 기준이요 근본되시고(길) 예수님만이 참되고 진실한 가치이시며(진리) 예수님만이 모든 육적/영적 사망으로부터 건지실 생명이 되십니다(일위일체 얘기 아님;;).

‘오직 예수’란 그런 것입니다. 반드시 사수해야 할 단 하나의 가치이자 모든 것입니다.
이것은 배타성이 아니라 유일성(唯一性)입니다. 참된 기독교는 성경을 근거로 하여 유일성을 가지기에 배타성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종교와 철학과 학문, 사상, 문화 어떤 것이든 멀리하고 분별하면서 오직 하늘에서 오는 지혜로 거룩하게 구별되고 순결한 처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고로 짬뽕을 주장하는 누구나 거짓 선생이 됩니다. 미처 분별을 하지 못하여 짬뽕이 된 것과 고의로 짬뽕을 시도하는 것은 아주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세상과 등지고 살면서 도 닦는 종교이냐? 아니죠. 세상 가운데 살면서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빛과 소금처럼 사망에 잠긴 세상에 생명을 공급하는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타종교인과의 화합’은 가하되 ‘타종교와의 화합’은 불가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세상이란 정복의 대상일 뿐(창 1:28, 마 10:34) 친구가 되는 순간 간음하는 것입니다(약 4:4).

처음부터 들은 것을 지키고(요일 2:24) 때가 묻지 않도록 늘 두루마기를 빠는 자여야 합니다(계22:14).

그리스도인은 ‘자유하는 종’입니다. 종으로서 하나님과 위의 권세에 복종하고 순종하며(롬 13:1) 자유하는 자로서 육체의 소욕을 따르지 않고(갈 5:13) 의의 종이 되어(롬 6:19) 내가 사는 것이 아닌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도록 그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갈 2:20).

믿음은 성장해야 하나 그것은 세상과의 타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구별되고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tv, 인터넷, 영화, 스포츠, 취미, 일, 사역, 모든 것에서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어 보고, 듣고, 맡고, 말하고, 생각하는 모든 일을 머리의 뜻대로 복종하고 순종하는 것이 가장 높은 수준의 기독교신앙입니다. 자유하는 종 말입니다.

4. 도마복음에 나타난 짝퉁 구절

글이 너무 길어져서 짧게...

영지주의

- 이 구절들을 온전히 이해하는 자들은 죽음을 맛보지 않으리라 너희 중에 한 사람이라도 이해 하는 자가 있기를 바라노라.-

하나님은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며 믿을 때에 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느 눈도 본 적이 없는, 어느 귀도 들은 적이 없는, 어느 손도 만져 본 적이 없는, 인간의 가슴에서 일어나지 않은 것을 주겠노라

-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수없이 말씀하셨고 예수님은 그 말씀들을 많이 인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말씀이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말씀이시니까요.

모든 것을 아는 자, 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모르는 자, 그는 전혀 무지한 자이니라

- 기독교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종교입니다. 자기 자신은 십자가에 못 박는 종교...

선문답?

차라리 천국은 너희 안에 있고 너희의 밖에 있느니라. 그 들은 빈 손으로 세상에 왔다가 빈 손으로 돌아 가고자 노력 하느니라- 공수래 공수거-

마지막 날을 알고자 함은 너희가 시작 (beginning)을 앎이뇨?. 너희도 알다시피, 끝은 시작이 있는 곳에 있느니라.

반성경적 구절

세 명의 신이 있으면 그들은 신성하다- 삼신론

지나 가는 자 (방관자 또는 나그네?)가 되거라. - 장난?

존재 하기 전에 존재 하게 된 자를 축하 하나니- 사람이 창조전에 존재했다고라고라?

네가 금식 한다면 너희 스스로에게 죄를 불러 올 것이며, 네가 기도 한다면 저주 받을 것이요,

적선을 베풀면 너의 영혼을 손상 시킬 것이다. - 장난이 지나침

네가 네 자신을 알때 너는 천국을 알게 되고 네가 살아 계신 아버지의 자녀임을 이해 할 것이다.

- 그리스도를 믿을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됨.

보라 내가 그녀(마리아)를 남성으로 만들어 인도 하겠다. 그래서 너희 남성들을 닮은 살아 있는 영 (spirit)이 될 수 있게 하리니, 모든 여성 중 그녀 자신을 남성으로 변화 시키는 여성들도 천국에 들어 가리라
- 하나님은 성전환 수술 안 시켜주심.

5. 한줄 결론

‘도마복음’이란 말은 과하고, 짝퉁 ‘도마서’가 합당합니다.

이웃 게시판에서
후계 문제로 형제간 갈등이 일고 있는 통일교의 문선명 총재가 이를 정리하기 위해 자신의 뜻을 표명하는 문건을 작성하는 현장이 고스란히 담긴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랐다.


▲vimeo.com 캡쳐

침실에서 아내 한학자, 7남 문형진과 함께 작성

통일교는 문선명 총재가 수년전 7남 문형진을 통일교 후계자로 세웠으나, 3남 문현진의 반발로 형제간 갈등이 지속됐다. 그러자 문 총재는 지난 6월 2일 문형진을 자신의 후계자로 다시 한 번 선언하는 문건을 작성 통일교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그런데 최근 문 총재가 이 문건을 작성하는 전 과정이 담긴 동영상이 인터넷에 올라, 조금씩 유포되고 있다. 이 동영상은 문건 작성 6일 후인 6월 8일 ‘hope chunilkuk’이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에 의해 ‘vimeo’라는 동영상 사이트(http://www.vimeo.com/12512798
)에 올려졌다.

무자막 원본을 비롯해 영어, 스페인어, 한국어, 일본어, 포르투칼어 자막이 입혀진 것 등 모두 6개가 올라 있는 15분 53초짜리의 이 동영상은 문 총재의 집 침실에서 촬영됐다. 문건 작성에는 문 총재의 부인 한학자와 7남 문형진이 함께 자리했다.

동영상에 의하면 이번 문건의 작성에는 부인 한학자가 주도적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한학자는 문 총재가 문건을 작성하는 과정에 문안을 일일이 일러 줄 뿐 아니라, 첫 번 문건에서 자신이 요구하는 문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두 번째 문건을 작성케 해 끝내 뜻을 이룬다.

이번 동영상이 어떤 이유에서, 누구에 의해 촬영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동영상을 보면 몰래 촬영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5개국어 자막이 입힌 동영상이 올라옴은 물론 각 동영상마다 대화 내용을 녹취한 전문을 실어 놓은 것을 볼 때, 전 세계 통일교 교인들에게 이를 알리려는 의도로 촬영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자아내고 있다.

다음은 동영상과 동영상에 올라 있는 한글 녹취본 전문이다.

부: 됐어, 내 이름 써야돼?
모: 네, 아버지 그냥 문선명이라고.. (여기 끝에 쓰세요, 서명할 장소 가리키며)
(잠시 음성 지워짐)
부: 참위기대, 참자녀, 참부모, 어, 만세대의, 어떤것이든 이 세상 하늘 땅위에, 만세대의 백성도 한 핏줄의, 국민이요, 한 천국의 자녀이다. 다 들어가는 것이여.
모: 네.
부: 천주평화연합, 연합, 연합은 필요없어, 천주평화통일 본부도, 절대 유일의 본부다. 그 대신자, 상속자는 문형진이다. 그 외의 사람은 이단자이며 폭파자이다.
모: 폭팍의 자이다.
부: 爆 (폭) 글씨로 해서 없애버리는 자이다. 그 이상의 내용은 참부모님의 선포문이다. 문선명, 印 (인)!
모: 날짜! 날짜쓰셔야지요.
부: 응?
모: 날짜!
부: 날짜, 뭐?
모: 2010으로 나간걸로 해야지, 2010.
부: 이천?
모: 2010이지요, 십, 이천십, 아니, 이천년이 아니에요, 이천십년. 십년, 十(십)자가 빠졌지요. 옆으로 쓰셨으면 좋을 걸 그랬네. (날짜쓸 공간이 모자름)
부: 몇월이야?
모: 2010년, 저기, 천력인데, 천력 4월 23일 (옆에서 형진님 같이 말함), 4하고 23 으로 하면 (쓰면) 좋겠는데요, 4월 23…23일…4월 23일…
부: 23일이야, 오늘이?
형진님, 어머님, 연아님: 예, 천력으로… 4월 23일 입니다.
모: 이십, 이십, 아버지, 이십 빠졌어.
형: 십자만 쓰시면..
모: 어, 거기다 점 찍어요. 예, 삼일.
부: 이럼 됐어. 크게 할 필요 없다고.
모: 이거 다 내도 되겠어요? (내용 모두 내 보내도 되겠어요?)
형: 말씀이 좀 쎄니까..
모: 요거는 조금 너무 강하니까..
부: 뭘?
모: 이거 다 인터넷에 올려요?
부: 올리지.
모: 그런데, 세계선교본부회장 말만 들으라 (형진님을 가리키며) 하는 것은 안하시겠어요? 그게 아버지의 말씀아니에요? 모든 선교국은 모든, 저 모든 통일 백성들은 세계선교본부의 공문 지시사항만 인정해라 하는 거기다 사인해 주시는 거, 싫으세요? (그렇게해서) 인터넷에 올리면요, 아무 하자가 없어요. 현진이만, 식구들이 알면, 현진이말 안들어요. 이거(전판 전체내용 쓰신것)는 보관할께요.
부: 보관하긴 누가 보관해. 그렇게 하는거야 전부다. 여기 (전판)에 다 들어가 있어.
모: 네, 여기 다 들어가 있는데요…
부: 여기 여기 여기, (더 이상) 말 할 여지가 없어.만왕의 왕, 참 한분 하나님, 참부모님도 한분 부모, 만세대에, 하늘과 땅에, 어떤 만나라에, 세대에, 백성도 한분의 혈통의 국민이요, 한 천국의 자녀이다. 핏줄이 같애. 에, 천주평화통일연합본부는 , 본부도, 절대유일본부다. 이 본부가 둘일 수 없어. 천지평화통일, 연합이라는 말 없다고..통일 통일이라고 해요, 통일본부도 절대 유일의 본부이다. 그 대신자, 상속자는 문형진이다. 그외사람은 이단자이며 폭파자이다 (전문을 보며 다시 읽으심), 그 내용은, 이 이상 내용은 참부모님의 선포문이다. 문선명! 하고, 인 치고, 2010년 4월23일.
모: (실망스런 눈빛으로) 네………….
부: 여기 딴거 (말고), 여기다가…
모: 여기다 하시겠어요? 세계선교본부를 좀 세워주시라구..
부: 응?
모: 세계선교본부를 아버지가 세워주시라구.
부: 이게, 유일의 본부야, 절대본부( 전판을 가르치며).
모: 예, 근데, 그걸 모르니까..
부: 여기, 대신자, 상속자는 문형진이다. 그 외 사람은 이단자이며 폭파자이다.그 내용은, 이상 내용은 참부모님의 선포문이다. 그이상으로 어떻게 하란거여.
모: 네, 그럼 알겠어요. ....(침묵)……에휴 (한숨)…………(침묵)….. 에휴………(침묵) 그러니, 세계선교본부에서 나가는 공문만, 백성들은 믿어라.
부: 왜 자꾸 그래? 응?
모: 아니, 설명이 그렇게 되는 거죠. 그 한마디가 중요한 것 같아서요. 충분히 알겠는데요……(침묵)…. 선교본부를 인정을 안하니까, 그 이름을 좀 살려주시라는거지요.
부: 아, 인정이고 뭐야, 형진이 본부에다, 여기 다 문형진인데 (전문 가리키며), 허허.. (기가막히다는듯)
모: 예, 아니 근데, 지금 현실이 그래서…아이구 참..
부: 뭐라구? 엄마 이름으로, 엄마가 해 (써).
모: 아니죠, 제가쓰면, 아버지가 한가닥으로 나가야죠, 언제나. 그러니까, 아버지 이름으로 나가야죠.
부: 그래서, 그래 뭐이라고 쓰라고?
모: 세계선교본부의 공문만 믿어라, 요 말이에요, 딴거 아니고. 그러니까 이게, 세계선교본부를 축소해서 세계선교본부에서 나가는 공문만 유효하다. 문선명 (사인), 이러시라고요.
(침묵)……
모: 형진이 이름 세워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버지 이름으로, 세계선교본부에서 나가는 공문만, 백성들은 인정해라, 그거에요. 그렇게 간단하게만 써 주세요, 한마디.
이거, 이거 (전문) 충분히 교육하고, 이걸로 식구들 교육을 해야돼 (형진님 에게 말씀하심)
교육하고, 이것은 알겠는데요, 인터넷에 띄우는 것은 고렇게 간단하게 한줄만 써 주세요.
부: 여기 여기 뒤에다가.
모: 네 그러세요, 여기 뒤에다가 써 주세요.
부: 뭐라구?
모: 세계선교본부.
부: 무슨 선교야?
모: 통일교 선전이요, 통일교 선전.
부: 천주통일교, 천주통일교..
모: 세계 선교본부..
부: 천주통일교 본부의..
모: 근데, 세계본부라고 괄호치시고 하셔야 하는데, 그게 왜 그런가 하면은, 지금 현재 이름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형: 지금 법적으로 그렇게 되어..
모: 현재 법인 받은 이름을 무시하거든요, 현진이가.
형: 네.
모: 그러니까, 고거를 밝혀주시라는 얘기에요.
부: 뭐야, 그게, 엄마가 써, 엄마가 쓰라고.
모: 세계선교본부에서..
부: 무슨 세계 선교본부야?
모: 통일교.
부: 천주연합..
모: 천주연합으로 하시고 싶으시면 천주연합하고 괄호하고 통일교 세계선교본부에서 나가는 공문만 인정해라, 그거에요. 아버지가 쓰시고자 하는 명칭은 알겠는데요, 지금 현재 법으로 통과된 것이..
부: 그놈의 자식은 내 그 거 믿으라고, 내가 여기 현진이 이름 쓰지 않는 거야.
모: 알아요. 충분히 알아요.
부: 그 누구의 이름도 쓰고 싶지 않아.
모: 알아요. 그러니까 어떤 무지한 식구들은 이거 선교본부에서 나가는 공문은 가짜다
이러면 안 되니까, 그렇치? 명칭은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 세계본부니? (형진님 에게 물으심)
형: 네, 통일교 세계선교본부만 하셔도 충분합니다.
부: 특보사항..
모: 네, 여기다 한 줄로 싹 써주세요.
형: 세계선교본부로, 예! (아버님 써나가심)
부: (천주통일 까지 한문으로 쓰심)
형: 통일교!
모: 천주통일 세계본부요.
형: 통일교 세계본부요, 예.
모: 천주통일 세계본부, 괄호하고 통일교 선교본부. 통일교..
형: 통일교!
부: 천주통일..
형: 통일교!
모: 천주통일 괄호하고 통일교를 넣어주셨으면 좋겠어요.
부: 천주통일 연합..연합.
모: 통일 연합 쓰시겠어요?
형: 그럼 UPF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러니, 통일교 하고 쓰시면은..
모: 괄호하고 통일교 넣어주시면 좋겠는데.
형: 안 그러면, UPF라고 생각합니다.
모: 하도 아버지가 이름을 하신 게 많아가지구요 그걸 구분해 주시라는 거예요.
부: 천주통일교..
모, 형: 세계 선교본부.
모: 괄호하고 세계선교본부하시던지..
모: (아버님 둘째라인 쓰시고 있음) 세계 선교본부.
부: 통일교 선교본부? (네, 네. 형진님, 어머님)
모: 통일교 세계본부.
형: 선교본부요.
모: 세계선교본부에서 나가는 공문만 유효하다. 세계선교본부의… 공문만…. 참부모는 인정한다 이러세요. 지시사항이거든요, 본부의 공문만 참부모는 인정한다 ,그러시든지, 아버님 함자 쓰시고 인정한다..공문만…
부: (마지막 파트 계속 쓰고 계심)
모: 참부모님 이라고 그럴래요? 아버님 이름 쓰실레요? 아버지가 인정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아버지 이름만 쓰셔도 되요…(한숨)

이병왕 기자 ⓒ뉴스미션

출처: 아멘넷

21. 늦은 비와 백투구약 - 메시아닉 운동과 한 새 사람 (One New Man)


신사도운동가들의 집회장면을 보면 이상하게도 구약의 상징물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 이유는 아래 내용을 읽어 보시면 알게 됩니다만..

(이런 신사도 집회의 동영상도 맨 아래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신사도들의 구약으로의 회귀 움직임은 유대뿌리운동(Hebrew Roots Movement)의 일환으로서,

구약, 즉 유대교로 되돌아가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현재 일어나고 있는 백투예루살렘 운동과 무관하지 않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백투예루살렘 운동의 핵심을 들여다 보면,

이것은 신사도 피터 와그너의 "전략적 영적전투"와 "동일시 기도"(Identification Prayer), 땅밟기 등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위한 중보기도가 차면, 그 때에야 비로소 이스라엘의 회복과 전체교회의 회복과 주의 재림이 완성된다는 주장입니다.

즉, "이스라엘을 포함한 교회의 회복과 완성"이 종말의 필수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참고로, 전통적인 환난전 휴거설에서는, 교회가 들림을 당한 후에, 환난기 중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회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회복운동과 관련해서, 늦은비/신사도 운동의 핵심 교리를 다시 적어 봅니다.

종말의 성령의 늦은 비 기름부음으로 인해,

종말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리더십 아래,

기존 교회와는 전혀 다른 (그리스도에까지 이르는) 모든 능력과 권세의 완전한 교회가 태어나며,

이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의 교회)"이 이 땅에서 모든 악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운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물리적 재림이 아니라, 새 교회 안으로의 그리스도의 성령으로의 임하심을 뜻하며 (<== 전부의 주장은 아님)

이 땅에서 불멸을 이루는 이런 교회의 성도들(새로운 품종의 크리스천들)을 집합적으로 아래와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Menifest Sons of God)" "집단적 그리스도(Corporate Christ)", "한 새 사람", "요엘의 군대(Joel's Army)", "남자아이(Man-child)", "신인(God-Man)", "집단적 아이Corporate Child)"...

늦은 비 입장에서 보면, 백투예루살렘운동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회복뿐 아니라 교회 전체의 회복과 연관되어 있으며,

늦은 비 운동의 "회복된 교회" 속에서의 "하나님의 아들들", "한 새 사람"의 나타남과 이어져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유대뿌리(회복)운동 중의 중요한 하나가 메시아닉 쥬이시 (Messianic Jewish) 운동으로, 메시아닉이란 예수를 구약의 메시야로 받아들이는 유대인들을 말하는데, 이는 얼핏 보면 유대인들이 기독교로 돌아오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이것은 유대교 운동의 일부로서 벌어지고 있음에 유의해야겠습니다.


메시아닉 쥬 운동의 일환이며, 메시아닉 쥬이시 회중연합, 쥬스 포 지저스(Jews for Jesus) 등과 관계하는 하쉬베누(Hashivenu)는 그들의 핵심 원칙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 메시아닉 유대교는 유대교이며, 기독교 공동체에 있는 것을 겉모습만 바꾼 "유대 스타일" 변형 버전이 아니다.
2. 하나님의 이스라엘과의 특별한 관계는, 하나님의 유대인들과의 독특한 언약인 토라에 나와 있다.
3. 예수아는 토라의 완전함(fullness)이다.
4. 유대인들은 "우리"이지 "그들"이 아니다.
5. 랍비의 전통의 부유함은 유대인으로서의 우리의 유산의 값진 부분이다.

이런 메시아닉 운동은 늦은비/신사도운동과도 연관해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 예로, 하쉬베누 사이트에 링크된 미국 메시아닉 쥬이시 연합이 제공한 메시아'99 컨퍼런스에서 캔자스시티선지자 출신 신사도 조이너랍비 로버트 코헨과 함께 그들이 받은 메시아닉 쥬이시 운동에 관한 예언적 환상을 나눴습니다. 다음은 그들이 함께 풀어낸 예언의 하일라이트입니다:

  • 예루살렘이 유대인의 손에 되돌아 간 1970년대는 이방인 시대의 마지막이었다.
  • 1990년 대는 예수운동(Jesus Movement)으로부터 시작된 부흥의 영과 함께 움직인다. 예수운동은 메시아닉 운동의 근원이었다.
  • 메시아닉 사람들은 "교회를 그들의 유대 뿌리로 되돌아가도록 부르는" 그리고 "이스라엘 국가에 예언적 부름이 되기 위해 되돌아 온" 예언적/선지자적 의로운 남은 자들이다.
  • 메시아닉 사람들은 "머리"로서, 그리스도의 몸의 머리이자 첫 열매이다.
  • 모든 공동체가 그들의 증거 ?문에 예슈아에게로 돌아 올 것이다.
  •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메시아닉을 바라보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설명하기를 바랄 것이다.
  • 조이너는 메시아닉들이 교회와 너무 많은 관계를 가짐으로 인해 부패하면 안 된다고 우려를 표명했으며, 그들이 교회와 같아지거나 교회가 그들과 같아지면 안 된다고 했다.
  • 인종차별은 궁극적인 대적 중의 하나이다.
  • 교회 안에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 원상회복이 있는 곳에 화해가 일어나며, 유대인으로서의 메시아닉들에게 많은 원상회복이 있을 것이다.
  • 메시아닉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증거, 치유, 분별과 영적 은사의 이용에 있어서 더 나은 능력을 가질 것이다.
  • 메시아닉들은 우리(교회)가 우리의 기초를 제자리에 회복시키는 것을 도울 것이며, 우리는 그들의 도움 없이는 있어야 할 곳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메시아닉 쥬이시 운동이 백투구약운동임을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증거가 있습니다.

아래는 어느 신사도운동권의 선교사가 그 나라에서 벌어지는 메시아닉 운동에 참여한 이방인(젠타일)들을 보고 정리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야훼'로 부르고, 예수님을 '예슈아'로 부르고, 주일이 아닌, 안식일(싸밧)을 지키고,

강단에는 황금 법궤, 7개의 금 촛대, 그리고 예배 시작 때마다 7명이 앞에서 부르는 7개의 양각 나팔

(모든 것은 성경에 나오는 실제 싸이즈입니다.)

...

※ 유대교 - 안식일 예배

※ 메시아닉 쥬 - 안식일 예배 (유대교 스타일 예배,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한 이스라엘 교회)

※ 메시아닉 젠타일 - 안식일 예배 (유대교 스타일 예배, 이방인 교회)

※ 젠타일 - 주일 예배 (일반 기독교 예배, 이방인 교회)


앞으로 위의 4가지 형태의 예배는 점점 합쳐질 것입니다. 이것을 처음 접해보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혼합이겠지만,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완벽한 회복의 역사'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하나의 방편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고, 곧 메시아닉 쥬 & 메시아닉 젠타일의 교회, 예배 형태가 앞으로 대세로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실 것이고, 앞으로 연합의 형태가 더욱 나타날 것입니다.


이런 전반적인 맥락에서 또 하나의 유대뿌리/백투예루살렘 운동이 우리나라에서도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종말의 때에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새 사람"이루도록 하신다는 "한 새 사람 (One New Man)" 운동으로서,

신사도 운동권뿐 아니라 일부 복음주의 운동권에서도 금가루 현상을 동반하면서 활발한 활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지지자들은 이 운동이 에베소서 2장 15절의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새 사람으로 지어진다"는 구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 구절은 예수께서 이미 단번에 영원히 (Once and for all) 완성하신 일을 묘사하는 구절로써,

앞으로 이루어질 일이 아닌 이미 이루어진 일을 말하고 있음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한 새 사람"은 초대교회 이후로 이미 지어져 왔습니다!

교회 안의 화목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거시제로 이루어진 구절을 미래의 종말 교회의 완성이라는 주제에 끌어다 붙이는 것은 억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have been brought near)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has destroyed the barrier)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His purpose was ..)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He came and preached peace)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2:12-18)

One New Man 사상의 원조는 캔자시시티선지자 출신의 마이크 비클, 밥 존스 등의 동역자였던 루벤 도론이라는 늦은 비 운동가입니다.

이 사상에 들어 있는 늦은 비의 사상은 간단합니다. 위에서의 내용을 되풀이하는 것이지만..

종말의 때에, 전세계 성도들의 중보기도와 영적전투를 통해 이스라엘의 영적 메시아닉 회복을 이루고,

그들과 함께 지금의 교회와는 전혀 다른 완성된 새로운 교회를 이루어 종말을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이자 "그리스도 회군"의 교설과 같은 것입니다.


"한 새 사람"이 늦은 비의 완성된 교회를 나타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보기가 더 있습니다.

아래는 "한 새 사람"이라는 제목의 신사도 찬양 가사입니다.

가사를 읽어 보신 후 위의 내용과 관련해서 이 가사의 배경사상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한 새 사람


오랜 옛날 하나님 가슴에 한 사람 있었네
예수님을 머리로 성령의 생명으로 충만한 한 새 사람

우리들은 그 몸의 지체로 부르심 받았네
우리 자라 주님의 생명에까지 이르게 될 때
주의 교회는 일어나 사탄을 짓밟게 되리 온 땅 다스리리


오~ 그날 세상은 보리라 주의 영광 하나님의 지혜
오~ 그날 세상은 보리라 주의 영광 하나님의 지혜

영광 할렐루야 영광 할렐루야 끝내 승리하리라
영광 할렐루야 영광 할렐루아 주님과 함께 다스리리


블로그에서 계속 되풀이하는 말이지만,

성경에서는, 교회와 성도들은 종말의 때에 (마귀의 발악으로 인해) 핍박받는 남은 자들로 묘사됩니다.

절대로, 무한한 권능으로 승리하고 정복하는 군대가 아닙니다.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요엘 2:32)

또 내가 보매 이 여자(큰 음녀 바벨론)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요한계시록 17:6)

(짐승이)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요한계시록 13:6-7)

(흰 옷 입은 자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요한계시록 7:9-14)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마가복음 13:20)


또한 종말의 때에, 만국을 치고, 다스리고, 진노의 포도주틀을 밟고, 짐승과 더불어 싸우고, 짐승을 유황불못에 던지는 자는 이 땅의 교회가 아니라 재림하시는 예수님과 그 분의 하늘군대입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은 불꽃 같고 그 머리에는 많은 관들이 있고 또 이름 쓴 것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그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요한계시록 19:11-16)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들의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와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표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고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요한계시록 19:19-21)



[아래는 신사도들의 구약적 집회모습을 담은 참고영상자료입니다]

마이크 비클의 IHOP의 자매사역인 신사도 루 잉글의 더콜(The Call)집회 모습입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HEC4A20979Q


빈야드 사역을 하는 여선지자 후아니타 바이넘의 집회장면입니다. 법궤, 촛대와 소발 등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4Z6maa1UO0M

 
출처: 양무리 마을

WCC의 정체

                                                                      [김학유 교수, 합신 선교신학]


1948년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탄생한 WCC는 세계교회의 통일을 부르짖으며 지난 육십여 년 동안 다양한 교회 통일 운동을 펼쳐왔다. WCC는 연합(unity), 대화(dialogue), 구원(salvation), 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인간화(humanization)등과 같은 매우 매력적인 신학적 용어들을 동원하며 전 세계에 흩어져있는 수많은 교회들을 유혹해 왔다. WCC가 즐겨 사용하는 용어들(terms)이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건전하고 정통적인 것(orthodoxy)처럼 보이지만 그 용어들이 담고 있는 신학적 의미와 실체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WCC의 선교 신학이 얼마나 위험하고 비기독교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는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지면 관계상 WCC가 지닌 중요한 신학적, 선교학적 위험성을 몇 가지만 언급해 본다.


첫 번째로 WCC의 성경관이 매우 심각한 문제를 지니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이미 알려진 바대로 WCC는 성경의 권위(authority)와 무오류성(inerrancy)을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다. 1971년 벨지움의 루뱅 대학(University of Louvain)에서 결정된 문헌을 보면 WCC가 더 이상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다. 성경의 권위에 근거하지 않은 그들의 신학적 작업은 다양한 오류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신학적 해석을 기반으로 하는 실천 신학에 있어서도 당연히 오류를 만들어 낸다. WCC가 사용해 온 신학적 용어가 지닌 의미가 전통적인 의미와 전혀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둘째, WCC의 선교 개념은 전통적인 선교 개념과 전혀 다른 선교 개념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1952년 독일의 빌링겐(Willingen) 대회에서 새롭게 등장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선교 개념은 전통적인 선교 개념을 전적으로 부인하고, “교회 중심의 선교”(Church-centered mission)가 아닌 “선교 중심의 교회”(mission-centered Church)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교회가 중심이 되어 그리스도의 복음의 비밀을 선포하는 것이 선교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영역-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에 교회가 동참하는 것이 참다운 선교라고 주장한다. 이 때부터 영혼 구원에 우선권을 두었던 전통적인 선교 개념이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다. 1952년 이후로 WCC는 교회가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현장에 참여할 것과, 사회 개혁과 변혁의 주체가 될 것을 주문하였다. 소위 “사회 복음”(social gospel)을 전파할 것을 강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선교 개념 속에서 영혼(soul)과 영원(eternity)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영혼과 영원이라는 용어가 사라지고 물리적인(physical) 것들과 현세적인(here and now) 것들 즉, 정치, 경제, 사회라는 용어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다. WCC는 지금도 세계 교회들을 향해 정치적 압제와 억압, 경제적 착취와 불평등, 사회적 불의와 불공정 등에 대항하여 적극적으로 싸울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이러한 사역들이 곧 선교이기 때문이다.


셋째, WCC는 종교 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내지 종교적 혼합주의(religious syncretism)를 지지하고 있다.

WCC는 타 종교와 함께 진리를 공동으로 연구하여 발전시키고, 타 종교에 담겨있는 부분적인 진리를 수용 발전시키는 것을 중요한 선교적 과제라고 생각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WCC는 기독교 선교사들을 더 이상 타종교 권역에 파송하지 말아야 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소위 “선교사 파송금지”(missionary moratorium)를 선언함으로서 타 종교들 안에 구원이 존재함을 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들은 타 종교에 대한 공격을 금지시키고, 타 종교와 함께 공동의 선을 추구해 나가야할 것을 강조 한다. Hendrik Kraemer가 지적한 것처럼 WCC는 “신학적 절충주의”를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


2013년 부산에서 열릴 예정인 WCC 대회는 한국 교회가 지리멸렬해가는 WCC 운동에 혈액과 영양제를 공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들 속에서 점차 영향력을 잃어가는 WCC에게 다시 한 번 소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신학적 미사여구에 속아 교회의 진정한 선교적 사명과 연합의 의미를 놓쳐서는 안 된다. 선교의 우선권은 영혼구원에 있고, 사회 변화와 개혁은 개인의 영적 변화로 말미암은 열매로 나타나야한다. 한국 교회는 “Missio Dei”에 담겨있는 신학적, 선교학적 위험성을 직시하고 올바른 성경적 선교 개념을 추구해야 한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행 4:12, 요 14:6)라는 말씀을 붙들고, WCC가 주장하는 종교 다원주의나 혼합주의와도 싸워야 한다. 신학적 일치 없는 조직적인 연합(organizational unity)은 진정한 연합이 아니다. 비록 조직적인 연합이 없을 찌라도 신학적 내용이 일치한다면 우리는 이미 하나인 것이다.

--- 합신은 말한다(2010.7.27) ---


데이비드 오워 아이슬란드 화산 분출 예언 편집 사기극

동영상 초기 화면에 어떻게 2004년에 아이슬란드의 화산 분출을 예언할 수 있었나?
이어 약 1년전에 전능하신 주님께서 저를 찿아 오셔서 곧 메시야 예수님께서 오신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오워는 어떤 산에서 큰 흰 색 바위들을 쏟아 내는 것을 보여 주셨다고 합니다.
요엘서를 인용하여 동화면 윗 자막에는 화산재가 지구 전역을 덮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아래 자막에는 엄청난 화산재가 유럽을 덮을 것이라고 예언의 자막이 뜹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화면 위와 아래의 자막이 다르게 나갑니다.
그러면서 결국은 자막이 서로 맞지 않는 유형으로 이어집니다.
곧 아래에 뜨는 자막으로 유럽과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에 억지로 끼워 맞추기식 편집인 것입니다.
오워가 자신의 은사적 예언을 위하여 인용하는 성경은 이미 성경으로 기록된 대예언을 빌려서 말하는데 이것을 자신의 은사적 예언에 억지로 끼워 맞추기 위한 편집이었을 뿐입니다.
또한 회개 하라는 여러 내용은 이미 성경에 명백히 다 나와 있는 내용들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평소 우리들도 그 내용을 따라 회개 하라고 가르침을 받는 것들입니다.
이것을 마치 오워 자신만이 특별히 주님을 만나서 환상으로 주께 받은 것인양 하는 속임수일 뿐입니다.
오워의 모든 동영상을 조금만 자세히 살펴도 그것이 의도적으로 오워의 은사적 예언에 끼워 맞추기 위하여 편집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위 동영상도 2004년에 요엘서에 있는 내용을 부분적으로 조금 빌리고 마24장에 있는 말세에 징조들을 빌어 증거 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예수님을 직접 만나 받은 환상을 예언 한다고 하는 식인데 당시 그 예언의 실제적 내용엔 유럽과 아이슬란드를 점 찍어 말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6년후, 2010년에 실제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이 있었던 것을 자신의 예언에 끼워 맞춘즌 식에 편집에 사기극인 것입니다.
저는 아이티 대지진 때에도 성경에 따라 말세에는 점점 더 강력하고 다양한 재앙들이 계속 이어지기를 그 간격도 좁아질 것이라고 평상시에도 늘 전합니다.
이렇게 성경대로 전하면 그대로 되는 것이 현재의 현실입니다.
오워는 이것을 교묘히 자신의 예언에 은사에 적용하여 이용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워는 성경 다음 이 말씀을 따라 등장한 인물일 따름입니다.
"그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 하게 하리라"마24:3-24

오워는 늘 자신이 예수님을 직접 만나 환상으로 계시를 받는다고 하는 이것이 바로 자신에게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있다는 속임으로서 자신의 예언에 그리스도가 있다. 그러니 나의 예언을 들어라 그렇기 위해선 나를 초청해야 한다.는 은밀한 계산이 밑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언행이 바로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라고 한다는 말씀에 걸려든 거짓 선지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오워는 스스로 이 말씀에 따라 등장한 거짓 선지자로서 우리는 오워를 보면서 도리어 성경에서 경고한 대로 말세의 한 징조인 거짓 선지자가 과연 어떻게 하는지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미 신앙이 속화 되어 혼탁한 자들은 오워를 따를 것이며 오워를 내세워 계속하여 난리법석 요란을 떨 것입니다.
이미 그에게 넘어간 사람들의 수도 엄청날 것으로 봅니다.
이것이 역사적 말세를 즈음하여 하나님께서 불의한 자와 의로운 자를 쏙아 내어 분리 하고 계신다는 말씀이 성취 되어 지고 있다는 지혜의 눈으로 돌아 가야 할 것입니다.(계22:10-11)

오워의 한국전쟁 재발발 예언도 다 이런 식입니다.
아님 말고식 예언으로서 혹 만에 하나 5년 10년 후 한국전이 발생한다면 또 그렇게 편집 하여 자신을 예언자로 드러낼 것입니다.
한국전쟁 재발발에 대한 은사적 예언은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닌 것은 이미 성경에서 말세에 되어질 전 세계를 향한 대 예언 속에 포함 되어져 있으므로 실제 한국이 과연 어떻게 되어질련지는 하나님의 섭리 하에 있으므로 건전한 신앙인은 이런 은사적인 국지적 예언자들에게 자극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이에 자극을 받는 자들은 신앙이 속화된 자들로서 신앙이 흔들림과 동시에 좌불안석에 빠져 자신의 삶을 송두리채 잃어 버리는 경우가 될 것입니다.

출처: 아멘넷, 정리 이돌
인간 보혜사 (김풍일) 자칭 보혜사 성령
보혜사 성령이라는 김풍일 씨
 
장운철 월간 <교회와신앙>기자
 
실로등대중앙 교회
실로 신학원
예장(성경)총회
계시복음한국선교회 KICCC
 
   (대한예수교장로회 실로등대 중앙교회)교주 김풍일 /자신이 재림주라 주장
동방론/이중 아담론
대한예수교장로회(성경)총회로 둔갑/ 자신이 보혜사 성령이라 주장
교회,신앙  자칭 보혜사성령/이중 아담론/동방론/비 성경적 교리등 완전한 이단자

인간 김풍일(58)을 '성령'으로 믿고 추종하는 집단에 의한 미혹성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서울 봉천동 소재 새빛등대중앙교회가 바로 그곳. 이 교회의 당회장이라는 김풍일 씨가 보혜사 성령이라며, 신도들은 기성교인과 일반인을 가리지 않고 포섭, 현혹하고 있는 것이다. '김풍일=또 다른 보혜사 성령'이라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은 교리에 미혹되어 있는 신도들은 현재 본부에 약 7백 명을 비롯, 전국 25개 지부에 전체 신도 3천 명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이 집단에 의한 피해도 본지에 꾸준히 접수되고 있다. 김영식 목사(가명, 동일교회)는 "어느날부터 한 성도가 이상한 주장을 하기 시작해, 알아보니 김풍일 교리에 빠졌었다"며 교회 인근에 있는 김풍일 집단에 의해 성도 3명이 미혹 당한 적이 있었다고 호소해 오기도 했다. 부천의 윤집사는 딸아이가 김풍일 집단에 다니기 시작한 뒤 신앙생활이 이상해졌다며 본지에 알려왔다. 김풍일 집단에 관해 본지에 접수된 상담 내용 중 흥미 있는 대목이 있다. 상담된 내용 중 미혹 당한 신도가 아직 '김풍일=또 다른 보혜사 성령'이라고 하며 바른 교리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람이 상당수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김풍일 집단이 자신들의 가장 핵심 교리를 쉽게 드러내지 않은 가운데 포교 활동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또한 '김풍일 복음'이 얼마나 음성적인가를 말해주는 꼴이다.
 
김풍일 집단에 대한 상담이 꾸준히 늘어간다는 것은 그들의 활동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년들어 김풍일 집단의 움직임은 더욱 적극적이다. '말씀성령 특별집회'라는 순서를 매주일 오후 3시 30분과 화요일 오후 2시에 마련해 놓고, 신도들을 독려 새신자 모으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풍일 신도들은 집회를 알리는 전단지를 제작,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배포하는가 하면, '금년 목표 1000명' 이라고 씌여진 현수막을 내부에 걸어 놓음과 함께 집회시 같은 내용의 구호를 전신도가 합창하는 등 포교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91년경 JMS(교주 정명석)집단 본부 건물을 인수, 현재 자신들의 본거지로 사용하고 있는 김풍일 집단은 '대한예수교장로회(성경)', '실로신학원', '계시복음선교회' 등 언뜻보아 기성교회와 유사한 이름의 기관명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그들의 주된 활동 영역은 기성교회 그늘, 포교 대상은 기성교인들이라는 그들의 전략이 들어 있는 셈이다.


'김풍일=또 다른 보혜사 성령'이라는 비성경적, 비상식적인 교리가 있음에도 이처럼 김풍일 집단이 최근 몇 년 동안 급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김풍일 복음'에 기성교인들이 현혹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김풍일=또 다른 보혜사 성령' 교리 외에 그들의 주된 교리는 무엇인가.


기자는 이러한 의문을 풀어보기 위해 지난 2월 11일 수요일 서울 봉천동 지하철 낙성대역 근처에 위치한 그들의 본부를 찾았다. 지난 91년경 JMS 집단(교주 정명석)에서 본부로 사용했던 건물이었다. 건물 입구에 걸려 있는 간판과 내부 안내판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성경)', '실로신학원', '계시복음선교회' 등의 단체 명들이 붙어 있었다. 즉, '외모는 기성교회'로 철저히 포장해 놓은 것이다.
 
기자가 이곳을 찾은 시간은 오후 7시경.수요집회에 참석해보기 위해서다. 건물 입구를 지나자 자신을 임연석 목사라고 소개한 한 신도가 기자를 3층 작은 집회장으로 안내했다. 임씨는 집회가 끝난 후 자신을 꼭 만나고 갈 것을 부탁한 후 곧바로 사라졌다. 그 곳에는 40여 명의 신도들이 대형 스크린을 통해 김풍일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 신도들은 성경을 찾아 읽는다든지, 수시로 '아멘'이라고 외치든지 스크린의 김풍일의 액션에 일사분란하게 반응했다. 설교가 끝나자 안내원이 등장, 스크린을 끈 채 직접 광고 내용을 전달했다. 이들의 정상적인 수요 집회 시간은 오전 11시. 저녁 집회는 오전 집회 장면을 녹화했다가 그 비디오 테잎을 다시 시청하는 식이었다. 집회시간은 약 1시간. 집회가 끝나자 임씨가 기다렸다는 듯이 기자에게 먼저 다가왔다. 새신자 포섭을 위한 능동적인 행동이었다. 그는 "목사님 말씀이 어떠합니까"는 등을 물어보며 어느새 기자의 옆자리에 앉았버렸다. 임씨와의 만남은 김풍일 집단을 취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었다. 그는 기자의 간단한 신상을 물어본 후, "성경에 대해서 한 가지 물어봅시다"며 퀴즈 하나 이내 던졌다.


 
"성경에 '열 처녀의 비유'가 나옵니다. 이들 중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이했고, 다른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기자의 답을 들은 임씨는 자신이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인지, "성경을 많이 아시네요" 라며 퀴즈를 하나 더 던지며, 기자 옆으로 한 걸음 바싹 다가와 앉았다.


"아담이 부모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의 표정은 진지했다. 농담 삼아 던진 질문이 아니었다. 그는 부모의 의미가 '육신적인 부모'임을 전제로 했다. 기자는 그가 원하는 듯한 답을 했다. 그러자 그는 기회를 잡았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는 "당신의 답이 맞는지 성경을 봅시다"며 자신의 두꺼운 성경을 내밀었다. 임씨는 계속해서 이미 굵은 색연필로 이미 또렷이 칠해져 있는 창세기 2장 24절의 구절을 지적, '남자=아담, 부모=아담의 부모'라고 주장하며, 결국 '아담은 육신의 부모가 있다'는 희한한 성경 풀이(?)를 했다. 즉, 그는 아담 이전에 창조된 사람이 있었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소위 '이중아담론'이라는 비성경적인 교리를 설명한 것이다(자료 1 참조). 그는 "다니는 교회에서나 어디서든 이런 내용을 못 들어 봤지요"라며 자신의 성경 풀이가 탁월한(?) 것임을 자랑하고 싶어했다. 기자의 대답은 'YES'였다. 기성교회에서는 그러한 비성경적인 내용을 가르치지 않으니, 대답이 당연히 그렇게 나?수밖에 없지 않은가. 임씨는 같은 방식으로 퀴즈 하나를 더 던졌다.


"하와가 죄를 범한 후 어떤 벌을 받았습니까" 역시 기자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임씨는 '성경을 보자'며 또 자신의 성경을 당당하게 펼쳤다. 그는 창3:16절에 나와 있는 '잉태의 고통'이라는 단어를 지적, '해산의 고통'이라는 의미로 말한 기자의 무식함(?)을 질타하기도 했다. 그의 성경에는 같은 구절의 후반부에 나와 있는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라는 내용이 없는 모양이다. 임씨는 계속해서 "성경을 통해 금방 탈로 날 답을 어떻게 여태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까"라며 기자를 몰아 세우기까지 했다.


이렇듯 임씨가 몇 가지의 질문을 통해 기자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우리 교회에서 성경 공부 제대로 해보지 않겠습니까"였다. 웬만한 기성교인들은 이 단계에서 포섭되기가 쉬워 보였다. 기자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자 임씨는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전담자를 한 사람 소개해주고, 자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후 진종석 전도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또 다른 신도 한 명이 기자 옆으로 왔다. 임씨보다는 훨씬 젊은 신도였다. 진씨는 매주 일요일과 매주 화요일에 정기적인 교육이 같은 내용으로 두 번에 걸쳐 진행된다며 편한 시간을 정할 것을 요구했다. 교육과정은 기초반 4개월, 기본반 4개월, 계시록반 5개월 등으로 전과정을 마치기까지는 1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이곳 신도들은 대부분 이 교육을 거쳤다며, 진씨는 기자에게도 당연히 이 교육을 받아야 함을 강조했다. 김풍일 집단은 이 교육 과정을 매우 중요시 여기고 있었다.
 
기자는 화요반을 선택, 등록하기로 했다. 때마침 기자가 이곳을 찾은 날의 다음 주간부터 금년도 기초반 교육이 처음 시작되는 날이었다. 2월 17일(화) 오후 2시경. 기초반 교육 첫 시간. 교육장에는 어디서 포섭 당해 왔는지 30여 명의 사람들이 이미 앉아있었다. 일요반 수강생들까지 합친다면 이번 코스의 교육생은 전체 100여 명이 된다고 한다. 강의실 한 쪽 천정 구석에는 무슨 용도로 사용되는 것인지 조그마한 감시용 비디어 카메라가 설치, 신도들 쪽을 향해 있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다른 기자가 들어가 본 강의실마다 그런 카메라가 달려 있었다. 한 여신도가 들어왔다. 수강카드와 신상명세서 작성 그리고 교제대 명목으로 4만원을 지불할 것을 광고했다. 교육시간이 되자 김풍일 씨가 강단에 올라왔다. 첫 시간이기 때문에 특별히 얼굴을 내밀은 모양이다. 그는 '김풍일 교리는 위대하다'는 식의 말만 풀어 놓은 채 하단, 뒤이어 정식 강사라는 한 신도에 의한 강의가 이어졌다. 첫 강의 주제는 '왜 성경을 알아야 구원을 받는가'였다. 나누어 준 복사물에는 '1. 성경은 기록된 대로 이루어진다. 2. 왜 성경을 알아야 예수를 알 수 있는가 ...'는 식의 소주제와 여러 성경 구절이 기록된 것 외에는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 주된 교리는 강의 시간 중 말로 전달할 모양이다.


'김풍일=또 다른 보혜사 성령' 교리 찾기 첫 시간 교육에 '김풍일=또 다른 보혜사 성령'이라는 교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수강카드에 나와 있는 기초반 약 4개월 과정 일정에도 '김풍일 복음'의 핵심은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차례씩 진행되는 강의로는 언제'김풍일=또 다른 보혜사 성령' 교리가 발견될지 모를 일이다. 아마 기초반 윗 단계인 기본반이나 계시록반에나 가야 그 내용이 나올 모양이다. 기자는 변칙적인 강의 신청을 하기로 했다. '김풍일=또 다른 보혜사 성령' 교리를 보다 빨리 찾아내기 위해서다. 기자는 "강의 내용이 어떻습니까"며 다가오는 담당 관리자 진씨에게 "강의를 매일 듣고 싶다"며 연속 강의를 신청했다. 진씨는 의아해 하면서도 반기는 표정이었다. 그는 "이렇게 열정이 있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며 흔쾌히 받아들였다.
 
다음 날(18일)부터 '김풍일 복음' 개인 교습이 거의 매일 진행됐다. 김풍일측에서는 임연석 씨와 진종석 씨가 번갈아 가며 강사로 나섰다. 취재중 자료 구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자기 사람'이라고 판단이 되지 않는 한, 김풍일의 설교 테잎조차 함부로 판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의 핵심 교리서인 '생명나무'를 비롯, 그들의 찬양집인 '새노래'와 소책자들을 포함한 몇 권의 김풍일 서적들도 마찬가지다. 주보는 아예 만들지 않으며, 단체를 소개하는 특별한 홍보물도 없었다. 개인 교습은 기자가 이들에게 '김풍일의 사람'으로 인상을 심는데 좋은 역할을 했다. 교육 진행 순서와 상관없이 깊이 있는 내용을 빠르게 접근할 수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영생의 차원은 전혀 다른 것이다." 개인 교습 3일만에 임연석 씨의 입에서 희한한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영생을 소유한 사람인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임씨는 속에 있는 말을 털어 놓은 것이다. "우리에게는 말세에 예비된 구원이다.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죽으면 천당간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고 말세에 예비된 구원은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고 가는 차원이 아니다. 이것은 예수의 이름만 부르는 차원과 전혀 다른 것이다. 이것이 성경을 알으라는 것이다. 이 영생의 차원, 구원의 차원은 예수 이름 믿고, 불러서 천국가는 것이 아니고, 여기서 말하는 성경은 말세에 예비된 구원이다."
 
이 날 임씨 강의의 핵심은, 자신들은 기성교회와 전혀 차원이 다른 영생, 즉 구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이런 식의 비성경적인 내용은 어렵지 않게 나왔다. 짧은 기간이지만, 기자를 어느 정도 '자기 편'으로 판단한 것 같다. 진씨의 입에서도 다소 깊이 있는 김풍일 교리를 끄집어 낼 수 있었다.


"마지막에 가서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깨달을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마지막에 와서 깨닫게 된다. 그 깨닫는 것 자체가 바로 열쇠로서 연다는 것이다. 천국문은 닫혀 있습니다. 열쇠가 없기 때문에, 천국열쇠는 마지막에 열리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천국에 들어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죽으면 천국간다고 그런다.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는 마지막 때 열려진다는 것이고, 바로 지금이 마지막 때인 것이다."


김풍일 집단에는 새벽예배와 철야예배 등이나 다른 형태의 집회가 특별히 없다.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질적으로 없는 셈이다. 세례식도 하지 않는다. 죄를 씻는 의식은 더 이상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결국 김풍일 집단에서 참석할 수 있는 주된 의식은 정기적인 집회나 교리 교육 과정이 전부인 듯했다. 이러한 이들의 내부 모습은 '김풍일=또 다른 보혜사 성령'이라는 김풍일의 핵심 교리를 취재, 입증하는 데 한계였다.
그러나 취재가 시작된 지 2주일째인 지난 2월 25일. 기자는 '김풍일=또 다른 보혜사 성령'교리가 가르쳐 지는 현장을 취재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개인 교습시간중이었다. 이날 강의는 '열쇠의 비밀'이라는 주제로 강사는 진씨. 그는 소위 '대통령 비유'를 통해 자신의 핵심 교리를 드러냈다.


"천국열쇠는 다윗의 열쇠, 즉 예수님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 이 땅에 출현해서 수 많은 사람을 천국 길로 인도할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 다윗의 열쇠를 가졌다는 사람이 이 교회의 김풍일 목사를 말하는 것인가"
"예수님이 이 땅을 떠나면서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신다고 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상세한 교육에 다음에 있다."
"그 보혜사가 김풍일인가."
"이것은 본인이 깨달아야 한다. 스스로 다 알게 된다. 쉽게 말해서, 지금 우리나라 대통령이 누굽니까 라고 물어볼 필요가 없다. 왜 다 아니까. 그 분이 누구냐. 성경에 김씨냐, 이씨냐로 기록되어 있다면 다 알 수 있는데, 그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고, 성경에 이런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 가지고 시비가 일어날 수도 있다."


진씨는 이 순간 말을 많이 더듬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우회적으로 하기 위해 고민한 것이다. 그의 대통령 비유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사용했다. 즉, 자신들의 교리 교육을 받다보면 '그 사람이 김풍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깨닫게 되는데, 굳이 그것을 확인하는 질문이 필요하냐는 뜻이다. 그는 대통령 비유에 대해, 기자가 잘 이해를 못했다고 생각하는지 같은 내용의 다른 표현으로 몇 차례 설명을 늘어놓았다.


진씨의 늘어지는 설명에는 스스로 파놓은 함정에 빠지는 '지함지뽕'형의 것도 있었다. 그는 김풍일이 보혜사 성령임을 입증하기 위해, 김풍일과 안상홍을 비교시킨 것이다. 즉 '안상홍=가짜 성령=이단', '김풍일=진짜 성령=정통'이라는 웃지못할 코미디 논리를 펴려고 한 것이다. 안상홍은 스스로 성령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다가, 지난 85년에 사망한 '안상홍증인회 하나님의 교회' 집단의 교주였다(본지 97년 11월호 참조).


"또 다른 보혜사가 이 땅에 출현하면 영원토록 함께 하겠다고 했다. 어떤 이단자들이 '내가 또 다른 보혜사로 왔다'고 그런다. 그런데 그가 죽었다. 그러면 그것은 가짜다. 또 다른 보혜사로 오면 죽지 않아야 한다. 육신적으로도 죽지 않는다. 누가 그러느냐면 안상홍증인회 하나님의 교회가 그렇다. 안상홍을 증거하다가 그가 죽었다. 이들은 가짜다."
 
이날 이후 이들의 기도 자세가 변했다. 그동안 임씨나 진씨는 강의를 하기 전후 대표기도를 했왔으나, 기도 내용에는 특별히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그 내용이 달라졌다. 어짜피 핵심 교리가 드러난 이상 평상시 하던 방식대로 한 모양이다. 진씨의 기도를 들어보자.


"천국의 비밀을 깨닫게하여 오늘 이 시간도 천국열쇠의 비밀을 저희들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천국열쇠를 통하여 천국에 관한 비밀을 깨우침 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고 저희 자신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인도하여 주심을 믿습니다. 종말에 보내주신 사명자 목사님을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주시고, 종말에 보내주신 사명자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질 수 있는 귀한 하나님의 백성들로 인도하여 주심을 믿습니다. 오늘 이 시간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사오니, 이 시간 들은 말씀을 까먹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질 때, 큰 기쁨으로 구원의 말씀으로 나타날 수 있는 귀한 저희들이 될 수 있음을 믿사옵나이다. "


'김풍일= 보혜사 성령' 교리는 임연석 씨의 입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날 임씨는 기자가 진씨에게 했던 같은 내용의 질문을 받고는 "그 질문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나도 그렇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기자는 다른 신도들과 접촉을 해보기로 했다. 혹, '김풍일 복음'이 임씨나 진씨만 스스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재차 점검하기 위한 것이다. 김풍일 집단의 성남 지부와 안산 지부에 각각 전화를걸었다. 성남 지부엔 장로 직분자라는 L씨, 안산 지부엔 목사 직분자라는 K씨가 전화를 받았다. '신앙 상담'이란 말에 양쪽 모두가 흔쾌히 수화기를 들은 것이다. 이들은 전화 상담을 언제나 환영한다며 기자를 반겼다. 특히, K씨는 밤잠을 안 자고서라도 상담에 응할 용의가 있다며 적극적이었다. 그는 소위 '김풍일 교리 상담소'까지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이들과의 상담 취재는 장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김풍일을 추종한지 10년 정도됐다는 성남지부의 L씨는 "또 다른 보혜사가 김풍일이 맞는가"는 질문에 "상당한 것을 깨달았다"며 칭찬도 아끼지 않았다. 또 다른 보혜사가 '인간'이라는 사실만 깨달아도 대단한 것인데, 짧은 시간 안에 그가 김풍일이라는 것까지 발견했으니 한 마디로 놀랬다는 것이다.


안산 지부의 K씨도 김풍일을 따른지 10여 년됐다. 그는 김풍일 교리에 일점일획이라도 틀린 것이 있다면 당장 이곳을 떠나겠다며 자신감을 내던지기도 했다. 그는 "김풍일 목사님이 또 다른 보혜사라는 증거는 성경에 6가지로 나와 있다"며 그들의 교리 교육과전 기본반 17번에 나와 있는 내용을 설명했다. K씨는 기성교회에서 30여 년간 신앙생활을 해왔으며, 김풍일 교리에 빠지기 전에는 군소신학을 나와 교회 개척 4개월의 이력을 가지고 있는 목사 이기도 했다. 그는 기성교회의 복음을 잘 알고 있는 입장이다. 그의 입에서 "기성교회와 김풍일 집단은 전혀 다르다"고 표현한 것은 그가 아직까지 제대로 판단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는 지금 과거 목회 실패의 원인이 '김풍일=성령'이라는 엉뚱한 교리를 받아들인 결과의 모습으로 살아 가고 있는 것이다.


기성교인 포섭하기


김풍일측의 기성교인 포섭하기 전략의 대원칙은 '핵심교리를 함부로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교리 교육 과정 중 '친인척 포섭하기' 라는 논외의 시간이 있었다. 이들은 기성교인들에게 대체로 3가지의 정리된 성경퀴즈로 접근할 것을 교육시켰다. 어디서 그런 공부를 했느냐는 상대방의 질문이 있을 경우, 쉽게 김풍일 집단의 이름을 거론치 말라는 당부도 빠뜨리지 않았다.


3가지 성경퀴즈는 기자가 이 집단을 처음 방문했을 때, 받았던 것과 대동소이했다. 첫째 퀴즈는 '열처녀의 비유 중 슬기로운 처녀가 무엇 때문에 신랑을 맞이 했는가'이다. 이때 '기름 준비'라는 답이 나오면, 둘째 퀴즈로 넘어가고, '5명이 졸았기 때문에'라는 대답이 나오면, 마태복음 25장 1-12절을 들이대며 그의 무식성(?)을 지적하라는 것이다. 둘째 퀴즈는 '어둠과 환란은 누가 창조했는가' 이다. '사탄'이란 답이 나오면, 이사야 45장 7절을 내밀면서 상대방을 코너에 몰라는 것이다. 단순한 문자적인 '말장난'으로 미혹시키고 있는 것이다. 셋째 퀴즈는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 어떤 벌을 받았는가'이다. '해산의 고통'이란 답이 나오면 창세기 3장 16절을 펼쳐 보인며, '성경 공부를 한 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말을 던지며 포섭해오라고 시키는 것이다. 이들의 성경에는 같은 구절의 뒷 부분인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과 '남편을 사모하고'라는 글이 없는 모양이다. 이러한 3가지 질문을 어떻게 던질 것인지 연습하는 과정도 있다.


이렇게 포섭된 신도들은 약 1년에 걸친 교리 교육을 받게 되고 철저한 김풍일 추종자가 된다. 이들은 매년 2월 27일 수료식을 갖는다. 이날을 '방주 구원의 날'이라는 명칭을 달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금년이 20회가 된다. 이날 김풍일 교리 전과정을 수료한 신도들은 지부 전체 192명. 매년 이 정도의 '김풍일 맨'이 배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내년부터는 고급과정이 신설된다고 하니, 언제 '제 2의 김풍일'이 계시록을 등에 업고 나타날지 모를 일이다.


김풍일 교리의 모든 것
김풍일 교리의 핵심은 역시 '김풍일=또 다른 보혜사 성령'이다.
그 외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소위 '이중아담론'과 '동방론'이다. 이중아담론은 김풍일이 집회시 자주 사용하는 대표적인 것 중 하나다. 교리 교육 과정에도 나오지만, 지난 2월 9-10일 특별 집회 기간 중에도 김풍일은 직접 이중아담론 교리를 사용했다. 동방론은 자칭 메시야, 하나님으로 등장한 교주라면 누구나 써먹는 케케 묵은 교리. 성경의 '동방'이란 표현은 한국을 뜻하는 용어라며, 따라서 동방의인은 한국에서 의인이 나타나는데 그가 바로 '자신'이라는 내용이다. 박태선, 문선명, 유재열 등 '한국판 메시야'들이 모두가 이미 자기 코에 걸어 놓은 교리다. 김풍일이도 이 대열에 끼어 보고자 한 것이다(자료 2 참조). 김풍일의 동방론이 맞다면, 성경의 '동방박사 3인'은 한국출신 박사란 말인가(본호 진용식 목사 글 참조).


김풍일을 지칭하는 용어들은 '또 다른 보혜사' 외에 상당히 많다. 그의 비밀 교리서 '생명나무'를 보면 '통달성령, 말씀 성령, 이기는 자, 셋째 아담(마지막 아담), 영적 야곱의 사명자, 스룹바벨의 사명자, 동방의 의인' 등 복잡하게 나온다.


즉, 'A=B, B=C, C=D, D=E, E=또 다른 보혜사' 라는 식으로 모든 용어가 '또 다른 보혜사'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자료만으로는 '김풍일=또 다른 보혜사'가 결정적으로 입증이 안 되어 있는 것이다.
기자는 취재를 통해 김풍일 추종자들이 '김풍일=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철저히 믿고 따르고 있음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김풍일 자신을 통해 당연히 나와야 될 '내가 진짜 보혜사 성령이다'는 답은 들을 수가 없었다. 김풍일의 비서 겸 행정 업무를 보는 김풍일의 딸 김모양은 김풍일의 의사라며 무엇 때문인지 인터뷰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소위 메시야의 출현과 활동을 보고 세인들은 세기말적 현상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에는 밥먹고 화장실 가는 자칭 메시야가 20여 명 된다는 우습지 않은 말이 있다. 복잡한 교리보다 단순.간단한 교리가 오히려 잘 먹혀들어 간다는 세기에 살고 있는 성도들이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가가 더욱 자명해진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위치한 새빛등대중앙교회
▲요한계시록을 중심으로 '특별히' 해석했다는 비성경적 단체들의 교리서들. 김풍일의 '생명나무'도 그 중 하나다.
▲집회를 알리는 전단지들. 지난 92년도의 것과 최근 것이 내용면에서는 다르지 않다.
▲'이중아담론' 등의 이단 교리가 들어 있는 김풍일의 설교 테잎
▲교리 교육 수강카드. 신도들은 강의를 들을 때마다 확인 도장을 받는다.
▲'새노래'라며 부르는 노래. 기존 복음성가에 개사한 것이 많다.



자료 1. 김풍일의 '이중 아담론'
 
6천년 전, 에덴동산에서 숨겨졌던 은밀한 비밀이 이제 나타나서 많은 사람을 새 에덴 동산에 아담과 이브로 불러들이는 그런 가까운 시간이 다가 왔다.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알고 있었던 방법은 흙으로 인간의 모양을 만들어 놓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고, 지어진 그 사람의 코에다가 생기를 불어넣어서 생령이 된 사람이다. 그를 가리켜서 아담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하나더 깨달아야 될 것은, 생령이 된 아담의 갈비뼈에서 여자가 나왔다.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온 이 여자하고, 아담을 만들기 전에 앞에 있었던 남자와 여자하고 틀리다.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온 여자하고 또 갈비뼈에서 나오기 전에 아담 앞에 있었던 여자하고는 다르다. 이것을 알아야 한다. 여기에서 나오는 사람으로 비슷한 이 남자하고 생령을 받은 남자하고 다르다. 아담이 생기를 받아서 생령인 사람이 되고, 자기 갈비뼈로 여자를 만들었다면 아담은 분명히 자기 앞에 있었던 사람으로 창조된 부모가 있어야 된다. 부모가 있어야지 그 이치가 맞다. 그 부모가 성경에 있는지 알아보자. 창세기 2장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여기에서의 남자는 아담이다. 그러므로 아담에 부모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부모는 생기를 받지 않은 상태에 있었던 부모이다.


생기를 받지 않은 상태의 부모는 어떤 부모였는가. 비유로 설명하겠다. 지금으로 말하면 저 아프리카에 있는 미개인들과 같은 존재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상태에 있었던 그런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어 번성되었던 사람들이 이 세상에 가득히 살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 한 남자를 택해서 하늘에 생기를 불어 넣어 줌으로써 그 생기를 받은 사람을 가리켜서 아담이라고 했고, 그 아담의 갈비뼈에서 떼어낸 그 여자 또한 생기를 받은 자였음으로 그 여자를 하와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담은 육신의 부모가 있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이야기다. 성경이 이 땅에 나온지 약 4천년이 지나도록 아담에 부모가 있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랐다. 이제 여러분들이 깨달은 것이다.(98년 2월 10일. 김풍일 설교)


아담은 최초의 사람이 아니다. 아담이 인류의 시조로서 하나님이 지으신 인간 최초의 사람이라고 알고 있으나 아담은 인간 최초의 사람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아담 이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음을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나무. 김풍일 저)


자료 2. 김풍일의 '동방론'
천국은 왜 한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가.
동방에서 출현하는 사명자. 동방은 한국이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우리 대한민국이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선지자를 통하여 땅끝, 땅 모퉁이가 된 한국땅에 잃어버린 새 에덴동산 지상 낙원이 창설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
구원의 처소, 교회의 이름은 왜 실로성전이 되어야 하는가.


보혜사 사명자가 출현하는 곳이다. 이로써 하나님의 이름 둔 실로성전의 가지 사명자, 보혜사 사명자가 전을 건축하며 기름 받은 가지 사명자가 입을 열게 되므로 하나님을 알게 되는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집 시온산 실로에 어린 양, 또 다른 보혜사의 역사로 십사만사천이 인침을 받고 사람 가운데 첫 열매가 되어 영원한 유업을 받게 되는 처소가 실로인 것을 알 수 있다.


시온산의 어린 양 또 다른 보혜사 사명자가 출현하므로서 첫 사람의 열매를 추수하고 인도 하는 것이니 하나님보시기에 온전한 사람들인 것이다. (생명나무, 김풍일 저)



자료 3. 김풍일의 비성경적 교리
세상 끝날에 스룹바벨 사명자가 출현하되 하나님의 도장이 되는 사람이라고 하였으니 곧 하나님을 대신하는 사람인 것이다. 이와 같이 스룹바벨을 빙자한 말세의 사명자를 상징한 말씀인 것이다.
그리스도 이후 지금까지는 한 사람도 통달 성령을 받은 자가 없었다. 왜냐하면 말일에 가서야 완전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역사하였든 성령은 통달 성령이 아니였던 것이다.


실상은 오늘날 신학교에서 배우고 있는것이 신학이 아니요 인학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가르침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연구한 지식을 배우기 때문이다. 신학이란 신의 가르침이 있어야 신학인 것이다. 신의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천국에 간 사람 한 사람도 없다. 순교자들이 아직까지 천국에 가지 못했다. 아직까지 성전(천국)에 들어간자 한 사람도 없음을 알아야겠다. 아직까지 천국은 예비되지 않았다. 천국에 간 사람이 아직 한 사람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지옥간 사람도 아직 한 사람도 없음을 알 수 있다. 낙원에 간 사람 한 사람도 없다. 도적같이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자들은 구원받을 수 없다.


뱀과 여자에 관한 기성신학의 오류. 아담 하와의 불순종 이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는 두 번째의 예언이다.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어 왔지만 숨겨진 종말의 비밀을 깨닫지 못하고 여자의 후손을 예수라고 증거하므로 여자는 마리아의 상징으로 증거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신학이다. 여자는 예수를 상징한 것이다.
이와 같이 독생자 되신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믿지 않을 때는 영생을얻지 못한다는 것이니 믿음의 최종 목적이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것보다 영생을 목적으로 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예수를 믿어서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은 자가 어디에 있는가.


이와 같이 보혜사 성령은 진리의 성령이요 통달 성령인 것이다. 이는 오순절 날에 강하고 급한 바람 같은 성령으로 임하여 각 사람에게 방언이 나오게 한 성령과는 다른 것이다. 오늘날까지 역사한 오순절의 성령을 받았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사정을 통달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말씀의 비밀을 알 수 없으니 오순절에 역사한 불 같은 성령은 보혜사 성령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 예수님이 사람이요, 보혜사이셨던 것과 같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실 보혜사도 사람인 것이다. 오늘날까지 모든 기독교인들이 보혜사를 영으로만 알고 믿어 왔으나 사람이었던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보혜사는 예수님이 아니요 예수님 대신에 오시는 사명자이니 곧 그리스도 재림의 비밀을 가지고 오는 자이다.


또 다른 보혜사는 어떤 인물인가(대명사).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도장)을 가지고 해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인치는 사명자아(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며, 지상 천국을 건설하며 인도하는 분이시다. 이 땅위에서 남은 자의 구원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실 자이시다.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신 진리의 성령을 최초로 받은 자이시(다). 아담은 오실 자(보혜사)의 표상이며, 첫 사람 아담(흙에 속한 육 있는 자, 생령) + 둘째 아담 예수님(하늘에 속한 신령한 자, 살려지는 영) = 세째 아담 곧 마지막 아담 또 다른 보혜사(흙에 속한 자의 형상(육)과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영)을 입은 곧 살려주는 영을 받은 마지막 아담의 비밀을 아는 자이시다). 하나님의 소원인 알파와 오메가를 이루시는 에덴낙원의 완성자시다. 새노래를 발표하여 하나님의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자시다. 다윗은 예수님 상징,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또 다른 보혜사 상징으로 솔로몬의 전의지대와 건축완성 11년의 역사를 이루실 자시다.(생명나무, 김풍일 저)




김풍일 목사 저서 : 천지개벽 ??

천국을 아는자 님의 질문은 언제나 장막성전 출신 김풍일 목사의 황당무계한 천지개벽 책에

나오는 책의 버전에 진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개혁을 위하여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확인시키면서 편집된 책. 성경을 믿고 천당가겠다고 하는 이들이 성경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상으로 무장되고 성경과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현실을 보고 의분이 터져서 성경대로 기독교를 개혁하고 혁명하고자 집필되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작가 소개
저자 | 김풍일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총회장, 계시복음 한국선교 총회장, 실로장자총회신학교육원 원장, 새빛등대중앙교회 당회장으로 활동중이다. 저서로는「생명 나무」「계시록의 실상」등 27권을 저술했다. [리브로 제공] 
 
목차 
제1편 왜 성경 구원 받을 수 있는가?
제2편 성경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제3편 성경은 어떻게 기록 되었는가? 기록 되었는가?
제4편 아담은 인류의 시조가 아니다
제5편 사람창조와 아담창조는 구별된다
제6편 부모가 있다
제7편 사단(용, 옛 뱀, 마귀)666의 정체를 밝힌다!
제8편 사도신경 정체를 밝힌다
제9편 현재 사용하고 있는 "주기도문"은 성경과 다르다
제10편 예수 믿고 천당에 간 사람은 아직 한 사람도 없다
제11편 거지 나사로가 아브라함 품 안에 들어간 것은 실상으로 천국에 간 것이 아니다
제12편 예수 우편 강도 그 날 예수와 함께 낙원에 가지 못했다
제13편 성경에 예수 믿지 않고 죽은 영혼들에게도 구원의 길이 있다
제14편 기독교적인 이단의 정체를 밝힌다
제15편 지옥에 간 세례 요한의 정체
제16편 두 번 받았다
제17편 예수는 성령의 씨가 아닌 사람의 씨에서 탄생하였다
제18편 예수 부활하신 날을 알 수 있다

부록
[리브로 제공]
 

김풍일에 미혹된 부인을 위해 싸우는 가장 (전명하 관장)




▲ 동두천 복싱체육관에서 만난 전명하 관장



▲ 새빛등대중앙교회측이 발행하는 <월간 참포도나무>와 '김풍일 설교코너'.

이 책자는 주로 전도용으로 많이 쓰인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세요?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경기도 동두천시 ‘동두천 복싱체육관’ 전명하 관장(49)은 분노가 어린 눈빛으로 기자(교회와신앙, www.amennews.com)에게 말했다. 지난 주말 동두천 복싱체육관에서 만난 전 관장은 자신이 바로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전 관장의 부인이었던 권 모씨(52)가 새빛등대중앙교회의 김풍일 씨(예장 성경총회 총회장. <교회와신앙> 2008년 4월 7일자 “해 아래 새 것 없다 신천지의 계보” 기사 참고)에게 흠뻑 빠져 서울 봉천동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김풍일 씨의 신도들은 서울 봉천동을 성지(聖地)로 삼고있다: 편집자주). 16살 난 아들과 함께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 관장의 복싱체육관은 최근 문을 닫아야 할 형편에 놓이게 됐다. 지난 1월 시합을 마치고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한 고(故) 최요삼 선수의 사고 여파로 훈련생들이 모두 떠났기 때문이다. 전 관장은 “모든 분노가 이제 김풍일에게로만 향한다”고 말했다.

“아내가 김풍일에게 간 것은 2002년부터였어요. 처음에는 서울 도봉구 창동의 신천지교회(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 총회장 이만희)에서 성경공부를 했었는데, 얼마 되지 않아 봉천동의 김풍일에게로 가더군요. 왜 봉천동까지 가느냐고 했더니, ‘신천지가 비유풀이의 호수라면 김풍일은 바다’라고 합디다.”

전 관장은 약 5년여 동안 아내와의 힘겨운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르던 고지식한 아내는 언제부터인가 이것저것 속이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아예 봉천동으로 ‘출근’을 했다.

“아내에게 도대체 왜 꼭 김풍일이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김풍일 목사님은 재림예수님’이라는 어이없는 대답이 돌아오더군요.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했습니다. 김풍일은 자칭 ‘보혜사’, ‘가지 사명자’라며 한국에 지상낙원이 이루어지게 된다고 주장하는 인물이에요. 신천지와 유사한 비유풀이를 일삼는 김풍일 역시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사실을 많은 분들이 알아야합니다.”

전 관장은 비유풀이에 점점 깊이 빠져드는 아내와 아들을 설득할 목적으로 김풍일 씨의 ‘입문과정’을 수강하기도 했다. 봉천동 새빛등대중앙교회 대강당에서 김 씨는 자신을 ‘새 언약의 비밀을 아는 자’, ‘이긴 자’, ‘인 떼는 자’ 등으로 소개하며 새언약의 비밀을 알아야 구원받는 것처럼 주장했다. “피가 거꾸로 솟구쳤다”고 당시 심정을 표현한 전 관장은 3주가 지나자 더 이상 들어줄 수가 없어 “도저히 못가겠다”며 포기했다. 그러자 돌아온 아내의 대답은 “지옥이나 가!”였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그럭저럭 5년여를 버틴 2007년. 아내는 갑자기 이혼서류를 전 관장에게 들고 와 도장을 요구했다.

“새빛등대중앙교회에는 이혼한 사람들만 멤버십이 되는 ‘제사장 과정’이라는 것이 있어요. 계시록과 선지서를 특별 강의하는 일종의 특별 훈련 프로그램인데 그 교단의 신학과정과 별도로 목회자가 되는 과정이에요. 아내는 그 과정을 마치고 14만 4천명의 목회자가 되겠다는 겁니다. 그곳에 서류가 필요하니 도장 찍으라는 거죠.”

지칠 대로 지쳐있던 전 관장은 순순히 이혼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전 관장은 새빛등대교회의 지교회가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30여 개였던 새빛교회 지교회가 지난 2007년 한 해에만도 엄청 늘어났어요. 제가 입문과정 들으러 갔을 때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새빛등대중앙교회의 버스에 올랐거든요. 그 숫자가 엄청납니다. 최근에 이만희의 신천지 쪽 사람들이 대거 김풍일 쪽으로 오고 있다고 했어요.”

전 관장의 이 같은 주장은 어느 정도 사실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실제 김풍일 씨측에서 2007년에만 102개의 지교회를 확장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김 씨측은 2005년 4월부터 발행하고 있는 <월간 참포도나무>의 2008년 1월호 ‘김풍일 목사 설교코너’에서 “2007년~2011년, 전국 주요도시에 1천개 교회 창립을 계획하고 있으며 2007년에만 102개의 교회를 창립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터뷰 내내 김풍일 씨와 아내를 원망하던 전 관장은 끝내, 아내가 김 씨의 비유풀이에 빠진 것은 자신 때문이라고 자책했다. 자신이 아내를 향해 치솟는 분노를 잘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금 더 사랑으로 아내를 끌어안고 인내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전 관장의 눈시울이 서서히 붉어졌다.

“아내는 녹내장을 앓고 있어요. 그로인해 한 쪽 눈은 임신 초기에 완전히 실명되어 빛도 볼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남은 한 쪽 눈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제 분노의 희생제물이 되었던 아내와 아이에게 말할 수 없는 연민의 정을 느끼며 다시 한 번 용서를 구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전 관장은 “앞으로 저에게 허락된 삶의 고통들을 자원삼아 마음이 아픈 이들과 함께 울고 고통하며 그들을 일으키는 일에 힘쓰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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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사이비들은 가정을 파괴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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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아래 스크랩글<<에도 나와 있듯이, 성경이 예언하는 종말의 세계는 "암울"하다. 성경 말씀에 의하면, 종말이 다가올수록 크리스천들에게는 환난과 핍박이 심해질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환난과 핍박 중에서도 우리를 보호하시며, 피할 길을 주시며,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분이시지만, 어쨌든 성경 예언은 반드시 성취될 것이다.

말세(지말)에 대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들을 몇가지만 한번 살펴 보자.

  •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24:9)
  •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라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거늘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 (마가복음 13:20)
  •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요한계시록 17:6)
  • (짐승이)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요한계시록 13:6-7)
  • (흰 옷 입은 자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요한계시록 7:9-14)
  •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요엘 2:32)

또한 성경은, 적그리스도의 미혹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될 것을 경고하고 있다:

  •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마태복음 24:24)
  •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데살로니가후서 2:3)
  •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마가복음 13:6)

이렇게 명백하게 성경이 크리스천들의 환난과 핍박과 미혹을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늦은비/신사도 운동가들은 한결같이 무지개빛 "킹덤나우(위대한 하나님의 나라를 지금 이 땅에)"를 외치고 있다. 그들에 따르면, 그들이 주축이 되는 위대한 정복(추수)군대가 일어나 대부흥과 대추수를 이루고 이 땅을 하나님의 왕국으로 변혁(트랜스포메이션)시킨 후에 그리스도를 맞이한다는 것이다. 킹덤나우(Kingdom Now) 또는 왕권주의(Dominionism))라고 불리는 그릇된 승리주의에 도취된 그들의 사상이 얼마나 성경 예언과는 정반대의 것인지 보기 위해서 다음 그들의 주장을 위의 성경 예언과 대비해 보려고 한다.


(조금 지난 이야기이지만) 새천년을 맞이하기 한달 전, "예언적 장로들의 새천년 사도 위원회"가 열렸다. 이 "사도 위원회"의 참석자는 피터 와그너를 비롯해서, 신디 제이콥스, 더치 쉬츠, 토미 테니, 마이크 비클, 척 피어스와 짐 골 등이었으며, 거기서는 다음과 같은 "예언"들이 주어졌다. 다음은 사도위원회 멤버였던 짐 골이 엘리야 리스트에 제출한 보고서 "새천년에 들어가며"의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유대인들의 위대한 추수가 있을 것이다... 젊은이들의 위대한 부흥이 있을 것이다... 새로운 표적과 기사의 운동이 오고 있다... 이 운동의 특징의 하나는 죽은 자를 일으키는 것이다. 이것은 열매 없는 교회를 종식시킬 것이며, 이런 위대한 소출은 도시 전체가 그리스도를 향하게 하고 변혁되도록 할 것이다... 이 하나님의 운동은 너무나 강력해서 교회는 대형 경기장을 채우는 예배로 모일 것이다... 많은 여성들이 오중사역 속에서 풀릴 것이며, 그들은 다가오는 위대한 세계적 부흥에 사용될 것이다... 하나님은 정부를 흔들 것이다. 통치자들은 영광의 주께 무릎 꿇을 것이며, 그들의 나라들을 주 예수 그리스도께 바칠 것이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권위 하에 하나님의 왕국의 정부(통치)가 도시와 나라들에 수립될 것이다... (비지니스와 사회의 기타 영역을 위해 사도적 기름부음을 받은) 일터 사도(시장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엄청난 부의 이동이 하나님의 나라 속으로 이동하는 것을 불 것이다.

우리 나라에도 물론 이런 교설을 주장하는 운동이 있다. 일례로:

예수 군대는 그리스도의 재림과 직결된다. 예수 군대가 일어나야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 신부의 세대, 순교의 세대, 군대의 세대. 전 세계적으로 네트워킹이 되어 세계적인 무브먼트로 갈 것이다... 요엘서 2장에는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권능의 군대가 나온다. 마지막 때를 위해 이미 성경에 예언된 군대 운동이다. 에스더기도운동이 Jesus Army Movement로 이어지고, 이 무브먼트가 세계적으로 연합해서 모든 나라를 뒤덮으면 그 다음에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key이다. 다윗의 열쇠이다.

이 엄청난 격차를 가진, 양립 불가능한 두 개의 예언들 중에서 우리는 하나를 골라야만 한다.

환난과 박해 속에 남겨지는 교회인가? 대부흥으로 사회를 변혁시키고 승리하는 교회인가?

성경 예언인가? 아니면 신사도들의 예언인가?

p.s.

피터 와그너 그룹과 YWAM, CCC 등이 함께 추진하는 "7권역론(Seven Mountains)"과 "전략적 레벨의 영적전투"의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지역별/분야별) 대적의 견고한 진을 파하고 지역사회를 점령해서 예수께 바친다는 전략적 중보기도운동, 사회변혁운동, 성시화운동 등도 모두 킹덤나우 운동의 일환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서:

Entering The New Millennium<<

왜 성철스님은 천추의 한을 안고 떠났나?

왜 성철스님은 천추의 한을 안고 떠났나?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FvCOBuAAvAk$

성철스님의 유언

내 죄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내 어찌 감당하랴.

내가 80년 동안 포교한 것이 헛것이로다.

우리는 구원이 없다.

죄 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딸 '필히'와 54년을 단절하고 살았는데 죽을 임종시 찾게 되었다.
'필히'야 내가 잘못했다.

내 인생을 잘 못 선택했다.

나는 지옥에 간다.


초인적인 극기 수행과 용맹정진을 통해서 큰 깨달음을 얻어

성불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성철 스님, 그러나 그는 마지막에

"한평생 남녀무리를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속인 죄가 너무 커 지옥에 떨어진다" 고

회한으로 몸부림치며 천추의 한을 토로했다.

과연 그가 도달한 깨달음의 실체는 무엇인가?


성철스님의 열.반.송.
근거 (조선일보 1993.11.15  15면, 동아일보 1993.11.5  31면.
        경향신문 1993.11.5  9면, 중앙일보 1993.11.5  23면), 도서출판[삶과 꿈]류범상


生平基 俇 男女群 (생평기광 남여군) 한평생 무수한 사람들을 속였으니

彌天罪業 過須彌 (미천죄업 과수미) 그 죄업이 하늘에 가득 차 수미산보다 더 하다

活陷阿鼻 恨萬端 (활함아비 한만단) 산채로 무한 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이니

一輪吐紅 掛碧山 (일윤토홍 괘벽산) 한 덩이 붉은 해 푸른 산에 걸려 있다.

 

성불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성철스님


성철스님은 일찍이 불교가 최상의 진리라고 믿고 큰 깨달음을 얻어 해탈성불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부처가 됨) 하고자 1934년 23세 때에 부모, 형제, 처자 다 버리고 출가, 입산하여 1993년 81세로 타계하기까지 오직 참선과 학문으로 일관한 최고의 선승이요, 학승이다.


그는 한때 8년간을 드러눕지 않고 장좌불와의 초인적인 극기수행을 하기도 하고, 또 한때는 10년간을 사람의 근접을 막기 위해 임자 주위에 철망을 쳐놓고 오직 홀로 용맹정진을 하기도 했다. 이는 참으로 세계 불교사에서도 보기 힘든,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극기수행과 용맹정진이다.


그리하여 그는 큰 깨우침을 얻어 견성성불(자기 본성을 깨달으면 부처가 됨)의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8백년간이나 이어져 오는 조계종의 선법의 법통인 "깨우침은 점진적으로 된다." 는『돈오점수론』을 비판하고 "깨우침은 단번에 된다."고『돈오돈수론』을 주장했다.


이는 그의 깨달음의 경지가 과연 어떤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성철스님은 불교사상 보기 힘든 학승중의 학승이다. 그는 불교의 교의학을 거의 통달하였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현대학문인 서양철학이나 심리학이나 종교학이나 문리학 등도 널리 섭렵하였으며, 또한 영어, 독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도 효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참으로 성철스님은 불교사에 보기 힘든 최고의 선승이요, 학승이다.


그러므로 성철스님은 한국불교계의 큰 보배요, 위대한 지도자이다.

그래서 그는 온 불자들의 존경과 선망을 한몸에 받았었다. 그러므로 지금도 불자들은 그를 "우리 곁에 왔던 부처" 라고 추앙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성철스님은 말년에 와서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내심 말못하는 갈등으로 괴로워하며 방황하다가 결국은 마지막에 회한으로 몸부림치며 천추의 한을 안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면 그가 말년에 무엇을 깨달았는지 , 왜 천추의 한을 안고 세상을 떠났는지,

그의 말을 들어 보자.

☞ 퇴옹당 성철 큰 스님


① "내 말에 속지 마라" (성철스님의 말)


1993년 11월 4일 처음 출가한 그방 퇴설당에서 열반에 들다
그러나 큰 스님은 삼십 년 남짓 한결같이 다니던 가야산 포행길을

언제부터인지 힘겨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야산 호랑이도 한 자락 가사 밑에 어느덧 80대의 노구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스님, 한 말씀만 여쭈겠습니다."
"뭐를?"
"일천 삼백만 불자가 있는데 그 불자들에게 한 말씀만."
"한 말씀만?"
"내말에 속지 마라."
"자신의 말에 속지 마라."
"내 말 . . . . ? "
"내 말 말이여. 내 말한테 속지 말어. 나는 늘 거짓말만 하니까."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내 말에 속지 마라, 그 말이여."


1993년 9월에 당신의 저서인 '성철스님 법어집'11권과 선종의 종지를 담은 '선림고경총서' 37권이

완간되는 것을 보고나서 두 달만인 그 해 11월 4일 아침에 성철 큰 스님은 열반하였습니다.

"내말에 속지마라" 는 말을 던져주고는 영영 우리 곁을 떠난 것입니다.

그날 새벽, 해인사 퇴설당에서 제자들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큰 스님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참선 잘하라 !" 그 한 말씀이 마지막 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제자 어깨에 몸을 기대었습니다.

처음 출가한 그 방에서 마지막 열반에 드니,

행운유수(行雲遊水)의 사문의 길에서 보기 드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법랍 59년, 세수 82세로 큰 스님은 열반 게송을 남기고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 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 지라 둥근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마침내 생사를 벗어나 적멸에 든 큰 스님은 입적한 지 이레째 날 평생을 주석한 해인사 퇴설당을 떠나서 일주문 밖에 마련된 연화대로 향하였습니다. 그날, 퇴설당 위로는 일시에 새떼가 날고, 다비장에서는 때늦은 낙엽들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스님 떠나던 그 날도 그러더니, 백련암 뒷산 하늘에서는 마치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환한 빛이 피어올랐습니다. 이는 드물게 보는 방광이었습니다.

그리고 서른 시간이 넘게 걸린 다비는 일백여 과에 이르는 영롱한 사리를 남겼습니다.

다비식에서 사십구재에 이르는 동안 큰 스님의 떠남을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뭇 대중의 발길은

해인사 앞뜰을 가득 메우며 끊일 줄 몰랐습니다.


② 사탄이여! 어서오십시요. (성철스님의 글)


성철스님은 조계종 종정으로 있던 1987년 "부처님 오신 날" 법어에서

"사단이여! 어서 오십시요, 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합니다. 당신은 본래 부처님입니다." 라고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 조선일보-1987.4.23 7면, 경향신문-1987.4.23 9면
*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사서실 [큰빛총서 1]-서울사시연 1994년 p.56-59


물속에서 물을 찾는다. 사탄이여 ! 어서오십시요.
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합니다. 당신은 본래로 거룩한 부처님입니다.
사탄과 부처란 허망한 거짓 이름일 뿐 본모습은 추호도 다름이 없읍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미워하고 싫어하지만 그것은 당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부처인줄 알 때에 착한 생각, 악한 생각, 미운 마음, 고운 마음 모두 사라지고
거룩한 부처의 모습만 뚜렷이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악마와 성인을 다같이 부처로 스승으로 부처로 부모로 섬기게 됩니다.

여기에서는 모든 대립과 갈등은 다 없어지고

이 세계는 본래로 가장 안락하고 행복한 세계임을 알게됩니다.
일체의 불행과 불안은 본래 없으니 오로지 우리의 생각에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나아갈 가장 근본적인 길은 거룩한 부처인 당신의 본 모습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당신을 부처로 바로 볼때에 온 세계는 본래 부처로 충만해 있음을 알게됩니다.

더러운 뻘밭 속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가득피어 있으니 참으로 장관입니다.

아 ! 이 얼마나 거룩한 진리입니까 .

이 진리를 두고 어디에서 따로 진리를 구하겠습니까.

이 밖에서 진리를 찾으면 물속에서 불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을 부처로 바로볼때 인생의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됩니다.

선과 악으로 모든 것을 상대할 때 거기에서 지옥이 불타게 됩니다.

선.악의 대립이 사라지고 선.악이 융화상통할 때에
시방세계에 가득히 피어있는 연꽃을 바라보게 됩니다.

연꽃 마다 부처요 극락세계 아님이 없으니

이는 사탄의 거룩한 본 모습을 바로 볼 때입니다.


1987. 사월초파일

위 글에 당황한 불교측에서는 사탄이 아닌 적불을 성철이 잘못 말했다고 둘러대기 바쁘다.

사탄이 아닌 적불이었다면 왜 굳이 '적불'이라는 단어를 피하고 그 박식하신 분이

'사탄'이라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단어를 반복해서 썼겠는가?

악마라는 말도 나오는데 악마도 적불인가?


도대체 그가 무엇을 속였단 말인가! 

그는 평생 자기 자신도 속아서 거짓말을 최상의 진리인 줄 알고

한 평생 남녀무리를 속여 지옥에 떨어지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무서운 죄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뿐인가! 속고 속이고 한없이 이어질 것이니, 그 엄청난 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러므로 그는 임종을 앞에 두고 어느 날

푸른 산에 걸려 있는 곧 떨어질 이글이글 불타는 붉은 석양을 바라보며

가야 할 아비의 불지옥을 생각하고 회한으로 몸부림치며 천추의 한을 토로한 것이다.  

그런데 불교지도자들은 순진한 불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기를

그것은 성철스님의 겸손을 나타낸 것이라고 회유하고 호도하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세상을 속인 죄가 너무 커서 지옥에 떨어지니 한이 만 갈래나 된다”고

천추의 한을 토로한 것이 겸손을 나타낸 것이란 말인가!

사실 성철스님의 열반송은 과연 불교가 어떤 종교인가 하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다.

평생 그가 주장하고 가르친 것은 불교가 최상의 진리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찍이 불교가 최상의 진리라고 믿고 불교에 귀의했고, 그리고 펴생 그렇게 믿고 주장하고 살았다.

그러므로 그의 평생의 모든 화두와 법어와 교설과 주장은 그것에 대한 설명이요, 해설이요, 논증이다.

다만 살을 붙인 것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불교가 거짓말이라는 말인가?

사실 성철스님의 "평생에 남녀무리를 속인 죄가 너무 커서 지옥에 떨어지니 한이 만 갈래나 된다“는

회한과 통탄의 고백과 토로는 본인이 그것을 의식하고 했건, 의식하지 못하고 했건

그것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그러면 정말 불교의 중요한 교리와 주장이 거짓말인가? 
 

물론 불교의 삶의 교훈은 옳은 것이 많다.

그러나 사실인즉 불교의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주장과 교리는 유감스럽게도 거짓말이다.

그것들이 왜 거짓말인가는 앞으로 제3부에서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인류공통적인 체험법칙을 통해서,

인간 속에 있는 내적 증거를 통해서 검증, 확인해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불교는 수양이다, 선행이다 하는 근사한 포장으로 위장한 고차원적인 유사진리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하면 그것이 최상의 진리인 줄 감쪽같이 속는다.

그러나 진리의 빛으로 정확하게 조명해 보면 그 정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진리가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전래되는 종교문화와 그 역사로 인해

올바른 진리를 접할 기회가 없어,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말인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잘못된 전통신앙을 진리인 줄 잘못 알고 그대로 답습하며 붙들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사람이 애초에 어떤 길에 발을 들여놓느냐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세상에 길은 많고, 길마다 진리라고 근사하게 위장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다(잠 14: 12)
 

그러므로 성철스님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쉽고 안타깝다.

만일 그와 같은 수행자가 애초에 참진리의 길,

곧 생명의 길에 발을 들여놓고 평생에 그런 노력과 수고를 했다면 얼마나 보람이 있었겠는가!

그랬다면 자기 자신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을 위하는 가치있는 삶 속에

그가 기쁨과 감사함으로 소망가운데 살다가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릴 것이 아닌가!

그런데 한평생 남녀무리를 속인 죄가 너무 커서 지옥에 떨어진다고 회한으로 몸부림치며

천추의 한을 안고 세상을 떠났으니, 이 무슨 비극인가!


무릇 이 나무는 사람이 화목을 삼는 것이어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더웁게도 하고 그것으로 불을 피워서 떡을 굽기도하고,

그것으로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기도 하는구나.

(이사야 44: 15) - 지금부터 2700년 전 기사 -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잇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

(시편 115: 4-8) - 지금부터 3000년전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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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의 마지막 운명 전 지은 깨달음의 시 (운명 전 지옥의 석가를 보고 쓴 성철의 시)


석가는 원래 큰 도적이요, 달마는 작은 도적이다. 서천(西天)에 속이고 동토(東土)에 기만하였네,

도적이여 도적이여!
저 한없이 어리석은 남여를 속이고, 눈을 뜨고 당당하게 지옥으로 들어가네

한마디 말이 끊어지니 일천성의 소리가 사라지고, 한칼을 휘두르니 만리에 송장이 즐비하다

알든지 모르든지 상신실명을 면치 못하리니, 말해보라 이 무슨 도리인가

작약꽃에 보살의 얼굴이 열리고, 종녀잎에 야차의 머리가 나타난다

목위의 무쇠간은 무게가 일곱근이요, 발밑의 지옥은 괴로움이 끝없도다

석가와 미타는 뜨거운 구리 쇳물을 마시고, 가섬과 아난은 무쇠를 먹는다

몸을 날려 백옥 난간을 쳐부수고, 손을 휘둘러 황금 줄을 끊어버린다

산이 우뚝우뚝 솟음이여 물은 느릿느릿 흐르며, 잣나무 백빽함이여 바람이 씽씽분다

사나운 용이 힘차게 나니 푸른 바다가 넓고, 사자가 고함지르니 조각 달이 높이 솟았네

알겠느냐?

1 2 3 4 5 6 7 이여 두견새 우는곳에 꽃이 어지럽게 흩어졌네 억!--- ”


그리고는 "억-!" 소리와 함께 운명하였습니다.

위의 시는 성철의 운명전 시사저널 김당기자가 취재해 온 것이며, 이 시는 추상적인 시가 아니라

성철스님이 운명전 영계를 직접보고 그리고 지옥의 석가와 달마와 가섬과 아난이

지옥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싯구로 잘 묘사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영계에서 직접 보지 않고는 자기가 평생 섬겼던 석가를 도적이라 말할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불교에서 극락간다는 말은 원래 성경 시편 43편 4절에 기록되어 있으며

"내가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하였다.

극락은 천국의 낙원을 말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을 받는 자들이 가는 곳이며

석가와 달마도 극락을 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져 괴로워하고 있는 모습을

성철스님이 영계속에서 직접보고 시로 옮긴 것이다.


"좋은 씨와 맑은 물" 이라는 책에서 발췌한 글


불교속에 석가의 가르침이 사라저 버렸다.

5세기경 중국을 통해 경도가 우리나라에  들어올때는 ,,

이 예언의 말씀이 주된 설교나 설파의  핵심이었을 것이다.

부록 6번에 있는 석가모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불경 나마다경 38:8 (구례 화엄사 발췌)에 보면 다음과 같은 석가모니의 예언적인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구려 신라시대의 "경도" 전파 당시 라마의 의미를 찾아 보면 이 예언이 주는 확실한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이 예언의 말은 라마와 불교와의 융합 이전 경도 전파자의 글임을 알게 되며,,,,

이 전파자는 그 당시 가장 존경받은 석가모니도 조차도 자신은 선각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며,,,

내 뒤에 반드시 구원을 베푸는 분이 오심을 예언한 글을 당연히 기록해서 문서로 남기고,,,

가르쳤을 것이다. 석가의 가르침을 그대로 가감없이 전하고픈 진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 글을 무시하고,,,,

부처의 형상을 만들어 사바대중을 지금까지 속여온 것이다,,,,

불경속에 나마다경은 아예 없었다고 하면서,,,,

何時爺蘇來 吾道無油之 燈也 (하시야소래 오도무유지등야)

'야소'는 예수란 말로 이는 놀랍게도

<
왜 성철스님은 천추의 한을 안고 떠났나?

왜 성철스님은 천추의 한을 안고 떠났나? 

 

성철스님의 유언

내 죄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내 어찌 감당하랴.

내가 80년 동안 포교한 것이 헛것이로다.

우리는 구원이 없다.

죄 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딸 '필히'와 54년을 단절하고 살았는데 죽을 임종시 찾게 되었다.
'필히'야 내가 잘못했다.

내 인생을 잘 못 선택했다.

나는 지옥에 간다.


초인적인 극기 수행과 용맹정진을 통해서 큰 깨달음을 얻어

성불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성철 스님, 그러나 그는 마지막에

"한평생 남녀무리를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라고 속인 죄가 너무 커 지옥에 떨어진다" 고

회한으로 몸부림치며 천추의 한을 토로했다.

과연 그가 도달한 깨달음의 실체는 무엇인가?


성철스님의 열.반.송.
근거 (조선일보 1993.11.15  15면, 동아일보 1993.11.5  31면.
        경향신문 1993.11.5  9면, 중앙일보 1993.11.5  23면), 도서출판[삶과 꿈]류범상


生平基 俇 男女群 (생평기광 남여군) 한평생 무수한 사람들을 속였으니

彌天罪業 過須彌 (미천죄업 과수미) 그 죄업이 하늘에 가득 차 수미산보다 더 하다

活陷阿鼻 恨萬端 (활함아비 한만단) 산채로 무한 지옥에 떨어져 그 한이 만 갈래이니

一輪吐紅 掛碧山 (일윤토홍 괘벽산) 한 덩이 붉은 해 푸른 산에 걸려 있다.

 

성불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성철스님


성철스님은 일찍이 불교가 최상의 진리라고 믿고 큰 깨달음을 얻어 해탈성불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부처가 됨) 하고자 1934년 23세 때에 부모, 형제, 처자 다 버리고 출가, 입산하여 1993년 81세로 타계하기까지 오직 참선과 학문으로 일관한 최고의 선승이요, 학승이다.


그는 한때 8년간을 드러눕지 않고 장좌불와의 초인적인 극기수행을 하기도 하고, 또 한때는 10년간을 사람의 근접을 막기 위해 임자 주위에 철망을 쳐놓고 오직 홀로 용맹정진을 하기도 했다. 이는 참으로 세계 불교사에서도 보기 힘든,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극기수행과 용맹정진이다.


그리하여 그는 큰 깨우침을 얻어 견성성불(자기 본성을 깨달으면 부처가 됨)의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8백년간이나 이어져 오는 조계종의 선법의 법통인 "깨우침은 점진적으로 된다." 는『돈오점수론』을 비판하고 "깨우침은 단번에 된다."고『돈오돈수론』을 주장했다.


이는 그의 깨달음의 경지가 과연 어떤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성철스님은 불교사상 보기 힘든 학승중의 학승이다. 그는 불교의 교의학을 거의 통달하였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현대학문인 서양철학이나 심리학이나 종교학이나 문리학 등도 널리 섭렵하였으며, 또한 영어, 독어, 프랑스어, 중국어, 일본어도 효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참으로 성철스님은 불교사에 보기 힘든 최고의 선승이요, 학승이다.


그러므로 성철스님은 한국불교계의 큰 보배요, 위대한 지도자이다.

그래서 그는 온 불자들의 존경과 선망을 한몸에 받았었다. 그러므로 지금도 불자들은 그를 "우리 곁에 왔던 부처" 라고 추앙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성철스님은 말년에 와서 새로운 사실을 깨닫고 내심 말못하는 갈등으로 괴로워하며 방황하다가 결국은 마지막에 회한으로 몸부림치며 천추의 한을 안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면 그가 말년에 무엇을 깨달았는지 , 왜 천추의 한을 안고 세상을 떠났는지,

그의 말을 들어 보자.

☞ 퇴옹당 성철 큰 스님


① "내 말에 속지 마라" (성철스님의 말)


1993년 11월 4일 처음 출가한 그방 퇴설당에서 열반에 들다
그러나 큰 스님은 삼십 년 남짓 한결같이 다니던 가야산 포행길을

언제부터인지 힘겨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가야산 호랑이도 한 자락 가사 밑에 어느덧 80대의 노구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스님, 한 말씀만 여쭈겠습니다."
"뭐를?"
"일천 삼백만 불자가 있는데 그 불자들에게 한 말씀만."
"한 말씀만?"
"내말에 속지 마라."
"자신의 말에 속지 마라."
"내 말 . . . . ? "
"내 말 말이여. 내 말한테 속지 말어. 나는 늘 거짓말만 하니까."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내 말에 속지 마라, 그 말이여."


1993년 9월에 당신의 저서인 '성철스님 법어집'11권과 선종의 종지를 담은 '선림고경총서' 37권이

완간되는 것을 보고나서 두 달만인 그 해 11월 4일 아침에 성철 큰 스님은 열반하였습니다.

"내말에 속지마라" 는 말을 던져주고는 영영 우리 곁을 떠난 것입니다.

그날 새벽, 해인사 퇴설당에서 제자들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고 큰 스님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참선 잘하라 !" 그 한 말씀이 마지막 이었습니다. 그러고는 제자 어깨에 몸을 기대었습니다.

처음 출가한 그 방에서 마지막 열반에 드니,

행운유수(行雲遊水)의 사문의 길에서 보기 드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법랍 59년, 세수 82세로 큰 스님은 열반 게송을 남기고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을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채로 무간 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갈래나 되는 지라 둥근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마침내 생사를 벗어나 적멸에 든 큰 스님은 입적한 지 이레째 날 평생을 주석한 해인사 퇴설당을 떠나서 일주문 밖에 마련된 연화대로 향하였습니다. 그날, 퇴설당 위로는 일시에 새떼가 날고, 다비장에서는 때늦은 낙엽들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스님 떠나던 그 날도 그러더니, 백련암 뒷산 하늘에서는 마치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환한 빛이 피어올랐습니다. 이는 드물게 보는 방광이었습니다.

그리고 서른 시간이 넘게 걸린 다비는 일백여 과에 이르는 영롱한 사리를 남겼습니다.

다비식에서 사십구재에 이르는 동안 큰 스님의 떠남을 진심으로 아쉬워하는 뭇 대중의 발길은

해인사 앞뜰을 가득 메우며 끊일 줄 몰랐습니다.


② 사탄이여! 어서오십시요. (성철스님의 글)


성철스님은 조계종 종정으로 있던 1987년 "부처님 오신 날" 법어에서

"사단이여! 어서 오십시요, 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합니다. 당신은 본래 부처님입니다." 라고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 조선일보-1987.4.23 7면, 경향신문-1987.4.23 9면
*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사서실 [큰빛총서 1]-서울사시연 1994년 p.56-59


물속에서 물을 찾는다. 사탄이여 ! 어서오십시요.
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합니다. 당신은 본래로 거룩한 부처님입니다.
사탄과 부처란 허망한 거짓 이름일 뿐 본모습은 추호도 다름이 없읍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미워하고 싫어하지만 그것은 당신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부처인줄 알 때에 착한 생각, 악한 생각, 미운 마음, 고운 마음 모두 사라지고
거룩한 부처의 모습만 뚜렷이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악마와 성인을 다같이 부처로 스승으로 부처로 부모로 섬기게 됩니다.

여기에서는 모든 대립과 갈등은 다 없어지고

이 세계는 본래로 가장 안락하고 행복한 세계임을 알게됩니다.
일체의 불행과 불안은 본래 없으니 오로지 우리의 생각에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나아갈 가장 근본적인 길은 거룩한 부처인 당신의 본 모습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당신을 부처로 바로 볼때에 온 세계는 본래 부처로 충만해 있음을 알게됩니다.

더러운 뻘밭 속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가득피어 있으니 참으로 장관입니다.

아 ! 이 얼마나 거룩한 진리입니까 .

이 진리를 두고 어디에서 따로 진리를 구하겠습니까.

이 밖에서 진리를 찾으면 물속에서 불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을 부처로 바로볼때 인생의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됩니다.

선과 악으로 모든 것을 상대할 때 거기에서 지옥이 불타게 됩니다.

선.악의 대립이 사라지고 선.악이 융화상통할 때에
시방세계에 가득히 피어있는 연꽃을 바라보게 됩니다.

연꽃 마다 부처요 극락세계 아님이 없으니

이는 사탄의 거룩한 본 모습을 바로 볼 때입니다.


1987. 사월초파일

위 글에 당황한 불교측에서는 사탄이 아닌 적불을 성철이 잘못 말했다고 둘러대기 바쁘다.

사탄이 아닌 적불이었다면 왜 굳이 '적불'이라는 단어를 피하고 그 박식하신 분이

'사탄'이라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단어를 반복해서 썼겠는가?

악마라는 말도 나오는데 악마도 적불인가?


도대체 그가 무엇을 속였단 말인가! 

그는 평생 자기 자신도 속아서 거짓말을 최상의 진리인 줄 알고

한 평생 남녀무리를 속여 지옥에 떨어지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 무서운 죄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뿐인가! 속고 속이고 한없이 이어질 것이니, 그 엄청난 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그러므로 그는 임종을 앞에 두고 어느 날

푸른 산에 걸려 있는 곧 떨어질 이글이글 불타는 붉은 석양을 바라보며

가야 할 아비의 불지옥을 생각하고 회한으로 몸부림치며 천추의 한을 토로한 것이다.  

그런데 불교지도자들은 순진한 불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기를

그것은 성철스님의 겸손을 나타낸 것이라고 회유하고 호도하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세상을 속인 죄가 너무 커서 지옥에 떨어지니 한이 만 갈래나 된다”고

천추의 한을 토로한 것이 겸손을 나타낸 것이란 말인가!

사실 성철스님의 열반송은 과연 불교가 어떤 종교인가 하는 아주 중요한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다.

평생 그가 주장하고 가르친 것은 불교가 최상의 진리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일찍이 불교가 최상의 진리라고 믿고 불교에 귀의했고, 그리고 펴생 그렇게 믿고 주장하고 살았다.

그러므로 그의 평생의 모든 화두와 법어와 교설과 주장은 그것에 대한 설명이요, 해설이요, 논증이다.

다만 살을 붙인 것뿐이다.  

그렇다면 과연 불교가 거짓말이라는 말인가?

사실 성철스님의 "평생에 남녀무리를 속인 죄가 너무 커서 지옥에 떨어지니 한이 만 갈래나 된다“는

회한과 통탄의 고백과 토로는 본인이 그것을 의식하고 했건, 의식하지 못하고 했건

그것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그러면 정말 불교의 중요한 교리와 주장이 거짓말인가? 
 

물론 불교의 삶의 교훈은 옳은 것이 많다.

그러나 사실인즉 불교의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주장과 교리는 유감스럽게도 거짓말이다.

그것들이 왜 거짓말인가는 앞으로 제3부에서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인류공통적인 체험법칙을 통해서,

인간 속에 있는 내적 증거를 통해서 검증, 확인해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불교는 수양이다, 선행이다 하는 근사한 포장으로 위장한 고차원적인 유사진리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하면 그것이 최상의 진리인 줄 감쪽같이 속는다.

그러나 진리의 빛으로 정확하게 조명해 보면 그 정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진리가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전래되는 종교문화와 그 역사로 인해

올바른 진리를 접할 기회가 없어,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거짓말인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잘못된 전통신앙을 진리인 줄 잘못 알고 그대로 답습하며 붙들고 살아간다.

그러므로 사람이 애초에 어떤 길에 발을 들여놓느냐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세상에 길은 많고, 길마다 진리라고 근사하게 위장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다(잠 14: 12)
 

그러므로 성철스님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쉽고 안타깝다.

만일 그와 같은 수행자가 애초에 참진리의 길,

곧 생명의 길에 발을 들여놓고 평생에 그런 노력과 수고를 했다면 얼마나 보람이 있었겠는가!

그랬다면 자기 자신 뿐 아니라 많은 사람을 위하는 가치있는 삶 속에

그가 기쁨과 감사함으로 소망가운데 살다가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릴 것이 아닌가!

그런데 한평생 남녀무리를 속인 죄가 너무 커서 지옥에 떨어진다고 회한으로 몸부림치며

천추의 한을 안고 세상을 떠났으니, 이 무슨 비극인가!


무릇 이 나무는 사람이 화목을 삼는 것이어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더웁게도 하고 그것으로 불을 피워서 떡을 굽기도하고,

그것으로 신상을 만들어 숭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기도 하는구나.

(이사야 44: 15) - 지금부터 2700년 전 기사 -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잇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

(시편 115: 4-8) - 지금부터 3000년전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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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의 마지막 운명 전 지은 깨달음의 시 (운명 전 지옥의 석가를 보고 쓴 성철의 시)


석가는 원래 큰 도적이요, 달마는 작은 도적이다. 서천(西天)에 속이고 동토(東土)에 기만하였네,

도적이여 도적이여!
저 한없이 어리석은 남여를 속이고, 눈을 뜨고 당당하게 지옥으로 들어가네

한마디 말이 끊어지니 일천성의 소리가 사라지고, 한칼을 휘두르니 만리에 송장이 즐비하다

알든지 모르든지 상신실명을 면치 못하리니, 말해보라 이 무슨 도리인가

작약꽃에 보살의 얼굴이 열리고, 종녀잎에 야차의 머리가 나타난다

목위의 무쇠간은 무게가 일곱근이요, 발밑의 지옥은 괴로움이 끝없도다

석가와 미타는 뜨거운 구리 쇳물을 마시고, 가섬과 아난은 무쇠를 먹는다

몸을 날려 백옥 난간을 쳐부수고, 손을 휘둘러 황금 줄을 끊어버린다

산이 우뚝우뚝 솟음이여 물은 느릿느릿 흐르며, 잣나무 백빽함이여 바람이 씽씽분다

사나운 용이 힘차게 나니 푸른 바다가 넓고, 사자가 고함지르니 조각 달이 높이 솟았네

알겠느냐?

1 2 3 4 5 6 7 이여 두견새 우는곳에 꽃이 어지럽게 흩어졌네 억!--- ”


그리고는 "억-!" 소리와 함께 운명하였습니다.

위의 시는 성철의 운명전 시사저널 김당기자가 취재해 온 것이며, 이 시는 추상적인 시가 아니라

성철스님이 운명전 영계를 직접보고 그리고 지옥의 석가와 달마와 가섬과 아난이

지옥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싯구로 잘 묘사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영계에서 직접 보지 않고는 자기가 평생 섬겼던 석가를 도적이라 말할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불교에서 극락간다는 말은 원래 성경 시편 43편 4절에 기록되어 있으며

"내가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하였다.

극락은 천국의 낙원을 말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사함을 받는 자들이 가는 곳이며

석가와 달마도 극락을 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져 괴로워하고 있는 모습을

성철스님이 영계속에서 직접보고 시로 옮긴 것이다.


"좋은 씨와 맑은 물" 이라는 책에서 발췌한 글


불교속에 석가의 가르침이 사라저 버렸다.

5세기경 중국을 통해 경도가 우리나라에  들어올때는 ,,

이 예언의 말씀이 주된 설교나 설파의  핵심이었을 것이다.

부록 6번에 있는 석가모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불경 나마다경 38:8 (구례 화엄사 발췌)에 보면 다음과 같은 석가모니의 예언적인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구려 신라시대의 "경도" 전파 당시 라마의 의미를 찾아 보면 이 예언이 주는 확실한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이 예언의 말은 라마와 불교와의 융합 이전 경도 전파자의 글임을 알게 되며,,,,

이 전파자는 그 당시 가장 존경받은 석가모니도 조차도 자신은 선각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며,,,

내 뒤에 반드시 구원을 베푸는 분이 오심을 예언한 글을 당연히 기록해서 문서로 남기고,,,

가르쳤을 것이다. 석가의 가르침을 그대로 가감없이 전하고픈 진심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 글을 무시하고,,,,

부처의 형상을 만들어 사바대중을 지금까지 속여온 것이다,,,,

불경속에 나마다경은 아예 없었다고 하면서,,,,

何時爺蘇來 吾道無油之 燈也 (하시야소래 오도무유지등야)

'야소'는 예수란 말로 이는 놀랍게도

"언젠가 예수께서 오시면 내가 깨달은 도기름없는 등과 같이 쓸모가 없다" 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실제로 불경에 있는 내용으로,

석가가 입멸하기 전 최후로 한 설법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처럼 석가모니는 마지막에는 자신이 깨닫고 가르쳐왔던 불교의 모든 교리를 부정하고 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으로 태어난 인간의 삶을 살다간 사람들은 어느 누구든지 자신의 죄와 더욱 온 세상 사람들의 죄를 처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 자신도 도를 닦고 수행을 하며 선행을 하는 것으로는 자기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는 모습을 우리는 불교의 최대 성인들인 석가와 성철스님을 통해 교훈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오직 우리의 죄를 사함 받고, 영생을 얻고, 천국(극락)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주(求主)로 마음으로 믿고 진리의 말씀대로 사는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출처 : 마지막 때의 진리(眞理)  | 글쓴이 : 아이맨
돕는은혜님이 계시판(영성보다 경건..) 댓글에 링크한 이정석 교수(풀러신학교 조직신학)가 쓴 <영성이란 무엇인가>를 여기 올립니다.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MO8M&articleno=7003437#ajax_history_home

<영성이란 무엇인가>란 제목으로 같은 저자가 쓴 글이 두개 더 있습니다. 신사도운동-뉴에이지를 포함하여 소위 "영성"이란 말로 대변되는 현대 기독교의 유행병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는데 참으로 귀한 글입니다.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2) http://kr.blog.yahoo.com/jabiryang/5190
(3) http://kr.blog.yahoo.com/kjyoo3239/7089

아래 "인터내셔널갈보리교회 이성자 목사"라는 분이 쓴 칼럼을 보면
http://dc.christianitydaily.com/view.htm?code=oc&id=185720
이 양반도 IHOP에 단단히 홀려 마이크 비클 교주의 교시를 직통으로 받고있습니다. 신사도-뉴에이지등이 이미 기존교회에 깊이 뿌리밖고 있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목만 보아도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이라는 이장림(다미선교회)를 연상케하는 이들의 나른함을 경계하고 깨어서 경성함이 어느 때보다 요청되는군요!

이정석 교수에 의하면, 이들 모두의 공통점은 종교개혁의 대상이 되어 수세에 몰린 "카톨릭적인" 유사 종교집단이 개혁신앙에 대한 거친 반격이라고 합니다.

여기 조금 발췌합니다.

<신비적 영성>

그릇된 영성의 두 번째 유형은 신비적 영성이다. 이것은 초자연적이고 초능력적인 신통력을 흠모하고 추구하는 영성이다.

여기서는 자기의 영적 성숙이나 수평적 차원은 무시된 채 신적 존재와의 수직적 교통을 통하여 신비한 능력을 수행하고 엑스타시적 종교체험을 추구한다.

카톨릭의 신비적 영성이 하나님과의 약혼과 결혼으로 나아가는 영성의 7단계를 제시한 아빌라의 테레사와 같이 신비적 체험을 추구하였다면, 오순절운동으로 야기된 개신교의 신비적 영성은 초자연적 능력을 추구한다.

한국교회 영성의 독특한 현상들을 열거하면서 “결국 현상적으로 보자면 한국 기독교의 영성은 불교, 유교, 도교와 마찬가지의 길을 걷고 있는 듯하다”는 김정훈의 진단이나, 샤마니즘을 비롯한 전통종교의 영성을 기독교의 이름으로 포장한 한국교회의 영성운동이 결국 이교화를 결과한다는 김성태의 지적은 주로 신비적 영성을 우려한 것이다.

마술적 신유를 위해 이교의 방법을 도입하여 성령수술이라는 이름으로 신비적 치유를 현혹하는 할렐루야 기도원이나 비성경적 예언들까지도 용납하여 결국 시한부 종말론의 수치를 초래한 신비주의적 신앙행태는 참된 복음보다 신비현상 자체를 추구하는 다른 복음이 아닐 수 없다.

실로, 윌리암 제임스는 무신론적 사고를 가지고도 동시에 신비현상을 긍정하였으며, 세계의 수많은 종교들의 신비현상들을 수집하여 심리학과 신경의학으로 설명하였고, 신과학이라고 주장하는 심령과학도 단순한 테크닉으로서 신비적 능력을 소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러한 신비적 영성은 세계의 모든 신과 모든 영과 모든 신비 현상을 이용하여 신비체험과 초능력을 소유하려는 뉴 에이지 영성과 본질상 크게 다르지 않다.

<낭만적 영성>

그릇된 영성의 세 번째 유형은 낭만적 영성이다. 이것은 영성을 경건한 감정의 고양으로 이해하는 감상적 영성이다.

영성가들의 영적 편력을 탐독하며 문학적 영성을 형성하고 영적 무드를 즐기며, 큐티를 통하여 경건한 감정을 향유하지만, 만일 그것이 거룩한 감정의 나르시시즘에 빠져 거기서 그치고 실천으로 나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가롭고 낭만적인 감상일 뿐 고난이나 십자가의 길은 외면하는 현대의 지성적이며 사치스러운 영성이 아닐 수 없다.

경건주의와 낭만주의에 영향을 받은 슐라이에르막허는 기독교의 본질을 종교적 감정이라고 규정하고 감성적 종교를 추구하다가 자유주의신학의 아버지가 되었다.

로버트 로버츠는 [영성과 인간의 감정]에서 “기독교가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감정들의 세트(a set of emotions)”라고 정의하며 영성을 감정 중심으로 이해하였지만, 기독교 신앙은 단순한 감정 이상의 것이다.

물론, 그가 말한 대로, 기독교에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중심적 명령이지만, 그것은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적 의지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사랑을 흠모하는 하나의 종교적 감상으로 끝날 것이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당에 가서 느끼는 거룩한 감정이나 위대한 종교시를 읽으며 일어나는 숭고한 열정이 참된 영성의 본질이 아니며, 기독교의 영성은 느낌 이상의 실재적 삶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실로, 참된 경건생활이란 문학적인 경건서적을 즐기고 분위기 좋은 찬송을 부르며 고요한 명상과 시적인 기도에 도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것이다.”(약 1:27)

출처: 아멘넷, 정리: Thomas 님
아이합의 마이크 비클 목사가 기독일보의 기자와 인터뷰를 한 내용을
어느 댓글에서 보고 이 인터뷰가 갑자기 급박하게 이루어 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뭔가 목적이 있는 인터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즉, 아이합에 대하여 급히 건전성을 변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보았다.

어쩻든, 나는 여기서 비클 목사의 답변 중 스스로 모순을 담고 있는
한 가지를 반듯이 지적해야 한다고 판단되었다.
혹시라도 이제 보니 아이합이 건전한 곳인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분들에게 참고가 되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관련기사 http://www.christianitydaily.com/view.htm?id=212185

“아이합에서 이야기하는 사도적 리더쉽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수 있는가?” 라는 기자의 질문에
마이크 비클 목사는 아래와 같이 답변했다.

‘사도적’이라는 단어를 명사가 아닌 형용사로 사용한다.
사도 교회 또는 신약교회의 교리, 삶의 방식을 닮고자 하는 리더쉽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부지런하고, 헌신적이고, 핍박을 견디고자 하며,
전도와 세계선교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며, 산상수훈의 삶의 방식을
따르고자 하는 리더쉽을 말한다.
이것이 나의 사도적 리더쉽에 대한 견해이다.
나는 그리스도 지체의 모든 리더들이 예수를 향한 진심어린 헌신,
따라서 사도적 리더쉽에 속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위와 같은 설명에 일일이 딴지를 걸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아니 굳이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위 내용이 말 잔치에 불과하다는 것은 다음 사실에서 반증한다.

마이크 비클 목사는 자기들은 분명히 ‘사도’(apostle),라는
명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적’(apostolic)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한다고 하였다.

정말 그런지 한번 살펴 보자.
실제적으로 어떤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지,,,,,말이다.


아이합 선지자 그룹의 멤버들이 큰믿음교회 변승우 목사에게 예언한 내용이다.
(출처 : 큰믿음교회 웹사이트의 뭇 선지자들의 예언란중에서)
http://cafe.daum.net/Bigchurch

[밥 존스 목사 예언 중]

“I just saw it’s like you guys are waking up
한국 교회가 깨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And that waking up is like you’re going to expand
한국 교회의 깨어남은 한국 교회가 팽창하게 되는 것입니다.
And you’re gonna expand in Korea
큰 믿음 교회가 한국에서 팽창할 것입니다.”
(중략)


“That’s what I want you to feel – all of them.
모두입니다.  그것을 목사님이 느끼길 원합니다.
A leader, a bishop, apostle, that’s all of them.
지도자, 감독자, 사도, 이 모든 것입니다.
Do you understand that?
이해하세요?
You must be able to do all of them.
이 모든 것을 확실히 할 수 있어야 합니다.
This is your weakness.
이게(선지자 즉 예언사역을 의미하는 집게 손가락) 목사님의 약점입니다.
That’s why she is there for you: a hearing aid.
그래서 사모님이 계신 것입니다.  보청기처럼 듣는 것을 돕도록요.
But you understand this – you must do all of them.
하지만 이것을 깨달으십시오.  목사님이 이 모든 것을 행해야 합니다.
So it was coming in all of them.
그래서 모든 손가락에 임하는 것입니다.
That means you’re a bishop, and you’re called as an apostle.
목사님이 감독자이고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That’s what you’re called.
그게 목사님의 부르심입니다.”


[샨 볼츠라는 선지자의 예언 중]
샨 볼츠는 밥 존스 목사의 스텝으로서
현재 캔사스시티 아이합의 신학교인 ‘선두주자 사역학교’라는 곳에서
예언과 계시를 가르치는 교수라고 함.

“변 목사님은 하나님의 언어를 알고 계신 분이십니다.
변 목사님이 하나님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것도 그 분의 언어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변 목사님은 왕입니다.
왕과 같은 분이십니다.
지혜와 지식의 영을 갖추고 있는 분이십니다.
마치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이 한글로 백성들을 교육시키셨듯이
목사님께서 성도들을 하늘의 언어로 가르치시게 될 것입니다.”

“변 목사님은 사도이고,
하나님에 의해 지혜와 지식의 확장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상투적이지 않은 다른 목사님들과 다른 차원의 설교를 하며
사람들이 그것에 목이 말라 이 교회로 몰려드는 것입니다.”

“큰믿음교회는 단순한 개교회의 부흥으로서 그치지 않게 될 것입니다.
큰믿음교회를 통해 하나의 영적 운동(movement)이 탄생하게 될 것입니다.”


[밥 존스 목사의 사모인 보니 존스 의 예언 중]

“보니 존스 : I’m supposed to give this to you
제가 목사님께 이걸 (열쇠) 드려야 합니다.

밥 존스 : Amen! 아멘!
That’s the keys to the kingdom
하나님 나라를 여는 열쇠들입니다.

변승우 : 전에 샨 볼츠도 제게 큰 열쇠를 주며 제가 큰 문을 열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모님도 제게 열쇠를 주시네요.
하지만 이것은 그때보다 세 배 정도는 더 큰 열쇠입니다.

밥 존스 : He’s like a son to her. She called him her tallest son.
샨 볼츠는 제 아내에게 아들과 같은 자입니다.  
제 아내는 샨볼츠를 가장 키가 큰 아들이라고 부릅니다.”


예언자들의 예언은 참 신비롭고 경의스럽다고는 하지만
참 엄청난 예언들을 쏟아내는 대단한 선지자(?)들 아닌가?

저들은 분명히 ‘사도(apostle)’라는 명사를 버젓이 사용하고 있는데
혹시 밥 존스, 샨볼츠 같은 사람들이 아이합과 마이크 비클 목사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저들이 날리는 예언은 마이크 비클 목사의 인터뷰 내용과
정 반대인 것 같은데 거참 눈가리고 아웅을 하시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는 것 같다..

거기에다가 보니존스 사모는 한술 더 뜨는 것 같다.
하나님 나라를 여는 열쇠들을 준다고 하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제자(사도)에게 위임했던 내용과 비슷하다.
이보다 더 의미적으로 사도(명사)라는 단어를 정확히 사용하고 있다는
정황의 증거가 더 필요할까?

그런데 자기들은 사도적(apostolic)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하고 있다고?
이것은 비난의 바람만을 살짝 피해보려는 임기응변에 불과하리라.

밥존스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고,
샨볼츠라는 사람은 아이합의 신학교인 선두주자학교의 교수라고 한다.
자! 그러면 누가 말장난 같은 것으로 교란하고 있는 것일까?


한가지 예로 더 확실하게 증명해보자.
요즘 뉴욕의 교계를 긴장하게 하는 모 장로교회 목사님께서
아이합의 선지자들로부터 예언을 받으시고 돌아오셔서
받으신 예언의 내용들을 수요예배 시에 말씀하신바 있다.

그 예언자들이 말하기를,
목사님은 목회쉽(pastorship) 차원이 아닌 사도쉽(apostleship) 차원의
사역을 할 것이고 목회가 아닌 movement 를 하시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고 한다.

엄밀히 따져서 분명히 여기에서도 아이합의 선지자들은
사도적인 리더쉽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도쉽(apostleship)이라는 보다 더 포괄적인 명사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아이합과 마이크 비클 목사는
“우리는 apostolic 이라는 형용사만을 사용 하다고 하는데
이를 무시하고 밥존스, 샨볼츠, 그리고 뉴욕의 목사님에게
예언을 해준 아이합 선지자들은 자신들의 임의로
apostle, 혹은 apostleship을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궁색한 변명 내지는 거짓 증언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제 와서 사도라는 명사를 사용하든지,
사도적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하든지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이미 각 지역의 해당교회에 사도적 리더쉽을 에언 내지 임명해 놓고
아이합과 그곳 선지자 그룹은 자동적으로 그 리더쉽을
조절하는 기관이 되는 모양을 갖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교회는 교단과 총회 등을 초월하는 일종의 영적 상위 기관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한 개인의 과장된 생각일까?


우리는 2천 년의 교회 역사 속에서 사도의 기능과 사도적 사명 등을
유형의 특정인이 아니라 무형의 교회가 이어받아 전승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어왔다.
즉, 교회 자체가 사도쉽을 가지고 사도적 직임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승은 무시하고 교회도 아닌 한 집단에서 새삼스레
사도쉽 내지는 사도적 삶을 거론하면서 교회 외에 어떤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 하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교회는 지금까지 초대의 사도적 권위와 직임을 가지고
전도와 선교, 구제, 헌신 그리고 공동체를 다스리고 치리 하는
역할을 해왔다.
교회가 고유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런 권위나 사명 위에
연약하기 짝이 없는 유형의 인물들이 상위로 존재할 수 있다는
주장은 과연 성경적이고 논리적인 생각일 것인가?

사도의 직임을 전승하여 수행하고 있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제쳐두고
다시 사도적 리더쉽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촉구하는 것은
사도의 엄청난 권위를 갖고자 함 이외에 그 어떤 명분으로 변명할 수 있을까?
혹시 프로테스탄트에서도 카톨릭의 교황이나 추기경 같은 권위의
계급과 리더쉽이 필요하기라도 한 것일까?

사도라는 직분의 사용이 문제가 된다 싶으니까
우리는 사도적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한다는 말장난 비슷한 걸로
교회와 크리스챤니티를 우롱하는 아이합은 각성할 것을 촉구한다.
마이크 비클 목사가 답변한 대로만 추구한다면
참 바람직한 것이겠지만 그것은 어디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일까?

사도적 리더쉽을 양산하는 곳일 것 같은 자기 신학교 교수라는 사람이
버젓이 “당신은 사도입니다”라는 로또 같은 것을 날리고 다니는데
이것은 우리 아이합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잡아 땔 수 있을까?

아니면 예전엔 그랬는데 지금은 형용사만 사용한다고 하시려나?

캔사스시티 선지자 그룹과 아이합은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이고
선지자 그룹의 우두머리 격인 밥존스 목사는 자금도 사도 임명장을
수시로 날리고 다닌다는 사실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데
아이합은 이제 와서 비겁하게 말로만 껄끄러운 신사도 물결에서
뒤로 살짝 빠지려 하시는가?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백날 기도 많이 하고 열심히 한다고 자랑하면 무엇 하리요?
이런 교묘한 거짓스러움을 보면 고개가 저어지는걸,,,,

무서운 것은 이런 속임수가 얼핏 신령해 보이는 기도와 찬양으로
위장하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오늘도 수많은 우리의 젊은이들과 순진한 성도들이
숲은 보지 못하고 앞에 있는 나무만 보고 달려가는 것은 아닌지?
각 공동체에서 체계적인 교육과 지도가 절실하다고 생각된다.

눈에 뻔히 보이는 역겨운 속임수 같은 것 때문에
차라리 내가 뭘 모르고 오해하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분마저 든다.

혹시라도 아이합을 옹호하는 사람들이여
여러분의 개인적 취향 내지는 선호를 내 어찌 왈가왈부하리요 만은,
교회가 지겹고 힘들어서 아이합 같은 기관이 필요 합니까?
비행기 타고 일부러 수시간을 날아가야 할 만큼 절실하다면
정작 내가 속한 교회에 쏟은 열정은 얼마인지 한번 자문해 보시길,,,.
신앙 생활의 보조기관은 그냥 보조기관일 뿐이다.
교회를 위해 몸 바칠지언정 신앙 보조 병행기관을 사수 하기 위한
사명 따위는 부질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마이크 비클 목사가 말 잔치는 저렇게 해도
캔사스시티의 엘리트 그룹들은 오늘도 이렇게 예언을 한다.

“당신은 사도 입니다. 사도로 부름 받았습니다”
“다른 차원의 큰 부흥의 바람을 일으킬 것입니다.
Movement 를 일으킬 것입니다” 라고,,,,,,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한국의 1.5세, 2세 목사님들을
apostleship이니, movement니 하면서 잔뜩 고무시키서
주님의 교회를 분열시키고 성도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마이크 비클과
아이합의 선자자들은 철저히 각성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다시 한번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아래는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예언들 링크 주소입니다.
링크 http://cafe.daum.net/Bigchurch/Tkp/92


출처: 아멘넷, 정리: 삭개오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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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비클과 국제 기도의 집 (IHOP)

Mike Bickle and International House of Prayer

되살아난 늦은 비 (밥 드웨이)

The Latter Rain Redivivus

By Bob DeWaay

올해 초 국제 기도의 집(International House of Prayer, IHOP)은 캔자스시티에서 열린 패션 포 지저스(Passion for Jesus)라는 컨퍼런스를 후원했다. 이것은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크게 프로모션되었다. 이 컨퍼런스의 목적은 "예수님과의 친밀함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컨퍼런스의 두번째 세션에서 IHOP 대표이자 이사인 마이크 비클은 마태복음 25장의 비유를 풍유적으로 해석한 것을 바탕으로 설교를 했는데, 거기에서 그는 그의 종말신학과 "신부의 패러다임의 계시(revelation of the bridal paradigm)"를 설명했다. 비클은 교회 안에 어떤 철저한 변화가 있기까지 예수께서는 재림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무 때에나 오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전세계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성령의 기름부음 아래에서 신부의 정체성을 가지고 중보를 부르짖을 때까지 오시지 않습니다." 만약 당신이 그가 뜻한 바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마도 당신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으며 "신부의 정체성"에 대한 계시를 나누어 주는 (impart) 특수한 기름부음에 관한 어떤 내용도 (거기서)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실, 비클의 용어의 많은 부분은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에게 낯설고 이질적인 것일 것이다.

이 기사에서 나는 마이크 비클의 운동이 풍유화된 성경말씀, 깊은 내면의 삶의 경건주의, 그리고 신비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이것이 1940년대의 이단적 늦은 비 운동의 수정/완화된 변형을 재연하고 있음을 보여줄 것이다. 비클은, 1983년 [다윗의 장막의 영 안에서 24시간 기도를 시작하라]는 하나님의 실제 음성을 들음으로써 그의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그는 그런 취지로 표지판을 세웠는데, 비록 하나님께서 그것을 설립하라고 그에게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 스스로는 다윗의 장막의 영 안에서 기도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결국 "예언적(대언적/선지자적) 찬양 기도"였던 것으로 밝혀진다. 그들이 이를 알아내자 IHOP은 태어났다.

출처: 아멘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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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비의 종말 시나리오


IHOP 웹사이트에는 불신임 받은 늦은 비 운동과 그들 스스로와의 사이에 거리를 두려는 것으로 보이는 일련의 확인들과 부정들이 실려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종말교회가 대환난 속에서 엄청난 권능으로 일어나 하나님의 적들을 물리친다고 하는 늦은 비의 핵심 교설 중의 하나인 요엘의 군대 (Joel's Army) 교설을 믿지 않는다고 한다. 이 교설은 또한 당시에 존재했던 (그들이 생각하기에) "패배한" 교회로는 예수께서 재림할 수 없었다고 가르쳤다.

전에 다루었듯이, 신사도개혁(운동)의 핵심 리더들은 이 개념을 붙잡았고 같은 것을 가르친다. 이 교설은 너무나도 별나서 이를 지지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를 처음 제안한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비클이 늦은 비 시절의 폴 케인 같은 선지자들과 과거에 연합한 사실을 고려할 때 이것은 특별히 그렇다. 그러므로 나는 비클과 IHOP이, 그들의 부정에도 불구하고, 늦은 비의 영향을 정말로 받아 왔다고 결론 짓는다.

비클은 교회가 대환난을 통과할 뿐 아니라 교회가 이를 일으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에게 대환난이 없는 것이 아니다. 잘 들으시오. 교회가 대환난을 일으킨다. 내 말 뜻은 - 그건 교회이다. 모세가 그의 지팡이를 뻗고 기도하고 바로에게 심판을 풀어 놓은 것 같이 대환난에서 심판을 풀어 놓는 것은 예수의 리더십 하의 있는 기도하는 교회이다. 환난기의 교회는 바로 앞에 선 모세의 처지에 있지만 그건 바로나 이집트는 아니다. 그것은 적그리스도라고 불리는 큰 종말기 바로이며, 요한계시록은 기도하는 교회가 풀어 놓은, 적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책이다.
비클의 종말론에서는, 특수한 타입의 기도를 열쇠로써 가진 교회가 적그리스도를 패배시킨다. 늦은 비 버전은 그것을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회군(會群)이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 쪽 버전 공히 엘리트 종말교회가 하나님의 적을 물리치며, 예수께서는 이 일이 일어날 때까지 "하늘에 붙들려 계신다". 얼 폴크는 실제로 그 제목의 책은 1980년대 중반에 저술했다.

비클은 그리스도께서 돌아 오실 수 있기 전에 크리스천들이 어떤 형태의 기도를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그의 교리를 설명한다:

지금 이 기도운동이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정말 빠르게! 하지만 내가 그리스도의 몸의 1%가, 어쩌면 10%가, 이것을 붙잡았다고 말하는 대신 매우 빨리 증가하고 있다고 말할 때에는...알다시피 이는 한 세대 전보다 열 배나 커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것을 붙잡아 가는 이 기도운동이 빨리 증가하고 있는 만큼이나, 아직도 그리스도의 몸의 90%의 사람들은 이것에 마음조차 쓰고 있지 않다.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이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하고 전세계적으로 부르짖기 전에는 오시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오셔서 나를 용서하소서"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신부의 정체성 속에서 예수로부터 소중히 여김을 받는 자임을 이해하는 속에서 부르짖는 것이다.
이 엘리트주의에 유념하라. 여기서 비클은 분명히 그의 운동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언급하며 암시적으로 성경이 가르치는 방식에 따라 -- [이 땅에서의 그분의 계획을 집행하시는 하나님께 대해서] -- 기도하는 행위를 쓸모 없는 것으로 그린다.

이런 생각을 판명해 주는 구문은 다음 구절이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 계시록 22:17) 우선, 성령과 신부가 그리스도께 오시라고 하는 것인지 또는 (구절 후반부에서와 같이) 성령과 신부가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와서 구원을 얻으라고 초청하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나는 전체 구절이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도록 부르는 것이 아니라, 구원으로의 초대라고 믿는다. 둘째로, 어떤 경우에든 이 구절이 특수한 신부 패러다임의 계시를 가진 일부 엘리트 종말집단을 지칭하는 것만은 아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주기도를 주신 이래 그분의 재림을 위해 기도해 왔다. 우리는 주의 만찬에 참예하며 그럼으로써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할" 때마다 우리는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서의 식사교제를 그리는 마음을 함축적으로 진술한다. 온 세기에 걸친 크리스천들이 [성경으로부터 타당하게 유추할 수도 없는 개인적인 계시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부적절한 기도를 해왔다고 암시하는 것은 모욕적인 것이다.

출처: 아멘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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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클의 안(案)에 있어서 비유가 풍유화된 또 하나의 부분은 기름이다: "기름 - 기름은 성령님과 연결된 심장이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은밀한 생활을 양성하면,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의 은밀한 생활을 가지고 있음을 아는가...이는 당신의 심장을 하나님께로 내미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안에서 은밀한 이력(履歷)을 쌓고 있다 - 그것은 기름, 성령님과의 연결이다." 기름이, 어떤 이들은 다른 이들보다 나은, "하나님과의 은밀한 생활"임을 의미한다는 증거가 마태복음 문장 어디에라도 있는가? 확실히 없다. 마태복음의 대조는 깨어 있어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것이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25:13)." 그러나 마태의 뜻은 비클의 해석의 하나의 요인으로조차 포함되지 못한다. 왜 그랬어야 하는가? 이것은 그의 늦은 비의 종말론적 설계와 맞아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주께서 언제 재림하실 지 우리가 모른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한다는 문제에 대해서 그는 아마도 모르는 체하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전 교회가 신랑하나님의 계시를 가지고 하나님의 적들을 물리치고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오시도록 부르기 후까지 예수께서는 돌아 오시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약 예수께서 돌아 오실 때, 이런 것들이 모두 일어나고 있었다면, 분명히 전 교회는 다섯 명의 슬기로운 처녀의 상태에 있을 것이고 재림의 타이밍 때문에 놀라는 일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비클의 해석은 마태복음의 내용으로 봐도 이치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스스로의 종말론적 설계를 바탕으로 본다고 해도 말이 안된다.

성경 해석학에 있어서 풍유적인 접근방식은 성경의 뜻이 성령에 감동된 저자에 의해 확정된다는 개념을 공격한다. 슬기로운 풍유가는 그 자신만의 뜻을 찾아낸다. 결국 풍유를 생각해 내는 독자가 성경의 뜻을 결정한다. 성경에 감동을 불어 넣으신 하나님이 결정하시지 않는다. 성경은, 문장 자체와 직접 관련없는 아이디어가 새로운 해석들을 일으키는 창조적 아이디에이션(관념화)을 위한 토대가 되며 접촉점이 된다.

깊은 내면의 경건주의

나는 이전의 CIC 기사에서, 두 종류의 크리스천이 있으며 분류별로 어떤 엘리트들이 있다고 주장하는 여러 형태의 경건주의를 설명했다. 늦은 비와 마찬가지로 마이크 비클의 IHOP은 경건주의를 전혀 새로운 수준으로 데려 가며, 처녀들의 비유에 대한 그의 메시지는 이를 보여 준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더 좋은 하나님과의 은밀한 연결을 가진 크리스천이며 어리석은 처녀들은 하나님과의 더 나쁜, 또는 적은, 연결을 가진 크리스천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그는 경건주의를 증진시켜 왔다. 경건주의는 성경적이지 않으며, 비클은 비유에서 경건주의를 찾아내기 위해 처녀들의 비유를 오역하고 있다. 어리석은 처녀들은 크리스천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나는 너희를 모른다"고 하셨기 때문만 아니라, 바로 전 비유(종의 비유)와 바로 다음 비유(달란트의 비유)에서 충성되지 못한 자들을 비신자로 묘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첫째 경우 이렇게 말한다.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마태복음 24:50,51)  논점은 같다: 주인은 예상치 못한 때에 오신다. 달란트의 비유는 이렇게 말한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마태복음 25:30) 처녀들의 비유는 비클의 크리스천의 모습의 이층안(二層案)을 가르치지 않는다.

비클은 좋은 종류의 크리스천과 덜 좋은 것과 사이를 나누는 여러가지의 포인트를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는 "연결된 상태"인지 "연결되지 않은 상태"인지이다. 비클은 말한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의 심장에 연결되어 있기를 원하신다. 이는 매일 하루 종일 하나님을 느낀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알려 준다. 신부의 패러다임으로 주님을 밀고 들어가서 그분께 연결되어 있으면 나의 심장이 부드러워지게 된다." 그렇다면, 내가 그분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께 나오고, 예수의 피가 내 죄를 씼었음을 믿고, 믿음으로 은혜의 보좌로 "가까이 나아오고도" 아직도 내게는 마이크 비클 같은 어떤 엘리트 크리스천들에게만 계시를 통해서 얻어지는 무언가가 모자라다고 믿어야 하는가? 경건주의는 꽤 영적으로 들리지만, 이것은 언제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일과 종교개혁의 솔라스(solas, 다섯 개의 '오직')를 공격하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그분께 가까이 데려가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모든 참 크리스천들에게 똑같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에베소서 2:13)

출처: 아멘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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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로 무서운 것은, 이 "열정"을 받기 위해 그들의 자녀들을 캔자스시티로 보내라고 그들이 크리스천들을 큰소리로 불러 모으는 것이다. 이 일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으니 조심하라. 이런 젊은이들은 엘리트주의 늦은 비 이설의 개정판으로 인도되고 있다. 만약 아이들이 마이크 비클을 믿으면 그들은 그들 부모의 믿음이 전혀 부적합하다고 확신하며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마이크 비클의 교리가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성경,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신랑하나님의 계시"를 더하도록 배우게 될 것이다. 그것은 주께서 모른다고 하시는 어리석은 처녀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예수를 관능적 애인으로 여기는 것에 해당한다. 그 어리석은 "처녀들"은 비클의 거짓 가르침을 믿지 않는 사람 모두가 되는 셈이 된다.

"연결된 그리고 연결되지 않은" 말고도 이런 경건주의 버전의 또 다른 용어가 있는데 그것은 몸을 "가진 자들과 갖지 못한 자들"로 나누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가진 사람들과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비클은 말한다.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것은 가까이서 하나님의 심장을 체험하는 특권을 가진 위치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특별한 계시를 소유한 특권자들은 보통의 크리스천들보다 하나님의 심장에 더 가까운 셈이 된다. 히브리서는 몇 개의 구절에서 하나님께로 다가감을 말하는데, 특별 계시를 가진 엘리트 집단에 해당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또한 어느 것도 "신랑하나님"을 말하지 않는다. 여기 몇 구절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히브리서 4:16; 7:25; 10:22)

성경에서 가르치는 하나님께로 다가감은, 더 나은 경건함을 달성한 어떤 엘리트 크리스천 계층에 참여함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로 인한 것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받는 그분의 은혜의 역사로 우리의 마음은 정결해진다. 성경이 우리에게 확증을 주는 이유는 우리는 우리가 죄인이며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의 위안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받는 길을 만드셨고 우리가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나아감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 때문이지, 성경이 가르치지 않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으로의 (추측 속의) 비밀을 우리가 조금 알기 때문이 아니다. 비클의 버전은 사람중심적이다. 그 이유는 이것이 어떤 크리스천들이 양성해 온 (추측 속의) 매우 깊은 체험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은밀한 생활"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해 너의 심장을 내미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우리가 하는 어떤 행위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는 묻는다. "주 안에서의 은밀한 이력 속에서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것을 힘써 발전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게을리 하고 있는가?" 비클은 청중들로 하여금 그들의 부족함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도록 돕고 있으며, 그래서 비클의 계시에 바탕해서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서 얻기 시작해야 한다고 그들이 생각하도록 한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과 어떻게 우리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셨는지 설명함으로써 우리를 격려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며, 우리 스스로의 개인적 경건 또는 "하나님 안에서의 이력"의 수준에 대한 믿음이 아니다. 나는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은혜롭고 용서하시는 구원자를 찾은 경건치 못한 죄인임을 매우 확신한다.

출처: 아멘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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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양의 혼인 잔치

예수께서 재림하시고 우리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참여한 후가 되기까지는, 우리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을 것이다. 비클의 "신랑하나님의 계시"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을 안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신부의 상징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 안에서만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이것이 평범한 크리스천들은 갖지 못한 (모자라게 가진) "열정"을 가진 엘리트 종말 집단에만 제한되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는 종말론적 잔치를 이렇게 그리셨다: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 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상, table)에 앉으려니와" (마태복음 8:11) 구약의 성도들은 구원의 믿음을 가진 역사의 모든 사람들과 함께 잔치에 참여한다. 참여는 "신랑하나님의 계시"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에 의해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근거한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행하셨을 때 종말론적 잔치에서 마셔질 '잔'을 언급하셨다: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마가복음 14:23-25)
유월절 식사에는 출애굽기 6:6,7에 나오는 네가지 약속과 관련된 네 개의 잔이 있었다. 세번째 잔은 "내가 너희를 속량하리라"는 약속과 관련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것은 나의 언약의 피니라"고 말씀하시며 이 세번째 잔을 제공하셨다. 하지만 그분은 네번째 잔을 마시는 것을,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서 모든 구속된 백성들과 함께 나눌 때까지 보류하셨다. 재미있게도,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나눌 네번째 잔은 출애굽기 6:7의 약속과 관련되어 있다 -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이 언약의 말씀은 성경의 주제가 되는 것이며 요한계시록의 끝까지 되풀이 된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요한계시록 21:3) 예수께서 그분의 교회로 돌아 오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참으로 그분께 속한 모든 사람들은 공중에서 그분을 만날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4:17). 그 때 그분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서 네번째 잔을 나누실 것이다.

이것을 더욱 예증하기 위해서, 바울은 우리가 주의 만찬에서 나누는 잔을 "축복의 잔"이라고 부른다 (고린도전서 10:16) 이것은 최후의 만찬에서 주께서 축복하신 잔을 언급한 것이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1:26에서 바울은 주의 만찬에서 우리가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축복의 잔", 이 세번째 잔을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주께서 흘리신 보혈을 기념하기 위해 받으며, 그렇게 함에 있어서 예수께서 육체로 하늘에 오르셨기 때문에 그분 없이 한다. 그러나 우리는, 종말론적 잔치에서 그의 넷째잔을 나누리라는 그의 약속을 예수께서 지키실 것이라는 믿음 안에서 한다. 또한 우리는 구속받은 모두와 함께 그렇게 할 것이다.

이 기대하는 넷째잔이 나누어지고 이와 관련된 (그가 우리의 하나님이 되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된다는) 약속이 모두 실현될 때 어린 양의 혼인 잔치는 일어난다. 이것이 세기를 통해 크리스천들이 나누어 온 희망의 일부이다. 비클은 이것을 소수의 엘리트, 즉 교회사의 종말에 교화된 사람들을 제외한 모두로부터 빼앗기를 바라고 있다.

결론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로 나는 다음과 같은 보장을 제공한다: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죄로 인해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셨다. 그분은 육체로 하늘에 오르셨고 스스로 육체로 돌아오실 것을 약속하셨다. 당신이 참으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면, 당신의 죄는 용서받고 그리스도의 신부에 참여하게 된다. 깨어 있으라는 것은 믿음 안에서 인내하라는 뜻이지, 복음의 소망으로부터 옮겨진다는 뜻이 아니다.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로마서 10:9) 당신은 구원받았다. 이 영원한 소망이 참됨은 그의 영단번의 피흘림을 통해서 예수께서 당신을 위해 하신 것 때문이지 당신이 예수께 한 것 때문이 아니다.



반면에, 마이크 비클은 "신랑 하나님과의 친밀함", "하나님과의 은밀한 이력(履歷)", "신랑을 향한 열정", "그들이 예수님께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계시", 그리고 그 외의 경건에 관한 개념에 있어서 어떤 정량화(定量化)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사람들에게 소망을 제공한다. 하지만 자신 스스로의 경건의 수준에 기초한 이 보장이 얼마나 빈약한 것인지 잘 생각해 보라. (마이크 비클에 의하면): "그 [은밀한 이력]이 얼마나 강하거나 약한 것인지 아무도 잴 수 없다. 아무도 진짜로 알지 못한다. 당신은 이것을 꼬박 측량할 수조차 없다. 하나님만 하실 수 있다." 만약 당신이 IHOP과 마이크 비클의 추종자라면, 이것이 뜻하는 것은 당신이 현명한 처녀들 중의 하나가 아닐 수 있으며 이런 당신의 신분을 당신이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기실, 당신은 은밀한 이력이 자격을 얻을만큼 충분히 좋다는 것을 안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무모한 것일 것이다. 비클은 당신이 미련한 처녀들 중의 하나가 되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정 당신 앞에서 문을 닫고 당신을 모른다고 하는 예수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 비클의 정의에 의하면 대다수의 크리스천들은 자격을 갖출 소망이 없는 것이다.



비클의 풍유적인 해석은 그 자신의 상상에 의한 것이지 성경저자가 뜻한 바로부터가 아니기 때문에, 당신의 소망을 그가 제공하는 것에 두는 것은 이를 그 자신의 상상에 두는 것을 뜻한다. 나는, 역사를 통한 하나님의 행하심에 의해 확실하게 되었고,  또한 성경저자들이 뜻한 바에 따라 문자적으로 해석된 성경에 의해 뒷받침되는, 복음의 소망을 당신에게 제공한다. 주 예수를 믿으면 당신은 구원받을 것이며, 당신은 매우 확실하게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가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마이크 비클의 추종자라면 당신의 개인적 신비스러운 계시의 수준과 개인적 경건에 기초한 그의 그릇된 소망을 버릴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당신의 소망을 그 대신 그리스도와 그의 완성된 사역에 두라.



p.s.

[마이크 비클의 발언은 2008년 3월 6일자 설교 오디오에서 인용됨]

원문출처: http://www.cicministry.org/commentary/issue107.htm

출처: 아멘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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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희대의 사기꾼이자 IHOP 교주 마이크 비클이 행한 교시:
"최고위 사도들"

마이크 비클은 그들의 "운동"으로부터 수백명의 사도들이 나올 것이라고 믿는다. 35명은 최고위급(사도)이 될 것이다. 그들은 육체 가운데 (신적 강림을 통해 가능한) 예수를 보아야만 하며, 그들 세대의 고난의 대부분을 겪어야만 한다고 그는 또한 주장한다.

Mike Bickle (MB <-- *명박 아님): " 이 세대에서는, 사도 사역의 최고위급이 될 사람들로는, 이 운동을 위해 나타날 사람들 중의 35명이 있을 것이다. 이 운동에서는 수백명의 사도들이 생긴다고 믿지만, 사도바울과 같은 수준에 이르는 사람은 35명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운동이 가는 모든 곳에서의 최고위급에서의 모든 통치 속에, 주께서 지고의 방법으로 갈라놓은 35명이 있을 것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다--통치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의지한다. 하지만, 그분은 35명의 특정 사도들이 있어서, 그들이 그분의 임재를 말해주는 언약궤를 나른다고 말씀하셨다..." (F88, p. 78)

"우선, 사도는 예수를 육체 가운데 보아야만 했다. 사도는 그저 부름받은 사람--일종의, 그 사실을 알아차렸고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그 사실을 알려받은 사람--이 아니었다. 사도는 예수를 개인적으로 육체 가운데 보았다. 그 예수는 그의 손을 사도의 머리에 얹고 이적과 기사의 권능을 분여(임파테이션)한다. 고린도후서 12:12에서 사도는 사도의 이적과 기사를 베풀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는, 예수의 표적과 기사를 행하지 않는 사람을 사도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셋째로, 신약 사도들은, 그들 세대의 고난의 대부분으로서 그리스도의 고난을 그들의 몸 속에 겪었다. 네번쨰로, 도시 교회들을 세우기 위해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여행하는 모든 불편을 헤쳐나가야 했다. 내 생각으로는, 사도는 성숙한 방법으로 교회 속에 풀어진 것이 아니다." (P.His 3, p. 2)

"그분은 '10억 명을 지도하는 리더십의 구별된 기름부음을 지닌 30만 명을 일으킬 거시이다'라고 말씀하셨다. 30만은 매우 많은 리더들로 들리지만, 10억은 천의 천배이다... (30만)은 지구 열방을 위해서는 작은 수이지만, 그들이 사도적 기름부음 같은 것을 가질 것이며, 초대교회의 표적과 기사는 30만 위에 있을 것이다." (F88, p. 45)

"이것은 비록 초대장에 불과했지만, 나는 직관적으로--바로--이것이 사도 사역임을 알았다. 이것은 위임은 아니었다. 주는 나를 사도로 부르고 계시지 않았다. 그분은 고려 중이라고 하셨다. '앞으로 네가 충실하다면, 너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사도적 소명을 채울 기회를 가질 것이다. 만약 네가 충분히 충실하다면.'" (F88, p. 82)

"만약 사람들이 중보(도고) 속에 살며 그들(사도들)의 도래를 (기도)요청한다면, 내가 사도들--챔피언들--을 낳을 것이라고 주께서 말씀하셨다." (F88, p. 84)

MIKE BICKLE’S “APOSTLES OF THE HIGHEST ORDER”

Mike Bickle believes there will be hundreds of apostles coming from their “Movement.” Thirty-five will be of the highest order. He also maintains that they must see Jesus in the flesh (which is possible through divine visitations) and bear the majority of suffering for their generation.
MB: “But in this generation there’ll be 35 of them that will appear for this movement that will be of the highest level of apostolic ministry. I believe there’ll be hundreds of apostles in this movement, but I think there’ll be 35 like unto Paul. And the Lord said the whole government of this movement in its highest level in all the places it goes, there would be 35 in whom the Lord would separate in the highest way--the government rests on apostles and prophets, but He said there’d be 35 apostles specifically and they were carryin’ the ark, which spoke of His presence... (F88, p. 78)
“Number one, an apostle had to see Jesus in the flesh. An apostle wasn’t somebody who just had a calling, who kind of discerned it and someone told him. An apostle saw Jesus in the flesh, personally. That Jesus lays His hands on the apostle’s head and imparts the power of signs and wonders, and it says in II Corinthians 12:12 an apostle must do the signs and wonders of an apostle. I do not receive a man as an apostle that does not do the signs and wonders of Jesus…Third, the apostles in the New Testament, they bore the sufferings of Christ in their body as a majority of the suffering of that generation. And fourthly, apostles had to weather all of the inconveniences of travelling city-to-city to raise up city churches. An apostle is something that, as far as I’m concerned, has not been released in the church in a mature way. (P.His 3, p. 2)
“He (God) said, ‘I’ll cause 300,000 to bear a distinct anointing of leadership over the one billion.’ Three hundred thousand sounds like a lot of leaders, but a billion is a thousand million…that will be a small number for the nations of the earth, but they will have like that apostolic anointing and the signs and wonders of the early church will be on 300,000. (F88, p. 45)
“I knew intuitively--instantly--it was an apostolic ministry, though it’s only the invitation. It was not a commission. The Lord was not calling me an apostle. He said He was thinking, ‘The days to come, if you’re faithful, you have an opportunity in the grace of God to fill an apostolic calling if you’re faithful to the full measure.’ (F88, p. 82)
“But the Lord said that I’m going to bring forth apostles--champions, if the people will live in intercession and ask for them to come.” (F88, p. 84)

이건 Mike Bickle 교주가 내린 교시 ("계시"<--IHOP에 홀린 자들은 이렇게 읽음) 중에 최고가는 압권인데, 바울 사도와 같은 권위를 주장하려는지 <삼층천>에 갔다왔다고 설레발을 풀고있습니다.

++++  
밥 존스는 삼층천에 가서 이 '운동'으로부터 나올 최상급의 35 명의 사도들에 대한 사도적 환상을 본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는 주께서 그(MB)를 대면하여 강림하셔서 그 사도적 환상을 확인시켜 주실 것이라고 마이크 비클에게 말한다. 마이크 비클은 입신 중에 삼층천으로 예수님 앞에 잡혀가서 최상급 사도가 되도록 초청받았다고 한다. 마이크 비클은 이 강림(방문)을 수년간 기다렸었고, 이는 최상급 사도들이 나올 것이며 그도 그 중 하나로 초청되었다는 사실을 그에게 확인시켜 준다.

이것은 마이크와 KCF의 '운동'에 큰 의미를 가진다. 왜냐 하면 이제 "나(마이크) 스스로 그 말씀을 가졌기" 때문이다.

MB (명박 아님^^*): (밥 존스를 인용하며) "...그분(하나님)은 말씀하셨다. '가서 마이크에게 말하기 바란다. 내가 그에게 강림해서 이 운동에서 나올 사도들에 대해서 그에게 계시할 것이라고.' 주께서는 나를 데리고 가셨던 곳으로 너를 데리고 가셔서 똑같은 환상(visitation)을 보여주실 것이다. 왜냐 하면 주께서는 이 최상급 사도들이 나타날 것을 네가 믿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P88, p. 79 . 80, 원문이 모호한 부분임/역자)

"나(마이크 비클)는  거기 서 있었고 주님의 왼손에 있었는데 이것은 꿈이 아니었다 -- 지금 여기 사는 것처럼 실제적이었다. 내가 말했지만, 나는 그 영역은 알지 못한다...그분(하나님)은 너무나도 단호하게 말씀하셨는데 '네가 조급하면...너는 나의 백성에게 큰 혼란과 분쟁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분이 이 말씀을 나에게 매우 거칠게 하실 때 나는 부끄러웠고 슬픔으로 찢어졌다. 그러자 나는 너무나도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 마치 슈~웅 하는 것 같이, 약 5-6초밖에 걸리지 않아서 나는 천정을 뚫고 침대로 떨어지고 -- 내 말은, 벽과 물질들을 슈~웅 뚫고 나는 내 침대에 떨어졌다. 내가 거기에 있었던 순간과는 달라졌다 -- 나는 5-6초 간 여행의 지식을 갖게 되었다. 당신도 그런 적이 있나요?"

BJ (DJ아님<--IHOP에 들락거리는 자들은 글자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능력이 현저히 저하되어 있음으로 자세히 읽기 요망^^): "응"

MB: "그리고는 나는 너무나도 빨리 떨어져서 '아~~~' 하고 떨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시커먼 하늘을 지나 바로 내려왔다...그리고 바로 천정을 뚫고 와서 침대에 떨어졌고 나는 0.5초 정도 둘러보았는데, 난 바로 슈~웅 하고 다시 올라 간다(갔다)...다시 천정을 직통해서! 나는 조급함이란 허락 없이 조급하게 리더십을 도입한 것임을 즉시 깨달았다. 그분은 말씀하셨다...'너는 내가 말하지 않는 리더십을 들여오면 안 된다. 그 리더십은 분열시키고 분리를 일으키고 많은 사람들은 큰 해악을 입을 것이며, 나는 이로 인한 책임을 너에게 묻겠다.'... 그리고는 이 황금마차가 쉬~익 하고 나타나서 바로 앞에 왔다...그리고 나는 -- [나는 직관적으로, 순간적으로 알았는데] -- 이것은 사도적 사역이었다. 비록 이것은 초청에 불과했지만. 이것은 위임은 아니었다. 주께서는 나를 사도로 부르고 계시지 않았다. 그분은 생각 중이라고 하셨다.

'앞으로 올 날들, 네가 만약 충성하면 너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도적 부르심을 채울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네가 끝까지 충성하면.'내가 마차에 타자 나는 푸른 하늘로 곧장 쏘아졌고, 올라가는 동안 나는 이것이 계시임을 알았다. 그분은 말씀하셨다. '나는 너를 앞으로 올 날들에 대한 신적 계시 속으로 데려갈 것이다.'...중보의 열매로서 나타날 큰 사도적 사역의 종말의 분량이 있을 것이다...장래 몇 년 후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내가 사도들, 챔피언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만약 사람들이 중보의 삶을 살며 그들이 오기를 간구한다면]. 그래서 그 환상은, 이 운동에 대한 하나님이 말씀하신 약속의 면으로 보자면,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다...그리고 주께서 말씀하신다. '이제 너는 네 안에 말씀을 가졌으니 다른 운동이나 다른 곳을 쫓아다니지 말지니라. 내가 너에게 (직접) 대면해서 말했기 때문이다.'...하지만 그 때는 내가 가졌던 것을 안다...얼굴을 맞대고 들었던 하나님의 음성으로부터, (하지만 그분의 얼굴을 보지는 못했다) 내 말은 그분의 바로 곁에 서서, 나는 말씀을 내 자신 안에 가졌고, 이것은 단지 내가 그분을 믿느냐 하는 문제만은 아니었다. 그 후로 이 계시가 어떻게 변화했는가는 놀라운 일이다." (F88, p. 81 - 84)
By: Thomas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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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안 (Che Ahn)


교포 2세로 한국 이름은 안재호이다. 미국 파사데나에 소재한 추수반석교회(Harvest Rock Church)의 담임목사이다.

추수반석교회는 1995년 토론토 블레싱존 아놋 목사를 초청해서 부흥회를 한 이후로 교회가 부흥했다고 한다.

그는 또한 피터 와그너가 조직한 "사도의회"의 12명의 초기 사도 중의 한 명이다.


또한 하베스트 인터내셔널 미니스트리(HIM)<<라는 신사도적 교회연합을 루 잉글(Lou Engle)과 함께 이끌고 있다.

루 잉글은 마이크 비클  함께 더 콜(The Call) 을 주도하고 있다.

HIM은 한국에도 지부를 두었으며, 현재 (피터)와그너리더십연구소(WLI Korea) 총장이 함께 맡고 있다.


체 안은 타드 벤틀리의 사도 위임식을 주도했으며, 타드 벤틀리의 3명의 기둥 사도 중의 한 명이다.

사도 위임식에 관해서는 여기서<< 볼 수 있다. 그는 타드 벤틀리가 윌리엄 브래넘의 영의 곱절을 받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타드 벤틀리 사도임명을 위한 세 명의 기둥 사도 (빌 존슨, 체 안, 존 아놋)


우리나라에서도 집회를 자주 가지며, 2006년 신디 제이콥스와의 집회의 내용은 참고자료<<에서 볼 수 있다.


"갑절의 기름부음! 뱀! 뱀!" 타드 벤틀리의 임파테이션을 체 안 부부가 받고 팔딱거리는 모습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BeoiamEvZMA


위 비디오의 내용을 다른 각도에서 촬영한 모습



타드벤트리가 엉터리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그 엉터리의 절정이 잘 드러나는 동영상 둘 더 추가합니다.
유유상종이라고 친하게 어울리며 노는 친구를 보면
그 안에 무엇들이 들어있는지 알 수 있지요.
예수님이 육체를 입고 어디에 나타날 것이라고 엉터리
예언한 동영상도 있는데 그것은 나중에,

http://vids.myspace.com/index.cfm?fuseaction=vids.individual&videoid=36022995

http://vids.myspace.com/index.cfm?fuseaction=vids.individual&videoid=40686293

(유튜브에 올려진 동영상들은 음성이 차단되어 어쩔 수
없이 여기 것으로) by: 교제님

타드벤틀리와 체안이 서로 동역자처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아시죠.
교회사랑님이 그 웹사이트 올려 놓은 것 보니 영어가
되시는 것 같은데 그러면 한번 다음 동영상도 봐주시고
이런 것들이 과연 정상적인 신자의 모습일 수 있는지도
판단해 주세요.
http://www.youtube.com/watch?v=Hp0C4lgjA-A&NR=1
8/11 01:53
24.xxx.199
교제 체안부부모습은 1:24초경에 나옵니다. 8/11 01:54
24.xxx.199
교제 신유은사가 많다고요
과연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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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Gnosticism)는 고대에 존재하였던 혼합주의적인 종교 운동 중 하나이다. 그리스어로 '신비주의적이고 계시적인 지식, 깨달음'을 가리키는 그노시스(γνῶσις)로부터 따와 그노시스파, 또는 그노시즘이라고도 하며, 이러한 낱말은 주로 이 운동의 반대 세력에 의해서 붙여졌다. 이 종교 운동의 분파들 중 기독교 계통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들을 단순히 기독교인이라 불렀다. 영지주의 운동은 특정한 한 형태로 전개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영지주의는 다양한 신앙 체계들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우주는 데미우르고스라고 불리는 불완전한 신이 창조했으며, 이 때 데미우르고스는 최고신의 프뉴마를 일부 사용하였다는 가르침에 대해서는 분파와 무관하게 대체로 일치하는 견해를 보였다. 이 교리에서, 데미우르고스는 종종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의 신과 동일한 신으로 생각되며, 플레로마(Pleroma)나 신성과 같은 상위의 세계 또는 존재와 대비된다.


데미우르고스에 대한 견해는 분파들 사이에 큰 차이를 보였다. 어떤 분파는 데미우르고스가 악의 물질적 화신이라고 주장한 반면, 다른 어떤 분파는 최고신에 비해 불완전한 선한 신적인 존재일 뿐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영지주의 운동은 헬레니즘 철학, 유대교, 기독교와 영향을 주고받았다. 영지주의는 이원론적인 종교 운동이었으나, 발렌티누스주의와 같은 후대의 영지주의 운동은 일원론적인 세계관을 가졌다. 데미우르고스에 대한 다양한 견해와 함께 이러한 세계관의 다양성은 영지주의 운동에 여러가지 다양한 입장들이 서로 공존하였다는 것을 나타내는 지표로 간주되기도 한다.


영지주의 운동가들은 그노시스를 통해 인간의 참된 기원이 지고한 신성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 깨달음을 통해 인간의 성품 중 영적 요소는 물질계를 벗어나서 자유롭게 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영지주의 운동에서는 그노시스를 인간이 물질계로부터 해방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필수적인 요인이자 구원의 수단으로 여겼다.


영지주의 운동가들은 인간을 영적인 인간, 정신적인 인간, 물질적인 인간의 세 부류로 구분하였으며, 이들 세 부류의 사람들 중 영적인 인간과 정신적인 인간만이 그노시스를 가질 수 있으며, 물질적인 인간들은 그노시스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겼다. 이들은 물질적인 인간들이 물질에 너무 몰입해 있으며, 따라서 더 수준 높은 실체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일부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를 지상의 인류를 구원할 수단인 그노시스를 인류에게 가져다주기 위하여, 지복(至福)의 플레로마를 떠나 고통이 가득 찬 물질계에 탄생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는 희생을 한 존재로, 지고한 존재의 물질적 화신이라 여겼다. 노쯔림과 만다야교 등의 다른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를 "거짓 메시아"라고 생각했다. 이들은 예수가 세례자 요한이 위탁하여 맡긴 가르침들을 타락시켰다고 생각하였다. 어떤 가르침에서는 예수가 아니라 마니와, 아담과 하와의 셋째 아들인 셋을 구세주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많은 학자들이 영지주의 운동은 기독교의 한 분파로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예수 탄생 이전, 즉 서력기원의 몇 세기 전에도 영지주의 체계의 자취가 남아 있다는 다른 학설이 제기되었다. 영지주의 운동은 3세기에 이르기까지 로마 제국과 고트족의 점령지, 또 사산 조 페르시아의 영토 등, 지중해 세계와 중동으로 전파되고 발전하였다. 그러나 니케아 공의회와 여타 다른 칙령들을 통해 로마 가톨릭교회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었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파괴되는 등의 일이 있었던 4세기에는 가톨릭교회의 탄압으로 그 세력이 크게 위축되었다. 이 시기에 영지주의 문헌들의 거의 대부분이 파괴되어 사라졌으며, 영지주의 반대자들이 영지주의를 논박하기 위한 문헌의 근거 자료로 소수의 단편들만이 살아남았다.


나그함마디 문서가 발견된 1945년까지 영지주의 연구자들은 이러한 자료들을 토대로 추론에 근거한 연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4세기 이후에는 많은 수의 영지주의자들이 이슬람교로 개종하였으며, 남아 있는 유럽의 영지주의자들도 알비 십자군의 활동으로 인해 그 수가 크게 감소하였다. 그러나 소수의 만다야교 공동체들이 현대에도 남아 있다. 영지주의 사상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있었던 많은 신비주의적 운동의 철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들 중 일부는 자신들을 이전에 있었던 영지주의 운동의 부활 또는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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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지주의

1.1. 정의
        영지주의(Gnosticism)는 신비하고 비밀적인 지식을 또는 ‘영지’(gnosis)를 통해 구원이 이뤄진다는 종교적 철학적 이원론을 철저하게 표방하는 운동이다. 이 운동은 영지주의자 발렌티우스(Valentinus, c. 105-c. 165)에 의해 설립된 로마학파와 알렉산드리아학파들이 2-3세기의 그레코-로만 (Greco-Roman) 세계에 그 절정과 그 번영을 나타내면서부터 알려지게 되었고 그 이후 이 운동은 기독교에 큰 충격을 준 신비적 종교운동이 되었다. 이 운동이 번영했던 시기는 교회교부들―이레니우스(ca. 120-203), 히폴리투스(d. 235), 터툴리안(ca. 150-160~ca. 220-240) 등―이 활동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그들은 영지주의의 위협을 느끼고 간과하지 않았던 것이다. 교부들이 초긴장을 하며 대응했던 이유는 대부분의 영지주의자들이 기독교인임을 고백한다고 가정하면서 초대교회에 정통 기독교와는 너무나도 다른 신앙을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지주의자들이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이원론에 입각하여 모든 물질적 실체는 사악하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갇혀있는 영혼을 자유롭게 하므로 구원은 이뤄져야만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어떻게 영혼들이 갇히게 되었는지, 영혼들이 어떻게 인도를 받는지에 대한 신화적 설명들이 덧붙여진다. 먼저 초월하신 하나님은 ‘이온들’(aeons)이라 불리는 영원한 존재들과 관련을 맺고 있을 뿐 모든 물질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나님으로부터 발산된 이온들은 남녀성의 짝을 이룬다. 대체적으로 그 짝은 30종이나 되고 그들은 ‘플레로마’(pleroma)를, 즉 신격의 ‘충만’(Fullness)을 구성한다. 물질적 우주와 인류가 구원받아야하는 곳은 ‘플레로마’에 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 안에 신적 씨앗을 간직하고 있다. 구원의 목적은 이런 신적 씨앗을 상실된 물질로부터 인도하는 것이다. 이렇게 신화적 상술을 가지고 2-3세기에 신비적 종교운동으로 발돋움한 영지주의자들은 대체적으로 기독교를 표방했다.
        위에서 언급한 ‘영지’의 의미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지식보다는 산만하고, 분석적이고, 추상적인 지식이라기보다는 지성적인 이해를 넘어선 실재에 대한 통찰력을 의미한다. 신비한 영역이나 알 수 없는 영역에 대한 지식이다. 신비한 영역에서 오는 신적 존재의 ‘섬광’(spark) 또는 ‘씨앗’(seed)은 전적으로 악한 물질세계에 주어졌다. 그 섬광들 또는 씨앗들은 인간의 몸에 갇혀 있다. 하지만 ‘신비한 지식,’ 즉 ‘영지’로 다시 일깨워진 신적 요소는 사람들을 초월적 영적 영역에서 적절한 보금자리를 갖도록 한다.
        영지주의자 또는 ‘알고 있는 자’는 지속적으로 신비한 영지의 새로운 통찰력을 받는다. 그들은 영구적으로 정착되지 않고 늘 지속적으로 더 높은 차원을 이해하기 위해 현재의 영지를 새롭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 즉 구원은 하나님, 최상의 존재와 연합하는 것이고, 그로부터 발산되는 모든 것의 실재를 보는 것이다. 더 이상 추구하지 않을 수 있는 완전한 상태에 이르는 것이 영지주의의 궁극적 목적이다. 이것을 또한 구원받는다고 하는데 이 구원은 믿음으로가 아니라 지식으로 말미암는다. 오직 ‘신비한 지식’으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신비한 지식’을 가지는 자는 영적으로 성숙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완전한 성숙에 이르는데 요구되는 특별한 지식을 수용할 수 있는 자들은 ‘엘리트들’(elites)이다. 이렇게 더 높은 영지를 가진 자들만 사악한 세상으로부터 자유하게 된다.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영지주의자들은 세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 ‘영적인 자들’(pneumatic)인 영지주의자들 또는 구원을 확신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영의 영향 아래 있기 때문에 구세주를 인식하고 그에게 일치한다. 둘째, 완전한 영지주의자들은 아니지만 지식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심령자들’(psychic)이 있다. 이들은 첫째와 둘째 부류의 사람들 사이에서 주저하지만 구세주에게 가까이 가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셋째, 구원을 받지 못하는 자들인 ‘물질인들’(hylic)은 물질에 지배를 받고 있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은 금욕을 지나치게 행하여 영의 지배를 받으려고 노력한다. 이들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열매를 통해 알 수 있다.

1.2. 특징
        초대교회에 있었던 영지주의자들에 대한 최고의 기독교 변증자는 이레니우스였다. 그의 책 Adversus Haereses에서 영지주의자들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  

1. 30개의 ‘이온들’이 시공간의 초월한 ‘플레로마’ 안에 존재한다.
2. 여신 지혜는 ‘조물주’(demiurge)를 만들었다. 그는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신이며 이온들의 독재자이다. 그는 사람을 창조했고 지혜는 사람에게 영혼을 주었다.
3. 어떤 이들은 선행을 충분히 행하면 구원받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지옥에 가기로 예정되었다.
4. 영지주의자들은 지혜로부터 발산된 영들을 갖고 있다. 구원받기로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상실할 수가 없다. 그들이 선을 행하든 악을 행하든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완전자들은 악한 일들을 행할 수도 있고 자신들이 개종시킨 여인들의 순결을 빼앗아도 된다고 한다.
5. 결국 모든 물질은 악과 함께 멸망당하고 구원을 얻을 수 없다.
6. 영지주의자들은 영혼들이 되어 천사들과 결혼할 것이다.
7. 그리스도는 세례 시 예수님에게 강림했고, 예수님이 음모를 받기 전에 떠났다. 지혜는 그리스도에게 고통을 허락하지 않는다.
8. 그들은 자연에 영향을 끼치는 mantras를 언급한다.
9. 영들은 성육신한다.
10. 완전한 지식은 세례, 영적 결혼과 마지막 의식들을 통해 얻는다.
11. 지혜는 미카엘이란 천사 또는 Samael이라는 천사, 즉 뱀을 에덴동산으로 보내어 아담과 이브를 자유토록 했다. 그들이 금지된 실과를 먹으므로 참된 영지를 얻었고 자유하게 되었다.
12. 지혜는 악한 조물주가 일으킨 대홍수로부터 노아를 구원했다.
13. 조물주는 여러 회 강제적으로 이브와 성적 교제를 가졌다. 그리하여 이브는 악한천사들을 낳게 되었다.
14. 죽을 때 어떤 영들은 중간 상태에 들어가서 ‘플레로마’에 들어갈 때까지 동물의 본성을 정결케 한다.

위의 특징들에 비해 현대 학자들은 조금 다르게 상술하기도 한다. 영지와 영지주의가 다르다는 견해도 있지만 영지주의가 철저한 이원론 위에 서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논란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원론을 강조하면서 요나스는 하는 말이 “타락한 신 없이, 어리석은 창조자와 불행한 피조물 없이, 낯선 영 없이, 우주적 포로와 비우주적 구원 없이, 신성의 스스로의 구원 계획함 없이, 즉 신적 슬픔이 없는 영지는 설명될 수 없다”고 한다.

1.2.1. 우주론
        불교처럼 영지주의는 지상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 차있다. 아르콘들(Archons)이 지배하고 감독하는 사악으로 가득 찬 이생에서 자신을 육성하기 위한 삶의 모든 형태는 서로를 소멸시키고 만다. 그 결과 고통, 두려움, 그리고 죽음이 있게 된다. 소위 자연재해들인 지진, 기근, 화재, 화산폭발과 같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은 우리들의 삶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이런 것에 대한 이유와 해결하는 길에 대한 갈급함이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과 정반대의 설명이다. 창세기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창조하셨을 때 선하였던 것이 인간의 타락의 결과로 빚어진 결과라고 우리는 본다. 이와는 달리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의 타락이 아니라 물질세계의 사악성과 모든 불행들의 근원을 조물주에게 돌린다는 것이다. 선한 하나님이 아닌 악한 조물주에 의해 창조된 세상이기에 불행한 일들이 발생한다. 그는 7번째 영역에 있는 자이다.
        언 듯 보면, 이런 아이디어가 창세기의 상술과 유사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두드러진 차이점은 발렌티누스의 ‘플레로마’ 아이디어부터 위와 같은 창조론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더 높은 세계로부터 소피아가 떨어져 나와서 세상을 존재케 했다는 것이다. 유대학자인 필로(Philo, 20 B.C.-A.D.50)에 의하면, 플레로마 사상은 플라톤 철학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한다. 악으로 가득 찬 세상의 기원을 선하신 하나님께 돌릴 수 없기 때문에 소피아의 타락이 요청되고 인간의 타락이 요청된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이 말하는 우주의 창조는 무에서 창조된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 우주를 창조한 조물주가 아닌 최상의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알아보자.

1.2.2. 신론
        영지주의 사상의 또 다른 핵심인 완전히 초월적인 최상의 존재가 있다는 것이고, 이 하나님과 세상을 중재하는 연속적인 존재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에 덧붙여 구원론을 설명하기 위해 그들은 물질세계가 악하다는 전제를 갖고 그 기원을 설명하려고 노력한다. 그 설명을 위해 영지주의자들은 근거도 없는 복잡한 신화를 발전시킨다. 기원적으로 알 수 없는 초월적 하나님이 있었는데 그는 모든 창조된 우주 너머 계신 분이고, 어떤 것도 창조하지 않았다. 이런 참된 하나님은 어떤 것도 형성시키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발산하여 가시적이고 불가시적인 세상의 모든 것들의 본질들을 존재토록 했다. 초월적이고 알 수 없는 하나님은 발산하여 저급한 신성들의 연속들을 만들므로 ‘계급제도’(hierarchy)가 도입된다. 이러한 연속들을 가리켜 ‘이온들’이라 부른다. 이들은 참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신성들이다. 이들은 참된 하나님과 함께 신성들이 완전하게 활동하는 ‘충만’(pleroma)의 영역을 약속했다. 그 ‘충만’은 공허한 우리의 상태와 잘 비교된다. 참된 하나님이 발산한 저급한 본질들, 즉 신성들 중 제일 마지막에 위치한 신성은 소피아, 즉 ‘지혜’이다. 그 지혜는 알 수 없는 최상의 하나님을 알려는 또는 하나님이 되려는 욕망으로 가득 찼다. 이것은 합법적이지 않는 욕망으로서 결국 사악한 신인 동시에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 즉 ‘조물주’(demiurge)를 잉태하고 산출하여 우주를 창조토록 한다. 인류 가운데 있는 신적 섬광들은 이런 우주 안에 있거나 아니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최상의 하나님으로 인해 우주, 즉 세상으로 보내질 수도 있었다. 영지주의자들은 구약성경의 하나님을 사악한 신으로 단정하고 난 후, 이 신은 인류를 하나님에 대해 무지가운데 있도록 하여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받지 못하고 구원을 받지 못하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그들은 아담과 이브를 낙원에서 추방시킨 것이나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으로 이런 관점으로 이해했다.

1.2.3. 인간론
        영지주의에서 주장하는 인간은 이 물질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고 더 높은 하늘 세계에 속했다는 전제를 세운다. 자연스럽게 이원적 인간론을 갖는다. 이런 인간론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은 발렌티누스에 의해서이다. 이원론적 인간론을 기초하여 사람을 세 부류로 나누는 그는 인간이 부분적으로는 거짓 신인 조물주에 의해 만들어지고, 부분적으로는 참된 하나님의 빛을 갖고 있다고 한다. 본래 사람은 신적 본질의 파편인 영적 요소만 아니라 육적이고 심적인 요소를 함께 갖고 있다. 영적 요소를 가리켜서 ‘신적 섬광’(divine spark)인 상징적으로 부른다. 그래서 하늘의 이원성과 세상의 이원성을 함께 취하고 있는 셈이 된다. 인류는 본래 자신들 안에 있는 신적 섬광을 일반적으로 모른다. 이런 무지는 거짓 신인 조물주와 저급한 지배자들인 ‘아르콘들’로 인해 싹텄다고 한다. 그들은 남녀들을 참된 본성과 운명들에 대해 무관심하도록 했다. 지상적인 것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모든 것은 저급한 아르콘들에 종노릇하도록 할 뿐이다. 죽음은 신적 섬광을 인간의 몸에 갇혀있는 데서 벗어나게 한다. 하지만 죽음보다도 영혼에 의해 시작된 영지의 본질적 사역이 없다면 그러한 벗어남은 신적 섬광을 추방시키는 것에 불과하고 육적 세상에 노예로 다시 보내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1.2.3.1. 신과 동등
        영지를 가진 사람은 자신 안에 갇혀 있는 ‘신적 섬광’ (또는 ‘영혼’)을 발견하고 해방시킨 후, 신적 본질로 신비적으로 상승하고 빛의 영역을 향하여 계속적으로 나아간다. 자신이 경험한 신적 계시의 지식으로 말미암아 그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신의 기원을, 즉 하나님과 같은 자신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과 인간은 하나가 되어야함을 주장한다. 이것 역시 영지주의의 핵심적 사상인데 Apocryphon of James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아버지의 뜻을 행한다면, 그리고 사탄에게 유혹을 받는 동안, 그로부터 선물로 주어지지 않은 너희들의 공로가 무엇이냐? 아버지의 뜻을 너희들이 행하고, 사탄으로부터 너희들이 핍박을 받고 억압을 받는다면,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사랑하실 것이고, 너희를 나와 동일하게 만드실 것이고, 너희를 자신의 섭리를 통해 사랑받는 자로 여기실 것이다.

또 The Tripartite Tractate에서는 이렇게 서술하고 있다: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모든 자들은 영원토록 태어날 것이다. 그들은 서로를 돕도록 태어난다. 발산들이 무제한적이고 수없이 일어나기 때문이고, 자신과 동일하거나 자신과 유사한 것을 태어나기 위해 그로부터 오는 모든 사람들을 향하여 아버지 편에서는 아무런 시기가 없기 때문이고, 그가 자신을 태어나게 하고 계시하는 ‘전체들’(Totalities)에 존재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아버지이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이신 그 분이 바라시는 사람들과 그 분이 ‘전체들’로 만드시고자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온들 또는 자녀들이며, 아버지께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자신을 보이신 자들이다. 그래서 그로부터 나오는 자들은 그가 되는 것이다.

1.2.3.2. 엘리트의식
        신비적 영지, 즉 지식은 엘리트들만 가지는 것이다. 그들은 앞에서 말한 ‘영적인 자들’로서 이성의 능력과 육체를 넘어선 특별한 재능을 소유한 자들이다. 이런 특별한 재능은 세상이 창조되기도 전에 빛의 영역으로부터 빛의 섬광을 소유한 메신저로 인해 부여받은 것이다. 영지주의자들의 목적은 그 영지로 인해 내적 인간이 해방되어 빛의 영역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각자는 종교생활에 있어 실제 세상을 떠나 자기중심주의(narcissism)를 형성한다. 영지주의의 본질이 자기에로의 여행하면서 완전, 불멸, 신성, 그리고 육체와 세상에서 떠난 경건한 엘리트 형태를 취한다. 자신들과 같은 사람들만 사랑한다. 영지주의 문서들 중 하나인 The Gospel of Thomas를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의 영혼과 같은 형제들을 사랑하고, 너희 눈에 맞는 자들과 같은 형제를 보호하라’”고 되어있다. 이런 형태는 마치 ‘유아론’(solipsism)과 같이 스스로 자만하여 구원받은 자들만 세상에 살면서도 별거하여 사는 것처럼 자신들만 교제하는 독특하다. 그래서 사회적 관계나 연맹에 얽매이지 않으려하고, 교파의 벽을 무너뜨리고, 건전한 교리와 종교성에서 벗어나야만 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엘리트 의식을 갖게 되면, 기독교들은 하나님과의 내적 궁정에 들어가서 안식하려고 하지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힘든 길을 걷지 않으려 한다. 믿음보다는 ‘해탈의 경지’(nirvana)를 주관적으로 경험하기를 원한다. 인격적 발전보다는 영적인 것에만 관심을 갖는다.

1.2.4. 구원론
        인간은 이 세상에서 나그네이기 때문에 고향 또는 집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는 전제를 영지주의자들은 갖고 있다. 궁지에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참된 기원, 본질, 그리고 궁극적 운명에 대해 전혀 모르는 육적 존재를 갖고 있다. 이런 궁지에서 해방되기 위해 인류는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자신의 노력이 요청된다. 인류를 돕기 위해 처음에 참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빛의 메신저들이 있었다. 그들은 영지주의 설명에 의하면, 셋(Seth), 예수님, 그리고 선지자 마니(Mani)가 있다고 한다.

이런 자들 가운데 대부분의 영지주의자들은 예수님을 대표적 구세주로 본다.

 영지주의에서 말하는 구원은 죄로부터 구원이 아니다. 죄가 결과인 무지로부터 구원을 말한다. 무지, 즉 영적 실체들에 대한 무지는 영지에 의해 일소되어지고 영지의 계시는 빛의 메신저들로 인해 전달된다. 특별히 참된 하나님의 로고스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전달된다. 그의 죽으심이나 고난을 통해서가 아니다. 그리스도가 구원의 사역을 위해 수행했던 신비들을 이룩하고 그것에 대한 가르침으로 구원은 이뤄진다. 구원에 대한 개념은 매우 희미하다. 단순히 운명에서 벗어남이고, 이생의 압력으로부터 해방만을 의미한다. 한 편으로 볼 때, 영지주의 구원은 자신이 계획한 영적 기획과 같은 것이거나 아니면 아무도 개입하지 않는 개인적 경험에 근거하는 듯싶다. 영지에 대한 잠재력과 구원에 대한 잠재력은 모든 남녀들에게 있으며 구원이 대리적이 아니라 개인적임을 고수한다. 동시에 그들은 영지와 구원이 인식 안에서 일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시적이 되어야만 하고, 또는 동시적일 수도 있다고 한다. 이런 동시성은 빛의 메신저들에 의해 주어진다.

        대부분의 영지주의자들이 자신을 기독교인으로 여기고 있지만 몇몇 기독교적 요소들을 비기독교적 영지주의 문서들 속에 넣었다. 기독교적인 체 하고 있다.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은 신약의 하나님을, 즉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구약의 하나님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아무렇게나 해석한다.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묵시적 복음서들, 예를 들면, Gospel of Thomas와 Gospel of Mary에서 부활한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에 대한 참되고 영지적인 해석을 알렸다고 주장했다. 신적 영이신 그리스도는 인간 예수님의 몸을 취했지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아니고 지상 사역을 마친 후 신적 영역으로 승천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영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대속적 고난과 죽으심을 그리고 육체의 부활을 거부한다:

구세주는 죽음을 삼키셨다. . . 그는 멸망하는 세상에 관심이 없었다. 자신이 불가시적인 것으로 인해 가시적인 것을 삼키신 후 자신을 타락하지 않는 이온으로 변화시키고 일으켰다. 그래서 우리에게 불멸성에 이르는 길을 주었다. . . . 하지만 우리가 그를 입을 수 있는 이 세상에 나타난다면 우리는 그의 광채며 이 세상에서 우리가 죽게 될 때까지 그로 인해 보호를 받는다. 그로 인해 태양의 광채처럼 들림을 받는다. 이것은 육체적인 것과 함께 하는 심성적인 것을 삼키는 영적 부활을 말한다.

게다가 복음서에 대한 정통적 해석들을 거부했다. 특별히 Gospel of Thomas를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를, “자신의 손으로 소유하는 사람은 더 많이 받을 것이다. 소유하지 못한 자는 소유한 것까지 빼앗길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를, “너희가 만일 너희들 안에 남아있는 것을 가지게 되면 너희에게 주어지는 것은 구원이다. 만일 너희들 가운데 이것을 갖고 있지 못하면 너희는 죽을 것이다.”

        신약학자 브루스 (F. F. Bruce)는 이 구절에 대하여 평하면서 “41장은 하늘의 빛을 언급하는 듯하다. 그것을 소유하는 자는 구원을 받는 것이지만 잃어버리는 자는 멸망을 받을 것이다”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펑크와 후버에 의하면, 사람의 구원은 신적 모습, 즉 거룩한 섬과, 빛의 파편, 높으신 하나님께 기원을 두는 것, 조물주를 포함한 다른 신성들의 궁극적 근원을 소유하는 것에 달려있다는 영지주의적 아이디어를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영지주의자들은 구원은 전적으로 자신 안에 존재하는 빛이다. 빛을 의미하는 지식이 없으면 멸망한다고 한다.

1.2.5. 의식들
        어떤 영지주의자들은 모든 성례들을 거부하지만 일부 다른 영지주의자들은 세례와 성체를 유지한다. 왜냐하면 성례는 영지를 깨닫게 하는 상징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들의 성례를 갖고 있는데 ‘진리의 세례’(baptism of truth)라는 것이다.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세상을 포기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생수’(living water), 즉 영지의 선물로 여겨지는 것으로 붓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영지주의 의식들은 인간의 영에 있는 신적 요소를 영적 영역으로 상승시키는데 유용하도록 고안되었다. “기도하는 자세로서 양손을 뻗치고” 찬양들과 마술적 의식들은 하나님의 환상을 성취하는데 도움이 되기에 음창한다. 또 장례식에서 상승된 영혼을 포획할 수 있고 다시금 몸에 가두어놓게 하는 귀신들을 격퇴하기 위해 여러 의식들을 행한다. 발렌티니안 종파는 ‘신혼방’(bridal chamber)이라는 특별한 의식을 행하는데 하늘의 짝과 상실한 영혼이 재결합하는데 요청되는 의식이다. The Gospel of Philip 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이브가 아담으로부터 분리되었을 때 기원적 남녀양성의 연합은 파괴되고 말았다. 그리스도가 오신 목적은 아담과 이브를 다시금 연합시키는데 있다. 남편과 아내가 신혼방에서 연합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에 의해 이뤄지는 재연합은 신혼방에서 성례가 일어난다. 그곳에서 사람은 천사적이고 하늘의 짝과 함께 궁극적으로 연합하는 것을 확신하고 그것을 미리 맛본다.

        계속하여 그 곳 성전의 신혼방은 셋으로 나누고 있다 :

“결혼의 신비는 얼마나 위대한지! 그 결혼 없이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 .”
“예루살렘에는 희생을 위해 특별히 세 개의 건물이 있었다. 하나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성소’(holy)라고 부르는 곳이다. 다른 하나는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성소 중 성소’라 부른다. 나머지 하나는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지성소’라 부른다. 이  곳은 대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세례는 ‘성소’라는 건물에서 거행된다. 구속은 ‘성소 중 성소’에서 거행된다. 그리고 ‘지성소는 신혼방이다. . .
“그리스도는 시작부터 있었던 분리를 치유하러 왔다. 다시금 분리된 것을 연합시킨다. 분리의 결과로 죽어서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고 그들을 연합시켰다. 여인은 신혼방에서 남편에게 연합된다. 신혼방에서 연합했던 사람들은 더 이상 분리되지 않는다. . . .” “만일 어떤 사람들이 사제직의 명령을 받고 있다면, 그들은 대제사장과 함께 그 베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 . . 그곳은 영광위에 영광이 있는 곳이다. 그곳은 능력위에 능력이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일들은 감춰진 진리와 함께 우리들에게 개방되었다. 지성소는 계시되었고 신혼방은 우리를 초청했다.”

1.2.6. 윤리
        영지를 소유한 ‘영적인 자들,’ 즉 엘리트들은 아르콘들이 지배하는 세상과 분리하여 살아야만 한다. 영적인 자들은 우주적 ‘운명’(heimarmene)에서 벗어날 뿐만 아니라 도덕율과 같은 율법에 얽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허용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경멸하고 세상을 향한 적대심을 가져야만 한다. 더욱이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영들이 이 세상과 완전히 결별한 상태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그 안에서 행했던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고수한다. 니콜라이탄들, 오파이트들(Ophites), 카르포크라티안들(Carpocratians) 등 과 같은 영지주의자들은 구약성경의 도덕율들을 대체적으로 거부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인류를 가두어두기 위해 사악한 신이 사용하는 틀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지주의의 윤리적 가르침들은 금욕주의에서 자유사상(libertinism) 또는 허무주의적 요소를 갖게 된다. 몸과 물질적 세상이 사악하다는 교리는 여인들을 ‘사탄의 일’로 여기기 때문에 세베루스를 주장하는 3세기의 마르시온파들은 결혼을 사탄의 일을 성취하는 것이라 보았다. 이런 자세는 수도원제도의 금욕주의에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조물주와 사탄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물질을 형성하는 육체를 증오하여 음식이나 성적 교제를 저버리는 자세는 유대인들의 에센파와 같은 현상이라 하겠다.
       
윤리 또는 도덕성이란 말이 규칙의 체제와 같은 의미로 여겨진다면 영지주의는 그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러한 체제들은 대체적으로 조물주와 함께 시작하고 그의 목적들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한 편으로 볼 때, 도덕성은 사람 안에 내재해 있는 섬광이 조명되면서 일어나는 내적 고결성을 의미하며, 영지주의자들은 존재론적인 윤리를 이상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영지주의자들은 계명들과 규칙들을 지키므로 구원을 이룰 수 없을 뿐 아니라 그것들이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본다. 행위 규칙들은 질서 있고 평화로운 사회를 구성하고, 사회단체들 가운데 있는 조화를 이루는 유지와 같은 수많은 목적들을 성취해낸다. 하지만 규칙들은 구원과 무관하다. 구원은 오직 영지로 인해서만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도덕성은 일시적이고 세속적인 의미로 여겨진다. 그것은 개인들의 영적 발전에 따라 수정되고 보완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세 부류의 사람에서 ‘물질인들’은 도덕성에 그렇게 관심을 많이 가지지 않는다. 심령자들은 가끔 그것에 중요성을 둔다. 하지만 영적인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더 높은 다른 문제들에 관심을 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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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데이비드 오워 박사의 집회에 대한 마케팅이 매우 뜨겁다. 아울러 그가 이단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워낙 그에 대한 질문이 끊이지 않는 마당에 입다물고만 있을 수없어서 아는 만큼만 적어 보련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가 어느 특정 교파에 속하지 않은 독립 사역자이기 때문의 그의 뿌리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별로 없지만, 여러가지 주변 정황으로 보면, 그는 하나님의 참 선지자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는 "이스라엘"의 대학에서 "DNA" 관련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로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음성"을 듣고 예언사역에 뛰어 들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보기에, 그의 예언들은 성경적이지 않으며, 또한 매우 모호하게 주어지기 때문에 해석하기에 따라 아무 데에나 가져다 붙일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때와 장소가 주어지지 않고 그저 "산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보았다"는 내용의 예언을 아이슬란드 화산 폭발에 대한 예언이라고 주장하는 식이다. 이번에 "회개하지 않으면 전쟁이 일어난다"는 예언은 어느 목사의 말처럼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자기 예언 덕분에 회개기도를 열심히 한 때문"이 되는 것이다.

 그를 소개하는 문서<<에 의하면, 2003년 하나님이 그에게 강력한 강림으로 찾아 오셔서 이사야서 43장을 주신 후, 그의 입을 실제로 만지고 그를 높이셨다고 한다. 그 후에는 하나님이 모세와 엘리야, 다니엘 그리고 세례요한과 함께 그에게 나타나셨다고 한다. 하지만, 죽은 자와 접하는 것(Necromancy)을 엄격하게 금지하신 하나님이 과연 죽은 자들을 대동하고 그에게 나타나셨겠는가?

    "초혼자(Necromancer)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신명기 10:11)

또한 그의 부르심의 환상에서는 "신약의 언약궤 (the Ark of the New Covenant)"라는 비성경적 표현이 세번씩이나 되풀이되어 나온다. 이에 대한 판단은 각자 하기 바란다.

그는 환상 속에서 "천국 문 앞에 떠 있는 두 개의 결혼반지"를 보았다고 했는데, 이는 성경과는 거리가 먼 환상일 뿐 아니라, 오히려 반지에서는 오컬트/신비주의 냄새가 짙게 난다. 예수신부운동을 하는 아이합(IHOP)에 관한 "겨자씨 기사단의 숨겨진 어젠다<<를 참고하기 바란다. 참고로, 그 반지는 신사도들이 좋아하는 "금"반지였다고 한다. 이 환상에는 (만물을 관통하는 신성을 상징하는) "영지주의 빛살"로 보이는 것도 들어 있다. "영광의 무리(cluster)는 번개 같은 섬광들을 하늘에서부터 계속 방출해서 어두운 지구를 밝혔다. (예언 내용<<에서)"

또 다른 그의 "금시계' 환상에서는 천국에서 내려오는 금시계의 시간이 이제 막 밤 11시 59분이 되었다고 한다. 자정에서 딱 1분 남았단다. (참고로, 넉넉잡아 7000년으로 잡은 인류역사를 하루 24시간으로 칠 때 1분은 약 5년에 해당되며, 금시계가 잘 간다면, 이 환상을 본 2007년부터 5년 후인 2012년이 그 시계의 자정이 된다.) 예수께서 자신도 모르신다던 그 때를 하나님이 오워에게 보여주셨다는 것인가?

오워의 부흥집회에서는 늦은비/신사도의 대표적 현상인 토론토블레싱/빈야드<<의 "쓰러짐" 현상도 나타난다. 소위 "임파테이션"에 의한 쓰러짐 현상은 아프리카 출신의 신사도 로드니 하워드 브라운이 미주에 처음 전파한 것으로서, 신사도적 빈야드운동의 대표적인 현상으로 꼽히고 있다. 위 사진에서 넘어져 있는 사람들은 엎드려 경배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임파테이션으로 인해 쓰러진 사람들이다. 신사도들의 용어를 빌면, "성령에 의해 죽임당한" (slain in the Spirit) 사람들의 모습이다. (위 사진에 나오는 집회 비디오는 여기에서<< 볼 수 있다.)

 그의 집회에서 일어나는 빈야드 현상을 잘 보여주는 비디오가 있어서 뒤늦게 소개한다. 여기서 오워는 "기절시키는 불(Fainting Fire)"이 떨어지라고 말한다. (비디오 출처<<)


그의 한국 초청집회는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이라는 카페로부터 시작되었다. 이 카페가 오워에 대해 처음 소개했으며, 오워를 한국으로 초청한 사람도 이 카페의 회원이다. 초청이 수락된 후, 카페 운영자를 중심으로 집회가 준비되었다. 집회 장소의 섭외와 포스터 제작/분배가 카페를 통해 이루어졌다. 무엇보다도,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홍보가 진행되었기 때문에, 바이러스 마케팅(viral marketing)이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다고 본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받은 문자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예수신부운동을 하고 있는 이 카페는 필연적으로 신사도적으로 가고 있으며, 지금은 없어졌지만, 장 죠셉과 김상배 목사등을 위한 카테고리가 있기도 했었다. (다시 보니, 이 카페 카테고리 중 "†666 자료실"이란 곳은 장죠셉 목사가 관리하고 있다.) 특별히 현재는 신사도 "시드 로스"를 위한 카테고리를 제공하고 있는데, 그는 메시아닉 원뉴맨운동<<을 하는 대표적인 신사도이다. 그에 대해서는 "DNA 활성화를 통해서 신인(神人)으로 태어나다<<를 참고하기 바란다. (카페지기에 관한 의문<<도 참고 바람)

 원뉴맨 운동이 나오니 빠질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원뉴맨" 운동을 펼치고 있으며, 집회에서 금가루가 나타나는 김우현 PD는 그의 글<<에서 오워의 예언과 동일한 음성을 들었다고 말한다:

어느날 인터넷으로 마지막 때에 대하여 검색을 하다가 아프리카 캐냐의 한 흑인 목사님이 전하는 동영상 메세지를 우연히 보았습니다. 정확히는 모르나 그분은 아이티나 칠레의 지진등을 이미 경고하고 정확히 경고했던 성령 충만한 분이었습니다.  <== 이는 오워를 지칭


"주님께서 지금의 교회를 향하여 말라기 1장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성전에서 헛된 제물을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성전 문을 닫을 자를 찾으신다고 하십니다...이제 주님은 곧 오십니다.
교회가 깨어 회개하지 않으면...이 말씀이 이루어 질 것입니다. "


대강 이런 내용이었는데, 그 분이 들었다는 주님의 음성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것은 제게도 동일하게 주셨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목사님은 교회가 회개하지 않으면 큰 환란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눈앞에 이르렀고 이미 도끼가 그 나무의 뿌리에 놓였지만 교회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메세지를 듣는 동안 나의 영혼은 역시 전율 가운데 있었습니다.

또한, 집회 통역을 맡은 사랑과진리교회(LTC)<< 벤자민 오 목사는 타드 벤틀리의 양아버지 밥 존스와 큰**교회의 B 목사 간의 통역을 맡았던 신사도 운동가이다. 그는 YWAM(예수전도단) 출신으로 쓰러뜨림의 대가 베니 힌의 책들을
번역하기도 했다. 그 교회 사이트에는 큰**교회, 이번에  인천집회장소를 제공한 인천방주교회, 그리고 보스턴에서 신사도 운동을 펼치고 있는 엘리야김 미니스트리 등이 LTC Friends로 링크되어 있었다.

데이빋(데이비드/데이빗) 오워가 10처녀 비유 예언?



정리: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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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s://craah.cafe24.com/craah/24.wmv  

동영상이 잘 뜨지 않으면 다음 사이트로 들어가
"말 많은 이단 시비 단체" 부분의  "알파 동영상"
에서 12번 금니사역을 찾아 클릭하면 됩니다.

http://www.inews.org/Snews/Board/11/board.php?Domain=
keyh&SeqCode=83&Page=2&Find=&Keyword=


알파코스 금니사역 관련한 동영상인데 이것을 성령의
임재로 저런 사역자를 성경적인 사역자로 보는 분이
있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아말감으로 때운 이를
굳이 금으로 바꾸려면 치과 가서 돈들이면 되고
금박 사다가 대충 눌러도 눈속임은 가능할 듯..

유튜브에서 골든 티쓰 미러클 영어로 타입하면
실제로 금박 사다 모든 이를 금니로 보이게
한 실리맨도 있는 것 보면....
 
어차피 그런 기적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사람 치과나
과학 기술원 데려가게 해서 인간의 손으로 한게
아니라고  증명받게 할 것도 아니니...
 
인간이 능히 할 수 있는 것은 기적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존재를 또는 임재를 그런 허술한 식으로 증거해
보이실 리도  없지요.  저런 상술 사기를 사는 어리석은
교중때문에 종교적 사기꾼들이 이 땅에서 사라지질 않는
것이고 교회도 예외가 아닌 것  같습니다.  

준비: 반론 님

빈야드 이단사이비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의 공식 웹싸이트에 가면 <이단사이비 총회 결의>에서
1996년 81회 총회에서 보고된 빈야드에 대한 보고서
http://www.pck.or.kr/PckCommunity/NoticeView.asp?TC_Board=
7816&ArticleId=60&page=8&Depth=1


준비: thomas 님


이단경계 경보
말세지말의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지나칩니다.
이 블로그의 주인장이 10월에
미국 뉴욕이나 엘에이에 본격 진출한다고 합니다.
조심하세요~


http://blog.naver.com/gwphan/140053239580



준비: 지혜자 님



다른 분들을 위해 링크 하나 겁니다.
http://blog.daum.net/discern/51

준비: cy 님
컬럼 난에 ‘신사도 운동’과 세계 기도의 집 IHOP에 대한
두분 목사님들의 각각의 견해를 접하면서 우리가 한번쯤은
진지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사도’라는 명칭에 대한 개인적 소고를 이곳 논객 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10여년 전부터 소위 ‘신사도 운동’이라는 용어가 회자되면서
건전성에 논란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신사도운동’이라는 것은 갑자기 생겨난 새로운 운동이 아니라
지난 19세기 중반 미국의 남북전쟁 이후 미국교회 안으로 들어온
교리의 하나로써 전쟁을 치르며 말세현상을 실감하자
말세에 기적과 부흥이 일어난다는 ‘늦은비’라는 신학을 조성하면서
이 교리가 알려졌다고 합니다.

이 ‘늦은 비’ 라는 운동은
요엘서 2장 23~24 절과 28~29절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봄철에 이른비를 주시고 가을철에 늦은비를 주셔서
귀한 열매를 얻도록 도우시는 것처럼
말세에 하나님의 영을 이와 같이 부어주실 터인데
예수님 승천 이후 오순절에 성령강림 사건은 이른비에 해당하는 것이고
그 이후 오늘날에도 초대 오순절의 역사와 같은 성령을 부어주실 것인데
이것이 ‘늦은비’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늦은비라는 표현이 수 차례 나오지만
이것을 성령의 부어주심과 같은 상징적 표현으로 논리화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선지자 요엘이 예언한 이 말씀은
예수님 부활 이후 오순절에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는 이 구절을 본문으로 인용해서
800여 년 전의 그 예언이 오늘 성취 되었음을 선포하는
위대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늦은 비" 교리는 말세에 교회가 새롭게 될 것이며
다시 사도들이 위임되고 초대 사도시대의 표적 은사들이
동일하게 생긴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물론 은혜의 시대인 오늘날도 갖가지 은사와 표적이 분명이 있을 것입니다만,
오순절 성령 강림사건은 교회가 세워지기 위한 단 일회적인 것이었으며,
그 사건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영은 이미 교회와 성도 안에 들어와 계시다는 것이
말씀 안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인식해온 지식이 아닌가 합니다.
 
한편 이 운동의 교리는 20세기 초에 오순절운동이 처음 생길 때부터
그 오순절 계통 교회의 핵심적인 교리로 자리 잡아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신사도운동”은 이러한 예전의 늦은비 교리를 바탕으로 하여
훌러 신학교 교수였던 피터 와그너(Charles Peter Wagner)라는 교수가
‘신사도 개혁운동’을 외치며 ‘제2의 사도시대’를 선언하면서 시작 되었다고 합니다.

이 피터 와그너와 깊이 교제하며 상호 연계하여 사역을 넓혀온 사람들이  
바로 빈야드의 존 윔버(John Wimber),
그리고 마이크 비클(Mike Bickle), 밥 존스(Bob Jones),
폴 케인(Paul Cain), 릭 조이너(Rick Joyner),
존 폴 잭슨(John Paul Jackson) 등을 비롯한  소위 캔자스 시티 자칭 선지자들,
바로 세계 기도의 집, IHOP 관련 예언자들 그룹이라는 사실입니다.

아이합의 리더(예언자)들은 자신들을 사도를 칭하고
예언의 대상인 특정한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사도가 되었다고 하거나
앞으로 사도쉽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합니다.

마이크 비클, 폴 케인, 그리고 밥 존스 목사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소위 예언자 그룹은 자칭 스스로 사도요 선자자(Prophet)로
부른다는 것입니다.

이미 교계에서 건전성에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서울 ‘큰믿음교회’의 치유집회 등에 밥 존스 목사 및 캔사스시티의 선지자들이
주요 강사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사료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사도직은 그리 간단하게 생각될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 누구라도 사도적 직임을 가진다는 문제는
대단히 중대하고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에베소서 4장 11절)

위의 에베소서 말씀의 직분들이 오늘날에도 다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일련의 질문에 ‘그렇다’ 라고 대답하며 역사적 정통교회의
신앙과 신학을 벋어나고 있는 것이 이들의 상태이고
신사도운동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사도직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아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인식해온 지금까지의 전통적 이해 속에서
사도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특별한 자격 요건이 있습니다.

첫째, 부활 후에 직접 예수님을 목격했어야 하고,
둘째, 그리스도에 의해 특별히 사도로써 부르심을 받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실은
베드로가 가롯유다를 대신할 자는 “그의 부활의 증인” 이어야 한다는
행전 1장 22절 말씀을 근거로 합니다.

이렇듯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였으며,
주님께서 직접 부르시고 위임하셨으며,
그래서 성경을 기록할 수 있었던 12사도와
바울과 바나바, 혹은 실라 그리고 야고보 외에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롬 16:7)가 사도의 반열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오늘날 그 누가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직접 뵈었다고
사도로서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익명의 사도가 몇 명 더 있을 수는 있지만,
분명한 것은 사도 바울 이후 사도직을 받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
전통적 견해입니다.
이렇듯 사도라는 특별한 직분의 수는 극히 제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서 가르치고 다스리기 위해 존재하는
살아있는 사도 대신에 우리는 사도들이 기록한 신약 성경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신약 성경은 오늘 날 교회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초대교회 당시에 사도들이 행하던 다스리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유능한 교회 사역자나 선구자를 가르켜
사도라는 용어를 굳이 사용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만,
그러나 신약 성경을 읽으면서 사도직에 주어진 엄청난 권세와 권위를
읽고 보는 사람들에게 큰 혼란을 가져다 줄 것이 분명하기에
그것은 합당치 못하고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학자적 견해일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역사 속에서 대단히 중요했던 지도자들,
아타나시우스, 어거스틴, 루터, 칼빈, 웨슬리, 윗필드, 무디, 등등
그 아무도 자신을 사도라 부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에 누가 사도라는 직분을 취하고자 한다면
교만이나 자기를 높이려는 발상,
혹은 지나친 야망과 다른 사람보다 더 큰 권세를 교회에서
누리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할 것 입니다.

우리는 초대 당시 이후 사도들을 계승한 사람들을 속사도 라 칭합니다.
그리고 속 사도를 계승한 사람을 교부,
교부를 계승한 사람들을 감독들이라 칭합니다.
감독들을 계승한 사람들이 이후 일반 성직자들이 되는 것이겠지요.

그럼 왜 그들을 사도라 부르지 않고 ‘속 사도’니, ‘교부’니,
‘감독’이라는 명칭을 사용 했을까요?
그들이 위치적, 상황적으로는 분명히 사도 직을 계승한 것입니다만,
‘기능적’으로는 결코 그들이 사도가 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시의 완성인 성경을
더 이상 계속해서 기록 할 수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직분에서 성경 기록의 기능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봅니다.

바울이 거의 모든 서신서 초두마다 자신의 사도임을 강조하고
고린도전서 9장 1절과 15장 7~9절에서
그토록 일부러 자신의 사도직 정당성을 강조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만큼 아무나 사도임을 주장할 수 없었고
또 그리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바울에게 분명히 사도권을 직접 주셨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당시 예루살렘 당국은 바울을 사도로서 인정하였습니다.

또한 사도란 말의 본래 의미에 있어서
더 이상 사도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전통적 이해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직에 대한 진정한 계승자는 신약의 교회 그 자체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떤 특정인이 사도를 계승하여 직임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 내에서 전체가 사도들의 직무를
계속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 내에서 사도직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교회는 “교회법”과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에 근거한 “교의, 또는 교리”,
그리고 장로나 감리제도와 같은 “감독제도”라는 것으로써
초대교회로부터 전수된 무형의 사도적 직임을 계승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교회가 아닌 특정인이 사도권을 가지게 된다면
위의 세가지 유형의 직무들(교회번, 교리, 감독제도)에 대하여
사도된 자가 좌지우지 할 수도 있다는 가정도 할 수가 있는 것이 되기 때문에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은 것 입니다.

마치 카톨릭의 수장인 교황이 스스로 제정하는 교리가
성경의 권위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권위를 갖는 행세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모양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여라도 그들의 저주를 받기라도 하는 날엔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같이 될까 봐 벌벌 떨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지나친 오버 일까요?

오늘날 수많은 직분의 명칭가운데
굳이 사도라는 명칭 칭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성경을 계속 기록하여 정경으로써
기존의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인정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캔사스시티 아이합의 자칭 사도들과 그들이 임명하는 사도들은
어떤 종류의 사도일까요?
그런 기능적 요소는 무시하고 혹시 오직 사도의 권세와 권위만을
구하는 형태는 아닐까요?
그래서 그들이 예언하면 누구든 사도가 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요?

밥 존스 목사는 앞으로 자신의 예언에 의하여 전 세계에 30만 명의 사도를
세우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하였다고 합니다.
즉, 세워진 사도들에 의해서 ‘새로운 교회의 질서’가 세워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신약의 시대에 스스로 웬 선지자(예언자) 일 것이며,
그 선지자의 권위로 사도직을 수여한다고 하는데,,,,,???
주님이 밥 존스와 캔사스시티 예언자들에게
특정 목사 혹은 성도를 사도로 세우라는 계시를 하셨다는 말을 정말 믿어도 될까요?

12 제자들을 직접 부르시고 사도로 임명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저들의 주장에 뭐라 하실까요?

감히 사도의 반열에 설수 있다는 발상은 자신들의 현재 위치를
훨씬 넘어선 비성경적 변이가 아니고 무엇일 것인지요?

거기에다가 이 위대한 예언자들이 서로가 서로를
명사(名師)화 내지는 신격(神格)화 비슷한 형태를 취한다고 합니다.

사도는 그 의미가 (그리스도로부터) 일정한 임무로 보냄을 받은 자이며
그는 이러한 임무에 따라 보낸 자를 대표하여 행동하며
보낸자(그리스도)로 부터 완전한 권위를 위임 받은 자이기 때문에
명사화되어 높아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가지고 싶고
탐나는 직임임에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현대의 사도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도 베드로의 수장권을 계승하는 전통을 이어온 사람들보다
훨씬 더 황당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사도바울이 그의 사도직을 자기의 직분을 자랑할
기회로 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증거와 수고에로의
부르심으로 본 것과 얼마나 대조적일 것입니까?

이러한 제2의 사도시대를 주장하는 이들의 신학 핵심은
‘사도적 예언’ 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정의하는 예언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메시지(계시)를 받아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주심의
‘말’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특별한 능력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사교적이고 건전하지 못한 집단에서 즐겨 사용하는
이른바 ‘직통계시’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전통적으로 고수하는 신앙은
하나님께서는 성경기록을 통해서 당신의 계시를 완성하셨고
이 성경말씀이라는 특별계시를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신다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제외한 다른 계시의 존재는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키며 우리의 정통신앙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일 것입니까?

그리고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이 꼭 이루어지고 성취된 것에 반해
캔사스시티의 예언자들은 자신들의 예언이 성취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며 예언 성취 유무에는
상당히 유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가끔은 공수표도 날리시는 분으로 만드는 건 아닌지,,,,,?

설령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어떤 환상이나 싸인이 있다면
그것은 철저히 개인적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옛적에 열왕의 시대에 북이스라엘이 아람과의 전쟁을 그치고
3년 동안 평화로운 세월을 보내게 되는데 이때 아합 왕은
길르앗 라못이라는 성읍을 아람으로부터 돌려 받아야 할 성읍으로 생각하고
무력으로라도 다시 빼앗을 궁리를 하였습니다.

그때 당시 남 유다의 왕 여호사밧이 아합을 방문하였습니다.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자기와 함께 아람과 싸우러 가자고 요청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은 기꺼이 전쟁이 동참 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를
여쭤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자 아합이 이에 동의하고 그 목적을 위해 4백여 명의
선지자를 불러 모았습니다.
그들이 바알 선지자들은 아니었으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참 선지자들도 아니었습니다.

아합은 자기와 여호사밧이 길르앗라못을 취하기 위해
아람과 싸우러 가도 되는지를 그들에게 물었을 때
그들 모두는 그가 승리할 것을 흔쾌히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그들의 예언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선지자에게 다시 물어 볼 것을 아합에게 요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아합은 미가야라는 선지자를 소개하면서
그는 흉한 일만 예언한다고 하며 자기는 그를 미워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의 요구에 따라 아합은 미가야 선지자를 불러 들였는데
처음에 미가야는 다른 선지자들과 동일한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그가 4백명의 선지자들을 조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사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만을 말하도록 요구했을 때
미가야는 비로서 자기가 본 계시를 말하였는데
모든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같이 산에 흩어졌음을 보았다고 하면서
이 예언을 통하여 미가야는 궁극적으로 아합의 죽음을 예고하게 됩니다.
(열왕기상 22장)

오늘날에도 선지자를 자처하면서
온갖 예언을 쏟아내는 많은 예언자들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아합왕 시절에 무수히 많던 선지자들처럼,,,,
그러나 과연 이들이 정말 그 옛날 미가야와 같은
사시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임이 확실 할 것입니까?


오늘날에도 예언자들이 특정인을 향하여 예언하는 내용들을 살펴보면
무척 고무적이어서 마치 곧 큰 부흥이 일어날것만 같습니다.
그 옛날 아합과 여호사밧에게 승리를 예언하던
그 수백 명의 선지자들 예언처럼,,,,,,


우리는,
성경은 우리의 신약교회를 위해 허락하신 유일하며 충분한 권위임을 믿습니다.
기록된 말씀은 꿈이나 환상이나 음성보다 더 확실한 줄 믿습니다.(벧후1:18-21).

또한 신약 성경에 드러난 양상과 형식만으로도 교회가 세워지는데
충분한 줄 믿습니다.
우리는 결코 새로운 종류의 교회를 만들 권한이 없으며
또한 성령님께서 초대 교회에서 운행하셨던 것과는 다른 식으로
혼동을 동반하며 운행하시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이 시대를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완전한 계시로,
더 이상 추가할 것이 없고 성도들에게 단 한번 주신 믿음을 담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미 종식되고 완성된 성경을 또 다른 계시로 대치하면서
성경의 근본적 가르침을 혼탁하게 하는 어떠한 사설(邪說)도
우리는 분명히 거부해야 할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교제 http://www.youtube.com/watch?v=QBnnpiV1nlo
완전 여자 무당 생각나지 않는지?
교제 http://www.youtube.com/watch?v=BeoiamEvZMA
저 목사는 한국인


출처: 아멘넷 게시판, 작성자: 삭개오
‘나무아비타불, 아멘’에 통합장로들 ‘신앙선언’
예장통합 장로들, 신앙 선언문 발표   [2009-09-05 09:33]

“나무아비타불, 아멘” “하늘에 계신 하나님, 부처님, 성모 마리아와 소태산 대종사님” “죽음의 굿판 대신…살림의 굿판이 벌어지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하나님의 양떼를 돌보라는 하늘의 명령 앞에서 한 없이 게으르고 무능했던 우리의 죄악이 너무 큽니다”
 
예장 통합 전국장로회연합회(회장 황명호, 전장련)가 최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신앙 및 신학방향에 이의를 제기하면서’란 제목으로 신앙선언을 내면서 지적한 NCCK의 공동기도문, 시국기도문 등에서 따온 글귀들이다.
 
이 선언문을 예장 통합 기관지 기독공보에 낸 전장련은 “NCCK의 신학과 신앙입장을 차제에 밝히고 성경을 벗어난 신앙과 신학은 성경에로 다시 돌아올 것을 우리는 간곡히 촉구하면서 성경적 기독교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그 어떤 행태도 용납하지 않을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혔다.
 
예장 통합은 NCCK의 가맹 교단이면서 WCC의 회원권까지 확보하고 있는 주류 교단 중 하나다. 이번 WCC 차기 총회 개최지 선정에 있어서도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예장 통합. 그런데 그 ‘허리’라고도 할 만한 중심세력이 NCCK와 상반된 신학적 입장을 견지하며 NCCK의 행보에 제동을 건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NCCK가 최근 홈페이지에 게재한 ‘생명의 강 살리기 종교여성 공동기도문’(구미정), ‘한국목회자 1000인 시국 선언’(2009.6.18) 등을 접한 이들은 “기독교 정통 신앙을 고백해 온 각 교회의 지도자들로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했다.


연합회는 “우리는 ‘공동기도문’과 ‘시국 선언문’에서 기독교 신앙의 근본 진리를 왜곡하고, 한국기독교를 혼합주의의 한 종파로 전락시키며, 교계 지도자들을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들로 폄하하는 글귀들을 봤다”묘 “NCCK의 에큐메니컬(Ecumenical) 정신을 존중하고 협력해 온 전국장로회연합회 소속 교회의 지도자들은 NCCK의 신앙 및 신학적 방향과 사업노선에 대해 심한 염려와 회의를 갖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연합회는 또 “현재 세계교회뿐만 아니라,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에큐메니칼 신학’에서 21세기 ‘종교다원주의신학’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선상에서, NCCK가 간과하고 있는 기독교 신앙의 근본진리를 다시금 대천명하여, 왜곡된 ‘에큐메니칼 정신’을 수정하고, 다가오는 ‘종교다원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연합회는 “우리는 WCC의 창립정신에 공감하며 교회연합운동에 적극 지지해 왔으나, 최근 WCC와 NCCK의 일부에서 제기된 혼합주의 내지 종교다원주의적 신학편향과 그들의 신앙실천은 성경과 우리의 신앙입장과 배치되는 것임으로 우리는 이들의 신학과 신앙적 입장에 크게 우려를 표명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 같은 장로들의 신앙선언은 추후 WCC 차기 총회 개최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야 할 예장 통합측으로선 풀어야 할 큰 숙제가 됐다. 에큐메니컬, 복음주의를 넘어 오순절 교회까지 연합을 이루려는 찰나에 교단 내 이견과 마찰로 분열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본래 WCC 차기 총회 유치 취지와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예장 통합은 NCCK(회장 김삼환) 가맹교단이면서도 보수적인 연합체 한국기독교총연합회(회장 엄신형)에도 회원권을 두어왔다. 교단 내 진보, 보수 세력이 공존하고 있기 때문. 그러나 교단 내 핵심 계층이 이처럼 결집해 보수적 성향의 신앙 선언문을 발표한 것은 근래들어 처음있는 일이다.


김진한 기자 jhkim@theverita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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