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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원장이 주는 물을 한잔 마시고 뒤로 넘어가는 신도.
최근 브라질 사람 모아실의 '금이빨 현상'을 비롯해 신유 명목의 극단적 신비주의 집회가 교계에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집회도중 쓰러지고 바닥을 구르게 하는 것은 예사고 심지어 신도들에게 영적 의미를 부여하며 성경책을 집어던지고 물을 먹이는 등의 희한한 행태의 집회까지 횡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문제의 행태는 일부 교계신문 광고와 기사를 통해 '불의 종·능력의 종·신유의 종'으로 꾸준히 선전된 홍준표 목사(초락도금식기도원 원장)가 인도하는 집회에서 목격된 것이다.

기자는 9월 1일(수요일) 충남 당진에 위치한 초락도금식기도원을 찾았다. 오전과 저녁 집회 두 차례 참석했다. 평일임에도 200~300명의 신도들이 300여 평 규모의 대성전에 모였다. 이 중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집회 장소 앞뒤로 60~70명의 신도들이 찬송가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팔을 휘두르거나 위아래로 방방 뛰고 박수를 치는 등 다양한 모습으로 춤을 췄다. 찬송하는 내내 집회 장소를 빙글빙글 도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뛰어서 도는 사람, 속보로 걷는 사람, 천천히 걷는 사람 등 각양각색이었다. 참석자 중 1/3은 앞에서 춤추고 1/3은 집회 장소를 빙빙 돌고 1/3은 그냥 앉아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홍준표 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후후후훅, 파파파파팟! 불로, 불로, 불로, 불로!!!"

춤에 열중하던 신도들이 그 소리가 나오자마자 약속이나 한 것처럼 동시에 뒤로 벌렁벌렁 넘어갔다. 집회 열기는 더 뜨거워졌다. 춤추는 사람을 향해 홍 목사가 느닷없이 성경책을 집어 던졌다. 성경책을 받은 사람이 뒤로 벌렁 넘어갔다.

일반 교회에서는 하지 않는 묘한 명령도 나왔다. 홍 원장이 "웃을지어다!"하면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우히히 히히히! 우하하 하하하! 아하하 하하하!" 홍 원장이 단상에서 "올라올지어다, 올라올지어다" 수십 번을 외쳐댔다. 신도 30~40여 명이 엉금엉금 기어서 단상으로 올라갔다. 많은 수가 올라가자 홍 원장이 다시 "내려갈지어다, 내려갈지어다"라고 10여 회 외쳤다. 올라왔던 사람들이 모두 내려가자 곧이어 "굴러갈지어다!"라고 명령했다. 신도들은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떼굴떼굴 굴러가기 시작했다. 이런 행동을 한 뒤 홍 원장이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돌리자고 하자 신도들은 박수를 쳤다.

집회 막바지가 되자 장풍대결 같은 장면도 선보였다. 홍 원장이 신도 두 명에게 일어나서 서로 마주보고 "불로!"라고 외치라고 말했다. 신도 둘이 마주보고 섰다. 홍 원장의 지시에 따라 두 신도는 "불로"라고 외치며 장풍을 쏘듯 서로를 향해 손을 펼쳤다. 그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뒤로 벌러덩 넘어갔다. 이들을 향해 홍 원장은 "엄청나게 은혜를 받은 그룹"이라고 말했다.

시간적으로 보나, 신도들의 반응으로 보나 집회의 초점은 말씀보다도 홍 원장이 진행하는 이런 여러 가지 '행태'에 있어 보였다.

초락도금식기도원의 사무처에서 판매하는 CD에는 기자가 취재한 집회 때 본 것보다 더 희한한 장면들이 대거 나타난다. 2003년 1월 27일 진행한 제 12회 전국목회자부부능력 대성회 모습을 담은 CD 전반부만 보아도 물을 먹여 사람들을 쓰러뜨리고, 옷자락에 손을 대게 하고 손수건을 신도들에게 얹어서 쓰러뜨리는 등 한마디로 '기독교'의 이름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라기에는 상식 밖의 장면들이 수두룩하게 나온다.

이 CD에서 홍 원장이 집회를 진행하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사도 바울의 앞치마를 사용하신 하나님, 이 시간에 역사하여 주옵소서." 그는 간단한 기도를 끝내고 "내 옷을 잡아보세요!"라며 신도에게 옷자락을 내밀었다. 한 신도가 그 옷자락을 잡자마자 웃으며 뒤로 넘어갔다. 홍 원장은 이에 대해 "예수님 옷에 손만 대도 병이 나았듯이 옷만 잡아도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자신의 손수건을 꺼내 한 신도의 얼굴에 덮어줬다. 손수건을 쓴 신도도 발작하듯 뒤로 넘어가며 몸을 둥글게 말고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사람들은 '할렐루야!'를 연발했다. 집회를 인도하던 홍 원장이 갑자기 자신의 상의를 벗었다. 신도들 사이에 요동이 일어났다. 너도나도 그 옷을 받으려고 하는 분위기였다. 마치 그 옷에 특별한 능력이라도 담겨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듯했다. 그 신도들을 향해 홍 원장이 자신의 상의를 힘껏 던졌다. 그것을 목사들과 사모들이 받고 4, 5명이 한꺼번에 쓰러졌다. 다시 상의를 집어 들고 우측을 향해 힘껏 던지자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 손수건을 덮어 주자 한 신도가 넘어가려 하고 있다.

   
▲ 상의를 벗어 신도들을 향해 옷을 날리는 홍 원장.
이밖에 CD에는 신도들을 세워놓고 홍 원장이 그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신도들이 뒤로 넘어지는 장면도 나왔다. 이 중에는 유도의 후방낙법을 하듯 심하게 뒤로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홍 원장은 위와 같은 다양한 행태들에 '성령의 역사'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성령의 불을 받고 능력을 받은 증표라는 것이다.

"19년 동안 많은 역사와 표적이 있었다. 말씀을 선포하는 대로 역사가 일어났는데 귀신이 떠나고 기름 붓는 사역이 일어나고, 성령의 새 술에 취해서 쓰러지는 역사도 일어나고, 깊이 잠드는 역사, 서서 굳는 역사, 여러 현상이 있었다. 손수건만 얹어도, 내가 지나가도 쓰러지고 넘어지는 역사, 사도행전에 사도바울이 손수건만 얹어도 병자가 낫고 악귀가 물러갔는데 그런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증거하는 현장이다."

이곳을 찾는 목회자들과 사모들도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다. 경기도 부천에서 목회를 한다는 A 목사는 집회도중 기자에게 "1백 명의 신도를 놓고 목회하는데 더 강한 영력을 공급받고 싶어 이곳에 다닌다"며 "인간의 생각으로 판단하지 말고 이곳에서 하라는 대로 따라만 해보라"고 권했다. 그는 찬양에 맞춰 춤도 추고 물도 마셔보고, 집회 장소를 빙빙 돌면 새로운 은혜를 체험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충북 충주에서 사역하는 B사모는 "손수건을 받는 순간 '억'하고 넘어지면서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며 "그날 밤은 그 불이 너무 뜨거워 잠을 잘 수가 없었는데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성령의 불이다"고 주장했다.

집회시 홍 원장이 던진 성경책을 붙들고 넘어진 한 신도도 "성령의 불을 받아들인 것"이라며 "그런 행위를 통해 자아가 깨지고 성령의 영력을 공급받게 된다"고 말했다.

   
▲ 충남 당진에 위치한 초락도금식기도원. ⓒ정윤석
초락도금식기도원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에 대해 교계 일각의 관대한 시각도 없지 않으나 대체적으로 한국 기독교의 질을 떨어뜨리는 불건전한 행태라는 지적이다. 진용식 목사(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단대책위원회 위원장대행)는 "기독교에 신비주의가 유입되면서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해서 경계해야 한다"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이 낫는 경우가 많지만 말씀을 통해 얻는 충만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면 극단적인 신비주의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유해룡 교수(장신대 영성학)도 "신도들에게 밤낮없이 극단적 자극을 주는 곳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배본철 교수(성결대 신학전문대학원장)는 "원래 성경에 나타난 불의 개념은 정결과 능력의 상징"이라며 "정결이란 영혼의 정결을, 능력이란 사역의 능력으로서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필요한 성령의 능력으로 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불의 진정한 개념과 비교했을 때 소위 불을 받았다는 사람들의 외적 체험은 진정한 성령의 불과 별 연관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전호진 목사(전 아세아연합신학대학 선교학 교수)는 "기독교는 신앙의 신비와 영적 생명과 특수한 상황에서의 이적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이적을 통하여 믿는, 즉 종교 현상에 너무 의존하는 신자들은 참 영생의 도를 소화하지 못하고 말았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이다"라고 말했다. 극단적 신비주의 집회가 횡행하고 있는 이때, 성도들의 신앙상 혼란을 막고 한국 기독교의 질적 하락을 방지하기 위한 교계의 적극적인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홍준표 원장은 1984년 충남에서 초락도금식기도원을 세웠고 현재 자신이 설립한 세계능력부흥사연수원의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초락도금식기도원은 수용 인원 1천200명의 대성전 1개동과 숙소 10개동, 사무실, 매점, 식당, 개인기도처를 갖추고 있다. 지금은 지상 3층 연건평 480평의 새 건물을 건축 중이다.


아래 주소를 클릭하세요.

http://www.youtube.com/watch?v=RFCjKDKK6xY
http://www.youtube.com/watch?v=iCic_52_i_c

불로 불로 불로(홍준표 원장)
뱀뱀뱀(문신애호군)
더더더(손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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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 때 춤추면 자아 깨지고 심령 변화"
홍준표 목사 전화 인터뷰

   
▲ 집회를 인도하는 홍준표 목사.

집회 장소에서 사람들이 춤을 추고, 빙빙 도는 이유는?

성경에는 기뻐서 춤추는 사건이 많다. 집회 장소를 도는 이유는 성령께서 회오리 바람을 불어 넣어서 도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하고 나면 자아가 깨지고 심령의 변화가 일어난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신 주님' 하며 물을 마시게 하는데 무슨 의미가 있나?

그 물을 마시면 사람들이 취한다. 성령의 새 술에 취한 것이다. 토하는 사람도 생긴다.

설교 중 불을 주는 사역자를 건드리면 죽는다고 했는데?

사역자를 건드리면 죽는다는 것은 성경에 그런 사람들이 나온다는 얘기다.

실제로 홍 목사의 사역을 방해하다가 죽은 사람도 있는가?

모르겠다.

홍 목사가 집어던진 성경책을 받은 사람은 성령의 능력을 받은 것으로 해석했다. 그런 것인가?

성령의 능력을 공급받는 것이 맞다. 성경자체에서 엄청난 능력이 나오기 때문이다.

신학은 어디서 했고, 현재 교단 소속은?

순복음에서 신학을 했고, 대한예수교장로회 성합측 소속 목사다.


(이 기사는 주간 <교회와신앙> 2004년 9월 8일자, 22일자에 기고한 글입니다.)

[아래 내용은 전에 캔저스시티 선지자/대언자(KCF/KCP) 마이크 비클과 밥 존스의 문제점<<이라는 글에서 소개한 내용을 업그레이드 한 내용입니다.]

원제 [documentATION OF THE ABERRENT PRACTICES AND TEACHINGS OF KANSAS CITY FELLOWSHIP<<]인 이 문서는 캔자스시티선지자로 알려진 마이크 비클과 밥 존스 등의 캔자스시티펠로우쉽(Kansas City Fellowship, 앞으로 KCF라고 칭함)교회와 7년간 동역한 순믿음사랑의교회(Full Faith Church of Love)의 어니 그루엔(ERNEST GRUEN) 목사가 KCF에 보낸 공개서한으로 내부자 고발에 해당하는 문서이다.

여기에서는 그 문서 중에서 KCF의 문제점을 요약한 부분만 발췌해서 내용전체를 번역소개한다. [어니 그루엔 리포트 전체의 번역을 보려면 여기로<<]

[아래 번역에서 "우리 모두는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번역된 부분의 원문은 "We all have a problem"으로 "문제가 있다"는 의미로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앞에 나오는 4 페이지 정도의 도입부분은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1. 마이크 비클이 밥 존스를 '하나님의 참 선지자'라고 온 나라에 알리(promote)는 것을 우리 모두는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사람은 선지자가 아니다. 그의 간증에서 밥 존스는 그가 어떻게 ... 했는지 이야기한다.

a. 죄에 철저히 두 손 든 채로 20여년을 지냈다--알콜 중독, 길거리 싸움, 술집 다툼, 여자 따라다니기, 도박, 주류 밀수, 그리고 스스로 인정한 귀신들림. ("...그들이 나를 지배하면 나는 완전히 괴팍하게 되곤 한다! 말썽꺼리만을 찾아다닌다. 당신은 술을 충분히 마시면 정신을 잃는다. 나는 정신을 잃는데...") 결국 드디어, 정신병원에 있던 중, 그는 예수께서 그에게 (12명에 관해서) 말씀하신 것을 들었는데, "밥, 그들을 죽이든지 용서하라"고 하셨다. 다행히도 그는 그들을 용서하기로 결정하고 그는 풀려났고, 그리고 갑자기 스스로 선언한 "종말의 때를 위한 하나님의 선지자"가 된다.

b. 정기적으로 귀신을 만나는 것으로부터 ("...나는 마귀를 만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나는 술 마셨을 때에는 마귀를 정말로 잘 알았다--그들과 맥주집에 가서 함께 파티를 하곤 했다...") 정기적으로 천사를 만나는 것과 밤마다 이상한 환상과 입신(入神, out-of-body/몸밖)체험을 가지는 것으로 갑자기 바뀌었다. 존스와 비클은 공히 "밥은 보통 하룻밤에 5회 내지 10회의 환상을 보며, 아마 일주일에 10번 내지 15번 천사를 만나며, 1974년 이래 그래왔다"고 추정한다.  
 
혹시 정확하다면 이는 27,375 - 54,750 회에 이르는 환상과 아울러 덤으로 넉넉하게 받은 7,800 - 11,700 회의 천사의 방문에 해당한다. 이 총 회수는 성경에 나오는 모든 사람들의 초자연적 체험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다. 여기엔 무언가 매우 잘못된 것이 있다!

"그런 종류의 예언행로에 있어서 우리의 기초를 세우는 데 있어서 밥(존스)보다 더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한 자연인은 누구도 없다"고 마이크 비클은 반복적으로 말하지만, 대부분의 그의 기괴한 신비체험이나 개인적인 믿음은 실질적으로 성경 안에서 그 어떤 근거도 갖고 있지 않다. 기실, 그들은 종종 성경 기록에 전적으로 반항한다! 이런 예들은 이 문서의 거의 모든 섹션에서 주어져 있다 -- 특히 섹션 I-III에서.

2. 심하게 그릇된 초자연적인 확증 스토리들을 통해서 그의 '운동'을 '하나님께서 승인'하시는 것으로 마이크가 꾸며내려고 하는 것을 우리 모두는 받아들일 수 없다.

예를 들면, 마이크는 주기적으로 이 이야기를 되풀이하는데, 소위 '선지자'라고 하는 밥 존스가 드디어 8월 23일에 '가뭄을 깨는 비'로써 끝나게 되는 3개월간의 가뭄을 어떻게 (1983년 5월에) 예측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데 있어서 마이크는 다음과 같은 진술을 한다. "우리는 매일 매일 쳐다보았다...6월, 비 없음...그 후에 8월 23일, 3-4인치 가량의 비!" 이것은 그들의 '운동'에 대한 하나님의 확증으로 묘사된다. 꽤 인상적인 기적 같이 들렸다. 우리가 기상청과 일간신문기사에서 (비가 온) 시간대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우리는 아래 사실을 발견했다:

a. KCF로부터 불과 몇 분 거리에 있는 리차즈 게발 전(前) 공군기지의 실측에 의한 6월 강수량은 7인치가 넘었는데, 이는 평년치를 훨씬 웃돈 값이다!

b. 8월 23일의 '가뭄을 깨는 비'는 실제로 3분의 1인치가 못 되었다.

c. 6월에 비가 온 12일 중에서 6일의 강우량은 '가뭄을 깨는 비'보다 많았다. 단 하루 동안 만에도 8월 23일의 비의 양의 7배가 넘는 비-[2.35인치]-가 왔다. (섹션 I을 보라)
 
처음부터 이것은 절대로 참 예언으로 여겨질 수 없었었다.

3. 마이크 비클이 그의 '운동'을 위해 '선택된 씨앗 세대' 신학을 장려하는 것을 우리 모두는 받아들일 수 없다. 이것은 너무나도 무모하고 터무니없어서 오직 그의 '선지자'들로부터의 환상에서 밖에는 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a. 1973년 이후 태어난 그들의 실제 자녀들은 "선택된 씨앗"인데, 그들은 '운동'에 속한 가계 속에서 태어나기 위해서 하늘 위에서 "수십억 개의 작고 동그란 노란 것들"로부터 예수님과 천사들에 의해 엄선된 아이들이다. 이 "작은 노란 것들"은 실제 혈통으로부터의 씨앗이며, 그들은 "존재해 왔던 모든 혈통-[바울, 다윗,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중의 최상의 것 -- 이 세대에 걸친 그들의 씨앗의 최상품"이며, "종말 오메가 세대"에 참여하기 위해 미리 예정되었고 정선(精選)되었다. 그들은 "무한한 성령을 소유"할 "온 역사 중에 선택된 세대"로 묘사된다. 이 특정 세대는 "그리스도의 신부...요한계시록 12장의 남자 아이...완전한 사역체...멜기세덱 제사장...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로마서 8:19-23... 144,000명의 종들-요한계시록 7:4...요엘의 군대" 등등이다.

b. 이 "종말 오메가 세대 슈퍼교회"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기적의 10,000배"를 행할 것이다. 그들은 '백 만 명 이상"의 집회를 인도할 것이며, 거기에서 그들은 "그들의 손을 움직이면 하나님의 권능이 번개의 섬광 같이 나갈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백 만 명의 사람들을 향해 갈 때, 만약 사람이 팔을 잃으면...팔은 순간적으로 재생될 것이다..." 그들은 "벽을 뚫고 지나가며...그들은 순간이동을 할 것이며...야외경기장 집회 중에 수백 명의 죽은 자들이 일어날 것이며... 십억 이상이 구원받을 것이며...안구가 눈구멍에 되돌려질 것이며...무적이며--죽지 않는다" 기타 등등.

c. 마이크의 세대의 30만 명과 그들의 슈퍼 자녀들은 종말 사도들이 될 것이다. 35명의 KCF 사도들은 "사도바울과 같은 수준"으로 될 것이다.  
 
여기에는 타당치 못한 종류의 순환논법이 일어나고 있는데, '선지자'들끼리 서로의 환상을 재확인하고 서로의 예언을 확증한다. 이 '운동'과 이 위험한 신학과 그리고 그들이 받아왔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바로 그 환상의 '신적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 '선지자'들이 사용된다. (섹션II를 보라)

4. 마이크 비클이 지역적/전국적으로 은사주의 목사들과 리더들의 찬성과 지지를 적극적으로 구하는 한편, 사적으로는 그의 신자들을 ...이렇게 가르치는 것을 우리 모두는 받아들일 수 없다.
 
"...이스마엘의 영은 오늘날 대부분의 은사주의 교회를 포함한다. 두 가지의 운동이 있는데, 나는 온 마음을 다해서 은사주의 운동이 이스마엘 운동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전혀 새로운 질서를 찾고 있다...나는 이스마엘 진영의 탁월함을 원치 않는다. 나는 조금도 여기에 참여하고 싶지 않다...우리는 오래된 질서로부터 나오기 원한다. 왜냐 하면, 이것은 깨어지지 않고...훈련되지 않고...인본주의적이고...사람이 만든, 자기중심적이고...불법적이고...악한 영으로 괴로워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만적이고, 비성경적이고, 위선적이다. 마이크는 그가 "옛 질서"와 결별하기 전에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추종자들을 그에게로 모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평가이다. (섹션II를 보라)

5.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 자신의 형제자매인] - 다른 거듭난 크리스천들로부터 성도들이 핍박과 배척을 받을 것이라고 마이크가 성도들을 훈련시키는 것을 우리 모두는 받아들일 수 없다.
 
마이크 비클: "...'새 질서'가 오면, 이것은 옛 것보다 열 배나 위대할 것이다...아마도 백 배... 그러면 이것은 어떤 분쟁을 야기시킬 것이다...사울은 '새 질서'(다윗)의 더 큰 기름부음에 질투하게 되었고... 이 질투심은 악한 영이 사울의 질서에 들어오도록 허용했다... 그 질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는데, 사람의 길로 갔으며, 또한 그 안에 악한 영을 가졌다..."  
 
이런 행위는 여호와의 증인의 행위와 사실상 대등한 것인데, 여호와의 증인은 추종자들에게 주입시키는 바, 복음적 크리스천들의 접근은 '적으로부터의 핍박'이며 그들이 진정 '신의 선택받은 자'임을 확인시켜 주는 것으로 보도록 한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하신 모든 것을 쓸모없게 만들 전세계적 종말운동의 설립자이자 사도가 되라고 하나님이 자신을 초청했다고 여기는 사람을... 자신을 의문시하는 사람들을 '악한 영을 가졌다'고 여기는 사람을 어떻게 교정하도록 해야 하는가? (섹션II를 보라)

6. 소위 '선지자'들이 철저히 무책임한 예언(predictions)을 하고, 임박한 재난을 경고하는 [여겨지건대 하나님으로부터의] 경계성 예언으로 크리스천 형제들을 위협하는 것을 우리 모두는 받아들일 수 없다.

예를 들어, 1987년 11월, 10월의 주식시장의 폭락이 있은 후 존 폴 잭슨(John Paul Jackson)은 주식시장의 추락이 있을 것이며, 1988년은 주식시장에 모진 해가 될 것이며, "여기저기 어렵겠지만 1988년에 있을 것과는 비교되지 않는다"라고 경고했다.

지지 않으려고 밥 존스도 1988녕 2월에 경고했다. "올해 있을 또 다른 일은 금융시장의 붕괴이다. 얼마나 가까웠는지 모른다--지금 당장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 이것(주식시장)은 결국 400 포인트까지 내려갈 것이다. 만약 여러 분의 돈이 -[보통주 비슷하게 부르던데...무엇이죠? 뮤츄얼 펀드]-에 들어가 있으면, 거기 넣어 놨으면 당장 뺄 것을 권한다... 금융 붕괴가 곧 다가온다...여느 때 같이 경고하는 것뿐이다..."

실제 사실로는, 1998년에는 금융 붕괴에 조금이라도 비길만한 것조차 없었다. 지수저가는 400 포인트가 아닌 1879.14였고, 연말에는 연초보다 높은 2168.50으로 장을 마감했다.

'선지자' 존 폴 잭슨은 1985년 9월 아래와 같은 공개적 경고와 권유를 제시했다: "...우리는 볼 것이다...미국의 은행의 반이 문을 닫을 것이다...75%의 저축은행들이 문을 닫을 것이다... 달러는 붕괴될 것이다...글자 그대로 폭락할 것이다...주식시장은 맹렬히 떨어질 것이다. 붕괴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금융 파멸로부터 피하는 방법에 대한 다음의 경고를 제공한다: "그렇게 된다. 그럼 여러 분 스스로 언제 우리가 알게 되는지 자문(自問)할 것이다... 주께서 알려 주신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선지자를 두신 이유이다. 그리고 하나님은...밥 (존스)나 여기 있는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환상을 보았습니다. 주께서 방금 나에게 말씀하시기를 다음 주 금요일에 은행들이 붕괴할 것이므로 여러 분의 펀드를 당장 빼내야 한다고 하십니다.'...들으시오. 당신이 순간적으로 행동해야 할 날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이는 순종을 의미한다. 순종하라."

7. 사람들의 미래에 관하여 개인적이고 지시적인 예언을 수여함에 있어서 너그럽게 오류를 허용하는 것을 우리 모두는 받아들일 수 없다. 이것들은 [절대 일어나지 않은] 구체적이고 지시적인 예언들을 받은 사람들의 삶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환상에서 벗어난 100여 명의 과거와 현재의 KCF 신자들과 상담을 해야 했던 캔자스시티의 한 크리스천 심리학자는 진술한다. "내담자들과 지인들의 보고에 의하면, 그들에게 예언이 주어졌을 때 성취된 예언은 단 하나도 없었다... 나는 선지자들과 기타 KCF의 사람들에 의해서 예언이 주어진 내담자들을 만나 왔다. 고뇌의 시간 속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그 후) 성취되지 않은 예언들은 그들의 고뇌와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더욱 증가시켰다. 자살적 내담자는, 사실, 더욱 자살적이 되었고 심지어 예언들이 성취되지 않자 성취부족을 자신들의 탓이라고 여기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어떤 사람이 사람들에게 손을 얹고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라고 말할 때 우리는 사람들의 목숨을 다루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런 거짓 예언들로 인해 개인들과 가족들에게 주어진 고통과 죄책감, 혼동과 개인적 괴로움을 우리는 어림조차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밥 존스는 "...내가 보기에 예언의 삼분의 이를 맞추면, 나는 꽤 잘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그는 그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을 인용한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만약 내가 지금 당장 100%의 레마(rhema)를 풀어 놓으면 그에 대한 책임이 굉장할 것이며 아나니아들과 삽비라들이 너무 많은 생기는 나머지 사람들은 성장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은 너무나 두려워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말씀하셨다. '만약 이것(예언)이 목표에 명중하면 이는 사람들에게 겁을 주어 회개토록 하는 대신 그들을 죽일 것이다.'"

그러자 마이크 비클은 격려한다. "이제 삼분의 이입니다. 밥이 처음 이것을 얘기했을 때 나는 '삼분의 이(나)!'라고 말했습니다. 그(밥)는 말하기를 '응. 그건 지금까지의 어느 때보다도 좋은 숫자야. 어느 때보다도 가장 높은 수준이야'라고 했습니다."

8. KCF '선지자들'의 파견단들이 타 교회들을 방문해서 그들에게 교회 문을 닫으라고 예언하는 것을 우리 모두는 받아들일 수 없다:

지역 장로회의 증언으로부터: "여러 분들이 이 내용을 알고 싶어 하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만, 1986년 6월 22일 KCF의 세 '선지자'들이 우리 교회에 초청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각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예언했다 - [이 교회는 해체되어야 한다고, 우리는 이 예언을 거역할 권리가 없다고, 그리고 우리가 예언을 따르지 않으면, 교회 문에 '이가봇'(Ichabod,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이라고 적힐 것이라고!] (섹션VI를 보라)

9. 다음과 같은 기이하고 터무니없는 넌센스를 심오한 영적 진리라고 가르치고 장려하는 것을 우리 모두는 받아들일 수 없다:

* "모든 사람은 매 년 '목자의 지팡이' 아래로 통과해야 한다." (밥 존스)

('목자의 지팡이'는 운동의 리더의 지시에 무조건 순종하도록 리드하는 목양시스템임/역자)

* "이런 일을 해온 1000명의 종교 지도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죽도록 지정되었다...그들은 바로 내년에 죽을 것이다." (밥 존스)

* "꿈을 기록하고 상징들의 개인적인 '꿈문자(dream alphabet)'를 계산해냄으로써 우리는 꿈의 99% 내지 100%를 해석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존 폴 잭슨)

* "그래서, 비록 우리가 예언(사역)에서 성장하기를 바라지만, 예언된 모든 것을 믿지는 않는다. 우리에게는 10,000개의 예언이 주어졌고, 그 중에 내가 정녕 주께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마음속에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 (마이크 비클)

편집노트: 그것은 예언에 있어서 상당한 허용 오차이다.

* "우리가 계시에 있어서 100% 정확도의 기름부음의 수준에 있었다면, 우리에게 책임이 100%이었을 것이며 (주께서 밥에게 알려주심), 따라서 거짓을 예언한 사람들은 맞아 죽었을 것이다." (마이크 비클)

* "그들의 자녀들은 '이층천(the second heaven)에서의 전투'를 할 것이고, 마귀를 내던질 것이고, 죽음을 예수님 발 아래에 놓을 것이다." (밥 존스)

* "친구 여러분, 나는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까지 살 것입니다. 난 정말로 믿습니다. 만약 내가 이 메시지를 통과할 수 있다면... 당신이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가지고 있으면, 그들은 당신을 죽이지 못합니다. 그냥 못합니다." (폴 케인)

* 성령께서 "얼굴 없는 사람"으로서 주기적으로 밥 존스와 동행한다는 사실과 주께서 (살아 있거나 죽은) 다른 사람의 얼굴로 각 개인에게 나타난다는 사실.
 
 
10. 초자연적 입신(入神/體外)체험, 천사의 강림, 귀신과의 대화, 천국과 지옥 방문, 죽은 자들의 내방, 환상들을 극도로 강조하는 것을 우리 모두는 받아들일 수 없다. 예언(대언)들, 선지자들, 초자연적 이적과 기사들.

우리가 조사한 자료를 통틀어 선정적이고 극적인 것들을 강조하는 양식(패턴)이 매우 강했다. 예를 들어, 1988년과 1989년에 마이크 비클은 매번 5시간가량에 걸쳐 "환상과 계시"를 주제로 밥 존스와 인터뷰를 했는데, 거기서 그에게 모든 종류의 이상하고도 기괴한 신비체험을 함께 나누도록 격려하였다. 이런 종류의 접근법은 귀신의 속임수와 친숙령들에게 문을 활짝 열어 준다. 마이크 비클과 밥 존스는 영적으로 서로 묶여 있다. 마이크는 밥 존스가 그의 환상을 얘기할 때 그를 격려하고, 증진하고, 해석하고, 확장하고, 설명하고, 칭찬한다. 마이크는 어떤 특정한 이야기들을 함께 나누자고 제안한다.

11. 교회와 크리스찬 스쿨 모두에서 소중한 아이들의 그룹 전체가 이런 부조리에 처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a. 아이들은 그들 특정 세대가 모든 세대의 모든 가장 좋은 혈통으로부터 -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종말 오메가 세대"에 참여하도록 수십억의 다른 씨앗으로부터 "정선된"]- "선택된 씨앗"이라고 믿도록 (교의적으로) 주입 당했다.

b. 그(아이)들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기적의 만 배를 행할 것이며, 초자연적으로 행하며 천사와 귀신을 보는 것에 관해서는 나(밥 존스)보다 열 배나 심할 것이며, 그들 세대는 구체적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릴 것이라고 배웠다.

c. 그들은 입신 체험은 일반적인 것이라고 배웠다.  
 
한 엄마는 그녀의 아들이 KCF에 다니는 친구와 가진 경험을 서술한다:
 
"내 아들(11살)은 사촌과 밤을 보냈는데, 그 아이는 아직 KCF에 다니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그들은 모두 이층에 올라가서 원을 지어 앉았습니다. 그러자 (7살 먹은 KCF 리더의 아들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그들 모두가 손을 잡으면 그들이 삼층천에 들어가서 천사들을 보고 생명나무를 맛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독교 카운슬러의 말이다:
 
"도미니언(Dominion, KCF의 기독교학교)의 교육에 관한 열의 없는 태도는 건전한 학습 환경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한 아이의 말을 인용합니다. '만일 내가 삼층천에 오르고 시험을 빠져 나올 수 있으면, 내게 더 많은 능력이 주어집니다.'"  
 
도미니언 학생들이 아주 오랜 동안 복도에 (걷잡을 수 없이 슬피 울거나 낄낄 웃으면서) 누워 있는 것을 학교를 방문한 부모들이 보았고, 이 아이들이 단지 '영 안에서 취한 것'이라고 그들(부모들)이 들었다는 기술(記述)들이 있다.

12. 다음과 같은 컬트(문제종교집단)적 경향을 보이는 "새 질서"에 참여하라고 크리스천들이 권유 받는 것을 우리 모두는 받아들일 수 없다:

사람들을 높이고 신비적 체험을 고양함
'운동'을 위한 희생과 '운동'에의 헌신
서로간의 생명의 계약
영적 협박, 공포, 그리고 죽음의 경고들
사도적 부르심의 확인으로써 기괴한 신비체험을 사용함
성경을 초자연적 체험의 정당성을 시험하는 데 사용하는 대신, 개인의 주관적인 체험을 성경해석에 사용함
추종자들로 하여금 다른 크리스천들을 조심하라고 경계시킴
아이들의 훈련에 대한 '슈퍼종족(초인류)'적 사고방식
하이퍼영성, 자만심, 배타심, 엘리트주의와 그들이 이 종말 시대의 '그것'이라는 분위기 (섹션V를 보라)
                                                       [목차보기]
[출처] 무엇이 캔자스시티 선지자(대언자)들의 문제인가? (어니 그루엔 리포트 중에서)|작성자 청춘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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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 난에 ‘신사도 운동’과 세계 기도의 집 IHOP에 대한
두분 목사님들의 각각의 견해를 접하면서 우리가 한번쯤은
진지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사도’라는 명칭에 대한 개인적 소고를 이곳 논객 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10여년 전부터 소위 ‘신사도 운동’이라는 용어가 회자되면서
건전성에 논란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신사도운동’이라는 것은 갑자기 생겨난 새로운 운동이 아니라
지난 19세기 중반 미국의 남북전쟁 이후 미국교회 안으로 들어온
교리의 하나로써 전쟁을 치르며 말세현상을 실감하자
말세에 기적과 부흥이 일어난다는 ‘늦은비’라는 신학을 조성하면서
이 교리가 알려졌다고 합니다.

이 ‘늦은 비’ 라는 운동은
요엘서 2장 23~24 절과 28~29절의 말씀을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봄철에 이른비를 주시고 가을철에 늦은비를 주셔서
귀한 열매를 얻도록 도우시는 것처럼
말세에 하나님의 영을 이와 같이 부어주실 터인데
예수님 승천 이후 오순절에 성령강림 사건은 이른비에 해당하는 것이고
그 이후 오늘날에도 초대 오순절의 역사와 같은 성령을 부어주실 것인데
이것이 ‘늦은비’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늦은비라는 표현이 수 차례 나오지만
이것을 성령의 부어주심과 같은 상징적 표현으로 논리화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선지자 요엘이 예언한 이 말씀은
예수님 부활 이후 오순절에 이미 성취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에서 베드로는 이 구절을 본문으로 인용해서
800여 년 전의 그 예언이 오늘 성취 되었음을 선포하는
위대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늦은 비" 교리는 말세에 교회가 새롭게 될 것이며
다시 사도들이 위임되고 초대 사도시대의 표적 은사들이
동일하게 생긴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물론 은혜의 시대인 오늘날도 갖가지 은사와 표적이 분명이 있을 것입니다만,
오순절 성령 강림사건은 교회가 세워지기 위한 단 일회적인 것이었으며,
그 사건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영은 이미 교회와 성도 안에 들어와 계시다는 것이
말씀 안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인식해온 지식이 아닌가 합니다.
 
한편 이 운동의 교리는 20세기 초에 오순절운동이 처음 생길 때부터
그 오순절 계통 교회의 핵심적인 교리로 자리 잡아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신사도운동”은 이러한 예전의 늦은비 교리를 바탕으로 하여
훌러 신학교 교수였던 피터 와그너(Charles Peter Wagner)라는 교수가
‘신사도 개혁운동’을 외치며 ‘제2의 사도시대’를 선언하면서 시작 되었다고 합니다.

이 피터 와그너와 깊이 교제하며 상호 연계하여 사역을 넓혀온 사람들이  
바로 빈야드의 존 윔버(John Wimber),
그리고 마이크 비클(Mike Bickle), 밥 존스(Bob Jones),
폴 케인(Paul Cain), 릭 조이너(Rick Joyner),
존 폴 잭슨(John Paul Jackson) 등을 비롯한  소위 캔자스 시티 자칭 선지자들,
바로 세계 기도의 집, IHOP 관련 예언자들 그룹이라는 사실입니다.

아이합의 리더(예언자)들은 자신들을 사도를 칭하고
예언의 대상인 특정한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사도가 되었다고 하거나
앞으로 사도쉽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합니다.

마이크 비클, 폴 케인, 그리고 밥 존스 목사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소위 예언자 그룹은 자칭 스스로 사도요 선자자(Prophet)로
부른다는 것입니다.

이미 교계에서 건전성에 큰 문제가 있는 것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서울 ‘큰믿음교회’의 치유집회 등에 밥 존스 목사 및 캔사스시티의 선지자들이
주요 강사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사료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사도직은 그리 간단하게 생각될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 누구라도 사도적 직임을 가진다는 문제는
대단히 중대하고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에베소서 4장 11절)

위의 에베소서 말씀의 직분들이 오늘날에도 다 존재하는 것인가라는
일련의 질문에 ‘그렇다’ 라고 대답하며 역사적 정통교회의
신앙과 신학을 벋어나고 있는 것이 이들의 상태이고
신사도운동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여기서 사도직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아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인식해온 지금까지의 전통적 이해 속에서
사도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특별한 자격 요건이 있습니다.

첫째, 부활 후에 직접 예수님을 목격했어야 하고,
둘째, 그리스도에 의해 특별히 사도로써 부르심을 받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사실은
베드로가 가롯유다를 대신할 자는 “그의 부활의 증인” 이어야 한다는
행전 1장 22절 말씀을 근거로 합니다.

이렇듯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였으며,
주님께서 직접 부르시고 위임하셨으며,
그래서 성경을 기록할 수 있었던 12사도와
바울과 바나바, 혹은 실라 그리고 야고보 외에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롬 16:7)가 사도의 반열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오늘날 그 누가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직접 뵈었다고
사도로서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물론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익명의 사도가 몇 명 더 있을 수는 있지만,
분명한 것은 사도 바울 이후 사도직을 받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
전통적 견해입니다.
이렇듯 사도라는 특별한 직분의 수는 극히 제한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서 가르치고 다스리기 위해 존재하는
살아있는 사도 대신에 우리는 사도들이 기록한 신약 성경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신약 성경은 오늘 날 교회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초대교회 당시에 사도들이 행하던 다스리는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유능한 교회 사역자나 선구자를 가르켜
사도라는 용어를 굳이 사용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만,
그러나 신약 성경을 읽으면서 사도직에 주어진 엄청난 권세와 권위를
읽고 보는 사람들에게 큰 혼란을 가져다 줄 것이 분명하기에
그것은 합당치 못하고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학자적 견해일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역사 속에서 대단히 중요했던 지도자들,
아타나시우스, 어거스틴, 루터, 칼빈, 웨슬리, 윗필드, 무디, 등등
그 아무도 자신을 사도라 부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에 누가 사도라는 직분을 취하고자 한다면
교만이나 자기를 높이려는 발상,
혹은 지나친 야망과 다른 사람보다 더 큰 권세를 교회에서
누리려는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할 것 입니다.

우리는 초대 당시 이후 사도들을 계승한 사람들을 속사도 라 칭합니다.
그리고 속 사도를 계승한 사람을 교부,
교부를 계승한 사람들을 감독들이라 칭합니다.
감독들을 계승한 사람들이 이후 일반 성직자들이 되는 것이겠지요.

그럼 왜 그들을 사도라 부르지 않고 ‘속 사도’니, ‘교부’니,
‘감독’이라는 명칭을 사용 했을까요?
그들이 위치적, 상황적으로는 분명히 사도 직을 계승한 것입니다만,
‘기능적’으로는 결코 그들이 사도가 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시의 완성인 성경을
더 이상 계속해서 기록 할 수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직분에서 성경 기록의 기능은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봅니다.

바울이 거의 모든 서신서 초두마다 자신의 사도임을 강조하고
고린도전서 9장 1절과 15장 7~9절에서
그토록 일부러 자신의 사도직 정당성을 강조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만큼 아무나 사도임을 주장할 수 없었고
또 그리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주님께서 바울에게 분명히 사도권을 직접 주셨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당시 예루살렘 당국은 바울을 사도로서 인정하였습니다.

또한 사도란 말의 본래 의미에 있어서
더 이상 사도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전통적 이해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직에 대한 진정한 계승자는 신약의 교회 그 자체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떤 특정인이 사도를 계승하여 직임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 내에서 전체가 사도들의 직무를
계속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 내에서 사도직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교회는 “교회법”과 사도들이 기록한 성경에 근거한 “교의, 또는 교리”,
그리고 장로나 감리제도와 같은 “감독제도”라는 것으로써
초대교회로부터 전수된 무형의 사도적 직임을 계승해 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교회가 아닌 특정인이 사도권을 가지게 된다면
위의 세가지 유형의 직무들(교회번, 교리, 감독제도)에 대하여
사도된 자가 좌지우지 할 수도 있다는 가정도 할 수가 있는 것이 되기 때문에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은 것 입니다.

마치 카톨릭의 수장인 교황이 스스로 제정하는 교리가
성경의 권위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권위를 갖는 행세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모양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행여라도 그들의 저주를 받기라도 하는 날엔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같이 될까 봐 벌벌 떨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지나친 오버 일까요?

오늘날 수많은 직분의 명칭가운데
굳이 사도라는 명칭 칭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성경을 계속 기록하여 정경으로써
기존의 성경과 동등한 권위를 인정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캔사스시티 아이합의 자칭 사도들과 그들이 임명하는 사도들은
어떤 종류의 사도일까요?
그런 기능적 요소는 무시하고 혹시 오직 사도의 권세와 권위만을
구하는 형태는 아닐까요?
그래서 그들이 예언하면 누구든 사도가 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요?

밥 존스 목사는 앞으로 자신의 예언에 의하여 전 세계에 30만 명의 사도를
세우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하였다고 합니다.
즉, 세워진 사도들에 의해서 ‘새로운 교회의 질서’가 세워질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신약의 시대에 스스로 웬 선지자(예언자) 일 것이며,
그 선지자의 권위로 사도직을 수여한다고 하는데,,,,,???
주님이 밥 존스와 캔사스시티 예언자들에게
특정 목사 혹은 성도를 사도로 세우라는 계시를 하셨다는 말을 정말 믿어도 될까요?

12 제자들을 직접 부르시고 사도로 임명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저들의 주장에 뭐라 하실까요?

감히 사도의 반열에 설수 있다는 발상은 자신들의 현재 위치를
훨씬 넘어선 비성경적 변이가 아니고 무엇일 것인지요?

거기에다가 이 위대한 예언자들이 서로가 서로를
명사(名師)화 내지는 신격(神格)화 비슷한 형태를 취한다고 합니다.

사도는 그 의미가 (그리스도로부터) 일정한 임무로 보냄을 받은 자이며
그는 이러한 임무에 따라 보낸 자를 대표하여 행동하며
보낸자(그리스도)로 부터 완전한 권위를 위임 받은 자이기 때문에
명사화되어 높아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얼마든지 가지고 싶고
탐나는 직임임에 틀림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현대의 사도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사도 베드로의 수장권을 계승하는 전통을 이어온 사람들보다
훨씬 더 황당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사도바울이 그의 사도직을 자기의 직분을 자랑할
기회로 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증거와 수고에로의
부르심으로 본 것과 얼마나 대조적일 것입니까?

이러한 제2의 사도시대를 주장하는 이들의 신학 핵심은
‘사도적 예언’ 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정의하는 예언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메시지(계시)를 받아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주심의
‘말’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특별한 능력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사교적이고 건전하지 못한 집단에서 즐겨 사용하는
이른바 ‘직통계시’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전통적으로 고수하는 신앙은
하나님께서는 성경기록을 통해서 당신의 계시를 완성하셨고
이 성경말씀이라는 특별계시를 통하여 자신을 나타내신다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제외한 다른 계시의 존재는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키며 우리의 정통신앙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일 것입니까?

그리고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것이 꼭 이루어지고 성취된 것에 반해
캔사스시티의 예언자들은 자신들의 예언이 성취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며 예언 성취 유무에는
상당히 유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가끔은 공수표도 날리시는 분으로 만드는 건 아닌지,,,,,?

설령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어떤 환상이나 싸인이 있다면
그것은 철저히 개인적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옛적에 열왕의 시대에 북이스라엘이 아람과의 전쟁을 그치고
3년 동안 평화로운 세월을 보내게 되는데 이때 아합 왕은
길르앗 라못이라는 성읍을 아람으로부터 돌려 받아야 할 성읍으로 생각하고
무력으로라도 다시 빼앗을 궁리를 하였습니다.

그때 당시 남 유다의 왕 여호사밧이 아합을 방문하였습니다.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자기와 함께 아람과 싸우러 가자고 요청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은 기꺼이 전쟁이 동참 할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를
여쭤보기를 원했습니다.
그러자 아합이 이에 동의하고 그 목적을 위해 4백여 명의
선지자를 불러 모았습니다.
그들이 바알 선지자들은 아니었으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참 선지자들도 아니었습니다.

아합은 자기와 여호사밧이 길르앗라못을 취하기 위해
아람과 싸우러 가도 되는지를 그들에게 물었을 때
그들 모두는 그가 승리할 것을 흔쾌히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그들의 예언에 만족하지 못하고
다른 선지자에게 다시 물어 볼 것을 아합에게 요청하였습니다.
그러자 아합은 미가야라는 선지자를 소개하면서
그는 흉한 일만 예언한다고 하며 자기는 그를 미워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여호사밧의 요구에 따라 아합은 미가야 선지자를 불러 들였는데
처음에 미가야는 다른 선지자들과 동일한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합은 그가 4백명의 선지자들을 조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사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만을 말하도록 요구했을 때
미가야는 비로서 자기가 본 계시를 말하였는데
모든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같이 산에 흩어졌음을 보았다고 하면서
이 예언을 통하여 미가야는 궁극적으로 아합의 죽음을 예고하게 됩니다.
(열왕기상 22장)

오늘날에도 선지자를 자처하면서
온갖 예언을 쏟아내는 많은 예언자들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아합왕 시절에 무수히 많던 선지자들처럼,,,,
그러나 과연 이들이 정말 그 옛날 미가야와 같은
사시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임이 확실 할 것입니까?


오늘날에도 예언자들이 특정인을 향하여 예언하는 내용들을 살펴보면
무척 고무적이어서 마치 곧 큰 부흥이 일어날것만 같습니다.
그 옛날 아합과 여호사밧에게 승리를 예언하던
그 수백 명의 선지자들 예언처럼,,,,,,


우리는,
성경은 우리의 신약교회를 위해 허락하신 유일하며 충분한 권위임을 믿습니다.
기록된 말씀은 꿈이나 환상이나 음성보다 더 확실한 줄 믿습니다.(벧후1:18-21).

또한 신약 성경에 드러난 양상과 형식만으로도 교회가 세워지는데
충분한 줄 믿습니다.
우리는 결코 새로운 종류의 교회를 만들 권한이 없으며
또한 성령님께서 초대 교회에서 운행하셨던 것과는 다른 식으로
혼동을 동반하며 운행하시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이 시대를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완전한 계시로,
더 이상 추가할 것이 없고 성도들에게 단 한번 주신 믿음을 담고 있다고 믿습니다.

이미 종식되고 완성된 성경을 또 다른 계시로 대치하면서
성경의 근본적 가르침을 혼탁하게 하는 어떠한 사설(邪說)도
우리는 분명히 거부해야 할 것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아멘넷 독자공간 게시판, 정리: 삭개오 님



박옥수씨와 성명서를 가지고 토론을 벌이는 이종명 목사

뉴욕교계가 뉴욕에 세력을 두고 활동하고 있는 구원파 박옥수씨 뉴욕활동을 적극적으로 대처하기로 하고, 첫 행보로 4월 12일(월) 오후 5시 박옥수씨 맨하탄 집회를 앞두고 집회장 앞인 34가에서 피켓시위를 펼쳤다.

뉴욕교협과 목사회는 지난 8일 모임을 가지고 성명서 발표와 시위등 강력한 대처를 합의한바 있다. 15일(목)에 열리는 대규모 피켓시위에 앞서 열린 이날 시위는 10여명의 목사들이 참가했다. 뉴욕교계의 목사들은 시위장 바로 앞에서 준비해간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박옥수씨 뉴욕집회는 매년 열리지만 뉴욕교계의 대처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뉴욕교계의 피켓시위를 본 박옥수씨측의 관계자들은 놀란 표정이었다.

이어 시위를 벌이는 뉴욕교계의 목사 코앞으로 와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지고 몸싸움 일보직전까지 가는 일촉즉발의 위기가 계속됐다. 뉴욕교계의 목사들은 숫자에서 압도적으로 밀렸지만,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한편 저녁 집회 시간을 앞두고 박옥수씨가 대회장으로 들어가는 순간 이대위원장 한재홍 목사는 준비해간 성명서를 나누어 주었다. 이를 읽으면서 걸어가던 박옥수씨는 바로 집회장으로 들어가지 않고 방향을 틀어 손한권 목사가 있는 자리로 가서 해명을 시작했다.

박옥수씨는 성명서에 적힌 내용이 자기와 관계없는 거짓내용이라고 말했으며, 대화에 합류한 이종명 목사는 성명서 중 어느부분이 틀리느냐고 반박했다.

박옥수씨는 자신은 아무 문제가 없는데 이단대책 사역자인 최삼경 목사의 가족이 자신의 교회에 들어오자 이단으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며 자신이 쓴 책들을 읽어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박옥수씨는 성명서의 내용에 책임을 질수 있느냐고 물었으며, 이종명 목사가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자 박옥수씨는 자신측 관계자에게 비디오로 이것을 찍으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충돌분위기속에 교협 이단대책위원장 한재홍 목사는 박옥수씨에 다가가 손을 잡고 "바로 예수를 믿고, 같이 복음을 전하자"고 말했다. 도로를 막은채 이종명 목사와 토론을 계속하던 박옥수씨는 경찰의 명령으로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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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뉴욕/뉴저지 교계가 발표한 성명서이다.

구원파 이단 박옥수 - 성명서

금번 뉴욕 “맨해튼 센터”에서 2010년 4월 12일(월) - 4월 16(금)까지 성경세미나를 열고 있는 구원파 박옥수씨는 정통 기독교의 중요한 보편적 교리체계와는 다른 교리를 가르쳐오며 한국 기독교계는 물론 미국 동포사회에도 많은 혼란을 야기 시키고 있는바 이를 아래와 같이 주지시키는 바입니다.

이단 구원파 박옥수의 잘못된 교리

이단 박옥수씨는 거듭남, 죄 사함의 비밀이란 책자를 통하여 성경을 다 믿지 말라 성경이 다 진리는 아니다 라고 그릇 가르치고 있다. 한번 깨달으면 다시 범죄 해도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회개는 단 한번만 하면 되며, 반복적으로 회개하라는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이 되므로 구원받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소위 박옥수가 말하는 죄 사함과 거듭남의 비밀이다.

일반 교회 신자들의 구원을 인정하지 않으며 죄와 죄의 증세를 구분하여 간음 살인 등은 죄의 증상이며 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구원을 받고 중생한 체험의 날짜를 알지 못하면 진정한 중생이 결여된 것으로 인식한다.

죄와 범죄, 회개와 자백을 구분하여 반복적 회개는 부인하고 삶에서 나타나는 범죄는 하나하나를 일일이 고백하여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으며 죄 자체를 인정하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회개로 죄가 사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보혈로 사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 순간 죄가 해결되어 구원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죄가 용서되어 회개할 필요가 없으며 회개하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 자라고 주장한다.

자기가 죄인이라고 고백하면 지옥 간다고 주장한다. 천국은 의인이 가는 것이고 지옥은 죄인이 가는 곳이기 때문에 스스로 의인이라고 해야만 천국을 간다고 한다. 만일 이들의 말대로라면 사도 바울도 지옥에 간 것이 된다. 왜냐하면 바울은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 고 고백했기 때문이다.(딤전 1:15)

시간을 내어 기도하는 일을 폐지하며 구원받은 교인들은 한데 모여 생활해야 한다.  떨어져 있으면 휴거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구원받았습니까?  거듭났습니까?  따져 묻다가 확실히 대답을 못하면 자기들이 구원시킨다고 한다.

* 위의 내용은 아래 기관 및 단체에서 구원파 박옥수씨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발표한 내용을 발췌 요약한 것임.

(기독교이단문제연구소,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총회, 대한예수교 장로회통합총회, 기독교대한감리회, 기독교한국침례회, 현대종교,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등)  

주후  2010년  4월  12일
대뉴욕지구 한인교회협의회, 뉴저지 교회협의회,
대뉴욕지구한인목사회, 미동부이단대책협의회

ⓒ 아멘넷 뉴스(USAamen.net)


▲교협에서 전철로 맨하탄으로 이동하는 7인의 목사들


▲박옥수씨가 집회가 열리는 맨하탄센터


▲뉴욕목사회 회장 김종덕 목사가 집회장앞에서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 목사회 회장, 부회장, 총무, 서기가 총출동했다. 갑자기 시위 스케줄이 결정되어 일정이 있었던 뉴욕교협 회장과 부회장은 불참했다.


▲교협 총무 이종명 목사. 간증을 통해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으며 남은 생은 이단대처를 위해 살겠다고 하는 목사. 이날 일당백의 활약을 펼쳤다.  

usaamennet.net

한국교회언론회(대표회장 김승동 목사)는 9일 우리 사회에서 무슬림이 실상을 방송한 KBS의 방송 내용을 강하게 비판했다.

▲ 시사기획 '쌈' -무슬림 우리 곁의 이방인 © 뉴스파워

한 국교회언론회는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라고 한 것에 대해서는 이슬람에 이한 폭력과 테러를 언급하면서 이를 정면 비판했다. 또한 이슬람성직자를 ‘이맘’이 아닌 ‘목사’라고 호칭한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특히 무슬림과의 결혼 생활을 행복한 것처럼 방송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다음은 논평 전문.

공영방송 KBS의 공정치 못한 방송
이슬람 이 평화의 종교라면 테러는 왜 일어나는가?

기독교의 부활절을 전후하여 KBS1 방송이 지난 6일 밤에 방송한 ‘시사기획 쌈’은 공영방송이 다문화·다인종 시대의 사회적 이슈를 다루었다기보다, 무슬림 방송이 자신들의 종교 홍보를 위해서 만들었다는 편이 나을 것이다,

KBS의 방송 취지는, ‘무슬림이 우리 사회에서 이방인이며, 약자이고, 다문화 사회로 가는 세계적 추세에서, 이슬람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무슬림이 원하는 것을 다 받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때문인가? 결과적으로 방송의 내용은 이슬람을 선전하고 미화하고 홍보하기 위해서라고 착각할 정도이다.

이날 방송한 내용은 사실(fact)을 변형시키거나, 또는 왜곡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이슬람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부정적인 것들은 교묘하게 은폐시키고 있다. 그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이슬람이 ‘평화의 종교’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지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슬람에 의한 폭력과 테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지금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테러의 70%가 이슬람에 의하여 이뤄지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KBS는 이러한 현상을 이슬람 원리주의자에 의하여 벌어지는 것이라고 변명한다. 그렇지만 그 원리주의자들의 행동이야말로 이슬람의 실상을 가장 충실하게 나타낸 것이며, 이슬람이 결코 평화의 종교가 아니라는 반증이 되는데, 이를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현상은 외면하고, 세계인의 이슬람 인식의 잘못을 강조하고 있다. 즉 이슬람이 폭력적인 종교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 것은 미국식 사고라든지, 언론의 보도 때문에 그렇다고 분석한다. 이는 이슬람에서 주장하는 것의 대변에 불과하다.

세 번째는 이슬람에 대한 막연한 비호이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경찰이 탈레반과 연계된 것으로 의심되는 이슬람 지도자 활동을 한 사람을 검거한 사실이 있다. 그런데 방송은 그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식이다. 그를 검거한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탈레반과 관련된 문제는 단순히 종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전체 국민에게 끼칠 중대한 안전 문제와도 직결되는 것이기에 이를 쉽게 부정하는 것은 이슬람을 비호한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네 번째는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과 비 이슬람교도의 결혼이 모두 행복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방송에서 한 동남아 여성의 예를 들어, 종교적·문화적 가치관 때문에 갈등이 생겨, 이혼의 위기가 있다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결혼으로 인하여 겪는 가장 대표적인 갈등 사례가 된다. 그런데 방송은 이러한 전반적인 사실들은 감추고 있는 것이다.

다 섯 번째는 이슬람과 한국인의 갈등 원인이 한국인에게 있는 것처럼 말한다. 한국에서 이슬람 인구는 0.3%밖에 안 되는데, 지나치게 이슬람을 경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KBS는 현재 유럽 지역에서 5%내외의 무슬림들이 끊임없이 소요 사태를 일으키는 원인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왜 갈등이 고조되는가? 그들은 이슬람법(샤리아 법)을 우선하기에 기존의 국가 질서와 갈등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방송은 마치 모든 문제가 이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비 이슬람의 문제로 돌리고 있다. 한국에서 이슬람이 소외되고 문화적 충격을 겪는 것은, 무슬림들이 어디를 가도 자기들끼리 뭉치고, 타문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려는 태도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책임이 어찌 우리 국민들에게 있다는 것인가.

한국도 다문화·다인종 시대를 맞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서로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상호간 차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방송은 이슬람의 폐쇄적인 종교와 문화를 수용하라고 요구한다. 문제점의 본질은 외면한 채, 특정종교를 비호하려는 의도가 다분하다.

그 외에도 국민들의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KBS가 여러 군데 왜곡하는 부분이 있었다. 이슬람의 지도자를 ‘목사’로, 심지어 탈레반 용의자도 ‘목사’로 표현하는 것을 용인하고, ‘한손에 코란, 한 손에 칼을 들라’는 이슬람 구호가 없다고 하고 있으며, 인천중동문화원이 특정 종교(기독교)의 반대로 개원하지 못한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이번에 방송된 내용으로 보면, 공영방송 KBS는 방송 기획의도와는 딴판으로 이슬람을 홍보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말았다. 이는 공영방송이 취할 공정한 방송 태도가 아닐뿐더러, 다문화·다인종 시대를 열어가는 사회적 이슈에 대한 해법으로서도 매우 부족하며, 종교 간에도 불신과 갈등을 조장하는, 아주 불편한 방송이 되고 말았다.

김철영 ⓒ 뉴스파워

장성호 집사(가명, 56)와 주현지 집사(가명, 56)는 요즘 방안에 들어가면 싸늘하게 감도는 냉기에 몸서리를 친다. 두 딸의 빈 자리가 너무도 크게 느껴지는 겨울이다. 지현(가명, 28세), 주현(가명, 22) 두 자매는 지난 10월 16일 집을 나갔다.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소위 JMS에 두 딸이 출석하는 것을 장 집사 부부가 알게 된 이후 집안에선 크고 작은 분란이 계속됐다. JMS에 출석하는 것을 반대하는 부모와 두 딸 간의 입장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큰 딸인 지현 씨는 대학교 3학년 때인 2003년 보컬 연습을 한다며 JMS 관련 동아리에 가입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를 서울시 이문동에 있는 한 교회로 옮겼고 동생 주현 씨도 지현 씨의 소개로 이 교회로 인도됐다. 어느 날 두 딸이 “교회에서 음악 콘서트를 한다”며 장 집사 내외를 초청했다. 그런데 장 집사 부부는 콘서트에 갔다가 교회의 분위기가 여느 교회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챘다.

“아내가 그때부터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이 교회의 배경을 조사하기 시작했어요. 결론은 JMS 소속 교회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이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요. 그런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그 단체의 교주인 정명석 씨가 여신도 성폭행혐의로 구속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너무도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를 않았어요. 그런데도 딸들은 교주가 감옥에 갔다는 사실에 대해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어요.”

대화도 통하지 않았고, 특히 종교에 관한한 두 딸의 태도는 완강했다. 사람들이 언론에 공개된 내용만 보고 선입견을 갖는다며 다른 사람들의 비판을 수용하지 않았다. 장 집사 부부의 만류가 계속되자 결국 두 딸은 가출을 선택했다.

11월 1일부터 장 집사 부부는 이문동의 JMS측 교회에서 “정명석(JMS)교회는 내 딸을 돌려 보내라”며 피켓 시위를 시작했다. 이 시위는 11월 29일까지 계속됐다. 그래도 두 딸은 연락 한 번 없다. 이들은 이제 시위의 장을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위치한 기독교연합회관 앞으로 변경했다. 12월 1일부터 16일까지 JMS에 빠진 딸들로 인해 생긴 가정의 불화와 어려움들을 한국 기독교계에 알리겠다는 것이다. 16일 이후부터는 다시 JMS측 교회 앞으로 시위 장소를 옮기겠다는 것이다.

장 집사는 말한다.

“우리 부부가 아무리 힘을 보태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상대는 JMS라는 거대한 조직입니다. 이 세상에서 단 둘이서만이 JMS를 상대하는 것 같아 힘이 듭니다. 한기총이 관심을 갖고 이 문제에 철저한 대책을 세워서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저 같은 이단 피해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한기총 앞으로 왔습니다.”

장 집사는 10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상태다. JMS에 빠진 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9년의 모든 것을 여기에 투자하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길어지면서 많은 어려움에 시달리는 게 현실이다. 지금까지 받아 오던 실업급여도 중단돼 이 겨울의 추위가 더욱 춥게만 느껴진다.

“이단 문제는 다른 사람들의 일이라고만 생각했어요. 큰 딸은 유치원부터 교회를 다녔고 둘째는 모태 신앙입니다. 그 아이들이 JMS에 빠질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딸들이 그냥 집으로 돌아오기만 해도 고마울 거 같습니다. 시위를 마치고 집에 오면 텅 비어 있는 딸들의 방을 보면서 빈자리가 너무 크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기사제공ⓒ 교회와신앙(http://www.amennews.com)

이재록 씨(58세, 만민중앙교회 담임)는 1943년 전남 무안 출생으로서 7년간 질병으로 고통당하다가 1974년 기도 중에 치료를 받고 교인이 됐다고 한다. 이 씨는 1982년 13명의 신도와 함께 만민중앙교회를 개척, 2010년 현재 10만 신도와 30여개의 지교회를 갖고 있다고 한다.

만민중앙교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그의 직함은 연합성결신학교 이사장, 민족복음화신문 사장, 기독교세계부흥선교협의회 상임총재, 세계기독방송 네트워크(GCN) 이사장, 세계기독의사 네트워크(WCDN) 이사장이다. 2000년부터 현재까지 이스라엘을 비롯, 미국, 일본, 파키스탄, 케냐, 필리핀, 온두라스, 인도, 러시아, 독일, 페루, 우간다 등 세계 각지에서 수십만, 수백만 명이 운집했다는 대형집회를 개최하면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해마다 5월이면 치유집회를 진행함으로 지병이 있거나 건강에 문제가 있는 신도들은 더욱 주의해야 한다.

 
 
▲ 그림: 만민중앙교회 홈페이지 갈무리

이 씨는 <나의 삶 나의 신앙>, <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 <십자가의 도>, <믿음의 분량>, <천국과 지옥> 등 50여 권을 저술했고 이 책들은 영풍문고 등 유명한 서점들의 기독교코너에서 판매가 되고 때론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한다. 이 씨는 한국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많은 언론에 신앙칼럼도 기고하고 있다. 이 씨가 담임으로 있는 만민중앙교회에 출석하는 유명인사로는 모 여대 총장 출신인 J씨, 유명 S 댄스그룹의 Y씨 등이 있다.

활발한 대외활동으로 인지도가 높아지는 이 씨지만 한국교계에서는 명확히 그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다. 예장 통합측과 합신측에서 1999년과 2000년에 각각 이단으로 규정했고 1999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극단적인 신비주의 이단으로 규정했다.

MBC시사고발프로그램인 에서 이재록 씨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도하자 만민중앙교회의 일부 교인들이 국가기간 시설인 방송국의 주조종실을 점거하는 방송사상 초유의 사태를 일으켜 사회의 주목을 끈 바 있다. 이재록 씨의 이단성은 다음과 같다.

1. 이재록 씨는 자신의 몸에 있는 피를 흘려 원죄·자범죄가 사라졌고 죄성이 없는 피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 씨의 가장 큰 이단성의 핵심은 ‘인죄론’에서 나타난다. 이재록 씨는 1998년 7월 5일 주일 저녁 집회 시간에 자신의 몸에 있는 피를 죄다 흘려 원죄·자범죄가 사라졌고 죄성이 없는 피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이 씨 주장을 그대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지금부터 2천년 전에 골고다 언덕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서 흘리신 보혈의 피, 보혈의 피라고 하는 것은 원죄, 자범죄가 전혀 없는 피를 보혈의 피, 이 피만이 죄를 대속할 수 있는 것이고 이 피만이 죽이고 살리는 권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가만히 지난 일들을 돌이켜 보세요. 제가 어떻게 감히 아버지 보좌 좌편에 있을 수 있나요? 그러나 이제 여러분이 수없이 보셨으니까 제가 말할 수 있죠. 또 해, 달 속에, 빛 속에 저와 주님이 함께 있으니까 말할 수 있는 것이죠. 이젠 말할 수 있죠. 저만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녜요. 이제 여러분들이 증인입니다. 이제 말할 수 있죠.

그러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바로 그 작업이 지금부터 수 년 전에 바로 92년인가요? 피 흘렸을 때 그때 시작된 것입니다. 제가 피 흘렸을 때 팔 일 동안 피를 흘리면서 제 부모로부터 받은 피, 제 몸 속에 있는 모든 피는 다 쏟았고 팔 일 동안에 물로 피가 되어서, 물을 마셔 피가 되고 해서 팔일 동안에 그 피를 걸러서 깨끗한 피로 만드셨습니다. 물로 피가 됐으니까 곧 물은 영적인 말씀, 영생이죠. 이 말씀은 하나님, 곧 하나님 말씀으로 내 피를 만드셨기 때문에 이 피안에는 죄성이 없다는 것이죠.

원죄가 없다는 얘기죠. 그래서 원죄와 자범죄가 없는, 이렇기 때문에 하나님 아들로 인 쳐지고, 이제 해 달 속에 오셔서 우리 주님이 세상에 공포하는 것이고, 바로 좌편에 앉을 수 있는 권세를 쥐어 준 것이고 그래서 전에도 배운 말씀을 들어보시면 바로 '죽고 사는 권세를 네게 주었다'는 것이 바로 그런 연유입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씨는 죄 없으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설명하면서 동시에 자신은 1992년도에 부모로부터 받은 피를 몽땅 쏟아버리고 새 피를 받아 원죄와 자범죄가 없어져버렸다고 설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원죄와 자범죄가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몸에 있는 피를 흘려서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의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부인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경은 분명히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8, 10)고 말씀하고 있다. 인간의 죄는 오직 흠없고 점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해결되는 것(벧전 1:18~19)이다.

2. 이재록 씨는 자신을 신격화한다.
원죄와 자범죄가 없다는 이 씨의 주장은 ‘자기신격화’로 연결된다. 다음 주장을 살펴보자.

“그렇게 흘린 피를 장장 8일 동안 흘리고 있었는데 그 피가 어디서 나옵니까? 물을 마시면 피가 되고, 물을 마시면 피가 돼서 8일 동안 그 상태로 만드시고 다시 생명을 얻게 해 주셨는데 그리고 나서 저번에 말씀하시는 것 봤는데 ‘너는 그때 피를 흘림으로 네게 원죄가 없어졌고, 그래서 너는 죽음이 너를 피해 가는 것이고, 악한 자가 너를 만지지를 못한다’라고 말씀하셨어요. ‘너에게 그래서 무한한 권능이’, 우리 주님이 가지신 무한한 권능이 ‘네게도 주어져서 너도 이제 그렇게, 그 이상으로 그게 역사가 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이재록, 1998년 7월 5일 주일저녁예배).

① 자신은 부모로부터 받은 피를 92년도에 몽땅 쏟아버리고 죄성이 없는 새 피를 받아 원죄와 자범죄가 없어져 버렸다고 하며, 그때의 피 흘리고 죽었다가 살아난 사건은 많은 신도들이 직접 목격한 바라고 한다(1998년 7월 5일 저녁예배, 10월 23일 금요철야집회).
② 그래서 죽음이 자신을 피해 가고, 죽고 사는 권세가 있다고 한다(1998년 7월 5일 저녁예배).
③ 주님이 자신을 해와 달 속에 넣어 세상에 공포해주셨는데, 이는 "너와 나는 하나"라고 주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빛 되신 하나님과 자신이 연합하여 하나를 이루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며, 이같이 약속 받은 증거를 각종 빛을 통해 증거해 준 일은 자신 외에 창세 이래 없다고 하며, 자신과 주님이 달 속에서 세계를 이루고 대성전을 이루는 대화를 했다고 한다(1998년 6월 21일 주일예배, 6월 28일 금요철야집회, 7월 5일 저녁예배, 7월 17일 금요철야집회, 10월 16일 금요철야집회).

④ 자신의 영이 하나님 보좌 좌편에 앉아 있다고 한다(1998년 7월 5일 저녁예배).
⑤ 자신에게는 심판 날에 주님 옆에서 성도들을 위해 직접 변호해 줄 권세가 있다고 한다(1998년 7월 5일 저녁예배).
⑥ 2천년 전의 예수님은 구약 율법을 완성하셨고, 자신은 물위를 걷는 것 외에 66권의 말씀을 다 이뤘다고 한다(1998년 6월 21일주일예배, 6월 28일 금요철야집회).
⑦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모든 선지자들과 주님의 제자들이 이재록 씨 자신이 부르면 나타나서 경배한다고 하며, 심지어 아버지 하나님까지 자신이 기도하면 임재하신다고 한다(1998년 7월 5일 저녁예배, 1998년 7월 17일 금요철야집회).
⑧ 꿈속에서도 자신의 영이 심방해서 치료역사를 베풀고 축복도 주고, '내 이름으로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 나도 함께 있노라'고 하신 주님께서 어느 곳에나 가실 수 있는 것처럼 자신도 영으로 다른 곳에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 함께해주고 안수기도도 해준다고 한다(1998년 5월 5일 특별부흥성회, 8월 9일 주일예배).
⑨ 자신을 믿고 신뢰하는 것은 천국 가는 여정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관건이라고 한다(1998년 6월 28일 주일예배).

만일 이재록 씨가 진정으로 위와 같은 권세를 가졌다면 그는 바로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로서, 실질적으로 그를 믿고 따르는 것이 바로 구원의 조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의 신격화 사상은 심각한 이단성을 내포하고 있다.

 
 
▲ 이스라엘에서 집회를 인도하는 이재록 씨(이재록 씨측 홈페이지 갈무리)

3. 이재록 씨는 자신이 담임하는 교회를 특수화하고 있다

이 씨는 ‘우리 교회에만 구원이 있다’는 식의 직설적인 말만 하지 않을 뿐 여러 유형의 주장으로 만민중앙교회를 특수화하고 있다. 이 씨의 관련 주장을 요약해서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① 만민중앙교회에 성경의 모든 선지자, 천군 천사, 예수님이 내려왔다고 하며, 심지어 만민중앙교회에 하늘문이 열려 보좌도 내려오고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임재하셨다고 한다(1998년 6월 28일, 7월 5일 주일저녁예배, 7월 10일, 7월 17일, 10월 23일 금요철야집회).
② 만민중앙교회에 하나님께서 새예루살렘(이재록 씨가 말하는 5단계 천국 중 의의 면류관, 금면류관을 받을 자가 가는 천국) 열쇠를 놓고 가셨다고 한다(1998년 7월 5일 주일저녁예배).
③ 만민중앙교회 위에 하나님께서 언제나 무지개를 띄워주시는 등 각종 표적과 기사를 넘치게 보여주신다고 한다(1998년 7월 5일, 7월 10일, 9월 25일, 10월 16일, 10월 23일 금요철야집회).
④ 만민중앙교회에 하나님이 친히 임재하시고 하늘문이 열렸으며 그 하늘문이 닫히지 않고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열려 있을 줄로 확신한다고 말한다(1998년 7월 17일).

이재록 씨의 주장은 모두 극단적 신비주의적 체험에서 비롯된 주장으로서 하나님의 신성과 거룩함을 상징하는 보좌(마 5:34, 19:28, 행 7:49, 히 1:8)가 특정한 공간안으로 내려왔다는 주장이나 새예루살렘 천국 열쇠를 두고 가셨다거나 하늘문이 열렸다는 주장은 모두 성경적 지지를 받을 수가 없다.

4. 이재록 씨는 천국이 5단계로 이뤄져 있다고 주장한다.
이재록 씨의 내세관은 5단계의 천국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즉 1단계는 상급이 없고 행함이 없는 자가 들어가는 낙원이요, 2단계는 썩지 않는 면류관 받는 천국(고전 9:25~27)으로 1층천이요, 3단계는 영광의 면류관 받을 자가 가는 천국(벧전 5:4)으로 2층천이요, 4단계는 생명의 면류관 받을 자가 가는 천국(약 1:12, 계 2:10)으로 3층천이요, 5단계는 의의 면류관, 금면류관 받을 자가 가는 천국(딤후 4:8, 계 4:4)으로 바로 새예루살렘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믿음도 5단계가 있다.

즉 1계단 믿음은 회개하고 그리스도 영접하였으나 행함이 없고 상급 없는 믿음으로 낙원에 가는 믿음이요, 2계단 믿음은 구원받고 말씀대로 살려고 하나 그대로 행하지 못하는 믿음으로 썩지 않는 면류관 받는 곳으로 1층천에 가는 믿음이요, 3계단 믿음은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죄와 싸워 버리며 나가는 믿음으로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2층천에 가는 믿음이요, 4계단 믿음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며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3층천에 가는 믿음이요, 그리고 소위 마지막 단계 5계단 믿음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나머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지닌 자들이 가는 '새예루살렘'을 의미한다고 한다(이재록, <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 P.226). 그런데 이재록 씨는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은 바로 새예루살렘에 들어가 살 수 있다고 주장한다(1998년 7월 17일 금요철야집회 2부: 하나님 임재 실황중계).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낙원’은 이재록 씨의 말처럼 상급이 없고 행함이 없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천국의 1단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곧 천국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강도에게 함께 낙원에 이를 것을 말하셨고(눅 24:43), 바울이 낙원과 천국을 동일시했고(고후 12장), 그리고 낙원에도 생명나무가 있다고 한 점을 볼 때(계 2:7), 낙원이 천국의 1단계라는 이 씨의 주장은 전혀 성경적인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그리고 성경에서 ‘영광의 면류관’과 ‘생명의 면류관’을 말할 때 이는 같은 천국의 상급들을 말하고 있을 뿐(약 1:12, 벧전 5:4, 계 2:10), 결코 이재록 씨의 말처럼 천국의 계층을 말하지 않는다.

5. 이재록 씨는 아담은 공룡을 애완동물 삼았으며 지구에 피라미드를 만들었고 건축재료는 UFO로 날랐다고 주장한다.
이재록 씨의 황당한 주장을 그대로 들어보자.
“아주 먼 옛날에는 둘째 하늘에 있는 에덴동산과 첫째 하늘에 있는 이 땅이 서로 단절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아담의 권세 아래 다스려지던 곳으로서 아담은 둘째 하늘과 첫째 하늘 사이를 자유롭게 오고갔지요. 그러면서 아담은 이 땅에 자신의 권세를 나타내는 상징 것을 짓고자 합니다. 그것이 바로 피라미드라 말씀드렸죠. 물론 피라미드를 모두 아담이 지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지었던 것도 있고. 맨 처음에 지었던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아담은 피라미드를 짓기 위해 구체적인 준비를 하고자 특별히 시간을 내어 이 땅위에 내려옵니다. 어떤 장소에 얼만한 크기로 지어야 하고 또 무슨 재료들이 필요한지 살피기 위해서였죠. 그리고 이날만큼은 예전과는 다르게 그 휘화에 있던 그룹들을 대대적으로 동원했습니다”(이재록, 창세기강해, 2002년 2월 22일 금요철야 설교).

“그리고 이러한 그룹과는 좀 역할이 다르지만 하나님께서 그룹 중에 하나의 모양을 따서 아담에게 특별히 만들어 주신 존재도 있었는데 그들은 바로 공룡이었습니다. 전에 말씀드린대로 공룡은 아담에게 있어서 마치 애완 동물과 같은 존재였으며 아담은 이러한 공룡에게 큰 사랑을 주었고 공룡도 아담을 따르며 기쁨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룹과 공룡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었지요. 그룹은 영물이었고 공룡은 어차피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였기에 이로 인해 생기는 역할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공룡이 아무리 아담의 사랑을 받았다 해도 아담을 위해 그룹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공룡이 대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이재록, 창세기강해, 2002년 1월 15일 금요철야).

“아담은 모든 재료와 피라미드를 세우게 한 기구를 에덴동산으로부터 날라 왔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은 여러분들이 UFO를 떠올려 보면 풀립니다. UFO도 그 종류가 많아서 그 중에는 엄청나게 큰 규모의 것도 있지요. 마치 비행기 중에 화물기가 있는 것처럼 UFO 중에도 이러한 역할을 하는 것이 있어서 얼마든지 피라미드를 세우기 위한 재료와 기구들을 나를 수 있는 것입니다”(이재록, 창세기강해, 2002년 1월 18일 금요철야).

이재록 씨의 창세기강해 중 피라미드, 공룡, UFO와 관련한 주장은 성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서 일고의 비판적 가치가 없다.

6. 맺는 말
이재록 씨는 신도들에게 표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자신을 특수화해왔다. 이렇게 소위 기적이라는 현상 때문에 그의 신도들은 이재록 씨를 특별한 존재로 믿고 따르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성경은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4)고 말씀하신다. 이재록 씨는 한국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곳이다. 그런데도 현재까지 진리의식이 무감각해진 일부 교계 인사들과 일부 교계 언론의 비호를 받으며 이렇다 할 제재를 받지 않고 다시 교세를 키우고 있는 현실이다. 여기에 더하여 이재록 씨를 ‘이단이 아니다’, ‘이단으로 규정했었으나 오해가 풀려 해제됐다’는 유언비어도 난무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 씨에 대한 이단규정은 그것이 발표된 이후 단 한번도 규정한 주체에 의해 철회된 바가 없는 바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철저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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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번도 영적으로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 어떤 일에 관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사역을 하면서 영적으로 가장 힘들었을 때, 바로 이런 일이 내게 벌어졌다. 내가 진리에서 그렇게 멀리 벗어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어떤 ‘새로운’ 가르침이든 교회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목회자를 통해야 한다. 따라서 목회자가 살면 교회도 살고, 목회자가 죽으면 교회도 죽는다. 이 책은 미국의 덴버 십자로교회 톰 스타이프 목사의 고백으로 시작된다. 4천여 명의 성도들을 데리고 빈야드와 신사도운동의 지도자들, 즉 자칭 ‘예언가’들을 쫓다가 교회와 성도들이 어떻게 죽어나갔는지 적나라하게 고백한다.

“예언자들은 종말의 때에 하나님이 교회에 다섯 가지 사역 즉 사도, 예언자, 목사, 교사, 복음전도자의 사역을 회복시킬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그 중에서 특히 예언자와 사도의 사역이 회복된다는 것에 큰 도전을 받았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는 이미 목사와 교사, 복음전도자들이 활발하게 사역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예언자와 사도의 사역만 회복된다면 분명 이 땅 위에 큰 부흥이 일어날 것이다.”

예언자들은 그들이 바로 이 마지막 때의 부흥을 이끌 자들로 선택받았다고 했다. 또한 마지막 때의 부흥을 이끌 기름부음 받은 자들을 찾아내는 것이 그들의 임무라고 했다. 하나님은 그 예언자들에게 특별히 선택된 자들이라고 말씀하셨다고도 했다. 세상에! 최근 한국교계 신사도운동가들의 집회에서 정말 많이 듣던 얘기다.

사람들은 예언자들이 해 준 예언을 작은 노트에 적어가지고 다니고, 여기저기서 우후죽순처럼 열리는 예언집회에 떼로 몰려다녔다. 치유사역을 하는 사람들은 세미나를 열어서 치유기도의 공식과 방법을 가르쳤고 몸에서 ‘열점’(연약한 부분)을 찾아내는 방법도 가르쳤다. 예언집회에서 꿈과 꿈 해석이 중앙무대를 차지하자 사람들은 꿈을 일일이 노트에 적어서 가져오곤 했는데 사람들은 나중에 이 꿈을 하나님의 메시지로 해석했다.

드디어 사람들은 너무 예언에만 치중한 나머지 점점 성경에는 무지하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기 보다는 그저 ‘직통계시’에만 의존하게 되었다. 예배시간에도 성경보다는 작은 노트를 더 소중히 여기며 붙들었다. 십대에 성공하여 스타가 되리라는 예언을 받았던 십대들은 그 꿈이 산산조각 나자 하나님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어떤 성도들은 뭔가를 결정할 때 자신의 손이 ‘뜨거워’ 지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다.

저자(행크 해너그라프)는 이 책에서 1990년대, 그러니까 이미 10여 년 전 영국과 미국에서 일어난 이런 일들을 생생하게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러면서 그는 ‘진리’라는 거짓포장으로 몸을 숨긴 채 우리를 신비한 경험으로 유혹하는 빈야드와 신사도운동을 ‘가짜부흥운동’이라고 평가 절하한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영적으로 성도들을 기만하며 거짓경험을 부추기는지 자가당착적 행위들을 낱낱이 파헤친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소란을 일으키는 빈야드와 신사도운동이 수많은 교회에 끼친 악영향에 대한 증거들을 일일이 제시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보자.

“시간이 지나면서 ‘금이빨이 생기는 현상’이 나타나더니 나중에는 ‘금가루가 떨어지는 현상’이 부위기를 압도했다. …폴 크로치는 치유 전도자 베니 힌의 얼굴에 금가루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이렇게 외쳤다. ‘저 금가루는 분명 다른 세계에서 온 것이 분명하다. 하늘 문이 빠끔 열려서 길거리의 먼지 일부가 베니 힌의 얼굴에 떨어진 것이다.’”

전 세계의 가짜부흥운동 지도자들이 앞 다투어 금가루가 내렸다는 보고를 하고 있을 때, 펜사콜라 브라운즈빌 부흥집회 리더들은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몇몇 명성있는 기독교 지도자들도 아무 기탄없이 이런 유행을 받아들여 빠르게 전파되면서 전 세계에 있는 교회들이 가짜 부흥운동 예언자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고자 이들을 초대했다. 냉소적인 웃음, 발작적인 경련, 기사와 이적, 영웅적인 사도와 예언가, 쓰러짐, 이런 것들이 성령의 임재와 능력의 증거로 제시됐다. 저자는 1997년 무렵 영국에서만도 7천개의 교회가 빈야드와 신사도운동을 받아들였다고 추산한다.

그러자 일반언론들도 이 운동에 관심을 보였다. 1994년 8월 15일자 <타임>지는 ‘주님을 위한 웃음’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오늘날 영국 전역에 있는 성공회 예배는 기독교 예배라기보다는 락 콘서트나 럭비 경기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1995년 2월 20일자 <뉴스위크>지는 ‘하나님을 위해 낄낄거리며 웃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기독교인들이 발작적으로 몸을 떨고, 황홀경에 빠져 춤을 추고, 동물처럼 행동한다고 보고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재능, 지식, 풍부한 자료조사, 경험 등을 총동원하여 오늘날 일어나는 가짜부흥운동을 평가한다. 구체적으로 존 윔버, 베니 힌, 존 아놋, 밥 존스, 마이크 비클, 릭 조이너 등 가짜부흥운동 지도자들의 비성경적인 주장과 행동을 통해 성령운동의 제3의물결이라 불리는 빈야드와 신사도운동에서 드러나는 심각한 기독교 왜곡 현상을 보여 준다.

“‘내가 곧 예배 중에 육체의 모습으로 임할 것이라고 베니 힌에게 전해라.’ 그래서 베니 힌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예배 가운데 모든 성도에게 육체의 모습으로 나타나 우리의 영혼을 깨우실 것입니다. 부활하신 후 나타나신 것처럼 이제 재림하시기 전에 나타나실 것입니다.’”

저자 해너그라프 문체의 특징은 읽기 쉽고, 암기하기 쉬우며, 방대한 증빙자료를 제시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저자는 이 책에 있는 내용을 더 잘 기억할 수 있도록 FLESH라는 단어를 만들어 독자에게 제공한다.

F. 1부 거짓말·환상·기만(Fabrications, Fantasies, and Frauds)
L. 2부 거짓 기사(Lying Signs and Wonders)
E. 3부 종말 회복주의(Endtime Restorationism)
S. 4부 쓰러짐(Slain in the Spirit)
H. 5부 최면술(Hypnotism)

이 머리글자를 통해 저자는 성령의 진정한 역사와 FSESH로 대표되는 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부흥운동의 역사를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게 해준다. 가짜부흥운동이 거짓말·환상·기만에 기초를 두고 있는 반면 진정한 부흥운동은 언제나 믿음과 사실 위에 확고히 서 있다는 것이며, 가짜부흥운동이 거짓기사와 이적을 통해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하려 하지만 진정한 부흥운동은 언제나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는 것이다.

또한 20세기가 저물어 갈 즈음 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부흥운동 지도자들은 영웅적인 예언자와 사도들의 종말회복을 이야기했다면, 진정한 부흥운동은 참된 회개를 예언했다는 것이며, 가짜부흥운동은 쓰러짐 같은 감각적인 현상에 초점을 맞추지만, 진정한 부흥운동은 성령 안에서 얻는 구원과 성화에 초점을 맞춘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자는 가짜부흥운동의 지도자들이 최면술 같은 방법으로 통해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지만, 진정한 부흥운동을 이끄는 지도자들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들을 깨우친다고 평가한다. 한때 이교 사원에서 행해지던 일들이 이제는 교회의 강단에서 행해지며 그들 최면술사들이 ‘힌두 구루’로 불리든, ‘성령 바텐더’로 불리든 사용하는 방법과 상태는 모두 너무나 비슷하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한마디로 “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부흥운동의 비극은 모든 추종자가 잘못된 곳에서 하나님을 경험하려 한다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진정한 경험은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그런 집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기본으로 돌아갈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확신이 서지 않거든 하나님이 이미 하신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바로 성경이다!

저자의 결론에 따르면 아주 놀라운 속도로 기독교는 문화에 종속하고 있다. 문화를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것이 기독교인으로서 우리의 임무임을 깨닫지 못하고, 겉모습만 강력한 부흥을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는 데 열광한다. 사탄은 ‘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부흥운동’의 우두머리로, 사탄은 자신의 추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 않고 ‘계몽’이라는 천사의 탈을 쓰고 있다. 사람들이 사탄을 만날 때, 마치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기를 원하는 것이다. 이런 사탄의 속임수가 바로 빈야드와 신사도의 가짜부흥운동이다.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고자 하는 자신의 열정을 아브라함 카이퍼의 말로 대신하며 독자들을 촉구한다.

“당신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확신을 거스르는 원리가 득세하거든 싸우십시오. 평화를 누리는 것은 죄입니다. 소중한 평화를 희생하더라도 친구와 적 앞에 당신의 확신이 분명히 드러나게 하십시오. 당신의 신념을 불태워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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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지주의(그노시스즘: gnosticism)


영지주의란 AD 1-3세기에 일어났던 헬라, 로마 세계에서 두드러졌던 철학적, 종교적 운동이다.

영지주의는 여러 전통 종교들로부터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주었지만, 초대 기독교에 대해서 가장 심오한 영향을 미쳤다. 이 영지주의는 기독교의 이전에는 발견되어지지 않음으로 인하여, 기독교 이전부터 독자적으로 존재하던 종교는 아니라고 보여진다.

즉 기독교가 시작되면서, 그 당시에 존재했던 철학과 이방종교적 사상이 기독교와 접목하면서 발생한 혼합적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지주의라는 명칭은 헬라어 '그노스티코스'에서 유래했다. “그노시스”란 “비밀스러운 지식을 소유한 사람”을 의미한다.

즉 영지주의란 특별한 지식을 소유하여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소위 접신론적(接神論的)인 운동을 말하며, 초대교회 당시에 있었던 최초의 기독교 이단이다.


영지주의 사상에 반대하며 비판하는 교부들의 책(이레나이우스, 히폴리투스, 터툴리안, 클레멘트, 오리겐 등)이 소개됨으로서 초대교회에 영지주의가 존재하였음을 알게 되었으며, 또 발견되는 영지주의 저작에 소개되어 있는 영지주의 현상은 신학, 윤리학, 의식 등과 복합적으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엄격히 분류하기는 어렵다.

또 영지주의는 2세기 이후에는 서로 다른 다양한 형태로 분파되어 발전해 갔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영지주의 분파들은 사도들의 가르침 - 즉 성경적인 교육이나 체험적 관찰이 아닌, 소위 주관적인 신적 계시라고 불리는 특별함에 의해 얻어지는 비밀스런 지식의 구속능력을 공통적으로 강조한 듯하며, 알레고리적인 성경해석과 헬라적 철학의 혼합사상, 육체를 죄악시하는 금욕주의, 혹은 이원론(악한 신과 선한 신의 공존, 혹은 하나님과 물질세계의 분리적인 대립)을 주장하였다. 학자들은 이러한 영지주의의 근원을 네가지의 혼합적인 영향이라고 본다.


1) 헬라철학(프라톤주의, 스토아학파등)

2) 동방종교

3) 유대교

4) 기독교


즉 기독교가 전파되어짐에 따라, 그 당시에 상존하였던 유대교의 율법적인 전통사상과 이교도의 종교적 사상과 철학적 사상등이 기독교와 혼합되어지며 형성되었던 것이다.

영지주의의 핵심교리는 하나님과 물질계 사이의 존재론적 이원론(二元論)에 있으며, 악이 신성의 내적 분열에서 생겼다는 동방종교적인 신화의 근본 개념을 갖고 있다.

또 비록 다양한 형태였지만, 그들 집단의 지도자가 갖은 철학적 사상에 근거한 깨달음, 즉 그들이 신적계시라고 부르는 특별한 지식에 의한 구원을 주장하였으며, 예수의 성육신을 전혀 다른 개념으로 해석하기도 하였다.


성경에서도 그러한 초기형태의 영지주의가 등장한다고 보여지는데, 사도들은 그러한 사상에 대해서 매우 비판하고 있었다.

바울은 영지주의의 혼합적인 거짓교훈에 대해서 경고하였다.

그는 지식으로 교만하게된 고린도교회의 대적들, 비교적(秘敎的)인 지혜를 강조하고, 엘리트 부류(고전2:6-7)로 자처하는 그들에 대해서 편지한다.

지식은 교만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세워주는 사랑이며(고전8:1, 13:8), 부분적으로 폐하게 되는 지혜는 십자가 앞의 어리석음이며(고전1:18, 2:7-8), 참지식은 영적우월주의가 아닌 그리스도의 마음(2:16. 빌2:5)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골로새서에서는 바울도 헬레니즘 철학과 유대교의 혼합사상을 환기시키려고 한다.

초등학문(스토이케이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수단으로서 금욕주의(골2:20-22,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는 사람의 가르침)를 가르쳤던 곳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자유케 하는 능력을 선포한다(골3:10)


목회서신이라고 불리는 디모데전서에서 유대인의 신화와 족보에 참념케 하는(딤전1:4, 4:7, 딛1:14), 거짓지식(딤전6:20)을 가르치는 율법교사를 비난한다.

그들은 신령한 부활이 이미 실현되었다고 선포하였다(딤후2:18)

또한 식물과 결혼에 대한 금욕주의(딤전4:3, 2:15, 5:14, 딛2:4)를 주장하였으며, 그것은 후기 금욕주의의 형태인 영지주의자를 반영한다.


특히 요한일서는 영지주의에 대항하여 그들을 비판하는 내용이며, 특히 사도요한은 거짓교사들의 이원론(빛과 어두움, 요일1:5-6)을 존재론적으로 비판한다.

그들은 성육신을 영적 그리스도로 대체하였고(4:2), 지식을 믿음으로 바꾸었으며(3:23, 5:20), 속죄와 상관없는 것으로 바꾸었다.(2:2, 5:6-10) 

예수 그리스도안의 계시된 사랑의 하나님을 부인하면(4:8) 그들은 적그리스도의 영(3절)과 미혹하는 자(요이1:7)가 된다.


교회사에서는 2세기에 이르러 영지주의가 그 형체를 명확하게 드러내기 시작한다.

전승에 의하면, 최초의 영지주의자가 시몬 마구스(행8:9-24)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초대교부였던 이레니우스(Irenaeus)는 「이단들에 반대함」(Against Heresis)이라는 글에서 시몬 마구스(Simon Magus)를 향해 '모든 이단들의 아버지'라고 공격하였다.

이 사람이 사도행전 8장9절에서 24절에 나오는 인물과 동일한가에 대해서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


이레니우스가 공박한 시몬 마구스라는 자는 사마리아에서 크게 위세를 떨쳐서 주후 150년경에는 큰 집단이 되었다고 한다.

시몬 마구스는 자칭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하면서 초월해 계신 하나님을 부인하였다. 따라서 성경을 거부하였고, 내재하는 영의 성육신을 강조하였다.

구원을 위해서는 '지식'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천지의 근원을 고요함에서 찾고자 하였다. 마치 신비적인 안개 속을 헤매면서 마음으로 그 속에 있는 진리의 빛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특히 시몬 마구스는 훗날 양태론(Modalism)으로 불려지게 될 신론을 갖고 있었다.

그에 의하면, 예수님은 인간의 형태를 입은 사람으로서, 구세주가 아니요, 높으신 하나님도 아니다. 하나님과 구세주와(시몬 자신을 포함하여) 모두가 동격이다.


또 어떤 전승에 의하면, 케린투스라는 영지주의자가 사도요한과 동시대의 사람으로 존재하였다고도 한다.

그는 영이신 그리스도가 예수 안에 강림하였다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예수의 육체를 떠났다고 주장하였다고 하였다.


또 2세기 이후 가장 탁월한 영지주의 공동체로서, 발렌티누스파가 있었고, 또 말시온이란 영지주의자도 나타났다.

에비온파가 구약적 요소를 지나치게 강조한 이단이었다면, 그 반대로 말시온주의는 구약을 지나치게 배척한 이단이었다.

말시온은 흑해 남단에 있는 작은 마을 '시노피'(Sinope) 출신이었는데, 선박제조업으로 부를 누리던 사람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비두니아지방의 감독이었는데, 아들 말시온의 부도덕한 행위를 보고 아들을 파문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서 말시온은 140년경에 로마로 이주하여 거액의 헌금을 로마 기독교 공동체에 제공하였다. 그러나 로마의 영지주의자였던 '세르도'(Cerdo)라는 사람의 영향으로 로마교회의 가르침과는 다른 교리들을 전파하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서 그는 로마교회에서 파문당하였다고 전해진다.

144년경부터는 로마 교회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이단 집단 말시온파의 지도자가 되었다.

150년경에「변증서」라는 책을 쓴 순교자가 져스틴(Justin Martys)에 따르면 말시온파의 활동이 매우 활발했다고 한다.

이레니우스(Irenaeus)라는 리용의 감독은 150년대와 160년대에 말시온파의 확산이 급속했다고 말했다. 이레니우스에 따르면 서머나교회의 유명한 순교자 감독 폴리캅(Poly carp)이 말시온을 만나서 대화하고는 '사탄의 맏아들'이라고 공박했다고 한다.

말시온은「반대명제」라는 책을 저술했는데, 그 책 자체는 현존하지 않지만, 2세기 말과 3세기 초에 활동한 아프리카의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이「말시온에 대항하여」라는 책에서「반대명제」의 내용을 대부분 수록하여 논박하였다.

말시온은 영지주의자로 불려지지만, 그러나 초기의 영지주의자들과는 차이점도 있기 때문에 독립적인 이단 집단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러나 말시온이 가르침을 받고 영향을 받은 세르도라는 사람은 명백한 영지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말시온의 이단사상은 기본적으로 그의 신관에서 비롯된다.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도무지 조화될 수 없는 별개의 존재라는 것이다.

이 사상은 '세르도'가 먼저 가르치기 시작한 것인데, 말시온이 더욱 발전시킨 것이었다. 그의 「반대명제」는 구약의 신과 신약의 신이 반대되는 점들을 열거한 것이었다.

구약의 신은 복수와 공의의 신이지만 신약의 신은 사랑의 신이라는 것이다. 구약의 신은 열등한 물질계 창조주로서 전지 전능하지 못하지만, 신약의 신은 전지 전능한 신이라는 것이다. 구약의 신은 유대인의 신이지만 신약의 신은 모든 사람에게 자비로운 신이라는 것이다.

구약의 신은 알려진 신('데미우르게'라는 헬라철학의 신)이지만, 신약의 신은 원래 알려지지 않은 신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신약의 신은 구약의 신에게 얽매인 인간을 해방시키고자 예수로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예수의 육신은 참된 육신이 아니라 환상적인 육신으로서 육신처럼 보였을 뿐이라고 했다(가현설). 구약의 신은 의인들만 받아주었지만, 예수는 모든 죄인들도 받아주고 심지어는 음부에 내려가서 구약의 신을 반대하는 영혼들을 구원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이제 물질계를 벗어난 영혼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루고 있는데, 구약의 신은 다시 나타나서 지상에 천년왕국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영적 왕국을 대적한다는 것이다.


말시온은 구약을 모두 거부하고 신약에서도 누가복음과 바울 서신 가운데, 열 개만을 정경으로 보았다. 이 가운데서도 구약의 인용 부분은 삭제해 버렸다. 게다가 자신의 저작인 댓구라는 책을 성경에 포함시켰다.

말시온은 바울을 좋아했고 바울 서신 중 사랑의 신에 대한 구절을 좋아했으며, 금욕주의적인 생활관을 가지고 있었다.

말시온으로 인해서 정통교회는 신약 27권의 정경화를 서둘러 추진하게 되었고, 구약의 신과 신약의 신의 관계를 더욱 깊이 연구하고, 묵상하게 되었다.

초대교회에서 이러한 이단들의 출현은 상대적으로 정통교회의 신학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정리하는 계기가 되어졌다.


영지주의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창조교리를 변조시킨 초대교회 시절의 종교적 철학운동이었다. '지식'을 지나치게 숭상한 나머지, 실재에 대해서 이원론으로 치달았다.

영혼과 물질, 정신과 육체, 선과 악, 구약과 신약, 이스라엘과 교회, 하나님과 예수님, 율법과 복음, 심판과 칭의 등의 대립과 대결 속에서 만물이 형성되어 나간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을 '영적인 권능' 정도로 이해하였고, 물질 세계의 근원자가 될 수 없다고 격하시켰다.

성경과는 정반대로 물질 세계란 전혀 별개의 근원을 갖고 있다는 주장을 별개의 근원을 갖고 있다는 주장을 펴서 창조론을 거부하였다. 물론 성경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은 하나님 자신과는 완전하게 별도의 세계에 위치하고 있다. 하나님은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셨으며 영원히 창조주이시다. 그리고 세상은 그의 피조물이다. 이러한 구분을 영지주의자들은 부인하였다. 이들은 이 세상을 의미있는 곳으로 볼 수 없었다. 따라서 육체를 죄악시하고 엄격한 금욕주의에서 신앙생활의 이상을 발견하였다.


또 몬타누스라는 자도 있었다.

말시온과 몬타누스는 동일시대의 인물이다. 이들은 모두 안토니우스피우스 황제(Antonius Pius, 138~161 재위) 시대에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몬타누스는 새 예루살렘이 곧 임박했으므로 결혼은 금하고 말세를 준비해야 한다고 서둘렀다.

몬타누스는 자신에 대해 맹종을 요구하면서, "나는 특별한 예언적 은사를 받았다"고 확신시켰다.

자기가 받은 계시에 따르면 새로운 성령이 넘쳐흐르고 있으므로 곧 말세가 온다고 하는 종말론자였다.

몬타누스는 자신을 하나님의 선지자로 소개하면서, 추종자들은 특별한 지식을 소유한 기독교의 영적 엘리트로 확신을 불어넣었다.

막시밀라와 브리스가라는 두 여제자를 두었고, 소아시아 지방에서 큰 세력을 확보하였다.

막시밀라는 남편으로 하여금 몬타누스를 따르게 하고 자신은 소아시아 프리지아 지방의 페푸자라는 동네에 새 예루살렘이 임한다고 주장하면서 모든 세속적인 일을 중지하라고 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몬타누스가 받았다는 '새로운 계시'의 정체가 차츰 드러나면서 이단임이 밝혀지게 되었다. 몬타니스트들은 금욕주의적 생활양식과 순교에의 자발적 참여 등으로 인하여 정통교리가 체계화되지 못했던 초대교회 시대에 정통교회들의 반발을 무력화시키는 위세를 발휘하였다.

심지어 한 때 터툴리안 같은 교부마저도 그들과 잠시 관련을 가질만큼 큰 해독을 끼쳤다.


또한 영지주의자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현설(Docetism)을 들고 나와서 육체적, 실제 예수의 존재를 부인하고 영적인 예수만이 있었다는 주장을 함으로써 혼란을 초래하였다.

이 사상은 앞의 시몬 마구스가 선창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체 없이 그냥 외형상으로 존재하였으며,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 아니요,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마술적 존재라는 것이었다.

가현설은 당시 헬레니즘의 합리적 사고와 부합하여 예수님의 탄생, 고난, 부활 등의 객관적 역사성을 모두 부인하기에 이르렀다.

트라얀 황제시대(Trajan, 98~117 재위)에 순교한 안디옥의 아그나시우스가 가현설의 오류를 간파하여 "예수님은 형상만 있던 분이 아니요, 참 사람이었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영지주의는 체계적인 기독교의 성경적, 신학적인 변증적 논리에 대해서 3-4세기 이후에는 급격하게 쇠퇴하며 무너지게 되었다.

그러나 교회 역사상 영지주의적인 사고방식은 성경에 근거한 기독교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은 아니었으며, 최근에도 이단이라고 불려지는 곳에 의하여 아직도 계승되어지고 있다.

또 양태론적인 신론은 영지주의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며, 잘못된 기독론 역시 그 유래를 찾아 계속 올라가 보면,  결국 영지주의적인 영향에서 출발된 것이다.


지금도 신적계시 - 즉 자신들의 주관적이며 특별한 지식을 알아야만 거듭나며 구원을 받는다는 집단은 영지주의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부류의 이단들은 특히 창세기, 계시록등을 독단적으로 해석하면서 그것이 신적계시에 의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인간의 육체를 물질화, 죄악시하여, 오직 영혼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금욕주의와 특별히 사람이 살아서도 육체와 영혼을 분리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소위 영혼의 육체이탈설을 주장하는 일련의 주장등은 헬라주의적인 영지주의 견해와 유사하다.

인간은 그가 생명을 갖고 있는 한,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전인적(全人的)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에베소서 4장 11-12절)

오늘날에도 사도가 있는가? 오늘날에도 선지자가 있는가? 엡 4:11절에서 말하고 있는 직분들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다 존재하는 것인가? 이러한 일련의 질문들에 대한 역사적 정통교회의 신앙과 신학적 전통을 벗어나서 '오늘날에도 사도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신사도운동(New Apostle Reformation)이다. 신사도운동의 주창자는 오랫동안 풀러신학교 교수를 역임한 피터 와그너(Charles Peter Wagner, 1930-)이며, 그는 빈야드운동(Vineyard Movement)의 기수였던 존 윔버(John Richard Wimber, 1934-1997)로부터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사실 피터 와그너가 이전에 따랐던 은사중단론을 포기하고 '능력사역'으로 전환하게 된 데는 그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존 윔버의 영향력이 지대했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빈야드 운동의 창시자인 존 윔버였다"(피터 와그너,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이 신사도운동의 영향력은 현재 한국교회 내에서도 점차적으로 증대되고 있는 실정이다. 필자가 섬기고 있는 한국장로교총연합회(한장총) 이단상담소를 위시하여 각 교단 이단대책위원회들과 초교파 이단연구기관들에도 신사도운동에 대한 문의가 계속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한국교회는 빈야드운동으로 큰 혼란에 빠진 적이 있으며 그 영향력이 아직도 남아 있는 시점에서, 이제는 '신사도운동'의 도전을 받고 있다.

이러한 위기를 직시하여 금번 한장총 이단대책위원회는 제3회 세미나(2009. 6. 29. 오후 3시, 100주년 기념관 3층 강당)를 구상했다. 세미나의 주제는 '신사도운동에 대한 장로교 신학적 입장'이며(발제자: 한장총 이단상담소장 최병규 박사, 합동신학대학원 이승구 박사), 필자는 '신사도운동 형성의 역사적 과정 및 한국교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하여, 그리고 이승구 교수는 '신사도 운동에 대한 장로교 신학적 진단과 평가' 부분을 다루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신사도운동 주창자인 피터 와그너가 지대한 영향을 받은 바 있던 존 윔버의 '빈야드운동'은 한국교회의 주요 교단들에 의하여 규정된 바 있다: 통합(1995/81/도입금지), 고신(1996/46/참여금지), 합동(1997/82/참여자, 동조자는 징계), 기성(1998/53/사이비성 있음).  ‘제3의 물결’, 혹은 ‘토론토 축복’ 등으로 불리어온 빈야드운동은 미국 캘리포니아의 애너하임 빈야드교회(Vineyard Christian Fellowship)를 이끌던 존 윔버와 그의 동료들에 의하여 ‘빈야드 교회 연합(Association of Vineyard Churches)’으로 발전한 것이었다.

예장 통합측의 제 81회 총회(1991년)에서 규정한 빈야드 운동에 대한 연구를 약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가) 성령과 그 사역에 대한 이해가 치우쳐 있다. 빈야드 운동에서는 초자연적인 은사들과 능력, 그리고 신비 현상들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 특정한 은사들이나, 격렬한 감정의 분출 현상이나 이적들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성령의 역사의 다른 중요한 측면들(즉 말씀, 사랑의 삶, 공동체  안에서의 교제, 사회에 대한 책임적 행위에 관련된 성령의 역사)이 간과되거나 약화될 수 있다. (나) 거룩한 웃음, 떨림, 쓰러짐, 짐승 소리 등의 현상은 비성경적인 현상들이다.

짐승 소리는 토론토 교회의 현상으로서 존 아노트가 그런 현상들과 특히 짐승 소리를 정당화하는 성경적인 증거로 예수님을 ‘유다 지파의 사자’라고 묘사한 계시록 5:5 이라든지 ‘하나님이 사자같이 부르짖으신다’는 아모스 3:8 등을 인용하여 정당화하고 있는데(The Father's Blessing pp.172~173), 이는 억지스런 해석으로 위의 본문들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과 은유로 묘사한 것이지 실제적인 짐승 소리나 괴성을 정당화하는 말씀은 틈求?

또한 은혜를 체험하고 쓰러지는 현상은 가장 두드러진 현상으로 이들은 쓰러짐을 정당화하기 위해, 에스겔 1:28과 다니엘 8:17을 근거로 에스겔과 다니엘의 쓰러짐을 말한다. 그러나 에스겔이나 다니엘은 하나님의 위엄 앞에서 스스로 앞으로 부복한 것이지 빈야드의 경우와 같이 은혜의 체험으로 뒤로 넘어진 것이 아닌 것을 볼 때, 전혀 성경적으로 합리화할 수 없는 현상에 속한다”(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단사이비종합자료 2007』).

통합측 연구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빈야드 운동은 성령과 그 사역에 대한 이해가 치우쳐 있고, 거룩한 웃음, 떨림, 쓰러짐, 짐승소리 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그들의 성경 해석은 올바르지 않으며 또한 무질서한 예배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므로 본 교단 소속 목회자들과 교인들은 빈야드 형식의 예배를 무분별하게 도입하여 들이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며, 이 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삼가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물론 신사도운동은 존 윔버의 사상적 영향만을 받은 것은 아니다. 피터 와그너는 그의  『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에서 신사도운동의 뿌리를 1830년대 영국의 에드워드 어빙의 사상에까지 소급하기도 하며, 1900년 경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독립교회 운동, 1970년경 시작된 미국의 은사주의(charismatic) 운동, 중국의 가정교회운동, 남미의 풀뿌리운동(grassroots church movement) 등에서 그 연원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신사도운동은 1940-50년대 이후의 고전적 오순절 교단에서 일어났지만 그들과 가까운 사이였던 미국 하나님의 성회로(The Assemblies of God)부터도 정죄한 바 있는 '늦은 비 운동'(Latter rain movement)과도 일부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하나님의 성회는 1949년 시애틀에서 열린 총회와 2000년 8월 총회 시에도 오늘날에도 사도와 선지자가 있다고 하는 주장을 정상적이지 못한 가르침(Deviant Teachings)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Cf. Endtime Revival-Spirit-Led and Spirit-Controlled. A Response Paper to Resolution 16).  

이러한 일련의 운동에 기초를 두거나 맥락을 같이 해 온 신사도운동이 주장하는 것은 '오늘날 자신들은 제2의 사도시대에 들어왔다'고 한다. 피터 와그너에 의하면, 사탄은 책략을 가지고 있는데 소위 '종교의 영들의 무리'를 통하여 그 계획을 이뤄간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종교의 영'이라는 것은 종교적 수단을 사용하여 변화를 막고 현상을 유지하는 일을 맡은 사탄의 사자라는 것이다(Cf. 피터 와그너의 '루시퍼 종교부'에 대한 글).

피터 와그너에 의하면 이 '종교의 영들'은 사람들을 낙심시켜서 '제2의 사도시대의 새로운 가죽 부대로 들어가는 것을 막는 주 세력'이라고 한다(『신사도적 교회로의 변화』. Cf. Kimberly Daniels, The Fruit of "Religion", C. Peter Wagner ed., Freedom from the Relisious Spirit, p. 111. 여기에서 Daniels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오늘 날 우리는 사도적 통치apostolic government가 회복되고 있는 교회의 역사 속에 존재하고 있다. 사도직제apostlic에 반동하려고 시도하는 종교의 영은 배교apostasy이다").

지금 현재 한국교회는 신사도운동의 여파로 인하여 처처에서 적지 않은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혼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아마도 각 교파와 교단들의 이단대책위원회들도 이 운동과 관련한 상담 빈도수가 증가하고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과거 빈야드운동의 폐해를 경계하고 규정한 한국교회는 이제, 그와 유사하면서도 발전된 형태인 새로운 운동 즉 '신사도운동'을 직면했다. 물론 현 시점에서 이 운동의 영향을 받고 있는 정도가 각 교단별로 다소 차이를 지닐 수는 있겠으나, 그것은 머지않아 여러 교단들이 공히 직면하게 될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필자는 한국교회 성도들의 신앙을 보호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는 각 교파와 교단들의 이단대책위원회들이 이 사안의 중차대함을 체감하여 적극 대처해 주기를 간곡히 제안하는 바이다.

* 최병규 박사(교회사)는 예장 고신총회 유사기독교 연구소장 및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이단상담소장으로 섬기고 있다(한국장로교총연합회 이단대책위원회 서기 및 위원장 역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단대책위원회 전문위원, 서기 및 부위원장 역임). 한국교회가 매년 9월 첫째 주간(혹은 주일)로 지키는 '이단경계주일' 제정을 발의하였으며, 현재 각 교파와 교단이 '요한계시록 공과 교재'를 제작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들어 한장총 및 각 교파와 교단들에 '신사도운동 연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bkc1202@hanmail.net (02) 593 9726

최병규 ⓒ 뉴스파워
출처: 아멘넷

여호와의 증인  문제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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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기피 및 집총거부 문제

이들은 모세의 십계명 중 제 6개명인 "살인하지 말라"를 근거로 병역기피 및 집총거부를 하고 있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 간부들은 직접적으로 병역기피, 집총거부를 지시하지 않고 교묘한 방법을 통해 스스로 병역기피, 집총거부를 하도록 교사한다.

[방법] 여호와의 증인 신도 A가 징집영장을 받고 고민한다. 신도 A가 회중책임자에게 자신의 징집문제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으면 직접적으로 징집에 응하라, 응하지 말라고 하지 않고 자기의 교리를 내세워 설명한 후 신앙인 양심에 따라 결정하라고 한다.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
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속하지 않으며 세상 정사에 가담하지 않는다.
② 여호와의 종들은 평화의 길을 걸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있다.
③ 군복무에 대한 초기 그리스도인의 태도에서 군복무를 거절한 사례를 가르친다.

[사례]
a. 1918년 2월 카나다 정부는 여호와의 증인의 집총거부에 대해 포교금지와 문서활동 금지를 시켰음.
b. 1918년 5월 미국 뉴욕 동부지역 재판으로 제 2세 교주 로더포드 외 그의 동료 7명을 병역 기피 혐의로 체포하여 그해 6월 20일 재판에서 20년의 장기형에 처함.
c. 세계 2차전쟁 중 미국에서 3,500명의 여호와의 증인이 군복무를 거절하고 투옥됨.
d. 한국의 경우 병무청 발표에 의하면 여호와의 증인 병역 기피자가 73년도 전체 기피자의 87%, 74년도에는 59%, 75년도에는 79%, 76년도에는 80%, 77년도에는 60%, 78년도에는 약 50%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증]
구약성서에 보면 이스라엘 선민들은 이방인들과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시키기 위해 전쟁 을 끊임없이 해왔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적이며 사탄의 세력인 무신론주의 공산주의와 대치해서 싸우는 것은 기독교 및 자유주의 국가의 생존 사활에 관한 문제이며 기독교인들의 당연한 의무이다. 더구나 한국의 경우 북한의 공산세력과 대치하고 있는데 여호와의 증인들은 징집을 기피하고 집총을 거부하여 투옥되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할 정도로 광신적인 행위를 서슴치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반국가적인 이적행위라고 할 수 있다. 여호와의 증인의 병역기피 및 집총거부는 정통 성서해석상의 입장에서 볼 때 비성서적이라고 볼 수 있다.



국기 배례금지 문제

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상징이다. 태극기를 향하여 경의를 표하는 것은 모든 국민의 당연한 의무이다. 우리는 태극기를 신앙대상으로 섬기거나 신처럼 믿는 것이 아니고 다만 경의를 표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증인들은 우상이라고하여 배례를 금지하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 때문에 자퇴하기도 한다.

[여호와의 증인 주장]
① 하나님의 승인 아래 충실한 히브리인들은 국가 상징물을 숭배하는 일을 거절하였다.
② 상징적인 세상정치의 "짐승"과 그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형벌을 받을 것이다(주 : 세상정치의 "짐승"이란 정권을 가진 대통령을 의미하고, "우상"이란 국가를 의미함.)
③ 하나님은 형상을 만들어 그 앞에서 절하고 숭배하는 것을 금한다.
④ 하나님의 충실한 종들은 국가 상징물을 숭배하지 않았다.

[실례]
a. 73년 6월 충북 제천국민학교 4학년 여호와의 증인이 국기배례 거부하고 퇴학당함.
b. 72년 7월 15일 강원도 원주여중생 7명이 국기배례 거부하고 자퇴함.

[반증]
여호와의 증인은 태극기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십자가도 우상으로 간주하여 부정하고 있으나 태극기는 국가의 상징이며 기독교의 십자가는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속한 속죄의 상징일 뿐 숭배나 신앙의 대상은 아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태극기에 배례하는 오른손을 왼편 가슴에 얹고 경의를 표할 뿐이며, 절을 하지 않으며, 또한 십자가에 대해서도 절을 하는 기독교 종파는 없는 것을 보아서 신앙의 대상으로 혹은 우상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다.



수혈 거부문제

인간의 생명은 존엄한 것이다. 교리나 어떤 이유로든지 인간의 생명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것은 성서적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한 생명이 천하보다 더 귀중하다고 주장했다. 성서에 있어서 여호와의 증인들이 내세우는 "피를 먹지 말라"(레위기 17장 14절)에서 피는 인간의 피가 아니고 짐승이 피이며 의학상의 수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성서의 전체적인 의미보다도 문자주의의 해석의 오류에 빠져 수혈 거부 등 죄악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
① 그리스도인에게 "피를 먹지 말라"는 요구는 의학적 수혈거부를 말한다.
② 이 금지령은 어떠한 형태의 피에든지 다 적용된다.
③ 위급한 때라도 비성경적 피의 사용은 잘못이다.

[실례]
a. 1972년 5월 22일 이대부속중학교 2년생인 조재희 양이 교통 사고를 당해 수혈을 하려하자 그 모친 김복순은 교리를 내세워 수혈 거부를 했고 죽어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냉혈한적인 답변을 했다.
b. 1977년 1월 28일 부산시 동구 초량 4동 779번지 거주하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 박월선 여인은 그의 딸 김경숙(12세)양은 수혈을 해야 회복할 수 있는 중태임에도 불구하고 수혈을 거부해서 끝내 숨지게 해서 구속됐다.
c. 1977년 9월 25일 교통사고를 당한 최상원씨의 외아들 최황웅(7세)군은 모친이 증인인 박정자(32세)여인의 반대에 부딪쳐 수혈거부를 당한 바 경찰까지 동원하여 박여인을 끌어내고 수혈을하여 생명을 건졌다.

[반증]
역대상 11:18∼19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사람들의 피를 어찌 마시리이까 하고 마시기를 즐겨 아니하니라" 여기서 사람의 피를 마시지 말라는 말은 사람을 죽여서 그 피를 마시지 말라는 말이지 수혈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신약성서 사도행전 15:20의 "피를 멀리 하라"는 말은 동물의 피를 의미하는 것이며 인간의 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성서에는 어느 구절에도 수혈하지 말라는 구절은 없다. "먹는다"는 말과 "수혈한다"는 말은 완전히 다른 말이다. "먹지 말라"는 "수혈하지 말라"로까지 광대 해석하고 있는 것은 성서를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국가체제거부

이들은 외형상으로는 국가시책에 순응하라고 변명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국가정부는 사탄이라고 신도들에게 가르치고 있어 국가 정부체제도 거부하는 반국가적인 집단이다.

[여호와의 증인 주장]
① 큰 바벨론은 지구 전체에 퍼진 왕국, 즉 제국이다.
② 공산주의적 정부를 포함한 현 정부들은 그들의 권력을 사탄 마귀로부터 받았다.
③ 여호와께서는 사탄으로부터 권능을 받은 세상 정부들의 진로를 예언하셨다.
④ 정치적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반대하는 자들은 불리한 심판을 받는다.
⑤ 제 2세 교주 로더포드는 "인간 정부가 만들어 낸 것은 모두가 마귀의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반증]
신약성서 롬13:1에 보면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다"고 했다. 기독교인도 국민의 일원이기 때문에 국민으로서 권세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성서적이라고 볼 수 있다.



가정윤리의 파괴문제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되면 <파수대>라는 잡지들을 가지고 호별방문을 하면서 매매와 더불어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교리를 선전한다. 가정주부의 경우 가정 주부로서의 임무를 저버린 채 하루종일 활동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영위하기 어렵게 되고 그로 인해서 가정이 파괴되는 경우가 많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닌 남편이나 가족들을 사탄으로 취급하기 때문에 광신을 이유로 해서 가정이 파괴된다.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
①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않고..."(마태복음 10:22, 36∼38)을 아전인수격으로 인용하여 가족의 반대를 핍박으로 간주하고 더욱 더 가족에게 저항함.
② 참 종교(여호와의 증인을 지칭)를 택하므로 가족과 친지로부터 반대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③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이 첫째가 되어야 한다.

[반증]
엡 5:22∼6:9까지를 보면 건전한 가정에서 부모와 부부 및 자녀에 관한 기독교 가정윤리가 첫째임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같은 집안에서 살고 있는 가장 가까운 남편이나 부모를 순종할 줄 모르고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보이지 않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위선이라고 할 수 있고 비성서적이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교리를 내세워 부부별거 및 이혼을 종용하고 있으나 기독교에서는 정당한 사유 없이 이혼 및 별거를 금하고 있다.



학업 거부문제

여호와의 증인의 학문에 대한 편견으로 인하여 흔히 학생들의 학업을 포기하거나 진학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
① 하나님을 고려하지 않는 세상 지혜 지식은 유해하다.
② 세상의 지혜는 의존하는 것은 멸망으로 인도한다.
③ 거짓 지식에 의존하는 것은 멸망으로 인도한다.

[반증]
여호와의 증인들은 신약성서 골로새 2:8의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고 한 것을 아전인수격으로 인용하여 세상의 지식을 거부하고 있으나 이도 성서의 해석상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골로새서에 기록된 철학과 지식은 당시 초기 기독교회에 침투하는 이교적인 희랍철학과 지식을 경계하라는 뜻이지 공부를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시한부 말세심판설 주장

인간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그 날짜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여호와의 증인은 묘하게 연대를 풀이하여 심판의 날짜를 예언하였으나 빗나가고 말았다. 그들은 심판설 등으로 유언비어를 유포하여 혹세무민하고 사회를 문란시킨다. 예컨대 1975년 10월 초에 아마겟돈전쟁이 일어나 지구는 멸망하리라고 예언했으나 실패했다. 그 근거는 BC 4026년 10월 초에 인류가 창조되었으므로 인간의 생존시한을 6000년으로 보고 BC4026년부터 6천년이 되는 해인 1975년 10월초 세상이 전쟁으로 인해 심판, 멸망하고 그때부터 여호와의 증인만을 위한 천년왕국이 설립되어 14만4천의 여호와의 증인들이 왕노릇하리라고 했다.



반종교적인 문제

여호와의 증인은 자신들의 종교 이외의 타종교는 일체 사탄의 세력으로 보고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며 배타한다. 특히 기성 기독교와는 격렬한 반목으로 종교총화의 저해요인이 되고 있으며, 기독교의 한 종파로 분장하여 기독교의 공신력을 파괴하고 있다. 그들은 기독교리의 정통교리인 삼위일체 교리부인, 인간의 영혼불멸설부인, 지옥부재설 주장, 예수의 육체적 부활 부인, 그리스도의 신성부인 등으로 기독교의 성서적인 입장과는 완전히 다른 주장을 하고 있는 반기독교적인 집단으로서 현재 기성 기독교가 여호와의 증인으로 인해서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독선적이고, 비타협적이고, 배타적이어서 건전한 종교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What is it and where is it going?

The International Coalition of Apostles headed by C. Peter Wagner is the most influential purveyor of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a term coined by Wagner. This organization is really an extension of the New Order of the Latter Rain whose influences and mentors include William Branham, Franklin Hall, the Hawtin brothers, and more recently Bill Hamon, Paul Cain and the Kansas City Prophets. The doctrines of the Latter Rain have influenced most of the televangelists on TV today, and so have crept deceptively into many denominations.

( 피터 와그너에 의하여 주재되고 있는 국제 사도 연합은 그 자신이 창안한 신사도 운동의 가장 영향력있는 공급 조직이다. 이 조직은 사실 늦은비 운동의 신질서 개념의 확장이다. 이 늦은비 운동에 영향을 끼치고 추진한 사람들은 윌리암 브란함, 프랭클린 홀, 하드윈 형제, 그리고 보다 최근에 들어서 빌 해몬, 폴케인과 캔사스 시티 선지자들이 있다. 늦은 비 운동의 교리는 오늘날 텔레비젼 복음전도자들의 대부분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많은 교파들에게 기만적으로 파고들었다. )

The main heretical teachings of the New Order Of The Latter Rain, as ruled in 1949 at the General Council of the Assemblies of God held in Seattle, were as follows: (1) The restoration of foundational apostles and prophets in the churches. (2) The teaching and promotion of a transferable impartation or anointings that are passed on "by" the laying on of hands "by" the will of man. (3) Confession and deliverance from sin to men. (4) The impartation of spiritual gifts by the laying on of hands such as the gift of languages for missionary service and other "ministry skills".  (5) The extreme and unscriptural practice of imparting or imposing personal leadings by the means of the gifts of utterance, "word of knowledge" or prophecy. (6) Distortions of scripture interpretations, which are in opposition to teachings and practices generally accepted among the Church.  

( 늦은 비 운동의 신질서 개념에 대한 주요한 이단성들에 대해서는  1949년 시애틀 기독교 총회에서 다음과 같이 발표되었다 ;

1) 교회의 기초가 되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복원  2) 안수와 사람의 의지에 의하여 성령의 기름부음이 전이된다는 임파테이션의 가르침과 그것의 확산  3) 사람에 대한 죄로 부터의 축출과 고백  4) 안수에 의하여 선교 사역을 위한 언변은사와 다른 사역 기술의 은사적 임파테이션 (전이)   5) 극단적이며 비성경적인 임파테이션 행위 혹은 지직의 말이나 예언과 같은 언어적 은사들의 수단에 의하여 개인적인 지도력을 부여하는 것  6) 교회들간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던 가르침과 사역에 반대하며, 성경을 왜곡하여 해석하는 것 )

These doctrines deemed heretical by the Assemblies Of God in 1949, which are now common fare because of the Brownsville 'Revival" and the Third Wave movement, are all being promoted today in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This video will expose, by way of video and quotes from written materials by adherents of the ICA, the false apostles, false prophets and false teachers of the New Apostolic Reformation.

( 1949년 총회에서 이단적으로 취급되었던 교리들이 오늘날은 브라운스 빌의 부흥회와 제 3의 물결 운동으로 인하여 일반적인 것이 되어 버렸으며, 지금 신사도 운동에 의하여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 비디오는 ICA ( 국제 사도 연합 )의 추종자들과 신사도 운동의 거짓 선지자, 거짓 선생들로 부터 나온 말과 기록들을 동영상화 하였다.)

A number of the individuals mentioned by name in this video claim to be Bible-believing born again evangelicals. But in reality they are teaching and promoting doctrines that are not only dangerous, but tear down many or all of the core doctrines upon which the Christian Faith is built.

( 이 비디오에 거명된 사람들은 성경을 믿는 거듭난 복음 사역자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매우 위험한 교리를 가르치고 있으며 기독교의 신앙이 깊게 뿌리박은 심저의 교리 모두를 파괴하고 있다. )

Many of those we will examine on this video have fairly decent doctrinal statements they endorse, but by what they are teaching and doing they end up denying the basic doctrines of the Church. We want you to know that we do not hate those who teach heresy or those who follow their teachings, but rather admonish you in love if you have been deceived by teachings that deviate from the basic doctrines of the Faith. The reason for this video is the hope it will help many to come back to a complete faith in Christ and come under the authority of the Word.

( 이 비디오에서 우리가 연구 분석한 많은 사역자들이 말하는 바는  상당히 교리적으로 그럴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가르치고 행하는 것은 교회의 기본 교리를 부인하는 것으로 끝난다. 우리는 이단적 사설을 가르치는 사역자들이나 그것에 추종하는 사람들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의 기본적인 교리에서  흐트러진 가르침에 미혹되어 있는 여러분들을 사랑 속에서 권면하기 위함이다. 이 비디오를 만든 이유는 여러분이 예수 안의 온전한 믿음으로 돌아와 말씀의 권위 아래 순종하도록 하는 바램 때문이다. )

Sandy Simpson
Apologetics Coordination Team (ACT)
P.O. Box 1759
Pearl City, HI  96782

샌디 심슨 기독교 변증학 조정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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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

 

위게시는 미국 이단 연구소 : deception in the church ( 교회 속의 미혹 ) 이란 단체에서 신사도 운동의 이단성에 대하여 연구한 DVD자료의 소개입니다. 이 소개에서 신사도 운동은 늦은비 운동의 연장이며, 늦은비 운동은 미국의 총회에서 이단적 운동으로 규정된 바 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 운동이 한국의 대형 교회들 ( 여의도 순복음 교회, 명성 교회, 광림 교회 등 )을 통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온누리 교회가 이것들의 홍보를 거들고 있습니다. 손 기철 장로를 통하여 신사도 운동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알파코스 G12- 신사도 운동- 빈야드 운동- 임파테이션 운동 이것은 한 몸체로 같이 움직이고 있는 제 3의 물결, 즉 은사주의 운동임을 즉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출처 :알파코스 원문보기 글쓴이 : 푸르름
예수회 (Jesuit)

예수회는 16세기 로욜라가 창립한 카톨릭 내의 결사 단체로 각 국에서 몰락해가는 로마 카톨릭의 권위를
다시 세우고, 카톨릭 내에서 교황청의 권력을 옹호하며, 기독교를 핍박·견제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예수회는 각 국에서 로마 교황청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정치, 사회, 종교, 사회조직 등에 침투하였고,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음모, 암살 등을 자행해 왔기 때문에 여러 나라에서 추방된
경험이 있습니다.

예수회는 종교개혁 이 후 종교재판을 주도하며 수 많은 기독교인을 학살하였고, 많은 나라에서 카톨릭을
유지시키기 위해 정부와 협력해 기독교인이나 그리스 정교인을 고문하거나 강제 개종시켰습니다.

예수회는 파시스트와 나치당을 지원하여 2차 대전을 일으켰는데, 2차 세계대전은 카톨릭 신자인 히틀러와
교황청이 협력하여 세계를 정복하려고 했던 전쟁입니다.
이 과정 중에 교황청은 히틀러의 대량 학살을 교사
(敎唆) 내지는 방조하였고, 한 번도 비난한 적이 없으며,
물심양면으로 나치를 지원하였습니다.

예수회와 교황청 사이에도 권력 타툼이 있었고, 교황청의 권력을 장악한 예수회를 축출하기 위한 시도는
교황의 암살 등으로 좌절 되었습니다.
예수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프리메이슨의 사상과 조직을 흡수하여 창립되었고, 프리메이슨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가지고 있고, 많은 예수회 사제가 프리메이슨이라는 점입니다.

유대인 일루미나티는 시온 의정서에서 일반 민중과 정치인은 머리 나쁜 소 같은 사람들이라며 경멸하지만,
엘리트 결사 조직인 예수회는 존중하며 경쟁자로 여기고 있습니다.
예수회와 프리메이슨은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때로는 협력하지만 서로 다른 사상과 기반을 가진 권력집단이며,
언젠가는 제거해야할 적으로 교황청은 말세 때 프리메이슨에 의해 파멸될 것입니다.(계시록 17/16)

 

* 목차

1. 예수회의 실체

2. 유럽의 예수회

3. 예수회의 동양 선교

4. 예수회의 기독교 박해

5. 교황청과 예수회

6. 2차 세계대전과 예수회

 

 

1. 예수회의 실체

a) 이그나티우스 로욜라 (Ignatius Loyla)

예수회의 창설자인 로욜라(본명:이니고 로페즈 드 레깔데)는 1492년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로욜라 성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한 때 십자군에 참여한 적이 있으며, 신앙을 갖지 않은 방탕하고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스페인에서 정부 관리와 친위병으로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중 스페인이 프랑스로부터 침략 당했을 때 팜펠루나 전투에서 다리에 총상을 입고
로욜라 성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그는 마취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으면서 극심한 고통을 경험합니다.
결국 그는 다리를 절게 되었고, 그의 정신 상태는 극도로 예민해지게 됩니다.

고통스러운 병상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성인들의 순교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진한 감동을 느꼈고, 사제의 길을
걷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영적 체험을 위한 신비주의적인 영성훈련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를 위해 그는 오랜 금식과 갖은 육체적 고행을 시도했습니다.

그는 철저한 신앙생활을 위해 무려 3일간이나 고해성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소위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 성모 마리아 등의 환상을 보고, 각종 계시를 받음으로써
선교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로욜라가 가지고 있던 성격인 경건함과 처세술, 금욕주의와 세속적 지식, 신비주의와 냉정한 계산성 등은 그대로
예수회의 특징으로 이어집니다.


b) 예수회의 창설

예수회는 1534년 'Assumption Day'(성모 몽소 승천 축일, 8월 15일)에 몽마르트의 노틀담 사원에서 조직되었습니다.
당시 44세의 로욜라는 동지들과 함께 베니스에서 선교활동을 하였으나 종교 재판소의 제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회가 로마 교황청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을 맹세하자 1540년 로마 교황 바오로 3세의 승인을 얻게 됩니다.

이로써 예수회는 교황의 관리 하에 선교, 고해성사, 설교, 자선사업 등의 권한을 받게 됩니다.
1546는 예수회 사제가 교황청 신학자 자격으로 트랜트 종교회의에 참석함으로써 정치적인 색채도 띠게 됩니다.
교황청은 예수회를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하려고 했고, 예수회는 이에 부응하여 맡은 소임을 열성적으로 완수했기
때문에 교황청의 신임을 얻어 점차 세력을 넓히게 됩니다.

예수회 회원인 라네즈와 모론 추기경은 트랜트 종교회의에서 교황의 무오성을 주장하여 교황청의 권위를 높혔고,
사제들의 결혼과 자국어 예배, 교황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는 개혁파의 주장을 교묘한 책략과 논법으로 일축시켜
바오로 3세로부터 '교회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받게 됩니다.
예수회는 해외 선교에도 힘을 써 정신적 지도자로 성장합니다.

예수회는 교황이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 각국의 지도자를 포섭하는 정치조직으로 발전합니다.
이를 위해 지도층에 대한 권위 있는 고해성사를 주관하고, 고위층 자녀에 대한 교육을 담당합니다.
무섭게 성장하는 예수회의 세력에 당황한 교황청은 예수회 회원수를 60명으로 제한하기도 했지만,
이러한 조치는 금세 풀렸고, 1556년 로욜라가 사망할 당시에는 전 세계에 뿌리를 내리게 됩니다.


c) 영성훈련

로욜라는 알칼라(Alcala) 대학교에 머물면서 추종자들을 모아 혼의 치료를 하였습니다.
사람이 기절할만큼 격렬했던 종교의식(신비주의적 영적 체험)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많은 사람이
모여 들었습니다.
카톨릭 종교재판소는 1527년 4월 로욜라를 구속했고, 고문을 실시했지만 그는 자신이 큰 죄를 짓지 않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로욜라는 일체의 종교집회를 금지 당한 채 석방되었고, 파리의 몽떼이그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영적 수련(Spiritual Exercises)에 관한 소책자를 배포하였고, 라네즈(Lainez)나 살메론(Salmeron)과
같은 추종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한번 영적인 힘에 매혹된 사람들은 마약 중독자처럼 이를 지속하기 위해 로욜라를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련자들은 1달 동안 로욜라의 지도로 호흡법, 주문, 명상, 울부짖고 고함치는 행동 등을 교육 받고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행위는 자아의 의식을 잃게 해 불교에서 강조하는 무아지경에 이르게 하지만, 최면 상태에 빠져 쉽게
마귀들림 현상을 겪게 됩니다.

신비주의 의식을 하는 사람 가운데는 귀에 속삭이는 마귀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많으며, 결국 살인이나 음란한 행동
등을 하라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 살인범은 대개 어릴 때 부모로부터 학대 받은 경험이 있으며 극심한 고통과 현실도피
의식은 자아를 잃게 해 쉽게 마귀를 불러드립니다.

제가 어릴 때 가족이 모두 성당에 다녔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성당에서 카셋트 테이프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마인드 콘트롤에 대한 테이프에 녹음된 내용은 심장박동 소리나 기관총 소리 같은 규칙적인 음이었습니다.
그걸 듣고 있으면 알파파 상태가 유도되 정신집중이 잘 된다고 하는데, 요즘 나오는 엠씨스쿼어도 비슷한 원리입니다.

뇌파란 뇌의 활동에 따라 일어나는 전류로 '활동상태의 베타파', '학습상태의 알파파', '명상상태의 세타파', '수면상태의
델타파'로 나뉩니다.
세타파는 의식 상태와 무의식 상태의 중간단계로 최면, 세뇌, 빙의가 가능한 상태이고, 정신세계의 상위구조이며,
자기암시로 인한 행동조절이 가능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빛과 소리로 심신을 안정시키는 것은 정신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방식이고, 잘못하면 간질발작을 일으킬
수 있으며, 자율적인 심신의 조절을 방해하고, 담배를 피듯이 감정조절을 기계에 의존하게 합니다.
명상이나 기 수련, 참선도 비슷한데 주로 강조되는 것이 '규칙적인 호흡', '규칙적인 주문', '정해진 생각', '차분한 음악',
'규칙적인 행위', '규칙적인 걸음걸이', '규칙적으로 반짝이는 불빛', '한 곳만 응시함' 등입니다.

이를 통해 세타파 상태에 들어감으로써 무아지경에 빠지게 되고, 쉽게 접신하거나 유체이탈 등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귀신이 들리거나, 악령의 소리를 듣거나, 악령의 모습을 볾으로써 더욱 더 불안하고 힘든 삶을 살 수 있습니다.
TV에서 나오는 최면상태에서 전생을 대답하는 주체는 내 영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악령입니다.
우리 육신이 태어나면서 영은 하나님에 의해 새롭게 창조되며, 죽은 혼령은 절대로 다시 태어날 수 없습니다.

오순절 계열의 교회에서도 이러한 신비주의적인 의식을 그대로 받아드려 성령체험 한다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체험하는 현상은 '몸이 부들부들 떨림', '정신을 잃음', '울부 짖음', '황홀함', '큰 충격', '데굴데굴 구름',
'개 처럼 짖음', '계속 웃음', '머리를 흔듦', '계속 춤을 춤' 등 이상한 육체적 표현입니다.
이러한 것은 전형적인 마귀들림 현상으로 심할 경우 마귀의 집적주관도 받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원래 신비적인 체험을 좋아하며 마귀는 이를 이용해 자신에게 끌어들여 말 잘 듣는 노예로 만듭니다.
물론 마귀가 수호령이 되어 그 사람의 앞날을 지켜주고 각종 재능과 능력을 선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 마귀에게 의지함은 구원은 커녕 저주받을 행동이고, 영원한 불지옥행이
보장되며, 결국 마귀의 지시에 따라 사회를 타락시키고 오염시키는데 앞장 서게 됩니다.

서양의 마법사들은 정기적으로 여자를 납치해 피를 흘림으로써 사탄에게 인신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고, 그 외의 길은 모두 사탄과 마귀에게 나아가는 길입니다. (요한 14/6)
또한 하나님은 인간이 자기 능력이나 마귀의 능력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면 솔로몬과 같은 지혜를 받을 것이요, 모세나 엘리야와 같은 능력을 받을 것입니다.


d) 예수회의 사상

예수회는 로마 카톨릭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도록 모든 활동을 전개하는 정치조직입니다.
이를 위해 카톨릭 내에서 교황의 강력한 독제체제를 추구하고, 에큐메니컬 운동을 통해 기독교를 교황권 아래로
편입시키려 하며, 각 국의 정치가가 교황에게 충성을 다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포섭, 음모, 선전, 선동, 교육, 선교, 반역 등이 동원됩니다.

예수회 회원은 세뇌적 교육에 의해 상부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도록 훈련됩니다.
그들은 이성과 도덕적 양심마저도 버리고 상부의 명령에 따라 살인도 자행할 태세를 갖추게 됩니다.
로욜라는 "총재가 지시하는 것이라면 그 모든 것은 정의로운 것이며 온당한 처사임을 모든 회원은 명심해야 한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예수회의 수련은 군대의 훈련과 비슷하며 자기의 판단을 배제한 무조건적인 복종을 교육받습니다.
로욜라가 포르투갈의 회원에게 보낸 서신에는 "교회가 검은 것을 흰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대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어떠한 의심이나 가치관마저도 죄악시 되는 예수회 회원에게 절대적인 복종은 "자기 굴레로부터의 해방" 이라고
칭송되어집니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이러한 예수회의 태도는 유럽의 거의 모든 국가로부터 추방당하는
사태로 이어집니다.


e) 예수회의 조직

카톨릭 예수회는 6계급으로 이루어지는데 novices(초신자), scholastics(수학생), coadjustors(보좌주교),
temporal(교구주교), professed of the three vows(세가지 맹세를 한 자), professed of the four vows
(네가지 맹세를 한 자)가 있습니다.
이 중에 상위 두 계급은 예수회의 운영과 간부 임명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네 번째 맹세는 로마 카톨릭 교황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한다는 특별한 충성의 표시이며 교황이 명령하는
때는 어떤 일이든지, 어느 장소든지 가야 하며 의문을 제기해서도 안됩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이 명령들은 막강한 권한을 가진 예수회 수장에 의해 실행됩니다.

예수회의 우두머리는 실질적인 총사령관으로서 수장(General)이라 불립니다.
예수회 총재인 라네즈와 살메론은 예수회 총칙을 만들었는데 '예수회 총재는 독재체제로 한번 부임하면 죽을 때까지
재임
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예수회 수장에게 주어진 권력중의 하나는 지원자를 비밀리에 받아들여 입회식을 거행하는 것입니다.
예수회의 법규에 의하면 수장은 죽을 때까지 로마에 거주해야 하며, 간부들도 직접 임명합니다.
그의 임용권과 그가 제시한 의견은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됩니다.


예수회 총재는 로마 교황청의 훈계자요 대리자며 보좌역으로 불리웠고, 이태리, 독일, 프랑스, 스페인, 영국,
미국 등에 지회가 설치되었습니다.

지회에는 총재가 임명한 감독관이 파견되고, 예수회의 재산은 총재가 직접하며, 그 책임은 교황만이 물을 수
있습니다.

모든 지부의 상관이나 수도원장은 예수회 회원에 관련된 모든 일과 회원들이 다루는 모든 사건을 자신의 상관에게
매주 정기적으로 보고해야만 합니다.
그러면 지부장들은 자신이 수집한 자료를 종합하여 수장에게 매월 문서로 보고합니다.
또한 예수회의 모든 지부장들은 3개월에 한번씩 수장에게 직접 보고해야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예수회의 감시와 고발체제는 매우 정교하게 짜여져 있어서 과거 수도원에서 공개적으로 잘못을
고발하던 것과는 달리 모든 회원들은 비밀리에 자신의 상관에게 동료들을 고발해야 하며, 그 상관도 지부장이나
수장에게 같은 방법으로 동료들의 잘못을 고발해야 합니다.

심지어 수장의 잘못으로 예수회의 목적에 금이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수장도 조직의 감독을 받습니다.
여섯 명으로 구성된 심의회가 수장의 행동을 감시하는데, 심의회는 네명의 보좌관과 수장의 잘못을 충고하는
충고자, 고해신부로 이루어집니다.
이들 중 한 사람은 항상 수장과 함께 회의에 참석해야 하며 수장은 예수회의 허락없이는 수장직을 그만두거나
다른 성직, 관직을 받아들일 수 없고, 자격정지 당하거나 면직당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회 사제는 주교의 통제를 받지 않으며, 1545년 교황 바오로 3세는 그들에게 사목권, 고해 청취권, 성례식 집행권,
미사 집례권 등을 부여하였습니다.
그들에게 허용되지 않은 것은 결혼식 주례 뿐입니다.

예수회 총재는 강력한 사면권을 가지고 있는데 예수회 회원이 가입하기 전 후에 지은 모든 죄, 이단 죄 등을
사면할 수 있고, 파문당한 자나 성무 금지조치를 받은 자도 충성을 맹세한 자는 사면할 수 있습니다.
그레고리 13세는 예수회에 교역과 은행거래의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경제적 활동도 보장하였습니다.
교황들은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국왕조차 파문하였습니다.

1574년 피오 5세는 칙서를 내려 훗일 교황이 칙서를 내려 예수회의 권한을 축소한다 하더라도 예수회 총재가
이를 회복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였습니다.
교황이 이렇게 예수회에 엄청난 특권을 부여한 것은 예수회가 자신에게 절대 충성해 교황권을 옹호할 세력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권력이 상당 부분 예수회에 넘어감으로써 교황체제는 예수회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예수회 또한 절대적
교황 권력의 비호 아래 성장함으로써 두 세력은 상호 의존적인 공생관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교황을 'White Pope'(흰 교황), 예수회 수장은 'Black Pope'(검은 교황)이라고 불렀습니다.
예수회는 겉으로는 교황에게 순종하나, 자신의 이익과 뜻에 맞지 않을 경우에는 언제든지 교황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예수회는 교황의 전위부대로서 사회 일선에서 활동하기 위해 정치가, 장성, 판사, 의사, 교수 등 사회 저명 인사들을
포섭하였습니다.
여러 국가의 황제와 귀족 성직자등도 예수회의 회원으로 활동하였고, 기독교 내에도 침투하여 기독교를 사분오열
시킨 다음에 다시 통합해 교황권 아래로 편입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만약 카톨릭을 비판하는 개신교 목사가 있다면 그 교회에 침투해 각종 음해와 공작으로 그 목사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결국 교회에서 쫓겨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에는 33,000명의 예수회 공식 회원이 공식 활동 중이며 이들은 교황권의 세계 지배를 위하여 불철주야 분주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f) 예수회 입단식

후보자는 길고 엄격한 금식을 통해 육체적으로 쇠약하게 되고, 환각을 증강시키기 위해 입회식 전에 환각제를
먹습니다.
그 후에 신비적인 장치가 된 장소를 지나가게 되는데 이곳에는 사악한 환영들이 나타나게 하고 죽은 자를 부르는
초혼, 지옥의 불꽃을 나타내는 화염, 해골, 움직이는 뼈, 인공천둥과 번개들이 장치되어 있는데 이 모든 것은 고대
신비종교의 유산이고 프리메이슨 의식입니다.

만일 세심하고 관찰당하고 있는 입후보자가 조금이라도 공포의 무서움을 나타내면 그는 영원히 하층계급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 시험을 잘 통과하면 그는 더 높은 계급으로 올라갈 수 있습니다.

두 번째 계급의 입회식 때에는 오랫 동안 금식을 한 이후 눈을 가리운 채 울부짖는 소리와 끔찍한 소리가 들리는
큰 동굴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 때 그는 이러한 경우를 위해 준비된 기도문을 암송합니다.
동굴의 끝에 가까이 가면 좁은 입구를 기어나와야 하는데 입후보자가 기어나오는 동안 묶인 헝겊을 누군가
풀어줍니다.

그가 동굴을 빠져나오면 자신이 사각형의 지하감옥에 있는 것을 알게되는데 그 바닥에는 매장할 때 쓰는 천이
깔려있고 세 개의 램프가 움직이도록 장치된 해골과 뼈 주위에 희미한 빛을 비추어주고 있습니다.
이 동굴은 죽은 자의 영혼을 불러내는 초혼의 동굴이며 '검은 방'(The Black Chamber)이라 불립니다.
입후보자는 여기서 기도문을 외우는데 그의 모든 행동은 하나하나 감시됩니다.

만일 그의 행동이 만족스러운 것이면 대천사를 나타내는 두명이 그 앞에 나타나서 피가 적셔진 흰천을 그의 이마에
묶어 줍니다.
이 천에는 비밀스러운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고, 목에 작은 십자가 형태를 걸어주며, 순교자들의 유골이 든 가방을
그에게 줍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입후보자의 옷을 모두 벗기어 동굴 구석에 쌓인 장작더미에 던져 놓고 칼로 자기 몸에 작은
십자가를 그어 피가 나오게 합니다.
이 때에 신비의식을 도울 동료들이 들어와 입후보자 몸 주위에 붉은 천을 둘러줍니다.
이 천에 피가 베이면 자신들의 단도를 그의 머리 위에 둥근원의 형태로 빼어듭니다.

바닥에 카페트가 깔리고 모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약 한시간 정도 기도를 드린 후 장작더미에 불을 붙힙니다.
그러면 동굴의 안쪽 벽이 열리면서 천사와 유령으로 가장한 사람들이 판토마임처럼 줄지어 지나 갑니다.
이 광대극이 진행되는 동안 입후보자는 다음과 같은 맹세를 합니다.

"나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교황)의 이름으로 아직 나와 연관이 있었던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 친구들과의
모든 관계를 끊겠다고 맹세합니다. 나는 전에 내가 충성을 맹세한 왕이나 행정장관 혹은 다른 어떤 기관과의 관계도
끊겠습니다. 이순간 나는 다시 태어났습니다. 나는 새로운 상관이 내가 행하고, 생각하고, 읽고, 배우고, 보는
모든 일을 알기 원합니다. 나는 생명과 의지가 없는 죽은 시체임으로 모든 것을 나의 상관에게 양보합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모든 유혹을 물리칠 것을 맹세하며 내가 어디에 있든지 이 조직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명심하겠습니다."

이 맹세한 한 새로운 회원은 옆방으로 인도되고 목욕을 한 후, 흰 천으로 된 옷을 입고 축하연회에 참석합니다.
그리고 그가 겪은 오랜 금식과 공포, 피로를 보상하기 위한 음식과 포도주를 마실 수 있습니다.


g) 예수회 수장의 명령과 선서

하부조직 예수회 회원이 지휘부로 승진할 때 수장은 동시에 그에게 단도를 주는데, 그는 칼날을 쥐고 그의 심장을
향하여 칼끝을 겨누고 수장은 여전히 단도의 손잡이를 잡고 있으며 다음과 같이 지원자에게 말합니다.


"내 아들아, 너는 이제까지 위선자로 행동하라고 훈련을 받아왔다. 로마 카톨릭 내에선 로마 카톨릭 신자로,
그리고 심지어 네 자신의 형제들 사이에서도 스파이가 되어라. 누구도 믿지 말고 누구도 신뢰하지 말아라.
개혁교도 사이에서는 개혁교도가 되어라. 위그노파 사이에서는 위그노파가 되고, 칼빈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칼빈주의자가 되고, 프로테스탄트 안에서는 일반적인 프로테스탄트가 되어라.
그리고 그들의 신뢰를 얻어내어 심지어 그들의 강단에서 설교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전적으로 열정적으로 우리의
거룩한 종교와 교황을 비난하려 하는 것처럼 하라. 그리고 심지어 유태인 사이에서는 한명의 유태인이 되기까지
변신하라. 그리하면 너는 교황의 충실한 군사로서 너의 예수회 조직에 이로운 모든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스파이로서의 너의 활동을 명령받았다. 네가 가진 권력 안에서 가능한 모든 정보처로부터 통계자료, 사실들
그리고 정보를 수집하고, 프로테스탄트 회원 그룹들과 모든 계급과 특정한 이교도들의 환심을 얻도록 행동하라.
뿐만아니라 상인, 은행가, 법률가, 학교들과 대학교들 사이에서, 의회와 입법부, 법원과 주법원 안에서 또한 그렇게
행동하라. 그리고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방법들"로 행동을 같이 하라. 교황의 종으로서 우리가 죽을 때까지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 예수회의 회원의 최종적 선서(The Extreme Oath of the Jesuits)는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현재,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로우신 처녀 마리아, 은혜로우신 대천사 미가엘, 은혜로우신 성 세례 요한,
거룩한 사도 성 베드로와 성 바울 그리고 모든 성인과 하늘의 신성한 성체들, 그리고 당신, 나의 영적 아버지,
교황 바오로3세의 재임 중,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에의해 조직되어 현재까지 이르는 예수회의 수장이 참석하신
곳에서, 처녀의 태, 하나님의 어머니,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징벌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이 선서하고 서약한다.

거룩한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자리이며 진실한 자요 지구상에서 카톨릭 혹은 우주적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다.
그리고 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에의해, 거룩한 자, 교황에게 주어진 매고 푸는 열쇠들로 인해 그(교항)는 이교도
왕들과 왕자들 국가들, 연방, 그리고 정부들, 모든 불법적인 것들을 그(예수 그리스도)의 신성한 허락없이도
파멸시킬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을 완전히 멸망 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할 수있는한, 나는 이교의 모든 침입자, 혹은 프로테스탄트 당국이든 무엇이든, 특히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루터 교회와 영국, 스코틀랜드의 현재의 과장된 권위들과 교회들, 그리고 아일랜드와
미대륙과 다른 곳들에 현재 동일하게 세워진 조직들을 대적하는 로마카톨릭 교황의 교리와 그의 거룩한 권리
그리고 유전을 지켜야만 하며, 지킬 것이다.

또한 신성한 로마의 성모교회를 반대하며, 자신들이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는 모든 이들과 이교도들에 대해서도
대항할 것이다. 나는 지금 프로테스탄트 혹은 자유주의자들의 이름을 딴 나라들, 왕들, 왕자들에대한 충성 혹은
그들의 법령들, 행정관들, 혹은 사령관들에 대한 복종을 거부하고 그것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더 나아가 선서하기를, 영국, 스코틀랜드의 교회들, 칼빈주의자들, 위그노파들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혹은
자유주의자들이라는 이름의 교리들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며 그것들은 스스로 파멸된 것들이며, 그것들을 버리지
않는 자들도 동일하게 비난받아야 한다.

나는 더 나아가 선서한다. 나는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영국, 아일랜드, 혹은 미국, 혹은
내가 가게되는 어느 나라나 아무 영토 안에서, 내가 있는 어느 곳에서든 거룩하신 분 모두, 혹은 그 대리인중 누구라도
협조하고, 협력하며, 조언할 것이며 이교 프로테스탄트들 혹은 자유주의자들의 교리들을 근절시키고, 모든 그들의
위선적 세력들과 왕권들을 파괴하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다.

나는 더 나아가 서약하고 선서하기를, 내가 제거됨을 무릅쓰고, 어떤 종교가 이교라고 판단될 때, 어머니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교도들이 나를 신뢰하도록, 때때로 비밀을 유지하고, 어머니 교회의 대리인들의 충고들을
은밀하게 간직하며, 상황에따라, 직접적으로든 혹은 간접적으로든, 대화상으로나, 서면으로나 누설되지 않도록
비밀을 유지하면서 당신, 영적 아버지 혹은 이 신성한 수도회의 누군가가 나에게 지시하거나 명령하거나 제언하는
모든 것들을 실행한다.

나는 더 나아가 서약하고 선언한다. 나는 어떤 나 자신의 의견이나 혹은 어떤 의지도 갖지 않고 혹은 어떠한 심리적
두려움도 품지 않으며, 심지어 시체나 시신처럼, 그리고 주저하지 않고 내가 교황과 예수 그리스도의 군대
상급자들로부터 받은 모든 개개의 명령들을 복종할 것이다.

나는 내가 파송되는 세계의 어느곳, 북극의 빙하 지역, 아프리카 사막의 불타오르는 모래지역, 혹은 인도의 정글,
유럽 문명지역의 심장부, 혹은 아메리카 야만스런 미개인들의 야생 소굴이라도 갈 것이다. 불평하거나 투덜거림 없이,
그리고 나에게 하달되는 모든 명령들에 복종할 것이다.

나는 더 나아가 서약하고 선서하기를, 나는 기회가 되면 비밀리에 혹은 공개적으로 모든 이교도들, 프로테스탄트들,
자유주의자들과 무자비한 전쟁을 일으키고 싸울 것이다. 지구상에서 그들을 전멸시키고 근절시키라고 지령받은
것들을 실행함에 있어 나이, 성별 혹은 조건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악명높은 이교도들을 목메달고
불태우고, 쇠약하게하며, 끓여죽이고, 채찍으로 치고, 가죽을 벗기고, 산 채로 매장해 죽일 것이다. 그 여자들의 창자와
자궁을 끄집어 내고, 그들의 신생아들의 머리를 벽에 처박아 죽일 것이며, 영원히 혐오스런 그 종족들을 전멸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할 것이다. 공개적으로 이와 같이 할 수 없을 상황에서는 나는 비밀리에 독이 든 컵으로, 목졸라 죽이는
끈으로, 강철 단검으로 혹은 납총으로, 이교도들의 사회적 조건이 어떻든, 이교도 개인 혹은 개인들의 명예, 계급, 위엄,
혹은 권위를 고려하지 않고 공개적이나 비밀리에 교황 혹은 거룩한 교회 예수회의 상급자들의 대리인들로부터 명령을
하달받을 때는 어떤 때에도 즉시 암살해 버릴 것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나의 생명과, 나의 혼과, 모든 나의 힘을 바칠 것을 서약하며, 그 증거로써 내가 지금 받은 이 단도를
가지고 나의 피로써 여기 내 이름을 쓸 것이다. 그리고 내가 거짓이었거나 결정을 내림에 있어서 연약해질 경우 교황
군대의 내 형제들과 동료 군사들은 내 손과, 내 발과, 그리고 귀에서 귀까지 찢어지도록 내입을 찢으며, 내 목과,
내 배를 째고 그 안에 염산을 넣어 태우고, 지상에서 내릴수 있는 모든 징벌을 내린다. 그리고 내 영혼은 영원히
지옥에서 사탄에의해 고통 받으리라!

나는 은혜로우신 성삼위일체와 내가 지금 받아, 실행하고, 신성불가침으로 내 신체의 일부분으로 지켜야할 은혜로우신
성체로 맹세하며, 내가 이 서약을 지킬 것을 진정으로 원한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모든 하늘과 영광스러운 하늘의 성체를
이 자리로 초청한다.

여기 증거로 나는 이 거룩하고 은혜로우신 성체를 받고, 나아가 내 자신의 피로써 이 단도의 끝으로 나의 이름을 쓰며
거룩한 수도회의 표면에 봉인한다."

(그는 수장으로부터 성체용 빵을 받고 그의 이름을 단도의 끝으로 그 가슴 상처에서 흘러나온 그 피를 적셔 쓴다.)


h 예수회의 교육

예수회는 회원들에게 성경도 못 읽게 하고 주입식으로 교리와 사상을 교육합니다.
또한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해 다양한 학문을 공부하고, 예의범절이나 친절한 에티겟, 화법까지도 교육받습니다.
예를 들어 여인들에게 칭찬을 하거나, 생일 선물을 하고, 관심을 표명함으로써 환심을 사는 방법도 교육받습니다.
예수회가 돈 많은 미망인에게 접근하는 이유는 정신적으로 제압하거나 수녀원에 보내 재산을 빼앗기 위함입니다.

*
예수회에서 배우는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회의 새로운 지부를 세우는 방법

2. 예수회 회원들이 국왕이나 왕자 혹은 유명한 인물들과 친분관계를 갖고 유지하는 방법.

3. 정부에 큰 영향력을 가진 인물들과 예수회를 연결시키는 방법

4. 왕이나 유명한 인물의 고해신부에 대한 정보.

5. 다른 종교 단체나 성직자들을 관찰하는 방법

6. 부유한 과부들을 회유하는 방법

7. 과부의 자녀들을 종교적으로 교육시키는 방법

8. 예수회가 운영하는 대학 수입의 증가방법

9. 예수회 회원이 지켜야할 개인 사생활에서의 기준.

10. 예수회 회원들을 계속 예수회에 남아있게 하고 회원들 사이의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11. 젊은이를 예수회에 입소시키는 방법

12. 수녀들이나 종교적으로 신실한 여자들에게 대하는 행동이나 규범.

13. 예수회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일반적인 방법들.


  h) 예수회에 대한 명사들의 경고

"나는 죽는다...제수이트를 공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교황 끌레망 13세-

"매우 위험한 자들! 그들은 절대로 제국에서 용납되지 아니할 것이다." -나폴레옹 1세-

"진리의 우물에 독약을 탄 자들"  -토마스 칼라일-

"제수이트들은 영원히 박멸되어야 한다." -교황 끌레망 14세-

옥스퍼드 대학 토론회는 "로마 카톨릭교회는 서방 세계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크게 위협하는 종교"라는
동의를구하는 가부투표에서 387명중 220명이 이에 동의하였다.
-The Times"1960.1.29.

"제수이트들은 피의 행동에는 명수들이다."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

"제수이트...흑암, 잔인, 배반, 전재독재제, 죽음"  -존 아담스 대통령-

"만약 미국이 자유를 박탈당하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로마 카톨릭 체제를 통하여 올 것이다." -죠지 워싱턴 대통령-

"우리를 압도하는 한 역사적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것이니 당신의 자녀들을 카톨릭교 사제들로부터 피신시켜라.
그렇지 않는다면 그들은 당신의 자녀들을 인류의 적으로 만들 것이다."
-W.K.클리포드 교수

 

2) 유럽의 예수회

a) 16.17 세기의 예수회

이탈리아에서 예수회는 남부의 나폴리와 북부의 파르마에서 번성하였지만 많은 물의를 일으킨 끝에 1606년
추방당했습니다.
포르투갈에서 예수회는 정치적인 권력을 장악하고 국정을 좌우하였습니다.

스페인에서는 나잇하르트(Neidhart)라는 예수회 신부가 수상인 동시에 수석 종교 재판장으로 국가의 전권을
행사했습니다.
국권을 장악한 예수회가 국고를 탕진하자 스페인은 점차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개신교도와의 갈등이 심했던 독일에서 예수회는 독일 남부의 바바리아 정부의 권력을 쥐고 개신교도를
핍박하였습니다.
재침례교도들에게는 추호의 관용도 베풀지 않고 수천명을 쇠사슬로 묶어 익사시키거나 화형시켰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예수회는 페르디난드 국왕을 통해 끔찍한 방법으로 개신교도를 처형하였습니다.
헝가리에서는 예수회가 레오폴드 1세를 위시해 개신교도를 핍박하였으나 헝가리인이 반기를 들어 물러 섰습니다.

예수회의 활동이 독일지역에서 초래한 것은 종교전쟁으로 인한 깊은 상처, 무력한 정치, 정신의 타락, 도덕의 부패,
인구의 대량 감소와 독일의 황폐화 뿐입니다.

스위스에서 예수회는 17세기에 무리하게 정치적 지배력을 확대하다가 18세기에는 경고를 받고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예수회는 사회 고위층의 고해신부를 장악했고, 정치인들과 친분을 쌓아나갔습니다.
1620년 예수회는 카톨릭   교도들을 선동하여 개신교도 600명을 학살하였습니다.
오늘날 스위스 헌법 51조에는 스위스 연방 공화국 내에서 예수회의 어떠한 교육적 문화적 활동을 금지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폴란드의 경우가 가장 심각한데 온건한 역사가조차 폴란드 멸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예수회에 있다고 할 정도입니다.
폴란드 내에는 수백만의 기독교인이 있었는데 예수회는 이를 허용하지 않고 카톨릭의 충성을 다 바쳐야 하는 정치의
틀 속에 국민들을 묶어 놓았습니다.

1558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왕위에 올랐을 때 영국은 반수가 카톨릭 교도였고, 아일랜드는 완전한 카톨릭 국가였습니다.
예수회 회원들은 엘리자베스 여왕을 몰아내기 위해 아일랜드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습니다.
그들은 낮에는 설교를 하거나 성찬식을 베풀고, 밤에는 고해성사를 하면서 전국적인 활동을 벌였으나 결국 엘리자베스
여왕에 의해 추방됩니다.

예수회는 여왕과 성공회에 대한 악성 팜플렛을 비밀리에 제작·배포하다가 발각되었고, 캠피온 신부가 국가 반란죄로
교수형에 처해지게 됩니다.
또한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국왕을 끌어들여 에딘버러에서 모종의 음모를 꾸몄으나 실패합니다.
스페인 무적 함대를 통하여 영국을 위협하였으나 영국은 엘리자베스 여왕을 중심으로 단결하여 이를 극복했습니다.

영국에서의 예수회 세력은 크롬웰(Cromwell)의 등장으로 더 큰 힘을 가지게 된 유대세력에 밀리게 되었습니다.
예수회는 찰스 2세를 통해 부흥을 꾀하다 민중의 분노로 오히려 5명의 신부가 처형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회는 전에 영국에서 휘두르던 권력을 다시 장악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제임스(James) 2세의 치하에서 예수회는 저메인(Germain) 신부(주2), 후계자인 콜롬비에르(Columbiere) 신부를
통해 끊임없이 음모를 꾸몄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회는 제임스 2세를 통해 발판을 마련하려 했으나 이 역시 실패로 돌아 가고, 모든 예수회 회원은
투옥되거나 추방되었습니다.
영국 왕위는 프로테스탄트에게만 물려준다는 법률이 제정된 후에 예수회 외교관들의 행동은 많은 제약을 받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예수회는 국민의 1/7을 카톨릭으로 개종시키고, 상류층에 파고 들었으나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 대해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회는 귀족 가문의 힘을 빌어 1572년 성 바돌로매의 개신교도 대 학살을 주동하였습니다.
예수회는 종교전쟁을 피하기 위해 노력한 앙리 3세를 암살하였지만, 주동자인 예수회 회원 귀나르(Guignard)는
교수형에 처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회는 1592년 앙리 4세와 1594년 쟝 샤뗄 국왕의 암살 시도를 하였으나 결국 국왕으로부터 프랑스에서
추방되게 됩니다.
예수회는 루이 14세 때 국왕을 포섭하여 재기하여 권력을 장악했고, 개신교도를 핍박하였습니다.
예수회는 군인들을 동원하여 개신교도를 고문하여 개종시켰고 수 많은 사람들이 순교하였습니다.

예수회가 개신교도를 핍박하자 수십만명의 고급인력이 프랑스를 빠져 나갔고, 프랑스는 쇠퇴하게 됩니다.
예수회는 18세기가 되서야 프랑스에서 추방되었습니다.

b) 예수회의 교육

예수회는 신비주의를 바탕으로 한 주입식 교육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카톨릭 신학대학 후버 교수에 의하면 "로욜라에게 성모 마리아는 가장 중요한 존재이자 종교적 헌신의
근원이었으며, 예수회에 대대로 전수되었다. 예수회의 진정한 종교는 성모 마리아 숭배다."라고 하였습니다.
로욜라는 자신이 영성훈련에 돌입할 때 성모 마리아가 영감을 불어 넣어 준다고 확신하였습니다.

많은 예수회 회원들이 성모 마리아의 환상을 보고, 그녀의 아름다움에 매혹되고, 그녀의 도움을 받으며,
그녀의 품에 안깁니다.
천주교 주보에는 '원죄 없이 잉태하신 성모 마리아'란 구호가 적혀 있는데 이는 1845년 피오 9세에 의해
교리로 채택되었으며 예수님의 신성을 성경에 근거 없이 마리아에게까지 확대한 것입니다.

예수회는 성모 마리아의 다양한 유품을 만들어 내었는데 미카엘 성당에는 마리아의 옷자락, 머리카락,
머리빗 등이 성물로 숭배되고 있습니다.
자끄 뽕따뉘 신부는 성모마리아의 육체적 아름다움을 시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였습니다.

배리(Barri) 신부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일백가지 헌신으로 천국의 문이 열린다.' 라는 제목의 책에서
조석으로 성모 마리아를 묵상하고, 천사들로 하여금 그녀를 찬양하게 하고, 마리아의 상징인 묵주를
항상 갖고 다닐 것 등을 권장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구원을 보장하고, 악마로부터 영혼을 지켜줄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회의 주입적인 교육은 학문의 자율적인 발전을 간과시킴으로 경직되 형식화 되게 됩니다.
따라서 시대의 따른 학문적 발전에 부응하지 못함으로 점차 도퇴되게 됩니다.
16세기의 예수회의 사상은 진보적인 면이 많았으나 18세기부터는 시대에 뒤쳐지게 됩니다.


c) 예수회의 정치 참여

예수회 회원들은 고해신부로 각 국의 상류층에 접근해 정치에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17세기에 신부 나잇하르트(Neidhart)는 스페인의 수상이자 종교재판소장으로 정권을 장악했고,
페르난데스(Fernandez) 신부는 평의회 의원이었습니다.
라 셰즈(La Chaise) 신부와 그의 후계자들은 프랑스에서 각료직을 맡아 수행하였고, 페트르 신부는 영국의
장관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속적인 것을 좋아하는 대중의 기호에 부응하기 위해 고해소도 편법으로 운영했습니다.
원래 예수회는 명백한 위선과 범죄를 각종 변명과 억지로 넘기는 궤변으로 유명합니다.
그들은 고해성사에서 죄를 고백한 여자는 죄가 사해졌기 때문에 간통죄를 범하여도 법정에서 당당히
'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신부들은 중죄로부터 보호 받기 위해 '모호한 용어 사용', '자기 변명', '상대적 진리' 등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수도사나 성직자가 예수회를 비방한다면 살해해도 무방하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고,
국왕을 암살하는 일도 경미한 죄로 여깁니다.

예수회는 적대자나 탈퇴자를 거리낌 없이 제거할 정당성을 확립해 놓고 있습니다.
그들의 궤변 중 하나를 보면 '만일 신부가 여인을 범하였고, 그 여인이 그 사실을 공개한다면 그 신부의
명예는 더럽혀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 신부는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하여 그 여인을 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예수회는 궤변을 통해 자신들의 악행을 선한 행실로 포장하고 있습니다.


d) 예수회의 붕괴

예수회는 유럽 여러 국가에서 번성하였으나 과학, 학문의 발전과 자유사상의 보급은 예수회의 지배를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회의 활동은 국익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고, 예수회 신부들은 환전, 섬유산업, 식민지 교역, 흑인 노예를
이용한 대규모 농장 경영 등 종교와 무관한 경제활동에 적극적이었습니다.

해외 선교에 힘을 기울인 예수회는 피 정복민을 수탈하는 각종 경제활동에 참여하였고, 지금도 북 아프리카의
가장 부유한 지주는 예수회 신부입니다.
멕시코에서 그들은 은광과 설탕공장을 운영하였고, 파라과이에서는 차와 코코아 농장과 카페트 공장을
소유하였고, 소를 키워 매년 8만두씩 수출하였습니다.

팔라폭스(Palafox) 주교는 1647년 교황 이노센트 8세에게 "남 아메리카의 모든 부는 예수회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라고 보고하였습니다.
중국에서 예수회 신부들은 50%, 100%의 고리로 상인들에게 돈을 빌려 주었습니다.

이러한 예수회의 탐욕과 부정, 음모와 권력장악은 어느 곳에서나 적의와 증오를 유발시켰습니다.
그 결과 예수회는 18세기 중반까지 30여 차례의 추방을 당했습니다.
예수회를 가장 먼저 추방한 곳은 전통적인 카톨릭 국가인
포르투갈이었습니다.
예수회와 포르투갈은 남아메리카에서 영토 분쟁을 하였고, 1757년 폼발 수상은 예수회 고해신부를 쫓아내고,
예수회의 전도를 금지시켰습니다.

프랑스에서는 1762년 4월 6일 예수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영장을 발부하였습니다.
"위 단체는 문명국가에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단체이다. 그것은 위 단체의 본질이 종교적으로나 세속적으로나
모든 권위에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위 단체는 종교라는 가면을 쓰고, 복음 완성이라는 진정한 목적을 외면하고,
부정하며, 은밀하고 사악한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권력을 추구해 온 단체이다."

결론적으로 예수회의 교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합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을 모독하고, 시민사회에 유해하며, 국민의 권리와 왕권을 무시했고, 통치질서를 위협하였고,
국가적 소요를 조장하였으며, 종교적이며 기본적인 모든 윤리를 파괴한 조직으로서 그들 가슴 속에는 극악한
부패를 담고 있다."

프랑스에서 예수회의 재산은 몰수되어 국고에 귀속되었으며, 예수회 회원들은 예수회 서약을 철회하고, 프랑스
목사의 일반적인 규칙을 따를 것을 맹세함으로써 겨우 추방만은 면할 수 있었습니다.

파라과이의 예수회 통치도 막을 내리게 되었고, 나폴리를 비롯한 이탈리아 도시에서도 쫓겨났습니다.

스페인 부르봉 왕가마저도 식민지 뿐만 아니라 대도시에서 모든 예수회의 조직과 활동을 금지시켰습니다.
스페인에 있던 6000명의 예수회 회원들은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가 교황의 판단에 맡긴다는 친서와 함께 교황에게
보내졌는데 그들이 상륙하려 하자 대포 세례를 받았고, 그들은 여러 곳을 떠돌다가 결국 코르시카 섬에 정착했습니다.

교황 클레멘트 13세는 예수회의 처벌을 요구하는 여러 국가의 탄원을 받아드려 예수회를 개혁하려 했으나
독살 당합니다.
클레멘트 14세는 결국 여러 국가의 압력에 굴복해 1773년 예수회의 해산 교서에 서명하였습니다.
예수회 총재 리키 신부는 앙게 성에 감금되었습니다.

예수회의 재산이 몰수되자 예수회는 이에 반항하여 교황을 비난하는 홍보 책자를 발간하는 등 반역을 도모했습니다.
예수회를 탄압한 교황 클레멘트 14세는 결국 1774년 9월 22일 독살 당했습니다.

여러 곳에서 추방당한 예수회 회원은 호의적인 러시아로 몰려들어 군대와 귀족 사회를 선동하고 러시아 정교회를
위협하였습니다.
급기야 짜아르가 직접 나서 1815년 12월 20일 예수회를 추방하였습니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유로 예수회는 1814년 교황 피오 7세에 의해 재창립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시 서방 세계에 발을 붙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e) 예수회의 재기 (19세기)

클레멘트 14세는 예수회가 해산되고 나서 "나는 나의 오른 팔을 잘라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교황은 세계를 지배하는데 있어 필요한 정치적인 조직인 예수회가 없으면 힘을 잃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피오 6세와 피오 7세는 예수회의 권한을 점차 회복시켰습니다.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은 예수회를 매우 위험한 존재로 보고 그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왕정이 복구된 후 예수회는급성장 하였고, 전국 곳곳에 개신교도와 맞서 싸우자는 기념물을 세웠습니다.
예수회 회원들은 또 다시 가는 곳곳마다 분란을 일으켰습니다.

19세기에 예수회는 자유주의자들과 충돌을 빚어 1834년에 포르투갈에서, 1868년에 스페인에서, 1848년에
스위스에서, 1872년에 독일에서 , 1901년에 프랑스에서 또다시 추방당했습니다.

 

 

3. 예수회의 동양 선교

인도에서 로마 카톨릭 포교는 하층민 사이에서 많은 성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로버트 드노빌리(Robert de Nobili)가 1605년 바라문(Brahmon; 인도의 사성중 최고위의 승려계급)을
포교하기 위해 그들의 기장(記章)과 생활방식을 받아들이고 1623년 그레고리 14세에 의해 인가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그의 선례를 따르는 신부들은 바라문 개종자들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하여 바라문들이 하층민에 대한 포교와
성례전을 절대적으로 거부하는 한 새로운 카스트 제도를 지지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로잘리아(Rosalia)의 주교와 노베르트(Norbert)에 의해 로마 교황청에 보고된 이 시도는 1645년 이노센트
(Innocent) 10세의 교서에서 성공하지 못하리라고 비난당했으며, 1669년에는 클레망(Clement) 9세, 1734년과
1739년에는 클레망 12세, 1745년 베네딕트(Benedict) 14에게 거부당했습니다.

똑같이 9명의 교황들에게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거부당한 중국식 선교방법은 1744년 베네딕트 14세의 교서에
의해 마침내 허락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예수회 포교사들이 새로 만든 미사의식들은 결국 카톨릭에 힌두이즘을 융합시키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1700년 교황의 교서에 반대하던 예수회 포교사들은 중국황제로부터 예수회 포교사들이 행하는 의식은 우상숭배가
아니라는 칙령을 얻어냈습니다.




4. 예수회의 기독교 박해

도미니크 수도회(Dominicans)가 지휘한 종교재판소(Inquisition)는 원래 예수회가 만들었으며 그들이 종교재판
때 사용하던 악명높은 고문 방법도 예수회가 고안한 것들입니다.
1545~1546년 사이에 포르투갈에 종교재판소를 설치한 사람은 로욜라 자신이였으며, 1655년 포루투갈
종교재판소의 소장은 예수회 회원이였던 니타르드(F. Lithard) 추기경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곳곳의 종교 재판소와 개신교도의 탄압, 학살, 고문, 개종은 거의 예수회가 담당했습니다.

 

 

5. 교황청과 예수회

예수회는 교황청의 정치적인 기반이 되었고, 교황청은 예수회의 보호막이 됨으로써 상호 의존적이고 공생적인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회가 각 국에서 물의를 일으켜 쫓겨나자 교황청은 이들을 탄압했고, 예수회는 교황청을 음해하고,
교황을 암살하면서 이에 맞섰습니다.
교황청과 예수회 자신의 이익을 최 우선시 하는 권력집단이고 협력하면서도 때로는 견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19세기 들어서 예수회는 '하나님의 여인들'이라는 여성단체를 만들어 많은 교사와 기숙사를 설립함으로써
세력확장에 나섰습니다.
예수회는 성모 마리아 숭배에도 심혈을 기울여 예수회의 제안으로 1854년에 성모 마리아의 '무염 잉태설'
(원죄 없이 잉태)이 교리로 발표되었고, 프랑스 등의 성모 마리아 출현 사건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였습니다.

1870년 바타칸 공회를 통해 믿음과 도덕적인 모든 문제에 '교황의 절대무오류성'이 선언됨으로써 교황의
위상과 권위도 높아졌습니다.
교황을지지하는 예수회는 점차 교황청을 장악했고, 마침내 지배하기까지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의 유행어 가운데 '교황의 펜대는 예수회의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회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예수회 회원 중 상당수가 프리메이슨이라는 점입니다.
예수회 자체가 프리메이슨의 신비주의적인 영성훈련과 사상, 조직을 모방해 만들었기 때문에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회와 프레메이슨은 서로 다른 사상과 기반을 지닌 권력집단으로 때로는 협력하지만 언젠가는
굴복시켜야 할 적입니다.

한편 요한 바오로 1세의 급작스런 죽음도 프리메이슨과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1984년 6월 영국에서 출간된 신의 이름으로라는 책에서는 요한 바오로 1세가 독살당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요한 바오로1세는 즉위한 후 교회 사상 유례없는 대개혁을 결단하려고 했습니다.

1978년 9월 28일 오후 5시 30분 바티칸 교황청의 국무장관인 잔 비로 추기경은 요한 바오로 1세로부터 호출을
받았습니다.
거기서 바로 추기경은 교황 자신이 조목조목 쓴 인사 이동 목록을 전해받았고, 교회사상 없었던 많은 해직
대상자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명단에 실렸던 사람들은 바티칸 국무장관 아고스티노 카사롤리 추기경, 로마 부주교 우고 볼렛티 추기경,
바조 추기경, 바티칸은행 총재 폴 마칭쿠스 주교(현재 대주교), 조반니 베네리 추기경 등이었는데 이들 전원에겐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프리메이슨의 단원이라는 것입니다.

인사이동 명단을 본 비로 추기경도 바티칸 내부의 프리메이슨 중 중심인물이었습니다.
요한 바오로 1세는 바티칸 내에 침투되어 세계통일을 꿈꾸는 프리메이슨을 일거에 제거하려고 했으나 완강한
저항에 봉착, 결국 교황 즉위 33일만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6. 2차 세계대전과 예수회

a) 1차 세계 대전

20세기 초 유럽의 강대국들은 로마 교황청의 영향력을 벗어나 서로 연합하였습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정교회) 등이 연합하였고, 교황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곳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스페인
정도였습니다.

동 로마제국에서 발현한 그리스 정교는 발칸반도에서 번성하였고, 슬라브 민족을 기반으로 한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는 교황청과 오스트리아의 적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정교회는 러시아 짜르의 후원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세르비아를 응징하기 위해서 스페인의 부르봉 왕가와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합스부르크 왕가는 연합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1914년 6월 28일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왕가)의 황태자 프랑소아 패르디난트(Francois-Ferdinand)가
사라예보에서 마케도니아의 학생에 의해 암살당했습니다.
이 일은 세르비아 정부와 아무 관련이 없었으나 오스트리아의 황제 프랑소와 조셉에게 충분한 전쟁 명분을
제공했습니다.

예수회 회원인 오스트리아 각료들과 교황청은 조셉 황제에게 전쟁의 불가피성을 강조했습니다.
로마 교황청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독일을 이용하여 유럽을 정복함으로써 유럽에서의 옛 권력을 회복하려
하였습니다.

교황청은 우선 프랑스를 멸망시키기 위해 독일 연합 군대를 동원했습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은 수 많은 사상자를 낸 채 독일이 패배했고, 이로 인해 교황청의 위신은 크게 추락하였습니다.
따라서 1919년 6월 연합국이 베르사이유 조약을 조인할 때 1차 대전을 조장한 바티칸은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되었습니다.


b) 예수회의 파시즘과 나치즘 지원

1차대전의 실패로 교황청은 큰 손실을 입었는데 친 로마적 합스부르크 왕가는 무너졌고, 유고의 정교인들은
로마의 속박에서 벗어났고, 러시아는 공산화되어 무신론자가 되었고, 독일은 완전히 파멸했습니다.
예수회는 권세를 회복하기 위해 각 국에서 활동을 재개하였는데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에서는 샤를 황제를
지지하였고,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를 후원하여 정권을 잡게 하였습니다.

무솔리니는 전체주의자로 1차대전 제대군인들을 모아 파시스트당을 창립하였고, 1922년 10월 로마진군이라는
쿠테타로 정권을 잡고 정치, 문화, 경제를 개혁해 독재정부를 수립했습니다.
타키 벤추리 신부는 예수회 회원으로 당시 무솔리니의 고해신부였습니다.
당시 교황청은 7억 5천만리라를 무솔리니에게 주고 바티칸에 대한 정치적 지배권을 확보하였습니다.

히틀러는 무솔리니로부터 자극을 받았으며 나치즘은 파시즘의 전체주의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히틀러가 전체주의적 나치즘으로 강력한 군사력을 회복하자 바티칸은 또 다시 독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나치즘은 반 민주주의, 우생학적 인종 우월주의, 독일민족 지상주의, 전체주의, 군국주의, 반공주의 등을 바탕으로 한
독재적 정치이념입니다.

1차 대전 이 후 예수회 총재가 된 할케 폰레도코브스키는 오스트리아, 체코, 보헤미아, 폴란드, 헝가리, 크로아티아,
바이에른(독일 남부) 등을 포함하는 중부와 동부 유럽의 카톨릭 국가 연맹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이 새로운 중앙 제국은 두 개의 전선을 형성하는데 동부는 공산주의로 무장한 소련이고, 서부로는 개신교 국가인
영국과 혁명사상으로 뭉친 공화국 프랑스입니다.

바이에른(독일 남부)은 카톨릭 국가이고 히틀러는 카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교황청은 나치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히틀러는 중대사안에 대해 교황청과 상의하거나 인가를 받았습니다.
1924년 교황청과 바이에른은 협정을 맺었고, 베를린 주재 교황 대사인 파셀리는 1932년 7월 20일 반정부 시위를
주동하고 군의 개입을 막음으로써 바이마르 공화국(당시 독일의 중심)을 붕괴시킵니다.

예수회는 주로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하였고, 1933년 풀다(Fulda) 회합에서 독일 주교들은 히틀러가 발표한 선언
(독일 사회주의 운동은 신성한 카톨릭 교리에 의거하고, 교회의 사명과 권리를 보장)을 받아드렸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카톨릭 정당을 이끄는 스투르조가 무솔리니에게 권력을 이양하였고, 독일에서는 카톨릭
중앙당(Zentrum)의 대표인 폰 파펜의 지원으로 히틀러는 1933년 1월 30일 정권을 장악했습니다.

교황청의 외무대신 파셀리 추기경은 히틀러에게 반 카톨릭 종파를 척결하도록 건의했습니다.
히틀러는 1933년에 유대인과 자유주의자 4만명을 45개 수용소에 분산 수감하였습니다.
한편 교황청은 무솔리니의 이디오피아 침공을 비난하지 않았고 오히려 전쟁지지 발언을 하였습니다.
파시스트는 1939년 알바니아도 침공했는데 이는 카톨릭 세력을 넓히려는 교황청의 계획에 부합하는 일이었습니다.

한편 스페인에는 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교황에게 반기를 들었습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스페인의 혁명군에게 군자금, 전쟁물자, 항공기 등을 지원하였습니다.
교황은 스페인 공화국의 수반을 파문하고, 교황청과 마드리드 간의 영적 전쟁을 선포하였습니다.
바티칸은 내란이 끝나기 20개월 전인 1937년 8월 3일 혁명군 프랑코 정부를 인정하였습니다.


c) 2차 대전의 발발과 유럽의 카톨릭화

독일 뮌헨에서 퍼레이드 하는
오른쪽의 히틀러와 왼쪽의 무솔리니

1938년 3월 히틀러가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의회에서 오스트리아의
합병을 공표하여 지지를 받는 모습.

왼쪽부터 히틀러(A. Hitler),
괴링(R. Goering), 괴벨스
(P. Goebbels), 헤스(R. Hess).

1930년대의 경제 공황과 자본주의 열강의 경제 블록화는 식민지가 부족한 독일을 곤경에 빠뜨렸습니다.
1937년 독일과 이탈리아와 일본은 3국동맹을 맺고 영국, 프랑스, 소련에 대항하였습니다.
1937년 독일은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병합함으로써 중부 유럽의 세를 넓혔습니다.
히틀러는 산업을 발전시켜 전 후 보상금 등으로 피폐한 경제를 일으켰고 군사력을 대폭 증강하였습니다.

1939년 독일은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맺음으로써 서부전선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은 폴란드와의 영토 협상이 결렬되자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하였고,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은 발발합니다.
히틀러, 괴벨스, 히믈러 등은 카톨릭 신자였고, 중대사를 결정할 때는 항상 교황청과 협의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은 나치와 교황청이 힘을 모아 유럽을 정복하려 했던 전쟁입니다.
교황청은 2차 대전을 전후해서 독일의 무력을 이용해 비 카톨릭 교도를 제거하고, 세력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병합 때 비엔나의 대주교인 이니찌(Initzer) 추기경은 "히틀러 총통은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고 있으므로 신도들은 독일 제국을 받아드려야 한다."는 선언문을 발표해 독일군을 환영했습니다.

독일과 병합된 체코 의원 중 일부는 카톨릭 사제였고, 그들은 교황청의 허가로 공직을 겸할 수 있었으며,
그들 중 한명은 국가 원수로 임명이 되었고, 최고 영예인 철십자 훈장을 받았습니다.

1941년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하여 '크로아티아 독립국'이란 위성국을 만들었고 루이 바소
(Louis Barthou)라는 테러리스트를 수상으로 앉혔으며, 크로아티아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그리스 정교인들을
학살하였습니다.

이 결과 30만명의 세르비아인과 유대인이 추방되었고, 50만명이 학살되었으며, 24만명의 정교회 신자가
고문과 협박으로 개종되었습니다.
이를 주도한 경찰총장 등 공직은 카톨릭 사제들이 차지했으며, 가장 끔찍한 수용소인 자세노바크(Jasenovac)의
소장인 미로슬라프 필리포비치(Miroslav Filipovitch) 또한 사제 출신입니다.

슬로바키아 공화국의 수상이 된 예수회 회원 티소(Tiso) 경은 "카톨릭 정신과나치주의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세계를 개조하는데 힘을 모았다."고 선언했습니다.
1940년 6월 바티칸은 라디오로 티소의 선언문이 교황의 승인을 얻었다고 발표하였고, 티소 정권은 국민의 20%에
해당하는 개신교도에 대해 탄압을 가했고, 정교회 신자들을 카톨릭으로 개종시켰습니다.

프랑스에서는 F.N.C.(카톨릭 국민 연합회)가 조직되어 드 카스텔노(de Castelnau) 장군이 선임되었고,
3백만명의 지지자가 참여하였습니다.
78세의 이 군 장성은 파시스트적인 교회 선전 전략의 기수가 되었습니다.
F.N.C.는 카톨릭의 행동대원으로 예수회 신부들이 창설에 일조하였습니다.

예수회는 '예수 성심회'를 통하여 F.N.C.를 결성, 조직하였습니다.
교황 피오 11세는 "카톨릭 행동대는 신념에 찬 사도들이다."라고 하며 F.N.C.를 지지하였습니다.
또한 프랑스 파리의 카톨릭회 회장 보드릴라르 추기경은 "히틀러의 전쟁은 유럽 문화를 수호하고자 착수한
숭고한 사업이다." 라고 언급하였습니다.


d) 히틀러 측근과 예수회

대주교 세자르 오르세니고(Cesare Orsenigo)
주독 교황청 대사가 1936년 1월 베를린에서 열린
공식 만찬에서 히틀러와 담소하고 있다.

1934년 새로운 성직자-파시스트 정관 선언 입회한,
작은 돌푸스(Dollfuss-오스트리아 독재자)와
오른편의 인니체르 추기경(Cardinal Innitzer)

스페인 카톨릭 성직자들이 1937년 산티아고
드 콤포스텔라에서 파시스트들(독재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스페인 시민 전쟁동안 카톨릭 “개종작업”
(신부들이 대포와 총을 들고 시민을 사살하고 있다).

히틀러는 교황청과 반 카톨릭주의자들을 섬멸하기로 조약을 체결하고, 자유주의자와 유대인을 가둘 수용소를
건립했습니다.
그 곳에 수용된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강제 노동에 시달리거나 학살당했습니다.

히틀러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예수회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카톨릭 교회의 성직자 제도보다 더 위대한 것을 보지
못했다. 나는 이 조직을 대대적으로 수용하고자 한다. 비밀리에 사람들을 유도해 갈 기관을 설립할 것이며,
그 기관을 이용해 젊은이들을 선동하며 세계를 진동시킬 것이다."

SS(독일 친위대)는 예수회의 영성훈련과 규칙을 본받아 히믈러가 조직하였습니다.
SS의 조직은 카톨릭 교회의 성직제와 거의 유사하며, 베벨스보르크(Webelsbourg)라는 SS의 본부는
'SS 수도원'이라고 불리웠습니다.

독일에서 활동한 교황의 밀사 폰 파펜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제 3제국은 교황의 숭고한 정신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실천으로 옮긴 첫 번째 세계적 권력이다."
여기서 '실천으로 옮긴다'란 말의 의미는 반 카톨릭교인을 척결한 것을 의미하며 UN의 공식 집계로 무려
2천 5백만명이 수용소에서 희생되었습니다.
폰 파펜은 나치와 교황청의 연결 고리 역할을 했으며, 교황이 제시한 안을 나치 수뇌부가 받아드리도록
설득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나치 정권의 열렬한 선전장관이었던 조셉 괴벨스는 예수회 대학에서 신학을 교육을 받았고, 로욜라가 주장한
도덕적 상대주의를 주장하였습니다.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자 나치 독일의 2인자인
히믈러 역시 예수회 출신입니다.
히틀러는 "나는 히믈러가 이그나티우스 로욜라로 보인다네!" 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친위대와 게슈타포와 독일 경찰의 사령관인 히믈러가 가장 성직자다운 면모를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히믈러의 부친은 카톨릭 학교 교장이있고, 형은 수도사이며, 삼촌은 예수회 회원이었습니다.

예수회의 총재 폰 레도코브스키 백작은 예수회와 독일 사이에 작전을 수행할 첩보기관을 기획합니다.
그 결과 친위대의 중앙 안전부 안에 한 기관이 창설되었는데 대부분의 요직은 검은 제복을 입은 성직자들이 차지했고,
최고 요원 중 한 사람은 예수회 신부 히믈러였습니다.
히믈러는 전쟁이 끝난 후 도망다니다가 1960년 이스라엘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교수형 당했습니다.


e) 죽음의 강제수용소와 바티칸

아유슈비츠 수용소

독일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

독일 예나의 수용소

독일 바이마르의 시체소각장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설치한 강제수용소를 KZ(Konzentrationslager)라고 합니다.
KZ는 A.히틀러의 나치스 독일이 구금·강제노동·살육을 위하여 국내외에 설치한 감옥으로 1933년 2월 제정된 ‘국민과
국가의 방위령(防衛令)’에 의하여 그 해 수십개 지역에 설치되었습니다.

공산당원·사회주의자·민주주의자 등 모든 반(反) 파쇼주의자와 나치스체제에 순응하지 않은 자들을 일반국민으로부터
고립시켜 말살하고, 나아가서는 전국민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목적에서, 반대파나 교도소에서 만기석방된
반 파시스트의 대부분이 아무런 재판절차도 거치지 않고 SA(나치스돌격대), SS(나치스친위대) 등에 의하여 수용소로
끌려가 기한도 없이 구금되었습니다.

1934년부터 히틀러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SS가 수용소의 관리를 맡아, 정치적 반대자에 이어 인종적·종교적 이유에서
유대인과 불복종하는 그리스도인을 구금하고, 나중에는 일반범죄자·변절자 등도 수용하였습니다.
개전(開戰) 후, 파시스트와 그 배후의 융커들은 폴란드와 소련의 일부를 독일인의 이주지역으로 만들기 위하여 그
지역의 원주민을 전멸시키려고 그들을 점령지구에 설치한 절멸(絶滅)수용소에 구금하는 등, KZ는 타국민 특히
슬라브인·유대인의 조직적 근절시설로서의 기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 실례로서 폴란드에 설치되었던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루블린 근교 마이다네크의 가스실(室), 시체소각장 등을
들 수 있습니다.
KZ는 처음 수용인원 1,000명 안팎의 소규모 시설로서 수십 개소에 산재해 있었으나, 그 뒤 세계여론이 두려워
작센하우젠을 비롯한 5~6개소의 대수용소로 통합하였고, 1938년 H.W.괴링이 유대인의 절멸을 제의한 이래,
1100만명의 유럽거주 유대인 중 약 600만 명이 학살되었고 그 중 180만명이 어린이였습니다.

아우슈비츠(Auschwitz)는 폴란드 남부 비엘스코주(州)의 도시로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건립되었습니다.

1940년 4월 27일 유대인 절멸(絶滅)을 위해 광분하였던 H.히믈러의 명령 아래 나치 친위대(SS)가 이곳에 첫번째
수용소를 세웠으며, 그해 6월 이 아우슈비츠 1호에 최초로 폴란드 정치범들이 수용되었습니다.
그 뒤 A.히틀러의 명령으로 1941년 대량살해시설로 확대되어 아우슈비츠 2호와 3호가 세워졌고, 1945년 1월까지
나치스 이곳에서 250만∼400만 명의 유대인을 살해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로 인해 ‘아우슈비츠’는 나치스의 유대인 대량학살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수용소를 40개의 캠프로 나누었는데, 피수용자는 강제노동과 영양실조·전염병으로 죽거나 또는 ‘욕실·청결·건강’이라는
등 거짓 푯말이 붙은 독가스실로 연행되어 학살되었으며, 일부는 의학실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학살된 자의 금니·모발 등은 자원으로서 회수되었습니다.

이러한 학살은 히믈러가 지휘하는 SS와 게슈타포에 의해 자행되었습니다.
1942년 프랑스에서 유대인을 탄압하는 조치가 내려지자 프랑스의 카톨릭과 개신 교회가 이의를 제기했으나 카톨릭
당국자에 의해 거부되었습니다.
히틀러는 카톨릭 람바흐 학교를 다녔고, 수도원 성가대원이었으며, 나치의 기장인 철 십자가는 수도원 원장
하겐(Hagen) 신부의 전령관의 표지에서 따 온 것입니다.

 

"나는 죽는다...제수이트를 공격하는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교황 끌레망13세-


"매우 위험한 자들!그들은 절대로 제국에서 용납되지 않을것이다" -나폴레옹 1세-


"진리의 우물에 독약을 탄 자들" -토마스 칼라일-


"제수이트들은 영원히 박멸되어야 한다" -교황 끌레망14세-
 
옥스퍼드 대학 토론회는"로마 카톨릭교회는 서방세계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크게 위협하는 종교"라는 동의를 구하는
가부투표에서 387명중220명이 이에 동의하였다.The Times"1960.1.29.
 
"제수이트들은 피의 행동에는 명수들이다."
"포교하겠다는 미명 하에 날마다 우리 영토로 상륙한 로마 카톨릭 사제와 성직자들이 학교와 병원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남북의 프로테스탄트들이 안다면 힘을 합쳐 그들의 손아귀에서 권력을 박탈할 것이다. 그들은 교황이나 유럽
전제군주의 대사로서 질서를 해치고 우리 국민의 마음을 헌법과 법률에서 멀어지게 하며, 아일랜드·멕시코·스페인 등
자유를 사랑하는 국민들이 있는 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무정부 상태를 도모하고 있다."
-아브라함 링컨-

"마피아와 여러 비밀단체들이나 정보기관이 한 통 속이 되고, 거대 기업들이 바티칸과 손을 잡고, 비밀스러운 목적을
위해서 거액의 돈이 뿌려지고, 정치와 종교와 첩보와 금융과 조직범죄 사이의 경계선이 희미해져서, 마침내 무엇이
무엇인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아브라함 링컨-

"내 목숨을 노리는 그토록 많은 음모들이 꾸며졌었기에, 그 모든 것이 실패했다는 것은 정말 기적이다. 특히 거의 대부분이
숙련된 로마 카톨릭의 살해자들, 명확하게 예수회에의해 훈련된 자들의 손에서 꾸며졌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예수회는
피를 흘리는 임무에 매우 전문적이어서, 헨리 4세는, 그들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고, 그리고비록 그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에게 희생되었다. 그들의 손아귀에서 내가 벗어나는 것은,
제퍼슨에게 쓴 교황의 편지가 나의 가슴을 찌르는 백만 비수를 갈게하였기에, 기적을 훨씬 뛰어넘는 일일 것이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스라엘 민족들의 죄들로 인해, 그가 요단강을 건너가기 전에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모세의 입술에서
나오는 어떤 불평도 듣지 않으셨던 것처럼; 그렇게, 내가 내 나라를 위해 쓰러질 때, 그분께서 나의 불평을 듣지 않으시길,
다만, 나는 소망하고 기도드린다."

-아브라함 링컨-
 

"제수이트...흑암,잔인,배반,전재독재제,죽음" -존 아담스 대통령-


"만약 미국이 자유를 박탈하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로마 카톨릭체제를 통하여 올것이다." -죠지 워싱턴 대통령-


"우리를 압도하는 한 역사적 교훈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것이니 당신의 자녀들을 카톨릭교 사제들로부터 피신시켜라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당신의 자녀들을 인류의 적으로 만들것이다."
 -W.K.클리포드 교수

"나는 제수이트의 부활을 기뻐하지 않는다. 대다수는 더욱 가장을 하게 될 것이므로 인쇄업자, 작가, 출판업자,
학교 교사 등과 마찬가지로 보헤미아의 수장도 받아들일 것이다. 영원한 저주를 받아야 할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면
바로 이 로올라 협회이다." (John Adams, 1816)

"나는 예수회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카톨릭 교회의 성직자 제도보다 더 위대한 것을 보지 못했다.
나는 이 조직을 대대적으로 수용하고자 한다. 비밀리에 사람들을 유도해 갈 기관을 설립할 것이며, 그 기관을 이용해
젊은이들을 선동하며 세계를 진동시킬 것이다."
-히틀러-

'나폴레옹의 세인트 헬레나섬 포로 생활에 대한 기억'(제 2권)이라는 책에서, 프랑스 장군 Montholon은 예수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수회는 종교 단체(order-질서)가 아니라 군대 조직이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군대의
장군이지, 단순히 수도원의 대수도원장이 아니다. 그리고 이 조직의 목적은 권력이다. 가장 전제적으로 행사되는 권력
절대권력, 우주적 권력, 한 사람의 의사에 따라 전세계를 통치하는 권력. 예수회 사상은 최고로 절대적이고 전제적이다;
그리고 동시에 가장 거대하고 가장 엄청난 폐단이다.'

 

'우리가 카톨릭 교회와 일치되어 한마음으로 함께 하기위해서는, 만일 카톨릭 교회가 어떤 사물을 검다라고
확정한다면, 우리의 육안으로 희게보이는 것도, 그것은 검다라고 단언하는 그런 자세를 지녀야 한다.'
-로욜라-

 

* 참고 서적: 예수회의 비밀역사 (에드몽 파리, 말씀보존학회)

* 참고 사이트:
http://www.biblenews.co.kr/
(이 곳의 만화간증에서는 예수회를 탈퇴한 알베르토 리베라 박사의 간증을 볼 수 있습니다.) 

출처: 빛과 흑암의 역사

최병규 박사의 이단문제 칼럼

이단에 빠져 그 신학교(신학원)를 수료하면서 어떤 이가 다음과 같은 소감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 "제가 어렸을 때 다녔던 교회에서는 장로님들이 목사님을 끓어 내렸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세 교회들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군대에 갔을 때에도 군종병들이 상관들에게 잘 보이려고 사병들을 억지로 교회로 데려 가려고 했기 때문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이단 단체의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을 수료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그의 식사 초두에 그 단체의 교주를 찬양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천지의 대 주제이신 창조주 하나님,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우리들을 피로 사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아주신 예수님, 그리고 오늘날 약속의 실체가 되셔서 영적 새 이스라엘 12지파를 창설하신 우리의 이기신 자 총회장님께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그가 기성교회로부터 받았다고 하는 경험들이 진실에 근거한 것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설령 그가 기성교회로부터 실망하고 좌절하였다 할지라도 이단으로 넘어가 이단의 교리를 배우고, 성삼위 하나님이 아닌 '인간 이긴자(그들의 교리에서 '이긴 자'는 복수 형태로 사용될 때에는 그 신도들을 가리키며, 단수로 사용될 때에는 인간 교주를 가리킨다. 그리고 인간 교주를 가리킬 때 '이긴자'라는 존재는 보혜사, 사도 요한격 목자, 약속의 목자 등으로 일컬어진다)'에게 영광을 올린다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이 세상에 무한한 감사와 영광을 받으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으며(롬 11:36),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서(롬 3:23-27)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아야 존재들이기 때문이다(롬 5:8; 벧전 3:18).

얼 마 전에도 한 선배 목사님으로부터 이러한 주제에 대한 전화를 받고, 함께 고민하기도 했다. 물론 그분은 이단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는 어느 단체에 대하여 그들이 비판받고 있는 부분들이 많지만(필자는 그 단체가 조만간 이단으로 규정될 위협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오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그 단체의 많은 주장들 가운데 적어도 한 두 부분은 우리 정통교회의 '미흡한 부분' 을 반성하도록 해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이처럼 불건전 단체들이나 혹은 이단들이 기성교회 성도들에게 접근하여 '교회의 비리' 혹은 '교회의 단점'들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그들로 하여금 기성교회에 대하여 부정적인 사고를 하게 만들고 나아가서 기성교회를 떠나서 이단 교회 혹은 불건전 집단의 교회나 운동에 참여하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런데 이단 및 불건전 단체들이 기성교회를 비판하거나 기성교회의 전통을 무시하거나 기성교회의 교리를 반박하는 일련의 일들은 우리 기성교회로 하여금 우리 자체적인 문제점들을 돌아보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교회를 뛰쳐나가서 그릇된 이단 교리를 추종하는 1차적인 이유를 우리는 사탄의 역사(혹은 사탄적인 공작)의 결과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우리들은 우리 교회들이 잘못 시행해왔거나 여러 가지 부적절한 미비점들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들을 개혁해가야 하지 않을까?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교회의 모토는 항상 개혁하는 것(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이라는 것을 상기할 때 우리는 이단들이 교회로 하여금 반성하도록 하는 여러 측면들을 살펴보고 고쳐나갈 수 있어야 하겠다. 우리가 진정으로 개혁된 교회라면, 우리의 자체의 결점과 부조리를 포함한 일체의 미비점들을 직시하고 '항상' 그리고 '기꺼이' 개혁해가야 하는 것이다.

이 단들이나 불건전단체들이 우리 교회로 하여금 반성하도록 하는 여러 요소들이 있겠지만 그 중 첫 번째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교리교육 시행'의 문제이다. 그들이 30개론을 공부시키든 초, 중, 고등 6개월 과정을 공부시키든, 80개 공과를 가르치든 그 무슨 성경공부와 신학훈련을 시키든 간에 이단들이 궁극적으로 해 가는 작업은 바로 '인간을 교주로 만들기 위해 교리공부'를 시킨다는 것이다. 필자에게 상담을 요청해 온 내담자들 가운데는 어려서부터 체계적으로 교리공부나 성경공부를 한 적이 없다고 대답한 이들이 많다. 우리 목회자들이 성도들에게 '기독교 교리'를 체계적이고도 전반적으로 가르쳐 놓지 않은 결과 정작 이단들이 철저한 거짓 교리로 접근해 올 때 기성교회 다니던 이들(그들을 성도라고 일컫고 싶지 않음: 그들 가운데는 평신도, 정통교회 신학교회에서 신학을 바르게 배우지 못한 전도사, 강도사, 준목, 목사, 목회자 사모들이 있음)이 미혹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각 신학교들은 신조학을 가르치면서 실제로 신학생들이 신학교 재학 시절에 교리 형성의 배경과 개요만 가르칠 뿐 아니라 그 내용까지도 충분히 이해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그렇게 될 때에야만 신학교를 졸업한 이들이 목회자가 될 때, 자신이 배운 바 있는 그 교리들을 성도들에게 교육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필자가 여러 교파와 교단 신학교의 교리 교육 시행 현황을 듣게 될 때 시정되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으로 이단들이 우리 기성교회로 하여금 반성하게 되는 것은 '요한계시록 이해'의 문제이다. 최근에 모 이단 단체는 우리 기성교회 목회자들에게 그리고 심지어는 평신도들에게도 그들의 요한계시록 주석(예, '성경에 대한 계시와 주석')을 배워보라고 권유해 오고 있다. 그것은 진실된 권유가 아니라 은근한 미혹이다. 그 책에서 그들은 먼저 주제와 성경 구절을 제시한다(예. 「땅의 사방 백성 곡과 마곡」, 계 20:7-10). 그리고 국내 건전한 신학자들(김재준, 김응조, 조용기, 박수암, 이상근, 석원태, 박윤선 등)의 견해와 외국 저자들(헨드릭슨, 렌스키, 래드, 레온 모리스, 로버트 마운스 등)의 견해를 제시한다. 그리고 그들은 기성교회가 이단으로 규정한 바 있는 통일교, 안식교, 여호와 증인 등의 요한계시록 해설도 병기해 놓고 있다.

사실 그들은 필자의 글을 그들의 한 지파의 홈페이지에 실어놓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기성교회의 요한계시록 해설 작업을 어디 한 번 해보라는 식으로 조롱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최근 우리 정통교회 목회자들에게 편지하여 '기성교회의 계시록 해석을 너무나 다양하다'는 점을 공격하면서, 자신들에게만 바른 해석이 있으니 그것을 살펴보라고 미혹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기성교회는 그 다양성들을 인정하고 병기하면서도 '그렇지만 기성교회는 요한계시록 해설을 통하여 인간을 교주화시키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그 어떠한 중보자도 없다는 것'을 역설할 것이다.

이단들은 기성교회의 요한계시록 해설의 다양성을 병기해 놓은 다음에 결론 부분에 가서 자신들의 견해를 '바른 증거'라고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바른 증거'라고 하는 것은 우리 역사적 교회(historial church)가 쳐다 볼 때는 조잡하기 짝이 없고 일고의 가치도 없으며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무시하고 삼위일체론을 왜곡시키며 인간을 교주로 만들어가기 위한 것임을 간파할 수 있다. 사실 우리 교회들은 평신도들에게 요한계시록을 잘 설교한다든지 가르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계시록의 주요 어휘들에 대한 개념조차도 없는 평신도들에게 이단들이 접근해 와서 계시록 운운하면서 가르치게 될 때 그 교리를 쉽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현재 한국교회 여러 교파들과 교단들 가운데 예장 고신총회가 평신도용 요한계시록 공과를 재작하기 위하여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며, 이 시대 이단들의 침투를 대응하면서 성도들에게 종말론적 삶의 태도를 갖게 하도록 하기 위한 교회의 당위적인 과업인 것이다. 지금 우리 시대에 이 과업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미래 한국교회 즉 우리 자녀들이 맞이하게 될 시대의 교회는 '치명적인 위기'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있으면서, 평신도들에 이단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말만 늘어놓는다는 것은 결코 주님 앞에서 옳지 못한 일이다.

셋째로, 이단들의 비난과 폄하를 생각해 볼 때, 우리 교회가 개혁해야 하겠다는 것은 목회자나 성도들 모두의 윤리적, 사회적, 도덕적인 모든 측면의 쇄신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비단 안티기독교 인사들로부터만 아니라 사회의 여러 매체들로부터도 지적받아 온 바이다(사실 이단들이나 사이비단체들 그리고 불건전단체들은 기성교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심각한 부조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인간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부조리가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복음을 왜곡시키는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는 부조리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종종 어떤 이단들의 경우 그 교주들이나 측근자들의 비리들이 알려지기도 한다). 우리 교회들은 교회 세습, 목회자들의 지나친 권력욕, 개교회주의, 기타 교회들의 부조리한 모습들을 부절이 고쳐나가야 할 것이다.

교회는 완전해야 한다는 것이 이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동시에 죄인들'인 우리가 모여 있는 교회는 주께서 바라시지 않는 모습들도 여전히 지니고 있을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5장 ‘교회에 관하여’를 참조하라. 4절에서는 보편적인 교회도 더 순결하기도 하고 혹은 덜 순결하기도 한 것에 대하여, 그리고 5절에서는 하늘 아래 가장 순결한 교회라도 혼잡과 과오에 빠질 수 있지만(The purest Churches under heaven are subject both to mixture and error. 마 13:24-30, 47-48),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을 경배하는 교회가 지상에 있게 될 것(마 16:18, 28:19-20; 시 102:28)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회들이 우리 자체의 문제점들을 개혁해가지 않고 계속 고집하게 된다면 그것은 덕이 되지 못하게 되고, 종국적으로는 복음 전파에 지장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잘못 될 수 있고 범죄할 수 있고 부족한 부분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계 2:5) 다시 주님 앞에 서고 새롭게 되어져 가야 한다. 주님의 용서를 경험하고 우리 각자의 삶에서부터 시작하여 교회 전체가 시정할 부분을 고쳐가자. 그렇게 하는 것이야 말로 우리 앞서 가신 신앙선배들이 그토록 외치고 우리들에게 전수해주었던 '개혁주의'를 발전시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넷 째로 이단들이나 사이비, 불건전 단체들이 우리로 하여금 반성하게 하는 것은 바로 '성도의 교제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단에 빠진 어떤 이는 이렇게 말했다: "이 땅에 천사가 되어 우리들을 섬겨주셨던 많은 전도사님들, 혈육처럼 보살펴 준 이들, 모두 감사합니다...세상에 어떤 신앙인들이 늦은 저녁시간에도 헤어짐이 아쉬워 자리를 털지 못하고 뜨거운 형제애를 나눌까요? 그런 것들이 바로 우리가 열린 말씀으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새 그릇으로 지음 받은 좋은 예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또 어떤 경우에는 동생이 이단에 빠져 있기에 그 누나가 그 단체의 이단성에 대하여 설명을 해줘도 그 동생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필자에게 증언한 바 있다: "누나, 나도 그 단체가 이단인 줄 알아. 그러나 그곳에서 사랑을 받고 있어!"

인간은 어느 공동체에서나 자신의 존재가 받아들여지고 격려 받게 될 때 그것을 통하여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고 더 강력한 소속감을 가지게 된다. 이단들에서 그러한 정서적 욕구가 채워진다고 하는 이들의 느낌을 우리는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사탄은 지상의 도성에 속한 시민들을 천사처럼 가장한 모습과 관계형성을 통해서 결속시켜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우리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넘어간 이들의 간접적인 증언을 통하여 '우리 교회의 사랑 부족'을 회개할 수 있어야 하겠다(계 2:4; 요 21:15-17). 그리고 함께 형제자매된 성도 간에 진실되며 순결한 교제가 부족했던 것도 뉘우칠 수 있어야 하겠다(벧전 1:22; 요 13:34; 몬 1:6-7; 행 2:42; 고후 6:12). 같은 교회에 다니지만 교제도 없고 서로 간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주지도 받지도 않는 관계로 전락해 있다면, 이제는 그 부분들을 회복해 갈 수 있도록 교회의 사역자들은 기도하면서 노력하고 그러한 기회의 장을 마련해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단들이 우리 교회로 하여금 반성하도록 하는 점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곧 '교회중심의 삶의 태도'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단으로 넘어가는 많은 경우들을 볼 때 그들이 교회 중심의 삶이 아니라 '교회 밖 중심'의 삶의 패턴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중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넘어가는 것만 봐도 그들이 형식적으로는 교회에 충성하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교회 외적인 신앙활동'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우리들은 교회 밖의 여러 건전한 단체들(para-church)로부터 성경공부나 기독교 가치관을 배울 수 있고 또 그것을 대사회적으로 실천해 갈 수도 있다. 그러나 성도들의 삶의 중심은 언제나 교회여야 한다. 교회에서부터 소외감을 느끼게 되는 이들은 점차 교회에 대하여 불평 세력이 되며, 이단들은 그러한 성향이 있는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용이하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삶의 중심이 늘 교회에 있도록 설교하고 가르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이와 관련하여 필자의'이단 대응 이전에 사도행전적 신앙을 가져야'라고 하는 글을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http://eusakidok.kosin.org/web/html).

이 상에서 필자의 이단 연구와 상담 경험을 중심으로 하여 이단들이 교회로 하여금 반성하게 하는 여러 측면들을 열거했다. 전국을 순회하면서 필자는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이단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즈음에 우리는 성도들에게 이단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교육함은 물론이고, 나아가서 우리 교회를 거스르는 이단 단체들이 비평하고 고안하고 활동하고 있는 여러 측면들을 고려하면서 정작 우리 교회들이 반성하고 개혁하며 보완 발전시켜가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하겠다. 오늘 우리는 우리를 향한 부정적인 비평들이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이라면 그 부분들을 시정해 가야 하겠고, 또 우리가 복음전파와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더 애써야 할 부분들은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교회는 더욱 평안한 가운데 주 예수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더욱 견고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 병규 박사는 예장 고신총회 유사기독교 연구소장으로서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이단상담소장으로 섬기고 있다(한국장로교총연합회 이단대책위원회 서기 및 위원장 역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단대책위원회 서기 및 부위원장, 전문위원 역임). 한국교회가 매년 9월 첫째 주간(혹은 주일)로 지키는 이단경계주일 제정을 발의하였으며, 현재 각 교파와 교단이 평신도를 위한 요한계시록 공과 교재 제작하도록 협력을 구하며 추진하고 있다. 최근 들어 한기총 이단대책위원회에 '정관'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이단 진단과 대응』, 『상담을 통해 본 이단의 모습』, 『교리를 알면 신앙이 자란다』 등이 있으며, 최근 이단 관련 칼럼들은 뉴스파워(newspower.co.kr)의 연재 코너 '최병규 박사의 이단 칼럼'에 게재되어 있다.

blog.daum.net/heresy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이단상담소
eusakidok.kosin.org 예장 고신총회 유사기독교 연구소장 자료실
bkc1202@hanmail.net 02 593 9726

최병규 ⓒ 뉴스파워

 

예장정통교단 : 변승우 목사님이 사역하고 있는 입신에 대해서 답변해주세요.


- 저는 성경에 입신이 나오므로 입신의 존재를 믿습니다(고후 12:1-4, 계 4:1-2). 그러나 입신은 성경처럼 정확한 것이 아니며 부정확합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입신사역을 하지 않고 있으며, 오래 전에 교회 인터넷 카페 내의 ‘본교회 성도들의 입신 간증을 올려놓은 게시판’과 ‘다른 교회의 목사나 신자들의 입신 간증을 올려놓았던 게시판’을 누구의 압력 없이 스스로 통째로 없애버렸습니다. 그리고 입신간증들을 모아 책으로 펴낸 “하늘나라에서 온 이메일”도 스스로 절판시켰습니다. 갓피플몰이나 저희 교회 카페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변승우목사)

 

먼저 변승우목사의 어린 딸, 변우림도 세번을 입신하였다고 변목사는 자랑을 한 적이 있었다. 그 글이 이 카페에 누군가가 올려 놓은 것도 있다.

어쨋든, 변목사는 나는 고후12:1-4 와 계4:1-2에서 입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하였는데, 나는 그 구절에서 입신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성경을 살펴보자


고후 12:1-6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첫째, 바울은 다른 사람들이 지나치게 생각할 것이 염려하여 제삼자의 입장으로 글을 기록하는 반면에, 요즈음 천국과 지옥에 다녀왔다는 사람은 오히려 자랑스럽게 자기 자신의 체험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6절에서 다른 사람들이 지나치게 생각할 것을 두려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비성경적인 간증을 서슴치 않으며 자기 위상을 높이기 위하여 말도 안되는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변승우목사는 토마스 주남의 황당한 천국간증에 대해서도 그 책이 체험적인 구원론이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 큰믿음교회 선지자학교 교감인 손에스더 전도사는 천국간증으로 유명한데, 그녀는 1993년에 다미선선교회에서 종말론을 주장한 적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둘째, 바울은 자신의 낙원을 간 것이 몸 안인지 몸 밖인지를 모르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천국간증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몸으로 갔다고 말하기도 하며 혹은 유체가 이탈되어 영혼만이 갔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바울은 몸 안인지 몸 밖인지 몰랐을까?

성경학자들은 이러한 바울의 체험을 그가 실제로 죽었다가 살아난 경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고후11장23-25절에서 그는 거의 죽을 뻔했던 많은 체험들을 말하며, 행14:19에서는 돌에 맞아서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으로 내친 적도 있다.

그런데 요즈음 천국간증을 하는 사람들은 전혀 그러한 경우가 아니며, 심지어는 수십번을 습관처럼 갔다 왔다는 사람도 있다.


셋째, 바울은 그러한 체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말도록 경고를 받았다고 말한다. 공동번역을 제외한 표준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특히 KJV영어성경과 NIV영어성경이 모두 그러한 번역을 하고 있다. 바울은 왜 이야기를 하지 말도록 받았다고 하는데, 그들은 모두 자유롭게 말을 하고 있을까?

 

[공동번역(개정)]고후 12:4

그는 낙원으로 붙들려 올라가서 사람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말을 들었습니다.

[표준새번역(개정)]고후 12:4

이 사람은 낙원에 이끌려 올라가서,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사람이 말해서도 안 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현대인의성경]고후 12:4

나는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도저히 표현할 수도 없고 또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안 되는 말을 들었습니다.

[KJV]고후 12:4

How that he was caught up into paradise, and heard unspeakable words, which it is not lawful for a man to utter.

[NIV]고후 12:4

was caught up to paradise. He heard inexpressible things, things that man is not permitted to tell.


넷째, 바울은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고 있다고 하는데, 변승우목사는 왜 그것을 입신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왜 이것이 입신인가?

기독교가 언제부터 입신이라는 무속적인 용어를 사용하였는가?


다음은 계시록4장1절-2절을 보자


계 4:1-2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이 구절이 입신인가? 변승우목사는 사람의 영혼이 죽지 않고 육체를 벗어나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입신이라고 하는 것 같다.

본문 2절의 “내가 성령에 감동하였더니”라는 구절을 보자.

헬라어는 “기노마이 엔 프뉴마”이고, 영어성경은 킹제임스나 NIV가 모두 동일하게 I was in Spirit 라고 번역하고 있다. 즉 직역을 하면 “내가 성령 안에 있으니”라는 뜻이다.

"성령 안에서"가 "입신"인가?

요한은 실제로 천국에 간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영적인 환상을 본 것이다. 만약 이것을 입신이라고 한다면 다음 성경구절도 입신을 뜻한다고 해석이 되는가?


골 1:7-8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군이요. 성령 안에서(in the Spirit)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고한 자니라


에바브라가 천국에서 골로새서 교인들의 사랑을 바울에게 고하였다고 해석을 하는가? 혹은 아래 성경구절에서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를 천국에서 의롭다하심으로 해석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딤전 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바 되시고 영으로(in the Spirit)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그러면 변목사가 생각하는 입신이란 무엇인가? 그의 책을 통하여 살펴 보자.

그는 입신이 성경에서 정확하지 않다고 하엿는데, 그가 말한 변명은 모두 거짓말이다.

그가 말하는 입신은 영이 몸을 떠나 천국에 가는 것을 말하며, 그러한 구체적인 근거를 가진 성경구절은 없다. 그는 성령 안에서 환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천국은 모두 가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지금 가고 싶어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살아있을 때 이곳을 방문합니다. 그것은 일부 사람들에게 허락되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인데 이것을 가리켜 바로 ‘입신’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입신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내 영이 몸을 떠나서 천사나 예수님의 인도로 천국 혹은 지옥에 다녀오는 경험입니다. 이것이 입신입니다”(변승우,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p.301).


“적잖은 성령운동을 하는 지도자들이 입신을 베드로가 체험한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물론 이런 주장도 일리가 있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입신이 아니라 단순히 성령에 더 깊이 사로잡혀서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환상과 입신은 분명히 다른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면 환상과 입신을 가르는 그 구분 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이 몸에서 빠져나오느냐 아니냐? 라고 생각합니다. 영이 몸 안에 있는 상태에서 무엇을 본다면 그것은 분명히 환상입니다. 심지어 천국과 지옥을 본다 할지라도 그것은 환상이지 입신이 아닙니다. 반면에 영이 분명히 몸에서 빠져나왔다면 설사 천국이나 지옥을 보지 않았더라도 그것은 입신입니다”(변승우,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pp.301-302).

 

과연 변목사는 입신사역을 중지하였는가?

 

“다른 은사와 마찬가지로 입신이 은사가 된 사람은 매우 쉽게 그리고 자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 교회에서 입신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입신이 은사가 됩니다. 지금까지 5번 입신한 우리 딸을 빼놓고 다른 분들은 하도 많이 입신을 해서 자신이 몇 번 입신을 했는지 그 횟수를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경험이 없는 분들은 ‘이것이 과연 가능한가?’ ‘혹 잘못된 것은 아닐까?’ 염려를 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아주 정상적인 것입니다. 한 예로 인도의 썬다 싱의 경우 초기에는 입신에 들어가는 일이 비교적 드물게 일어났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거의 매일 경험하게 되었으며 보통 기도나 명상을 하고 난 지 20분 정도 지나면 입신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는 얼마나 자주 입신하는지 도시에 있을 때는 입신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매우 조심하며 자신을 통제했습니다”(변승우,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p.340).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온 이메일을 절판된 것은 맞다. 그런데 절판이라는 것은 책을 더 이상 인쇄하지 않는다는 뜻일 뿐, 책을 회수하거나 폐품처리를 것은 아니다.

그리고 변승우목사 카페의 입신간증게시판이 없어진 것은 맞는데, 그 카페에서 하늘나라 이메일이라는 단어를 검색을 하여보니 약 75개의 자료가 나타나 있으며, 그리고 2009년 1월에도 여전히 하늘나라에서 온 이메일의 내용이 인용되거나 올려지고 있었다.

출처 :무엇이든지물어보세요 원문보기 글쓴이 : 이인규

김기동의 성경왜곡은 그가 정규신학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김기동의 성경왜곡의 근원을 찾아보?바로 그의 무식함에서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창세기 2장 24절을 해석하면서 소위 '이중 아담론'이란 해괴한 주장을 하고 있는데 필자는 여기에서 왜 김기동의 그러한 성경해석이 성경의 의도에서 빗나갔으며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사이비 이단이 되고 말았는가를 성경을 통해서 증명해 보고자 한다. 김기동은 말하기를 자신은 '이중 아담론'이란 주장을 한 적이 없으며, 그것은 자기를 욕하고 모함하는 자들이 억지로 지어낸 것이라고 핏대를 올리며 변명하고 있다. 과연 그런지 알아보자.

먼저 창세기 2장 24절을 보면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여자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라고 했다. 이것은 1956년에 대한성서공회가 발행한 개역한글 성경이다. 이 구절을 언뜻 보면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들린다. 김기동은 이 구절을 가지고 창세기 1장에서 영이 없는 무령인간(無靈人間 : 김기동이 주장하는 이론) 중에서 한 사람을 골라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음으로써 영을 소유한 인간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김기동은 그렇게 영을 불어넣은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영이 없는 사람이 '네피림'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러한 네피림은 노아 홍수를 통해서 지구상에서 멸종했다고 한다. 그들에게 영이 없었기 때문에, 즉 영원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물로써 호흡을 하지 못하게 하면 마치 짐승처럼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는 것이다. 그럴듯한 주장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창세기 2장 24절은 히브리어 원문을 통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히브리어 원전이라고 하니까 무슨 대단한 사람들이나 읽고 해석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요즘은 시중에 히브리어 원전과 영어 및 한글판 성경이 대조 번역된 것이 셀 수 없이 많다. 따라서 신학공부를 하지 못한 독자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서점에 가서 한번 읽어보길 바란다.

창세기 2장 24절의 한글 성경은 '이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러므로'라는 말은 히브리어 '알-켄'인데, 이 말은 영어의 'therefore'(그러므로) 또는 'that is why'(그러한 이유)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것은 신문이나 잡지의 사설, 또는 논설 따위에서 어떤 소견을 밝히는 형태이지 하나님의 입으로 나온 말씀이 아니다. 즉, 창세기를 기록한 기자가 23절에서 아담이 고백한 말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구절이다.

창세기 2장 24절에서 히브리어 '미완료 동사'(imperfect verb)를 사용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대한성서공회에서 발간한 '새번역 성경'은 이 구절을 히브리어의 시제를 통해 정확하게 번역해 놓았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기타 최근 새롭게 번역되어 나오는 성경들 역시 이 구절을 성경의 본문과 아주 가깝게 번역했다.

김기동이 주장하는 대로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을 골라서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영적인 존재가 되게 했다는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주장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인간론과 구원론을 비롯한 성경의 진리와 거리가 먼 엉터리 이단사상을 펼치게 된 것이다.

이렇듯 김기동의 성경 오역(誤譯)은 상식을 벗어난 무지에서 비롯되었다. 성경해석에 대해서 잘 모르면 그냥 입을 다물고 있든지 아니면 정식으로 공부를 하든지 했어야 했지만 성경해석의 자유라는 엉뚱한 잣대를 들이대고 용감하게도 여기저기 맘대로 자르고 붙여서 자기의 엉터리 주장에 이용했던 것이다.

창세기 2:23-24를 한번 더 살펴보기로 하자. 우선 히브리어 원문에 가까운 영어 성경을 보면 "Then the man said "This one at last is bone of my bones and fresh of my fresh; this one will be called 'woman' for from man she was taken." That is why a man leaves his father and mother and unites with his wife, and they become a new family."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4절 전체가 만일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라면 '떠나'(leave)라는 단어가 '떠날 것'(will leave)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구절이 모세를 통해서 기록되다 보니 현제 시제로 번역되어 'that is why a man leaves...'로 되었다. 따라서 이 단어는 앞의 사건의 상징적인 것을 설명한다.

그래서 NIV(New International Version)는 이 구절을 'For this reason a man will leave his father and mother...'라고 번역했다. 또한 다른 많은 영어 번역성경들도 그렇게 번역하였다. 또한 본문에 사용된 '한 몸을 이룰찌로다'라는 말은 성적인 결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 몸이 된'(the whole life together) 것을 의미하는 결혼을 말한다. 히브리 원문에 가장 가깝게 번역되었다는 The NET Bible 성경은 'become a new family'라고 번역했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만드신 후에 남자가 장차 가정을 이루려면(가정은 장차 여인의 후손이 오시는 대단히 중요한 통로이다) 남자가 여자를 떠나야 할 것이라는 것을 선언하신 것이다. 다시한번 정리하자면, 23절은 아담이 독백한 것을 24절이 받아서 '이러므로'라는 앞의 구절에 대한 기술을 하는 것이니 영이 없는 사람이 부모를 떠나 온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히브리어 미래시제이니 이것은 장차 결혼에 대한 하나님의 설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본문이 말하고 있는 의도를 그대로 해석한 것이다. 따라서 아담에게 부모가 있었다는 말은 참으로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무지함과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출처: 뉴욕평강 교회
1997년말 김기동은 귀신이 불신자의 사후존재라는 결정적 증거를 성경에서 찾았노라 대대적으로 밝힌 바가 있다. 그 결정적인 증거란 다름 아닌 사무엘상 28장에 나오는 신접한 여인과 사울 왕과의 사건이다. 김기동이 이 주장을 하기 전에 그는 평소 사십 만 명이니 오십 만명이니 하며 마치 귀신을 쫓은 사람의 숫자와 현황을 꼼꼼하게 기록해 놓은 양 자신의 귀신론의 자료로 사용해 왔었지만 사실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다.

그런 김기동이 어느날 갑자기 내놓은 자신의 귀신론에 대한 성서적인 근거는 성경을 정독한 사람이라면 절대로 속아 넘어가지 않는 어불성설 그 자체였다. 여기에서 한번 그가 주장한 것이 얼마나 무지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거짓된 가르침인지 알아보기로 하자.

사무엘상 28장 3절을 보면 사무엘이 죽자 사울은 이스라엘 경지에서 신접한 자와 박수를 모두 쫓아낸다. 그후 블레셋이 이스라엘에 쳐들어 왔을 때 사울은 너무 두려워 하나님께 전쟁의 승패를 물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아무런 답변을 하시지 않았다. 마음이 다급해진 사울은 밤에 변장하고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 여인에게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불러 달라고 부탁한다.

신접한 여인은 사울의 부탁을 받았지만 이스라엘에서 사울이 신접한 자와 무당을 멸절시켰음을 말하면서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사울이 사무엘을 불러달라고 요청하자 누구를 불러 올려줄까를 묻는다. 신접한 여인이 그렇게 사울과 옥신각신하는 사이 사무엘이 나타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것은 신접한 여인이 불러서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갑자기 사무엘을 목격한 여인은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자신에게 사무엘을 불러 달라고 했던 자가 바로 사울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다른 성경에는 귀신이 예수를 알아보고 소리를 질렀고(막5:7), 사도 바울을 알아보고 소리를 질렀다.(행16:16) 이와 같이 신접한 여인이 소리를 지른 것은 그녀 안에 있던 귀신이 소리를 지른 것이다. 만일 신접한 여인이 목격한 것이 사무엘이 아니라 김기동이 말하는 것처럼 귀신이었다면 자신이 불러 올린 귀신을 보고 소리를 지를 이유가 없다.

성경에는 죽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나타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가셨을 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난 것이 그것이다(마17:1-3). 이 장면은 제자들에게도 목격되었지만 소리를 지른 적은 없다.

신접한 여인의 속에 들어있던 귀신이 큰 소리로 외칠 때 사울은 그녀가 보고 있는 자의 옷차림새에 대해서 물어본다. 겉옷을 입은 노인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본다고 하자 사울은 땅에 얼굴을 대고 절을 했다. 사무엘상 15장 12절에서 사무엘이 죽기 전 사울은 사무엘의 옷을 잡아 당겨 찢은 일이 있었는데 사무엘의 옷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성경은 분명히 죽은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하고 있음을 보여준다(삼상 28:15). 사무엘이 사울에게 말한 내용은 그가 생전에 했던 말과 다르지 않다. 사울이 자신의 옷을 찢었을 때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명령대로 사울의 나라를 떼어 다윗에게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내일 사울과 그의 세 아들들이 자기와 함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기동은 이 구절을 사울과 그의 아들들이 노인과 같이 귀신이 될 것이라는 말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 말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죽음을 표현하는 말이었다. 즉 열조에게로 돌아간다거나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간다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다윗은 죽음이 가까워지자 솔로몬을 불러 놓고 말하기를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라고 했다(왕상2:1).

그러나 김기동은 사무엘의 말을 사울과 그의 세 아들들이 모두 귀신이 될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다윗과 형제처럼 지내면서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던 요나단과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나라와 왕의 권한을 박탈당한 사울과 그의 나머지 아들들이 전쟁에서 패배하여 귀신이 되었다는 말이다.

한편, 성락교회 부목사인 윤형식은 한국신학(김기동이 운영하는 단체) 4호에 "사무엘상 28장에 나타난 귀신의 정체"라는 소논문을 썼는데 그는 김기동의 귀신론을 옹호하는 글을 써내려 가다가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 요나단이 귀신이 되었다는 김기동의 주장에 대해서 뭔가 찝찝했는지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는 점은 매우 재미있는 대목이다. 첫단추가 잘못 끼워진 옷은 반드시 마지막에 가서 그 정체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어쨌든, 김기동은 요나단이 어떻게 귀신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자신의 공식적인 입장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 만일 여기에 대해 또 다른 거짓말이나 변명을 늘어놓는다면 그의 귀신론은 스스로 거짓된 가르침이라는 것을 자인하게 될 것이다. 아직도 이러한 거짓말을 믿고 하나 밖에 없는 인생을 허비하는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가엾기만 하다.


출처: 뉴욕평강 교회

내 나이 43세.

며칠 전 우연히 내 인생을 이 자리에 있게 한 가장 큰 사건이 뭔가란 생각을 해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성락교회에 나간 사건이었다.

대학 다닐 시절 4년 정도 성락교회에 다녔다. 성락교회보다는 CBA 소속이었다고 하는 것이 더 옳다. 성락교회, 김기동 목사, 베뢰아.... 내 아까운 젊은 시절을 낭비케 한 단어들이다. 그 때 그 교회를 가지 않았더라면 난 분명 현재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면 분노마저 느낀다.

십 수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성락교회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진다. 그래서 지금도 성락교회에 소속해 있는 사람들을 보면 연민의 정을 느낀다. 성락교회를 옹호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 그 옛날 내가 베뢰아 비난하던 사람들에게 하던 표현과 동일하다. 베뢰아는 교리가 아닙니다.김기동 목사는 오직 예수만 아는 목자입니다.김기동 목사가 대단한 건 병을 고치는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실제 그가 병을 고치는 것을 본적은 한 번도 없다)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포장하는 데 있다.

내 경험 하나만 이야기 하겠다. 성락교회 다니는 사람들 몸이 아파도 병원엘 가지 못한다. 병원에 가는 것은 믿음과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시절 음식을 잘 못 먹고 체한 적이 있었다. 얼마나 세게 체했던지 걸어가면 뒷골이 울릴 정도였다. 그래도 난 병원은커녕 약국에도 못 갔다. 기도만 했고 거울 쳐다보며 귀신을 쫓았다. 15일 동안 그렇게 하다가 견딜 수 없어서 약국을 찾았다. 그리고 나았다. 그러나 그 후유증으로 난 지금도 심한 위염을 가지고 있다. 벌써 5번이나 내시경을 받았다. 분명 성락교회 사람들은 귀신을 안 쫓아서 병이 재발하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몇 년 전 서울대CBA에 가 보았다. 몇몇 학생들이 그 옛날 나의 모습대로 방언을 하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안타까웠다. 그 시절 선배들이 나의 베뢰아 소속인 것을 안타까워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베뢰아.... 내 기억에서 정말 지우고 싶은 단어이다.
그리고,
나는 언제부터인가 성도들을 기만하고 자신의 학력을 위조하면서 거짓말을 일삼는 김기동의 삶을 지켜보면서 혹시나 그의 설교나 가르침에도 거짓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 사로잡힐 때가 있었다. 나의 베뢰아 비판은 그러한 작은 의구심에서 비롯되었으며 지금까지 엄청난 거짓된 가르침을 발견하고 이것을 널리 전하게 되었다. 그 중에 미혹의 영이란 김기동의 가르침이 들어 있는데 여기에 잠시 올려볼까 한다.

김기동의 비성서적인 주장 가운데 가장 어설프고 무지한 것이 있다면 바로 그가 스스로 깨달았다는 미혹의 영일 것이다. 김기동은 어느날 강변도로를 운전하고 지나가는 중 머리 속에서 미혹의 영의 정체를 깨달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김기동의 말을 순진하게 믿고 따르던 때라서 대단한 영감을 지닌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가르치는 미혹의 영에 대한 가르침을 성경을 통해 검증해 보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가르쳤으며, 미혹의 영의 정체를 모르는 목사들을 속으로 은근히 깐보고 무시했던 적이 있었으니 모든 것이 후회스럽고 미안할 뿐이다.

김기동은 성도가 제일 잘 알고 있어야 하고 최고로 갖추어야 할 무장은 바로 미혹의 영에 대한 지식이라고 말한다.(김기동, 미혹의 영,1993) 모든 병의 원인이 귀신이라면 귀신들이 의지하고 있는 영이 곧 미혹의 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미혹의 영이란 천사가 타락한 존재이며, 구원 얻을 사람을 도우라고 보내심을 받은 천사들 가운데 변질된 천사들이라고 한다. 고질화된 병과 습관 따위는 이러한 미혹의 영을 분별할 줄 안다면 치료가 아주 간단하다고 하는데 이러한 김기동의 주장이 과연 성서에 근거한 것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김기동의 미혹의 영은 그의 비뚤어진 천사론에 기인하고 있다. 그는 정규 신학교를 이수하지 못한 상태에서 원어 성경에 대한 아무런 사전 지식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단지 1956년에 개정된 한글 개역성경만을 가지고 제멋대로 해석하여 짜집기를 하였다. 그 결과,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주장을 알 수 있게 된다.

김기동은 요한계시록 12장7~9절을 인용하면서 하늘의 전쟁에서 패한 루시엘이 내어 쫓겼는데 이것이 루시퍼 곧, 사단의 기원이며 사단과 함께 땅으로 쫓겨 내려 온 천사들은 적그리스도의 영이라고 하며, 이 적그리스도의 영들은 사람을 적그리스도로 만드는 일을 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적그리스도의 영들은 미혹의 영들과는 다른 존재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김기동의 주장은 자기 주장일 뿐이며 요한계시록이 어떤 책인지 알지 못하는 무지한 주장이다.

요한계시록 12장은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었을 때 본 이상(vision)이다. 곧,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서 반드시 속히 될 일을 자기의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천사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다.(계1:1) 이러한 요한계시록의 특성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12장의 내용을 들먹거리면서 적그리스도의영이 어떻고 미혹의 영이 어떻고 하는 것은 어불성성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성경을 억지로 해석하는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 미리 아시고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에서 요한이 본 계시에 그 어떤 것이든지 보태거나 빼면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겠다고 경고하셨다. 즉, 지옥불에 들어갈 것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12장은 사단의 기원이나 적그리스도의 영의 기원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아니며 장차 일어날 일들에 대한 계시일 뿐이다. 김기동은 여기서 더 나아가 거룩한 성도의 자녀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 그때부터 각자에게 돕는 천사를 주신다고 말한다.(김기동, 미혹의 영,40쪽) 이들은 성도들을 돕는 심부름꾼이라고 한다. 회사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많은 사원이 증가하는 것처럼 영적 활동이 크면 천사의 숫자도 늘어난다고도 말하는데 이것은 성경적인 뒷받침이 전혀 없는 사설(詐說)이다. 여기에 대해 상세하게 파헤쳐 보기로 한다.

출처: 뉴욕평강 교회

오늘날도 사도·선지자가 존재하는가?
[심층기획] 현대 성령운동 진단 ④ / <목사와 예언자> 서평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이승구 /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Wagner, Peter. et al. Pastors & Prophets (Colorado Springs, CO; Wagner Publications, 2000. 임종원 옮김. <목사와 예언자> 서울: 도서 출판 진흥, 2004. Pp. 141)

   
교회 성장학파의 대변자의 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피터 와그너(Perter Wagner)와 그의 입장을 존중하고 그를 따르는 몇몇 저자들이 목사와 예언자의 건강한 관계를 규정하고
제시하려는 몇 편의 글을 담은 책을 출간하였다.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오늘날에도 사도들과 선지자(예언자)들이 있다는 전제에서
주어진 것이다. 이런 전제 가운데서 이들 예언자들과 목회자들은 과연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를 질문하고 답하는 책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와그너의 <사도들과
예언자들>1) 의 자매편으로 그 책과 성격을 같이 하며 와그너 교수의 그 동안의 관심과
노력의 방향을 잘 표현해 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와그너 등은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일이 “예언자들과 예언 사역을 위한 영적인
규약(protocol)을 개발하는 데 온 힘을 집중하는 것”이며 “이 일을 멋지게 완수하여
예언을 믿는 교회 지도자들 사이에서 그 규약이 폭넓게 받아들여지도록 해야 하는
일”이라고 한다(25). 그래서 와그너 등은 이 책에 ‘건강한 교회를 위한 규약’이라고
하였다. 와그너 교수와 이 일단의 저자들의 견해를 성경적으로 점검하기 위해 먼저
그들의 주장 가운데서 그래도 성경적으로 지지할 만 하며 많은 이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는 내용을 언급하고 후에 그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와그너와 이 저자들의 주장 가운데서 성경적으로 긍정적인 점들

와그너 등이 건강한 교회에 관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 우리는 모든 이들과 함께 감사하게
생각한다(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건강한 교회의 내용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들이
의아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또한 “교회를 다스리는 직분 체계는 결국 성경적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다”(9)는 와그너의 첫 말에는 모든 성경적 그리스도인들이 동의할
 것이다(그러나 후에 드러나겠지만 와그너가 말하는 성경적 형태와 우리가 말하는
성경적 형태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더구나 에베소서 4장에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위해 직분 체제와 운영 체제를 계획하시고 적절히 세워
놓으셨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9).

또한 교회가 오랫동안 이 “이상적인 직분 체제와는 훨씬 동떨어진 모습으로 운영되었다”
(9)는 말에도 모든 개신교도들은 동의할 것이다(그러나 와그너는 1600년이라는 말에
 종교 개혁시대와 우리 시대까지의 교회의 직분 체제를 다 넣어 말하는 듯하다.
그러므로 그가 의도하는 것과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또 하번 다른 것임을 유의하면서
그의 글을 읽지 않을 수 없다). 또한 목사와 교사의 관계를 상호 밀접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도 상당히 긍정적인 것이다(12). 그리고 사제(priest)라는 비성경적 직분을
대체한 목사는 “개신교 종교개혁 이후로 제자리를 되찾았다”(13)는 점을 지적한 것도
옳은 것이다.

또한 스테판 만스필드(Stephen Mansfield)와 마이크 비클(Mike Bickle), 그리고 톰 하몬
(Tom S. Hamon)이 교회 안의 여러 은사를 지닌 이들이 서로 균형을 이루고 서로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72~74, 82f., 98f., 136) 바르고 건전한 것이다.
또한 킹슬리 플레쳐(Kingsley A. Fletcher) 가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선포된 말씀이다.
이는 사람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말씀이기 때문이다”(109)고 말하는 것도
매우 옳은 것이다.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을 말씀과 일치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매우 옳다. 문제는 이 말을 하는 그를 비롯하여 이 저자들이 이 원리에 끝까지 충실한가
하는 점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주장의 몇 가지 부분에 대해서는, 특히 시작 부분에서 성경적으로 해야
한다고 말할 때에는 그들의 주장에 동의할 수 있지만 그 내용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순간부터는 그들의 주장에 전적인 동의를 표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제 그렇게 되는
원인을 그들의 주장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과 함께 제시해 보기로 하자.

와그너와 이 저자들의 주장의 문제점

1. 일반적 문제점들

기본적으로 와그너는 세대주의 신학에 근거하면서 그것을 자신의 의도에 맡도록 적절히
변경하면서 논의하고 있음을 의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와그너는 신약 시대를
율법 시대와는 다른 ‘은혜의 시대’라고 언급하면서 그런 상황에서 예언자는 과연 어떤
존재인지를 묻는다(19).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두 종류의 대적자를 얻게 된다고
생각된다. 하나의 대적자들은 그의 세대주의적 해석에 반대하는 언약 신학적 대적자들
이다. 또 하나는 그의 수정에 반대하는 세대주의적 대적자들이다.

와그너와 이 저자들의 좀더 심각한 일반적 문제는 “성경적”이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그들이 이 말에 대해 부여하고 있는 그들 나름의 독특한 함의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말하는 “성경적”이라는 말에 대해서 그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명확히 알 때까지는 선뜻 동의할 수 없게끔 하는 논술을 그들이 하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적이라는 말에 대해
그 의미를 일일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이상한 주장과 논의를 제시하는 이들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왜 이들에 대해서 이단자들이 “성경적”이라고 말할 때 느끼는 불안을
가지도록 생각하고 논술하는 것일까? 이것이 가장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이는 결국 그들의 성경 주해가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문제를 노출시켜 주는
것이다. 주해를 이상하게 하기 때문에 그들이 “성경적”이라고 하는 것은 그 주해의
내용을 가지고 따지면 결국 성경적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에베소서 4:11 이하에 근거해서 교회의 직분을 말한다고 하면서 그 본문과 상관없는
것들을 때때로 삽입하는 것들에서 잘 나타난다.

예를 들어, 와그너는 ‘전도자’를 언급하면서 “약 150년 전에 챨스 피니(Charles Finney)
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폭넓게 주목받지 못했었다”고 말한다(13).
와그너에게는 초대 교회의 전도자들이 관심이 아니라, 오늘날의 전도자들이 관심인
것이다. 더 심한 것은 그 본문이나 다른 성경 구절에 있지도 않은 ‘중보자’(intercessors)
라는 직분을 그가 삽입하고 있는 점이다.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독특한 직분으로
이를 언급하면서 이는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받아들여지기 시작한 직분이다”고
말하고 있다(13).

그는 이런 것이 에베소서 4:11에 있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러나 중보자는 촉매제처럼,
예언자와 사도들의 길을 예비하는 지극히 중요한 기능을 감당하는 주목할만한 직분이기
때문에 꼭 언급하고 싶다”(14)고 말하면서 이를 목사, 교사, 예언자, 사도와 함께 교회의
5대 직분으로 언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와그너가 말하는 교회의 5대 직분이(10~14,
29, 37) 엄밀히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자신의 경험에 근거한 것임이 잘
드러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와그너뿐만 아니라 이 책에 기고한 다른 이들도 이와 같은 다섯 직분에
대한 같은 이해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57~59, 73, 107, 126). 그들은 이런 이해를
와그너로부터 배워 같이 공유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와 같은 논의는 이런 용어를
사용 할 때 그들이 성경의 본래적 의미보다는 오늘날 그들이 이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자신들의 경험에 근거한 논의를 하고 있다는 것도 잘 드러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철저히 성경에 근거하지도 않고, 교회사적 전통에 근거하지도 않은
개념들을 일정한 무리의 사람들이 공유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마치 그것이 성경적인 것인
양 제시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깊이 숙고해 보라.

톰 해몬(Tom Hamon)은 오늘날 예언이 있을 수 있음을 말하면서 에베소서 1:17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123f.). 이 본문이 말하는 “지혜와 계시의 정신”이 과연 소위 제한된
의미의 예언자들에게 있는 것이라는 의도로 바울이 말하는 것인가? 오히려 모든
그리스도인은 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도록 해야
할 것을 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본문을 주로
목회자와 소위 예언자들에게 이를 제한하여 생각하는 것은(124, 136) 이들이 가진 성경
주해의 자의성을 잘 드러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근원적인 문제

이들의 근원적인 문제는 역시 오늘날에 예언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가 주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와그너 등의 목소리는 오늘날 가장 세련된 형태로 제시되고 있는 직통 계시파의
 목소리라고 할 수 있다.

와그너 자신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언을 다음과 같이 정의해 왔었다: “예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특정한 구성원들에게 허락하시는 특별한 능력으로,
거룩하게 기름 부으신 선포를 통하여 그 분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즉각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다.”2) 그리고 와그너에 의하면, “예언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것은 예언자가 받은 은사”라는 것이다(50). 와그너는 이런 예언이 오늘날에도 있다고
생각하며 1999년에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2,500명의 소위 예언자들과 예비
예언자들을 모아 전국 예언자 학교(the National School of the Prophets)를 개최하기도
하였다고 한다(41).

그는 여러 형태의 계시가 더 더해질 것이라고 제시한다. 특히 현재로서는 자신이
전도자의 은사와 직분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지만 “하나님께서 가까운 장래엡 전도자들에
 대한 새롭고 놀라운 통찰을 계시하실 것이라는 잠재된 예감이 [자신] 안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31). 그리고 그는 “교회에 예언자들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훨씬 더
건강하다”고 단언한다(49).

톰 해몬(Tom S. Hamon) 역시도 같은 견해를 표 한다: “…예언이 없다면 [교회가]
마땅히 드러나야 할 건강한 모습을 보여 줄 수 없다”(132). 와그너는 또한 오늘날에도
있는 이 예언자들과 (후에 언급될) 사도들이 교회의 기초라고 주장한다(49). 와그너는
이와 같이 하나님의 계시가 지속적으로 주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스필드는 이렇게 까지도 말 한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적인 예언자들만이 아니라,
예언하는 사람들을 일으키고 계신다. …지혜로운 목회자들의 사역은 진정한 예언적
교회가 이 세대에 일어나리라는 소망을 품을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이유다”(74f.).
캔사스 시의 국제 기도의 집(International House of Prayer) 대표로 있는 마이크
비클(Mike Bickle)은 자신이 목회하는 메트로 교회(Metro Christian Fellowship)에는
예언적인 꿈, 이상, 그리고 환상을 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말한다(79). 한국
교회는 이런 주장에 대해서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우리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유념해야 하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성경 이외에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가 오늘날에도 지속적으로 계속된다는) 이런 생각은 그 동안
장로교 신학(개혁 신학)과 정통 신학에서 일반적으로 주장해 온 바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항 마지막에 있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자신의 뜻을 계시해 주시던 과거의 방식들은 이제 중지되어 버렸다”는
진술과 6항 중에 진술된 “이 성경에다 성령의 새로운 계시에 의해서든 아니면 인간들의
전통에 의해서이든 아무 것도 어느 때를 막론하고 더 첨가할 수가 없다”는 말과 이런
주장들을 비교해 보라.3)

이와 같은 노선에서 성경적인 개혁신학자들은 아주 온건한 형태의 예언 인정의 논의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박하여 왔다.4) 이런 문제에 대한 좋은 개혁신학자의 한 사람인
로버트 레이몬드 교수의 강한 입장을 들어 보라: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예언자들과
방언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신다고 믿는 것은 그만큼 그가 성경을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으로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오직 성경의
위대한 종교 개혁적 원리를 버려 버린 것이다.”5) 그는 다른 개혁 신학자들과 함께
“신약 선지자들의 영감은 그쳐졌으므로, 선지자직도 그쳐졌고,” “선지자적 직임은
가르치는 직임 속으로 편입되어졌다”고 한다.6)

한마디로 개혁파 신학에서는 오늘날에는 선지자(예언자)가 없고 성경에 의존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여 온 것이다.7) 물론 오순절파에서는 오늘날도 예언이 있다는 식의
주장을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계속 주장해 왔다. 그러므로 이 책의 주장은 정통파 교회,
적어도 장로 교회의 가르침과는 대척적인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로교
신학(개혁 신학)의 입장에서는 이 책의 주장을 비성경적이며 반성경적인 주장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에다 어떤 계시의 내용을 더하려고 하는 이런 주장은 그런
식의 잘못을 범하는 다른 이들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 없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와그너 등은 그들이 말하는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시대에는 예언의 양상이 변했다는 점을 말한다(21).8) (구약의 참 선지자의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지만 이 시대에는 참 선지자의 예언도 꼭 성취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그의 논의에 선뜻 동의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또한
와그너는 Y2K에 대한 예언자들의 예언이 전대미문의 가장 성공적인 예언이었다는 세속
학자인 테드 다니엘스(Ted Daniels)의 말을 인용하면서 결론 내리기를 “예언은 조건적”
이라고 주장한다(47). 이 말은 와그너가 테드 다니엘스의 비유적인 말을 과연 바르게
이해하고 하는 말인지를 묻게 하는 말일 뿐만 아니라, 예언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변명조의 말로 들리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와그너가 다니엘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인용하고 있는 것인지는 다니엘스가 하는
말인 “우리는 엄청나게 쏟아 부었는데 (즉, Y2K를 위해 대비했는데), 결과적으로 구원을
받고 살아남았다는 겁니다”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와 관련된다. 과연
 Y2K에 예견된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이 예언자들의 말을 듣고 미리 잘 준비해서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결국 와그너 자신이 잘 말하듯이 그들은 “핑계를 댄다”는 반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47). 또한 예언이 조건적이라고 하면서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선포한 말씀을 바꾸신다고 표현하는 것(47)이 사람들에게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는데 과연 도움이 될 것인가? 오히려 하나님에게는 변함이 없으심을
분명히 하고, 하나님께서 구약에 선포하도록 하신 말씀 안에 회개하면 주께서 돌이키실
것이라고 신인동성론적 표현이 나타나고 있음을 분명히 하는 것이 더 옳지 아니한가?9)

사실 이 저자들은 소위 예언을 하는 이들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예수 믿기 이전에도 일종의 영적 감지력을 지닌 사람들일 경우가 많음을 스테판
만스필드(Stephen L. Mansfield)는 이 책에 실린 자신의 글에서 잘 지적하고 있다
(59f.). 또한 이들은 흑백논리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61). 더구나 이들은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해서는 자신들에게 떠오르는 모든 것을 예언의 말씀으로 쏟아낼
수 있지만, 자기 삶에 대해서는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전혀 들을 수
없다”고까지 말한다(63). 마이크 비클도 이런 이들의 많은 문제를 잘 지적하고 있다
(92). 그렇다면 모든 이들이 이런 이들에게 “너 자신이나 고치라”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또한 마이크 비클은 소위 예언하는 이들의 말에 거짓말이 많다는 것과 회중 가운데
상당한 사람들이 이들에게 조종당한다는 느낌을 받는 데 지쳐 있다는 것도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잘 알고 있다(85). 그러므로 이들은 소위 예언자라고 하는 이들과
부딪히는 많은 경험을 하였고 또 지금도 그런 일을 경험하는 것이다(88). 사실 이 책이
쓰여진 이유가 바로 그런 이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가져야 하는 지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 자체가 이런 직통 예언파의 내재적 문제를 잘 드러내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마이크 비클의 다음 말을 생각해 보라: “…예언하는 사람들이 교회
사역을 무너뜨릴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사역도 마찬가지로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90). 이외에도 이 저자들은 소위 예언자라고 하는 이들이 나타내는
수많은 문제를 잘 알고 있다(111). 톰 해몬(Tom S. Hamon)도 소위 “(오늘날에 있다고
하는) 예언은 …동시에 교회에서 가장 커다란 잠재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121)고 하며, 또한 소위 예언된 것들 가운데서는 “거짓 말씀이나 해로운 말씀이
있었다고”(133)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다(121).

그러므로 우리는 이 저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문제를 잘
알면서도 이런 이들을 예언자라고 하면서 그들이 교회의 건강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 집단은 과연 무엇을 추구하는 것일까?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과 교회의 오랜
성경적 전통을 벗어나 이와 같이 나아가려고 하는 이들의 문제점은 조금이라도 성경과
성령의 가르침에 민감한 이들은 다 잘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이 책을 잘 읽으면 우리는 소위 예언한다는 이들을 그렇게 두려워 할 필요가
없음을 잘 알게 된다. 그들이 실질적으로 계시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 책이 잘 증언하고 있듯이 소위 예언한다고 하는 이들은 문제가
많으며,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고, 문제를 일으키기 쉬운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어떻게 하면 그들을 이런 헛된 추구로부터 돌이켜서 하나님을 성경적으로
바르게 섬기도록 할 것인가 하는 목회적인 문제인 것이다. 이 책이 제시하는 대로 예언
사역을 인정하면서 어떻게 그들을 목회할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하도록 하는 목회적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3. 좀더 심각한 문제

그러나 와그너 등의 주장은 이전의 직통 계시파보다 그런 입장의 전제에 좀더 철저한
면도 지니고 있다. 그것은 그들이 1990년대 이후를 ‘신사도적 종교개혁(New Apostolic
 Reformation) 시대’라고 규정한다는 것이다(25).10) 바로 이런 입장에서 와그너는
“사도들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교회에서 활동하는 공식 직분으로서 올바른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14, 17쪽도 보라). 또한 앞부분에서도 “우리가 수백
 년 교회사에서 처음으로 교회의 성경적 직분 체제를 다시 한번 주목하고 있다”(10)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종교 개혁자들과 함께 의아함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와그너 등이 말하는 ‘사도’라는 말은 좀더 새로운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와그너
등의 주장의 좀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여겨진다.

일반적인 직통 계시파는 1세기의 사도들의 독특한 지위를 인정하면서 예언 사역이
지속된다고 주장해 왔는데 비해, 이제 와그너 등은 그럴 뿐만 이 아니라, 그 예언 사역과
건강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오늘날의 사도들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예언자들을 ‘실라’로 규정하고 그와 바울 같은 관계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와그너는 자신에 대해 척 피어스
(Chuck Pierce)가 예언자로 있고, 자신은 그와 바울-실라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한다
(33). 그리고 자신을 “사도이자 교사”라고 말한다(39).

또한 와그너는 자신의 이런 입장에 근거하여 1999년부터 최소한 일년에 두 번씩
“예언하는 장로들의 사도 협의회”(The Apostolic Council of Prophetic Elders) 모임을
개최하고, 자신이 이 집단의 사도로서 의장직을 감당한다고 말한다(33f.). 물론 와그너는
자신의 사도직이 수평적 사도직(horizontal apostolic)이며, 이 사람들의 모임을 제외하면
어떤 개별적인 예언자들에 대해서 아무런 ‘수직적’ 혹은 지속적인 사도 직분을 감당하지
않는다고 밝힌다(34). 그렇다면 구태여 사도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와그너 등은 사도라는 용어의 사용을 피하려 하지 않는 듯이
보인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의 사도들과 비교하여 어느 정도의 차이는 인정하지만,
오늘날도 사도가 있다는 주장을 와그너 등은 하는 것이다.

결론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가 있다고 주장하며, 일단의 사람들이 ‘사도 협의회’
라는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에 대해 1세기의 사도들이 과연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더
나아가 그 사도들을 불러서 위임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하실까?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그렇게 느끼듯이 이런 식으로 지속하는 것은 결국
사도와 종교적 천재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이지 않을까?

하나님 앞에 민감하고 기도를 열심히 하며 하나님의 뜻에 근거하여 우리 개인의 삶과
교회 공동체의 삶을 유지해 나간다는 것은 반드시 있어야 할 일이다. 그것에 반대할
그리스도인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좀더 유의해야 하고 기도에 힘써서
매일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모든 근거를 주께서는 이미 성경의 가르침과 내주 하시는
성령님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1세기의 사도들이 죽은 이후에 또 다른 사도들이 주어질 것이라는 시사를 성경은
우리에게 주고 있지 않다. 오히려 1세기의 사도와 선지자의 터 외의 다른 터를 닦는 일이
있을 수 없는 것이라는 강한 경고가 성경에서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1세기의 사도들이 우리들의 사도들이며, 그 사도적 가르침에 근거해 교회와
성도들이 세워져 있음을 강조해야만 한다. 성경적 사도적 가르침에 다른 것을 더하는
이들에게 저주를 선언하는 바울의 선포(갈 1장)가 두렵지 아니한가?

성경에 있는 사도들 외에 사도가 있다고 말하며, 어떤 식으로라도 자신을 사도인
것으로 말하는 이들이 있다는 현실이 무시무시한 현실이다. 마찬가지로 이 사도들과
선자지들의 사역이 그쳐진 후에 또한 하나님의 직접적 계시가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하지 아니한 이들로 판단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들 시대에 성경의 명확한 가르침에서 이렇게 현저하게 벗어난 가르침들이
난무하며, 그것이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대의 영적인 어두움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사실 이
책이 쓰여진 이유 중의 하나도 소위 예언을 한다는 이들 사이의 혼란이 너무 심각하여
그들을 위한 일종의 영적 규약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하는데(25), 이런 예언이
지속적으로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이런 책 등이 그런 영적 혼란을 더 부추길 것을 왜
생각하지 못하는지 안타깝다.

오늘날의 혼란을 막고 영적인 어두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길은 성경이 말하는 사도적
가르침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사도적 가르침에 의하면, 성경의 가르침에 무엇이라도
더 하지 않으며 오히려 사도적 가르침에 자신들을 겸손히 복속시키는 일이다. 와그너와
이 책의 저자들에게, 또한 이런 책의 영향을 받는 이들에게 이런 비성경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오히려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굳건히 서 있기를
강하게 요청한다. 그것이 성경을 영감하여 주신 성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길이며
성령님께 온전히 순종하며 복속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부디 바라기는 한국
교회와 세게 교회가 성경과 성령님의 가르침에 참으로 순복하여 주께서 교회를 위해
준비하신 모든 것을 풍성히 누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출처: 양무리 마을

이단을 분별하는 43가지 방법
                                                               탁지원 전도사님(현대종교 대표)

1. 기성교회의 간판을 붙여도 성경에 있는 진리의 말씀보다 개인의 사상을 전파한다. 미신적인 요소가 많다. 성경에 있는 말을 하면 무조건 이단으로 간주해야 한다.


2. 성경을 가감한다.(성경을 완전히 곡해하면서 자기들의 교파확장을 위하여 소책자 및 전도용 책자를 만든다)


3. 이단들은 거짓예언, 환상을 좋아하며 신도들을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4. 한때 교단의 교파에 몸 담았던 자들이 신흥교파를 만들어 낸다.


5. 하나님의 절대섭리를 인간의 자유의지로 조정하려고 한다.


6. 종말론 교리 중에 시한부 재림 및 휴거와 재림일자를 못박아 놓는다.(성경의 마태복음 24장에 분명히 예수재림을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7. 구원교리 중에도 하나님의 예정론을 부인하며, 창조이전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8. 절기와 때 그리고 음식물에 대하여는 특히 율법적이다.


9. 이단들은 자기들만 구원받았다고 주장한다.


10. 주관적 개인 체험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만 비밀로 주셨다고 주장한다.


11. 성경에 있는 말을 많이 인용하되 선지지나 사도들의 말을 자기들의 교주의 말과 동등시한다. 그리고 자기들의 교리 정립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12. 그들의 경전과 교리가 시시때때로 환경에 따라서 변한다.


13. 대부분의 이단들은 가정을 버리도록 유도하는 결과를 가져오며 부녀자들과 청소년들을 유혹하여 노예취급을 한다.


14. 이단들은 거의가 다 과대망상 환자, 내리는 영웅주의나 인기주의에 심취해 있다.


15. 이단들은 분리주의자라고 자처한다.


16. 신흥이단들은 사랑을 외치는 팜플렛을 돌린다. 전도지는 기성교단을 은근히 꼬집는 내용으로 꽉 차 있다.


17. 이단들은 언제나 도피할 성을 찾고 있으며 항상 마음이 불안하여 나중에는 죽음도 불사하며 함께 망하는 것도 공동의 운명으로 알자고 강조한다.


18. 이단들은 새로운 신자들을 전도대상으로 삼지 않고 오히려 기성교인들을 상대로 포교활동을 전개한다.


19. 이단들은 언제나 성경전체를 사용치 않고 성경의 몇 구절만 외워서 사용하기 때문에 깊은 논쟁을 피하고 자기들 집단에 한번만 와 보라고 강조한다.


20. 대부분 사회지도층 인사 및 정계의 인사들을 영입하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금의 돈을 뿌린다.


21. 이단들은 청소년들에게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프로그램을 기성교회가 하지 못하는 것을 개발하여 포교활동을 전개한다.


22. 이단들은 처음에는 헌금을 강요하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는 서서히 자기들의 본색을 들어내면서 자기들만이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기성교회에 헌금을 하는 대신에 자기들 집단에는 재산까지라도 팔아서 바치도록 강요한다.


23. 이단들은 성경에 없는 말들을 함부로 하면서 또 성경을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4. 이단에 빠지는 자들은 교회관이 분명치 않기 때문에 Para Church Movement에 지나치게 흥미를 느끼고 교회안의 활동이나 봉사는 거의 하지 않는다.


25. 이단들 중에 기복사상을 심취되어 귀신론이나 샤머니즘 사상만을 강조하는 교파도 있다.


26. 이단들 중에는 전인격적인 기독교 교육보다는 사람에게 즉흥적 기쁨을 구하는 임기응변식의 전도를 하는 무리들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7. 이단의 정의에서 밝힌대로 성도들의 신앙 즉 정통적 교리 및 역사적인 정통성에서 이탈된 무리들은 이단으로 간주한다.


28. 이단들은 예수 외에 다른 이름, 다른 창조주를 나타내고 있는데 이단교주가 메시야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재림주라고도 하며 죽어도 부활한다고 외친다.


29. 시한부 종말설에 심취된 이단들은 학생들은 공부도 중단하고 가정은 파괴 될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 사회를 크게 혼란케 한다.


30. 이단들은 지역사회에 있는 교회들과 연합하여 교계의 행사하는 일을 기피한다.


31. 이단 교파의 교주들은 쇼맨쉽(showman-ship)이 매우 강하다.


32. 이단파의 교주들은 성령의 불 받은 종, 특히 은사 받은 종, 특별계시를 받은 종으로 자처하고 있다.


33. 이단교파의 교주들 중에는 마귀의 힘을 빌어 병 고치는 일을 자행하면서도 ‘예수가 고치셨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인용하기도 한다.


34. 이단들은 666이나 14만 4천 등 숫자들을 자기의 편의대로 많이 사용한다.


35. 이단교파의 교주들은 거의 대부분 신학교육이 결여 돼 있다.


36. 이단에 빠진 무리들은 괴상한 행동이나 이상한 영음을 자기들만 받았다고 주장하며 늘 영음만을 강구한다.


37. 이단파들의 카리스마적인 수법이나 행정 및 재산과 조직 관리는 거의가 저들의 소속돼 있었던 이단 교파에서 배운 것이다.


38. 최근의 이단들 중에는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및 삼위일체를 강요하면서도 은사면에 더 치중하여 하늘의 비밀을 깨달았다고 강조하는 무리들도 있다.


39. 이단교주들은 과거의 전과기록이 있거나 사기성이 많은 것이 특성이며 거짓말을 잘하는 습관이 있다.


40. 성경을 자기들에게 편리하도록 고쳐서 사용한다.


41. 이단들이 하는 상투적인 말은 “하나님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보내셨다. 하나님께서 비밀을 알려주었다. 꿈에 보았다”라는 말들을 자주 사용하여 초신자들에게 공포감을 주는 버릇이 있다.


42. 이단의 무리들은 기성교계의 좋은 이름들을 거의 다 도용하고 있다. 특히 통일교에서는 “기독교나 국제 및 세계”라는 단어를 앞에 쓰고 있어서 기성교계와 혼동을 일으키고 있다.


43. 이단들도 “깨어라”라는 말을 많이 사용함으로써 지금 말세의 교회를 어지럽히며 혼란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는 마귀들’을 대적하기 위해서 모든 기성교회의 건전한 성도들은 참으로 깨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단에 관한 판별법을 종합하여 요약하면 이단무리는 지나친 시한부 종말론 사상에 심취하여 그 신비에 빠져든 무리들이다. 이들 이단 교주들은 성경 외에 사상을 도입하여 엉터리 예언이나 점장이 식으로 선량한 교인들을 유인하여 탐심을 채운다. 그리고 이들은  성경해석을 제멋대로 하며 건전한 교계를 혼란시키는 무리들이다.
  이제부터 이단을 쉽게 구분하려면
  사도신경 고백 부인 외에 예수 십자가 대속과 부활, 그리고 성경을 다 믿지 않는 무리들이 교주를 신격화시키면 이단으로 간주해야 한다.
  그리고 말씀 없이 지나친 은사에 매력을 느끼도록 유도하면 문제가 있는 것으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은밀히 자칭 하나님처럼 심판주, 말세의 참종, 참어린양 등의 명칭이 따라다니면 반드시 이단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마지막 때에 교계를 혼미케 하는 이단무리들에게 현혹되지 않기 위해 건전한 교회에서 목회자들을 도우며 조용히 그리고 뜨겁게 성실히 신앙 생활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할 때에 주님은 자기 눈동자 같이 사랑하는 양들을 지켜 보호할 것이다.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신복음주의

- New Evangelicalism -


D. 클라우드 / 임재영 옮김 


신복음주의(新福音主義)의 역사


1. 근본주의자와 현대주의자 간의 논쟁이 신복음주의를 낳는 발판이 되었다.


   a. 현대주의(Modernism)는 1800년대 유럽에서 시작되어 급속히 전파되었다.

   b. 현대주의는 합리주의 진화론적 사고를 기독교에 적용하였다.

   c. 현대주의의 핵심 원칙은 성경에 대한 역사적 비평적 접근이다.  1951년 판  Revised Standard Version(RSV)의 번역자들은 현대주의자들이었으며, 그들의 저서는 성경에 대한 공격의 예를 잘 보여주고 있다.


     “때로는 계시가 거룩한 책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심지어 기독교계에서는 성경기록들이 실제적으로 저자(著者)들이 성령님을 통하여 받아서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되어 왔다.....명백하게 이것은 기독교의 입장이 아니라고 본다....참된 기독교의 입장은 성경이 계시의 기록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Clearence T. Craig, 기독교의 시작, 1943, pp. 17,18)


     "성경의 처음 다섯 권의 책(역자 주 : 모세오경)에서 발견된 연대와 인물은 모두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Julius Bewer, 구약성경의 문학, 1940) 


     “(엘리야가) 그를 체포하기 위해 보낸 병사들 위에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달라고 빈 이야기는 분명히 전설적인 것이다.... 홍해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우리는 더 이상 알 수 없다.”(Fleming James, 우리 종교의 시작)


     “우리는 성경 전체와 각 부분이 우리가 반드시 믿고 행하여야 하는 신성한 권위를 말하고 있다고 간주할 수 없다.”(Miller Burrows, 성경 신학 개론)


   d. 북아메리카의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신학적 현대주의와 격론을 벌였다. 이들은 근본주의자로 알려지게 되었다.


    (1) 죠지 돌라(George Dollar)는 그의 저서 ‘근본주의 역사’에서 근본주의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역사적 근본주의는 성경의 모든 주장 및 견해와 투쟁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모든 비성경적 주장 및 견해에 관한 문자적 해석이다.” (돌라, 미국 근본주의 역사, 1973)


    (2) 근본주의자들은 오류에 대항하여 담대히 말씀을 선포했다. ‘근본주의자’라는 이름은 1910년부터 1915년까지 발간된 “근본주의(The Fundamentals)"라는 책에서 유래하였다. 이 책은 64명의 저자가 쓴 90개의 논문으로 구성되었다. 각 논문은 신학적 자유주의와 로마 카톨릭과 같은 오류를 드러냈다. 이들 논문은 두 명의 부유한 사업가 형제인 Milton과 Lymen Steward에 의해 발행되었으며, 약 300만부 가량이 미국을 비롯한 21개국의 기독교 사역자들에게 무료로 배포되었다.


    (3) 많은 근본주의자들이 현대주의가 침투한 여러 교단들과 분리하였다. 돌라(Dollar)는 1875년부터 1935년까지의 기간을 두 기간으로 나누어 근본주의를 분류하고 있다. 1875년~1900년에는 보수적인 지도자들이 교단들 안에 있는 현대주의에 대항하여 기를 높이 들었다. 1900년~1935년에는 이러한 투쟁의 결과로 사람들이 교단을 떠나 분리된 교회와 그룹을 형성하였다. “그들은 교회 분리의 건축가들이었다.”


2. 신복음주의는 근본주의를 거부하는 것으로 등장했다.


   a. 신복음주의의 창시자들은 근본주의자들의 가정에서 자랐다. 그들은 “2세대”였다(사사기 2:10).

   b. 해롤드 오켕가(Harold Ockenga)는 1948년에 “신복음주의"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오켕가는 보스톤에 소재한 Park Street 교회 목사이며, 미국복음주의자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Evangelicals:NAE)의 창시자이며, 풀러 신학교의 공동 창시자이자 전(前) 학장이며, 세계복음주의협의회(World Evangelical Fellowship:WEF)의 초대 회장이며, 골든대학교와 골든-콘웰 신학교 학장이며, 빌리그래함 복음주의협회 지도자이며, Christian Today 지(誌) 이사장이며 전(前) 편집인이었다.


     “신복음주의는 본인이 파사데나의 시민회관에서 행한 집회연설과 관련하여 1948년에 탄생하였다. 이 연설은 근본주의의 신학적 견해를 재확인하면서, 근본주의의 교회학 사회학 이론을 거부했다.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울려 퍼지는 분리주의의 거부와 사회 참여의 요구에 대하여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 헤롤드 린젤(Herold Lindsell), 칼 헨리(Carl F. Henry), 에드워드 카아넬(Edward Carnell), 글리슨 아처(Gleason Archer)와 같은 유명인과 대표자들이 이 견해를 지지했다. 우리는 운동을 시작할 의도가 없었으나 우리가 강조한 부분이 광범한 지지를 얻어냈고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신복음주의는.....분리주의를 거부하고 현 시대의 신학적 대화에 참여하는 점에서 근본주의와 다르다. 신복음주의는 삶의 사회학적, 정치적, 경제적 분야에 복음을 적용하는 것을 새롭게 강조한다. 신복음주의자들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기독교 신학의 재진술, 신학적 논쟁에의 재참여, 교단적 지도력의 회복, 그리고 인간의 태고성, 홍수의 보편성, 창조에서의 하나님의 방법, 등과 같은 신학적 문제들의 재고찰을 강조하였다.” (해롤드 오켕가, 헤롤드 린젤의 저서 “The Battle for the Bible" 서문)


신복음주의의 영향


신복음주의는 급속히 전파되었고 수많은 교회 가운데 중요한 철학이 되었다.


1. 신복음주의는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빌 브라이트(Bill Bright), 헤럴드 린젤, 죤 스톳트(John Stott), 힐(E. V. Hill), 레이톤 포드(Leighton Ford), 루이스 팔라우(Luis Palau), 찰스 스탠리(Chales Stanley), 빌 하이벨즈(Bill Hybels), 워런 위어스비(Warren Wiersbe), 척 콜슨(Chuck Colson), Donald McGavran, 토니 캠볼로(Tony Campolo), 아더 글래서(Arthur Glasser), 제임스 케네디(D. James Kennedy), 데이빗 호킹(David Hocking), 챨스 스윈들(Charles Swindoll), 토니 멕스웰(Tony Maxwell), 토니 에반즈(Tony Evans), 맥스 루카도(Max Lucado) 등과 같은 영향력 있는 기독교 지도자들에 의해 대중화되었다.


2. 신복음주의는 대학생선교회(CCC), 청소년복음전도회(Youth for Christ), 기독학생회(IVF), 성경으로 돌아가라(Back to the Bible) 등과 같은 대형 초교회 사역에 의해 국제적으로 전파되었다.


3. 신복음주의는 휘튼 대학교, 풀러신학교, 골든 콘웰(Gordon-Conwell) 신학교, 웨스터민스터 신학교, 무디 성경학교, 로스엔젤레스 성경학원(BIOLA), The Evengelical Divinity School 등과 같은 영향력 있는 학교에 의해 빠르게 전파되었다.


4. 신복음주의는 Erdmans, Zondervan, Moody, Thomas Nelson, Broadman 등과 같은 대형 기독교 출판사에 의해 빠르게 전파되었다.


5. 신복음주의는 로잔느 세계복음화위원회(Lausanne Committee for World Evangelization), 미국복음주의자협회(NAE), 영국복음주의동맹(Evangelical Alliance of Britain), 세계복음주의협의회(WEF), 미국종교방송가협회(National Religious Broadcasters), 미국주일학교협회(National Sunday School Association), Promise Keepers 등과 같은 국내 및 국제 조직에 의해 빠르게 전파되었다.


6. 신복음주의는 세계복음화국제대회(International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 (Lausanne, 스위스 1974년 7월)과 1983, 1986, 1999년에 암스텔담에서 개최된 순회복음전도자 국제대회(International Conference on Itinerant Evangelist) 등과 같은 국제 회의를 통하여 빠르게 전파되었다.


오늘날 스스로를 복음주의자라고 칭하는 자들은 예외 없이 거의 신복음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이 용어들은 동의어가 되었다.


신복음주의의 원칙들


다음은 신복음주의의 6 가지 주요 원칙들이다.


1. 분리의 거부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울려 퍼지는 분리주의의 거부에 대하여.....열렬한 반응을 보였다.”(해롤드 오켕가)


예 :

   a. 빌리 그래함은 1950년대 이후로 로마 카톨릭 및 현대주의자와 함께 손을 잡고 일해 왔다. 복음주의 진영은 그를 칭찬하고 높이고 있다.


   b. 복음주의자들은 연합감리교회와 미장로교회와 같이 현대주의자가 침투한 교단들과 분리되지 않았다.


   c. 1997년에 미복음주의자협회(NAE) 회장인 돈 아구에(Done Argue)는 미교회협의회(NCC) 총회에서 연설을 했다. 극단적으로 현대주의적인 NCC는 1993년 11월에 미니에폴리스에서 개최된 Re-imaging Conference와 같은 일들을 후원했다. 이 회의에는 다양한 주요 교단에서 온 수백 명의 여자들이 동성애를 성원하고 여신 소피아를 경배했다.


   d. Foundation 잡지의 부발행인인 데니스 코스텔라(Dennis Costella)는 1986년에 암스텔담에서 개최된 세계복음화국제대회에서 자유주의의 위험에 관해 경고하는 메시지를 전한 영향력있는 복음주의 지도자인 스티븐 올포드 박사(Dr. Stephen Olford)와 그의 메시지에  관해 대담을 가졌다. 


     코스텔라 : “당신은 메시지에서 자유주의의 위험과 어떻게 자유주의가 복음전도자와 그의 사역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강조했다. 이 회의는 복음전도자들에게 자유주의와 자유주의자를 어떻게 인지하며, 그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동일한 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지에 관해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올포드 : “자유주의자를 피하는 것은 잘못된 영이다! 나는 자유주의자들과 같이 지내는 것을 좋아하며, 특별히 그들이 기꺼이 배우고자 할 때, 모든 답변을 가지고 있는 고집 센 근본주의자들보다 같이 지내기를 훨씬 더 좋아한다.”


이것은 오늘날 복음주의에 침투한 태도의 한 예이다. 분리는 실행되지 않고 있으며 사실상 멸시되고 있다.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그들을 지목하고...그들을 피하라.” (롬 16:17)

     “너희는 맞지도 않는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후 6:14)

     “사귐을 갖거나 친교를 나누지 말라.”(고후 6:14)

     “그들 중에 나와서 분리되라”(고후 6:17)

     “그러한 자들로부터 떠나라.”(딤전 6:5)

     “피하라.”(딤후 2:16)

     “자기를 정결케 하면”(딤후 2:21)

     “이 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딤후 3:5)

     “거절하라”(딛 3:10)

     “너희 집에 받아들이지도 말고 그에게 축복 인사도 하지 말라.”(요이 10)  


2. 에큐메니칼 관계가 교리보다 더 중요하다.


   “신복음주의자들은 신학적 논쟁에의 재참여, 교단적 지도력의 회복을 .....강조하였다.”(해롤드 오켕가)


예 :

   a. 마이클 하퍼(Michael Harper)의 책 세 자매들(Three Sisters)(1979년 틴데일 하우스 발행)은 복음주의자, 은사주의자, 로마카톨릭 사이의 하나됨을 촉구한다. 세 자매의 이름은 에반젤린(Evangeline)과 카리스마(Charisma)와 로마(Roma)이다. 저자는 “기독교계에서 세 세력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는 하나됨은 바람직하며 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확신이다.”라고 주장했다. (p. 41)


   b. 바스킨-로빈스 기독교 :  콜로라도 스프링 시(市)에 소재한 새생명교회의 목양자 테드 하가드(Ted Haggard)는 에큐메니칼 복음주의를 촉구하는 논설에서 교리적 신념을 아이스크림의 여러 가지 맛에 비유했다. “나는 모든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어떤 때는 카라멜과 생크림과 호두와 체리가 있는 바닐라를 원한다. 어떤 때는 바나나 또는 쵸코렛 칩이 있는 로키 로드(Rocky Road)를 원한다. 이것이 내가 바스킨-로빈스 아이스크림 가게를 좋아하는 이유이다.....내가 목양자로 있는 콜로라도 주(州)의 콜로라도 스프링 시(市)에서 우리는 교회의 90 가지 맛을 누린다.....나는 많은 기독교 교단에 존재하는 훌륭한 성경 해석을 감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당신은 당신의 교회와 거리의 회중 사이에 담을 세운 적이 있는가? 당신은 마음으로 다른 기독교 단체를 판단하거나 그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한 적이 있는가? 나는 성령님께서 우리의 담을 제거하시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우리가 연합되었음을 증명하도록 부르시고 계신다고 믿는다.” (테드 하가드, “We Can Win Our Cities...Together" Charisma, 1999년 7월) 


   c. 잭 반 임프(Jack Van Impe) : "성령님께서는 에베소서 4:3에서 우리가 ‘화평의 띠로 성령의 하나됨을 힘써 지켜야’ 한다고 선언하고 계신다. 과거에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그리스도인들을 나누었다. 하나님께서는 카톨릭교도, 루터교도, 침례교도, 오순절주의자의 마음에 오신다. 그리고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과 함께 우리는 서로 교제를 나눌 수 있다.” (반 임프의 TV 프로그램, 1995년 7월 23일)


   d. 죠셉 스토웰(Joseph Stowell)(무디 성경학교 교장)은 1996년 3월 미복음주의자협회(NAE) 총회에서 향한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의 차이가 우리를 나누도록 하신 적이 없다. 만약 당신이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면 당신은 그 차이점과 상관이 없으며, 그 밖에 다른 모든 것도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 아틀란타에서 개최된 Promise Keeper 성직자 회의는 그 하나됨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내가 아틀란타에서 한 것 같이, 우리는 반드시 우리의 태도를 회개하여야 한다. 나는 내가 갖고 있는 교리와 다른 교리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가서 사과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교제할 때 부흥이 일어난다.”


성경은 교리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a. 우리는 거짓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과 분리되어야 한다. (롬 16:17)

   b. 우리는 모든 거짓 교리의 바람에 주의해야 한다. (엡 4:14)

   c. 말씀 선포자(설교자)는 교리에 주의해야 한다. (딤전 4:16)

   d. 성경은 교리를 위해 주어졌고(딤후 3:16), 교리로 선포되도록 주어졌다. (딤후 4:2)

   e. 마지막 때는 건전한 교리로부터 돌아서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딤후 4:3)

   f. 말씀 선포자는 교리를 사용하여 교회를 세우고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딛 1:9)

   g. 우리는 건전한 교리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 (요일 2:24-27)

   h. 어떠한 거짓 교리도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딤전 1:3)


3. 긍정적 사고(Positivism), 판단하지 않는 철학(judge-not philosophy), 교리적 논쟁의 혐오, 중립주의(neutrakism)의 태도, 영적 평화주의(pacifism) 등을 사랑함.


   “신복음주의는.....분리주의를 거부하는 점에서 근본주의와 다르다.”(해롤드 오켕가)


예 :

   a. 빌리 그래함 : “복음주의 협회(역자 주 : 빌리그래함 복음주의 협회)는 호의적이든 적대적이든 어느 특정 교단을 판단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우리는 교회 안에 있는 다양한 분열에 관여할 의도가 없다. (빌리 그래함, United Church Observer, 1966년 7월 1일)


   b. 교회 성장 철학 : 메시지는 반드시 비논쟁적이고 낙관적이어야 한다. “피터 와그너는 누구에게 대해서도 부정적인 평가를 하지 않는다. 그는 무엇이 좋은 것인가를 찾고, 어떠한 비평적 질문도 하지 않은 채 그 좋은 것을 긍정하는 것으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c. Promise Keeper 지지자들에게서 온 편지


     “나는 당신이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지 말 것을 요구하면서 이 편지를 시작하고 맺고자 한다.”


     “나는 심한 혐오감으로 당신의 좁은 견해와 판단하는 주장을 읽었다....”


     “이 마지막 때에 우리의 차이점보다는 공통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d. 말씀 선포를 대적하는 현대 기독교 음악(CCM) 철학


     “나는 거친 설교조가 아닌 방식으로 교제한다.”(Steven Curtis Chapman)

     “우리는 설교조를 일절 배제한 채 청년 문제와 상태를 다룬다.”(Morgan Cryar)

     “나는 사람들을 향하여 말씀 선포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Randy Stonehill)

     “우리는 가능한 한 설교조가 아닌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Donna Summers)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a. 성경에는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이 모두 있다. 말씀 선포자의 일은 그 모두를 선포하는 것이다. (딤후 4:2)


   b. 구약의 대언자들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에녹:유다 14-15)


   c.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천국)보다 지옥에 관하여 더 많이 선포하셨다.


   d. 바울은 계속해서 교리적 논쟁에 연루되었다. - 파포스의 마법사 엘리마스(행 13:9-10), 빌립보의 유대인 불신자(행 13:40-41), 에베소의 거짓 교사들(행 20:28-31), 부활에 관해 의문을 가진 자들(고전 15장), 고린도의 거짓 그리스도와 복음(고후 11장), 갈라디아의 유대주의자들(갈라디아서), 빌립보의 악한 일꾼들(빌 3:2), 골로새의 그노시스주의자들(골 2장). 목회서신서에서 바울은 거짓 교사들과 타협자들의 이름을 10번이나 거론하면서 그들에 관해 경고했다.


4. 교리의 재고찰


   “신복음주의자들은......인간의 태고성, 홍수의 보편성, 창조에서의 하나님의 방법, 등과 같은 신학적 문제들의 재고찰을 강조하였다.”(해롤드 오켕가)


해롤드 린젤은 그의 저서 ‘Battle for the Bible"과 “Bible in the Balance"에서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널리 퍼져있는 성경 영감 교리의 몰락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유감스럽게도 필자는 복음주의자란 용어가 너무나 타락해서 그 유용성을 상실했다고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40년 전에 복음주의자란 용어는 신학적으로 정통이며 그 특성 중 하나로 성경의 무오류성을 주장하는 자들에게 주어졌다.....그로부터 약 10년도 못 지나서 신복음주의는....성경의 무오류성(infallibility)이나 무오성(inerrancy)에 관하여 점점 증가하는 회의론으로 인해 내부로부터 공격을 받았다.” (해롤드 린젤, The Bible in the Balance, 1979, p.319)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이 무오류(無誤謬)한 성경기록이라고 가르치셨다.


   a. 구약은 완전한 문자이다.(마 5:17-18)

   b. 구약은 폐할 수 없다.(요 10:35)

   c. 구약은 신성하게 계획된 책이다. (눅 24:44)

   d. 구약의 모든 부분은 영감을 받았고 권위가 있다(눅 24:44). 구약에 기록된 인물, 사건, 기적은 참되며, 역사적 사실이다 : 창조(막 13:19), 아담과 이브(마 19:4-6)(막 10:6-7), 노아와 홍수(마 24:37-39),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눅 17:28-29), 요나와 고래(마 12:39-41)

   e. 성경기록은 스스로 구약성경의 저자들을 주장하였다. : 모세는 율법책들을 기록하였다(눅 24:44). 다니엘과 이사야는 자신들의 이름이 실린 책을 기록했다(마 24:15)(요 12:38-41)


5. 지적 교만 : 학문의 교만


   “신복음주의는....현 시대의 신학적 대화에 참여하는 점에서 근본주의와 다르다.....신복음주의자들은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기독교 신학의 재진술, 신학적 논쟁에의 재참여를 강조하였다.” (해롤드 오켕가)


예:

   a. 빌리 그래함은 1971년에 개최된 미복음주의자협회(NAE) 연차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Christianity Today 지(誌)가 29년 전에 크게 요구되었던 지적인 탁월함과 창의력을 복음주의자들에게 주는 일에 있어서 주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믿는다.”


   b. 죤 스톳트(John R. W. Stott)는 1998년에 대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50년이 넘게 진정한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은 근본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근본주의자들은 비지성적이며, 영감의 구술설(口述說)을 주장하며, 해석에서 문자주의적이며,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을 부인하며, 인종적 편견에 관대하며, 에큐메니즘에 대해서 전적으로 부정적인 경향이 있다.”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a. 하나님께서는 지적인 교만에 대하여 경고하고 계신다(잠 11:2)(고전 1:25-30)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어리석은 것들을 택하시고, 하나님께서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시며”


   b. 초세기에 하나님께서 부르신 말씀 선포자들은 겸손한 사람들이었다(행 4:13) “학식이 없는 무식한 사람들”


   c. 말씀 선포자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에는 고등학문의 학위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디모데전서 3장)(디도서 1장).


6. 사회적 정치적 활동을 위대한 명령(Great Commision)과 동일한 수준으로까지 높임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사회 참여의 요구에 대하여 열렬한 반응을 보였다.....신복음주의는 삶의 사회학적, 정치적, 경제적 분야에 복음을 적용하는 것을 새롭게 강조한다.” (해롤드 오켕가)


예 :

   a. (미복음주의자협회(NAE)의 한 분과인) 복음주의해외선교협회(Evangelical Foreign Mission Association)는 1966년에 사회 활동에 관한 다음의 성명을 채택했다. “....가능한 언제든지 복음주의자의 사회 활동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을 포함할 것이다.....우리는 모든 복음주의자들에게 전세계에 걸친 모든 형태의 인종의 평등, 인간의 자유, 사회 정의를 위하여 공공연하고 확고한 입장을 가질 것을 권하는 바다.”


   b. “복음과 복음의 사회적 관계, 개인적 회심과 사회적 활동은 모두 교회의 사명에 포함된다.” (David Hubbard, 풀러 신학교 학장, AP, Los Angels Herald-Examiner, 1971년 5월 15일)


   c. “....우리는 복음주의와 사회 정치 참여가 모두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의무의 한 부분이라고 단언하는 바이다.” (세계복음화국제대회, 로잔, 스위스, 1974년 7월)


   d. “모든 World Vision 프로젝트에서 일하는 자들은 지역사회가 요구할 때에는 언제든지.....그들의 소망에 관한 이유를 제시할 준비가 되어 있다.....우리가 일하는 모든 나라에서 공식적인 공개된 복음주의는 국가 정책으로 금지되었으며, 우리는 그 정책을 존중한다.” (World Vision web site)


   e. “우리는 그것이 기독교의 영역이 아님을 알고 있다.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주의하지 않는다.” (글랜다 무어 간호원, 나사렛 교회, 인도에서 지진 희생자에 대한 사역을 설명하면서)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가


   a. 위대한 명령은 사회적 정치적 활동에 대하여 어떠한 것도 언급하지 않는다(마 28:18-20).


   b. 사도들은 사회적 정치적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복음을 선포하는 일에 자신을 드렸다(행 8:4).


- David Cloud 著 『Defense of the Faith』에서 발췌 - 

늦은비/신사도 운동가들이 자신들을 비평하는 사람들을 "종교의 영을 가진 바리새인들"이라고 공격함으로써 비평에 대항하고 있음은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가인의 길(늦은 비의 유산 9장)에서 보듯이 이들은 말로서 공격할 뿐 아니라 실제로 전쟁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 캔자스시티선지자이자 대표적인 늦은비/신사도운동가인 모닝스타 미니스트리의 릭 조이너는 이 영적 내전에 대한 환상에 대해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다.


"올해 2월 23일에 교회가 '영적 내전'을 향해 가고 있음이 나에게 세 번째로 보여졌다... 이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란 교회 안에 있는 형제들의 참소자(비난자)의 거점(견고한 진)을 완전히 정복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교회에 닥친 그 어느 것보다 잔인한 전투가 될 것이다. 모든 내전이 그렇듯이, 교회에서 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형제가 형제를 맞서 싸워야 하는 일이 생길 것이다... 이 싸움은 싸워야만 한다. 이 전쟁은 참소자를 교회 밖으로 몰아내고, 다른 방법으로는 이룰 수 없을 일치를 교회에 가져올 기회가 된다... 다가오는 것은 어두움이다." - 릭 조이너 / 모닝스타예언회보


크리스천들이 두 패로 갈려서 전쟁을 한다는 그의 환상이 맞건 틀리건 간에, 그들은 전쟁을 일으킬 태세이다. 하지만, 그에 의하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늦은비/신사도 지지자들이 아니라 마귀에게 이용당한 우리 크리스천들이다. 릭 조이너의 아래 글에 의하면 오고 있는 지옥의 군대는 사실상 크리스천들이다. 그들의 비성경성을 비평하는 크리스천들은 그들의 적일 뿐 아니라, 그들이 대적하는 지옥 군대의 전방 사단이며 또한 마귀 군대의 말(馬)이란 것이다.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그들의 주장은 이런 것이다. "우리 편이 되어 따르던지 아니면 지옥의 군대의 일원이 될 각오를 하라!"

(여기서 "우리"란 신사도운동가뿐 아니라 말씀에서 떨어지는 모든 세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들에게 동참하지 않는 크리스천들은 마귀에게 지배를 받아 지옥의 군대에 편입될 것인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우리를 자기의 것이라는 표로 인을 치시고, 그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22, 표준새번역)


--

이하는 릭 조이너의 지옥의 군대에 관한 글이다.

 

[지옥의 군대가 진군해 오고 있다!]

조이너의 "빛과 어두움의 영적전쟁"에서 발췌 (옮긴 글 / 번역서와 조금 다를 수 있음)

 

“마귀의 군대는 엄청난 규모로 내 시야 끝까지 뻗쳐 있었다. 그것은 각기 다른 군기를 들고 있는 부대들로 나뉘어 있었다. 맨 앞에 있는 부대들은 교만, 자기 의, 존엄, 야욕, 불의한 판단, 그리고 질투와 같은 깃발들 아래서 진군하였다.

나의 시야 너머에도 훨씬 더 많은 악의 군대들이 있었지만, 지옥에서 나온 이 끔직한 선봉대가 가장 강력해 보였다. 이 군대의 대장은 바로 '형제들의 참소자'였다. 이 군대들이 들고 있는 무기들에 이름이 붙어 있었다.

칼의 이름은 협박이었고, 창은 배반, 그리고 화살들은 참소, 험담, 중상, 흠잡기 등이었다. 이 군대의 주공격을 준비하기 위하여 전초대로 거절, 앙심, 조급, 용서하지 못함, 정욕 등의 이름을 가진 마귀들의 중대들이 앞서 나가 있었다...

이 군대의 일차 전략은 가능한 대로 모든 관계, 즉 각 교회들의 상호관계, 성도들과 목사들, 부부, 부모와 자식, 그리고 심지어 어린이 서로간의 모든 관계에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었다. 이 정찰병들은 교회들과 가정들 그리고 각 개인들 안에 있는 틈새를 찾아내기 위하여 파견되었다. 그러면 거절, 앙심, 정욕과 같은 것들이 이를 이용하고 틈새를 더욱 벌리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뒤따라 온 수많은 부대들이 이 틈새를 통해 밀어닥치고 희생자들을 완전히 정복하는 것이다.

이 환상 중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이 군대들이 말을 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그리스도인을 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들 중 대부분은 옷을 잘 차려입고, 존경받을 만하고 또한 세련된 데다 교육도 잘 받은 듯이 보였으며, 사회 각 계층을 고루 대표하고 있는 듯하였다...

이들 대부분의 신자들은 하나 이상의 귀신들에게 지배를 받고 있었지만, 그 마귀 중 하나가 지휘를 하고 있는 것이 명백히 보였다...

내가 멀리 이 군대의 후위를 바라보니 바로 ‘참소자’의 측근들이 보였다. 나는 그의 전략을 깨닫기 시작했고 그것이 너무 단순함에 놀랐다. 그는 분쟁이 난 집은 온전히 서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 군대는 교회에 분열을 가져와 교회가 완전히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도록 획책하는 것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그리스도인들을 이용하여 자기 형제들간에 싸움을 일으키는 것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전방 사단들 중 대부분은 그리스도인들이거나 적어도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한 사람들이었다. 이들 속임수에 빠진 신자들이 ‘고소자’에게 복종하여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들을 지배하는 그의 힘은 강화되어 갔다. 따라서 군대가 전진해 나가면서, 그의 확신과 그의 모든 지휘관들의 확신은 그만큼 커지고 있었다. 이 군대의 힘은 그리스도인들이 악의 방식에 얼마만큼 동조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분명했다.”

 

p.s.

참고로, "지옥의 군대가 진군해 오고 있다"는 글은 K교회 사이트에 [공지] 게시물로 올라와 있더군요.

안식교의 밝혀지지 않은 이단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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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안식교인들과 인터넷 상에서 많은 토론을 해본 적이 있기 때문에, 안식교의 일반적 교리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또 최삼경목사, 진용식목사등 많은 목사님들이 교회와 신앙이라는 잡지에서 안식교와 공식적인 토론을 한 글이 있으므로, 우리는 안식교에 대한 자료가 많이 있으며 대부분은 공개되어 있으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안식교의 교리 중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 몇가지가 있다. 그리고 그 두가지는 대단히 위험한 교리이면서도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다.

1) 예수의 이름

본인은 "살아남는 이들"(시조사, 1994년, 엘렌화잇 저)이란 안식교의 작은 소책자를 갖고 있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안식교인과 토론을 하는 도중에 자료를 얻기 위하여 상기 책자를 구하여 읽게 되었는데, 그 책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 천사와 더불어 모세를 매장하신 <미가엘 즉 그리스도>는 그가 잠깐동안 무덤에 있은 후에 하늘에서 내려오사 <그를 부활시켜> 하늘로 데려 가셨다.(살아남는 이들, 157쪽)

#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온유하게 그를 하늘 아버지께 위임하시면서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유9)고 말씀하셨다.(같은 책 157쪽)

#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사단이 요구하던 <모세의 시체를 부활시켰다>(같은 책, 157쪽, 아래)

# 모세는 죽었으나 <미가엘이 내려와 그의 육체가 썩기전에 그를 다시 살렸다>. 사단이 그의 시체를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미가엘이 모세를 부활하게 하여> 하늘로 데려 가셨다.(같은 책, 186쪽)

# 모세는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활할 자들을 대표>하였다.(같은 책, 186쪽 아래)

본인은 상당히 놀랐다.
"미가엘 즉 그리스도"라는 부분과 "모세를 부활시켰다"는 부분은 충격적이었다. 안식교에서는 예수를 천사장 미가엘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단에게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유1:9)라고 말한 천사장 미가엘을 예수라고 하는 것이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유1:9)

예수님이 마귀와 다투어 변론하면서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사용하지 못하였단 말인가? 성경은 천사장 미가엘이라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이 천사란 말인가?

언젠가 교회와 신앙의 홈페이지에 안식교인들의 토론게시판이 있었다.
그곳에 많은 안식교인이 글을 올리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본인은 위에서 언급한 부분에 대해서 질문을 하여 보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은 미가엘"이라고 대답하였으며, "모세는 이미 부활하였다"고 분명히 주장하였다.

물론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는 않으며 안식교는 삼위일체에서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점이 더욱 이상하였다.
예수님의 이름이 어떻게 천사장이었던 미가엘이 될 수 있는가?
그런데 예수님이 천사장이 되며 그 이름이 미가엘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던 안식교의 이러한 주장이 그동안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것도 참으로 놀랍다.

여호와의 증인의 교주였던 럿셀은 안식교인이었다. 그래서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도 지옥을 부정한다든지, 영혼수면설, 영혼멸절설등 유사하며, 또 율법주의적이라는 점이 안식교의 교리와 유사하다고 알려져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을 천사장이라고 한다. 하나님보다 열등한 피조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안식교의 공식적인 교리가 예수님을 천사장 미가엘이라고 한다면, 여호와의 증인의 교리는 안식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그 당시 안식교인들은 예수의 이름이 미가엘이라는 것에 대해서 단 한명도 성경적으로 증명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교인들은 분명히 예수가 천사장 미가엘이라고 믿고 있었다.
안식교인들의 교리가 성경에 근거를 두었다기 보다는 엘렌화잇의 주장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히1:5)

예수가 천사장이라면 다음 성경본문에서 <주>와 <천사장>은 동일존재란 말인가? 그렇다면 주님이 혼자 스스로 호령과 소리와 나팔을 친히 부르면서 강림하시는가?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4:16)

2) 모세의 부활

몇 년전 안식교 목사와 토론을 한 적이 있었는데, 사후 영혼의 존재라는 주제이었다.
사람은 살아서 영혼과 육체가 전인적이지만, 죽으면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진다.
그래서 영혼은 하나님 곁으로 가며,(전12:7. 창35:18, 눅8:55) 사후 영혼은 의식적인 자각을 하면서 새 육체의 부활을 기다리게 된다. 그러나 안식교에서는 영혼의 존재가 부정되어지며 소위 영혼수면설이라고 하는 견해를 갖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악인이나 의인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음부에서(무덤) 영혼이 육체와 함께 잠을 자고 있는 것과 같이 수면상태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안식교의 이와 같은 주장은 부자와 나사로, 십자가의 강도에게 하신 말씀등 많은 성경적인 모순(약2:26.눅24:39.계6:9.눅12:20.눅24:36.행7:59.히12:23)에 부딪히게 된다.

이러한 토론 중에서 "그렇다면 변화산의 모세와 엘리야는 무엇인가?"를 물은 적이 있었다.
모세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는데, 영혼이 시체와 함께 잠을 자고 있다면, 변화산에서 보여준 모세는 과연 무엇인가를 물은 것이다.
이때에 안식교의 목사는 "모세는 부활한 것"이라고 답변한 적이 있었다.
이와 같은 주장은 이단적인 주장이 분명한데, 왜냐하면 안식교의 주장대로라면 예수보다 모세가 먼저 부활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만 하여도 그 토론은 그 안식교 목사의 개인적인 실수인 것으로만 알았으므로, 몇번 동안 그에 대해서 추궁하다가 토론의 본론을 잃지 않기 위하여 다른 이야기로 돌린 적이 있었다.
그런데 엘렌화잇의 책자에서 그것을 다시 확인한 것이었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기록하고 있는가 보자....
만일 예수가 부활의 첫열매가 아니라 모세가 첫 부활이었다면, 다음 성경구절들은 모두 오류와 모순이 되어버리며, 우리의 부활은 예수의 부활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모세의 부활을 본받게 되어진다.

그러나 각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
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고전15:23)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는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1:18)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선전
하시리라함이니라 하니라.(행26:23)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우리의 부활의 첫 모델은 예수이시다. 그런데 안식교의 주장대로라면 모세가 부활을 대표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영이 아니라, 모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영이 되어버린다.
모세는 이미 죽었다. 그의 영혼도 하나님 곁에서 부활을 기다릴 뿐이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
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8:11)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았도다.(고전15:21)

만일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6:5)

예수가 천사장 미가엘이라는 안식교의 주장은 전혀 성경에 없는 이단적인 교리이다.
또 모세가 예수보다 먼저 부활하였다는 주장도 부활의 개념을 이상하게 만드는 아주 위험한 이단적인 주장이 되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교는 이러한 주장을 교리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3) 거짓 선지자 엘렌화잇의 황당한 주장

지금까지 언급한 내용은 안식교의 선지자라고 하는 엘렌화잇의 개인적인 견해가 곧 교리가 되어진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되어진다.
그렇다면 한가지 실례를 더 들어보자....

#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에게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셨다. 아담이 그의 창조주의 손에서 나올 때에 그는 준수한 키와 균형진 아름다운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현재 지구상에 사는 사람보다 키가 두 배 이상이나 컸고 균형이 잘 잡혀 있었다(살아남는 이들, 22쪽)

엘렌화잇은 "하나님의 형상대로"라는 성경구절을 단지 외형상의 형상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 지구상의 사람보다 키가 두배 이상 컸다는 황당한 주장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만화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을 선지자라고 부르는 안식교도 문제이지만, 이런 주장을 하는 엘렌화잇은 절대로 하나님의 선지자가 될 수 없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어느 안식교인은 박물관에 가보면 지금보다 두배 가량 큰 사람(유인원 혹은 침판지로 증명되어지고 있음)의 발자국 화석 사진이 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유인원이나 침판지가 아름답고 준수한 모양인지 엘렌화잇에게 묻고 싶으며, 그러한 모양이 하나님의 형상대로인지 묻고 싶다.
안식교인들에게는 그저 아무리 황당한 주장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엘렌화잇의 주장이라면 진리가 되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은 외형상의 모양을 의미하는 개념이 아니다. 게다가 키가 두배가량 크거나 균형지고 아름다운 신체가 하나님의 형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재정의가 되어진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며(골1:15) 하나님 본체의 형상이시고(히1;3) 하나님의 형상(고후4:4)이시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이셨던 나사렛 예수님은 유대인들보다 키가 두배 이상 컸는가?

그런데 성경은 장래에 "우리의 낮은 몸이 그의 영광된 몸의 형체와 같이"(빌3:21) 될 것이며, 그리스도인들은 마침내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게 될 것이다"(고전15:49)라고 하였으며,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15:49)고 하였는데, 그러한 성경본문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키가 두배가 커지는 것과 균형잡힌 아름다운 신체를 의미하는가?
이런 엉터리 주장을 하고 있었던 엘렌화잇이 거짓 선지자가 아니라면 누가 거짓 선지자인가?
또 바울은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다"(골3:10))라고 하였는데 그 말도 키가 두배 가량 커지는 것을 의미하는가?
그야말로 기가 막힐 일이다....

4) 기타

사단이 뱀의 모양을 하고 에덴동산으로 들어왔다. 뱀은 날개를 가진 아름다운 동물이었으며 공중으로 날아다닐 때엔 번쩍거리는 황금처럼 찬란한 광채를 발하였다. 뱀은 땅위를 기어 다니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서 이곳 저곳으로 날아다니며 사람처럼 과일을 먹었다. 사단이 뱀에게 들어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자리잡고 그 나무의 과실을 한가로이 먹고 있었다(살아남는 이들, 33쪽)

이러한 주장이 바로 엘렌화잇의 주장이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알리고져 이것을 올렸다.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뱀이 날개를 갖고 하나님이 계신 에덴으로 날아 들어왔고, 뱀이 자기마음대로 선악과 과실을 먹고 있었다는 것이다.
엘렌화잇은 다음 성경구절을 보지 못하였을까?

"여호와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2:15)

뱀이 날개가 있었고, 공중을 날아다녔으며, 황금빛이었다는 구절이 어느 성경에 있는가?
이러한 주장이 성경적이라고 여러분들은 생각하는가? 이것에 대해서 무슨 논리적인 설명이 필요한가?
생각나는대로 만화나 소설을 그리듯이 성경을 짜깁기를 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이 바로 선지자 엘렌화잇의 주장이며 안식교의 교리가 되어진다.
안식교인들은 그들의 선지자가 주장한 말이 성경과 다르더라도 무조건 믿어야만 하는 것이다.
또 엘렌화잇은 "사단이 뱀의 모양을 하고 에덴동산으로 들어왔다"고 기록해 놓고, 바로 두줄 아래에는 사단이 뱀에게 들어갔다고 말을 바꾸고 있다


옮긴글

주여, 이 죄인이


허브나라님 방에서

구원파에 있는 형제들의 구원에 대한 열정은 실로 대단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전하는 복음전달 방식과 복음전파를 위한 말씀암송 등의 열정은... 그리스도인이라면 필히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종종 그러한 열심이 지나쳐 문제점을 낳기도 합니다. 구원파에 관한 마지막 연재글인 이 글에서는 그 문제점을 다음 세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구원의 공식화

2. 구원 노이로제(강박증)

3. 자기폐쇄성과 인간지도자에 대한 맹신


 

구원의 공식화

 

구원파에는 크게 네 그룹으로 나뉘는데 그들의 복음전도집회 방식은 대동소이합니다. 대략 일주일간에 걸쳐 이뤄집니다. 이요한목사측은 자체 교회당이나 대학캠퍼스에서 일주일기간의 "성경강연회"라는 이름으로 집회를 엽니다. 그리고 이요한측에서 나온 구영석목사(새생명선교회)측 또한 일주일에 걸쳐 복음전도집회를 엽니다. 이 두 단체의 전도 집회 방법은 거의 비슷합니다.


일주일에 걸쳐...

창조과학과 성경의 과학성  -> 성경의 예언과 그 예언의 성취 -> 이스라엘의 역사 -> 율법의 요구와 인간의 죄성을 말씀에 조명함 -> 구약의 속죄하는 제사 소개 -> 인간에게 (자력) 구원의 희망이 없음 -> 십자가의 어린양의 속죄제사 소개

...등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유병언 목사의 경우 잘 모르겠고, 박옥수 목사의 기쁜소식선교회의 경우에는 창조과학에 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성경만으로 죄사함을 전한다"는 것이 나름대로의 자부심입니다.


그들의 복음집회에는 참으로 배울점이 많습니다. 구원파에 다니시는 분들 중 많은 열성파들은 복음전도시에 필요한 성구들을 줄줄줄 암송하는 편이고,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든지... 죄를 사하시기 위해 이땅에 몸을 입고 오신 어린양의 대속을 설명할 자세가 되어있더군요. 이러한 점은 마땅히 본받아야 합니다. 구원을 받았는지도 모르고, 죄 있는 자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율법의 요구가 무언지도 모르고, 그냥 복받고 잘되고 직분받아서 그냥 살아가야 겠다는 관념에 찌든 세속화된 기독교인들과는 차별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구원파 구성원들 간에는 구원이 공식화되어 어떤 일련의 과정을 거쳐 구원받는 것 마냥 인식됩니다. 그래서 본인들이 받았던 구원의 방식대로 그런 간증이 나오지 않거나, 조금 이질적인 생각이 들면 "당신 구원받은 거 맞아?"라고 의심하기 일수입니다.  "율법" -> "죄" -> "구약의 제사" -> "어린양의 십자가" 라는 천편일률적인 공식만이 적용됩니다. 위와 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고 나름대로 판단됩니다.


구원파 구성원들은 대부분, 기성교회에서 죄의 문제를 해결받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강단에서도 복음이 선포되지 않고... 많은 목회자들이 십자가의 복음을 스스로도 모르고, 그러기에 가르칠 수 도 없는 환경가운데서, 고민하던 자들이 복음전도집회에 가서 처음으로 "네 죄가 나의 피로 말끔해졌다"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습니다. 물론 그런 말을 전에도 수도 없이 들었겠지요. 그러한 교리가 아직도 우리 주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십자가 사역의 죄사함의 단회성과 영속성의 문제를 철두철미하게 마치 법조문을 따져들듯이 성경을 들춰가며 확인해주는 이런 속시원한 복음 해설은 처음이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탄하기도 합니다. 저 또한 그러한 느낌을 받았으니까요.


예전에 알고 있던 성경지식들이 하나하나 자리를 찾아가면서, 구약의 제사와 갈보리 십자가의 제사가 비교/대조되면서, 비로소 자신이 "이렇게 쉬운 구원을 몰랐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 "복음은 이렇게 전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구원을 공식화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와 비슷하게 구원받지 않으면 구원으로 여겨주지를 않는 성향이 농후합니다. 그리고 모든 성경말씀을 속죄에 맞추려는 무리한 시도마저도 하게 됩니다. 저는 다행히도 (?) 비슷한 방식으로 죄사함을 확신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어서 저의 경우는 그들이 형제로 인정하더군요. ㅠㅠ


현대교회는 "죄와 하나님의 율법 그리고 준엄한 심판"에 대한 교리가 사라졌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사라져 희미해진 것은 당연한 결과이고요. 그래서 우리는 "죄와 율법의 요구, 그리고 내가 받을 심판, 그분이 대신하신 심판형틀"에 대한 교육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항목들과 그 교리적 틀이 너무 견고해져서 하나의 굳은 교리가 되고, 그 폐쇄적인 내부문화를 형성해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기성교회 형제님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구원파의 복음전도 방식을 배우십시요. 그리고 그들처럼 전하십시요. 그러나 그 방식(know-how)을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지는 마십시요." 그리고 구원파 형제님들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리로 납득시키려는 자세를 포기하십시요. 그리고 구원의 교리가 아닌 예수님의 인격에로의 인도에 촛점을 맞추십시요."



구원 노이로제

 

구원파 구성원들의 구원에 대한 열정이 넘치다 못해 나타나는 또 하나의 부작용은 구원 강박증입니다.

제가 아는 어떤 형제님은 80년대에 고려대 법대를 다녔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옥수 목사의 설교를 듣고는 자신의 죄문제가 해결받지 못함을 알고는 기쁜소식선교회측 교회당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 형제님은 나머지 구원파 그룹들은 물론이요, 죄사함과 거듭남에 대해서 전한다는 단체는 두루두루 섭렵하면서 이곳저곳 전전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저에게 그러더군요. "형제, 나는 구원에 대한 교리를 잘 알아요. 그런데 아직도 그게 마음 속으로 안 믿어져요... "


그 형제님은 오래전에 박목사의 설교로 말미암에 자신의 영혼의 문제를 돌아보게 되었지만, 또한 박목사 그룹의 문제(죄사함 만능주의 절대주의)로 인해 스스로의 혼란 가운데 갖힌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니던 학교마저도 관뒀었다고 하더군요. 거의 폐인이 되어있던 모습으로 기억됩니다. 깨달음과 이해를 중시하는 문화 그리고 구원파 그룹 안에 불어닥힌 "진짜구원 색출" 운동 등 등...의 문제점의 대표적 본보기가 그 형제님 같았습니다. 지금쯤은 구원을 확신하고 자애로우신 아버지의 품에서 쉴 수 있는 여유를 찾으셨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제가 알게 된 어떤 자매님(이요한 측)에게는 딸이 하나 있는데, 그 가정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기도목록에 제 이름도 써있고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것으로 보아 그분께 고마운 마음이 들더군요. 그런데, 그 딸아이가 와서... "엄마 이번에도 복음들었는데 안 깨달아져... 나 거듭나게 해달라고 기도할래..."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그 엄마가 되는 자매님이 "그래 너 꼭 기도하면서 복음 듣고 거듭나야 한다."


어린이들의 영혼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당하고 적극 장려되어야 할 일이지만, 그 내부문화의 틀 안에 갇혀서 마치 하나의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의 하나인양 구원과 거듭남이 언급되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이러한 강박적인 관념이 훗날 아이가 커서... 구원에 대한 강박적인 관념으로 이어지지나 않을까... 그래서 자신의 교리적 이해를 진정한 구원으로 자칫 오해하지나 않을까 염려가 되더군요.


외부인으로서의 제가 느끼기에는 위의 두 사례를 보건데... 이는 구원에 대한 관심의 차원을 넘어 노이로제에 이르는 경우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구원파의 인도자급에 계신 분들이 이러한 것들을 의도하거나 계획한 것은 아니리라 여겨집니다만....  부작용일 따름이죠.



폐쇄성 & 지도자의 절대권력


구원파 형제들에게는 우리가 배워야할 장점이 있고 단점도 있습니다. 그들이 가진 단점들의 거의 대부분은 구원파의 전매특허만은 아닙니다. 위의 구원의 공식화와 구원 노이로제는 기성교단의 약점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 누가 누구를 이단이네 아니네라고 할 필요조차도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구원파의 폐쇄성과 지도자의 절대화는 한국교회의 습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다시 언급합니다만, 남포교회 박영선 목사의 말씀대로 "한국교회는 구원파적입니다."


구원파 형제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을 쉽게 판단하는 경향이 있으며, 모든 문제를 (속죄의) 구원과 결부시킵니다. 무슨 문제가 있어서 서로 갈라져서 싸움질이라도 하게 되면 "구원받은 자가 맞아?"하는 말을 쉽게 내던집니다. 기성교회 교인들을 만나면 일단 구원 안 받은 사람일 가능성을 가장 위에 두고 대화를 하게 됩니다. 이러니 교제가 있을 수 없으며 그 폐쇄성이 스스로를 가두게 되어버렸지요.


그리고, 무슨 문제가 있거나 내부약점이 들춰지면 하는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래도 우리에겐 복음이 있어! 목사님 설교를 듣고 구원받는 저 수 많은 사람들을 봐. 살아있는 교회는 구원받는 자의 수가 늘어나는 교회야 우리처럼..."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은 그 전해지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지, 하나님이 이요한 목사를 축복하고 박옥수 목사의 소행이 바르기때문이 아닙니다. 설사 전하는 자가 주님 앞에 엉망인 상태의 사람들이더라도.... 적어도 성경말씀이 인용/선포되고 듣는자가 갈급해 한다면 주님은 얼마든지 역사하십니다. 사탄의 전술전략이라는 책을 쓴 쿠르트 코흐의 말에 따르면, 그의 지인 중 한사람은 술주정뱅이 목사의 설교에 의해서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구원파 형제들은 "그래도 우리에겐 복음이 있어"라는 말이 그 내부의 모든 불합리성과 부조리 그리고 비성경적 실행들을 무마하는데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그것이 자멸의 길로 가는 자기핑계임을 하루빨리 간파해야합니다.


한 단체가 폐쇄적이 되는 것은 주로, 내부적 구심점 구축과 동시에 일어납니다. 이는 주로 인간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절대적/맹목적 신임입니다.

예전에 유학시절, 시드니에 "P목사의 죄사함과 거듭남" 집회를 예고하는 포스터가 붙어있더군요. 집 근처라서 한번 그 교회당에 가보았습니다. 아직 P목사는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고, 거기에서 일하시는 목사님을 만났지요. 자신들의 구원과 비슷한 구원간증을 하니 저를 형제로 여겨주더군요. 그런데 바른 교회에 다녀야 한다면서 저를 다그치더군요.


암튼 그분이 잠시 후, 설교를 하시는데... 충청도 출신 P목사의 억양과 어조로 똑같이 말하는 겁니다. "내 말이이이~ 그렇다는 거예요오오~"

놀랐습니다. 의도한 것이 아니기에 그들은 잘 모를테지만, 외부인으로서의 제가 느끼는 것은 "P목사의 위치가 절대화 되었구나... P목사가 우상이 되었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기쁜소식선교회 내부에서 P목사가 차지하는 위치와 힘은 거의 절대적인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주의 종"이나 "종"이라는 단어는 P목사만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쓰입니다. 그런 분위기 가운데 P목사의 모든 것이 무의식적으로 내부 목회자들의 흠모의 대상과 모방의 대상이 되었겠지요.


이와 비슷한 현상은 전에 Y측 순복음신학교에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그분들은 한 술 더떠서, 설교학 강의에서 어르신 목사님의 목소리를 모사하게 했다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CBS 라디오를 들으면 왜 그리 목소리가 비슷한 분이 많던지... "....그래쎠써... 그래쒸미다..." 그런데 나중에 설교자 이름은 어르신 목사님이 아니시더군요. 사실 이러한 현상은 다락방전도로 유명한 R목사측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현상 같았습니다.


한 단체가 외부적으로는 폐쇄성을 더해가면서, 내부적 결속력은 일인목회자를 중심으로 강해져갑니다. 그의 카리스마는 절대화되고 기타 내부 목회자들은 지고하신 어르신을 (의도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간에) 다들 흉내내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의 공격을 받으면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우리에겐 복음이 있다. 사람들이 몰려온다."



이 모든 문제들이 구원파와 Y순복음 그리고 다락방만의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들은 이단이고 우리는 정통입니까?


출처: 양무리마을, 준비: grace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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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나티우스 로욜라의 예수회에 대한 만화입니다. http://www.chick.com/reading/comics/1302/1302_allinone.asp

자료출처: Chick Publications

지금까지 나는 종말교회(성도)가 대환난을 통과한 후 휴거가 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이것이,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우리나라 종말론적 성경해석의 주류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 나에게도 닥칠 대환난에 대한 막연한 걱정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니, 지금의 세계경제불안을 통해 이미 이런 걱정은 우리 성도들에게도 다가와 있다고 본다.


그러나 최근 세 가지 문서를 통해 접한 환난과 휴거에 대한 내용은 이와는 다르다.

이것은 교회가 환난을 통과하기 전에 휴거된다는 설이다.

교회(성도)가 그 큰 환난을 겪지 않아도 된다니 아! 얼마나 복스럽고 위안이 되는 얘기인가?

물론 환난 전 휴거가 절대적으로 맞는다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이것이 내가 아는 하나님의 성품과 맞는 해법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이 글을 보는 모든 성도들도 함께 이런 희망과 위안을 나누기 바란다!!!



1. 첫번째 접한 내용은 블로그 내의 이 문서 안에 포함되어 있다.

http://blog.naver.com/yoochinw/130035004405


2. 두번째 접한 내용은 아래 블로그 문서에 있다.

http://blog.daum.net/weddingkgm/12555466


3. 세번째 접한 내용은 영문으로 된 계시록 (대중적?) 해설책의 내용인데 책 이름은

"THE BOOK OF REVELATION: the Smart Guide to the Bible series" by Daymond R. Duck이다.

환난 전 휴거의 열가지 성경적 이유를 드는 그 책의 내용을 잠깐 소개한다.


1. 성경은 한번도 교회가 환난기를 통과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2. 교회는 다니엘의 앞의 예순 아홉 이레와 아무 관계가 없었으며 또한 이른번째 이레와도 아무 관계가 없을 것이다(다니엘서 9:24).


3. 계시록 첫 3장에서 교회는 스무번 넘게 언급되었으나 4:1에서 19:1까지의 사이에서는 교회에 대한 언급이 없다. (계시록의 3장까지는 교회시대를 묘사하며, 4장부터 19장까지는 종말과 대환난기를 묘사한다. 위 그림 참조)


4. 예수께서는 그의 교회를 맞이하러 휴거 속으로 오신다(살전 4:16-17). 예수께서는 그의 교회와 함께 재림하신다(살전 3:13). 교회는 휴거로 땅에서 들리우고  주의 재림으로 땅으로 내려온다.

 

5. 적그리스도는 휴거가 있게 되기까지는 드러날 수 없다(살후 2:6-8). 하지만 만약 교회가 환난기를 통과한다고 하면, 교회는 다음의 이유들로 적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게 될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세계단일정부를 주재할 것이며(계시록 13:10), 재건된 성전에 자신의 상을 세울 것이며(마태복음 24:15),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표, 이름이나 수를 받도록 요구할 것이며(계시록 13:15-17), 두 증인을 죽일 것이며(계시록 11:7) 등 떄문이다.


6. 주님의 재림의 날과 시간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마태복음 24:36). 하지만 교회가 환난기를 통과한다면 일부 사람들은 그 날을 알게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한 이레(칠년) 동안의 언약을 맺은 때로부터 한 이레(칠년) 후이며(다니엘 9:24-27), 적그리스도가 성전을 더럽힌지 천이백육십 일 후이기 때문이다(계시록 12:6).


7. 교회는, 환난기 끝에 오시는 주님의 재림(계시록 19:11-14)에 앞서서 어린 양의 혼인잔치를 위해 하늘에 가야만 한다(계시록 19:7).


8. 적그리스도는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나(계시록 13:7), 음부의 권세는 교회를 이기지 못한다(마태복음 16:18).


9. 이십사 장로(교회의 대표)는 일곱 두루마리의 봉인이 떼어지기 전에 하늘에 있을 것이다.


10. 환난전 휴거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자비와 더 일관된다.

6장 과대망상 (DELUSIONS OF GRANDEUR) 기름부음? 배교?

2008/10/07 15:04

복사 http://blog.naver.com/yoochinw/130035993214

6장     과대망상

Chapter 6   DELUSIONS OF GRANDEUR


[Acknowledgement: 이 장은 TLT의 들풀님께서 번역해 주신 부분입니다. 제가 한 번역과 조금 다른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 번역보다 훨씬 나은 줄로 압니다. 번역해 주신 들풀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에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벧후 3:3~4>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딤후 4:3~4>


우리가 보아온 것처럼,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 (Manifest Sons of God)' 지지자들은 성도들의 휴거와 부활이 우리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올려질 때 구름 사이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대신에, 그들에 따르면, 우리는 이 지구에서 여기서 변형되고 영화롭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영화롭게 될 뿐만 아니라 신격화 될 것이라고 가르친다. 성도들이 지구 상에서 영화롭게 되고 신격화 된다는 것의 목적이 무엇인가?


그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교회는 세상을 정복하게 되고 하나님의 왕국을 이 지구 상에 건설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교회가 (그것을) 끝마쳤을 때에 그것을 그리스도에게 드리게 되는데, 그리스도는 지금 교회가 이 위업을 달성할 때까지 "하늘에 붙들려" 있다.


성경은 말세의 교회를 사람들 중에 움츠러들고 경멸당하는 소수로서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붙잡혀 있다고 명백하게 설명한다. 신약성경에는 확실히 계시록을 제외하고는 이 정복하는 승리의 교회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계시록에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천년왕국 동안 그와 함께 다스리고 통치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로부터 돌아왔을 때에 - 대환란의 끝에 - 그렇게 설명되어 있음을 우리는 안다.


신약성경에 있는 말세의 교회에 대한 성경적 묘사를 너무 패배적이고 도피적이기에 거부하면서, 그들은 힘으로 왕국을 들여오고 대환란 동안 교회의 모든 적들 위에 승리하는 군대적 교회를 세우고자 했다.


"당신은 매달려 있지 않을 것이다 -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적그리스도가 당신을 잡기 전에 지구에서 떠나게 해주시기를 무기력하게 기다리면서. 주님은 영적으로 다시 오실 것이고 당신은 영화롭게 될 것이다 - 심지어 이 지구 상 바로 여기에서 신격화 될 것이다. 당신은 기름부음을 받을 것이다. 악한 자 - 기름부음에 저항해 온 가라지들은 주님에 의해 제거될 것이다. 방해받음 없이, 당신은 그리스도의 회군(Corporate body, )으로 나아갈 것이며 정복하며 정복할 것이다! 당신은 이 세상의 왕국들을 정복할 것이고 당신의 모든 적들을 발밑에 두게 될 것이다. 당신은 "흰말을 탄 자" 그리스도에 의해 이끌리는 슈퍼 사도와 대언자들의 그룹에 의해 인도될 것이다. 많은 기적과 표적과 기사들을 통해서 이 통일된 '그리스도의 회군(corporate body)'은 복음의 실재의 세상을 확신시킬 것이다. 수백만, 아마도 수십억, 사람들이 전세계적인 부흥 안에 있는 왕국으로 휩쓸려 들어갈 것이다. 그렇다 - 환란이 다가온다; 대환란, 그러나 우리는 불신하는 세상 위에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를 수행할 것이다…" 등등의 거짓말을 한다.


이 아이디어는 '비전'의 결과로서 1948년의 늦은비 부흥 동안에 나타났다:

그 영은 전체 학교 위에 동시에 임했고 모두는 다함께 예언하기 시작했다. 이 위대한 나타남은 이 세대의 마지막에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Manifest  Sons of God)'의 비전에 의해 동반되었다. 사람들은 이 강력한 군대가 자기 앞에 있는 모두를 정복하는 걸 보았다. 아픔과 질병은 모두 사라지고 있었고 모든 악한 영들은 하나님의 백성의 승리하는 힘 앞에서 흩어졌다.

나는 이 '비전'이 성경적 토대에서 거부되어야만 하는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성경은 주님의 재림을 나타내는 표적들 중의 하나는 지구 전체를 통해 질병과 기근이 증가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재림을 알리는 탄생 고통들 중의 하나이다. 노동의 고통처럼 이러한 표적들도 휴거될 때까지 빈도와 강도에 있어서 모두 증가할 것이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마태 24:7>

(영문성경에는 '기근과 역병과 지진이 있으리니'라고 번역되어 있음/역자)


에이즈의 무서운 확산을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 말세의 시기 최근에 공표되었고 거의 박멸된 전염병들의 출현을 보았다. 사람의 통제 아래에 있다고 생각되었던 결핵, 말라리아, 콜레라, 그리고 다양한 다른 질병들이 다시 되돌아 왔으며 그것들을 통제하는 데 사용되었던 약품들에 내성을 갖고 있다. 새로운 바이러스들의 출현은 항상 발생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한타 바이러스나 무서운 에볼라 바이러스이다.


둘째, 이 '비전'은 신약성경에 표현된 대로의, 시대의 마지막에서의 사탄과 그의 군대에 대한 묘사와 모순된다. 이 시대의 마지막이 가까워질수록 사탄은 표적들과 기적들을 행하기 위해 더 많은 힘을 활용하도록 허락받았다는 것을 신약성경은 명백하게 우리에게 경고한다.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 살후 2:9>


예수님께서는 시대의 마지막을 알리는 가장 중요한 표적은 미혹이라고 우리에게 경고하셨다.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도록 조심하라". 세기가 증가하는 미혹은 표적들과 기사들로 특징지워진다. 사도 바울은 예언하였다: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딤후 3:13>


바울은 이런 사람들을 얀네스와 얌브레스에 비유하였는데 그들은 파라오의 궁정 마술사들이었고 모세와 하나님의 말씀에 그들의 가짜 기적들로 맞섰었다.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받은 자들이라" < 딤후 3:8>


이 사기꾼들은 그들의 사탄적 가짜 기적들, 표적들, 그리고 기사들로 "심지어 택함을 받은 자"까지 "가능하면" 미혹하려고 할 것이다. 오직 택함을 받은 자, 참 교회, 그리스도의 신부만이 그리스도와 그의 말씀에 신실하게 남을 것이기 때문에 미혹에 대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가짜로부터 진짜를 분별하도록 하는 것이 무엇일까? 단순하게 진리, 즉 예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그들의 사랑이다.


따라서 말세에 대한 성경의 묘사에 상반되는 이러한 두개의 모순은 이 비전이 거짓 비전이고 육체나 속이는 영에 의해 영감된 것이라고 명확하게 나타낸다. 그것은 심판되었어야 했고 거부되었어야 했지만 우리가 이미 살펴본 것처럼 이 사람들은 말세의 교회에 대한 성경적 시나리오에 반항하고 있었다. 소수에 대한 이 묘사는 육체에 애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노스배틀포드의 형제들에게는 우울하고 패배자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그들은 거짓 '비전'을 두 팔을 벌리고 맞았으며 그 위에서 확장하기 시작했다. 오레곤주 포트랜드의 토마스 와이엇트라는 이름의 목사는 수년전에 비슷한 비전을 가졌었다고 주장했다:

'비전' 안에서 그는 교회 시대의 마지막 위대한 부흥을 향한 패턴을 보았다. 그는 어떻게 이 부흥이 조그맣게 시작해서 수 개월 정도 이내에 전 지구로 퍼졌는지 보았다. 그는 사람들이 생명의 모든 걸음으로부터 와서 강력한 군대로 나가는 것을 보았다...

스스로를 늦은비 운동의 사도들과 대언자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강력한 정복하는 군대 -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Manifest  Sons of God)'의 선봉장이라 보기 시작했을 때 엘리트 성향은 빠르게 형성되었다. 죠지 워낰은 그의 '초막절(Feast of Tabernacles)'에 이렇게 썼다:

그리스도의 시간이 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자기 손가락을 그리스도에 댈 수 없었다; 그리고 그분은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하라고 주신 일들을 끝마치는 데 기꺼이 자기 자신을 주었다. 그분의 많은 형제들 역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들을 대적하여 펼쳐진 어둠의 모든 권능에 대해 그들은 완전히 승리할 것이다 - 교회에 의하여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세상의 다가오는 환란에 결코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만일 그리스도께서 구약을 성취하기 위하여 사람들의 비웃음과 조롱 가운데서 수년 동안 신실하게 사역하셔야 했고, 겟세마네의 고통을 겪으셔야만 했고, 로마의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셔야 했으며,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셔야 했다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먼지와 감금의 폐허로부터 일어나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함께 머리로 인식되고 그분의 영광과 권능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분과 함께 다시 일어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 신약을 성취하기 위해서 - 우리는 확신한다. 떨어져 나감은 어떤가 하고 사람들은 논쟁할 것이다. 배교는 어떤가? 이것은 말세에 교회의 상태일 것이지 않은가? 물론 사도가 예언한 대로 배교가 있을 것이고 그것은 확실히 지나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참 교회, 그리스도의 몸, 하나님의 아들들, 극복하는 자, 신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 성경이 말씀하시는 사람들: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에베소서 3:10>

엘리트 즉 나타난 아들들(manifest sons)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권능과 권위를 시행하면서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회군(Corporate Body)'이 될 것이다. 빌 해먼은 이렇게 썼다:

교회는 항상 군대였으나, 적극적인 그리고 소극적인 냉전(cold wars)과 열전(hot wars)의 상태를 겪어왔다. 교회는 군사적 군대로 다시 활성화되었고 "위대한 회복의 시기"가 시작된 이래 열전(hot war)에 착수했다...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교회]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그분께서 그분의 성도들 안에서 영화롭게 되시는 때]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세상에 대해서는 어둠과 희미함의 날이지만 교회에 대해서는 새로운 날의 새벽일 것이다]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새벽 빛이 산 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교회-군대가 그분의 횃불이 된다]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 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 그들의 예전의 땅은 에덴 동산 같았으나 그들의 나중의 땅은 황폐한 들 같으니 그것을 피한 자가 없도다 그의 모양은 말 같고 그 달리는 것은 기병 같으며 그들이 산 꼭대기에서 뛰는 소리는 병거 소리와도 같고 불꽃이 검불을 사르는 소리와도 같으며 강한 군사가 줄을 벌이고 싸우는 것 같으니 그 앞에서 백성들이 질리고 무리의 낯빛이 하얘졌도다 그들이 용사같이 달리며 무사 같이 성을 기어 오르며 각기 자기의 길로 나아가되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그들의 회원 사역 (membership ministry)을 알며] 그 줄을 이탈하지 아니하며 [신실하고, 겸손하며 그들의 소명에 일치하는] 피차에 부딪치지 아니하고 [일치와 사랑] 각기 자기의 길로 나아가며 [자기의 위치와 실행에 신실한] 무기를 돌파하고 나아가나 상하지 아니하며 [자아로의 죽음, 생명의 충만함 그리고 말씀-검을 가진 자] 성중에 뛰어들며 성위에 달리며 집에 기어 오르며 도둑같이 창으로 들어가니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여호와께서 그의 군대 앞에서 소리를 지르시고 그의 진영은 심히 크고 그의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 < 요엘서 2:1~2> [이것은 주님의 교회-군대에 대한 대언자 요엘의 묘사이다] ([ ] 안의 글들은 해먼의 것임)

'요엘의 군대'라는 이름이 은사주의자들 사이에 고착된 이후에, 나는 이 관점으로부터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의 '말세의 군대'를 요엘의 군대로 언급할 것이다. 이 예언이 진정으로 교회를 언급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 예언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그것은 계시록 9:1~12 에 오리라고 예언된 군대와 같은 것을 묘사한 것임이 드러난다.

 

※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계 9:7>

※  그의 모양은 말 같고 그 달리는 것은 기병 같으며 <요엘 2:4>

 

※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계 9:5>

※  그 앞에서 백성들이 질리고, 무리의 낯빛이 하얘졌도다 <요엘 2:6>


※  그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며 <계 9:2>

※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새벽 빛이 산 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 <요엘 2:2>

 

※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으며 <계 9:8>

※  다른 한 민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수가 많으며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요엘 1:6>

 

※  철 호심경 같은 호심경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쟁터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계 9:9> 

※  그들이 산 꼭대기에서 뛰는 소리는 병거 소리와도 같고 불꽃이 검불을 사르는 소리와도 같으며 강한 군사가 줄을 벌이고 싸우는 것 같으니 <요엘 2:5>

 

명백하게 이 두 개의 군대는 단일하고 같은 군대이다. 요엘의 예언의 여러 가지는, 그것은 묘사된 대로의 문자적 기병의 군대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말(馬)들은 벽을 오르지 않고 지붕에 올라가지도 않으며 도둑처럼 창문으로 들어가지도 않는다. 요엘은 요한이 계시록 9장에서 묘사한 것과 같은 사탄의 군대를 묘사하고 있다. 요엘의 군대는 사탄의 군대이다!


그러면 왜 또는 어떻게 늦은비 주창자들은 그 안에서 교회를 볼 수 있었는가? 그것은 단순히 그들이 설명한 것과 같은 힘있는 정복의 교회를 신약에서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 최소한 우리 주님의 재림 후까지는 없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구약의 많은 예언들을 남용하고 오용하는 것에 의지하도록 강제된 것이다.


늦은비 주창자들은 말세의 교회에 대한 그들의 정복적 묘사를 그리기 위하여 소위 '대체 신학'이라는 것에 의지해야만 했다. 대체 신학은, 교회는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국가 이스라엘을 대체하는 영적인 이스라엘이 되었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국가 이스라엘에 적용되는 모든 예언들이 이제는 교회에 적용된다. 이러한 예언들은 '비유적'이거나 '영적'이 되어 문자적 의미는 더 이상 제일의 의미가 되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교회에 적용하고 - 그러므로 그리고 그렇기에 사탄의 군대가 말세의 승리의 교회가 된다!


우리는 이것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보고 있다. 국가 이스라엘 그리고 국가 이스라엘에만 적용되는 예언들이 비유적이 되고 교회에 적용되고 있다. 천년 성전의 문지방 밑으로부터 동쪽으로 사해까지 흐르는 강에 대한 에스겔의 환상은 토론토와 펜사콜라에서의 현재의 부흥을 나타낸다고 해석된다. 토론토 공항 크리스찬 협회의 부목사인 마르크 듀폰(Marc Dupont)은 이렇게 썼다:

일반적으로, 에스겔 47장에 묘사된 생명의 강과 같이, 성령님의 현재의 운동 (일부에서 '토론토 축복'이라고 부르는 것) 은 발목 수준의 생명의 부흥이다 - 영적 각성을 불러오는.

에스겔(36~39장)에 있는 이스라엘의 국가적 회복은 하나님의 아들들 - 요엘의 군대의 나타남으로 결과되는 교회의 말세의 부흥이 된다. '부흥' 리더 잭 디어 (Jack Deere)는 주장한다:

모든 사람 - 내가 아는 모든 학자, 내가 아는 모든 주석가 - 은 에스겔 37, 38, 그리고 39장의 이러한 말씀들이 모두 말세의 사역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모두 그것은 성령님의 말세 운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될 것인가? 생명없는 교회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어떻게 그게 시작될 것인가? 하나님께서 그저 하늘에서 한 말씀만 하시면 될 수도 있다. 그분께서 우리들 가운데서 시작될 부흥을 단순히 야기하실 수 있다. 그분께서 성령님에 의해 초자연적으로 우리의 마음에 죄에 대한 확신을 단순히 주실 수도 있지만 그것은 그분께서 하시려는 방법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대언자(선지자)를 세우신다. 여기에서 뼈에 생명을 불러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에 의해 영감된 대언적 말씀이다. [사람의 대언자, 그리고 나서 그것이 발생한다. 대언 그리고 나서 생명이 오는 방법의 각 단계에서. 참고번역 - 사람의 아들(인자)을 대언(예언, prophesy)하라, 그러면 그렇게 된다. 각 단계마다 대언하라. 그러면 생명이 온다.] 그리고 나면 그 대언의 결과는 무엇인가?  거대한 군대!

샤머니즘은 원시종교의 한 형태 또는 그 단계로서 엑스터시와 같은 이상심리 상태에서 초자연적 존재 와 직접 접촉·교섭하여, 이 과정 중에 점복, 예언, 치병, 제의, 귀신의 인도 등을 행하는 주술적이며 종교적 직능자인 샤먼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현상을 말한다. 북아시아의 샤머니즘 이 가장 고전적·전형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지역에 따라 여러 샤머니즘의 형태가 있으며, 다른 종교 현상과 복합되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사람들은 샤마니즘이 한국의 전통적인 종교이고 모든 나라는 다양한 형태의 독특한 샤마니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진화론자들은 샤마니즘이 유교나 불교 혹은 어떤 형태든지 유일신 종교보다는 원시적인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샤마니즘이 시기적으로 앞선 것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창조론자들은 만물은 쇠퇴하는 경향이 있고, 식어져가며, 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물리학에 적용되는 법칙이 영적인 영역에서도 적용된다는 것과 모든 인류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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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통신앙 가운데 특히 무속이 기독교에 끼친 악영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기복사상을 꼽는다. 기복신앙을 문제삼는 이들은 대체적으로 무속의 기복사상이 종교를 주술적으로 변질시켜 많은 폐해를 가져 온다는 것이다. 한국기독교가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공신력을 얻지 못하는 것은 다름아닌 한국교회가 기복사상의 늪에 깊이 빠져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복을 바라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에서 기복신앙이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를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한다.

한국교회가 기복주의에 빠지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기복사상은 무속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무속신앙의 기복사상은 철저히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것이 특징이다. 무속신앙에는 정신적인 복의 개념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가 이 땅에 전래된 이후 토착화 되는 과정에서 이러한 무속의 기복사상이 그대로 기독교에 유입됐다는 것이다. 복을 위해서 신을 믿고,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물질적인 응답을 바라는 마음으로 헌금하는 것등이 바로 무속신앙과 다를바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무속의 기복신앙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믿는 사람 들이 복을 비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교회의 기복사상이 문제가 되는 것은 그 복빌기가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치중해 있다는데 있다는 것이다.

샤머니즘이 한국교회에 끼친 공로는 성도들로 하여금 열심 있는 신앙 태도를 갖게 한 것은 사실이다. 한국인들은 새벽 일찍 일어나 정화수를 떠놓고 지성을 드리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었다. 평소에는 어떻게 살든지 지성을 드릴 때에는 온갖 정성을 다한다. 이러한 적극적인 신앙 태도는 교회의 신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새벽기도를 한다든지, 작정 기도를 한다든지, 수요 예배 철야기도까지 하게 한 것이다.

한국교회의 기복주의 신앙은 인간의 이기심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철저하게 인본주의적인 종교라고 말할 수 있다. 기복주의 신앙은 기독교의 탈을 쓴 것이지 성경적 신앙이 절대로 아니다. 그것은 인간 종교요, 본능의 신앙인 것이다. 기복주의 신앙은 어떤 이유로든 받아 들일 수 없는 미신이요 잘못된 혼합주의 영성인 것이다.

한국교회는 시간이 갈수록 기복주의 신앙이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대다수 목사와 성도들이 아예 기복주의 신앙에 완전히 세뇌되어 있다. 그것이 엄청난 거짓이요, 이단인지조차 모르고 있는 것이다. 목사들은 강단에서 기복주의를 약속하고 하나님께서 물질적 대가와 보상을 주실 것처럼 약속을 한다. 그러한 값싼 은혜가 한국교회 강단에서 활개를 치고 복음이 바겐세일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가르치시면서 물질적 대가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저버린 유대인처럼 고난의 신학이 아니라 영광의 신학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많은 일을 하고 나서도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눅 17:10)고 고백하라고 한다. 그러므로 기복주의 신앙은 기독교의 모든 교리들과 연관시키면서 기독교의 영성을 파괴하는 주범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교회에 뿌리깊은 기복신앙은 공평하신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나만 잘되면 거만이라는 이기적인 신앙인을 길러내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개교회주의와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적인 신앙인들이다. 자기만 잘되면 거만이라는 기복신앙이 한국교회가 하나됨을 이루지 못하고 분열되는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기복신앙은 한국교회와 성도들로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빼앗아 가버리고 말았다.  

 
자료 출처: 추수군대

요새 토드 벤틀리와 큰**교회 이야기로 시끄럽습니다만..


이 논란의 핵심에는 캔저스시티 대언자(선지자) 그룹(Kansas City Fellowship/Prophets, KCF/KCP)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윌리엄 브래넘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늦은 비 운동을 이어받은 마이크 비클밥 조운스가 설립한 KCF/KCP의 대한 신랄한 비판보고서를 소개합니다.


아래는 그들의 실체를 고발한 [내부자 보고]에 해당하는 Ernie Gruen Report의 내용입니다.


그(Ernie Gruen)는 Mike Bickle(IHOP 이사장), Bob Jones(벤틀리와 B목사의 멘토), Paul Cain(성추문 목사) 등과 Kansas City Fellowship(KCF)을 함께 동역합니다.
뒤늦게 그들의 사역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보고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다 포기하고 KCF를 빠져 나온 후, 목숨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주의 명령에 따라 KCF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알린 오순절계 사역자입니다.


이 리포트가 공개되자 그들은 존 윔버의 산하로 숨어들어 빈야드 교회로 변신하게 됩니다. 윔버는 후에 피터 와그너와 손잡고 늦은비/신사도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합니다.


문제의 내용 제목과 내용의 일부만! 발췌해서 소개합니다. 나머지는 리포트에서 확인하십시오.

(제 부족함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번역된 내용이 원문과 일부 다를 수도 있음을 말씀 드립니다.)
리포트(영문) 주소입니다. http://www.intotruth.org/kcp/Abberent%20Practises.pdf


1. 마이크 비클은 (선지자가 아닌) 밥 조운스를 '하나님의 참 선지자'라고 추켜 세웠다.
밥 조운스는 알콜중독, 폭력, 도박, 밀수, 악령지배 등으로 20년 이상을 방탕하게 살다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그는 "(미워하던) 12명을 죽이던지 용서하던지 하라"는 예수(?)의 음성을 듣고 (다행히도^^) 그들을 용서하고 갑자기 선지자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
2. 마이크 비클은 그의 '운동'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으로 만들기 위해 터무니 없는 초자연적인 이야기를 꾸며 냈다.
예를 들어, "밥 조운스가 석달 동안 가뭄이 들다가 8월 23일에 비가 올 것으로 예언했는데 바로 그렇게 되었다. 우리 일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다"라고 주장하나
기상청 등의 자료로는 그 기간 중(6월)에 평년 이상의 비가 온 것으로 나와 있다.

..
3. 마이크 비클의 '선택된 씨앗 세대' 신학은 어처구니 없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님과 천사들이 바울, 다윗, 베드로..의 혈통으로부터 골라낸 그의 자녀들은 사도행전의 10000배의 기적을 일으키며, 그 중 30만명은 사도가 되고, 그 중 35명의 KCF 사도들은 사도바울과 같이 될 것이다. 벽을 뚫고 지나가며, 10억 이상을 구원하며, 없어진 팔을 즉시 만들 것이다. 그들은 보이지도 않고 죽지도 않을 것이다. (기가 막혀..)

..
4. 마이크 비클은 겉으로는 자신이 아래와 같이 비판하는 [은사계열 목사들과 리더들]로부터 지지를 받으려고 매우 노력했다.
"우리는 현재의 은사적 교회와는 전혀 다른 새 질서를 찾고 있다.
악령의 영향을 받은 불법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이러한 기존 질서로부터 우리는 탈피하기 원한다
."

..
5. 마이크 비클은 신자들에게 거듭난 형제자매들로부터 핍박과 거부를 당할 것을 예상하라고 가르친다.
"새 질서가 오면, 이는 (기존 것보다) 열배 백배 크기 때문에, 마찰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다윗(새 질서)의 기름부음에 대한 사울(기존 질서)의 시기를 틈다 악령이 들어 왔듯이.."

..
6. 소위 '선지자'들이 전혀 무책임한 예측을 하고, 하나님이 재앙을 준다는 경고성 예언으로 성도들은 겁주는 것을 보았다.
'선지자' 존 폴 잭슨은 85년 9월 "모든 은행의 반이 문을 닫고 예금과 대출의 75%가 문닫고, 달러는 폭락하고 주식은 추락할 것이다"라고 했다.

..
7. 그들은 성도의 미래에 대한 사적인 지시예언의 실수에 대해 관대하다. 이런 빗나간 예언은 사람들을 황폐하게 하는 것이다.
100명이 넘는 빗나간 예언을 받은 사람들과 상담한 기독심라학자는 상담결과를 보고 성취된 예언은 하나도 없다고 하며, 어려운 시기에 빗나간 예언은 더 큰 고통과 더불어 하나님과 멀어지게 한다고 말했다.
- 예언의 삼분의 이가 맞으면 꽤 잘한 것이다 - 밥 조운스

..
8. 캔저스시티(KCF) 선지자들은 우리의 교회들을 방문해서 그들에게 교회문을 닫으라고 예언했다.
어느 장로의 증언
"KCF의 세 선지자가 우리 교회에 와서는 하나님이 이 교회를 해산하라고 하셨으니 거역하지 말라고 했다. 우리가 예언을 따르지 않으면 교회 문에 Ichabod(이가봇,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라고 적겠다고 했다."

..
9. 터무니 없는 가르침을 깊은 영적 진리라고 조장한다.
그들의 자녀들은 이층천에서 마귀를 쫒아 내고, 예수의 발 아래에서 죽일 것이다. (밥 조운스)
꿈글자(dream alphabet)풀이를 통해 꿈의 99% 이상을 풀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존 폴 잭슨)

..
10 - 12. 생략하겠습니다.
신기한 현상만을 강조하고(10), 주일학교 어린이들까지 이런 내용에 접하게 되며(11), 이런 가르침을 받은 성도들의 현상(12)에 대한 내용입니다.



--

보고서에는 수 많은 사람들의 증언과 편지들을 소개하고 있으며
문제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과 보고가 뒤따르고 있습니다. (총 130 페이지)

특히, 밥 조운스에 관한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큰**교회 뿐 아니라 에스*기도****도 KCF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아무쪼록 분별에 도움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리포트(영문) 주소입니다. http://www.intotruth.org/kcp/Abberent%20Practises.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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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드의 지인이자 토론토 부흥회를 주관한 TACF (Toronto Airport Christian Fellowship) 교회의 John Arnott 목사 (별로 달가운 인물은 아니지만) 가 교회 웹 뉴스레터를 통해 타드가 폭주도 했다고하네요. 정확히 어느시점인지는 말을 안했지만 글의 흐름으로 봐서 레이크랜드 부흥회때였던것 같습니다. 링크는 >>>http://www.tacf.org/tacforghome/Visitors/LakelandToddBentleyUpdate/tabid/761/Default.aspx

목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아직은 간음했다는 확실한 소스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이 2번째 affair 이고 또 위의 뉴스레터를 봐서라도 육체적으로도 일이 있었지않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혼도 결정적인것 같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마음이 무겁네요 -.-;;


자료제공/겨자씨, 출처:아멘넷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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